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16:14
믿음-하나님의 뜻
본문 : 히 11 : 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은 비밀이요 지극히 큽니다.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그 모든 내용은 굉장하고 다 지극히 크고 많아서 모두를 다 무한이라 할 만치 많고 또 완전이라 할 만치 다 깨끗하고 참된 것들 입니다.
믿음은 간단한 것입니다. 알고 인정하고 그만 그대로, 알고 인정한 대로 살면 그만 됩니다. 아주 간단한 것이오. 그러나 이 믿음 안에는 참 사람이 상상도 못 할 지극히 크심이 내재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극히 크신 하나님과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과의 이 사이에 믿음이면 하나님의 그 무한이 유한한 우리들의 것이 됩니다. 아주 우리만으로서는 허무하고 미약한 존재이며 또 아주 무가치한 지저분한 무능한 것이 추접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믿음만 딱 붙여 놓으면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깨끗하고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믿음의 이 비밀을 확실히 깨달아 잡은 자면 그 사람은 피조물이면서 전능자 같이 되고 전지자 같이 되고 완전자같이 됩니다. 그 사람이 믿음 가진 것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고 부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세계에 뭐 어떤 으뜸되는 그 자리를 경제적으로나, 무슨 학적으로나, 권력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어떠한 자리에 있다 해도 그것은 아주 무식한 낮은 차원, 믿음이라는 이 가치를 모르는 그런 세계에서는 그것을 크다 높다 가치 있다 이렇게 평가하지마는 믿음의 이 비밀을 알고 본 자들에게는 그런 것은 다 똥오줌과 같이 여깁니다. 아주 허무한 것으로 무가치한 것으로 여깁니다. 이것을 그들은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 저희 주관대로 해석해서 주관 놀음이지 사실에는 그렇지 않다. 이 세계에는 얼마나 위대한 것이 많이 있다. 해서 믿음의 이 비밀을 깨닫고 믿음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미치괭이같이 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은 다 완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모두 우리 기독교는 믿음의 도요 기독교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이루어 가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믿음은 세 가지, 아는 것, 참되다 의심없이 인정하는 것, 그만 그대로 사는 것, 가라 하면 그대로 가고, 앉았으라 하면 그대로 앉고, 먹으라 하면 먹고 무엇이든지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그만 사는 것이오. 그대로 아는 것이오. 이거는 돈도 안 들고 뭐 아무 자원이 들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를 부인하고 전적 거게 소속하고 피동되는 것인데 아무 자원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위력을 가진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아주 실력을 가진 자요 강한 자입니다. 왜? 온 세계의 인류를 다 점령한 악령은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 하려고 전력을 기울이고 전인류를 동원해 가지고 역사하는 그 비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르는 그 이면에 지극히 큰 운동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믿음을 가진 자는 세상을 이긴 자요, 마귀를 이긴 자요 마귀에게 속한 모든 마귀위 정병들을 다 이기고 난 후에 가진 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믿음은 아무 자본 안 드는 것이나, 지극히 큰 능력을 가진 실력가인 것입니다.
악령이 어떻게 해서 이 믿음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가? 그것은 그놈이 우리 인류시조 때부터 인류를 죽인 '네가 선악과 먹으면 하나님 된다' 이래서 살살 꼬와 가지고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생각도 자기 중심의 생각, 모든 소망도 계획도 전부 네면 된다. 네 생각이면 되고, 네 소원이면 되고, 네 욕심이면 되고, 네 뜻대로면 되고 네 지혜대로 네 생각대로 하면 된다 이렇게 해서 전인류는 하나도 빠짐 없이 마귀에게 꼬임받아 가지고 각각 다 제 지혜대로 지식대로 제 살력대로 이렇게 분투 노력하는 것이 전인류입니다. 그 결과는 전체가 다 사망입니다. 우선 시공계의 사망뿐만 아니라 영원한 사망입니다.
이러기에, 믿음을 가진 자는 악령의 유혹을 이기는 자요 악령이 벌써 근 육천 년 동안을 우리 선조 대대로 이 일을 해 놨기 때문에 인간들이 다 자기로 살고 있는 것이 다 인간입니다. 이거는 아주 뿌리가 깊이 박혔습니다. 이랬는데 자기를 부인해야 믿음을 가지지 자기를 부인치 않고는 믿음을 못 가집니다. 자기를 이겨야 믿음을 가지지 자기를 이기지 못한 사람은 믿음을 못 가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믿음은 약한 것 같으나 강하고 아주 실력이 없는 것같이 보이나 아주 강한 실력을 가진 것이 믿음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니까 '주여, 나도 물 위로 걸어서 주님에게 가도록 오라 하십시오' 말할 때에 주님이 '오라', 그뭐 배가 하나도 있는 것도 아니고 나무 쪼가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니까 주님이 걸어오라고 하시면 나도 틀림없이 걸어갈 수 있다 하는 것을 베드로가 욕망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라' 이러니까 그 배에서, 그렇게 놀라서 야단 지기던 자가 그만 배 위에서 옷 입은 채로 푹 내려섰습니다. 내려서니까 배 밑에 있는 바다물은 육지같이 튼튼해서 걸어서 점성점성 지금 주님 앞에 갑니다.
이것이 주님이 오라는 말씀을 듣고 오라 하셨으니 이는 틀림없다 가면 된다.
인정하고 가니까 걸어갔습니다. 가다가 그만 풍랑 이는 것 보고 푹 빠져 들어가니까 죽을 지경이라 주님에게 호소했습니다. 이라니까 주님께서 구출하셨습니다. 그가 물 위에 걸어간다는 것은 역사에 그것도 없는 일입니다. 뭐 물재주를 많이 한 사람들은 수영은 별별 다 하지마는 물 위로 걸어가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물위로 걸어간 것이 그것이 다른 것 아무것도 없소. 주님이 오라 하신 것 듣고 알았고, 오라 하시니 이는 뭐 어누리 있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도 없고 오라 하시니 가면 된다. 요게 인정입니다. 가니까 됐습니다.
그래 나중에 가다가 물에 푹 빠질 때에 주님이 베드로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적게 믿는 자야 왜 의심하였으냐?' 그 말씀 했습니다. 그러니까 알기는 꼭 같이 알았는데 인정하는 데에서 사고가 생겼습니다. 인정하니까 물이 육지같이 되어졌고 인정이 고장나니까 그만 물이 물로 돌아가서 빠져들어갑니다. 이것이 믿음의 비밀입니다. 죽어서 사 일이 됐으니까 내음새가 나는데 예수님께서 '어데 있느냐? 돌을 옮겨 놔라.'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돼서 벌써 살이 썩어서 지금 내음새가 나고 그뭐 살이 모두 출출하게 썩었을 터인데 열면 흉한 것만 보이지 뭐 열 게 뭐 있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은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이 말씀을 네가 믿느냐?' 요 믿음을 딱 갖다 붙였습니다.
이러니까 마르다가 깜짝 놀라서, '예, 주여, 믿사옵나이다.' 했습니다. '그러면 돌을 옮겨 놔라' 돌 옮겨 놓으니까 나사로가 예수님이 부르시니까 대답하고 살아나왔습니다. 믿음은 요게 요 보이지 아니하나 믿음 믿느냐? 인정하느냐 그 말이오. 인정하느냐? '의심 없이 된다는 걸 인정하느냐?' '예, 인정합니다.' 하니까 살아 나왔어. 이것은 무슨 과학적으로 아무런 흔적도 없는 것이요 과학적으로 어떤 부스러기도 하나, 여러 수백 배 뭐 수천 배 돋보기로 봐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어. 다만 자기 부인하고 하나님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다 됐어. 기독교는 전부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인데 이것은 전부가 믿음 가지고 되는 것이오.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지난밤과 새벽과 오전에 공부를 했는데 의뢰하는 하나님 외에 돈을 의뢰하든지, 뭐 세상에 어떤 피조물을 의뢰하든지, 자기를 외뢰 하든지 의뢰하는 것은 다 주님이 제해 버리신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그 정반대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겸손해지고, 또 가진 것에 대해서 보관이나 사용이나 대해서 조심하게 되고, 모든 질서가 조직이 다 정연하게 되고 딴거 의뢰하면 모든 조직과 질서가 다 혼합되어서 전부가 꺼꾸로 된다. 아이가 어른 다스리고, 낮은 자가 높은 자 다스리고, 악한 자가 의인을 다스리고 이렇게 해서 모두가 다 꺼꾸로 된다.
