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11:36
믿음
본문 : 히 11:1-6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은 어떤 결과를 맺는 것인고 하니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를 만들어 내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없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있게 하는 것이 믿음이요 보이지 않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환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환하게 보이도록, 없는 것을 그것을 만들어 있도록 하는 분이 누구신가? 그것은 한 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없는 것을 믿음으로 만들어 있게 하시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만들어 환하게 보이도록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십니다.
그것을 사람들이 어리석게 생각하기를 '없는데 어떻게 있을 수가 있느냐? 안 보이는데 어떻게 보일 수가 있겠느냐?' 이런 생각들을 가집니다. 있는 것이라야 있다고 인정하고 없는 것이 앞으로 있어진다 하는 말은 사람들이 믿지 못하는 것이 타락한, 마귀에게 받은 어두움입니다.
또 보이는 것이라야 보이는 것은 인정하지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떻게 보일 수 있겠느냐? 그것도 인정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미혹입니다.
사람들은 알 만한 증거가 있습니다. 모든 있는 것이, 어떤 것이든지 모든 있는 것이 있는 데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있는 것이, 뭐 크고 작고 모든 있는 것은 있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없던 것이 있어진 것입니다. 있는 전부는 없던 것이 있어진 것이지 있던 그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없던 것이 다 생겨져서 있어졌습니다.
또 보이는 이런 것들은 처음부터 보이는 것들이 아닙니다. 안 보이던 그 모든 것이 다 지금 보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앉아서 이 사람 저 사람 보이는데 이 사람은 백 년 전에는 하나도 안 보이던 사람입니다. 안 보이던 사람들이 이렇게 생겨서 보이게 됐습니다.
우리가 하늘의 별도 달도 땅도 이런 거는 뭐, 요새 망령된 과학이 심판받아 유황불 구렁텅이에 들어갈 그 과학자들의 말대로 몇만 년 줬다 하지마는 성경은 육천 년 미만입니다. 육천 년 전에는 해도 달도 지구 땅덩어리도 별도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다 없던 가운데서 그 모든 것이 생겨졌습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신 분이 누구냐? 하나님이십니다. 없던 이 모든 것을 지금 이렇게 있게 하신 분이 누구냐? 하나님이십니다. 있는 이 전부는 없던 것을 하나님이 있게 하셨고, 보이는 이 전부는 보이지 않던 것을 하나님께서 다 보이도록 이렇게 만들어 냈습니다.
이런데 이분이 "믿기만 하면 없는 것을 있게 해 주겠다" 하는 이 말을 못 믿을 게 뭐 있습니까? 또 "네가 성경에서 말만 들었지 보지 못한 이 모든 것을 네가 믿기만 하면 네 눈으로 환하게 보게, 네가 만져보게, 네가 먹어보게, 입어보게, 누려보게 하겠다" 하는 이 말씀을 못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와 같이 됐는데 어떻게 안 믿겠습니까? 이거는 마귀가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아 뒤집어 놔서 모든 생각이나 지혜나 마음이 거꾸로 돼 가지고 될 것은 안 된다 안 될 것은 된다, 사는 것은 죽는다 죽는 것은 산다, 망하는 것은 흥한다 흥하는 것은 망한다, 정거꾸로 이렇게 알도록 만들어 놓은 요것이 인간을 타락케 한 마귀가 이렇게 한 것인데 거꾸로 된 이것은 요것이 원죄입니다. 원죄가 거꾸로 된 것입니다. 원죄가 거꾸로 된 것이오.
원죄는 어떤 것이 원죄인고 하니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그로 말미암아 살아야 될 것이 거꾸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제가 살아야 될 것이 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있게 하려는 이렇게 엄청난 거꾸로 된 이것이 인간의 원죄입니다.
