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15 16:43
9장 6·25 환란에서 승리
9-1. 백영희 목사님 6·25 전쟁 점령지에서 집회
위천교회에 400여 명 몰려
지난번 그 6.25때에 그때에 모두 6.25 전쟁이 나니까 이제는 죽겠다고 모두다 피난을 가서 이 부산으로 내려온 사람 대구로 내려온 사람 마산으로 온 사람 자꾸 이래 와 가지고 아래로 밀려서 피난 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거창 그 시찰회는 거창, 함양, 합천, 그 세 고을이 삼군(三郡)이 합해서 한 시찰회였는데 거기 있는 교인들 다는 아니지마는 아마도 백 조사님 있는데 가야 우리가 이 피난하겠다 이래 가지고서 제가 위천교회 그때에 시무를 했는데 위천 교회는 한 30평 건평 됩니다.
30평되는데 양 사방서 교인들이 얼마가 몰려 왔든지 한 400여 명 몰려 왔습니다. 본 교회 교인은 한 칠십 명 팔십 명밖에 안 되었는데 사백여 명 교인이 모여 가지고 그 자리서 계속 집회를 했습니다.
벌써 그때에 인민군들이 점령을 해 가지고 있기는 벌써 점령한지가 한 달 반 가량 됐는데 달 반 이상 됐는데 그때까지 집회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백 조사 저놈을 잡아 죽여야 된다고서
아침 낮 또 밤 이렇게 똑 집회할 때같이 하루 세 번 예배를 보며 지내니까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놈들 우리 망하라고 지금 하루 세 번씩 모여서 기도한다고 어찌됐든 간에 그 두목 백 조사 저놈을 잡아 죽여야 된다 고서 그래 가지고서 제가 죽인다는 그 순서지에 이차로 둘째 번으로 놓여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래도 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니까 두려운 줄 모르고 그 집회를 끝까지 다 마쳤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0, 4, 21 월 새벽)
9-2. 6·25 때 공비들이 개명교회 불태워
안 믿는 사람들이 아무리 마다해도
제가 개명교회 있을 때에 예배당을 지을 때에 안 믿는 사람들이 아무리 마다해도 와 가지고 그들이 다 힘을 써서 예배당을 지어 줬어. 온 동민들이 큰 경사 난 것 모양으로. 시골에서는 차도 없는데 그 집을 지을려 하니까 보장을 이런 걸 가져와야 되니까 뭐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런 가파른 만당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온 동민들이 와 가 가지고 경사(慶事) 닥친 것같이 와서, 아이 어른이 와서 전부 매달려 가지고 그래 운반해서 개명교회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기도해서 우리가 패전했다고 불을 태워 버렸어
지어 가지고 오랫동안 쓰다가 공비가 와 가지고 하루 세 번씩 인민군 점령 때에 예배본다고, 예배보는 교회는 개명교회가 그렇게 예배를 봤고, 또 제가 있는 위천교회가 그렇게 예배를 봤고, 또 제 고향인 도평교회가 그래 예배를 봤고 이 세 교회만 그렇게 예배 봤지 다른 데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다고 해 가지고 그 사람들이 와서 불을 태워 버렸어. 후퇴하고 난 다음에 산에 있는 공비들이 와 가지고 이놈들이 기도해서 우리가 패전했다고 불을 태워 버렸어. 불탄 성전을 다시 개축할려고 연보 하니까 연보 반도 안 해서 그 액수가 넘어서 나머지 사람 하지 못했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2, 5, 25 화 새벽)
9-3. 6·25 점령지의 자연게시
하루 세 번씩 종치고 집회
6.25 때도 그랬습니다. 저도 6,25 때에 천 장로가 저기 있는 데 여기 이만기 목사도 있고. 그때 6,25 때 두 달 동안은 집회했소. 인민군 점령지입니다. 점령지 속에서 하루 세 번씩 종치고 집회했소. 집회했는데 한 사백 명 모였습니다. 그 조그만한 예배당에 양 사방서 각처에서 막 모아들어 가지고 그 뭐 기쁘고 즐거워하고 그들이 뭐라 하거나 말거나. 그러니까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인민군은 하나도 겁을 내지 안 했습니다. 인민군 겁은 내지 안 했는데 공습 오는 것은 겁을 낸다 그 말이오. 그때 공습이 겁나는 것이 아니라 인민군이 겁나는 것입니다.
처어치(CHURCH)
겁을 안 내고 이러다가 그들이 예배당 위에 미군들이 공습 와 가지고 교회라 하는 것을 보면 폭격 안 할 터이니까 교회라 하는 것을 표시로서 이걸 뭐 처어치(CHURCH)라던가 뭐이라던가 이래 '씁시다 이래. 나는 집회하고 지금 점심 먹다가 먹으면서 그래 말하기 때문에 그 뭐 아무 생각 없이 기도하지 안하고 점심 먹으면서 '그 뭘로 쓰는고?' 이러니까 백목, 명베. '명베로 이래 쓰면 됩니다' '명베가 누가 있나?' 있다 해. '그러면 가 쓰려면 써라' 이랬는데 가서 청년들은 좋아서 퍼뜩 가 썼는데 그게 마귀 시험이라.
