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15 17:13
12장 6·25 종전 직후
12-1. 일제치하와 6.25와 그 후를 기도의 힘으로 승리
환난으로 느껴지지를 않아
제가 늘 말하지만 왜정 말년에나 6,25 때나 그때에 이 우리 한국에 닥친 환난이라면, 교회적 전체적으로 닥친 환난이라면 왜정 말년 신사참배 환난과 6,25환난, 그 환난 두 환난이 제일 큰 환난이었습니다. 그 두 큰 환난은, 저는 그랬어요, 그때는 그 환난이 제게 닥치는 것을 제 삼자들이 볼 때에는 '큰일났다' 다 이렇게 큰일났다 이랬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고 백지(공연히) 놀래고 기절하고 야단이었지 저는 거게 대해서 본인에게는 환난으로 느껴지지를 안했습니다.
나 하나를 공격하려고 열다섯 명이 와
제가 공산주의자들이 가면을 쓰고 여게 지방 공산주의자들이 토벌대가 돼 가지고, 공산주의자들이 토벌대가 돼 가지고서 나 하나를 공격하려고 열다섯 명이 왔습니다. 열다섯 명이 왔는데 토벌대라는 이름, 지리산에 있는 공비를 토벌한다고 토벌대 이름을 가지고서 왔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사람을 죽여도 뭐 아무 살인의 형이 없는 그때입니다, 다 금족령을 내려놓고서 그때 할 때이니까.
'이제는 죽었다' 하도록
이랬는데 공산주의자가 토벌대직을 가지고 토벌대 이름으로 와 가지고서 저를 대적하는데 그때 제가, 다른 잘 믿는 사람들은 매를 안 맞았고 이랬는데 나만 그때 매를 되게 맞았습니다. 뭐 참 보는 사람들은 모두 놀래서 '이제는 죽었다' 하도록. 그러면 이만한 그런 몽둥이가 한번에 몇 개씩 뿔러져 나가니까.
아픈 데도 없고 뭐 아프지도 안하고
이래도 어쨌든지 맞고 난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죽었다 이러는데 나는 또 매가 끝나고 난 다음에는 또 일어납니다. 일어나 가지고 아픈 데도 없고 뭐 아프지도 안하고 되지도 안하고 뭐 저는 것도 없고, 일어나 가지고 다시 그 토벌대 본부에 가 가지고 '너희들이 지금 이것 뭐 적색이든지 이렇지 어찌 이러면 이럴 수가 어디 있겠느냐?' 그것을 가지고서 시비를 반발하고 이래 거석하면, 그들도 이상해. 하나님이 그래 했기 때문에 그래요. 이러니까 '아, 예. 그만 알겠습니다.
어쩌든지 올라가이소 올라가이소.' 자꾸 이렇게 말하고 이래 가지고서 몇 차례 하다가 마지막은 그 사람들이 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매를 맞아도 저는 그 아픈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 삼자들이 보기에 '이제는' 뭐 몽둥이를 그 사람들이 뭐 죽으라고 때린 것이니까. 그것 지금 공산주의자들이 복수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그 면(面)에 공산주의 인민공화국 발기회를 하는데 그 거창 군내가 발기회 다 했습니다. 다 했는데 고제면 한 면만 발기회가 안 됐습니다. 그 안 된 것은 저 때문에 안 됐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 전체가 내게 대한 복수를 해 가지고서 그렇게 했는데 6.25 때에 그 문제가 저 위에 올라가 가지고서 그래서 저를 백영기라고 찾아서, 영희인데 영기라고 찾았어요 이러니까 이름 한 자가 뺑뺑 돼 가지고서 자꾸 그게 면제해 나갔는데, 그것 다 하나님이 하시는 거라. 아무리 매를 때려도 아프지 안 했습니다.
돌아다니면서 신사참배를 반대
또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에 대해서도 그 신사참배를 저만 안 할 뿐 아니라 자기가 거느린 교인들도 하나도 안하고, 그 지금 그 면이 제일 그 신사참배가 심한 데인데 그렇게 하나도 안 한다는 그게 여러분들이 이야기로 들어 그렇지 이야기가 아니고 그것 예사가 아닙니다. 미친 소리 같아서 안 하지, 감옥에 가 가지고 들어 가지고 있는 것도 좋지만 돌아다니면서 이 신사참배를 반대를 하고도 그들이 하나도 그들에게 재제 받지 안하고 얼마든지 반대하고 지내는 그것은 더 초자연의 능력이라 볼 수가 있어. 그것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이라.
점령한지 두 달 동안은 계속 매일 세 번씩 집회
그때 그렇게 지냈고 또 6,25때도 다른 사람 다 피난 가고서 이랬는데 거게서 그들이 점령한 지 두 달 동안은 계속 매일 세 번씩 집회했습니다. 이러니까 거창군, 함양군, 협천군에 좀 믿음으로 살라 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백 조사님한테 가야 이 피난한다'이래 가지고 거기 와 가지고 모이니까 그 조그만한 시골에서 사백 명이, 조그만한 교회 그 교회가 한 사십 평 될런지 삼십 평 될런지 몰라, 한 삼십 평 될 것입니다. 어쨌든지 그때 사백 명이 모았는데 앉아 가지고서 뭐 그래도 더운 줄도 모르고 기쁘고 즐거움으로서 그렇게 두 달 동안 계속해서 집회해도 아무도 무서운 걸 전혀 몰랐다 그말이오.
