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2 21:47
삐뚤어진 우리의 처소
1989. 2. 26. 주일오후
본문: 누가복음 9장 57절∼62절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여기에 예수님을 좇겠다고 하는 세 사람에게 예수님이 각각 대답하신 일이 있습니다. 주를 좇겠다 말은 주님을 딿겠다 말이요 주님의 가시는 그 뒤를 이어 가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말이요 예수님이 믿는 그 도를 믿어서 예수님이 바라시는 그 구원을 자기도 소망하고 가겠다, 예수님 믿는 대로 자기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딿겠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주를 쫓겠나이다 거게 대해서 예수님이 세 가지로 대답하신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다 예수님을 좇겠다고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다 예수님 딿겠다는 사람이요 예수님을 믿겠다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 예수님을 따라가겠다는 사람, 예수님의 그 도를 자기가 자기 도로 받아서 소망하고 예수님을 믿겠다는 그런 말과 같은 말입니다.
여게 대해서 주님이 세 가지로 말씀하신 그것은 오늘 곧 예수님을 믿겠다고 지금 예수님을 딿겠다고 예수님의 그 바라보는 그 모든 소망을 바라보겠다고 이렇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로 말씀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그 당시 예수님을 딿겠다는 사람들이 딴겠다고 할 때에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로 말씀하신 이 말씀을 그때에 사람들에게 말씀한 것으로 그래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곧 이 세 가지로 대답한 말씀이 오늘 우리들에게 주님이 직접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성경을 기록한 것은 성경을 읽는 자에게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이요 또 성경 말씀와 듣는 자에게는 듣는 자에게 주님이 대해서 말씀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이 세 가지로 주님이 말씀해 주셨다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그러면 세 가지로 말씀하셨으니 말씀의 뜻이 무엇이며 또 나는 여게 대해서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우리가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곧 나에체 참 구원이 되도록 이렇게 깨달아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게 '어디로 가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이라니까 주님이 첫째로 말씀하시기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여우도 자기 지능대로는, 자기 지능대로는 자기의 처소를, 자기가 평안하게 보금자리 하고 또 잘 살 수 있도록 자기의 처소들 마련하고 또 공중의 새도 자기 지능대로는 자기의 살 처소를 마련한다. 그러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인자는 이 세상에 살 그 처소를 마련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따라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딿겠다고 이렇게 하는데 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예수님이 아무 상관 없는 말씀을 하시지 아니하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적절하시기 때문에 말씀을 하신 것이지 공연히 상관 없는 그런 말씀을 한 것이 아닌 것을 우리가 또 믿어야 하겠습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이 말씀은 주님은 이 세상에 자기가 마련해 놓은 세상적 처소가 없다 하는 그것을 여게 밝혀서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안하고 인자라고 이렇게 말한 것은 근본 그는 부요하신 분이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려 아무것도 없는 인간 중에 가장 거지되고 무능한 자가 된 것을 가리켜서 말씀한 것입니다. 인자는 그러하다 그말은 사람 중에 권세가 제일 없는 사람이라, 또 사람 중에 모든 소유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 또 사람 중에 자유가 제일 없는 사람이라. 근본 하나님이시지마는 완전히 무지 무능의 가난한 자가 되신 것을 가리켜서 인자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네가 나를 딿겠다고 이렇게 말을 하는데 네가 뭘 보고 나를 따를라고 하는지 너 딿는 것이 나를 따라올 수 있는 그런 사상인지 아닌지, 내가 가는 길은 이 길이다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스스로 자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근본 부요하신 하나님으로서 당신이 있는 것을 다 내놓고 가난하게 되어 있는 것을 다 내어놓고 가난하게 되어 가지고 마련하는 것 있는 것을 다 내어놓아 가난하게 되는 이 가난을 마련하고 이 가난으로 말미암아 마련되는 그 처소를 내가 마련하는 것이요 나를 따라오는 자들은 마련하는 것인데 네가 이것을 아느냐? 나는 땅에 있는 모든 가진 것을 가진 것을 이것을 다 내어놓음으로 마련한 것이 내가 마련한 처소이다. 내가 가진 것을 다 내어놓음으로 마련한 처소가 내가 마련한 처소다.
왜 가지신 것을 다 내어놓았는가? 그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도를 무시하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사탄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자기 중심 자기 위주, 원죄와 본죄대로 모든 처소를 마련한 그것이 인생인데 인생이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 자기 처소를 잘 마련한다고 생각하고 마련했는데 그 마련한 그 전부가 다 영원한 멸망의 처소라.
그러나 멸망의 처소인 것을 모르고 그 기간이 지나가는 죽는 그 시간까지 스스로 멸망의 처소를 마련하면서 그것이 자기 위한 좋은 처소라고 생각하고 하는 이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걷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마련한 이 영원한 멸망을 자기 딴에는 좋은 처소인 줄 알고 마련했는데 이 마련한 것이 영원히 멸망할 처소인데 영원히 멸망할 처소를 마련한 이 처소를 없애서 이 처소에서 구출해 내기 위해서, 영원히 멸망할 처소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나는 온전한 것을 다 충만히 가져 있는 하나님의 부요인데 그것을 거게서 구출하기 위해서 잘못 마련한 그 잘못한 그 댓가를 다 내느라고 내가 거지됐다.
너희들이, 인생이 하나님의 법칙을 떠나 악령의 꾀우는 유혹의 법치을 따라 잘못 마련한 그 멸망을 자기가 가장 행복되다고 마련한 그것이 영원한 멸망인데 그걸.
모르고 영원한 멸망을 자기의 행복이라고 이렇게 마련해서 멸망 가운데 빠져 있는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댓가로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떠났으면 죄인데 죄로 마련한 이 영원한 멸망에서 구출하는 데에는 죄의 값을 다 내어놓아야 되지 안하면 안 되고 또 자유하는 그 자유를 잘못된 자유로 멸망한 거게서 구출하기 위해서 옳은 자유를 다 예수님께서 댓가로 내어놓아서 인자됐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 인자라 말을 여러분들이 그런 것은 여러 수십 번 말했기 때문에 알고 있으면 좀 설교하기가 수월한데 모르기 때문에 참 하기가, 항상 새로 시작하니까, 새로 시작하니 힘이 듭니다. 새로 시작하니까. 이런데 학자들은 안 오지, 학자들이나 좀 지성인들이나 양심가들이나 오면은 이거 뭐 간단하게 가르쳐도 알 수가 있는데 이거는 참 깜깜 무지의 그저 미련과 게을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말하기가 힘듭니다.
