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11:39
믿음
1987. 1. 1. 새벽 (목)
본문: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라
‘바라는 것들이라’ 하는 것은 이 성경 가운데는 우리가 바라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바란다는 것은 소망한다는 말입니다. 성경 가운데는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사랑해 주시는 것도 우리가 바라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는 것도 바라고, 또 하나님이 내 기도를 다 들어 주시는 것도 바라고, 또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해 주시는 것도 바라고, 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도 바라고, 하나님의 전지 전능 모든 한없는 그 은혜를 다 우리가 바라봅니다.
그 은혜를 우리가 소망한다 말입니다. 그 은혜를 소망합니다.
그러면 성경에는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가득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도 가득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우리가 다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온갖 축복도 우리가 소망합니다. 또 영생도 소망합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 모든 것은 다 너희 것이라” 하는 이 말씀도 우리가 바라봅니다. 그러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다 내것 되기를 바라봅니다. 또 세상이 불탈 때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 피난 갈 것도 바라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많습니다. 또 이 피조물에게 대한 우리의 소망도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는 뭐 수많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소망하는 것들이 수없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다 가리켜서 ‘바라는 것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소망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그러면 바라는 그것은 그것이 미래에 속한 것입니까 현재에 속한 것입니까, 바라는 것은? 미래에 속한 것입니다. 실상이라 하는 것은 현재에 속한 것입니까 미래에 속한 것입니까? 현재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 가운데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소망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실상이라 하는 것은 소망하는 미래의 것이 현재의 실상이 된다 그 말입니다. 현재의 실상이 된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의 전능이 나를 보호해 주신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지마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 하나님의 전지 전능이 우리를 어떤 데서라도 보호해 주신다 그렇게 성경에 말씀해 놨습니다. 사자 앞에서도 보호해 주시고, 불 가운데서도 보호해 주시고, 물에서도 보호해 주시고 어데서든지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 그렇게 약속한 것을 우리가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우리를 사자에게서도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하는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있는데 다니엘이 사자구덩이에 던지움을 받았습니다.
던지움을 받았을 때에 사자의 이빨에서도 택한 자들을, 하나님의 성도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들은 구원해 주신다는 그런 약속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또 불 가운데서도 구원하신다 하는 그런 약속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 약속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는 불기세도 해하지 못한다, 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 물 가운데서도 보호해 주신다 이렇게 하나님이 보호해 주신다 했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그 불 가운데서도 보호해 주신다 하는 이것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성경을 보고 “어떤 환난에서라도 보호해 주신다” 하는 그 성경의 약속을 보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환난에서라도 보호해 주신다 하는 것을 성경에 기록했으니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것을 소망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소망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녜, 소망할 수 있습니다.
소망할 수 있는데, 소망을 할 수 있는데 소망해도 불에 타서 죽고 불에서 구원함을 받지 못할 수도 있고 또 불에서 구원함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생명이 물론 그때 하나님의 뜻에 불에 타서 죽을 그런 하나님의 예정이면 그거는 어짤 수 없지마는 어떤 그 환난에서라도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기로 약속했으니까 이 약속을 바라봄으로 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리라 하는 것을 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바라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녜, 있습니다.
있는데, 불미에다가 집어던져 버리니까 그러면 바라보는데 소망한 그것이 실상이 될라고 하면은 불미 속에다 집어던졌는데 불에 타서 죽어야 됩니까 안 죽어야 됩니까? 바라보는 것이 실상이 될라고 하면은 불에 타서 죽어야 됩니까 안 죽어야 됩니까? 어째야 되지? 여게는? ○, 어때? 딴거 생각하나? 뭐 어떠노? 이들이 소망했는데 불미에다 집어던졌습니다. 던졌는데 거게서 불에 타서 죽으면 그 소망한 것이 헛일입니까 그게 실효가 있었습니까? 헛일이지요. 또 과연 불에 타서 죽지 안했으면 그 효력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효력이 있었지. 그렇지 안해요? 물론 하나님의 예정에 불에 타서 죽게 예정된 거는 그거는 말할 게 없는 거고 그거야 아무리 해도 안 되지마는 불에 타서 죽을 그런 이유가 없는데 불에 집어넣어도, 사람이 불에 타 죽을 그런 이유가 없어도 불에 들어가면 타 죽는다 그 말이오.