원죄 이것에서 뿌스러져 나온 인간의 모든 지식, 생각, 성경 말씀외에는 인간의 대가리서 나온 것은 과학은 옳지마는 반거짓말입니다. 물리에는 맞지마는 물리와 인간 이치와 접하는, 물리를 이용하는 그 물리의 주격 이치가 삐뚤어졌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은 다 삐뚤어져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 버리고 맙니다. 과학은 다 불탈 것을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인간의 두뇌에서 나온 모든 지식이 다 없어진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믿음은 어떤 것을 만들어 내느냐? 믿음은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께서 '이런 것이 있다' 하지마는 성경에 말해 놓은 모든 것은 이것은 현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있을 것들입니다. 앞으로 있을 것들을 우리에게 기록해서 '이것을 네가 네 몫으로 소망 해라' 이렇게 성경이 말씀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계약해 놓은 이것, 현재에 없는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있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으로만 맺어져 있는 현재에 없는 것, 모든 좋은 것 온갖 것이 다 있는데, 그만하면 뭐 금생과 내세 영원무궁토록 충만하지 부족할 것이 하나도 없고 그 이상이 없는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다 있게 해 주시겠다, 이것을 너희에게 주시겠다 했는데 이것은 현재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기만 하면, 약속 가운데에 약속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 약속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우리가 믿기만 하면 실상이 돼 가지고 내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믿음이다"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것도, 내일의 것도, 모레 것도 내가 믿으면 그때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대로 실상을 다 만들어 줍니다.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라" 성경에 말씀은 했지마는 없으니까 보이지 않습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이렇게 해 주시겠다. 이렇게 된다' 하지마는 내가 보지 못한 것입니다. 성경에만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해 놓으신 것이지 약속해 놓으신 그 보지 못하는 것을 내가 믿기만 하면 내가 환하게 보도록 그것을 주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모든 선진들이 이에서 증거를 받았느니라" 우리 앞에 예수님 믿고 간 모든 사람들, 구약 시대의 성도들 신약 시대의 성도들 모든 성도들이 '믿기만 하면 약속되어 있는 그것이 실상으로 만들어지고 믿기만 하면 보이지 않는 약속으로 돼 있는 것이 환하게 볼 수 있도록 잡아보고 입어보고 누려보고 먹어보고 만져보고 할 수 있도록 그렇게 된다' 하는 이 말씀을 듣고 모든 선진들이 이 믿음 가지고 다 놀랐습니다.
믿으니까 과연 있겠다 하는 것이 있어지고, 보이겠다 하신 것이 보여지니까 그제야 '과연 하나님은 여호와로라. 하나님은 계약해 놓고 계약에 대해서 털끝만치도 가감이 없이 그대로 계약 이행을 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 하는 것을 다 인정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그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이렇게 해 봐라, 그러면 내가 이렇게 이렇게 계약한 대로 해 주리니 네가 내가 시키는 대로 실행을 해서 내가 약속한 대로 실상으로 만들어서 네 손에 딱 쥐어 주고 네 눈에 환하게 보이게 이렇게 해 줄 때 그때야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과연 하나님은 계약의 이행에 절대자이신 하나님이시라 하는 것을 너희들이 알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오늘 밤에 믿음이 어떤 것을 만드시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굳게 잡읍시다. 천인 만인이 너와 같은 절단날 입장을 가졌을지라도 네가 믿기만 하라. 그러면 천인 만인이 다 넘어지는 그 형편이라도 너는 넘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너를 가까이 오지 않는다.
네가 불 속과 같은 어떤 혹독한 일, 사자굴 같은 어떤 맹혹한 그런 속에 네가 첩첩이 포위되었을지라도 믿기만 하라. 그러면 너만 알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고 '이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이 과연 하나님이시다.' 하여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믿으면 다 되는데, 믿으면 성경 가운데 약속된 것은 다 됩니다.
믿는다고 이종교가들이 제 사욕대로 제 주관대로 무엇을 목표를 정해 놓고 이것을 이루어 달라고 아무리 하나님께 해도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매수당하는 하나님이나 유혹받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안 들으십니다. 꼭 신구약 성경에 발표해 놓은 요것을 소망해야 되고 이것을 보여 줍니다.
