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29 22:01
19장 교회와 총공회 목회
19-1. 서부교회의 장점과 단점
그 장단점이 차이
사람은 다 원만치 못한 것이 사람의 단점입니다. 이 면에 장점이 있는 사람은 또 다른 면에 단점이 있고, 또 단점 있는 그 사람도 또 다른 면에 장점이 있어서 이렇게 서로 서로 섞여 살기는 사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이 교파는 이런 장점이 있고 또 다른 교파는 다른 장점이 있고 또 다 같이 믿는 가정이지마는 이 가정은 이 단점을 보면 당장 망할 것이지마는 또 다른 면에 장점이 있어서 유지가 됩니다. 또 개인도 그러합니다.
사람이 그 장단점이 차이가 있지 있기는 다 있는데 그 장점만 보는 사람은 장점으로 그 사람을 과대 평가하게 되고, 또 단점만 보는 사람은 그 사람을 과소 평가해 가지고 실수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제일 단점은 무엇인고 하니
우리 서부교회는 제가 알기로는 하나님의 지식을 배워서 깨달아 가는 데에는 다른 데 떨어지지 않는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는 줄 압니다. 또 모든 신앙면에 있어서도 단점에 빠져 있는 그런 것은 아닌 줄 압니다. 그러나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 단점은 무엇인고 하니 물질면에 대해서는 우리 서부교회가 단점이 되어 있습니다.
이래서 서부교회는 지게꾼 교회라, 그 말은 노무자의 교회라 하는 말입니다. 또 가난한 교회라 또 그렇게 말합니다. 또 무식한 교회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이렇게들 저렇게들 말을 하지마는 그 하나로 그 요지인 근원을 들어 말하면 물질 단점입니다.
무식하다는 것은 좋은 옷 입을래야 좋은 옷 입을 수 없고, 좋은 가옥에 거처하고 싶어도 좋은 가옥을 거처하지 못하고, 또 훌륭한 이름높은 그런 사업가가 되고 싶어도 사업가가 되지 못하니까, 유물주의 세상에서는 물질 없으면 그만 못난 사람이요, 또 물질 없으면 무식한 사람이요, 물질 없으면 다 무지 무능의 사람으로 도매평을 하는 것이 이것이 인간의 타락 세계에 행사요 또 문화로도 후진 국가의 습성인 것입니다. 제일 단점은 무엇인고 하니 경제에 대해서 가난하게 지내는 이것이 제일 단점입니다.
초급으로 주는 축복이 물질 축복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에게 속한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 제일 초급으로 주는 축복이 물질 축복입니다. 이제 그 다음 축복이 사람들에게 지능을 주는 축복입니다. 그 다음 축복이 사람이 성공되는 사람 부요의 축복인 것입니다.
반사직을 하고 있는 이런 사람들, 깨달음의 지혜는 높은 사람들
서부교회는 죽자 껏 노무자들이 벌어 가지고 영양실조 될 만치 자기가 궁핍하게 지내면서 주일학교 학생들을 인도해 보겠다고 그렇게 심신을 기울여 어느 교회보다도 자기 역량대로는 다해서 사람을 구원해 보려는 이 반사직을 하고 있는 이런 사람들, 깨달음의 지혜는 높은 사람들입니다.
왜? 그 외에 천하를 다스려서 권세를 가졌다 할지라도 다 불탈 것이지마는, 예수님의 이 공로로 인간을 구원하는 이 일은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무궁세계에서 잃지 않겠다고 하신, 이 알찬 일 영원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니까 그 사람들은 깨달음의 지혜는 어떤 정치가보다, 어떤 사업가보다, 어떤 경제가보다, 어떤 과학자보다,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에 비추어서 높은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면에 대해서는 모두 다 곤고함을 지내고 있습니다.
제일 원인은 저에게
이렇게 경제면으로 빈곤하게 지내는 그 원인은 여러분들에게 있지마는 여러분들에게 있는 것은 제이 원인이고 제일 원인은 저에게 있었습니다. 있은 이유는 경제면에 대해서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를 가져야 된다는 그것을 제가 이제까지 별로이 가르친 일이 없었습니다. 일 년 내내 연보에 대한 설교는 한번 있을까 말까 했습니다. 또 건축이나 이런 일이 있어도 혹 한번 있거나 어떨 때에는 연보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아니하고 지나가는 때가 많았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자마다 올 때에 빈손으로 오지 말라는 이 성구를 지켜 어떤 사람은, 꼭 그것은 그래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매 새벽에, 어떤 또 집회에 갈 때에 언제나 특별히 하나님 앞에 간다고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간다고 생각할 때는 빈손 가지고 가지 안 하는 그런 일을 일생 동안 계속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이 외식이 아니겠느냐 해서
그러나 우리 교회서는 그런 것을 제가 별로이 성경을 들어서 가르치지를 안 했고 또 연보 하는 것도, 연보 주머니를 돌린다, 또 연보 바구니를 돌린다, 또 연보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해 붙여 광고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이 외식이 아니겠느냐 해서 누가 넣는지 안 넣는지 그렇게 하지 안하고, 연보궤를 만들어 놓고 연보를 해 나왔습니다.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비판할 때에참 그것이 좋다. 그게 옳다. 하나님 앞에서 광고를 하고 연보주머니를 돌리고 그러는 것보다는 그게 참 신사적이고 그게 또 하나님 앞에 당연한 일이다.이렇게 높이 평가하는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연보를 잊어버리고 갈 때도 있는데 그 서부교회는 낱낱이 연보 주머니 돌리면 없으면 그때 참 낯이 화닥거리는데 거게는 그런 것이 없이 연보 주머니를 돌리지 안하니까 좋더라. 연보 바구니를 돌리지 않기 때문에 좋더라. 연보한 사람의 이름을 그렇게 광고해 선포하는 그 듣기 싫은 소리하지 안하니까 좋더라.하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이것이 오랫동안 지내 나오는 가운데에 이 경제면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되지를 못해서 경제에 이 축복이 인간을 구원하는 구원 축복과 어깨 겨룸을 해 가지고서 이렇게 성장돼 가지 않는다 하는 것을 요즘에 와서 제가 깨달았습니다.
그런 궁핍을 느껴본 일은
이전에는 우리 서부교회에서 개척교회를 하고 싶다 할 때에 개척교회를 할 만한 사람이 있는데 물질이 없다 하는 그런 궁핍을 느껴본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물질은 있으나 사람이 없다 그것을 느껴왔고 또 우리 서부교회에 교인이 없어서 문제지 예배 볼 장소가 없어 문제되지는 않는다 하는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교인은 많은데 예배 볼 장소가 없어서 이것이 문제다 하는 그런 궁핍감을 느껴보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러니까 물질면에 대해서는 제가 그렇게 강조하지도 안했고 또 거게 대해서는 연보궤를 해 놓고, 월정 연보도 다른 데는 있고, 십일조 내면 십일조 내고 안 내는 사람들도 다 그것 있고 이름이 있는데, 교회에 교인의 교적부 그 명단과 같이 십일조 명단도 꼭 같이 되어 있고 이러는데, 나는 그것을 너무 유치한 일이 아니겠느냐, 외식되는 일이 아니겠느냐, 해서 그 면을 별로이 여러분들에게 깨우쳐 드리는 그 일을 등한히 했던 그런 죄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경험한 대로, 저는 예수님 믿기 시작한 그때부터 성경에 보니까 십일조 말했는데 그게야 하기 쉽지 않소? 십일조는 그 시부터 했습니다. 또 연보할 때에 누구를 보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 물질의 축복은 예수 믿은 지 삼 년이니까 축복 받았습니다.
내가 처음에는 그때는, 지금은 모든 사업들 이 공업들이 많이 발전됐지만 그때는 일본 나라의 식민지로 있을 때에 그런 업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있다고 하면 술도가 하는, 사람 망치는 그 업체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 업체를 제가 해서 술도가 술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다가 예수님 믿는 복음을 듣고 난 다음에, 술도가 하면서 많은 돈이 있었습니다. 저 동리에 가서 누르팅팅하이 좀먹은 썩은 돈이 나오면 술도가 백영희한테서 나온 돈이로구나그렇게 일반이 알았습니다.
왜? 둘 곳이 없기 때문에 벽에도 창고를 내놓고 거기다 갖다 넣어놓으면 동록이 슬고 또 나중에 내 풀고 이랬는데 예수 믿은 후에 불의한 재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한 푼도 없이 다 흩쳤습니다.
이리 저리 다 흩쳐서, 그저 제 보기에 여기 쓰는 것은 가타(옳다) 싶은 데는 다 해서 하다가 마지막에는 성서공회에, 줄 데가 없어서 거기 다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지 후 삼 년 동안 곤고한 생활을 지냈습니다. 콩잎파리 죽, 쌀이 없어서 콩잎파리도 온 걸로 이와 같이 넣어 가지고서 쌀내끼 뜨문뜨문 있는 것, 그래 먹으면서도 하나님의 계명대로는 지켰고 십일조는 꼭꼭 지켰습니다.
삼 년이 되니까 어찌 되는지 제가 부자가 됐습니다. 저거 장모가 와서 말하기를야, 너거는 술도가 할 때와 같이 돈은 한 푼도 안 버는데 쓰는 것은 그때 요량하면 훨씬 많이 쓰고 재산은 점점 많이 늘어가고 하니 너거 한 사람 전도하는데 대체 돈을 얼마나 받길래 그러나?자기 딸한테 와서 묻더랍니다. 그들은 그렇게 계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에 내가 고제면에 있었는데 주상면에 내려가니까 면에 있는 우리 팔촌형이 있다가서 말하기를 쫓아오더니만 손을 잡으면서야, 내가 여게서 소문을 들으니까 자네는, 소 코군더리 하나 요만합니다. 한 마리 코군더리가 요만하요. 코군더리만 빼도 추럭으로 세 추럭 된다면서? 정말로 그렇츰 소가 많으나?뭐 그렇지는 많지 안하지마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소는 많습니다.그러고 지냈습니다.
그때 왜정 말년에 제가 대구 오니까 제일 좋은 높은 여관에 가면 밥 주지 싶어서 가니까 겨로 만든 떡 세 개 외에는 식사가 없습디다. 그렇게 쌀 귀했습니다.
모두 배급은, 전부 다 공출하고 배급을 가면 요만씩 하나 앞에 그저 솔방울 요만밖에 안 되는 걸 그냥 먹으면 다 굶어 죽으니까 나오면 이것을 구십 봉지를 만들어 가지고 천장에 달아놓고 한 끼에 한 봉지씩을 내 가지고서 그저 뭐 그걸 물에 풀든지 어쩌든지 해 가지고 먹는 사람은 부황 안 나고 살았습니다.
그때 형무소에서는 영양실조로 죽어 나오는 그 죄수들이 거의 다 죽어 나오고 남은 죄수들이 없었습니다. 그만치 어려울 때입니다. 어려울 때도 하나님이 주셔서 우리 곳간 안에는 쌀이 곳간으로 꽉 재여 있었습니다. 그때에 뭐 소원하는 것이면 뭣이든지 쌀만 주면 다 됐습니다.
제가 그렇게 경험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믿기를 바로 믿으면 물질적 축복이라 하는 그것은 삼 년이면 다 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제가 얼마 지나고 나서 유급의 전도사로 나오면서 또 이차적으로 다 없앴습니다. 할당으로서 자녀들에게 다 모가치 줬어. 너거 모가치는 어쩔래? `나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바치겠습니다. 다 바치고 우리 가족 한 사람은 바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 그것 남았었는데 그것은 나중에 다 불의의 재물로 다 쓰여지고 맙디다.
그러고 교역자로 나섰습니다 나섰으나 오늘까지 경제에 어려움 당한 일 없고, 교역자로 나오고 난 다음에도 호박죽 사흘 동안 남 모르게 먹은 일은 있습니다. 처음에 나왔을 때. 제가 위천교회 왔을 때 그런 일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 계약대로 경제에 어려운 꼴은 한번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러기에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만 믿으면 경제라는 그까짓 거야 하나님이 제일 낮은 축복으로 얕은 축복으로, 자기 행위가 고쳐진다 거게 비해서야 경제 그거야 무슨 큰 것입니까?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가 된다 하는 거게 비하면 행위나 경제 그런 것이 또 무슨 큰 것이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는 제가 예사롭게 생각해 왔습니다.
첫 부임이 넷 교회를 맡았고, 그 다음에는 단(하나) 교회를 맡아 가지고 위천교회를 갔었는데 가니까 교역자로부터 모조리 거지가 돼 가지고서 그저 그 끼를 잇지를 못해 가지고서 언제든지 죽, 굶는 것 그거요.
거기 가서는 왜 너희들이 이와 같이 곤궁하게 지내느냐? 빈곤하게 지내느냐? 이는 분명히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회개하라. 하는 것으로서 그때 거게서는 제가 하나님 앞에 물질에 대한 이 면을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거게 일 년 반 있다 왔습니다. 이렇게 살면 너희들이 삼 년이면 경제 문제는 해결이 되리라 선언을 하고 일 년 반 있었는데 일 년 지낸 지 후에는 다 경제가 그냥 조반석죽이라도 끼는 굶지 아니하고 살 수 있게 됐습니다.
부산 서부교회 이동
그러고 난 지 일 년 반 만에, 삼 년이 못 돼서 일 년 반 만에, 제가 부산을 안 오려고 했는데 여게 한상동 목사님, 한명동 목사님, 박손혁 목사님, 송상석 목사님, 이인재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오종덕 목사님 이 일곱 목사님이 연명날인을 해 가지고서 송상석 목사님이 두 번 심부름 올라왔습니다. 오라고 해서, 고신에 제일 머리되는 분들 아닙니까? 안 가려고 대항하다가 하도 그래서 어쩔 수 없어 왔습니다.
제가 올 때에 이사 오면은 다른 것은 그때 없으니까 떡을 해 가지고 오다가서, 점심을 먹겠다고. 거게서는 그때는 부산까지 오려 하면은 하루 밤 하루 낮이 걸릴 만합니다. 하루 밤 낮에 잘 못 옵니다. 주야 이십사 시간 만에 못 옵니다. 한 삼십육 시간 돼야 옵니다. 지금은 뭐 참 이렇게 고속이지마는 그때는 차들이 그저 쫓아가는 것만밖에 안 됐습니다.
오려고 떡을 했는데 밤에 떡을 해 가지고서 새벽에 나서려고 보니까 떡이 발개. 색깔이 발개. 먹어보니까 맛은 조금도 변하지 안했는데 색깔은 발개. 내가 그래서 그것을 껌쩍쳐서 내가 이것 부산 가 가지고서 이렇게 이 껍데기가 변질되겠으니 내가 가지 않겠다하고서 머물렀으나 약속을 해 놔서 어쩔 수 없어서 왔습니다.
내가 여기 부산 와 가지고서 껍데기는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속은 깨끗합니다. 껍데기 행위가 좀 나빴거나 무슨 다른 사람에 이름이 나빠 그랬지 하나님과 나와에는 결합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 결합된 그 진리는 그대로 계속했습니다.
여기 와서는 보니까 내가 시골 있다 와 보니 생활이 다 모두 괜찮고 시골에다 비해서는 궁핍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기 대해서는 별로이 내가 강조하지를 안했고 연보도 궤 놓고 하고, 헛뻐서 연보에 대한 그것을 연보 해라. 안 하면 너희들이 망한다.하는 이런 말을 하지를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현재에 다른 신앙면으로 다른 면보다는 경제면이 궁핍하다 하는 그것을 여러분들은 느끼는지 몰라도 제가 기독교 방송국에 가니까 그 국장이 소개하기를이 서부교회는 지게꾼 교회로 이름이 난 교회인데 그 교회 목사님입니다. 하면서 그 직원들에게 소개를 합디다. 그때사 내가 조금 알았습니다.우리 서부교회가 이렇게 궁핍한 교회고 노무자의 교회인갑다.그 뒤에는 연신 그런 말이 들어와도 내가 거게 대해서 그것을 별로이 관심 있게 듣지를 안했습니다. 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한 것이니까 노무자 교회가 그뭐 영광되지 뭐 욕될 것은 없다. 가난한 사람들만 모여서 예수 믿는다 하는 것이 그것 뭐 욕될 것은 그리 없다.이렇게 생각도 했고, 또 개척교회 하는 데도 그렇게 물질에 필요성을 느끼지를 안했고, 또 본교회에서도 물질에 대해서 그렇게 궁핍성을 느끼지를 아니했습니다.
