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의 결과


선지자선교회 1986년 4월 13일 주일오후

 

본문 : 에베소서 4장 22절∼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22절로 24절까지인데 이 절수를 이런 것은 요절은 외우는 것이 좋습니다. 외워서 늘, 외우면 양식이 됩니다. 길을 가면서도 외우고 일을 하면서도 외우고 요절을 자꾸 외워서 이 말씀과 우리의 심신을 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꾸 연접을 시키면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지으실 때에 우리 영도 이 피동성으로 지으셨습니다. 영도 피동성으로 지었고 우리 마음도 몸도 다 피동성으로 지었고 그 능동성으로 짓지를 안했습니다.

그러기에 실은 사람의 영도 마음도 몸도 그 주체성이 없는 것입니다. 주체성이 있는 것같이 보이는 것은 악령이 그 주체가 됐든지 하나님이 주체가 됐든지 됐지 사람의 영육으로서는 주체성이 없는 것이요 언제든지 순응성 있도록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그 순응성 있게 지으신 그 목적은 우리의 영은 하나님에게 순응하 도록 지으셨고, 마음은 영에게 순응하도록 지으셨고, 몸은 마음에게 순응하도록 그렇게 지으신 것입니다. 이런데 사람이 변질한 그 후부터 이 모든 것들이 제 지위를 지키지 아니함으로 모두가 다 허약해졌고 어리석어졌고 어두워졌고 모두 비정상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영은 하나님에게만 순응하도록 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순응하는 이 순응에 연결이 끊어지면 영은 즉시 죽는 것입니다.

기능적으로는 아무 작용을 못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연결이 되었을 때에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보다 능력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결된 영이 어떤 것에게 능력 있는가? 다만 자기의 마음에게 역사하는 능력이 있고, 또 자기 마음은 자기 몸에게 역사하는 능력이 있고 다른 데는 역사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마음을 어떻게 가진다 할지라도 자기 마음 가진 것은 자기 몸으로 이행하지 자기 마음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의 몸이 이행하지를 아니합니다. 마음 가진 것을 자기가 말로 표시를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신경이나 피부나 혹은 몸의 태도로나 그렇게 표현이 될 때에 다른 것이 순웅하지 자기 마음 가진 것은 자기 몸 외에는 순응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또 이 마음은 영의 것을 순응하면 좋은데 마음 요것은 요게 이상치도 안한 게 돼 가지고 있어서 중생된 영에게도 순응할 수가 있고 마귀에게도 순응할 수가 있고 제일 사람에게 창기성 있는 더러운 것이 사람의 요 마음인 것입니다. 요게 고약치도 안한 것입니다. 요 마음이라는 것은.

그런데 이 마음이라 하는 것은 굉장히 민활합니다. 일 초 동안에 이 우주를 몇천 바퀴라도 돌 수 있는 것이 그것이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마음은 심히 사로잡기가 어렵습니다. 일 분 동안 자기 마음을 꼭 사로잡고 있을 수 있다면 제법 수양이 있는 사람입니다. 불교에서 참선을 위주하는 것은 자기 마음을 좀 집중시켜서 고정시키는 그 연습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사람은 순응성 있도록 돼 가지고 있는 것인데, 영은 하나님에게만 순응하게 돼 있기 때문에 원죄와 본죄로 죽은 그 다음부터는 사람의 영이라 하는 것은 그저 존재만 하지 기능적으로는 완전히 죽은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2장 1절 이하에 죄와 허물로 죽었다는 것은 그것은 영이 기능적으로 죽은 것을 가리켜서 말하고 육은 사형의 정죄를 받은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중생된 사람의 영은 하나님에게만 순응하게 되는 것인데, 다른 데는 순응하지 안하지만 하나님에게만 순응하는 데도 그 순응을 자꾸 연습을 하면은 순응이 숙달이 되고 성장이 됩니다. 중생된 영도 세 가지로 영이 중생을 했는데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공로를 설정하시고 공로를 베푸시고 설정이라면은 공로를 세웠다 그 말입니다 이 공로를 설정하시고 이 공로를 가지신 주님과 또 이 공로로 파송을 받은 성령님과 또 이 공로의 것이 되어 있는 진리와의 이 셋으로 죽은 영이 살아난 것입니다.

살아난 이 중생된 영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주님의 이 세 가지 공로를 자꾸 명상하고 또 생각하고 사모하고 또 연구하고 또 성신의 감화 감동을 계속받고 또 진리로 점점 강해지고 이래 되면은 그 영이 점점 장성해집니다.

중생된 영은 다 죄는 없고 깨끗해졌지만 중생된 영의 강약은 차이가 심히 많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구원을 이룰려고 하는 이 건설구원은 영육의 구원인데 영은 그러면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났는데 영은 뭐 구원될 게 뭐 있겠는가 생각하기 쉽겠습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영은 피를 먹고 영감 먹고 진리를 먹고 점점 장성해집니다. 우리의 중생된 영이 예수님의 피를 먹고 영감을 먹고 진리를 먹으면 점점 중생된 영이 장성해지고, 장성해지면 자기의 마음과 몸을 통치 하는 그 실력이 차차차차 성장됩니다.

