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선지자선교회 1982년 2월 7일 주후

 

본문 : 고전 10:1-13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면이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또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을 영원히 책임지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구원에 유익될 일만 우리에게 닥치게 하시지 우리 구원에 손해되게 하는  일은 하나도 만나게 하지 아니하십니다.

 혹 주님의 모든 면에 유한한 점이 있다고 하면 그 한계를 넘으면 실수할 수도  있겠지마는 주님은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해될 일은 하나도 닥치지  않게 하시고 구원될 일만 만나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감당치 못할 시험은 당치 않게 하신다" 또 우리가 볼 때는 이런 일은  참 감당하기 어렵다 안 되겠다 싶은 그것도 반드시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그런  길을 하나님이 미리 우리에게 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전에 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안 믿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것과 같이 뭐 돈을, 권세를, 지위를, 무슨 행락을, 자기의 무슨 욕망  달성을 이런 것 위해서 살게 두신 것 아닙니다. 우리를 땅위에 살게 두신 것은  이 세상에서 영원무궁토록 살 하늘나라의 준비를 잘 해 가지고 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두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준비는 무슨 준비인고 하니 믿음의  준비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똑똑히 알고 또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고 계속하고 계시는 것을 알아 그분을 든든히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분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는 정확무오한 인도시며 또 계약한 이 계약은 정확히  이루시는 계약이기 때문에 그분의 능력을 믿고, 사랑을 믿고, 우리를 책임지신  것을 믿고, 우리에게 계약 선포해 놓은 이 계약의 신실성을 믿고, 그분이  인도하심은 다 생명인 것을 인정함으로 그대로 하나 둘 순종해 나가면 우리의  영원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분을 알고 그분을 바라봄으로 그분의 인도에 복종하는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만들어 이 믿음 가지고 무궁세계도 사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믿음의 힘  가지고 삽니다. 또 영원무궁토록 모든 건설이나 파괴도 믿음의 힘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믿음이 하는 그 일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으로 일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으면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그대로 우리가 시작만 하면 그 일을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다 완성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땅위에 사는 기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기르는 일이요 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순종하는 일을 길러 주시는 일입니다. 하나님  알고 그분을 소망함으로 순종하는 요 세 가지만 완성을 한다면 우리 구원은  완성이 된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이 힘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인도는 어쩌든지 하나님을 많리 알고,  많이 알고, 여러모로 알기에 유익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발견해서 알기에, 하나님 알기에 유익한 길로만, 또 '하나님은 참으로 바라보고  의지할 분이다' 하는 소망하는 것이 점점 든든케 되어질 수 있는 이 길로, 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 순종이 차차 더 순종하는 견고한 순종이 될 수 있는  이런 길로만 인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목적이 그러하기 때문에 이런 길로만  인도하십니다.

 이 수입이, 이 지식이, 이 실력이 장성하게 하는 그 생활은 파란과 애로와  곡절과 모든, 인간이 할 수 없는 그리만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길로 인도하시고,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길로 인도하시고, 순종할  수 없는 길로 인도하시고 그렇습니다.

 이러기에 사람들은 그거는 믿을 수 없는 일이요 순종할 수 없는 일이요 또  바라볼 수 없는 그런 형편만 자꾸 닥치게 합니다. 닥치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인데  믿어 보니까 해결이 되지, 순종할 수 없는 일인데 순종해 보니까 더 좋지,  바라보지 못할 일인데 바라보니까 더 잘되지.

 이렇게 해서, 인도대로 따라가면 마지막에는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 하나님에게  대한 정확무오의 이 인도, 하나님에게 대한 사랑과 소망 이것이 든든해집니다.

든든해지면 어느 정도 든든해졌든지 어느 정도 그것이 건설이 됐든지 된 것  그것이 이다음에 부활할 때에 부활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실력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에 그저 참 등따시고 배부르고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든지 평온한 그런 자리에서 살기를 원치 말아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경험할 게 없고, 체험할 게 없고, 새로 깨달을 게 없고, 우리의 주관이라는 이  못쓸 것이 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 주관과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가 되는 그런 현실을  우리에게 딱 줍니다. 이러니까 우리 주관은 이리 가야 되겠고 하나님은 저리  가라 하고 이 둘이 대립이 되어지는 그 길을 만났을 때에 우리 인간 생각대로  '이리 안 하면 큰 낭패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면 큰 낭패가 된다.' 하나님은  된다, 인간 생각은 안 된다. 이 길로만 인도합니다.

 인도할 때에 그만 안될 요량하고 '하나님의 인도대로 한번 해 보자.' 한번 척해  보니까 됐다 말이오. 됐으니까 '하나님 인도가 우리가 이해를 못 해도 됐다.