하나님을 의뢰하면 그 반대로 좋아지고, 땅위에 어떤 것이라도 의뢰하면 그는 다 절단난다. 절단나는 기간이 서서히 절단이 남으로써 다시 고칠 희망 없이 절단나 버리고 만다 하는 것을 이사야 3장에 내리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들었는데 그러면 여게서 나는 '나를 구속하신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 얼마며 하나님 외에 피조물을 의뢰하는 것이 무엇 무엇이며 얼마인가?' 하는 이런 것을 우리가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의뢰라 말은 그분에게 받아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분을 힘 입어서 내가 그분에게 받아 가진 것을 의뢰라 말하고, 의지라는 것은 자기 가진 것을 가지고 움직일 때에 자기의 배경으로 든든히 삼고 나아가는 것을 가리켜서 의지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래서 우리는, 내가 그러면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거는 의뢰한다.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하나님께 받아서 가졌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셨다 해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기가 받아 가진 것을 자기가 인정하고 인정하면은 거게서 필연적으로 조심하게 되고 겸존하게 되고 자꾸 이렇게 정상적인 모든 옳은 행위가 필연적으로 점점 발생하게 되는데 자기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안하고 어떤 피조물을 의뢰하면 그것은 뭐 간단하게 다 그것은 하나님이 망친다. 없애 버린다.
또 딴것을 의뢰하면 그것으로 자연 결과로, 자연 결과로 필연적으로 모든 것이 서서히 순서적으로 다 패망해서 멸망이 되게 된다. 이렇게 한 말씀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의뢰하는 것이 뭣뭣인가?' 그러면 자기가 의뢰하는 것을 찾는 것, '내가 지금 의뢰하는 것은 뭣뭣인가? 나는 학을 의뢰하는가, 청년을 의뢰하는가, 세상 무엇을 의뢰하는가? 가진 소유를 의뢰하는가? 자기의 실력을 의뢰하는가?' 무엇을 의뢰하든지 자기가 의뢰하는 것을 찾는 것은 무엇을 찾는 것입니까? 의뢰하는 것을 찾는 것은 하나님이 멸망시키실 것을 찾는 것입니다. 또 의뢰하고 있는 그것을 찾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대적된, 대적되게 된 그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의 전생애에 하나 둘을 따져서 간추려 계산을 해 봅니다. 그러면 의뢰하는 거 그것은 '이는 전능자가 멸망을 시키기 때문에 의뢰한 이거는 멸망한다.' 이것을 자기가 확실히 믿으면 재빨리 그것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게도 믿음이 중요합니다.
자기가 '나는 이것을 의뢰했다. 이거는 전능자가 대적이 돼 가지고, 선포한 계약 율법책을 내놓고 낱낱이 만군의 전능자가 대적해 가지고 이는 멸하신다.' 이것을 믿을 때에 회개의 능력이 나옵니다. 거게서 구출될 능력이 나옵니다. 또 이것을 믿음 때에 '하나님과 나와의 원수되게 된 것은 이것이로구나.' 해서 떨리게 될 것이요 사전에 거게서 구출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되어진 그것을 발견했는데 '나는 이거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있다' 발견했는데 발견했지만 '하나님을 의뢰해서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의뢰해서 하나님에게 받아서 하나님이 주신 것인 것 알고 이렇게 믿음을 가지면 조심해서 그거로 말미암아 모든 축복이 다 거게서 솟아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오후에 이 말씀을 한번 더 다져서 말하는 것은, 우리 각자들어 의뢰하는 게 무엇인지 그걸 찾아 가지고 '이것은 첫째로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과 원수되게 한 원인이다.' 요것을 알든지 모르든지 그대로 당하는 것이니까 요 도리를 배워서 확실히 믿으면 거게서는 생명의 움싹이 터 나올 것이고, 그거 뭐 지나가는 말로 백 목사가 그렇게 저렇게 말한 것이라 이렇게 생각하면 백 목사 말 그까짓거야 산더미같이 있어도 그까짓 거 아무 가치 없어. 한 마디도 가치 없어. 이렇게 자기가 하나님 아닌 의뢰하고 있는 것, 자기는 그것을 의지 하고 있는 것도 그것에게 받아서 내가 가졌고, 또 그것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받아 가질라고 하는 것, '내 이 행복은 돈이 나에게 행복 줬고 또 앞으로의 남은 행복도 돈이 줄 것이라' 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요, 이미 받았고 또 앞으로도 그것을 바라보는 이것이 의뢰하는 것인데 이 의뢰하는 이것은 하나님과 원수되고 멸망한다 하는 이것을 믿으면 거게서 살아나올 수가 있습니다. 믿으면 살아나올 수가 있고 믿지 아니하는 자는 그대로 가다가 멸망을 받고 맙니다. 천지는 변해도 당신이 선포해 놓은 이 계약은 획 하나도 가감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보증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오후에 한번 더 말하는 것은 뭐 의뢰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라 많이 있는데 이것을 간추려서 이것으로 말미암은 어떤 결과가 맺는다 하는 그것을 많이 말씀을 했지마는 거기다가 믿음을 첨부하지 않기 때문에, 이 보배로운 믿음을 거기다가 딱 붙이지 않기 때문에 그 말씀이 자기에게 아무 효력 없어서 멸망하는 자는 그대로 멸망하고, 교만한 자는 그대로 교만하고, 학대하는 자는 그대로 학대하고, 모든 질서 문란의 파괴하는 자는 그대로 파괴하고, 월권 남용으로 사치하는 자는 그대로 사치하다가 비참하게 망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 외에 자기가 의뢰하는 것은 다 우상이요 그것은 전멸이 된다는 요것을 우리가 다시 똑똑히 기억하고 요게다가 믿음을 붙이시기를 바랍니다. '이는 틀림이 없다, 요대로다.' 하는 요 인정을 붙이기를 바랍니다.
인정을 붙이면 거게서 산 생활이 나올 것이요, 이미 하나님에게 대해서 의뢰하는 것은 용기와 능력과 평강이 나올 것입니다. 이래서 요것을 요대로 단단히 가지도록 하고 후회하지 않도록, 망하고 난 다음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ll장 l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하는 이 말은, 우리가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다 계약해 놓으셨는데 이 계약해 놓은 그거는 다 우리 것 아닙니까? 우리가 그것을 소망하고 있지 않소? 하나님도 내 하나님이 될 수 있는 이 소망도 성경에 기록돼 있고, 하나님의 온갖 완전도 내것이 될 수 있다는 이 사실이 우리 소망으로 가지라고 기록해 주셨고, 천상 천하에 모든 것을 다 얻을 수 있고, 모든 것으로 더불어 영원한 화평도 누릴 수가 있고, 어떤 문제라도 해결 안 될 문제가 없고, 어떤 멸망이라도 거게서 벗어나지 못할 것 하나도 없고, 나쁜 것 다 고쳐 좋게 되고, 좋은 것 더 좋게 되고 하는 이것이 성경에 있는 소망 아닙니까? 바라는 것이라 말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우리 소망이라 그 말이오. 우리 소망.
믿음은 이 성경에 우리의 소망으로 나타나 가지고 있는 것은 다 실상으로 만든다 그 말이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하는 것은 믿음은 모든 소망하는 것들을 실상으로 만든다 하는 그 말이오. 이 말의 알맹이는 '믿음은 실상이다' 그 말이오. '믿음은 실상이다' 믿음은 실상이라니? 하나님이 하신 그 말씀은 알고 인정하면 벌써 실상이 됐는데 먹으라 할 때 먹으면 된다. 물 위에라도 걸어가라 할 때 걸어가면 된다. 불미 속에 들어가도 '하나님은 모든 걸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불은 나를 멸하지 못한다'하는 것을 인정하고 안심하고 웃으면서 즐거워하면서 불속에 던지움을 받았는데 내나 그대로입니다. 불 내음새도 안 났습니다. 그런 것을 하나씩 보여 주면서 이런 일도 있다 하는 그 희귀한 예를 우리에게 보여 준 것 아니오. 성경에 모든 증거를 보인 것은 희귀한 것이 아니고 전부가 다 그러합니다.
이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믿음은 소망하는 것들의 바로 실상이요 실체다.
바로 그 실체다. 하나님은 말씀과 실체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실 때도 그분이 말씀하시면 그대로지 말씀하고 난 다음에 뭐 되나 안 되나 신강이 있어 가지고 되어지는 게 아니고 말씀이면 바로 실상입니다.
말씀이면 바로 그 자체요.