그러면 중생된 영이 자라는 것은 뭘 먹고 자라는가? 주님의 이 대속의 공로를 먹고 영감을 먹고 진리를 먹고 그렇게 자랍니다. 우리는 이 중생된 영을 장성시키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하는 일입니다. 그저 맹목적으로 구원을 이루겠다 이래 가지고 뭐 조심하고 또 주의하고 열심을 내고 하는 그런 것 가지고는 너무도 구원의 그 실상과는 거리가 멀고 다 허공을 치는 거와 같은 그런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중생된 영을 장성케 할 그 필요성이 뭐인가? 그 필요성은 중생된 영의 실력이 강장해짐으로, 강해지고 장성해서 강장해짐으로 자기의 마음과 몸을 잘 통치해서 마음을 잘 복종시키고 몸을 잘 복종시킬 수 있는 그런 권위가 장성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중생된 영을 양육하는 것입니다. 중생된 영은 죄는 없습니다 만 중생된 영이 장성한 사람과 아주, 어릴 유(幼)자 약할 약(弱)자, 유약한 사람은 많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중생된 영을 점점 강하게 장성하게 길러야 하겠는데 그 기르는 데는 양식이 예수님의 피와 살이요 영감이요 진리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또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리리라 말씀하시면서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와 살을 어떻게 우리가 먹을 수 있는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다 말은 영의 양식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세 가지 공로를 자꾸 생각하고 명상하면서 예수님이 어떻게 가난해지시고 어떻게 낮아지시고 어떻게 모든 자유를 다 내놓으셔 가지고 죽기까지 하셔서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것을 자꾸 생각합니다. 자꾸 생각하고 사모하고 거기 대해서 느껴 보고 점점 그 실상에 가까이 돼서 예수님의 사랑의 실감을 가지게 되고, 고난에도 실감을 가지게 되고 이런 가운데에서 영은 장성해자고, 또 영만 장성해지는 게 아니라 장성해지면 거게 따라서 몸도 차차차차 변화가 됩니다.

그러면, 영은 그 마음과 몸에다가 활동을 하고 역사를 하고, 영은 그 마음과 몸을 통해서 이 우주에서 모든 움직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이 먹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먹는 일도 있고 또 자기의 이 심신을 통해서 먹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 읽는 것이나 또 사모하는 것이나 하는 것은 우리의 몸으로 통해서, 몸을 통해서 마음의 양식이 되고 마음을 통해서 영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는 중생된 영의 양식이요, 또 이 마음과 고기덩어리에도 양식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이 영감과 진리를 많이 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꾸 그저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그 생각을 하면 할 일은 언제하고 생각을 할까, 또 모든 물질 문제는 어떻게 하고 생각을 할까 이렇게 사람들이 생각이 나서 중생된 새사람이 먹는 양식을 이것을 등한히 하고 모든 썩을 양식만 자꾸 먹습니다. 인제 이 양식은 먹지 안하고, 물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삼라 만상의 그 풍경을 우리가 관람하는 것도 그것도 이 심신의 양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참 양식을 먹는 데에 하나 조미료와 비슷하게 조미료와 같은 것이지 그것이 양식되는 건 아닙니다.

물론 조미료에도 영양을 섞어서 만들지만 실상 조미료만은 음식을 맛있게 먹도록 만드는 것이지 그 속에는 영양보다 오히려 해독이 많습니다. 여기 후추가루 같은 이 후추가루라든지 무슨 재피가루나 이런 것도 하나의 조미료입니다. 그러면 그거 힘으로써 식물을 좀 맛있게 먹기는 먹기 때문에 그 유익이 있는 것이지 그 유익이 없다고 하면은 그런 것은 몸에 대단히 해로운 것입니다. 만일 그것만 먹으면 해롭습니다. 그것으로써 다른 음식을 먹는 조미료로 쓰면 그것 때문에 음식을 좀 잘 많이 먹으니까 그것의 손해를, 조미료에 해독이 있어도 수지 계산을 맞추면 마지막에는 좀 유익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하고, 할 수 있으면 그런 조미료를 사람들이 안 먹을라고 안 쓸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모든 자연이라 하는 그런 것도 우리에 심신의 양식이 되나 하나는 그 조미료고 그 모든 이 삼라 만상을 봄으로써 더 진리를 깨닫게 되고 또 영감을 더 접하게 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한적하고 고요한 그런 곳을 가면은 우리의 마음이 좀 또 다 같이 성경을 봐도 좀 새로와지고 기도할 때도 좀 새로와지고 하는 그런 것은 뭐 좀 조미료가 좀 거기 들었기 때문에 비유컨대 그와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변함없는 이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공로는 우리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을 늘 사모하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이 예언의 말씀이 있으니' 예언의 말씀은 신구약 성경을 다 말해서 예언의 말씀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너희들이 사모하여 너희 속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이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가하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베드로는 말하기를 '갓난아이와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들이 사모하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 말씀을 사모해서 샛별이 너희 속에서 떠오르기까지 사모하는 것이 가하니라' 샛별이라 말은 새벽별이라 말입니다. 하나의 그것도 비유입니다. 그러면 새벽별은 어떤 게 새벽별인가? 새벽별은 아침 해를 소개하는 것이 그것이 새벽별입니다.

새벽별이 나타나고 나면은 밤중은 차차 사라지고 이제 아침해가 돋아오는 것입니다. 그거, 성경에 해는 주님을 말했고 샛별이란 새벽별은 성경의 영감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사모할 때에 그때에 말씀을 생각하고 사모하는 데에 어데까지 사모할 것이냐? 영감이 네 속에 떠오르기까지 사모해라.

그러면 영감은 우리 안에 있지만, 영감은 우리 영 안에는 있지만 우리 마음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는 깜깜하게 영감이 없는 그런 마음으로 지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장성해서 자꾸 연습을 하면은 영감이 떠나는 그런 시간이 없지만 어릴 때는 영감이 왔다 갔다가 자꾸 그랍니다. 그러면 올 때는 유리 마음이 영감이 떠오르고 갈때는 다시 중생된 그 영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러면 그 영감은 어떤 게 영감인가? 영감은 우리가 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사모할 때에 우리 주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주관, 우리 마음이 주관이요 양심도 주관입니다. 우리 속에 자기라는 이 주관이 있습니다. 자기라는 주관이 있는데 이 주관이 하나님 말씀을 자꾸 생각을 합니다. 말씀을 생각하면 그 말씀에 대해서 자기가 지식도 하고 또 깨닫기도 하고 또 거게 대해서 믿기도 하고 이렇게 합니다.