인간 주장은 될 것 같아도 보니까 안 되는 것이다.' 차차 차차 자기를 부인해,  인생을 부인해, 피조물을 부인해, 창조주되신 주님을 점점 인정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앞길은 반드시 험한 길이다. 참 낭패와 환난이 짜여  있는 길이다. 모든 것이 절단나는 길이다. 그 길로만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절단나고 망해지는 그 길로 인도하시는데 거기에서  하나님이 '너 보기 어떠냐?' '우리 인간 생각으로 이거는 전혀 망합니다.'  '그렇지. 그러나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봐라. 네가 이렇게 한번 해 봐라. 이렇게  하면 네 마음에는 이것이 성공이 될 것 같으냐 망할 것 같으냐?' '틀림없이  망합니다.' '시키는 대로 한번 해 봐라.' '틀림없이 망하지마는 시키는 대로  한번 해 보지요.'  시키는 대로 딱 해 보니까 망하지 않고 성공이 됩니다. '아, 이상합니다. 우리  생각과 하나님 생각이 같지 않았는데 하나님 주장이 맞았습니다.' 한번 두번  경험해 가지고 이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고, 섬기고, 그에게  자기를 맡기는 것이 점점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의 앞길은 험한 것이 우리 앞길인데 조그만한 험한  데서는 순종하기가 조금 어렵고, 크게 많이 험한 길에는 순종하기가 크게 많이  어렵고, 이래서 조그만한 어려움 순종하기 쉬운 데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조금  나타나고, 참 큰일났고 순종하기 어려운 그럴 때는 순종하니까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나게 되고 큰 수입, 큰 승리, 큰 변화, 큰 구원 성공이  이루어집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차차 차차 믿음으로 경험해 나가는 사람들은 자기 앞길이  평탄하기를 원하겠습니까, 인간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점점 어려움이 자기 앞에  닥치기를 원하겠습니까 순탄을 원하겠습니까? 믿는 사람은 자기 앞에 어떤 것을  원하겠습니까? 어떤 걸 원하겠지요? ○○○씨? 어려운 것을 원한다.

 조금 어려움보다도 더 큰 어려움, 큰 어려움보다도 더 큰 어려움, 역사에 없는  제일 큰 어려움, 왜? 이 큰 어려움은 하나님을 거기에서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자기를 맡기고 척 순종하는 것이 어렵지마는 순종만 하면 큰 능력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그런고로 하늘나라에서 제일 큰 자가 되고자 하는 자는  세상에서 제일 순종하기 어려운 일, 제일 큰 낭패의 일 그 일 닥치기를  원합니다.

 하늘나라에 제일 큰 자가 어떤 자가 제일 큰 자일 것인가? 세상에서 제일 큰  환난을 닥친 자, 제일 어려운 일을 닥친 자, 하나님에게 순종하기 제일 어려운  일을 닥친 자, 그때에 순종으로 제일 어려운 일을 턱 깨서 해결을 지운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본인에게는 큰 경험과 체험에서 강한 믿음이 생깁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도 인정하고 모든 인류들도 인정하고 만물도 인정하고 자기도 확신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평탄함을 원하는 것보다도 파란, 곡절, 모든  역경, 마찰, 험로 이것이 닥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돼야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왜? 거기에라야 수입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라야 성장이 있고,  새로운 지식이 나오고, 새로운 하나님을 발견할 수가 있고, 거기에라야 새로운  소망, 새로운 믿음, 새로운 의지, 새로운 순종의 힘 이것 다 좋은 것이 거기에서  나오니까 점점 앞에 어려움이 닥치는 것을 원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어린 신앙들을 보면 삼팔선이 안 터져야 되겠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 수입만  보면 삼팔선이 터져서 이제 이 모든 공산주의자들 이 세력을 잡고 이래 할 때에  그때에 다니엘처럼 믿음의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탁 깨뜨려서 '유물주의  무신론주의가 바싹 깨지고 신앙의 자유가 저 압록강까지 싹 밀려갈 수 있도록  이런 한번 폭탄이 터져야 될 터인데' 하는 그것을 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거요.

 그러면 우리 앞에, 출애굽에 보니까 사람이 어렵게 하는 그 어려움이 있고, 또  그 지리상 또 어렵게 되어서 어려움도 있고, 이 모든 만물 또 이런 모든 짐승들  의식주 뭐 이런 것이, 거기에는 지대가 사막이니까 농사를 짓지 못하는 곳이니  어려움, 이 모든 사람이 주는 어려움, 사람 아닌 것들이 주는 어려움, 바다가  주는 어려움, 육지가 주는 어려움, 사막이 주는 어려움, 식물이 주는 어려움,  물이 주는 어려움, 사람이 아닌 것들이 주는 어려움,  사람이 주는 어려움 사람 아닌 모든 피조물들이 주는 어려움 어떤 어려움이든지  거기에서 살 길은 무슨 길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거기에서 '요렇게 해라 조렇게  해라' 하는 당신의 명령인데 그것만 딱 맞춰서 순종만 하면 사람이 주는  어려움도 어려움이 변하여서 행복과 성공과 영광과 평강이 되고, 사람 아닌 뭐  이 모든 무생물이, 만물이, 천연이, 자연이, 지대가 주는 것도 믿음만 지키니까  그 전체가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고, 안 믿는 사람도  '아, 하나님!' 하고 두려워서 섬기게 되고, 이 믿는 사람은 영광이라서 그들이  하나님처럼 두려워하고 높이 여기고.