아니했는데 요즘에는 거게 대해서 제가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인물 양성을 많이 해서 지금 가면 일등 목회자 될 사람들이 우리 서부교회에 가득 찼습니다.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어 파송 못 보냅니다.
이제는 선포를 그렇게 해 놨어.교회를 세워놓고 목회자로 나가라 이렇게 할 돈이 없기 때문에 교회 세워놓고 목회자로 보내지는 못하겠다. 너거가 너거 힘으로 가 가지고서 개척교회를 해서 교회를 세우면 그제야 전도사라는 인허를 해 주겠고 그러고 난 다음에 목회를 잘 하면 성적 보아서 목사로 안수를 하겠다. 우리가 선교를 할 만한 그런 뒷받침의 경제가 따르지를 아니한다. 이래서 작년에도 개척교회 다섯 교회를 보내면서 한 교회 이백만 원씩밖에는 못 보냈고, 한 교회 가는 그 교역자에게 사례를 월 십만 원씩밖에는 보내지를 못했습니다. 이것도 옆에 모든 지교회들의 협조를 받아 가지고서 그렇게 했었습니다. 우리 교회서는 매월 이백만 원밖에는 부담을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또 하나님께서 이제 일꾼들이 딴데로 나가서 일을 하지 못하니까 이 안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일을 하니까 이 주일학생들이 가속도로 늡니다. 지낸 주일은 팔천육백 몇 명이니까 약 구천 명이 모였습니다. 구천 명이 모였는데 모인 장소는 다른 사람이 보면 여기 우리 교회 같으면 이천 명도 모일까 말까 한데 여게서 무슨 칠팔천 명이 모여? 이랬는데 약 구천 명이 모였으니까 앉지를 못하고 다 섰었습니다.
또 지난번에 장년반도 삼천 몇백 명이 모였다 하는데 이러니까 이제는 얼굴을 보지 못하고 저 아랫층에 거의 차서 여기 좀 있으면 딴데로 밀릴 데 없으면 여기 복도에 앉을 것입니다.
이제는 이제사 와서내가 이렇게 연보에 대해서 연보궤를 꾸며놓고 하는 이것이 공연히 이상주의로, 이상주의로 커서 올라간 초월 방편이 아니고 이것은 끊어져서 가는 이 초절 방편이 됐구나. 초절 방편이 됐구나.공연히 저만 생각하고 모든 교인들이 다 그렇다고 생각해 가지고서 여게 대해서 초절해서 이 면이 구비치 못한 하나의 흠점이요 기형적인 서부교회로구나.하는 그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제 이 경제면도 구비하게 자라서, 지식만 자라고 행위만 자라고 사람만 자랄 게 아니라 경제면도 자라서 이 경제면도 같이 보조가 맞아 나가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겠다 하는 그것을 느꼈습니다.
중간반 반사가 스물일곱 사람이 등용
벌써 중간반 반사가 스물일곱 사람이 등용이 됐습니다. 아마 금년 내에 중간반이 삼천 명은 더 될 것입니다.
주일학교가 벌써 구천이 가까왔는데
주일학교가 벌써 구천이 가까왔는데 칠백오십 명의 반사가 금년에 등용이 되고 그만한 자격자가 있으니 금년에 주일학교 학생이 만오천이 아마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면 예배 볼 장소가 없습니다. 요 지역 내에는 암만 해야 안 됩니다. 딴 지역을 어데 가서 사서라도 사 가지고서 집을 지어서 여게서 선을 연결시켜 가지고서 부득이 이렇게 합동 예배를 보도록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장년반은 일부 이부 많으면 삼부라도 된다 할 수 있지마는 주일학생은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왜? 여덟시 반에 예배 본다 하면은 벌써 일곱시부터 오는 학생이 있습니다. 또 아홉시 반에 끝내면 열시까지 또 앉아 있는 학생들 있습니다. 이는 장년반과 같이 그렇게 시간을 규율적으로 지키지를 못하기 때문에 일부 이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 우리가 요(要)하는 것은 지금 있는 이 대지(垈地)만하고 이만한 건물이 있어야 금년을 감당할 수가 있겠는데 내가 보기에 우리 서부교인들은 다 가난합니다. 여러분들이 다 가난합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낼 수가 없습니다. 가난합니다. 속에는 뭐 어떻는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는 가난타 그거요.
새로 이 반사 노릇을 하고 모두 진리가 눈이 뜨여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아무것도 없던 그 거지가 제대해 가지고 나온 지 일 년, 혹은 일 년 반 되는데 벌써 삼사십만 원의 수입을 봐, 사오십만 원의 수입을 봐, 다 조그만씩이라도 회사라 하는, 사장이란 말 안 들어도 사장이라는 그런 위치를 가지고 있어 또 이런 사람들은 다 그것을 다 등용해 가지고 또 중간반 반사로 채용해 버립니다. 또 그것은 또 권찰 하라고 일꾼으로 채용해 버립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내고 싶어도 낼 돈이 없어 못 내고, 필요 있고, 이러니까 이러면 어찌 되느냐? 이는 없는 가운데서 있게 하시는 무한의 소유를 가지고 계시는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주시면 얼마든지 됩니다.
일계단이 되는 이 경제면을 밟지 아니하고
이래서 전 번에는 제가 며칠 전에 그런 말했습니다. 나는 기형적인 목회를 했다. 너무 이상적으로 영감과 진리와 행위와 사람되는 여기서만 주력을 했지, 그러니까 세상이 보기에는 등신 같지마는 실은 사람들은 돼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초급이라는 일 학년 제일 초급, 신앙 생활에 제일 쉬운 초급인 일계단이 되는 이 경제면을 밟지 아니하고 경제면을 뛰어넘어서 초절적으로 신앙을 기르고 교훈한 이것이 기형적이었다 하는 그것을 느꼈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1, 2, 1 주일오전)
19-2. 서부교회 주일학교
고신 계통에서 주일학교 부장 50명 견학
이번에는 대구에 있는 고신 계통에서 주일학교 부장 50명이 토요일 날 와 가지고 여기서 심방 같이 하고 주일날 새벽에도 심방하고 주일날 가르치는 것을 참석하고 그래 그 날 여기서 예배드리고 갈 것입니다.
감리교에서도 유력한 분들이 사십 명 견학
또 감리교에서도 그 유력한 분들이 사십 명이 온다고 하고 또 어디서 또 뭐 좀 모르는 데 먼데서 오는 모양입니다. 이십 명이 오고, 또 어디서 사십 명 오고, 내가 적어 주는 걸 잊었습니다. 이러니까 토요일 날 여기 주일학교를 와서 참관하고 주일학교를 운영하는 데에 도움되는 힘을 얻기 위해서 오는 분들이 150명으로 미리 전화가 와 가지고 있습니다.
시찰로 참관하러 견학하러 온 횟수가 1,037 회
이러니까 이럴 때마다 나는 지금 뭐 졸려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분들이 와 가지고 여기서 참 은혜를 받고 가면 좋지마는 왔다가 '소문 듣고 갔더니마는 허무하다.' 해 가지고 도리어 소망을 잃어버린 그 실망을 가지고 간다고 하면 얼마나 주님이 섭섭해하시겠습니까? 이러니까 이거 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니까, 우리가 뭐 이런 광고한 것 아니오. 벌써 여기 시찰로 참관하러 견학하러 온 횟수가 천삼십 몇 회입니다. 천삼십 몇 회라 했소? 어? 천삼십칠 회나 이래 오는 것이 그분들이 다 우리보다 귀골들이오. 또 분주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좋은 유익을 줄 수 있는 본이 돼야 되겠고
그런데 자기 교회를 다 둬 두고 맡겨 놓고 여기 온다는 것이 얼마나 그 어려운 일이고 힘드는 일인지 모릅니다. 그나마 하나둘이 아니고 오십 명씩 사십 명씩 이렇게 단체를 해 가지고 온다는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인데, 우리가 위해서 기도해서 여기 반사 선생님들도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들에게 좋은 유익을 줄 수 있는 본이 돼야 되겠고, 또 건강도 해야 되겠고 또 학생들도 그렇게 모두 다 덕이 돼야 되겠고, 그 선생님들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은혜를 받지 그리 아니면 아무리 은혜가 될수록 마귀 들어가 놓으면 정반대로 보여집니다.
그저 충성되게 해서 교회를 잘해 나가겠다는 것
이러니까 많이 위해서 기도하시고, 이거 우리에게 사명인데 우리가 뭐 이렇게 하려 한 것 아니고, 저도 이걸 이런 경영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주일학교 뭐 교회 그저 충성되게 해서 교회를 잘해 나가겠다는 거 그렇게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지 이거 세계 제일 큰 어린이 교회니 한국에 제일 큰 어린이 교회니 해 가지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찰과 견학하러 오기까지 된다는 그런 거는 꿈에도 생각을 안 했습니다.
주님이 모아서 이렇게 했는데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이거 주님이 이와 같이 하신 것인데 그러니까 주님이 모아서 이렇게 했는데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있는 충성을 다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신 데 대해서 후회가 없도록 되면 하나님도 기쁠 것이고 우리도 복 있지마는 우리가 거기서 불충하고 교만하고 나태해서 만일 오는 분들에게 은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주님도 섭섭할 것이고 우리도 그 책임이 심히 무겁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9, 1, 18 수 저녁)
19-3. 목회자양성원의 방종 방탕 질책
왜 업신여기고 깔보느냐?
지금 우리 진영에서 나간 사람들이 이 진영에 미련을 가지지 않습니다. 깔봅니다. 업신여깁니다. 왜 업신여기고 깔보느냐? 그들이 이 교훈은 절대 깔보지를 못할 것입니다. 또 제가 주장하는 그 주장도 정치가 행정이 안 맞는다. 정치가 안 맞는다 말하지만 그 말은 인화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대해서 반발로 나온 소리인데, 그 소리는 죽을 때라도 반드시 자기가 후배를 기를 때 되면 그때에 반드시 하나님 심판 앞에 가 가지고는 후회가 막심하고 그 말이 옳다고 입으로 영원히 찬양을 해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성경을 백 독을 읽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그것 때문에도 깔보는 것도 아니오. 깔보는 이유는 우리 목회자양성원을 두고 깔본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현저히 성경 백독(百讀) 백독 말하지만 이것은 이름이라도 그래 가지고 억지로 그래서 차차 차차 참으로 성경을 백 독을 읽는 사람이 되게 하려는 이 목적에서 그렇지, 시발된 초대교회가 다 능력 있었지만 우리 목회자양성원을 중심으로 두고 목회자들을 양성하고 있는 우리 진영에는 시발의 초기 목사님들 다 허무합니다. 앞으로 그런 목사들만 나면 우리 진영은 다 파괴됩니다. 전부 무능이오.
목회 하는 목회 실력은 아주 허무
그것을 참 설교도 낱낱이 가르쳐 가지고, 그것을 녹음 테이프 그것 가지고 가 가지고 옮기고 그래도 제가 한 것처럼 이래 교만만 늘어 가지고 교인들 호랑이 잡는 그런 이런 일이나 늘어 가지고 배짱 내는 것 이것이나 늘었지 실은 그 목회하는 목회 실력은 아주 허무합니다. 다른 진영에 있는 사람들은 이 교훈의 이삭만 주워도 그걸 가지고 큰 힘을 삼아 가지고 이러는데 여기서는 그것이 없다 그거요.
앞으로 그런 목회자들만 계속해 나온다고 하면 이거 아예 막살해야 되지, 목회자양성원 치워 버리고 그저 저 혼자 목회 하는 대로 하다가 그만 떠나 버려야 되지 이거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쓰지 못할 무저리기들만
그래도 앞으로 차차 차차 경건 연습하고, 지극히 작은 것 충성하는 이 일을 함으로 좀 좋은 참 인재들이 날까 하는 그것을 생각하고, 보니까 간판 있는 데는 모든 자질이 좋은 사람들이 오지만 여기에는 간판은 없고 아예 입문이 좁게 돼 가지고 있소. 왜? 입학도 하기 좁지, 또 우리는 유명하지를 못하지, 하나의 이단자 같이 이렇게 생각하지, 이러니까 자질이 좋은 사람들은 안 들어오고 쓰지 못할 무저리기들만 여기에 들어왔다 그말이오.
목회자 양성원에 학생들 여러분들이 지금 목회자로서는 아주 무저러기, 부스러기, 찌끄러기 그런 인물이라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낱낱이 들어 보십시오. 여러분들에게 무슨 학벌이 있소, 무슨 지능이 뛰어났소? 아무것도 없습니다.
찌끄러기 왔소. 찌끼들이 와 가지고 그래도 목회 하는 것은 이 교훈이 뛰어나기 때문에 교인들은 좋아하고 이래 하는데, 이것은 만판 편하기만 좋다 말이오.
무능자만 양성하게 되기 때문에
이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한테 충고하기를 '목사님 이래 가지고, 이 노트만 가지고 그러니까 도리어, 자기들이 기도해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려 하면 이만한 설교에 반이 못되는 설교라도 그렇게 애쓰는 가운데에서 무엇이 될 터인데, 이것은 받아 가지고 가 가지고 자기가 살지도 않고 그대로 외우기도 싫어서 노트보고 더듬더듬 읽어 가지고 이러니까, 이러면 무능자만 양성하게 되기 때문에 아예 이것이 좀 생각할 점이 있지 않느냐?' 하는 그런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죽고 난 다음에도 저거가 나중에 가 후회라도 하고
그래도 그 말이 일리는 있지만 '그래도 가르쳐 알려 놓으면 이 말씀이 그 속에 역사할 것이고, 내가 죽고 난 다음에도 저거가 나중에 가 후회라도 하고 회개라도 하지만 모르면 회개가 되겠나?' 이래서 이걸 하고,
'금요일 날 모인 이것도 그게 무익하다. 도로(오히려) 역효과 돼 손해가 된다. 억지로 그러니까, 안 오면 목사님에게 주목당할 것이고 이러니까 오기 싫은 사람들이 억지로 오는 일 많으니까 실은 이렇다는 것을 좀 아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하지 아니하는데 제 혈육에 속한 사람들이 말을 해요. 그는 좀 충고할 수 있다고 해서 말하는지는 모르겠어.
방종 방탕을 연습하는 기간이 되어 있으니
이런데, 목회자 양성원에 저 지난번에도 내가 그걸 교학실장에게 말했어. '양성원 학생들의 그 공부하는 기간이 방종 방탕을 연습하는 기간이 되어 있으니 이것 책임있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내가 좀 말로 타일렀다고. 또 어제 내가 아침에 심지어 말하기를 '이러면 교학실장을 갈아야 됩니다. 못할상 바르면 실장을 갈아야 됩니다.' 또 이렇게까지 말하면서 학생들의 그 방종 방탕을 말을 했다 말이오. 또 됐는가 싶어 보니까 엊저녁에 역연(여전히), 보니까 역연 그래.
여러분들이 목회자양성원에 와서 배우는 것이 목회자 하는 실력을 배우는 것인데, 실력을 배우면 학기 시작할 때에 올 때는 방종한 사람이, 학기를 한 시간 지나니까 마음이 다져지고, 두 시간 되니까 다져지고, 마음이 목회에만 전력 기울어지고, 충성치 못한 데 대해서 크게 후회와 탄식과 절망이 있어 가지고 소망이 생겨져야 기독교가 되는 것인데 점점 방종해진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외식으로 경건예배, 여기 새벽예배 와 가지고 참석해서 들으면 하루종일 방탕하게 만들어 놓은 그 방탕을 여기에 와 가지고 십분지 오(5/10)도 그것을 뭉캐지 못하고 자꾸 그것이 쌓여 나간다 그말이오.
