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8 20:00
두 가지가 결정되는 현실
1980. 2. 11. 월새
본문 : 마태복음 5: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이것은 소금 비유인데 어제 오전 오후에 이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본문을 설명한 것이 본문과 바른 설명이 됐는지 안 됐는지 여러분들이 잘 상고해서 바른 설명이라면 곧 성경같이 정확 무오한 것은 아니지마는 곧 성경 말씀입니다.
여기 밟힌다는 말씀이 있는데 밟히는 것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존대지요. 밟히는 것의 반대는 존대 아니요? 맛 잃으면 밟힌다 이랬다 이기요. 맛 잃으면 밟힌다 이랬으니까 맛을 안 잃고 소금의 직분으로 하면 밟히는 것의 반대가 아니겠소? 또 '다만 밖에 버리워' 했는데 여반에 버린다는 것 반대는 뭐 입니까? 하, 그것도 몰라 버리는 것 반대는 환영 아니요. 우리 기독자에게는 모든 것에게 버림을 당하는 길과 모든 것에게 환영을 받을 길이 앞에 있다 말이요.
또 변질되면 쓸데없다고 했으니까 모든 것에 쓸데없다고 했으니까 변질되지 안 하면 어떻다 말입니까? 예? 여반에 쓸데없는 것 반대는 뭐이요? 쓸데없는 것 반대는 쓸모 있다는 말 아니요 위에 그렇게 말씀했지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아무 쓸데없어' 그 말은 아무란 말은 모든 것이란 말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데도 쓸데없다' 그 말이요. '아무 쓸데없다 아무데도 쓸데없다' 그 말이요. 모든 것에 쓸데없다 그 말입니다. 거기에 '아무'라는 그 말은 한군데만 붙어있지마는 그 뜻은 그 밑에 세 가지에게 다입니다. 모든 것에 쓸데없다. 모든 것에 버림당한다 모든 것에 짓밟힌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정반대는 모든 것에 다 필요한 그 쓸모 있는 모든 것에게 쓸모 있는 필요 있는 것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에 쓸모 없는 것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에 버림당할 수 있고 모든 것에 환영받을 수 있고 모든 것에 밟힐 수 있고 모든 것에 반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기독자의 걸음입니다. 이것이 현재에 마련이 되어 지금부터 시작이 되어서 영원한 것입니다.
기독자가 이 소금으로 비유한 대로 본질과 본성이 변하지 아니하고 기독자의 본질과 본성대로의 살게되면 당장 그 한 사건에 그 한 사건에 핍박을 하는 사람에게도 욕을 하는 사람에게도 존대 받습니다. 또 그 사람이 모를지라도 벌써 내가 환영을 했습니다. 아무리 반대해도 그 양심 속에는 들어갔습니다. 예, 양심 속에는 들어갔소 여러분들이 심령이 어두우면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아무리 서부교회 나와도 이 진리의 말씀을 들을 줄 모르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그것은 언제 떨어져도 떨어져. 그 식구들 가운데에 이 진리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출석을 잘해도 아직 진짜 안된 것입니다. 아직 가짜요 언제 떨어져 나가도 떨어져 나갑니다. 또 서부교회 다녀도 자기 앞에 참으로 시험이 되는 어려움이 오면 그만 죄 짓고 낙태해버립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속에 내 말이 있을 곳이 없으므로, 너희 속에 내 말이 있을 곳이 없으므로' 뭐 한다고 했습니까? 성경에 '나를 예, 죽이려고 하는도다' 했습니다. 누가 대답했습니까? 누가 대답했소 이 훈일이 하도 말해놓아서 외울 터인데 여러분들은 귀 넘어 들어 말씀을 못 알아들으면 잡탱이요.
그것이요. 이 교회나 저 교회나 똑 같은 교회 이 도나 저 도나 다 같은 도, 이라나 저라나 형편 되는 대로 하지 뭐 그까짓 거 무슨 신앙을 지키겠소.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인데 하나님의 계약에 순종하는 것이 신앙인데 순종 하나님의 계약 이행하는 것이 신앙인데 계약의 조건도 모르는 것이 뭐 계약을 이행하겠소? 조건을 알고 이행할려고 애를 써도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이행되기 어려운데 계약의 조건도 모르는 것이 무슨 조건인 줄도 모른 것이 계약의 성질도 모르는 것이 그 계약을 지킨다 말입니까? 못 지킵니다.
