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2 21:51
사데교회
1982. 5. 12. 수밤
본문: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사데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예배가 끝난 뒤 30분 기도 후에 남반은 1층 신관, 여반은 1층 구관에서 철야기도회가 있습니다. 많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집회 설교 말씀을 월 화 목 토요일에 남반은 1층 신관, 여반은 1층 구관에서 저녁 8시부터 재독을 합니다. 집회에 참석 못 하신 분이나 다시 새김질하실 분은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배 마치고 30분 기도 후에 이번 증축에 대한 설계 의논이 있사오니 건축에 대한 경험이 계시는 분과 특별히 증축에 대해서 좋은 안을 가지신 분들은 다 참석하셔서, 고견을 취택코저 하오니 4층 회의에 다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네. 이상입니다.
오늘 밤에는 지난 주일 설교, 다음 주일날 유치반 중간반 공과 공부를 하는 밤입니다. 공과를 읽겠습니다.
제목은 사데교회.
요절은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요절입니다.
1. 우리의 구원은 기본구원과 행위구원으로 되어 있다. 기본구원은 택한 자들은 꼭 같은 구원이다. 그러나 행위구원 곧 건설구원은 그 차이가 심히 많다. 거의 무한이라고 할 만하다. 하늘나라의 영광과 실력과 권세와 환영과 필요의 가치성은 세상에서 결정되는 것이니 이것을 가리켜 행위구원이라, 건설구원이라, 영광구원이라고 말들 한다.
2. 이 사데교회는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이니 남은 바 아직 죽지 아니한 부분을 죽기 전에 살리도록 하라고 경고하셨다. 어느 정도 참으시다가 하나님의 노가 관영할 때에는 여생의 세상살이를 다 도적맞고 하나의 건설구원도 이루지 못하도록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아직 죽지 아니하고 앞으로 죽을 수도 있고 영원히 살 수도 있는 좌우의 기로를 가지고 있는 심신의 남은 기능을 살리라고 권고하셨다.
3. 살리는 유일한 방법은 들은 것을 자기 지식으로 삼아 내 현실을 판단 계획하고 세상 지식으로 하지 말 것이며, 또 하나는 받은 것을 지켜 행하라고 하셨다. 이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깨닫게 해 주시는 것과 하나는 결심하게 하여 주시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현실에서 지켜 행할 때에 여러가지 애로와 박해가 생긴다. 그러나 마음, 목숨, 힘, 뜻, 성품을 다해서 지킬려고 하면 하나님 은혜로 할 수 있다. 이는 해 본 자만 안다.
영생을 이루는 일이니 인간 단독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어려움을 무릎쓰고 기어코 들은 대로, 받은 대로 행동할 때에 지극히 큰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역사해서 자신은 물론 영광스러운 건설구원이 이루어지고 접촉했던 원수까지도 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는 데에서만 이 건설구원은 이루어진다. 현실을 도적맞지 말아야 한다. 모든 육체는 화초와 같고 이 복음 약속은 모두 영원하다.
본문을 간단하게 해석합니다. 이 사데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로 나타났습니다. 일곱 영은 성령님을 가리키고, 일곱 별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가리켜서 말씀하십니다. 성경 기자들과 성경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을 다 합해서 일곱 별, 하나님의 사자들이라고 그렇게 합니다.
그다음에 3절에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어떻게 받았으며’ 받은 것은 위에 말한 주님이 가지신 일곱 영이 주셔서 일곱 영에게 받은 것입니다.
받은 것은 일곱 영에게 받았고, 들은 것은 일곱 사자에게,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들었습니다. 받은 것은 일곱 영에게 받았고, 들은 것은 일곱 별에게서 들은 것이기 때문에 받은 것도 들은 것도 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에게서 직접 받고 들은 것이라 하는 것을 여기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명심해야 됩니다. 들은 것은 일곱 별에게 들었으니, ‘내가 이 일곱 별을 가지고 너희들에게 말했기 때문에’ 들은 것은 일곱 별에게 들은 것인데, 일곱 별에게 들은 것은 곧 내게 들은 것이다. 일곱 영에게 또 너희가 받은 것은 곧 일곱 영을 가지고 내가 너희들에게 줬기 때문에 내게 받은 것이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그러면 들은 것은 일곱 별에게서 들었다. 주님이 장중에 잡으시고 말하게 한 주님의 사자들에게서 들었다. 받은 것은 주님이 일곱 영을 가지시고 성령을 가지시고 말씀했기 때문에 성령에게 받았다 그것을 또 명심하십시오.
