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1 01:33
배은은 망한다
1981. 6. 18. 목요일 새벽
본문:창세기 9장 24절~27절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라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둘째 아들 함은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자기의 근원도 잊어버렸고 또 자기가 은혜를 베풀어야 할 자기의 가지와 잎사귀같은 것도 후배 후손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런고로 그는 그 자체가 저주 밖에는 받을 수가 없고 또 종으로 이용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야벳은 하나님께 대한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셈의 하나님을 그가 섬기는 일에 동참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은혜의 기관과 근원을 잘 알았습니다. 거게 대해서 주의를 하고 은혜를 받도록 그렇게 노력을 했고 또 자기에게 속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할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면 그는 자기가 되어 있는 현실과 현 형태와 생활을 잘 알았습니다.
또 그 장자 셈은 이 이 장자 셈은 함과 같지도 아니하고 또 야벳과 같지도 아니하고 야벳이 깨달아 가진 그 위에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일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지금 우리가 가만히 그 셈의 자손과 함의 자손과 야벳의 자손 황인종과 백인종 또 흑인종 그 셋 인종의 그 인간성은 지금도 요대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자기 지식에 따라서 얼마든지 깊이 넓게 연구해서 여게 대한 확고한 지식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에 흑인종은 은혜의 기관이라는 것은 그들이 생각지 않고 또 자기가 줘야 된다는 그 후배 후손에 대해서도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그 흑인종은 도덕성 윤리성이 지금 많이 희박합니다. 언제든지 그 현실주의 또 자기들의 그 단독주의 그것이 지금도 그 속에 인간의 본질과 본성에 들어 있습니다. 백인종은 지금 그 백인종들인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이 보여지지마는 그 모든 신앙 사상들을 아는대로 이렇게 검토해 보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와 모든 위에서 받을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계 어떤 민족보다도 백인종이 자기의 선조에게서나 또 종교성이 있으면 하나님에게서 받는 것은 모든 인종 가운데 뛰어납니다. 또 자기들의 그 후손과 후배들에게 주는 그 성격도 뛰어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길을 걷고 있고 또 최고의 축복을 받아서 그 창대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일은 없습니다. 자기 위에 사람을 섬기야 된다는 것 또 하나님 섬기기는 섬기지마는 섬기는 그 일에 대해서는 황인종만 못합니다. 유대인도 황인종입니다. 황인종은 이렇게 위해서부터 내려와서 자기 아래에 이것이 번져나가야 된 이것도 있고 또 위에 것을 섬기야 된다는 그 인간성도 이종 가운데에 특수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효성은 황인종이 제일 낫고 또 하나님 섬기는 일에는 황인종이 으뜸이 됩니다.
백인종에게는 효성이라는 것이 그것이 희박합니다. 또 하나님 섬긴다는 것도 하나님 앞에 받기 위해서 섬기지 받히는 그런 일은 희박합니다. 비유컨덴 우리는 나무을 둥치와같은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나무 둥치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우리 아닌 부모라든지 선배라든지 또 모든 사물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로 된 것인데 그게 모두 하나님의 근본은 하나님의 역사로 그것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나 아닌 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그 은혜를 나에게 전달해 주는 은혜의 기관이 되 가지고 내라는 것이 생기졌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역사와 내게 은혜 베푼 그 은혜의 기관은 마치 나무로 말하면 뿌리와 꼭 같습니다. 