기도의 역사라
그 다니엘이 참 당하면서 감사하고 이런 것처럼, 그때 그리 그래 쌓아도 예사로 알고 나가서는 또 그들이 공습하는 것을 이래 보고서, 저 인민군들이 저 짓을 하고 있다, 이것 예사로 말하고 내무서원들이 와 가지고 지키든지 뭣이든지 왔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이 아무 그게 상관이 없었다 그거요. 그래 그걸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미리 기도의 역사라 그렇게 생각을 판단을 가집니다.
그 사람은, 경남은 기도의 경남이라
그때는 거창 군내나 경남에 교회들이 많았지만 기도에 대해서 아마 제가 기도하는 것이 제일 유력하게 했을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소문이 나기를 '그 사람은 경남은 기도의 경남이라.' 이렇게 말이 났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경남은 기도의 사람들이요 다 진동파들이라' 그 진동파라는 진동이 바로 제가 집회하는 거게서부터 나서 가지고서 했던 것입니다.
예수 미치괭라 할 만치 그렇게 기도
이러니까 그때 뭐 교인들이 산기도 하고 어짜고 한다 하는 그런 것을, 산기도라 하면 별로이 말을 몰라. 지금은 산기도 그게 모두 퍼져서 산기도 많이 있지마는 그때는 산기도 말이 별로 없었는데 제가 개명 있을 때에도 그저 교인들은 거의 산기도입니다. 매일 밤마다 산기도 했소. 산에 가 가지고서 기도하다가 또 금식기도 하다가, 이것은 참 하나님 은혜라. 미쳤다고 할 만치 다른 사람들이 저 예수 미치괭라 할 만치 그렇게 기도했어요.
낮에 일하고 밤이면 산에 가서 기도하고
산에 가 기도하고, 저 비탈로 돌아다니면서 기도하고, 제가 개명교회 있었는데 개명교회 교인들은 그저 제가 가면은, 네 군데 보는데 일주간 동안 있는 곳은 산에 기도합니다. 언제든지 밤이면. 낮에 일하고 밤이면 산에 가서 기도하고 또 낮에 내려와서 일하고.
불이 크게 나니까
그래 이러다가 하도 추워서 이 춥다 보니까 이 사람들이 밤에 산만당에 그 높은 산만당에서 그만 나무가 많으니까 나무를 놓고 불을 놨다 말이오. 불을 놓으니까 불이 크게 나니까 그 면내에 불이 환하게 다 비쳤다 말이요. 그래 가지고서 '이것 무슨 이제는 공비 장난인가보다' 이래 가지고 사람들이 경찰서에서 올라오고 뭐 동원이 되고 야단이 나고, 그러면 또 무슨 큰 일이 날 건데도 어찌 됐는지 해 가지고서, 그 동원이 그렇츰 크게 됐지만 가서 '우리가 기도하러 가서 그리 됐다' 이러니까 '불같은 것 놓으면 다 놀라게 되니까 놓지 말라' 그러고 말았어. 그 모두 면해 나온 것이 다 기적적이라 그말이오.
죄 되는 일은 죄 지을 여가가 없어
제가 또 위천 가서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위천 가서 제가 있을 때는 위천 교인들이 그 예배당에서 철야한 적이 많지를 못합니다. 예배당에서 철야하든지 그리 안 하면 산에 가서, 그뭐 무슨 일로 가든지 산에 가서 끌고 가 가지고서 산에 가서 데리고 가서 또 모두 다 산에 가서 밤새껏 기도하고 일찍 내려와서 새벽기도보고 또 낮에는 또 일하고 또 밤이면 또 밤을 기다리고 있다가 또 산에 가서 기도하고 또 새벽에 내려와 새벽기도하고 낮에는 일하고, 그래도 하나님이 어쩐지 그 건강을 주시고 이랬는데.
그러니까 그때는 쓸데없는 소리는 못 들어요. 뭐 쓸데없는 말만하면 그만 턱 쿨쿨쿨쿨 잡니다, 모든 교인들이 다. 그러니까 그 죄 되는 일은 죄 지을 여가가 없어. 그만 코 골고, 앉았어도 코 골고 자고, 이야기 할 때도 코 골고 자고, 소용없는 데는 코 골고 자고 또 그리 안 하면 그러니까 그 피곤이 다 풀려 가지고 잠을 안 자고 그랬어요.
빨갱이 산이라는 곳에서
저거가 산에 기도한다는 그것은 바로 그 빨갱이 산이라는 곳이라. 빨갱이 산이라는, 아따 그 산 이름이 뭐인지? 이경순 권찰이 아는지? 누가 여기 위천 사람은 하나도 없네요. 거의 다 죽어버렸어. 빨갱이 산이라는 그 산인데 그 산에 가 가지고서 밤새껏 인제 기도하면 모두 떨어져서 저리 가고 이리 가고 모두 다 한테 뭉치지 안하고 다 각각 떨어져 가지고서 그래 기도했습니다.
