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1984. 3. 25. 주전

 

본문: 마태복음 14장22절∼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느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성경에 하나님의 이 초자연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을 가리켜서 이적이라, 또  표적이라 그렇게 번역들을 했습니다. 이적이라 함은 이 자연이 아닌 하늘에 있는  그 능력으로 이루었다는 그 능력을 표시해서 이적이라 그렇게 번역한 사람들은  했고, 또 표적으로 번역한 것은 이 이적으로 행한 이 사실이 뭣 때문에 이렇게  이적으로 행하셨느냐 그 행하신 목적을 중심으로 해서 표적이라 이렇게 번역을  한 것입니다. 표적이라는 번역이 이적이라고 한 것보다 더 우리에게는 은혜가  되도록 된 말씀입니다.

 표적이라는 것은 사람이 보기 어렵고 알기 어려운 그 사실을 사람들이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그것을 예를 들고 인용을 해 가지고 볼 수 없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 그것이 그 표적의 목적입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이적이라고 하는 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 모든 일들은 이것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그 속에 들어 있는 실상을 미루어 깨닫고 알라 하는 것으로 표적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슨 병을 낫게 한 표적이든지, 또 어떠한 그  이상한 사건으로 된 표적이든지 죽은 자가 살아난 표적이든지 그런 표적은  그것이 기록한 목적이 아니고 그것이 실상이 아니고, 그것은 역사적 그  실상이지마는 그것을 통해서 그 속에 표적이 나타내는 표적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가 무엇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그 알맹이를 먹어야 복음이 되고  양식이 되지 알맹이는 알지도 못하고 껍데기 그것만 알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역사를 하고 난  다음에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빨리 저 건너편으로 가라! 건너가라.' 당신이  목적을 정해 주시면서 '저 건너편으로 가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그  무리들을, 다 흩어 보내시고 난 다음에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나와 같이 있지 말고 빨리 나를 떠나서 지금 배를 타고  건너펀으로 가라 내가 그라면 이 무리들을 다 흩어 보내고 나 볼일을 볼  터이니까 너희들이 이 무리를 흩어 보내는 그 동안에 너희들은 즉시 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라' 그렇게 명령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빨리 배를 탔습니다. 배를 타고 주님이  가라고 하신 그 건너편으로 지금 갈라고 배가 떠났습니다. 처음에는 뭐 그렇게  어렵지 않게 쉽게 배가 술렁술렁 목적지를 향해서 갔었는데 차차 차차 없던  바람도 일어나고 또 배도 그 물결이 거슬려서 도무지 앞으로 전진하지를  안합니다. 그 자리 있으면서 그저 바람이 불고 곧 그 배가 엎어질 것 같고  이렇게 되니까 이 제자들은 지금 참 이제는 이 바다 가운데 빠져 죽는다고  생각을 하고서 대단히 놀래고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산에서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이 가라고 명한 건너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바다 가운데서 고통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오시니까, 그들은 그저 물에 빠져서 이제는 그만 물귀신에게 끌려서  죽는다 이런 생각만 가득히 찼지 주님의 생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물위로 걸어서 찾아오시니 사람이 물위로 걸어올 리는 없고, 아,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은게 있었으면 물위로 걸어을 수 있는 그런  능력도 의례히 계신다는 것도 저들이 짐작할 것이고 또 과거에 모든 같이  동행하면서 행하시는 일을 봐도 알 터인데 아주 예수님이 이런 저런 표적 보이신  것과 또 예수님을 증거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순전히 '이제는 이 바다  가운데에서 이 풍랑으로 말미암아 물에 빠져 죽는다' 그것만으로서 그들 속에는  가득히 차 있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가까이 오시니까 그만 그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유령이라.' 유령이라 말은 물귀신이라 말입니다. '아.

