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11:23
믿음
1984. 7. 2. 월새벽
본문 : 로마서 4장 1절∼8절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16절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시고 아브라함을 만족하고 기뻐하셔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그렇게, 말씀을 할 때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고 자랑을 하셨고, 아브라함으로 만족하시고, 아브라함은 나의 벗이라고 말을 하시고, 또 아브라함에게 내가 하는 일은 하나도 너에게 숨기지 아니하겠다고 말씀을 하셨고, 아브라함으로 인해서 하늘나라의 그 지극한 소망을 아브라함이 가진 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다 주시기로 그렇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은 것이 믿음으로 인정받았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실상으로 받은 것이 믿음으로 받았고. 또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것을 약속으로 받은 것도 믿음으로 받았고, 또 아브라함이 행해 놓은 그것이 그 당시에는 보잘 것이 없는 것같이 보였지만 그것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지극히 커서 거지 나사로가 세상을 떠났을 때에 그는 무궁한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 품에 있었다고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이렇게 참 측량할 수 없는 지극히 큰 약속도 받았고, 또 실상도 받았고, 그 모든 믿음으로 한 언행심사가 인간이 상상도 못 할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지극히 큰 일들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나 또 다른 모든 성도에게서나 선지 사도에게서나 볼 때에 하나님은 제일 원하시는 것이 뭐인가?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원하시는 것이 믿음이요. 또 하나님이 영원히 쓰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늘나라는 순전히 믿음으로 된 믿음의 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믿음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원하시는 것이 믿음이요, 또 하나님께서 제일 귀중히 취급하는 것이 믿음이요, 또 하나님에게 제일 중요하게 쓰여지는 것이 믿음이요, 또 하나님께서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겨서 이렇게 지극히 큰 역사를 이루시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제일 믿음을 좋아하신다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믿음 외에는 당신에게는 필요가 없습니다. 뭐 인간의 노력이, 인간의 노력 그것을 당신이 원하신다면, 엿새 동안에 우주를 지으셨는데 사람이 암만 노력해 봤자 그 노력이 얼마나 크겠으며 얼마나 그 양이 많겠습니까? 사람이 하나님 앞에 물질을 바친다, 몸을 바친다, 생명을 바친다 해도 그것도 하나님께서 극히 사소한 것으로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제일 믿음을 좋아하시고, 원하시고, 가치 있게 여기시고, 대우하시고, 또 중요하게 쓰십니다.
그러면, 믿음은 뭐이 믿음인가? 믿음은, 믿음에 대한 유일한 법칙은 신구약 성경 말씀이 유일한 법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에 나타 낸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그 뜻을 당신이 영감으로 나타내셔서 그 영감이 우리에게 기록 문서로 전달돼서 왔습니다. 그러면, 이 전달돼 온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타락을 먼저 줬습니다. 먼저 줘서, 하나님을 배반하면 어찌 된다 하는 것을 먼저 주셔 가지고 그 배반하는 그 일을 먼저 시작을 하시고,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무엇이 어떻다 하는 것을 둘째로 그 일을 시작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배반하는 일이 먼저 이 시공 세계에서 시작 됐고 순종하는 일이 다음에 시공 세계에서 시작 됐는데, 시공 세계가 있기 전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시발되는 하나님의 목적을 정하셨고, 목적을 위해서 예정과 창조를 하신 그 일이 먼저 전제적으로 있었고 거기에 따라서 피동적으로 이제 타락이 생겨졌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타락을 시작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데 그분에게 거슬리는 그것은 다 이렇게, 여러 모양으로 거슬리는데 여러 모양으로 거슬린 그 모양대로 또 그에게 대해서 멸망이라는 멸망이고 모양 그대로 온다 하는 것으로써, 타락과, 세상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모든 거역하는 죄악과 영원무궁의 지옥이 모두 단계적으로 이렇게 되는 것은 무엇을 하나님이 하시려고 이것을 만드셨느냐? 어떤 사람이 와서 개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그걸 내가 말해 주지 못했는데, 이렇게 하나님이 다 예정했는데 어떻게 예정대로 안될 수 없습니까? 안될 수 없습니다. 가롯 유다를 예정했기 때문에 가룟 유다는 그렇게 범죄를 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네, 그거 다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타락을, 차차 차차 타락이 짙어지고, 타락으로 말미암아 참 영원한 멸망에 이르는 그 일을 하나님이 뭐 때문에 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지으셔 가지고 당신의 소용과 목적대로 사용하시기 때문에 아무도 그걸 정죄하지 못합니다. 