 이러니까 우리는 어데서든지 믿음 하나를 가지고 해결을 하겠다 하는 요것을  굳게 잡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능치 못 할 것이 없느니라"  믿음이면 다 해결지을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이 믿음이라는 열쇠를 가졌으니까 아주 여물게 단단히 잠궈 놓은  창고, 단단히 잠궈 놓은 창고는 그 안에 보물이 많이 들었다 그말이오. 단단히  잠궈 놓은 창고 강하고 큰 창고만 닥치면 재수붙었습니다. 열쇠로 딱 끌르니까  콱 열려 버리니까 그 안의 것이 다 내것이라.

 이것 뭐 열쇠는 가졌는데 시시하이 닫은둥 만둥 해 가지고 찌그러진 창고 그것  쉬운 창고 열기 쉬워 그냥 열쇠면 열 수 있는 그런 창고는 닥쳐봐야 보배가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어려울수록 이것이 하나님의 보배가 들어 있는 큰 선물,  무궁세계의 영광과 권위가 그 속에 들어 있다 그거요.

 그런고로 우리는, 자기가 하나님의 법대로 순종을 해도 하나님이 이 크신  분이신 것을 믿지 못하고 억지로 순종하는 데는 하나님이 일할 수가 없다  말이오. 땅위에 어떻게 큰 것이라도 그보다 하나님은 크십니다. 또 아무리  사이비하고 참 위험 천만이라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안될 것 같아도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은 정확무오합니다.

신실합니다. 이러니까 안심하고 우리는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을 어떻게 크신 분인 것을 알고, 하나. 그분이 나를 사랑하시고  책임지고 구원하시려고 애쓰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고, 그분이 선포해  놓은 계약은 정확무오하기 때문에 그 계약을 의심없이 믿고, 그다음에 하나만  하면 돼, 하나만. 거기에 뜻에 딱 순종만 하면 됩니다.

 순종하려고 그분의 뜻을 찾을 때에는 마치 사전에 목록이 있는데 목록을 보고  찾으면 찾기가 쉬운 것처럼, 몇 페이지 가면 거기 있다 하는 그 찾기 쉬운  선두에 목록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는 우리가 벌로 찾지 말고  쉽게 당신이 십계명으로 강령을 우리에게 줬습니다. 십계명. 이러니까 십계명을  가지고 일계명면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이계명면, 삼계명면, 오계명면,  십계명면으로 이리 저리 둘러보면 하나님의 뜻이 딱 나온다 그말이오.

 요 면은 하나님의 뜻 같은데 저 계명에 걸리면 안되고 저 계명에는 맞은데 저  계명에 걸리면 안되고, 모든 계명을 삑 둘러 살피면서 어느 계명에도 틀리지  않고 마찰되지 않고 다 합치되는 그것이 반드시 있다 그말이오, 그뭐 찾기가  쉬워. 그걸 딱 찾아 가지고 그대로 행하면 믿음이 되는 것이라 만사가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찾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데 교만한 사람은 찾지를 못합니다.

왜? 제일 쉬울 때부터,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큰 데도 충성되고"  말씀했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것부터 제가 하나 씩 둘씩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가서 연습을 해 나갔으니까 이것은 수천 미터 되는 그 산을 한 자욱씩 밟아  을라가는 사람과 같애. 이래 놓으니까 이제까지 경험 체험으로 연습을 많이 해  놓으니까, 하나님 뜻 찾는 일을 연습을 해 놓으니까 뭐 어떤 뜻이라도 생각만  하면 딱 나와 버린다 그말이오.

 그러나 이 사람이 자기의 재능을 재간을 생각하고 평소에는 하나님의 뜻을  찾기를 연습하지 않고 힘쓰지 않고 있다가 '뭐 그때 어려울 때 그때라도 내가 탁  찾으려 하면 우매무지한 저런 인간들 요량하면 내가 그때 찾아도 잘 찾지'  싶었지마는,  말하자면 수천 미터 되는 산을 제가, 내야 날래니까 당장 훌떡 뛰어 올라가면  될 것 같지마는 수천 미터를 누가 어찌 뛰어 올라갈 수가 있습니까? 굼벵이  같아도 자꾸 기어 올라가니까 거기까지 기어 올라갔는데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당장에는 안되는 법이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어데서든지, 보십시오. 사자구덩이에 왜 사자가 입이  막혔습니까? 막힌 그것은 믿음입니다. 믿으니까, 믿으니까 하나님이 침을 딱  봉했다 말이오. 불 속에 들어갔는데 불이 태우지 못한 그거는 왜 그렇습니까?  믿으니까 태우지 못해, 믿으니까.

 믿음이 뭐인데?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와서 일하게 하니까 불이  아무리 뜨겁고 그 세력이 크지마는 하나님은 뜨겁지 못하게 불이 얼음되구로 할  수가 있다 그말이오. 하나님은 능력이 크기 때문에. 사자가 움켜서 먹는  것이지마는 하나님께서 사자를 다니엘을 보듬고 업고 다니며 둥구댕이 치구로도  할 수가 있다 그말이요, 그분은 능치 못함이 없기 때문에. "믿음은 하나님의  일이니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와서 일하신다 그거요.

