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4 02:18
새사람의 법칙
1987. 7. 11. 새벽 <토>
본문:빌립보서 2장 5절∼11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이번 주간에 작정한 일이 이제 오늘로서 끝납니다. 오늘로 끝나는데 우리가 작정한 일은 세 가지를 작정했습니다. 모든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이 사람이 되는 것, 또 자기에게 있는 단점만 보고, 자기에게 대해서는 단점만 보고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장점만 보는 이 사람으로 인인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이 사람으로 완전히 바꾸어지는 것을 연습하고 연성하는 주간으로 우리가 삼았습니다.
거게 대한 것을 지엽적으로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단점은 뭐인가? 자기에게 있는 단점은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지 못한 그것이 자기의 단점입니다. 자기의 단점은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겨야 하는데 낫게 여기지 못한 그것이 자기의 단점입니다.
또 다른 사람의 장점은 무엇이 다른 사람의 장점인가? 그 사람이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긴 그 점이 하나가 있든지 둘이 있든지 그것이 그 사람의 장점입니다.
자기 단점이 뭐이 단점인지? 다른 사람의 장점이 뭐이 장점인지? 자기에게 있는 단점이나 다른 사람에게 있는 장점이나 그것은 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하는 그것이 자기에게 없는 것이 자기에게 단점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런 기회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자기의 단점이요,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본받을 장점은 뭐이냐 하면 그 사람에게 잘못된 단점 있는 것은 암만 있어도 그것은 볼 게 없고 그 사람의 장점만 봐라. 그 사람의 장점이 하나도 없으면 볼 것도 없고 따라갈 것도 없고 하나 있으면 하나 보고 하나 따라가고 그것만 보고 따라갈 것. 다른 사람에게 있는 장점은 뭐인데? 그 사람이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긴 그것이 하나 있든지 둘 있든지 그것이 그 사람의 장점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장단점이 뭐인지? 다른 사람의 장단점이 뭐인지 요것도 알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요걸 견고히 가져야 되지 요걸 가지지 못하면 안 됩니다. 그거 그렇게 쉽게 알려지는 줄 압니까? 아니오. 지금 뭐 벌써 이 말을 내가 몇십 번 했는데, 요번 주간에. 했는데 그것이 자기에게 그렇게 들어와서 자기 복음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세 가지 하는 것은 세 가지 하는 것이 곧 한 가지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세 가지 하는 그것이 내나 하나라.
자기에게 단점 보는 단점을 무엇을 단점으로 하는 그것이 곧 다른 사람에게 있는 장점 보는 것이요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요 그러면 또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그게 뭐인가? 자기에게는 단점만 보고 다른 사람에게는 장점만 보는 그것이라.
또 다른 사람의 장점 보는 그게 뭐인데? 다른 사람 장점 보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자기에게 있는 단점 보는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있는 장점 보는 것이요 또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그게 그거라.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도인이 돼야 되지 도인이 안 되면 모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는 것이 이렇게 하면 착한 일이고, 옳은 일이고, 참 선한 일이고, 상급을 받을 만한 그런 일이라. 이런 일을 하면은 상급을 받고 이런 일을 안 하면은 상급을 못 받습니까? 이런 일을 하지 안하면 이렇게 살지 안하면은 상은 냅두고 살지 안하면 죽고 살면 영생하고 그렇습니까? 이게 상 받고 못 받는 문제입니까 죽고 사는 문제입니까 무슨 문제입니까? 여러분들이 그동안는 기억해 가지고서 이라지마는 속에 박혀서 이것이 자기 주관이 되고 자기 자율이 돼야 됩니다.
마치 알기를 어떻게 알아야 될 건가? 사람이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다’ 하는 그 지식을 아는 것이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힘을 두고는 불에 안 탈라고 불에 안 들어갈라고, 다른 사람이 밀어 넣어도 안 들어갈라고 애를 쓸 것이고, 또 불에 들어가 있으면 나올라고 애를 쓸 것입니다.
그거는 뭐이냐? 그것이 자기 본능이 되기까지 지식했기 때문에 그 지식과 자기 본능이 하나라.
그와 같이 이 법칙, 이번 주간에 공부하는 이 세 가지 법칙, 이 세 가지 법칙이 지키면 영생하고 안 지키면 영원 멸망받는다 하는 요것을 불에 들어가면 타 죽고 안 타 죽을라면 불에서 나와야 된다 하는 것을 아는 거와 같이 ‘지키면 살고 안 지키면 멸망받는다’ 그와같이 그만치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여게 “너희들도 믿을 뿐만 아니라 고난 받아야 된다” 고난은 무슨 고난입니까? 돈벌이 하는 고난입니까, 멱잡이를 하고서 싸우는 고난입니까, 서로 시비해서 나는 그 사람을 정복하고 그 사람은 나를 정복할라고 서로 승패를 두고서 시비하는 고난입니까, 무슨 고난입니까, 이 고난이? 녜, 이 고난은 자기의 생의 법칙, 중생된 자의 생의 법칙이 하나님이 정해 주신 법칙이 이 세 가지 지키도록 하는 이것이 생의 법칙인데, 그 외 딴것도 있지마는, 이 세 가지 지키도록 하는 그것이 생의 법칙인데, 이 법칙으로 자기가 살라고 하니까 이 법칙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온 세상과 마귀의 전부는 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살라 하고 살지 못하게 하고 하는 이 싸움의 고난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거 별것으로 알라고 하지 말고 이 세상에 모든 생활이 안 믿는 사람들의 생활도 향방이 다르지 다 같습니다. 그 사람들도 날마다 힘쓰는 것은 자기를 해치고 자기를 망치고 자기를 죽게 하는, 자기를 죽게 하는 병을 방어할라고, 자기를 해치는 모든 대적들을 방어할라고, 자기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을 방어할라고, 또 자기 하는 일을 성공할라고 하는 이 싸움 아닙니까? 그들은 땅의 것을 위해서 그렇게 싸우지마는 우리는 영원한 것을 위해서 싸우는, 목적만 다르지, 목적만 다르지 싸우기는 같다 그말이오. 목적만 다르지 싸우기는 같애요, 알겠습니까? 목적만 달라. 향방만 달라. 이걸 자세히 깨달아서 자꾸 듣고 깨달아 가지고 사람이 바꾸어져야 됩니다. 바꿔지기 전에는 안 돼요.