하는데, 그 자기 주관이 들어서 깨닫고 알고 믿고 기억하고 하는 그 일을 자꾸 하면은 자기 주관을 초월한, 자기 주관은 암만 애를 써도 요만만큼밖에는 느끼지도 못하고 요만큼밖에는 깨닫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는데, 자꾸 그렇게 생각하고 사모하고 이렇게 애를 쓰고 하나님에게 자꾸 향해서 구하는 이 소원을 가지고 좀 더 알고 좀 더 깨닫고 좀 더 믿어지도록 할라고 애를 쓰면 나중에 자기 주관을 초월한 이 객관의 깨달음과 객관적인 그런 믿음과 객관적인 그런 기억이, 생각이 생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주관이 전력을 다 기울이면 자기 주관을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이 객관의 은혜를 자기 주관이 영접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이냐? 그때부터 영감입니다.

영감도 차이가 많습니다. 영감을 영접했는데 영감을 영접하면은 깨달음도 객관 역사로 깨달으나 깨닫는 것이 그 사람은 깨닫는데 예를 들면은 깊이로 한 치를 더 깨달았습니다. 저 혼자 주관으로서는 암만 할라 해 봤자 주관밖에는 못 깨닫는데 주관에서 주관을 뚫고 들어와 가지고 주관보다 깊이 있는, 주관은 거게까지 못 깨닫는데 자기 주관이 간 그 이상 깊은 깨달음 한 치를 깨달은 사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두 치 깨달은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한 자를 깨달은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열 자를 깨달은 사람 있고, 다 같이 성령의 은혜를 받았지만 그 깨달음이 백 배 천 배 뛰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거는 영감의 충만함을 받아서 그런 것입니다.

또, 깊이도 그렇고, 또 넓이도 그렇습니다. 자기는 자기 주관으로서 그 성경 말씀 보고 깨달은 것은 요만한 범위밖에는 깨닫지 못했는데 자꾸 자기가 생각하고 또 하나님에게 구하고 좀 더 알라고 애를 쓰고 하면은 그렇게 애쓰는 것이 객관 역사인 그 영감을 영접해서 자기 주관으로서는 일 메타, 그라면 석 자 평방을, 비유컨대 석 자 평방밖에는 못 깨달았는데 거게서부더 석 자 한 치를 깨닫고 넉 자를 깨닫고 다섯 자 범위를 깨닫고 열 자 범위를 깨닫고 자꾸 이래 깨달아서 깨닫는 그 광대성이 점점 더 깨달아지게 되고, 또, 그래서 길이라. 길이라 말한 것은 자기는 거게 대해서 일 년 것을 '일 년 후면 어떤데' 하는 일 년 후까지 자기는 깨달았는데 객관이 와 가지고 십 년 후까지 백 년 후까지 그 깨닫는 것이 점점 강해져서, 말로는 '이 다음에 이 말씀대로 심판 받는다' 했는데 심판받는다고 자기가 느낀 그 정도가 점점 달라집니다. 강도가 점점 달라져서 다 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해도 천 명 만 명이 각각 다릅니다. 있다고 하지만 심판을 인정하는 그 강도가 달라서 어떤 사람은 앞으로 심판받을 때 그때에 그 당시의 깨달음과 꼭 같은 깨달음을 미리서 깨닫는 그 사람이 이제 예비적 영감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래서, 길이로 시간적으로 길게 장원하게, 또 그 높이라 했습니다. 높이라 말은 점점 하나님을 향해서 더 자꾸 요 진리와 하나님과 관련성을 자꾸 더 깨닫고 더 깨닫고 해서 자꾸 높아집니다. 이래서 그 깊이와 길이와 넓이와 높이를 이렇게 성경에 말씀한 것이 그것이 이런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속에 샛별이 떠오르도록까지 사모하는 것이 가하다. 갓난 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은 젖을 먹으면 피곤이 없어지고 배가 부르고 좋고 장성한다 말입니다. 그러면 어린 아이가 그걸 모르지요, 그게 뭐 모르고 그저 배고프니까 앙앙 울고, 또 우는데 또 젖 주니까 먹으니까 좋고, 먹으니까 또 자라가고 이런 것처럼 어쨌든지 아직까지 어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사모하고 읽고 또 외우고 또 자꾸 또 새김질하고, 새김질하고 하면 뭐 장성해지는 그런 걸 몰라도 자꾸 이렇게 새김질하고 하다 하다 보니까 우리 새사람이 자라게 되는 것을 가리켜서 갓난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거와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네가 사모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사모하고 또 말씀 사모해 가지고 영감이 자기에게 떠오르도록까지 사모하고, 그러면 두 가지 양심을 먹습니다. 그라고 나면 이 진리와 영감은 뭐를 지금 소개하고 있으면 뭐를 가르치고 있는가? 영감과 진리는 자꾸 영감이 내게 더 올수록 진리를 내가 더 깨달을수록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이 더 밝아집니다. 대속을 소개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은 뭐하러 왔는가? 성령님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우리에게 알려 줄라고 왔습니다. 진리는 뭐하러 왔는가? 진리도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을 우리에게 알릴라고 왔습니다. 그러면 진리와 영감은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면 우리에게 올 필요도 없고 또 올 수도 없는 것입니다. 대속이 아니면 우리에게 오면 우리는 죽습니다. 대속이 전부 죄의 문제를 다 책임졌기 때문에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와도 우리가 녹아 죽지 안하고, 녹지 안하고 견디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이 피공로로 인해서 성령님의 은혜와 진리의 은혜가 우리에게 왔고, 또 이 진리와 영감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피공로의 은혜가 우리에게 더 정상화되어지고 실상화되어지고 또 우리에게 실감으로 강하게 느껴져서 그렇게 능력화 생명화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전에도 증거했지만 타락한 데에서, 마귀의 자식으로 되어 있는 거게서 우리가 여섯 가지를 또 거게 덧붙여서 열 두 가지가 됐습니다. 첫째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는 것, 또 중생되는 것, 또 새사람되는 것, 이런데 고장 있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그것이 고장이고, 또 하나님의 아들, 또 천국 시민권을 가진 것 이런 건데 속에 고장은 있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그것이 고장이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가 어짜든지 고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옛사람으로 돌아가는데 옛사람은 몇 가지가 옛사람이 되며 새사람은 몇 가지가 새사람이 되는가? 옛사람도 여섯 가지요 새사람도 여섯 가지입니다.