물귀신이 여기에 나타났다' 그래 가지고 그 제자들이 놀래서 아주 뭐 참 기절할  만침 놀래서 소동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다. 놀라지 말아라' 이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머뭇머뭇하고 있는데 베드로는 날쌔게 깨닫고 '아, 물위로  걸어오시는 분이 주님이시로구나.' 그때사 이제, 주의 음성을 듣고 나니까  주님이 어떤 권능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도 깨닫고 주님을 바래보니까 만고에  근심 걱정 없고 평안했습니다. 이래서, 아무 근심 걱정 없고, 좀 전에는 물에  빠져 죽겠다고 그렇게 아주 못 견뎌 하던 그 제자들과 베드로가 주님을 보고는  '아, 주님이면, 주님이 물위로 걸어오시니 나도 물위로 걸어서 주님을 맞이하러  가도록 해 주옵소서' 그렇게 간구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베드로에게 '그러면  오라' 이래 하시니까 베드로가 배에서 푹 뛰어내려 가지고서 그 바다를 육지같이  밟으면서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갔습니다.

 이래 가다가 보니까, 가다가 보니까 그만 자기가 '물위로 지금 걸어 가고 있다  물위로 걸어가고 있는데 이거 물위로 어찌 걸어갈 수 있느냐? 이거 물위에  걸어가니 이거는 빠지지 안빠질리가 있느냐?' 또 바람이 부는 것 보고서 겁을  냈습니다. '이렇게 풍랑이 이니까 어떻게 내가 지금 물에 안 빠질 것이며 또  아무 배 조각도 타지 안하고 물위로 걸어오는데 어떻게 물에 안 빠질 수  있겠느냐?' 그렇게 그만 생각이 나서 베르로가 두려웠습니다.

 두려워서 두려워하는데 또 자꾸 물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곧 지금 빠져  들어가니까 이제는 죽을 지경이라 고함을 질렀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내가 지금 죽게 되었습니다.' 이라니까 주님이 손을 내밀어서 베드로를 들어  올리면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 하였느냐?'  '믿음이 적은 자야 믿음이 끝까지 이루어질 때까지 믿음을 계속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시작했다가 마니까 네가 믿음이 있을 때는 물위로 걸어왔지마는서도  믿음이 끝났으니까 네가 물위로 걸어오던 그 능력의 걸음도 끝나지 앉느냐'  이라시면서 배 위로 들어 올렸습니다. 그라고 둘이 바다 위로 걸어서 배에 가서  올랐습니다. 제자들 배에 가서 오르니까 모든 제자들이 보고서 '이는 참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 바람은 잔잔하고  이래서 목적지까지 잘 갔습니다. 이것이 오늘 봉독한 이 말씀입니다.