요 인자라 말은 여러분들이 그만 인자라 말을 해석을 안 해도 인자라는 것은 알아야 됩니다. 인자는 그분이 근본 부요하신 하나님이신데 우리 위해서 인간 중에 제일 못나고 가난한 자가 됐다 그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못해 가지고 취한 모든 보금자리 그 멸망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잘못함이 없는 당신이 잘못한 그 댓가를 다 형을 댓가로, 댓가로 형을 받느라고 그 완전 자유도 다 내놓아서 털끝만한 것도 자기 마음대로는 못 하게 됐습니다. 또 당신의 소유는 하나도 없게 됐습니다. 또 권세도 하나도 없게 됐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우리가 항상 새김질해서 새겨야만 하겠습니다.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말은 인자는 가장 천하고 가치가 적은 가장 작고 약한 그런 처소도 마련한 것이 없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부요한 자가 가난하게 된 그것도 오히려 부요한 자가 이 세상에서 더 부요해질라고 하는 것이 인생인데 그 부요를 내놓아서 가난하게 된 그것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 잘못 처소를 마련한, 잘못된 방법을 가지고 잘못 처소를 마련한 그 멸망을, 멸망에서 구출하기 위해서, 멸망을 없애기 위해서 잘못 마련한 그 마련의 모든, 마련의 그 방법 그 힘 그 댓가 마련한 그것도 없애고 마련한 힘도, 없애고 마련된 그것도 없애기 위해서 가난해졌다 하는 말입니다. 이거 좀 알 아 듣기가 좀 어렵겠는데 그래도 뭐 말만합니다. 그래서, 내게 있던 것도 다 없앤 것이 내가 가는 길이다. 너희들은 지금 이 세상 무슨 세상적 처소를 나를 따라오면은 잘 마찰이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너희들이 지금 나를 딿겠다고 말을 하는데 나는 읽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잘못 마련한 이 멸망을 구원하기 위해서, 잘못 마련한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잘못 마련한 것을 없애지 안하면 어찌 됩니까? 잘못 마련한 것을 없애지 안하면 어째 됩니까? 잘못 마련한 것을 없애지 안하면은 잘못 마련한 것은 멸망이기 때문에 그 멸망이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을 좀 꼭딱스러운 말 같지만 일이 그래 돼 놓으니까 그 말 그래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 수십 첩첩이 되는 것을 이렇게 간단하게 말해 놓았기 때문에 사람이 성경을 알려 해도 그 진리를 깨닫기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이 딿겠나이다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음이 있지 또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지 오만 환자도 낫게도 하지 이라니까 예수님 따라다니면 이 세상적 처소를 마련하는 데에 가장 유리한 방편이요 길이라 이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딿겠다고 하는 것이 이 세상적 처소를 세상적 처소를 마련하는 그 욕망을 가지고 그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딿겠다고 이렇게 말은 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주님이 나는 네가 지금 소원하고 소망하고 있는, 네가 소원하고 소망하고 있는 이 세상적 처소, 세상적 처소라면은 자기 위치라, 자기 지위도, 자기 지위도 자기 처소요, 자기 지위도 자기 처소요, 자기 주택도 자기 처소요, 또 자기 권세에도 자기의 처소요, 자기의 소유인 모든 것도 자기 처소입니다.
그것을 성경에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은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하늘에 있는 집이 우리에게 있다. 이러기 때문에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지금 자꾸 덧입을라고 준비하는 것은 그 나라에 가 가지고 거처할 처소가 없어서 벌거벗은 자들로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 지금 그 처소 마련하는 데에 내가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그렇게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뜻으로 말씀을 했습니다.
사람의 처소는 각각 달라서 어떤 사람은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처소에 살고 있고 어떤 사람은 가련한 처소에 살고 있습니다. 이래서 이 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영광스러운 좋은 처소를 예수님을 따르면 잘 마련되겠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주님을 딿겠다고 그렇게 이 사람들이 말을 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중심을 아시고 너는 땅위에 있는 이런 처소를 욕망하고 나를 좇겠다고 그렇게 말을 하지마는 나는 세상 처소로서는 인간 중에 제일 처소 없는 불쌍하고 가련한 자가 되어 있다. 머리 둘 곳도 없다. 세상적 처소는 아무것도 가지지를 못했다 그런 말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가졌던 처소도, 그 처소라면은 여러분들이 처소라는 그 말도 알아야 되겠는데. 처소라 말은 자기 위치, 자기 위치, 또 자기 지위, 자기 거처 그런 것이 다 자기 처소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들이 지위적 처소도 있고 또 명예적 처소도 있고 이 사람 명예는 이 사람 명예 처소보다 저 사람 명예 처소가 높으다. 이 사람은 인간의 명예 중에는 제일 천한 처소에 있다. 이런 것도 없는 말인데. 없으나 성경에는 있기 때문에 이걸 가르칠 수밖에 없는데.
명예, 자기 이름 말이오. 명예 처소라, 명예의 지위라, 명예의 권세라, 명예 권세가 있습니까? 명예 권세라는 말 하면은 그 말이 어떻게 된 말입니까? 어째요? O장로 생각해 봐, 명예 권세? 명예도 권세가 있고 없고 권세가 크고 작고 그거 차이가 있습니까? 있어요? 명예 권세도? 세, 명예의 처소도 각각 다릅니다. 또 권세의 처소도 각각 다릅니다. 이 세상도 내나 있지 않소? 이 사람은 동회 직원이면 그만한 처소, 요 사람은 또 반장이면 그만한 처소, 사무장이면 그만한 권세, 처소. 구청장이면 그만한 권세, 처소, 이 세상도 전부 각각 자기의 권세의 처소 명예의 처소 또 영광의 처소, 영광도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가 영광의 처소 또 그 사람의 물질의 처소, 그 사람은 물질은 어떤 물질에,물질에, 그 사람이 있는 물질 위치라고 해도 되고 물질의 처소라 해도 되고 또 그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인정받나 하는 인정의 그런 뭐 처소라고 해도 그걸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각각 자기의 처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서 노력하는 것은 보다 조금 더 앞으로, 오늘보다 내일 좀 처소를 더 좋은 처소를 가질라고, 명년에는 더 좋은 처소를 가질라고, 지금 뭐 아주 고학을 하면서 못 먹고 못 입고 그렇게 잠을 못 자고 이래 곤고하면서 공부를 하는 사람이나 또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나 생명 내놓고 전쟁하는 사람이나 투쟁하는 사람이나 그런 사람들 다 그것이 뭐이냐? 좀 보다 나은 처소를 마련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사람이 천층 만층 뭐 구만층이라 하는 말은 그 사람의 처소가 천층 만층 구만층이라 하는 말입니다. 또 그 사람의 지위가 천층 만층 구만층이라, 그 사람의 권세가 천층 만층 구만층이라, 또 그 사람의 재산의 그 층어리도 재산의 위치도 재산의 지위도 그것도 층어리가 많이 있다 하는 그것입니다.
