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1984. 3. 25. 주후

 

본문: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 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기독교는 하나님의 온갖 무한하시고 온전하시고 충만하신 것을 다 받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이 기독교요 또 기독교의 권세입니다.

 이것도 성령이 와서 믿어지게 해 주시면 믿어지고 그렇지 아니하면 미친 소리로  사람들이 듣습니다. '일자 무식군이요 세상에서도 집 한 칸도 가지지 못하고  조그만한 그 지위나 권세도 가지지 못한 사람 중에 천하고 못난 사람이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충만하심을 다 받아서 가질 수 있단다' 하면서 참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를 보고 일생 동안 비웃다가 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기독자들이 믿을라고 애쓰는 걸 보고서 '저는 참. 아편을 먹어서  아편에 취한 아편 중독자와 같이 저거는 예수교라는 그런 잘못된 종교에 중독이  돼 가지고서 완전히 저것은 정신 이상자라 미친자라' 그렇게들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것은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 가감이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잘못 알게 되는 이유는 첫째는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셔서 성신의 감화를 받지 못한 그것이 첫째  원인이요.

 둘째 원인은 하나님의 각양 충만한 것을 사람들이 믿음으로 받았지마는 세상에  있는 것과 같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알고 가치로 여기고 보배로  여기는 그런 것들은 하나도 아니고,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면 무슨 저런 꿈꾸는 저런 정신 이상자의 소리를 하고 있는가 하는 그런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온전한 것이요, 썩지 않는 것이요 쇠하지 않는 것이요.

더러워지지 않는 것이요, 영원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썩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고,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고,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없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은 다 없어질 것들이 아니고 참 그거는 시간과  공간이 해할 수 없는 완전한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바로 믿어서  하나님의 무한하고 충만하신 것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은 그들이 보는 눈이 없고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허무하게  생각하니까. 받은 사람만 좋지 그사람들에게는 허무하게 여겨지는 그것을 씻어  가질 수가 없게 되는 그것이 이유 중에 또 둘째입니다.

 첫째는 성신의 감화가 없으므로 그들이 보고도 알지를 못하고, 둘째로는 그들의  지식 밖에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보고 만져도 접해도 알지를 못하는 것이고,  셋째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말씀대로 그대로 실행을 하면 그들이 볼 수 없는  은밀한 신령한 것만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그들이 보고 믿을 만한 그런 표적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날 수가 있지마는서도 우리가 바른 신앙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증거를 받을 만한 증거를 나타내지 못 하는고로 그들이 증거를  받지 못하는 우리의 책임이 되어지는 또 한 가지 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어떤 부자의 것을 다 상속받아도 그것도  귀하다고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데 이북에는 그까짓 것 손이 세 개로 말하면 이  손톱도 새끼 손톱만 한 거 이북 조그만한 그 땅을 김 정일이는 김 정일이가  계대받을려고 하고, 또 다른 가족들은 그 시기를 해서 계대를 서로 받을려고  야단을 지기고 그것도 상속받으면 크다고 생각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영원하시고 그 충만함을 다 우리가 상속받을 수 있다 하면 그건 참  놀랄만한 일이요, 인간의 지식으로 측량 못할 지극히 큰일인데 사람들은 이 일을  이렇게 알지를 안합니다. 왜 알지 안하는가?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서 욕심을  품지를 아니하고 여기에 대해서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안하는 그 이유는  뭐인가? 믿음이 없는 연고입니다. 믿음이 없다 그말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참되다 인정하지 않는 데서 사고가 생겨졌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66권에 계약되어 있는 모든 계약은 하나님의 충만을 교회가  상속받는 것이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저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라  말은 무엇이든지 있으면 있는 것만치 권세가 딿는 것인데, '하늘에 있는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내가 받았다' 그 말씀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주님이  상속받았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상속받으신 그것을 우리에게 또 상속해  주실라고서 계약으로 선포해 놓으시기를 '내가 이기고 내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거와 같이 너희들도 이기면 내 보좌에 함께 앉는다' 그말은, '보좌에 함께  앉는다' 그 말은 모든 면의 그 지위가 같은 지위에 앉는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받으신 거와 같이 우리들도 다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거기에 표시해서 말씀했습니다.

 이거는 다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하나님의 계약인데 이 계약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이 계약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는다는 이 지극히 큰 소망에 대해서  힘을 쓰지도 안하고, 갈구하지도 안하고, 귀중히 여기지도 안 하고, 그거야 뭐  있거나 말거나 당장 돈 천 원이 낫고, 당장 돈 만 원이 낫고. 당장 돈 백만 원이  낫고, 당장에 돈 천만 원이 낫고, 당장에 돈 일 억이 낫다, 일억이 아니라  억억억이면 까짓 것 뭐할 거라 그말이오. 썩었다 말이오, 썩었어! 정신이  썩었어!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거짓말을 해서 그런게 아니고 하나님의 계약이 허무 해서  그런게 아니라 우리에게 믿음이 없어 그런 것이니 믿음이 없어 그런 것은  뭐이냐? 우리가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성신의 감동이 우리에게 와서 비추지  않으니까, 우리가 믿음이 생겨지지 안해서 그런 것들을 믿지 못하고 인정치  못하기 때문에 썩을 것에게 욕심을 품고 이 영원한 것에게는 욕심을 품지 않는  것이 그게 축복 아닙니다. 그게 축복 아니요 저주요. 하나님의 계약이 믿어지지  아니하고 거기에 욕망이 생겨지지 안하고 땅의 것만 욕심이 나서, 그것 찍해야  제가 암만해 봤자 부산 하나도 차지 못 할 터인데, 부산 하나도 차지 못 할  터인데, 우주 차지한다는 것은 시시하이 보고 부산 하나도 차지못 할 그것은  크게 여기는 것이 소경이요 근시자요 영감이 없는 악령의 미혹을 받아서 그런  것입니다.