그런데 이 사데교회는 “살았다는 이름만 있고 실상은 죽었다” 이 말씀은 이제까지 신앙생활한 것은 살았다는 이름만 가졌지 실상은 죽었다. 이름을 가진 것은 예수님이 대속하셔서 살았다는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산 명칭을 가졌고 또 법적으로는 다 구속해서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살아나왔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죽었다 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영은 이미 구원얻었고 우리의 마음과 몸의 기능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고 또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산 자로 벌써 심판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법적으로 산 자로 인정을 받았고, 또 살았다는 그런 명칭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구원입니다. 대속의 구원을 받아 가졌지마는 자기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 현실에 이 대속의 구원을 받은 자로, 이 대속의 구원을 입고 그 현실에 대속의 구원을 입은 자로 살면 그만 영생이 되는데 현실에서 대속의 구원을 망령되게 우리가 벗어버려 버립니다.
사죄를 받아 놓고 현실을 닥치면 죄 짓지, 칭의를 받아 놓고 현실을 닥치면 제 생각, 제 주장대로, 자율대로 살지, 하나님과 화친의 대속을 받아 놓고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살 때에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악령으로 더불어 합작해 살기 때문에, 너는 법적으로 명칭적으로 살아난 이 구원을 현실에서 네가 다 벗어 버리고 배척해 버리기 때문에, 법적인 구원 명칭적인 구원이 현실의 그 실상에서 네가 벗어버리기 때문에 그 구원은 다 헛일이 되고 말았다. 이제까지 살아온 그 현실 현실에서 이룰 구원은 다 헛구원이 되고 말았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까지 네가 산 것은 살았다는 이름만 가졌지 실상은 죽었다.
그러므로 남은 바 죽게 된 것, 남은 바 지금, 과거와 같으면 남은 때에 남아 있는 그것도 전부 네가 다 죽일 것이다. 남은 바 아직 죽지는 않았지마는 이제까지의 생활대로 그대로 살면, 아직까지 현실을 통과하지 못한 네 여생이 있는데 여생 그것도 네가 다 죽일 것이다. 남은 바 죽게 된, 이제 죽도록 되어 있는 그것을 일깨워 굳게 하라. 남은 바 죽게 된 그것을 죽지 않도록 네가 노력을 해서 이제는 그것은 죽이지 말고 영생하도록 살리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죽을 것을 과거에는 다 죽였는데, 어떻게 해서 과거에 다 죽였느냐? 죽인 것은 네가 하나님 앞에 들은 것을 그 지식 가지고 네 현실을 닥쳤을 때에 그 지식으로 비판하고 평가해서 그 지식대로 네 현실을 살지 아니하고 네 현실을 닥치면 하나님 앞에 들은 바의 하나님의 지식은 버리고 인간들에게 들은 지식과 네 속에 인간들에게 들어 있는 지식 그 지식 가지고 네 현실을 판단해서 네가 행동했기 때문에 다 죽었다. 네 현실을 하나님에게 들은 말씀대로 현실을 판단해서 살지 아니하고 인간들에게 들은 그 지식대로 판단해서 행동했기 때문에 죽었다.
이러니까 네가 죽게 된 것을 살려라. 어떻게 살릴 수 있는가? 이제는 네가 현실을 만났을 때에 세상 인간들에게 들은 인간 지식대로, 인간 생각대로, 인간 이치대로 네가 현실을 판단해서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목사가 말씀했고, 전도사가 말씀했고, 권찰이 말씀했고, 집사, 장로가 말씀했고, 또 성경 기자들이 우리에게 기록해 주셨고, 이렇게 들은 것은 사람에게 네가 들은 것이지만 실상은 그 사람을 내가 붙들고 너한테 말했기 때문에 네 구주이신 하나님 내가 말한 것이니 나한테 들은 것이라. 나한테 들은 내 말대로 네 현실을 네가 생각해서 판단해서 살아라. 이거 한 가지 하고, 또 한 가지만 하면 된다.
