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2 21:56
사데교회의 살리는 방편
1982. 5. 10. 월새
본문 : 계 3:1-3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여기 "도적같이 임한다" 하는 말씀은 버려둠을 당한다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 참으시는 것도 무한합니다. 또 우리를 권고하시는 것도 참 무한하십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이 이렇게 오래 참으시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그 사랑이 참으시는 건데, 이것을 어떤 사람은 약속을 선포해 놓고 아무 감각없는 이와 같이 거슬려도 길이 길이 참으시니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강팍한 자가 되기도 쉽고, 또 어떤 자는 '하나님에게 무슨 감각이나 무슨 실질적으로 처사 가 있나? 그저 대범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의와 불의를 가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진노도 많이 기록되어 있고, 긍휼도, 참으심도, 하나님이 던져 버리면 그 다음에는 희망이 없는, 하나님의 이 유기하시는 이 일도 있는 것을 많이 기록했지마는 그것을, '성경은 그렇게 원리를 기록한 것이지 그렇게 하나님이 세밀히 간섭할 만한 그런 분이 아니시고 또 그렇게 세밀히 철저하게 처리할 분이 아니시다' 이렇게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가지기 쉽습니다.
여기 "내가 도적같이 온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이 사데교회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고 또 이렇게 권고하시지마는 이 권고를 듣지 아니한 때에는 죽인다는 말이 아니고 세상에서 제 수명대로 살기는 갚지마는 하나님의 영감의 은혜를 제거하겠다 그말이오. 영감의 은혜를 제거하니까 회개하는 은혜가 없어져 버립니다. 하늘나라에 갈급한 은혜가 없어지고, 그러면 비참하고 가련해지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살 때에 제가 비참한 줄 알면 하지마는 비참한 줄을 모릅니다. 더 행복되다고 생각합니다. 왜? 완전히 심령을 어둡게 해서 바꿔 버리니까.
라오디게아교회가 말하기를 "나는 부요한 자라. 모든 것이 부요 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자기가 제일 잘나고 복 있는 줄 알았는데, 성령은 판단하기를 "네 가난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비참하고 가련한데 자신이 자신을 잘못 해석하기 때문에 아주 행복스러운 자기라고 그렇게 판단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리면 자기는 오늘보다 내일 의인되고 내일보다 모레 의인되고 점점 의인되고 다른 사람은 죄인이 됩니다. 그것이 제 주관대로의 판단이라 말이오.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에게 오면 자기는 스스로 깨닫기를 점점 죄인이 되는데 다른 사람은 볼 때에 그 사람이 의인이 되고 성자와 성녀가 되고,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아서 하나님 앞에 자복 할 것밖에 없는데 그 하는 일은 점점 흥왕하고 왕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간섭과 은혜가 있는 사람이오. 처음에 말한 그 자가 하나님이 버려둔 자입니다.
"내가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는데 언제 임할는지 모른다" 네가 세상에서 암만 살고 목회를 하고 권찰 일을 하고 장로 일을 보고 집사 일을 하고 반사 일을 해도 너는 하늘나라에 가져갈 것은 하나도 없고 네가 세상 위주로 그렇게, 인간 본위로 그렇게 살아서 영생에 이르는 그 일은 하나도 없도록 하겠다 하는 말입니다. 이 권고가 없다는 말이오. 사데교회는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다" 왜 죽은 자입니까? 네 행위에 온전한 현실은 한 번도 없었다.
온전한 현실이 한 번도 없었다. 껍데기는 바로 할 때에는 속에 알맹이가 다르고, 알맹이가 바로 됐을 때에는 껍데기를 네가 암만 만들어 하려고 해도 껍데기가 행해지지 않는다. 겉이 진리대로 행해질 때에는 속이 흉측한 딴 마음을 가지고, 다른 욕심을 가지고 예수 잘 믿는 척, 회개하는 척, 기도하는 척, 그 목적이 딴 제 사욕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사람들을 노리기 위해서, 또 자기가 어떤 '이렇게 해야 하나님이 축복할 것이다' 하는 그런 야욕에서, 별별 그 동기와 목적에서 하기 때문에, 외모가 바로 됐을 때에는 속에 알맹이가 틀렸고 알맹이가 바로 됐을 때에는 외모를 바로 하려고 암만 해도 안되고, 이래서 네가 행동한 것은 전부 백점에도 달한 것은 하나도 없다. 말씀과 성령이 인정하는 그런 것은 없기 때문에 살았다는 이름만 가졌지 법적, 명칭적, 이름 구원, 외모 구원만 네가 얻어 가지고 기본구원만 얻어 가지고 있지 실상은 건설구원에 있어서는 너는 다 죽은 자다.