뿌리와 같고 또 내가 이웃에게 내 후손에게 후배에게 또 내 이웃에게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서 자라가는 것은 마치 둥치에 붙은 가지와 잎사귀와 꼭같습니다. 가지와 잎사귀가 없으면 그 둥치가 자라지 않고 뿌리에서 영양을 취하는 그 양과 그 도가 약합니다. 내가 가지와 잎사귀에게 주는 것이 없으면 그 뿌리에게서 내게 오는 것은 중단됩니다. 그 가지와 뿌리에게 많이 줘서 가지와 뿌리가 무성해지면 나는 거게 둥치는 주는 일을 열심히해야 되고 또 주는 일을 열심히 하게 되면 뿌럭지는 뿌리는 그 둥치에게 주는 일을 열심히 해야 되고 그러면 그 뿌리 주변에 있는 흙은 그 뿌리에게 또 요구하는대로 공급해야 될 것을 많이 고이급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 같은 밭에서 무슨 갖다 산에 어떤 식물이 하나 있으면 그 식물이 둥치는 뿌리에게 열심히 주고 또 뿌리는 둥치에게 열심히 주고 또 그 주변에 있는 그 흙은 그 뿌리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열심히 주게 되면 그나무는 무성하게 자라게 됩니다. 무성하게 자라게 되고 그 옆에 이것이 바롤 되지 안한 그런 나무는 다 치이버리고 맙니다. 이렇게 뿌리와 둥치와 가지와 잎사귀에 그면 그것이 무성해지면 그 다음에 꽃도 피고 또 열매도 맺습니다. 이 역사가 땅은 뿌리에게 주고 뿌리는 둥치에 주고 둥치는 가지와 잎사귀와 꽃과 열매에게 주고 이래하는 그 순위인데 그 역사가 무엇인 그 먼저 시발이 되어가지고 그 되어지는가 그 식물인 그 나무가 힘을 써서 되는가 그 흘이 힘을 써서 되는가 주는 주는 것이 먼저 힘을 쓰는가 받는 것이 힘을 쓰는 가 어떤 것이 힘을 써가지고서 그와 같이 되어지는것인가 그것은 좁은 범위에서 보면 받는 것이 힘을씁니다. 가지가 자꾸 영양을 요청을 합니다. 했빛을 깡강 찌우니까 가지가 안마를라고 밑에 둥치에게 영양을 달라고 물을 달라고 자꾸 간청을 하니까 또 둥치는 자꾸 줘야 됩니다. 또 둥치는 이거 가지에게 주고 보니까 둥치가 마를지켱이니 또 그 뿌리에게 다가 자꾸 영양과 그 수분을 달라고 자꾸 요청을 하니까 또 가지는 뿌리는 줍니다. 또 그 뿌리는 그 박혀있는 그 흙에게 영양과 수분을 달라고 자꾸 이렇게간청해 놓으라하니까 거게서 주게 됩니다. 그면 좁은 범위에서 보면 받는 자가 애를 써가지고서 먼저 그 발원이 되고 동기가 되고 해가지고 되는 것으로 이렇게 보여집니다.
그러나 넓은 범위에서 보면 땅이 있었기 때문에 그 종자가 거게서 심어지지 그렇지 않으면 심기워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또 부럭지가 먼저 나가지고 그 다음에 둥치도리 움이 납니다. 또 움이 나 가지고 그 다음에 가지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넓은 범위에 서는 위에서 내려왔고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시발이고 또 좁은 범위에서 보면은 밑에서 울로 간청하는 이것이 시발로 그렇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형편이 꼭 이렇습니다. 만일 그 둥치가 둥치가 뿌리를 다 끊어버리고 뿌리와 둥치와 관계가 없어 진다면 그 나무는 죽을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사람이 자기가 된 것은 순전히 자기 아닌 하나님의역사와 또 하나님의 기관인 부모는 기관이요. 부모는 기관이요 하나님의 역사가 그 부모를 통해서 나타났고 또 선생은 하난미의 역사가 그 선배를 선생을 통해서 나타난 그 기관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모든 이웃을 횡을 통해서 또 이웃을 통해서 또 사회는 통해서 국가는 통해서 전 인류라는 인류는 통해서 이것은 다은혜외에 기관이요 또 이 자연을 통해서 이런 것은 다 은혜의 기관입니다. 그면 은혜의 기관이면 은혜의 기관 위치에 서서 있는 것과 또 은혜 그 은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왔는데 그것이 마치 식물로 말하면 뿌리와 같씁니다. 둥치가 부리가 아니면 그것은 살수도 없고 자랄 수도없습니다. 에 게 제가 언제 한번 꽃사과라 하는 그 나무를 한번 사왔습니다. 그 아는 사람에게 사왔는데 그 사람은 나를 속일 사람이 아닙니다. 아주 내가 믿는 사람이고 또 그 사람이 아주 정직하게할라고 애를 쓰는 그런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서 꽃사과나무를 그 때 예만오천원인가 주고 샀습니다. 아주 그 좀 비싼나무고 내 가격을 똑똑히 모르겠습니다. 샀는데 그 나무가 그 잎이 피고 꽃이 피는데도 아주 약하게 그렇게 에피고 무엇인가 좀 그 강건하지를 못합니다.
