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11:04
새하늘과 새땅
1981. 8. 28. 금새
본문 : 벧후 3 : 12-13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의는 새것을 발견하게 되고 또 새것을 원하게 되고 또 세것을 취하게 됩니다.
의의 반대인 불의는 점점 헌것을 발견하게 되고 헌것을 원하게 되고 헌것을 취해서 가지게 됩니다. 새것도 맛이 있지마는 헌것도 맛이 있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전부 헌것, 옛것, 죽은것, 썩어진것 그것들은 또 새로 발견하고 새로 원하고 또 새것을 취하고 다시 이래서 일생도 거기에 속해서 끝내게 됩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도 헌것을 발견하고 다시 말하면 죽은 것 또 썩은것 더러워진것 그것을 자꾸 발견합니다. 이모로 발견하고 저모로 발견해서 그것도 끝이 없으니까 그것을 자꾸 찾고 생각하고 원해서 그것에서 그것으로 점점 타락해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중에도 참 복있는 자는 새것을 발견하고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것을 발견하고 새것을 발견하니까 이제까지는 그것에 대해서는 소원도 해보지 못했는데 그것을 소원하게 됩니다.
또 소원만하면 취해서 자기가 가지게 됩니다. 의는 새것을 만들게 되고 불의는 점점 헌것을 만들게 됩니다. 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의고 불의는 자기 뜻대로 사는 것이 불의입니다. 불의는 쓰지 못할 행동을 하나씩 둘씩 자꾸 발견해서 이 구속에 들어있는 쓰지 못할 행동을 하나더 발견해서 저구석에 들어있는 쓰지 못할 행동을 발견해서 점점 쓰지 못할 행동을 하나씩 둘씩 발견해서 그것으로 점점 부강해집니다.
그러기에 더러운 자는 점점 더러워집니다. 또 헌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점점 이제까지는 그렇지 안해. 그런것을 모르던 사람이 점점 하나씩 둘씩 행동이 점점 나뻐집니다. 그 사람이 일년 전만 해도 그 사람에게서 그런 사람은 찾아보지 못했는데 일년후에 아주 또 없던 못쓸 한 사람이 또 생겨났습니다. 이년이 지나니까 또 못쓸 한 사람이 생겨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이 점점 멸망된 그땅을 발견하고 멸망되어 있는 그 땅 생활을 땅에것을 발견하고 점점 타락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는 새것을 발견하고 새것을 원하고 새것을 취하게 됩니다. 의는 새행동을 발견합니다. 자기가 만일 그런 도리를 들어서 새것을 가지고 싶다.
이렇게 해도 되는 것 아닙니다. 자기가 의를 행할때에 새행동이 발견이 됩니다.
이제까지는 그 행동을 몰랐었는데, 그 행동을 알게되고 이제까지는 그 행동이 그렇게 좋은줄 몰랐는데 그 행동이 그렇게 좋은줄 알게 되었고 또 이제까지는 그 행동이 그렇게 가치 있다고 생각을 못했었는데 이제는 가치있는 것의 착안이 됐습니다. 눈을 뜨게 됐습니다. 새 행동 발견하고 보니 헌 행동은 더럽습니다.
이래서 헌 행동을 버리고 새 행동에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 행동을 발견하게 되고 또 자기가 의를 행하는 가운데서 새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새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참이 사람이 가치있는 사람이로구나 이래서 새사람을 발견하게 되서 사람에 대한 참된 지식이 차차 성장됩니다. 이래서 새사람이 발견된 것만치 헌사람을 알게 됩니다. 새사람이 발견되고 또 그다음에는 새땅이 발견됩니다. 이 세상에서 살지마는 그사람이 새로운 세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무엇이라는 것이 차차 발견하게 됩니다. 새로운 세계 다같은 그 집에서 그 직장에서 그 가정에서 살지마는 그 사람에게는 변화된 세상을 발견하게 될때에 그것을 원하게 되고 원하게 되니까 마지막에는 취하게 됩니다.
새땅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 그다음에는 새하늘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무궁세계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이제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니까 이제까지 몰랐던 가치를 알았고 이제까지 몰랐던 가지지 안했던 소원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까지 취하지 못했던 것을 취하게 됩니다.