그러고 난 다음에 와서 '이제 다 해 놨습니다' 하는데 그때사 깨달아져. 그때사 깨달아져서 '내가 하나님 의지하고 바라보는 게 아니고 미국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이 내 속에 들었구나 이제는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하나님이 진노하신다고 생각하고 나니까 그만 그때부터 겁이 나서 못 견뎌.
꼭 계속해서 강단에 서서 증거
그래 한 달 동안은 지내면서 그래도 하나님 은혜로 '오늘 죽인다' 내일 죽인다. 그들이 그렇츰 그래 쌓아도 강단은 한번도 새벽예배나 대예배나 한번도 장단은 범한 일 없어. 강단은 뽑은 일 없어. 꼭 계속해서 강단에 서서 증거 했습니다.
그때에 계속해서 강단에서 증거한 사람이 내가 알기로는 한 사람도 없었소. 거창에서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주 목사님도 주일날은 가서 예배보고 수요일날이니 그런 때는 들어가지 못한 때가 더러 있었고 이랬지마는 참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두 수요일은 딴데 가서 봤습니다.
두 수요일은 딴데 가서 본 것은 한번은 배수윤 목사님의 자녀가 세상을 떴다고 통고가 와서, 거기는 가는 것이 한 오십 리 되는데 멉니다. 이러니까 거기 가려 하면은 그때는 내가 그 사람들 때문에 변장할 수 없고 그때 모두 삼베 옷 떨어진 것 입고 막 이래 비벼 가지고 못이 배기도록 하고 그래 다녔습니다. 이랬는데 그렇다고 그런 외식을 할 수 없고, 양복 입고 가야지 성경 들고 가야지 그때 양복 입은 사람들은 없으니까 양복을 입으면 그 사람들이 색다르게 봤습니다.
그런데 걸어서 거기까지 가야 되는 것이니까 인민군을 통과해 가지고 이래 가야 되는 것이니 참 하나님의 권능만 믿지 뭐 권능 안 믿으면 못 갑니다. 거기까지 가 가지고 가 거게서 하루 저녁 인제 수요일 예배를 보느라고 본 교회는 수요일 예배를 뺐고.
자연 계시
한번은 개명교회 가 가지고 개명교회서 '우리는 다 죽을 터이니까 이제는 한번. 도야지(돼지)를 한 마리 숨겨 놨으니까 도야지 이거 잡는데 조사님이 오셔 가지고 같이 좀 참석해 달라.'고 그래 가지고 와서 거기 가서 그 날 밤에 거기서 수요일 예배를 보고.
그래 가지고 그 이튿날 '오늘 여기 주일예배 보라'고 이러는데 수요일날 그날 저거 집에 처가 왔어요. 와서 '내일은 지금 인민재판이 있는데 인민재판에 둘째가 지금 조사님으로 그래 되어 있는 것을 거기 있는 사람들이 와서 말하고 이러니까 내일 주일에는 지금 꼭 오면 안 되니까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고 또 거기 사람들도 붙들고 이래서 그 뭐 역부러(일부러) 그것 알고 거기 꼭 다른 사람 예배봐도 되는데 죽는 데 갈 거는 없다 싶어서 그만 안 가고 농산교회에 예배보려 했는데 그 날 밤에 OO무창, 지금 목사 OO무창 목사하고 나하고 둘이 한 방에 누워 자는데 아침에 자고 나니까 OO무창 목사가 오줌을 싸서 내 옷에 오줌이, 옷이 젖었어.
그때 내가 깨달음이 '이것도 자연계시인데, 이것도 자연계시인데 이 오줌이 뭐이냐? 오줌이 썩은 것 아니냐? 내가 거름 아니가? 그러면 내가 이번에 내가 여기서 엊저녁에 갔으면 되는 건데 안 가고 여기 있는 것은 이거 거름 노릇 하는 썩는 것이다. 이러니까 지금이라도 가면 안 되겠느냐?' 마구 그때 나서 가지고 달음질쳐 가지고 뛰어가니까 예배 십 분 전입니다. 예배 십 분 전인데 가니까 마구 놀라면서 어짤라고 오시느냐고 지금 이렇는데.
