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길

 

1984. 12. 20. 새벽

 

본문 : 마태복음 6장 34절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19절로부터 34절까지에 여러 가지를 말씀했는데 다섯 가지로 나눌라 면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고 그보다도 더 많이 또 나눌라면 나눌 수 있도록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여게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은, 꼭 양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시고 하나님이 해 주시는 그 방편이 하나 있고, 또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하고 또 자기 힘으로 할려는 그 한 편이 있고 중간은 없읍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중으로 하는 거, 이리도 치우치지 안하고 저리도 치우치지  않겠다. 나는 이것도 저것도 반씩 갈라 가지고 그렇게 하고 양극을 하지 않겠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개인도 있고 단체도 있고 그런 교리도 있고 그런 신학들도  있고 있읍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한 말로 말해서 합리주의자들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합리 주의자들. 자기네들 이치에 맞도록 하지 하나님을 따라서 하지  많는 그 사람들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여게뿐 아니고 모든 성경을 보면 거게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나님의 지도를 받아서 하는 길도 있고 또 사람이 주장 하는 그런 길도  있고 두 길이 있읍니다. 있는데. 안 믿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 길로만  갑니다. 믿는 사람 가운데는 하나님이 지도하는 길로만 가야 될 터인데 그렇지  않고 하나님이 지도하는 길과 사람이 또 주장하는 그 길을 반반을 섞어서 고  가운데를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하나님이 지도하시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하나님이 지도하시는 그것도 행하고 또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것도  행하고 이렇게 둘을 다 행 하면서 그것이 가장 슬기로운 일이라 그렇게 자기  딴에는 생각하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 성경에는 하나님의 지도를 따라서 살면  하나님 지도 따라서 살고 또 인간의 주장에 따라 살면 인간의 주장을 따라 살지  이거와 저거와 둘을 합해서 그 중간을 취해서 걸어가는 그런 것은 없다.

이것이면 이것이고 저것이면 저것이라 하는 그런 것을 여계도 밝혀 놨습니다.

 하나님이 지도하는 그 지도와 사람들이 주장해서 사는 생활과 그 둘 사이에, 그  둘 사이에 끼어 았는 그것이 아주 면도칼보다도 그것이 좁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요 길과 또 사람들이 인도하는 자기 주장이라든지 어떤  사람들이라든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사회나 국가나 어떤 세상 지식들이,  통계들이 주장하는 그대로의 가는 그 길과 요 두 길이 있는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있고 사람들이 주장하는 길이 았고 요 두 길이 있는데, 요 두  길이 요렇게 있으면 요 두 길 사이에 여게 무엇이 좀 비어 있어서 요리도 갈 수  있는 줄로 알고 있지마는서도 가지 못합니다. 요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과 사람이  인도하는고 길 고 길 사이가 없습니다. 고 두 길 사이가 아주 손바닥만치도  없습니다. 고 두 길 사이가 실락끈만치도 없습니다. 고 두 길 사이는 없습니다.

요 두 길은 마치 요 오른손과 왼손을 이래 탁 요래 붙여 놓은 거와 같습니다.

요래 딱 붙여 놓은 거와 같기 때문에 붙어 있으니까 요거는 오른손 요거는  왼손이지마는서도고 사이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 붙어 가지고 있으니까 고  사이는 없습니다. 없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인도의 길과 사람이  주장하는 길과 그 두 길은 이길 반 이 길 반 그 사이에 무슨 사이가 있는 줄  알지마는 사이가 없습니다. 이거 아니면 이거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고 사이에  중간에 있다는 그런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신 말씀은 모두가 다 보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대적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환영하는 자요 환영하지 않는 자는 대적하는 자라.' 그러면,  주님을 자기는 대적도 안 하고 환영도 안 하고 중간을 그렇게 걸을 줄로 알고  있지마는서도 주님을 대접하지 않는 자는 주님을 대적하는 자요 주님을 대적하지  안하는 자는 곧 주님을 환영 하고 대접하는 자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중간은 없다는 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요 저것이 아니면 이것이지 이것과 저것과 그렇게 섞어 가지고. 반반  섞어서 중간에 그렇게 살면 그것이 아주 지혜있는 처세술로 생각하지마는서도  저는 잘못 생각했습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제딴에는 이 주인도 좀 섬기고 저 주인도  좀 섬겨서 아주 능하게 처세를 한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두 주인은 섬기지 못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해서 섬기지는  못한다. 제딴에는 하나님도 섬기고 재산도 생각하고 그 둘 다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걸어가는 것같이 생각하지마는서도 하나님 섬기는 것이 되든지 재물  섬기는 일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이지 이것 반 저것 반 되는 그런 일은 전혀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여게서 구별을 해 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 생활에서 어떤 면의 생활이든지 우리 생활은 둘이니까,  하나님이 지도하는 길이 있고 또 사람 생각대로 하는 길이 있고 두 길이 있으니  하나님의 지도하시는 그 길을 자기가 걸어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주장하는  그 길을 걸어가든지 둘 중에 하나이지. 자기는 사람이 주장하는 일도 걸어가면서  하나님 주장하는 길도 걸어가고 이렇게 두 길을 다 같이 걸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오산이지 그런 것은 걸대 없는 것이니까. 이게 아니면 저것이요  저게 아니면 이것이지 둘은 걷지를 못한다고 여게 말씀을 하시는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합시다. 언제든지 우리가 모든 것을 찾고 생각하고 취할 때에 좌면  좌, 우면 우지 좌도 우도 아닌 중간이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인간 자기  생각이지 하나님은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안했습니다.