그러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도 그대로 하면 다 죽는데 죽게 된 이제 죽기를 계속 줄줄 죽어 나가는 현실에서 시체로만 이렇게 죽어 나가고 있는 네 남은 바를 네가 이렇게 죽지 아니하도록 굳게 해 라. 그러면 굳게 해서 안 죽이고 남은 부분은 죽이지 않고 살릴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두 가지입니다. 네가 어떻게 들었는지 들은 그것이 네가, 사람이 너에게 말하니까 '아무나따나 다 저렇게 다 한다. 설교를 한다.' 이렇게 네가 생각지 말아라. "일곱 별을 가진 내다" 그말은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그 종들은 하나님의 사자라 그말이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니라' 하는 말씀을 요한계시록 1장에 말씀을 해 왔습니다.
이러니까 네가 하나님의 도를 바로 증거하는 그 도를 네가 들었으면, 바로 증거해 주는 그 도는 사람이 너에게 말했지마는 그 사람을 내가 사자로 보내서, 내 심부름꾼으로 보내서, 내 사신으로, 내 특사로, 내 사자로, 내 심부롬꾼이라 말이오. 사자라 말은 쓸 사(使)자, 놈 자(者)자, 쓰는 사람이라 그말이오.
사신이라 말은 나라에서 쓰는 신하라 그말이오.
나라에서 특사로 보냈다 하는 것은 특별한 심부름꾼으로 보냈다 그말인데, 일곱 별을 가지신 이, 일곱은 완전 수인데 하나님께서 왜 이 말을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들은 것, 네가 들은 그 말씀을 너에게 들릴 때에 내가 내 사자를 보내 가지고 너에게 들린 것이다.
또 네가 들을 때에 깨달음이 있는 것이 네가 깨달은 것 아니다. 일곱 영을 가진 성령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가지고 성신의 감동으로 네가 깨닫게 된 것이고, 네게는 그런 것이 없는데 "아, 옳고 바르고 참된 참 가치있는 일을 내가 이렇게 해 보겠다.' 하는 네가 작정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성령님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다.
내 사자와 내 성령님이 너희에게 듣게 했고, 들을 때에 깨닫게 했고, 작정하도록 했으니 이것을 네가 바로 하면 남은 바의 죽게 되는 것이 죽지 아니하고 영생하게 되리라. '그러면 그걸 어떻게 해야 됩니까?' '들은 것은 생각해라' 거기 말했습니다. '들은 것은 생각해라. 들은 것은 생각해라' 어떻게 생각해? 네가 현실 현실을 만날 때에 학교에서 배운 것, 사회에서 배운 것, 네 주관에 있는 그 모든 철학, 인간에게는 마귀가 준 철학이 무식한 속에도 가득 차 있습니다. 그걸 글로 써서 이렇게 발표를 못해 그렇지. 그런 걸로 현실을 생각지 말고 내가 내 사자를 보내 가지고 너희에게 일러 들려준 그 말씀을 가지고 생각해라. 이번에 대구집회에 가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들려 주신 말씀, 대구집회 때에 들은 말씀을 가지고 이 현실을 판단하면 이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거창집회에 가 가지고 들은 말씀을 가지고 이 현실을 판단하면 어떻게 판단이 되겠느냐? 내가 주일마다, 새벽마다 교회에 '가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들은 그 말씀을 가지고 이 현실을 판단한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내가 듣지 않고 직접 신구약 성경을 내가 읽을 때에 본 그 말씀을 가지고, 그 말씀도 하나님이 성경 기자를 통해서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현실을 판단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이걸 네가 해라.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해라. 여기 본문에 그랬어 어떻게 들은 것을 생각해라. 들은 것을 생각해라. 이것이 사는 방편 둘인데 둘 중에 하나이다.