그것이면 족하지 성경에 우리에게 해 주시마고 하신 그것이 아닌 것은 우리에게 다 유익된 것이 아니고 다 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어떤 게 믿음인가? 믿음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의 어떤 관계를 가지신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서 우리와 어떤 관계를 가진 것을 알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지금도 개미 한 마리가 나고 죽고, 오고 가고 하는 이 전부를 홀로 주관하고 계시는 개별 주권 섭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이 우리를 당신의 생명까지 다 투자해서 구원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를 생명을 바치기까지 해 가지고 구원하시기로 시작해 놓고 이 일을 달성하시려고 하시는 우리에게 절대적인 구원의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다음에는 그분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하라 하시는 그것을 바로 깨달아 가지고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시키시는 것을 바로 알고 그대로 행하면 됩니다. 바로 알고 그대로 행하면 됩니다.
바로 아는 데는 '어떤 일을 하라' 그 행동만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행동을 하라' 아무리 그 행동 해도 안 됩니다.
거기에는 첫째로 하나님께서 정한 때가 있어서 하나님이 정해 주시는 그때 해야 됩니다. 그때 안 하고 때를 지내고 난 다음에 암만 해 봤자 그 때를 선택한 것이 제가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또 하나님이 정해 주신 장소에, 아무리 그 장소라도 때가 지나가면 안 됩니다. 아무리 그때라도 장소가 다른 장소에서 하면 안 됩니다. 장소도 그분이 정해 주시는 그 장소에서, 정해 주시는 그때에, 종류도 성경에 말씀했으니까 이 종류를 저 종류를 제 맘대로 법도대로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시간 이 자리에서는 이 종류를 지키라' 하나님이 정해 준 그 종류, 말이라는 종류에 대해서 시켰든지, 행동에 대한 종류에 대해 시켰든지, 일계명이나 이 계명이나 오계명이나 십계명이나 어느 계명이든지 하나님이 정한 종류 그 종류를 지키라 할 때에 그 종류를 지켜야만 요것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것은 다 전부 제 맘대로 제 주장대로 다 해 놓고 종류만 하나 잡고 실행을 하는데 장소도 틀렸고 때도 틀렸습니다.
때는 맞추지마는 장소를 안 맞춰도 안 되고, 장소와 때를 맞췄지마는 그 종류를 시키시는 그 종류, 그 종류를 맞추지 않아도 헛일입니다. 이걸 안 맞아서 실상이 환하게 보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지 이게 맞는데 안 이루어지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만일 이것이 하나라도 있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 못 합니다. 하나님도 속이는 거짓말 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물을 심판하지 못하십니다.
이거는 절대 불변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믿음을 지켰는데 안 됐다' 하면 장소를 한번 더듬어 보고, 시간을 그 시기를 더듬어 보고, 종류를 더듬어 보고, 그러고 나면 한 가지밖에는 안 남았습니다. 한 가지는 거기에다가 양을 더듬어 봐야 됩니다. 양을, 분량을 더듬어 봐야 됩니다. 양이 지나치게 많아도 또 그거는 불법입니다. 모자라도 불법입니다. 양이 딱 맞아야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당신이 하시는 것이 정확무오, 정확무오로 하후 하박이 없이 어데나 가감없이 선포한 그대로 영원히 실행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하고 든든히 따라갈 수 있고 바라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속담에 '7년 대한 가물음에도 오늘만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 하는는 개인의 사정, 그와 같이 사람들은 간교해서 제 사정에 따라서 요동되기를 원하나 그리 되면 모든 존재들에게 그 사정에 따라서 하나님이 움직인다고 하면 우리는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내나 역연 불의요 믿을 수 없는 상대가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믿음은 이렇게 보배로운 믿음인데, 성경에 계약으로 선포해 놓은 모든 것을 실상으로 만들어 내는 이 능력을 가진 것이 믿음인데, 또 성경에 말한 보이지 않는 그 모든 좋은 것 그것을 다 볼 수 있는 이것이 믿음인데, 나쁜 것도 보고 좋은 것도 봐서 나쁜 것은 피하고 좋은 것은 취하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믿음인데, 이 믿음이 뭐이냐? 