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1 01:31
배움에 대해서
1985. 3. 4. 양성원개강
본문 : 단 1:14-20 그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더니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왕의 명한 바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데리고 느부갓네살 앞으로 들어갔더니 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 없으므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배움에 대해서 몇 가지 주의를 우리가 배우겠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입히셔서 그 은혜 입은 표적이 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이렇게까지 되는 그 순서는 그 밑에 성경에 기록된 것을 참고하면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배움에 대해서 첫째로, 배움에 대해서, 사람의 지식 두 가지를 우리가 세상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물리에 대한 지식이요, 또 하나는 사람에 대한 지식입니다. 사람에 대한 지식은 윤리, 도덕, 정사, 모든 이종교 그런 것들입니다.
이것은 다 세상이 가진 세상 지식입니다. 이 세상 지식이 이 두 가지인데, 물리에 대한 지식은 참되고 사람에 대한 지식은 전혀 거짓말입니다. 악령이 이 물리에 대한 지식을 정확하게 삣고 광대하게 연구를 시켜서 점점 이 지식이 더해 가도록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세상 지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세상 지식은 반은 참이요 반은 거짓입니다. 그들이 목적하는 것은 반인 참으로 완전 거짓말을 사람들에게 인정시켜서 유혹케 하려는 것이 사탄의 욕망인 것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반 거짓말로서 타락한 불택자, 또는 택자 속에 있는 옛사람에게 유혹의 목적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뱀에게 이 지혜를 주어서 이렇게 하도록 하신 것이나 피조물 범위 내에서는 뱀이 주동돼 가지고 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기서 배울 때에 신구약 성경의 도리 외에 인간에게 대해서, 윤리나 도덕이나 정사나 모든 종교에 대해서 말한 것은 전혀 거짓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있는 지식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다 그것은 사람을 멸망케 하려는 뱀의 지식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지식인 성경에서 두 가지를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두 가지를 배울 때에 새사람이 배우는 것이 있고 옛사람이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옛사람이 성경에서 배우는 것은 성경의 지식을 배웁니다. 또 하나 배우는 것은 성경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되느냐 하는 것을 배웁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확무오한 말씀이지만 배우는 그 자체인 주관이 옛사람이기 때문에 배움의 결과는 옳은 배움이 되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외식이 지식이 되어지고 옛사람의 지식이 되고 옛사람의 행위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5절 이하에 내리 보면 거기에 외식을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 외식은 다 성경대로의 하는 일이요 성경을 근거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화 받으리라고 정죄하신 것은 그들이 보고 믿는 구약 성경이 틀려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들 자체가 새사람으로 변화되지 않은 옛사람이 성경을 공부하고 성경을 깨닫고 성경에 행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그 주인이 옛사람인고로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권위에 복종하지 안하고 이 말씀을 자아의 그 주관이 비판해서 하나님의 성경 말씀은 저들에게 비판과 심판을 받아서 취사 선택을 당하게 되는 이런 성경 지식을 가지고 행동도 그와 같이하기 때문에 그건 다 외식의 행동이요 옛사람의 행동인 것입니다.
또 하나 예를 든다면, 요한 복음 5장 9절과 10절에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나은 날은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요 자존의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다 이렇게 저렇게 내놨는데, 예수님께서 안식일날 삼십 팔 년 된 병자를 고쳤다고, 또 그 외에도 예수님께서 저희들이 성경대로 하는 그 법칙을 예수님이 어겼다고 해 가지고 정죄해서 이것이 근거가 돼 가지고 십자가에 못을 박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서도 뱀의 지식을 반 거짓말 지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 지식이 가장 으뜸 되는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그대로 양성원에서 공부하면 안한 것보다 훨끈 그 뒤가 화스러울 것입니다. 요한 계시 17장 2절 이하에 보면 음행의 포도주라고 하는 것이 막바로 이 반 거짓말, 물리와 인간에 대한 지식 이 두 가지, 곧 세상 지식, 뱀의 지식 이것을 가리켜서 음행의 포도주라 그렇게 성경에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새사람이 그 지식을 가질 때에 믿음으로 가지면 하나님의 선물이 됩니다. 뱀의 지식도 믿음으로 가지면 하나님의 선물이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세상 지식도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순종하기 위해서, 밥하라고 명하면 밥하고 노동일 하라고 하면 노동일 하고 또 뱀의 지식을 네가 듣고 배우라면 배우고, 하나님 그분에게 속해 가지고 그분으로 인하여 뱀의 지식을 접하고 받았다면 그는 선물로 얼마든지 잘 유익 되게 활용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신입생들이 들어오는데, 첫째로 부탁하는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은 뱀의 지식인데 반 거짓말 지식이라. 반은 온이 있는 온 옳은 지식 물리 그것도 거짓된 인간에 대한 지식을 권위 있도록 만들어서 유혹시키기 위해서 그것을 뱀이 역사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구별하지 안하면 뱀의 지식이 제일 위대하고 광대하고 크다고 이렇게 오인해서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지게 될 것입니다.