하나는 생각하는 것, 네가 이거 하지 않고 천하에 있는 지식을 네가 다 통달해서 아주 모든 사람이 너를 지혜있고 지식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까짓 거 가지고 판단해서는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서 미련케 하신 것이다. 미련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 지혜는 하나님을 배반한 그 마귀에게, 마귀가 저 망할 짓만 하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빽 틀어놔서 제 생각하거나 원하는 것이나 깨달은 것이 전부 자타를 망치는 결과를 맺도록 그런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렇게 말했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서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이래 왔어.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이러기 때문에 '네가 스스로 세상 지식적으로 지혜있는 자인 줄 생각하거든 정반대의 미련한 사람이 되라. 그러면 네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리라.' 이렇게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 지식이 다른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현실을 당할 때에 아버지의 교훈, 어머니의 교훈, 학교 교훈, 사회 교훈, 신문에서 나오는 교훈, 뉴스 뭐 테레비 어디서 들은 것, 보고 접촉한 것 이대로 현실을 네가 판단해서 가면 너는 멸망의 길밖에는 못 간다.
이래 가지고 네가 전부 다 죽였다. 예수를 믿는다 하지만 기본구원뿐이지 건설구원은 너에게는 하나도 없다.
이러니까 남은 바 이것을 죽이지 않고 살리려거든 첫째로 내 사자가 네게 들려준 이대로 생각하라. 하나님의 사자, 성경 기자들이 기록해서 준 이 기록대로 네가 생각하라. 또 이 기록한 말씀을 그 시 그 시 하나님의 사자를 세워 가지고 네가 깨닫지 못하는 이 성경 말씀을 너에게 깨닫게 일러 들려준 그 말씀대로 현실을 생각해라. 이것이 네가 죽지 아니하고, 법적으로 명칭적으로 살아있는 이것이 완전 산 것이 되어지도록 하는 방편의 반이다.
그러면 반은 뭐입니까? "어떻게 받은 것을 지켜 행하라" 어떻게 받은 것을.
이는 성령이, 일곱 영 성령이 너희에게 준 것인데 네가 받은 것 있지?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말씀을 들을 때에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걸 네가 깨달았다고 하지 말아라. 깨달은 그것이 성령이 너희에게 깨닫게 해 줬다.' 베드로가 자기 속에서 성령이 깨닫게 해주는 그것을 그대로 발표를 했습니다.
베드로가 장점있는 것은 성령이 그 속에서 자기에게 깨닫게 해 주실 때에 깨닫게 해 주시는 그대로 주님에게 직고했을 때에 주님이 칭찬하시고 '이 반석 위에 내가 교회' 세우겠다. 이것이 천국 열쇠다. '모든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더냐?' '모든 사람들은 엘리야라 모세라 뭐 선지자 중에 하나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자들은 자기 속에 영감주는 그대로 하지 않고 주변에 다른 사람들, 모두 다 중론, 공론 그것을 인정해 가지고 거기 따라서 말했기 때문에 그건 다 망하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속에 옳고 바르게 성령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이것을 받아 가지고 이대로 움직이기를 시작하고 연습해 가지고 이대로 움직이는 사람은 사는데, 이렇지 않고 움직임이 와도 인본 이 세상 것이 비판해 가지고 '이거는 내가 착각했다' 잘난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들을 때에,-설교 들을 때에는 옆에 사람 보고 운거나 말하거나 그런 짓 하지마! 옆에 애기가 암만 예뻐도 예쁘다고 뭐 그 하는 행동 하지마! 마귀 들어가! 뭐 여기 앉았으면 소용 있는가? 이 진리가 들어가 속에 능력이 돼야지.
이렇게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을 잘난 사람들은 '아, 이렇게 들을 때에 깨달아진 거, 기도할 때에 깨달아진 거 이것은 너무 지나친 내 주관 감정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사회성이 없다. 이 사회와 맞지 않다. 불합리적이다.
이치에 맞지 않다.' 얘! 네 이치에 맞지 않아? 인간 이치에 맞지 않다 말이지? 사회성이 없다 말은 죽음으로서 달리고 있는 이 세상에 맞지 않다 말이지? 이 악한 자야! 어리석은 자야!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잘난 자들이 대개 이러하기 때문에 영감을 소멸하고 이러니까 나중에 사데교회가 되고 말았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그것을 첫째 말합니다.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 가 가라사대" '일곱 영과' 왜 이 말을 처음에 말해요? 성령님이 이렇게 줘서 받은 건데 이것을 제 속에서 제 주관으로 공연히 지나친, 무슨 마치 최면술에 걸린 거 모양으로 아무 공평 없이 치우쳐서 '어리석은 주관 감정에서 이렇게 생각난 내 생각이기 때문에 이거는 수정해야 된다.' 이러니까 설교 들을 때 자기 생각난 것을 제가 수정합니다. 기도할 때에 작정한 것을 제가 수정합니다. 이게 잘난 사람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이것이 막바로 성령이 너희에게 준 이 깨달음인데, 이 깨달음은 전능자가 너에게 준 깨달음이요, 이 깨달음을 주신 분이 네가 이 일을 하려고 달려들 때에 너만 있는 힘을 다 기울이면 전능자가, 너를 깨닫게 하신 분이 너를 도와 가지고 천하가 다 반대해도 기어코 일은 이루고 만다. 이렇게 권능있는 일인데 네가 인본으로 삭제하고 만다.