이래서, 공부하는 사람도 그 사람, 땀을 뻑뻑 흘리면서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사람도 그 사람, 또 자기가 오기대로 하고 싶지마는 오기를 죽여서 자기 속음 썩히는 사람도 그 사람, 뭐 참고 견디는 것도 그 사람, 또 자기에는 힘이 없지마는 힘이 없는 힘이 있는 듯이, 그 힘이 하나 있으면 둘이 있는 듯이 야단을 지기면서 그렇게 뿜는 사람도 그 사람, 또 어떤 사람은 힘이 한 개나 있으면서도 자기는 힘이 하나밖에 없는 듯이 그렇게 하는 사람도 그 사람, 그거 다 모두 처세술인데 이래 가지고 세상에서 자기의 처소를 마련할라고 모두 다 좋은 처소를 보다 좀 좋은 처소를 마련할라고 하는 것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활동이요 생활이요 소원이요 계획이요 노력인 것입니다. 이라다가 그래 한 일 년 지내고 나면은 그 사람 처소가 전보다 훨끈 좋아진 사람도 있고 그만 그 처소가 일 년 전보다 푹 떨어져서 아주 험한 처소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래서 자기의 노력한, 이 처소라는 말을 다른 말로 좀 한번 좋은 말 없겠소? 이 O장로님. 거처? 이 거처라 하면 그만 몸뚱이가 거처하는 요거로만 그래 보기 쉽고. 위치, 처소, 성경에는 처소라고 해 놓았어요, 처소. 위치. 위치라는 말이 그 말이 알아듣기는 좀 쉽겠는데 실은 처소가 더 구비하고 범위가 넓습니다.
이랬는데 그걸 모두 마련할라고 하는데 인간과 인간의 차이는 뭘로 있느냐? 그것은 그 사람의 위치의 차이요 처소의 차이요 다른 말로 하면 그 사람의 가치의 차이요 그 사람의 실력 차이라, 그 사람의 대우 차이라, 그 사람의 뭐 영광 차이라, 권위 차이라, 모두 다 하는 것인데 이런 것을 다 합해서 자기의 실력이, 자기 가진 실력이, 암만 있어도 자기 실력은 그 이상 지위는 못 갑니다. 그 이상 자기가 자기 실력 이상의 위치를 가지면은 그거는 감옥이 되고 맙니다. 또 자기 가진 이상의 권위가 있는 그 자리에 제가 있으면은 거기서는 지옥이 되고 맙니다.
또 '자기가 거처할 수 있는 그 경제 이상을 가지면은 몇 해 지나고 나면 거지 됩니다. 이래서 모두 자기 분수라, 그걸 분수라 또 이렇게도 말하는데 자기 분수에 맞은 자리에서는 장구히 거처할 수가 있고 자기 분수에 넘은 자리에는 나중에 기어 내려와야 되고 자기 분수보다 좀 낮은 자리에서 사는 사람은 앞으로 점점 좀 을라갈 수가 있다 하는 그런 것이 다 이 세상 사람의 처소라 위치라 분수라 뭐 그런 말로 그렇게 표현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래서, 잘났든지 못났든지 모든 사람은 보다 좀 미래적으로 나은 처소를 마련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희망에서 산다, 희망에서 산다, 또 소망으로 산다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가 있는 지식을 다하고 자기가 있는 힘을 다해 가지고 이렇게 모두 세상적 처소, 세상적 지위, 세상적 위치 그런 것을 다 마련 할라고 애를 써서 좀 더 좋은 것을 마련할라고 사람들이 애를 씁니다.
이렇는데 그러면 이 세상도 말하지 아니하는 이 제도와 법칙이 딱 칡밭 얽히듯이 마구 얽혀 가지고 있습니다. 뭐 조금도 탈선을 못 합니다. 이 세상도 실은 말하지 않는 또 사람들에게 형체가 없는 그런 모든 줄이 있고 법칙이 있어서 자기가 앉을 그 자리에 앉지 안하고 그 이상의 자리에 앉아 놓으면은 그만 당장 부숴져 버립니다. 또 자기 이하의 자리에 가 앉아 있으면 이것은 시일이 좀 지나가면 조금씩 나아져서 올라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된 대로의, 자기 된 대로의 자기 정확한 위치가 있기 때문에 그 위치는 아무도 빼앗지도 못하고 뺏기지도 안하고 그 위치는 자기 위치는 자기 외에 다른 이는 갈 수 없는 그 위치가 다 있습니다. 이래서 혹은 과도기라든지 또 그런 비상시는 이런 그 위치가 다 정돈이 안 되고 정리가 안 돼서 비정상적으로 되어 있는 그런 분위기나 그런 시기 시대가 간단하게 있기는 있지마는 조만간에 그런 것이 다 마치 물을 흔들어 놓으면 물이 출렁거리면 높고 낮고 울풍줄풍 그렇지마는 잠시만 지내면 그 물이 평평하게 평선을 딱 유지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뭐 무슨 전쟁나고 울룩불룩 할 때에는 이린 것이 다 혼돈 혼잡태 가지고서 질서가 없고 모든 게 정리가 안 되고 공평이 없고 이렇지마는 잠시만 지내고 나면 그런 것들은 자꾸 공평을 찾아가고 정의를 찾아가고 진실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이래서, 세상에도 모두 다 사람들의 자기 처소가 각각 달라서 인간의 가치는 처소의 가치요 지위의 가치라, 지위의 가치라는 것은 실력의 가치라 권위의 가치라, 그 실력이라는 것은 뭐 여러 가지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도 얼마 전에는 서로 네 잘났니 내 잘났니 하더니마는 먼저 대통령 선거가 있고 난 다음에는 제일위가 OOO씨가 제일 일 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제일위가 했고 또 둘째로는 OOO씨가 지지하는 사람들이 둘째로 많으니까 제이위가 됐고 또 셋째로는 OOO씨가 됐고 넷째로는 또 OOO씨가 됐고 이것도 뭐이냐? 이 나라의 백성들이 지지를 하는 데에 누구를 지지를 제일 많이 하나? 그 사람이 제일 일위가 됐고 이위 삼위 사위로 된 이것도 모든 백성들이 지지를 그래 하기 때문에 지지하는 그 순위로써 그와 같이 된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힘으로 이렇게 할라 해도, 또 무력의 힘이 그런 걸 깨뜨리고 어떻게 참 뭐 데모를 일으키든지 뭐 구테타를 하든지 모두 하면 뭐 있지마는 그만한 안정된 시기에서는 그 민주주의에서 지지하는 사람들이 누가 많으냐 하는 그런 걸 가지고 그 가치가 그만 정해져 버렸습니다. 가치가 정해져서, 정해졌는데, 또 요새 지금 뭐 청문회라고 오랫동안 국회에서 했는데 그 국회에서 한데에도 그것도 뭐이냐 하면은 다 거게서 벌써 지위가 정해졌습니다. 정해져서 이번에 중간평가 한다 하는 데 대해서 물론 그거는 OOO씨가 중간평가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말한 대로 이행을 해야 된다 하는 것으로 하지마는 또 그것을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데 우리 나라에는 삼권 분립된 나라가 민주주의의 원칙인데 이러니까 행정만 평가할 게 아니라 사법도 평가하고 의회도 평가하고 이 세 가지 다 중간 평가를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 제게는 들었습니다. 그랬으면 아마 국회를 얼마나 평가를 잘할란지? 국회 우리는 필요 없다 할 그런 평가가 나올란지 놀랠 만한 사람들의 숨어 있는 인심들의 평가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 것이 뭐이냐? 다 자유법으로써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평가돼 가지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 세상에도 물론 그것이 뭐 좀 오산되고 오평되고 오판되는 것도 있기는 있지마는 얼마 시기를 지나가면 그런 것이 다 거의 정평 정가가 다 됩니다.