'바다야 생물을 내라' 하시니까 그 생물 내는 데에 무슨 시간 걸린 게 아니라 '생물 내라' 하시니 내나 실상이 고대로 돼 있소.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곧 실상이라는 요것을 우리들이 믿어야 합니다. 요것을 지금 내가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상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행하면 실상이 됩니다. 이것은 모르니까 말하는 것이지 실상이 이루어지는 그것이 알고 인정하니까 그때에 실상을 지금 만드는 것 아니오. 하나님의 말씀은 실상이 돼 가지고 있는데 인정하고 그대로 쓰면 됩니다. 그대로 먹으면 돼요. 그대로 가지면 돼요. 그대로 살면 바로 실상이라. 가져보니 실상이라. 새로 무슨 조성되는 게 아니라 말씀이면 실상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실상이라 하는 요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이래서,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우리 소망하는 것이, 소망하는 것이 내게 나타난 것 아니고 앞으로 미래에 속한 것으로서 내게 실상이 되어질 그게 되기 때문에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인데,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실상인데 내가 그 실상을 내가 믿음으로써 시간 걸려 가져 만들어 가지는 게 아니라 바로 말씀한 것은 바로 그 실상인데 내가 그 실상을 접해서 내가 알게 그 효력을 누리게 되는 그 과정이 내가 알고 인정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말씀한 것은 그대로 실상이 벌써 되어 있습니다. 되어 있는 것을 실상을 우리에게 있다고 선포하는 것뿐이오.
선포하는데, 그래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안하니까 내가 그것을 받아 가지는 데에는 알고 인정하고 가져보니까 가져졌어. 알고 인정함으로 만들어져 가지는 게 아니라 알고 인정함으로, 실상 이 종은 있는데 내가 이 종을 몰라. 이라다가 알고 인정하고 집어 보니까 종이 여기 있습니다. 그때 있는 게 아니라 벌써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벌써 돼 가지고 있다는 것이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로 계약으로 말씀해 놓은 것은 바로 그것이 하나의 조성법이 아니라 이미 그것이 실상이 있는 것인데 다만 우리가 어둡고 우리가 둔하고 탁하고 이러기 때문에 둔한 우리 주관에, 주관이 볼 수 있게, 주관이 만질 수 있게, 주관이 가질 수 있게, 주관이 그 효력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그 노력이, 인간 노력이 아는 것 인정하는 그것이지 실상은 돼 가지고 있는 것이라 그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바라는 그것들을 실상을 만든다는 것은 그것은 내 주관이 어둡기 때문에 내가 주관적으로 알도록, 만져질 수 있도록,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그 순서의 과정이 알고 인정하는 것이지, 그만 살면 돼. 그런데 알고 인정하지 안하고 또 살면 안 되거든. 알고 인정하고 살아야 돼.
그러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된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그러면 신구약 성경에는 비과학적이요 비합리적이요 비통계적이요 비자연적이라, 비자연적이라 말은 이제까지는 역사 세계에 없었던 그 일을 비 자연적이라 말입니다. 이런 것이 성경에 가득 찼습니다. 뭐 성경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분이 모든 걸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머리털까지 세신다. 또 우리의 모든 생명은 그분이 주권하고 계신다.' 이렇게 성경에는 말해 놨지마는 사실이 그런지 안 그런지 우리는 모른다 그 말이오. 신구약 성경에 발표해 놓은 기이한 것들이 많은데 이 기이한 것을 암만 불라 해야 우리는, 우리 지식으로써는 이해가 안 되고 인정이 안 되기 때문에 전부는 '이거는 거짓말 모아 놓은 책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공통입니다.
우리들도 신구약 성경에 '네가 이라면 천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된다' 이것을 발표해 놨지만 이것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다. 하나님의 자체에 대해서도 성경에 말해 놨지마는 우리가 보지를 못하고, 또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역사도 우리가 성경에 기록해 놨지마는 보지 못하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기 이 세상을 보고 떨고 또 모든 일에 대해서 안 가질 염려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새 한 마리가 농사 짓지 안해도 천부께서 다 먹이시고 또 백합화가 길쌈하지 안해도 아름다운 옷을 입는데 너희들은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이런데도 그런 것도 이 성경에 기록했지마는 그리 될란지 안 될란지, 그게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만일 이렇게 자기가 보고 그대로 살았다가 이루어지지 안하면 큰 낭패당할 터이니까, 우리가 성경에는 굉장한 소망이 기록돼 있고 성경에는 참 기이한 것들이 다 기록돼 있지마는 이 소망은 이루어질란가 안 이루어질란가 해서 우리가 만족하고 담대하지를 못하고, 하나님 아들이라 하지마는 사장 아들만도 못하고 이 반장 아들만도 권세를 못 가지고 이렇게 이렇지, 성경에 기록해 놓은 것이 얼마나 많은, 그뭐 성경에 기록한 소망이나 또 성경에 우리에게 말씀해 놓은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찌 되겠어? 굉장할 것입니다. 우리가 참 완전히 뭐 잘못 환장이 아니라 완전 환장이 될 것입니다. 이거 삐뚤어지게 환장이 아니라 바로 완전히 변질돼 완전히 환장이 돼 버려. 이거 하나님이 원하시요. 이런데 사실을 못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 그 말은 보지 못한 것들을 똑똑히 보여 주는 것이 믿음이라 그 말이오. 보지 못하는 걸 똑똑히 보여 '믿음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 믿음은 보지 못한 것들을 봐라! 자기가 똑똑히 볼 수 있도록 되는 것이 믿음이라. 다니엘이 하나님이 능력으로 자기를 지키고 보호하고 있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마는 하나님이 참으로 그렇게 해 주실런지 안 해 주실런지 그걸 어떻게 모든 사람이 다 사자굴에 들어갈 때까지는 모든 사람이 '다니엘 저거 폭 속는다' 이랬지 누가 '하나님이 사자 속에서도 보호하실 수 있다' 하는 그것을 누가 봤습니까? 그거 봤옵니까? 아무도 못 봤어.
이랬는데 다니엘이 사자구덩이 던짐받아 가지고 그 이튿날 아침에 가서 '다니엘아' 하니까 '예, 왕이여 만세수를 하십시오. 내가 여게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서 지금,' '사자가 너를 해하지 않더냐?' '사자가 나를 해하지 안하고 지금 평안히 잘 있습니다.' 이제 그러니까 다니엘이가 자기가 보지 못하고 그저 인정만 하고 있고 바라고만 있었지 그렇게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 보호하신다는 것은 다니엘이 본 것은 다니엘이 믿음 가지고 봤어. 믿음 가지고 보다니?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해 보니까 됐어. 기독교는 이것입니다.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 성경에는 수많은 참 귀하고 보배로운 큰 것이 많이 기록돼 있는데 이것을 봐야 할 말 있지. 이런데 성경에 기록한 뭐 하나님의 능력이라든지, 신비한 것이라든지 또 굉장한 존귀한 것이라든지 하는 이것을 보는 방법은 믿음뿐입니다. 믿음은 인정한다 말이오. 인정하고 행하면 다 돼요. '그렇게 되리라' 인정하는 그게 아직까지 믿음이 아니라. 그거는 두 가지 믿음인데 그라고 자기가 살아 보면 확실히 볼 수 있어.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에 기록돼 있는 모든 보지 못한 그것을 실상으로 보고자 하느냐?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자 하느냐?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자 하느냐? 너희가 영생을 보고자 하느냐? 네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걸 보고자 하느냐? 성경에 기록돼 있지마는 그 보는 방법은 다만 믿음으로만 보기 때문에, 믿음으로 본다 그 말은 알고 인정함으로 그리 된다 이렇게 우리 추상이나 추론이나 그렇게 자기가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그거 말하는 것 아니오. 똑똑히 보는 걸 말합니다.
똑똑히 보는 걸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살면 하나님의 능력도 자기가 확실히 불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주권도 볼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다.
또 성경에 기록된 소망은 그 실상을 자기가 가질 수 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믿음은 소망하는 그것을 실상으로 자기가 가질 수 있다. 실상을 만질 수 있다. 실상을 접할 수 있다. 실상의 효력을 자기가 누릴 수 있다. 보지 못한 것을 확실히 볼 수 있다. 요것이 믿음입니다.
2절에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우리의 선진의 수많은 선지 사도들, 모든 신앙 선배들이 그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모든 초인간적의 것, 초인간적의 것 또 비윤리적의 것, 인간이 아는 이치에 맞지 않는 비합리적의 것, 모두 다, 이 초자연적의 것 그런 것들을 선진들이 어떻게 봤느냐? 알고 인정하고 살아보니까 다 되더라 그 말이오. 알고 인정하고 사니까. 그러니까 알고 인정하고 사는 요거 하나 가지고 다 전부 실물을 다 실상으로 직견했다. 바로 보았다. '모든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받았느니라' 그분들이 성경에 뭐 하나님의 능력이라든지, 하나님의 주권이라든지, 모든 만물을 당신이 주권적으로 통치한다든지 '하나님이 나를 도우니까 사람들이 내게 어떻게 하리요' 하는 것도 막상 그렇게 말씀은 해 놨지마는 그리 되나 안 되나 이게 문제인데 살아보니까 되더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할 때에 보기도 하고 실상을 가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를 연구하는 것이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알고 인정해야 그대로 살지, 알고 네가 행하면 네 자신이 변화가 되어지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너는 지금은 네가 진리를 안다 하지마는 진리 때문에 네가 죽을 지경이지, 진리 때문에, 진리를 버리자니 가책되고 행하자니 기가 차고 이러니까 네가 진리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하지마는, 지금은 네가 아는 진리가 너에게 큰 고통을 주고 있지마는 네가 이 진리대로 행함으로 말미암아 그 다음에 아는 것은 '너를 자유케 하리라' 그 다음에 안 것은 너의 소원 성취를 하게 하고 너를 가장 기쁘게 자유케 한다.
