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4 19:51
애굽 종살이 원인
1984. 2. 15. 새벽
본문: 창세기 12장 10절∼20절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이 아브람이 첫째 참 그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장점은 12장 1절에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기관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런 축복을 주실 터이니까 네가 본토 애비 친척 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한 곳으로 가라 이렇게 말씀하신. 그 말씀을 듣고 출발했습니다. 벧엘에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 벧엘에 거기에 머물라 했습니다. 그 벧엘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거기에서 머물고 있는데 차차 차차 흉년이 들어서 아주 기근이 심했습니다. 아무리 심해도 하나님이 창조주시요 하나님이 약속하기를 축복하셔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했으니까 분명히 거기에서 굶어 죽지는 안할 터인데 아브람은 그때에는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여기에 있으면 안 되겠으니까 지금 풍년이 들고 있는 애굽 땅으로 가야 되겠다' 하고서 서서히 애굽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때 아브람은 그걸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벧엘로 오라 해 가지고서 벧엘에 와 가지고 곤란하니까 벧엘을 떠나 가지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요 그것이 그렇게 결과에 큰 화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뒤에 하는 일을 보면, 창세기 14장에서 소돔 고모라 왕하고 서로 이래 말한 걸 보면 깊이 반성하고 회개한 것이 보여집니다. '내가 과거에 하나님의 뜻이야 어찌 됐든지 내 중심으로 내 위주로 내 생각대로 한 것으로 내가 그때에 큰 화를 만났으나 하나님이 나를 거기에서 살려 주셨다'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닫고 반성한 그 모든 것이 과거의 된 일을 인해서 깨끗이 회개하고 깨달았기 때문에 그 아브람이 우리가 생각할 때에 그 참 놀라운 일을 했다 할 수 있는, 소돔 왕하고 서로 말할 때에 '내가 너로 인한 재물은 신들메 하나도 내가 취하지 않겠다' 그렇게 말했던 것이라 그 우리가 여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벧엘을 떠난 것.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네가 내가 지시한 곳으로 가라 했는데 벧엘에 가 가지고 머물렀습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하나님이 지시해서 벧엘에 가서 머물라고 한 곳이고 거기에서 애굽으로 내려가라 그 그렇게 하나님이 지시 한 일은 없었습니다. 이랬는데, 그만 너무 거기에 흉년이 들어서 곤란하니까 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 가지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면, 내려가서 아브람이 어떤 화를 만났느냐? 아브람이 화를 만난 것은 어느 정도의 화를 만났느냐? ○○○씨, 무슨 화를 만났지? 예? 졸 그 그래 있으면 헛일이라. 아브람이 자기의 아내를 다른 사람들이 보면 그 아내가 아주 아리땁기 때문에 그 아내로 인해서 자기가 죽을 것이라, 아무래도 자기 아내를 다른 사람들이 보면 반드시 욕심을 내가지고서 아내를 취하기 위해서 자기는 죽이고 아내는 취할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결혼 전에 사촌간으로서 있던 그 촌수를, 그 촌수를 옛날 촌수를 말하면서, 오라비요 누이 동생이라 그렇게 말을 하면 내가 죽지 안하고 자기는 어떤 사람이 말하면 그 사람의 아내가 될지라도 나는 죽지 안할 것이라, 또 그라면 하나님이 그 다음에는 처리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럴 때에 사라는 그 남편을 애끼는 마음으로서 그라겠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혹 아브람이 무슨 인간의 그 정조에 대해서 문란한 그렇다고 이렇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그 뒤에도 그렇게 바로 왕으로 더불어 아주 결혼하기로 다 됐지마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큰 재앙을 내려 가지고 바로가 그 죄를 범하지 못하게 했고 또 그 사라도 더럽히지 못하도록 그렇게 한 것을 보면 아브람이 그때에 이성 범죄라는 것을 그렇게 무심히 생각했다고 그렇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또 아브람이 그 벧엘에 있을 때에 얼마나 어려운 일이 있었겠느냐? 그만큼 내려와 가지고 애굽 가까이 와서 그렇게까지 자기 생명에 위협이 있고, 또 그때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를 아무것에게도 빼앗기지 안할려는 그런 마음은 다 있는 것인데, 자기 아내를 그렇게 빼앗기고 생명까지 위협있는 그런 경우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또 슬슬 돌아서 도로 벧엘로 올라가든지 다른 데로 피해 가지 그 애굽에 사지로, 자기 아내를 빼앗길 그런 곳으로 내려갈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아브라함이 벧엘에 있을 때에 그 어려움이 얼마나 심했더냐 하는 것을 우리가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벧엘에 가 가지고 하나님이 다시 지시할 때 까지 기다리려고 하니까 그 기다리는 동안에 어려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다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잘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생명의 위협이 있어도 안 갈 수 없었고 자기 사랑하는 단 하나의 아내를 빼앗기는 그런 위협이 있어도 안 갈 수 없는 그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하는 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넉넉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 아브람이 이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서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 후에 믿는 믿음과 아주 천지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요 대주재되신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순종하면 축복하셔서 큰 민족을 이루고 또 창대케 되고 천하에 복의 기관이 된다고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이 자기를 뭐 굶겨서 죽여서 거기에서 뭐 없애구로 그렇게 안 한다는 것을, 자손이 난다 했으니까 안 굶어 죽는다는 것은 죽지 안할 것을 알았고, 또 곤란이 당하는 그것은 곤란이 심히 당하지마는 하나님께서 구할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아브람과 당신에게 필요있는 그런 모든 시련과 고난이기 때문에 그 고난을 주시지, 필요없는 것을 주시지 않는다 하는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경험해서 깊이 자기가 느끼고 깨달았기 때문에, 그후 삼 대나 가나안을 주시겠다고 이렇게 몇 번이나 약속을 하시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나안을 주시지 아니하시고 나그네 생활로 거기에서 우거했습니다. 