벌써 교역자들도 그렇소. 그 진리의 핵심을 잡았으면 아무리 둔해도 어려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겉어머리로 빙빙 돌고 핵심을 잡지 못했으면 그 면에는 제가 실행할 수 없습니다. 그 면은 제가 신앙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주일학교에 부장들이 가르치는 것도 알만한 것이 그 주제 그 핵심 그것이 뭐인지 순서대로 그대로 꼭 말하듯이 외워서 증거는 하지마는 그 교훈의 핵심이 뭐인지 그것을 잡지 못할 때가 많다 이거요. 그것을 증거하지 못해. 그것은 그 면에는 받지 못한 사람이라. 그 도의 행위는 가질 수가 없어. 이러니까 제가 아는 대로 신앙생활하고 제가 아는 대로 비판하지 제가 모르는 신앙 생활하는 그것은 다 괴변적이고 이상하게 보여진다 그거요. 그런고로 진리를 깨달아야 됩니다.
"아무것에게도 쓸데없어" 쓸데없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에게도 환영 못 받고 아무것에게도 버림받지 모든 것에게도 버림당하지. 그러니까 그것이 모든 것에게 천대를 받는 것이지 짓밟힘을 받는 것이지.
그런고로 믿는 사람은 두 갈래 길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갈래 길을 지금으로부터 모든 것에게 참 필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고 모든 것에게 필요 없는 존재도 될 수 있는 것이 자기 현재에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버림을 받을 수 있고 모든 것에게 환영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현재에서 결정되는 것이요 모든 것에 존대를 받고 모든 것에 천대를 받는 것이 현재에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소금이 맛 잃으면 이 세 가지 불행을 말한 그것이 자기 맛 잃은 그 시간에 그것이 결정이 됩니다. 그때만 아니고 영원히 결정돼요. 맛을 잃지 안하고 소금 노릇하면 이 세 가지 불행의 반대로 행복 되고 불행 되는 것이 현재로부터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다음 시간에 또 잘못했으면 그 다음시간 또 그래 천해지고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이 세 가지 면으로 천해지고 현실에서 이 세 가지 면으로 존귀해지고 천해지고 존귀해지고 이것이 자기의 현실 현실에서 현재와 영원이 결정되어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것 하나 있겠고 또 소금의 본질과 본성을 몇 가지라고 했습니까 ? 여반에 일곱 가지 본질과 본성을 일곱 가지라고 했습니다. 본질은 여섯 가지고 본성은 그 녹아지는 것 한 가지
소금이 녹아지므로 김치를 담든지 뭐 무슨 젓을 담든지 뭐하든지 또 소독하든지 어쨌든지 소금 뭉텅이가 소금뭉텅이가 녹아져야 쓰여지는 것입니까 그대로 있어야 쓰여지는 것입니까? 녹아져야 쓰이는 것이지요 그 알 수 있지 않아요 녹아져야 쓰여지지 소금은 녹아져야 쓰여집니다. 녹아지지 안하고 그대로 있으면 쓰여지지 못한 것이요 소금포로 이 장사에게서 저 장사에게로 넘어가고 저 장사에게서 이 장사에게로 넘어 와서 이 창고에 있던 소금이 저 창고로 저 창고에 있던 소금이 이 창고로 이렇게 아무리 넘나든다 할지라도 그것은 쓰여진 것입니까 상품으로 이리 저리 팔리 돌아다닌 것입니까? 팔려 돌아다니는 것이지요
이제 쓰여질려고 하면은 어째야 됩니까 녹아져야 되지요 녹아져야 쓰여지지요 그러면 녹아지므로 쓰는 분은 소금입니까 소금주인입니까? 소금주인이지요 그러면 우리를 소금이라고 했으니까 우리를 써서 좋아지도록 하는 주인은 누구이지요 주인은 누구입니까 남반에 주인은 하나님이지요 하나님 아니요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이신 주님이십니다.
주인에게 쓰여져 쓰여지면 주인에게 쓰여지면 그대로 있습니까 녹아져야 합니까? 안 녹는 소금은 돈주고 안 삽니다. 안 녹는 소금은 몹쓸 소금이니까 버릴 소금이지요 몹쓸 소금이지요 주인이 쓰면 필연적으로 녹아지는 것이지요 녹아지면 소금덩어리가 없어졌습니까 그대로 있습니까? 없어졌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소금으로 쓰시면 우리는 그대로 있어집니까 없어집니까? 예 있어집니까 없어집니까? 왜 거기는 대답이 희미하요 남반에? 그대로 있습니까 없어집니까? 없어지지요 그러면 이 소금이 없어졌으면 녹아 없어졌으면 그 간이 그 짜운 간이 없어졌습니까? 그것이 양 사방 펴져 들어가서 뭉티기가 없어졌습니까? 그 간이 없어졌소 뭉티기가 없어졌소 간이 없어졌습니까 뭉티기가 없어졌습니까? 뭉티기가 없어졌지요 그러면 뭉티기된 그 간이 없어지지 안 했으면 어디가 있습니까? 어데 가서 없어졌지요 주의 모든 것에게 퍼져 들어가서 흩어져서 모든 것들에게 들어가 있지 그래 없어졌지요.