이래서, 아무리 수사관이 명수사관이라도 그걸 정평 정가하지 못한 것도 세월이 지나가면은 세월이 들어서 그건 것을 다 정평 정가로 환하게 드러내서 숨은 것이 없이 다 나타낸다. 이래서 수사에는 세월 수사가 제일 정확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뭐 전자 수사보다도 세월 수사가 제일 정확하다, 이거는 하나님의 수사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들 말을 합니다.
이래서, 세상에도 모든 것이 다 사람들이 제대로는 다 자기 지식을 가지고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 이렇게 모두 다 지위나 처소나 또 위치 그게 다 가치요 행복인데 그것을 자기 실력대로 마련해 가지고 있고 또 자기 행한 대로 모든 것이 비판하고 평가새 가지고 그와 같이 정해져 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그래도 그런 것을 평가하는 데에는 사람들에게 지식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이 다 지식이 있어야 그런 것을 비판하고 또 평가하지 지식이 없으면 비판하고 평가를 못하는 것인데 이 세상은 무슨 지식을 가지고 비판하고 평가하느냐 하면은 이 세상 지식 곧 배암에게서 나온 지식, 이 세상 지식, 하나님의 지식이 아닌 인간 지식으로 그 모든 것을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 판단이 다 자치적으로 판단이 있어 가지고 자기 지위 자기 위치를 자기가 다 찾아 가지고 그 자리에 있고, 자기 위치 에 있으면 든든하고 조그마치라도 낮은 데 있으면 앞으로 좋은 게 있지 뭐 손해 볼 것 없고 높은 위치에 있으면 떨어질 그런 우려성이 있고 이렇게 돼 가지고 있어서 세상도 모두 다 천인 만인이 자기의 위치가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판자집에 있고 어떤 사람은 아주 고대광실 영광스러운 그런 집에 있고 어떤 사람은 최고의 위치에 있고 어떤 사람은 아주 최저의 그 가련한 위치에 있고 하는 그것이 전부 다 사람들의 위치요 처소요 자기의 지위라 자기 분수라 그렇게 말을, 표현해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그것을 사람들이 마련할라고 애를 쓰고 암만 그 사람아 뭐 욕심으로 암만 무엇을 차지할라고 해도 그 위치를 마련하지 못하면 그 위치는 차지를 못 하는 것인데 마련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그 마련하는 마련한 그것을 평가하고 비판해서 너는 어떤 위치에 있다, 너는 어떤 위치에 살아야 된다, 너는 좀 낮은 위치에, 너는 좀 높은 위치에, 너는 좀 더 좋은 처소에, 너는 그보다 좀 낮은 처소에, 사람들은 모두 좋은 처소를 가지고자 하지마는 이 세상 제도와 모든 법칙과 모든 인간들의 비판과 평가라는 그런 사회성 이 세상성 이런 것이 들어서 결국은 정평 정가해 가지고 그대로 다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 되고 자기 이상 자리 차지했으면 끌어내려오게 되고 자기가 자기 이하 자리를 차지했으면 그 이상 자리로 도로 올라가게 되고 그래 하는 것이 이 세상 한 제도입니다.
그래서 모두 다 자기 처소를 마련할라고 애를 쓰고 좀 더 보다 좀 더 좋은 처소를 마련할라고 애를 쓰는데 그러면 이 세상에서 이런 모든 처소를 마련하는데 그 처소에 대해서 비판하고 평가하는 것, 비관하고 평가하는 것이 무슨 지식으로 비판하고 평가하는가? 그것을 무슨 지식 가지고 비판하고 평가하는가? 그것은 이 세상 지식 가지고 비판하고 평가를 합니다.
그래서 뭐 세상 지식을 거스려 가지고 자기가 좀 더 월권적으로 자기를 만일 좀 과대평가해 가지고 했어도 그것은 얼마 안가서 또 내려오게 되고 아무도 자기를 과소평가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얼마 안 가서 또 좀 올라오게 되고 이렇게 꼭 물이 지금 출렁거리면 수평선을 유지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도 이 공평성이라는 거, 이 공평성 정당성 합리성 이런 것을 다 유지하도록 돼 가지고 있는데 그 법칙이 뭐이냐 하면은 세상 사람들의 지식 인간 지식의 법칙을 가지고 그런 것을 다 비판하고 평가하고 또 그것을 건설하고 이렇게 합니다.