정죄할만한 또 그런 수준에 도달하지 안했기 때문에 그분에 대해서 그저 복종할 것뿐 이지 하후하박을 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간단하게 말하면 우리가 우리 손으로써 무엇을 만들어 가지고 이것에 소용해서 만들고 저것에 소용해서 만들었으면 만들어진 것은 만든 자가 만든대로 그대로 사용하면 사용되고 말았지 거기에 대해서 뭐 '나는 와 이런 걸로 만들고 저런 것으로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 그 만든 자에게는 아무런 그게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뭐 그거 비슷하지 꼭 그렇게, 무한한 것이기 때문에 유한한 것 가지고는 그렇게 비유가 잘 안 되지만 그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리려고 하는 것이 성경이요, 그러면. 성경에서,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성경인데, 성경에서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고 그렇게 알리고 있는가? 성경이 알리고 있는 것은 그분은 자존자시며, 완전자시며, 절대자시며, 불변자시며, 모든 것을 없는 것을 창조하시고 예정대로 섭리하시는 절대자이신, 지극히 크시고 지극히 크시고, 그 크심이나 그 능력이나 지혜가 무한하신 무한하신 것을 이 피조물에게 알게 하려 하는 것이 당신이 창조하신 목적이요, 알게 하려 하시는데 아는 데는 제일 일선으로 아는 것은 인생은 만물의 영장으로 길러 가지고 인생이 하나님에게 거역하는 수많은 종자를 거역하는 종류를 내가지고 그 종류 종류마다 거역하는 그 결과가 이렇다 이렇다 하는 것을 당신이 피조물에게 알리시는 것이 목적이요, 또 순종 하는 자를 만드셔 가지고 순종하도록 그렇게 당신이 섭리하셔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하나님께 순종한 것은 이렇게 이렇게 순종의 결과는 이렇게 구원이 되고 이렇게 영광이 됐다 하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 당신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지옥 가는 것도 예정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거슬리면 어찌 된다 하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요, 천국은 하나님께 순종하면 어떻다 하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 그것이 순종자와 거역자를 내신 하나님의 목적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 두 가지를 위해서 내셨는데, 성경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하는 것은 이렇게 이렇게 된다 하는 것을 성경에 약속해 놨습니다.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 위의 그 위를 가지고 그 위에서 그 책임지고 역사해야 될 그 지위를 가지게 된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그러면, 순종하는 자가 모든 피조물을 다 관할하고 피조물들을 영원히 보존하고 복되게 하고 그렇게 하는 이 순종하는 것이 교회인데, 순종하는 자 외에는 단독 하나님 자존자 한 분만 계신다 하는 것을 성경에 나타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참 이 세상 20세기의 과학들이 떠들어 쌓는 이 떠들어 쌓는 것이 그것이 요 별에서 조별, 요 별에서 조 별로 홀짝 뛰어 건너가는 것. 그 별과 별도 수가 한 없는데. 그것을 지금 근 육천 년이나 걸려 가지고 과학에서 과학으로, 물리에서 물리에. 인지에서 인지가 발달돼 가지고 그렇게 한 것이 이 별에서 저 별에 건너갔는데, 만일 그래 건너가려고 하면 얼마나 건너가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면 될 것인가? 그것도 또 끝이 있고. 끝이 얼마든지 그렇게 있는 그런 시간 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넓은 우주를 우리가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우주가 얼마나 넓으며 얼마나 큰가. 그것을 각각 자기가 가진 지식. 나름대로 이렇게 생각을 해 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 인간 지식을 자지고 한번 그것을 마음으로 측량해 보고, 또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측량을 해 보고 할 때에 이 우주는 얼마나 크고 넓다. 그러면, 그 가운데에 존재 중에서 조그만한 한 쪼가리가 있었으니까, 한 조그만한 한 뭉텅이가 있었으니 그것은 그 우주에 있는 그 큰 뭉텅이에다 비하면 비할 것도 없는 조그만한 게 하나 있었으니 그게 지구 땅덩어리라.
그러면, 지구와 같은 뭉텅이, 지구로 비교할 수 없는 지구 몇 억억만 배가 되는 그런 큰 뭉텅이도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런데 지구라는 조그만한 뭉텅이 요 뭉텅이에서, 그러면, 지금 동양은 거기서 얼마나 가른 것이며 서양은 얼마나 갈라진 것이며, 육지는 얼마나 갈라진 것이며 그 바다는 얼마나 그렇게 갈라져서 그 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인가? 거기에서 호부작 호부작 하면서 또 고게다가 모퉁이에 이 한국으로 말하면 지구 땅덩어리의 몇 분지 일인가 그것도 아마 계산이 나와 있을 터인데, 고 몇 분 지 일 거기에다가, 또 그것도 반 쪼가리 그 정권을 잡고도 또 이렇게 뭐 어떻게 하고, 또 그 정권 잡은 자가 하나님께서 길게 하지 안하니까 그저 십 년, 그리 안 하면 몇 해 동안, 우리나라에는 지금 칠 년으로 됐지요. 대통령 임기는 칠 년으로 했으니까 칠 년 동안인데 그것도 그대로 될는지 안 될는지 모르고 이렇게 칠 년 동안, 그 동안 인제 가장 짧은 시간, 짧은 기간 가장 좁고, 아주 좁고 작은 그 면적, 그 양, 그런 것을 우리가 명상할 수가 있습니다. 상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우주보다 또 영계는 얼마나 크니, 이 큰, 지극히 큰 이런 것을, 이런 것을. 우리가 우리 힘으로 본다며 조그만한 이 부산 여기도 많은 집들이 있지만 조그만한 것 오두막이 하나도 우리가 차지하려면 차지하들 못하고 마음대로 자유하지 못하고, 또 거기서도 그것도 다 점령할 수가 없고 관할할 수가 없고 이것도 다 통치하고 관할한다고 하면 부산으로 말하면 부산 시장이 총 관리를 하고 있는 데 그분의 실력이 얼마나 크며 또 그분의 세력과 그 권위가 얼마나 큰가 이런 걸 생각할 때에 이 우주와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의 것과 생명과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니" 하는 이런 말이 도무지 얼토당토 안한 일이요, 이것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없는 일이오.