그러면 기독자가 소금이 간 뿐이지 단것도 없고 딴 것도 없고 간 뿐입니다. 간 뭉티기입니다. 짠 뭉티기지요 그런데 기독자의 본질은 몇 가지로 말했지요 예 여섯 가지 첫째, 첫째 사죄 그러면 사죄 뭉티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죄 없는 이 죄 없는 사죄 이 사죄를 모든 사람에게 번져 퍼져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죄를 줍니다. 너는 사죄 받은 자다 죄 없는 자다 하는 죄 없는 자로 씁니다. 죄 없는 자로 하나님이 죄 없는 자인 것을 모든 자에게 알리기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람도 감화 받아서 환영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 속에 죄 없이 사는 죄 없이 살아야 되겠다. 죄 없어야 된다는 이것을 깨닫고 죄 없는 사람 죄짓지 않는 사람 하나님 앞에 사죄 받아 죄 없는 사람되어 질려는 이 소원이 되도록 할려고 하면 그 사람이 죄를 지어야 됩니까 죄를 짓지 안d해야 됩니까? 예 죄를 짓지 안 해야 되지요
죄짓지 않는 자로 하나님이 쓰실려고 하면은 그 사람이 희생을 당해야 됩니까 안 당해야 됩니까? 예 희생당하지요 희생을 당했으면 어떨 때는 죄 없는 사죄 받은 죄 없는 죄짓지 않는 사람으로 모든 사람에게 증거를 할려고 할 때에 이 사람으로 하나님이 쓰실 때에 없어지는 것 중에 여러분이 더러 없어져 봤습니까? 자 없어져 본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이소 거 한번 말해보십시오 어떨 때는 돈이 없어질 때도 있지요. 거, 이해가 됩니까? 돈을 손해볼 때도 있다 말이요. 돈을 손해 볼 때 손해볼 때 거기 범죄하지 않기 위해서 사죄 받아 죄 없는 자로 사죄 받아 죄 없는 자되는 것,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사죄주신 이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 받아 내가 죽기까지 하셨어. 사죄 받았는데 다시 죄를 지을 수 있겠느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죄짓지 않는 자로 하나님에게 이용당하고 죄짓지 않는 자로 너는 세상에서 증거를 해라. 죄짓지 않는 자로 세상에게 보여줘라.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에게 죄짓지 않는 자로 쓰여지려고 이렇게 할 때에 쓰여지려고 할 때에 자, 물질로 말하면 손해 볼 때도 있지요. 취할 돈을 취하지 못하는 일도 있지요. 또 가진 돈을 빼앗기는 일도 있지요. 또 하나는 뭐입니까? 가진 돈을 쓸 때도 있지요. 왜?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이 참 돈을 얼마 쓰면 될 수 있는 데 그 사람을 구원할려면 재물이 들어야 되는데 자기가 재물을 들이면 구원할 수 있는데 구원하지 안 했으면 그것은 의입니까 죄입니까? 예? 의요 죄요? 예를 들어서, 그 면에는 교회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 교회는 그 면에는 교회가 하나도 없어서 예수 믿는 소식도 못 듣고 예수 믿는다는 말도 못 듣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거기에다 교회를 세우면 거게도 택자들이 예수 믿어 구원 얻을 터인데 교회를 세우지 안 했으니까 교회가 없으니까 예수를 못 믿소. 그런데 그 사람이 거기에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재물이 있는데 그걸 알고 교회를 세울려면 재물이 들기 때문에 재물 안 들기 위해서 교회를 안 세워서 그 사람들이 믿어 구원 얻지 못하고 멸망을 받습니다. 건설구원을 이루지 못합니다. 기본구원이야 얻지마는.