세상 지식 가진 것이 어떻게 비참한지! 저는 자식들 공부시킨 것이 후회뿐입니다. '아, 그 시킨 거 잘됐다.' 하는 생각 하나도 없어. 나는 벌써 죽을 때가 가까왔고 머리가 머리가 백발이 됐기 때문에 그런 일은 다 경험하고 체험했기 때문에 말하지마는, 아직까지도 젊은 부부에서 지금 자식 낳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돈 모아 가지고 자식 공부만 시키면 자식에 대해서 성공이라고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 배암 지식을 넣어 주고 하나님의 지식은 배암 지식 밑에 가도록 해 가지고 자식들 망친 자가 누굽니까? 자식 망친 자가 누구뇨? 애미 애비가 아니고 누구냐? 다 망치고 난 다음에 늙어서 죽을 때사 후회하지마는 다 지나갔으니까 소용없고, 늙은 사람들이 이 말하면 '공연히 자기네들 시대는 다 해 놓고 남의 일이기 때문에 남의 자식 공부시키는 거 방해한다.' 이렇게만 오해하지 그것을 바로 듣지를 아니합니다. 또 진심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면 '나이가 많으면 본래 노망하는 거라. 저 다 노망하는 소리라.' 네가 공부에, 공부시키는 데 대해서 욕심을 내지 말아라. 하나님의 계명 지키고 공부할 수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지식이요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가면서 공부를 하는 것, 이번에도 대구에서 들었는데 그 한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그 경계선이 넘으면 유혹이라고 했고, 유혹의 경계선이 넘으면 우상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벌써 정도가 넘어서 주일을 범해 가면서라도 대구집회에, 이런 집회에 참석하는데 하나님이 기제하시는데 거기 참석하는 일을 공부 때문에 못하기까지 해 가면서 하는 이것은 벌써 그것이 미혹이 줬고 우상이 됐다 그거요. 그것은 벌써 현저히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고 배워야 되는 것이고 이러기 때문에 그게 마귀적이요, 배신적이요, 믿음을 떠난적이요, 현재 자기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라.
이러니까 '아, 이번에는 수학여행을 주일이 끼어서 안 갈렵니다.' 이러니까 그 부모가 들어서 '야 이놈아, 네가 공연히 신앙을 치우쳐서 그리하면 안돼. 그거 배워야 되지 그 배움에 네가, 수학여행 한번 가 가지고 들을 것 많이 있고 볼 것 많이 있는데 네가 안 가고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너는 껍데기 예수를 믿는 거라' 그 아버지가 잘 수정해 줍니다. '가야 된다. 가야 된다.' 갔다 말이오.
이놈이 가 가지고 그래도 주일을 잘 지키고, 다른 아이들은 그런데 주일을 옆에 교회를 찾아가 가지고 주일을 지키고 성경을 보고 거기서 지키느라고 애를 썼으니까 됐지마는 아버지의 신앙은 벌써 가치가 떨어졌다 말이오. '아버지가 지도하는 것이지마는 아버지의 신앙은 인본이다, 세본이다.' 제가 갔지마는 거기서 주일을 지킬려고 하고 보면 거슬림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앞으로 배암은 계획을 하기를 꼭 학교의 행사는 주일날 경영할 것입니다. 또 이 사회의 출세하는 그 길은 주일날로 딱 정해서 주일 때문에 망하는 것으로 그렇게 일호를 끌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일 때문에 망케 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좋은 것인 줄 알고, 주일 때문에 망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인 것을 깨닫고, 저 좋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인 것을 깨닫고, 아무리 주일날 시험치지 않아 망하는 길을 가도 당신이 이렇게 높이 들 수 있는 권능있는 우리 주님인 것을 알고 믿는 자에게는 그 길을 가 가지고 주일날 시험을 치지 아니함으로 도리어 복되고 성공되고, 그때에 '아무래도 이거는 주일 범해도 가야 되겠다.' 하는 그자에게는 하나님이 같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자는 성공 같은데 실패자입니다.