 그런고로, 범사에 두 길이 있다. 하나님의 인도의 길.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의 길이 있고 사람이 자기 지혜와 생각대로 하는 그  길이 있고 두 길뿐이다. 두 길 외에는 없다. 사람들은 생각할 때에, 마귀란 놈이  미혹 주기를 '요 길은 요 길하고 합한 것이요 요 길은 요 길하고 합한 것이요 요  길도 있고 요 길도 있고 요 길도 있고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 그것이 마귀의 유혹입니다. 그러기에, 쪽발로만 걸어가라 했습니다. 이게  아니면 저거고 저게 아니면 이거다 고렇게만 모든 것을 판별하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중간은 없는 거, 이것 아니면 저것 저것 아니면 이거라는 중간은  없다는 요것을 우리가 어데서든지 기억하고 모든 것에 사고할 때에 생각하고 또  연구하고 찾을 때에 우리는 요 길 아니면 저 길이다 그것을 언제든지 우리가  기존 지식의 방편으로 삼고 길을 택해야 됩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그러면, 그 두 길뿐인데 두 길 중에 하나님이 해  주시는 길이 있고 사람들이 제 힘으로 하는 길이 있고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해 주시는 길을 택하든지 제가 제 힘으로 하는 길을 택하든지 두  길뿐이지, 이 길은 하나님도 해 주시는 하나님의 도움도 받고 또 제가 제  힘으로도 하고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가는 길이 있는데. 두 길뿐이지,  하나님이 해 주시는 그 길을 택해서 하나님이 해 주심을 받든지 또 제가 제  힘으로 제 지혜로 하는 그 길을 택해서 제 힘으로 하든지 둘 중에 하나이지  그것을 이것 저것 합해 가지고 가는 고런 걸음은 가지를 못합니다. 그런 길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크게 말하면 요한 웨슬레파가 있는데 요한 웨슬레파는 여기  감리교입니다. 감리교 근본인데, 요한 웨슬레파는 '하나님과 사람이 둘이 합해  가지고 일을 해 나간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 하는 것이 요한  웨슬레파입니다. 그것이 알미니안주의입니다. 그러고 또 하나는 루터파라고  있는데 루터파는 그것은 '하나님이 전적 해 주시는데 사람이 반대하지만 안하면  된다.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을 받기만 받으면 된다' 하는 그 주장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 루터파입니다. 칼빈주의파는 '하나님이 전적 해 주신다. 사람이  보기에는 사람이 하는 일도 있는 것 같지마는서도 하나님이 전적으로 구원을  주시는 구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인간이 아무리 반대해도  반대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당신이 주권적으로 구원을 예를 들면은 한 닢 푼치를  주실라고 하시면 그 사람은 한 닢 푼치를 받아야 하고 또 하나님이 주시지  안하시면 그는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많이 있으면 많이 가지고 전적 하나님의  주권에 매였다. 하나님 혼자 그 구원을 결정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요렇게 믿는 것이 칼빈주의입니다.

 우리는 그 칼빈주의를 믿습니다. 칼빈주의를 믿는다고 하는 가운데에서도 따져  들어가고 보면은 칼빈주의가 아니고 루터파주의도 많고 요한 웨슬레주의도  많습니다. 그래도 그런 것이 다 큰 교파를 이루어 나가고 하기는 하지마는서도  앞으로 우리가 가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설 때에는 다 그것이 그대로 혼합된  것은 하나도 없고 똑똑히 구별해 가지 둘로만 구별됩니다. 하나님이 해 주신  것만 그것만 하늘나라 들어가지, 사람이 한 것은, 완전치 못한 자가 완전한 것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사람 보기에만 사람이 하는 거 같고  시작만 사람이 하는 거 같지 궁극적으로 사람이 하는 거 같은 그걸로 시작해  가지고 완전히 시작될 그때는 벌써 사람의 힘은 다 끝이 나고. 충성을 해서 다  끝났고 하나님이 충성을 보시고 그 다음부터 하나님이 인계를 받아 가지고  하시는 거게서 부터 시작되어서 이루어 나가는 그것이 영원히 타지 않고 심판을  통해서 하늘나라에 가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불로 연단한다 그렇게. 금을 불로 연단하는 것처럼 연단하는데  금을 불로 연단하는 거보다도 더 연단을 해서 깨끗하게 연단 한다 하는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고 하니. 우리 신앙생활에 사람의 힘으로 한 것과 사람의 주장으로  사람의 뜻으로 한 것과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주장으로 하나님의 힘으로 한  것과 이래 섞여 가지고 있는데 사람의 주장과 사람의 힘으로 뜻으로 한 것은 다  그것이 어려움을 당해서 다 없어져 버리고, 없어져 버리고, 잡거는 타는 것 같이  없어져 버리고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한 거 고것만 남도록 된다 고것을  가리켜서 불로 연단한다고 그렇게 비유했습니다. 그러기에 인본주의는 다 불타  버립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만 남아 있습니다.