이 믿음은 없는 것을 하나님이 와서 있도록 하시는 방편이요 보이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만들어 가지고 환하게 보이도록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는 유일한 방편인데, 그러면 믿음이 뭐이냐? 우리가 믿음만 가지면 하나님이 와서 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뭐인데? 믿음은 성경에 선포한 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나와의 어떤 관계를 가지시고 어떤 일을 하는 분이신 것을 내가 알고 인정하고 그분이 나에게 시키시는 그대로, 장소도 시키시는 그대로 그 장소에서, 시기도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대로 그때에, 종류도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 종류를, 분량도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 분량대로 거기에 맞춰서 딱 하면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이 하나님은 그 일을 책임지고 하기 때문에 커도 상관없고, 어려워도 상관없고, 복잡해도 상관없고, 당신에게는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어려움이 없는데 다만 우리가 믿음에 맞추는 그게 지금 문제입니다.
그러면 믿음을 이것을 가지기가 어려우냐? 아주 쉽습니다. 믿음 가지기가 아주 쉽습니다. 이런데 왜 사람들이 믿음을 못 가지게 되는가? 못 가지게 되는 이유는, 믿음은 가지기 쉬운데 믿음의 원수 도적 그놈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믿음의 원수 그놈이 있습니다. 그놈만 죽여 버리면, 그놈만 물리치면, 그놈만 원수인 줄 알고 물리치면 믿음보다 쉬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원수가 어떤 것인가? 믿음의 원수는 우리에게 제일 큰 원수입니다. 왜? 믿음의 원수가 믿음이 안 되구로만 하면, 보이지 않는 이 좋은 것을 다 우리가 환하게 누려볼 수 있도록, 없는 것을 다 실상이 있도록 해 가지고 우리가 가지고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이 이 지극히 크신 분이 그 능력 그 사랑 그 은총 가지고 나 위해서 하도록 하나님의 모든 것을 솔빡 내가 다 차지할 수 있는 이것이 믿음인데, 이 보배로운 믿음인데 이 믿음을 절단내는 그놈은 내 살림살이를 뺏아가는 놈보다 큰 원수고, 내 옷을 벗겨가는 그놈보다도 더 큰 원수고, 내 팔을 자르고 몸을 절단내는 원수보다도 더 큰 원수고, 내 생명을 끊는 원수보다도 더 큰 원수입니다.
원수 이놈만 원수인 줄 알고 이놈만 대적하면 되는데 이놈을 원수인 줄을 모르고 이놈이 원수가 아니라 저 중에 저인 줄로, 원수 이놈을 자기인 줄로 아는 여기에서 사람들은 다 망하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무엇인데? 원수는 간단하게 자기 욕심, 하나님이 가지라 하는 욕심 아닌, 하나님이 우리에게 너는 이런 욕심 가지라 하는데 그 욕심 아니고 제 사사로운 욕심, 제 사욕 요게 원수입니다. 또 성신의 감화대로 하라 하는데 성신의 감화에 반대인 자기 주관, 자기 주관 요놈이 원수입니다. 하나님의 계시 법칙대로 하라 하는데 제 지식, 제 생각, 제 뜻, 제 의사, 제 이성, 이 자기의 자율 요것이 원수입니다.
그러면 이 원수를 한 말로 해서 이 원수의 이름이 뭐이냐? 원수의 이름은 자유입니다. 원수의 이름은 자유입니다. 제 맘대로 하는 것. 그러기에 주님이 첫째로 말씀하시기를 "너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그말은 네 맘대로 하고자 하는 그 자유를 죽이라. 자유를 부인해라. 자유를 꺾어라. 자유가 네 원수인 줄을 알아라. 자유 이놈을 이별해라. 자유 이놈과 네가 원수가 되어서 자유 이놈을 대적해라. 자유 이놈과 이제는 인연을 끊어라.