 지독교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모든 것을 우리가 상속받는 유일한 유일이라는 말은 하나 제일 좋은  방편이라 그 말이요. 유일이라 말은 방편이 하나뿐이라 그 말이오. 유일이라는  말을 모든 방편 많이 있지만 그 총중에 제일 좋은 것을 가리켜서 유일이라 그거  아닙니다. 여기에 유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 뿐이라 그말이오. 오직  하나뿐이라. 둘이 아니라 하나뿐인 방편인데 이 방편은 뭐이냐? 하나님의 계약을  믿는 것뿐입니다. 믿는 것뿐이요, 믿는 것. 믿는 것은 하나님을 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렇게 알아라' 하면 '예, 내가 고렇게 압니다.' '네가  요렇게 바라봐라' '예, 고렇게 바라 봅니,다.' '네가 이렇게 말을 해라' '예.

그렇게 말을 합니다.' '네가 요렇게 행동해라' '예, 그렇게 행동하겠습니다.'  요것이 믿음입니다.

 믿음 하나만 가지고 되는 것인데 우리가 이 지극히 큰 소망이 있은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준 이 계시를 고대로 인정하고, 고대로 우리가  인정하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서 인정해야 되고, 바라보는 것도 하나님이  바라보라는 대로 따라서 바라봐야 되고, 하나님이 사모하라 하는 것도 그분을  따라서 사모하고, 하나님이 미워하라는 것도 하나님을 따라서 미워하고,  하나님이 버리라는 것도 하나님을 따라서 버리고, 하나님 딿는 것이 믿음입니다.

'가거라'하면 하나님 따라서 가는 것, '오라' 하면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따라서  오는 것, 하나님을 딿는 것이 믿음이요. 하나님을 쫓는다 말이나 딿는다 말이나  시키시는 대로 한다는 말이나 본받는다는 말이나 꼭 같은 말입니다. 그걸 합해서  믿음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오전에는 우리가 네 가지를 이 진리에서 배웠습니다.

 하나는 주님으로 인하여 시발하는 것 '가라' 주님으로 인하여 시발 한것.

동기가 주님으로 인한 것. 출발을 주님으로 인하여 출발한 것. 동하기를  주님으로 인하여 동한 것. 모든 시발은 주님으로 인해서 시발하는 요거 하나,  주님이 동하면 내가 거기에 따라서 동하고, 주님이 정하면 내가 거기에 따라서  정하고, 주님으로 인하여서 시발하는 것.

 그 다음에 소망은 주님이 요것 소망하라 하시는 그대로의 소망하는 것 주님이  소망하라 하는 대로 '저 건너편으로 가라' 주님이 목적을 정해준 그 목적이  자기의 폿대요 자기가 소망하고 가는 그것이니까 푯대라는 말이나 소망이라  말이나 목적이라 말이나 다 같은 말 들입니다.

 요 두 가지를 가지고, 하나는 이렇게 동기와 목적이 그로 말미암은 그 분은  어떤 분이냐? 그분은 전지, 전능. 완전자, 자존자, 창조주. 주재자, 조물주,  주권자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대속하시기 위해서 신인양성일위까지 되신  이 사랑의 주님이신데 그분은 무한한 능력을 가지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분을  믿는 것, 이분의 능력을 믿는 것.

 요 세 가지, 요 세 가지를 가지고 이루는 방편은 '배타라' 그것이 방편이라  말이지. 배는 거기에는 배 타라 했으면 육지 같으면 차를 타라 하셨을런지 모를  것입니다. 또 보행으로 간다면 걸어가라고 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농사를  지으라' '너는 요 세 가지를 이루는데 너는 배를 타라, 너는 소를 쟁기를 가지고  밭을 갈아라, 너는 공장에서 똑딱거리라, 너는 가정에서 주부 노릇을 해라. 너는  사회 회사원 사원으로 해라, 너는 어떤 교육자로 이렇게 너는 해라.' 뭣이든지  그것은 세상 사람들도 그것을 가지고 삽니다.

 갈릴리 바다는 다른 사람들도 다 배 타고 가는 것이요, 그것은 세상 사람들도  그런 것이 세상에서 사는 방편이라 그말입니다. 방편이라. 세상살이를 하는  불택자들이 세상에서 사는 그 방편, 자기가 예수님 믿기 전에 살때에 그 방편  가지고 산 그 방편을 통해서 주님으로 출발한 이 출발에 그 방편을 통해  가지고서 목적에 도착해라, 목적을 도달해라. 도달하는 데에는 말씀하신 그분의  능력, 목적을 정해 주신 그분의 능력, 이 방편을 쓰라고 하시는 그분의 능력,  그분의 능력을 자기가 믿고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서 이를 것을 자기가 믿고서,  이 세 가지를 이 배 타는 방편이 어떤 방편을 통해 가지고서 이루어 나가는데,  그들이 고만 배 타다가서 옛사람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배를 타다가  옛사람으로 돌아가고,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것 만치 주님의 말씀도 잊어 버렸고,  주님의 또 목적도 잊어 버렸고 주님의 그 권능도 잊어버리고. 이제 주께 대한 이  세 가지는 잊어버리고 이거는 방편인 배 타는 것만 가지고 있으면서 이 세 가지  잊어버리고 나니까 배는 타기는 탔지마는서도 순전히 옛날 어부로 배 탈 때와  같은 그 사람이 돼 가지고서 그 정신 그마음 가지고 지금 울렁거리다 보니까  그만 바람 만났지, 또 배는 가지 안하지 이래 가지고서 낭파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갈릴리 바다와 같은 이 세상을 걸어갈 때에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세상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 방편이라 하는 그 방편을 이용 하지  않고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배를 타고 가라 하는 것은 이 세상에 모든 일반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모든  생활에 그 모든 종류의 것들을 네가 이용해 가지고 사용해 가지고서 네 구원의  목적인 이 목적을 달성하라 이렇게 하시는 것인데. 믿는 사람들이 이제자들과  같이 그것을 사용하다가 이 세 가지 큰 것은 잊어 버려요. 자기가 무슨 사업을  하든지 취직을 하든지 어떤 무엇을 하든지 하면서 나는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려 구속하셔 가지고서 '너는 저 하늘 나라를 목적하고 너는 달려라', 우리가  다 출발한 사람들입니다.