그라면, 자기는 벌써 생명이 끝나는 때이니까 '이제는 하나님이 나 한테 약속하신 것을 안 주신다' 이라고 떠날 것인데 아브람은 그때에 그런 생각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는다. 내가 벧엘에 있을 때에도 그렇게 그래도 내가 그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내 마음대로 내 중심대로 나를 위해서 변동한 그로 인해서 내가 벌써 그때에 죽었을 터인데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나를 살렸지 그리 안 하면 나는 거기서 죽어서 벌써 송장됐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약속에 변치 안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생전에 바라던 그 가나안을 주시지 안하는 이것은 이 가나안이 아니고 나에게 더 좋은 나라를 나에게 주시려고 하는 것이라' 하는 것을 믿으면서 그가 하늘나라를 믿었습니다. 그가 죽음 이편에 있는 세계가 아니고 무궁 세계의 하늘나라를 그가 소망한, 소망이 우리에게, 아브람의 믿은 그 소망이 우리에게 유업으로 뻗쳐 왔습니다. 그래서 이 소망 면에서 우리는 아브람의 자손입니다. 아브람이 믿는 그 믿음을 인해서, 하나님이 인생에게 약속하신 것은 믿음으로 인해서 주는 것인데 아무도 하늘나라를 약속한 그 약속을 믿는 사람이 없는데 아브람이 믿어서 비로소 그 개척이 되고 개방이 됐습니다. 뒤에 그것을, 죽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터가 있는 곳을 주시려고, 견고하고 영원히 변동없는 세계를 주시려고 나에게 지금 주시지 않는다 하고 세상을 떠났고 소망에 대해서 약속하신 소망에 대해서 의심은 하나도 가지지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아브람을 여기 볼 때에 아브람은 깊이 반성하는 사람이라, 아브람은 참 깊이 반성하는 사람이요 그는 참 깨끗이 회개하는 사람아라. 한 번 잘못된 것을 깊이 깨달았고 잘못됐다고 깨달은 그것은 그 다음에 다시 재발하는 일이, 다시 재행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자꾸 아브라함을 연구할수록이 아브라함의 신앙은 참 그는 하나님이 만족하실 수 있아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이렇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안했어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 이렇게 자랑삼아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만치 아브람은 믿음의 사람이었다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그 벧엘을 떠난 것은 분명히 자기가 어려움 당하니까 자기의 어려움 때문에 떠났지 하나님 어려움 때문에 떠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아브람이 자기 위주로, 주님께서 마태복음 16장에는 '네가 하나님 일은 생각지 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이 사탄아 물러가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이 아브람이 이 자리를 떠난 것은 분명히 사람 일을 생각해서 떠났지 하나님 일을 생각해서 떠난 것은 아닙니다. 그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 일을 생각지 안하고 자기라는 자기 일을 생각하고 떠났고 자기 형편을 생각하고 떠났고, 자기 생각대로 떠났고, 자기 주장대로 떠났고, 자기 위주로 떠났지 하나님 위한 것 아니고 순전히 이것은. 어려움을 당하니까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고 자기 위하는 그 위함과 자기 비판 자기 판단 자기 지식으로 인해서, 처음에 갈대아 우르에서 출발할 때에는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그 전부로 떠났는데 벧엘에 와 가지고 어려움이 되니까 하나님을 인함은 다 버려 버리고 자기로 인한 사람으로서 그 자리를 떠났었습니다.
그러면, 그 떠난 것이 그에케 어떤 화를 자취한 일이 되어졌느냐? 아브람이 자기가 내가 가 가지고 자기 아내로 인해서 거기에서 죽임을 당할 것이라 그런 예측을 한, 그 예측을 했으니까, 아브람이 그렇게 예측을 했고 또 우리가 거기에서 가만히 그 배경인 그 모든 형편을 생각해 볼 때에 아브람은 하나님이 그를 돕지 안했으면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죽은 이유는 분명히 죽을 것은 그래 가지고 사라로 더불어 바로 왕이 결혼을 해서 동침하는 지경에 들어갔을 때에 그 사라는 그 결혼하는 것이 기쁘고 즐겁지 안할 것이고 심히 근심 걱정 고통 했을 것이고 번민을 가졌을 터이니까, 바로는 그가 아리따워서 온 마음이 다 기울어 가지고 그라는데 좋아하지 안하고 이라니까 '이. 무슨 연고인가?' 많은 번민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를 좋아하지 안하고 근심 빛이 있고 자꾸 이래 걱정하고 이러니까 있을 것 아니겠소? 또 노비를 줬다 이거요. 종들을 줬다 이랬단 말이오. 종들을 줬으니까, 그 사라가 바로에게 부득이 죽지 못해서 이렇게 강제로 당했으면 당했지 그렇게 속 마음에 기뻐서 환영하지 안했을 터이니까 바로 왕에게는 만족이 되지 안했을 것이고 거기에서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겨졌을 것이고, 또 그라면서도 아브람을 자연히 뭐 누이 동생이라 했으니까 만나는 것은 만날 수 있도록 돼 가지고 있으니까 만났을 것이라. 만나면, 만나서 그래도 아브람과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다른 것을 노비가 있었으니까 거기에서 증거가 될 것이고 자연히 알 것 아니겠습니까? 참 옛날이나 지금이나 밤말은 쥐가 물어내 그 낮에 하는 말은 새가 물어낸다고 벽에 귀가 있다고서 이렇게 말하는 거와같이 그 비밀이 다 새어 나간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어지니까 아브람은 속절없이 거기에서 죽을 수밖에 없어. 죽을 수밖에 없어. 아브람을 죽여야 저거, 사라가 자기에게 마음을 기울일 터이니까 아브람을 죽이되 아브람을 죽이는 줄도 모르게 어떻게 어떻게 해 가지고서 그 아브람이 죽도록 그래 만들어 가지고, 뭐 약을 먹어 죽이든지 어찌 어찌 죽여 가지고 아브람이 죽도록 만들었을 것이라 말이오.