이래서이 어재 그런가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차차 차차 고것이 마르기를 시작합니다. 인자 죽기 시작합니다 이래서 제가 이래 둘 것이 아니라 좀 근본을 찾아봐야 되겠다 하고 이렇게 파봤습니다. 파보니까 뿌리와 둥치 그 사이에 거풀이 다 뻣어지고 또 요만침만 남아 있었는데 고것이 들어서 그밑에 부리의 영향을 받아가지고 잎이 겨우 피고 꽃이 피고 폈지마는 고기 차차 날이 따시지고 하니까 고 영양을 주들 못해서 고만 고것이 마르게 됐습니다. 그럴 때에 그 둥치를 잘라 줬으면 잘랐으면 고만한 것 가지고 살았을 터인데 위에서 달라고 하는거는 많고 밑에서 섭취하는 영양은 적고 이러니까 그게 마르고 마르다 보니까 그둥치도 자기 형상 유지를 하지 못하게 되니 마르게 되고 또 위에 갖다가서 그게 마르니까 그게 나마 뿌리에서는 줄대가 없으니까 또 뿌리가 발라버리고 만 것입니다. 거서 제가 이거 참뿌리와둥치와가지와 잎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구나 이 부리는 줄둥치가 없으면 그거는 병들지 안했는데 생생한데 죽어버렸고 또 둥치가 줄 가지와 잎사귀가 없어도 안된다 그게 없으면 안된다 또 주어야 할 가지와 잎사귀는있는데 받아야 도리그 뿌리가 없으면 그것도 마른다 이 세 가지는 하나는 땅속에 들었고 하나는 땅위에 요동치 안하고 있고 또 가지 잎사귀 이런 거는 나붓거리고 이렇게 흔들리고 이렇게 하는 이것이 다 그 모순같으나 이것이 합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이것이 다 하나이다 하는 것을 제가 거게서 또 인생이라는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이렇게 이 꼭 이와 같습니다.
에 우리에게 내가 나 된 것은 근원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어떤 그 피조물이든지 그 피조물을 통해서 나에게 왔습니다. 그면 하난미의 역사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와 또 그 기관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나에게 줄 전달한 그 은혜의 기 관에 기관입니다. 그면 우리는 은혜의 기관과 그 은혜의 근원과 이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생겨졌고 우리는 자라갑니다.
그면 이 그것이 끊어지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에함은 그것이 끊어졌습니다. 함은 그것이 끊어져버렸습니다. 함은 그것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또 아무리 그게 튼튼하게 되어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가지와 잎사귀가 없으면 그것은 자라지 못하고 또 나무가 많습니다. 어떤 그 잠목 아주 잠목이라는 잠목은 그 가지와 잎사귀가 없어 지면 그 둥치에서 새움이 납니다.
그러나 나무중에는 제일 고귀하고 제일 고급나무로서 제일 일등나무로 삼는 것이 솔입니다. 이 솔은 세계에서 제일 요거는 제일 고급 왕나무라 이렇게 모두인정하고 있는긴데 요것은 가지와 그 잎사귀가 없으면 요것은 새움이 나지 안하고 죽어버리는 것이 솔의 본성입니다.