 과거에 왜정 말년에 하나님께서 사십여 년을. 근 사십 년을 교회를 하나님이  길러 놓으시고 교회에 하나님이 지도하시고 인도를 하시고 교훈 하시고 또  약속을 가르치시고 이래 놓고, 삼십 육 년 동안을 가르쳐 놓으시고 난 다음에  왜정 말년에 한국 교회와 일본 교회를 연단을 했습니다. 연단할 때 그때는 뭘로  연단했느냐? 신사 참배라 하는 걸 가지고서 연단을 하니까 그 신사 참배라는 그  뜨거운 연단에 타지 아니하고 남은 사람은 얼마 남지를 안했습니다.

 그때 신사 참배를 안 한 사람은 타지 안한 사람들이요 신사 참배를 안 할라고  하니까 어려움이 있고 괴로움이 있으니까 고만 일본 그 정권을 벗어나서  소련으로 망명한 사람 또 저 중국으로 망명간 사람 또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  이렇게 그런 신사 참배 문제가 없는 나라로 피해서 간 사람들을 가리켜서 망명한  신앙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망명한 신앙이라. 그 사람들은 신사 참배는 안  했지마는서도 싸워서 이긴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그 연단 받아야 될  때에 연단을 받지 안하고 연단을 피해서 연단 없는 곳으로 가 가지고서 그  시기를 지냈기 때문에 귀한 연단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러니까, 자기는  연단받는 그자 자리를 피하지 안하고 있었더라면 자기는 연단해서 '나는 신앙이  없었다 나는 신앙이 없다' 하는 것이 자기가 알기에 판명이 났을 것이고 다른  사람도, 알기에 판명이 났을 것이니까 자기도 자기를 거짓부리로 과장해서  자랑하지 못했을 것이요 또 다른 사람도 그렇게 지나치게 과대 평가한 그런  인정이 돼 가지고 공연히 자기를 이래 추켜 올리는 그런 일이 없었을 터인데.

망명을 인해서 자기는 질 사람인지 이길 사람인지 그것이 판단도 없이 자기는  지지 안한 사람이라 이렇게 돼 버리기 때문에 그게 차지 않는 사람이라,  더웁지도 않고 차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그럴 때에 뭣만 남느냐? 인본주의는 다 없어지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거.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이루어진 거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지 안 해 주시면 안 된다는 것.

 이렇게 하나님이 해 주시는 그 길을 택해 가지고서 그 길을 간 사람 그 길을 간  사람은 어떤 사람이 그 길을 갔는가? 그 길을 간 사람은 강하고 담대한 사람은  그 길을 간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길은 자기는 부족한 줄 알고.

자기는 겁쟁이인 줄 알고, 자기는 모자라는 줄 알고, 자기는 의지가 약한 줄  알고,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안 됩니다.' 하는 하나님이 해 주시는 그 길을  택해서 걸으면서 하나님이 해 주시기를 바라는 그 사람이니까 못난 사람이요  약한 사람이요 겁쟁이요 무지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나중에 가서 보니까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 많았고  자기 의지가 굳고 자기를 믿고 의지하고 자기는 잘났고 강하고 담대하고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평소에는 잘했는데. 노아  홍수 때에 인간의 준비가 다 깨질 수 있도록 시험한 것이 홍수 시험인데, 홍수  시험에는 과학도 소용이 없었고 부자도 소용이 없고 정권도 소용 없던 거와  마찬가지로 신사 참배도 내나 그와 꼭 같은 것입니다. 그래 가자고서 다른 거 뭣  가지고는 할 수 없도록 자기는 두 말 할 것 없이 생명을 내놔야만 되는 그런  어려운 시험이니까 그 앞에서는 다 꺼꾸러지고 말았습니다. 꺼꾸러지고  말았지마는서도 고 하나님으로 된 사람들은 그 신사 참배 때에 그 사람들은.

 그런 사람 있습니다. 거게서 서로 신사 참배를 해라 안 할란다 해라 안 할란다  이렇게 시비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 그 정권 아래에 있지마는서도 아예  하나님이 '그 사람들은 건들지도 말아라 그 사람들은 벌써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사람들이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려고 하기 때문에 평소에 힘써 시험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다.' 예수 믿는 일에 대해서 평소에 시험을 많이 받아서 평소에  죽인다 살린다 예수 못 믿구로, 믿으면 죽인다, 뭐 매도 많이 맞았고 여러  가지로 박해도 많이 당했고 또 손해도 물질 손해도 많이 봤고 이렇게 평소에  여러 가지로 시험을 당해서 어려움을 당한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때에 그런 신사  참배 문제가 근방에 오지도 안했습니다. 근방에 오지도 안했어.