그러면 그 돈을 안 쓴 그것이 죄입니까 의입니까? 예, 죄지요. 그 자기에게 책임 지웠는데 그 돈 안 쓰면 죄가 됩니다. 그 사람이 그래서 그 책임에서 인간구원이 교회만 있으면 될 수 있는 것인데 교회를 자기가 세울려고 하니까 돈이 드니 못 세우겠다 이거요. 그래서 그 사람이 돈을 희생하기가 싫어서 돈을 없애기가 싫어서 교회를 세우지 안 했으면 그 사람은 사죄를 증거한 사람입니까 사죄를 증거하지 안한 사람입니까? 죄 없는 사람으로 살았소 죄 없는 사람으로 살지 못했소? 어찌됐소? 살지 못했지요. 그 사람은 사죄 받은 자로 하나님이 쓰시는 쓰임에 쓰이지 안 했습니다. 돈을 안 놓을려고 쓰이지 안 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세워서 다른 사람을 이렇게 구원 얻도록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입니까 불의입니까? 예, 의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의로 쓰시기 위해서 의로운 자로 하나님이 쓰심으로 인하여 자기 재물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러니까 이 여섯 가지로 하나님에게 쓰여지는 데는 자기 것이 될 수 있는 것을 만들지 못하는, 못해서 없어지는 것도 있고. 자기 것이 될 수 있는 데 오는 것을 이 여섯 가지 이대로 살기 위해서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물리치니까 자, 있을 수 있는 것이 있지 못했지요. 그렇지 않아요? 재물이, 크게 좋은 직장이 하나 내게 올 터인데 여섯 가지 요대로 살려고 하다 보니까 요 직장을 내가 사용해서 취하지 못했다 그 말이요. 그러면 취할 수 있는 직장이, 취해서 자기 것으로 있을 수 있는 직장을 취하지 못했으니까 없어졌지요 그렇지 않아요? 취할 것을 취하지 못해서 털린 것 있을 수 있던 것을 주었다 말이요.
또 자기의 있던 것을 빼앗겨서 없어진 것, 또 자기의 가진 것을 자기가 써서 없어지는 것. 자, 없어지는 방편이 몇 가지라요? 예, 없어지는 방편이 몇 가지요? 세 가지 하나는, 하나는 취할 것을 취하지 못했으니까 손해 아니요? 또 하나는 빼앗겨 없어지는 것, 또 하나는 써서 없어지는 것, 이제 녹는 방편 세 가지입니다.
녹는 방편이 녹는 방편이 세 가지인데 자기가 여섯 가지로 살지 안 할려고 하면 살 수 있는데 살지 못하는 그것은 뭐이요? 살수 있는데 거 살아갈 수 있는데 살지 못하는 것, 다니엘이 다리오 왕이 거석할 때에 그때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은 죽는 것인데 다니엘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사자굴에 던짐 받은 것은 그것은 살수 있는 생명을 살지 못한 것입니까 빼앗긴 것입니까? 기도 안 한다 하면은 살 수 있지요. 살수 있는 길이지요. 살수 있는 것을 다니엘이 살지 못했지요. 또 자기의 가진 생명을 그 악당들이 찬성하는 데에서 어찌되었소? 빼앗겼지요 빼앗긴 것 아니요? 또 그 생명은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기 위해서 그 생명은 어쨌소? 바친 것이지요. 예, 다니엘은 세 가지로 녹아졌습니다. 세 가지로, 다니엘은 한몫 세 가지로 다 녹아졌소. 모든 사람이 이제 그만 기도한다고 고소할 때에 벌써 사형을 받게 돼 있다 그거요. 그 사형에서 안 죽을 수가 있어. 살수 있는 데 살 수 있는 그것을 이 여섯 가지 증거로 살기 위해서 살 수 있는 생명을 취하지 못했어.
생명을 취하지 못했어. 여섯 가지 이 본질대로 사는 그것 때문에 생명을 빼앗겼어.
여섯 가지 본질대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에게 생명을 바쳤어 세 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여섯 가지로 쓰시기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 두었습니다. 여섯 가지로 쓰여지면 자기의 재물이나 자기의 권세 지위, 다니엘은 생명도 녹아졌고 하나님께 쓰이므로 생명도 녹아졌고 이 여섯 가지로 하나님에게 쓰여지기 위해서 생명도 녹아졌고 권세도 녹아졌고 지위도 녹아졌고 영광도 녹아졌고 가정도 녹아졌고 자기의 사회도 녹아졌고 자기의 전부가 다 녹아졌습니다. 이것 때문에 빼앗기고 이것 때문에 취하지 못하고 이것 때문에 다 바쳐서 살았습니다. 이것이 녹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녹아지는 그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결과는 모든 것에게 쓸데 있고 모든 것에게 환영받고 모든 것에게 존대 받았지요. 하나님이 기독자들을 이 여섯 가지로 쓰시기 위해서 소금을 중히 쓰는 것이 비유입니다. 쓰시기 위해서 있는데 기독자들의 본질은 하나님이 몇 가지로 쓰시기 위해서 이렇게 쓰십니까? 여섯 가지로 쓰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쓰시면 없어집니까 있어집니까? 예, 하나님이 쓰시면 없어집니까 있어집니까? 쓰여진 그것은 없어집니까 있어집니까? 소용되어있고 쓰여질 수 있습니까? 없소. 쓰여지면 쓰여진 것은 없어졌습니다. 그 뒤에 또 살아지면 있지 쓰여진 것은 없어졌소.
