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1 13:13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중앙도서관 앞- 서영호 목사 외
사진 설명:
윗줄 왼편부터:
이정일 여동생 (고 심영견 목사 사모)
정규남 박사 (애기 안고) 당시 신학생, 현 전라남도 광주직할시 소재 광신대학교 총장
김재학 목사 (당시 개혁교회 교우, 현 미국 Los Angeles 기독교 봉사회 회장)
Harvey Conn (간하배 박사) 당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선교학 교수, 2004년 소천
이학인 목사 (졸업생 이정일 목사의 선친, 2009년 103세에 소천)
이종윤 박사 (한국 서울에서 “서울 교회” 창립 담임, 지금은 은퇴하여 설교 목사)
Mrs. Kwon (당시 필라델피아 한인 개혁장로교회 교우)
오완진 집사 (당시 필라델피아 한인 개혁장로교회 교우)
송수석 목사 (당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학생, 전 서울 YMCA 총무)
앞줄 왼편부터:
정대현 박사 (이화여자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 교수)
Mrs. Yoon (전 합동신학교 교장 윤영탁교수의 사모)
Cathy Lee (졸업생 이정일 목사의 사모)
이정일 목사 (졸업생. 현 Los Angeles 기독대학 학장)
최낙재 목사 (졸업생, 한국 안양 강변교회 과 독립개신교 신학교 설립 교장, 2010년 소천)
박형룡 박사 (졸업생, 전 합동신학교 교장/ 현재 서울 성서대학 학장)
김명도 박사 (졸업생,전 NAPARC 의장/ 현 튤립신학연구원 원장/ LA 칼빈신학교 대학원장
김효진 군 (어린이, 김명도의 차남)
김효석 군 (효진 어린이의 뒤에 서 있는 어린이, 김명도의 장남)
이은옥 (김명도 목사의 부인, 애기를 안고, 얼굴이 가리어졌음)
Mrs. Choi (졸업생 최낙재 목사의 사모, 아들 “경성” 을 안고 있다)
Mrs. Park (졸업생 박형룡 박사의 사모)
서영호 박사(당시 Temple대에서 박사과정, 현 부산 서부교회 담임/ 서울 계약신학교 교수)
지금으로부터 무척 오랜 옛날 이야기 이다. 강산이 여러번 변했다.
그때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는 총학생수 190명에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9명이었다. 지금과 달라서 한국 사람이 귀했던 당시 학생들은 서로 친분이 두터웠다. 학생들은 매일 같이
헬라어 단어와 히브리어 단어를 외우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학생들의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냉정” 하기만 했던 교수님들이 과해 주는 많은 숙제를 제 시간에 마치기 위해서
코피를 쏟으며 코피(coffee) 를 물마시듯 마시며 밤을 새워 공부하던 시절이었다.
그 때 교수님들은 여러 명이 게셨지만 인상에 남는 교수로는 단연 변증학을 가르치시던
Cornelius Van Til 교수 였다. 60이 훌쩍 넘어 백발을 휘날리면서도 명강으로 항상
학생들의 심금을 울려 주시던 그 노교수의 열정을 잊을 길 없다. 한 학기에 논문 3개를
써야 하는 그의 변증학 숙제가 너무 힘에 겨워 미국인 학생들이 두 개로 줄여달라고
간청하면, “책 읽기 싫으면 보따리 싸갖고 집에 가라” 고 외치던 모습, 그 위압에 눌려
아무도 감히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던 일들이 생각난다. 권위가 있는 노교수 였다.
다른 교수들도 많지만, 그 외에 인상 깊은 교수는 교회사를 가르치던 Paul Wooley 교수와 조직신학을 가르치던 Norman Shepherd 교수 였다. 이 두 교수는 학점에 인색하기로 이름이 나 있었다. 후자의 겨우는 1978년 그 자신의 신학노선에 문제가 있어서 결국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가 떠난 후 조직 신학을 다른 교수밑에서 공부한 분들은 분명히 행복한 분들이었을 것이다. 그 때 학생들 간에는 “울리(Wooley)가 학생들을 울린다” 고 했고 “세파트
(Shepherd) 에에 물리지 말라“ 는 유행어가 돌 정도로 이들 두 교수들은 학점에 인색했다.
그건 와중에서도 Van Til 교수와는 가까운 친분을 가지며 그분의 고매한 인격과 탁월한
학문을 흠모했다. 교수님은 늘 필자를 보면, “Mr Gold, you are a classic Reformer"
하고 하시면서 격려해 주셨다. “김씨” 성을 교수님은 “Mr. Gold" 로 바꾸어 불러 주셨다.
필자는 그의 인격과 학문을 본 받아 ‘전제론적 변증학“을 공부하며 그 방면에 관심을 많이 갖고 지금도 신학교에서 변증학을 즐겨 가르치고 있다. 그는 1988년 92세의 고령으로 하나님의 곁으로 가셨다. 필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로 인격이 훌륭하신 여러 스승
들 밑에서 공부하도록 인도해 주셨으니 그 은혜를 늘 감사하며 살아간다.