 그러면 오늘 기록한 이 말씀은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신 표적이라,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서 오신 표적이라 이래서 이 기록된 마태복음 14장을 대개 사람들이  장명을 지을 때에 물위로 걸어오신, 물위로 걸어오신 장이라 이래 가지고서  장명을 짓기를 물위로 걸어오신 장이라 이렇게 장명을 짓습니다. 성경을  외울려고 몇장은 무슨 장이라고 이름을 지을까 할 때에 거기에는 예수님의  탄생장, 또 어떤 때는 뭐 사십 일 기도장, 또 산상 보훈장 이렇게 모두 이름을  짓는데 여기에는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신 그것을 하나 표시해 가지고서 장명을  짓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 사실인 이 표적의 내용은 뭐인가? 이 표적으로 표시하고  있는 그 내용의 실상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이 그것이 이제 문제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구원의 도리를 깨닫고 이 도를 버리지 안해야 됩니다. 도라  말은 길이라 말인데 우리에게 이렇게 이렇게 걸어가야 된다 이렇게 이렇게  살아가야 된다 하는 그 사는 길을 말씀해 주셨으니까 이 길로 걸어가야 살지 이  길로 걸어가지 일으면 살지를 못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하시니까 그 명령 복종으로 이렇게 출발을  했습니다. 또 출발했는데 그들이 저거 마음대로 여기 저기 갈라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건너편으로 가라' 하신 주님이 목적을 정해 주신 그 목적을  자기네들이 지금 가는 목적으로 정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명령하심에  복종으로 출발했고, 또 출발해 가지고서 향하여 그 목적하는 그 목적은 주님이  정해 준 그 목적을 저희들이 목적으로 삼고 가는데 가면서 주님이, 이  전지전능하신 주님이 이렇게 가라고 하시니까 주님이 가라고 하신 이 능력으로  인해서 우리는 갈 수 있다 하는 것을 며칠 동안 주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까  그들이 믿음이 생겨져서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면 다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다 된다, 아무리 인간 생각에 안될 것 같애도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면 다  그대로 된다 하는 것을 이제까지 교훈받았기 때문에 그 능력을 배경으로 그  능력을 힘입어 가지고 지금 배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주님이 출발 목적, 동기를 주님이 이렇게 해라 명령하신 그  명령으로 출발을 했고, 또 주님이 정해 주신 목적을 향하여 가고 또 이렇게  명령하시고 목적 정해 주신 그분이 가라고 했기 때문에 이는 틀림 없이 가지는  거라. 없는 가운데 천지야 생겨져라 했으니까 생겨진 그 창조주시고 그분인 것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에 이분이 명령했고 목적 정해 줬으니 이분의 그 능력으로  자기네들은 거기에 갈 수 있다는 그 능력을 힘입어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하면서 그러면 이용하기는 뭣을 이용해야 되느냐 할 때에 주님께서  배를 타고 가라 배를 이용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요 네 가지가 여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네 가지. 출발은 주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을 따라서 출발을 했고, 또 향하여 가는 목적은 주님이 정해  주신 그 목적을 목적으로 삼아서 가고 있고, 또 명령하시고 목적을 정해 주신  그분이 말씀하신 것은 다 그대로 이루어지지 능치 못하심이 없고, 그분이  말씀하신 것은 다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말씀하신 이 주님의 능력을  저희들이 유일한 힘으로써, 그 능력을 배경으로 삼고 그 능력을 바래보고 그  능력을 힘입어서 목적지에 틀림없이 갈 것을 믿고 주님 명령 따라서 지금 항해를  했습니다. 가는데, 또 방편은 너희들이 혜엄을 쳐서 가라 수영해서 혜엄을 쳐서  가라 너희들이 또 아무리 길이 멀어도 저리 며칠 둘러가라 그렇게 하시지  안하시고 배타고 가라 이랬습니다. 배를 타고 가라 이라니까, 그 방편은 주님이  주시는 그 방편을 썼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방편을 썼는데 그 방편은 뭐인고  하니 내나 이 세상에 있는 배입니다. 세상에 있는 배. 바다를 가는데  일반사람들이 다 바다에 갈려면 배타고 가는, 일반사람들이 사용하는 바다를  건너가는데 일반사람들이 사용하는 그 사용물을 사용해서 가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 네 가지 가 있다는 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네 가지.

 이런데, 이 네 가지가 다 주님의 명령, 주님의 정하신 목적. 주님의 권능을  힘입는 권능, 또 주님이 새라고 정해 주신 지정해 주신 이 자연의 방편 요 네  가지를 가지고서 출발을 할 때에 그 배는 아주 순수하게 그만 갔습니다. 아주  쉽게 갔는데, 그 갈릴리 바다에서 거의 바다 가운데가 될 만치 아주 떠나서 잘  갔습니다. 갔는데, 가는데 차차 차차 없던 바람이 일어 났습니다. 차차 차차  이제 배가 그렇게 잘 나가더니마는 또 배가 안 나갑니다. 바람이 일지 배는 안  나가지 이래서 그만 그때부터는 그들은 항해를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지금  애만 씁니다. 안 나가니까 애를 쓰면서 물론 여러 가지 방편을 썼을 것입니다.