이러니까 '네가 하나님 말씀을 들은 대로 생각해라.' 배암의 말 그까짓 거 암만 알아도 소용없어.
나는 학교에 다닐 때에 수학여행은 가고 싶었지만 부모들이 엄격해서 허락을 안 해서 한 번도 못 갔습니다. 그래도, 내가 5학년 하다가 말았는데, 수학여행을 안 가도 수학여행을 간 그 학생들 다 발 아래 밟고 위에서 대가리입니다. 그때 급장은 지금 뭐 급장이 다르요. 그때 급장은 상학 시간이 되면, 상학종이 치면 급장이 나와 가지고 '앞으로 나란히 서라' 하면 쪽 섭니다. 만일 더디 오면 야단나요. 턱 서 가지고 앞에 인솔하고 쭉 들어가고, 공부하고 나와 가지고는 급장이 앞에 서서 '앞으로, 앞으로 서라. 나란히 서라.' 이러면 쭉 섭니다. 쭉 서면 급장이 저 옆에 나서 가지고 그다음에 '경례' 하면 그 학생들이 급장에게 경례하면 그래 급장이 답례하고 그래 하학을 마칩니다. 아주 급장이라면 존귀하고 가치가 있었소. 시간이 되면 선생님이 뭐 일 때문에 급장한테 그만 이번 시간에 가르치라 하면 뭐 수학이고 뭐 다 가르쳐야 된다 그말이오.
수학여행 안 가도,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공부를 대학이나 뭐이나 시켰더라면 그 지식이 들어서 하나님의 지식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발 아래 파묻기 때문에 안될 터인데 이 세상 지식이 작아 놓으니까 아예 세상 지식 그까짓 거는, 그 이상하게 그것은 또 배우고 싶지도 않아. A B C를 배우기 싫어. 이래 가지고 에이 자는 지금도 압니다. 비자 알아요. 씨자 알고 그 다음 자는 몰라요. 넷째 자는 몰라.
기억하려고 하지를 않아. 사무엘이 공부를 안 배웠다고 해 가지고 그분이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까? 인간의 머리를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신데. 다니엘이 공부한 거 그거 가지고 그렇게 위대해졌습니까? 요셉이가 공부한 거 가지고 위대해졌습니까? 인간이 모르는 그 한 가지를 요셉이가 딱 아니까 요셉이 총리대신 됐습니다. 총리대신 되고 보니까 이제까지 뭐 정치학 짜다라 많이 공부한 자보다도 요셉이 정치대로, 요셉이 정치 어찌 하는데? 하나님이 '이래라저래라'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니까 그 나라가 이렇게 국민들이 요셉이를 전부 아버지라 했다 말이오. 요셉의 그 족속들이 친척들이 왔는데 그분들은 다 말하기를 그들이 낱낱이 대할 때에 아버지라고 했어. 성경에 그렇게 말 하지 않았소? 무엇인데? 마귀 지식에 착각해 가지고, 지식 탐욕은 죄 아닙니까? 돈 탐욕이나 인간 탐욕이나 명예 탐욕이나 남자가 여자 탐욕이나 여자가 남자 탐욕이나 탐욕은 꼭 같은 것입니다. 지식 탐욕은 무슨 죄가 안되는 줄 압니까? 이러니까 어리석은 자들이 남의 집에 있는 책 갖다보고 안 주는 책 도둑질은 도둑질이 아닌 줄 알아. 그게 남의 집에 가서 돈 도둑질하는 거나 꼭 같은 도둑이오. 뭐 어떻게 판단합니까? 어리석지 말아야 됩니다. 그거 다 모두 배암 지식이 다 그렇게 해 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어떻게 받았는지, 누구한테 받아? 일곱 영을 통해서 내가 너에게 준 게 있지 않느냐? 성령을 통해 너에게 준 게 있지 않느냐? 받은 거, 네가 내 말씀을 들을 때에 깨달아진 거 그게 일곱 영이 너에게 준 것이다. 깨달아진 거. 그럴 때 '아, 나는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작정한 거, 이번에 대구에서 작정한 것 있을 거라 그말이오. 여러분들 있다 그거요, 분명히! 그거 성령님이 주신 것인데 가지고 오면 마귀란 놈이 그것을 헐어 버리게 만듭니다.