 또 세상 끝날까지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가지고서 함께 하시겠다 하는 이  계약을 받고 주님의 그 능력의 도우심을 다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그라면서  이 세상 이런 처지. 저런 형편, 이런 사업. 저런 사업, 이런 직장, 저런 직장  거기에서 이 구원을 이루라 하는데 그것을 이용하지 아니하고 이 세 가지를  위해서 그것을 이용해야 될 터인데 이 세 가지를 위해서 이용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잡고 난 다음에는 차차 차차 옛날 그거 가지고 놀던 옛날 안 믿는 사람  같은 그 사람으로 자꾸 변해지니까 이 세 가지가 흐미해지니, 이 옛사람으로  되는 이거는 점점 더 강해지고. 강해지니까 이 세 가지는 없어지고, 없어지고  이게 강해지니까 풍랑이 일어나고, 풍랑이 일어나고 배는 가지 못하고 하는  그것인 것입니다.

 우리 기독자들은 어데서든지 어떤 직장에서라도 이 세 가지를 잊어버리고  자기가 현재 이 세상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거와 같은 이 세상살이의 그 방편에  삼키워져서 그것을 하는 사람이 돼 버리고, 그것을 제목적으로 알고, 그것을  저의 할일인 줄 알고, 그 사람이 되어져서 그것에게 벌써 피동이 되든지, 그것을  하되 안 믿는 사람이 그것을 취급하듯이 그래 취급해 가지고 해 버리면 벌써  구원의 성장이라 하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말한다고 하면 배를 타고 가면서 '야, 이래 이래 젓으라. 야,  그따위 소리하지 말아라. 주님이 배를 타고 가라 해서 우리가 배 타고 가는  것이지, 주님이 가게 하셔야 가지 주님이 가게 하지 안하면 뭐 노 잘 것는다고  될 줄 아느냐. 주님이 배 타고 가라 했으니 배 타고 우리 할일대로 그래 하면  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절대자가 우리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우리가 흐미하면  안 된다, 명령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분이 절대자가 말씀했기에 그 말씀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또 그 분이 우리에게 목적을 정해 줬으니 그 목적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말씀하신 그 분은 살아 계시는 절대자이시기 때문에 그분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러면 배를 타고 가면은 뭐하라 말이가? 이 세 가지만 생각해라, 이세 가지를  잃지 말고 놓지 말아라, 이 세 가지만 생각해라. 이 세 가지 생각 하면서, 그  분이 말했기 때문에 배 타는 것이고, 그 분이 목적을 정했기 때문에 거기에  갈라고 배 타는 것이고, 그 분이 명령했기 때문에 배 타고 출발한 것이지 뭐 배  보고 왔느냐 네가, 요렇게 딱 구별해 가지고서 고게 고해서 속화되지 안하고,  감염되지 안하고, 고게 피동되지 안하고, 그것을 취급할 때 안 믿는 사람과 같이  거기에 속해서 그게 저 할 일이나 되고. 아, 노 젓으니 노 젓는게 다르다. 노  젓으면서 저 할일인 줄 알고 노를 젓는다. '야 임마! 노 젓지 말고 주님이  목적지에 가라 하니까 그 목적에 가기 위해서 지금 하는 것이지 노 젓는게 너 할  일이냐?' 노정다가 예수님 팔아 버렸다. 노를 젓다가서 목적을 다 잊어 '너 어데  가노' '지금' '어데 가, 지금 배 젓고 있지요, 어데 가 자꾸 앞으로 가지.' 이와  같이 간단 하게 말하면 쉬운 거 같지마는서도 이 사람들로 자꾸 속화되고  변질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고 구원은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것을 깨닫고 요렇게 살라고 하면 반드시 요렇게 살려고 하면 있는 걸 다  버려야 됩니다. 이 말씀을 내가 순종하려고 할 때에 내가 내 가정이 어찌  될란지. 내 사업이 어찌 될란지, 내 몸뚱이가 어찌 될란지, 내 생명이 어찌  될란지, 내 직장이 어찌 될란지, 내 신세가 어찌 될란지 모른다. 어찌 됐든지  주님 명령 그 명령 받아서 출발한 거 주님이 우리에게 소망으로 주신 그 목적  요것만을 달성하기 위해서 당신의 절대자의 돕는 도움을 입어서 주님이 주신  방편대로 현실이라는 방편을 사용해 가지고서 뿍뿍 가겠다. 이 현실을 가는 것도  내가 노 젓어 내 힘으로 가는게 아니라 주님이 가게 하시니까 그저 노를 저어서  가, 노를 저어서 가니까 노 잘 젓지. 야 임마, 네가 노를 잘 젓어 가냐, 주님이  가게 하시기 때문에 가기 마련인데 가기 필연인데, 네가 노를 잘 저어 그렇다  하면 노 잘 젓는대로 기울여 버리면 하나님의 권능의 도우심이라는 건 잊어  버린다. 또 노 젓는데 거기에 재미 붙이고 거기에 정신 빠지다 보면 목적 잊어  버린다 이래 놓으니까 가다가 예수 믿는 사람이 뭣 때문에 직장 생활하고 뭣  때문에 사업 생활하는지 목적을 잊어 버렸어, 목적이 없으니까 목적 없는 방황  할 것 아닙니까?  껍데기로 받지 말고 책임을 지고서 생명의 도로서, 저버리면 죽고 시행 하면,  산다는 요것을 꼭 책임지고 그러면 힘도 쥐어질 것이고, 등어리가 어깨가  묵직하게 짊어질 것이고, 주여 안 도와주시면 안 됩니다. 주님에게 도움을  달라고 기도할 터인데 그것만 말해 봤자 그말이야 뭐 그것 마 예사로운 말 그  말이야 야! 너 지금 그러면 돈 천 원 손해간다 천 원 손해간 다 하는 것 만치도  크게 안 보이고 돈 십만원 손해간다 하면 크게 안 보이고 그렇게 헐하게 쉽게  보여지니까 무슨 구원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정말로 지킵니까? 배 타고 가다가서  옛사람으로 출발 할 때에 그 새사람이 옛 사람으로 바꾸어진 제자들과 같이  옛사람으로 바꾸어지지 안하고 그것을 과연 주님과 주님의 말씀과 주님이 주신  목적을 위하여 그것을 현실을 이용하고 있는지? 이행하고 있는지? 그것이  에덴동산을 다스리라 하는 말씀입니다. 같은 이치요.

