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2 12:50
■ 두 길
믿는 우리에게는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브라함의 길이요. 또 하나는 롯의 길입니다. 롯은 소돔 고모라의 요단들을 따라가다가 멸망하였고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광야 자산을 택하므로 영육간 성공하였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고 롯은 왜 그렇게 멸망의 길을 갔을까? 아브라함의 길을 걸어갔으면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의 선조가 되었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당시 롯이 아니니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 롯이었으면 우리도 롯 같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롯이 만난 현실은 어땠을까?
그와 비슷한 형편을 하나 예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이 글 바로 아래에는 ‘소방차’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한 청년이 목회자의 길을 가기 위해 신학대학에 유학을 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청년과 그 청년을 양육하는 목회자의 눈에는 유학 갈만한 신앙적 신학대학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리해서 권면하기를 외국에 꼭 유학가려고 하지 말고 지금 현재 이곳 지역에서 인정받고 있는 목회자에게 목회와 신앙과 신학을 배우는 것으로서 신학과정을 대신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자, 그러면 그 청년은 어느 길을 선택할까요? 명성 있는 신학대학을 나오고 또 신학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으면 모두들 인정하고 대우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이름 없는 목회자에게 배우는 것으로 신학과정을 삼으면 인정받는 것을 포기해야 되니까 말이지요.
그러면 이 청년에게는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신학은 배우지만 신앙은 없고, 또 하나는 신앙은 배우지만 인정은 못 받습니다.
만일 이것이 우리 앞에 당면한 형편이라면 어느 길을 택하실 것인지요?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길과 롯의 길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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