 그러니까 믿음은 자기를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이요, 자기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이요, 하나님이 '내가 해 주마' 약속한 그대로, 믿음 착  갖다 대면 하나님이 안해 줄 수가 없습니다. 안 해 줄 수가 없어. 해 줘야지  안해 주면 하나님이 계약 위약자 되려고? 안해 줄 수가 없어. 이러기 때문에  믿음은 능력인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를 하게 하는 것인데 믿음을  떠나면 뭐이 생겨지느냐? 믿음을 떠나면 여기에 멸망할 것 네 가지가  생겨졌습니다. 이 네 가지로 멸망했어. 시험하는 것, 원망하는 것, 우상 숭배  하는 것, 간음하는 것이 네 가지로 멸망했습니다.

 안 믿으면 네 가지 죄 짓고, 네 가지 죄 안 지으면 믿습니다. 사람이 우가  아니면 좌, 좌가 아니면 우 우가 아니면 좌 이것 모양으로, 믿음이 아니면 네  가지 죄 네 가지 죄를 안 지으면 믿음, 믿음이 없이는 제가 네 가지 죄를 안  지을 수가 없습니다. 또 네 가지 죄를 안 지으려면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러니까 믿음 없는 자는 네 가지 죄,  이러니까 자기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앞으로 하나님이 시험하시는 참  영광스러운 보배로운 현실을 닥치는데 믿음 있는 사람은 그것으로 인해서 큰  성공하는데 믿음 없는 자는 그것으로 인해서 큰 낭패와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시험을 해 가지고 확정해라 이랬습니다.

"네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서 확실히 결정을 해라" '나는 믿음이 없다,  있다.' 공연히 없으면서 있는 줄로 이래 알면 헛되이 위로받고 있다가 속는  것입니다.

 첫째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시험할 때에 원망이 자기에게 있으면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자기에게, 왜 원망하겠습니까? 제 마음에 들어맞고 좋은  일이 있으면 원망할 리가 없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에 원망합니다. 낭패가  있을 때에 원망을 합니다. '누구 때문에 이랬다, 예수 믿어 이랬다, 뭐 어땠다.'  자기에게 원망이라 하는 것은 낙망이라 말이요, 불만이라 말이요, 불평이라  말과 같은 뜻입니다. 자기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에 원망하게 되고 낙망하게 되고  불만 품게 되고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그 어려움이 닥친 그것을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을 자기가 알고 자기에게  복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것 해 주셨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고  그분 시키는 대로만 하면 어려움 그게 큰 보배가 되는데, 어려움이 오니까 이  어려움은 큰 보배덩어리가 왔는데, 큰 성공이 왔는데 믿음이 없으니까 그걸  원망하고 낙망하고 불평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어떤 현실이 왔든지 그 현실이 자기에게 참 감사함이 없고, 자기  현실에 어려움이 왔으면 '이 어려움을 또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는 이 구경을  한번 하겠구나. 이 큰 어려움이니까 이 속에는 큰 보배가 들어 왔구나. 큰  선물이 왔다.' 입맛을 쭉쭉 다시면서 '이 어려움 왔으니 이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와 가지고 또 큰 이제 성공 한번 한다' 이게 있으면 어려움  왔을 때에 먼저 감사와 기쁨과 소망이 나올 터인데 믿음이 없으니까 원망되게  됩니다.

 그런고로 자기에게 어려움이 왔을 때에 하나님과 그 계약과 그 사랑과 내가  순종만 하면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 이루어지고 보지 못한 것이 환하게 보이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이 자기에게 있으면 감사가 되고 기쁨이  되고 두 주먹을 거머쥐고 '자, 한번 믿음을 가지고 왕 한번 폭발시켜 보자.'  이렇게 입맛이 쪽쪽 다셔지면서 기쁘고 즐거울 터인데 그게 없고 낙망이 되고,  비관이 되고, 겁이 나고, 원망이 되고, 불평이 되고 하면 벌써 믿음 없는 증거라  그말이오.

 그럴 때에 제가 원망 암만 해 봤자 해결 안 되고, 낙망해 봤자 해결 안 되고,  분발해 봤자 해결 안 되고 그것으로써 저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원망에서 멸망받는 것이니까 원망에서 얼른 믿음으로 바꿔야 됩니다.

원망이 나올 때 "원망을 하지 않아야 네가 심판을 면한다. 원망하면 심판을 면치  못한다. 멸망을 면치 못한다." 이랬기 때문에 '이 어려움이 왔는데 내가 여기서  낙망하고 비관하고 불만하고 있을 것이냐? 이 어려움을 누가 줬노?' 이것부터  알아봐.