그러면 이 싸움은 무슨 싸움이냐? 다른 말로 하면은 세상 사람으로 사는 생활 그것을 가리켜서 무슨 사람의 생활이라 합니까? 그것을 무슨 사람의 생활이라고 하요, 저 ○선생? 크게 해, 다른 사람 듣구로. 옛사람 생활. 세상 사람 생활은 옛사람 생활이오. 또 우리 믿는 사람의 생활은 무슨 생활입니까, ○○○선생? 큰 소리 해 봐. 새사람 생활.
그러면 우리 싸움은 무슨 싸움입니까? 세상은 옛사람으로 살라고 하는데 옛사람으로 살면 세상은 저거편이라고 해 가지고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협조하고 환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근심하고 걱정하고 합니다. 또 새사람으로 살면 하나님은 환영하고 기뻐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 역사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은 좋아해요 나빠해요? 싫어해요, 나빠해요.
“너희들에게도 나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들이 지금 내게 대해서 들은 바요 본 바다” 사도 바울을 말했는데, 사도 바울이 이거 내나 성령을 하나 나타나기를 그래 나타났는데 사도 바울의 싸움은 무슨 싸움인가? 그 싸움은 옛사람으로 살지 안할라고 하니까 세상이, 온 세상이 달라들어 가지고 옛사람으로 살라고 자꾸 이렇게 권유하고, 그렇게 살라고 권면하고, 안 살면 안 산다고 자꾸 위협도 하고 협박도 하고 뚜드리기도 하고 가두기도 하고 또 새사람으로 살라 하니까 새사람으로 살지는 못하게 하느라고 때리고 방해하고, 여러분들, 안 믿는 남편이, 안 믿는 아내가, 안 믿는 형제가, 또 믿는 형제가, 껍데기 목사가 알맹이 목사에게, 또 요만한 수준에 있는 목사를 또 요만한 수준에 있는 목사에게는 언제든지 뭐합니까? 밑에 있는 목사는 위에 있는 목사에게 무엇을 합니까? 새사람으로 살도록 권면해 줍니까 방해합니까? 방해하요 권면하요? 방해해. 또 위에 있는 목사는 밑에 있는 목사에게 새사람으로 살도록 권면합니까 옛사람으로 살도록 이렇게 권면합니까? 새사람으로 살도록 권면해요.이라니까 바울이 말하기를 “사망은ㅡ너거를 대할 때에ㅡ사망은 내게 역사하고” 사망은 자기에게 와서 역사하고, 나는 너거들에게 뭘로 역사한다 했어.
“너희들에게는 생명이 역사한다” “나는 너거들에게 생명 역사하고 너거들은 나한테 사망 역사한다” 이렇게 말했어.
이것이 필연한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 안 돼. “너희들이 내게는 사망 역사하고 나는 너거들에게 생명 역사한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우리 싸움인데 잘못하면 싸우다가서 대적하고 서로 싸우다가 대적하고 싸운다는 것이, 이렇게 싸운다는 것이 이거 잘 모르면 꼬여 가지고서 오히려 돌아서서 저거편하고 싸우기 쉽다 말이오. 알겠소? 대적하고 싸운다는 것이 오히려 잘못하면은 돌아서 가지고 그만 저거편하고 싸우기가 쉬워. 우리 싸움은, 우리는 어느 편에 속했습니까? 좀 깨 봐요, 좀. 요 꼭 필요한 말은 못 듣게, 마귀 그놈은 잘 알거든. 자기에게 필요한 말씀은 못 듣구로 합니다. 자기에게 필요 없는 말씀은 잘 듣는데 자기에게 필요 있는 말씀은 막 못 듣구로, 왜? 그거 들으면 그 사람 그만 떨궈버리니까, 제것인데 떨궈버리니까 못 듣구로 하느라고 잠을 들어다 붓고 오만 짓 다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은혜 받는 예배드릴 때에 졸고 조는 그거 마귀 뭐 새끼 마귀라 했소 뭐라 했소? 그게 무슨 마귀입니까? 왕마귀, 왕마귀. 그놈이 대장 마귀라.
우리는 새생명에 속한 사람인데 이 새생명에 속해 가지고서 옛사람하고 새사람하고 둘이, 우리는 새사람됐기 때문에 새사람 되어서 옛사람하고 싸우다가 잘못하면 제가 옛사람하고 싸워서 옛사람을 대항해야 되는 것이 옛사람하고 그만 한편되기 쉽다 말이오. 옛사람하고 한편되기 쉬워. 옛사람하고 한편되면 제 성공입니까 남의 성공입니까? 남의 성공이야.
새사람으로 사는 건 뭐인데? 이것은, 이번 주간에 세 가지 우리가 하자는 요것은 새사람편에서 새사람이 사는 생활입니까 옛사람이 사는 생활입니까? 저 뒤에도 좀 들어 좀 알아야지. 똑똑히 모르는 게 아는 척하고 있지 말고. 우리가 요번 주간에 세 가지 하자는 그것이 새사람 생활입니까 옛사람 생활입니까? 새사람 생활이오.
새사람 생활인데 새사람 생활 하다가 옛사람으로 돌아가기 쉬워.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은 뭐이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자기를 남보다 낫게 여기는 그것이 옛사람으로 돌아가 버렸지. 또 자기 장점 보고 남의 단점 보는 그것이 옛사람으로 돌아간 것이오. 이러니까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다 육체로 마친다” 이 성령으로 시작한 영생으로 시작했다가 마지막에는 사망으로 마쳐버리는 것이 인간이라 말이오. 이래서 영생하는 법을 말하면은 다 싫어합니다. 다 싫어해.
요새 내게는 지금 그런 문제가 걸려 가지고 있어요. 또 우리 총공회도 걸려 가지고 있어요. 율법사가,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와 가지고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하오리이까 이래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네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떻게 성경을 어떻게 읽었느냐 이래 물으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 하셨느니라 이것이 영생하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네 말이 옳다. 이대로 하라 그라면 영생이 된다 이랬다 말이오.
이러니까, 영생하는 것은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는 그것이 영생하는 법칙입니다, 영생하는 법칙. 또 자기 전부를 다 기울여서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 영생하는 법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마음 목숨 힘 뜻 다해 가지고서 뭐 했습니까? 예수님은 뭐 했소?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해 가지고 예수님은 세상에서 뭣 했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 했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의 마음인데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웠고 자기를 낮추었고 창조주가 피조물같이 되었고 또 피조물 중에도 사람같이 되었고 죽기까지 복종했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전부 다해서 하나님 아버지 사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했어.