또 양성원의 강의도, 강의를 들으니까 이것 다 일반 사람들 교리사를 듣고 교회사를 들으면 '아 그리 됐으니, 그런 사람들이 그리 됐으니 그 어찌 되느냐? 그러면 내가 어찌 되느냐?' 자기가 비추어서 더 조심이 되어지고, 자기 생애라 하는 것이 '내가 이 모양하고 사니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니까 이대로 계속되면 마지막 계산댈 때에' 요새 계산에 대해서도 늘 말하고 있다 말이오.
이런데 한 시간 공부하면 좀 마음이 경건 연습이 되어지고 허리가 동여지고 주의가 되어지고 이럴 건데, 한 시간 배우면 마음이 확 풀어지고, 두 시간 배우면 풀어지고 그러면 양성원에 가르치는 교수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고 깨트리는 일이 되고 말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 받아요. 교학실장도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사람을 지금 자꾸 삼키고 사망으로 짙어가고 있을 거라 말이오. 그까짓 지식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오. 지식은 인간을 교만케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밤에는 목회자양성원 운영위원들이 올 터이기 때문에 운영 위원회가 있을 것입니다. 교학실장 손들어 보이소. 네. 운영위원회 있습니다. 있어 가지고 교학실장을 갈런지(교체) 모르겠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정말 신학교는 그런 것 아닙니다
그 학생 가운데 떠드는 것 좋아하고, 이야기 좋아하고, 그렇게 방탕한 그런 것을 좋아하면 따라서, 그러니까 재미있거든. 이러니 양성원이 지나고 나면 사람들이 버려지는 걸 내가 환하이 본다 그말이오. 어북(제법)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보면, 그래 가지고 시설거리면서(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것) 좋아하고 시설지기고 그와 같이 하는 그것이, 학교는 공부할 때는 공부하고 이래 놀기는 씩씩하이 노는 것인데 죽을 공부하는 학교가 그렇지 신학교는 그런 것 아닙니다. 정말 신학교는 그런 것 아닙니다.
평소에 연습해 놓은 것이
사람이 거석할수록 그 언행심사의 태도도 조심해야 되고 이거 연습을 해야 되는데, 백정이 백정은 소 잡는 것이 백정인데, 백정은 상놈이라, 그것은 대대로 백정 한 번 했으면 상놈으로 인을 찍히는 것인데, 백정이 공부를 해 가지고 원으로 나가. 군수로 나가, 요새 말로 군수. 고을살이를 나가는데, 이것이 평소에 있으니까 이렇게 지금 이거 참 원이라고 이렇게 모시고 내려가는데 버드나무가 옆에 잘 자라는 걸 보고 '아! 버드나무 그놈 참 좋다. 그놈 가지고 상자 만들었으면 참 좋겠다.' 백정 이놈이 환하게 나왔다 그말이오. 평소에 연습해 놓은 것이 안 나올 수가 있습니까?
이런데 경건은 하려고 하니까 힘이 들고 재미없고 되고, 마음이 되고(눌리고), 이것이 연습이 돼 가지고 경건은 안 하고 방종을 하려면 머리가 아프고 거기 한 시간 있으면 기가 막히고 못 견디고 이 사람이 되어져야 될 터인데, 이렇게 방종 안 하면 재미가 없고, 경건하게 살려 하니까 마음이 되고, 몸이 되고, 기분이 안됐고, 이러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은 가치 있게 되어서 이 사람은 참 좋게 여기고 경건을 말하는 사람은 딱딱하게 뭐 독선이니 교만이니 아무런 염세니 별별 명패를 불러 가지고 이래 가지고 보면 사람이 확 변해진다 말이오.
변하면 그걸 고치려고 하는 데에는, 그대로 두면 교회 망치고 저 망치기 때문에 앞에 있으니 부득이 그것을 이런 기회에 만나 가지고 말 없는 가운데서 또 그걸 돌이키고 돌이켜, 픽 돌아가서 정 l80도로 돌아간 놈을 이렇게 돌이키려 하니까 사람이 죽을 지경이라 말이오.
목회자로 한군데 그대로 그 교회 두니
목회자로 한군데 그대로 그 교회 두니 교회 망하고 저 망하지, 이걸 교회서 이동하려 하니까, 이동하니 가 봐야 맞지 않다 말이오. 이동하니까 이 인간은 이 목회자는 이렇게 삐뚤어지게 동쪽으로 삐뚤어지게 목회해 놨고. 이제 그걸 고치기 위해서 서쪽으로 삐뚤어진 걸 이걸 또 보내니까 이건 또 서쪽으로 삐뚤어져 나갑니다. 정반대이니까.
교역자 이동하려 하면
교역자 이동하려 하면 막 데모가 오고 주장을 하고, 또 다른 교역자 가면 그 교역자 또 좋아서 이러다가 또 그렇고, 그것이 좋으면 하지만 중앙을 가서 이래 가 그런 것이 아니고 치우친 데 끌려 가지고, 재미있는 데 끌리는데, 벌써 처음에는 재미없다가 나중에는 인간적인 방탕 재미라 그말이오.
방탕 재미에 인정이 들어 가지고 떠나기를 싫어하는 그것이지 제 구원에 대해서 생각하는 자가 없어. 각 교회들이 와 가지고 이동한다고 데모한 교회들 다 아는데 과연 떠나고 난 다음에, 교역자가 이동하고 나서 그 교회가 부흥이 됐는가 안됐는가? 다 됐다 그말이오. 되고 난 다음에 또 얼마 있다가는 또 방종이라.
참 기막히게 지금 죽어 있고 썩어 있다
이러니까 모두 깔봅니다. '아 뭐, 백 독(百讀) 해 봤자 성경 읽을 때 가 가지고 그 읽는 것 보고 성경을 거머쥐고 한 뭉텅이 후딱 넘겨도 모르고 또 그 다음에 읽고 이러는데, 그래 읽는 것 백 독, 참 이름뿐이지 실상 없는, 그 말만 그렇지만 속에는 허무 허무한 참 기막히게 지금 죽어 있고 썩어 있다.' 이래 보이니까 이 진영에 미련이 있을 것이 뭐 있습니까, 있기를?
교훈에 대해서 그들이 미련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진노 받을 것입니다. 교훈에 대해서 미련이 없지를 않을 것입니다.
그거 없지
이러나 양성원에 성경 백 독 하는 데 대해서 다 보니까 그래 하니까, 이것을 깨어서, 어쨌든지 깨어 가지고 이렇게 읽기로 이것이 된다면 자기는 나가 가지고 성경 읽으려 하니까 그렇게 읽을 수가 없고, 여기서 읽다가 '어쨌든지 그래도 참 그때가 좋다. 그때 성경 많이 봤다.' 이 미련이 있으면 이 진영의 가치를 알아 줄 것인데 그거 없지,
그게 하나도 없어
그때는 교수가 없어서 저 혼자 성경 시간으로 이러면서 성경 연구로 자꾸 시간만 보내지, 내가 또 그것을 늘 거기 앉아서 그래 할 수는 없고, 새벽기도 나올 때에, 여기 나올 때 이것만 받아 강직하면 막 날아갈 것이고 뛸 거라 말이오. 아무리 영적 힘이 있어도 육체 힘이 없으면 안됩니다. 육체의 힘이 있고 이 진리를 정말로 받아 가지고 제가 살고 이러면 마구 영능으로서 뛸 거라 말이오. 가는 곳마다 크게 변화를 시켜 버려. 그게 하나도 없어.
자기네들 배운 거와 다 같지
이러니까 가르쳐 봤자 그렇지, 그뭐 가르친다고 해도, 고전어를 가르친다 해도 고전어 그것이 어학인데, 어학은 그것보다 나은 어학자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지 그러니까 시시하게 보지, 목회자양성원을 시시하게 본다 말이오. 교리사, 교회사 가르치는 O목사님 가르치는 것은 내가 볼 때에는 제가 공부할 때에 OO교파에 공부한 것보다는 몇 배 낫습니다.
그거 하나 듣지, 그거 하나 들으면서도, 역사 공부하니까, 다른 사람들 다 그런 것 보니까 자기네들 배운 거와 다 같지. 또 그 하는 것이 자기네들 마음에는 시시하게 이래 보여지니까 도로(오히려) '내가 너무 예수 잘 믿었다, 너무 열심 냈다, 이러니까 좀 허리끈 풀어 놔도 되겠다' 이런 위로가 돼서 방종밖에 안 된다 그거요.
여기서는 경건을 연습하는 원천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목회자양성원인지? 이걸 오해해 가지고 '학교라 하는 거는 공부할 때는 공부하고 씩씩하게 놀 때는 놀고' 이거는 목회자양성원이라. 썩은, 죽은, 인간을 죽이는 학교가 아니라. 여기서는 경건을 연습하는 원천입니다. 원천.
여기에서 3년이면 3년, 4년이면 4년 동안에 그 연습을 바로 해서 여게서 목회자가 되어져 나가면 힘을 얻고, 여게서 그 지식이나 배워 가지고 방종해지면 그 사람은 교만만 하고, 그것이 목회자가 됐는데 나이는 많으니까 교만은 늘고, 배짱은 늘고, 은혜는 없고, 이러니까, 정년 퇴직이 왜 나왔소? 교파마다 정년 퇴직이 왜 났습니까? 그거 놔두면 교회가 안되겠다 그말이오.
정년 퇴직자가 왜 되느냐?
이러니까, 보니 정년 퇴직을 안 해야 될, 늙어 갈수록 영능이 있는 그 사람들도 '내가 안 하려 하면 저 교회 두통거리, 교회 망치는 저거 수십 명이 안 할 터이니까 부득이 나도 희생해야 되겠다.' 자기는 정년 퇴직하는 것이 그 못 쓸 교역자들 늙어서 망령된 교역자들 그거 쫓아내는 데에 협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정년 퇴직을 하는 것이라 말이오.
왜 정년 퇴직자가 왜 되느냐? 왜 되느냐? 되기를. 믿음이 늙으며 성령이 늙습니까? 갈수록 점점 경건을 연습해서 성화됐는데, 성화된 것이 많을수록 교회에서 배척을 당합니까! 이 현황을 봐야지, 좀 눈을 뜨고.
믿어 주는 것이고 배워 주는 것이지
어제 밤에도 보니까 O목사님은 와서, 내가 똑똑히 모르지만, 기도하는 것 같은데 이 양성원 학생들로서는 하나도 기도하러 온 사람 없어.
또 금요일날 이래 모이면, 자, 이거 방주고, 돈 그 돈 받고 밥 해 주고 이러니까 이것은 믿어 주는 것이고 배워 주는 것이지 제가 참으로 권능을 얻기 위해서 권능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아니오.
기막힙니다. 기막혀.
가서 실컷 저거는 교역자라고, 무엇이 지금 무슨 교역자 노릇을 하고 있는데? 대접만 받으려고 와 가지고는 으례히 '공부하고는 가서 누워 자야 된다.' 오며 가면서 곤하면 차에서 누워 자도 실컷 피곤하지 않아.
여기 권찰님들은 말이 그말이라. 아무 데까지 가면 '아이구, 오늘은 아무 데까지 갈 터이니까, 차를 많이 탈 터이니까 한숨 자겠다.' 그 차 안에서 자는 그것이 지금 육체적으로는 소망입니다.
차 타고 그러면 되는데, 뭐 지금 잔다고. 여기서는 철야한다고 해도 가서는 누워 자고. 참 희망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는 말못하지만 기막힙니다. 기막혀.
앞으로는 교역자들 오는 사람들 숙소 없애 버리십시오. 나이 많은 사람도 하룻밤씩은 할 수가 있어. 거기 와서 엎드려 자지. 안되면 또 앉았다가 누워 자.
철야기도 한다고 와도 와 가지고
어떤 사람이 조롱하기를 '철야기도 한다고 와도 와 가지고 열시 되어서 보면 다 널펑이 잔다'고. 네가 악질이다, 네가 악질. 그래라도 와서 하나님 말씀 재독하는 것 듣고, l0분이고 5분이고 기도하고 잠 오면 누워 자지 안 자고 어쩔 것이고?
'철야면 뭐 철야, 철야는 길 철(撤)자, 밤새도록 깨서 기도하는 것이 철야인데, 철야한다 하고 잔다'고, 그래라도 해. 밉상이라 말이오 그 말이, 그 말이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를 훼방하는 그자야. 그런 것 다 회개해야 돼. 자도 그렇지.
산기도 간다 해 놓고
'산기도 간다 해 놓고 산에 가서 잔다.' 산기도 가면 산에 가서 기도하다가 자고 그렇지 꼭 깨어 기도해야 됩니까? 하면 좋지만 인간은 제한이 있기 때문에 안돼. 그래라도 충성이 좋아.
이 생명의 경건 연습하는 것은
'학교는 그렇게 하는 것이라.' 그거는 죽이는 학교가 그렇고, 이 생명의 경건 연습하는 것은 뭐라고 말했어? '다해라' 다하라 했는데 다하라 했는데, 여러분들은 목회자양성원에 주님이 나를 피로 구속하신 은혜를 입혔고, 은혜 위에 은혜를 입혀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맡겨서 지금 하는 것이니 이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그 하는 말씀 한 말씀을, '자, 저런 사람들도 저렇게 탈선됐으니, 이렇게 우뚝 솟았던 것이 나중에 보면 그게 탈선돼 가지고 넘어져 버리고, 이렇게 탈선되지 아니하고 바로 나가는 것이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냐?' 깜짝 깜짝 놀래면서 이렇게 받아야 될 터인데, 자 공부할 때는 '저거 지식적으로만 내가 가져야 득점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저거 지식 가지고' 배울 때 그렇게 해.
'조것을 설교할 때에 말해 가지고' 팔아먹기에는 자기를 교만케 하고 자기 자랑해서 전부 교만한 거기서 마련하고 만다 그말이오.
'허허 허허허' 이 너털웃음 웃는 것
이렇지, 시간 마치고 나면, 무슨 저거가 거기 천재들이 있는가 몰라도 그저 뭐 이야기 가지고, 또 아마 방송은 많이 듣는 모양이라. 방송, '허허 허허허' 이 너털웃음 웃는 것 그거 연습해 가지고 그것이 무슨 인격인양, 거석한 사람들은 그런 더러운 걸 연습하지 아니하고 이 성대 연습도 안 하려 합니다. 자기에게 하나님이 만들어 준 그대로 자꾸 경건만 연습하고 그 외 다른 연습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도 안돼.
여러분들이 하루종일 사는 시간 가운데에 농담 외에, 너털웃음 웃는 것 외에, 경건한 시간이 어데 있소? 믿는 사람 쳐 놓고, 그렇게 농담하는 사람 쳐 놓고 경건한 생활하는 사람이 참 드뭅니다.
최권능 목사님
최권능 목사님은 그 사람이 좀 웃기는 짓을 잘하는데 그 모르겠어. 그 사람이 한 가지 말을 들으면 웃기는 소리를 해도 그 속에 무서운 능력 있는 말을 했다고 봅니다.
하나 예를 들면, 학교 가서 공부를 하는데 나이가 많으니까 머리에 안 들어가지 이러니까 시험 치면 항상 영점이라 영점인데, 또 옛날 사람이기 때문에 소리내서 읽는 그걸 했지. 이거 무엇을 공부하면 줄줄 읽어 소리를 내서 읽지, 이러니까 옆에 젊은 사람이 공부하다가,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고 이래야 될 건데 자꾸 소리를 내어 읽으니까 공부하는 데 방해라 말이오. 방해지, 또 늙은 영감탕구지 그뭐 시험칠 때에는 항상 영점이지 이러니까 아주 멸시 천대를 해도 상관이 없다 그말이오.