 '어려움을 누가 이것 줬노? 나를 위해서 피흘려 구속하신 주님이 어려움을  만들어서 내게 닥치게 했다. 뭐 하려고? 나에게 큰 구원을 주시려고.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구원을 받는가? 나를 구원하시기로 책임지신 성령님, 진리, 주의  피공로가 있는데 이 지극히 큰 능력이 이와 같이 해 가지고 이것을 만든 것은  여기에서 당신의 뜻이 무엇인가 나로 하여금 발견해 가지고 그분을 소망함으로,  모든 인간의 비판 평가 지식을 부인하고 그분을 소망함으로 그분의 계약대로  그분의 영감대로 요대로 실행만 하면 믿음이니까 실행만 하면 이게 크게  변화되니까 실행해 보자' 하고 달려들어 실행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폭탄이 이제  터진다 그거요. 그것이 변화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믿음 없는 것이 원망으로 나타납니다. 원망으로  나타나면 원망 잡고 있으면 망합니다. 원망으로 나오거든 믿음 없다는 걸 깨닫고  회개를 해서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크심을 다시 인식을 해. '하나님이, 이런 크신 하나님이 이분이 나를  사랑하시는데, 이분이 내게 계약을 번연히 계약 66권에 계약을 해 왔는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만 찾아서 순종만 하면 되는데. 아멘! 주여 나를  도우시옵소서!' 하고 믿음 지키면 이제 그 모든 것이 해결되는 이것이 "모든  선진들이 이에서 증거를 받았느니라" 모든 선진들이 다 이런 역경에서 이렇게 해  가지고 원망을 믿음하고 바꿔서 믿음 지키고 나니까 해결이 됐기 때문에 '야,  과연 하나님은 여호와시로다. 하나님은 계신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츰 사랑하신다. 모든 어려움은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하나님이 이것을 닥치게 했다. 닥치게 한 것은 구원하시기 위해서 했다. 믿음만  있으면 당신이 해결해 주신다.' 이제 이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원망에서 빨리 믿음으로 바꿔야 합니다.

 또 시험하다가 멸망을 받았습니다. 시험하는 것은 무슨 일이 닥치면 '안된다.

이 일을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너 과거에 이렇게 다 모든  것 해 줬는데 이것도 하나님이 해 주실 것 아니냐? 지나간 때에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었으니까 지금도 들으실 것 아니냐? 지나간 때에도 믿음으로  해결받았으니까 지금도 받을 것 아니냐?'  과거의 경험 체험 과거를 가지고 현재를 해결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될  터인데 과거에 수십 번 보고 여러 번 봐도 현재에서는 '그때야 그렇게 됐지마는  요번도 또 될까?' 그때 된 것을 자기가 많이 봤지마는 그것을 가지고 지금도  그와 같이 될 것을 믿지 않고 '그때는 됐지마는 이번에도 될까?' 현재에 닥친  그것은 믿음으로 해결이 되리라 하는 것을 믿지 아니하고 의심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시험하는 것.

 '내 모르겠는데요. 그래 해 줄까요? 그럴까요? 될까요?' 하다가 그게 되면 '아,  과연 됐습니다.' 처음에 될까 말까 할 때는 하나님을 의심하고 시험했다가  되니까 '과연 됐습니다. 믿습니다.' 이제 믿습니다. 했으면 그다음에 믿을 것  아닙니까? 그다음에, '그러면 지금 믿지?' '예, 믿습니다.' '이 다음에는 어떤  일 와도 믿겠지? 어떤 일 있어도 믿지?' '예, 믿습니다. 틀림없이 믿습니다.' 또  한번 닥치니까 머뭇거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고 목을 쭉 빼고  앉았습니다.

 '왜 그러노?' '이렇게 큰 어려운 일 닥쳤는데.' '과거에 네가 어떻게 했노? 왜  과거에 이다음에 어떤 일 있어도 네가 믿는다 해 놓고 왜 안 믿노?' '예,  그렇기는 그렇지마는 아무래도 될까 안 될까 모르겠는데요' 하고 의심하고 하지  못하는 요것 때문에 멸망을 받았어. 요게 시험하는 것이라, 요것 때문에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러니까 "믿는 대로 되리라" 자기가 기도해 가지고 조그만한 일을 하나님이  들어 주신 걸 자기가 확실히 체험했으면, 주님 앞에 기도해서 들어 줬으면  주님이 그것 들어 주셨으니까 그것이 주님의 피 때문에 들어 줬고 계약 때문에  들어 줬는데 계약이 변합니까, 주의 피가 변합니까, 하나님이 변합니까? 그것  들어 줬으니까 모든 것 들어 주십니다.

 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만 하면 다 들어 주신다는 그 증거인데, 한번  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들어 주셔도 '그때는 들어 주셨지마는 이 기도도 들어  주실까?' '이 기도도 들어 주실까가 아니라 네가 그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냐 안 하냐 그게 문제지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 뜻에  합당하지 아니한 걸 기도하면 그렇지마는 합당한 걸 기도하면 다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 합당 하냐 안 하냐 그것 비판해 봐라.' '합당하기야 합당하지요. 합당하  기야 하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들어 주실까요?'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 믿는 사람들이 과거 역사의 것은 인정을 하면서 과거 역사에 하나님의  역사, 모든 선진들에게 동행하신 하나님, 또 신구약 성경에 있는 말씀은  정확무오하다고 믿는 것, 과거에 다른 사람에게 대한 것도 믿고, 자기의 과거에  대해서도 믿고, 신구약 성경에 대해서도 믿고,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믿고  하지마는 자기 현실에 닥칠 때에는 믿지 않는 그게 하나님을 시험하는 그거라  말이오. 그걸로 망합니다.

 현실에 닥칠 때에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인정치 않기 때문에, 순종하면  될 것이라는 요것을 확신을 가지고 소망 가지지 않기 때문에 요것으로 망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시험함으로 망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자기에게 닥친 모든  것을 믿음 하나 해 가지고 해결할 터인데 믿음 하나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지  많고 낙망하고 원망 불평하고 고민하고 이래 가지고 믿음을 써먹지 못해서  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모든 것은 믿는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 남에게는 뻔뻔스레 말하면서 제게 닥쳐 놓으면 그만  믿지 않고 시험합니다. 제게도 일이 닥치기 전에는 '주여, 내가 믿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래 놓고 일만 떡 닥치면 행하지 않고 또 시험하요.