 제가 개명 교회 있을 때 그때 그 면내에 교회가 넷입니다. 교회가 넷 인데, 셋  교회는 그런 연단을 받았고. 받아서 다 전부 굴했습니다. 하나씩 주재소에  잡아다 놓고. 주재소가 요새로 말하면 지서인데 잠아다 놓고 거게다가 항복을  해서 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한 교회는 교인들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그런 어려움의 시험을 당하지도 안했습니다. 당하지도 안한 사람인데, 그  사람들은 또 어떤 사람들이냐? 대개 보면은 뭐 어려움 당하면 그 기회에 주를  위해서 죽는 것이 영광이라 이래 가지고서 순교당하기를 원하고, 원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근방에 가지도 안했습니다. 나는 그때에 신앙 지도를 하고  있기는 있는 사람이지마는서도 그 사람들 신앙만치 박해를 당한 일이  없었습니다. 박해를 당하지 안했었습니다. 안한, 박해 안 당한 내게 대해서는  시험이 있었지마는서도 그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시험이 없었어요. 하나님은  세밀하게 아십니다.

 제가 그때에 그게 참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신사 참배를 이기고 난 다음에 이제  해방이 됐는데. 해방이 되고 나서 6·25가 났습니다. 6·25가 나고 나서 산에  있는 공산주의. 숨어 있는 공산주의자들을 가리켜서 공비라 이렇게 말하는데 그  공비를 토벌하기 위해서 토벌하는 군대를 작성 했는데 그 군대들이 이름이  토벌대라 이랬습니다. 토벌대. 공비를 다 쳐서 없애 주는 토벌대라 이래  가지고서 그때에 뭐 방위대니 뭣이니 이런 거 다 모두, 지금 방위대는 그때는  토벌대인데 토벌대를 작성해 가지고 그 무리들이 아주 군의 거의 전부라고 할  만치 그렇게 돼 있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고저면에 와 가지고서, 위에서 지령을 내리기를 고저며에  가면은 처음에 6·25때는 저를 찾다가 못 찾았습니다. 이름이 틀려 못 찾았는데  그 후에는 해방 후에는 찾아 가지고서, 해방 직후에는 절 주목을 하고 이랬다가,  주목한 것은 그때 인민 공화국 기성식을 할라고 했는데. 거창 군내의 다른 면은  기성식이 다 됐습니다. 다 됐는데 고저면만은 못 했습니다. 그때에 인민  공화국이라 하는 그것이 사람들은 다 공산주의인 줄 모르고, 그때 공산주의가 또  뭐인지도 모르고 이랬지마는 공산주의 그거는 무신론주의이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제가 그때 반대를 해 가지고 그 사람들이 기성식 할라 하는 것을 반대를  하니까 그 면내에서 그때에는 제 말이라면 다 들었고 '저 사람 가는 길이 옳은  길이다' 이렇게 제 눈치만 보고 있기 때문에 제가 반대하니까 아무도 따르지를  안했습니다. 그러니까 기성식을 할라고 온 책임자가 저 한테 총을 겨누면서  '이놈. 널 쏘아 죽이겠다. 이래도 허락지 안하겠느냐? 반대하겠느냐' 이러기  때문에 그래 내가 말하기를 '쏘아 죽이는 것은 자기 자유고 나는 우리 민족을  인민 공화국에게 붙일 수는 없다' 그렇게 제가 반대를 말했습니다. 이라니까  나중에 총을 놓고서, 그때는 벌써 그때는 총을 쏘는 그런 일은 할 수 없는  때이기 때문에 총을 놓고서 '이놈 언제든지 보자' 이렇게 하고서 그만 그날  기성식을 못 하고 떠나 버렸습니다.

 그때 제가 물론 지방 사람들도 그때 알기는 알았지마는서도 왜 모든 사람들이  저를 똑똑히 알고 있느냐 하면 해방된지 삼 일 만에 그때에 모두 모아서 해방  기념 축하를 했습니다. 그 전국이. 해방이 십 오일날 했는데 십 칠일. 십 칠일날  축하는데 그때에 축하할 때에 연설을, 그야말로 말하면 연설이오. 연설을. '이  연설을 아무래도 아무것이가 해야 되지' 다른 사람 할 사람이 없으니까 연설을  저더러 하라고 이래서 그래 제가 그때에 아무래도 필요하다 해서 연설을 제가  했습니다.

 할 때에, 한 것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이 이렇게 해방을 시켜 주셨고 또  해방시켜 주시는 데에 이바지 하면서 수고한 사람들은 국내에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 제일 이바지를 했고 그 다음에는 해외 가 가지고서 독립 운동을 힘쓴  그런 사람들이 힘을 써서 이렇게 했는데. 우리는 다 일본 사람들의 종이 돼  가지고 그 사람들 하라 하는 대로 이렇게 하면서 참 우리가 다 정조 판 창기와  같은 이런 생활을 한 사람들인데. 이라다가 하나님이 해방 줬으면 감사하고  기뻐해야 되지, 해방됐으니까 왜정 말년 때에 모든 정권을 잡고 있는 정권에  속한 사람들이 백성들에게 대해서 많은 탄압을 하고 박해를 했습니다. 뭐 공출  내라 간솔가지 따 가지고 오너라 이렇게 해서 안 한다고 두드리기도 하고  이랬으니까 그런 감정을 가지고 해방됐으니까 '저놈은 친일파니까 그저 다  저거는 밟아 죽이자. 두드려 죽이자' 이래 가지고서 그런 날이 날 것같이 생각이  돼져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해방을 축하하는게 아니고 반대하는 우리  반민족자다. 그거는 애국자가 아니고 민족자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용납지를 못한다' 이것을 제가 강하게 강조했습니다. 강조하니까 그때에 다른  면에서는 뭐 백성들이 일어나 가지고서 그 모든 면회니 군회니 경찰서니 왜정  때에 관리로 있던 사람들은 다 두드려 죽여서 죽인 사람 죽음을 받을 사람들도  많았고 모두 다 맞기는 다 맞았고 이랬는데 고저면에는 그런 일이 한 건도  없었습니다.