밤새껏 기도하고 인제 새벽에는 고함을 지르면 다 주 모아듭니다. 모아들면 또 일찍 내려가 가지고 뭐 그때 뭐 깜깜하지 않습니까? 깜깜한데 그래 뭐 전지니 그런 것도 없어. 그런 것 살 줄도 몰랐어, 그때도 그게 있기는 있었는데. 전지도 없이 그렇게 더듬어서 작대기 짚고 더듬어서 이래 가지고 내려와서 새벽기도하고 또 낮에 죽자 껏 또 일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또 새벽기도하고.
일 년 반 만에 경제회복
그러니까 제가 거기에 간 지가 그 교회서 시무한 지가 일 년 반 조금 넘었습니다. 일 년 반 조금 넘었는데 '삼 년이면 경제 회복은 완전히 되리라' 그렇게 말을 했고 또 일 년 반 됐는데 위천면에 있는 위천교회 교인들은 경제에 형편이 다 풀려서 그저 한 일 년 반만 있으면 다 경제 실력이 경제 형편에 대해서는 어려움이 없도록 되어지도록 그리 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교회가 생긴 이후로 그때 만치 그렇게 형편이 열린 일은 없었다고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뭐 연보가 뭐 어떻게 많이 나오는지? 나와서, 기껏해야 시골서는 곡식 연보밖에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곡식이 잘 되니까 연보를 많이 내고, 또 낼라 하니까 곡식이 잘 되고 그랬더라 그거요. 그랬는데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기도했고.
신학 졸업을 하고 그때부터 핍박
또 제가 여기 서부교회 와 가지고도 서부교회에서 이 년을 신학교서 신학을 여게서, 저게서 시작만 해놓고 여기 와서 삼 년을 여기서 했던가 신학 졸업을 하고 그때부터 핍박이 시작했습니다.
미운 그 이유가 다 있는데
핍박이 시작해서 뭐 고신에서 저를 몰기를 저게 이단자라고 이래 몰아 가지고서, 이단자가 아닙니다. 실은 내가 그들이 이단 걸음을 걷는 걸 지금 자꾸 말하기 때문에 그래 미워서 그랬습니다, 미워서.
미운 그 이유가 다 있는데 미운 건, 말한 그것은 참 그때는 선지자의 말을 했어. 다 그때는 뭐 내야 어찌 되든지 자꾸 말한다고 말을 했었습니다. 이러니까 그것 하나님이 다 기뻐하셨지마는 핍박이 오는데, 매장하니까 내가 이 서부교회 있으면 교회가 될 리가 있습니까? 마구 핍박이 오는데.
머리를 깎았습니다
와도, 그때에 이상하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그들이 욕을 하든지 말든지 내가 대항할 마음이 하나도 없어서 그 대항을 안 했었습니다. 그 욕을 하고 이러기 때문에 거게서 아예 마지막으로 선포해서, 그분들이 나를 핍박을 하고 이래 몰아댈 때에 그때 내가 '이분들은 내가 다시는 내가 말을 예언을 해 줄 필요가 없다. 옳은 말을 해 줄 필요가 없다. 여게 대해서는 이분들과 속으로 그때는 쫓겨나지는 안할 때입니다. 쫓겨나지는 안했지만 그 며칠 전이오. 그런데 이분들과 다시는 여게 대해서 간섭을 내가 하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이 분과 간섭을 하지 안하고 고신과 나는 아주 나는 따로 있으며 신앙 생활 하지 간섭하지 않겠다 하는 그 각오를 가지고서 제가 머리를 깎았습니다.
머리를 깎을 때에 깎고 나니까 갑자기 깎고 나니까 뭐 자녀들도 울고 야단이 났었어. 머리 깎으니까 빡빡 깎아버렸으니까, 그때 김현봉 목사 내가 볼 때가 아니오. 김현봉 목사는 알지도 못하고 소문도 못 들을 때요.
이랬는데 머리를 빡빡 깎은 것은 내가 참 머리 깎고 중이 되는 것 모양으로 '이제 이 교계 있지만 이 교계 사람들을 접할 것이 아니고 나는 신앙생활해서 바로만 이래 나갈 일이지 그들에게 바른 소리 해 가지고는 자꾸 원수만 되어지고 효력이 없으니까 이러자.' 그것 그때 그 각오를 가지로 제가 머리를 깎았습니다. 머리 깎기 전에 제가 머리 기르고 있을 때에 사진 다 박아서 이래 놓고 그래 머리 깎았어.