제가 어떤 학교 신학생을 만났는데, 무엇을 하느냐 물으니까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신학 공부하면 무슨 과를 공부하고 있느냐 이라니까 철학과를 공부하고 있다고, 왜 철학과를 택했느냐 이라니까, 그는 '목회를 할라면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을 알아야 목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러면, 철학이 목회 하는데 무엇이 필요하냐?' '예, 이 성경이 도리이기 때문에, 도이기 때문에, 세상 무슨 과학의 무슨 지식이나 이런 것이 아니고 또 일반 세상 지식이 아니고 종교 지식이기 때문에 종교 지식에 가장 도움이 되는 철학을 공부해야 될 줄 알고 그래 공부를 합니다' 그렇게 그 사람이 대답을 했습니다.
그래 내가 그 사람에게 '누가 그렇게 그 지도를 했더냐? 잘못 택했다. 철학은 성경과 정반대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계시의 도다. 땅에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위에서 열어 주셔서 우리가 받아서 보는 것이 성경 도리 계시의 도요. 세상에 있는 모든 철학은 인간이 인간 속에 완전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인간이 인간을 무한히 파고 들어가서 자기 주관에서 주관으로 주관에서 주관으로 자율에서 자율로 점점 이렇게 모으고 이리 빼딱거리고 저리 빼딱거려서 이렇게 복잡 혼돈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그것이 철학인데, 철학은 인간 속에 원전이 있다고 인간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철학이요. 성경은 하나님의 지식인 이 지식을 따라서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 그것이 기독교이기 때문에, 네가 목사하는 목회하는 데에 정 원수인 반대의 지식을 네가 공부하고 있었다. 이러니까 그것을 버리고 돌아서야 될 것이다' 그렇게 말했는데, 그 사람이 그때는 긍정하는 것 같디만 하나의 그저 변론에 진 것이지 그 사람이 전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제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여기서도 그런 사람들이 양성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기 가르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지식은 다 아는 것이요 한글로 해 놔서 다 읽고 여러 수십독 백여 독씩 다 읽었는데, 이런 말 해 가지고는 세월이 없고 인기가 없고 하니까 한국에 없는 외국에 있는 말, 한글말 한국 말로 기록되지 안한 외서 속에 있는 거 모르는 거 그런 걸 하나 내다 줘야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겠고 또 인식하려고 할 것이고 그들이 다 정신이 혹해서 딿지 성경 그것만 가지고 말해 가지고는 아무런 그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가 없다. 또 그들을 인도하는 데에 딿게 할 위력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강사들의 강의가 가끔 나와질란지 모릅니다.
나올 때에 여러분들은 들을 때에 '뱀의 지식은 듣기 싫다. 우리는 그 지식으로 듣기 싫다' 하는 말을 안할지라도 속으로 '저거는 뱀의 지식이니 미혹시키는 지식이니까, 이거는 유혹시키는 지식이니' 그렇게 정죄해 놓고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주신 선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에 이용물로 삼을지언정 내가 그대로의 살거나 그대로의 행동하거나 거기에 복종할 그 지식은 아니고, 내가 살아야 될 지식과 복종해야 될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 이것만이가 사람에 대해서 참된 지식이기 때문에 이 지식에는 나는 복종하고 이대로 나는 생활 법칙을 삼겠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구별하지 안하면 안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한국에서도 보면 그 사람을 높일라면 박사라 해야 인정해 주고 또 그 사람을 박사라고 불러 줘야 존칭이 되지 목사라고 부르면 그거는 아주 그 사람에 대해서 그저 존칭하지 안하는 것으로 그렇게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그 것도 순전히 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뱀적인 것이 벌써 돼 가지고 하는 이런 것입니다.