저도 오후에 예배를 드리고 가 가지고 피곤해서 좀 누웠으면서 저게 구름이 따 오르는 것을 봤어. 구름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구름 위에 인제, 마음으로 구름 위에 가 가지고 한'번 들어가 보니까. 그 속에 들어가면 그 물이 뭐 우리 길로 말하면 천길 만 길일 터이니까 그 안에 들어가도 거기 빠지면 나오지도 못할 것이고, 또 구름 있는 데 거기에 떨어뜨려 놓으면 우리가 어디 가서 떨어질는지 그것도 알지 못할 것이고 그런 조금 그런 걸 차차 차차 생각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 하신 일.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모든 것을 섭리하신다 주권적으로 조그만 개별적으로 다 섭리하고 계신다. 이렇게 크신 분, 이렇게 우리가 생각 할 대로 느낄 대로 그분이 얼마나 크신 것을 참 성경에 말씀했는데, 성경에 말씀해 놨지만 우리가 실상으로 실감을 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없는 가운데서 천지를 창조했다.' 이라지만 '창조했다.' 이래 맞보기로 받아들이지, 그러면 그걸 창조하신 분이 얼마나 크냐? 창조한 분이 얼마나 크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조그만한 것을 만들어 보면서 이것도 만들기가 힘든데 그렇게 큰 것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 것이며 재료가 들었을 것이며 그분에게 얼마나 복잡하며 능력이 얼마나 큰가, 그런 것을, 이런 이 자연을 통해 가지고 하나님이 성경 말씀 한 것을 자꾸 이래 보면 인정이 안 되면서 인정 안 되는 그것이 자꾸 명상하고 묵상하는 가운데서 차차 차차 인정되는 그 영감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인정이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거 도무지 성신의 감동이 아니면 인정 못 됩니다. 조그만한 이거 한국 땅 이것도 점령하려고 뭐 이북 이남에서 싸우고 달고 이렇게 해서 또 점령하면 얼마나 가느냐? 점령해 봤자, 김일성이가 점령해 봤자 지금 뭐 백 년 가겠소. 찍해야, 암만 많이 산다 해도 오십 년. 몇 십 년 더 가겠습니까? 이것 때문에 이렇게 모든 사람이 분투노력하고 이래도 이 일이 잘 안 되는데,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간단명료하게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으니 이 공로를 힘입어서 당신이 말씀하신 그 사실을 인정만 하면 된다 하는 이것을 도무지 인간으로서는 믿을 수 없습니다. 없는데 의심도 한번 해 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 어디 계시느냐?' 의심을 한번 하려고 의심을 한번 해 봅니다.
부러 한번. 의심을 해 보면 의심이 끝이 없습니다. 그 의심을 아무도 헤어날 자가 없습니다. 의 심 하려면 얼마든지 의심할 수가 있고. 또 '모두가 다 허무다' 하면 얼마든지 '허무다'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서 아무리 의심을 하려 해도 의심을 하면, 의심을 하면 더 확신이 오고 의심하면 더 확신 오고, 부인하면 더 강하게 인정이 돼지고 이라니까 이것을, 부인할 수가 없도록 이렇게 성령이 오셔 가지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가 얼마나 범위가 큰지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세밀한지,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나님의 지으신 것이 얼마나 큰지 넓은지 우리는 육의 지식으로서는 모릅니다. 육의 지식으로는 뭐 태평 양만 봐도 무한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봐서 태평양은 지구 땅떵어리의 하나인데 지어 놓은 것을 보면 이 우주 안에는 그런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거요.