그래 이래 하는데, 이러니까 노트를, 비가 오는데 노트를 확 뺏들어 가지고 비 오는데 바깥 마당에 획 집어 던져 버렸다 말이오. 얼마나 멸시했습니까? '영점 하는 것이, 빵점 맞는 것이 공부한다고 소리를 내 가지고 다른 사람 공부도 못 하도록' 얼마나 멸시를 하고 그와 같이 했어. 그러니까 암말도 안 하고 쫓아나가 가지고 그걸 주워 가지고 오면서, 비 맞으면서 쫓아가서 가지고 오면서 이래 오니까 미안타 그말이오.
가 가지고 주워 가지고 오니까 '아이, 안 버렸습니까?' '노트야 버려지나따나 마음만 안 버리면 되지.' '노트는 버려지나따나 마음만 안 버리면 되지.' 무서운 사람이오. 이러기 때문에 권능으로 일했습니다.
또 말하기를 '시험에는 성령님도 벌벌 떨어.' 자기 영감으로 모든 것 사는데 시험 볼 때에는 영감이 공부하는 시험 칠 때에 가르쳐 주지를 않더라 그말이오. '시험에는 성령도 벌벌 떨어.' 말에 우스운 소리 같지만 그 새겨들으면 그 속에 무섭고 강한 능력 있는 말입니다.
저놈의 탁구 저거 안 깨트리나?
이런데 뭐 학교에서는 씩씩하게 어떻게 하는 그것이 무슨 자격인 줄 알고, 제가 한번 가니까 이거 뭐 탁구인가 뭐인가 이거 치는 것 하는데 내가 보니 OOO목사님이 그날 경건회 인도하러 와 가지고 그것 보이는 거라. 기도는 땀 뻘뻘 흘리며 기도해 보지 않고 설교도 그래 해 보지 않아. 그 사람 설교 일생동안 그렇게 설교해 본 일이 없다고 나는 단언합니다.
그렇게 뻘뻘 흘리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막 흥분해 가지고 낯이 벌거이 해 가지고 이래 가지고 해 재끼는데, 제법 하기는 하더구만. 그걸 볼 때에 어떻게 미운지 '저놈의 탁구 저거 안 깨트리나? 저거 누가 주워 왔노, 저걸? 어데서 났노?' 야단 쳤는데, 그거 없애 버렸습니까 있습니까? 없앴어? 없앴답니다.
뭐이냐? 거게는, 이제 여게서 운동 기구 했던 그것은 공부하고 이러니까 사지가 틀리고 이러니까 한번씩 와 가지고 이 사지나 쪽쪽 펴면서 이런 것 해서 하는 그것은 그게 방종이 아니고, 그거는 웃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자기 좀 신체가 그 동안에 못 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 한 것인데,
이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가 기도를 해도 항상 그것이 머리에 있을 것이고, 자도 그게 머리에 있을 거라. 그 사람 분명히 수술대 올라가 가지고 지금 수술하면 마지막 소리는 탁구 치던 것 그것이 나올 것이오. 그것이 속에 주장이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데서든지 경건 연습해
이래 가지고 뭐 하겠습니까? 거게 좀 나이 많은 학생들이 있는데, 그 학생들도 자기는 그렇게 안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 보니까 구경하니 좋다 그말이오. 미치괭이나 초랭이 노릇 하는 것이 보기 좋다 그말이오. 경건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래!. 거게 경건한 사람이 있으면 절대 그것을 용납 못해. 보지를 못합니다. 그것이 학생들의 갖출 자격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데서든지 경건 연습해.
퇴학시켜 버려요
지극히 작은 데, 어제 아침에 그거 가지고 자꾸 말을 했다 그말이오. 그 학생 가운데에 방종한 학생 하나 있으면 퇴학시켜 버려요. 다른 진영으로 가도 좋아요.
전부, '쓴뿌리가 있는 것을 그것을 도말해라.' 그 적은 쓴뿌리가 온 무리에 많은 것을 해쳐서 옳은 것을 썩힙니다. 더럽힙니다.
한문 서당에 다닐 때도 보면
그런 사람이 있어. 제가 한문 서당에 다닐 때도 보면 이거 웃기는 선수, 다른 사람에게, 연극의 배우는 다른 사람들을 어쨌든지 피곤 풀게 웃기게 하는 그것이 익숙합니다.
이것이 요새는 방종하니까, 떠드는 일, 시설지기는 것이, 방탕하는 것이, 노래 잘 부르는 것이, 노래 잘 부르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소? 노래가 건국을 하요? 그것은 사람이 창기에게 미혹받아서, 그 왜장 청장을 진주 기생 에미가, 이 에미가 죽였지만 그거 그 사람이 시험에 들어서 그런 것이오. 그까짓 게 무슨 일을 춥니까?
예술이 배부르고 모든 것 하고 나니까 노라리 할 때에 좋은 것이지 예술 그것이 건설은 아닙니다. 배부르고 난 다음에 그것이 있지. 그러면 이것이 지금 됐으니까 우리가 앞으로 나올 것은 무엇이냐? 배고픈 것이 나올 수밖에는 없어.
이북은 배부를 것이, 이남은 배고플 것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말이오. 왜? 이렇게 방종 방탕 되어지면 그 결과밖에 더 오겠습니까? 벌써 우리나라의 경제는 얼마나 지금 떨어졌는지 모릅니다. 본국의 경제는 양이 줄었는지 모르지만 세계의 비중에다가, 세계를 비중 할 때에는 훨씬 뒤떨어졌습니다.
이래 나가면 공산주의에게 우리는 목이 다 끊어져야 돼. 끊어져도 비참하게 끊어져 순교를 하면 좋지만, 어떤 지금 일이 앞에 놓였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 너털웃음이 어데서 나와, 나오기를? 그렇게 방종하는 학생 있으면 퇴학을 시켜요 안 되면. 한 사람이 들어서 그렇게 해.
저 서당에 다닐 때에도 백점판이라는 사람 있어. 그 사람은, 윤수란 사람 있고, 온 학생들 배창수(배의 창자)를 째게 하는 것이라. 선생님이 와서 가르쳐 주고 나가면 나갈 때에 뒤에 가면서, 뒤에 가면서 오만 욕 다 하고 오만 흉 다 보고 이 짓 하니까 학생들을 배를 짼다 말이오.
이러면 그게 장끼라. 선생이 알지 아니까 뒤에 그러면 불러다가 매를 때리고, 매를 때려도 학생들이 그걸 좋아하니까 학생들에게 인기 끌기 위해서 배우는 서당에서 선생에게 매를 맞으면서도 그 짓을 자꾸 한다 말이오. 보면 학생들이 거석하고 학생들이 그래 방종하게 해. 나 조그만한, 그때 아홉 살 먹을 때인데 그때도 그것을 보니까 어떻게 미운지. 그런 학생 하나 있으면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이 기회에 여러분들이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평생 가도 모를 이 세계의 교회, 여러 수백 년이나 천 수백 년 내려오면서 내려오는 그 교회, 그 모든 교회 역사를, 교리 역사를, '이때는 이렇게 믿는 주장이 이리 됐다가 저리 됐다가 교리가 갈 지(之)자 걸음을 걷다가 일관됐다가, 교회가 이러기 때문에 교리가 이럴 때에는 교회가 이리 꺼꾸러지고 저럴 때에는 저리 꺼꾸러졌고' 하는 이것을 내가 그 책을 읽어 가지고 알려 하면 여러 수십 권 읽을런지 이럴 터인데 그것을 한자리에 앉아 가지고 간추려 듣도록 했다 말이오.
거기서 하나를 깊이 가르치지 말아. 어쨌든지 신학에 그 모든 그 유명한 인물들이라면 인물들의 그 이름, 명사들의 이름, 그이에 대해서는 간단한 신앙 사상의 소개, 또 이런 교리 저런 교리 모든 교리들의 이름 그것만 해. 그것이 여러분이 다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름을 가르치라고 하니까, 그래도 그것만 알면, 진리만 알면 될 터이니까 이렇게 하라 했으니 거게서 여러분들이 배워야 될 수입이 기억만 할 것이 아니라 그때의 분위기를 자기네들이 생각하면 아무리 천재라도 따라 나가기 어렵고, 기막히게 지금 일이 바쁠 터인데 그것은 아니고, '요 읽어 놓은 것 교안 써 놓은 것 고것만 외우면 된다' 이러니까, 그것은 하나의 싹수를 내놓은 것뿐이기 때문에 그거 들어가면 호호막막 하니까 그것이 들어가서 나중에 저게 나오면 그것이 뭐인지 모른다 그말이오.
이렇게 중요한 그 시기인데, 바로 이 앞에서도 아침마다 이러면서도 모이는 그 단체가 전부 장돌뱅이 단체, 깡패 단체, 아주 못 쓸 학교 다닐 때에 아주 방탕하고 방종한 그 학생 단체, 이런 단체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교회 가 가지고 무슨 목회를 하겠습니까! 참 비참합니다. 공연히 교회 연보해라 해 가지고 양성원에 거기다 돈을 그렇츰 많이 들여서, 우리 서부교회서도 3천5백 얼마를 며칠 전에 갚았는데, 이렇게 하면서 여러분들 그렇게 만든 결과를 보면 기막혀요.
l80도 회개해야 합니다
l80도 회개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기간은, 나가도 '아, 참 그때에 지독스레 공부했다. 그때 뼈가 녹았다. 그때 늙었다.' 이것이 남았어야 될 터인데 여러분들이 가면 '그때 야- 그 이야기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이야기, 방종, 취미 그것만 여러분들에게 남아 있지 여기 공부하는 데에 여러분들이 공부하면서 녹아진 것은 아무 기억할 것이 없을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교학실장은 사람 좋은 사람은 다 됐지만 사람을 버리는 사람 됐습니다. 다른 일에 대해서 제가 잘못된 것을 잘못했으니 '예, 고치겠습니다.' 이 점이 다른 교학실장보다 낫지, 제일 단점이 뭐이냐 하면 이렇게 방탕한 인화주의라 말이오. 널펑 해.
이러니까 교회 가 봤자, 목회 가 봤자 멋모르고 몇달 동안, 혹 l년 동안은 은혜 있다 하지만 그만 l년 지나고 난 다음에 아무 볼 것이 없어. 그들이 방탕과 시설지길려 하면 여러분들보다 몇 십 배 나을 것이오. 그들이 하지 못하는 경건 연습은 그들이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을 보여 주면 '아이구! 우리보다 낫다' 이러지, 방탕 방종 연습, 농담 연습 그런 거는 그분들이 교역자 여러분들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좀 아주 조심해서, 새벽으로 나와 무엇인가 이것 배우면서, 배우면서 주님 앞에서 가책이 있어야 되겠고, 주님으로 더불어 고민하는, '내가 쫓겨나고 난 다음에 무슨 일을 할꼬?' 하는 그 고민하고 난 다음에 '할 일을 알았도다.' 요걸 거머쥐고, 할 일 알았으니 요 할 일은 저 죽음 저편의 것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그 일을 위해서 하니까 그날 그날 기쁨이니까 하늘에 대한 기쁨이지 땅에 있는 기쁨이 아니라 그말이오.
여러분들이 이것이 없어, 지금. 텅텅 비었어. 깡통이라. 뭐 있어? 이러니까 '뭐 양성원 해 봤자 시시해. 그런 양성원이야 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러니까, 목회자를 양성해 나오는 그 기관을 시시하게 보니까, 거게 미련이 없는데 뭐 미련이 있겠소?
왜 여러분들이 목회자 양성원을 이렇게 희망 없이 만듭니까?
이러니까 모두 공동고백이 다 그렇답니다. 모두 말하요. '백목사 죽으면 끝난다. 다 시대 시대 그렇게 우뚝 우뚝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백목사 죽으면 끝난다. 그 후계자가 없다.' 그 말을 각 진영마다 다 말한대요. 제게 대해서 깔봐서 하지는 않아. 깔봐서 말하지는 않고,
'그분 한 분 있을 때 백지(공연히) 호독거려 쌓지(발부둥 치고 있지) 죽고 나면 그만이다.' ‘죽고 나면 그만이다’는 말이 목회자양성원이 있지만 희망 없다 말 아니오? 왜 여러분들이 목회자양성원을 이렇게 희망 없이 만듭니까? 우리는 진액을 기울여 가지고 양성원을 만들었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2, 6, 18 금 새벽)
19-4. 총공회의 교리, 신조, 행정
이제는 선포하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고 많이 기다렸습니다. 이러나 이제는 선포하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왜? 이제는 저와 같이 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변질돼 나가니까 이제는 선포하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총공회 간판
우리의 총공회 간판이라는 이것 때문에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찬송가 때문에도 문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공연히 총공회라는 그런 이름을 가졌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우리는 예수교 장로회 한국총공회라고 하는 이 간판은 우리 이름입니다. 우리 이름은 이 이름을 가졌기 때문에 이 이름을 가진 자의 잘못은 우리가 잘못이니까 그 책임을 우리가 진다는 그 책임을 선포한 것이 그것이 우리의 이름입니다.
내 이름은 아무것이 아무것인데 아무것이 아무것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는 이러한 행정을 가졌고 이러한 교리와 신조를 가졌다. 이 교리와 신조와 이 행정이 틀린 것은 우리 총공회가 다 그 책임을 지게 될 것이고, 옳은 것은 또 칭찬을 받게 되리라는, 자기가 행동을 할라고 하니까 행동하는 데는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름을 똑똑히 선포하지 안 할 수가 없어서 그 이름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교
우리가 온 세계에 종교가 많은데 ‘예수교’라고 해서 우리가 예수교를 따라서 우리는 예수교라는 그 교를 믿는 우리들로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종교 가운데에 우리는 예수교다. 예수교라 말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시고 예정하시고, 예정하시고 그 정하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정대로 창조하시고 또 창조된 것을 보존하시고, 또 그것들을 활용하여 섭리하셔서 하나님이 도성인신으로 사람되어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이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실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구약에 선포하시고, 구약 말기에 와서 이 대속의 실상을 이루시고 우리를 대속하신 이 도를 믿는다, 이 길을 우리는 걸어간다, 이 교를 믿는다.
이러기 때문에,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그분이 선포도 했고, 그분이 단독이 성취도 했고, 그분 단독의 목적을 달성하시는 거게서 부터 근원 되어 나온 예수 그리스도의 교를 믿는 이것을 우리가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교를 믿는다 이렇게 한 것입니다. 그래 예수교면 다 예수교지 뭣 때문에 장로회는 말하는가?
장로회
장로회는, 예수교가 나왔는데 예수교와 예수교의 깨달음이 다르고 행정이 다르니까 자연히 맞지 안하고 마찰이 됐습니다. 예수교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결심하고 정신을 똑똑히 차려서 실행하면 구원된다' 하는 주장들이 있었으니 그 주장과, 또 '이는 인간이 행할라고 해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 하니까 둘이 합해질 수가 없습니다. 갈라집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함으로 구원을 다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 파를 하나 예를 들면은 '펠라기우스파'라고 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도리를 보기는 보고 행하기는 인간이 다 힘써 행하면 된다. 인간들은 못 행할 것이 없다.' 하는 그런 주장으로 하니까, '우리는 행할라 해도 안 되더라. 하나님이 행하게 해 주셔야 되지.' 이러니까 깨달음의 사상이 다르고 또 모든 행동이 달라지니 갈라져서, 갈라지기 싫은 예수교가 펠라기우스주의로 갈라졌고,
루터파
또 예수교 가운데 간추려 말하면 어떤 교파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적 은혜를 주시는데 우리가 거부만 안 하면 된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니 그저 반대만 안 하면 우리 구원은 이루어진다.' 그 주장을 하니까, 어떤 사람의 깨달음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반대를 안 하는 사람 가운데도 천층 만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반대만 안 하면 된다는 이거 하나로 주장을 세우는 것도 이것이 틀렸다.' 해서 그들은 이게 맞다 하고 간 것이 하나 예를 들면은 '루터파'입니다. 지금도 루터파의 모든 교회들이 많고 또 신학들도 많고 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감리교
또 섭섭하기를 '예수교는 거부만 안 하면 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힘쓰는 동시에 사람들이 힘을 써야 된다. 둘이 힘을 같이 써야 된다.' 하는 이 깨달음을 가지고 이대로의 모든 행정들도 하고 있는 것이 갈라져 나가고 서로 나뉘어진 것인데 그것이 '웨슬레주의'로서 감리교가 그 교리에 우리와 다른 것이 그것이 그것 때문에 갈라졌습니다.