그랬는데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한 그것이 또 “또한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그와 같이 다해서 하나님 사랑한 그것이 누구 사랑한 것입니까? 우리 사랑한 것이라. “이웃 사랑을 네 몸같이 하라” 하는 이거, 예수님의 몸과 같이 우리를 사랑했는데, 예수님의 몸과 같이 사랑했는데 사랑한 그것이 사망의 법칙으로 보면은 예수님이 우리 위해서 전부 다 바친 그것이 예수님에게서는 우리 위해서 대속의 제물이 된 것이 예수님은 당신이 뭣하는 법칙이요? 당신은 죽는 법칙이요 사는 법칙이요? 당신은 죽는 법칙이요 사는 법칙이요? 그거 어려워. 사는 법칙이라. 그게 예수님이 사는 법칙이라.
예수님이 그 법칙을 지키지 안하고 정반대의 법칙을 지켰으면 예수님도 이제 영원히 죽어버려. 신성은 안 죽지마는 인성은 영원히 죽어버려.
이러니까 여게서 이 도가 좀 어려운데 여게 좀 눈을 뜨여서, 내가 저 먼저 ○○○목사가 이 양성원에서 강의하는 것 보니까 눈이 조그매 뜨였다. 뜨인 것 같은데 노력하면 될 것이다 이랬는데 어제 나한테 교학실에서 전화 오기를 ‘지금 여기 고린도후서 5장에 이거 해석에 대해서 지금 의논이 분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서, 마침 그때 내가 여기 올라고 지금 출발하는 참이라. 전화를 받고 ‘내가 거기 가니까 내가 그러면 가 보겠다.’ 이랬는데, 우리가 우리 구원은 내면이 있고 외면이 있습니다. 내면이 있고 외면이 있어.
그 어떤 사람들은 외면뿐인 줄 알고 외면만 주장을 하니까 내면에는 상관 없는 그걸 하다 보니까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일이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내면을 이것을 이래 생각하다 보니까 외면을 잊어버리기 쉬워.
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외면을 무시하게 되기 쉽고 외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내면을 무시하게 되기 쉬워. 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외면을 무시해도 그거는 필연적으로 외면이 갖추게 됩니다. 차차 차차 알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외면을 중요시하고 내면을 무시하는 사람은 내면에 들어가지를 못해.
그러면 외면 중요시하는 사람이 외식입니까 내면 중요시하는 사람이 외식입니까? 외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외식이기 쉽다 그말이오. 내면을 중요시한 사람이 잘못하면 내면을 바로 중요시하지 못하고 내면 중요시하는 대로만 자꾸 기울어지게 되면은 나중에 가 뭐이 되느냐? 불건전한 신비주의되기 쉽다 그거요.
그래서 어제 와 가지고 내가 양성원으로 바로 갔어. 바로 가서, 내가 그것을 ‘내적 투쟁, 내적 구원, 내적 승리 실패, 내적 승패 이것을 아는 눈이 조금 떨어졌는데 그면으로 잘못하면 치우치기 쉬우니까 외면, 외부. 내면 구원 외면 구원 있는데 외부 구원을 잘못하면 무시하기 쉬우니까 외부 구원을 중요하게 여기라.’ 하는 그 말을 내가 부탁을 안 했었는데, 주의를 안 줬었는데 아마 거게 걸렸는가보다 그래 가지고서 내가 오면서 그리 바로 들어갔어.
바로 들어가서 물어 보니까 몇 가지 말한 거 내가 물을 때에는 딱 정답을 했어.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기 위함이라”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기 위함이라, 벗고자 함이 아니고 덧입고자 함이라” “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늘에 영원한 우리의 집이 있다” 그러면 땅에 있는 장막집은 뭐이 땅에 있는 장막집인가? 우리가 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모든 것이 땅에 있는 장막집입니다.
옷도 이게 첫째 아담에게 속한 옷이라. 옷도 땅에 속한 장막집이요, 피부도 땅에 속한 장막집이요, 고기덩어리도 땅에 속한 장막집입니다. 이 고기덩어리가 장막집, 고기덩어리가 누구 집이라 말이요? 고기덩어리가 누구의 집이요, 저 ○조사님? 마음의 집. 마음의 집이라? 마음의 집. 마음의 집이라 말이 맞아. 또 마음은 누구 집인가? 마음은 영의 집이라. 영은 또 누구 집이요? 진리와 영감의 집이라.
진리와 영감은 누구의 집인가? 하나님의 집이라.
이러니까 “이런 것이 무너지면 하늘에 영원한 처소가 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 아담에게 속한 이 모든 것이 다 끝나면 절단나면은 하늘에 영원한 둘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 다 마련되어 있다. 둘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면 둘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 마련되어 있으면 그 마련을 언제 해야 되느냐? “벗고자 함이 아니요 덧입고자 함이라”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우리가 덧입고자 함이라” “벗고자 함이 아니고, 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이 처소를 벗고자 함이 아니고 벗기 전에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고자 함이라.” 그러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는데 영원한 집을 그때 가서 우리가 영원한 집을 차지합니까 지금 영원한 집을 차지합니까, 저 ○조사님? 지금 차지해야 돼, 지금. 그러기 때문에 벗기 전에 덧입어야 돼. 벗기 전에 덧입지 안하면 헛일이라.
벗기 전에 덧입어야 돼.
내가 어제 듣지 못 했는데 그런 것 때문에 말하는데 그런 것은 그 잘못하면 내적면 말하는 것을 외적면으로 들으면 틀리게 보입니다. 또 외적면 말하는 것을 내적면으로 들으면 틀리게 보입니다.
이러니까 ‘요 사람이 지금 아는 것은 외적면만 알고 있구나. 요 사람은 내적면만 알고 있구나. 요거는 안팎을 지금 다 알고 있구나. 요 성경은 어느 범위 내에서 지금 이 성경을 말했구나.’ 그걸 알아야 되지 그걸 모르면 자꾸 일방적 지식, 여러분들 지식 중에서 제일 위험한 지식이 무식이 위험합니까 일방적 지식이 위험합니까, 뭐이 위험하요? 일방적 지식이 더 위험해. 이 불 이거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불이 뭐 있는지 불은 쓸모 없는 줄로, 산에 있는 짐승이나 버러지나 그런 것이 불의 필요성 불의 가치를 압니까 모릅니까? 짐승이나 버러지나 그런 것이 이 불의 필요성 불의 가치성 불의 그 효력성, 그 효력성을 압니까 모릅니까? 짐승이 알아요? 곤충들이 알아요? 몰라요, 몰라.