그러고 썩을 것으로 썩지 않는 것을 만드는 고난을 네가 두려워하지 말아라.
치료받기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썩은 것이 썩지 않는 것이 될 때에는 그 수술에 치료에 애로가 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이 되어지는 데는 그 수술에 애로가 있다. 욕된 것이 영광스러워지는 데는 거기에 수술에 애로가 있다 모든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이 되는 데는 그 수술에 애로가 있다.
네가 수술할 때 아프지 마는 네가 그 병으로 죽을 터인데 싹 끊어 내고 나니까 네가 생생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처럼 네가 수술하는 그 고통을 싫어하지 말고 그 고통을 네가 감당하면서 나를 따르라, 그말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유를 원하는 자는 이 보배로눈 믿음을 삼키는 원수를 숭상하는 자이기 때문에 이 자유를 원하는 이 자유주의자는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택한 자면 기본구원만 하늘나라 갔지 거기에 필수한 모든 것은 유황불 구렁텅이에 다 타 버립니다.
세계는, 세계는 사망의 자유, 악령이 주는 자유, 제 맘대로, 저 좋은 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제 성질대로 자유하는 이 자유를 이름을 붙이면 악의 자유라, 피조물 저의 중심의 자유라, 사망의 자유라, 불의의 자유라, 짤막한 자유라, 자유나 조금 있으면 유황불 구렁텅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하는 이 자유는 완전히 이 사망의 악의 짧은 이 자유를 완전히 대적해서 벗어버리고 원수로 대적해 끊어버리고 절대자이신 이분에게 소속하면 절대자 이분이 자유하심같이 영원히 자유합니다.
이 자유는 막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데 세상이 이 악의 자유로 편만해지니까 교회가 어리석게 온 세상이 인간의 인권이니 뭐이니 해서 인간의 악의 자유를 이렇게 말세에 하늘까지 관영하도록 가득차도록 이 자유가 충만해지니까 이것이 인간이 걸어갈 것인 줄 알고 이게 옳은 길인 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니까, 하나님이 주장하지 아니하니 이거는 전인류가 말해도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는 것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교회도 어쩌든지 인제 자유 시대가 왔습니다. 이래서 교회가 여기에 저게 부흥되는 것 가서 살펴봐서 그것이 악의 자유로 흥왕되는 것이냐 자유를 원수인 줄 알고 자유를 꺾어 하나님의 절대자에게 복종하는, 과거에 자기 단독의 자기중심의 자유는 털끝만치도 없고 하나님에게 완전히 결박을 당하고 완전히 종이 되어서 그로 인하여 그에게 연결되어 그가 자유하는 이 자유로 자유하는 움직임이냐 단체냐 하는 것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죽고 사는 것은 판정됩니다.
믿음이 만든 결과는 모든 좋은 것을 있게 하고, 모든 나쁜 것을 다 제거하게 되고,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모든 좋은 것을 환하게 보도록 누리도록 하게 하고, 모든 해로운 것들을 완전히 깨끗하게 청소해서 치료해서 볼 수 있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믿음인데 이 믿음이 뭐기에 그렇게 능한 일을 하는가? 믿음은 하나님이 일하게 하는 그 방편이기 때문에 믿으면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없는 걸 있게 합니다. 안 보이는 걸 보이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일하시도록, 내가 할일을 하나님이 와서 일해 주시도록 이렇게, 하나님이 와서 전능자 일하도록, 전지자가 일하도록, 나를 당신의 생명같이 아끼시는 내 생명이신 그분이 잘 옳게 바르고 일하시도록 그렇게 하는 방편이 무엇인데? 믿음이라. 그분을 알고 그분의 인도대로 행하는 것이라, 요게 믿음이라.