 이래 가지고 제자들은 그만 풍랑 일었습니다. 풍랑 이는 풍랑은 저버릴 때에  풍랑이 이는 것이고, 또 더 새롭게 강하게 하기 위해서 신앙의 경험 체험 믿음이  있는 자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풍랑이 없으면 안되니까 풍랑을 그 믿음으로  인해서 풍랑이 있는 풍랑을 이용해서 더 빨리 가고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죄를 지어서 일어나는 풍랑도 있고, 어떤 사람은 믿음을  지키기 때문에 그 믿음을 더 견고하기 위해서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풍랑이  일어나는 풍랑이 있으니까 풍랑에는 다 같은 풍랑이냐? 아니라 그말이오. 다  같은 풍랑이 아니고 이 사람에게는 이 풍랑이요, 저 사람에게는 저 풍랑으로 다  같은 풍랑은 풍랑이지마는 풍랑의 동기도 목적도 결과도 다르다 그거요.

 이 제자들은 이제는 옛 사람으로 돌아가 놓으니까 주님은 잊어 버렸지, 주의  말씀 잊어 버렸지, 주님이 말씀하신 그 목적  소망 잊어 버렸지. 주님의 명령.

동기 잊어 버렸지, 목적인 소망 잊어 버렸지, 주님의 권능 잊어 버렸지 이라고  나니까 그 방편인 배만 가지고 있습니다. 배만 가지고 사람은 변질돼 버리고  배만 가지고 있어. 그라니까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것이 뭐입니까? 이제는 죽는다,  공포  불안  고통  비겁  조급 죄 뭉텅이는 다 있습니다. 오만 거 다 있어. 이래  가지고서 고민  고통을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 세 가지가 없어지면 고통 옵니다. 이 세 가지가  흐미해지면 천해지고, 고통 와지고. 또 고민 와지고, 또 두려움 오고 이 세  가지만 없어지면 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있는 자에게는 그런 것들이 오지  않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밤 사경에 밤중에 바다 위로 구원하러 걸어 오셨습니다. 멀리  서서 계셔도 제자들의 그 형편을 다 아시고 제자들이 위기를 당했을 때에는  주님은 그 위기에 빠지지 안하도록 적당하게 건질 수 있도록 언제 든지 옆에  계시면서 우리를 살피고, 보살피고 계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셔 가지고서. 그들이 보고서 '아, 물귀신 왔다' 하면서 놀라면서 고 함  지르니까 고함 지르니까 주님이 있다가서 '내로라 두려워 하자 말아라. 내다'  이라니까 아마 거기에서도 별별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내다' 히라니까 '아,  내라니, 누구고 그게 누가 하노? 물 귀신 귀신이 하는 거 아니가?' 그래  놓으니까 '아, 주님 같다'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베드로는 그만 그말  듣고는 그말 듣고는 그만 눈도 똑똑이 알지 못하며 '주 시어든' 그 주님의  음성을 척 들으니까 그만 베드로는 해결이 다 됐다 말이오.

 주님의 음성 턱 들으니까 자, 금방 물에 빠져 죽겠다고서 지금 죽겠다고서  공포와 절망과 그 모든 낙망 두려움이 가득 찼었는데 죽음도 어디로 갔는지  없어져 버리고, 불애도 없어져 버리고, 두려움도 없어 버리고, 또 저 목적지  가라 하는 그것도 없어져 버렸고, 주님이 배 타고 가라 하는 그것도 없지, 다  없지, 아무것도 없어 버렸소.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그만 천국이고 옛날이고  아무 것도 없고, 그만 내로라 할 때에 다만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주님 한  분만 보입니다. 주님 한 분만 보였어. 주님 한 분 만 딱 생각이 나고 딱 보일  때에, 그때에 다른 것이 하나도 없이, 그 주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 형편  사정   자기 주관  자기 심정  자기 사상  자기 처지  자기의 모든 마음  몸 전체는  완전히 변화 되었습니다. 완전히 변해졌어.

 변화되니까 아, 배 타고 있으면서도 죽는다고 야단지긴 자가 다 없어지니까 떡,  하는 말이 '주여 나에게 물 위로 걸어 오라고 명하십시오.' 모든 염려와 고통이  다 없어지고 이제는 주님을 바라봐. 주님을 바라봐, '아,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다 그만 주님을 딱 발견하니까 모든 세상 근심, 걱정 다 없어지고, 번민    고통 없어지고, 모든 거 다 없어지고 주님 한 분만, 구속한 주님한 분만 딱  바라보여지는 이때에 그렇게 모든 것이 없어지는 그 주의 음성, 또 주님 한 분만  바라보는 주의 음성, 주님, 이 나에게 무엇이든지 명하실 때에는 그 명령은 못  할 거다 주님이 명하실 때는 그대로 된다, 주님의 명령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주님의 명령은 그대로 된다 하는 것을 베드로가 딱 그때에 변화가 됐다 말이오.

그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어.

 이러니까 '주여 나를 명하여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빠져 죽으라고  만일 그 소리 할라 하면 '날 빠져 죽게 한다, 나를 빠져 죽으라고 지금 그리  하는 갑다.' 이랄건데 이 빠져 죽을 것도 생각지 있하고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이 말을 할 때에 베드로가 주의 음성을 듣기 전 어떤 사람이었으며,  듣고 난 다음에 어떤 사람이었으며, '주여 물 위로 나를 걸어오라고 하십시오.

명령하십시오' 할 때에 그 명령을 요구할 때에 그때에 물 위로 걸어오라 하는  명령은 물 위에 빠지면 죽는 건데 거기에 대한 선입저 지식이라 하는 것은 물  위에 빠지면 죽는다는 것은 그 어부들이기 때문에 똑똑히 아는데.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자기를 완전히 부인하고, 과거를 완전히 부인하고, 주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주님 한 분만을 바라 봐 '주님은 능치 못 하심이 없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다 된다, 주님이 말씀하신 거는 하나도 안 될  거 없고 말씀 하신 대로 다 된다.' 그 사람으로 완전히 변화가 됐습니다.

 우리가 믿는 사람들이 이 셋을 잊어 버렸을 때에, 그 방편인 이 세상 것을  이용하다가 이용하지는 안하고 이용을 당해 버립니다. 이 공부 해 가지고  박사되는 사람들 모두 박사를, 이용하라고, 하는 지식 준 건데 그만 박사의  사람이 돼 버려서 지식의 사람이 돼 버려서 하나님의 말씀은 모르고 그게  제일이라, 그게 제일이라. 강당에서면 그거 자랑한다 말이오 하나님을  자랑하는게 아니고.