사람들이 공연히 갈라지고자 해서 갈라진 게 아니고 갈라진 데는 교리와 신조가 달라서 갈라진 것도 있고, 행정이 달라서 갈라진 것도 있고, 지역이 달라서 갈라진 것도 있고, 감정으로 갈라진 것도 있고, 어떤 한 사람이 왕이 되고 싶어서 그 사람의 왕 되는 운동으로 갈라진 것도 있고, 그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리교와 장로교가 갈라진 것은 요것 때문에 갈라졌습니다. 그들은 다 사람과 하나님이 합동해 가지고 이룬다 하는 요것 하나 때문에 갈라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거 하나 떨어지니까 다른 달라진 것들이 많이 자꾸 생겨납니다.
성결교
또 장로교와 성결교가 하나되지 못하는 것은, 성결교는 '사람이 중생되면 그는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났기 때문에 그는 범죄하지 아니한다.' 성경 요한일서에 있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는다' 이래서 그들은 '중생되는 것은 \완전이다' 그 말하기를 완전주의라 하는 것이 곧 성결교입니다. 성결교 교리의 강령입니다.
이러니까 '사람이 중생 되면 완전자라. 이는 다시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 그 깨달음으로, 그 주장으로 나가고 교훈하고 있는데, 우리는 '중생은 그 사람이 예수 믿은 후에 중생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믿기 전에 중생이 먼저다. 본인은 중생된 걸 모르고 중생된 지 오랜 후에 예수님 믿게 된다.' 이것이 장로교 교리입니다. 이러니까 성결교와 또 합해질 수가 없습니다.
안식교
또 안식교는 '구약 시대에 지키던, 토요일 지키는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이 있지 주일을 지켜서는 구원이 없다.' 다른 것도 틀리지마는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는 그것을 골자로 해 가지고 나가는 것이 안식교입니다.
침례교
또 침례교는 일반은 물을 뿌려서 세례를 주는데 '그거는 틀렸다. 물 속에 잠갔다가 나와야 된다, 침례를 줘야 된다.' 하는 세례, 침례로 말미암아 갈라졌습니다.
그러니까 하나 달라지니 거게서 지엽적으로 자꾸 달라지지마는 깨달음이 달라졌고 모든 정치라 하는 것은 행동인데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거는 부득이 갈라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
여호와의 증인과 우리와 다 같이 예수 믿는데 왜 그 사람들과 우리가 갈라집니까? 그들은 땅 부활을 말하고, '우리 구원은 땅에서 육체가 부활해 가지고 천 년 동안 산다.' 그런 땅 부활을 말하고, '부활되는 구원얻은 사람은 십사만사천 인(人)에 한계 돼 있다' 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또 우리와 사상이 달라서 또 갈라지는 것입니다.
장로교 칼빈주의
이래서 장로교는 '우리의 구원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분의 주권 개별 섭리에 따라서 우리가 피동 되어 구원되는 것이지, 우리에게는 단독 능동적인 행위는 하나도 없다.' 이러니까 또 달라져서 이것이 칼빈주의입니다. 칼빈주의에 제일 큰 것은 뭐이냐? 하나님의 주권이오.
이러기 때문에 주권을 믿고 보니까 구원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 하는 결론이 나옵니다. 또 이를 믿다 보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안 믿는 사람도 있고 하니 성경과 현실이 같기 때문에 '이는 제한적 구원이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택한 자를 한해서 대속하셨지, 택함을 받지 안한 그 모든 사람들까지 대속하신 것이 아니다.' 이라니까 또 교리와 신조가 달라서 갈라진 것입니다.
고신
우리는 어데 있었는가? 장로교입니다. 장로교에 저는 고신에 속해 있었습니다. 고신이 갈라지게 된 것은 행정 때문에 그 주동이 됐고, 따라서 뒷받침으로 교리들도 따라 일어났습니다. 왜정 말년 신사참배가 나기 전에는 장로교는 한국에 하나뿐이었습니다. 하나뿐인 장로로가 왜 갈라져서 고신이니, 합동이니, 기장이니, 예장이니, 이렇게 모두가 갈라지게 됐는가? 안 갈라질라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많이 써서 고신은 고신 주장대로 예수 믿자 하고, 자꾸 그렇게 믿자고 주장했고, 또 합동은 합동대로, 예장은 예장대로, 기장은 기장대로 이렇게 주장을 해서 많은 세월을 거쳐서 거기서 논쟁도 있었고 신강도 있었고, 이라다 보니까 한 교인이 깨달음이 다르고 믿는 게 다르니까 갈라지니 '너거와 우리와는 같이 믿을 수 없으니까 너거가 나가거라 우리가 나가거라' 해 가지고 예배당 소송 문제들도 생겨나게 됐던 것입니다.
그때에 갈라진 것은 첫째가 '신사참배는 죄다. 이거는 우상 숭배한 죄다.' '신사참배는 국가의식이지 그것이 어떻게 죄냐?' 이래 가지고 많은 시비가 있다가 마지막에는 끝까지 그것은 국가의식이라 하는 그 파는 그 파대로 나눠 갔고, 또 '죄는 죄지마는 그것을 그렇게 자꾸 되씹고 주장할 게 뭐이냐?' 하는 파는 그대로 갈라져 갔고, '이는 죄다. 다시는 죽어도 이 신사참배 같은 이런 우상 숭배의 죄는 안 범해야 된다.' 신사참배를 가장 강조하고 이 죄를 범하지 아니할라고 강하게 제일 굳게 서 가지고 있는 그 파가 고신파였습니다.
예배당 소송문제
이러다가 그 가운데서 저는 첫째 서로 이렇게 충돌된 것은 신사참배 그런 것 때문에 충돌된 것 아닙니다. 나도 신사참배 안 해야 되고 그거 죄인 줄 알았고 했기 때문에 충돌 안 됐습니다. 신사참배 때문에 갈라져 가지고 예배당 소송 문제가 생겨졌을 때에, '이 예배당 이것 때문에 서로 우리 믿는 사람이 시비하고 재판하고 하는 것은 고린도전서 6장에 형제끼리 불의한 불신자 앞에 가 가지고 이것을 계산하는 것은 이것은 성경에 위반되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 하는 그것을 나는 강하게 주장했고, 그것을 전국에서 제일 강하게 주장한 것이 저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지마는.
그것 때문에 거게서 예배당 소송을 해야 된다는 제일 주장하는 송상석목사님 황철도목사님 그들과 나와 대립이 됐고, 그때는 한상동목사님, 오종덕목사님, 이인재목사님, 박윤선목사님 이런 분들과는 나는 하나였습니다.
이라다가 나중에 가서 고려신학교에 정치학을 가르치는 그 정치학, 또 파수꾼 잡지를 하나 교계에 선포하는 것은 그거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을 다 없애 버리고 이 국제 무대에 사업으로 이렇게 나가는 그 일에 대해서 대립이 됐었습니다.
I.C.C.C 정치주의
I.C.C.C에 가담되는 것을 대립했고 반대했고, I.C.C.C에 그들의 학위,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참가하러 가는 것도 반대했습니다. 그 반대한 것이 한부선 목사님과 몇몇 사람들이었는데 갔다 오고 난 다음에 제가 그 학위 받은 목사님에게 갔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말합니다.
“목사님 우리는 돈도 남만 못하고, 지식도 남만 못하고, 권력도 남만 못하고, 인품들도 못난 사람들입니다. 다만 하나님과 진리 하나만 가지고 나선 것이 우리 아닙니까? 우리인데, 그걸 뒤로 두고 지금 기독교 정치주의인데 I.C.C.C는 정치주의입니다. 그분이 제일 선포한 일호가 반공입니다. 그 둘째 호는 보수입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정치로 이용해 가지고 할라는 기독교 정치주의인데 거게 우리가 가담해 가지고 받을 수 있습니까?” 말할 때에 그분은 나에게 말했습니다.
요것도 다 하나님 앞에 다 갈 것 아닙니까? "형님, 내가 나도 그걸 안 받을라고 애를 썼는데 어찌 됐는지 그만 그래 그만 그 학위를 받게 됐습니다. 명예 학위입니다. 학위를 받게 됐습니다. 다시는 그 행사만 안 하면 되지 않습니까?" 내 손을 붙잡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한상동 목사님이 나에게 나하고 단둘이 앉아 가지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행정적 모든 상치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차차 차차 이래 가지고 그때부터도 내가 말한 것은 내가 깨달음을 다 말하지를 못했습니다. 말하면 정죄받을 것이기 때문에. 몇 가지 말해서 정죄받은 일이 있어서 그때는 좀 달리만 말하지, 행정 문제가 커서 행정 문제 때문에 마지막에는 나를 자꾸 이동하라고 하기 때문에 '자기네들의 계획이 달라 가지고 하라 하기 때문에 나는 이동을 못 한다.' '이동하라‘ 동 못 한다' 하고 거게서 그들이 강제로 이동 시킬라고 했지마는 '나는 온 교인이 다만 열 명만 그때 한 삼백여 명 됐는데 열 명만 반대해도, 반대표가 나와도 나는 이동하겠다.
상회 불복종'이라는 그런 죄목으로
그러나 한 사람도 반대표가 안 나오면 하나님의 뜻이 있으라 하는 것을 내가 사람 말 듣고 내가 사람에게 순종할 수 없다.' 그분들이 와 가지고 증인 서고 투표해 가지고 한 결과에 그때 일곱 표가 부표 나고 열 표 안 됐습니다. 일곱 표는 그것이 곧 우리 가족들이었습니다. 너무 괴롭고 하니까. 그래서 마지막에 끊겨 나오기를 '상회 불복종'이라는 그런 죄목으로 나한테 통지가 와 가지고 제가 거기서 제명됐습니다. 이것은 행정이 앞섰고 행정 때문에가 그 갈라진 동기였고.
강도사 인허설교
그래서 제가 강도사 인허 설교를 할 때에 그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진리와 성령만이 있지 다른 것은 모든 교회들을 당할 수 없는데 이제는 이것을 뒤로 두고 국제 무대에서 사업주의로 명예주의로 이렇게 나가니,' 그거 나가는 증거는 뭐인가? 교계에 파숫군이라는 진리를 그 들은 안 들을라 하는데 파숫군이라는 이 교리신조를 기록해 가지고 그들에게 전하는 이런데 이것도 돈 없어서가 아니라 요게 싫어서 요것은 정간을 해 버리고, 중단을 시켜 버리고 딴것으로써 그때 국제에 I.C.C.C에 가담될라고 하는 그 때입니다.
이래 가지고 제가 강도사 인허 시취 설교를 그래 했으니까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일어나서 '이는 강도사 인허를 줄 수가 없다' 시비를 하다가 모든 사람들이 '왜 그 설교야 맞은데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느냐? 안 된다.' 이렇게, 그때는 총노회 때입니다. 고신이 그렇게 갈라지고 뭐 그럴 때가 아닌데, '그러면 이거는 거수로 해 가지고 다수로 이렇게 결정을 하자' 해 가지고 거수로 결정을 해 가지고 그때 수가, 저를 지지한 수가 삼분지 이가 됐고 반대하는 수가 삼분지 일쯤 돼서 제가 비로소 강도사 인허를 그때에 받았습니다. 아마 역사에 강도사 인허를 그래 가지고 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됐겠습니까? 그 행정이 첫째 다르고 그 다음에는 교리입니다. '우리는 땅위에 있는 모든 이 국제의 이 기독교를, 이것을 바라보지 말고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만으로써 우리의 전부를 삼아 가지고 나가자'하는 요 사상으로써 대립이 되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때 한상동 목사님이, 오전 마지막 시간에 제가 강도사 인허 설교를 했는데 오후에 나오시더니마는 호통을 치면서, 나는 맨 뒤에 앉았었습니다. “백 조사 무슨 이유로 그런 설교를 하느냐?”고 세 번 고함을 지릅디다. 그래서 그때에 저는 거기 앉았다가 마지막에는, 두 번 고함을 지르기 때문에 뒤에 앉았다가 내가 발개를 찌트리고 내가 다리를 올려놓고서 내가 아주 그 하는 소리가 너무 마음에 안됐고 가증스러워서 이래 했었습니다. 그 세 번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인허는 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상회불복종으로 제명 처리를 받아 가지고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이래서 행정과 교리를 가지고 아무리 합할라고 합해서 거기 있을라고 아무리 애를 써도 되지 안하고 이래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내가 나온 게 아니라 쫓겨 나온 것입니다.
총공회 행정, 교리, 신조
지금 우리 이 총공회는 여러분들이 줄줄 그냥 따라오지 말고, 총공회는 그들과 합할 수 없는 행정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합할래도 합할 수 없는 행정이 있어서 총공회가 된 것인데 이 행정을 싫은 사람은 여게 있으면 안 됩니다. 가야 되지. 왜? 자기는 행정으로 움직이는 것이오. 행정은 행함이오. 행정으로 움직이는 것이오. 교리와 신조는 자기가 성경보고 깨닫는 것이 교리요 신조는 그대로 믿는 것이 신조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교리와 신조는 일반 장로교와 다른 것이 있기 때문에 합해질 수 없어. 우리가 안 합해질라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합하지 안하고 쫓아내기 때문에 있을 수 없어 쫓겨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도 누구든지 자기가 ‘이것은 천하에 제일 좋은 교리요 신조다’ 하는 그 교리와 신조를 믿어야 합니다.
올바른 성경과 올바른 교리, 신조, 행정
그래서 제가 언제 말하기를 '우리는 첫째 할 일이 뭐이냐?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올바른 성경을 가지도록 우리는 첫째 노력해야 된다. 올바른 성경 가지도록 노력해야 된다.
둘째로는 올바른 교리와 신조를 가지기 위해서 우리는 소유와 몸과 생명을 기울여서 가치를 여게 두고 찾아야 된다.
셋째로는 올바른 행정을 자기는 가지고 이 행정에 속하기를 위해서 전부를 다 기울여서 우리는 찾아야 된다. 하는 것을 얼마든지 많이 말했고, '우리는 교리와 신조를 자기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야 된다.'
우리 생명과 우리의 몸은 교리 신조에게 바쳐서
왜? 우리 생명과 우리의 몸은 교리 신조에게 바쳐서, 교리 신조가 우리를 죽이면 죽고, 살리면 살고, 가두면 가두고, 교리와 신조를 자기 생명보다 높이 평가하지 안하고, 자기 생명을 높이 평가한 사람은 이 교리와 신조를 버리고 자기 생명 따라 갈 것이고, 생명보다 가치로 삼는 높은 교리와 신조를 가진 사람은 죽어도 이 교리와 신조는 뺏기지 않겠다 하는 그 사람으로, 우리가 못 해도 가치를 나타난 데로는,
첫째의 가치를 하나님에게 두고, 둘째의 가치는 우리를 연결, 하나님과 연결시킨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다가 가치를 두고, 셋째로는 성령에 가치를 두고, 넷째로는 문서 계시에 가치를 두자 하는 그것이 우리의 교리요 신조입니다.
그래서 모든 학자들이, 아무리 유력한 천하의 학자들이 다 달라 들어도 우리가 믿는 교리와 신조와 하나되면 스승으로 모시고 우리는 따라가고, 세계의 일대 학자라 할지라도 온 세계가 인정해도 우리가 깨달은 교리와 신조와 다르면 우리는 배격하고 따라가지 않는 요것이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입니다.