아브람을 죽이겠지, 또 그라면 아브람의 가정이라 하는 것은 다 절단나 버렸습니다. 아브람의 가정은 다 파괴가 돼 버렸습니다. 이랬는데, 하나님이 도우셔서 아브람의 가정이 유지가 됐고 또 아브람도 죽지 안했습니다. 만일 아브람을 죽였다고 하면 사라도 그게 마음에, 의인이라 마음에 평안이 없어졌을 터이니까 말라 죽어도 죽었을 것이고 죽었을 것이오. 아브람도 죽고 사라도 죽고 그 가정이라는 것은 다 파괴가 되어졌을 것이고 이랬는데, 그렇게 전멸이 될 수 있는 그런 길을 걸었는데, 제일 처음에는 아브람이 거기에서 범죄했습니다. 자기 아내를 그렇게 해 가지고 남을 죄에 몰아 넣었으니까, 하나님이 아브람을 치지는 안한 것은 무엇 때문에 안 쳤느냐? 거기에서 가해자가 바로가 가해자요 이 아브람은 약함으로서 거기에 피해를 입은 자이기 때문에 먼저 바로를 쳐서 거기에 거석했지 아브람이 그에게 범죄케 하기는 한 것이라 알이오. 무엇 때문에, 자기 아내라고 하든지, 하지 안하려면 저거가 그만 꺼꾸로 올라서 벧엘로 도로 돌아갔든지 출발했든지 했는데, 출발한 것이 바로로 하여금 그렇게 되게 한 그 계기가 되었고 또 아내라고 한 그것이 바로로 하여금 범죄케 했고, 이러니까 범죄한 그 원인자가 아브람이라 말이오. 아브람이 남을 범죄케 했지 또 범죄케 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에게 공재물을 취해서 자손이 사백 년 동안이나 종질할 수 있는, 애비의 죄를 갚되 자손의 삼사 대까지 갚는다고 말씀하신 대로 사 대 만에 나온다 했으니까 사 대 동안이 그 자관에 망했다 그말이오.
그 사 대라는 것은 처음에 간 사람이 남아 있고, 거기에 간 사람이 남아 있고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사 대가 남아 있으면은 그동안에, 꼭 사대가 아니라 몇 대가 흘러도 사 대 안에 들 수 있습니다. 그 계산은 여러분들이 해 보면, 그렇지 않겠소? 할아버지, 아들, 손자, 증손 하면 사 대지마는서도 사 대 만이라 이랬으니까 그때 아브람에게 처음에 난, 아브람에게 아들이 있었으면. 아브람의 그 부부면 부부 부부에게서 거기에서 나 가지고서 사 대에 된 사람이 죽지 안하고 남아 있으면 사 대라 말이오. 아브람이 사대 아브람의 사대면 무슨 손자요 뭐이요? 증손이지. 그럴 것 아니오? 아들 이 대.-아브람. 아들, 손자, 중손. 증손이 사대인데 사 대이니까 백 년씩 살았는가보다 계산도 아니다. 이래 생각하지마는 그게 아니고, 사 대 되는 그 사람이 증손이 하나라도 남아 있었으면 그 사람을 표준해서 사 대 만이라 볼 수 있다 말이오. 그러면, 그 대에 나기는 몇 대가, 한 여나므 대도 흘러 내려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 대 만에, 사대, 한 사백 년 동안이나 그 자손이 아브람의 자기 욕심 대로 자기 마음대로 생각대로, 자기 위주로 하나님 생각하지 안하고 한 걸음 걸어간 그 걸음의 결과가 자기 자손이 사백 년이나 애굽에서 종 노릇하는 그런 값을 내지 안하면 안 될 이런 큰 재를 받았는데 그 재앙이 자기가 그때에 원층 경제의 어려움을 당했는데 어려움 당할 때에, 되기 배 고파할 때에 밥이 왔으니까 밥이 심히 귀했고 목이 심히 말랐을 때에 물이 오니까 심히 귀했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기드온 때에 삼만 이천 명이 군대가 있었지마는서도 너무 목이 말라서 기갈하던 판이니까 물이 오니 너무 좋아서 그만 물만 생각 하고 군대라는 것도 생각도 안하고 전부 주위 환경 다 생각지 안하고 물만 둘러마시다가 거기에서 삼만 천 칠백 명은 다 낙제해 떨어져서 다 돌아가 버렸고 삼백 명 그 적은 숫자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일으켰다 이거요.