깨달은 것 그것은, '공연히 자기가 그 집회에 참석해 가지고 하나의 건전치 못한 감정에서 그렇게 깨달아진 것이라. 실상성이 없는 공연히 감정주의에서 결정하고 약속하고 마음에 작정한 것이 라.' 어리석은 자야! 하나님이 너에게 준 것이다. 바로 그게 죽고 사는 것이다! 와 가지고는 이렇게 이것을 주변에 있는 마귀라는 놈, 주변에 있는 마귀라는 놈, 인간을 통해서 역사하고, 자기 속에 있는 마귀의 온갖 욕심이 역사하고, 이래 가지고 깨달은 것은 깨달은 대로 그때에 깨달은 것으로 그만 그것으로 끝내버리고, '받은 것도 지켜 행하라' 받은 것을 지켜 행하라. 깨달은 것이면 네가 지켜라. 작정한 것이면 행해라. 지켜 행하라 말은 깨달은 것을 지키고 작정한 것은 행하라 그말이오. 이게 사는 것인데, 이걸 하면 이 구멍에서 모든 것이 다 나옵니다. 이 구멍에서 세상에 암만 좋다 해도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나옵니다. 아무리 기쁘다 해도 그것보다 더 기쁜 것이 나옵니다. 아무리 필요있는 것이라 해도 그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 이 구멍에서 나옵니다. 아무리 취미있고 재미있다 할지라도 그까짓 거보다 더 취미있고 재미있는 것이 구멍에서 나옵니다.
'네가 이걸 버려야 영광스럽고 명예스럽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알아주고 형통해지겠다' 하는 그것보다 이것을 지킴으로 그 구멍에서 나오는 형통, 그 구멍에서 나오는 너 존귀, 그 구멍에서 나오는 그 성공 이것은 무한히 무한히 낫다. 왜? 그것은 직접 창조주, 조물주, 주재자이신,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에게 바로 직통으로 나오는 것이다! 뭣 때문에 이걸 못 하겠습니까! 이거 하지 않고는 제가 죽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암만 잘나도 위대해도 이것을 버리는 자는 가련합니다. 제까짓 게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습니까? 오늘 주제에 폭 털면 거품 빠끌 빠글하고 제가 뒈질 것인데 무슨 가치 있소? 무슨 힘이 있소? 하나님이 두뇌를 삐뚤게 해 놓으니까 이것은 전부 망할 것만 생각합니다.
명철과 아이큐로 말하면 둘째 가지 않을 만한 그런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틀어 놓으면 생각이나 소원하는 거나 비판하는 것이 들어 보면 전부 저 망할 것밖에는 안 해. 고쳐야 돼! 이번에 거기서 작정한 것 고치고 해야 돼 안 하면 안돼! 안 하면 망해. 안 하면 죽어!
이번에 말라기 선지를 통해서 한 말씀이 마지막 말씀인지 모릅니다. 때가 아주 가까왔습니다. 아주 가까왔소. 세계가 주제는, -신문 보거든 그 뭐 '경제가 어찌된다. 어찌된다.' 그까짓 거 보지마. '뭐, 소식 있다.' 그것도 볼 필요 없어. 볼려면 국제 정세가 어찌되 나 그거나 봐. 어찌 되는가? 국제 정세가 어찌되나? 그렇다고 해 가지고 그대로 움직여지는 거는 아니지만 그걸 봐서 하나님의 징조를 짐작할 수가 있어.
있는 것만 해도 먹고 쓰고 남을 터인데 무슨 욕심이야? 이번에 건축 연보 하거든 톨톨 떨어서 바쳐버려. 주를 위해서, 주님 나 위해서 가난한 거지됐는데 나 주 위해서 거지되는 그것이 손해갈 거 뭐 있소? 나 위해서 거지된 그 주님에게 나도 주를 위해서 거지됨으로서 주를 상대하는 것이 안면있는 일이지.
떳떳한 일이지.
일생동안 자기 것은 하나도 없이 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많은 데, 자기를 위해서는, 자기 것이라고는 하나도 가지지 않고 살아.