 오늘도 오전에 누구를 만났는데 그 히스기야 왕에게 바벨론 사람들이 찾아  오니까 바벨론의 사람들이 찾아올 때 히스기야 왕이 말할 것은 '아 어찌 이렇게  이 땅도 이리 됐습니까?'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분 한 분으로 됐지 뭐 이것 저런 것 아무 것도 없어.' '아, 요  군기도 많으네요? 뭐 재산도 많으네요?' '아니요 그까짓 거 있거나 없거나 무슨  상관입니까? 하나님 한분이면 되지 하나님 한 분으로 되었어요.' 요랬으면  히스기야 왕이, '아이구, 그 나라는 참 하나님 그분으로 전부 삼고 그분이 그  나라의 하나님인데 건드렸다가는 우리 박살 난다.' 이럴 건데 가 보니까 백지  소문 듣고 가 가지고 보니까 그 군기니 뭐 무기니 자랑하는데 그까짓 거야  해보니 시쁘다 그말이오. 그게 시뻐. 그까짓 거야 우리가 대번에 할 수가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가 보면 우리는 그보다 더 강하니까 문제가 없다.'  이래서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자랑하지 안하고 군기를 자랑하는 것 처럼  '이제 학생 반사들이 열심히 심방을 합니다. 이렇게 뭐 일찍 열심히 합니다.

뛰고 굴리면서 돌아옵니다.' 그런 것만 말해 주고, 요지 하나님, 인간들의  비위를 맞추지 안하고 하나님의 비위, 한 분의 비위를 맞춘다는 요것을 요게  주장이고, 고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 요것이 주장이라, 말씀 대로만 가르치고  딴것 안 가르치고 말씀을. 요것이 골자지, 요거 둘은 자랑하지 안하고 엉뚱한  것을 자랑하고, 그 자리 보니까 내가 그만 있기가 싫었어. 영 휘떡 분위기가  바꿔져 버리고 말았다 말이오. 여러분들이 그라면 바벨론으로 잡혀간 거와 같이  마찬가지로 다 뺏겨지고 말 것이라 말이오. 뭐입니까, 어리석어, 깨달아야  됩니다. 희망 있는 사람은 하나를 들으면은 열을 깨닫는 '문일 지십이라' 하나를  들으면 열 가지를 안다 하는 거 모양으로 자꾸 깨달아 나가야 되지, 자꾸  세상으로 기어 들어간다 말이오. 자꾸 세상으로 기어 들어가고, 자꾸 제게로  기어 들어 가면 세상으로 기어 들어 가고 인간으로 기어 들어 가고 사망으로  기어 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도 이것도 말하는 데에 듣는 사람은 듣고 못 듣는 사람은 못 듣는다  말이오. 그 자들도 보니까 듣는 사람은 듣고 못 듣는 사람은 못 듣는데 아, 많이  듣는 가운데서 '아, 하나님의 말씀만 가르친다, 하나님 말씀만 가르친다.'  거기에 대해서 아멘으로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 보이지지 안해. '대접을 하지  않습니다.' 하는데 대해서 강하게 느껴지지를 안해요.

 여기에도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 하지마는 성경을 읽든지 기도를 해서 기도  가운데 주님을 만나든지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을 만나든지 만날 때에 우리가 이  세 가지를 떠남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종이 되고, 세상에게 발끈 눌혀서 짓밟힘이  되고,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서 거름에도 쓸데 없고 밟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 가지를 잃으면 기독자가 천대해집니다. 기독자가 천해지는데  다른 사람이 천하게 여기기 전에 제가 먼저 절 천하게 여깁니다. 자기는 천한  인간인 줄 알게 됩니다. 또 다른 사람도 자기를 천하게 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세상에서 압박과 천대와 멸시가 오는 그것을 막아낼 도리가 없습니다.

막아낼 도리가 없으니까 막지 못하니까 부득이 간사하게 거기에 아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담대하게 이렇게 못하고 아부하게 '이렇게 하랍니까, 저렇게 하라  합니까, 어짜랍니까? 내일은 주일이지마는서도 주일 그라면 주일을 그만 지키지  말랍니까, 어쩔랍니까?' 고만 아부하고 그렇게 천해져서 아주 종지 종이 돼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 셋을 잃지 않은 자에게는 세상에게 절대 종이 되지 않습니다. 절대 세상에게  눌려지지 않습니다. 눌리는 것은 거기에 속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히려  반감을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 예, 예, 벌벌벌 떠는  것같이 속으로는 우습습니다. 속으로는 '떠는 것은 너 구원하기 위해서 떠는  것이 정말로 큰 하나님이 계시는데 하나님 그 분에게 삐뚤어진 일이 떨리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일에 대해서 피조물들에게 속속들이 떨리는 줄 아느냐?  어림도 없다.' 이래서 성경을 보든지 기도를 하든지 설교하든지 할 때에  자기라는 사람이 완전히 변화가 돼 버려야 됩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음성을 듣기 전에는 '아이구 이제는 죽는다, 이제는 뭐이  풍랑이면 이거는 죽고도 남는다 여기에 물이 얼마나 되느냐?' 온 전체가 다  공포의 비겁에서 떨리는데, 주님이 오시니까 물귀신 왔다 하며 이랬는데 주님의  음성을 탁, 한마디 듣고 난 다음에 베드로는 획 변해졌다 말이오. 그만 변해서  근심도 걱정도 염려도 두려움도 죽음도 아무것도 없고 구속한 주님만  보여집니다. 주님 한 분만 보여져 주님 한 분만 보여지는데 그 분이 또 어떻게  보이냐? 그 분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그 분의 말씀이면 다라 하는 것이 보여지기  때문에 '주여 물 위로 나를 걸어오라 한번 하십시오. 물 위로 걸어올게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라고도 하면 당신이 하면 된다는 것이지 뭐 당신이 말하시는 것은  능치 못할 것이 없어. 당신이 말씀하신건 다 그대로 된다 하는 것이 확실히  믿어졌다 그 말이오,' 이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어.