모르는 그거는 손해가 안 되는데 이 일방적인 지식은 뭐이냐? ‘불은 얼마든지 좋기만 하다. 불은 좋다.’ 불이 좋은 줄만 아는 그거는 불에 대해서 일방적 지식이요 쌍방 지식이요? 일방적 지식이라. 불이 좋은 줄만 알고 불이 나쁜 줄 모르면 그 사람 불에 타서 죽겠소 안 죽겠소? 불에 타 죽어요 안 죽어요? 불 좋은 줄만 알면 불을 자꾸 갖추겠지.
불도 많으면 해가 되고 적어도 효력이 없고 적당해야 된다. 불이 적당하면 효력 있지마는 불은 얼마든지 유익만 있다 하는 그것만 알면 일방적 지식이다. ‘이 불은 참 보배라’ 이럴 때에 ‘야, 불이 보배가 아니라 불 나 가지고서 불로 가지고 사람이 망한다. 불은 해독이 굉장히 많다.’ 불이, 불의 해독이 있는 것과 불의 유익이 있는 것과 이 둘을 같이 아는 것이 쌍방 지식을 가지는 것이라 말이오. 이 두 가지를 같이 알지 못하면 그 사람 하는 일이 헛일이라. 알겠소? 그 일방적 지식, 양면을 다 아는 쌍방 지식. 일방 지식이 그렇게 위험한 거라.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은 그거 모르는데 이게 전기를 좀 알아 가지고 ‘이 전기는 참 필요해.’ 전기가 사람에게 필요한 줄만 알았지 전기가 사람에게 위험하다는 것은 몰랐어. ‘전기는 좋다’ 전기는 필요하니까 전기는 뭐이든지 있으면 필요하고 전기는 뭐이든지 자기에 유익한 줄 알고 전기는 유익만 된 줄 알지 전기는 해로운 줄을 몰랐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저게 전기 큰 몇천 마력의 전기 스위치가 있는데 ‘전기는 필요하다’ 하니까 ‘저 전기는 참 아주 세고 전기가 많은 전기다. 아이구 그러면 보배다.’ 그 전기 좋으니까 보배니까, 보배니까 그 전기 만지면 죽어요 살아요? 전기도 적당하면 효력이 있지마는 너무 지나치게 많아도 큰일 나고 또 전기가 적으면 어째요? 전기가 전력이 적으면 이 전등에 불 와요 안 와요? 안 와요. 이러니까 쌍방 지식을 가져야 되지 일방 지식은 위험하다. 또 모든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적당해야 된다.
그러면 적당하게 하면은 버릴 것 있어요? 뭣이든지 적당하게 하면 버릴 것 있어요? 여러분들, 비상은, 비상은 못쓸 것이라요 쓸 것이라요? 비상은 쓸 것입니까 못쓸 것입니까? 비상은 필요 있는데 위험해요. 잘 쓰면 유익이 제일 많아요.
여기 지금 요새 뭐 농약 아니면 죽을 터인데 전부 농약 가지고서 지금 이거 다 우리가 먹고 있고 살고 있는데 그런데 요새는 농약 없으면 이 곡식을 못 해요, 지금. 그런데 그 농약에는 먹으면 죽는 비상이 안 들어 가지고 있는 농약이 없어.
이러니까 “하나님의 지으신 것은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느니라” 감사함으로 받다니? 하나님이 뭣이든지 비상도 만들어 주신 거 하나님이 만들었는데 그거는 다 좋은 것이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받는다는 것은 ‘비상이 요렇게 필요한 줄 몰랐습니다.’ 비상의 그 필요성을 확실히 알아서 많이 먹으면 죽고 적게 먹으면 병낫고 요것을 또 잘쓰면 쥐도 죽고 모든 농사의 해충도 죽고 요거 지나쳐서 잘못하면 사람 죽고 요걸 똑똑히 알아서 그걸 똑똑히 바로 아는 그게 뭐이냐 하면 감사함으로 받음이라. 거게 대해서 ‘참 요거는 참 유익하다’ 하는, 그 요리 조리 치우치지 안하고 올바른 이익이라는 그것을 딱 자기가 확실히 잡아서 취하고 나면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어.
“하나님의 지으신 것은 모두가 다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느니라”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느니라 그 해석이 지금 내가 하는 해석이 맞아요 안 맞아요? 하나님의 지은 거는 뭐이든지 ‘하나님이 지었기 때문에 감사하다’ 뭐이든지 감사함으로 받는다는 고맙게 감사함으로 받는 그 감사함으로만 받으면 된다는 그 해석이 맞아요 내가 말하는 대로 거게 대한 그 적절이라는 그 사실을 똑똑히 알고 어떻게 하면 유익하고 어떻게 하면 해로울까 하는 그 사실을 정상적으로 바로 알고 받으면 버릴 없다는 그 해석이 맞겠어요 어때요? 어때요? 저 뭐꼬 ○○교회? 후자가 맞아요? 후자가 맞아요.
그러기 때문에 껍데기로 다 아니까 헛일이라. 이러니까 우리 진영에 있는 교역자들이 지금 어리석어. 어리석은 것이 제가 자기를 연구하지 안해. 자기를 연구해 보면 알아. 자, 이거 내 자랑 아니오. 내가 하나님하고 대적이 돼지면 그렇지만 하나님하고 하나되면 그렇습니다.
누가 있다 말하기를 그전에 여기, ○○○목사님 왔어요? 이번에는 그만 그라니까 교역자회 때문에 못 왔지, 비용 때문에. ○○○목사님이 한참 나를 욕을 많이 했습니다. 왜? 자기를 도시 교회 안 보내 준다고.
도시 교회 안 보내 주는 거는 도시 교회 보내 주면 자꾸 쫓겨날 것이기 때문에 쫓겨나는 데 보내는 것보다는 자기를 환영하는 데 보내야 되기 때문에 하는데 자기 모르고 지금 자꾸 도시 교회 안 보내준 다고서 이래 가지고서 나와 이래 대립이 돼서 그 형제간들 전부 다른 교파로 다 가버렸어, ○○○목사님에게 대해서 아주 박하게 한다고, 대우 안 한다고. 이러니까 만나면 훼방합니다.
이래도, 이러니까 그동안에는 나중에 목회 못 해서 다 놓고 장사하러 나갈라고 자기 동생한테 인제, 상인으로 나갈라고 이렇게 하고서, 갈 데가 있어야지? 그 교회는 배척하지 뭐 갈 데가 있어야지? 이래도 내가 힘을 써 가지고 거창 무슨 교회고 ○○○교회가 무슨 교회지, 지금? ○○? ○○교회로 보냈다 말이오, ○○교회로. 인제 못 한다고 장사하러 갈라 하는 사람을 ○○교회로 보냈어.