그런고로, 우리는 여기에서 참 배울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은 당신이 우리의 곤고함을 보지 못하시고 몰라서 또 면해 줄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브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브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브람이 자기를 전적 부인하고, 자기를 전적 부인하고 하나님 만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순전히 자기와 하나님과 바꾸어야 이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그에게 다 주실수 있는데 이 바꾸기 위해서 아브람의 자기를 지금 뽑는 역사라 말이오. 자기를 뽑는 역사인데, 자기를 부인하게 하는 역사인데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기를 부인하기 위해서 이제는 뭐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이렇게 부인하고 주님만을 바라보도록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게 하는, 좀 어려워도 배고파도 참고 견디고 주를 생각하고 참고 견딜 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면 거기에서 자기라는 것이 차차 차차 자기라는 것은 무시하고 하나님을 위주로 하는 이게 바꾼 그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만 좀 그런 어려움 당하니까, 어려움은 극히 어려움은 당하기는 당했지마는 그래 어려움 당하니까, 그 어려움을 견디지 못해서 순전히 하나님은 버려 버리고 자기 생각대로 애굽으로, 내려갔더라 그 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버려두고 하는게 아니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만을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일을 바꾸었는데, 그때에 그 사람이 어려워도 뭐 믿으면 굶어서 죽지는 안 하도록 하나님이 약속을 해 놨다 말이오. 안 굶어 죽인다 그 소리는 안 했지마는서도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겠다 했으니까 죽으면 무슨 민족이 나오겠습니까? 이러니까, 넉넉히 믿을 수 있었는데 그때에 믿지 못하고 자기를 위주해서 나갔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러면, 그때에 아브람이 자기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자기 지식대로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의 약속도 하나님도 어려우니까 그만 믿지 안하고 부인하고 자기가 애굽으로 내려간 그 일 때문에 자기에게는 온 화가 뭐이냐 그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뭐 할라고, 하나님께서는 악으로 시험을 하지 안하시고 받지도 안하신다 했는데 어떻게 아브람에게 이와같은 일을 했는가? 아브람을 시험한 것이 아니고 그 다음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아브람이 자기를 부인하도록. 자기를 생각지 안하고, 아주 한 다섯을 자기를 생각한다면은 그만 다섯을 다 생각지 못하도록 그렇게 한게 아니라 거기에서 한 오분지 일만 자기를 생각지 안해도 넉넉히 통과할 수 있는 그런 시험이었더라 이거요. 그러면, 자기를 부인케 한, 이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케 한 것은 무엇 때문에 자기를 부인케 했느냐? 자기를 부인케 하면, 자기 부인하면 뭐 할라고? 자기 부인을 하면은 뭣 할라고 그렇게 하지? 자기를 부인케하는 것은 뭐 할라고 자기를 부인케 합니까? 뭐 할라고 자기 부인케 하지요? 백점이야. 백점. 다 가르쳐 놓으면 잘 알아. 백점. 자기를 부인케 하는 것은 온전치 못하고 부패하고 아무것도 아닌 말이지, 사망과 저주 아래 속하여 있는 그 아브람과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바꾸기 위해서 한다 말이오. 바꾸는 것. 한목 다 바꾸는 것. 우리가 뭐입니까? 우리는 나를 다 내놨을 때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다 주십니다.
이러니까, 세상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기능 이것을 바꾼 것 만치가 영생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바꾸기 위해서 일했는데 아브람이 그것을 받지 안 하고 돌아갔다가서 무슨 변을 당했습니까? 무슨 변을 당했소? 자 한번 헤아려 봅시다. 아브람이 하나님은, 자기를 부인할 때에 하나님은, 인정하니까 하나님을 바꾸어 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했는데-이걸 못 알아듣는 사람은 못 알아 들어. 못 알아듣는 사람 '저 목사님 설교는 무슨 말인고.' 자꾸 이렇게 그걸, 시간이 적으니까 건너 뛰어서 말하니 그걸 말을 못 알아 들으니까 그 말을 알아듣도록 하려면 얼마든지 책을 몇 권이든지 써야 그게 또 다리가 놓아질 것이라 이거요.-이랬는데, 자기를 부인케, 그 어려움으로 자기 생각지 안해. 자기 생각지 안하고 하나님 생각해야. 하나님을 생각해야 그때 견딜 수가 있었고, 또 자기 지식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약을 믿는 것이라야 그때 견딜 수가 있었다 그말이오. 또 자기의 힘을 믿지 안하고 하나님의 그 능력을 믿어야 견딜 수가 있었다 그말이오. 그런데, 그때에 거기 있었으면 자기는 차차 차차 많이 줄어져 버렸고, 저주받은 자기는 줄어지고 자기는 녹아지고 자기는 말라 비틀트려지고 하나님의 그 모든 기능과 은총은 와 가지고 자기에게 차차 차차 자기 힘이 되어지고 자기 지능이 되어졌을 것이라 이거요. 그 인정됩니까? 인정이 되어져요? 그냥 하면 안돼. 인정이 안 되어져.