에 함은 가지 뿌리도 그는 잊어버려서 자기가 뿌리를 잊어버려서 뿌리가 끊혀졌고 또 가지와 잎사귀도 잊어버려서 가지와 잎사귀도 끊혀졌습니다. 그러기 땜누에 그는 저주밖에 받을 것이 업서고 종밖에 될 것이 없는 것이버니다.
망냉이 아들 야벳은 그는 뿌리를 뿌리의 필요성을 잘 알았습니다. 뿌리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또 자기가 자기가 있어 그 가지에 대해서 어자기는 또 소중성을 알아서 가지를 가지고 있는 식물과 같았습니다.
그러면 야벳은 뿌리도 있고 가지도 있고 자기 둥치도 있고 어이것이 잘됐습니다.
그면 어이것이 보통 일반적 무인 격체의 식물입니다. 이것이 무인격체의 피조물 이것은 요것으로 서 만족합니다. 만족한데 담나 인격성을 가진 것은 천군 천사가 인격성을 가졌고 또 사람이 인격성을 가졌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은 이 물질계에서는 사람뿐이요. 또 타락한 천사 마귀 뿐입니다.
그러면 이 무인격체는 야벳의 그정도에서 족하지마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이 인격성을 가진 존재는 요것만 하면 자체는 잘 자랍니다 자라는 데 이것이 이렇게 되어 있는 이 존재가 목적이 뭐이냐 이것이 무슨 목적으로 존재한 것이냐 하는 이것을 아는 것은 일반 피조물을 초월한 피조물으 탁월한 그 하나님의 형상인 그 인격성인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에게 오나전히 죽어서 없었습니다. 인류시조의 그 원죄로 인해서 죽었었는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것이 재생되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것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생기졌는데 이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이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족 가죽옷을 지어입히는 그것으로서 표현이 됐느네 그러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가지고서 자기들으 호위하랄는 것을 자기 아닌 다른 짐승의 가죽으로 가지고서 호위를 받는다 그 혜택을 네가 입어야 입어야 산다 하는 그것으로서 하나의 형식으로 표시한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대속주를 약속한 것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문서로 양속하기를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온전히 투쟁할 것인데 여인의 후손이 승리한다 하는 그것을 그렇게 표시해서 그들에게 한 형식을 보였지마는 그 속에 이슨 그 의미는 마지막에 가인과 야벨이 하나님 섬기는 데에서 확실히 들어나게 된것입니다. 이래서 어장자 셈은 이 나무의 부리와 또 나무둥치와 나무가지고 이것이 잘 조화가 맞고 이것이 아주 단합이 잘 되어서어 뿌리의 생명을 가지와 잎사귀도 자기의 생명으로 알고 또 뿌리도 가지와 잎사귀를 자기의 생명으로 알고 이것이 전부 갖다가서 하나가 되어서 된 아주 무성한 그 무성한 나무와 같이되어 있는 것이 백인종 입니다.