새사람 여섯 가지는 뭐 뭐으로서 새사람이 여섯 가지고 새사람이 되는가? 새사람이 여섯 가지 되는 것은 신적 요소 셋과 인적 요소 셋이 합해 가지고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옛사람이 뒤는 것은 어떤 것이 옛사람이 되는가? 옛사람되는 것도 여섯 가지가 합해 가지고 옛사람 됩니다. 그러면 여섯 가지가 합하면 뭐뭐가 합해 가지고 옛사람이 되는가? 이 어리석은 우리의 마음, 어리석은 우리 마음과 우리 몸 이게 가니까 중생된 영은 싫지만 억지로 끌려갑니다. 잡아 가지고, 영은, 중생된 영은 지금 마음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 마음과 몸뚱이가 가니까 이 영은 원치 아니하는 자리지만 안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가기를 싫어하고 지금 고통을 당하면서 잡혀서 끌려가는 중생된 영하고 마음하고 고기덩어리하고 이 셋이, 또 셋하고 합하면 옛사람이 됩니다.

셋하고 합하면 옛사람이 되는데 그 셋은 나 아닌 내인데, 나를 죽인 내 인데, 원수, 나 아닌 내인데, 그거는 원수인데, 원수요 나 아닌, 나 아니요, 또 나를 죽인 자요 그런데 그 자를 내인 줄로 이렇게 착각하는 것이 이거 등신같은 이거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이거 등신 같아서 이래 착각을 한다 말이오.

그거 자꾸 우리가 익혀야 됩니다. 마음 네가 등신이다. 마음 네가 악령, 악성, 악습대로 네가 살면 한 시간 살면 마음 너 지체는 기능은 그만치 죽었다, 불에 탄다, 네가 하루 살면 그만치 너는 불탔고 네 고기덩어리 그거는 불탔다, 고기덩어리의 기능도 불탔고 마음의 기능도 불탔다. 이걸 자꾸 인식을 시켜야 됩니다. 자꾸 인식을 시켜서 인식을 시키면 이것이 자꾸 듣습니다.

듣기 때문에, 저 집회에, 아마 대구 집회든지 거창 집회든지 가 가지고 한 사오 일 동안 자꾸 이 마음에게 고기덩어리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타이르니까 거게 있을 때에는 아무도, 그래도 속으로는 지금까지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사람 많지요.

대개는 그래도 그 옛사람으로 돌아가지 안할라고 애를 쓰고 옛사람의 생활 안 할라고 애를 쓰고 새사람으로 살라고 애를 쓰고 고 심신이 중생된 영과 진리를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고범죄 짓는 고런 행동은 좀 덜하게 됩니다. 확실히 변화됩니다.

변화되고 또 양산동에 거기 기도원도 있는데 거기 기도원에 가 가지고, 기도실에 가서, 기도산에 가서 하루 뭐 밥을 한 끼 먹고 또 며칠 단식을 하고 자꾸 그라면서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그라는 가운데서 영감을 받습니다. 자기가 평소에 그 산 밑에서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달을 것이오. 그게 바로 영감입니다.

산 밑에서 원하지 못했던 것을 원하고, 산 밑에서 후회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흘 하고, 산 밑에서 가지지 못했던 담력을 가지고 평강을 가지고 영감 가지는 그것이 이제 영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이 마음과 고기덩어리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과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먹여서 자꾸 이걸 길러야 됩니다. 길러서 이제는 그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그 공로화되고 영감화되고 진리화되고 이거는 자꾸, 자꾸 접해야 됩니다.

우리의 이 심신이 어떻게 만들어졌다 했습니까? 그 주체성적으로 만들어졌다 했소 피동성으로 만들어졌다 했소? 피동성으로 순응성으로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이러니까, 이 마음이라 하는 것은 저 노름꾼한테 가서 자꾸 있으면은 그 마음이 노름꾼화돼 버리고 맙니다. 노름을 원하게 됩니다 아무리 그렇게 못된 노름쟁이라도 저 성자들 있는 데 가서 있으면은 처음에는 이놈이 죽을라고 발동을 하지만 못 가구로 볼끈 당글어 매놓고 만일 가 있다고 하면는 나중에 가서 몇 달이 못 돼서 차차차차 그 사람이 거게 있는 그 성자들을 닮고 싶고 성자들과 같이 되어지기를 원하는 그 사람이 됩니다.

춤추는 데 가면 춤추고 싶고, 또 이거 무슨 체육하는, 체육하는 데 가면 자기도 한번 '내가 유도 잘 하는 사람 됐으면 좋겠다. 씨름 잘 하는 사람 됐으면 좋겠다.' 또 노래 부르는 데 가면 '나도 명창이 됐으면 좋겠다,' 이것이 뭐이냐 하면 이거 순응성 있는 것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런 건데, 이렇기 때문에 좋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좋은 것만 갖다 대 가지고 자꾸 접하게 되면 이게 자꾸 성화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이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기를 너희 속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사모하는 것이 가하니라. 갓난 어린 아이와 같이 이 도의 젖을 사모하는 것이 가하니라. 또 하나님 말씀은 능히 너희를 든든히 세워 가지고 거룩한 자들 가운데 업이 있게 하시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이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시절을 따라서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무릇 그 행사가 다 형통해지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란다고 좋은 것 주는 게 아니라 자연히 그 자체의 행동이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어지고 옳은 걸 찾아가니까 망하지 안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오후에 이 말씀을 하는 것은 목적이 여게 있습니다. 우리가 새사람으로 살면 굉장히 영광스러워지고 지혜로워집니다 저 언제 그런 말씀을 언제 한번, 지난 수요일 밤인가 한 것 같은 그 생각이 나는데, 우리는 이 목회할 때 왜 하나님께서 좀 잘난 사람을 부르지 안하고 못난 사람 부르는가? 이게 내 속에서 항상 불만이었었습니다. 몇 해 전까지도 불만했었습니다. 불만한 것은 이 갖다 앉혀 놓고 가르쳐 봤자 깜깜해서 먹장이라. 속에 뭐가, 속에 조그만한 뭐 실나끈 하나라도 들어갈 만한 마음이 없어. 어떻게 마음이 좁고 작고 소인이고 이런지 뭐 그 속에 정각도 안 들어갈 거라. 이런 뭐 아주 이거 불학 무식하고 못난 것만 왜 이래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모아 놨을까? 좀 굵닥굵닥한 사람들을 좀 갖다 놓지 안하고 이런 것만 갖다 놓고 이거 설교해 봤자 이거 뭐 할라고 설교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내가 그런 말을 여러분들이 섭섭해하겠지만 내가 종종 했습니다.