그게 기도의 힘이라
그러고 난 다음에 제가 서부교회 있을 때에, 그때 지금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 권사님들은 그때 젊었습니다. 권사님들은 지금은 늙었지마는 그때는 젊은 때들이고 그때 모두 젊은 사람들이 지금 많이 살아 있습니다. 있는데 그때 제가 여기 목회하면서는 거의 예배당에서 철야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다 산에 가서, 산에 가 가지고 그저 저녁 일찍 먹고는 보따리 이래 담요 한 장 싸 가지고는 산에 가서 이 구석 저 구석에 가서 그래 흩어져 가지고서 거기서 밤이슬 맞으며 밤새껏 기도하고 또 새벽에 일찍 내려와서 새벽예배 보고, 이러니까 그들이 외부에서 뭐 욕을 한다고 그렇츰 욕을 하지만 우리는 욕할 마음이 없고 그들에게 대항할 마음이 없고 아예 상관이 없이 그들이 그래도, 그게 기도의 힘이라
오른뺨을 때리거든
그분들이 그렇게 그러는데 내가 충격을 받았으면 내가 그만 절단날건데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을 돌려 향하라' 하는 그 교훈이 뭐냐 하면, 오른뺨 때릴 때에는 왼뺨을 돌려 향할, 왼뺨을 다시 맞을 각오도 가지고, 그러나 그들에게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안해서 아무리 악이 와 가지고 우리를 해해도 그 악에게 감염되어서 피동 되어서 내가 악이 되지 안 하면 그 전부가 나에게 면류관이 되지 유익이 되지 손해 가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깨끗한 행위하고
그러니까 그때 그렇게 기도하니까 그분들이 그렇츰 그래 쌓아도 아무 상관이 없었어. 아픈 자극이 하나도 없었어 이러니까 나중에 가끔 가다 언뜻 말 들으면 '그 사람들은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다른 교회 낮 예배만치나 나오고 새벽기도 많이 나오고 또 산기도 많이 하고 기도 많이 하고 그 사람들 행위는 다 행위가 다 성경적으로 깨끗한 행위하고, 그렇게 예수 잘 믿는 사람들을 공연히 욕을 하네. 욕하는 저거들은 보니까 이런데.' 자기네 있는 목사들이 그때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그 기도 값으로 됐다
그것이 그때 그 어려움을 이겨 나간 그것이, 그때는 뭐 어려움 이겨 나가겠다고 기도한 것 아니오. 어짜든지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겠다 해서 하나님이 기도하게 해 주셔서 기도했지.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그 어려움을 면해 나간 것이 그때 기도 때문에 그렇다. 그들이 그렇츰 핍박을 해 쌓아도 오히려 서부교회가 이렇게 부흥이 돼 가지고서 유치반이나 중간반이나 장년반이 이래 부흥이 돼 가지고 한 이것이 그 기도 값으로 됐다.' 이랬는데 그 후에는 기도가 끊어졌습니다.
그만 번듯이 드러누웠던 모양이라
그때는 제가 대님을,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대님을 끄르고 밤을 지낸 일은 없었습니다. 제가 또 온지 삼 년 동안에는 한번도 담요 위에 요 위에 누워본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한번은 이래 기도하고 이래 기도하다가 나중에 거게 그러는데 그만 기도하다가 그만, 기도하다가 강단을 요 앞에 놓고 강단에 요래 기도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기도하다가 그만 번듯이 드러누웠던 모양이라. 드러누워서 그걸, 한참 이래 자고 나서 보니까 강단 위에 번듯이 드러누워 가지고서 자고 있습니다.
그래 교인들이 기도하러 와서 볼 때에 어떻게 봤겠습니까? 이래도 그들이 다 인정을 하고 '저렇게 늘 이래 자지 안하고 기도하니까 얼마나 곤했기 때문에 저런가?' 이러니까 그것도 교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지 안했고 오히려 감동이 되어서 더 은혜가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것 뭐 신앙 생활 하면 이것도 보는 것도 은혜 모든 게 다 은혜가 되는 모양이라.
깰 수밖에 없고 기도할 수밖에 없어서
그래 가지고 이렇게 되지 안 했나 이렇게 생각이 되어지고 또 우리가 모르는 대로 그때에 다급한 공산주의의 이 박해가 우리에게 지금 오지 안하고 이래 있는 것이 우리가 기도의 힘으로 다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대구집회 되기 전에, 공산주의자들이 전쟁적으로 와서 우리를 해한다는 것은 그것은 그때에 일단락이 졌다는 것을 내가 알았고, 그때 그러니까 이 모두 빨치산 게릴라전이 와 가지고서 게릴라전이 와서 이렇게 불사르고 한다는 그런 것으로 자꾸 생각이 되어 졌는데 그때 우리 교회는, 내가 공연한 말이 아니고 불을 사룰 만한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넘어오다가 붙들렸고. 또 다른 데 가 가지고 '먼저는 가 가지고 실패를 했는데 요번에는 가서는 틀림없이 서부교회를 완전히 전소시키겠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또 들어서 왔다 말아오. 그러나 그 일이 안 된 것이 우리가 그때 경비하면서 늘 그러니까 깰 수밖에 없고 기도할 수밖에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기도의 기적
이러기에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 나온 것은 전부 기도와 기적으로 살아 나왔소. 이 가만히 기도의 기적으로 살아나왔지마는 기도할 때는 기도의 기적을 얻기 위해서 기도하지를 안했더라 말이오. 그저 어짠지 그만 기도해야 되겠다 싶어서 기도했는데 지금 가만히 뒤를 돌아보니까 그 모든 것이 기도의 기적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때 기도한 것이다
그러면 그때에 고신에서 저를 그렇게 주 몰고서 애매하게 그렇게 박해를 그렇게 하고 이래도 우리가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이 유익 되게 되어서 오히려 지금 고신에 제일 큰 교회 세 배나 장년반도 되고, 주일학교로 말하면 한 칠 배나, 칠 배도 더 되는 이렇게 되어지고 뭐 세계에 참인지는 몰라도 세계에 제일 큰 어린이 교회라고서 세계적으로 이렇게 되는 이것이 우리가 그때 기도한 것이다.