이래서 세상에는 그 지식, 그 법도, 그 율례, 그 방편, 그 평가 그런 것들만 있어 가지고 이렇게 그대로 되어 가고 있는데 이게 마지막의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렇게 해 나가는 것이 얼마든지 나갈 것으로 보여지지마는 이것은 벌써 조물주에게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은 그것이 마지막은 끝은 사망으로서 화해지는 거로서 거게서 구출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면서 사람되어 오신 것입니다.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그분이 이제, 마귀에게 사람들이 꼬여 가지고 산다고 하는 것이 죽고 또 자기 처소를 잘 마련한다 하는 것이 자기 처소를 자꾸 악화시키고 이래서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다 자꾸 좋은 거 한다 하는 게 나빠지고 또 자기는 올라간다 하는 게 내려오고 자꾸 꺼꾸로 돼 가지고 있는 이것은 마귀가 이 지식을 꺼꾸로의 지식을 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이런 세상이 되어져 가지고 산다는 것이 날마다 죽는 것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줄만 알고 있는 이렇게 완전히 마귀의 유혹으로써 착각되어 있는 이것을 이제 예수님께저 바로 잡아 가지고 여게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이가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이 지위 마련할라고 오기는 왔는데, 지위 마련할라고 오기는 왔는데 이제 이 속는 지위 거짓부리 지위 이것을 마련할라고 온 게 아니라 영영히 천 년 만 년 억만 년 영원무궁토록 가도 조금도 변동 없는 완전한 이 지위 처소를 마련시키기 위해서 주님이 오시기는 오셨습니다.
이래서, 그러니까 먼저 무엇이 달라지느냐? 지식을 바꿉니다. 인간의 이거 세상 지식은 멸망하는 지식이기 때문에 세상 지식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지식으로 바꾸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바꾸니까 거게서 대혁명이 일어나서 방편도 바꾸어지고 가치도 바꿔지고 비판도 바꿔지니까 그때에 좋아하는 것어 나쁜 것도 되고 또 나쁜 것이 좋은 것도 되고 이라니까 지식이 바꿔지니까 비판도 바꿔지고 평가도 바꿔지고 사람의 그게 바꿔지니까 소원도 바꿔지고 대우도 바꿔지고 전부 다 싹 혁명으로 바꿔지게 된 것입니다.
이랬는데, 바꿔져 가지고 이 바꿔진 이것을 지금 예수님께서 건설해서 멸망에서 구출하고 이제 그 멸망에서 돌아서서 구원 얻는 데로 향상되고 전진하도록 이렇게 예수님이 하고 있는데 이 제자들이 '나는 주님을 쫓겠나이다 이렇게 말을 하니까 '너는 나를 따라오면서 이 세상적 처소 세상적 지위 세상적인 그 모든 가치를 네가 마련하기 위해서 나를 좋지마는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다 그말은, 있는 가치도 너거들이 잘못한 것 때문에 잘못한 그것을 내가, 벌로 댓가로 내놓기 위해서 있는 것 싹 다 내놓고 아무것도 없이 있는 것 싹 다 내놓아서 아주 거지가 돼 버렸다. 거지된 것은 너희들이 잘못 알고 잘못 방편 취해 가지고 영원히 멸망받은 그것을 이제 잘못 행동해서 멸망받았기 때문에 내가 잘못함이 없는 내가 이 잘못함이 없는 것을 다 내어놓아 가지고 형벌을 받아서 거게서 너희들을 구출해 냈으니 나는 모든 것을 바르고 옳게 가진 자인데 가진 것을 다 없애서 인자가 됐다, 그러면 네가 지금 나를 따르면서 '내가 쫓겠나이다 하는 네 소망이 나를 뭣 때문에 딿느냐? 나를 딿는 소망이 네가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것이 잘될까 싶어서 나를 딴는데 나는 너희들이 그런 것을 잘못 취한 그 값을 내느라고 내가 거지가 됐다. 거지가 됐다. 거지가 됐고 또 나는 이제 너희들이 잘못 취할라고 하는 그런 것을 취하면 자꾸 멸망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것은 취하지 안했다. 나는 그런 것은, 머리 둘 곳도 없이 나는 조그만한 그런 것도 그건 건설은, 그건 위치는, 그런 처소는 마련하지를 못했다. 네가 원하는 그 처소를 원하는 처소, 너희들이 원하는 그 처소를 너희들이 마련한 것 때문에, 네가 나를 딿겠다고 하는 목적이 어데냐? 네가 원하는 그 처소, 네가 원하는 그 행복이라는 그 행복, 성공이라는 성공, 자유라는 자유, 생명이라는 생명, 네가 원하는, 네가 원해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 행동한 그것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라 흠이 없지마는 내게 있는 것도 톨톨 털어서 다 거지가 돼 가지고 인자가 됐다. 인자가 됐다. 또 그뿐 아니라 내가 자금 세상에서 삼십삼 년이 다 돼 가지마는 세상적으로 마련한 것은 하나도 없다. 세상적으로 마련한 것은 하나도 없다. 머리 둘 곳도 없다.
이런데 네가 나를 따라와 봤자 아무 소득이 없지 앓느냐?.나를 따라오면 네게 있는 것을,다 내어 버려야 되고, 네게 있는 것을 다 내어버려야 되고 네가 원하는 것은 털끝만치도 소원 성취를 하지 못하게 되니 네가 나는 이건 내인데 네가 나를 따라올라고 하면은 이것을 깨닫고 따라와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너 따라오는 게 다 헛일이 아 니겠느냐 그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거 너무 넓어요.
이래서, 이거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모르요. 이 세상에는 세상 지식 마귀가 주는 지식, 이 지식은 사망케 하는 지식입니다. 죽은 지식이요 또 사망하게 하는 지식입니다. 이 지식만 세상에 가득 차 가지고 이 지식으로 만드는 것은 전부 사망만 만듭니다. 사망 외에는 만드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지식이 죽는다는 것은 사는 것이요 이 지식이 산다는 것은 죽는 것이요 이 지식이 올라간다는 건 내려가는 것이요 이 지식이 망한다는 것은 흥하는 것이라. 이렇게 지식이 지금 지식을 바꿔서, 이 지식을 바꿔야 되고, 이 지식을 바꿔야 되고, 이 지식을 바꾸면, 바꾸면 이제까지에 사람들이 원하고 노력하는 그 마련하는 그 처소는 그것을 마련해야 될 처소냐? 그거는 마련해야 될 처소가 아니고 그거는 다 버려야 될 처소다. 그 처소는 안 가지는 게 좋다. 그 처소는 멸망의 처소요, 멸망의 처소요 생명의 구원의 처소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마련하지를 안했다 그렇게 하는 것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거 여러분들이 자꾸 기도 많이 하지 안하면은 이 높은 도를 가르쳐도 여러분들에게 가지를 못 해요. 이라기 때문에 이제까지 다 모두 깨달음이 다 모두 껍데기 깨달음이라 그래.