이런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 사실을 인정되도록 하셔 가지고 믿도록 만들어서 믿음을 제일 귀하게 보신다, 믿음을 제일 기뻐하신다 믿음을 제일 대우하신다, 믿음이 하나님에게 제일 필요하다, 믿음 가지고 모든 피조물을 다 능히 통치하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노릇을 할 수가 있다 하는 것을 성경에 기록한 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크심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크심을 우리가 인정하는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되고, 우리에게 계시는 두 가지 계시가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은 특별계시요, 이는 '참 정확하고 우리에게 아주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지혜와 능력으로 우리에게 축소해 가지고 아주 간단한 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알게 하는 측량할 수 없는 무한의 능력과 지혜가 이 신구약 성경 가지고 우리를 알게 하시는 이 간단 명료한 문서요. 그러기에, 이 문서 안에는 또 성령님이 내재해 가지고, 영감이 내재해 가지고 이것을 알도록 이렇게 하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특별계시라, 그러면, 하나님의 무한함을 우리에게 알리려고 하는데 알리는 그 방편을 가리켜서 계시라, 열 계(啓)자 보일 시(示)자, 열어보인다 하는데, 특별계시가 신구약 성경이요, 신구약 성경 안에 내재하는 그 영감을 가리켜서 특별계시라 하고, 또 특별계시 아닌 이 자연계시가 있으니 자연계시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하신 만물과 또 하나님의 모든 섭리와 또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으로 지은 인간의 심리라는 것이 천태만상으로 요렇게 조렇게 조렇게 요렇게 변해지고 나가는 그거는 뭐 참 측량 못할 만치 기이하고 오묘하게 만들어 놨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의 구조,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을 단순히 생각하지만, 누가 그걸 발견 했는지 몰라도 사람의 이 마음. 이 두뇌 안에는 컴퓨터가 뭐 천억이 들어 있다, 천억이 들어 있다 하는데 그 아주 좋은 걸 발견했고, 천억 이 아니라 천억보다도 떠들어 있는지 모릅니다. 왜? 그래야 우주와 영계를 우리가 통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러니까, 이렇게 만들었지만 만들어진 우리 들도 뭐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구속함을 받았지만 구속을 받은 우리들도 뭐인지 모릅니다.
이러기에, 차차 차차 우리가 제일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크심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하나님의 크심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고,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속해 주신 이 대속이 얼마나 크고 넓은가 하는 대속을 알아야 되겠고, 또,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계약해 놓은 이 계약에 대한 이 계약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가, 이 계약의 범위를 알아야 되겠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창조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얼마나 큰가? 이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와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섭리와 또 하나님께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그 구조를 인간의 만든 그 구조 이것이 이 자연계시입니다.
이것을 통해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 크심을 아는 데에도 성경 보고 알고. 그것만 보고 알 뿐만 아니라 성경 보고 알고, 물론 성경 보고 알고 영감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시니까 그 뭐 뛰어서 무한히 크시지요. 이러니까, 우주라는 그것을 우리가 이 조그만한 주먹덩이같이 생각하고 우주 안에 우리가 있다는 것, 우주 밖에서 우주를 주먹덩이 만한 요런 걸 보고 대작 거려 가면서 연구할꼬, 요것이 극히 작은 것이라, 능히 우주를 통치할 수 있다 하는 그런 믿음이 우리에게 생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 하면 초절되기 쉬우니까.
그러면, 이 우주는 당신의 크심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이 바다로 한번, 바다를 감상하면서 하나님의 창조가 크다는 것도 우주를 또 이래 감상하면서, 삼라만상을 감상하면서, 이렇게 모든 이 역사를 감상하면서, 이 자연계시를 가지고 특별계시를 알고 특별계시를 가지고 자연계시를 알아서.
특별계시와 자연계시 둘이 합해 가지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 주관으로써 알도록 연구하고, 그것이 미치지 못하는데 알도록 연구하는 거기에 따라서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이 와 가지고 우리에게 알게 하는 그 알게 하시는 지식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하나님이 얼마나 크심에 대해서 아는 그것이 사람이 천 명이면 천명이 다 다릅니다. 그러기에, 믿는 기독자의 전부의 합해서 앎이 어떤 한 사람의 앎을 못 당할는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이 아는 면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는지 우리는 모르겠다 그거요. 그러면, 하나님의 크심을 아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이 세상에서 표시되는 데, 손양원 목사님 그런 분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크심을 아는 것이 우리 보다 훨씬 뛰어나게 알았고 모든 선지 사도들도 뛰어나게 알았습니다.
이래서, 자연계시로 이 특별계시를 알고 이 특별계시로 자연계시를 알아서, 어쩌든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소원하시는 것이 뭐이냐?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알리고자 하시는 것이오. 또 그 다음에는 '아는 대로 해 봐라.' '아는 대로 해 봐라' 하는 것을 또 원하십니다.