"여우 새끼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다" 기회주의자로 아주 인간이 아주 믿을 수 없고 휘득휘득 휘득하다가 7, 8월 수수잎 모양으로 이렇게 날뛰는 그 인간도 제 살 구멍 뚫고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다.' 썩은 것만, 만날 죄만 사모하고 망할 일만 하는 그자도 자기 위해서 굴 파놓은 것 있다. 그러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추호도 나 위해서 준비해 가지고 이것만큼은 나 위해서 가져야 되겠다는 지극히 작은 정도도 가지지 않았다. 왜? 나는 아버지에게 맡겨 놨다. 이것이 예수님의 신앙이오. 오늘도 이렇게 삽니다.
오늘도 신앙가들은 이렇게 삽니다.
예수님이 그 형제들과 한집에 같이 있었지만 그 형제들은 모르니까 깔보고 멸시했소. '에, 형님은,' 그다음에 낳은 아이들은 요셉이 하고 동침해 가지고 낳았고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해서 요셉이와 상관없이 낳았소. 이랬는데 참 씨는 다르지마는 배는 같은 형제지. 한집에 살면서 말하기를 '형님은 드러나기를 원하면서 뭐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는 안 가고, 그저 똑 구들막장담 하는 사람 모양으로, 집안 똑똑이 모양으로 이런 데서만 이렇게 말하고, 드러나기를 원하면 예루살렘에 저런 데 가 가지고 척척 무슨 말하지 거기 가서 하면, 당장에 저런 말하면 잡혀 갈 터이니까 말하지 않고 한다고' 그렇게 조롱을 했어. 예수님을 말하기를 구들막장담 하는 자로 이렇게 말했어. 그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소? 예수님께서 '아직까지 내 때가 안 됐다. 아버지가 가라 해야 가고 나타나라 해야 나타나지 내 마음대로 하는 줄 아느냐?' 이래도 그 사람들은 '공연히 핑계를 저렇게 댄다.' 이랬어. 그러나 주님께서는 가 보니까 오히려 그 회의에 나가서 강단 위에서 지금 설교하고 계시오.
그 형제간들이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고 난 다음에는, 그때까지는 반대한 자들이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신 걸 보고 난 다음에 그때사 하나님인 줄 알고, 신인양성일위인 줄 몰랐어도 하나님이 이제 사람되어 오신 분인 것을 깨닫고 전부 다 헌신해서 사도도 되고, 있는 것 다 바쳐서 거의 순교 다 했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바로 믿어요. 이번에 말라기서에서 준 말씀이, 그 말씀을 내가 말하면, 내가 말하니까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는, 믿지 않는 자는 '아무나따나 이 성경 저 성경 으레 하나 선택했겠지!' 나는 분명히 하나님이 그 말씀 주신 것을 나는 체험했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생각도 안 했소. 내가 그때 하나님에게 기도할 때와 또 기도하는 자세와 내 정신이 있었는데, 내가 날 알아. 그랬는데 말라기서를 하나님께서 '이것 봐라' 이렇게 갖다 줘서 내가 봤다 이거요.
읽었지만 다시 그때 가 가지고 받아 가지고 말라기서를 보니 '아, 이 말씀이 대구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대구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분명하구나!' 깨달아서 그 말씀을 다 증거하지 못하고 시발만 하다가 말았지마는 그래도 읽으면 깨달을 수 있도록 다 열쇠되는 것은 다 꺼내 줬다 그말이오.
오늘 아침에는 제직회, 당회와 같은 그런 회의가 있을 터이니까 장로님들, 또 건축에 대해서 경험이 있는 분들 다 참석해서, 이것이 이번 주간 안으로 이것 다 철거해 버려야 됩니다.
또 여반 변소가 뜯기게 되니까 여반 변소를 어디다가 지을 것인가? 앞으로 한번 지어 놓으면 그것은 이제 장구히 있을 터인데 어디다가 지어야 될런지 그 위치도 정하고 할 터이니까 다 참석을 해서 좋은 의견을 모아 가지고 후회없는 모든 일들을 하도록 그렇게 합시다. 그러니까 권찰회 지금부터 한 5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이겠습니다.
권찰회 모이는데, 반사들도 다 참석해요. 이 말씀을 참석하여 회의에 들어야 등신이 등신이 안 되지.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지 않지. 이래야 제 인본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자가 인본을 버리지. 구역장들도 권찰회 여기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내막에 교인들을 다스리는 행정에 있어서는 제 생각대로 하기 때문에 나중에 보면 딴것 된다 그거요.