이래서 아무리 총공회에 소속해 믿어도 '우리는 세계 교계와 다른 교리와 신조를 가졌다‘ ’장로교와 합해지지 않는 교리와 신조를 가졌다' 다른 요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요 다른 요것을 긍정해서 다른 요것이 옳으니까 모든 교회서 배척을 당해도 나는 요 깨달음과 요 믿는, ‘교리'라 말은 깨달음이라 말이요 '신조'라 말은 믿는다 말인데' 요렇게 깨닫고 믿는 요것을 나는 버릴 수 없다' 요것을 깨닫고 요렇게 '이 교리와 신조가 생명을 뺏겨도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다. 서로 흥정해서 서로 타협해서 너하고 흥정해 가지고 너 반 양보, 나 양보 반, 이래 가지고 타협을 하자, 타협할 수 없다.' 요게 생명이요, 요게 생명보다 귀하다는 요것을 아는 사람이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를 믿는 사람이요,
이것 때문에 어데까지 어려움을 당해도 '이 교리와 신조가 제일이라‘ ’이 교리와 신조로써 나는 가르쳐야 된다‘ ’이 교리와 신조에서 내 생명도 바치고 이 교리와 신조로써 나는 전하기도 해야 된.' 제일 이 교리와 신조가 좋다고 인정이 되면 제가 이 진영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진영에서 일을 할 때에 다른 사람이야 '저놈 미쳤다' 하더란대도 '나는 이게 제일이다' 이래야 제 속에 힘이 있고 제가 이렇게 주장을 하고 가르칠 수가 있지,
'우리는 이 교리와 신조를 믿지마는 교리와 신조는 저게 나은데,' 하면서 이 교리와 신조를 가지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은 두말 할 것 없이, 내가 욕하는 말이 아니라 그는 외식자입니다. 왜 제일 좋은 거 옳은 길을 전하지 왜 제이가 되는 길을 왜 전합니까, 전하기를? 제일 좋은 길을 전하지. 또 제일 좋은 길 전할라 하니까 거게 새로 터전 잡을라 하면 안 되니까 여게 붙은 데 붙어 있다 하면 그것은 그 사람은 밥통 목사지, 밥통 신자지, 저는 믿는 것 같지마는 밥이 위주지 그게 근본 위주되는 게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기가 제일 옳고 바른 교리와 신조다. 이게 우리 구원을 바로 이끄는 길이다. 자기 생명도, 못 해도, 못 해도 나는 이 교리와 신조에는 소유와 몸과 생명도 다 바쳐서 이래 사는 요것이 옳은 줄 알고 긍정은 하고, 긍정은 하지마는 행하지 못할지라도 긍정하는 사람이 아니면 여게 있을 가치가 없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행하는 걸 말하는 건 아닙니다.
자기가 가치로 여기기를 이렇게 여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제일 옳고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 고신에 있으면 고신 가야 되고, 총신에 있으면 총신 가야 되고, 기장에 있으면 기장 가야 되고, 불교에 있으면 불교 가야 되고, 유교에 있으면 유교 가야 되고, 회회교에 있으면 회회교 가야 되고, 몰몬교 있으면 몰몬교 가야 되고, 힌두교에 있으면 거게 가야 됩니다.
제일 옳고 좋은 바른 거게 가서 하는 게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지 어떻게 밥에 팔려서 외식, 그 사람이 영원한 구원을 바라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거게 가야 그것을 강하게 주장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자기 속에 힘도 나올 것이고, 양심에 '이게 옳다! 이리 따라라!' 해야 양심에 가책 없어, 자기의 이성 판단이 찬성을 해, 양심이 찬성을 해, 자기의 모든 소망이 찬성을 해, 이래야 힘이 나는 것이지 이게 없이 목회 하니까 무슨 힘이 납니까?
내가 어제도 어떤 사람을 그래 만나 가지고 교회를 물으면서, 교회가 숫자가 작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여게 대해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항상 외식쟁이 설교하고 있습니다. 왜 제일 좋은 것을 교인들에게 지도하지 제일 좋은 것을 버려 버리고 제이 제삼을 말합니까, 제일을 말할 수 있고 그럴 자유가 있는데?
이래서 우리가 갈라진 거는 하나될 수 없어서 갈라진 그거는 첫째가 교리 때문에, 깨달음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저를 전국에서 이단이라고 정죄한 것이 그것이 얼마나 많이 있었지마는 이제 차차 차차 삭아져서 없어졌는지, 그들이 이해를 해서 없어졌는지 없어졌으나 이단이라고 하는 그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내가 그것을 이번에, 그 일반 교회들이 우리를 이단이라고 한, 한 번 교리와 신조로 나왔던, 이단으로 정죄받았던 그런 것을 좀 간추려서 기록해라 하는 그것을 내가 말을 해서 빼 가지고 줬지는, 빼 가지고 주지를 안 했습니다.
서영준 목사가 있을 때에는 '요것은 일반에서 정죄받았다, 정죄받았다, 정죄 받았다,' 하는 것을 다 기록을 했을 것인데 지금 다른 사람들도 기록을 했는지 모릅니다. 하는 게 이 교리와 신조를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또 둘째로는 우리가 행정이 달라서 갈라졌습니다. 이번에 000김철수 목사님과 서로 나뉘어진 것도 그분도 나 좋아하고 나도 그분 좋아합니다. 내가 그분을 내가 믿음의 아들로 내가 여겼던 것이고 또 그렇게 대우도 해 줬고 그렇게 관심도 가졌었습니다. 000박영남 목사님은 내가 그렇게 가까이 지내지는 않았지마는 그분도 우리가 데려가다 교육시켜 가지고서 목사 장립시켰고 또 우리가 그 개척 교회를 지도하고 이렇게 한 사람입니다. 그분들이 갈라진 것은 교리 신조 때문에 갈라진 것 아닙니다. 행정 때문에 갈라졌습니다.
이번에 아마 여기 안 왔을 것입니다. 그 총공회서 '이분들은 우리 총공회서 탈퇴했기 때문에 우리 총공회서는 제명이 됐습니다' 하는 그 신문 공고를 그때 총공회서 의논해 가지고 그것이 아마 신문에 공고됐던 모양입니다. 이라니까 그분도 또 멍군 장군으로 '우리는 총공회에서 탈퇴했습니다' 하는 것을 신문에 공고를 했더라고, 그거는 뭐 욕이 아니라 그 탈퇴했으면 탈퇴한 것으로 그래 한 게 현명한 것입니다.
왜? 탈퇴하고 나면 행동이 있기 때문에 그 행동을 자기가 했으면 자기가 지고 나는 아무것이라, 아무것이 이 행동은 내가 책임진다 이래야 되지 행동은 제가 해 놓고 이름은 딴 이름을 가지면 행동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비양심이라 그거요.
갈라진 게 뭣 때문에 갈라졌느냐? 내가 직접 전화해 가지고 “왜 그렇게 하느냐?” “예, 내가 교훈은 좋습니다. 교훈은 내가 받아들이고 집회 때도 오지 말라 하면 모르지만 내가 가기는 갈 것입니다”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교훈 좋다 말은 교리와 신조로서는 갈라지지 안한 것입니다.
노원 소원(小員 老員)
“그러면 뭣 때문에 그라느냐? 노원 소원이 있으니까, 노원 소원을 내 가지고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얼마든지 주장을 하고 나이 많은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 주장을 하고, 자꾸 이 원로파라고 이라니까 그래 가지고 소원 젊은 사람들을 서른 명 나이 많은 사람들은 열다섯 명, 마흔다섯 명으로 노원 소원을 내서 이래서 얼마든지 우리가 바른 길을 갈 수 있지 않느냐? 얼마든지 옳고 그른 것을 시비하고 논쟁할 수가 있지 않느냐?” 여러분들이 이거 말하는 것을 지금 교훈 아닌 줄 알아도 모든 사람들이 여게서 죽고 있습니다. 이 중요한 것이오. 평생 가도 못 들을 수 있는 이 지금 교훈인 줄이나 알고 들어야 됩니다.
심의 기관
그라니까 “나는 노원 소원이 있을 때에 소망을 가졌는데 거게 보니까 노원 소원은 심의 기관이요 하나님의 뜻을 찾는 찾을 '심'자 하나님의 뜻 '의'자, 의논 '의'자가 아니고. 심의 기관이요,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관이요.
의결 곧 의논 결정은 진리
의결은, 그 뜻에 대해서 의논해서 결정하는 것은 진리라 이렇게 말해 놨으니 성령 받은 사람들이 목사까지 돼가지고 목회 하는 사람들이 단합해 가지고 의논이 통일되면 그것이 진리요, 그것이 바른 것이요, 그것이 영감이요, 하나님의 뜻이지, 이러니까 노원 소원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심의 기관이요 의결 기준은 아니라, 의결은 진리가, 진리만이 의결할 권리를 가졌다. 의결은 진리가 한다. 이래 놨으니까
“내나 그전과 같은 것 아닙니까?” “내나 목사님 말하는 대로하자는 그 말 아닙니까?” “성경은 목사님이 주장하는 성경 우리가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내나 목사님 주장대로 하자는 그 말 아닙니까?” 그래 내가 많은 해석을 했습니다.
“우리가 개인보다는 많은 숫자가, 다수가 좋기는 좋지마는 다수라고 따라갈 수가 있느냐? 진리가 있지 않느냐? 이러니까 그래서 대표로 심의기관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가서 그 뜻에 맞으면 영생이요 그 뜻과 틀리면 사망이기 때문에 우리가 영생을 소망하고 지금 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너도 나도 이라면은 아는 사람은 알지마는 선진들의, 선배들의 혜택을 후배들이 입기가 어려우니까 제일 믿음 좋고 장성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을 마흔 다섯 명을 뽑아 가지고 이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관이라“
하나님의 뜻이 뭐이냐? '어떤 사건이 하나 생기면은 이 사건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것이겠느냐 저것이겠느냐?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이며 성경에 맞기를 어느 게 맞으냐? 하나님의 뜻에 어느 것이 맞느냐? 그것을 찾는 기관으로서 마흔 다섯 사람을 대표로 냈고, 그것이 의결 기관은 아니라, 마흔 다섯 사람이 다 똘똘 뭉쳐서 어떻다 할지라도 성경에 위반될 때는 그거는 우리는 인정할 수가 없다. 인정만은 하나님의 성경이 보증해서, 이거 성경에 보증해서 성경이 이렇다 하는 성경 보증이 나타났을 때에는 우리는 그대로 결정하는 것이다.' 하는 이것을 말한 것을 반대해 가지고 그는 갈라져 나갔습니다.
천주교와 예수교
여러분들, 천주교와 예수교가 왜 갈라진 줄 압니까? 천주교와 예수교가 왜 갈라졌습니까? 갈라진 그 이유가 천주교는 그들은 처음에 갈라진 게, 시발해서 조그매 틈난 것은 '구원은 천주교에만 있다. 베드로를 모신 데에만 있다.
베드로에게 열쇠 줬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구원이 있다고 그들이 말하고 베드로에게 구원이 있으니까 베드로는 우리 천주교 계통의 인물이기 때문에 그 베드로가 받은 열쇠는 우리 천주교에 상속됐다. 천주교에만 구원이 있다.' 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몰아쳤습니다. 숫자가 많으니까 그리 막 따라갔습니다.
또 그라다가 이제는 '교황이 깨달은 것이라면 곧 성경과 같다.' 성경은 우리가 정확 무오를 믿는데 '교황이 깨달은 그 교리, 교황의 교리와 신조는 그는 정확 무오하다.' 교황 교리 정확무오를 말하는 것이 천주교의 제일 뼈다귀요 줄기입니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은 성경에 말씀하기를 ‘이거 더하지도 못하고 덜하지도 못한다’고 요한계시록 22장에 말씀해 놨기 때문에, '교황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말은 정확 무오한 교리로 우리가 믿을 수는 없다. 틀린 것도 있고 옳은 것도 있다. 옳은 것은 따라가지만 틀린 건 받아들일 수 없다.' 하는 것으로서 얼마나 사람들이 죽었느냐 하면은 여러 수십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거 주장 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교황의 깨달은 교리 신조도 성경과 틀리면 틀렸다. 성경으로 판정해야 되지 교황의 교리 신조를 정확 무오하다는 권위를 세워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다가 죽은 사람 많고. 그것은 교황 교리라면, '교황이 깨달은 것이라면 정확 무오하다' 하는 것이 이것이 천주교가 전부가 그리 흘러 나와 가지고 된 것입니다.
오늘 그러면 우리가 의결 기관은 아니고 심의 기관이라 하는데 반대해서 '우리 목사들이 단합해 가지고 의논했으면 그게 바로 하나님의 뜻이지' 하는 그것이 천주교와 다릅니까? 같습니까? 000 조사님 말해 보이소. 천주교와 같소? 꼭 같소? O목사님 어떻습니까? OOO목사는? 어떻소?
그들이 지금 '목사들이 의논해 가지고 다수 결의한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우리는 옳은 것 찾으니까. 정확 무오한 거 옳은 걸 찾으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진리라 하나님의 뜻이라' 하는 거와 교황의 교리 정확 무오로 믿는 거와 다릅니까?
단체 결의와 진리 결의
'목사들이 단합해 가지고 이렇게 결의하면 성경에야 삐뚤어졌든지 말았든지 성경은 내비두고(놔두고) 그 결의면은 다 바르고 옳다.' 하는 거와 '아무리 그 결의라도 모든 사람의 말하는 것보다 권위를 세우지마는 성경에 틀릴 때는 안 된다. 성경대로 성경에 맞아야 그 의논의 결의를 채택할 수 있다.' 하는 거와 대립이 됐는데.
그러면 여러분들은 '안수받은 목사들이 의논한 것이라면 그는 성경을 보지말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대로 결정해 나가자' 하는 거 하나 있고, '그 결정 가지고 결정을 못 한다. 성경대로 됐을 때에 계정을 하자' 하는 것, 이 둘이 됐는데,
그러면 천주교와 그 단체의 결의로 그대로 결정해 나가자 하는 것과 성경으로 결정해 나가자 하는 이 둘이 있으면 어느 것이 천주교와 하나입니까? 이게 천주교와 하나입니까? 이게 천주교와 하나인 사람 손들어 봅시다. 이것이 '그 목사들 뭐, 성령 받아 가지고, 지금 목사 안수 받아 가지고 목회 하는 사람들이 노회원 모든 총회원들이 결의한 것이면 이것은 성경 볼 것 없이 그 결의한 것은 정확하기 때문에 하나님 뜻이기 때문에 따른다' 하는 이거와 천주교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게 총공회라! 알고 믿어야 돼요.
노원 소원은 심의 기관이지 의결 기관은 아니라
그러면 모든 목사들이 다 의논하면 그것이 맞다고 하는 그 주장도 있고,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에 좀 은혜 받은 사람들이 힘써 찾아 가지고 못 찾는 사람들을 지도하자.' 하고 '찾아서 결정하는 것은 성경대로 결정하자.' 하는 그것이 사람의 말 아니오. 백 목사 말 아니오. 노원 소원을 구성하고 '그것은 심의 기관이요 의결 기관은 아니라' 하는 그것이 사람 말이 아니오.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민주주의냐 독재주의냐?
이래서, 000김철수 목사님은 우리에게 논문을 두 장을 냈습니다. 하나는 '기독교는 민주주의냐? 독재주의냐?' 그래 하나 제목으로 냈고, 하나는 '성경은 민주주의냐 독재주의냐?' 그래 두 제목으로 논문을 냈었습니다.
이랬는데 그 논문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씩 평해 나가기로 했는데 그때에 모든 교역자들이 '이거 고쳤으면 좋겠다' 하는 주장을 그때 몇 문제가 됐습니까? 그 문제 총수가 몇 문제가 됩니까? 사십 몇 문제 아닙니까? 사십 몇 문제인데,
'성경은 민주주의냐 독재주의냐?, 기독교는 민주주의냐 독재주의냐?' 하는 이 두 논문에 대해서는 순서가 아직까지 닥치지 안했기 때문에 그것을 한번 우리가 의논해서 어느 게 맞은가? 하는 그것을 한번 심의회에서 의논해 가지고 판정하자 하는 그 판정을 하기 전에 나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종다수 가결이 아니다
우리 총공회 행정은 처음부터 '우리는 종다수 가결이 아니다' 하는 것을 벌써 처음에 고신에서 나올 때부터 그것 때문에 갈라져 나온 원인이 또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다수가 말해도 진리가 아니면 따를 수가 없다. 아무리 소수가 말해도 우리는 진리면 따른다.' 다수 가결을 반대한 것이 우리요 성경 가결을 주장하는 것이 이 총공회가 나온, 처음에 거게서 나온 움싹의 이 행정입니다.