저 산에 가 가지고 기도하다가
그때 여게 000권사님 이런 분들 다 있는데 그때 집에서 아마 집에서 잔 일이 더러 있었소? 혹 더러 집에서 잤소? 집에서 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거의 다 교회서 기도하다가 엎드려서 자고 어짜고 뭐 이래 이랬지 집에서 잔 일 또 교회에서 잔 일도 없고 저 산에 가 가지고 기도하다가 이래 어군드려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뭐 기도하다가 그만 꼬꾸러져 잤으면 잤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마병이요 불병거라
그런데 그런 기도가 그 기도의 결과로 우리가 이렇게 됐고 기도의 결과로, 나중에 가서 보면 엘리사가 눈이 열려 가지고 엘리야를 볼 때에 '이스라엘 국방은 엘리야 혼자 했다.' 하는 것을 그때 보고서 말했어. '이스라엘의 마병이요 불병거라' 국방 혼자 다 해. 그러면 누가 국방한지 모릅니다.
이 국방은 지금 이것 뭘로 가지고서, 군사력으로 말하면 이북과 이남이 이것 비교가 안 됩니다. 이북이 이남의 삼 배는 됩니다. 삼 배는 됩니다. 혹 이 배 되고 삼 배 안 되는 게 있지만 그 사람들이 악으로 단결된 그 마음 준비라는 것이 이북이 십 배도 더 됩니다. 이랬는데 이것 이래 가지고 되는 것은 하나님이 지켜 주셔 그렇지 그리 안 됩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3, 10, 6 목 새벽)
12-2. 금족령과 사근 집회 1.
금족령
내가 과거에 공비 토벌할 때에 위천 있었는데 위천에서 있을 때에 사근에 집회한다고 약속을 하고 이제 사경회 인도하러 가야 된다고 미리 몇 달 전에 약속을 해 놨는데 그만 그 지리산 공비 토벌하는 그 명령이 내려 가지고 그때에 뭐 심해서 계엄령 내렸다가 또 그 다음에는 금족령이 내렸어요. 맨 마지막에는 금족령이 내려서, 금족령이라 하는 것은 이 집에서 저 집에도 못 가, 집 울타리 밖에는 못 나가는 것이 금족령이라.
약속을 떡 해 놨는데
이러니까 거게는 벌써 다 집을 뜯어 때고 '사람들이 삽짝 밖에는 못 나간다' 이런 소문을 들었지마는, 하나님 앞에서 집회 간다 약속을 떡 해 놨는데 내가 안 가는 거 그거 약속 위반이고 또 하나님이 뭐 보내 주셔 붙들면 거석하더란대도 붙들리기까지는 가는 게 옳지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믿음 없는 증거라 그거요.
어떤 차가 군인 차가 하나 있어
이래서 갈라고 척 나섰어. 갈라고 떡 준비해 가지고 떡 나서니까 어떤 차가 군인 차가 하나 있어. 군인 차가 하나 있기 때문에 '이 차가 어데 가느냐' 이라니까 '함양 갑니다' 이래. '함양 갑니다' 이라면, 함양이면 내가 함양 그 사근이니까 그리 함양 가면 된다 말이오. 그래 '이거 내가 좀 탈 수 있느냐' 이러니까 타라 해. 그 사람들이 군인 차에 타라 하겠소? 타라 해. 탔지. 타니까 떡 함양 함양읍에 딱 내려놨는데. 거기서 사근이 뭐 십 리라든가 이십 리라든가 그래요. 딱 내리고 나니까 아무데도 못 가구로 하는 거라.
삽짝 밖에 못 가니까
내리고 나니까 여기는 전부 집을 다 뜯어 때고 그만 출입을 못 하게 하니까. 연탄 있는 때가 아니니까 그때는 나무 때는 때니까, 산에서 나무를 해다 때야 되는데 금족령이 내려 놨으니까 삽짝 밖에 못 가니까 전부 그 좋은 집을 전부 서까래를 한쪽머리 다 뜯어 때고 있어요. 뭐 추워 놓으니까 그만 추워서 사람 못 견디겠고 이러니까 뜯어 때는 판인데 꼼짝 못 하게 해.
