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1 17:28
회개 20가지
1989. 8. 12. 새벽
본문: 이사야 1장 18절∼20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흥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우리가 일반인이 아니고 특수인입니다. 그저 일반인은 부정모혈로 나서 산 자가 인류 시조의 범죄로 인해서 죽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안 믿을 때는 살아 있는 줄 알지마는 죽은 것이기 때문에 그 죽은 것이 차차 죽어서 세상을 떠날 때는 완전히 죽은 것이고 산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 첫째 아담으로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영육이 살아났습니다. 영육이 살아난 데에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난 사람 있습니다. 새로 난 사람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인해서 살아났고 또 진리와 영감으로 새로 났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두 번 났습니다. 처음에 난 것은 인류의 자손이기 때문에 땅에 속한 자인데 땅에 속한 조상과 꼭 같은 형상을 가지고 우리가 생겨나고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담 곧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신인양성 일위,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 신인백성 일위이신, 신인양성이라 말은, 신은 하나님을 가리키고 인은 사람을 가리키고 신성과 인성 둘이 한 격위를 이룬 것을 가리켜서 신인양성일위라 이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또 난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두 번 났는데 처음에 것은 첫 아담으로 말미암아 났고 둘째 사람은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났습니다.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것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안에 있고 하나님의 아들 밖에 첫째 아담에게서 난 사람이 밖에 있고 하나님에게로 난 사람 속에는 하나님이 내주해 계십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내주해 있습니다.
이래서 불택자들은 이미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나지 못합니다. 죄값으로 죽었기 때문에 그 죄값을 없애기 전에는 그 죄값으로 죽은 그것은 못 살아납니다.
예수님이 택자들의 죄값을 대신 받았기 때문에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게 됐습니다.
그런고로 안 믿는 사람은 살았던 것이 죽어 그대로 있으면서 차차 차차 죽어서 하루 이틀 사는 그것이 자꾸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라다가 세상 떠날 때는 완전히 죽어서 다시는 산 것이 없습니다.
이다음에 부활이 되기는 됩니다. 부활이 돼도 그 산 걸로 부활되지 안하고 그것은 영원히 다시 심판받아 가지고 죽기 위해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살아났다 말은 부활했다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그 죽음은 영원한 죽음으로 죽음에서 계속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었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났고 이제 살아난 이것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는데, 영원히 사는데 영 마음 몸의 그 형체는 영원히 사나 그 행위 그 기능은 다시 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두번째 죽는 것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그대로의 것은 산 것인데 산 것이 죽었고, 안 믿는 사람들은 요거 둘뿐입니다. 죽었고, 그 두 순서뿐입니다. 또 우리 기독자는 죽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았습니다. 그라면 세 가지 순서입니다.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잘 하면 세 가지 순서로서 그대로 영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잘못해서 벗게 될 때에는 벗은 토막은 죽었고 살아 있는 토막은 바로 살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세 가지 순서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두 가지 순서 뿐이고 우리 특수인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세 가지 순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세 가지 순서로만 삽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세 가지 순서에 한 순서가 더 이루어져 가지고 네 가지 순서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두 가지 순서가 좋습니까 세 가지 순서가 좋습니까? 손을 한번 들어 봅시다. 두 가지 순서가 좋은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세 가지가 크다고 아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녜, 살 알았습니다.
또 세 가지 순서가 좋습니까 네 가지 순서가 좋습니까? 네 가지 순서가 더 좋다고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녜, 잘 알았습니다 네 가지 순서는, 둘째 죽음의 사망이기 때문에 네 사지 순서된 것은 영원히 죽습니다. 세 가지 순서로 그대로 있는 것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 가지 순서로 된 그것이 많은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세 가지 순서와 네 가지 순서로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그 행위로 말하면 네 가지 순서만 다 있은 사람은 그 사람은 부활할 때에 그 영과 형체는, 마음과 몸의 형체는 부활하지마는 그 기능이라 하는 것은 하나도 부활하지 못합니다. 그거는 영원히 죽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은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의 형체를 가졌고 땅에 속한 자는 땅의 형체를 가졌다. 첫째 아담으로 난 것은 첫째 아담의 형상을 가졌다, 둘째 아담으로 난 것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체를 가졌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땅에 속한 형체의 자손은 땅에 속한 자의 형체와 같은 그런 자손으로 나고 또 하늘에 속한 자의 자손으로 난 자는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대로 난다고 그렇게 성경에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은 아담 하와의 모양대로 우리가 됐습니다. 아담 하와의 모양과 꼭 같습니다 아단 하와의 모양과 꼭 같은 거와 같이 둘째 아담으로 난 자는 또 둘째 아남의 모양과 꼭 같습니다. 둘째 아담의 모양은 신인양성일위가 둘째 아담의 형상입니다.' 형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우리는 신인양성의 형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성과 인성의 양성의 형체를 가지고 있는데 그러면 예수님은 양성일위신데, 양성이 한 격위를 이뤘는데 우리는 양성이 한 격위를 우리도 이루어서 신성 인성 둘입니까 어떻습니까? 양격위를 이루었습니까 신성 인성이 한 격위, 격위라 말은 인격의 존재를 이뤘다 말입니다. 한 격위를 이루었습니까, 양성일위는 안 되고 양성 일행으로 되어졌습니까? 우리는 양성일행의 존재입니까 양성일위의 존재입니까? 양성일위의 존재로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양성일행의 존재로 아는 분들 손 들어 봅시다. 녜, 그라면 잘 됐어. 양성일행의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은 신성 인성이 한 격위가 돼 가지고, 한 격위가 됐다 말은 그것은 인격이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우리는 신성의 신격과 인성의 인격 둘이 이제 하나를 만들었는데. 하나가 되어 있는데 하나된 것이 격위로 하나된 것이 아니고, 격위로 하나된 것이 아니고 그 움직임, 언행심사 모든 그 긴밀한 속에 있는 뜻이나 생각이나 움직이는 거 그 움직임이 하나입니다.