또 뿌리도 가지도 다 없이 잘라버리고 둘치만 남아 있는 그것이 곧 둘째 아들 (함) 셈의 흑인종의 것입니다. 또 이뿌리와둥치와가지 잎사귀가 이것이 잘 되어 무성하여 있지마는 이것이 그 농부인 눙부가 무엇 때문에 이걸 무성하게 기루고 있느냐 하는 그 농부의 에 그 배양의 목적 그 목적을 아는 이것이 비로서 이 피조물을 탁월한 피조물을 탁월한 그 조물주와 피조물과 의 그 일반적 피조물을 탁원한 조물주와 피조물과의 관계를 가진 그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중보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이것이 하나님이 영원전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 성취인 것입니다. 이래서 셈은 이 가지를 둘치 아니 둥치인 자체가 뿌리인 그 은혜의 근원과 은혜의 기관을 소중히 여겨 그것이 아니면 제가 마를 줄 알았기 땜누에 옷을 가지고 가서 덮을라고 그 뿌리가 병들면 제가 변들기 땜누에그 소중히 여겨서 덮을라고 애를 썼고 또 보지 안할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그 뿌리가 변등 것을 볼수 없을 만치 그렇게 자기는 놀래아파 그 뿌리변든 것을 변든 말도 듣기 싫어하고 그런 것이 있기를 싫어하는 아주 뿌리 병드는 것 주 싫어하는 어그것이거게 나타나 있고 또 뿌리는 중하게 여기는 것은 어개다 메고 들어가는 그것이 중 하게 여긴 것이 생겨 졌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은혜의 기관과 하나님의역사로 된다는 그 하나님의 은혜가 기관을 통해 나한테 오는 이것을 자기와 꼭 같이 여기는것이 자기와 꼭같이 여기는 그것이 지혜로운 일이요. 자기가 왕성되는 것입니다. 또 자체가 가지와 잎사귀가 되어 있는 늘 주기만 주지 하나도 받는 것은 없는 주기만주는 그것이에 자기와 꼭같은 귀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나타나기에는 나타나기에는 가지와 잎사귀에서 주는것 밖에는 나타나지 안하고 열은 지식으로서는 이거는 동치의 것을 받아가지고서 산다 이렇게 보여지지마는 넓은 지식으로 은밀한 깊은 지식에서 그 둥치가 잎사귀의 것을 받아가지고서 살고 또 가지의 것을 받아가지고서 살고 그 뿌럭지는 둥치와 잎사귀와 가지의 것을 받아가지고 그 뿌리가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지 안하면 그것이 또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이것은 뿌리나 가지나 둥치나 이것이 하나이라. 하는 이것을 말씀해서 녜 모든 걸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그와 같이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는 이것이 고 법칙을 하나님께서 나타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
그러기에 이 (함)셈은 뿌리도 가지도 둥치도 가지도 잎사귀도 없는 사람이요.
야벳은 부리와 가지와 잎사귀를 소중이 여긴 사람이요. 셈은 이것에 대한 존재 목적을 알았습니다. 존재목적을 알아서 어 그가 메고 들어간 것이나 또 보지 안하는 그것은 기관을 그런 것이고 이 메고 들어간 그것은 그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목적을 그가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셈은 하나님을 찬송한다 하나님을 찬양한다 셈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마은 하나님을 섬긴다 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그 삼형제가 그들에게 현재의 그 현 현왕에 따라서 이렇게 갖다가서 고대로 표시한 것이요. 고것을 밝히 해석한 것이요. 예언한 것이요.
고대로의 결과를 말한 것이기 때문에 셈은 하나님 섬기는 자체들의 존재 목적을 안 사람인 것은 것을 우리가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 해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비로서 피조물의 탁월성입니다. 이것이 모든 피조물은 피조물이지마는 천군천사의 모든 피조물은 피조물이지마는 이 피조물로서 피조물을 탁월한고 또 하나님 밑에 있고 하나님 밑에 피조물위에 그 중간지점에 중보자로 되어 있는 이 중보 위치는 어떤 작용으로 되어지느냐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존재의 목적을 하나님을 위해서 있다는 요 사실이 있는 양 고것이 중보자입니다. 고것이 고 중간 위치를 가진 것인데 예수님께서 요일을 달성을 해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으로 표시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어 목적을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목적을 했고 또 자체의 노력은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와 잎사귀에게 주는 요 역활을 했습니다. 요 역활을 하는 그 목적을 하나님을 위해서 했고 그의 생애의 법칙은 야벳의 법칙을 야벳의 법칙을 가졌고 또 그의 이 법칙생활의 목적은 그 셈의 목적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목적은 셈의 목저을 가졌고 방편은 야벳의 방편을 가진 것이 예수님의 하신 일이요 그 둘째 아들 함에 대해서 저주 한 것은 내나 예수님도 고것을 저주하고 멸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고걸 알기가 좀 어렵습니다. 아주 알기가 어려운 어려운 위치기 때문에 가서 여러분들이 깊이깊이 많이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알기 쉽도록 그러게 하나의 에비유로 가지고서 지금 말한 것입니다.