이러기 때문에 이제 뭐 그걸 다 해석할라면 안 되니까 이제 지식도, 지식도 두 가지 지식이 있고 세상 처소를 마련하는 지식이 있고 또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완전 세계 영원 불변 세계의 처소를 마련하는 지식이 있다, 이것만, 여러분들이 알고 자꾸 이라면 여러분들이 간단하게 생각할 때는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니까, 자꾸 이해가 안 되고 이래 맞춰도 안 맞고 저래 맞춰도 안 꽜고 자꾸 이해가 되지 안하고서 여러분들 속에 번민과 고민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 많은 번민과 고민이 생겨서 자꾸 궁구하면 이 세상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 지식 둘이 있다. 지식 둘이 있고 또 처소도 둘이 있다. 멸망 세계의 처소가 있고 영영한 생명 세계의 처소가 있으니까 그 처소도 둘이 있다. 이러니까 그 처소를 마련하는 방편도 둘이 있다. 멸망할 처소를 마련하는 방편도 있고 영영히 없어지지 안할 완전한 처소를 마련하는 방편도 있고 두 방편이 있다.
그러면 두 지식이 있는데 하나님의 지식은 영영한 처소를 마련하는 지식이요 세상 지식은 멸망할 처소를 마련하는 지식이기 때문에 세상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이 정반대가 된다.
그래서, 세상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은 사람은 멸망할 처소를 자기 처소로 열중해 마련할 것이고 하나님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멸망할 처소는 집어던져 버리고 영영한 처소를 마련할라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 처소도 불변의 처소가 있고 멸망의 처소가 있다. 처소가 둘이 있다는 것 이것을 그저 간단하게 여러분들이 하나 기억을 합시다. 이래서 이 세상에도 모든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은 전부 자기가 마련한 대로, 자기가 마련한 대로 자기 처소에 다 살고 있습니다. 딴 데 가서 살지 못합니다. 딴 데 가 살지 못해.
자기 처소에 다 살고 있어. 살고 있는데 그거는 다 멸망할 처소입니다.
하나 예를 들면은 사람이 인간이라는 인간계에, 인간계에 처소가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계에 처소가 있으면 인간으로서 예를 들어 백 명이 있으면은, 백 명이 있으면 백 명 가운데 베일 밑에 층어리는 누구고 이층은 누구고 삼층은 누구고 사층은 누구고 오층은 누구고 구십층은 누구고 구십구층은 누구고 백층은 누구고 그게 다 전부 층어리가 사람의 그 층어리의 처소가 있고, 그러면 사람의 층어리의 처소가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실력에 따라서 처소는 마련되어 있다.
그러면 사람이, 사람 처소는, 사람 처소는 사람끼리만 그 처소를 구별하는 것이고 그 지위를 구별하는 것인데 그것은 사람끼리만 모아 가지고 처소를 구별하고 지위를 구별할 때에 그 사람의 실력도 있고 그 사람의 행위도 있고 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은 지위로 말하면 구십되는, 아주 꺼꾸로 말해서, 이거는 구십이나 높은 그 처소에 살고 이 사람은 오십이라는 처소에 살고 이 사람은 낮아 십이라는, 이 사람은 제일 밑에 밑절미 일이라는 그 자리에 살기도 하는 것이 그 사람이 제가 욕심을 낸다고 그와 같이 되는 게 아니고, 그것이 이 세상에서도 욕심을 내 가지고 되면은 다른 사람이 불평을 하면은 결국 그것이 다 공평되게 마지막으로 그 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암만 월권하고 남용하고 무례하게 해 가지고서 그 정당한 위치를 가지지 안하고 있으면 그게 얼마나 유지가 되느냐 하면은 조만간에 그 모든 것이 다 정당화되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 위치 자기가 받을 대우의 그 자리에 가 있지 자기 이상의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그런 것이 뭘로 되느냐? 그것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돼진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여게서 아까 말했던 것이니까 그러면 그게 모두 다른 사람이 강제를 하든지 뭐이든지 지금 돈을 주고 매수도 하고 어떻게 이렇게 한다고 해도 마지막에는 그 사람들도 다 그 사람의 법도대로 해 가지고 공평이 있고 또 그대로의 썩은 양심, 양심이 있기 때문에 그 공평된 지위를 찾아 가지고 평가하게 되기 때문에 중간평가도 그런 것이다.
대통령 할 때도 뭐 이 사람 찍고 싶으면 이 사람 찍고 저 사람 찍고 싶으면 저 사람 찍고 하는 것이 그게 뭐이냐? 모두 다 사람들은 누구를 내놓으면 내게 유익한고? 자기에게 유리한 그것을 비판해 가지고 자기에게 가장 가치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높이고 자기에게 필요 없다 하는 사람을 버리게 리는 것이 그것이 인간 평가다.
그러면 그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하룻밤 나그네와 같이 잠깐 살다가 지나가는 여게도 인인 관계, 인인 관계는 내가 사람과의 관계한 거게서 인인 관세에서 내 위치가 인인 위치가 있고, 인인 위치가 있고 내가 어떤 사물을 관계할 새 일과 물건 일을 관계할 때 사건의 위치가 있고, 일의 위치가 있고, 일의 위치가 있는 것은 일이라 하는 것은 모든 만물에 관련돼 가지고 그 사건이 나오기 때문에 일의 위치가 있고 또 물질에 대해서도 그 물질을 이렇게 대우하고 저렇게 대우해서 물질과 관계가 어느 정도 있느냐? 물질과의 관계 맺은 거기에서 자기 위치가 있고 또 하나님과도 자기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 그 맺는 그 위치가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은 그걸 낼라 하면 한정 없는 것인데 다시 간단하게 말하면 이 세상은 무궁을 두고 마련하는 준비 기간인데 이 세상에서는 하늘나라의 인인 위치, 사람과 사람의 위치. 인인 위치는 이 세상에서 인인 관계로, 마련한다. 또 신인 위치는 이 세상에서 신인 관계 생활에서 영원한 위치를 마련한다. 또 자기가 이 세상에서 모든 사건들을 많이 접하고 통과하는데 그 사건 위치에 있어서는 그 사람이 사건에 대해서 어떤 관계를 가졌느냐? 사건에 대해서 관계 가진 그대로 사건에서 대우하고 자기 지위가 있다. 또 물질과 자기, 물아, 물질과 자기와의 관계에서는 이 세상에서 물질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 가지고 있느냐? 그런데 그대로 해 가지고 무궁세계에 자기 지위가 결정된다. 그런데 무궁세계에는 절대 자유의 세계다. 무궁세계는 절대 자유의 세계다. 그러기 때문에 강제가 없다. 또 억제가 없다. 거게는 뭐이든지 자유한다. 자유해서 말하고 싶은 대로 얼마든지 하고 불평할 걸 얼마든지 하고, 불평을 하되 안 할 불평을 하면 반드시 정죄를 당한다. 거게는 지극히 공평된 나라요 정확한 나라요 거게는 모든 것이 다 어두움이 없는 빛의 나라이다. 그러기에 거게는 만물도 다 자유가 있다.