 그때에 그라고 나니까 그 다음에 건국 위원회가 나는데 건국 위원회의 회장은  아무것이 밖에는 할 사람이 없다고 저를 해야 된다고서 모든 사람들이 하는 것을  나는 할 자격도 없을 뿐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은 또 그 일이 아니니까. 나는  친미파가 아니고 나는 하나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일 할 수가 없다고 이래  가지고서 반대를 해서 그것을 안 하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그러니까, 그라고 나니까 6·25가 났는데 6·25때에 거게서 지령이  내리기를 '거게 백 영희라는 놈이 있는데 그놈이 우리를 기성식 할 때에도  반대를 하고 했으니까 그것을 어짜든지 너거가 잡아 죽이고 오너라' 하는 그런  명령이 위에서 내렸습니다. 그 다음에 인제 조사를 하니까 내렸는데, 그래서  공산주의자가 열 다섯 명이 그 토벌대 수십 명 오는 가운데, 그때 수십 명인지  수백 명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는 가운데에 공산주의 열 다섯 명이 가장을 해  가지고 거게 토벌대라고 끼어 가지고 왔었습니다.

 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데 그 사람들은 유별히 제게 대해서 어떻게 끈을  잡을라고 애를 쓰고 이렇게 하다가 어떤 교인 하나를 이렇게 이용해 가지고서  예배보는 것을 반대를 이렇게 했습니다. 반대를 해서 반대할 때에 반대하는  것을, 자꾸 설교하는데 방해하니까 못 들어오게 막아라 이랬습니다. 막아라  이랬는데, 못 들어 오구로 이래 막으니까 고만 자기가 뒤로 덜컥 자빠지면서  그만 '이놈들이 밀어서 나를 쳤다' 이래 가지고 그만 아프다고 이래 가지고 그때  뭐 진단을 내기를 그때는 진단 내 준 의사가 그 지방의 한지 의사라고 그 지방에  있는 의사인데 한의사로서 한지 의사의 면허를 가지고서 거기서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진단을 내 줬는데 그 사람이 비밀 공산주의였었습니다.

빨갱이였었습니다. 하나님이 고렇게 잘 만들어서  그 사람이 그래 가지고서 이제. 그래 가지고 교회서 사람을 때렸다 이래 갖다  놓고, 거게 갖다 놓고 자기네들이 이제 우리를 울굽니다. 우리에게 울구는 그런  일을 하면서 나를 잡아내려 가지고서 그때 두드리는 데, 왜정 말년 때는 맞지도  안하고 그렇게 보호를 했지마는서도 그때는 내가 뭐 그래 달라들어도 못  이겼을지 몰라요. 이랬는데. 그때에 그 사람들이 몽둥이를 가지고서, 이만한 큰  몽둥이를 가지고서 어쨌든지 두드리니까 몽둥이가 다 부러졌어요. 부러지니까,  또 하나 부러지고 또 하나 부러지고 세개가 부러졌는데, 그라니까 그 사람들은  다 모두 '저거는 다 이제 완전히 죽어서 저거는 이랬다'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때 이상하게도 나는 맞아도 아픈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프지를 하나도 안  했는데 그래 다 '맞았으니까 죽었을 거다' 이래 생각했는데. 거기서 다 때릴 거  다 때리고 난 다음에 이 사람들이 이제 몽둥이를 다 놓으니까 그때 내가 그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이상하게도  일어서 가지고 가기를 어디로 갔느냐 하면은 그때 지서로 갔습니다. 지서에 가  가지고서 지서에 그때 책임자로 있는 사람에게 '이거 토벌대라는 것이 이게  공산주의이가 이거 토벌대가 뭐꼬? 너희들이 어떻게 이렇게 무죄한 사람을  이렇게 박해를 할 수 있느냐?' 지금 내가 전화를 이 토벌대 본부로 전화를  하겠다고 하니까 그만 그 사람들이 마구 빌면서 뭐 죽자 살자 하고 전화를 못  하구로' 이라면서 어찌 됐든가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우리가 그놈들 몰라  그랬다고서 이렇게 말을 하면서 그래 쌓아서 또 내가 그때 생각하기를 뭘  생각했느냐 하면은 그저 '하나님이 원수 갚는 건 하나님께 있다 했으니까 내가  갚는 거는 틀렸다. 하나님이 갚구로 내버려 두자' 그만 그라고 말리고 하기  때문에 말고 갔습니다.