이런데, 그러면 그 바라보는 그것이 불에 타서 죽으면 헛일이고 불에 타 죽지 안하면 실상 그는 구원얻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실상 그는 구원 얻었지요? 얻었는데, 그러면 불에 타서 죽으면 바라보는 것이 그거 다 헛일이고 실상이 아니고 불에 타서 죽지 안했으면은 실상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불에 타서 죽으면 실상이 헛일이고 안 죽으면 실상이 되는데 헛일되고 실상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헛일이 되고 어떻게 하면 실상 됩니까? 믿으면 실상이 되고 안 믿으면 허사가 됩니다.
그뿐만 아니고 성경 가운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으로 이렇게 선포해 놨는데 성경 중에는 우리가 소망할 것이 많습니다. 성경에는 전부 우리 소망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 바라보는 것들입니다. 바라보는 것들인데 그것을 우리가 믿으면 실상이 됩니다. 믿으면 실상이 됩니다. 믿으면 실상이 되고 안 믿으면 헛일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미 속에 집어던졌을 때에 타 죽지 안하고 구원을 받았으니까 그것은 실상이 이루어졌습니까 실상이 이루어지지 안했습니까? 실상이 이루어졌습니다. 실상이 이루어졌는데, 그거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실상이 이루어지는 그런 행동을 했습니까? 행동으로 믿었습니까 그 마음으로 믿었습니까? 행동으로 믿어서 실상이 이루어졌습니까 마음으로 믿어서 실상으로 이루어졌습니까? 뭘로 믿었지요? 마음으로 믿었습니다. 행동은 거기 없어. 행동이 있습니까? 뜻대로 하는 그거는, 그거는 불미 가운데에 던지움 받는 그 행동이었지 그것은 불에서 타 죽지 안하고 구원받는 그런 실상된 거는 아닙니다.
만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불미에 던지움을 받았다 합시다. 했는데 그때 만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께서 나를 이 불 가운데서도 당신의 뜻이 아니라면, 불에 타 죽는 게 뜻이 아니라면 여게서 능히 나를 구원하시리라’ 하는 것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믿지를 못하고 ‘암만 하나님이지마는 내가 불 가운데 던짐 받았으니까 여기는 틀림없이 타 죽지 내가 불에서 안 타 죽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보호해 주실 것을 믿지 안했으면, 인정하지 안했으면 그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에 타 죽었겠습니까 살아나왔겠습니까? 어찌 됐습니까? 살아나옵니까? 녜, 불에 타 죽습니다. 알겠습니까? 요것을 기억하라고 자꾸 내가 이런 말 합니다.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그 계약은, 신약 구약이라면 약속 약(約)자인데 구약은 처음에 약속한 것이고 신약은 그 다음에 또 더 첨부해서 약속한 것을 신약이라 이랍니다. 구약은 먼저 약속한 거 신약은 그 다음에 요 가까운 때 약속한 거, 그래서 그 구약 신약이라 하는 건데 거게 약속된 그 모든 것은 자기가 믿을 때에 실상이 됩니다. 믿을 때에 실상이 되고 믿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요것을 꼭 알아야 될 것입니다.
제가 오늘 지금 팔십칠년 일월 일일 새벽기도인데 지난밤에 모두 다 팔십육년에서 팔십칠년까지를 계속해서 이 자리에서 있으면서 재독 듣고 설교 듣고 그렇게 모두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랬는데 이 첫 새벽에 무슨 말씀을 내가 증거할까 이랄 때에 이 말씀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주셨는데, 내게 더우기, 그전에도 내가 설교를 했지마는 믿어지는 믿음을 더 많이 주셔서 더 많이 믿음을 내가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지금 예를 들어서 바다에 지금 어떻게 빠졌습니다. 바다에 빠져서 그만 바다에 빠졌습니다. 바다에 빠졌는데 아무것도, 바다에 빠졌으니까, 빠졌으니 물에 침몰돼 죽을 것 아닙니까? 그럴 때 내가 역부러 빠질라고, 만일 ‘하나님이 물 가운데 나를 구원 하나 안 하나 보자’ 하고서 `하나님이 뭐 전능하신 능력이 계시기 때문에 나를 물 가운데서 보호해 주실 수가 있지 않느냐? 보호해 주시는가 안 주시는가 보자.’ 하고서 ‘능히 보호해 주실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보호해 주실 수 까 보호해 주실 것이다.’ 하고서 제가 역부러 물에 빠졌으면 그것은 뭣 하는 겁니까?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이 안 들으십니다. 알겠습니까? 그런데, 자기가 어떻게 이래 안 빠질라고 이래 어째 하다가 그 일을 안 해서는 안 될 일죄 짓는 일 아니고그 일을 안 해서는 한 될 일을 이래 어째 하다 그만 사람이 부족해 가지고 물에 빠져 버렸습니다. 바다에 빠졌습니다. 바다에 빠졌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물 가운데서도 상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성경에 약속을 해 놨습니다. 이사야 43장에도 보면은 그렇게 말씀해 놨습니다. 이랬는데 그 물에 그만 바다에 빠져 버렸습니다.