이러니까 이래 나왔기 때문에 '기독교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독재주의다. 기독이라 말은 그리스도는 민주주의자가 아니고 독재주의자다. 성경은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고 독재주의를 가르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달라서 갈라졌습니다.
민주주의라 말은 종다수주의라는 말과 같은 말
민주주의라 말은 ‘종다수주의’ 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다수를 따라가자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독재주의라 말은 ‘성경에서 모든 것은 결정을 하자’ 하는 그 말과 같은 말
독재주의라 말은 영원 자존하신 한 분 그분에게 따라가자는 것이 그것이 독재주의입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모든 것은 결정을 하자'하는 그 말과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독재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해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이 다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예수님을 따랐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분이 그분이 그렇게 존귀하게 된 성공한 것이 원인이 어데 있습니까? 그 분이 독재를 당했습니까 독재를 했습니까? 예수님이 독재를 했습니까 독재를 당했습니까? 독재를 당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독재 당했습니다.
말 한 마디도, 생각 하나도, 움직인 거 하나도, 당신이 단독이 자기 주장으로 한 일 하나도 없습니다. 완전 독재를 당했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므로' 하는 말은 아버지에게 완전 독재를 당했기 때문에 그를 지극히 높였습니다. 그분은 우리들에게 대해서 독재를 하십니까? 민주주의를 하십니까? 그분은 우리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십니까? 독재하십니까? 민주주의 하십니까? 독재하십니다.
아버지에게 독재당한 것처럼 우리에게 독재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에게 독재당한 것같이 너희들이 나에게 독재를 당해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말씀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해서 그 명령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정하는 것같이 너희들도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그 명령에 복종하는,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독재입니다.
그리스도는 독재요. 성경은 독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독재를 말하요. 또 우리 독재를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았으면 죽어도 그대로입니다. 타협이 없습니다. 서로 흥정해서 얼마큼 이렇게 양보해 가지고 타협하자 하는 타협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것이 행정이 다른 것이오.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가 행정이 다른 이것을 아는 자는
그러기 때문에 총공회의 교리와 신조가 행정이 다른 이것을 아는 자는 여게 있을 수 있고 이것을 알지 못하고 뭐 별소리 다 하네.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죽어도 여기 있고 죽어도 이 가운데 죽지 딴데 가지 않을 것이고,
썩은 새끼에 매인 것 모양으로
이걸 모르고 공연히 썩은 새끼에 매인 것 모양으로 '밥통에 매였다, 이제까지 해 놓은 일이 그렇기 때문에 어짤 수 없다.' 말하는 것처럼 그런 사람은 여게서 일해도 앞으로 이 도의 효력은 보지 못합니다. 권능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자리서 하나씩 고치자, 고쳐 나가자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도 인생이 변해서 하나님도 변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완전히 변해서 사망되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완전 관계의 정상을 만들어 놨다. 흠과 점이 없이 만들어 놨다. 만들음을 받은 우리들이 중생된 우리들이 이렇게 하나씩 둘씩 변해가기 때문에 자꾸 하나님과 우리와의 이 계약의 결과가 변해지고 있으니 우리가 이 자리서 하나씩 고치자. 고쳐 나가자. 변한 걸 고치면 하나님도 나에게 변해진 것이 고쳐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변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말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변했으니까 내게 대해서 하나님의 대응은 변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에게 칭찬하던 분이 책망하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변치 않기 때문에 칭찬이 책망으로 변해졌지, 우리가 변해지니까 변해진 우리에게 변치 않는 그분이 우리에게 나타나서 상대하시니까 변해지는 것이지 그분이 변해져 그런 것은 아닌 것입니다. 안 변한 것이오.
칭찬하던 자가 책망 받을 일을 하면은 책망하는 그것이 변하지 않는 사랑이요, 변치 아니하는 하나님의 행위십니다.
새것보다 옛것이 좋은데 옛것이 틀렸을 때는 안 돼
이래서 여게서도 배울 때에 하나 하나가 ‘이는 일반적 교리와 신조와 다르다’ ‘이는 일반적 교리와 신조와 다르다’는 요것을 깨달아서 다르면 이 다른 게 좋고 새것이 자꾸 좋은 게 아니라 새것보다 옛것이 좋은데 옛것이 틀렸을 때는 안 돼.
새것보다 옛것이 좋아. 자기는 이미 알고 있는 그 교리가 지금 새로 발견한 교리보다도 그게 옳으면 좋아요. 더 좋아요. 틀렸을 때는 할 수 없어 내가 가진 것이 좋지마는 가진 것이 틀릴 때는 우리는 집어 던져야 되지 가지고 있으면 죽어.
이러기 때문에 여게서도, 그래 내가 말하기를 이제까지 모두 다 기성(旣成) 되어 있는 모든 주석들이 있으니까 그 주석과 다를 때는 이것은 지금 다르면은 이거 새것이라고 요새 유행 모양으로 취할 게 아니라 '다르니 이거 큰일났다. 내가 이제까지 알기는 이렇게 알았는데 그렇게 아는 게 틀렸고 이렇게 알아야 된다고 하니까 이거 문제다.'
그럴 때에는 그것을 그냥 저버리지 말고 또 그냥 따라서 고치지 말고, 이제까지 내가 깨닫고 믿고 하던 거와 다를 때에는 우리는 거게서 심각하게 해 가지고 '어느 게 틀렸느냐 옳으냐?' 죽고 사는 것이 거게 매였기 때문에, 이렇게 죽고 사는 거게 매인 가치의 중요한 것을 깨닫고 이것이 옳으냐? 삐뚤으냐? 하는 것을 살펴서 이래 가지고 정 새것이 옳으면 아깝고 원통하지만 새것을 따라가야 되겠고, 옛것을 버려야 되겠고, 새것보다 옛것이 옳으면은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더 확신을 가지고 든든히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지마는 목사 된 분들은, 그래도 성경을 많이 읽은 분들은 '이러면 이제 까지 이래 믿었는데 이러니까 이거 다 이거 틀렸느냐? 옳으냐?' 하는 것을 심각하게 다뤄서, 생명보다 귀중히 다뤄 가지고 이것을 판정해서 바른 길을 찾아서 나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아무나따나 받아들일 것이 아니고.
시간 어찌 됐어? 그라면 그만 시간 많이 갔네. 제가 엊저녁에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하는 것을 해석을 했었습니다. 요것도 믿는가 안 믿는가? 맞는가 안 맞는가? 공연히 까다롭게, 공연히 자꾸 쪼개서 나누기만 나누는 말이라면 정죄받아야 됩니다. 안 쪼개야 될 것 쪼겠으면 정죄받습니다. 심판받습니다. 쪼갤 것을 안 쪼겠으면 그것도 심판받습니다.
주 만군 여호와 거게 대해서 지난밤에 해석을 했습니다. 우리의 깨달음이 달라져 가는 것을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데 달라져 가는 것은 필연한 일입니다. 왜? 예수 믿는 사람이 그 사람이 차차 사람이 변화돼서 사람이 점점 옳은 면으로 변해져 가면은 그 사람의 깨달음이 점점 옳은 면으로 자꾸 전진돼 나갈 것이고, 그 사람이 잘못 삐둘어지면 그 사람의 깨달음이 점점 잘못 깨달음으로 점점 퇴보돼 나갈 것이고, 이러니까 나는 언제든지 깨달아서 이는 역사에 변동 없다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회설교록이라는 이름을 했어. 우리는 오늘 깨달았는데 잘못 깨달았으면 고칠 수 있습니다. 고칠 때는 '이거는 틀렸다. 내가 잘못 깨달았다. 이거는 고친다.' 선포하고 그 책임을 져야 됩니다. '나는 과거에 이렇게 말을 했었는데 이거는 잘못 깨달았다. 이거는 고친다.' 또 지금 이렇게 깨달았으면 '이게 바르다' 이렇게 우리는 성장돼 가는 과정에 있고, 또 점점 깨달아 가는 과정에 있고, 행동도 행동해 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어제보다 오늘 새로와져야 되고 오늘보다 내일 새로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새로와지는 건 죄가 아닙니다. 새로와지는 건 죄가 아니오.
새로와지는 것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과거에는 이렇게 말한 걸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그거 지금 어느 게 옳으냐? 그거 찾아 가지고 이게 옳으면 '이게 옳은데 과거에 내가 잘못 깨달았다.' 잘못 깨달음이 없다는 그 사람도 역연 제가 완전이라는 그런 주장입니다. 안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얼마든지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고칠 수 있습니다. 고쳐서 옳고 바르게 점점 옳고 바른 걸로 고쳐서 우리가 깨달음도 고칠 수 있고, 믿음도 고칠 수 있고, 행동도 고칠 수 있습니다.
내가 과거에 이랬는데 지금 '과거에 이렇더니마는 지금은 왜 이렇게 말하느냐?' 하는 데 거게 억눌릴 이유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때는 그래 깨달았는데 오늘 깨달은 것이 그때 깨달음보다 좋으냐 나쁘냐?' 좋으면 감사할 것이고 나는 그때 그만큼 어렸고 어두웠고 많이 삐뚤어졌는데 점점 옳은 데로 가까이 와 가지고 좀 더 옳아졌고, 더 발라졌고, 더 깨끗해졌고, 더 밝아졌고, 그러면 좋지 않습니까?
내가 소유와 몸과 생명을 내가 기울일 곳이 이곳이다
이래서 오늘 아침에는 우리 총공회라는 이것이 뭣 때문에 이렇게 됐느냐? 깨달음을 양보하면 문제없습니다. 깨달음을 양보하고 행정을 양보하면 문제없습니다. 여게도 '이것은 그만 다수 가결로 모든 사람 의논한 대로 그래 하자.' 요것만 고집하지 안하고, 고집이라 말은 굳게 잡았다 말이오. 요걸 고집하지 안하고 풀어놓고 다 이렇게 '다수 가결로 하자' 하면은 우리 총공회도 많이 커졌을 것이요, 나가는 사람들이 가지 안했을 것입니다. 행정 문제로 가게 됩니다.
지금도 가게 될건지 모릅니다. 안 가는 걸 바라지마는. 부탁하는 것은 자기가 제일 '올바른 깨달음이라, 올바른 주장이라, 올바른 행정이라.' 제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지 못할지라도 그걸 따라가는 것이 양심의 사람이요, 그것이 성령을 훼방하지 안 하는 사람입니다.
옳은 줄 알고 그것을 버리는 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이요, 옳은 것은 딴데 있는데 그런 줄 알고 거기 붙어 있는 것도 외식자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한번 있어야 될 것이기 때문에 오늘 말씀을 했습니다.
오전에 이제 이사야 3장에 있는 이 말씀을 계속할 터이니까 여러분들이 잘 읽고 거게서, 잘 읽고, 그저 백 목사가 말하는 데에 잘못된 것을 말해 주면 내가 내 선지자로, 선생님으로, 목자로 모실 것이고,
또 비판해 가지고 ‘옳으면 옳다’ 긍정하는 그런 외식자가 되지 말고, 옳으면 '여게는 내가 소유와 몸과 생명을 내가 기울일 곳이 이곳이다' 하는 것을 확정짓고 단행하는 사람으로 이 진실성을 가지고 이 자리에 참석해서 받아야 할 것입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9, 5, 화 새벽집회)
19-5. 총공회 교역자가 총공회 훼방
저거끼리 앉으면 수근 거려서 훼방을 받고
이 총공회 진영이 총공회 안에 있는 모든 교역자들에게도 다 훼방을 받고, 훼방이라 말은 그거 안 됐다 헐고 삣는 것을 가리켜서 훼방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총공회 산하에 있는 교역자들에게도 이 진영이 훼방을 받고, 노골적으로 저거끼리 앉으면 수근 거려서 훼방을 받고, 거게 따른 교인들도 한국에서는 제일 쓰지 못할 이 노선이 총공회 노선이라고 그렇게 교역자들에게 배우고, 또 다른 진영 사람들에게 듣고 해서 그렇게 허무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분명히 알고 믿기 때문에
그래서 아무리 내가 증거하고 또 신앙 동지의 사람들이 같이 증거 한다 할지라도 이 총공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판거리와 의문거리가 돼 가지고 있어. 그것을 아니라고 증거를 많이 하고 없이 해라고 기도하고 말로는 그렇게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분명히 알고 믿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이것이 만일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면 이를 훼방하는 자는 하나님을 훼방하는 자요 그러면 그 사람이 하나님과 멀어질 것이요. 또 이 일을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라면 이 역사를 협조하고 믿고 따르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일이 되겠습니다.
나를 증인으로 세웠는데. 내가 암만 증거해 봤자
그러기 때문에 어제도 어떤 사람이 '그러면 목사님의 깨달음은 완전이라고 봅니까?' 하는 말 들었는데 과연 옳은 말입니다. 완전이 아닙니다. 저도 그저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대로 깨닫고 믿어지게 하는 대로 믿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그러나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이렇게 들어 댈 때에는 저도 거게는 약점이 생겨집니다. 의심을 해서 약점이 생겨지는 것이 아니라 이럴 때는 나를 증인으로 세웠는데.
내가 암만 증거해 봤자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지를 안하고 세상은 다 저 옳다고 제가 정통이라고 제가 인도하고 가는 길이 제일 바르다고 하는 것이 오늘은 세계에 각 교파 각 진영들의 주장들입니다.
당신이 뭐 표적으로 보여 줘야 되지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이는 그도 내가 같이 하지만 이도 같이 하신다는 그런 증거를 당신이 뭐 표적으로 보여 줘야 되지 내 좁은 입, 간판 없는 무식한 사람, 내가 무슨 참 계통 있는 무슨 높은 학문을 공부하지도 안했고, 또 세계에 있는 모든 지식의 그 광대한 지식을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늘 말하기를 여러분들에게 나는 국민학교 오학년까지 밖에는, 오학년도 다 끝마치지 못한 사람이라 언제든지 나는 배우지 못하고 무식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들 앞에 증거해 나왔습니다.
이러니까 명예나 간판이나 학위나 그런 것들을 가치로 삼는 사람들이 내게는 그런 가치가 하나도 없으니 내가 암만 말해 봤자 인정해 줄 리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당신이 인정하시는 표적을 보여 줘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증거 하는 이 내용을 인정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 진영을 진영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우리 총공회에 내용은 이 진영을 진영 안에 있으면서도 돌아앉으면 쑥덕거려서 훼방하는 사람들이 삼분지 일쯤 되고, 그저 멈춤 하게 말하지 안하고 뭐인가 보자 이렇게 구경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이 진영이 생명으로 걸어가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진영이니 이 진영을 보수해야 되고 증거해야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몇 사람이 안 됩니다.
제가 왕이 되고 싶어서
일면으로는 보수하면서 증거를 하면서 또 마귀 시험이 들어와 가지고 그 속에서는 제가 왕이 되고 싶어서 거게서 그 공작으로 내가 증거하는 교훈이나 지도하는 행정을 훼방하는 그런 것으로써, 저거끼리 이 사람은 저 사람을 이용하고, 저 사람은 이 사람을 이용하고, 제 앞에 앞잡이로 이 사람을 내세우고, 저 사람을 내 새워서 나가고 있는 것이 오늘 총공회 진영입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8, 5, 6 금 새벽집회)
19-6. 백목사님의 탄식과 작정과 소원
탄식
왕 노릇할라 하는 그것 때문에 다 죽었어
알맹이를 아직 몰라. 이것을 정말로 알면 가 가지고 어데든지 가서 어데든지 뭐 미국이고 일본이고 뭐 어데든지 가 가지고서 이 진리를 바로 증거하면 마구 뒤비지고 이럴 건데 이거 모르기 때문에 교회가 만날 부흥 안 되고, 그 중에서 왕이 될라고, 왕 될라고 제가 뭐 주권하지 안할 거, ‘이거는 내가 관계할 수가 없으니까 내가 관계가 없으니 이거는 내가 누구에게로 미뤄야 된다’ 제가 하지도 안할 일도, 닥치지도 안한 일도 전부 다 꺼머당겨 가지고서 제가 할 듯이 왕노릇만 하고 싶어서, 아직까지 그 참 날개도 나지 않으면서 날아다닐라고서 이래 가지고 왕노릇할라 하는 그것 때문에 다 죽었어. ‘우리와 함께 왕노릇 하기를 원한다. 우리 없이 네가 왕노릇 할라고 하지 말고.’ 그것 때문에 다 죽었어. 이러니까,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이 목사들은 제가 왕될라고, 어림도 없어.