차차차차 깨달아서 이제사 그걸 깨달은 것은, 유력한 사람, 이 세상에서 재주 있고 머리 좋고 열심 있고 인격 있고 아주 배짱 있고 지혜 있고 슬기 있고 또 학식이 있어서 이런 사람들 대개 보면 대학 졸업 맡은 것 쳐놓고는 옳은 게 별로 없어, 가끔 가다가 하나씩 있지.

꼭 대학 졸업 맡으면 대학 졸업 맞은 것만치 행투를 부리고, 또 재산이 있으면 있는 것만치 행투를 부리고, 또 그게 무슨 어떤 기능이라도 있으면 있는 것만치 행투를 부리고, 오히려 보면 잘된 거는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게 잘된다. 아무것도 없는 그것이 잘돼져요, 보니까. 이거는 뭐 돈도 없는 것, 그나마 또 병신, 또 이거 뭐 귀먹어리. 무식한 거, 가난뱅이, 이것이 오히려 참 탁월한 그런 것이 있다 그거요. 그래서, 나 그런 것 좀 깨달은 게 있어 놔서 그래서 내가 병신을 잘 등용합니다. 하는 것은 저 OOO 조사님도 눈이 어두워 잘 모릅니다. 아무것도 몰라요. 길도 잘 못 걸어가요. 막 돋보기를 두꺼부리한 것 이런 걸 이래 써도.

그런데 그 사람을 다른 사람들은 다 폐물로 버렸는데 나는 그 사람을 총공회서 허락하지 안하는 것을 강제로 말해 가지고 조사로 등용해 놨습니다.

등용한 것은 혹 저런 것을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고 좀 좋게 쓰지 안할까?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 만들고, 병신을 가지고 건강한 사람 만들고, 가난한 사람 부자 만들고, 무식한 사람 지혜롭게 만들고, 무능한 사람 아주 능력 있는 사람을 만들어서 요 세 가지에만 연결만 되면, 신적 요소 요 세 가지에 인적 요소 요 세 가지가 연결만 되어지면 이제 그 신적 요소의 그 무한함이 전부 인적 요소에 와 가지고 다 얼마든지 그를 통해서 발산되어 나가기 때문에 이것은 뭐 하나님이 계약하기를 그렇게 해 놨고 또 그런 것을 얼마든지 경험할 수가 있다 그거요. 이래서 지금은, 참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에 이 무능한 것을 모두 불러다 놨는가 보다.

또 주일학교 중간반을 볼 때에 소망이 생깁니다. 뭐 좀 미안하지만 나도 그런 사람이니까, 여게서, 사십 세 이상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사십 세 이상 되는 사람, 사십 세 이상되는 사람 손 안 들어요? 사십 세 모두 덜됐나요? 사십 세 이상되는 사람 손들어. 사십 세 이상되는 사람들 손들어 봐요. 다 폐물이야, 못 써.

다 송장이야, 못 써. 나도 그렇고. 물론 그 속에 다 못 쓰는 게 아니라 좀 쓸 사람 있기는 있지. 있기는 있지만 그래요. 이제 어릴수록 그게 좋습니다.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어서 바로 믿으면 이 굉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가 주장이 그겁니다. 그전에는, 그 개척 교회하는 데에 그저 돈도 없고, 또 그뭐 사람도 없고 그런데 그거 뭐이 되겠느냐 이랬는데 지금은 사상이 바뀌어졌습니다. 바뀌어져서, 하나라도 좋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인적 요소 셋이 신적 요소 이 셋과 연결이 되면 한 사람은 이 연결 안 된 사람 천천 만만보다도 더 낫다. 그 사람은 일할 수 있다. 그까짓 이 셋과 연결이 안 된 것 뭐, 연결이 안 된 대학 박사, 또 세계 신학자, 뭐 대정권자, 대재벌가 아무 소용 없다. 이 세 가지와 연결 안 된 거는 다 패망이요 멸망이요 적기독이요 원수요 하나님의 적이요 유황불 구렁텅이나 채웠고 하나님의 심판도 도살의 날에 거게나, 거게 살 찌우는 것뿐이지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 셋만 연결 됐으면 이제 수가 작아도 좋고 많아도 좋고, 적은 것보다 많으면 더 좋고, 이러면 그 사람이 뭐 능력이나 재벌이나 그 만드는 데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 그 말이오.