해 보면 뭐하려고? 해 보는 것은. 아는 대로 해 보면 체험적 지식이 생겨지고 경험적 지식이 생겨지기 때문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우리에게 이 주관이 부인되고 마귀의 이 모든 입혀 놓은 것이 벗어지고, 그러면 마귀에게. 우리에게 와 가지고 안에 깊이, 깊숙이 침투해 가지고 감염해 가지고 있는 원죄와 본죄의 깊은 감염, 악령의 깊은 감화 이런 것을 우리에게 짙게 한 것은 뭘 하려고 그러냐? 이것이 짙어서 이 세밀하고 강한 것보다 뛰어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은혜가 더 커셔서 이런 것이 다 빠지기까지 주님의 대속과 주님의 존재와 그 무한하심을 그고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있는 첫째아담으로 말미암아 타락된 그 불의의 요소 이것이 다 제거되면, 제거되면 다냐? 제가 깨닫는 대로는 이것이 다 제거 되면. 이제는 하나님의 그 무한하심을 향하여서 밟아 가고 올라가고 얻어 가고 알아져 가는 그 무한함은 그 너머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도 우리에게 소망은 영원히 있고 믿음도 병원히 있고 사랑도 영원히 있다 이 셋은 영원히 있다, 변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 그 나라에 가 가지고 도 우리가 또 복종할 것이 있고 또 소망할 것이 있고 또 이룰 것이 있다 그 말이오.
이런데, 우리는 자꾸 주관으로 돌아가기 쉽고, 또 이 물질로, 일차 창조로 만들어진 이것으로 돌아가기 쉽다 말이오. 이걸로 돌아가지 말고 이것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서, 둘째아담으로 말미암야 생겨지는 이것인데 이것은 다른 것으로는 될 수가 없고 믿음만 가지고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을 당신이 원하는데, 믿음으로만 이 무한한 것이, 자, 우리가 우리 자체의 존재도 이것이 무한합니다. 이게 무한하게 돼 가지고 있어요. 능히, 하나님이 지극히 크시고. 하나님 다음으로는 우리가 크고. 우리 다음으로는 천군 천사가 크고 그 다음에는 모든 일반인이 크고. 그 다음에는 모든 존재 우주와 영계가 크고, 우주 영계는 우리에 비해서 아주 협착 하고 작은 것이라 그 말이오. 이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우리 자신도 뭐인지를 우리가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데. 이 모든 것을 이루는 데에는 믿음 하나로만 가지고 이루지 다른 것 가지고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원하신다.
그러면 믿음은 뭐인가? 믿음은 하나님께서 발표해 놓으신. 신구약 성경에 당신이 발표해 놓은 그 모든 것을 그대로 알고, 그것을 알고. 그것을 알고 그 다음에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오. 알고 인정하는 것. 이라니까, 이 성경은 요 조그만한 책이지만, 그러기 때문에. 이 성경을 다른 사람들은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조그만한 책이지만 이 성경은 우주 그런 것은 다 접쳐서 이 성경 한 책장. 이 성경 한 책장 모퉁이에 몇 줄로 딱 기록 돼 있습니다. 몇 줄로 딱 기록돼 있고, 그 밖에 많은 것은 부한한 것을 기록해 놨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 우주라는 것은 이 신구약 성경 한 구석에 몇 자로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아주 극히 적은 것이오. 그 외에 무한한 것이 기록돼 있다 그거요.
이런데, 이 사실을 우리가 알고, 첫째는 아는 것. 성경에는 그러면 뭐 뭐이 기록돼 있는가? 아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우리가 자꾸 읽어야 합니다. 모르면 뭐이 됩니까? 그냥 이거 뭐 '믿사옵니다.' 하는 그런 믿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뭐이냐? 첫째는 아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신구약 성경에서 아는데, 자. 신구약 성경에서 '우리 주 예수님은 자존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한 분뿐이신 그분이시다. 그분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시다.' 자. '지었다' 이것도 우리가 실감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계시로. '아' 바다를 볼 때 '이것도 당신이 지으셨다.' 우주를 볼 때 '이것도 지으셨다.' 구름을 볼 때에 내가 그 구름이 나 모든 이거, 이 산들을, 산들을 쭉 봅니다. 아. 그 산들을 보면 산들 이 아름답고, 그 산을 깊이 생각하면 그 산 속에 '내가 저 산 속에 들어가 서 나 같은 사람이 여러 수천 명이 죽는다고 해도 표나 있겠나? 묻힌다고 표나 있겠나?' 아주 그거 보면 자기가 작고 작고 자꾸 작아집니다. 작아지는데, 성경으로 말미암아,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것이 아니고, 그러면 저 산이 얼마나 크냐? 저 산이 이 지구라.
지구 중에도 한국에 있는 부산에 있는 산이다. 부산에 있는 산인데 부산에 있는 산은 경남에 있는 산이다. 경남에 있는 산은 한국에 있는 산이다. 한국이라는 것은 이 우주에 한 모퉁이 중에, 한 쪼가리 중에 하나 쪼가리다. 이 지구라 하는 것은 뭐이냐? 이 지구라 하는 것은 우주의 수많은 억억억억억만 개도 더 되는데.