'될까?' 하는 의심하는 그것 때문에 멸망을 받습니다. 그걸 우리가 피해야  됩니다.

 거기에 멸망의 셋째로는 우상 숭배하다가 우상에게, 우상을 섬기다가  망했습니다. 여기에 우상은 아론과 합작해 가지고서 금송아지 만들다가 그때에  3천명 가량이 죽었습니다. 금송아지 만들다가 그렇게 많이 죽었어.

 우상 숭배 했는데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모세가 내려오니까 뭐 장구 소리가  나고 노래 부르는 소리가 나오는데 좋아서 막 뛰고 굴리고 하면서 좋아합니다.

'이것 무슨 소리고?' '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자꾸  믿으라 믿으라 그분이 도와 준다 하니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분이 어떻게 도와  주는고 믿을 수가 없어서 아론에게 우리가 보이지 않는 그분이 우리를 도와 준다  해 가지고는 도무지 인정이 안 되니까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 도와 준다 하면  우리가 인정할 수 있으니까 금송아지를 하나 만들어 금으로 큰 송아지 하나  만들어 놓고 애굽에서,'  참 애굽 사람들은 소를 섬깁니다. 소를 신으로 섬기는 그게 거기 물들어 가지고  와 가지고 그게 내나 거기 와 가지고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 송아지가  우리를 인도한다고 그렇게 하면 우리가 좀 인정할 수가 있는데 보이지 않는  그분이 인도한다 하고 그분이 도와준다 하니 보이지 않는데 그분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습니까?' 자꾸 이래 세워 쌓아서 '그러면 너거 금을 가져오너라' 해  가지고 송아지 만들었다 말이오.

 송아지 만들어 놓고 '이제 이 송아지가 너거를 인도한다. 애굽에서도 이  송아지가 구원해 냈고 홍해 바다에도 이 송아지가 구원했고 어쩌고' 이렇게 자꾸  이래 하니까, 이들이 송아지는 그때 있지도 않았고 뒤에 만들었지 마는 눈에  보이는, 송아지가 눈에 보이니까 송아지 앞에가 절하면서 '이 금송아지가 우리를  인도한다.' 눈에 보이니까 좀 인정이 돼지고 믿을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분이 구원한다는 말은 인정치 않고 보이는 것이  구원한다는 이것을 인정해서 보이는 걸 만들어 놓으니까 좋고 춤을 추었습니다.

이것으로써 그들이 만든 우상에게 절해 가지고 우상 섬기다가 그렇게 멸망을  받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 하지마는 제 눈에 보이는  사업이 좀 잘 되는 상바르면 '아이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 돈이  구원하는 것 같은 것이 돈이 나타나니까 돈이 구원한다 하면 구원할 줄 알고,  인간이 구원한다면 구원할 줄 알고, 사건이 구원한다면 구원할 줄 알지마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과 당신이 계약해 놓으신 계약이, 계약이 합작되면  구원한다는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도 믿는 사람들이 자기 눈에 보이는 것, 자기 주관에  인정되는 것, 자기 이목구비에 인정되는 것, 자기 주관에 인정되는 것, 눈에  보이는 것 이런 것을 믿고 의지해서 이것으로써 구원받으려고는 소망을 하지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분이, 보이는 것을 그분이 다 만들어 냈는데.

 보이는, 눈에 육안으로 보이는 이것을 우리의 마음의 눈으로 보이는 그분보다  크게 여기고 더 의지하고, 또 자기 마음으로 보이는 그것을 이 하나님이 게시  말씀에 나타낸 것 이것보다도 더 크게 여기고, 이 계시 말씀으로 나타낸  이것보다 이것을 자기 양심 속에 변동할 수 없이 영감으로 역사하는 그 영감보다  크게 여기는,  영감이 계시로 나오고, 계시가 자기 마음으로 나오고, 자기 마음이 눈으로  나오고 귀로 나오고 모든 물질로 나와 가지고 점점 저게서 보이는 것으로 밖으로  나오는 이것을 안에보다 더 크게 여기는 요것이 다 우상 숭배입니다.

 네가 무엇이든지 네가 만들고 거기에 절하고 섬기면 하나님이 삼사 대까지  멸망을 준다 하는 만든 우상이 뭐이냐? 자기가 회사 만들어 놓고 그 회사를  주님보다 더 의지하고 더 바라보고, 자기가 만든 지위 권세 만들어 놓고 그것을  주님보다 더 바라보고 의지하고 더 순종해서 아무리 여기 교회서 어북 급한 일이  있어도 제가 만들어 놓은 직장에 사업에 자기 지위 그런 데 급한 일 있으면 교회  일 집어던져 버리고 거기부터 갑니다. 하나님 일 집어던지고 거기부터, 그것이  다 만든 우상들압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만치 믿고 의지하지 않고 보이는 이 모든 것을  피조물을 조물주이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바라보는 요것 때문에  이스라엘이 망한, 금송아지 만들어서 그것을 바라보다가 망한 그것이 우리에게  거울이라.