그라면 하나님의 진리를 처음에는 알 때에 이 진리 때문에 억제, 강제, 하기 싫은 고통스러운 이 생활을 해야 되는데 하기 싫으니까 진리 던져 버리고 제대로 하는 사람 있고 이 진리대로, 고통스러우나 하나님의 말씀이니 안 행할 수 없다 해서 이 진리로 행하는 사람은 행하고 난 다음에, 내나 그 진리인데 행하고 난 다음에, 그 진리인데 그 뒤에 행하고 난 다음에 이제 아는 그 진리는 그 사람을 자유케 한다. 자유케 한다 말은 가장 기쁘게 한다 말이요, 소원대로 하게 한다 말이요, 평안하게 한다 말이요, 즐겁게 한다는 말입니다. 왜? 그것은 행하고, 난 다음에 봤거든. 보지 못하는 걸 봤거든. 실상을, 허무한 줄 알아도 살상을 자기가 가져봤고 정해봤고 그 효력을 누려봤거든. 이러니까 기독교는 믿음 없이는 못 봅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을 자꾸 가지고 알라고만 연구하면 그것은 자꾸 아는 지식으로만 자꾸 더 부요하게 해서 그것만 자꾸 하면은 지식이 암만 많아도 그것이 인정하지 안하면 소용없어. 인정할 때에 능력이 와요. 알고 인정할 때에 능력이 와요. 인정할 때에 능력이 오고 인정할 때에 실상이 돼요. 알고 인정할 때에 그것이 자기가 실상을 벌써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준비가 됐는데, 모든 수속을 다 이루었는데 그만 거게서 그대로 행하면 실상을 만나서 누려볼 터인데 사람들이, 인정 안 하면, 인정 안 하면 그것이 자기에게 가까이 오지를 못합니다.
실상은 있기는 있습니다마는 인정 안 하면 가까이 못옵니다. 아는 것 가지고는 가까이 못 오고 인정하면 가까이 와 있습니다. 이미 자기가 믿든지 인정하든지 안하든지 그대로 돼 가지고 있어. 있는 건데 인정 안 하면 자기가 가까이 하지 못하고 멀리 있다가 인정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그만 가지면 돼요. 행하면 돼요.
먹으면 돼요. 쓰면 돼요.
이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을 예수 믿는 도리를 우리가 알라고 연구하는 데에는 성경을 읽든지 듣든지 해서 아는 것이 첫째 순서요, 알고 난 다음에는 '이는 틀림 없다. 참되다.' 인정하는 것이 둘째 순서요, 인정했으니까 다 됐어. 인정하니까 다 됐는데 그만 그 다음에는 뭐이요? 밥이 다 됐어요. 다 됐으니까 먹으면 돼. 다 됐으니까 가지면 돼. 다 됐으니까 누리면 돼.
이래서, 인정이라는 요 인정이, 그것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조금 전에 비유한 거, 예를 들어 말한 거와 마찬가지로 인정하니까 떠벅떠벅 바다 위에 걸어갈 수 있었는데 인정이 고장나니까 육지와 같은 그 고체적인 바다가 그만 푹 빠져들어가는 액체가 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거는 인정에서 그리 된 것이요, 인정에서. 내나 그 바다지마는 자신이 그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는 그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능력을 누리지 못해. 인정하면 능력을 누릴 수 있도록 과정이 다 됐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만 걸어가면 돼요. 가지면 돼요.
이래서 기독교의 모든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제일 중요한 것이 세 가지입니다.
아는 것 알기만 하고 있어도 인정 안 하면 소용 없어. 알고 인정하면 다 됐습니다. 알고 인정하면 다 됐어. 그 다음에는 쓰면 돼. 가지면 돼 이런데 가지지 않기 때문에 안 돼.
인정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는 주관적으로 인정한다 하는 이렇게 주관적인 그 인정이 그것이 참 바로 됐는지 안 됐는지 이것을 우리가 심사하지 않는데, 아는 것은 자기가 아무리 신구약 성경을 많이 연구해서 안다 할지라도 그거 참 알 대로 바로 알았는지 안 알았는지 그 증거는 뭐입니까? 신구약 성경을 연구했는데 그 내용에 기록돼 있는 그 내용을 바로 알았는지 안 알았는지 그 증표가 뭐입니까? 인정하는 것이오. 인정이 안 되면 바로 몰랐소. 하나님 말씀에 에누리가 있습니까, 거짓부리가 있습니까? 이 세상 말과 달라.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인정을 안 하는 것은 제가 그 말씀을 똑똑히 몰랐어. 알대로 알지를 못했어.
'내가 이거 참 하나님의 이 말씀을 내가 외우기도 하고 설교도 하고 이라는데' 자기는 아는 줄 알지마는 아는 그 증표는 인정입니다. 인정이 되면 그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바로 알았고 인정이 안 되면 그것은 자기는 세상 지식과 같이 그렇게 알았지 하나님의 정확 무오의 절대의 창조적인 능력의 말씀을 가진 이 말씀으로 자기가 몰랐어. 그 말씀을, 말씀의 능력이나 가치나 권위나 이것을 저는 몰랐어. 그러기 때문에 이 껍데기만 알았지 하나님 말씀은 몰랐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은 인정이 되어지는 그것이 아는 것입니다.
또 인정이 되어지면 '나는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사옵나이다.' 이렇게 자꾸 말을 합니다. 믿사옵나이다 이렇게 말하면 자기는 인정하는 줄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마는 베드로가 '물 위로 오라' 할 때에 '예, 주의 말씀 내가 알았습니다.
주님이 오라고 하시니 물 위로 걸어가면 될 줄 압니다.' 인정을 하는지 안 하는지, 인정하고 있는지 안 하고 있는지 뭘 보고 알 겁니까? 물 위에 걸어 내려서는 그것을 봐서 인정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가다가 왜 물에 빠져들어갑니까? 왜 그렇습니까? 인정 그것이 병이 들었습니다. 인정 그것이 백프로 인정하지 안하고, 인정은 전적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인데 거게는 하나님 반 자기 반 하다가 결국은 자기에게로 돌아가니까, 그 인정이 병드니까 그 일이 이루어지지를 안했습니다. 인정. 그래서 알고 인정하면 다 돼 가지고 있습니다.
알고 인정하면 다 돼 가지고 있는데 그 다음에 할 일은 뭐입니까? 받아 누리면 돼. 받아 가지면 돼.
왜 그리 되는가?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사는데 이 믿음이라는 것은 세 가지 요소로 되는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압니다.
아는데 이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이 말씀은 진리요. 진리는, 진리는 독자적인 그 완전한 능력을 가진 것이 진리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살아 계시는 동안 그분으로 인해서 능력 있는 게 아니고, 이 진리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나왔지마는 이 진리는 진리 자체가 독자적인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는가? 이 진리는 무한한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그거는 모르겠고 이 진리는 없는 가운데서 엿새 동안에 우주를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천지야 이루어져라' 이렇게 명령하신 것은 하나님이시요, 그 천지를 뭘로 지었는가? 여기 말씀하시기를, 여게 보니까 '세계가' 하는 그 말은 이 세계나 이 모든 우주나 같은 이치입니다.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습니다.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어.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가지고 있는 신구약 성경 말씀은 이것이 뭐입니까? 물론 사본 성경이나 번역 성경에는 인간들이 틀리게 한 것들이 있지마는 원본 성경은 한 권뿐인데 원본 성경은 획 하나도 가감이 없이 정확 무오하다고 주님이 증거를 하셨습니다. 구약을 증거하고 신약은 요한계시록 22장에도 말씀했고 또 디모데후서 3장에도 많이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친히 성령으로 기록한 말씀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나타난 신구약 성경 말씀은 우리가 진리인 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또 이 말씀은 없는 가운데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그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면 말씀이 나타났는데, 이 말씀이 나타나신 것은 창조 역사를 하기 위해서 나타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일차적으로 나타나셔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했습니다. 모든 만물들을 창조했습니다. 영계 것도 이 말씀이 창조했고 물질계 것도 이 말씀이 창조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처음에 나타나신 이 말씀이 영계와 물질계 이 모든 존재를 이 말씀이 창조하셨다 하는 것을 우리들이 다 믿습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존재를 이 말씀이 창조하셨고 창조하라고 명령은 하나님이 하셨고 하나님의 명령 따라 이 말씀이 창조하셨습니다.