물론 신학 박사도 있고 다 있지만, 신학 박사도 그것도 동방 박사 이름이 있기는 있지만 실은 성경에는 목사의 직만 못한 직입니다. 성경으로 할 때에는 그런고로, 세상 지식을 여러분들이 똑똑히 구별해야 할 것이고,
둘째로는, 성경에서 배울지라도 내가 예수님의 피공로를 입어서 나는 완전히 예수님의 것이 되고 예수님은 내 것이 되어지는, 완전히 법적으로 교환되어 있는 이 교환 조건에서 자신이 새사람으로 변화되지 안하고 내나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 곧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이런 사람이 돼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지식하고 성경에 가르치는 그 방편으로 행동 하는 것은 자타를 속이는 크게 위험한 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성경을 지식적으로 배우나 자기에게 거치는 것은 수락하지 안하고 옛사람에게 거치지 안하고 옛사람과 일치되는 것만 수락하게 됩니다. 또 행동도 옛사람과 동행할 수 있는 행동은 자기가 취하고 옛사람에 대립이 돼서 옛사람을 죽이는 행동이 되는 그 행동은 배격하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 믿는다는 이름은, 성경 말씀대로 사는 신앙 생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속에는 순전히 악령이기 때문에 그것은 변색해 가지고 오는 간첩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아주 흉측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한국 교회나 세계 교회를 죽이는 자가 누구냐? 죽이는 자가 신학자들이요 교역자들입니다.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를 살리는 자들이 누구냐? 살리는 자들도 신학자들이요 곧 목회자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여러분들이 분별하고 살아야 되지 이것을 분별하지 안하고 허영과 허욕에 취해 가지고 명예 영광심 가지고 그와 같이하면 도리어 화약 지고 불로 들어가는 거와 같은 그런 잘못을 저질 수 있는 그런 실력을 갖추는 것이 되게 될 것인 것입니다.
거기 셋째로는, 성경 안에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가 두 가지 배우는 거 있습니다. 대속을 입은 자가 배우지, 대속 입는 것이 이것이 중요하지 대속을 입지 안하면 바른 것을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속을 입은 자들이 두 가지 배우는데 하나는 영감의 깨달음을 배우게 됩니다. 영감을 배우게 됩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에 문서를, 그 문서를 옛사람이 보고 깨닫는 것과 새사람이 보고 깨닫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옛사람이 보고 깨닫는 것은 옛사람 저에게 좋도록 제가 무성하고 부강해지도록 깨닫는 것이고, 새사람이 깨닫는 것은 새사람이 좋고 새사람에게 부강해지도록 깨닫는 것이기 때문에 정반대입니다. 이래서, 새사람이 되면 성경을 신본으로 깨닫게 되고 옛사람이 되면 성경을 인본으로 깨닫게 됩니다.
요새 주일학교 학생들 설교할 때에 동화라고 하는 것은 순전히 그거 뱀의 설교입니다. 그거 뱀의 설교입니다. 우리 서부 교회 주일학교에 대해서 시찰하러 온 교회가 아마 한 사오백 교회 될 것입니다. 되는데, 올 때마다 내가 그것을 말을 합니다. 말을 해서, 그대로 가서 고친 교회들은 다 주일학교가 이 배, 적어도 삼 배 사 배 십 배 되는 그렇게 늘어 나가는 그런 교회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세상 지식과 같이 그렇게 깨달아서 인본으로 깨닫는 것을 말해서 모두 신신학이라 그렇게들 말합니다. 요새는 신신학이라는 말이 파묻히고 잘 들리지 않습니다. 또 인본주의라는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 말은 뱀이 싫어하니까 뱀의 세력이 커지니까 차차 그에게 가리어져서 인본주의니 신신학이니 하는 것이 파묻혀서 들려지지 않습니다. 인본주의는 간단하게 말하면 뱀의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 그 지식을 기준해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논평해 가지고 취사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인간의 지식 물리 지식을 그것을 토대로 삼아 가지고 그와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식은 이 지식에게 지음 받은 그 물질의 물리를 창조한, 그것들을 초월한 그것들의 원인이고 그것들을 창조한 그런 아주 고차원의 하늘에서 내려온 지식이기 때문에, 물리 지식이 감히 우러러 볼 수 없는 아주 고차원의 지식이기 때문에, 백 미터 올라간 사람이 천 미터 이상의 상상의 광경을 볼 수 없는 거와 같이 하나님의 이 계시 지식은 새사람이라야 습득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새사람은 무엇인데 그런가? 새사람은 주님의 피공로와 성경과 진리로 살아난 새사람이기 때문에 근본 거기에서 나온 사람이요 그 사람으로 자란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의 성질과 꼭 같은데 자기가 아직까지 유치해서 미달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말씀해 주시기 때문에 그는 동질이기 때문에 즉시 받아서 다 습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새사람이 되면 성경을 읽는 데에 영감의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영감의 가르침을 받게 되고, 새사람이 아니면 뱀의 지식의 가르침을 받아서 언제든지 성경을 알고 연구한다고 해도 뱀의 지식을 근거해 가지고 거기에 맞도록 하기 때문에 그거는 다 합리적인 해석이요 과학적인 해석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적인 해석이 아닙니다.