빠졌을 때 그때에 하나님이 물 가운데서도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그 약속을 그 사람이 바라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바라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바라볼 수 있는데 바라보는 그것이 소망하는 것이 실상이 되면 거게서 구출해 나올 것이고 실상 안 되면 물에 빠져 죽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구출해 주시겠다 약속하신 그것이 실상이 되느냐 거짓이 되느냐 하는 것은 어데 매였습니까? 어데 매였습니까? 믿음에 매였습니다. 믿으면 실상이 되고 안 믿으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요것을 말합니다. 믿으면 실상이 되고 안 믿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계시지마는 내가 그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갑이라는 사람은 믿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또 을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이 말로는 말하지마는 하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누가 아나?’ 또 하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 사람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그 사람을 도와 주시는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그 사람을 돕는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믿는 대로 됩니다. 요거 아주 중요하니까 요것을 굳게 잡으십시오.
○○○씨가 저한테 가족들 사진을 찍어서 연하장을 보냈는데 그 사람은 그래 거기 쓰기를 그래 놨어. 하느님이라 이래 써 놨어. 하느님이라. 엽서에 쓰기를 하느님이라 이래 놔. ‘하나님’이 아니고 `하느님'이라. 뭐 아주 유식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인데 하나님을 모르고 하느님이라 이래 놨어.
하느님, 하늘님, 그래 가지고 요새 모두 그거 많이 말하는데 하나님 아니라 하는 건 전부 가짜인 줄 아십시오. 하나님이 아니라면 전부 마귀 말인 줄 아십시오.
그거는 우리 하나님 아닙니다. 알겠어요? 하나님 외에는 전부, 하나님, 하나, 하나님이라 말은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 말을 가리켜서 하나님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님, 한울님, 하느님, 한을님, 새 을(乙)자 한을님, 한울님, 하느님 이거 다 가짜 다 그거는 마귀말이고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그러면 이 사람이 하나님을 성경에 말한 대로 전능자로 믿을 때에 전능자로 저에게 역사해 주시고, 저를 사랑하는 자로 믿을 때에 저를 사랑하는 하나님으로 역사해 주시고, 어데서든지 자기의 전부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을 때에 그 하나님은 그에게 전부가 돼 줄 수 있습니다. 믿는 대로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 노릇을 해 줄 수가 있습니다.
믿는 대로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 노릇을 해 줄 수가 있고 안 믿는 자에게는 이 하나님이 그에게 당신의 참 당신 그 실상대로 그 사람에게 해 줄 수 없습니다.
믿는 그것이 성경에 기록한 소망은 전부 실상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 믿음과 세상 믿음이 다릅니다. 세상에 믿는 믿음도 그렇게 믿으면 된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은 다 거짓부리의 생각입니다. 세상에서는 믿으면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것은 믿지마는 그 외에 거는 전부 안 믿고 의심해야 됩니다.
뭘 아무리 과학이라도, 과학이라도 과학에 딱딱 맞아도 이것만 하면 된다 해도, 이것만 하면 이거 모든 것이 되고 좋다 이렇게 말해도 그것이 다가 아니라.
과학이 말한 고거 다가 아니고 과학이 말하는 그 요소 외에 것이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사람들은 그 과학으로 한 거, 과학에 만일 백 가지면 백 가지 가지고 이 물건 만들었으니까 이 물건이 된다 이럴 거 아니겠습니까? 대개는 됩니다.