그들이 다 해변에서 어부의 자녀들로서 대대로 어부 노릇해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배타는 데는 익숙할 것이고 또 갈릴리 바다에 대한 그 모든 수질이나  수심이나 그 바다에 대한 내용은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랬는데, 바람이 불고 배가 거슬려 가지 안하니까 그들은 무엇 때문에 바람이  불고 이렇게 배가 거슬려 가지 않느냐 하는 그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다만  생각이라 하는 것은 이 바람이 불 때는 요리 피해야 되고 노를 저리 저어야 되고  돛을 이리 매야 되고 저리 매야 되고 그렇게, 돛도 그렇게 매야 되지 안  된다고서. 아마 거기에서, 자기네들이 다 어부들입니다. 모두 어부들이니까  거기에서 아주 온갖 그 난상 공의를 다 했을 것입니다. 해가지고서 이리 해야  된다 저리 해야 된다 하는데 이리 하는 방법도 아. 과거에는 이렇게 바람이 불  때는 이라면 됐는데 그래 해도 안 되고 저라만 됐는데 그래 해도 안 되고 모든  오만 방편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 방편이 소용이 없으니까 지금 제자들은  놀래서 두려워서 죽을 지경입니다. '아, 이제는 여기에서 파선된다. 이 바람에  복선이 되면은 여기는 벌써 수심이 몇십 길이 되니까 여기에서 빠지기만 빠지면  죽는다.' 이 생각을 가지고서 온 제자들은 두려워서 견디지를 못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오만 방편 써야 소용이 없지 두렵기만 두렵지 자꾸 이래서. 두렵고  이 방편 저 방편 쓰고 애를 쓰다가 보니까 이제 그만 예수님도 깜빡 다 잊어  버려 버렸고 그러니까 예수님이 옆에 찾아오셨지마는서도 물귀신이라 하고서  예수님인 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잊어 버렸고 또 저거가 뭣 때문에  갈릴리 바다에서 출발했는가 그것도 모릅니다.

 누구로 인해서 출발 됐느냐? 누구로 인해서 동기가 됐느냐? 누구에게 피동이 돼  가지고서 처음에 됐느냐? 피동된 그것도 잊어 버렸고 동기도 잊어버렸고 누구의  명령 따라서 하는 그것도 다 잊어 버렸습니다. 다 잊어버리고, 또 주님이 어데를  가라 하는 그것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어째야 지금 여기에서 안 죽고 살겠느냐  하는 그것이지 주님이 주신 목적도 잊어버렸고, 주님이 명령하신 명령으로  출발한 출발도 잊어버렸고, 또 주님의 그 말씀하신 분이 전능하신 분인데, 없는  가운데서 '천지야 되라' 하니까 되진, 천지를 당신이 창조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말씀을 해서 교훈했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요, 벌써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실 때에도 가브리엘 천사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그대로 다다. 없는 걸 천지를 되라 해서  천지가 됐고 또 홍수 내리라 하니까 홍수가 내렸고, 전 인류가 다 홍수에  침몰돼서 전멸 되도록 하라 하실 때 그대로 됐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가라고 명령했고 목적 정해 줬으니까  이는 그 명령 하신 그분의 능력으로 인해서 간다. 또 주님이 배타고 가라 했기  때문에 배타고 간다. 이래 타고 가니까 파선될 리가 없다. 주님의 능력을 믿고  출발한 동기를 믿고, 목적을 믿고, 또 방편도 주님이 쓰라 하시는 그 방편만  쓰고 이랬으면 그만 순순히 목적지에 갔을 터인데 왜 여기 풍랑이 일고 목적지에  가지 못했느냐 하는 그것을 그들은 생각하지를 못했습니다.