비유 우린느 나무로 말하면 둥치와 같고 나에게 은혜를 베푼 그 은혜 베푼 그 모든 은혜의 기관들은 뿌리와같다 그면 은혜는 어데서 부터 왔느냐 하나님의 역사가 피조물을 통해서 나에게 왔습니다. 그러면 은혜의 역사가 피조물 통해서 온 은혜의 기관 은혜의 도구 그를 통해서 온 은혜의 기관은 둥치같은 나에게뿌리같이 필요합니다.
또 또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 역사는 둥치같은 나에게 뿌리같이 요긴합니다. 그면 하나님의 은혜 역사가 뿌리요. 그것이 은혜의 기관을 통해서 나에게 왔습니다. 또 내가 가진 모든 후베와 자손 이웃 내가 그이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될 그것으로서 관련이 되가지고서 내가 거게는 책임과의 무를 졌기 때문에 내가 은혜 베풀지 안하면 안된다는 것 내 후손이라는지 후배라든지 나와 직접 관련되 있는 이웃이라든지 내가 하나님의 은혜 역사로 내가 받아가지고 있는 내라는 존재가지식으로든지 지혜로든지 봉사로든지 사랑으로든지 물질로든지 또 노력으로든지 뭐이든지 내가 도와야 되는 고 위치를 가지고 있는 고것은 둥치의 필요한 가지와 둥치에 필요한 잎사귀와 둥치에 필요한 꽃과 둥치에 필요한 열매와 같다 고것을 통해서만 열매가 맺어지지 달리 열매가 맺어지지 않는다 그면 가지가 없이 잎이 날 수 없고 잎이 나지 않으면 꽃이 필수 없고 꽃이 피지 안하면 열매가 맺지않는다 그러기 땜누에 내가 맺는 열매는 거게가서 맺어지게 된다 그면 그 존재의 목적을 이것을 깨달으면 농부는 뭘 보고서 하느냐 농부는 어떤 것은 어둥치와 가지와 잎을 보는 그 관상하는 것도 있겠고 또 제목으로 어소망하는 것도 있겠고 또 그 열매로 소망하는 것도 있으니 우리는 제목으로 소망하는 존재요 관상으로도 그 농부에게 소망되는 우리들이요.
또 그 열매로서도 또 소망되는 우리들입니다. 그면 우리를가꾸고 있는 그 농부된 하나님에게 우리는 우리 자체가 제목이 되가지고 스큰것처럼 필요하게 윌가 되어지는 쬐어져야 하는 존재들이요.
또 그 농부같은 그 하나님에게 보기 좋은 관상수와 이거 뭐 뜰에 갖다가서 이런 것 심어논 이거 뭐 아무 소용 없는 것 아닙니까 이거는 보고 좋아하는 것 이거는 말하자면 관상수입니다. 우리가 보고 감상하는 그런 나무라 그 말이오 또 하나님이 보기좋은 이관상에 의무를 가진 우리들이고 또 우리가 열매를 맺을 때에 이 열매를 또 이 하나님이 좋아합십니다. 그면 이런면으로 우리가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자라는 것은 부리로 자라게되고 자기와 잎사귀로 내가 자라게 되낟 그런데 내라는 존재 목적이 뭐이냐 이것이 그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한 것이다내가 조니재한 목적이 뭐이냐 목적은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요것이 비로서 피조물을 탁월한 피조물을 탁월한 중보성이요 피조물을 탁월한 통치성이요.
또 요것이 모든 피조물들을 은혜를 베풀어서 피조물들에게 은혜를 베풀 그 시은성인 것입니다. 이래서 어떤 데는 우리에게성경에말씀하시기를 우리는 하나님은 머리욧. 우리는 그 몸ㅇ리요. 그면 한 몸입니다. 모든 만물은 발등상이라 발등상이라 아주 그거는 갖다가서 딴존재로 연결이 관계 없는 존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래가지고서 만물 안에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는 그것이 교회라 그렇게 에베로서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는 요것이 자라는 것만치 우리는 영존할 영생인 것입니다.