○○교회로 보내 놓으니까 석 달 동안 얼마든지 어떻게 은혜를 끼쳐 놨는지 ○○○교회 그때 교역자가 없었다 말이오. ○○○교회에서 ‘우리 교회도 ○○교회○목사님 같은 그런 이를 보내 줬으면 참 좋겠다.’ 이랬어.
그러면 그리 보내면 되겠습니까? 그리 보내면 그만 또 쫓겨나온다 그말이오. 다 자기를 알기 때문에 적재 적소에다 딱딱 끼우는데 이걸 모르기 때문에 이거 원망 불평을 하게 된다 그거요.
그래도 그것을 몰라 그렇기 때문에 자꾸 이래서 길러 나오면 나중에 가서 되는 수 있어. 이제는 목사가 됐어. 이제는 아무 데 보내도 자기 실력대로는 일하고 또 자기를 알기 때문에 ‘아이구, 그 교회는 내가 감당 못 합니다.’ 못 할 줄도 알고, 또 자기 갈 곳인 줄 알고 가서 충성도 하고 이라니까 목사 노릇을 상당히 잘해요, 지금. 거창 있는 거창 지방 공회장으로 맡겨놔도 공회장으로 세워놔도 흠점이 없어. 제법 자기 죽을 줄도 알고 손해볼 줄도 알고.
그런데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한다” 그러면 자기 몸에 어째요? 어떤 사람은 보니까 그 사람이 자궁암이 있어. 자궁암병에 걸렸다 그말이오.
자궁암병에 걸렸으니까 이것은 뭐 걸어다니지도 못하고 거게 때문에 항상 아프지 또 따갑지 앉지도 못하지 서지도 못하지 참 그게 들어서 그렇지마는 고통이지마는 어째요? 그걸 그만 칼로 가지고 싹 끊어내 버려요 오려 내버려요 그걸 숨이 끊어질 때까지는 자꾸 그걸 치료해서 고쳐서 그래도 고쳐 볼라고 애를 쓰다가 죽어요 그걸 끊어내 버리요? 어때요? 칼로 도려서 파내 버려요 그걸 자기 힘있는 데까지는 끝까지 치료할라고 그래 온 정신이 애먹이는 그까짓 거 제일 원수는 그 몸뚱이는 그게 원수인데 그놈을 싹 칼로 도려내 버리면 좋을 터인데 온 전심 전력은 어데 가 있습니까? 전심 전력은 어데 가 있어요? 거게 가서 있어요. 거게 가 있어. 전심 전력은 누구를 위하고 있어? 자궁암병 그놈 위해서 있어. 그거 위해서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하는데? 숨이 끊어질 때까지는 그것을 고쳐 볼라고 살려 볼라고 노력하는 그것이,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자기 몸 같으면 자기 몸은 다 그래 해요. 알겠습니까? 애먹이고 고통 주고 말이지, 애먹이고 고통 주고 이렇지마는 그걸 자기 목숨이 있는 한은 자기 몸이면 자기 지체라면은 그것을 고쳐 볼라고 치료해 볼라고 애를 써. 또 신경은 거게 다 기울어져. 알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손가락 하나가 이게 지금 아파 가지고서 평생 고생합니다. 이래 가지고 요 손가락 한 마디가 아파 가지고 나중에 가서는 곯아떨어지고, 이래도 이게 아프면은 온 전심 전력이 다 여게 기울어져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기울어져 있고 자기 생명이 끝날 때까지는 이것을 치료해 볼라고 애를 써요, 자꾸 치료해 볼라고.
‘아이고 안 되니 그까짓 거 끊어내 버리자.’ 이거 끊어내 버리면, 끊어내 버리면 끊어내 버린 그만한 그 상처, 손가락이 다섯이어야 되는데 그 사람은 네 손가락이니까 그 평생 그거는 병신이 돼 버리고 말아. 이런데 이것이 치료 중에 있으면 여기다가 골무를 해 가지고 떡 끼워 가지고 있으면은 자, 그 사람이 네 손가락 병신이 돼요 지금 손가락 하나가 아픈 사람이 돼 가지고 있어요? 아픈 사람이 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병신입니까 끊어 내버린 사람이 더 병신입니까? 암만 수지 계산을 맞춰도 그래도 아파도 또 붙여 두고 자꾸 치료하는 데까지 치료하지 그만 끊어내 버리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이것이 자기 한 몸에 대한 생리의 법칙이라, 생리의 법칙.
우리가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하라는 요 생명은 뭐이요?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가 합해서 우리 생명인데 요것이 자기 생명이 되어 있는 요 생명에 이 생명의 본능, 이 생명의 본능, 이 생명의 법칙, 새사람의 법칙 요것이 뭐이냐? 세 가지 요번에 하는 거,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는 것, 자기에게 단점 생각하는 것, 남에게 장점 생각하는 것 요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생의 법칙의 외부적이라 그말이요, 외부적이라. 이것이 돼야 그다음에 내부적이 돼요.
이러니까 우리 서부교회 여기 새벽기도에, 새벽기도에 어떤 여인이 와 가지고서 새벽기도에서 설교하니까 막 저기서 고함을 질러. 나를 외식하는 놈이라고 거짓말쟁이라고서 이라면서 책임지라고 고함을 질러요. 그 여자가 젊은 여자고 또 얼굴도 잘생겼어요. 고함을 질러요.
고함을 지르다가 나중에 이 전지를 저기서 막 던져요. 저 전지를 나한테 막, 아침 설교할 때 전지를 던져서 전지가 요 앞에 푹 떨어져. 그거 사람 맞았으면 죽었을 거라. 그것 본 사람 있어요? 본 사람 손 들어 봐요, 본 사람은? 이렇츰 없나? 본 사람이 이렇츰 없어? 그 사람이 뭐라 하느냐 하면은 ‘왜 밤마다 나한테 와 가지고 이 있는 셋방은 내놓고 꽃마을에 가서 방이 있으니까 꽃마을에 가 방을 얻으라 해서 셋방은 내놨지 꽃마을에 가니까 방은 없지 이제 아무데도 갈 데도 없으니까 책임지라’고 그래 지금 고함을 지릅니다. 그거 들은 사람 손 들어 봐, 들은 사람? 이것밖에 없어? 이래 놓으니까 참 그 마귀란 놈들이 수입을 잘 보겠다.
