2015.12.04 21:35
양식
본문 : 요한복음 6장 27절-30절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성경에는 거기에 관련된 내용을 다 기록하는 것이 성경이 아닙니다. 다 기록하지 않습니다. 기록할라면 온 세상에도 둘 만한 곳이 없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참 알고자 하는 양심을 써서 알고자 하는 자에게는 문서로 표시된 이 성구들을 가지고 문서로 표시하지 아니한 그 속에 감추어 있는 은밀 의지까지 다 알 수 있도록 이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서 이 계시는 그 양심을 써서 자기 인격을 기울여서 알려고 하는 자에게 알려 주시고 이 말씀을 세상 학문같이 생각하고 자기의 재능이 있다 또 이런 모든 세상 기존 지식들이 있다, 또 선천적으로 자기는 명철하다 이것 가지고 하나님을 대하는 자는 절대 이 말씀을 깨닫지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학문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거기에다가 목숨은 대놓고 알라고 해도 무식자는 모르는 것이고. 또 근본 날 때부터 둔한 자는 모르는 것이고 그 자체에 유능 무능의, 지도를. 지배를 받는 지식들이지만 세상 지식은. 아무리 욕을 하면서 그 문서를 봐도 세상 지능이 풍부한 사람은 그것을 다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또, 자기가 이 세상 지식에 대한 이것을 알려고 목숨을 걸어 놓고 알라고 애를 써도 그 지능이 없는 사람. 무식한 사람은 그걸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선천적으로도 참 둔하고 아주 저능자고, 또 후천적으로도 배운 것이 하나도 없고 아주 무식하고 둔하고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도 자기의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자기 인격을 다해서 이 진리를 알려고 하는 자에게는 환하게 알려 주십니다. 이 문서 계시도 알려 주시고 이 문서 계시로 말미암아 은밀 계시인 영감 계시까지 다 알려 주십니다.
그러나 자기가 세상에 학문이 어떻게 통달하고 날 때부터 어떻게 명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말씀을 멸시하고 이 말씀을 하나의 '내가 너희들이 암만 예수 믿는다고 해도 예수 안 믿어도 여기 대한 성경 진리는 내가 더 알겠다 하고 이 말씀을 다 무시하고 제가 이 말씀을 제 실력 가지고 능히 다 해독을 할 수 가 있고 또 거기에 대한 것을 지식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이 말씀에게 달라붙지 안하고 이 말씀을 업신여기고 내가 내 지능으로 이 말씀을 능히 다 해독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달라 드는 자는 천하의 제일 지식이 많은 자라도 그는 절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말씀도 제가 인정되지 않고 이해를 못 합니다.
이래서, 이 세상에 나타난 데라도 시대 시대의 정권자들이 그 정권을 가지고 기독교를 탄압해 볼려고 애쓰지 안한 그런 정권자들이 없습니다. 다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아는 데는, 기독자를 탄압하는 데에는 성경을 알아야 탄압을 하지 성경 모르고는 못하기 때문에 성경을 연구하려고 온갖 모든 철학자들, 모든 심리학자들, 모든 이종교의 머리 있는 그런 지능자들이 다 합해서 신구약 성경을 연구해 가지고 이 기독자를 시험하고 넘어뜨릴라고 애를 써도 성경의 진리는 그들이 깨닫지 못합니다. 영감 받은 사람들이 깨달은 그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항상 껍데기를 가지고 말하고 인간적으로 말하지 성경에 대한 진리를 말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특수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 말씀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도 그렇고 성경 말씀을 들을 때도 그런 것입니다. 이러니까, 일자 무식이 성경에 대한 것을 자기 목숨을 바치기까지 깨닫고 믿어서 자기의 복음으로 삼는 사람 있어도, 또 세상 학문을 어떻게 통달한 자라도 이 말씀에 대해서 하나도 믿을 수 없는 말씀으로서 자기에게는 구원의 복음이 털끝만치도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고 통달한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어린 아이가 뭐 압니까? 아무 것도 모르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몰라도 자기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 무오하신 생명의 말씀인 것을 알고 깨달을라고 달라들고 하나님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겸손한 자에게는 환하게 알게 하지만 그런 지혜 있고 통달한 교만한 자에게는 숨겨서 하나도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세상적으로 유식한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잘 알아들을 줄 알아도 절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성경 말씀을 외워도 이 말씀이 영생인 것을 모릅니다.
한 마디도 믿지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박사 쳐 놓고 과거에 신사 참배 이긴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박사 쳐 놓고 신사 참배 안 한 사람은 하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박사라고 ○○교파 신학교 그때 창설자요 또 교장으로 있다가 나이가 많아서 은퇴했지만 그 사람은 신사 참배 그것을 이기지는 못 했고 도망쳤습니다.
일본 나라로 망명했다가 또 일본 나라에서 못 견딜 상 바르니까 눈치가 싸 가지고 저 만주로 망명해 가지고 거기에 있다가 해방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여기서 아주 세상 지식 가지고 통달한 사람으로서는 아마 공산주의가 오든지 하면 기쁘고 즐거움으로 생명을 바쳐서 믿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은 많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주 무식한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어.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은 영생인 것을 깨달았고 믿지만 다른 사람은 깨닫지 못해 그런 것입니다. '아 어리석어서 영생으로 믿는다. 우리는 지혜 있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영생으로 믿지 않는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이 하나님 말씀이 영생이라고 예수님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간절함이 없고 여기에 죽고 사는 것이 달린 것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해당되지 못합니다. 저는 암만 들어야 모릅니다. 이제 알라고 달라들면 그만 아는데 믿지 않기 때문에 아는 것이 다 헛일이고 믿어야 그 다음에 알맹이를 알고, 믿음의 능력을 맛보고. 믿어야 생명을 얻는 것인데 믿음이 없으니까 이 껍데기 이거는 내나 문서로 말하면 이것은 세상 학문의 문서와 책은 꼭 같습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진리가 능력 있고 그 속에 하나님이 내주 해 계셔서 능력 있는 것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이것을 해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그러면 썩는 양식은 무엇을 가리킨 것입니까? 썩는 양식 위해서 일 하지 말라 말은 썩는 양식 위해서 자기의 심신의 힘을 기울이지 말아라 소비하지 말아라. 썩는 양식 위해서 이 심신의 기운을 소비하지 말아라 그 말이오. 일하지 말라 말은 썩는 양식을 위해서 노력하지 말아라. 썩는 양식을 소망해서 그것을 수입하려고 네게 있는 그 정력을 소모하지 말아라 하는 그 말입니다.