아이고! 안 됩니다.
그래서 내가 '나는 함양읍 예배당에 지금 갈 사람인데 좀 용납을 하라' 이라니까, 그래 그라면서 함양읍에 갔다 말이오. 읍에 내가 간 것은 뭣 때문에 갔느냐 하면은 함양읍에 좀 얼마 전에 집회를 했는데 집회 하니까 거게 뭐 지방장관들이 많아. 그거 뭐 신문기자로 유력한 사람도 있고 또 뭐 경찰서 유력한 사람도 있고 뭐 이런 게 있기 때문에 그래도 거기 가면 무슨 그런 무슨 의지할 게 있어서 그것들이 좀 보호해 가지고 사근을 가라 할 게 아닌가 하고 갔다 말이오.
가니까 다 죽었어. 뭐 꼼짝도 못 하고 '아이고 안 됩니다. 우리 예배당에도 못 갑니다. 여기 그래 우리 집 보이소. 이거 집을 지금 뜯어 때고 이래 가지고 있는데 어데를 간다 말입니까? 못 갑니다. 아예 함부레 여기 그만 계시이소. 여기 있다 다 해제되고 나거든 가셔야 되지 안 됩니다' 그래 말해. 하나도 의지할 놈이 없고 하나도 도움될 놈이 없어.
나는 하나님 의지하고 나는 가겠다
그래 나서서 '나는 하나님 의지하고 나는 가겠다. 너거는 못 가는데 나는 간다' 이라며 나섰다 말이오. 나서니까 보초가 서 있다가 어짠 사람이냐고 그만 총을 들이대더니마는 '어짠 사람이냐' 이래. '나는 지금 여기 사근까지 집회 인도를 하러 가는데 내가 좀 가야 되겠다' 이라니까 말하기를 '여기까지 어째 왔느냐' 대번 이래. '여기 지금 들에 봐야 사람 없고 있으면 대번 총살로 다 죽이는데 여게를 어찌 왔느냐?' '아, 여게 어찌 온 거는 보냈기 때문에 왔을 것 아니가?' 또 이라니까 이라면서 '통과시켜라' 뭐 이라니까 그거 또 통과시켜. 그래 가지고 사근 갔다 말이오.
나는 지금 어데 가는 사람인데 통과시켜라
사근은 가니까 예배도 주일예배도 못 보고 새벽예배도 못 보고 출입이 딱 금지돼서 남의 집에 가는 사람이 없어. 그런데 그때는 그래 놓으니까 나만 헐령헐렁 이래 걸어서 이래 가니까 모두 이것들이 '어짠 사람이요?' '나는 지금 어데 가는 사람인데 통과시켜라' '안 됩니다' 이라니 '아, 다 통과 시켰는데 통과시킬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통과시켰지 암말도 말고 잔소리말고 통과시켜.' 이라니까 또 '가라' 이래 가지고 사근에 왔다 말이오.
누구든지 만나면 다 총살하기로
사근에 오니 뭐 집회가 돼야지? 할 수 없어 그 이튿날 인제 그만 또 돌아와야 되는데 올라니까 그거 그 부대장이 있다가 '안 됩니다 여기 가면은, 누구든지 만나면 다 총살하기로 그렇게 금족령이 내렸기 때문에, 어데를 갑니까, 지금?' 하니까 여기 있다가 이거 해제가 한 아마 며칠 되면 해제될 터이니 그때 가이소.
어찌 됐든 간에 몇 초막을 못 갑니다
꼭 가야 된다고. 기도를 하고 이랬더니마는 그 사람들이, 꼭 가야 되니까 뭐 자기 생명 내놓고 죽을 요량하고 간다 하는 사람이야 뭐 어찌 하겠습니까, 뭐 마음대로 해라 해서, '그러면 가기나 가면은, 어찌 됐든 간에 몇 초막을 못 갑니다. 못 가서 다 생명만 뺏기지 안 됩니다.' 이래 쌓아. 그래도 아 가겠다고. 이래 나섰더니만 그 날 가니까 사람 하나도 없어요.