받은 것, 받은 것은 네가 네 생각으로 네가 일어난 것같이 생각하지마는 그게 아니고 일곱 영 성령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 성령님이 너희에게 주셔서 네가 받은 것이다. 이 받은 것을 성령님이 너희에게 주실 때에 형체를 가지고 ‘아나, 받아라.’ 이랬으면 성령님에게 받은 것인 줄 알지마는 성령님이 형체가 없이 네 속에 와 가지고 감동시켜서 받도록 하니까 네가 꼭 네 생각으로만 네가 안다. 네 생각같이 네가 생각해 가지고 네가 죽었다.
이러니까 네가 받은 것 두 가지 있으니 받은 것 하나는 뭐이냐? 받은 것 하나는 네가 내 말을 들을 때에 그때에 깨달음이 너희에게 있었다. ‘아, 과연 이렇구나!’ 하는 깨달음이 너희에게 있었다. 깨달은 그거는 네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하나님이신 성령님께서 너에게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니 이는 성령님에게 네가 받은 것이다.
또 하나 받은 것은 그렇게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 말을 네가 들을 때에 그때에 ‘아, 나는 이제는 남은 때는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 이런 것은 버리겠다. 이렇게 살겠다. 이런 것은 끊겠다. 이것은 지키겠다.’ 해서 “받은 것을 지켜 행하라.” 네가 깨달은 것은 지키고, 깨달은 것은 지키고 결심한 것은 행해라. 이 두 가지를 하면 남아 있는 여생의 것은 네가 죽지 아니하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행위구원인데, 행위가 어느 정도 행위가 되면 구원이 되느냐? 내가 내 하나님 앞에서 네게 온전한 행위를 하나도 찾지 못하겠다. 네 과거에는 네 행위중에 온전한 행위가 하나도 없다. 온전한 행위가 하나도 없다. 행위구원은 온전한 행위가 된 그것만 구원이 되지 온전한 행위가 안된 것은 구원이 안 된다. 그러면 일생의 전체 온전을 말하는 게 아니고 그때 그때의 온전을 말한다. 네가 지나간 때에는 다 온전히 했다 할지라도 이 시간에는 네 행위가 온전치 못할 수 있다. 지나간 때에는 다 죽은 잘못된 행위를 했어도 이 시간만은 네가 온전한 행위를 할려면 할 수가 있다.
건설구원은 인간들이 생각하기에는 아주 그 행위가 한 10점만 되어도 건설구원이 안 이루어지겠느냐? 90점만 되면 으레 건설구원이 행위구원이 이루어지지 않겠느냐? 안 된다. 백점이 되어야 행위구원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네가 이 시간 이 현실에 여기 대한 하나님이 너희에게 구원으로 주신 하나님의 뜻은 그것을 온전히 이루어야 네 행위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 하나님의 뜻을 백분의 99만 행해도 그것은 안된다. 온전이 돼야 된다. 이것이 또 놀랠 말입니다.
요새 우리 믿는 사람들이 에누리하기를 제 마음에 10분지 9가 나빠도 10분지 1만 하나님 말씀대로 해도 ‘내가 이만했으면 구원이 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안됩니다. 온전한 행위만이 구원이 됩니다. 온전한 행위만이 행위구원이 됩니다.
그러기에 지나간 때에 아무리 더러워도 이 시간 행위가 온전하면 그 시간 행위는 그 토막은 구원이 됐습니다. 이 토막에는 온전했지만 그 뒤에 또 온전치 못하면 구원된 거는 됐지마는 그 다음 토막은 또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 현실에서 개별 행위구원이 이루어지는데 개별 행위구원이 이루어지는 행위는 온전한 행위가 되어져야 된다.
그러기에 이 온전한 행위는 인간이 결심이나 작정이나 가지고 안된다. 그러나 네가 내가 너한테 말씀해 주시는 이 말씀을 네가 들은 그대로 ‘아! 주님이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나에게 이렇게 가르쳐 주시더라. 설교를 통해서 이렇게 가르쳐 주시더라. 하나님이 나에게 이 말씀을 가르쳐 주셨다.’ 하는 것을 네가 깨닫고 ‘하나님이 이렇게 나에게 가르쳐 주셨으니 이 현실에 나는 하나님이 가르쳐 준 이 말씀대로 해야 되겠으니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기를 어떻게 가르치셨느냐? 여기 대해서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셨느냐?’ 그렇게 생각을 가지고 나한테 들은 것을 네가 생각하고, 나한테 들은 대로 하겠다 하고 그렇게 할려고 하면 마귀가 침노를 못한다 그말이오. 마귀가 침노를 못한다.