 이러니까, 갑자기 '주여 나를 물 위로 걸어서 주님에게로 오라고 명하십시오.'  명하라 할 때에 그때에 명하라고 그 명령을 요구한 그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보기를 어떻게 바라봤으며, 어떤 주로 바라봤으며, 어떻게 의지했으며,  어떻게 그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권능이 크다는 것을 그이가 인정했는가  그거는 우리들이 고요히 명상해 보면 알 것입니다. 이라니까. 주님이 '오라'  이라니까 턱 내려 섰어요. 물에 척 내려 싶어. 이것이 베드로만 그런게 아니라  우리들도 다 성령이 올 때는 이러합니다. 새사람이 떠가고 이 세 가지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동했고, 하나님의 주신 목적을 향하여서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어서 걸어가는 걸음은 다 그러합니다.

 이래서 주님을 바라보되, 베드로는 주님을 바라보되 물에 빠져 물에 내려 가면  물에 어데라고 거기에 걸어가겠으며 물에 들어가면 죽는다는 그 지식이 베드로  속에 선입적 지식으로 기존 지식으로 경험으로 체험으로 가득 차 있는데 가득 차  있는데 그거 하나도 없습니다. 쏵 비워 내버렸습니다. 하나도 없어요. 그 지식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물 위로 걸어오라 하니까 척 내려 섰지. 그것이 자기를 전부  완전히 다 부인하기까지 주님을 바라보았고 또 자기가 이제까지 통계나 모든  과거 역사나 모든 그모든 것을 다 부인할 만치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면 이  세상에 없던 일도 다 되고 안 될 일 없다, 주님의 말씀이면 다다, 주님의  말씀이면 이제까지 세상에 이제까지 그런 일 아무 일도 없었는데 없고 있는게  무슨 상관이냐? 아, 세상에서 이렇게 하면 다 죽고 망했는데 네가 걸어갈려 하니  죽고 망하는 역사상에서 다 죽어도 주님이 산다 하면 산다.' 아무도 다 부인했다  말입니다. 요러니까 딱 그라니까 오라 척 내려서 버렸어. 내려 서니까 물 위로  떠벅 떠벅 걸어 갔습니다. 물위로 떠 갔어.

 오늘도 이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꼭 요렇소. 이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을 봅니다. 다 다니엘도 그렇게 산 사람이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그렇게 산 사람이요, 아브라함도 그렇게 산 사람이요 사도 바울도 그렇게 산  사람이요.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를 이긴 사람도 그렇게 산 사람들이요,  6·25때도 사람 다 그렇게 산 사람들입니다. 다 그거 가지고 이겼습니다. 꼭  같은 성질이요. 다른 거 아닙니다.

 이러니까, 물 위로 저벅저벅 걸어가면 아, 걸어 가면서 걸어가면서 주님만  바라보면서 주님을 바라보니까 이렇게 걸어간다 이런 것도 생각할 필요 없어.

그거 생각하면 그게 나와, 딴게 잡탱이가 들어와요. 그저 주님 한 분만으로서  전부를 삼고, 주님을 바라보고 아무 다른 생각없이 주님의 명령하신 대로 고대로  떠북 떠북 걸어 가라 해 갔는데 가다가서 가다가 바람을 봤습니다. 풍랑을 보고  풍랑을 보고, 바람을 보고 이러니까 주님만 바라봐야 될 터인데 딴것을 봤다  그말이오. 주님만 바라보고 그저 주님은 능치 못 하심이 없으시다, 그 분은  진실하신 분이다, 그 분의 말씀이면 다 다, 그대로다, 뭐 온 천하가 그분의  말씀으로 지음 받았고 지금도 그분의 말씀대로 보존되어 있고. 그분의 말씀이다,  그분의 그 절대성을 바라 보고 그 분의 말씀의 신실한 권위성을 바라보고 고대로  순종하면 요대로만 나갔으면 때수님이 붙잡을 때까지 아무 일 없이 물 위로  걸어갔을 터인데 가다가 엄한 거 본 그게 탈이라 그게 시험에 들었어. 바람을  보고 바람을 봤더라도 바람을 봐서 벌써 그 시험에 바람을 봤더란대도 바람을  봤더란대도 '주님이 나에게 명해서 내가 걸어가는데 바람 네까짓게 어쩔 거고  바람아 내 발 밑에 날 고아라, 날 고아라.' 이렇게 하고 떠 갔으면 잘 갈 터인데  그 때 그만 바람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바람에게 종이 됐다 말이오. 바람에게  피동 됐다 말이오. 바람을 바라보니까 물결이 일어나니까 바람이 물결이  두려워하게 하는 물결은 두려운 것인데 물결을 보고서 두려워하고 그 바람에게  피동됐다 말이오. 바람에게 피동해 전적 주님에게만 피동되고, 주님만 바라봤던  자가 주님에게 피동되어 바람에게 피동되고 주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인해서 낙망이 돼 버렸다 말이요. 바람을 봐서 그만 주님만 바라보는 그  바라보는 절대의 신앙이라 하는 것이 의심이 나서 낙망이 돼 버렸습니다. 딱  낙망이 되니까 물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그라니까, 주님이 들어 올리면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  심하.느냐' 그 말은 네가 배에서 내 음성 듣고 모든 문제가 다 사긷져 버리고 나  하나로 전부를 삼고, 나 하나로 전부를 삼고. 내가 말하는 거는 뭐이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네가 알고 그럴 때에는 나는 물결 도 문제없고,  바다도 문제 없고, 죽음도 문제 없고. 세상도 문제 없고, 모든 것을 능가 할 수  있는 내인 줄 알고, 나만 바라보고 네가 그러 했었는데 나를 바라보던 나를  땀던, 나를 줘던 네가 왜 몇 자국 물 위에 걸어 오다가서 의심하였느냐? 나만  바라보던 것을 변질되었느냐? 나 하나만 바라보던 것을 이제 변해져서 바라보던  것이 변동되었느냐? 변질이 되었느냐? 내말에 권위를 이렇게 인정하던 자가 왜  권위를 의심했느냐? 그래 가지고서 왜 거기에서 바라보는 것과 믿는다는 거 이  두 가지가 흐려지게 되었느냐? 그럼으로 네가 물에 빠져 들어 가지 않느냐?'  하시면서 건져 올렸습니다. 뭐, 예수 믿는 거는 간단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을 주님이 말씀하실 때에 사라 사라 그랬어.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 하는 자들아 네 가난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도다. 그러므로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지지 안할 그 금을 사서 부요해라,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또 안약도  사라 했습니다. 안약도 사라. 흰옷도 사라, 금도 사라 전부 사라입니다. 사라는  것은 살라 할 때는 그 팔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댓가를 치러야 되지 팔 사람이  필요 없는 댓가를 치러서 이거 줄 터이니까 파십시오. 나 그거 필요 없다. 그  분이 그분이 사라 하는데 그분이 지금 가지고서 우리에게 불로 연단한 없어지지  안할 금을 우리에게 팔고 또 그분이 우리에게 흰옷을 팔고, 안약을 팔고  이라는데, 그 분이 요구하는 약값이 있다 말이오. 그분이 요구하는 옷값이 있다  말이오. 그 분이 요구하는 금값이 있어. 그분이 요구하는 것을 내야 돼.