믿음은 하기가 어려우냐? 믿음은 하기가 어렵고 하기가 쉽습니다. 어려운 것은 자기라는 놈, 자기 아닌 자기라는 놈 요놈을 두고는 절대 믿음은 만들지 못합니다. 자기 아닌,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그놈, 옛사람, 자율, 주관, 사욕, 자기의 중심 요것을 부인하지 않고는 믿음을 못 만듭니다. 요것만 부인하면 믿음은 저절로 만들어 집니다.
홍해 바다에서 애굽 병정들을 홍해를 보고 두려워 떤 자가 누구였더냐? 그자가 주관입니다. 떨게 한 그놈이 이스라엘을 죽이려고 떨게 한 이스라엘의 원수 옛사람입니다.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 모든 경험 체험 이것의 주관 그놈들이 들어서 공연히 벌벌 떨어서 기절하게 했지 정말로 기절하게 됐더냐? 기이한 광경을 구경했습니다. 원수를 다 매몰해 버리고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왜 놀랍니까? 왜 겁을 냅니까? 왜 두려워 합니까? 어떤 놈이 그렇게 두렵게 불행스럽게 했습니까? 옛사람 그놈입니다.
이러기에 믿음의 원수는 자유라, 한 말로 해서 믿음의 원수는 악의 자유라.
악의 자유라. 이것을 죽여야, 원수인 줄 알고 이걸 대적해야 믿음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놈을 자기인 줄 알고 자기에게 대해서 오인하고는 절대 믿음을 만들지 못합니다. 믿음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데 말세가 되어가니까 어리석게 옹호라고 해 가지고 악의 자유를 숭상해서 얼마든지 천인 만인의 악의 자유로 이것을 숭상해 가지고 만인이면 만인 자유를 모아서 하려면 의논이 됩니까? 하나님은 악의 자유라도, 개별 자유보다 한 단일 자유 그것을 세계를 휩쓸고 삼키게 하고 있습니다.
조그만한, 반사들도, 가정에 어린 것들도 어쩌든지 자유, 악의 자유 그 자유를 주는 것이 그것이 사랑이요, 인권 옹호요, 인권 존중인 줄 알고, 어린아이 뭐 꽃주일이라던가 어린아이날이라던가 뭐 날은, 내가 테레비 보니까 이것들이 철때기 없어 아무것도 모르는 데 사망으로 가는 길인데 그래도 부모라 하는 것이 오늘 종일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게 그게 사랑이오. 그게 망하고 죽는 사상입니다. 어떻게 그것 경험도 없는 놈이 뭘 압니까? 그날은 다른 날보다 간섭해서 '얘, 옳지. 요거는 네가 원하니 좋다. 요거는 해야 된다. 요 소원은 버려야 된다.' 그날 가장 악의 자유를 꺾고 의의 자유로 귀속해야 인권을 아는 자이고 인간의 가치를 아는 자이고 인권을 옹호하는 것이지! 세상은 마구 꺼꾸로 홍수처럼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휩쓸려서 신앙으로 사는 자들도 전부 이 죄악의 홍수에 휩쓸려 악의 자유의 세계를 원하고 악의 자유가 성공되는 것이, 이것이 성장되는 것이 구원의 적이 성장되는 줄 모르고 이것이 구원이 성장되는 줄로 아는 악한 세대가 됐습니다! 절대로 이 자유를 꺾기 전에는 믿음을 가지지 못합니다. 믿음은 내 자유를 꺾고 하나님이 내게 자유하시는 것이요 내 자유가 그분에게 완전히 박탈이 돼서 자유가 없어지고 나를 당신이 자유하시고 나는 그분의 자유에 피동되기를 이 손이 내 몸뚱이에 피동되는 것처럼 이렇게 될 때에 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결정합시다! 구원이라 하나 실상은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집을 짓고 있습니다!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이 영감이 심판할 때에 타지 아니할 것은 없고 다 불탈 것들만 마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