그러나 그래 왔으니까, 또 그들이 와서 그래 쌓으니까 또 겁이 납니다. 그게 내나 교회라는 이름 쓰고 난 다음이오. 그러나 그래도 그래 가지고 온 사람이 안 할 수 없어서 여기 가만 있으라고 이러는 걸 내가 인도하겠다고 쌓는 것을 가 가지고 강단에 설교를 했는데 그날 은혜가 크게 있었습니다. 마구 그때 공산주의를 짓밟고 마음에 얼마든지 평강을 가질 수 있는 온 교인들에게 평강을 가질 수 있는 큰 은혜가 그 날 내렸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깨닫고, 자연계시에서 깨닫고, 이렇게 저렇게 깨달아서 어쨌든지 참 이렇게 배우는 것이 복이 있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3, 10, 22 토 새벽)
9-4. 6·25 전쟁 시절
자수 다 해 가지고 다 죽어
내가 대구 어떤 여관에 가 가지고서 성경을 보고 있으니까 어떤 그 참 미꿈한 청년이 오더니마는 와서 절을 하면서 '아이구 목사님 되십니까?' '아니 나는 집사입니다.' 이라니까,
그 대뜸 묻기를 '어데 계십니까?' 거창 있다 하니까 '거창은 내가 듣는 소문이 이상한데 그 어찌 됐습니까? 나는 이리에 있습니다.' 그래 내가 있다가서 '이리에 있으면, 이리에 있으면 그 이리는 어찌됐습니까?'
'내가 우리 삼촌이 장로입니다. 이랬는데' 내가 이번에 말한 대로. 그래 가지고 자수 다 해 가지고 다 죽었는데 자기 삼촌 장로가 죽었으니까 이 장로의 시체를 찾아야 되기 때문에 칠백 명 그 시체를 인부를 대 가지고 다 들어내 가지고 보니까 맨 밑에 먼저 죽었더래요 제일.
그랬는데 '뭣입니까, 직분이 뭐입니까?' '집사입니다.' '집사님은 어찌 살았습니까?' '그렇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나는 그만 그때에 그 자수를 하지 안하고 숨으니까 견딜 수 없어 지하실 흙구덩이 속에 들어가 가지고 그 속에 파묻혀 가지고 이래 가지고 숨어 있었는데 나중에 나오라 해서 보니까 해방이 됐습디다.' 이래서 인민군이 다 물러가고 이래서 나와서 살아 가지고서 자기 삼촌 시체를 자기가 찾았다고.
거창 셋 교회는 6·25 다 지나가도록 까지 세 번 종치고 세 번 예배
거창을 묻기 때문에 '예, 거창은 교회는 하나도 내 준 교회가 없었고, 또 우리 있는 데는' 제가 그때 개명, 봉산, 위천, 셋 교회를 제가 제일 연결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셋 교회는 6,25 다 지나가도록 까지 종치고, 하루 세 번씩 종치고 하루 세 번씩 예배봤습니다.
'그렇게 봤다.' 거게는 점령지로서 내무서원들이 거기 다 동리에 다 차려 놓고서 그래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그래도 다 안 죽고 순교 세 사람만 순교 났습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참 말씀대로 그대로라고. 그래 말하면서 말을 합디다.
생사의 주권을 주님이 갖고 계신다
이러니까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믿어야 됩니다.
생사의 주권을 주님이 갖고 계신다는 걸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으면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지마는 안 믿는 데는 일할 수가 없어. 버러지 한 마리 죽는 그런 것도, 지극히 작은 개미 한 마리가 수염을 이래하고 이래하는 그것도 흔드는 것도 주님이 주권 하셔서 하십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3, 7, 13 수 새벽)
9-5. 6·25 때 믿음 지킨 박 선생님
자수한 사람은 한 사람도 안 남기고 싹 다 죽여
6,25 때는 기만 정치를 했습니다. '지금 점령하기 전에는 기독교를 용납하는 것 비슷하게 이래 해야 되지 안 하면 안 된다.' 이래 가지고 자수만 하면 문제없다. 순수한 기독교를 믿어라. 우리도 기독교를 용납한다. 이렇게 말했지만 그들이 후퇴할 때에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 자수한 사람은 한 사람도 안 남기고 싹 다 죽였습니다.
이리에 어떤 집사, 제가 대구 여관에서 성경보고 앉았으니까 와서 절을 하면서 '아이구, 목사님이십니까?' 나는 그때 '집사입니다.' '나는 집사입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6․25때 어찌 됐습니까?' 서로 묻는 가운데에 거기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그 군내 있는 사람 다 군 내무서에다가 모아 가지고 구덩이를 파고 죽였는데, 자기 삼촌도 장로라서 죽고 난 다음에 그 시체를 파려고 하니까 밑에 들어서 칠백 명 시체를 다 이렇게 인부를 대 가지고 모두 다 이래 손을 대면서 조사를 했다고.
그래 자기는 어찌 살았느냐 하니까 '아,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수하면 다 자유롭다. 하니까 다 가서 자수하고 사흘만에 한 번씩 보고하고, 상황보고 하고 이랬는데 나는 그럴 수 없어서 땅굴 파고 들어가 가지고 거기에서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은 살았습니다.