 명령 받아 가지고서 나서 가지고, 주님의 명령 받은 그 명령, 주님의 명령, 또  주님의 정해 주신 목적, 또 주님의 권능이 자기들을 가게 하실 주님의 권능을  믿는 주님의 권능 이 세 가지 이것은 변하지 않는데 이 세 가지에다가 배타고  가라고 방편으로 말씀하신 배타는 것 요거 하나 알고 탔는데, 요거 배타는  요게서 사고가 생겼습니다. 배타는 요게서 사고가 생겼습니다. 배타는 요게서  무슨 사고가 생겼는고 하니 떡 배를 타고서 돛대를 거머쥐니까 옛날 심정이  나와, 돛대를 거머쥐니까, 돛대를 거머쥐고 울렁 울렁 이라니까 배가 쑥쑥  나가니까 어째서 나가느냐? 그만 거기에서 이 돛대로 저어서 간다 이거 생각해서  갔고, 또 이 돛을 달았으니까 돛으로 간다 이래 생각하고서 그만 그들이 배를  타는 그 배와 또 옛날 뱃사공 노릇 하던, 어부 노릇하던 그 과거의 경험, 체험,  기존 지식, 자기네들의 구습, 자기들의 옛생활 그만 그것이 나와 가지고서 차차  차차 그것은 자꾸 새로와지고, 그것은 똑똑해지고, 그것은 확실해지고 이제,  이 그릇은 그릇에다가, 한 되 되는 그릇에다가 만일 거기에다가 무슨 물건을  담는다고 하면, 이 물건을 다른 물건을 반을 담을려고 하면 있던 물건은 나가야  되는 것이고, 또 다 담으면, 한 되를 담을라 하면 있던 것 다 나가야 되는  것이고, 한 되에 두 되를 담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에는 이것 저것 두 가지를 담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마음들입니다. 물론  마음의 요소는 수백 수천도 넘습니다. 믿음의 분자는 수천 수백도 넘기는  넘지마는서도 그 수천 수백 넘은 것이 다 이것도 가지고 저것도 가지고 둘을  가질 수는 없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배를 타고 가는 거기에서 자기네들도 모르게 주님의 명령은  희미해졌고, 주님이 정해 주신 목적도 희미해졌고, 주님의 권능도 희미해졌고,  주님이 말씀하셔서 출발했고, 말씀하신 그대로의 목적을 정했고, 또 말씀하신  그분의 능력을 의지했고, 말씀하신 그대로의 이 자연을 사용했습니다. 자연을  사용하고 배를 사용했지마는서도 고 사용하는 고게서 고장이 일어 가지고서 배는  가지 못하고 풍랑이 일었습니다.

 거기에 고장은 무슨 고장이 일었던가? 배를 타지 안하고, 배를 타지 안하고  그들이 만일 날아가든지 했으면 또 다른 고장이 일어났을 터인데 배를 타고  가라고 하니까 요 배타고 가는 요기에서 옛사람이 나와 버렸습니다. 배타고 가는  여기에서 옛사람이. 옛날 자기네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바닷가에서 어부  생활하던 그때의 생각, 그때의 마음, 그때의 취미, 그때의 경험 그때의 시험,  그때의 지시, 그때의 그 지식 그것이 차차 차차 자기들에게 들어와 가지고서  하나씩 둘씩 자꾸 들어오다 보니까, 이게 들어 오고 자꾸 들어오니까. 그게  들어오니 재미가 있다 말이요. 그게 들어오니까 하나 생각하니까 둘 생각하고 둘  생각하니까 서이 생각하고,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아, 옛날에 갈릴리 바다 여기서는 고기를 많이 잡았다.