그러나, 이 과학에서 하는 대로 요대로 하면 된다 하는 그것을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왜 안 믿습니까? ‘된다’ 하는데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이랍니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이랍니다. 어떻게? `이거야 백번 천번 해도 요대로만 하면 요 딱딱 되는데 어째 안 된다 하느냐?’ ‘그거는 될 때라야 되지 안 될 때는 안 된다. 그러면 그게 다가 아니다. 그 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있다. 그분이 같이 안 해 주면 안 된다. 또 하나님이 안 되게 하시면 더우기 안 된다.’ 이 말 알아듣겠습니까? 이거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요? 그러기에, 세상에 있는 모든 말은 우리가 믿지를 안해야 됩니다. 왜? 독일에서 그때 일차대전 때에 삼십 년 동안 이 풍조를 측후소에서 조사를 하니까 그때는 꼭 이쪽에 동남으로만 부니까 그때 독화살을 뿌리면 그만 이거는 전부 싹 멸종을 해 버리고 저거 통일하겠다 해서 했는데 삼십 년 만에, 뿌리고 나서 삼십 년 만에 처음 바람으로서 꺼꾸로 불어와서 저거가 다 거의 몰사하다시피 몰사했어.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통계도 믿을 수 없다 말이오. 통계도 하나님이 허락하에서 통계가 되지 하나님이 그때라도 변동시키면 소용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사람은 농사짓는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거 다 이거는 내가 농사지어 가지고 내가 벌었다. 고기 잡는 사람은 있다가 이거는 저거 고기라 이라지마는 실은 그 전부 하나님의 것을 공짜배기로 하고 있습니다. 농사짓는 데 사람이 하는 것은 예를 들면 백분지 한 이삼밖에는 못 하요. 하나님이 사람들이 모르는 하나님이 하시는 그 담당 분야는 얼마나 되느냐 하면은 백의 한 구십구나 된다, 그거. 그러니 사람들이 모르거든.
그러기 때문에 세상 거는 뭐이든지 믿지 마십시오. 믿으면 안 됩니다. 믿으면 안 돼. 그거 믿지 못해. 믿을 수 없어요. ‘이거야 뭐 백 번 해도 다 그렇던데 안 믿어?’ 백 번 해 그래도 하나님이 그렇게 되게 하셔 그렇지 천 번 해서 됐더란대도 하나님이 안 되게 하시면 안 된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거 이 계약은 요거는 다 믿어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신구약 성경에 있는 거는 다 믿어야 돼요.
그런데, 그러면 신구약 성경에 있는 것은 이거는 뭐 먼지만한 것도 하나 예를 들면 빠지지 안하고 전부 다 믿어야 되는데 이렇게 다 믿어야 되는 것을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믿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이 성경에 있는 거는 전부 하나도 뺄 것 없이 전부 다 믿어야 되는데, 전적 믿어야 되는데, 그러면 믿어야 되는 이 사실을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누구든지 다 믿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어째 없습니까? 녜, 이 믿음이 무슨 믿음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이 믿음이 무슨 믿음이지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한번 해석해 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라 말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요, 예수라면 신인양성일위요, 신인양성일위의 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의 대표자, 알겠소? 피조물의 대표자.
이러니까 창조주와 피조물, 창조주와 피조물이 뚤뚤 뭉쳐 가지고서 이 믿음을 만드는데, 이 믿음을 만드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습니까? 영원 전에서 영원 후입니다. 알겠습니까? 무슨 말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는데 그 목적,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 정하신 것은 창세 전 영원 전입니다. 영원 전부터 이 믿음이 시작됐어. 또 영원 전부터 시작된 이 믿음이 언제? 그리스도 예수의 이 끝날은 영원히 있기 때문에 그 영원까지. 그렇게 만든 믿음입니다.
이거는 하나님이 이렇게 만든 믿음인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인데 이 믿음은 이 세상에서 과학을 믿고 아버지가 자녀를 믿고 자녀가 부모 믿고 하는 그 믿음과 같은 믿음입니까 무슨 믿음입니까? 같은 믿음 아니오.
이 믿음은 그런 데 못 써먹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특별히 영원한 세월을 걸려 가지고 하나님과 피조물이 똘똘 다 합력을 해 가지고 만든 믿음인데 이 믿음은 어데만 써먹느냐?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만 믿는 요게만 써먹는 믿음입니다. 알겠습니까? 요 믿음에 대해서 구별하는 그게 없어요. 믿음에 대해서 구별하는 믿음이 지금뭐 신학박사 그까짓 거 얻기 쉬워. 그까짓 거는 뭐. 오히려 다른 박사보다도 쉬워요.