자수 한 사람 마지막에 보고하러 들어간다고 다 들어오라 해서 보고하러 오니까 좀 있으까 보고하라 쏵 다 들어오고 난 다음에 모조리 다 그 학교 운동장을 파고 죽였는데 그 구덩이 죽은 사람이 칠백 명이라.
나야 예수 이래 믿으니까 그때 가서는 이중 예수 안 믿는다고 하면 되지, 어리석지 말아요.
여수 반란 사건 때 박 선생
여수 반란 사건 때에 그때 동인이 동신이 손(양원)목사님 그 두 아들 순교할 때에 박 선생이라 하는, 그 사람 목사 됐습니다. 청년들이 일곱이 주루루루 이래 가니까 그만 가다가 인민군에 붙들려 가지고, 인민군에 붙들려서 그러니까 옆에 있는 그 학생들이 이놈들 다 예수 믿는 놈들이라. '너희 교회 나가는 놈들이지?' '봐 내가 어디 예수 믿더나? 내가 술도 먹고, 담배도 피우고, 어디 주일 지키더나? 네가 안 봤나? 내가 예배당에도 구경하러 왔지.' 박 선생 한 사람은 '나는 예수 믿습니다.' 그래 안 할 수 없어서 믿는다고 하니까, '요놈은 잡아다가 저 내무서에 감금해 놔라. 통일하고 난 다음에 분을 풀겠다.
나머지 너희는 가거라' '아무리 믿음이 없지만, 팔 때는 팔았지만 뒤에 생각하니까 원통하다! 가다가 또 인민군 만나면 또 인제 질문 당하면 입장 곤란하다. 어디로 옆 구멍으로 빠지자. 보니까 하수구가 이만한 게 있는데 그리 기들 어가면 되겠다 싶어서 그리 들어가려고 하나가 의논하고 하나 들어가니까, 하나 들어가려고 하니까 옆에 쭉 따라 들어가니까 인민군이 저기 오다 보고 저기 보니까 아무래도 불순분자다 싶어서 따바리총으로 다르르르 하니까 일곱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이 싹 다 죽었어. 회개 안 하는 자가 피할 길 없습니다.
너는 어쩐 놈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허술한 하나님 아니오. 그 박 선생은 감방에 들어가서 이제는 죽기는 죽는 것이니까, 그저 어느 시간에 사형 받나 하고 있는 힘 다해서 회개하고 기도하고 있는데 그저 벼락치는 소리하면서 문을 콱 차는데 어떻게 놀랐든지, 문을 턱 열더니만 “너는 어쩐 놈이고?” 쑥 나오는 말이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너 왜 있노?” “예수 믿는다고 여기에 들어가라 해서 여기에 들어왔습니다.” “고생했습니다. 우리는 국군입니다. 가십시오.”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살아서 고려신학교 공부해 가지고 졸업하고 늘 그저 여기 있을 때에는 우리 서부교회 계속해 나왔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3, 3, 13 주일오전)
9-6. 6·25 때의 배수윤 목사님, 하 집사님, 박재봉 목사님
배수윤 목사님
여기 배수윤 목사님도 웅양 있을 때에 그때에 그 예배당을 군인들 들어오도록 빌려 주지 안한다고 해 가지고서 '어데 지금 그런 그따위 소리 할까보냐'고 죽인다고 총에다가 약을 재 가지고, 앞에 세워 놓고 지금 대중 앞에서 죽이려고 앞에 걸어가라 하고 뒤에 총을 쏘는데, 총을 쏘니까 처음에도 암만 쏴도 안 되고 두번째도 암만 총을 쏴도 안 되고 나중에 가서 총알이 안 들었는가 보니까, 안 돼서 그래 할 수 없어 그만 총이 안 되니까 죽이지도 못하고 그만 목사님은 이리 가고, 가고 나서 총을 쏘니까 총히 탕 나갔습니다. 두 번이나 하니까 두 번 다 나갔어, 하나님이 총알을 막아버렸으니까, 죽을 때가 안 되니까 총알을, 급하게 그래 되는 데는 그런 데는 총알을 하나님이 막을 수밖에 없어. 안 막으면 안 되니까. 총알을 안 막으면 그 부대장 그자의 손가락을 병신을 만들어 가지고 오그리지 못하게 하든지 해야 될 거라 말이오. 그러니까 오그리지 못하게 했는지 몰라요. 방아쇠를 당겼는데 암만 당겨도 안 나가니까, 아마 당겨지지 안했을 것이야.