만물도 다 자유가 있기 때문에 여게서는 뭐 이거 뭐 꺾어도 되고 불에 넣어도 되고 하지마는 이것도 다 자유가 있기 때문에 그때는 다 발언을 할 수가 있다.
'네가 하나님이 나를 먹으라 해서 삶아먹어도 내가 암말도 안 했고 나를 가루로 뽀사 가지고 먹어도 말 암말도 안 했지마는 네가 조물주에게 복종하기 위해서 이래서, 만물이 그 모든 무익한 것들에게 복종하는 것은 그것은 자기 뜻이 아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복종하게 하기 때문에 복종하지마는 앞으로는 다 이의가 있습니다. 네가 뭐 구워 먹어도 뭐 빠사 먹어도 상관없지마는 네가 나를 천대를 했다. 네가 나를 먹지도 안하고 쌀 나를 내집어 던져 버리고 썩혀 버리고 아주 천대를 했다: 그러면 그런 것은 다 시비할 수 있다 말이오. 시비할 수가 있다 그거요. 만물 재판에서.
그러기 때문에 후란시스는, 그 사람의 전기에 보면은 자기가 조그만한 뭐 식물을 놓고 공평을 가지고 '너는 나에게 조물주의 뜻대로 나에게 얼마든지 복종을 해서 내가 너를 어떻게 사용해도 네가 불만 불평을 품지 안했는데 나는 이렇게 너희들의 모든 도움을 입어 가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대해서 절대 복종이 되지 안하고 불만 불평이 있었다. 내가 너거를 볼 때 미안하다 하는 부끄럽다는 그런 말 하면서 자기 식탁을 놓고 앉아서 미안과 황송을 말하고 사죄를 말하고 서로 또 장래를 보고 화평을 해서 영원한 만물 심판에 그 관계점을 해결지우고 가는 것을 그 사람의 전기에서 그래 찾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거게는 절대의 자유의 나라다. 하늘나라는 자유의 나라다. 자유의 나라이기 때문에 억제, 지금은 뭐 만물이 복종할 수가 있지마는 그 나라는 자유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 화초 하나 이것도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이 화초가 나한테 복종을 하고 싶어야 하지 복종하기 싫으면 안 합니다. 복종 할 수 있어야 하지.
이러기에 그 나라는 모든 것이 다 자유하는 자유의 나라다. 또 그 나라는 모든 것이 다 권리를 다 가지고 있다. 자유권을 다 가지고 있다. 발언권도 다 가지고 있고 송사권도 다 가지고 있고 또 소송권도 가지고 있고 변론권도 다 가지고 있다. 거게는 자유의 세계이다. 거게는 모든 것이 하나도 어두운 것이 없이 모르는 거 없이 환하게 다 알고 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의 비밀이 다 드러나서 하나도 감추임 없이 환하게 다 보이는 그 나라이다.
이러기 때문에 그 나라는 만물 심판이 있는 나라요 평가적으로 또 비판적으로 해 가지고 모두가 다 자유로, 자유로 대우하고 자유로 멸시당하고 하기 때문에 만물의 자유가 있는 그 영광의 나라다. 그래서 그 나라의 법은 자유의 법이라.
자유의 법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 세계가 있는데 이 세상은 전부 마귀법대로 강제법이요 억제법이요 그거는 전부 불법이요, 조물주는 계시는데 조물주는 다 팽개쳐 버리고 조불주 아니고 이 마귀가 제가 주인이 돼 가지고 그저 조그매만 힘만 있으면 제가 왕이 돼 가지고 이와같이 강제 월권 남용으로써 지금 하고 있는 이 세상인데 잠시 잠깐 후면 모든 것이 다 공평을 가지고 있는 그 자유의 세계 진리의 세계 광명의 세계 모뜬 비밀이 없는, 모든 것을 다 대낮에 벌거벗은 거와 같이 환하게 드러난다 해. 대낮에 모든 게 벌거벗은 거와 같이 환하게 드러나.
이라니까 이 세상에서 참 아주 못나고 천한 사람이 그때는 잘됐다 싶으고 이 세상에서 조그매라도 있은 그것은 다 월권이요 남용이요 이렇게 되어지는 그런 세계다.
이러기 때문에 너는 나를 따라오는 것이 이 세상적 위치를 마련할라고 나를 따라오면은 세상적 위치가 잘 마련될 줄로, 나를 따라오면 무례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줄로, 월권 남용하는 일을 더 할 수 있는 줄로, 불법의 일을 더 많이 해 수 있는 줄로, 무슨 비정의 비진리의 그런 일이 많이 될 줄로 그렇게 알고 있지마는 나는 인자가 됐다. 그런 것을 가지고 인간들이 제맘대로, 하나님 법을 어겨서 제맘대로 함으로 말미암아 만든 그 자유, 그 부강, 그 모든 평강 이놈 때문에 너희들이 영원히 멸망하게 되는 그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이 거지 인자됐다. 알아듣겠습니까? 거지 인자됐다.