 오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이것보다 더 바라보고 의지하지 않고 이걸  더 크게 여겨서 이것을 더 따르고 더 섬기고 이것을 높이고 이것 아니면  죽겠다고 하지마는-유엔군은, 유엔군 가면 죽겠다고 유엔군 믿고 의지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기 때문에 요것이 우상에게, 금송아지에게  절하는 그런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멈추고 있다 그말이오.

 우상에 절함으로, 우상을 섬김으로 멸망하는 것, 보이지 않는 그 분을 보이는  모든 것보다도 크게 여겨 바라보고 그분과 의논하고 그분에게 순종함으로  해결되는 이것이 믿음인데 이분을 알고 바라보고 의지하는 순종하는 이것이  없으니까 자연히 보이는 것을 상대하고 더 의지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상을 가진 자는 믿음을 가질 수 없고 믿음을 가진  자는 우상을 가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이 우리에게 거울이니까, 금송아지 만들어 가지고, 저거 손으로  만든 그까짓 것 무슨 힘이 있다고? 금덩이 팔면 돈이나 되지. 그걸 저거 신으로  모신 것이 우리가 볼 때는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저거가 만들어 놓은 그것이  저거를 구원할 수 있다고 이스라엘이 생각했으니까 여러분들 생각할 때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오늘 제가 만들어 놓은 인간 교제, 뭐 사업, 물질, 지위, 권세, 제가 노력해서  조성하고 제작하고 모든 설립하고 해놓은 그것이 자기를 근본적으로 구원할 수  있다고, 제가 제 손으로, 제 지능으로, 제 노력으로 만들어 놓은 그것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다는 자기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그것이나 금송아지 만든 그것이나  꼭 같은 성질이지마는 그 사람들은 비평해서 정죄할 줄 알면서 제가 제 노력으로  만들어 놓은 그것은 자기의 구원에 대해서 절대성이 있다고 이렇게 믿고 하나님  믿지 않는 이런 망령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걸 봐서 오늘 우상으로 망한다는  요것을 우리가 여기에서 생각해야 됩니다.

 넷째는 간음을 행하다가 2만4천명이 죽었습니다. 하루동안에 2만 3천명이  죽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간음을 행했던가? 간음을 한 그 이유는 하나님이  광야로 인도하셔 가지고, 사람은 음식에 속한 게 아니고 하나님에게 매인 것인데  만나 가루 그것 먹고, 간소한, 간소한 이 식생활을 광야에서 하고 지내니까 옛날  애굽에 있는 그 생각이 나. 청빈하게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대로 사니까 영양도  모자라지 않고 건강도 모자라지 않고 모든 것이 간소하고 참 편리하고 이렇게  살지마는 과거에 그 애굽에 있던 그 습성이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것을 알고 '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것 가지고 꾀우면 되겠다' 해서  그 부근에다가 아주 고기 가마를 차려 놓고서 끓이면서 고기 삶는 내음이 코에  물씬물씬 들어오구로 자꾸 이렇게 해서 미혹을 줘 가지고 '여기 오면 뭐 돈 안  줘도 되니까 오시면 뭐 우리가 대접하려 하니까 오시면 대접하겠다.' 가니까 잘  한 그릇 먹이거든. '또 데리고 오십시오.' 그러며 온갖 대접을 한다 말이오.

가서 한 그릇 먹어 두 그릇 먹어 자꾸 이와 같이 살살 몰아 대는데 그게 우상의  제물이라 말이오.

 그 사람들은 죄 지으면 죽을 줄 알거든. 죄 지으면 이스라엘이 망할 줄 알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 북썩북썩 끊여 가면서 그래 하니까 코에 솔솔 들어오니까  식욕으로 인해서가 가지고 하나 먹고 두 그릇 먹고 이러니까 차차 차차 친해지고  하니까 자꾸 그것 먹고 친해지지 그다음에 여인들이 알락거리지 이래 가지고  우상의 제물 먹었지 여인들이 알락거리니까 음행했지 그래 가지고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렇게 멸망을 받았어.

 나중에는 그게 보편이 됐어. 그래서 비느하스가 분해 가지고 대낮에 이방  여인을 데리고 이스라엘이, 남녀가 둘이 들어오는 걸 보고 비느하스가 그만  어떻게 분했는지 두 남녀를 한 창에다 이래 팍 끼어 가지고 둘을 어깨에 메고 막  분해서 돌아오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네가 이스라엘이 이방으로 더불어 이렇게  음행하는 것을 미워하는 네가 있기 때문에 내가 너로써 위로를 받고 마음에  위로를 받고 내가 참고 기다린다." 그러고 난 다음에 그 재앙이 중단이 됐던  것입니다. 이것이 거울이라.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전부가  당신의 것인데 그게 좋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런 것이지 만일 우리에게 먹어  좋으면 불택자 하나도 안 주고 천하의 걸 다 우리 줄 터인데.