묘산교회 하 집사님
여기 뭐꼬? 묘산에 있는 하 집사님, 하 집사님도 담배불 달라 하니 까 안 준다고, 그만 인민군이 분해 가지고 이놈의 계집 쏴 죽인다고 그래 저 데리고 가서 저 산에 구덩이 가 가지고 이래 쏠려고 지금 이러는데 '그래도 지금도 너 담배불 안 줄 것이가?' '하나님의 계명에 담배피는 그런 심부름 못 하게 했기 때문에 안 주겠다' 하니까, 그리고 그만 쏴 죽일 건데 그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빽 틀어버리니까 이 사람이 어떻게 그만 두려워 놨는지 놀라면서 '아이쿠, 내가 잘못했습니다. 나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참 모친의 신앙을 보고 내가 놀래서 참 나도 회개를 한다'고 이러면서, 마음을 빽 돌려버리니까 그만 죽일 마음이 변해서 살릴 마음으로 생겨졌어.
박재봉 목사님
박재봉 목사님도 인민군에 붙들려 가지고 그 사람들이 '이놈이 박재봉 아니가?' 그래 죽이려고 모두 이래 단합을 해 가지고 이래 가지고 있는데 이래 '이제는 이 박재봉 이것은 부흥사기 때문에 죽여야 된다'고 인민군들이 딱 그래 가지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그 장교 하나 들어오더니마는 '이게 박재봉이가? 이놈은 내가 죽여야 된다.' 이러면서 끌고 저 산으로 가는데 인제 죽으러 가는가 하고서 따라갔는데 산에 가더니마는 '나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내비두면 꼭 죽을 것이 때문에 내가 보고, 하나님이 나를 보내서 그래 내가 했으니까 요리 요, 가면 요 월남해서 갈 수 있으니까 할 수 있으면 요 길 요리 가시라'고 그래 인제 그래 말해 줘서 그래 피해 가지고 왔다고. (백영희목회설교록 1983 9, 23 화 저녁)
9-7. 6·25 때 박재봉 목사님 1.
그래 나는 그걸 믿어요. 공산주의가 이렇게 칼로든지 총으로든지 이래 딱 할라 해도 이래도 네가 암만 방아쇠를 당겨도 하나님께서 활동계를 주장하기 때문에 탄환 그놈이 하나님이 허락지 안하면 그 탄환이 네가 암만 댕겨 봤자 꼼짝도 못한다. 탄환이 꼼짝도 못 한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습니다. 활동계를, 또 제가 이거 방아쇠 당길라고 했는데 암만 댕길라 해야 손이 뭐 오그라져야 댕기지.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습니다. 또 생사계를 주권하고 있어. 죽고 사는 것을 주권하고 있어. 이걸 다 믿어요.
여기 목사 유명한 목사 이름이 뭐입니까? 박 뭐입니까, 여게? 이적 많이 한 목사? 저 강원도에 있다 온 사람? 이거 요새 신출내기 신앙들이 돼 놔서 이거 뭐 뒤에 가서 어찌 될지 몰라요. 박재봉 목사가 여기 인민군에게 붙들려 가지고 이제는, 보니까 '하, 요놈이 박재봉이 로구나. 요놈 인제 참 단단히 잡았다.' 죽일라고 그래 가지고 저거가 지금 야나지게 죽일라고 딱 그래 가지고 있는데, 그래도 박재봉 목사는 '죽이고 살리는 건 너거에게 권리가 없어. 하나님께 권리가 있지.' 그래 내가 박재봉목사라고 이라고, 이라는데 하나님께 그저 뭐 기도만 하고 떡 이래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오더니마는 '요놈이 박재봉이가? 요놈은 내가 죽인다. 요놈이 들어 교회 부흥을 일으키고 돌아다니면서 우리 공산주의 망하라 하니까 요놈은 내가 처단한다고'그래 장교가 와 가지고 그라니까 인제 저거가 다 내놔 주고 인제 그래 가지고 딱 앞에 걸려 놓고 총을 들고 이래 가지고 가면서 저 골짝으로 가라 하더래요, 그래 골짝으로 떡 가 가지고, 골짝에 가니까 '나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목사님 어짜든지 욕봤습니다. 지금 여기서는 요리 가면 되니까 요리 가시이소.' 그래서 그래 넘어왔어요.
뭐 6,25 때 보니까 기적이 어떻게 많은지. 모두 죽을 지경에서 살아나지 안한 사람 하나도 없어. O배 목사님은 하도 믿음을 지키고 이라니까 그 사람들이 이놈은 죽여 버려야 된다고. '앞에 걸어가라' 걸어가라 하고 뒤에서 총을 암만 파야 이놈의 총이 나가나, 제발? 뭐 마음대로 해 봐라. 암반 해야 총이 안 나가. 총이 안 나가 할 수 없어 총구로 뚜드리면서 이놈의 새끼 도무지 총이 나갔으면 그만 대번 죽였을 터인데 총알이 암만 해도 안 나간다고. 그래 가지고 거게서 6․25를 이겼습니다.