여기 풍랑이 많이 일 때는 참 심하게 일었다.' 자꾸 고만 연상적으로,  연상적으로 옛날 어부 생활하던 그 모든 경험 체험 또 그 접촉 그 모든 얻어  가지고 있는 기술 기능 이런 것들이, 옛날의 흔적 그런 것이 자꾸 마음 가운데  생각이 떠오르니까 차차 차차 이 네 가지를 잊어 버렸습니다. 이 세 가지는 아주  잊어버리고 이 네 가지를, 네 가지 가운데 한 가지는 가지고 있기는  있지마는서도 이 한 가지 이것으로 인해 가지고서 차차 차차 주님의 교훈을 받고  주님의 명령을 받아 출발하고, 주님의 명령하신 그 정해 주신 목적을 향하여서  주님의 권능을 힘입어 가는 이것은 차차 차차 희미해지고, 배는 타고 있기는  있었지마는서도 그 사람들의 마음은 자꾸 변화돼 버렸고. 생각도 변화돼 버렸고,  또 저들이 믿고 의지하는 힘도 변화돼 버렸고, 저희들이 또 쓰는 방편도 변화돼  버렸고, 변화 돼서 순전히 그 제자들은 예수님 만나기 전에 옛날 바다를 건너갈  때에 배타고 건너 가던 고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꼭 고 사람 되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 꼭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처음에 가졌던 세 가지는  없어져 버리고, 방편으로 쓰라고. 자연으로 쓰라고 했던, 자연을 쓰라고 했던 그  배 그것은 가지고 있고 이러니까 셋은 완전히 잊어버렸고 그중에 하나는,  껍데기는, 배는 가졌고 사람은 완전히 예수님과 같이 오병이어를 먹고 교훈받던  그 사람과는 완전히 딴 사람으로, 껍데기 낯짜구야 같지마는서도 속에 사람의  인격이나 정신이나 사상어나 지식이나 그 관념이나 모든 그 비판이나 평가나  하는 것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습니다. 완전히 달라져서 그 다음부터는 풍랑으로  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것을 여기에서 배워 가지고 요대로 실행을 해야 되지 안  하면 헛일입니다. 제가 아무리 애써도 헛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하늘 나라를 우리의 소망으로 두시고 하늘나라를 가라고  하늘나라의 구원을 이루어 하늘나라 가는 이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천국 시민권의 실력을 갖추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영광스러운 부활을 얻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또 모든 만물의  중보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니 한 말로 말하면 기독자의 구원입니다.

기독자의 구원. 우리의 목적은, 주님이 주신 목적은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의  구원, 이 목적 목적 이것을 향하여 다른 것을 다른 목적을 두지 말고. 이런 저런  목적이 많고 이런 저런 목표가 많지마는 다 그것은 이 목적을 향하여 갈때에  그때에 그런 것이 그 순서에 이용물로 되어지는 것이지 이 목적 하나만은  변동하지 안하고. 이 목적 하나를 변동하지 안하고 요 목적 하나를 거머쥐고  '아, 나는 주님이 당신야 말씀하신 이 구원을 이루라고 땅위에 두셨다.' 바다  가운데 빠졌을 때에도 '오 나는 구원을 이루라고 주님이 하셨기 때문에 이 구원  이루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공산주의가 위에 있어도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이  구원 이것만을 주님이 목적으로 주셨기 때문에 이 목적으로 주신 이 구원은  주님이 기어코라도 주님의 능력이 이루신다. 주님이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셨으니 이는 틀림없이 간다.' 가기는 갔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구원 하나를 목적으로 주셨기 때문에  목적으로 주신 이 구원 요 한 목적을 변개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어데 가든지  목적은 돈 버는 것도 목적이 아니요, 사는 것도 목적 아니요. 부자되는 것도  목적 아니요, 좋은 가정을 이루는 것도 목적 아니요. 명예를 얻는 것도 목적이  카니요, 지위 권세를 얻는 것도 목적이 아니요! 우리의 목적은 주님이 주신 이  구원 하나가 목적이라!! 요거 하나가 목적이라! 요 목적을 변개하지 안하고  주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을 따라서 출발하는 요거,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출발하는 것, 그 근본도 출발했고 토막토막도 주님에게 피동되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주님에게 피동되는, 주님에게 피동되는, 요 동기와 출발은 언제든지  주님에게 피동, 주님에게 피동되는 요 피동이 요동치 안하고, 주님에게 피동되는  이 피동이 요동치 안하고, 자고 나서 내일 아침에 출발할 때에도 주님에게  피동되는 피동이 변하지 안하고, 오늘 저녁에도 주님에게 피동이 변하지 안하고  낮에도 주님에게 피동되는 이 주님에게 피동되는, 주님에게, 주님의 명령으로  출발하는 이 동기가 주님의 명령으로 동기 되는 거, 이 출발하는 이 출발이  언제든치 주님의 명령 따라 출발하는 거. 주님에게 피동되어 출발하는 거,  주님으로 인하여 동기가 돼서 출발하는 거, 다시 말하면 '나로 인하여 살리라'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동기로 인하여, 주님의 명령으로 인하여, 주님에게  피동으로 인해서 출발하는 요것을 요동치 아니하고, 목적을 요동치 아니하고  이런데 이런 주님의 그 전지전능의 사랑의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을 우리 차별들에게 실상으로 보급해 주시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이루어 나 위해서 대속해 놓으시고 이루어 놓은 구원이 구원이니까  주님의 능력이 이 일을 이루신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성령이 오셨고,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진리가 책임을 졌고, 주님의 집자가의 보배피 공로가  책임을 져서 세 가지 이 역사가 이 책임을 지고 했기 때문에 그 권능이 이 일을  이룬다.