이걸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떠냐?’ 하는 것만 가지고 하면 안된다.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 사자를 통해서 말씀해 주신 말씀이시니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는 이 말씀대로 내가 현실에 할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하면 어떻게 되느냐? ‘아,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자기가 깨닫고 할려고 할 때에는 마귀가 침노하지 못하니까 온전한 행위가 이루어질 수가 있다.
또 네가 다른 일은 아무리 결심해도 안되는데,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깨달아진 것과 들을 때에 작정한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깨닫게 해 준 것은 이것은 성령이니 하나님이 나에게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들을 때에 내가 이 결심이 됐고 이렇게 할려고 작정을 했으니 이것은 전능하신 성령님이 나에게 작정해 주신 것이다. 성령님이 나에게 작정해 주신 것이며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니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깨닫게 해 주시고 작정하게 해 주셨으니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고 적정해 주신 이분이 이 일을 해 주실 것이다.’ 하는 이것을 믿고 네가 행하면 온전한 행위가 된다. 온전의, 모든 죄악과 세상과 마귀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는 온전한 행위가 되어진다. 이것을 가리켜서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깨달아진 것이라도 ‘아! 말씀을 들을 내가 그렇게 깨달아지더라.’ 하는 데에 능력이 없고 ‘성령님이 나에게 이렇게 깨닫게 해 주셨다.’ 하는 데에는 능력이 같이 있고, ‘성령님이 이렇게 깨닫게 해 주셨으니 깨닫게 해 주신 이 전능하신 주님이 나에게 깨닫게 해 주신 이대로 하라고 깨닫게 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이와같이 할려고 하면 전능자가 도우셔서 이대로 된다.’ 하는 것을 믿을 때에 된다 그말이오.
이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다 같은 병이 들어있는데 하나는 거기서 ‘아, 주님이 나에게 낫아 주실 것이다.’ 믿는 자 있고, ‘그렇지마는 주님이 나에게, 주님이 낫울 능력이야 있지마는 주님이 나에게 낫아 주시겠느냐?’ 그자, 어떤 자는 주님의 능력도 주님의 사랑도 믿지 아니하고, 어떤 자는 ‘주님이야 낫아 주실려면 낫아 주실 수가 있지마는 나에게 대해서 낫아 주시겠느냐?’ 능력은 믿지마는 사랑을 믿지 않는 것, 어떤 자는 ‘능력 있으신 주님이 나에게 틀림없이 낫아 주신다.’ 할 때에 낫았다 그말이오. 이걸 알아야 됩니다. “네가 믿는 대로 되리라” 믿을 때에 됐습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들은 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들려서 나는 하나님에게 들었다’ 하는 것과 네가 이렇게 ‘사람에게 목사님에게 들었다’ 하는 거와 다르다 그말이오. 이걸 여러분들이 알아야 돼요. 이것을 도무지 말하지 않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말이오. 지금 이제 현재 교회에서 믿음은 거의 떠났습니다.
이러니까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가지고 정통이니 뭐 법통이니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디 가서 역사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역사는 오히려 신유의 은혜를 주장하면서 병 낫기를 주장하는 그런데 가 가지고 하나님이 역사합니다. 불파에 가서 역사해요. 그거 불파가 경건파는 아닙니다. 그러나 불파에 역사하지 오히려 신조와 교리를 가지고 따지는 칼빈주의 교리에 성령의 역사가 지금 심히 메말라 가지고 있다 그말이오. 왜? 믿지 않기 때문에 그래. 교리와 신조가 좋지마는 믿어야 된다는 이것을 말하지 않아요.
이러니까 어떤 정통에 있는 학자가 신문을 냈는데, ‘오늘도 뭐 병낫는 이적을 말한다고, 오늘도 진리면 진리이지 영감, 영감 한다고.’ 영감없는 진리가 어디 있는데? 이 악한 자야! 이 악한 신학자야! 이것 때문에 전체를 망치고 있습니다. 믿는 대로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지 않았소? ‘할 수 있으면 해 주십시오.’ ‘할 수 있으면이 말이 무슨 말이냐? 네가 믿는 대로 되리라.’ ‘주여 믿사옵나이다.’ 당장 나았소.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들을 때 다 능력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에 읽으면서 주님이 이 시간 직접 이 말씀을 나에게 해 주는 것으로 듣지 문서에 기록한 것을 읽는다고 이렇게 읽지 않습니다.