영도에 있는 ○○○씨입니까? ○○○씨, 대단히 지혜있는 사람이 요 세상에서 많은 수양을 받은 사람이지만 이 권찰회 참석 안 하면 그 구역 식구는 딴것 된다 말이오. 딴 종자 돼. 다른 당파가 되고 말아요. 다른 권찰들도 그래요.
이러니까, 지금 이것을 자꾸 잡아 줘서 그렇지, 내가 있는 동안에는 자꾸 잡아 주니까, '얘, 너 딴것 된다. 너거 구역은 딴것 된다. 너거 구역은 딴 당파 된다.' 왜? 그 구역 식구 그것이 서부교회도 중심에서, 서부교회 와도 단합이 되지 아니하고 저거 구역은 저거 구역대로 또록또록 개밥에 꿀밤 돌리듯이 돌려져서 따로 돌아다니는 그것이 하나님의 단일교회 가면 그것이 어떻게 맞겠습니까? 나중에 보면 가슴칠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참석을 해서 어떻게 움직여 나가는가 봐야 합니다. 이제 목사들도 움직여 나가는 견해를 보면 열의 열이 다 틀려도 목사노릇 합니다. 그러나 그러니까 그 교인들이 다 결국은 인본주의 됩니다. 그 교회서는 평가가 세상과 같아. 세상에서 높이 여기는 사람은 교회서 높여 주고 세상에서 업신여기는 사람은 암만 믿음 가져 봤자 교회서도 업신여겨. 이러니까 '교회 평가나 세상 평가나 같은 평가를 가지는구나' 하는 것이 일반 교회들이라 말이오.
교회 평가는 성경대로의 평가요, 세상 평가는 세상 지식대로의 평가가 세상 평가 아닙니까? 이러니까 교회에서 세상 평가대로 해줄 줄 알고 제가 저뻥해 가지고 왔는데 교회에서 교회 평가로 오니까, 그 사람 믿음 하나도 없으니 어린애로 알고, 박사이지만 무식한 사람으로 이렇게 대우해 주니까, 그 사람은 자기를 올려 주지 않는 것이, 죽여야 될 놈을 올려 달라고 왔는데 죽여야 될 놈을 당장 죽이지는 못하지만 대우해 주지 않는 그것이 자기를 살리는 것인데, 그게 사랑인데, 자기 부인하라는 것이 사랑인데 제 비위에 맞지 않다고 갑니다.
그래 가지고 어떤 교회 어떤 이가 가 있은데 어떤 박사가 그렇게 말해. 제직회 모였는데 '아, 서부교회는 무식한 사람들만 모였기 때문에 목사님이 말하는 대로 맹종해서 쭐쭐 따라가지만 어떤 교회는 유식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거기서는 목사 혼자 주장대로 그렇게 쭐쭐 맹종해 나가지 않습니다.' 거기는 유식하고 서부교회는 무식하다고.
지금은 그분이 깨닫고 그 말을 하면 쥐구멍을 찾을 것입니다. 그래도 판단이 거꾸로 됐기 때문에 자기에게 닥친 일은 지금 인본으로 해 나갔다 그말이오.
그래도 부산에 오면 언제든지 여기 와서, 여기 와 가지고 참석합니다. 이번에 장로 안수받았는데 장로 안수 받는데 여기 있다 갔기 때문에 축전을 해 줬는데 받지는 못한 모양인데 '아, 축전을 했는데 갔습디까?' 이러니까, 이렇게 높여 주는 것 같으니까 당장에 과일인가 뭐 선물이 한 상자 왔지? 한 상자 왔지? 예? 현찬씨한테 한무더기 오고 나한테 한무더기 왔는가 보던 데, 그때 무슨 상자? 그래 하면 잘 지내 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앞에, 심판 앞에 가면 안돼.
여러분들 어리석지 마십시오. 서부교회가 그분이 말한 그 교회보다는 하나님의 지식 지혜는 훨끈 위에 있습니다!
'어떻게 내 사자를 통해서 너에게 들려 주니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라' 언제 생각해? 현실을 들은 이대로 생각해. 이것 지켜야 삽니다. '어떻게 받았는지' 누가 줬는데? 인간이 준 것 아니라. 성령님이 네게 준 것 있어. 성령님이 내게 뭐 줍니까? 들을 때에 바른 깨달음 가진 그것은 성령이 준 것이라,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아, 나도 이래 살아 봐야 되겠다.' 하는 결심하고 작정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