 아무리 뭐 어떤 물건이라도, 어떤 물건이라도 다 이 성령님은. 한 하나님이신데  그 이름을 가리켜서 우리의 구원을 책임졌기 때문에 성령님이라 합니다.

그러기에, 성령님도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주님도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성부도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한 본체가 하나라. 한 분 하나님이 이런 직책을 행할 때에  이렇게 저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기 때문에,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주님이  출발시켰기 때문에 주님으로 인해서 출발하는 요 두 가지. 이라는 데에는  전지전능의 사랑의 능력이 이 일을 이루시는 그 능력이 이 일을 이루시는, 요  능력이 요 일을 이루시는 것을 의심없이 믿는 요 믿음 요 세 가지를 가지고, 이  세 가지를 요동치 안하고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주님이 목적하신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갈 때에 사용하는 방편은 뭐이냐? '배를 타라.' 배를 타라, 네가 공무원  생활을 타라, 네가 가정 주부의 배를 타라, 너는 어떤 공장 회사의 사원의 배를  타라, 너는 어떤 학교에서 교편 잡는 배를 타라, 너는 구멍가게를 하는 배를  타라. 너는 태짐지는 배를 타라.

 이제 이 배는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 데에 쓰는 배이니까 이 세상에 안 믿는  사람들이 살고 가는 그 모든 생활 방편, 백 가지고 천 가지고 모든 생활 방편,  어떤 방편이든지 자기에게 해당되는 그 방편을 가지고서 갈 때에 그 배로  말미암아 가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간다. 이 배타는 것은 배탈라고 하는게 아니라 건너 편으로 주님이  목적을 정해 주셔서 목적을 가기 위해서 나는 배탄다. 주님의 명령에 복종으로  배탄다. 이 배타고 가는 거는 주님의 능력이 배타고 가게 하신다. 요 네 가지를  믿고 방편으로 쓰는 그 배로 말미암아 미혹 들어오는 그 미혹을 저버리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방편으로 사용하는 요 방편으로 인해서 이 세 가지를  잊어버리고 고 방편으로 인해서 그 방편을 사용할 때에 안 믿는 불신자들이 그  방편에 대한 관념과 취급과 사상과 욕망과 하는 그대로의 가지는 고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요것만 없으면 성공합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요것만 있으면  성공합니다! 요걸 변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이 세 가지는 변하지 안하지마는 이 세 가지가 변하지 안하지만 이 세  가지를 이 방편 사용하는 데에서 옛사람으로 바꿔졌기 때문에. 새 사람이 그  배타고 가면은 되는데 새사람으로 타지 안하고 옛사람으로 바꿔졌기 때문에  방편이 틀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새벽기도 나오는 사람이 새벽기도 못 나오고,  주일 지킬 사람이 주일을 못 지키고, 하나님의 권능 힘 입은 자가 하나님의  권능대로 살지 못합니다!! 만물의 종이 되고, 안간의 종이 되고, 세상 권세의  종이 되고, 회개를 해야 됩니다!! 안하면 비참한 자 됩니다!  요 세 가지, 우리는 분명히 주님이 우리에게 목적을 정해 줬습니다. 분명히  주님이 우리를 출발 시켰습니다. 이 걸음에는 전능하신 당신의 능력이 아 명령  속에 들었고, 출발 속에 들었고, 배 타는 속에 들었고, 우리 개인 속에 들었고  들었습니다. 그럴 때에 이걸 버리지 안하면 그 배는 나에게 이용을 당합니다.