나는 어제 한번 좋은 사람 한 분 만났어요.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나한테 만나는데 그 사람이 지금 자기의 깨달은 것을 증거를 주욱 하는데 내가 어제 몇마디 했더니마는 오늘 아침에 여기 안 왔지? 어제 나한테 만난 사람 그 사람 성이 뭐 이더라? ○○○이라 하더나? ○○○? ○○○씨 안 왔지? 지금 어디 금식기도하러 갔어요. 갔는데, 뭐 대학도 졸업했고 또 지금 신학에 가서 공부하고 있는데 제대하던 길로 바로 이리로 쫓아왔어. 제대하기 전에 절 소문을 듣고 만날 용기가 없어서. 만나 줄까 만날 수 있을까 이래 쌓다가 제대하고 난 다음에 용기가 좀 나서 한번 어쨌든가 못 만나면 못 만나고 한번 가보자 그래 가지고 왔더라고. 이랬는데, 그 사람이 잠깐 말을 들으니까 '아, 이 도를 들어서 도를 깨달았습니다.' 지금 말하자면 아브라함이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왜 그 어려움을 주셨느냐? 왜 주셨느냐 할 때에 하나님과 바꾸시기 위해서, 바꾸어 주시려고 주셨다 하는 그걸 깨달은 그게 뭐이냐 하면은 도가 이제 구멍이 뚫려서 조금 통해진다 이거요 그 좀 통해지는 것이 있어요.
그랬는데 그 사람이 말하는 가운데에 뭐 양사방 여기 저기 듣고 이랬는데 ○○○목사님이라고 저 여기 ○교회 전도사로 있다가 서울 가 있습니다. 서울 가 있는데 그 사람이 총신 신학교에 아마 교수거나 그럴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학위를 받았는지는 내가 잘 모르겠습니다. 이랬는데, 그 사람에게 가서 만났는에 그 사람이 신학교에서 강의하면서 말하기를 한, 한 이십년 이 이제 지내면 여기에 개 교회-그 사람들 모르니까-개교회주의로 나가고 있는 그 백영희 목사님이 나가고 있는 그 총공회가 한국 교회의 교권을 쥘 것이다, 이십 년이 지나면. 왜? 거기에서 성경을 제일 잘 가르치고 있다 이렇게 말하는 또 그 소리를 또 증거를 듣고서 왔어요. 그 사람도 절 그전에 좀 만났고, 여기에 ○ 교회 와 가지고서 주일학교 강사로 온 것 누가 압니까? 우리 서부 교회 주일학교 강사로 왔던 걸 기억합니까? 아무도 모릅니까? 아이구 그때 사람은 없구나. 여기 제가 오고 난 다음에 여기에 ○ 교회 주일학교 하기 아동 성경 학교 강사로 그때 와 가지고 수고를 했습니다. 하나도 못 봤어?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아직까지 마디가 생기지 안하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돼. 마디가 하나도 안 생겼어. 그 마디도, 하나 없이 지금 마디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끊어 놓으면 죽어 버려요. 마디는 큰 환난에서 한 마디, 환난에서 한 마디 한 마디 이 대나무 모양으로 대나무는 한 마디 위에 또 그 다음에 자랐고 한 마디 자랐고 이래 있는 것 모양으로. 미나리 자라듯이 그래 자꾸 마디가 있어 가지고 자라야 되지 마디가 지금 아직까지 생기지 안 했다 이거요.
그 사람이 잠깐 말을 해도 통해졌어. 내가. 그 사람 전도사 노릇하다가 군에 갔는데 대학원 졸업하고 지금 뭐 저 어디 신학교 다닌다고 하지? ○○ 교파측 신학교 다닌다고 하지? 신학교 다닌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그래 말해. 내가 전도사로 있을 때에 설교 준비를 할라고 얼마나 애를 쓰고 며칠 그래도 설교가 안 됐는데 지금 목사님한테, 목사님 뭐고? 뭐 노트인가 뭐인가 뭐 필기한 그것을 읽고 난 다음에는 그만 설교 준비하는데 그만 구멍이 떡 뚫렸기 때문에 어짜든지 그만 뭐 얼마든지 설교가 살살살살 얼마든지 나온다고서. 이라면서, 그 사람 조금 구멍을 뚫었다 말이요. 이도를 들어야 알아들어야 돼요. 그런데 그 껍데기 그런 사람이 욕심을 가득히 채워 가지고 있는데 이도가 들려집니까? 아브람에 대해서 말해도 그 무슨 말인지 지금 못 알아들을 것이라 그거요. 이제 내가 고거 알아듣는가 보자 싶어 말하니까 여기에서 백점 짜리를 말을 했습니다.
아브람이 벧엘에서 어려움 당할 때에 그 어려움을 왜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주셨느냐 하는 그것을 자기가 스스로 깨달아야 될 터인데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말을 하면 알아듣는 그거야 대번에 팍 들을 것인데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면 도에서 찹 멉니다. 거리가 멀어요. 이러니까, 언제 부지런히 배우고 열심히 실행하고 자꾸 이래 배워야 될 터인데 알아들리지 못하니까 아이구 거기에는 알아들리지 못하니 재미 없다 하고서 꾸벅 꾸벅 졸고 천국을 갈라고 하니까 그사람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이래 조니까 언제든지 안 졸리고 재미 있는데 가야 되겠다, 재미있는데 갈라면 영화 구경을 가든지 테레비를 보든지 하지. 그라면 더 재미있지. 어데 재미있는 설교 하는데 간다고서 돌아다닌다 그말이오.