여기 남반들 좀 깨달아요. 성경을 읽을 때에 ‘아, 문서에 기록해 논’ 이러지 않고 ‘야’ 무릎 꿇고 ‘주님이여 나에게 지금 무슨 말씀을 말씀해 주시렵니까?’ 하면서 성경 말씀 읽으면서 ‘주님이 직접 이 시간 나에게 이 말씀을 내가 읽음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해 주시는 이 말씀인 것을 믿습니다. 이 말씀으로 믿습니다.’ 또 설교를 들을 때에 ‘아, 주님이 지금 오늘 밤에는 무슨 말씀을 나에게 해 주실런고?’ 주님이 직접 말씀해 주시는 말씀으로 믿습니다. 또 설교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주여 내 말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오늘 밤에 무슨 말씀을 하실렵니까? 무슨 말씀을 해 주시렵니까?’ 이러니까, 오늘 밤에는 주님이 사데교회에 대한 말씀을 가지고 찾아오셔서 말씀해 주신다.
(모두 눈이 꼬물 꼬물하게 모두 잠이 들었어, 모두. 귀신이 속에 들어서 모두 잠이 눈에, 모두 살을 찝어. 잠이 꽉 들었어. 잠이 속에 있는 것 알아.)이러니까 설교하러 나서면서 이것을 연습하라. 주님이 친히 오셔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연습하기 위해서 ‘오늘 밤에는 주님이 무슨 말씀을 가지고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제가 그 일을 한 15년동안 계속해서 강단에 설 때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지금은 그말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으레 말씀하시면 당신이 말씀하실 줄 알고 당신이 말씀하신 것이라야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러기 때문에 ‘내가 오늘 설교 무슨 설교할까?’ 이런 생각으로서 설교를 준비해 본 적은 없습니다. ‘주님이 오늘 밤에 무슨 말씀을 지금 말씀해 주실 것인가? 이러기 때문에 무슨 말씀을 말씀해 주실까?’ 그것 받는 것이 힘들지 성경을 보고 ‘무슨 설교를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성경 해석을 할려고 노력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왜? 그것은 평소에 성경을 연구할 때에 공부할 때에 하고 있는 것이고 설교할 때에 하는 일은 아니라 말이오.
이러니까, 성경을 읽을 때에도 주님에게 직접 이 말씀을 듣는 것인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하고, 설교를 들을 때에도 주님에게 직접 지금 말씀을 듣고 있는 이 주님에게 들은 말씀인 것을 자기가 믿어야 하고, 이래서 현실을 닥쳤을 때에 ‘아 주님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지?’ 이걸 생각하면서 ‘주님이여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총명이 없사오니 이 시간 다시 말씀해 주십시오.’ 하면서 이 시간 자기가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생각할 때에는 주님이 자기에게 ‘네가 이렇게 해라.’ 직접 찾아오셔 가지고 자기에게 말씀하신 것인 것을 믿습니다. 이래야, 나에게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피조물 그까짓 거야 뭐라 하든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것이 안전에 놓입니까?또 받은 것도, 자기 깨닫는 것도 주님이 직접 나에게 ‘네가 이렇게 해라. 이걸 깨달아라. 이렇다. 이렇다.’ 가르쳐 주신 걸 내가 주님에게 직접 배워 깨달은 것인 것을 믿고 또 결심한 것은 주님이 내게 와 가지고 결심을 시켜 주신 것인 것을 믿고, 주님이, 결심시키신 분이 주님이시요 나에게 깨닫게 하신 분이 주님이니까 나만 할려고 하면 그분이 나에게 찾아 가지고 그분이 시작을 했기 때문에 그분이 끝을 마칠 것이라 그말이오.