항성만 해도 십억만이라고 어떤 사람이 발표를 했는데. 이러니까, 수많은 그 갯수 가운데에 한 개로, 조그만한 한 개로 되어 있다. 이제 자꾸 이렇게 하나님이 지으신 걸 자꾸 보면 커지다가 자꾸 가다가 '이 모든 것을 지으신 주님이라. 없는 가운데서 이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라.' 이래 보뼘 주님이 얼마나 크시고 크시고 크신 분이라는걸 알게 되고 그분의 계약으로 인해서, 계약을 의존할 때 내가 커지고 커지고 얼마나 커졌는지, 얼마나 커졌는지 '아, 우주 이것 다 나의 소유고 내가 관할할 것이니까 이것 아껴야 된다. 나쁜 것 좋은 것 다 있으나 그것이 다 색깔을 칠해서 다 구비한 요소로 구비된 것인데 이 모든 것은 영원히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유업이요 나는 이것을 받아 가지고 통치할 것이라.' 성경에 말해 놨다 그 말이오.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모든 것이 너희 것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된다' 했습니다. 된 것 만치.
이렇게 큰데 이 큰 것을 우리가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깨달으면 우리가 지극히 크고, 말씀을 떠나서 이 자연계시로만 보면 우리는 지극히 작은 존재라.
자기라는 존재가 거기 있어 봤자 누가 알겠습니까? 참 작고 작고 지극히 작은데, 지극히 작은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커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지극히 작은 것도 알아야 되겠고, 지극히 큰 것도 알아야 되겠고. 우리가 자연계시에 속하면 지극히 작은 것인데 특별계시에 속하면 지극히 큰 것이 되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성경에 있는 것을 알고, 아는 데는 문서 그대로 알고, 신 구약 성경 말씀에는 털끝만치도 틀림이 없는 정확무오라. 신구약 성경은 정확무오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 털끝만치도 가감도 없고 그대로라. 이것을 우리가 말로는 하지만 어느 정도 믿는지? 이걸 만일 우리가 믿을 때 우리는 짝 늘어져서, 우리가 믿을 때에 믿는 것만치 우리는 늘어져서 커집니다. 커져서 이 우주니 세계의 뭐 이떻게 모든 하나님 떠나서 있는 웅얼 웅얼 해 봤자 그것은 뭐 한 주먹도 되지 안하고 한 눈꼽 재기 만치도 못된다 그 말이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가할 때에는 거기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주의 주인공이 얼마나 많이 있어. 우주의 주인공이 얼마나 많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된 거는 우주보다 가치가 크다.' 그게 지금 우리가 이해 안 되는 게 아니라 가치가 우주보다 크니까 우주의 억억억억만 배도 더 큽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됐다 고 하면.
이래서. 우리가 첫째는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에 문서 계시 해 놓은 이 계시를 알아야 되겠고, 또 이 문서 계시와 자연계시를 아는 대로 종합을 해서 문서 계시를 자연계시에서 연구하고, 자연계시를 문서 계시에서 연구해서 이 둘이 연결될 때에 그때에 정락하게 문서 계시는 문서 계시대로 우리가 알고 자연계시는 자연계시대로 알아서. 자연계시와 문서 계시가 다 조화가 맞을 때에, 조화가 맞을 때에 문서 계시가 무한히 큼을 알게 되고 이 자연계시는 참 이것은 아주 몽학선생이요 이것은 극히 작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극히 작은 것이나 예수 없는 나를 비교해 볼 때에 이 지구는 지극히 크고 한국은 지극히 크고 부산은 지극히 큽니다. 나 같은 것이 뭐 얼마나, 몇 천만 명이 죽어 묻혀도 아무 표도 없다 그 말이오. 이 바다에 암만 빠져 봐도, 빠져 죽으면, 만 명이 빠져 죽는다고 무슨 표나 있을 줄 압니까? 아무 표도 없는 것. 아주 지극히 작은 존재. 이 자연계시로 돌아가서 하나님 없이 가면 지극히 작은 것인데, 특별계시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고 의지함으로 볼 때에는 지극히 큰 것이 돼.
이래서, 첫째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가 문서적으로 알아야 되겠고 알아야 되겠고. 알고, 알고 난 다음에 인정하는 것. 인정하는 데에서 사람은 확 커지는 것입니다. 인정하는 데에서 피조물은 다 점령할 수가 있고 다 통치할 수가 있는 자가 됩니다. 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인정하고 난 다음에 그분에게 복종하는 것. 인정하고 복종하니까 인정하고 복종하는 데에 어떤 결과가 이루어지느냐? 하나님을 인정하니,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인정하니 내가 그분에게 복종할 소원이 되고, 복종하니, 하나님에게 복종하니까 전지에 복종하니 내가 전지자가 되고 전능에 복종하니 전능자가 되고 이런데 '그게 그렇게 될까?' 이라는데 우리가 나를 보면 너무 작고 하나님의 계약 보면 커니까 '이게 되겠나?' 이러지만 우리가 이 성경 말씀을 보고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것도 없으니까 당신이 해야 되지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에게 기도할 때에 당신이 내 마음에 와 가지고 역사하는 걸 우리가 체험합니다. 우리 마음에 와 가지고 우리 마음을 밝게 하시고, 우리 마음에 잘못된 것을 수정하시고, 우리에게 또 용기를 주시고 포부를 주시고, 우리를 넓히고 크게 하시고 또 우리가 기도한 것을 당신이 들어서 표적으로 또 들어 가지고 이루어 주시는 것을 우리가 본다 그 말이오.