그때 초소가 칠십 네 초소를 거쳤어
그래 칠십 몇 리를 걸어서 이래 오니까 그때 초소가 칠십 네 초소를 거쳤어. 칠십네 초소를 거쳐서 이제 위천 예배당까지 갔다 말이오. 가니까, 거게 그라면서 내가, '왜 나를 이래 걷게 하는가?' 속으로 '아마 나 혼자 독보적으로 걸어가는 무슨 일이 앞으로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서, 이 전부 일흔넷 죽음을 통과했으니까 이거 뭐 인간으로서 암만 죽인다는 그런 뭐 백프로 죽는 그런 일이라도 하나님이 안 죽이시면 안 된다. 그걸 나에게 자꾸 믿도록 해요. 그래 가지고 그 초소 통과했어,
그때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지금도 그걸 생각해요. 어려움 당하면 그걸 생각을 합니다. 생각을 하고. 그래서 또 인제 6.25 때도 생각하고 왜정 말년 그때도 생각하고 생각해서 그때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함께 하신다 이라는데, 문제는 내가 뭐이 문제냐 하면 그때는 항상 뭐 산에 가 있고 기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이거 산에 가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니까 내가 달라졌으니, 당신은 달라지지 안했지만 내가 달라졌으니 문제다 이래 가지고 걱정이 돼져. 걱정이 돼지고. 이래도 나를 위해서 한게 아니라 당신 위해 했기 때문에 나를 앞으로도 붙들고 승리케 해 주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나마 이제 그때와 같이 기도하는 사람 될라고 자꾸 하루 삼십 분씩 기도하자 이런 것을 내놨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잊어버리면 안 돼
이래서 과거에 하나님이 나와 같이하신 그 신앙 생활에 돕던 그것을 꼭 여러분들이 잊어버리지 말아야 됩니다. '전날에'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요것을 언제든지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과거에 주님이 자기에게 함께 하신 그것을 기억하고 잊어버리면 안 돼. 자꾸 그것을 되새겨요 그것을, 하나님께서 자꾸 되 새기라 했습니다. 이랬는데 사람들 앞에서는 그라면 그 사람들이 오해해요. 저것 또 제 자랑한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마는 이라니까 뭐 그거는 그만 하지 말고 자기로서는 자꾸 되새겨. '과거에 언제도 어떻게 했다. 어데서 어떻게 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9, 2, 13 월 새벽)
12-3. 금족령과 사근 집회 2.
고난의 큰 싸움을 참은 것을 생각하라
이 신앙 생활로 인해서 ‘고난의 큰 싸움을 참은 것을 생각하라’ 우리는 과거에 고난의 큰 싸운 것을 언제든지 생각해야 됩니다.
(히10: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과거에 내가 이런 고난에서도 주님이 나를 구원하셨다. 이런 어려움에서도 나를 구원하셨다. 이렇게 절망 가운데서 나를 구원하셨다. 이렇게 고독할 때도 나를 구원하셨다. 이렇게 첩첩 원수 속에서도 나를 구원하셨다.'
금족령을 내려서
저도 그런 것 많아요. 그런 것 많은데 하나는 금족령을 내려서, 그때는 금족령을 나라에서 토벌하기 위해서 내렸으니까 전부 사람들이 집을 뜯어 땠어요, 나가지 못하니까. 겨울이니까. 집을 다 뜯어 땠어.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얼어죽을 지경이니까 집을 전부 뜯어 가지고 한쪽머리를 때고 하는 그런 때인데 그때에 나는 사근 거게 사경회를 약속했다고 약속한 걸 지켜야 된다고, 하나님 앞에 약속한 걸 지켜야 된다고서 나가니까 군인 차가, 그때에 군인들밖에는 못 가는데 군인 차가 있어. ‘나 저 함양 갈랍니다. 좀 타고 갑시다.’예, 타시오.' 이래. 하나님의 경영이 있어 타라 했어. 탔다 말이오.
타니까, 함양 가니까 사람도 하나도 없지, 나는 거게 뭐 신문기자도 있고 뭐 어짜고 하기 때문에 어북 그것들이 큰소리 해 쌓아서 뭐 큰 소리 하면 뭐이 될 줄 알고 거게를 찾아갔다 말이요, 아무도 못 가는데 찾아갔어.
찾아가니까 아이고, 지금 보이소, 우리 집 뜯어 때는 것 보이소. 지금 뭐 옆에도 못 가고 이웃집도 못 가고 이라는 판인데 어데 사근을 간다 말입니까? 못 갑니다.너 그때 뭐 큰소리 해 쌓더니만 그 빽이 없나? 좀 갈 수 없나?아이구 뭐 경찰 이 사람들 꼼짝도 못 합니다. 군인들 판이라 지금 모두 군인들한테 꼼짝도 못 합니다. 에라 이거 뭐 하자고 해서 그래 그만 나섰어.
나서니까 그 초소에서는, 초막에서는 사람만 보이면 무조건 쏘기로 결의했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 사람들을 금족령을 내려서 문 밖에 나가면 다 쏴 죽어. 그러기 때문에 문 밖에 나가는 사람들 다 쏘여 죽었어. 이러니까 사람이 하나도 출입 없어. 그래 갔어. 가니까, 총을 딱 대면서 여기가 어데라고 와? 어째 왔어?
`아, 나는 저게서 보내서 왔지. 거게서 못 가구로 하는 걸 내가 뭐 날아왔을까? 또 통과 통과 이래 가지고 사근교회 가니까, 추 목사님 계신 데 가니까아이구 이거 참, 이거 지금 우리 새벽예배를 못 봅니다. 전부 앞집에도 뒷집에도 아무도 오지 못하고 도무지 출입을 못 하는데 사경회가 뭐입니까? 안 됩니다.이라면서 뭐 놀래.
그래서 쉬어 가라 해서 거기서 밥 먹고 자고 그 이튿날 아침에 나섰어. 나섰는데 초소가 일흔넷 초소라. 일흔넷 초막이라. 일흔넷 초소인데 거게 와 봐야 하루 종일 아무도 없어. 차도 없고 아무것도 못 다녀. 차도 못 다녀요. 그저 군인 차만 다니지 버스고 뭐고 그런 거는 하나도 없어요. 아무것도 못 다녀요. 들에 사람 하나도 없고.