이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요, 믿을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오셔서 온전한 행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온전한 행위가 됩니까? 온전한 행위, 하나님의 율법이, 지공 지성의 율법이 심판해도 정죄받을 수 없는 온전한 그 율법이라야 그것이 영생이 되지 하나님의 율법이 정죄할 수 있는 그 행위가 어떻게 영생이 되겠습니까? 우리는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 전부 에누리해서 다 못 쓰게 만든다 그말이오. 이 말씀을 똑똑히 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힘드는 행위구원을 이룰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행위구원을 이룰 필요가 있는 것은 이 행위구원을 이룬 사람들은 흰옷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닌다고 했습니다. ‘흰옷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닌다’ 흰옷은 뭐이냐? 죄에 대해서 완전히 해결됐다는 것입니다. 흰옷은 사죄를 완전히 실상으로 입었다는 말이오. 칭의를 입었다는 말이오. 화친을 입었다는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한 사람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한 사람이요, 또 하나님의 독생자와 같이 깨끗한 사람이라. 이것이 인간 성공입니다. 이것이 인간 성공이요 행위 성공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과 동행해. 전능과 동행하고 전지와 동행하고 완전과 동행하니까 그 사람의 행위가 완전이지 뭐.
이러니까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다 자기 것이 되지. 이 세상에서는 판자집 하나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 이다음에 영계와 물질계가 전부 제것이 되어 가지고 사는 그런 참 만왕의 왕으로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사람을 볼 때에 그때 놀랄 것입니다.
어떤 입신한 성자의 전기를 보니까, 그분이 입신했는데, 영계에, 바울에 삼층천에 간 거와 같이 영계 가서 보니까 참 놀랄 일이, 놀랄 일이 있었다고. 놀랄 꼴을 봤다고. 왜? 자기가 아는 사람들인데, 아는 사람들인데 아주 사람들에게 멸시 천대받아 흉한 사람들인데 그 하늘나라에 어떻게 지극히 영광스러운 자인지? 세상에서 그 사람들은 모두 다 성자라 성녀라 하는 사람들인데 가 보니까 아주 허무한 자리에 떨어져 있더라고. 세상 사람이 보는 데에 믿음과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의 믿음이 이렇게 차이있는 데 대해서 크게 놀랬다고. 그 사람이 놀란 것 둘을 말했는데 ‘세상과 하늘나라가 이렇게 놀라게 다르더라.’ 또 하나 놀란 것은 ‘이 세상에 불원간에 땅 위에 참 인간이 피조물이 크게 놀랄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시키다가 시키다가 안 들으면 ‘내가 도적같이 오겠다’ 그 말은 네 여생을 완전히 도적맞도록 집어던져 버린다 그말이오. 하다 하다 안 들으면 던져 버려요. 사람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도 그렇습니다. 말을 하다 하다가 안 들으면 난중에는 던져 버립니다. 왜? 할수록 더 악하게 되니까. 예를 들면, 옳게 하라 하니까 삐뚤어지게 하지, 옳게 하라 하라 하니까 그 사람하고 원수가 된다 말이오. 부모와 자식끼리 원수가 되지, 부부끼리 원수가 되지, 친구끼리 원수가 되지, 또 선생과 제자끼리 원수가 되지.
이러니까 말해 봤자 정반대로, 말을 하면 정반대로 십리나 더 달아나니까 말 안 하는 게 차라리 낫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복수성으로 버려두는 게 아니라 차라리 버려두는 것이 덜 나빠지기 때문에 버려 둘 수밖에 없다 그거요.
이러니까 ‘도적같이 온다’ 그말은 버려둬서 네 여생은 완전히 도적맞고 하나도 네게 실속이 없도록 하겠다 그말입니다. 죽음이 갑자기 온다 그말 아니오. ‘네가 이렇게 살면 이렇게 살다가 갑자기 죽음을 닥칠 것이다’ 하는 말도 그 된 말이지마는 그것이 아니고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어느 때에 도적같이 임할런지 모른다’ 이 말한 것은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고 주님이 노여워해 가지고 말하기 때문에 복수성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밤에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요. 주일 학생들과 중간반 학생들에게 이 두 가지를 넣어 줘서, 이 두 가지.