이것도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하는 요 믿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틀림이 없다' 이렇게만 하는 믿음 아닙니다. 자기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으로 이제 말씀대로 하나 둘을 순종해 보니까 자기가 경험에서 확실히 알았고 경험의 지식에서 알았고 체험의 지식에서 알고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자기가 분명히 알게 됩니다.
이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이 일차 창조를 하셨는데 우리에게 지금 나타난 말씀은 뭐할라고 나타났습니까?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 말씀, 나타난 이 하나님 말씀, 신구약 성경, 원본 성경에 나타난 그 말씀을 우리가 변역해 가지고 가지니까 그 원본 성경 말씀과 그만 못한 것도 있지마는 원본 성경 말씀을 그대로 가졌고, 그거는 혹 틀린 게 있을 수 있다는 그 말이지 다 그 말씀인데 하나님 말씀인데, 우리가 가진 이 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러 왔습니까? 하나님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뭐할라고 줬습니까? 무엇을, 이 말씀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창조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말씀이 나타나셔 가지고 변동될 것들을 창조했습니다. 진동될 것들을 창조했습니다. 이제 나타나신 말씀은 진동되지 아니할 것들을 창조할라고 나타났습니다. 둘째로 나타난 이 말씀이 조성하신 것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완전한 것을 창조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인정할 때에 어떻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그 사실이 내게 직접 연결이 되고, 내가 그라고 난 다음에 사니까 행하니까 그 실상이 내것이 되어지고, 그 실상을 내가 내 주관이 확실히 의심없이 확실히 보도록 이렇게 되어지느냐? 믿음이 뭐이기 때문에 그러하냐? 믿음이 뭐이라 그렇습니까? 믿음의, 믿음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믿음이 뭣이기 때문에, 믿음의 그 요소가 믿음의 요소가 어떤 것이기 때문에 믿기만 하면 됩니까? 믿음의 요소는 하나님의 요소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행하면 살면 되는 것인데, 우리가 믿는 믿음에는 첫째는 말씀이 그 요소요 그 다음에는 인정하는 것은 그 말씀과 나와의 연합이 되어지는 것이요 그라고 난 다음에는 살 때 실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그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이미 그 말씀하실 때 다 실상은 있는 것인데 내가 없어서 안 가지지 그뭐 시간이 걸리고 하는 게 아니라 말씀이면 곧 실상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와 있지마는 몰라서 안 되고 알아도 인정 안 하니까 안 되고 인정을 한다고 해도 누리지 안하니까 안 돼. 누리지 안하는 인정도 가짜요, 인정되지 않는 그 아는 것도 가짜요 전부 가짜기 때문에 삐뚤어져서 그게 안 되지 바로만 되면 다 된다 그 말이오.
우리가 믿는 것은 그 속에 요소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이 말씀은 어떤 말씀이냐? 일차 창조의 말씀이나 이차 창조의 말씀이나 다 같은 그 능력의 말씀인데 그 조성되는 것이 다릅니다. 일차 창조의 말씀이 창조한 것은 변동되고 진동되고 요동될 것들이고, 이차 창조의 것은 영원히 요동되지 아니할 것들을 창조합니다. 그러면 엿새 동안에 우주를 말씀이 지으신 그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이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완전한 그 독자적 능력을 가졌는데 일차적으로는 이 모든 우주와 영계를 창조하셨고 이차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은 완전한 것을 창조하시기 위해 가지고 이 말씀이 나타나셨는데, 그러면 이 말씀과 말씀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말씀 안에는 뭐 있습니까? 예? 녜, 이 말씀이면 곧 진리입니다.
진리 안에는 하나님이 내주해 계십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안다는 것은, 이 창조적인 완전한 능력을 가지시고 완전성와 가지시고 영원 무궁의 완전한 것들을 창조할 말씀이 창조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와서 있습니다. 진동되지 안할 것들을 창조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와 있고, 일차 창조에는 하나님이 말씀에게 명했고 그 명한 명령이라는 그 진리는 만물을 창조했는데, 우리에게 나타난 이 하나님의 말씀에는 진리는 진리지마는 하나님이 계셔야지? 하나님이 계십니까 안 계십니까? 이 말씀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안 계십니까?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 안에 계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정통에서는 다 신구약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이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이 말씀 안에 내재해 계십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지요 그는 변할 수도 없고 나뉠 수도 없는 자십니다. 하나님은 진리시요. 진리와 능력과 하나님의 본체는 나뉘어 있지 못합니다. 진리 있는 데 능력도 하나님도 본체도 하나님의 권능도 같이 계시요. 나뉘지 못하요. 하나님과 이 진리와 그 모든 능력은 나누지 못하는, 변치 못하는, 분리하지 못하는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우리가 아는 것은 진리를 내가 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접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말씀과 진리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이 같이 계시기 때문에 이 말씀을 내가 버리는 것이 하나님 버리는 것이요, 진리를 버리는 것이요, 하나님의 모든 축복과 은혜와 능력을 버리는 것이요, 이 말씀을 아는 것이, 자기가 아는 것이 인정할 수 있도록 바로 아는 것은 이 말씀은 전능이라 완전이라 전지라 바로 하나님이 함께 계심이라,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는 못 해도 하나님이 곧 말씀이시요. 하나님이 곧 진리시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기가 참 아는 것은, 참 아는 것은 하나님을 참 아는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참 아는 것이요, 또 하나님이 뭐할라고 이거 말씀을 입고 오셨는가 하신 것을 아는 것이요, 이러니까 알면 인정 안 할 수가 없어. 아무리 안다고 해도 인정 안 하는 그자는 아는 법대로 알지를 못한 제 주관대로 알았지 하나님이 알게 하신 대로 안 것은 아니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인정이 안 되지. 인정이 된다고 해도 물 위에 뛰어내리지 못하면 그 인정이 거짓부리라. 인정을 한다고 해도 '이놈아, 너 사자구덩이 집어 넣어도 좋으나? 그래도 기도하겠나?' 할 때에 사자구덩이에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인정에 가짜가 붙었다 그 말이오. 인정에 가짜가 붙었어. 인정이 가짜이기 때문에 인정이 진짜로 인정이면 들어갈수록 좋지. 기이한 역사가 나타 나지. 뭣 때문에 놀랠 것입니까? 인정하면 벌써 자기 할 대로는 다 했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뭐 인정하면 뭐이요? 인정하면 뭣해? 인정하면 다 완료가 됐어 안됐어? 됐어. 그 다음에 행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먹어라 할 때 먹는 것이요, 입어라 할 때에 입는 것이요, 해 보라 할 때 해 보는 것이요, 잡으라 할 때 잡은 것이요, 그런 자기가 가져 누리는 것이요, 효력을 자기가 보는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믿는 것은 그 믿는 것은 무슨 다른 걸 믿는 것은 소용이 없어. 믿음 믿음 말하고 있으니까 모두 다 '믿사옵나이다만 하면 다 된다' 이거 얼마나 참 허무한 소리입니까? 믿사옵나이다 하면 다 됩니까? 그러면 천하 만인간이 자기 욕심대로 다 자기가 인정한다고 하면 인정하는데, 인정하는데 누가 그 인정하는 대로 따라서 다 이루어 줄 것입니까? 얼마 전에는 그 말이 좀 나왔어요. 이 공산주의자들이 전부 이 남한을 유혹시키기 위해 가지고 무조건 '인정하라, 인정하라, 인정하라.' '남북 통일, 통일.' 이라는데, 통일 좋습니다. 민주주의로 통일이 되면은 우리도 살고 이북도 살지마는 그 사람들이 민주주의 통일로 양보는 절대 안 해 줍니다. 죽기 전에는 안 해 줍니다. 그 사람들은 '공산주의 통일하자 남한에는 민주주의 통일하자' 이라고 있는데 공산주의 통일 되면 기독자와 모든 정계에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 죽습니다. 그래서 나는 '남북 통일은 전쟁이라, 그 다음에는 살육이라.' 이런데 동상이몽이라고 꿈은 다릅니다. 남한에서는 '공산주의 치워 버리고 민주주의로 지금 통일하자고 하는 것 아니냐?' 좋습니다. 그 통일 좋습니다. 나도, 나도 찬성이오. 이북에서는 '민주주의 치워 버리고 공산주의로 통일하자' 합니다.