 우리에게 다른 면으로 우리를 수양시키고 양육시켜서 길러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사람을 만들기 위한 이 큰 포부를 가지고 하시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죽이 오든지 밥이 오든지 고기가 오든지 그대로 살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분깃이요 자기 식료품인 줄 알고 살아야 될 터인데,  다른 사람들 안 믿는 사람들 울렁울렁하게 사는 것을 보니까 마음에 부러워서,  마음에 부러워서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부러워 하니까 옛날 피우던 그  마귀가 살짝살짝,  알거든.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뭐, 뭐 하려고 그렇게 딱딱하게 살 게 있는가?  좀 죄 안 된 일이야 좀 폭 넓게 살아서, 좀 세상에서 좀 물씬물씬하게 살아  가지고 좀 잘 살고 그렇게 살지 뭐 그렇게 성경 말씀대로 사람이 딱딱하게 그럴  게 아니라 술도 먹으려면 좀 먹을 수 있고 또 이 모든 사교도 좀 하고 이렇게  널펑하게 세상하고 비슷하게 그렇게 살지.' 이러니까, 처음에는 양심에 가책이  돼서 '그렇지만 뭐 그럴 수가 있는가?' 슬금슬금 맛을 보입니다. 조금씩 맛을  보이니까 맛을 보니까 참 달콤합니다.

 이러니까 세상하고 타협하는 생활, '아무것이는 꼭 고집해 가지고 주일 그걸,  주일 오전 예배 보면 오후에 뭐 해도 되지 오후에, 그때 참석만 했으면 되는  건데 꼭 오후까지 고집해 가지고.'  이래 가지고 세상하고 타협을 해서 조금씩 조금씩 세상 맛을 보고 하니까  그다음에는 어찌 되느냐? 그만 음행한 것과 같이 나중에 가서는, 그러다 보니까  천국 소망만이 아니고 세상 소망과 소망이 둘 돼 버렸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게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과 둘이  됐고,  하나는 하나님 하나는 이쪽이니까 어찌 되느냐? 이제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이 몸뚱이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이것이 우리 갈 길이라. 주일날  예배당에서는 그날 하나님 섬기고 엿새 동안은 세상에서 세상 사람과 같이  일하고.' 이렇게 해서 기독자들이 이중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행하다가 멸망한 것과 꼭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하고 타협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죽음이 닥치면  거기에서 믿음이면 죽음에서 다니엘처럼 삶으로 큰 역사가 나타나든지 죽을 때가  됐으면 이미 가치없는 저주의 죽음이 죽을 때가 됐을 때 믿음 지키면 순교자가  돼 버립니다. 순교자!  이러니까 세상과 타협은 우리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약간의  계명을 양보해도, 사상을 양보해도, 세상과 타협을 해도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함으로 오는 것보다 좀 더 잘 살려고, 잘 먹으려고, 이 사회에서 좀 발넓게  살려고, 더 친밀히 살려고 요렇게 하는 요것이 그들이 우상의 제물 먹다가  멸망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뜻을 양보함으로써 살게 되는 것 그것이  뭐이냐? 우상의 제물인 것처럼 그것은 다 실은 마귀에게 속한 것이오. 마귀는  세상 왕입니다. 예수님도 이제 승리의 왕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셨고  이 세상은 "불신자들의 마음 속에 주관하는 악한 신이라" 그가 지금도 왕노릇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리했지마는, 택한 자들에게 왕노릇 못 합니다.

불택자들에게는 지금도 왕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원망하다가 망하는 이것, 시험하다가 망한 것, 우상 섬기다가 망한  것, 음행하다가 망한 것, 음행은 미혹으로 말미암아 돼지는 것입니다.

 이런고로 요 네 가지로 망한 그것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었으니, 오늘도 믿음 안  지키는 자는 이 네 가지를 행하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를 행하지 않는 자는  믿음을 지키지 않고는 이 네 가지를 하지 아니할 자가 없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세상을 이기지를 못하고 세상을 이용할 자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세상을 우리에게 주셨느뇨? 이것을 우리에게 이용하라고. 이  세상으로 더불어 전법과 전술과 전력을 우리에게 배양시켜 주시려고 묘한 세상  줬습니다. 아름다운 세상 줬소. 가치있는 필요한 세상 줬소. 얼마든지 거머쥐고  연습만 하면 무궁세계의 것이 성장되고 숙달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목적이 땅의 것을 주시기 위해서 하신 것이 아니요 "아버지를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다. 내가 와서 있을 곳을 예비하면 내가 와서 다시 너희들을 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이 다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는 길이 굴곡과 파란과 곡절이 많지 않으면 거기에서 우리를 가르칠  수가 없고, 연단시킬 수가 없고, 실력을 갖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고로 별별 일들이 오나 믿음 하나면 해결되는 것이니까 믿음만 거머쥐고  착착 걸어가면서 앞으로 자꾸 문을 열고 들어가야 될 것이고 향상하고 자꾸  성장돼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없고 이 네 가지 죄가 있을 때는 믿음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어서 네 가지 죄에서 믿음으로 옮겨 서야 자타가 구원되지 그렇지 않으면 금생과  내세 전체가 실패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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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8 믿음/ 고린도전서 10장 1절-13절/ 820210수야 선지자 2015.10.31
4047 믿음/ 히브리서 12장 2절/ 810227금새 선지자 2015.10.31
» 믿음/ 고린도전서 10장 1절-13절/ 820207주후 선지자 201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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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38 믿음/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840325주후 선지자 201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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