그래 인제 자, 오늘 활동계, 또? 심리계, 그 심리계를 주관하는 것은, 금방 박재봉 잡혔다 하니까 심리계 주관하니까 '야, 너 박재봉 가서 좀 구원해라' 하니까 그 장교가 어데서 뛰어왔는지 뛰어와 가지고 '박재봉이 잡했어?' 이놈 내가 처단한다고. 그래 가지고 저 데리고 가서 내놓고, 공산주의자든지 뭐이든지 심리를 주님이 주권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을 때 당신은 흐뭇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흐뭇해요. 믿을 때에 당신이 우리 위해서 역사하고 싶어. 그분의 주권을 믿는 거게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도 왜정 말년 때 그때 한창 신사참배만 안 해도 죽일라 하는데 내가, 그때 주재소라. 주재소에 끌려가 가지고 말하기를 '너거 아무 효험도 없는 신에다가 무슨 거기다가 절하라 하노?' 이라니까 막 성을 내 가지고 당장 벌받아 죽는다고.
그래 내가 있다가 '너거 그 천조대신 그거 나를 달라. 내가 너거 앞에서 내가 불로 태울께. 태우면 나 이거 벌받아 죽을 것 아니가?' 그라니까 또 일본 국기에 대해서 말하기에 '일본 국기는 나라 표이기 대문에 그것도 너거 뭐 신인 줄 아나? 나를 달라. 너거 앞에서 내가 태울께. 아무 효험 없다. 거기 속지 말아라.' 이라면 그 사람들이 당장 그뭐 사형일 건데 그말 해도 그만 말이 없어. 한 말도 없어, 그만.
그 심리계를 딱 나는 주관하는 것을 믿기 때문에 네놈들이 암만 그란다 해도 주님이 마음을 가지라 하면 가지고 가지지 말라 하면 안 가지고, 말하라 하면 말하고 말하지 말라 하면 안 하고, 또 암만 네가 나를 뚜드릴라고 이래 울러매도 딱 이라고 난 다음에 '중지' 하면 요래 가지고 가만히 발발 떨고 있지 때리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우리 주님은 이런 주님이라.
이러니까 차를 타고 가다가 이래 떡 탈선이 돼도 그만 딱 중간에 '중단' 하면 거기까지 와서 더 못 가 버려. 그러니까 모든 것을 주님이 주권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되는 일은 다 당신의 뜻대로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도 원망 불평할 것도 없어요. (백영희목회설교록 1989, 8, 6 주일오후)
9-8. 예수 믿는 목사 박재봉 목사님 2.
뭐 6.25 때는 그런 기적을 참 많이 봤습니다. 하나 들면 박재봉 목사님은 그만 그 인민군들이 붙들어 가지고 이름을 물으니까 '박재봉이라.' '너 그러면 예수 믿는 목사 박재봉이가?' 그렇다고 이러니까 요놈이 다니면서 어쩌든지 공산주의를 반대를 하고 했으니까 요놈을 어쩌든지 참 이제까지 잡으려고 모두 저거가 수사를 펴놓던 박재봉 목사가 붙들렸으니까 이놈을 어떻게 죽이야 분을 풀꼬 이러고 있는데, 그래 인자(이제) 그거는 뭐 참 사자 굴에 던졌습니다. 맹수에게 붙들렸습니다. 이랬는데 뜻밖에 어디서 찝차(지프차)가 하나 찝차가 하나 떡 오디만(오더니만) 그 인민군 장교가 그 제일 머리되는 장교가 하나 왔어. 와 가지고 이놈이 어떤 놈이고 보니까 박재봉 목사가 거 와 있어. '이놈이 어떤 놈이고?' '이 박재봉 목사라 합니다.' 아 잘 잡혔다고서 이놈은 어 내가 불로 죽이겠다고 '가자.' 그래 가지고 앞에 세우고서 딱 손발 묶어 가지고 앞에 세우고 권총 딱 들고 가자고 그래 인자 아무도 못 따라오게 하고 저리 가 가지고 산으로 산으로 얼마나 끌고 갔든지 가자 이래 가지고 그 월남 하기에 꼭 가까운 그 길에와 가지고 풀어놓으면서 '나도 예수 믿는 놈이 지금 내가 그 세력에 못 견뎌서 내가 이와 같이 하고 있습니다.' '내가 목사님 밑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참 고생을 하고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풀어놓으면서 요 길로 요리 요리 가면 그 월남 할 수 있으니까 가시라고 그래서 놓여 내려 왔어요. 그 내나 사자 구덩이에서 사자 입을 봉산 것이나 그거나 한 가지라 말이요.