이러니까 '이것은 그래서, 이것은 지금 우리가 힘쓸 게 아니고 대국들로 말미암아, 대국들로 인해서, 미국이니 소련이니 이 나라들 때문에 우리가 남북이 갈라졌으니까 이제 그들이 어짜든지 큰 뭉텅이들이 저거끼리 싸워서 박이 깨지든지 터지든지 말든지 이제 거게 따라서 우리는 이루어지지 우리가 앞서 나가 가지고 할라 해도 감당도 못 되고 우리 할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그만 두고 어짜든지 우리는 남한은 남한대로 반공해서 국방해 가지고 그저 O대통령 정치할 때 모양으로 공산주의의 그 모든 가해도 우리가 입지 안하고 평안하게 밥 잘먹고 살고 신앙 생활 잘하면 좋지 않습니까?' 내가 뭘 말하다가 이리 나갔지? 그래 믿사옵나이다 하다 그랬지.
이러니까 믿는 데는, 믿는 데는 첫째가, 믿는 데는 하나님이 내주해 계셔야 하고, 진리가 내주해 있어야 되고, 하나님 그분의 뜻대로 그분이 주장하는 대로 그대로 거게 똑 따라서 믿어야 그게 효력이 있는 것이지 이 주권자 하나님도 상관도 없고 하나님의 말씀 진리도 상관도 없고 자기 욕심대로 주장을 세워 가지고 전부 천인 만인이 자기 욕심대로 주장해서 자기 욕심대로 되어지기를 믿사옵나이다 하면 이루어진다고 믿사옵나이다 하니까 그대로 이루어지면 모든 게 어찌 되겠습니까? 전부 박살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박살내는 하나님 아니시요, 이런데, 우리가 이 믿음이라 하는 이 믿음의 비밀, 믿음 속에는 기이한 역사가 내재해 있는 것은 믿음 속에는 이 절대적인 자존자이신 하나님이 그 안에 주격으로 내주해 계시고, 또 하나님의 그 뜻을 성취시킬 그 전능의 능력인 진리가 그 속에 내재해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각자들에게 그 현실을 통해서 개인 개인에게 이제 명령하시는 그 명령이 그 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 명령에 내가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껍데기는 보면 이거 말씀대로 내가 사는 거, 말씀대로 산다고 해서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오늘은 창세기 l장 행하고 내일은 2장 행하고 3장 행하고 아무 소용없습니다. '오늘날 너에게 명하는 대로.'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자기 현실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대로 하는 것을 가리켜서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신구약 성경에 바로 깨달았더란대도 그 시기가 오지 안하고 적당한 시기가, 그 적기가 아닌 제 맘 대로의 시간을 택해 가지고 오늘 해 보자 하는 것은 그것도 주관이오. 하나님의 적이오.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이루라고 하는 시기에 하나님이 이루라고 만들어 놓은 환경 속에, 하나님이 제작해 놓은 환경 속에 하나님의 뜻이 딱 나타날 때에 그것을 내가 알고 인정하고 그러면 내가 알고 인정 하니까 내가 능동입니까 내가 피동입니까? 내가 능동입니까 피동입니까? 피동이오. 하나님 당신이 능동자시요.
그 능동의 명령이 나와 가지고 내 현실을 만들고 그 현실에 나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현실은 누가 만듭니까? 우리 현실은 성령이 만듭니다.
우리 현실은 성령이 만드요. 성령님이 만드시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어. 성령님은 우리의 구원을 완료하실라고 책임지고 보증자로 나타나신 이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주권자시요 거게서 명령받은 이는 성령님이시요 성령님은 진리에게 명해 가지고 우리의 환경을 조성하고 그 환경 속에 '요거 해라. 요대로 해라.' 하는 그것이 곧 자기 진리요 자기가 복종해야 될 자기에게 대한 명령입니다.
그러면 천인 만인에게 명령은 따로 있습니다. 각자에게 자기 명령이 따로 있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 명령을 찾아 가지고 우리가 이렇게 아는 것 이것이, 아는 이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이 만드신 환경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이 그 시간에 나에게 명령하는 그 명령을 아는 것이요, 이것은 전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다 해 놓은 일인데 나는 거게, 알면, 그분에게 피동되어서 알면 접했고, 인정하면 그분과 나와 합작돼 버렸어. 인정하면 나는 그분과 나와 합작됐기 때문에 그분은 내게 대해서 얼마든지 자유해서 할 수가 있어. 그러면 그 다음에는 누리면 돼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믿음 안에는 말씀이 들어 있고, 진리가 들어 있고, 성령이 내주해 계시고, 하나님이 거게서 왕으로서 주권하고 계시고, 이래서, 우리가 모든 신구약 성경을 다 알고 인정하고 하지마는 거게는 가기에게 실효적인 효력은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내 현실에 하나님이 내게 명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라고 신구약 성경을 공부하고 아는 것이지, 신구약 성경은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낸 진리요 우리에게 알게 한 진리입니다. 이러나 우리는 이 진리를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인정하는, 인정해야 되는 것도 많이 있고 알고 인정하는 데에 알고 인정하는 그 실효가 나타나는 것은 언제 나타나느냐 하면 실효가 나타나는 것은 꼭 현실에서 나타납니다. 현실 아니면 나타나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우리는 요 믿음이라는 것은 믿음은 우리 주관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은 순전히 객관 역사인데 하나님이 능동자시요 하나님이 처음에 발동했습니다. 하나님이 발동하시고 그 다음에는 성령이 전달해서 말씀의, 이 진리의 말씀이 나왔고 그 말씀을 우리가 영접할 때에는 하나님 영접이요, 성령 영접이요, 이제 진리 영접이요, 말씀 영접이기 때문에 인정하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나와 합작이 돼 가지고 하나가 되기 때문에 거게서는 전능의 능력이 나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말은 믿사옵나이다가 아니고 바로 요 믿음,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믿음, 하나님께 순종하는 요 믿음,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은 믿음 요 믿음을 지키면 거게서 큰 효력이 나옵니다.
이래서,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리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믿는다고 어떻게 세계 모든 민즉 위에 뛰어나게 하겠습니까? 내가, 믿으면 뭐인데? 믿으면 뭐이 오는데 그렇습니까? 내가 믿으면 뭐하고 합작이 됩니까? 진리와 합작이 돼요, 성령과 합작이 되요, 하나님과 합작이 돼요, 주권 개별 섭리자와 합작이 돼요. 이러니까 그분에게 합작이 돼서 그분과 함께 움직이는데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방해하겠습니까? 이러니까 이것만 찾으면 우리는 의심할 것도 없이 그는 다 됩니다. 어떤 일이라도 다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연습해 가지고 내게 대한 명령 뭐, 명령이 하나가 아니라. 백 명이면 백 명 명령이 다르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내게 대한 명령을 찾아 가지고 행하는 것은 뭣이든지 다 전능이다, 가능이다, 다 된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깨닫고 자꾸 모든 것을 진리적으로 틀림이 없이 정확 무오하게 우리가 해 나가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할 일이 뭐이냐?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 찾고 나면은, 찾고 나면은 인정은 필연적이라. 찾고 나면은 필연적으로 인정돼요. 인정되는 것은 암만 못 하구로 해도 우리 전체가 안 하고는 못 견뎌요.
하게 돼요. 이러니까 기독교는 모두가 다 필연성이라 그렇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우리가 제일 어려운 것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이 어지러운 데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면은 이것은 뭐 만능인데 우리가 뭘 누구를 잡고 아쉬운 소리를 할 것이며, 누구하고 만나 가지고 뭐 타협을 하고 의논하고 교섭하러 돌아다닐 필요가 뭐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전능자가 있는데. 만능자가 있는데. 그분의 뜻을 찾아 가지고 그대로 하면 다 되는데 누구에게 사귀고 누구를 친하고 누구에게 교제하러 갈 것이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외식으로 이 피조물을 의뢰하는 그런 일 하지 않고 속으로 들어가서 요 믿음 생활하면은, 믿음 생활은 몇 가지인데? 세 가지만 하면 전능이라.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하지 안했습니까? 세 가지만 하면 전능이라. 못 할 것이 없어. 세 가지면 만능이라.
이거 하지, 이거 하지 뭣 때문에 다니겠소? 또 그라면 뭣을 그거 공부도 안 하면 되느냐? 공부 안 하면 된다는 거 아니요.