그러면 썩는 양식은 무엇을 가리킨 것입니까? 자. 말 안 해도 썩는 양식을 자기가 바로 알았는지 몰랐는지 내가 지금 말을 할 터이니까 '아. 나는 이 썩는 양식을 잘못 알았구나.' 잘못 알았으면 잘못 안 자인 줄 알고, 그러면 자기는 암만 여기 나와 앉았어도 구원이 헛일이라는 걸 알아야 될 터인데 그걸 손을 들라 하면, 그거 왜 손을 들라 하느냐? 마음으로 '나는 썩는 양식은 무엇이다' 하는 걸 자기가 생각하고 '나는 이렇게 알았다' 그러면 이제 정답이 나올 터이니까. 시험 칠 때도 자기는 이렇게 적어 놨는데 '보자. 정답을 보자.' 정답 보니까 틀렸다 맞았다 알 수 있다 말이오. 자기 한 것이 있어야 정답과 맞는가 안 맞는가 알 수 있을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데, 정답을 말할 때에 그만 자기가 알면 되는데. 그것도 또 속여 버리고 도무지 그것을 표시까지 안하니까 거기서 또 마귀란 놈에게 꼬임 받아 가지고 그만 뭐 몰라도 표도 안 나고 알아도 표도 안 나고 이러니까 슬그머니 지나가는 그래 흐리멍덩한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손들라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자 썩는 양식은 뭐이 썩는 양식인가? 썩는 양식을 뭐이라고 여기 해석 한 거 없지만, 그 다음에 제자들이 묻는 말을 봐서 썩는 양식을 알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썩는 양식은 뭣이 썩는 양식인가? 보내신 자를 믿지 않는 것이 다 썩는 양식입니다. 보내신 자를 믿지 않는 것이 썩는 양식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썩는 양식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 그러면 자기는 맞았다고 생각합니까? 안 맞았다고 생각합니까? 지금 자기가 생각했으니까 맞았을 것이오. 자, 그러면 자기 생각과 내가 정답을 말하는 것과 맞지 안하고 삐뚤어진 사람은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것도 거짓말이라. 거짓말쟁이 손 안 들거든. 뭐 전부 거의 다 들어야 될 건데 손을 안 들어.
그러면, 영생토록,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어떤 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까? 내가 정답을 말하겠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맞았습니까? 자기 생각하는 거와 맞았습니까? 안 맞았으면 지금 정답을 말했으니까 정답을 이제 기억하고 이렇게 알라 그 말이오.
썩는 양식은 보내신 자를 믿지 않는 것이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
그러면 보내신 자를 믿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이 보내신 자를 믿지 않는 것인가? 보내신 자는 뭐이 보내신 자인가? 보내신 자는 신인양성일 위이신 예수님이 보내신 자인데, 보내심을 받아 가지고 우리에게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데, 그러면 보내셔서 오신 이는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은 지금 그라면 지금 우리가 이분을 믿도록 우리에게 와 가지고 계시는 예수님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믿도록 우리에게 와 가지고 계시는 보내심 받은 자 예수님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정답을 말하겠습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에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어느 절이라도 어기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것, 신구약 성경에 있는 그 구구 절절을 내가 그대로 믿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썩는 양식과 또 영생토록 있는 양식을 이제 똑똑히 구별해서 알았습니다. 그러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그것이 영생하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29절에 보면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했는데.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지 않는 것이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아니하고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 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다 망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일은 전부 썩는 일이요 망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일이 아닌 것은 다 썩고 망하는 것이라. 예수님을 믿는 일이 된 것 예수님을 믿는 일이 된 것은 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마련한 것이 되고, 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일이 되지 안한 것,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예수 믿는 일이 되지 안한 일을 한 그것은 전부 다 썩는 양식이라.
다 그것은 죽고 망하고 멸망하는 것이라 이것을 우리가 단단히 믿어야 합니다.
확정을 지워야 합니다.
자기가 목사라도 장로라도, 권사라도, 집사라도, 세례받은 사람이라도, 학습받은 사람이라도. 평신도라도, 유치반이라도 자기가 예수 믿는 사람이지만 예수 믿는 일도 있고 예수 안 믿는 일도 있으니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일은 다 멸망하는 일이다. 다 멸망할 일을 했다. 예수 믿는 일만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한 일이 된다. 이것을 단단히 확정을 짓고 믿어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도 보니까 벌써 적게 나와서 저 뒤에 텅 비었다 말이오. 그렇츰 우리가 연약한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게 제 마음으로 나오기 싫은 게 아니라 마귀에게 붙들려 못 나오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붙들려서. 마귀가 별 마귀가 다 있는데, 오늘 아침에 시간이 있어서 말하면 말을 할 수가 있을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밤새껏 마귀하고 싸우다가 나왔습니다. 마귀 그놈이 싸우는데 참 주님이 나를 도와 주셔서 그놈한테 죽지 안했지 그리 아니면 그놈한테 죽을 수밖에 없어. 그놈은 힘이 세고 강한 놈인데 내 힘으로써는 도무지 당할 수 없는데 주님이 이제 막아 주심으로써 겨우 생명은 존재했습니다.