 제가 개명교회 집으로 올라가니까 교인들은 벌써 죽었다고 소문이 나고 뮈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데, 그때에 제가 올라가니까 모두 기뻐하고 하나도 상하지  안했다고 이렇게 하고, 그 뒤에 그 사람들이 그때는 죽이지 못한 걸 알고 어떻게  어떤 기회라도 그만 총살해서 죽일라고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고, 그 안에 있는 토벌대 중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하고  해서, 어디서 죽을란지 암살당할 터이니까 함부래 피하는게 좋다 그래서 그때 그  사람들이 꼭 그걸 도모하고 갔기 때문에 내가 거게 있다는 것은 그것은 필요  없는 일이니까 그러면 내가 거게서 다른 데로 가야 되겠다 하고서 다른 면으로  갔습니다. 다른 면으로 가되 거창 군내에 있는 이 교회가 가지고서 부흥회 하고  또 저 교회 가서 부흥회 하고, 한 교회 가서 한 삼 일씩, 삼일씩 부흥회 하면은  그 교회가 크게 막 일어납니다. 이래 가지고 이제 그런 일을 하면서 빙  돌아다녔는데.

 그때 내가 없으니까 내가 없으니까 혹 이놈이 밤에 올지도 모른다 하면서 그  동네에 있는 귀한 나무이지마는서도 장작을 지고 오라 하니까 장작이 뭐 수십  짐이 왔습니다. 수십 짐이 오니까, 나는 그때 집에 없을 때인데 수십 짐이  오니까 그 장작을 가지고서 우리 집 가으로 삥 돌아가면서 장작불을 이렇게 놔서  뭐 온 골짝이 환하게 그렇게 불을 놔 놓고서 그들이 지금 들어오는가 지키고  있습니다. 지키고 있으며.

 왜 어떻게 지키 죽일라 했느냐? 다른 사람에게 가서 묻기를 '그 백 영희가  공산주의지?' 이라면은 거기서 공산주의 아니라 하는 사람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니라 하면. 그 사람들 벌써 정신을 알기 때문에, 공산 주의라 해야 절 안  죽이지 공산주의 아니라 하면은 백 영회 편이라고 죽일 터이니까 그래 뭐  구장한테 가서 물어도, 또 요새로 말하면 구장이고 뭐 그 밑에 무슨 이장 그런  뭐이 되는데 그런 사람들 한테 가 물으면 다 그렇지, 유지에게 물어도 다  그렇지, 그때에 예수 믿는 사람들 외에는 다 공산주의라고 다 대답을 다  했습니다. 무란실에 있는 믿는 사람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 남편은 그때 아주 그  지방에서 유력한 사람인데. 그 사람댁에도 가서 물으니까 다 그 사람이  공산주의라고서 다 이래 대답 했어. 이렇게 가명을 씌워 가지고서 이거는 잡아  죽여야 된다고 지금 공공연으로 다 그렇게 발표해 놓고 이렇게 하고 있는데,  장작불을 그렇게 태워 놓고 이래 놓으니까 그 위협에 다 떨어졌다 말이오.

 그래서 그때에 제 아내는 집에 앉았으면서 다른데 나가지도, 줄자도 못 하게  하고 다른 사람도 출입 못 하게 하고 딱 요래 가지고 이랬는데, 그만 거게  앉아서 마음에 놀래서 기절해 가지고서 그때 만삭해서 낙태를 했습니다. 낙태를  했는데, 그는 어떻게 됐는지 주를 위해서 낙태된 것이니까 그것도 뱃속에서  순교를 한 것이 될란지 그건 모르지만 어쨌든지 멸망을 하지는 안했을 것입니다.

 인제 그렇게 됐는데, 그때에 이제 그 이튿날 낮에는 개명 교회 믿는 교인들  전부 쏵 다 한자리에 모아서 그 너른 마당에다가 전부 덕석을 갖다가 다 덕석  펴라 하니까, 쫙 필 거 아닙니까. 동네 사람들이? 쭉 쭉 명령대로 복종해.

덕석을 펴 놓고 뺑 돌아 앉혀 놓고서. 앉혀 놓고서 그들이 심문을 하는데 그때에  몽둥이로 모두 맞았습니다. ○○○ 목사님도 그때 거게서 몽둥이를 맞았습니다.