뭐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읽어 듣든지 설교를 듣든지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말씀이면 그 말씀은 인간이 나에게 말하지마는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하나님에게 직접 들은 것인 것을 네가 기억하고, 현실을 만날 때도 하나님이 직접 자기에게 너에게 말해준 말씀인 것을 인정하고, 그 시간에 하나님에게 직접 말해 주기를 바라고, 직접 하나님이, 전능자가 나와 말했으니 그 말씀대로 하는데 누가 방해할 것입니까? 직접 했다 그말이오. 받은 것은 성령님에게 직접 받았다는 것, 들은 것은 하나님의 일곱 별 하나님의 사자에게 들었으니까 하나님에게 직접 들었다는 것 이것을 기억하고, 온전한 행위라야 행위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인간이 온전한 행위를 어떻게 할 수 있느냐? 온전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들은 것을 현실에서 생각하고 받은 것을 현실에서 지켜 행하는 이 두 가지만 하면 온전한 행위가 이루어진다. 들은 것을 현실에서 생각할 때에 주님에게 직접 들은 걸, 주님이 직접 너에게 직접 말씀하고 있는 것 이걸 믿어야 돼요.
들은 그 말씀대로 현실에서 생각할 때에 주님이 자기와 함께 있는 것을 믿어야 되고, 깨닫고 결심한 것을 자기가 지켜 행할려고 할 때에 이 깨닫게 하신 것이 주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요 이렇게 행할려고 할 때에는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에 능력이 와요, 믿을 때. 안 믿으면 능력이 안 옵니다. 성경에 그것이 이런 도리를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 앞에 온갖 병신들이 와서 있는데, 병신들이 많이 와 있는데, 주님이 낫아 주실 것을, 낫아 주실 것을 믿는 자는 낫고 안 믿는 자는 낫지를 않아. 믿는 자는 낫고 안 믿는 자는 낫지 않아.
이스라엘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지마는 하나님께서 그 문둥이를 낫아 주시지 아니하시고 이방에 있는 나아만 문둥이만 낫아 주셨다 말이오. 그걸 성경에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나아만 문둥이는 잠깐 시험에 들었지마는 그 먼 나라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 하나님의 선지를 통해서 하나님이 낫아 주실 것을 믿고 모두 다 보물을 싣고 왔더라 그거요. 잠깐 의심했지마는 ‘아, 씻어 봐야 될 것 아닙니까?’ ‘그래 씻어 보자.’ 하니까 나았지. 그 믿음으로 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병 낫아 주실 것을 몰랐습니까? 알지마는 안 믿기 때문에 능력이 가지를 못해.
들은 것 받은 것 이것을 현실에서 실행할 때에 믿으면 능력이 가 가지고 온전한 행위를 이루고 믿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을 주일학생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중간반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셔서, -이 장년반들은 다 썩어서 신앙이 없어. 그렇게 배우지도 못했지마는 길바닥이 돼 가지고, 하도 세상에게 속고 하는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이 말을 들어도 예사로 듣지 믿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주일학생은 이 말 하면 믿을 거라. 믿으면 능력이 와. 이러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능력이 오고 어른들에게는 능력이 역사하지 않지 않아요? 이것을 넣어 주십시오. ‘믿으면 된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것을 작정해요. 여기서, 이 자리에서 작정해야 됩니다.
이 자리에서 작정 뭐? 행위구원 이루어지는 것이 얼마나 존영한데? 얼마나 영광스러운데? 하나님과 동행해.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이 자기 옆에 팔에 끼입니까 자기 옆에 붙었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하나님은 무형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자기 속에 계시니까 서숙 알만한 그런 덩어리도 없이 계십니다. 계시면서 전지 전능이 자기를 통해서 역사하니까 자기가 전지 전능자가 돼. 이렇게 동행하십니다.
동행하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완전히 승리할 수 있는 흰옷입은 완전 성화 이렇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행위구원인데, 이 행위구원을 이루는 데에 그저 80점되는 행위 가지고 될 줄 압니까? 온전한 행위라야 됩니다. 온전한 행위는 인간으로서는 절대 불가능입니다. 절대 불가능인데 들은 것 받은 것을 생각하고 지켜 행할려고 하면 됩니다. 알고만 해 가지고는 안 되고 친히 하나님께서 같이 오셔 가지고 나와 함께 이분이 같이 해서 해 주신다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한 행위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게 있어야 됩니다.
네. 불 꺼 주십시오.
철야기도 할 때에 가서 재독하는 것을 듣고, 대구에서 이번에 주신 말씀도 들어요. 하나님이 마지막 예언입니다. 안 들으면, 순종 안 하면 멸망입니다. 마지막 예언으로 아마 주신 것 같습니다.
작정해요. 더러운 죄를 생각지 말고 이 말씀을 작정해서 여기서 결심해요. 다른 생각하는 것은 다 자기 죽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