믿는 사람 가운데에 그 사람이 의로서 새행위를 발견하고 원하고 취하고, 의로서 새사람을 발견하고 원하고 취하고, 의로서 새땅을 새세계를 발견하고 원하고 취했고, 또 의로서 새하늘을 발견하고 원하고 취했고 이렇게 나가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이 의로서 이 새것을 발견하는데 의로서 새것을 발견한 그 사람의 말을 들고 고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고 사람은 알기는 잘 알아졌습니다. 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고 또 그사람은 불의로서 헌것을 발견하는 그말도 발견하는 사람의 말도 또 그사람은 잘알아 듣고 잘 기억하고 잘 압니다.
그러나 그속에 생명은 없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하는 성과로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일한 그 성과 그 사람의 해논 이력을 봐서 알 수 있습니다. 열매를 보기전에는 모릅니다. 그 사람을 보고 알기 어렵고 그 사람이 한 이력을 보고 알 수가 있고 그보다 조금 알기 어렵지마는 나타나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을 나타나고 행동보다 보고는 잘 모르지마는 그사람에게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을 아는데에는 그 사람을 보고 아는 것이 알기 쉽습니까? 행동을 보고 아는 것이 알기 쉽습니까? 그 사람의 해논 일을 보고서 그 사람을 알기 쉽습니까? 저 동문교회에서 온 사람, 네, 행동 결과를 보고 아는 것이 제일 알기 쉽습니다. 제일 속기 쉬운 것은 말로는 잘합니다. 어떤 그 식물학자가 있는데 이 곡식에 대한 여러 식물 박사입니다. 박사인데 이 사람에게 팥은 어떤것이 팥입니까 하니까 팥에 대한 해석을 해주는데 아주 팥에 대해서 박사입니다. 그 이상 알수 없게 팥에 대해서 해석을 해서 잘압니다.
그러면 그 해석을 듣는 사람은 팥에 대한 지식은 이 사람이 천하에 제일 많이 가졌다 이렇게 볼수 있겠습니다. 또 그 사람이 콩에 대한 해석을 해보라 하니까 콩에 대한 해석도 박사입니다. 아주 콩에 대한 해석을 말하는데 그이상 알 수가 없습니다. 박사입니다.
이런데 그 사람이 죽을 병이 들었습니다. 죽을병이 들었는데 이 병에는 팥은 먹으면 당장 살아나고 콩은 먹으면 즉사한다 하는 그런 병을 얻어걸렸는데 예화입니다. 예를 듭니다. 수많은 의사에게 다 가봐도 이것은 팥을 먹으면 죽는다해서 응 응 어 팥은 먹으면 대번 살아납니다. 팥만 먹으면 됩니다. 팥만 그만 살아나, 그러나 콩을 먹으면 안됩니다. 콩만 먹으면 대번 죽습니다. 수많은 의사들이 다 공통으로 이래 말합니다. 이 사람 집에는 팥도 한가마 있고 콩도 한가마 있습니다.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팥도 한가마니 있고 콩도 한가마니 있는데 그 사람이 그것을 먹지를 못합니다. 먹지를 못합니다. 왜 먹지를 못할까요. 브라질에서 온 청년. 왜 먹지 못하겠지. 팥박사고 콩 박사인데, 뭐라 하노. 그럴뜻한데 무슨 소리고 죽되 와 죽어, 팥을 먹으면 대번에 살아나는데 콩을 먹으면 대번에 죽고 그런데 그사람이 팥하고 콩하고 앞에 있는데 그걸 먹지를 못합니다. 와 먹지 못할까요.
와 먹지 못하겠지? 뭐라하노. 네, 입술로는 팥 해석도 잘하고 콩 해석도 잘하지마는 실지로는 모릅니다. 실지로는 참 자기 생명이 걸렸는데 팥은 먹으면 대번에 살고 콩은 먹으면 대번에 죽는하 하는데 이게 팥인지 콩인지 문제입니다.