그놈한테 죽을 것인데.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한 일이 되고 예수님을 믿지 안한 것은 다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한 일이 된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인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을 어겨서 한 것은 전부 예수님을 믿지 안 한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을 어겨서 한 것은 제가 물질에 대한 일이든지 가정에 대한 일이든지 자기 개인에 대한 일이든지 무슨 공적 일이든지 또 자기의 위신에 관한 일이든지 자기의 몸에 관한 일이든지 자기의 무슨 고락에 관한 일이든지 자기 목숨에 관한 일이든지 자기 지위나 권세에 관한 일이든지 무슨 일이든지 어떤 일이든지 우리에게 나타나신 신구약 성경 말씀이 말씀을 어겨서 한 일, 이 말씀을 어겨서 한 일. 이 말씀을 어 겨서 한 일이 곧 예수님을 안 믿은 것이요, 또 이것이 뭐입니까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 이것을 우리가 똑똑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성경 말씀을 어겨서 한 것. 사업을 해도 성경 말씀을 어겨서 했습니다. 또 부부 동침을 해도 성경 말씀을 어겨서 했습니다. 왜? 여러분들이 알도록 하기 위해서 합니다. 사장노릇을 해서 성경 말씀을 어겨서 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 날은 목회하는 사람이라 목회하는 사람인데 목회를 위해서 교회 부흥을 위해서 해도 성경 말씀을 어겨서 할 수 있습니다. 호주노릇을 해도 성경 말씀을 어겨서 할 수 있습니다. 또 얼마든지 성경 말씀대로 호주노릇 할 수 있습니다. 또 성경 말씀대로 자기는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어겨서도 할 수 있습니다.
부부 생활도 성경 말씀대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어겨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슨 종류 무슨 일이든지 성경에 말씀하신 이 성경 말씀에 규범, 그 규칙과 그 범위, 그 규범을 떠나서 그런 것을 할 수도 있고 성경 말씀의 그 규범 안에서, 성경 말씀이 말씀하는 그대로의 그 규범 안에서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이 뭐 나쁜 게 아니라 공부도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하여 하는 이 일이 되는 공부를 할 수도 있습니다. 또 공부도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공부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기에 뭐이든지 다 안 그럴 게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빼 보십시오. 무슨 뭣이라도.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 닥친 마음의 움직임이라든지 몸의 움직임이라든지 정신의 움직임이라든지 우리의 욕심의 움직임이라든지 우리의 신경 움직임이라든지 또 정서 감정 움직임이라든지 무슨 기억력의 움직임이라든지 뭐 우리 마음의 요소는 굉장히 많은데, 또 우리가 생활하는 것도 많습니다. 짐을 지는 것도 있고 손으로 하는 것도 있고 발로 하는 것도 있고 말로 하는 것도 있고 또 몸뚱이로 하는 것도 있고 우리가 하는 일도 뭐 그 가지 수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도 할 수 있고 말씀을 어겨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는 것은 그것은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한 것이 됩니다. 말씀을 어긴 것은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한 것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한자리에서 해도 썩는 양식 위해서 일 하는 사람 있고, 영생토록 있는 양식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두 여인이 매를 가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했다 그말은 하나는 그 일하는 것으로써 영생을 이루었고. 하나는 영원한 멸망을 이루었다 그말입니다. 영생을 이루었고 멸망을 이루었다 그말입니다.
데려감을 당했다 그말은 그 시간 생활함으로 그 현실에서 그 기능이 하나님 앞에 들려서 천국으로 들어가서 천국에 영생하는 기능이 된 것도 있고, 그 기능이 다 같이 한자리에서 일을 했는데 그 기능이 둘째 사망, 영원한 멸망의 기능이 된 것도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데려감을 당했다 말은 우리 전체를 데려가는 것도 데려감이지만 우리가 기능적으로 부분적으로 데려가고 버림당하는 것도 그것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단단히 기억하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래 가지고 내나 그러면 성경 말씀이 예수님이냐, 그렇게는 말을 못 합니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이냐? 예. 예수님은 성경 말씀입니다. 진리는 예수님이냐? 진리는 예수님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진리는 무인격 존재입니다. 무인격 존재 이치요.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라고는 할 수 있어. 예수님은 진리라고는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여러분들이 애를 써서 아, 예수님이 진리라 했는데 예수님은 진리라고는 말할 수 있으나 진리는 예수님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그게 무슨 말인가 이것을 구별을 못 하면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연구해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썩는 양식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썩는 양식이라. 또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 그걸 단단히 잡으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어떤 것인가? 성경 말씀을 버리고 성경 말씀을 어겨서 하는 일은 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일이라. 또 예수님을 믿는 거는 뭐인가? 성경 말씀대로 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일과 믿지 않는 일과 그 일의 종류가 있느냐? 종류가 없다. 세상에 있는 어떤 종류의 일이든지 그 일은 예수님 믿는 일로도 할 수가 있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일로도 할 수가 있다. 어떤 종류의 일이든지 그 종류가 다른 게 아니고 그 종류에 대해서 내가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 행동하는 것이 그 종류에 대해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할 수도 있고, 또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할 수도 있다. 어떻게 일의 종류는 다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는데 그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할 수도 있다.
하나 예를 든다면, 어떤 처녀가 지도자의 말을 듣지 안하고 그것이 못 되게 날뛰면서 어쩌든지 어디든지 제 마음대로 가면 좋은 곳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 부모를 떠나서 돌아가다가 어떤 유혹하는 자에게 붙들렸습니다. 붙들려 가지고 그만 사창굴에 들어갔습니다. '아, 내가 좋은 직장을' 부모를 떠나 탕자 모양으로 가 놓으니까 다 공허하고 어디 의지할 것도 이런데다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아, 어디서 왔는데 좀 아마 뭐 무슨 직장이 없고 좀 뭐 그리 좀 어려움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좀 도와 드릴터이니까, 뭐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직장 같으면 내가 직장을 좋은 데 말해 주겠습니다.' 이라면 아 나를 돕는 사람이라 해 가지고 그게 딱 달라붙어 가지고 '그러면 직장을 날 좀 말해 주십시오.' '네. 그라면 갑시다.' 그래 따라갔다 말이오.