그래서, 인제 그거는 깨닫고 지금 내가 증거하기는 하는데 오후에는 뭘 소원하느냐 하면 누구든지 실제로 이 셋과 셋이 연결이 돼서, 예수님의 피공로와 영감과 진리 이 셋은 하나님의 것인데, 이 셋과 인적 요소 중생된 영과 마음과 몸 이 셋이 연결을 실지로 요 사실을 사실로 알고, 요 사실을 사실로 믿고, 요 연결을 가질라고 애를 써서 연결 가졌으면 당장 연결 가진 그 결과가 나타날 터이니까, 연결 가진 그 결과가 나타나서 다른 사람들이 보니까 '저게 뭐 저런 아무것도 모르는 등신이 모든 사람보다 더 명철하고 전지의 지혜를 가졌구나. 아무것도 아닌 저게 전능의 능력을 가졌구나. 저 순 거지가 부자가 됐구나. 저 아무것도 없는 실력 없는 것이 대실력가가 되어졌구나' 하는 이것을 실지로 이 세 가지와 연결된 이것이, 연결된 사람은 이 사람을 가리켜 뭐이라 합니까, 무슨 사람이라 합니까? 무슨 사람이요? 따라합시다. 새사람! 저 뒤에도, 새사람! 새사람! 입을 쫙쫙 벌리고 고함 질러요.

새사람! 새사람! 저 뒤에도, 새사람! 새사람! 새사람! 저 뒤에도, 새사람! 그래. 이 새사람으로 되어지는 이것을 참 소망하고 힘을 써서, 새 사람이 되어졌다고 입술만 할 게 아니라 새사람이 되어지면 반드시 그 열매가 맺고 그 결과가 맺어지니까 새사람이 된 그 결과를 맺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거 '야 새사람 하는 것 보얀 거짓말인 줄 알았더니만 아무것이 그거 보니까 참 새사람이 성경대로 전지 전능자요 대주재요 만유의 주로구나. 모든 것이 그의 것이로구나.' 하는 이 새사람되어서 새사람의 그 결과는 어떤 결과를 맺는다 하는 것을 보여 주는 이 사람을 주님도 원하실 것이요, 목사도 원하는 것이요, 온 세상도 몰라도 저희들이 원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서부교회에서 한 사람 나오고 두 사람 나오고 열 사람 나오고 백 사람 나오고, 서부교회 몇천 명되는 사람이 다 그런 사람이 되고, 또 근 만 명되는 학생들이 다 그런 학생들이 되어서 이 셋과 연결되어서 바보같은 것이 다 일등이 되고, 다 머리가 되고, 다 투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털끝만치도 어기지 안하고 뭐 퇴학을 당하든지 뭐 죽임을 당하든지 어짜든지 하나님의 계명에서 죽고 계명에서 살고 온 천하가 다 달라들어도 요것은 계명에 호리도 어기게 할 수도 없고 그에게 이 세 가지 능력이 역사해서 인간을 탁월한 이런 존재가 돼서 서부교회 주일학생들이 만일 이 사람이 된다면 이것 가지고 하나님은 일할 것이고, 온 세계는 이것으로 인해서 '봐라. 봐라 나도. 나도.' 해 가지고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이렇게 새사람되어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무한의 축복, 그 축복 내가 받으면 옆에 사람 받을 것 없다 그런 게 아니오. 내가 받을수록 많아집니다. 내가 받을수록 많아져. 천 사람이 받으면 더 많아지고 만 사람이 받으면 더 많아지고. 거기는 끝이 없는 무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많아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다 그런 것이오. 이러니까, 이런 사람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사람.

이거는 원치 안하고 이 피조물하고, 피조물 꼽짝꼽짝하면서 제까짓 것 굼벵이같은 제 노력으로 힘만 가지고 이렇게 할라고 제 노력 바라고, 뭐 인간들 인인 성사해 가지고 할라 하는 이런 거지, 병신, 굼벵이같은 것 이런 것들 다 치워 버리고 이제 지극히 큰 능력에 연결돼 가지고 이런 사람이 되어지는 이 사람이 됐으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또 오해할 것입니다. 그거 서부교회 백 목사는 뭐 세 가지 능력에 세 가지 연결돼 가지고 그라면 인간의 힘 그까짓 가지고 뭐 될라 하는 그런 것 굼벵이 같은 그런 것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으로 가지고 지극히 큰 능력자, 참으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자 이런 자 되기를 원하라 하니까 '그거, 거게 야, 갔다가는 사람 버리겠다. 거게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만 가지고 된다고 이렇게 하니 거기 가면 허영과 허욕자, 순전히 미치괭이만 되겠더라.' 이렇게 말을 하기 쉬울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이 신적 요소 셋과 인적 요소 셋이 떨어지지 안하고 이 연결이 될라고 하면은 힘이, 들겠습니까 안 들겠습니까? 힘이 들겠습니까 안 들겠습니까? 힘이 들겠습니까 안 들겠습니까? 저 뒤에. 힘이 들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저 뒤에 손 한번 들어 보이소. 힘이 들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저 뒤에.

힘이 들겠다. 인적 요소 셋과 신적 요소 셋이 연결이 되는 데는 심히 힘이 들겠다 그렇게 힘이 들겠다고 생각되는 사람 저 손들어 보십시오. 그 밑에는, 여기 앞에는 안 드네. 바보들만 앉았구만. 바보라, 바보. 여게 그라면 그 연결하는 것이 힘이 들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이소. 들어 봐요. 여기는 다 드는데 왜 저기는 왜 안 들어? 저기 바보들만 앉았구만. 다 들어요, 다, 다 들어! 들어! 예수를 믿으면 바로 믿어! 와서 앉았기만 해 되는 것 아니야.