 요구하는 거는 뭐이냐? '요구하는 것은 나를 부인하는 거. 나를 당신에게  바쳐야 돼. 나를. 나를 당신의 것으로 삼아서 이제는 나는 내 것이 아니라  당신의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주의 피공로로 사신 주님의  것입니다. 이래서 내가 주의 것이 되어야 영생이 되지, 내가 내 마음대로 살면  사망을 이길 수가 없다 말이오. 당신이라면 생명을 주고 싶지마는서도 내가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해야 살지,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말이오. 나를 당신에게 맡겨야 되지 당신의 것이 돼야 완전자의 것이 돼야  이것을 사망이 해하지를 못하지요. 이러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너를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라, 너를 다해서  주님을 따르라, 너를 다해서 주님에게 순종하라 너를 다해서 이 세 가지 대속을  네가 보존하라, 이렇게 자기를 다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고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했어.

목숨 하나라도 살라 하면 안 돼. 이게 주님이 주시는 이 구원을 내가 놓지  안하려고 하면 목숨이 끊어져도 안 놓는다 거지가 돼도 안 놓는다, 오만 거 다  뺏들고 나를 다 어떻게 죽이고 감옥에 가둔다 해도 안 놓는다, 다른 거 다  내비두고 이 구원 요 하나만 자꾸 놓지 안하려고 해야 돼지지 그리 안하면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면 요것을 가리켜서 사라 그 말입니다. 모든 걸 다해서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보화가 있는 밭을 샀다 진주를 샀다 하는 그런 거 다 그런 뜻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 믿는 데는 그저 선천 후천으로 자격이 훌륭한 것도  소용없습니다. 자격이 훌륭한 것도 소용없어요. 똑똑이 말하면 주님은 잘난  자보다 잘난 자보다 못난 자를 원합니다. 못난 자보다 죽은 자와 같은 자를  원합니다. 죽은 자와 같은 자보다 아주 없는 자와 같이 되는 것을 제일  원합니다. 그게 제일 인기요 제일 상등이요. 그러기에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기에는 약대가 바늘 구멍으로 들어 가는 것이 더 쉽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없는 가운데서, 엿새동안에 다 만들었는데 우리가 연보를 암만  한다 해도 당신이 만들어 놓은 그 재물이지 딴거 뭐 있습니까? 이거 원청 안한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내 인격, 내 마음. 뜻. 성품. 힘. 목숨.

나와 다를 당신에게 다 바치기를 원한다 말이오. 왜? 당신이 당신의 전부를 다  해서 날 구원했기 때문에 나는 내것 다해서 당신을 사랑해야 서로 이 부부의  대화가 된다 그말이오. 주님이 다해서 날 사랑했기 때문에 나 내것 다해서 주님  사랑한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아니면 당신을 대접하는 것이 안 된다  그거요.

 그러고 예수 믿는 사람은 돈 없어도 좋습니다. 무식해도 좋습니다. 그저 세상  것 그것을 알면 그것을 알아서 그걸 이용하면 하나님의 계시를, 깨닫기가 쉽고  하나님의 뜻을 알기가 쉽고 세상을 이기기가 쉽고 쉬운데, 그걸 이용을 하면  쉽지마는서도 그것을 하나님의 대용품으로 삼아 가지고 다른 사람은 하나님 예를  들면 둘 가졌는데 나는 하나님 하나밖에 못 가지지마는서도 세상 것 많이 가졌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하나밖에 안 가졌지마는 세상 것 많이 가져 있으니까 하나님  둘 가진 사람보다 나는 세상 것 많이 가졌으니까 그 하나는 세상 거 그거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할 수 가 있지 않느냐 요렇게 하는 통에 망한다 그거요.

 그 세상에 있는 그 모든 것을 믿음에 이용을 하고. 구원 이루는 데에 이용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데에 이용을 하고, 그 판단을 하는 데에 이용을 하고  이루는 데에 이용을 하고 이용하면 될 터인데 아, 배를 이용하면 되는데. 배를  이용하라 했는데 배를 이용하면 될 때에 이용은 하지 안하고 이용 안 하고 떡  타기는 타 가지고 배의 사람이 돼 가지고 옛사람으로 다 돌아 가 버리고,  예수님도 다 잊어버리고 명령도 잊어버리고 목적도 잊어버리고 다 잊어버리고  나니까 그만 풍랑을 만나 가지고도 가지도 못하고 다 그렇게 절단났는데 그대로  있으면 죽어요. 예수님 오시니까 아 구주가 오셨는데 구주는 뭘로 보이십니까?  물귀신으로 보이지 안했소? 이렇게 옛사람으로 바꿔지면 자기를 살리는 하나님의  구원은 전부 원수로 보여지고 마귀가 죽이는 것은 다 은인으로 보여집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그래서 내가 뭘 판단할 때에 내가  옛사람 돼 가지고 판단하느냐 새사람 돼 가지고 판단하느냐 자기가 옛 사람인지  새사람인지 그걸 분별해야지 그것도 분별하지 안하고 좋으냐 나쁘냐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가 옛사람이 돼 가지고 생각하면 좋은 거는 전부이  나쁜 걸로 보여집니다. 내가 새사람이 돼 가지고서 생각하면 세상이 좋다는 건  나쁜 거는 나쁜 걸로 보여지고 좋은 거는 좋은 걸로 보여지고 바로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주의 음성 들을 때에 베드로가 어떤 사람으로 변화 됐느냐? 주님의  말씀을 설교를 듣든지 내가 기도 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을 듣든지, 그렇지 않으면  성경 말씀을 읽든지 어쨌든지 주님을 우리가 접할 때에 우리에게 있는 모든  사망에 이 속한 것들이 완전히 벗어졌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벗어지면 열매가  있는 것이니까, 바로 주님을 믿는 것이 은혜받은 것이니까 그게 벗겨지지 않으면  가짜 예수님 믿는 것입니다. 가짜 예수 믿는 거. 그게 벗겨졌으면 벗겨졌으면  모든 근심 걱정 다 물러가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주의 말씀에 신실함을  믿어질 때에는 땅 위에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아무 두려운 것이 없어. 주님이  말씀하시면 다 돼. 이 사람으로 변화되지 안하면 헛일입니다.