제까짓 것 가지고는 지금 이 세계에 대적이 여러 수천 수백이라고 할 수 있는 가운데 이런 대적인데 그분들로 더불어 싸워야 하는 것인데 뭘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지금 배워 가지고 몇 가지 배우면 그만 그거 팔아 가지고 왕노릇 할라고 제가 다 안듯이 왕노릇 할라고,
왜? 에이고 거기도 그렇더라. 보니까 아무 것이 파가 있고 아무 것이 파가 있고 아무 것이는 제가 왕될라 하고, 왕 그리 근방에 가지도 못할 게. 박사 그까짓 거 돼! 어림도 없어! 암만 놓고 가르쳐 봐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뭐 어찌 될 거라 되기를! 이래 가지고 보면 알아 파가 있어. 아무 파 아무 파 아무 파 아무 파, 뭐 ‘백 목사만 세상 뜨면 이제 몇 쪼가리로 갈라질 것이다’ 그것도 알아. ‘몇 쪼가리로 갈라질 것이다’ 아무 것이는 아무 파에 속했고 아무 것이는 아무 파에 속했고, 아무 것이는 아무 파에 속했고, 다 그걸 다 보고 있다 말이오. 그것 때문에 이 복음이 활발 있게 힘 있게 전해지지 안하고 깨어지고 있다 그 말이오.
찬송가 이래도 이게 또 여기서 했기 때문에 시기 나, 이래 놓으니까 찬송가도 이걸 암만 이 찬송가 이래도 이게 또 여기서 했기 때문에 시기 나, 차라리 통일찬송으로 다른 이거 일반 하는 그게 좋지 우리 진영에서 이거 서부교회서 내가 말했기 때문에 싫다 나하고는 속으로는 적이라, 언제든지 그래 가지고 이 진리가 저거 속에 들어가? 안 들어가니까 저거만 죽고 실패하지 소용이 없어.
이걸 바로 전달할 자가 없다 그 말이오 후계자가 하나도 없어. 이걸 바로 전달할 자가 없다 그말이오. 어데 있어? 요거는 요리 삐끌어지고 조거는 조리 삐끌어지고, 이래 가지고 한 다섯이나 열이나 뚤 뭉치면 될 것인데 그 다섯이 열이 뭉쳐집니까! 다 제가 또 왕될라고 다 갈라지는데? 이러니까 이거 탄식이라 그말이오.
작정
이 편집실에다가 전력을 기울이려고 하고 있어, 이래 됐는데, 이제는 개척교회 나는 투자하지 안해요. 개척교회에 투자하지를 안해. 이제부터는 뭐 하느냐? 이제부터는, 암만 해봐야, 교회 암만 세워봤자 그 교회는 다른 후임 오면 제것 만들어 버리고 제것 만들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어. 그거 그래 임시 임시 사람 구원하는 것뿐이지 그거 장구하지는 못해요. 그 교역자 틀리면 그만 가 버리면 달라져요.
저 서울에 큰 교회 00교회, 000에서는 제일 큰 교회인데 그 00교회를 우리 서부교회에서 세웠어. 000교회도 또 세웠고 00교회도 서부교회에서 세웠어. 이랬는데 교역자 바꿔지면 그거는 그만 그 교회는 그 사람 교회되고 마는 거라.
이러니까, 이제는 이 편집실에다가 전력을 기울이려고 하고 있어, 이제. 편집실 전력 기울여서 우리 서부교회에서 어짜든지 이 편집실에 전력 기울여 가지고서 편집실을 제대로 될 대로 만들 대로 만들어 가지고서 이것을 여게서 진리를 자꾸 증거할라고서 그라고 있어.
이러니까, 칼빈이든지 뭐 루터니 그런 사람들 다 그런 사람들이 세워 놓은 교회는 다 풍지박산 돼 버리고 말았고 이제 그분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그 진리만을 보수한 그것만이 살아 있고 그것만 지금도 일하고 있어. 칼빈이 지금 칼빈을 통해서 하나님이 깨달은 그것만이 지금 일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어데 있든지 칼빈의 그 사상만이 일하고 있어요.
소원
그런 사람들이 사십 명만 나와 가지고 하면은 그게 능력 있는 거고 이러니까, 이 진리를 보수해서 증거하는, 지금은 증거 하는 것은 책자로 증거하고 또 테이프로 증거하고 이러는데, 며칠 전에 말해 이 테이프는 암만 조그만한 포켓트에 녹음기 넣어놔도 이러다가 들을라 하면 또 새로 또 틀어야 되고 또 이럴라 하니까 또 귀에다 자꾸 이래 대고 이럴라 해도 이렇고 그러니까 사람들은 지금 학생들 청년들은 자꾸 독서를 말하기 때문에 독서하기를 원하고 있으니까 이런 것을 조그만하게, 요것 만일 우리 총공회서 깨달은 계시론이라면 계시론, 신론이라면 신론을, 인론이라면 인론을, 구속론이라면 구속론을, 말세론이라면 말세론을, 대속론이라면 대속론을, 영론이라면 영론을, 영론은 지금 깜깜해. 영을 알지도 못하는데, 영을 똑똑히 알지도 못하는데 뭣이 있어? 영론 이거 지금 내 놓으면 세계에서 지금 또 은혜를 받을 것이라 말이오.
이제 이것을 요렇게 누구든지 하나 만들어 가지고서 조그만한 책자로 요래 포켓트 넣구로 만들어 주면은 요걸 가다가도, 뻐스 타고 가도 보고, 일하다가도 보고, 언제든지 넘겨서 닥치는 대로 봐 가지고 익혀서 이러면은 사람들이 구원이 될 것이라 해서 그런 걸 누가 말해 줘. 그게 옳은 줄 알지만 그렇게 할 사람이 있어야지 그렇게 만들 사람이 없어.
이래서 그렇게 만들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들 지난번에 000목사님에게 이제 이 모든 부로, 000박사는 이 조직신학을 몇 부로 했느냐 하니 칠 부로 해 놨다 해. 칠 부로 해 놨다 하는데 그러면 칠 부만 할 게 아니라 한 사십 부를 만들어라. 사십 부도 앉아서 그 종목을 기록하기가 쉬워.
그래 놓고 그거 나올 터이니까 나오거들랑은 하나라도 어느 거라도 하나 맡아 가지고 ‘나는 요게 대해서 나는 지금 연구를 해 가지고서 이 면을 내가 담당해 가지고서 이 면을 완전히 연구하도록 하겠다’ 그런 사람들이 사십 명만 나와 가지고 하면은 그게 능력 있는 거고 그게 실력 있는 거고 그런데 그거는 하나도 연구하라면 하나도 안 해, 안하고 남 해놓은 걸 따먹고 왕 노릇 하기에만 지금, 왕노릇 그 수단만 지금 거석해. 왕 노릇하는 그 수단만 지금 열중하지 딴 데는 열중이 없어. (백영희목회설교록 1988, 1, 16 토 새벽 설교)
19-7. 조그만한 종이쪼가리와 조그마한 붓
노디 건너가다가
저도 여기 개명 있을 때 그때 집사로 있을 때인데 지금 내일 설교할라 하니까 산에 가 가지고 기도하고 이래서 참 은혜를 받아서 그 도리를 깨달으니까 기쁘고 즐거워서 이렇게 와서 좋아서 이랬는데, 이래 가지고 냇물이 거기 하나 있어요. 냇물이 하나 있는데 냇물이 다리가 아니고 노디, 돌로 가지고 요래 건너가요.
성령과 연결이 없어져
냇물 건너올 때는 좋고 즐거워하고 이랬는데 그만 노디 건너가다가 불트려 버렸어. 노디 건너며 노디 안 빠질라고 이거보고 이래 쌓다 이라는 바람에 내 정신은 그만 그리 가 버려서 그만 성령과 연결이 없어져 버렸다 말이오.
없어지니까 그만 그거 그걸 한번 다시 새김질하며 해야 될 터인데, 새김질하며 가야 될 터인데 그만 잊어버렸어 어디로 갔는지. 그래 잊어버려 놓으니까 할 수 없어 그것을 도로 또 그 산까지 갔다가 또 새로 또 걸어와 보고, 걸어오면 중간에 흘렀는가 싶어서 찾을까 싶어 이러고 없어. 이래 가지고 몇 번 걸음 한 일이 있어요.
암만 해 봤자 안 돼요
갔다가 다시 또 돌아오면서 또 이 받은 것을 또 찾을라고 또 이래 가지고 자꾸 이렇게 받은 것을 생각하고 이래 생각해서 자기가 받은 그거는 손으로 쥐는 것도 아니고 생각으로 밖에는 못 쥐거든요 마음으로 밖에는 접촉을 못 해. 이거 받은 것을 자꾸 이렇게 생각할라고 이래도 그만 잊어버려 안 됩니다. 암만 해 봤자 안 돼요. 그게 뭐이냐?
주님이 '야, 이놈아 네가 나를 버리고 엉뚱한 것 딴것보고 좋아하는데 내가 네까짓 놈 보고 기다리고 있을 턱이 뭐 있나?' 하고 그거 그만 섭섭해서 가 버렸다 말이오. 이라면 이래 마음에 고심을 합니다. 고심을 하고 이래도 안 나와요.
그라다가 어째 변소에 갔어. 변소에 갔는데 쑥 튀어온다 말이지. '나 여기 있어' 이라며, 그래 그때 그러면 이거 뭐 없으니까 이 암만 기억해도 또 안 되니까.
조그만한 종이쪼가리, 조그마한 붓 하나
이래서 나는 그때는 꼭 요 조그만한 종이쪼가리 조그만한 것하고 요거 조그마한 붓 하나하고 가지고 다녀요. 그러면 거기서라도 그라면 그 자리 그만 써 버려요, 뭐.
변소에서도 쓰고. 그라면 길가에 가다가 또 다른 사람하고 얘기할 때 쑥 튀어나오고 그래 가지고 그때 나와서 나오면 좋고 그라면 환하게 정신이 밝아지고 모든 것을 바로 보인다 말이오. 사람도 바로 보이고, 나도 바로 보이고, 남도 바로 보이고 바로 보여. (백영희목회설교록 1989, 8, 11 금 새벽집회)
19-8. 초등 오학년 학력
오학년밖에는
이거 깊이 깨닫지 못하면 헛일이라 말이오.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목사 쳐 놓고도 여게서 배운 것은, 백 목사는 무식꾼입니다. 무식하요. 나는 국민학교 오학년밖에는 안 다녔습니다. 오학년밖에는 안 다녔어. 오학년밖에는 안 다녔는데 오학년에 까지 다녀도 그때 언제든지 급장이라서 뭐 선생 거석하면 저를 가리켜서 제가 대신 가르치기를 오학년까지는 성적이 좋았지마는서도 오학년밖에는 공부를 못 한 아주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 말이오.
일본 가서 공부
또 일본 가서 공부한다고 갔지마는서도 별로이 공부도 하지도 못하고 그저 모든 실물 그 교육은 받았습니다. 일본에 공장이라고서는 제가 종류 쳐 놓고서는 못 들어가 본 공장이 없었습니다.
그때 일본말을 잘하고 이러니까 일본 사람인 줄 알고 뭐 보내서, 들어가서, 공장에 들어가면은 어떤 것은 열흘, 어떤 것은 보름, 어떤 것은 이십 일 ,어떤 것은 한 달,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 공장이 뭐 어떻다 하는 그거 다 떡 알고 난 다음에는 그만 나와 버립니다. 나오고 또 딴 공장 다닙니다. 내가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래 시켰던 모양이라.
그래 놓으니까 내가 무식하지마는서도 어떤 사람이라도 이 말하면 이거 무식하지마는서도 공부는 안 배웠는데 참 아이들이 욕할라면 만물박사라 할 만침 그렇게 하나님이 알려 줘서 알게 됐다 말이오.
서부교회 본관 건축
이러니까 내가 이 예배당(서부교회) 지을 때에, 내가 예배당을 지으면서 이라니까 모두 그 기사들이 이 기사도 와 가지고서 비웃지, 또 이 도편수도 비웃지, 내가 말하는 소리를 안 듣는다 그말이오.
안 들으니까 이거 아무래도 내가 말한 소리를 듣도록 인식을 시켜야 되겠는데 이거 문제다, 이거 본관 이거 지을 때. 그때 뭐 저런 거 지을 때는 벌써 유명했었소.
이랬는데, 그래 가지고 이걸 말하면서 자꾸 말하니까 시시하게 여기는데, 시시하게 여기는 걸 이걸 자꾸 말해 가지고 이렇고 이렇지 않느냐? 이거 봐라. 둘 다 비교해 봐라.자꾸 비교를 말해서, 설계사에게 역학을 말이지. 역학을 가르쳐, 힘이라 하는 역학을 자꾸 내가 말해서 이렇고 자꾸 이래 말하니까 나중에 그 사람이 차차차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라고 난 다음에는 그 뒤에는 내가 말하는 걸 반대 안 하고 예, 이런 거 어짜면 되겠습니까? 그라면 그래 합시다.이래 해 나왔다 말이오.
그라고 이 목수들도 말할 때 자꾸 안 들어서 안 들으니까 이거 애를 먹었어. 이래 가지고 자꾸 이라다가 인제 나중에 신강해서뭐 그래 해야 돼요?그만 그 얼마 그 반쯤 다 지어갈 때는, 반이나 지었을 때는 그만 ‘선생님’이라. 그만 모시고 그만 언제든지 나한테 묻고 하지 묻지 안하고는 하지 안해요.
그거 나는 아무 그거 그렇게 배우지 안 했어요. 배우지 안 했으나 일본에 있는 공장이라 하는 건 다 다녔어 다니면서. 공장에 가면은 이 부에 가서 보면은 이거 뭐 일하러 가는 거 아니라 보고서 이거보고 저거보고 이러면은 이 공장에 것은 다 봤다. 이제 이치를 다 깨닫고 다 봤다. 이라면 그만 나옵니다.
나올 때는 언제든지 돈도 못 받고 나오요. 미리 나오니까 뭐 그래 나오니까 돈을 줍니까? 못 받고 나오고 또 딴데 갑니다. 가면은 또 들어가요. 그래 뭐 거기는 한국 사람이 들어간다면 뭐 명산 쓴 자손이라야 들어가지 못 들어간다 하는데도 그런 데도 뭐 가면 당일 가면 그만 들어갑니다. 가면 그만 넣어 줘요. 그래 가지고서 거의 많이 다녔습니다.
무식하다 깔보는 목사들
이래는 배웠지마는서도 나는 무식한 사람이라. 이러니까 이 목사들도 내가 말하는 건 시시하게 여깁니다. 시시하게 여겨서, 이거 뭐 무슨 철학자나 무슨 과학자나 무슨 도덕가나 무슨 이종교가나 유명한 그런 사람들의 말한 책을 보고는 가치 있게 여기지만 내가 말한 말은 가치 있게 여기지를 안해요. 그런 목사들 이 밑에 많습니다.
이러니까 가 가지고는 이 말씀은 듣기를 저 무식한 종에서 뭐 있겠느냐 이라니까 깔보니까 하나님이 알려 주지도 안 하니까 암만 봐야 진리는 모릅니다. 설교 시켜 놓으면 다 엉뚱한 설교해요. 이라고 뭐 이 사람 말 저 사람 말 이래 들어 가지고서 그런 것은 잘 듣는다 그말이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6, 3, 26 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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