영감의 계시로 해석하는 계시적인 해석인 것입니다. 영감의 깨달음을 그 사람이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 여러분들은 영감의 깨달음을 배울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종별 선택의 능을 배웁니다. 종별 선택의 능을 배운다 그 말은 자기가 현실을 당할 때에 이 성구를 내가 지금은 복종해야 되느냐 저 성구를 복종해야 되느냐,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복종해야 할 그 성구를 선택할 줄 알게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요한 1서에는 네 안에 기름 부음이 너를 옳고 바르게 참되게 가르치나니 기다리고 있어라 그렇게 말씀하신, 영감이 어떻게 행동할 것을 가르쳐 주심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새사람이 권능을 받아 가지고 사는 이것입니다.
거기 참고하려고 하면 사도행전 1장 4절과 5절과 8절에 보면 권능이, 성령이 너에게 임하면 권능을 얻어서 증인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그렇게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16장 17절에는 보면 '이는 혈육이 너에게 알게 한 것이 아니라' 그 말은 세상 지식이 너를 알게 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알게 한 것이라'하는 그 말씀, 곧 성령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그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사람에게 배울라고 하는 것보다도 주님에게 직접 배울려는 그것을 목표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가르쳐도 주님이 사람을 통해서 가르치는 가르침이 있고, 뱀이 사람을 통해서 가르치는 가르침이 있으니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다 죽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54절에도 보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그 속에 생명이 있다 하는 그것이 곧 새사람은 그 속에 하나님과 연결이 있다 그 말이오. 생명이 있다 말은 하나님과 연결이 있어 가지고 성경도 깨닫게 하시고 또 행할 것도 알게 해서 행하게 되는 이것을 표준삼고 여러분들이 노력해야 되지, 세상에 많은 지식, 다 자기 간판을 가지고 내세워서 어떻게 하면 자기를 인기를 끌까 어떻게 하면 자기를 좀 알아줄까 이래 가지고 순전히 섞인 것 없는 자기로서 똘똘 뭉친 강한 자기, 자기 위주 주관 자기 중심 이런 것에서 나오는 그 해독이 가득 가득 찬 그 뱀의 지식을 분별하지 못하고 받아들인다면 다 죽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것이 오면 호소를 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런 지식을 받기 싫다고 그렇게 호소하는 일을 해야 됩니다. OO 신학교에 다닐 때에도 어떤 사람은 거기에서 정치학을 공부할 때나 또 이렇게 조직 신학을 공부할 때도 그때에 '이런 거는 배울 수 없다' 이래 가지고 교장한테 가 가지고 세 시간 네 시간 토론을 하고 대화해 가지고 뜯어고치고 하는 그런 일들도 있습니다. 생명이 속에 없으면 다 죽은 것이요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 한 사람은 천 명도 더 당하고 만 명도 더 당합니다.