누가 뭘 하나 해 가지고 박사를 하나 얻었다 하더라? 지금 세계가 믿음의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어. 믿음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저 자식이 부모 믿는 거나 부모가 자식 믿는 거나, 아내가 남편 믿는 거나 남편이 아내 믿는 것이나, 그 모두 위가 아래 믿는 것이나 아래가 위 믿는 것이나 이 믿음하고 예수 믿는 믿음하고 꼭 같은 믿음인 줄 아는데 요것만 딱 정의 내려서 이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인데 영원 전에서 영원 후까지의 시간이 걸렸고 이 창조주 자존자 하나님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의 대표 인성이거든. 그거 이해가 돼요? 첫째 아담은 이 우주의 모든 피조물의 대표자로 세웠는데 패전했어. 둘째 아담의 인성은 대표자로서 승리했어.
이래서, 창조주와 피조물이 합해 가지고서 믿음 만든 건데 이 믿음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거, 뭐인데? 하나님이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뜻이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구원이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속성들이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이 세밀히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만을 믿으라는 믿음입니다. 알겠습니까? 이 믿음은 이 세상에 안 믿는 사람들에게 이 믿음이, 안 믿는 사람 전체에게 이 믿음이 다문 얼마라도 그 속에 먼지만이라도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까? 하나도 없어. 요거 알아야 돼요. 하나도 없어. 이라면 세계 신학이 깜짝 놀랄 거라. 이 믿음이 요거라는 이것을 모르고 지금 덩더꿍이 하고 있거든.
그런데, 이 믿음은 여게만 전용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만드신 믿음인데 이 믿음이기 때문에 제가 뭐 이 세상에서 믿는 짜다라 지저분한 많은 그런 믿음인 줄 알아. 그 믿음이 아니라. 이 믿음은 하나님의 특제의 것으로 참 시간도 많이 걸렸고 재료도 많이 들어서 만든 이 믿음인데 이 믿음은 하나님의 목적에만 써먹을라고 만든 믿음인데 우리에게 이 신구약 성경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믿어지는 믿음이 생겨집니다. 조그매라도 믿어지는 믿음이 생겨집니다.
믿음이 생겨지면 그 믿음은 세상에서 믿는 그런 믿음입니까 특수한 믿음입니까? 특수한 믿음이오. 이 믿음은 하나님이 이렇게 보배롭게 지어 가지고 아무데도 쓰이지 안해. 안 쓰이는데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 말이오.
우리에게 조금 줘. 조금 주면은, 하나님이 조금, 만일 하나님의 계약에 대해서 믿는 믿음이 생겨졌으면 그 믿음은 이 믿음을 만드신 분이 이 믿음을 주셔서 믿음을 가지게 됐습니까 그냥 사람들이 믿는 그 믿음입니까? 그러면 주셔서 이 믿으라고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 믿음을 주셨으니까 내가 믿는 믿음은 내 마음 속에서 시작됐습니까 그 믿음이 어데서 시작됐습니까? 전지 전능자 대주재자 거게서부터 시발돼 나온 믿음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러니 이 믿음을 의심을 할 여지가 있어요 없어요? 이 믿음은 믿기만 하면 돼져요 안 돼요? 믿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믿기만 하면 돼.
요것은, 이것 때문에 믿음의 유래를 말하는 거라, 믿음의 유래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구원을 얻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어.
그런데 이 믿음, 이 믿음은 세상에서 모두 믿고 삽시다, ‘뭐 믿고 삽시다, 믿는 세상이 됩시다, 믿고 삽시다.’ 하는 믿고 삽시다 하는 그 믿음하고 이 믿음하고 같아요 안 같아요?○○○? 같애 달라? 뭐라 하노? 고함 좀 질러 봐. 이 믿음은 다른 믿음이야.
믿음은, 믿음은, 믿음은 하나님이 영원 전 모든 걸 움직여 가지고 여게만 전용하기 위해서 만든 믿음인데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어떤 자에게는 주시고 어떤 자에게는 안 줍니다. 이 믿음을 주셔서 믿으라 할 때 믿을 때에, 믿을 때에 믿은 대로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믿은 대로 되도록 하기 위해서, 믿은 대로 되도록 하실 양반, 믿은 대로 되도록 이루실 그분이 믿으라 하고 믿으니까 또 이루어지고 이라니까 내나 하나님 한 분의 역사라 말이오. 이러니까 뭐 철통같이 이거는 변동이 없어. 요동이 없어. 알아듣겠어요?