 그래 가지고서 걸어가면 되는데 걸어가다가 주님 바라보는 그것이 이 바람  바라보고 이래 가지고서 바람에게 피동, 바람에게 두려워하라 하니까 바람에게  피동되니까 하나님에게 피동된 것이 딱 변해서 물속에 빠져 들어가지  안했습니까?  그런고로 우리는 요 도리에서 우리가 가짜로 공연히 믿음에 믿는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믿는다고 이렇게 이렇게 변화가 돼냐 변화 안 되면 아닙니다.

변화가 됩니다.

 그러기에 말씀하시기를 설교를 들을 때에 그때에 어떤 감화나 어떤 고함이나  어떤 환경이나 분위기나 그것은 설교 말씀을 깨달을 때에 깨닫고, 깨닫고 난  다음에 그 모든 은혜를 성신의 감화도 다 버려라. 성신의 감화도 버리고 다 버려  버리라. 다 버리고 설교 말씀 들을 때에 꼭 고 진리 영감으로 된 고 진리만 딱  거머쥐고 요것만 딱 기억하고, 이제 저 산에 가서 산에 가서 혼자 가 가지고 그  진리를 가만히 새김질하니까 그만 나옵니다. '주여 옳습니다. 주여 살든지  죽든지 주님 인도대로 가겠습니다. 땅 위에 안 될게 뭐 있습니까? 주님이  명하시는 거는 다 되지, 주님이 명하지 안 한 거 천하가 다 달라 들어도 안  되지.' 이라다가 요거 찾아 가지고, 또 시장에 가 가지고 복잡한 가운데 시장에  가서 구멍 가게나 뭐 앉아놓고 그 말씀을 이래 똑 생각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미쳤다고 해 나보고 '주여' 이래 버립니다. '아 저 사람 저 미쳤다  저거. 아, 말씀을 새김질하니 속에 힘이 난다 말이오  힘이 나고. 이것이 연성이 돼서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서 찔러서 지금  죽인다 산다 하는데 가만히 눈 감지 안하고 눈 못 감고로 하면 눈 뜨고라도 주의  말씀을 새김질하니까 '주여 옳습니다! 사랑하신 주님이 이것을 운영하셔서  이렇게 하신 것인데 내가 두려울게 뭐 있습니까? 주님이 날 사랑하셔서 내가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는가 시험해 보는 것이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죽어도  나는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이 나 죽으심으로 사랑했으니까 나도 죽음으로 주님  사랑합니다. 주여 내가 주님에게 병을 찾습니다.' 힘을 꽉 기울이고, 이라니까  그래 가지고서 주기철 목사님은 이 판때기에다 못을 총총 쳐놓고 이래 쳐놓고 이  위에 걸어가라 하더래요. 그래 그 위에 걸어가라 하는데 이래 떡 걸어가면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하면서 떠벅 떠벅하이 걸어 가면서 '아, 주님이 나 위해서  고생했는데 나는 주를 위해서 이 못 방석을 걸어간다'하면서 기쁘고 즐거워해.

쩔벅 쩔벅 걸어 가니까 그만 그것들이 기절했다 말이오. 그러고 한번은 다  이라기 때문에 호통을 쳤더래요.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고 네가 죽어서  어데로 갈 줄도 모르고 그렇게 못되게 구르느냐고 고함을 지르니까 그만 뻘뻘  떨면서 그만 가버렸더래요.

 우리 믿음은 믿음이 평소에 믿음을 마련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가지고 요 말씀을 새김질할 때에 거기에서 나오는 능력이라야 세상을 이깁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권능이요, 바로.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하나님의  동행인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우리 주관을 버리고 믿습니다! 우리 주관 내  생각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내 의견대로 하는 그런 미혹에 빠지지 말고  믿습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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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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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3 믿음/ 히브리서 11장 1절-6절/ 810628주후 선지자 2015.10.31
4052 믿음/ 요한복음 6장 54절-57절/ 820905주전 선지자 2015.10.31
4051 믿음/ 로마서 4장 1절-8절/ 840702월새 선지자 2015.10.31
4050 믿음/ 히브리서 11장 8절/ 810323월새 선지자 2015.10.31
4049 믿음/ 고린도전서 10장 1절-13절/ 820207주전 선지자 2015.10.31
4048 믿음/ 고린도전서 10장 1절-13절/ 820210수야 선지자 2015.10.31
4047 믿음/ 히브리서 12장 2절/ 810227금새 선지자 2015.10.31
4046 믿음/ 고린도전서 10장 1절-13절/ 820207주후 선지자 2015.10.31
4045 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6절/ 810822목새 선지자 2015.10.31
4044 믿음/ 야고보서 2장 22절/ 830116주후 선지자 2015.10.31
4043 믿음/ 히브리서 11장 1절-6절/ 820206토새 선지자 2015.10.31
4042 믿음/ 누가복음 17장 5절-10절/ 810820목새 선지자 2015.10.31
4041 믿음/ 누가복음 17장 7절-10절/ 810829토새 선지자 2015.10.31
4040 믿음/ 히브리서 11장 1절-6절/ 820205금야 선지자 2015.10.31
4039 믿음/ 마태복음 14장22절-33절/ 840325주전 선지자 2015.10.31
» 믿음/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840325주후 선지자 2015.10.31
4037 믿음/ 히브리서 11장 1절/ 870101목새 선지자 201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