이래서, 하나님은 무한히 크신 분이시며, 무한히 크신 분이시면서 하나님은 무한히 작은 분이십니다. 무한히 크신 분이시면서 무한히 작은 분이 시라.
무한히 이 큰 것만을 역사하는 분이시면서 무한히 세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보다 작은 것이 없고 하나님보다 큰 이가 없습니다. 하나님 보다 큰 것이 없고 하나님보다 작은 것이 없어. 암만 작아도 그 속에 보니까 하나님은 또 거기 계셔요. 아무리 작아도 하나님은 그 안에 계시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작은 게 없고 하나님보다 크신 분이 없어. 이래서, 하나님이 이걸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신구약 성경 말씀을 우리가 보고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당신이 원하십니다. 인정하는 것을 원해서 인정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사람되어 오셨고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을 하셨고, 또 부활까지 하셨고. 성령과 진리가 와서 뒷받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에 있는 이 말씀을, 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인정 하는 것을 당신이 원하시고, 인정하고 복종하는 것을 당신이 이렇게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인정하고 복종하는 것.
인정하고 복종하는데, 잘못 인정하고 잘못 복종해서 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이루어지면 영원히 멸망이지 다시 회복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인정하고 복종할 때에 하나님이, 이 지극히 크심의 모든 것이 그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시지를 못하는 것 있는 것은, 우리가 인정도 할 수 있고 복종도 할 수 있으면서 그 속에 완전자이신 그분으로 근거를 삼아 가지고 그분으로 종자를 삼아 가지고, 그분으로 시발을 삼아 가지고 그분으로 인하여서 인정하고 복종하면 이제 그 모든 것이 이래 커 나갈 수 있는데 악마의 마귀가 미혹을 줘 가지고 그분으로 말미암지 안하고 자기라는 자기 주관, 자기라는 그 자기를 근거를 삼아 가지고, 자기를 종자를 삼아 가지고, 자기가 근거되어서 인정하고 복종할 때에 그것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면, 이루어 주시면 그것이 사탄보다 큰 것이 되고, 마귀보다 마귀 대장 사탄보다도 더 큰 것이 되어질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왜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믿어도 안 되느냐? 안 된다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안됩니다. 안 되는 것은 왜 그러냐? 그 근거가, 그 종자가, 시발이 무엇이 중심이냐? 무엇으로 인해서 인정하며 무엇으로 인해 무엇을 위해서 복종하느냐 하는 그것이 자존자 완전자가 아닌 불완전한 그것을 근거로 삼고 종자로 삼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말씀은 방편인데. 걸음 걷는 방편인데, 이 걸음 걷는 방편. 외나 동기와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이 방편을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수가 없는고로 들어 주시지 못합니다.
우리가 동기와 목적 근거가 하나님이시요 목적이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우리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돌아가서,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되어지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통치할 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신구약 성경에 기록한 것을 인정하고 복종하는 것이 중요한 데 인정하고 복종해도 왜 안 되느냐? 인정하고 복종하면 이거는 피조물 이면서 하나님같이 되어지고 피조물이면서 모든 피조물을 다 유업으로 점령할 수 있는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할 수 있는데, 인정하고 복종하는데 안 되는 것은 뿌리가 잘못됐기 때문에 이제 인정하고 복종하는 그걸 하나님이 들어 주면 잘못된 뿌리가 생겨져 가지고 하나님이 둘이 될 거라 말이오. 하나님이 둘이면 됩니까? 이러니까, 근본이 만물보다 거짓된 원죄와 본죄를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근거로 삼으니까 원죄가, 원죄가 이제 모든 주권을 가지게 될 거고 본죄가 주권을 가지게 된다면 어찌 됩니까? 여기서 착오가 생겨지는 것이니까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이 도는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이 말씀에 기록한 것을 인정하고 복종해 보십시오. 복종 해 보십시오. 우리는 복종하면 큰 일이 생겨집니다. 복종해서 생겨질 때에 우리는 크다 작다 하는 것을 뭘 크다 작다 하느냐 하면 없어질 것들은 없어질 것들만 눈에 보이고 없어질 것만 보기 때문에 없어질 것들이 생겨 지면 크다 이렇게 생각하고 없어지지 아니할 것들이 생겨지면 이것은 크다 고 생각지를 아니합니다.