자, 뭐 시간 많이 갔는데, 그만 그래 여러분들에게 자꾸 이래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믿음을 가지도록 자꾸 이래 만들라고 말합니다. 지난밤에 재독한 데도 보니까 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수많은 논증을 해 가지고서 이렇게 믿음을 가지도록 이라는데 그래도 이거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왜 그래요? 믿음을 가지도록 내가 설교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믿음 가지도록 이거 믿음 만드신 분이 지금 이래 하고 있습니까? 믿음 만드신 분이 이와같이 하고 있지마는 암만 이래도 한자리 있어도 그 믿음의 설교를 하는데 하나는 이만치 받고 하나는 요만치 받고 하나는 하나도 못 받아요, 암만 거기 있어도. 하나님이 주셔야 받아요.
그러면 이 말이 나가는 것도 누구에게 나가 가지고 누구에게는 믿음이 받아지고 안 받아지고 이것이 자존자 한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게 이루어져 가지고 쭉 펴여 나온다는 이 구원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서만 이 구원이 시발돼 가지고 쭉 뻗쳐 나오는 것이라. 피조물에게서 일어나는 그런 구원이 아니라요.
그래서, 그만 간단하게 이제 여러분들, 믿는 대로 됩니다. 신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소망하는 것은 믿으면 되고 안 믿으면 안 됩니다. 다 같은 하나님인데 어떤 자는 조그만한 거 말이오. 예를 들면 그 일은 하기가 쌀내끼만치 어려운 일입니다. 쌀내끼만치 어려운 일 그걸 ‘하나님이 이 일을 해 줄 수 있겠느냐?’ 쌀내끼만한 어려운 일도 ‘하나님이 이를 해 주실 수 있겠느냐?' 하는 그 사람에게는, 그 쌀내끼만한 어려운 일이야 그까짓 거 쉽지 않소? 쌀내끼만한, 쌀내끼를 왜 말해요? 쌀내끼라면 쪼끄만하다 말이오. 눈꼽재기만하다 말이오.
눈꼽재기만한 조그만한 어려운 일 그런 일을 ‘하나님이 이를 해 주시겠느냐?’ 이렇게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 일 해 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믿지 못하면 하나님께 해 주십시요 해 주십시요 이렇게 자꾸 말해도 자꾸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이거 해 주실 수 있겠느냐 믿지 안하고 기도를 이래 하면 하나님이 그 일 해 주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안 믿기 때문에 해 줄 수가 없다 말이오.
어떤 사람은 이 지구 땅덩어리만한 큰일인데, 하기가 그렇츰 어려운 일인데 ‘하나님이 이를 해 주실 수 있다’ 믿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일에 대해서 해 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자에게는 쌀내끼만한 일도 해 주는 능력이 없는 하나님인데, 전자에게는 쌀내끼만한 것도 해 줄 능력이 없는 하나님인데 여게는 지구 땅덩어리만한 것도 해 줄 수 있는 능력 있는 하나님이 되니 어째 그렇습니까? 믿은 대로 됩니다. 알겠습니까? 이러기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요것만 기억하고 그 다음에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는 또 뒤에 시간 있는 대로 증거하겠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여게서 능력은 나옵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자, 베드로가 그러면 물위에 걸어간 것을 뭘로 걸어갔습니까? 믿으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이 물위로 걸어오라 했으니까, 주님이 물위로 걸어오라 했으니까 내가 물위로 걸어가면 걸어가게 하실 것이다’ 하는 걸 믿으니까 그 밑에 물이 그만 똑 세멘트 바닥같이 그만 딴딴하게 걸어갔다 말이오.
이라다가 또 그만 믿음을 버렸다 말이오. 그 물에 푹 빠져 들어갔어. 푹 빠져 들어갔는데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왜 빠져 들어갔다고 했습니까? 발을 자주 안 떼놔 그렇다 했소 믿음을 버려서 그렇다 했소? 믿음을 버리니까, 믿음을 버리니까 하나님이 그만 자기에게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믿음을 버렸다 말이오. ‘풍랑이 이렇게 부는데 암만 하나님이 그렇지만 나를 여기서 이래 할 수 있겠느냐?’ 그만 하나님 믿지 안했거든. ‘풍랑 아니라 우풍랑이라도 문제 없다 하나님이 걸어가라 하신다’ 할 때는 떡떡 걸어갔는데 안 믿으니까 푹 빠져 버렸어. 이 믿음의 신비성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첫 새벽에 믿음, 어짜든지 자꾸 믿는 사람 되도록 노력하고 힘을 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