그러면 여섯 가지로 쓰이면 하나는 뭐이라요? '사죄, 이는 죽기까지 하셔서 죄에서 해방시켜서 죄를 다 대신 형벌 받아서 죄 없는 자로 사죄의 이 구속을 입힌 자다 이것 봐라 이것 죄 있는 것 봐라 죄 있는가 봐라 이것은 죽었으면 죽었지 다시는 죄짓지 않는 자다' 이것 하나님께서 증거하기 위해서 사죄자로 또 칭의자로 또 새생명은 뭐이라고요? 예,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자로 모든 사람이 다 무신론 국가 속에서 이 사람은 하나님 위주자로 하나님 중심자로 이렇게 살기 위해서 가둬도 가두면 자유를 빼앗기지요 자유가 녹아졌지요. 매를 때려서 병신 만들었으면 건강이 녹아졌지요. 고문과 고형을 줬지요. 그러면 평안이 녹아졌지요 죽였지요. 그러면 모든 것이 다 녹아졌지요. 그러면 그 사람이 뭐 때문에 녹아졌지요 뭘로 녹아졌소 무엇으로 녹아졌지요? 여섯 가지로 녹아졌소.
사죄 받았으니 자기는 죄지을 수 없는 자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녹아졌소. 죄지을 수 없는 자로 사는 그 사람의 피 한방울도 그 사람의 전체가 죄 없는 자로 쓰여졌소 하나님에게 쓰여졌고 죄 없는 자로 녹아졌습니다. 칭의의 자로 의인으로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은 뭐이지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은 뭐이요? 하나님의 형상. 아, 개새끼는 개 닮지 안 해요?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어있는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또 하나는, 예예, 그 생애 법칙이 영감과 진리로. 또 하나는, 천국백성 천국백성은 어떻게 하는 것이지요? 진리 안에서 하나님에게만 통치 받는 것이 그것이 하늘나라 시민입니다.
요것으로 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자기가 취하지 못할 취할 것을 능히 취할 수 있는 것인데 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취하지 못한 것은 소금이 녹아진 것과 같은 것이요 자기가 녹아진 것이요 자기가 쓰이진 것이요 요대로 살기 위해서 손해 안 갈 것도 손해 본 그것은 바로 요것은 하나님께 쓰여져서 녹아진 것이요. 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 자기 가진 것을 바친 것은 다 요것도 하나님께 쓰여져 녹아진 것입니다.
그만 세 가지로 녹아졌습니다. 녹아졌는데 요 세 가지 중에 어느 것이 제일 어렵다고 생각합니까? 취하지 못하는 것 빼앗기는 것 다 쓰는 것 그 세 가지 중에 어느 것이 어렵겠소 어느 것이 어렵지요? 조 현옥씨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빼앗기는 것 그 언제 배웠나요 깨달았나요? 예, 빼앗기고 찾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자기가 바치는 것은 자기가 들어 있소. 자기가 들어있어. 자기 기분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니까 하기가 좀 쉽지마는 억울하게 빼앗기고 찾는 것은 그것은 자기의 인격이 모두 말살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마땅히 자기가 취할 수 있는 것을 취하지 않는 것 취할 수 있는데 취하지 않는 그것이 제일 쉽고 그 다음에는 있는 것 바치는 것이 둘째로 쉽고 제일 어려운 것은 어려운 것은 빼앗기고, 빼앗기고 견디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요 순서를 모르면 제일 어려운 가치 있는 것 빼앗기고 견디는 것 빼앗기고 견디는 것 이것을 가치 적은 것인 줄 알고 내가 바치는 것은 바치기를 원합니다. 억울하게 빼앗기고 있어 요것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이 가치가 제일 많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앞에는 이렇게 현재와 영원에 존비귀천 환영배척 모든 것에게 필요 있는 자 모든 것에게 필요 없는 자 이것이 자기 현실에서 결정되는 이 두 귀로를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십시다.
한 10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