배는 나를 미혹시키지 못하고 배는 나에게 이용을 당하지마는서도 내가 이 세  가지를 굳게 잡지 못하면 내가 배를 이용하는게 아니라 배에게 이용을  당했습니다. 이 제자들은 완전히 배에게 이용당했습니다. 배가 주는 사상, 배가  주는 관념, 배가 주는 모든 지식, 배가 주는 그 시험 이 모든 것으로 옛날  배타는 사람으로 완전히 바꿔졌기 때문에 저희들은 신앙 걸음에 전진을  못했습니다. 저들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놀라고 고통당한 것은 뭣  때문이냐? 그것도 옛사람으로 바꾸어졌기 때문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만일 바꾸어지지 안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목적을, 동기를 이 세 가지를  굳게 잡고서 하나님께서 이용하라는 배라는 것을 의심없이 믿었다면은 배가  출렁출렁 해서 물속에 들어가면은 호시다 할 거요. 물속에 들어 가면 '아,  어데까지 들어가는가 보자. 물속에 암만 들어가 봤자 주님 목적대로 목적지에는  들어갈 터이니까 주님의 권능을 좀 구경 좀 하자. 물속에 폭 들어가도 이제 올라  온다. 바다야! 네가 주님이 가라 하는 이 걸음을 네가 방해하지 못한다. 바람아  네가 방해하저 못한다, 한번 실컷 해 봐라 보자. 호시나 한번 해 보자.' 하고서  그런 것들이 거기 들어오지 못 합니다. 이런데 그만 그것에게 피동된 것이  저들이 전진을 못 했습니다. 전진을 못 했습니다. 피동된 그것으로 인해서 번민,  고통, 공포, 비겁 참 아주 비참한 그런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랬는데, 그때에 주님이 구원하러 떡 오시니까 구주는 볼 때에 그만,  자기네들이 옛사람으로 바꾸어져 가지고 마귀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구주로  주님이 오시는 것은 물귀신으로 보여졌습니다. 물귀신으로 보여졌어. 옛  사람으로 돌아간 자에게 주님이 오셔서 주님이 주시는 구원은 전부 원수같이  보여지고 망하는 것같이 보여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라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오전에 요 네 가지 기억합시다. 우리는 이 세상 자연이라 하는  것을 이용해 가지고서 우리 구원을 이룹니다. 자연을 이용하는 데.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에게 이용을 당하지 말아라. 자연으로 말미암아 뭐이 되리라고  생각지 말아라. 나는 전능자의 능력에 붙들려서 전능자의 능력의 보호로 살고  있다. 그에게 피동 되어서 살고 있다. 그가 정하신 목적을 가고 있다. 그분의  능력을 힘입어 간다. 이 모든 피조물, 천하에 있는 모든 것은 내 구원을 위해서  창조됐고 예정되어 있고 내 이용물이다! 요것을 놓지 안하면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헛일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 합시다.

 오늘 우리가 이 세 가지를 자기가 사용하는 이 자연에게 빼앗기지 안했는지,  지금 공포와 비겁에 싸여 있지 않는지, 전능자 아들이 왜 두려워 합니까?  전능자의 품안에 있는 자가 왜 두려워 합니까? 아무리 세상에 높은 자라도 그자  위에 하늘에 계신 분이 계십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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