또, 그러기 때문에 그뿐 아니라 나는 세상에서 머리 둘 곳도 하나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적 처소를 나는 마련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너희들이 세상적 처소를 잘못 마련한 것을 위해서 나는 인자되기까지 있는 걸 다 내어놓았다. 또한 그뿐만 아니라 나는 세상적 처소는 하나도 마련한 것이 없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처소를 마련하는 데에, 좀 어려운 말입니다. 처소를 마련하는데 두 가지 처소가 있다. 두 종류의 처소가 있다. 완전 영원 불변의 처소가 있고 이제 이 멸망의 처소가 있다. 그러면 이 세상은 전체가 다 멸망하는 처소요, 멸망하는 처소요, 멸망하는 지위요, 멸망하는 권세요, 멸망하는 그 평가요, 그러나 무궁세계에는 영원 무궁한 완전한 그 처소, 완전한 평가, 완전한 자유, 똑 모든 것이 다 강제가 하나도 없고 자유의 평가대로 해 가지고 요것을 요만치 대우하면, 요만치 대우하면은 모든 것이 다 자유로 모든 것이 대우 요만치 대우해 줘야 제가 대우되는 것이지 강제가 없기 때문에 제가 요보다 올라갈라 해도 안 되고 내려갈라 해도 안 되고 이 모든 것이 모든 존재들이 다 자유를 가지고 환하게 아는 그 자유를 가지고 정평 정가해서 대우하는 그 대우의 위치대로 다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하후하박이 없다. 이런 광명의 세계다. 이런 광명의 세계이기 때문에 이 나라의 처소를 마련하기 위해서 인자는 땅위에서는 머리 둘 곳도 없게 됐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가 만일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아라. 거게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예수님께서 그분이 영원 무궁한 처소를 마련할 때에 어떻게 마련했느냐? 그분은 이 세상에서 뭐한다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그와 같이 하셨느냐? 그분의 한 것이 무엇 때문에 했는지 그분의 생애를 네가 살피면 그분이 그리 그리 그리 그 방편으로 살아가 가지고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러면 그분의 생애가 너거 견해대로 너거 지식대로 평가할 때는 가장 망한 사람이요 어리석은 사람이요 다 실패한 사람으로 보여지지 않느냐? 그러나 그분의 마련한 처소는 영원 무궁한 완전한 세계다.
그러기 때문에 완전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늘 숨 떠나면 그 나라에 간다.
택한 자들은 그 나라에 간다. 불택자들은 다 지옥에 가 버리고 말지마는서도 오늘 숨이 떠나면은 무궁한 세계가 있으니 그 나라에는 자유의 나라다. 네가 뭐 올라가고 싶다고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가고 싶다고 내려가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이 너를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 모든 존재들이 사건들이 너를 평가를 어떻게 하느냐? 사건들이 너를 평가를 어찌 하느냐 하는 사건들 평가에서 사건들 처소가 있다. 사건에 네 처소가 있고 모든 만물의 평가에서 만물 중에 처소가 있고 인인들의 모든 인간들의 평가에서 네 인간세계의 처소가 있다. 거기는 다 자유의 세계다. 다 공평의 세계다.
거기는 또 모르는 것이 없어, 거기. 모르는 게 있으면 좀 엉큼한 게 있고 좀 잘못된 게 있고 뭐 속일 수도 있고 꾀울 수도 있지마는 모르는 게 없다. 거기는 다 광명의 세계다. 다 알고 있다. 또 거게는 공정한 세계다. 거게는 뭐 억제당하는 게 없어. 전부 자유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주님께서는 이 걸음을 걸었는고로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 속에 물 아래 있는 모든 것이 예수님을 주라 시인하고 그앞에 무릎을 꿇면서 주라고 시인해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자유의 평가의 세계니 그 세계에서 네가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이며 어떤 대우를 받을 것인가? 그러기에 그 나라를 알고 이 세상에서 오늘에 예수님의 대속의 피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정리할 걸 정리하고 간추릴 것을 간추려서 그 나라의 처소를 마련해라 하는 것을 가르쳐 말씀합니다.
뭐 어려워서 그저 여러분들이 이제, 처음으로 듣는 사람도 있을 터인데 무궁한 세계는 그러한 세계가 있다는 것만 기억하십시오. 그만 요것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갈 나라는 사의 나라다. 그 나라는 의로운 나라다. 그 나라는 알지 못함이 없는 나라다. 그 나라는 진리의 나라다. 그 나라는 공평된 나라다. 그 나라는 정확한 나라다. 그 나라는 비판적인 나라다. 그 나라는 정평하는 정가하는 나라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이 세상 행동이라 하는 것이 자기의 무궁한 지위를 무궁한 처소를 알든지 모르든지 마련하고 있다. 마련하고 있다 이것을 기억을 하시고, 오늘 떠날지 모르니까, 세상은 전부가 거짓말이오. 전부가 거짓말. 전부가 세상은 보면 이제 남을 속임으로 장기를 누리고 불법으로 모든 불법으로 권세를 삼고 모든 거짓것으로 권세를 삼고 모두 모든 부정으로 권세를 삼고 또 거짓으로 권세를 삼고 수단을 삼고 이래 가지고 있는 나라 속에 우리가 살기 때문에 이 가운데에서, 이 가운데에서 무궁한 참 빛의 나라를 보면서 세상에서 사는 생활이 그게 쉽지를 안해. 어려워. 그러나 예수님의 피공로를 믿는 사람은 가능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나라가 있는 줄 알고 오늘에 자기의 무책임하고 마치 술취한 사람이 정신없이 날뛰는 것처럼 마치 짐승이 머리를 꿇어 놓으면 죽을똥 살똥 모르고 마구잽이로 뛰고 굴리는 것처럼 이렇게 마구잽이로 생각하고 마구잽이로 원하고 마구잽이로 욕심내고 마구잽이로 방편을 취하고 행동해 가지고 전부 자기를 칭칭 얽어서 멸망시키는 이것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 죽지 않고는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죽어서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해결 받았으니까 우리는 지금부터는 오전에 말씀한 것과 같이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우리가 연합해 가지고 이제는 다시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그 나라의 그 법칙이 이 신구약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법칙이기 때문에 이 법칙을 준해 가지고 자기를 삼가 지켜서 이렇게 조심해서 나가는 우리들이 되도록 그렇게 사는 것이 그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인제 여러번 들으면 언제 다 알란지 모르겠습니다.
이래서 그저 지위가 있다. 지금 지위와 처소가 있다. 그러면 자기가 이 세상에서 사람과 어떻게 산 그것이 무궁 지금 처소를 마련하고 있다. 천 명에게 하나도 환영받을 자리가 없고 천 명이 다 정죄합니다. 천 명이 정죄해, 천 명 있는 자리에 천 명이 다 정죄하면은 저는 저 밑에 가야 될 것 아닙니까? 이러니까 모든 만물이 자유권을 가지고 있으니 오늘에 인인 관계는 영원한 처소에 여함이 결정되는 것이고 또 사물 관계에는 영원한 처소의 사물 관계의 지위가 마련되는 것이고 오늘에 또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되는 생활은 무궁토록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의 처소가 마련되는 것이니 이렇게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세상에서 영원 무궁을 마련하고 있다는 이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여게 준해서 하나씩 둘씩 깨어서 정신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이요 지혜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