그러면, 세 가지 신적 요소와 세 가지 인적 요소가 연결될라고 하면 돈벌이만치 힘이 들겠습니까 그보다 힘이 더 들겠습니까? 대가리 싸매 가지고 인간 지식에서 박사되는 것만치 힘이 들겠습니까 박사되는 것보다 힘이 더 들겠습니까? 더 듭니다. 더 드요. 더 드는데, 박사야 아무리 힘을 써도 박사될 만한 요소가 있는 사람이라야 되지 다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든지 다 됩니다. 왜 다 됩니까? 있는 것만 다 하면 돼. 있는 것만 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아나 여기 오는 대로는 영생을 할라면 명철한 사람이라야 된다 또 체격이 좋은 사람이라야 된다, 병이 없는 사람이라야 된다 이거 조건 하나도 없어. 어떤 자든지 마음 다하고, 또? 목숨 다하고, 또? 힘 다하고, 또? 성품 다하고, 누운뱅이라도 좋다. 이것만 다해라. 다하면 연결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잘났든지 못났든지 다 연결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연결되면은 놀고 먹는 것으로서, 그와 같이 한다 하니까 허영으로 가지고 아무 힘 안 들고 한다 하니 사람 버리겠더라 하는 그 사람들 말하는 그 조롱하는 것이 맞습니까 거짓말쟁입니까? 예? 똑똑히 들어요. 그런데 우리는 힘을 쓰되 썩을 힘을 쓰지 안하고 망할 힘을 쓰지 안하고, 살 힘을 쓰고 성공할 힘을 쓰고 옳은 힘을 쓴다 그 말입니다.

옳은 힘 뭐? 하나님의 진리와 내 심신이 이탈되지 안하고 하나님의 진리대로의 마음과 이 고기덩어리의 움직임이 될라고, 영감대로의 움직임이 될라고, 예수님의 피에 합당한 움직임이 될라고 애를 쓰니까 이거는 의인되는 것이지, 성자되는 것이지, 성녀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되는 것이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그에게 주실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지. 이러기 때문에 바깥에서 조롱하는 그런 소리는 매우 시시한 소리로 듣습니다. 매우 시시한 소리로 들어. 아무것도 아닌 소리로 들어.

제가 우리 진영 교회에서, 다른 진영에서 우리 진영으로 올라고, 연명 날인해 가지고 올라고 그렇게 달라들고 자꾸 와서 가입해 달라고, 안 해 준다 하니까 사 년이나 기다려도 가입을 안 해 줬는데 내가 엊저녁에 기도 가운데서 해결을 지웠어.

아무래도 마음에 불안한데 왜 이런가 하고 했는데 '네가 하나님이로구나. 어두운 사람이 진리를 받아 가지고 바로 구원을 얻을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구원 얻을라고 하는데, 온 교인 전부가 다 합해 가지고 이리 와서 진리 배워 가지고 구원 잘 이루겠다고 하는데 네까짓 게 뭐이라고 안 받아 준다. 안 받아 준다.

너거 총공회를 바싹 부숴 버릴 거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걸 내가 깨닫고 작정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람을 그런 데 파송해 가지고 너거가 정말로 다 이 총공회에 다 가입하고저 하면 너거 말만 듣고 모르겠다. 사람 파송해 가 가지고 총공회로 가입을 하고 싶은 사람, 그러면 가입하기 싫은 사람은 냅두고 가입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라. 손들어서 알아보고, 그 다음에는 그러면 가입하고 싶으면 너거가 전부 이름을 쓰고 다 서명 날인해 가지고 전교인이 다 오라. 다 오면 그 사람들 가입시킬 것이고, 또 안 오는 사람 있고, 안 오는 사람 있으면 안 오는 사람은 거기 있을라 하고 오는 사람은 여기 있을라 하고 두 쪽이 날 터이니까 두 쪽이 나면은, 두 쪽이 나면은 교회를 가르든지 그렇지 않으면 너거는 이 진리 따라올라면 진리 따라오고 베배당은 집어 던져 줘 버리고 진리 따라 오너라. 이래 가지고 '예배당 때문에 우리는 이거 가지고 가야 되지 두고는 못 가겠습니다.' 그러면 너거 가짜다. 가지고, 올라거든 그 사람 안 줄라 하니까 그거 가지고 있거라. 이렇게 해서 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평이라 하는 것을 엊저녁에 깨닫고 해결을 지웠습니다 그래. 오늘 우리가 이렇게 이 셋과 셋이 연결돼 가지고 이 새사람되는 데에는, 새사람으로 사는 데는 놀고 되는 것 아닙니다. 놀고 되는 것 아니고 있는 힘 다해야 됩니다. 다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새사람으로 살라고 하는 데에 자기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자기를 다해야 되지 다하지 안하고 남겨 두고 새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이거는 성경이 인정치 안해.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 안했습니다. 있는 걸 다해야 영생하는 새사람으로 살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왜 오후에 이 말씀하느냐 하면 있는 걸 다 기울여 가지고 과거에는 썩어질 돈보고 기울였고 권세보고 기울였고 지위보고 기울였고 지식보고 기울였지만 이제는 이 셋과 연결되기 위해서, 연결되기 위해서 있는 것 다 기울여서 사는 새사람, 새사람되면 연결이 뭘로 됩니까? 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내 마음과 고기덩어리와 영이 연결되는 데에는 뭘로 연결됩니까? 그분이 시키시는 대로 내가 함으로 연결된다 말이오. 시키시는 대로 함으로 연결돼.

달리는 연결되지 안하고. 진리가 시키는 대로, 영감이 시키는 대로, 주의 피가 시키는 대로 함으로써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진리와 영감과 피가 뭘 시킵니까? 시키는 것은 공부하라고 시킬 때도 있고 말을 하라고 시키는 때도 있고, '이 말 하면 죽겠습니다.' 죽어도 말하라 하면 말해야지. 말을 하라고 시킬 때도 있고 하지 말라고도 시킬 때도 있고, 일을 하라고 시키는 일도 있고 하지 말라고 시키는 때가 있고, 또 이 일 해라 저 일 해라 또 하지 말아라, 공부도 하라 할 때도 있고 또 하지 말라 할 때도 있고, 또 그런 대노는, 그런 성깔은 가지라 할 때도 있고 그런 성은 내지 말라 할 때도 있고, 이제 그런거는 탐하지 말라고 할 때도 있고 그런 거를 탐하라 할 때도 있고, 이제 성령과 진리와 주의 피가 시키는 대로, 이 시키는 대로 하는 여기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 피와 성령과 진리를 떠나서 제 맘대로 요라면 될까 조라면 될까 할 게 아니라 그 셋이 시키는 대로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이래 가지고 새사람으로 살아 좀 이런 사람 돼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래서, 나는 이 모두 다 교회들이, 우리 총공회 진영 교회들이 크지를 안합니다.