따라가니까 여관집인데 '여관집에 여기 좀 앉아 계십시오. 그러면 내가 그 직장을 구해 놓고 오겠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 사람이 참 자기에게는 친절한 아저씨라 말이오. 아저씨인데 그래. 이래 떡 기다리고 앉았습니다. 않았는데 하루 있어도 안 옵니다. 이틀 있어도 안 옵니다. 그라면서, 그라며 또 주인이 떡 말하기를 '아. 걱정하지마. 그분은 신실한 양반이니까 어쩌든지 뭐 그분이 직장 구해 줄라 하면 직장 구해 줄 터이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라면서 뭐 불편한 것 있으면 얼마든지 줄 터이니까 말 하시이소. 뭐 그 어른이 와서 맡겨 놨기 때문에 그 어른은 참 신실하고 아주 점잖은 어른이라고 막 이래 추켜올리니까.
아. 이제는 참말로 아주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구주의 이 사람을 만났다 싶어서 이라고 있는데 음식도 아주 잘 해 주고 아주 거처도 잘 하도록 이래 해 주고. 또 돈도 뭐 돈 뭐 얼마. '돈도 쓸라면 쓰십시오.' 이래 돈도 그라니까 이거 철없는 것이 돈도 거석하고, 돈을 또 안 쓰니까 물건을 사 가지고 와서 '이거 뭐 혹 안 할랍니까? 하실라면 그 선생님이 맡겼으니까 그 선생님이 다 부담하실 것입니다.' 이러니까. 물건 갖다 주니까 물건도 또 이거 철없는 것이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 해 가지고 했는데 아 이거 하루 기다려도 안 돼. 이틀 기다려도 안 돼. 이제 자꾸 기다려도 안 됩니다. 기다려도 안 되는데 한 보름 됐습니다. 한 보름 됐는데 보름 되니까 지금 등이 타고 있는데 아 떡 그 사람이 온다 말이오. 오니까 아이구 이거 참 미안합니다. 그래 뭐 뭐이 주인에게 뭐 부채 진 게 얼마 있습니까? 뭐 그런 것 염려하치 마시고 내가 좋은 직장이 됐으니까 이제 됐습니다.' 이래 놓으니까 이 철통같이 믿었다 말이오. 믿고 난 다음에 그 불량자 그놈한테 정조는 뺏깁니다. 일차 정조는 뺏기요.
일차 정조는 뺏기고 난 다음에 이제 잠깐 그래 놓고 뭐 아 변소 간다고 위에 옷 벗어 놓고 변소 간다고 간 놈이 도무지 안 옵니다. 또 사람이 애가 타요. 안 오요. 그 다음에는 안 와, 그 다음에 또 한 보름 됐다 그 말이오. 한 보름 돼서 벌써 자기는 신세 갔지, 갔는데 그만 한 보름 됐다 말이오. 됐는데 그 다음에 안 옵니다. 안 오니까 주인이 있다가서 '아, 그 사람이 신실한 사람이라고 이랬는데 그 사람이 안 오니까 당신에게 부채가 이렇고 이러니까 이 부채를 어떻게 할랍니까?' 이제 부채를 말합니다. 부채를 말하는데 벌써 그 부채가 얼마나 많이 짊어졌는지 갚을 수 없는 그런 큰 부채가 가뿍 짊어졌습니다.
그러면. 지금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여기 저 뭐꼬? 완월동은 그거 사창굴인데 거기에는 공창굴이지만, 그 이면에는 여기, 부산에 사창굴은 어디가 사창굴이요? 저 서울에서는 내가 청량리 거기에가 사창굴이라 하는 걸 내가 구경을 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 때문에 내가 갔는데 여기에 부산에 사창굴 누가 압니까? 몰라.
그런 거 모르면 안 돼. 청년들이 그거 모르면 뭐할 거라? 그러기 때문에 도무지 무식해서 아무 것도 아니라 말이오. 그런 것 다 알아야지 어디 있다는 그걸 다 알고 그런 걸 방어 할 수 있어야 되지 그거 모르면 등신은 다 넘어지고 만 거라.
아. 사창굴이 여기 완월동도 있고. 완월동 이 부근에 거긴 공창굴이 있는데, 관에서 해 놓은 그게 있는 동시에 사창굴도 있어요.
있는데, 그래 가지고 나중에 거석하면, 보니까 '돈을 내라. 돈 안 내 면 네가 어짤거고?' 들이 조아댑니다. 조아대도 돈이 있습니까? 돈이 없으면 그래 가지고 그 다음에 이제 돈이 없어 고생을 당하니까 또 어떤 신사가 떡 하나 와 가지고 아, 뭣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나? 왜 그라면 뭣 때문에 당신들이 그렇게 물건을 주고 그렇게 했냐고 아주 자기편으로 보호를 하고 변호를 하고 이러니까 아, 또 둘째 신실한 아저씨를 또 만났다 말이오. 둘째 또 신실한 아저씨를 또 만났어.
만나 가지고 '그 부채가 얼마요? 내가 갚아 줄께. 사람을 그럴 수가 어디 있나?' 아, 이러니까 이제 이 사람은 둘째 또 신실한 아저씨를 만났다 말이오. 만나 가지고 이제 그분이 또 두 번 농락을 또 당했다 말이오. 욕을 또 당했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나중에 세 번만이면 그만 그 다음에는 옆에 부랑자들이 있습니다.