그 사람이 머리가 괭장히 비상해서 팥에 배운것도 사람에게 배웠든지 들었든지 거 대해서는 시험보면 백점입니다 자 팥에 대해 기록하라 하면 백점 맞았소. 콩에 대해서 기록 하라 하면 백점 맞았소. 콩에 대해 기록하라 하면 백점 맞았소? 그러나 네가 팥은 먹으면 당장 죽고 콩하고 있으니까 이둘이 앞에 있으니 네가 얼마든지 자유대로 하라 하니까 이 사람이 먹지를 못합니다. 왜 먹지 못하느냐? 입술로는 그렇게 말해서 해석은 잘했지마는 실지로는 모릅니다. 실지로는 모르기 때문에 만일 되바꿔 먹으면 어찌됩니까? 이거 팥을 먹을라고 하니까 이게 팥일지 콩일지 똑똑히 모르겠는데 만일 팥같으면 먹으면 대번 낫지마는 콩 같으면 이거 먹으면 대번 즉사하니까 겁이나서 못먹겠다 말이오.
또 콩을 가 가지고 이것이 콩인지 팥인지 확실히 모르니 이것을 이 팥이라면 내가 먹으면 당장 죽을 것 아니겠느냐? 그 사람이 실물을 모른다 이거야.
실지로는 몰라. 입술로는 잘 알지마는 실지로는 몰라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네, 자기가 의를 행하는 의로 통해서 새 행동을 발견하고 발견하고 나니까 이것이 참 헌것보다 좋고 그것을 취해야 되겠고 이래 가지고 취해가는 사람있고 그러니까 새사람을 발견하고 보니까 의로 말미암아 의된 것만이 사람이니 고만침 발견되는데 새사람 발견되고 보니까 아 이 사람으로 살고 싶고 이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러면 그 사람이 되고 이렇게 해서 의로 말미암아 새것을 발견하게 되고 새것으 원하게 되고 새것을 취하게 된 이 사람은 그 틀림이 없는 실제에 그 실물에 대한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점점 살아갈 수록 새것과 헌것에 대한 구별이 희미해지겠습니까? 더 똑똑해지겠습니까? 더 똑똑해집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점점 새것을 점점 더 취해가지고 더 성장해 나갑니다. 점점 새것이 되어서 갑니다. 그러나 입술로만 알고 그것을 실제로 만들지 안한 그 사람은 입으로는 다 아는데 실은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말로는 좋은걸 다 알지마는 그게 참 좋은지 모르기 때문에 좋은걸 하지를 안합니다.
그러니까 아는데에는 사람보아서 아는 것보다 그 사람 행동 보아서 알기가 쉽고 행동보아 아는 것보다는 그 사람이 해논 이력을 보아서 알기가 더 쉬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원인은 모르거든 결과를 봐서 알라.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보아 알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교역자들 가운데도 배워서 말로는 아는데 실지로는 그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라. 그러기에 말은 잘하는데 결과는 없어. 목회는 못해.
처음에가면 사람들이 그런줄 아록 말만 듣고서 그렇게 되는줄 알고서 그 사람이 말을듣고 일시는 그사람이 교회에 인기를 끕니다. 환영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사람은 석달지나 가면 그만 들통나고 삼년이 가면 그만 들통이 나고 교회가 점점 약해져갑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정식의 순서로 되지안하고 말만 들어서 기억력좋고 이러니까 그걸 깨닫아서 말로는 잘아는데 콩 팥을 똑똑히는 몰라. 이게 둘이 있지만 어느게 콩인지 팥인지 실지를 모른다 그 말이오.
모르니까 평소에는 떠들어 쌓지마는 제가 생명에 관련된 일이 딱 되어서 팥 먹으면 살고 콩 먹으면 즉사한다 하니까 이 두 가지가 있지만 이 곡식점에 가 가지고 곡식 뭐 오곡이 다 있지마는 이 어느 것인지 손이 오그라져서 못 사먹겠다 말이오. 만일 잘못사면 지금 당장 죽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사먹지를 못해. 그 사람이 뭐이냐? 거기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독자는 아는 것과 행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아는것만 가지고는 그 사람이 교만해지고 점점 못써집니다. 행함이 없는데에는 기독자의 구원은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의는 새것을 발견하고 원하고 행하게 됩니다.
취하게 됩니다. 새것을 발견하고 원하고 취해 가지게 됩니다.
첫째는 새행동을 다음에는 새사람을 다음에는 새세계를 다음에는 새하늘나라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