해도 안 돼요. 안 해도 안 돼요. 하나님이 하라 하면 하지. 믿음으로, 그거는 믿음으로 모든 것 하지, 믿음으로 행치 않은 거는 죄니라 그랬어. '믿음으로 행치 않은 것은 죄니라' 그 말은 하나님의 지도, 하나님의 지도가 없는 때는 없다 그 말이오. 우리가 움직이지 안할 때가 있습니까? 우리는 다 움직여야 사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하루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움직이는 것을 하나님이 다 책임지고 지도하신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는 믿음의 이 비밀을 깨닫고 밥을 먹어도 믿음으로 먹고 공부를 해도 믿음으로 하고, 사업을 해도 믿음으로 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뭐 기도만 하라 합니까? 밥만 먹어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될 필요한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분이 전지자시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다 챙겨서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은 건 다 죄라' 그 말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않은 것은 죄라,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하지 안한 것은 죄라. 이러니까 공부는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자,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OOO선생? 해야 됩니까? OOO선생? 공부는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그래, 그거지. 하나님이 공부하라 하면 하고 하지 말라 하면 안 하고 요거 믿음으로 하는 거라. 얼마나 있어? 하라 하는 대로 하면 어찌 돼? 하라 하는 대로 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요? 그분이 뭐인데? 전능자라. 완전자라. 지금 이차 창조를 하실라고 지금 착수를 하시고 독생자의 대속으로 이렇게 모든 것을 구비해 놓고 지금 이차 창조를 이루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그러면 우리의 성공은, 우리의 승리는, 우리의 영광과 존귀는 어데 있습니까? 우리 모든 행복은 어데 있습니까? 믿음에 있습니다. 딴데 있지 안해요.
믿음에 있어요. 우리 모든 성공과 행복은 믿음에 있습니다. 우리가 잘 목회하는 우리의 목회 성공은 어데 있습니까? 믿음에 있어. 우리 가정 성공은 어데 있어? 믿음에 있어. 경제 성공은 어데 있습니까? 믿음에 있어. 그러면 이거 자꾸, 경제 성공도 믿음에 있다, 명예 성공도 믿음에 있다, 사업 성공도 믿음에 있다, 모든 영광 성공도 믿음에 있다, 아주 쾌락 성공도 믿음에 있다, 기쁨 성공도 믿음에 있다, 사랑 성공도 믿음에 있다, 모든 승리도 믿음에 있다. 이 말이 공연히 말쟁이 말입니까, 천지는 변해도 변치 않는 정확한 말씀입니까? 정확한 말씀이오.
믿음에 있으면 믿음은 몇 가지인데? 세 가지.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이오. 그러면 아는 것은 신구약 성경을 아는 것입니까 자기 현실에서,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이 명령하는 그 명령을 아는 것입니까? 그 명령을 아는 것이라. 그러면 신구약 성경은 뭐할라고 공부합니까? 하나님의 명령을 알기 위해서. 왜?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 범위 내에서 문제를 내지 신구약 성경 벗어나서 문제 내지 안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인도하시는 그 명령을 딱 알아 맞춰야 성공을 하는 것이니까 이게 시험이라. 시험 문제라. 이러니까 그 명령을 우리가 바로 찾을라고 하는 데에는 그 명령은 신구약 성경이라는 문제집 안에 있어. 문제집 안에 있어. 문제집 안에.
이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을 자꾸 하는 것은 문제집을 공부하는 것은 이 문제집 가운데서 이제 문제가 나올 터이니까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신구약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찾지를 못해 신구약 성경을 아는 사람은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가 쉽기 때문에 찾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을 보는 것이지 신구약 성경대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러면 신구약 성경을 공부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을 찾을라고 하고,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는 신구약 성경을 첫째는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열심히 공부해야 되겠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또 우리가 뭣을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는 몇 가지를 해야 된다고 말했습니까, 손가락으로? 저 뒤에? 셋 들었어요? 녜, 셋 들었으면 돼요. 간단 명료하게 말해 놓은 것 있어요,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산 제사로 드리는 것.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이루어 놓은 설정해 놓은 공로는 내것, 나는 주의 것, 이러기 때문에 나는 내대로 살아 있지마는 나는 죽었어. 내 권리는 하나도 없어. 나는 완전히 하나님에 바쳐진 제물이라. 예수님의 것이 됐어.
이러니까 몸으로 산 제사 드리라 말은 네 몸은 주님에게 바쳐져서 하나님 섬기는 것이요, 너는 잡아 놓은 짐승과 같이 네 클 때의 예수 믿기 전에 있던 그런 모든 것은 하나도 없어지는 그것이 산 제사 드리는 거라.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살아 있는 건 주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뜻대로 쓰고 주님 마음대로 하시고 주의 것인 것을 요것을 확실히 구별하는 요것이, 주님의 대속을 확실히 구별해서 주님의 대속에 합당한 자기가 되고 자기 행동을 움직이는 요것을 가리켜서 몸으로 산 제사 드리는 것이라 그렇게 말했어.
살아 있지만 죽었어. 뭐이 죽었어? 살아 있지만 뭐이 죽었어? 자기는 죽었어.
예수님의 죽으심에 같이 연합됐기 때문에 죽었어. 이러니 자기는 죽었고, 그러면 자기 살이, 있는 거는 누가 주관해요? 주님이 주관해요.
이러니까 몸으로 산 제사 드리기를 힘쓰는 것, 몸으로 산 제사, 다 저 잘난 재미로 사는데 자기 부인하는 게 뭐이 좋겠어? 자기 주장 다 꺾어버리고, 자기 욕심 꺾어버리고 전부 자기는 꺾어버리고 이제 제 맘을, 제 혀를 제 맘대로 못 하고, 제 눈을 제 맘대로 못 하고, 제 입을 제 맘대로 못 하고, 제 수족을 제 맘대로 못 하고 이거는 완전히 죽은 잡아 놓은 짐승 모양으로 자기에게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제물은 주님만 위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주님만 위하는 것으로 나는 살았는데 내게 대해서 모든 주권은 주님이 가지신 그것이 산 제사 드리는 거라. 몸으로 산 제사 드리는 이 일을 우리가 하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입니다. 이거 무슨, 대학을 공부하느라고 전력을 기울이고, 세상 것 뭐 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지 이거 뭐할라고 전력 기울여, 이거?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는 첫째로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야 돼. 둘째로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돼, 세대를. 이 세상 안 따라갈라. 한다고 이혼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야단이 나는데 이 세상 안 따라 가기가 그리 쉬운 줄 아요? 세상 안 따라가는 거 이거 온 세상에서 저만 외톨이 밤 같이 생기는 고독의 걸음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세대 따라가지 말고, 이 세상 따라가지 말고 이것도 어려운 일이라. 그 다음에는 네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라. 마음이 변화돼야 '.마음이 변화되는데 새로와지는 건 점점 점점 순서적으로 새로와지는 것을 가리켜서 새롭게 되어서 변화를 받아라. 변화된 그 마음은 무슨 마음인데? 변화된 마음은 무슨 마음입니까? 변화된 마음은 무슨 마음이지요? 일편단심 하나님의 뜻을 찾는 요 맘 하나만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요거 전공이요, 전문이요, 전력이요. 요것만 하는 요 마음이 변화된 마음이라. 석가모니 따라 변화된 마음 아니오. 공자 맹자 따라 변화된 마음 아니오. 어떤 목사 따라서 변화된 마음 아니오. 요게 변화된 마음은 일편단심 하나님의 뜻을 찾는 요 마음으로 전부되어 있는 요 마음을 가리켜서 변화된 마음이라 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는 몇 가지 노력을 해야 돼요? 녜, 세 가지.
그런데 이제 신구약 성경을 자꾸 공부하는 것까지 하면은 네 가지가 되겠습니다.
네 가지가 되겠는데 신구약 성경은 평생 공부하는 것이고 우리가 세 가지라야 된다 말은 고거, 성경 공부는 해 놔야 되고 현실에 당장 하나님의 뜻을 찾을라 하는 데에는 요 세 가지를 우리가 해야 돼. 세 가지를 급하게라도 하면 돼요.
급하게라도.
이제 자기는 완전히 부인하고 자기가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의 뜻이면 나는 복종하겠습니다' 하는 산 제물이 되어지고, 이 세상 따라가지 말고, 세상 따라가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 찾을라 하면은 세상에서는 '이게 네게 옳다 옳다' 하는 것이 마구 막 들이 뭐 달라들기를 얼마나 달라드느냐 하면은 세상이 우는 사자와 같이 마구 달라들지, 이래라 저래라 이래라 저래라 막 달라듭니다. 이러니까 이 세대를 본받지 안할 수가 없어. 참 어려워. 세대를 본받지 안해야 돼요.