그래 여게서는, 저게 가면 그 사람들은 죽일라고 기다리고 있는데 죽는다 하는 게 아니라, 참새 한 마리도 주님에게 있기 때문에 주님이 안 죽이면 못 죽는다. 또 보자. 또 보자. 일흔넷 초소를 그때 한 칠십 몇 리를 걸어서 이래 갔어. 무사히 갔어.
네가 이렇게 고독한 걸음 걸어야 된다
그래 가며 나 혼자도여게는 꼭 죽는 곳인데 이곳을 가는 거 하나님이 뭐 할라고 지금 이라는고? 뭐 뜻이 있어 이라는데.그래 내가 그 뒤에 생각하기를네가 이렇게 고독한 걸음 걸어야 된다. 고독한 걸음 걸을 때에 이렇게 사망의 이 초소가 많이 있어도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하기 때문에 문제없다.하는 것을 이걸 나에게 보여 줬기 때문에 앞으로 내게 있어서 어떤 죽음의 선이 총총 놓여 있어도 상관없이 그때 나를 보호하시는 주님이 오늘도 보호하신다.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분이 지금도 보호한다 하는 것으로서 열두 그 초석을 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그 과거에 고난받은 것,
그만 낙태해서
빨갱이는 나를 죽일라고 이래 가지고, 우리 집에 아내는 얼마나 혼겁을 쥐먹었든지 그만 낙태해서, 그거 순교가 될란지 몰라요. 하나 낙태해 버렸어요, 그만. 밤에는 이 집 밖에 그 장작을 가져오라 해 가지고 장작을 이 산더미같이 재놓고 막 불을 뺑 돌아 피워 놓고, 어떤 것이 여기 올까 싶어서, 인제 못 오도록 하기 위해 한다 하며, 그 위협 주는 거라.
그래 놓으니까 우리 집에 아무도 오는 사람 없어요. 그때 아이가 죽었는데 누가 올 사람이 있어야지? 이재순목사가 혼자 와 가지고 초상을 쳤어. 나는 지금 사경회 하러 돌아다니고.
여기 가면 여게서 잡으러 오면, 소문 듣고 잡으러 오면 저리 가 또 저기 가서 또 그 날 또 집회하고, 또 거기 가 소문 나 잡으러 오면 또 저기 가 집회하고, 돌아다니며 자꾸 집회만 하며 돌아다니는 거라. 집회만 하며 돌아다니며 소식만 듣고. (백영희목회설교록 1987, 5, 6 수 오후집회)
12-4. 6·25 지나고 三郡 첫 교역자회
6·25 지나고 거창에서 교역자회
과거에도 그랬고 또 지금도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 능력을 믿는 사람마다 다 기적을 봤습니다. 평소에는 잘 모르는데 6,25가 지나고 나서 그때에 거창에서 교역자회를 6,25 지나고 나서 처음에 모였습니다. '이제 인민군이 다 장난하다가 다 물러갔으니까 교역자회를 모이자' 그래 주남선 목사님이 교역자회를 모두 초청해서 함양군, 거창군, 합천군. 삼군(三郡) 교역자가 다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모여서 6․25 때에 어떻게 지냈는가 그 간증을 하라 이라니까 뭐 죽음에서 살아 나오지 안한 사람 별로이 없고. 몇 명 사람은 그들에게 있으니까 죽을 터이니까 피난 간다고 도망을 쳐 가지고 간 사람들은 살아 가지고 오기는 왔지마는 하나님의 권능도 보지도 못하고 고생만 진뜩하고 그래 왔습디다.
하나님이 죽음에서 나를 구원하셨다
그때에 '나를 나게 하신 이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시요 또 우리의 생명을 좌우하실 이도 하나님 아버지시지 너희 인민군들이 암만 해 봤자 너거는 털끝만치도 권리 없다' 하는 것을 꽉 믿은 사람들은 그 뭐 제 삼자가 볼 때에 위험 천만했지 본인들에게는 평안함으로 계속했습니다.
그래서 참 사람으로서는 살아 나올 수 없는 그런 위기를 몇 번이나 만나 가지고 다 만나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함을 입어서 그때는 모두 기뻐 가지고서 하나님이 죽음에서 나를 구원하셨다 하는 그런 간증을 하는 교역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의례히 하나님이 내 생명을 주관하시고
또 어떤 교역자들은 뭐 죽음에서 건지셨다 하는 그런 간증도 없이 의례히 하나님이 내 생명을 주관하시고 존재를 주관하고 계시니 뭐이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니까 그들이 그래 많은 위협을 해도 다 웃음으로 지냈고 기쁨으로 지냈고 거기에 대해서 죽음에서 살렸다 하는 그런 무슨 충격이나 그런 기적감도 느끼지 안한 그런 사람들이 많았었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5, 4, 17 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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