부랑자들이 와 가지고 마구 뚜드려 댑니다. 조져대고 이라니까, 이제 할 수 없어서 '네가 이러니까 너는 달리는 할 수 없고 네가 몸을 파는 것 외에는 이 돈을 갚을 수 없으니까 네가 어찌 하겠느냐?' 그래 가지고 처음에는 사창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내가 청량리에서도 그런 사람을 뽑아낸 일이 있었고 또 여기 서부교회 와 가지고도 뽑아낸 일이 있었고, 그때는 경관들도 소용이 없어. 그래 놓으면 아무 데 가도 소용없어. 아무데 가도 뭐 피할 도리가 없어. 그 불량자들이 많이 돈 받아먹고 있기 때문에 잡아 가지고 간다 말이오. 또 경관이 오면 경관도 소용없어. 경관도 전부 매수 다 당하고 있어요. 그 부근의 경관도.
그 속에 들이다 보면 우습지도 안합니다. 그래 가지고 숨길 도리가 없어.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걸 만일 내가 있으면서 지킨다 하다가 당장 뚜드려 맞아 그 불량자들한테 이러니까. 경관들한테 말을 해도 소용이 없어, 그게. 피해 버린다 그 말이오. 뭐 요새는 조금 어떤지 몰라도 굉장합니다. 이래 가지고 자기 신세를 망쳐 가지고 이런데 나중에 그걸 또 빼내 왔습니다. 나중에 얼마 동안 지나고 난 다음에는 그것이 악습이 딱, 음습이 딱, 음탕스런 습관에 딱 들려 가지고 있는 여인은, 빼내 봤어. 빼내 보니까 실컷 그걸 참 갚아 주고 불쌍해서 빼내 놓으니까 어디 가고 없어 나중에 보면 내나 거기에 가 있어. 이제 거기에 안 가고 못 견딘다 말이오, 거기에 가기를. 사람이 이렇게 타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창굴에서는, 사창굴 그 일은 거기서는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있습니까? 없습니까? 네.
거기서도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사람이 거기서 참, 사람을 못 나가게 합니다. 절대 못 나가 게 하요. 못 나가게 하고 딱 무엇이 있다 하면 사다 주고 그 부근에는 경관도 전부 모두 매수를 해 가지고 다 이랬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어. 이래 가지고 막 무력으로 뚜드려 대고 이라는데, 그 사람이 어떻게 전도사가 오다 가다가서 그 전도지 전하는 것을 받았다 그 말이오. 그러면. 거기에는 가 전도도 못 하게 합니다. 막 전도 못 하게 하고 막 닥치면 맞습니다. 뚜드려 맞아. 그래도 인제 생명을 각오하고, 죽을 각오를 하고 가 가지고 전도를 하지 않습니까? 들어가서 전도를 하고, 또 무슨, 그래서 그때 급해서 무슨 전화를 건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어짭니까? 전화도 못 건다 말이오. 못 걸게 한다 말이오. 이래 맞아 죽을 요량하고 복음을 전해 가지고 복음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사형장에 복음을, 사자굴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같은 그런 복음이 있다 말이오.
서울 ○○○교회서 교회 세울 때에 제가 그런 종류의 일을 겪었다 말이오. 그래 전도를 받아 놓으니까 이 사람이 어떻게 하든지 어떻게 도주를 해 가지고 이미 그거 아닌 줄 알고 나올라고 피해 나올라 하니까 그래도 그런 틈이 있어서 도망을 쳐서 나왔다 말이오. 도망을 쳐 나와 가지고 '그러면 나는 어떻게 예수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내가 그 자리를 떠나야 안 되겠습니까?' 그거 뭐라고 지도해야 되겠습니까? 떠나서는 안 된다. 네가 그 자리에서. 그 자리에서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그때 영생토록 있을 양식 위해서 일하라 이 말은 안 했지만, 그 자리에서 네가 예수를 믿어야 되지 그 자리를 떠나 가지고는 예수를 믿으면 안 된다. 그 자리에서 예수를 믿어라.' '내가 그 자리에서 어째 예수 믿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예수 믿어야 바로 예수 믿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네가 예수 믿는 거는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니까 그게 죄인 줄 알았으니까 그 자리에서 죄를 짓지 말아라. 말씀대로 살아라.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이 살라고 그라니까 처음에는 뚜드려, 생명 내놓지 안하면 그 자리에서 칠계를 범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안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오. 그 자리에서 신앙 양심을 지킬 수가 없어. 그래 놓으니까 뭐 맞고 떡이 돼도 그 자리에서 '나는 죽어도 이제는 나는 이것이 죄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죄는 범할 수 없습니다.' 이러니까, 얼마 동안은 달개다가 달개다가. 또 이거 얼마동안 이거 지금 놀리고 먹이고 나면 그 다음에 거석하니까 나가지만 못하구로 하고 이랬는데, 나중에 끝까지 안 되니까 이거는 소용이 없다 말이오. 이거는 아무 못 쓸 물건이다. 저거에게는 쓰지 못할 물건이라. 쓰지 못할 물건이니까 때리다가 해 가지고 벌써 사람은. 몸은 병신이 되다시피 이래 됐는데도 그래도 믿음으로 이래 하니까 병신 될 리가 있습니까, 뭐? 암만 껍데기는 맞아도 상관이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나중에 필요 없으니까 '나가거라' 이라면서 그래 가지고 네가 나가서 그라면 딱 뭘 써서 네가 나가 가지고 만일 이것을 폭로를 시키면 네가 어떻게 된다는, 네가 그래도 그 각서를 써서 말이지. 이래 가지고 이제 그라면 제가 걸리도록. '내가 가 가지고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이겨 나온 거 이런 거는 내가 말할지 몰라도 내가 여기 대해서 너거 고발하거나 내가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내가 나 할일이 아닌데 이 정부에서 담당한 일인데.' 하고 거기서 자기가 성결을 지키니까 그 자리 쫓겨 나와 가지고. 이제 쫓겨 나왔으니까 또 거기에 쫓겨 나와 가지고 거기에서 나와서 있으면서 교회 나와 가지고 이제는 어디로 갈까, 아무데 직장이 없으니까 교회 거기서 앉아 가지고 그만 굶어 죽을 요량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어. 기도하니까 누가 있다 와 가지고 그라면 '어떤 사람이냐?' '나는 일할 데, 일할 일이 없어서 이래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그러면. 무슨 일을 좀 해라.' 그 일을 하라 해서 또 그 일하라 하니까 그 일하는 것이, 누가 일하라 하니 죄 되지 안하는 일을 하라 하니까 그 일을 가서 할 수 있다. 그 일을 했다 말이오. 그 일 하니까 그 일을 또 주를 위해서 죽자고 하니까 그 사람이 자꾸 올라가. '아, 이 사람은 이 일 시킬 게 아니라 보니까 상당히 똑똑한 사람이니까 좀 가치 있는 일 시켜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거기서 그 여성이라도 그런 여성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뒤에 왕의 아내 황후도 될 수 있다 말이오. 황후도 될 수 있어. 하나님이 만들면 황후라도 될 수가 있다 말이오. 우리가. 다 피투성이인데 우리가 자라 가지고 만왕의 왕의 신부가 된다고 그렇게 후궁으로 들어간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그거 내가 이 말 하는 것 뭣 때문에 하느냐 하면 여기서도 그런 유혹받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 말이오. 보면 대게 사춘기에 남녀들이 그만 정신 없이 이래 가지고 헛된 허영과 허욕을 가지고 벌로 날뛰면서 돌아다니다.