거기에서 왜 하나님이 어려움을 주셨는가? 또 어려울 때에 아브람이 벧엘을 떠나서 애굽으로 내려갔으니까 애굽으로 내려간 그 운동은 누구의 운동이며 누구의 힘인가? 어떤 사람이 거기에서 벧엘을 떠나서 애굽으로 내려갔던가? 그 사람을 또 한번 생각해 보라 말이오. 어떤 사람이 내려갔는가? 내려간, 내려간 것은 아브람의 옛사람이지요. 자기만 아는 사람, 자기 위주. 자기 편, 자기 생각. 자기 일, 자기 마음, 자기 뜻. 자기 주장, 자기 지식, 자기 비판, 자기 상식, 자기의 선입적 관념 그 전부 뚤뚤 뭉쳐 가지고서 애굽으로 가야 되겠다 하고서 가지 안했습니까?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것이 아브람에게 가 가지고 있는 것은 뭐이냐? 약속인데 그 약속은 다 버렸다 그 말이오. 또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순종하라 했는데 순종하라는 그 말씀도 버렸다 이거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은 다 벗어 홀딱 벗어 버렸어. 그래 가지고 그게 간단하게 뭐 거기 가도 상관이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겠지마는서도 감으로써 아브람은 완전히 변질의 사람이 됐고 하나님과 관련은 끊어졌다 이거요.
끊여졌지마는 하나님은 놓지 안했기 때문에 제가 살았지 그만 놓았으면 저는 죽어 버렸고 그만 거기에서, 애굽에서 둘이 다 죽었습니다. 떠남으로 말미암아, 떠나니까, 제일 처음에 떠나고 난 다음에 아브람에게 닥친 일이 뭐입니까? 닥친 일이 뭐이지요? 제일 처음에 아브람에게 닥친 일은 뭐입니까? 아브람이 한 일이 뭐이요? 예? 뭐? 닥친 자은, 하나님 속인 일은 뭐 하나님 속인 일 바로 속인 일이지요. 바로 속인일. 거짓말 한 죄를 지었다 말이오. 거짓말. 아 제 아내인데. 이제까지 같이 동침하고 살았는데 뭐 뭐 할라고 옛날 소리를 해? 그게 다 거짓말이라 그말이오. 거짓말 했지. 거짓말해, 거짓말했으니 그거 죄요 죄 아니요? 예? 아브라함이 벧엘을 떠나고 난 다음에 거기에는 떠날 때에는 하나님 버리고 떠났고 제가 주장으로 떠났고, 떠나고 난 다음에 첫째로 만난 일이 범죄입니다. 첫째로 아브람에게 만난 일이 범죄요. 이게 이해가 됩니까? 범죄.
범죄 거짓말 한 죄, 범죄.
그 다음에, 그러기에, 요한계시 9장에 보면 거짓말하는 자는 거룩한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 거짓말 이거 안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거짓말 안 한다는 것이, 거짓말 안 하기가 어려운게 아니라 거짓말 안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다 정리가 되어져야 거짓말 안 할 수 있지 그 거짓말 하는, 장사 하는 사람 뭐 이런 것 다. 거짓말 안 하는 사람 된다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거짓말 안 하는 사람이 되어졌으면 벌써 거의 뭐 인간으로서 다 됐다고 할 만침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다. 거짓말하는 죄 지었지.
그라고 난 다음에는 또 무슨 화를 받았습니까? 예? 예? 무슨 화를 받았소? 거짓말한 죄 짓고 난 다음에 가정 파괴됐지. 가정 파괴 안 됐습니까? 사라를 바로가 아내 삼을라고 데려갔으니까 벌써 가정은 파괴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파괴될 가정을 파괴 안 되도록 해 그렇지 가정은 파괴 아니요? 이게 이해가 되느냐고? 가정 파괴된게 이해가 되요? 아 단 둘이 살다가 그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으니까 가정 파괴됐지 뭐 더 뭐 생각할게 뭐 있는가? 가정 파괴됐지. 또, 가정 파괴 되고난 다음에는 뭐 왔습니까? 가정 파괴 되고 난 다음에는 뭐 왔지요? 그 다음에 뭐 왔어? 그 환하게 알 수 있잖아? 가정 파괴 되고 난 다음에는 뭐 왔어요? 공재물 왔어, 공재물. 사람들도 꼭 요 순서입니다.
요 순서로 부인하고 벧엘 떠나고 떠나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또 거짓말 하는 죄 지었고 거짓말한 죄 짓고 난 다음에는 공재물 삼켰고 하나님이 주시지 안한 재물 생겼어. 사람들도 요러니까, 그 죄로 여기지 안하니까 자기 마음대로 가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이사를 간다든지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사업을 시작한다든지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재물이 왔는데 하나님을 떠남으로 하나님에게, 하나님 약속을 어김으로써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함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재물이 온 그 재물이 그 아브람이 받은 재물과 같은 재물입니까? 다른 재물입니까? 같은 재물이요 다른 재물이요? 꼭 같은 재물입니다. 그 재물 속에는, 그 없어도 살 것인데, 그 없어도 하나님이 축복하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그 재물 속에는 자손이 그 뒤에 갚으니까 사백 년 동안이나 종질을 해서 갚아야만 다 보상을 갚을 수 있는 그런 무서운 저주가 거 싸여 와서 '갚되 자손으로 삼사 대까지 갚으리라.' 삼사 대까지 그 변상을 안 하면 안 되는 그런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생명 빼앗기고 다 절단나는 그런 일 아닙니까?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벧엘 떠나는 이것이 멸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벧엘을 떠나는 것이 멸망이라. 벧엘 떠나서 멸망이라.