몽둥이 맞은 사람과 안 맞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몽둥이 맞은 사람과 안 맞은  사람이 있어. 여게 ○○○씨 왔습시까? ○○○. 손 들어 봐요. 이거 그때는,  그때는 신앙이 좀 살았었는데, 그 사람은 몽둥이로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모두 지나가고 난 다음에 이상타고 합시다. 왜? 몽둥이가 전부 평소  신앙생활 할 때에 주를 위해서 박해 안 당한 사람 신앙으로 말미암아 박해를 안  당한 사람은 전부 몽둥이 다 맞았고 박해당한 사람은, 요 사람은 여게 때리고 또  넘어서, 유월절이 거게 유월절 그때 그들이 깨달았대요. 요 사람은 뭉둥이로  두드려 패고 고 사람 넘어서고 사람 패고 또 두 사람 있으면 두 사람 넘어가고  그때에 주를 위해서 박해당한 사람은 한 사람도 그때에 그 사람들에게 뭐 욕을  얻어 먹거나 매를 맞거나 한 일이 없었답니다. 인제 말하기를 그 사람들은  몽둥이 안 맞은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기를 '순수한 예수를 믿으십시오.' 말도  딱딱 존경을 했지 나쁜 말 한 마디도 안 하고 몽둥이도 안 대고, 거석한  사람들은 이놈 저놈 이년 저년 하면서 몽둥이로 그때 많이 맞았어. 하나님은  그렇게 정확하게 다 아시고 그렇게 모든 것을 보응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때에 구별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박해를 당하지 안한 사람들만 박해를 시켰다 저도 거게서 신사  참배 때문에 그냥 싸우는, 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마음에 참 죽는 생명을 내놔야  싸우고 이렇게 하기는 했지마는, 그도 실상 몽둥이 맞은 일은 없었다 그거요.

없었는데, 몽둥이 맞은 일은 토벌대에게 몽둥이를 맞았습니다. 그렇게 몽둥이  이런 몽둥이가 세 개나 부러지니까 다 모두 '저 사람은 인제 못 쓰게 됐다. 저  사람 완전히 죽었다' 이랬는데, 그때 그렇게 맞아도 하나도 아프지를 안해요,  이상하게도. 하나도 아프지 안해. 아프지 안하니까 병신이고 죽었다 싶었는데  벌떡 일어나 가 가지고 그 사람들에게 항거를 하니까 그 사람들이 떨면서 '이거  부대에 내려가면 안 되겠으니까' 그래 저거가 자복을 하면서 자꾸 만류를 해  쌓아서 제가 원수 갚는게 하나님께 있다 하고서 가 버렸는데  그 소문을 거창읍에 있는 청년들이 그 소문을 들었습니다. 들었는데 그때 거창  지방에 토벌대 대장으로 온 사람이 대구에 있는 ○ 장로라는 그 장로의 아들이  토벌대로 왔는데 그때 그 아들이 와 있으니까 그 장로님이 거창읍에 주남선  목사님 그 교회 다니시면서 자주 거게 놀러오고 이랬었는데, 그 청년들이  말하기를 '이 분개한 일이 있나? 이럴 수가 있나? 그놈들이 다 토벌대가 아니라  공산주의이니까 이거 토벌대 대장에게 말해 가지고 이것을 쏵 처벌을 해야  되겠다' 이렇게 단합을 하고서 척 불러 내렸습니다. 제가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니까 그 청년들이 모여 가지고 '이거 이럴 수가 없으니까. 이 ○ 대장이  총 책임자이니까 이분에게 말해 가지고 저걸 우리가 복수를 하고 분을 풀어야  된다' 이렇게 말하는데, 제가 말하기를 '예, 그걸 제가 허락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말해야 되지 내가 말하지 않으면 할 수 없으니까. '안 됩니다. 원수 갚는  거는 내게 있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그걸 원수를 갚을라 하면은 죄  짓기 쉬우니까. 원수가 된다면 주님이 갚으실 것이고 또 그렇게 나를 두드리고  한 것이 주님이 시키셔서 내게 유익한 것이면 또 내게 유익할 거고 하니까 나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를 하니까 그 청년들이 그때에 막 분발했습니다 '내버려둬라 맞아 뒈지거나  말거나,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이고?' 이라면서 그때 분발한  사람이, 분발한 가운데에 제일 많이 분발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여기 ○○  교회에 자기 부인이 찬양대에 찬양 대원으로 와서 왔었는데, ○○○ 이가 뭐꼬?  ○○○ 인가? 여기 거창 사람 하나도 없나? 참. 그 사람이 그때에 시계방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 때 똑똑한 청년인데 그 주장을 하다가 그라니까  반대를 하고서 내가 그러니까 그만 분하다고 부애가 나서 '내버려둬라. 맞아  뒈지든지 말든지 그렇게 하는 사람을 어떻게 한다 말이고? 설마 하나님이  어짜든지 하겠지.' 이라고 그만 그라고 말았는데, 그 사람이 그 뒤에 신앙생활에  대해서 그럴 터인데, 그 부인이 저 ○○ 교회에 와 가지고 그만 찬양대가 돼서  이리 옮기지를 못했어 그래 종종 오기는 왔었는데 그 사람 처남은 그때 그것을  동참을 하고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 그 처남은 그때 그 사람이 내나  여수에서 갇혔다가 나오고. 청년 여럿이 가다가 예수를 부인치 안해서 그때  감옥소에 들어갔다가 나온 그 사람인데 그 사람이 ○○ 신학교 하면서 꼭 여게  와 가지고 예배를 보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참 절 신앙 지도자로 삼고 이렇게  대했는데 ○○교파에 가 있으니까 ○○교파가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뭐라고  조화를 꾸몄던지 그라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을 그만 다시는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랬는데, 그렇게 했는데 나중에, 거게서 열 다섯 사람이 갔는데 한 사람이  고저 지서에 왔습니다. 지서에 와 가지고서, 자기네들은 열 다섯 사람이 가  가지고서, 자기 일행이 열 다섯 사람인데 열 다섯 사람이 가 가지고 열 네  사람은 다 직사했고 자기 한 사람만 살아났다고 이래 가지고 와 가지고서 보도를  하더라고. 그래서 그때에 저는 뭐 그래 됐는지를 몰랐는데, 그 면회니 지서에  있는 사람들이 '아, 저 영희 맞는 거 보고. 하나님이 어디 있노? 공연히 그라지.