가 그런 데 걸려 가지고 절단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다 그 말이오. 꼭 그런 일이 아니라도, 그런 일이 아니라도 그런데 걸려 가지고 자기의 깨끗한 처녀성을 다 뺏기고, 참 더러워지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 말이오. 이 세상이 얼마나 더러운 세상인지, 그거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놨소. 그런 가운데서 깨끗해야 깨끗한 자라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말 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일이라도 그 종류랑은 버리지 말고 그 종류에서 영생토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해라. 자기가 그라면 아, 뭐 남녀 반사 선생, 권찰 일, 또 목사 일 이래 하면 거기에는 전부 그 일은 영생하도록 있을 양식을 마련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니오. 목사 일에서도 거기서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권찰에게도 그러하고 장로에게도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일의 종류는, 일의 종류는 어떤 일의 종류든지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이 일을 할 수 없는 일이 없고 또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을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없는 그런 일은 없다. 없는데, 다만 거기서 뭐이냐 하면 어떤 일이든지 그 일에 썩는 양식과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그 두 길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에 이미 있는 일이면, 자기가 이미 하고 있는 일이면 그 일을 그 일을 버리고 제가 나설라고 하지 말고 그 일에서 계명을 지키면 나중에 거기서 못 있고 쫓겨 나가게 되든지 필연적으로 하나님이 옮기시는 일이 있다. 네가 옮기지 말고 거기서 하나님이 옮기실 때까지 기다려 가지고 옮기실 때에 옮기도록 해라 그렇게 지금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양식이라 이래 말했는데, 양식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양식 은 그 양식을 안 먹으면 어찌 됩니까? 양식을 먹지 안하면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힘이 줄어집니다. 힘이 줄어지고. 또 그 다음에 어째 돼? 힘이 줄어지고 난 다음에는 자라지를 못합니다. 그 다음에 양식 안 먹으면 어찌 됩니까? 죽습니다.
죽습니다. 양식을 먹으면 처음에는 힘이 생겨지고 힘이 생겨지면 그 다음에 자라갑니다. 자라가면 그 생명은 튼튼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식을 안 먹으면 최종적으로는 죽는 것이고 또, 최종은 죽는 것이고 양식 안 먹으면 제일 처음에 시발은 어찌 되느냐? 시발은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양식을 먹지 안하면 시발에는 자라지 못합니다. 자라지 못하고 자라지 못한 것이 오래 가면 어찌 됩니까? 기운이 없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어찌 되느냐? 죽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새사람의 인격, 새사람의 인격이나 신앙이나. 신앙 힘 영의 힘 의의 힘 말이오. 진리의 힘. 사랑의 힘. 진실의 힘, 거룩의 힘, 또 온전의 힘 의의 힘 이런 모든 힘. 새생명에 속한 이 힘은. 이 힘은 뭘 먹어야, 뭘 먹어야 힘이 납니까? 뭘 먹어야 힘이 납니까? 무엇을 먹어야 힘이 나요? 예수를 먹어야 힘이 납니다. 예수를 먹어야 힘이 납니다. 예수님을 먹다니? 어찌 먹느냐? 믿는 것이 먹는 것이라 그 말이오. 예수님을 안 먹으면, 안 먹으면 자라가지 못합니다. 안 먹으면 자라가지 못하고, 또 오랫동안 안 먹으면 어찌 됩니까? 기운 없습니다. 그만 신앙의 힘은 없습니다. 영적 힘은 없고 참 인격의 힘은 없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안 먹으면 어찌 되는가? 죽어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데 교회에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벌써 목숨만 걸려 가지고 있지 죽었다 그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남은바 죽게 된 것을 다시 살리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오늘 아침에 또 이것만 말했는데, 그 양식을, 마지막에 내가 오늘 아침에 말하고자 한 것은 양식이었습니다. 양식의 서론을 많이 말해서 이랬는데. 양식은 먹으면, 먹으면 자랍니까? 힘이 납니까? 힘이 납니다. 먹으면 일차적으로 힘납니다. 또 힘나고 나면 그 다음에 뭣합니까? 자랍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어찌 됩니까? 강건해집니다. 강건해집니다. 자라기를 어디까지 자라야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에게까지. 예수님과 같이 우리의 인격이 자라갈 수 있읍니다. 우리의 지능이 자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거룩이 예수님같이 자라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성결이 예수님과 같이 자라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뭐이냐? 양식을 먹는 데 있습니다.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먹으면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것이 자란다. 그말은 그것은 다 새사람이 자란 다 말입니다. 썩는 양식을 먹는 것은 뭐이냐 하면 옛사람이 먹고 사는 것입니다. 옛사람 그놈은 암만 먹여서 암만 잘 길러 봤자 마지막에는 다 멸망 받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하루 종일 사는데 옛사람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우리 믿는 사람이 옛사람으로 한 시간 살고 새사람으로 또 두 시간 살고 이렇게 자꾸 교체되는 것도 있고 이렇게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양식은 안 먹으면 처음에는 자라지 안하고. 기운 없어지지는 안 해요. 자라지 안해요. 안 먹으면 자라지 안하고, 그 다음에는 나중에 가서는 기운이 안 나요. 기운이 안 나고, 그 다음에는 죽어 버려요. 양식을 먹으면 어찌 됩니까? 먹으면 자랍니까 기운 납니까? 먹으면 좀 달라요. 먹으면 기운 나요.