6.25 때 거창 지방에서는 교역자마다 굉장한 기적들을 다 봤습니다. 6.25가 지나고 나서 교역자회를 처음에 모이니까 뭐 죽을 고비에서 몇 번 놓이지 아니한 사람이 없어. 다 몇 번씩 죽을 고비에서 놓여 나왔어. 그런데 어떤 사람은 보니까 자기는 아무 일 없이 지내 왔는데 그 사람 하나 가지고 피난했어. 뭐 가지고 피난했느냐? 인민군 보면 '아 수고하십니다.' '수고하십니다.' 그 말 한 마디 해서 피난했습니다. 그 피난한 것입니까 죄를 지은 것입니까? 그 사람은 피난한 줄 알지만 죄 지은 것이라 그말이요. 죄 지은 것, 내가 그말하면 여게 복음병원에 와 가지고 있다가 서울에 가 가지고 있는 목사요.
그러니까 그때는 권위 있게 일했는데 그 후에는 항상 돌아다니며 배척만 당합니다. 배척만 당해요. 지금 물어보니까 언제는 저게 부산 중부에 와 가지고 자기 밑에 있는 장로가 구청장이 되니까 이래 있었는데 거서 와 가지고 개척 교회 도와 준다 했는데 되어야지. 안 되가 지금은 서울에 가 가지고 개척 교회 한다는데 그래 다니요.
하나님은 한 번 하나님께로 가까이 갔던 사람이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계약하신 그대로 이행하십니다. 권능을 지킨 사람들은 그대로 있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요것을 기억하고 시간 지나갔지만 요것을 내가 오늘 아침에 증거할라 하는 게 요것입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0, 12, 11 목 새벽)
9-9. 박재봉 목사님과 이약신 목사님
박재봉 목사님
해방 전인가 해방 후인가 제가 모르겠습니다. 그때 아따 박 무슨 목사님이지, 유명한 목사님? 박재봉, 옳지. 박재봉 목사님이 그때 나왔다고 마구 소문이 나고 굉장합디다. 굉장한데, 왜? 그분이 박사들이 모르는 걸 말하고, 모든 신학자들이 모르는 것 말하고, 이제까지 듣지 못한 그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뭐 박재봉 목사라면 굉장히 유명하고 온 전국이 막 들이 몰렸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기가 폐병으로 죽게 돼서 금강산에 들어가 가지고 사람 아무도 없는데 그저 신구약 성경만 가지고 가 가지고 이 말씀보고 그대로 실행을 해 보니까, 실행을 하니까 자신이 벌써 성화가 돼 가지고, 성화가 됐지, 또 실행하는 가운데에서 이런 것을 깨닫고 저런 것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능력도 깨달았고, 또 하나님의 신실함도 깨달았고, 사랑도 깨달았고 이라니까 그분이 처음에 나와 가지고는 두려운 게 하나도 없어요. 또 그분 말한 대로 다 돼요.
이래서 나도 그분을 한번 만나볼라고 하나마 그 집회에 한번도 가지 못하고 이제 내가 열차를 타고 서울서 내려오는데 말 들으니까,저게 박재봉 목사님이 이 차에 탔다하는 그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박재봉 목사님이 그 차에 탔다 하니까 이 내려오는 바람에 좀 만나야 되겠다 하고서 칸칸이 가서 이제 찾습니다.
찾는데 그렇츰 유명한 사람이라면 아마 조금 다를 거다 하고서 이래 찾아보니까 아무데도 없어요. 안 보이요. 안 보이는데 이제 이 칸에서 저 칸에 나가는 데 그 사이에 옆에 변소간 옆에 거기 보면 사람들 한 두어 씩 섰으면 되는데 그 자리에 어떤 사람이 하나 꼭 끼여 가지고 섰어. 내가 보니까 사람이 좀 달라.
미안하지마는 물었어 “혹 박재봉 목사님이라 하는 목사님이 여기 탔다는데 어데 계시는지 혹 아십니까?” 이라니까, 이라면서 “저입니다” 이래. 그 바로 찾았어.
찾아 가지고 그래 그분에게 내가 하나 은혜를 받았어. 목사님을 내가 찾은 것은 목사님에게 한 마디라도 내가 생명 되는 말씀을 들을라고 찾았는데 나에게 한 마디 말해 주십시오이라니까 그분이 있다가 한참 생각해서 말하기를가난에서 겸손을 배우십시오요 말 한 마디 했어.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난에서 겸손을 배우라, 가난에서 겸손을 배우라. 자기 능력 가난에서 겸손을 배우고, 지식 가난에서 겸손을 배우고, 자기 가치 가난에서 겸손을 배우고, 자기가 아무것도 아닌 가난한 자라, 아무것도 없는 자인 것을 아는 거기에서 겸손이 자라간다 하는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 듣고서 그래 잘 있어라 하고서 서로 이별했습니다.