그랬는데 그 ○○○집사님의 구역이라고. 그 사람을, 그 사람 집은 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고 또 그 사람은 ○○○ 그 구역장이라고 그 사람이 나한테 데려다가서 ‘한번 이 사람이 이렇다’ 하며 인사 한번 시켜서 여게서 인사한 것뿐이라.
이랬는데 그 사람은 나중에 가서 나하고, 여기 온 교인이 다 알아요. 장로님들도 다 알 거야. 언제든지 가면 나가지 안해. 저기 와서 장 항상 바라고 있어. 나 내려오는 것만 바라고 있고 올라가는 것만 바라고 있고 항상 바라고 있고.
항상 바라고 있고, 내가 올라가는 것 보면은 저 먼데서 보고 올라가는 뒷꼭지라도 보고 웃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이라고 내려오기를 바라고 항상 기다리고 있어.
오면 저기 와서 딱 내려오는 거 기다리고 있고 그래요. 그라면서 자기하고 결혼하겠다고서 지금 그렇게 말하고 여러 달 계속한 것 다, 그 사람 그래 하는 거 봤어요 안 봤어요? 본 사람 손 들어 봐요. 이것밖이가? 그 사람이 지금은 교회에 나온다 하는데 오늘 새벽에도 나왔는지 모르겠어. 나는 그 사람을 한번 인사시켜서 아는 사람이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밤마다 내가 가 가지고서 그래 방 내놓고 방 얻으라고 이래 했다 하는데 나는 그 사람의 집을 몰라요, 아직도.
이래도, 이래도, 저아레는 내가 또 물었어. ‘그 사람이 야, 교회 오나 안 오나?’ 그래서 나중에 가서는 저기 와서 뒤에 앉으라 하고 이래 가지고 이라다가 ‘오거들랑은 뒤에 와서 듣고, 설교 말씀을 듣고 그렇게 그라면 혹 그게 고칠 수 있을란지 모른다.’ 그랬어.
왜? 그래도, 그래도 그 사람이, 끊어버리기는 싫어. 끊어버리기는 싫어. 그 사람을 멸망할 인간이라고 밉지는 안해. 이게 암만 병이 들어도, 병이 들어도 온 전신은 전심 전력은 여기 기울어지고 또 여기 지금, 전심 전력은 여게 기울어지고 또 이거 위해 수고하고 또 이래도 다른 것보다, 다른 손가락은 아무나따나 하지만 이거는 제일 아껴. 막 정성들여 아껴 가지고서 이래 닦고 또 여기 뭣을 요렇게 조그마치라도 상할까 싶어서 요래 또 보호해서 보드라운 걸로 이래 하고 또 뭐 약 바르고 요라고 이래 해.
여러분들, 우리가 이웃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한다는 이것이 진정 된 그 실력이 영생 실력입니다. 그게 영생 실력이오. 그것이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돼. 여러분들이 그런 것을 잘 모르면 헛일입니다.
여게 나를 재림 예수라고 나를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재림하실 예수님 그 하나님이라고 이라면서 온 전국에 돌아다닌 일이, 돌아다닌 사람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그거 알아요? 온 전국에 서울에도 교회마다 돌아다니고 부산도 교회마다 돌아다니고 돌아다니면서 ‘백영희 목사님은 너거가 보기에는 사람이라도 사람이 아니다. 재림하실 예수님 곧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부산 교회는 하나도, 부산에 있는 교회는 육백여 교회인데 한 교회도 안 다닌 교회 없어요. 돌아다니며 다 그랬어요. 또 서울에 가 가지고도 그래 했어요. 그런 사람 알아요? 그라는 사람, 그란 사람 아는 사람 손 들어 봐. 그것도 더 제법 아는가배.
여기 남반은 모르는 사람 많아. 그래 돌아다니요, 그래. 이러니까 별별 일이 많아요.
또 여기 있다 그 사람은 가 버렸는데 ○○○이라 하는 또 여인 하나 있었어. 그 사람은 또 저 꽃마을 기도실은 나하고 둘이 살림살라고 거기 기도실 지었다고 또 그라면서 양사방 돌아다녀. 그래 가지고 신고함에는 어떻게 편지가 많이 들어오는지, 그 편지가? 보편은 한번 열면 이만씩 수북하게 한 주먹씩이라.
나는 원목사고 자기는 부목사할라 했는데 이거 권찰들이 있어서 방해를 해 가지고 지금 못 하고 있다고서 그래 하며 돌아다녀. 그러면 그래 하고 돌아다니는 그 말도 또 꼬임 받아요, 또. 그 소리도 우리 교인들이 또 듣는다 그말이오.
여러분들을 넘어뜨릴라고 별별 일을 다 합니다.
이러니까 이렇거나 저렇거나 그런 미혹 받지 말고 어짜든지 나한테서는 여러분들이 단정해. 마태복음 23장 말씀하시기를 “모세의 자리에 하나님이 세웠으니까” 세웠으니까 뭐하라 했습니까? 그 사람 행위가 좋다 나쁘다 그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사람 배우라 했소 가르치는 말씀만 듣고 행하라 했소? 말씀만 듣고 행해라 했어. 요거 아니면 여러분들이 다 죽어요. 알겠습니까? 이게 큰 시험이라. 내게는 상관 없지마는 여러분들에게 지금 문제라 그말이오.
그것도 하도 그 뒤에 거석해 그렇지 처음에 그 말 하면서 여기서 나서 가지고서 고함을 지르면서 ‘내 책임져라. 백 목사, 책임져라. 나한테 밤마다 와 가지고 그 이사하라고 방 내놓으라고 해서 방 내놓으니까 꽃마을에 방 얻으라 해서 가니까 거기는 방도 없고 나는 어데로 가라 말이냐? 책임져라.’ 이라며 고함을 지르고 그 사람이 전지 그 크다란 전지를 저게서 막 이래 새벽기도 와서 던지고 고함을 질러서 고함 지르고 이라니까 그걸 누가 안 믿겠소? ‘밤마다 갔다 하는 것 보니까 아마 항상 밤마다 아마 거기 가서 아마 동침하고 잤는갑다’ 그래 여길 거 아니라? ‘또 방 얻으라 그래 놓고 나서 지금 아주 저렇게 떼붙여 버리는구먼.’ 그래 가지고서 멸망받은 자도 아마 이 가운데 있기는 있을 거라. 없는 게 아니라. 그거는 멸망받을 자는 멸망받는 것이고 구원 얻을 자는 택한 자들은 그런 유혹을 받지를 안해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별별 마귀의 역사가 있는 그런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 모르면 헛일이라.