이 벧엘은 아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약속에 이 벧엘은 유명한 벧엘입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그때에 재단 쌓고 또 돌아와서 벧엘에서 또 제사 드렸고 또 얍복강을 지내서 또 벧엘에서 또 제사를 드렸고, 이래서 벧엘은 아주 유명한 곳인데 아브람이 벧엘을 떠남으로서 어떤 화를 만났는가? 왜 뭣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벧엘에 어려움을 뭣 때문에 줬는가? 여기에서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문제입니다. 깨닫는 것이. 어제 아침에 하나님께서, 그 벧엘에 어려움을 주는, 성도들이 순종하고 난 다음에 반드시 어려움이 있는데, 순종하고 난 다음에 어려움이 있는데 어려움 있는 것은 하나님이 뭐 할라고 어려움 준다 했어요?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은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오라고. 그러니까, 그 어려움 당할 때에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이제 기도하면 자기로써 하나님과 바꾼다 말이오. 자기와 하나님과 바꾸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참 영윈히 좋은 그런 것을, 세상 것과 내세 것을 그에게 줄 수 있는데 하나님께 기도 하지 안해서 이래 됐습니다.
이러니까, 이 아브람의 신앙 노정이, 아브람이 신앙 걸음 걸은 신앙 순서가 우리의 신앙의 순서이기 때문에 이 노정을 잘 배워 가지고 우리도 내가 지금 어디 와 있노 어떤 일 당했노 그래 가지고 그것을 해결을 지워서 걸어가야 될 것이라 이거요.
어떤 사람이 신고함에 써 넣어서 봤는데 뭐 태화 호텔에서 불이 났다 했소? 태화인가 대화인가? 대화. 크게 화재 났다고 대화 호텔, 참 대화는 대화라. 대화 호텔 '주:대아호텔' 에서 불이 나 가지고 죽었는데 거기에 지금 이 백 목사가 회개 할 것이 거기 하나 들었더라 이거요. 들어 있는데 거기에 그 ○ 목사님이라는 그 목사님이 주일날 예배볼 때에 말하기를 그저 오전 예배면 족하지 무슨 오후 예배나 삼일 예배나 새벽 예배 그런 것은 필요가 없으니 그런 것은 다 폐지 되어야 된다고서. 그 말을 선언하고, 또 사우나탕이 뭐 하는 데입니까? 예? 예? 목욕탕입니까? 사우나탕이 보통 목욕탕이 아니라는데? 나는 사우나탕은 그런데 아니라 그러는데 사우나탕 이 여자들이 와 가지고 이래 씻어 주는 그게 사우나탕이라면서? 그게 맞소? 예? 맞아? 예? 여자들이 와서 씻어 주는데 그전에는 토끼탕이라 했는데 요새는 또 사우나탕이라 하는구만.
사우나탕에 목욕하러 갔다가 불이 나 가지고서 그래 거기에서 그 ○목사님이 불에 타서 죽었답니다. 죽었는데, 그걸 똑똑히는 소개 안 하겠습니다. 똑똑히 소개하면 그것도 거석할 터이니까, 그러니까, 그게 왜 내 죄가 거기 섞였느냐 하면은 그 목사님이 주일 오전 오후 또 삼일 오일 수요일 예배보고도 조그매씩 자꾸 더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더 하나님 앞으로 예배를 보고 좀 가까이 더 힘들여 믿도록 이래야 될 터인데 차차 차차 쉽게 믿는 걸 말했다 말이요. 쉽게 믿는 것. 쉽게 믿는 걸 말했다가서 그런 변을 당한 것이라. 이러니까, 나도 자꾸 이래 말씀하다가서 보면 자꾸 교인들이 자꾸 이래 싫어하고 자꾸 이래 쌓아니까 '이거 너무 이렇게 할 것이 아니라 좀 쉽게 해야 되겠다.' 그런 시험에 자주 들어요. 설교도 좀 쉽게 해야 되겠고, 또 너무 이라니까 지나치게 예수 믿는다고 이래서 하니까 자꾸 사람들이 덜 좋아하고 왔다 가고 이러니까 좀 쉽게 믿도록 해야 되겠다 그렇게 자꾸 나도 그 사우나탕에 타 죽은 그 ○목사님과 같이 나도 자꾸 슬슬 나사를 풀어 놓는 그런 일을 내가 하고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나도 그 참 참회를 했으니까 그분들이 다 날 위해서 자연 계시로 줬어. 백 목사 너도 슬슬 나사 풀어 가지고서 쉽게 예수 믿는 길을 주장 했다가는 나중에 불타 죽는다 그 말씀이라 이거요. 내가 그 신고함에 보고 그것을 내가 그걸 갖고서 언제 한번 광고를 할라고 그래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세 장이 들어왔는데 세 장이 다, 그 가운데 두 장은 필요하고 한 장은 필요가 없는 말이나 고마운 말입니다. 강단 앞에 저 뒤에 저 무엇을 좀 해야 되지 않겠느냐? 커다란 십자가를 뒤에, 강단 뒤에 커다란 십자가 하나 써 붙이면 좋겠다 이라는데 그것은 뭐 십자가 써 붙이지 안해도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믿어야 되지 그 강단 뒤에 십자가 커다란하게 써서 붙이는 그것은 그것이 잘못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표시하기 위해서 교회를 모두 십자가를 이렇게 써서 붙여 올리는데 이것도 십자가의 도라고 하는 것이지만 그것도 좀 어려서 외식이지. 그래 그전에는 여기 십자가도 우리 교회는 세우지 안했었는데, 그 마음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라고 했는데 십자가가 없으니까 '그 교회는 별 교회다 십자가도 안 세워 놨더라.' 그 뭐 그렇게 별스럽지 않은 것 가지고서 다른 사람에게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 십자가를 여기 만들어 조그만하이 세워 놨습니다. 강단 뒤에 여기다 벌거이 십자가를 하나 써서 붙이라는 그것은 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그 외에 신고는 다 필요있는 신고가 들어와서, 하나는 ○ 목사님이 대화 호텔에서 사우나탕 목욕하러 갔다가 그 변을 당했다 하는 내게는 참 필요 합니다. 내가 자꾸 예수를, 모두 자꾸 원하니까 쉽게 믿는, 쉽게 믿는 예수를 자꾸 믿도록 이렇게 나도 그만 그렇게 좀 해야 되겠다 교인들이 다 싫어하니까 그래야 되겠다 이랬는데 요번에 화재로서 너도 더 좀 더, 아무리 충성 죽도록 충성하고도 부족인데,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이 우리 구속한 걸 생각하면 우리가 죽도록 충성하여, 죽도록 충성하여 죽어도 '주여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하고 죽는 것이 우리의 마땅히 갈 정상적인 길인데 예수 믿는 일을 양보해서 차차 차차 쉽게 믿는 것. 요새 전부 쉽게 믿는 일이라.