그라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요 선도 우리 총공회 교리와 신조가 요것도 다릅니다. '선하시고' 선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악하지 말고 후하게 해라, 누그럽게 해라 점잔하게 해라, 서로 사랑으로 해라,' 요렇게 뭐 선이라 하면은 모든 죄 아닌 건 다 선이라 이래 말하는데 우리는 그게 아니라. 우리는 선의 정의가 그게 아니라. 피조물 중심은 다 악이요 우리를 대속하신 조물주 자존자 유일하신 하나님 그분 중심이 선으로 그렇게 우리는 정의를 내고 믿기 때문에 세상은 조롱해요. 온 교계는 비웃어요.
이 말을 듣지를 안할라고 해요.
'하나님의 선하시고' 하나님은 당신은 모든 경영이 당신 중심 당신 위주로 경영합니다. 그분은 우리 중심 우리 위주로 경영하지 안하요, '하나님의 선하시고' 하나님이 당신 중심 당신 위주로 하시는 것.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하나님이 만족히 여기시는 거, 기뻐하시는 거,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거, 그 다음 뭐입니까? 온전한 뜻을 분별하도록. 온전이라 그 말은 금세 내세 시간적으로 온전, 창조주 피조물 모든 존재적으로 온전, 그 관계에 결과적으로, 온전 이 온전을 이루는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됩니다.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하나넌의 뜻이, 우리 현실에 있으니, 우리 현실에 있으니 이것이 믿음의 요소 중에 하나요. 믿음의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이런데 이 요소 가운데는 하나님이 내주하시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내주하시고, 진리가 내주하시고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타나서 이래 있기 때문에 여게는 그분들이 능동적으로 그분들이 지금 하고자 해 가지고 역사하시는 그것이 네게 와 가지고 내가 안다는, 내가 안다는 것은 그것을 알고 받아들이고 그 사실을 알고 인정하면 내가 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라면 다 돼 버렸어. 인정하면 다 돼 버렸어. 그 다음에 먹으면 돼요. 음식 같으면 먹으면 되고 웃 같으면 입으면 돼요. 다 돼 가지고 있어요. 입으면 돼요. 길 같으면 그만 걸어가면 돼. 길 다 돼 가지고 있어. 걸어가면 돼 이렇게 믿음이라는 것은 이렇게 오묘하기 때문에 믿음은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모든 것을 나에게 그 실상을 내가 받아 가지고 그 실상을 내것 삼는 것이 믿음으로 삼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우리의 소망의 전부의 그 실상을 내 것으로 삼아 가지고 내가 그 실상 속에 살고 실상을 누리고 실상의 그 효력을 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전부를 다 내것 삼는 것이 믿음이요, 내 전부를 다 하나님의 것 삼는 것이 믿음이오. 믿음은 하나님과 나와의 모든 만물과 전체가 똘똘 뭉쳐서 하나 되어서 한 생명으로, 한 소망으로, 한 지능으로, 한 목적으로, 한 희로애락으로, 한 행동으로, 한 평강으로 살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 믿음은 자유의 율법이라. 이래서, 믿음 속에는 이러한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하는 요 맏음은 요 현실에 우리가 믿는 믿음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자기가 진리를 아무리 백 독을 하고 뭐 아무리 외워도 현실에 그 진리 부인하면 자기와는 상관없소. 현실에 그 진리 부인하면 하나님 배반이오. 현실에 천인 만인이, 온갖 어려움의 조건들이 와도 그 현실에 하나님의 진리를 자기가 인정하고 그 진리대로 생하면 그것이 완성이라. 그거 하나님 영접이요 그 진리를 자기 것 삼았어. 자기 것 삼았다 말은 자기의 소유로 가졌다고 하는 것은 소유를 좋아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 말로 알아듣기 위해서 진리를 자기 것 삼았다 이렇게 말하는데 실은 똑똑히 말하면 자기 천한 것이 완전의 소유가 됐습니다. 그라면 진리의 것이 자기가 됐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시간이 어찌 됐어? 네시? 네시 오십분. 그라면 그만 해야 될세. 자, 또 다음 시간에 합시다.
여러분들이 이번에는 꼭 진리를 잡고 우리 총공회 교리와 신조 총공회 행정 유별한 게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쫓겨 나왔어. 하나가 안 되는 그것 때문에 하나가 안 돼. 우리가 원하는 거 뭐인가? 우리가 원하는 건 그분들도 우리와 같은 교리와 신조 가지고 하나되기를 원해요. 우리의 소원의 목적은 이것이오. 총공회 교리와 신조의 이 사실을 알고 이 실상의 혜택이 지극히 크니까 이 혜택을 보는 사람은 총공회 속했다고 조롱받고 핍박받아도 수입이 더 크니까 안스러울 게 없고 답답할 게 없고 좋지마는 이 총공회 때문에 공연히 피해는 보고 거게 실상의 효력은 보지 못하면 참 답답하고 불쌍하고 애처롭습니다.
여러분들.
녜,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인정 안 하면 소용없어요. 인정하는 데에 비로소 하나님과 자기와의 하나됩니다.
접선됩니다. 아는 것은 찾는 것이요 본 것이요, 인정할 때에 자기는 하나님의 것 되고 하나님은 자기 하나님이 됩니다. 그라면 행하면 돼요. 실상이 되어 있기 때문에 누리면 돼요. 오늘 이 시간부터 내일 새벽 시간까지는 자유시간이니까 여러분들이 공연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뭐 만났으니까 무슨 이런 시국 얘기 저런 시국 얘기 이런 장사 저런 장사 얘기, 이런 가정의 얘기 또 막혀 있던 소식 얘기 이런 것 다 피해 버리고, 윤리주의를 그치고 은혜주의로 하자 그 말은 이제 이래 만나니까 아들은 아버지 대우할라 하고, 아버지는 아들 대우 할라 하고, 또 며느리는 시어머니 대우, 형은 동생 대우 이것도 좋지마는 그라다가 보니까 더 중한 은혜받는 일에 그만 등한히 돼지고 마귀의 틈탈 기회를 줘 가지고 실패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어짜든지 요 동안에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확정을 지웁시다.
그래, 의뢰하고 의지하는 것, 요것은 다 멸해질 것이라.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을 찾는 사람은 멸망을 찾아서 벗어날 사람이요, 요것을 듣고 의지하고 의뢰하는 그것을 그대로 듣고 파묻어 두는 사람은 멸망할 사람이요, 반드시 하나님 배반하고 의지하고 의뢰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둬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하나님 기뻐하시도록 조심 있게 취급을 해야 되겠다' 하고서 조심 있게 취급하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이니까 감사하고 조심 있게 취급하는 사람은 요 마음이 양심을 살리고 정신을 살리고 거기서 참된 참사람을 일으켜서 전부가 다 술술 뭐 자동적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 엉뚱한 것을 피조물 그것을 의뢰하고 의지하는 사람은 그거 하나로 인해서, 자기 된 것을 다 거기서 줬다고 인정하고 또 앞으로 거게서 받을라고 하는 그 사람은 다 하나님이 적이 된 사람이요 그거 하나 가지고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 되고, 하나님께 교만한 사람되고, 그 다음에는 모든 질서가 다 문란하고, 모든 게 혼잡되어지고, 또 학대하고, 남용하고, 사치하고 이래 가지고서 뭐 형편 없이 전부가 다 전멸돼 가는 것이니까 큰 걸 받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그 모든 것을 이제까지는 몰랐어도 하나님이 주셨다는 걸 새롭게라도 '하나님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를 하고 그것을 하나님이 주셨으니 줄 권리도 있고 빼앗을 권리도 있고 또 주신 것을 더 복되게 할 권리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분의 비위를 맞춰서 그분의 뜻에 맞추어서 이떻게 할라고 조심 있게만 하면 그만 우리가 이번에 큰 부자가 되고 대성공자가 되고 아주 복있는 위대한 모든 승리의 사람들이 됩니다. 요라고 믿음에 대한 걸 자꾸 새기면서, 딴데 가면 잊어버려요. 주욱 해서 이 여러 시간 동안에 하신 말씀을 자꾸 새김질해서 자기가 기억해요. 또 누가 또 새김질 해 주면 가서 좀 듣기도 하고 이래 가지고서 어짜든지 여게서 변화돼 가지고 가야 됩니다. 이 자리에서 변화가 돼 가지고 가야 되지 여기서 변화보다 마귀란 놈은 '야, 여게서는 배우기만 배우고 잘 것 자고 얘기 좀 하고 모처럼 만났으니까 재미도 누리고 이제 집에 가서 요래 하면 되지 않느냐?' 마귀 그놈은 언제든지 뒤로 미루는 그놈이 마귀입니다. '모든 것을 뒤로 미루지 말고 즉시 해라. 단행해라. 즉시 해라.' 하는 그는 성령이시오. 이러니까 여게서 고쳐 가지고 가야 되지 여기서 못, 고친 것 딴데서 못 고칩니다. 여기서 변화돼 가지고 가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