그 시절엔 모두 어렵게 공부했다.
남편들은 남편들대로 매일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수 많은 책을 읽어야 했고,
유햑생들의 젋은 부인들은 남편의 공부를 돕기 위해서 어떤 분은 양로원에서, 어떤 분은
남의 집의 가정부로, 어떤분은 재봉공장에 나가 재봉틀을 밝고, 어떤 이는 남의 집에 들어가서 보모 (baby-sitter) 로, 빌딩 청소로 닥치는대로 돈이 되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마다
하지 않고 손발이 닳도록 오직 남편들의 학문을 위해서 밤 낮으로 이리 저리 뛰며 고생했다. 그 때 그들의 눈물겨운 고생을 무엇으로 다 보상할 수 있을까?
남편들도 공부만 하는 행운아는 주로 미국인 학생들이었다. 저들은 교회에서 지원을 받거나
부인이 간호사나 병원의 상담직원 등 전문직을 가진 탓에 생계는 아내에게 맡기고 책만 읽었다. M.Div 학위는 3년 과정이지만 미국 사람들은 일부러 4년 5년에 마쳤다. 철저히 공부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980년에 Harvard 대학을 구경했는데 여름 방학인데도 학생들이 여기 저기 나무 밑에서 웃옷을 벗은채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 그와 같은 광경이 Westminster 신학교의 뒷 뜰푸를 잔디밭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열심히 공부했다. 요즘 신학생들과는 생각이 달랐다. 학문에 쉬운 길이 어디 있는가? 노력. 노력. 그리고 또 노력, 그 때 신학샐들은 문자 그대로 노력의 화신이었다.
남학생들 중 몇몇은 일터에 나가며 공부했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학교에서 2시에 공부를 끝내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4시가 되면 필요한 책 15권 정도를 대출받아 차에 싣고 공장으로 나가서 밤 1시까지 기계를 돌렸다.
인쇄소에서 전표를 인쇄하는 일이었다. 밤새도록 기계를 돌리면서 헬라어,히브리어, 화란어
단어를 외웠고, 또 교회사의 사건 연대를 외웠다. 그때 이렇게 공부한 것이 지금도 필자의
머리 속에 남아 있어서 신학교 교실에서 강의할 때 que 만 주면 모든 정보가 자동적으로 살아나서 chalk board 에 그대로 기록되어 공부 안 하는 학생들에게는 “기적” 처럼 보인다.
매일 계속되는 야간작업은 4시부터 1시까지 였다. 새벽 1시반에 집에 도착하면
가족은 곤하게 잠들어있고, 아내가 준비해 둔 coffee pot에서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또
코피를 흘리면서 먼동이 틀 때까지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도 코피 없이는 하루도 지내기 어렵다. 강의실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떠다 주는 커피 컵들이 수두록 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가끔 부부 싸움도 한다. 코피 결사 반대인 아내와 코피 없이는 살 수 없는 남편과의 내란이다. 사실 커피가 몸에 좋지 않다는 상식을 아는 필자의 패배로 끝난다.
세월은 흘러, 우리 네 사람이 드디어 교문을 떠나는 영광의 그 날이 밝았다.
학교 앞 길 건너 Calvary 교회에서 Van Til 박사의 설교를 들으며 졸업식을 마치고
졸업생 4명과 힘들게 졸업하는 졸업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친지들과 학우들이 같이 사진을 촬영했다. 실로 오래만에 모두 한하게 웃어보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생이 그렇게 심했지만 교문을 떠나게 되니 아쉬웠다. 물론 필자는 학교에 남아서 계속 공부를 더 했지만 최낙재 목사님은 한국으로 나가서 서울 근교 안양에 “강변교회”를 세우고 목회하며 나중에는 "독립개신교 신학교“를 세우고 교장직을 맡은 지 몇 달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때 어렵게 공부했던 졸업생들 네 명이 모두 지금은 한국과 미국에서 일가견을 가지고 각자 맡은 분야에서 개혁주의 신학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로 성장하여 도처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면서 사역하고 있으니 하나님에게 감사할 뿐이다. 또 그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오로지 남편들의 학업을 위해서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고생했던 신학생들의 사모들의 노고를 잊을 길이 없다.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참으로 고맙기 한량 없는 분들이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때 우리와 같이 공부하던 학우들의 뒤에서 고생하신 여러 유학생들의 사모님들
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바이다. 사진에 들어 있는 학우들과 친지들이 모두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몹시 보고 싶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에게....
글 쓴 이: 김명도 교수 (rvkim@yahoo.com)
사진제공: 김명도 교수
사진촬영: 미상
촬영장소: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중앙도서관 앞
글쓴 일자; 2013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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