하나님이 있으면 저렇게 그 사람을. 저렇게 열심쟁이가 없는데 그럴리가  있느냐?' 이라다가 열 네 사람이 죽었다 소리를 듣고 '과연 하나님이 계신다'  그렇게 말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소문이 역부러 그 면직원이 올라와  가지고 저 한테 얘기를 해서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믿음을 불로 연단하듯이 하는 그 연단은 뭐이냐?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믿음만 남아 있지 인간의 힘으로 된 거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힘으로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는 한 준비요  방편에 지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힘이 다 끝나면 하나님이 그 다음을 이어 가지고서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있는 것을 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과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있는 걸 다해서 해야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그  다음을 연결시켜 인도해 가지고서 그분이 와 가지고 하시는 그 일이 시작이 되는  것인데, 인간이 다하지 안하고 자기 힘의 반도 들이지 안하고 놀며 슬슬 찌끼나  주님에게 바쳐서 살고 다하지 많은 그 사람은 하나님이 와서 해 주심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안 되는 걸로, 영생하는 데에는 네가 죽도록  충성해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준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것을 언제든지 열쇠이니까 가지고 있습시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있고 사람 주장대로 걸어가는 길이 있다. 요 두 길이 있다.

요렇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쪽발로 걸어가야 생명 속에 들어 간다 레위기 11장에  말씀했는데, 쪽발로 걸어가는 것은 '요러면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느냐 인간의  인도 따르느냐?'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은 신본주의요 인간의  인도를 따르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요 두 길이 있다는 거 요거 생각하고,  또 하나님이 해 주시는 길이 있고 사람이 저거 지능대로 하는 길이 있다.

하나님이 해 주시는 길이 있으니 그거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면은 하나님이  해 주신다. 그러면, 하나님이 해 주시는 그것을 받는 사람은 그것은 다 불타지  안하고 그것은 남아 있는 알곡이 되어지고. 사람이 하는 것은 다 시험에서 불타  버리고. 환난에서 불타 버리고, 환난에서 불이 안 타고 남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심판대 가서 다 가려 버립니다.

 요것을 가리켜서 반석 위에 지은 집은. 창수 나고 바람 불고 이것은 이 세상  환난인데 아무리 환난이 와도 반석 위에 세운 집은 상하지 안하고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더 유명해지고 하지마는서도 모래 위에 지은 접은 다 물이 가니까 다  씻겨 내려가 버려서 그 집이 다 허물어진다. 그러기 때문에,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는 것은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된 것만은 그거는 영원히 남아 있지마는서도 모래라  하는 것은 인간이 지저분하게 이 생각 저 생각 인간의 생각으로 된 거는 다  없어지고 절단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 말했고,  또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은 불타 버린다.' 그것은 다 시험 오면은  하나님이 심사할 때에. 하나님이 심판할 때에, 하나님이 환난 일으킬 때에 다 타  버리는 그런 것은 다 없어져 버리고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은 암만 불이  와도 타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 것으로 비유해서 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지금 시간 다 됐으니까, 자꾸 한 군데 만 연구를  다 해도 다른 걸 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두 갈래 길이 있다, 갈래 길이 있는데 어느 길을 걸어간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느 길을 걸어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요 또 그 다음에는  그러면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을 받을 것이냐 제 힘으로 할 것이냐?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라 말은 자기 실력도 부인하고,  지혜도 부인하고. 사상도 부인하고 비판과 평가도 부인하고 자기 것은 다  부인하고 하나님을 전적 인정하고 따르면서 십자가지고 날 따라라. 아예 네가  있는 네게 있는 모든 것이 다 절단날 요량 하고 따라라 그 말입니다.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하는 것도 그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건 또렷이. 똑똑히 가르쳐 놨는데 인간들이 자기  재주대로 자꾸 이렇게 믿는 것을 막 흩어 놨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이 바른 길을 말해도 듣지를 안합니다. 사람들이 듣지를 안해요. 그 말만  하면 졸고 그만 재미가 없이 여긴다 말이오. 그라고 인본주의 말하면 정신이  바짝 바짝 차려지고  그러면,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 있고 땅에 쌓는 것이 있고 이거 전부 다 두  쪽 아닙니까? 여게 쪽 내리 읽어 보십시오. 전부 두 쪽이 아닌가. 하나님 섬기는  거 있고 재물 섬기는 거 있고. 또 의식주 위해서 전력 기울이는 거 있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전력 기울이는 거. 이거 전부 두 쪼가리라.

그말이오. 두 길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제 한번 예수님을 똑똑히 한번 믿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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