그분이 그때 그렇게 유명한 것은 하나님 말씀 듣고 그대로 실행하고, 실행하는 데에서 자기가 변화되고, 변화된 것만치 새로 깨달아지고 이것을 그때 나와 가지고 설교하니까 마구 온 교인들이 굉장히 모아들었습니다. 굉장히 모아들었어.
오늘도 그런 사람 원하고 있습니다. 이거 뭐 딴데 돌아다니면서 뭐 유학이니 뭐이니,박사하면 짜다라 좋은 줄 알아도 `박사' 하면 시시하이 여깁니다.
`신학박사하면아이구 아무 들을 것 없다' 이라요. `신학박사' 하면 뭐 `그거야 우리 다 아는 거, 켸켸묵은 것, 묵은 둥치, 거게 무슨 새 움이 나며 꽃이 피며 열매가 맺을 건가? 안 듣습니다.
그 사람은 어데서 칠십 일 동안 기도하고 왔다하면은 사람들이 눈이 쫑긋해 가지고그러면 뭐이 좀 나올란가?한번 찾고 있습니다.그 사람은 저 심심 산골에서 몇십 년 동안 혼자 살았는데 아무 설교도 듣지 못하고 혼자 살면서 기도 많이 한 사람인데 그 사람이라 하면 막 대인기가 끌고 굉장하요.
이약신 목사님
나는 그런 사람되지 안했는데 내가 그때 여기 고려신학교 처음 시작할 때에 여기 왔습니다. 신학교 입학하러 여기 왔는데, 내가 온 거는 다른 게 아니고 사람들이 모두 나를 자꾸 많이 따르는데,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어느 노선에다 붙여야 되겠느냐, 막 왜정 말년에 이 뒤숭뒤숭 해 가지고 노선이 옳은 노선이 없으니어데다 붙여야 되겠느냐?암만 봐도 보니까 그때 고려신학교 말하는 분들이 주남선 목사님도 그렇고 좀 좋다 싶어서내가 이 신학교 다니다가 말아도 내 후배들은 고신에 들이 속할 터이니까 내가 이리 가야 되겠다그래 하고서 그때 금성중학교에서 고려신학교 개교식 할 때 그때 제가 와서 입학을 했습니다.
입학을 하니까 나는 모르는데 뭐 말 들으니까여기 백영희 집사라 하는 사람이 왔다 하는데 백영희 집사가 어데 있노? 백영희 집사가 누고, 어데 있노?모두 이 수군수군 수군수군 그래 쌓아.이상하다. 나는 전혀 모르는데 어찌 그럴까?거게 보니까 뭐 삥 돌아 가지고 있어.
그래 나중에 거석하니까, 모두 인사를 하면서 그러냐고서. 그런데 그게 여기 저 박인순 선생님이 저를 만나보고 갔고, 또 몇몇 권사들이 저를 만나보고 이래 갔는데, 나는 심심 산곡에서 아무것도 배우지를 못했어요. 배우지 못했는데 그저 성경 말씀보고 그대로 실행할라고 애를 써서 말씀보고 그대로 실행하고 그런 가운데 깨달았어.
깨달으니까 나 깨달은 것을 다 여기 교계에 말하면 전부 이단이라고 정죄해.
이단이라고 정죄, 못 들은 말이라. 이단이라고 정죄하면서도 이상하게 매력이 있으니까 호감을 가지고 자꾸 들을라고 애를 쓰는데 얼마 지나고 나면 이단이 아니라 그게 정통이라.
제가 수영교회에서산골 집사가 와 가지고 집회한다하니까 여기 고려신학교에 있는, 그때 고려신학교 총회장, 아따 총회장 이름이 뭐이니라, 진해 있었는데? 이약신 목사, 이약신 목사인데, 약속 ‘약’자, 믿을 ‘신’자 이름은 이약신 목사인데 고려신학생들이 전부 싹 다 올라왔어. 올라와 가지고 인사를 하면서 뭐 아주 겸손히 인사하고 모두 다 예물을 가져오고 다 이래 뭐, 돈봉지 가지고 이래 왔어요.
어찌 왔느냐?이라니까, 총회장이 `이 모두 다 말라진 교리만 가지고 빼빼 말라죽지 말고 성령 받아야 되지 뭐 여기 이래 있으면 뭐할 거냐? 성령 없는 데서 뭐할 거냐?성령 받으라고 그래 인제, 성령 받을라면 여기 수영교회 지금 집회하고 있으니까 그 백 조사라는 이한테 집회 가라고. 그래 가지고 학교서 그때 휴학을 했어요. 뭐 그때부터 휴학을 해 가지고 일주일 동안 휴학하고 학생들이 싹 다 올라왔어요. 아무것도 아니지마는 하나님 말씀 읽고 그대로 실행하고 깨달은 거 그거 말하니까 모든 사람이 좋아서 그랬어요. 저도 그 바람이오. (백영희목회설교록 1986, 10, 5 주일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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