안 해서 찍해야 이백 명 삼백 명 되면 고만 고만이오. 고만하면 족하다 하고 그만입니다. 이 서부교회 말고는 제일 그 다음으로 큰 교회가 칠백 얼마 모이는 것 그것 하나 있고, 그 나머지기는 사백 명, 삼백 명, OO교회도 약 칠백 명 모인다 하는데 인제 그 교회, 몇뿐이지 나머지기는 백 명 이백 명 그렇습니다.

이래서, 그래 나는 지금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서 OOO교회도 여기 왔는데 OOO교회 뭐 교인이 다 안 돼도, 다 안 돼도 목사만 하나 이 삼삼 연결이 되면, 삼삼 연결되면, 그 목사 하나가 전지 전능자 되면 그 목사 하나가 그 얼마든지 전지 전능자를 만들 수 있고 기를 수 있으니까, 이래서 아예 그 교회에 돈 많은 사람 오도록 운동을 하고 돈 많은 사람이 온다 하면 막 머리를 굽신거려서 그런 칙칙하고 아부하는 더러운 그 못난 행위 하지말고 돈 많은 사람도 오면은 영접해 들이고, 돈 없는 사람도 오면 영접해 들이고, 잘난 사람도 오면은 영접해 들이고 병신 누운뱅이도 오면 영접해 들이고, 문둥이라도 오면 영접해 들이고, 영접해 들여서, 가난한 자, 못난 자 병신 이 모든 거지 이런 걸 영접해 가지고 이 세 가지만 대라! 너, 중생된 영은 하나님이 중생시키셨기 때문에 문제는 없고, 이제 하나는 대 가지고 있고, 중생된 영은 대 가지고 있고, 마음만 하나. 대면, 마음, 몸, 대라! 이 세 가지 능력에 대라! 대니까 찌그르르르르 찍찍찍찍찍 찌그르르르 해 가지고 딱 이제 용접이 돼 가지고 딱 결합이 돼 버리면 그거 하나가 만 명도 더 당하고 천 명도 더 당하는데, 그게 억대 재산도 될 것이고, 그 세계 재벌가도 될 수 있는 것이고, 온 세계에 제일 정권자도 될 수가 있고 한국 정권도 가질 수가 있는 것이고 오만 것 다 될 수 있으니까 우리가 딴 거 뭐 찾겠소? 이것을 믿는 사람, 바라는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걸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산 사람으로 살아 이 산 사람의 인간을 초월한 그런 결실이 생겨지는 그것을 좀 세상에게 보여 주는 우리 서부교회 사람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오후에 이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삼삼 연결해 가지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초인간적인 그 결실을 세상에서 보여 주기로 결심하고 한번 보여 주겠다, 이 보여 주는 이 사람 한번 되겠다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거 참 이거 됐으면 됐어. 이라면 이렇게 되는 데는 조건이 있어.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않으면 이 제자가 못 됩니다. 다 버리지 안하면 제자가 못 됩니다.

땅 위에 이것도 저것도, 나는 이 세 연결만 가지는 데는 이 세 연결만 가질라 하면은 가족이 방해될 때도 있고, 자기 몸이 방해될 때도 있고. 자기 목숨이 방해될 때도 있으니까 목숨이 방해되면 목숨 집어 던지고 나는 연결되겠다.

가족이 방해되면 가족 집어 던지고 나는 세 가지로 연결되겠다. 내 몸이 방해되면 내 몸을 완전히 없애 버리고 나는 연결되겠다. 모든 것 다 버리고 없을지라도 요 세 연결은 놓지 않겠다 하는 요 사람이라야 되는 것이니까 모든 것 다 없어질지라도, 모든 것 다 가지고 세 가지 연결되면 좋지만 세 가지 연결될라고 하면은 모든 것 다 버려야 된다고 하면은 모든 것 다 버려도 이 세 가지 연결은 가져 보겠다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아따 의수히 손은 잘 든다. 허허 참 기쁜 소식이오. 한번 더. 정말로, 정말로 이거 다 버리고라도 한번 연결되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정말로. 예. 이라면 됐어. 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신실합니다.

이라면, 당장 오는 것이 뭐이옵니까? 처음에 오는 것. 예수교는 무슨 도이지요? 무슨 도이지요?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러면 먼저 뭐이옵니까? 먼저 오는 것이 뭐입니까? 부활이 옵니까 죽음이 옵니까? 뭐이옵니까? 죽음이 옵니다. 먼저 죽음이 오고 죽음이 와도 변하지 안 할 때에 그 다음에 부활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요.

먼저 죽음이 와도 이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먼저 죽음이 와도. 됩니다. 이라면! 네, 이라는 데에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 아니기 때문에 요걸 실상으로 이루는 데에는 여러분들의 심신이 기울어져서 많은 기도가 있어야 될 것이요, 많은 명상이 있어야 될 것이요, 많은 노력이 있어야 될 것입니다. 부자되는 것, 세상 일 박사되는 것, 정권자되는 것 그까짓 거는 아무것도 아니오.

우리는 그런 것 할라고 해도 하지도 못하는데 이거는 우리 힘만 다하면 돼. 우리 힘만 다하면 돼. 이렇게 이 삼삼 연결되는 데에 자기의 자본 모자라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자본 모자라는 사람. 자본은 모자라지 않는 사람 손들어 봅시다.

자본 모자라지 않는 사람. 자본은 모자라는 사람 하나도 없어. 다 돼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너무도 입술뿐이지 너무도 실상이 없는 거짓부리 세상입니다. 믿으면 뭐 땅 위에 죄악을 사모할 게 뭐 있소? 죄악 그까짓 게 뭐이 좋아서, 무슨 취미가 있어서 무슨 가치가 있어서? 버립시다. 모든 죄악을 다 버리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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