먹으면 기운나고, 기운이 나 가지고 기운이 채여서 기운이 넘어 나갈 때에 현상 유지. 자기 현상을 유지하고 남는 힘이 있으면 그 힘은 자라가는 것입니다. 남는 힘은.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이 벌써 자기에게 자라가지 안하면 무슨 증거입니까? 자라가지 안하면. 어북 힘은 있기는 있지만 자라가지 안한다 말이오. 자라 가지 안하는 것은.
자 깨달음이 자라가는 거는 어떤 게 자라가는 건가? 깨달음이 자라가는 것은 자기가 또 새로 깨달음, 새로 깨달음. 새로 깨달음이 자꾸 이래. 보니까 더 깨닫고 더 깨닫고 하는 그거 깨달음이 자라가는 것이라 말이오. 또 자기가 간절히 자라가는 것은. 자기가 아, 간절한 마음이 내가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한 거. 원통한 후회하는 것도 후회도 자꾸 더 강해지고. 또 원하는 소원도 자꾸 강해지고, 기도도 자꾸 강해지고 더 많아지고 이거는 자라가는 것이라 말이오.
어제 비가 그렇츰 많이 왔는데, 우리, 어제는 주일학교 반사들이 뭐 삼십 명인가 정확한 삼십 명이야 몇 명이야? 기드온 삼백 명과 같이 말이지요 삼십 명이 어제는 가 가지고는 멋지게 기도하고 왔어. 저는 그 밑에 있으면서 '이거 비가 오는데 이들이 어떻게 하는고?'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여러 번 생각을 했습니다. 했는데, 어제는 '비가 오는데 어떻게 가느냐?' 이러니까 뭐 뒤집어쓰고 가 그거 그런 게 아니다. 비가 오는데 저 기도하러 가는 방식이 있으니까, 비니루를 너른 걸 이렇게 사 가지고 다, 여섯 자를 되도록 해 가지고 사 가지고, 그트머리를 딱 묶어 가지고 튀딱 뒤집으면 이 안으로 들어갑니다.
묶어 가지고 요래 뒤집어 가지고 딱 고래가지고, 그 위에 들어가서 방석 한 개 가지고 뭐. 이렇게 안 너릅니까? 너르니까 그 안에 들어가서 누워 잘 수도 있고.
그 안에 가서 어떤 사람들은 아이 서이도 데리고 들어가 가지고 그 안에 이래.
떡 이래 가지고 저게 저 떡 꺼꾸려 가지고 있으니까 공기는 잘 들어오지, 비만 오면 그걸 살짝 굽혀 버리면 그만 비는 다 튀어 나가고 하나도 안 든다 말이오.
인제 그리하라 했더니만 엊저녁에 여섯시까지 거기서 기도를 하고 그분들이 내려왔습니다. 내려왔는데, 올라가서 비가 오니까 내려오나 어짜나 이래 보니까 안 내려와. 이제 되기는 됐다. 그래 비니루 집을 떡 지어 가지고 삼십 명이 거기서 기도 했는데 아마 거기 있으니 거기서 물론 처음에는 이 생절이 이래 가니까 그만 기도하다 보니까 졸아 버리고, 졸립고 또 자다가 기도 한둥만둥 이렇습니다. 이래도 어찌 됐든지 다 여섯시까지 채웠으면 은혜가 됐다 말이오.
은혜가 됐습니다. 내려오면 은혜 받은 것이 표가 납니다. 힘을 얻은 것이 좀 먹어서 기운 차린 것이 내려오면 표가 날 거라 말이오.
표가 나는데 이다음에는 그래 하지 말고 하룻밤을 자고 와요. 거기서 낮에 올라가 가지고 낮에 내려오지 말고, 아침에 올라가 가지고 하루 종일 이래 거석하면 나중에 날이 저물어 여섯시를 기다리기가 뭐 바당바당해요. '여섯시가 하마 안 됐나?' 시계 보고 또 '여섯시가 안 됐나?' 이래 자꾸 이래 돼지는데도 저게서 내려오지 말고 그래 가지고 하룻밤을 고개를 넘겨요. 하룻밤 고개를 넘기고 나면 이제, 뭐 그럴 때는 시작 할 때에 가기가 싫어서, 거기에 있기가 싫어 이러다가도 하룻밤을 떡 지나 면 이제 그 날밤에 은혜를 받는다 말이오.
그날밤에 그라면 암만 옆에 뭐 사람들이 있기야 있지만 밤이 되니까 백지 마귀란 놈이 와 가지고 무서움을 준다 말이오. '야. 여기 뭣이 무슨 맹수가 와 가지고 어떻게 하나? 이놈이 확 와서 덮치면 옆에 사람이 있어 봤자 고함을 응 하면 옆에 사람이 있어 봐야 그거 소리도 못 할 거고 다 뭐 쥐구멍이라도 찾을 터이니까 결국은 나 혼자밖에는 없다. 자꾸 이랍니다. 암만 수십 명이 여기 있지만 와 가지고 어흥 거리면 고함을 지르며 딱 오그라지지 여기 나한테 와 가지고 구출할 사람은 나 하나 밖에 없다. 이래 가지고 자꾸 무서워져 무서워지면 그때 주님을 자꾸 더 의지하게 되고 가까이 되고 이라면. 주님을 의지하면 나중에 무서움이 없어진다 말이오. 무서움이 없어지고 그라다가는 나중에 비니루 봉지를 척 열고 이제 나오게 됩니다. 무섭던 것이 없어지고 난 다음에는 비니루 봉지를 나가 가지고 이제 나와 가지고 밖에 좀 돌아다닙니다.