다른 교회서 전화가 왔어. 그리안 해도 훼방하고 그라는 사람들은, 훼방하는 사람들은 ‘백 목사가 자기가 재림 예수라고 지금 하는 모양이라. 안 뗀 굴뚝에 연기가 나는가? 자기가 그말 했기 때문에 그말 하고 다니지?’ 이래 가지고 한 목사 많고, 그렇게 여긴 목사들은 다 교회가 망해. 또 ‘그럴 리가 없다. 그거는 그 사람이 정신 이상자다.’ 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부흥이 돼.
○○○목사님이 말하기를 ‘어짠지 목사님 좀 헐고 나면은 설교가 안 되고, 교회가 내려가고, 교인수가 내려가고, 또 목사님을 어떻다고 목사님하고 하나되고 이렇게 이래 존경하고 목사님을 위하는 게 아니라 목사님이 진리를 전했기 때문에 목사님을 위하고 목사님 편에 서고 이라면은 설교가 잘되고 교회가 부흥된다.’ 아마 그거 아마 ○○○목사님은 수십 번 느꼈을 거라.
이번에 또 ○○목사가 또 언제 교역자회 때 증거하데. 여러분들이 경험에 보는 데는, ○○목사도 나하고 이렇습니다. 이랬다가 이랬다가 이랬다가 이랬다가 이거 변동을 얼마나 하는지 모르요. 여러 수십 번 변동했어. 등졌다가 이랬다가 장 그래요. 그라며 따라오는 거라.
그라며 그가 말하기를 ‘여러분들, 이상한 것은 목사님하고, 목사님을 존경하고 가까이 하고 좋아하고 가까이 하면은 설교가 잘되고 교회가 부흥이 되고,’ 대립이 되면 설교 안 되고 교회가 내려가. 제가 똑똑히 연구했으면 그렇지.
왜? 내가 하나님이 아닌데 그러나 은혜 기관이기 때문에 말씀을 증거했고 또 저거보다는 잘 살아. 이러기 때문에 이거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 배운 데를 알고 배신치 안하고 그라면 그 은혜가 그대로 계속돼 나가는데 제가 ‘사람은 배반하고 그 진리만 사용하면 되겠다.’ 그게 안 돼. 성경에 말하기를 하나님이 그리 시켜 가지고 전했기 때문에 “뉘게서 배운 것을 알라” 이거 전도사들도 말해요. 아마 우리 총공회를, 총공회와 또 여게 은혜의 기관, 내가 설교하니까 백 목사를, 총공회 백 목사를 이렇게 존경하고 이라면 교회가 부흥됩니다. 존경하는 것만치만 되지 그 이상 안 됩니다. 자꾸 존경하고 좋아하고 이라면, 왜? 진리도 좋아하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될 수밖에 없지.
공회를 헐고 나를 헐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실력이 굉장히 많아도 안 올라갑니다. 여러분들이 과거 그걸 가만히 보면 알아요. 제가 과거에도 보면 이래 거석하는 사람들은 그 내나 내가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이 말씀을 나를 통해 줬기 때문에 나를 훼방하면 그 말씀도 자연히 훼방이 돼져버리고 말아.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잘 차려서 어짜든지 내게서는 이 진리만 배우십시오. 진리 배우고 그대로 할라고 애를 쓰고 또 그래 봐. 시험해 봐야지. ‘보자, 이 총공회와 백 목사를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니까 복이 오나 싫어하고 나빠하니까 복이 오나? 그 도수를 많이 좋아하면 어떻고 적게 좋아하면 어떠냐? 많이 존경하면 어떻고 적게 존경하면 어떠냐?’ 많이 존경하면 많이 존경할수록이 자기에게 큰 복이 갑니다. 하나님이 속소? 이번에 대구집회 때도 보니까 그거 지금 엔간히 작성됐어? 어찌 됐어? 누가 하고 있노, 어데 사람이 있노? 얼마나 됐어? 오백삼십 건. 오백삼십 건, 한 집회에 오백삼십 건이라는데 지금 또 어떤 우리 진영 목사는 말이지 ○○○목사는 지금 그래 하고 다닌대요. 목사님은 거짓말쟁이라고, 내 앞에도 와서 그래요. 저 천막에 와서 나한테, 내가 웃으면서, 목사님은 거짓말쟁이라 한다고서. 그래 내가 있다가서 웃으면서 ‘그래 거짓말이면 그걸 고쳐야 안 되나? 그 무슨 거짓말이고?’ 이라니까, 거짓말이 무슨 거짓말이냐? ‘이 사람들이 어짜든지 교역자가, 교역자가 상등은 못 돼도 중등 생활은 해야 된다. 교역자가 중등 생활, 교역자가 중등 생활 못 하면 그거는 막 잠을 안 자고 이래도 중등 생활 하도록 해야 된다 그랬는데 교역자가 지금 나로 말해도 뭐,’ 교회는 가는 곳마다 교회는 떨어지고 교인은 없어집니다.
이라면서도 ‘나는 돈 이십만 원밖에는 안 주면서 이십만 원 가지고 지금 중등 생활 할라 하니까 식구가 많으니까 이십만 원으로 무슨 중등 생활 하는가?’ ‘그게 거짓말이가? 그거는 네가 이 말씀을 듣고서 바로 듣지 안해서 네가 거짓말을 만든 것이지 내가 거짓말 한 건 아니다. 봐라, 너도 사회 생활 했는데 일한 대로 품삯 주지 않느냐? 네가 가는 곳마다 교인을 떨어뜨리는데 교인 떨어뜨리는데 너 중등 생활 하도록 누가 돈을 대 줄 사람 있노? 네가 열심히 해 가지고서 어찌든지 중등은 되도록, 중등 생활은 되도록 열심히 양을 먹여서 양의 젖을 짜면 중등 생활이 되도록 그래야지 그거 안 하면 이 교역자 그만 말고 나가 버리는 게 낫다 그말이다.’ 또 거짓말 한다고 저 웅양 가 가지고서 순전히 거짓말이라고서. 백 목사는 거짓말쟁이라 이라면서 그 ○장로한테 한다고 ○장로가 왔더래요. 그런 좀 정신 이상 사람이 있다고 이라면서. 무슨 거짓말을 하더냐 그 사람이 물으니까 이것 뭐 대구집회 때에 병 나았다 하는 거 전부 다 거짓말이라고. 하나도 안 나았는데 거짓말이라고. 그거 또 그래도 거짓말 한다고 이래 말하더래.
