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06 22:58
● 어느 월남 파병용사의 일기
다음은 어느 월남 파병용사의 일기이다.
출처는 조선닷컴이다.
1965년 10월 22일 금요일 비
오늘은 나에게 또 하나의 역사적인 날이다.
상륙정 L.V.T를 타고 월남 육지에 상륙하는 순간 나는 흥분과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바로 이곳은 퀴논항 근처의 붉은 모래 해변이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우리는 긴장된 마음으로 수송차량에 분승하여 주둔지로 출발하였다.
얼마 후 기차로 갈아타고 어디론가 다시 떠났다.
처음 보는 진기한 풍경들, 야자나무와 바나나 숲들이 긴장된 마음을 잠시 풀어주는 듯했지만, 모두가 비장한 눈빛들이다.
우리는 열차 안에서 처음으로 C-레이션을 먹었는데 누군가가 “야! 이렇게 한국에서 준다면 말뚝 박겠다”고 말해 긴장 속에서도 한바탕 웃었다.
그럴 만도 하지, 보리밥에 된장국만 먹다가 C-레이션에는 고기에, 빵에, 우유에, 커피에, 양담배에 거기다 보들보들한 휴지와 껌까지 끼니마다 나오니 말뚝이 아니라 콘크리트라도 칠 판이다.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우리 분대는 즉시 제1소대에 배속되어(우리 분대는 화기소대 57mm 무반동총 분대고 나는 부사수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 야트막한 야산으로 이동을 개시했다.
처음 대해보는 월남의 야전상황은 말 그대로 정글의 연속이다.
옷 속 깊이 파고들어 깨무는 갈색 개미떼, 날이 어두워지자 달려드는 모기떼, 거의 산정상에 오를 무렵 날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말았다. 그런데 중대CP에서 본대로 귀대하라는 명령이 떨어져 하산을 시작하다가 그만 캄캄한 어둠 속에서 소대는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길을 잃고 말았다.
벌떼처럼 달려드는 모기들의 공격, 간간이 전방고지 계곡에 떨어져 터지는 포탄 소리는 우리를 초긴장의 공포 속으로 몰아놓고 있었다.
소대 무전병의 무전기에서 우리를 찾는 중대장님의 숨 가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우리 소대는 방향을 상실한 상태라 전 대원은 실탄이 장전된 총의 방아쇠를 움켜쥐고 긴장은 폭발 직전이었다.
전 소대원의 운명을 책임진 소대장은 “우리 이렇게 된 이상 죽으면 같이 죽고 살면 같이 살자”고 비장한 각오로 말했다. 열차에서 내린 지점까지 간신히 도착해 사주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중대와 무선교신을 시도했다. 그러던 중 우리를 찾아 나선 중대부관 수색조와 교신하는 데 성공하여 한밤중 중대CP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아~휴! 긴~안도와 함께 꼭 지옥에 다녀온 느낌이었다.
전쟁영화나 소설 속의 그 멋진 장면처럼,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맘이 들떠, 죽음과 무서움을 상상조차 않고 월남파병에 지원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후회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어떡하랴, 이미 이렇게 여기 와있는걸. 아이구~, 하나님! 제가 죽을 곳에 왔나 봅니다! 무슨 죄로, 저를 이 지옥에 오게 했습니까! 너무하십니다! 예라~! 이놈아~~! 여긴 지옥 아니고 네놈이 가고 싶어 안달하던 월남 땅이다~, 이놈아!! ~뒈지고 싶지 않으면 정신 바짝 차려라~ 이놈아!
하지만 하나님~, 지옥이 어디 따로 있나요? 이곳이 바로 지옥이지요!
나는 교회나 절에 다니지도 않으면서 어느새 내가 월남에 온 책임을 알지도 보지도 못한 하나님께 떠넘기고 있었다. 어려울 때는 매달리고 좋을 때는 까맣게 잊어버리는 그래서 종교, 하나님은 참 좋은 것이다. 방아쇠를 움켜쥔 손과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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