영새은 어떤기 영생이냐 영생은 하나님을 위하는 요소 고 실력 하나님을 위하는 요소 고것만이 영생입니다. 고것만이 영생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고 또 고기 되는데에는 뿌리도 무성해야 되고 가지도 무성해야 되고 둥치도 무성해야 된다 그면 뿌리와가지와 둥치가 무성하는 그 목적이 뭐이냐. 하나님을 통부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암만 이기무성해도 하나님에게 그 농부에게 필요가 없으면 다 제거해버립니다. 암만 무성해도 그필요없으면 제거하지 않습니까. 어 저 오층 갖다가 정원에도 그아주 무성한기 올라왔는데 이거 필요없어 빼내버렸습니다. 농부들이 그 농장에 가 보면은 뭐 곡식은 자라지 안하지마는 잡초는 무성하게 자랍니다. 무성하게 자라는거는 뿌리하고 둥치하고 가지하고 아주 밀접한 관계로 구조가 잘되가지고 아주 무성합니다. 무성하지마는 왜 그걸 갖다가 매서 집어 던지버리느냐말이요 필요그 농부에게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그 우리가 요것을 똑똑히 기억합시다. 모든 은혜의 기관은 뿌리다 그뭐어 하나님이 주셨기 은혜기관이 무슨 소용이 없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 말은 무슨 어떤 주장과 같은 주장인고 하니 하나님이 역사하면 뭐 아버니 없어도 내가 날 수 있지 않느냐 고말과 꼭 같은 말입니다. 그건 나지 않는 것입니다.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셈이 은혜와은혜 역사를 잊어버리는 그것이 자체가 자멸하는 것이요. 자망하노 것입니다. 또 아무리 은혜 역사가 그거는 안다 할지라도 가지와 잎사귀를 잊어버리면 또 망합니다.
또 그것이 아무리 구조가 잘되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존재 목적이 무엇인 것을 알지 못하면 고만 이런 식물처럼 살다가 죽어버리고 망해버리고 마는 것이지 그것이 영생으로서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에게 필요있는 존재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 필요있는 존재는 그 목적을 바로 아는 고 양이 필요있는 존재 고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몸이요 모든 만물의 머리가 되는 것이 그것이 영생인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기에 그 가정에 가서 모면 아주 효성이 있고 요성이 요성만 있고 또 자기의 자손에 대해서 애호성만 있고 효성이 없으면 또 망합니다. 이 백인종은 야벳으로 말하면 어떤 성격을 가졌습니까 효성이 있고 또 자녀에게 대해서 아주 애호성이 있 고 양면을 가진 것입니까. 그 애호성만 가진 것으로 봅니까 어떻게 봅니까 응 어떤 것으로 봅니까. 애호성만 가졌소. 애호성만 가졌어. 애호성만 가졌기 때문에 위해서 자꾸 주고 주고 자꾸 내려와 주는 것 뿐이라 자꾸 주는 기 있으면 셈은 주는 것이 중요한데 주는 것보다 받아서 우리 올린다는 이것이 갖다가서 깨달은 것이 이것이 셈의 족속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효성은 백인종이 황인종을 따라오지를 못합니다. 또 하나님 섬기는 일도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계그것을 우리가 모두다 봐서 그게 자연계시인데에 성경은 그를 가르쳤고 성경은 또 그것은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잘 눈감고 생각해서 어리석은 짓을 어리석은 짓을 말아야 됩니다 응 은혜를 잊어버린 것이 자기를 죽이는 자살행위입니다.
또 자기가 은혜 베풀자리 베푸지 않는 그것이 또 자기 망치는 행위입니다.
그것만 귀중히 여겨서 여기고 존재 목적이 농부해를 생각지 안하는 것은 이거는 다 제초되버리고 맙니다. 무성해도 다 제거되버리고 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함의 후계도 안되야 되겠고 야벳의 후계도 안되야되겠고 셈의 후계가 되어져야 우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