그런 것이 별스러운 게 아니라 내 밑에 있는 교역자들 다 양이 다르지, 양이 다르지, 양이 다르지 요소는 다 있어요. 양이 다르지 요소는 다 있어. 많은 사람 적은 사람. 이러니까 그것이 내 일거리라, 내 일거리. 그러니까 내가 좀 더 능하면 그런 것이 차차 없어지겠지.
암만 능해도 없어지지는 안해요. 예수님은 그렇츰 능하시지마는 예수님 당시에도 그런 것이 없지는 안했어요, 사도 바울에게도 없지는 안했고. 사도 바울을 염병이라 해. 왜? 가는 곳마다 병들린다고.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이렇게 바로 나갈라고 하면 그런 훼방하는 것 많고, 훼방하는 것 많아도 우리 할 일은 끝까지, 자기에게 뭣 봐야 됩니까? 단점.
단점이 뭐인데? 상대방을 위하지 못한 것. 내가 위할 힘이 있는데 위하지 못한 것. 위하기는 위했는데 실력이 없어서 위함이 위함의 효력이 가지 못한 것 그것만 보는 것이 영생이라.
다른 사람에게는 장점만, 다른 사람은 하나 있으면 하나 둘 있으면 둘, 다른 사람이 다른 사람 위한 것 그것만 봐. 남이 자기보다 낫게 여긴,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긴 그것이 그 사람에게 하나 있으면 하나만 보고, 둘 있으면 둘 보고, 열 있으면 열 보고, 그거 없으면 하나도 보지 말고.
자기에게 단점은 뭐이요? 자기에게 단점은 뭐입니까?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지 못한 그걸 지금 보는 그게 단점이라. 그것만이 우리의 할 일이라.
그 사람이 나에게 내가 미워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이 백 건도 더 됩니다. 백 건도 더 돼. 그거는 통통 그거는 뭐 그런 거는 무슨 명예 훼손죄로 해 가지고 뭐 거석하자 하는 거, 명예 훼손죄로 그래 하면 그것이 마귀 수입입니까 주님 수입입니까? 마귀 수입이라. 주님에게 영광이 되겠소 욕이 되겠소? 그러면 억울하게 애매하게 욕을 듣고 가만히 있으면 그것은 주님 대접하는 것이요 주님의 영광을 가루는 것이요? 대접하는 것이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어. 주님이 갚으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너는 주리거든 먹이고 마시우라” 먹이고 마시우라 그게 성경이라.
이러기 때문에 요번에 세 가지 법칙 하는 거 이것이 영생법입니다. 자, 그것이 상받기 위해서 합니까? 그것이 우리 영생하는 생의 우리의 생의 법칙입니까 상받기 위해 합니까? 상받기 위해 하는 사람 손 들어 봐. 그것이 중생된 새사람의 사는 생의 법칙인 것을 아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생의 법칙이라. 요거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이러니까 모든 견해가 다르니까 이거 자꾸 이 사람은 저 사람 등신이라 하고 저 사람은 이 사람 등신이라 하고, 세상은 서로 등신이라 해. 하나님 법칙으로 보면은 이래야 되고 세상 법칙으로 보면은 이래야 되고, 그러면 우리는 누구의 말씀의 법칙을 지켜야 돼요? 이게 해결이 돼서 아멘이 돼져야 되지 아멘이 되기 전에는 항상 땅에 속한 사람이오.
이 들으면, 그걸 ‘저래 듣고도 가만히 있는 것 보니까, 가만 있는 것 보니까 저 아마 뭐 있는가보다. 있는가보다.’ 그래도 나는 그 여인에게 대해서 한 마디도 말 안 했어. 만일 길가 가서 내가 만나면 나는 또 그 사람 사랑해요. 그 사람 위해요. 그 사람을 위해서 염려하고 오늘까지 기도했지 그 사람에게 미움 가져보지는 안했어. 그 행위는 밉지요.
요번에 이 세 가지 바꾸는 게 오늘이 마지막인데 요걸 완전히 바꾸어서 사람이 바꾸어져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안 됩니다.
요것을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게 선한 일이지, 하나님 앞에 칭찬 받을 일이고 또 상급 받을 일이고 그렇지.’ 칭찬 받고 상급 받을 일입니까 자기의 생의 법칙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생의 법칙이라. 그 법칙을 어기면 죽어요 살아요? 죽어요. 생의 법칙을 지키면 뭐 상급이 있어요 그 살아요? 상급이 있는 게 아니라 사는 것입니다, 사는 것. 요걸 알아요.
어제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몇 번이나 말했는데 자꾸 이래 말하는 것은 뭘 알라고 말하는 것인데 이거 다, ‘자꾸 뭐 닷새 내 부흥회 청해 놓고 어데 할 말 없어 만날 그말만 한다’고서. 만날 그말만이라고 들으니까 그 사람이 살지를 못해. 그것을 들어서 깨닫을 때에 비로소 생명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끝이라요. 그러니까 세 가지.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낫게 여길 것. 그 사람은 국민학교밖에 안하고 나는 대학을 했으면 그 지식을 그래도 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 말이요? 그게 아니오. 사람 대우를 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우대하라 그말입니다.
나는 또 그 사람에게 속했어. 그 사람은 주격이고 나는 거게 종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살라고 했어. 나는 그 사람의 종으로 살고, 그 사람은 또 내게 대해 어떻게 살아? 그 사람은 또 제가 또 내 종으로 살고 나는 제 상전으로 살아. 서로 그래 사니까 이것이 하늘나라라.
이것이 뭐이냐 하면 한 몸뚱이가 이 지체는 이 지체를 위하고 이 지체는 이 지체를 위하는 그것이 생명의 법칙이라. 잘 안 깨달으면 헛일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하는 것 이거 놓치면 안 됩니다. 이것 놓치면 뒤에 가서 앞으로 닥칠 환난 승리 못 합니다.
그러기에 양성원 학생들은 꼭 외식하지 말고 신령한 도리를 깨달으십시오. 신령한 도리가 뭐이냐 하면은 내면이라, 내면. 내적. 언제 내가 가서 쪽발로 걸어가라 하는 거 새김질 하는 거 그 두 가지 말해 줬는데 자꾸 새기고 평생 새겨도 양식이 되고 더 또 연구할 것이고 또 알게 되고, 그건 잣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