쉽게 믿는 일이니까 저 대화 호텔에 불 나 가지고서 그 ○목사님이라는 그 목사님이 그래 하필 그래 선언하고, 아 오전 예배만 보면 됐지 오후 예배도 필요없다 새벽 예배도 필요없다. 삼일 예배도 필요없다 이라고 또 사우나탕에 목욕하러 갔다가 죽었다 말이오. 이게 지금 목사들에게는 크게 경고를 주는 것이요. 이거 이것은 좀 떠들어대야 돼요. 떠들어 대서 이거 '아, 거기에 목사님이 이렇게 쉽게 십자가의 원수로서 쉽게 예수 믿는 것 주장하고 사우나탕 목욕 갔다가서 이제 거기에 불에 타 죽었다' 한 이것이 예사로운게 아니라.
실로암 탑이 무너져 가지고서 열 여섯 사람 치어 죽은 것이 그 사람 외에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다 회개하지 안하면 이와 같이치어 죽는 다는 것을 계시한 거와 같이 지금도 우리 한국을 사랑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계시해 주신 것이라 말이오. 이 한국을 계시해 주는데, 하필 부산에다가 계시해 주는 것은 부산이 실은 신앙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부산입니다. 서울보다도 대구보다도, 대구도 교세는 흥하지마는서도 교리와 신조에 대해서 뜨겁고 그 아주 정확한 것은 그래도 부산이 제일 앞서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부산에 있는 목사들이 쉽게 예수 믿는 십자가의 원수, 쉽게 예수 믿는 이 주장을 하는 것은 불에 타서 다 죽을 사형적인 그런 범죄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준 것으로서, 그래서 '아 그분이 안 타 죽었으면 내가 타 죽게 될 것을 그분이 지금 그러므로서 나는 구출됐다.' 왜? 나도 자꾸 예수 믿는 걸 자꾸 쉽게 믿는 것 모두 그래 쌓아니까, 모두 그래 쌓아니까 설교도 하다 가서 하도 모두 다 못 알아듣는다 자꾸 이 쌓아니까 좀 쉽게 하고 세상을 좀 섞어서 해야 되겠다 이래서 더러 그런 짓을 가끔가다 한다 이거요. 그러니까 그 화형을 받을 그런 죄가 나도 있었더라 그거요. 내가 그걸 회개 합니다. 그러니까, 좀 어렵게 설교해도 알아들을라고 하고 그 설교를 잘못 하는게 아니라 어렵게 한 그 설교가 어렵게 할라고 하는게 아니라 진리를 가르치니까 그만 그렇게 안 하고는 가르칠 도리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아브람이 벧엘을 떠난 한 실수로써 자기에게 하나님이 막아 그렇지 참 어마 어마한, 측량할 수 없는 큰 화약을 쥐고 불속으로 들어 가지 안했습니까? 당장은 무슨 합니까? 당장 그랬는데 자기 몇 대 후에, 그라면 자기 증손 때입니까? 자기 증손 때이지? 예? 증손 때이지? 이삭이 아들이고 또 야곱이 손자고 또 요셉이가 증손 아니요? 증손 때에 그 때 가 가지고, 증손 때 가 가지고 거기에서, 처음에는 요셉의 공로로 얼마 동안 대우받다가 그 다음에는 결과적 사백 년 동안 종 노릇했는데 사백 년 종 노릇했다 그 말은 거기에서, 처음에 종 노릇은 얼마 안 했지마는 종 노릇 한 그게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 위주로 이래 못 살고 애굽에서 형편이 좋으니까 그 사람들이 전부 애굽이 우상이 돼 가지고 그래 버렸고 하나님 섬기는 신앙은 거기에서 절단이 나 버렸습니다.
신앙 완전히 팔아버렸다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깊이 연구해서 알지 못하면 우리 신앙생활이 바로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