돌아다니며 무서움이 없다 그말이지 인제 떡 돌아다니고, 또 그라다가 나중에는 하나님이 시험 할 때는 이제 무엇이 와 가지고 야단을 지다 말이오. 짐승이 와 가지고 야단을 지겨도 그때는, 처음에는 뭐 무섭지만 나중에 그 때 하다가 보면 무섭지 안하고 떡 가 가지고 이제 나가서 부른다 그 말이오. '보자. 네가 멧돼지가. 네가 무슨 곰이가, 네가 호랑이가, 뭐이가? 나오너라 나는 너거 주인이 나왔다. 영원토록 너거 주인이 나왔다. 나는 영원히.
너희 주인이다. 하늘과 땅의 것이 다 우리 아버지에게 상속받아서 내가 아버지 아들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영원히 나의 것이 됐다. 나는 영원히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줄 은사의 중보자가 됐다. 나오너라.' 이라며 나오기를 찾고 어디 있기를, 만나기를 원해도 만나는 수 있지만 별로이 만나지 못해. 그라면 그만 그라면 어디로 도망 가 버리고 없다 그 말이오.
○○○씨가 그분이 이래 기도하고 명상해 기도하다 보니까 자기 작정으로 '내가 어디든지 내가 눈 감고 기도하며 하고 간다. 뭐 기도하면서 내가 눈 감고 어쩌든지 내가 기도하다가 내가 가는 데까지 가겠다.' 이러니까 다른 사람 보면 가다 보니까 눈이 없으니까 물 논에도 들어가서 물 논에서 또 물 논을 건너고 또 이제 내가 있으니까 또 내에 또 기어 들어가 가지고 눈뜨지 않고 기도해 가지고 또 내에 또 건너가고, 곧게만 간다 해 가지고 그래 가 가지고 자꾸 이래 갔다 말이오. 이래 가니까 뭐 언덕도 닥 치고 산도 닥치고 다 어디인지 모르고 갔는데 아, 나중에는 갈라 해도 암만 갈라 해도 가지를 못해. 가지를 못해 보니까 눈을 떠고 보니까 앞에 바위가 벌써 그 여러 길 되는 바위가 앞에 딱 가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 거기에 기어올라 갈 수 있어야지 암만 갈라 해도. 뚫고 갈라 해도 못 가서 이제 거기에 중단이 됐다 말이오. 중단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보니까 벌써 밤은 와 밤인데 밤이 오래 됐어. 오래 됐는데 보니까 옆에서 큰 범이 와 가지고 엉크리면서 엉크리니까 그래, 처음에는 무서운 마음이 드는데 아 내가 이것도 사랑해야지.' 이라면서 이제 짐승을 사랑하는 것은 등어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그게 사랑하는 표다.
이러니까 그 다음 나중에 무서운 마음이 하나도 없으니까 이 범을 내가 사랑해야 되겠다 하고 그래 손을 내가지고 범을 사랑하면서 등어리를 이래 썩 쓰다듬으니까 바위라 쓰다듬어 보니까 바위라.
그것이 ○○○씨가 자기가 기도하면서, 나는 눈 안 뜨고 어디든지 가며 기도하겠다 이래 가지고 가다가 그래. 그래 닥친 건데, 여러분들 그것은 그저 어디든지 기도하면 서지 말고 이래 하라는 그말이지 여기서 그러다가 차 사고 나면 큰일나요.
어쩌든지 우리가 양식은 먹어야 합니다. 양식을 먹어야 돼. 그러면, 양식을 안 먹으면 그만, 기운은 처음에 안 빠지지만 자라는 거는 없어요. 자라는 거는 없다가 나중에 자라는 게 중단되고 난 다음에는 기운이 없어져 버려요. 기운이 없어지고 난 다음에 심히 굶으면 죽어 버려요. 양식을 먹으면 제일 처음에 자라지는 않지만 양식 먹으면 기운이 생겨. 기운이 생기고 넘치면 이제 현상 유지하고 난 다음에 남은 것은 성장으로 다 가요. 성장하고 자꾸 그라다 보면 생명은 든든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썩는 양식 이거는, 썩는 양식은 뭐이냐? 주님을 위하지 않는 것이 썩는 양식인데, 주님을 위하지 않는 것은 뭐인가? 성경 말씀을 어기는 것은 주님을 위하지 않는 것이라. 그러면, 영생토록 있는 양식은 뭐이냐 하면 주님을 위하는 것인데 주님 위하는 것은 뭐이냐?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이고 주님을 믿는 것이라 그 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쩌든지 발을 벗고 나섭시다. 발을 벗고 나서서 그저 예수 믿는 데 전심전력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그만 다 이 거 기울이면 먹고 살기는 언제 먹고 살아? 먹고 사는 것은 그리 되면 하나님께서 잘 먹고 살도록 해 주십니다. 뭐 망하는 회사가 잘 될 것이고 거지가 자꾸 부자 될 것이고 병든 자가 낫고 건강해질 것이고 뭐 됩니다. 그러니 믿기만 믿으면 하나님이 요구하는 게 믿음이오. 믿으면 다 되는 데 안 믿으면 안 돼. 과거에 병 나아 가지고 아픈 사람은 그게 뭐이냐 하면 믿음이 없다는 증거라. 그 표적이라. 그럴 때에 내가, 그때 나을 때에 내가 어떻게 나았던가 내 마음이 어떤가, 그때와 같은 마음을 다시 복구하면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