그것이 많지 숫자 많은 것이 그거 아무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소수보다 다수가 좋은 것이지만 다수보다는 진리가 크고 하나님이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기에 표준을 두고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안에 있는 새사람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그 새사람이 두 가지 받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 곧 하나님의 영, 그 영의 지시를 받는 것입니다. 그 영의 지시를 받는 일이 있습니다. 이래서, 요한복음 12장 49절 이하에 보면, 49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말하는 것이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서 아버지가 일하시는 그 일이 내 말로 나온 것이다' 아버지의 지시를 받은 것을 말했습니다. 또 내가 스스로 하는 말은 한 마디도 없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요한복음 6장 57절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라' 그 말은, 나로 인하여 산다 그 말은 주를 위해서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이 속에 능동돼서 그분에게 피동되어 산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렇게 새사람으로 성신의 감화의 가르침을 받고 또 성령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하는 그 행위 종류 선택을 받아 가지고 살려고 애를 쓰고 이렇게 애써 나가면 나중에는 저가 그리스도의 대속 안에 있는 새사람이 되어 가지고 두 가지 귀한 것을 받는 것이 있으니 하나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는 것. 하나님께서 이래라 저래라. 자기가 처음에는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분에게 복종할려고 애를 쓰는데 복종할려고 애를 쓰는 그 일을 오래 동안 해나가는 가운데에서 내가 복종할려고 애를 쓰는 게 아니라 그분이 나를 사로잡고 나를 쓰셔서 나를 지시해서 내가 그분에게 쓰여지고 그분에게 피동되는 그런 일이 이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를 인하여 산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양심 삼아서, 예수님의 대속을 양식 삼아서 살면 어떤 사람이 되느냐? 나도 저 안에 있고, 나도 저 안에 있고 저도 내 안에 있다. 이러므로, 나를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산다 그 말은 제 마음대로 능동적으로 살지 안하고 주님이 자기 안에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분에게 피동 돼서 그분이 주장하고, 그분이 세력을 받아 가지고 그분에게 꼼짝 못 하고 자유를 다 박탈당하고 그분이 자유 하시고 주권 가지고 그분이 주장하는 데에 그분의 뜻대로 살고 그분의 능력에 피동 되어서 산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갈라디아 2장 20절에는 보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 네 가지 단계적인 공부를 해서, 여러분들이 여기서 모든 공부하는 것이 믿음으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공부하는 것이 이 공부하는 이것으로써, 노동하는 사람은 노동 일에서 믿음을 지키고, 노동 일을 통해서 주님과 밀접하게 사귀어지고, 또 공무원 하는 사람은 공무원 사무 보면서 거기에서 주님과 밀접하게 사귀어지고, 거기에서 주님의 그 지시를 따라서 내가 움직이는 이 자리에 가다가, 마지막에는 당신이 나를 거머쥐고 당신 소원대로 나를 소원되게 해서 당신의 소원을 내 속에 넣어 줘 가지고 그분의 소원이 내 소원이 되고 그분의 움직임이 내 움직임이 되도록 이렇게까지 되어지는 이것을 공부하는 공부가 돼야 되지. 여기서 세상 뱀의 지식 그것을 하나 들어서 자꾸 새것만 들어서 할라 하면 여러분들도 피곤할 것이고 또 그런 것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줄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공부하는 것은 일반 이 세상이 공부하는 것과 다른 세상이 모르는 공부를 해야 될 것입니다. 요한 1서 3장에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도 모르고 우리도 모르고, 우리가 공부하는 것도 세상이 모르고, 우리가 배운 것도 세상이 모르고, 우리가 욕망 하는 것도 세상이 모르고, 우리의 실력도 세상이 모르고, 세상은 싫어하는 거, 왜? 이것은 세상을 죽이고 세상을 다 양식 삼아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환영하지 않는 것입니다.
잠깐 기도합시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렇게 호호 양양하고 심히 아름답고 찬란한 세상 길이 많고 굉장히 뛰는 음녀의 그 알량 거리는 유혹이 가득 찬 이 세상 속에서 광대한 눈을 가지고 그것이 몇백 종류로 몇천 종류로 울렁거려도 다 사망 아래에 있는 것이며 유혹의 뱀 술책 안에 든 것인 것을 깨닫고 여기서 초월하여 생명의 도를 배우고 생명의 일군들이 되어서 자신이 먼저 살아나고 사망에 속하여 있는 모든 사람들을 주님이 주신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의 사람이 되어 이들을 구출하려는 지극히 큰 소망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미혹 없이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순전히 주의 피의 능력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의 은혜와 진리의 능력의 은혜의 이 긍휼이 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압니다. 긍휼이 여겨 주셔서 저희들로 하여금 날마다 자기를 꺾고 죽여 옛사람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그리스도로 다시 살아난 새사람으로 사는 이 일을 날마다 힘써서 장성해짐으로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사는 이 장성한 힘을 얻어 옛사람을 죽이는 이 직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주의 이름과 의를 위해서 역사해 주시옵소서.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종들에게도 잘 구별해서 까딱 하면 인본, 힘쓰면 신본, 까딱 하면 세상 천국 이렇게 되는 이 기로 중에 있는 것을 항상 깨닫고 구별하여 죽이고 살리는, 버리고 취하는, 언제든지 이 기로를 잃지 않고 깨어 살리어 깨어 가르치고 인도할 수 있는 은혜가 함께 하여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