이러니까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서 안 죽고 살아 나온 것은 크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다니엘은 사자 구덩이에 죽음이 되나 죽음이라는 그걸 조금도 두려워하지 안하고 죽지 않는다는 그 확신을 가지고 염려 없이, 사자에게 안 먹혀 죽는다는 말이 아니고, 이제 그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하는 그 생명을 자기 생명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는 그런 것을 자기 생명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그 생명이 하나의 자기의 소유물로서 그것을 패물로 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이용물이 되어지는 걸 원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육의 생명을 순교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다니엘에게, 다니엘에게 영원한 생명을 그가 믿는 그 믿음이 그에게 생겨졌다. 하나님이, 절대자 그분 이 지극히 크시기 때문에 그분에게 복종하는 데에는 실패가 없고 죽음이 없고 손해가 없다 하는 그것을 믿는 믿음을 다니엘 속에서 조성해 준 이것이 크다 하는 것은 사람들이 느끼지를 못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계약한 것을 인정하고 복종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 다 없어지지 안할 것으로 이루어지는 그것을 사람들이 무시하기 때문에 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지 그것을 인정하면 그것은 다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루어지고 있는데, 없어질 것으로 이루어지지 안하면 이거 우리는 무시한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득이 해서 이번에도 표적을 백 팔십 가지나 표적을 나타낸 것은, 그 표적 나타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표적 나타내 봤자 그거는 이제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계약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지 그것 가지고 아무 소용 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부득이 해서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표적은 믿음 없는 자를 위해서 있는 것이지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필요 없고 예언이 필요 있다.' 말했습니다. '예언이 필요 있다' 그 말은 하나님의 그 뜻은 실상인데 하나님의 뜻을 인간에게 나타냈을 때에 그 뜻을 참이라 인정하고 쥐면 되는데. 참이라 인정 하고 취하면 돼. 이거는 취하는데 뭐 힘도 드는 것도 아니고 자본 드는 것도 아니고, 인정하고. 인정하면 인정으로 되는 것이 얼마나 많고, 인정 하고, 인정으로 되는 거 있고, 인정으로 되는 것 있고 인정으로 되는 껍데기에 복종으로 되는 것이 그 속에 껍데기로 있고, 또 복종으로 되는 그 껍데기에 모든 표적으로 되는 그런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여기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가 믿을때 일이 됩니다. 믿을 때. 우리는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당신의 소원이 그것이오.
도성인신하신 소원이 그것이오. 당신의 소원이 왜 그거냐? 그것이라야 일을 춰.
일을 추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해야 하나님을 환영하지 인정하지. 안하면 하나님을 환영 안 하는 것이오.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을 환영하는 것이고, 참되다 인정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당신을 따라서 움직이면 돼 버려. 움직이면 전지전능이요, 완전이요. 완성이라. 이런데, 요것이 우리에게 원죄와 본죄, 이 부패성으로 인해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자꾸 연습해 가지고 또 믿음을 연습하고 '아!' 믿음을 요거 해 보니까 '예, 믿습니다. 믿습니다.' 자꾸 이렇게 우리가 믿음을 기르고, 자꾸 이렇게 믿음을 길러서 인정을 기르고 복종을 길러 가지고 하나 둘 해서 체험하고, 하나 인정해 보니까 '과연,' 하나 복종해 보니까 '과연,' 이렇게 믿음으로 체험과 경험의 지식 이것이 차차차 자라가 가지고 이제는 뭐, 다른 사람들은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능자 품안에 있으면서도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이라니까 벌벌 떨고 또 이런 환경이 그라는데, 자꾸 이것이 믿음이 없는 증거라 말이오, 믿음이 없는 증거. 당신을 믿으면 능력이 오는데 믿지 안하면 능력이 오지 못해. 인정치 안할 때에는 당신이 일을 해 주실 수가 없다 말이오.
인정치 안할 때 일을 해 주실 수가 없지, 당신을 인정하고. 인정하고 전능의 보호를 인정 하고. 그 다음에는 인정하고 행하는 게 뭐이냐? 그 전능의 보호를 인정하니까 두렵지 안하고, 두렵지 안하고 떨리지 안하고 즐겁고 기쁘고 평안한 그것이 복종이라 그 말이오. 복종인데, 이게 없이는 당신이 일을 하실 수가 없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을 제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을 기르는 일을 힘을 써야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참 믿음이 없습니다. 어쩌든지 믿음을 가지도록,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당신의 모든 계약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고 이 각도로 말하고 저 각도로 말하고, 이런 걸로 말하고 이래 말하는 것이 한 말로 말하면 당신이 신구약 성경에, 계약에 선포해 놓은 것 이것을 인정하라 말이오.
당신이 어떠함을, 당신의 존재와 당신의 뜻과 당신의 목적 이것을 인정하게 하려는 것이요, 또 당신과 계약한 것을 인정하게 하려는 것이요, 당신의 교훈을 인정하게 하려는 것이요, 인정하고 그대로 살면 다입니다.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