교회라 하는 것은 존재는 둘이지마는 움직임은 하나입니다. 하나님하고 영하고, 움직임이 하나로 움직이는 그것이 산 것이요 또 하나님과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움직이고 하나님과 우리 몸이 하나로 움직이는 그것이 영생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 무궁한 하늘나라에서 영생할 때에 하나님과 사람이 한 움직임 하는 그것으로 가지고 영생을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이 한 격위를 이루어 가지고 그 격위는 떨어지지 못하고 그 격위가 이루어져 가지고 영생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이신 신성이 피조물인 인성을 입고 있다가 십자가 못박혀 죽으심으로서 이제는 둘이 갈라졌습니다. 둘이 갈라지는 것은 그 존재로 갈라진 게 아니고 신성은 안 죽었습니다. 신성은 안 죽었지마는 인성은 죽었습니다.
인성은 죽었는데 인성이, 영이 그런데, 영도 죽었느냐? 영은 죽지 안하고 인성의 그 심신이 죽음의 해를 당했습니다. 심신이 죽음의 해를 당했으나 그것은 심신이 사망의 형을 받고 해를 당했지 실상은 신성도 그대로 살아 있고 인성의 영도 그대로 살아 있고 인성의 심신이 형만 받았지 그 심신이 죽은 것은 아닙니다.
심신이 죽지는 안 하고 죽는 형을 받았습니다. 죽는 형을 받았으나 그 심신이 십자가 못박혀 죽으니까 죽었습니다. 생명이 끊어지고 죽은 것은 대신해 죽었습니다. 껍데기는 죽었으나 속에는 살아 있습니다.
속에는 죽지 안한 것은 예수님의 심신의 인성도 범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범죄로 형을 받았지 그 자체가 죽을 만한 그런 죽을 죄가 없기 때문에 죽지 안 합니다. 죽이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사야 53장 끝에 보면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영혼이라 말은 이 심신을 말합니다. 심신을 우리의 대속하는 제물로 제물로 내어놔서 그 죽음의 형을 받았어. 예수님의 그 심신은 사형을 받았습니다. 사형을 받아서 사형을 받아 있습니다. 사형을 받아서 죽었습니다. 그거는 뭐 숨도 못 쉬고 아주 죽었습니다.
아주 뭐, 불에 태워도, 불에 태워도 아프지 안하고 그거는 완전히 불에 태워 아픈 것이나 또 어떻게 만일 무슨 독약을 가지고 그 심신을 녹힌다 해도, 녹힌다 해도 녹히면 아프다는 거 그런 걸 느끼지 못하게 완전히 죽었습니다. 완전히 죽었으나 껍데기만 죽었지 그 심신의 속세 알맹이인 그 정 기는, 알맹이인 그 정기는 죽지 아니하고 알맹이인 그 정기는 우리를 위해서 지금 기도하고 있다 이랬습니다.
요거 여러분들이 좀 알기가, 그러니까 껍데기는 죽었습니다. 껍데기는 왜 죽었습니까? 우리의 형을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껍데기 속에 그 정기, 정기, 그 정기, 정력이라면은 이 물질의 외부의 사람이 해할 수 있는 것이 돼지고 정기라 하면은 그것은 인간들이 해할 수 없는 마치 마음처럼 신비한 것인데 그 정기는 안 죽었습니다 정기는 뭐 했는가? 정기는 우리를 위해서 대속하신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서 아주 죽었습니다. 죽어서 지금 얼마 동안 있었습니까? 죽어 가지고 며칠 동안 있었습니까? 죽어 가지고 사흘 동안 있었습니다. 사흘 동안 있었는데 그 심신이 죽었습니다. 사흘 동안 있었는데 영육이 죽었어, 영과 육이 다 지금 형을 받아 죽었습니다.
죽었는데 사흘 동안 죽어 있었는데 사흘 동안 죽어 있을 때에 껍데기가 죽었습니까 속에 정기가 죽었습니까? 정기는 안 죽었습니다. 정기는 그라면 사흘 동안 뭐 하고 있었습니까? 안 죽었으면 어데 가 있었습니까? 정기는 내나 죽은 심신 속에 있습니다. 죽은 심신 속에 있는데 죽은 심신 속에 있으면서, 있으면은 뭐 하고 있었습니까? 죽은 심신 속에 사흘 동안 있었는데 사흘 동안 죽은 심신 속에 들어 있는 그 정기는 뭘 했습니까? 정기는 뭘 했습니까? 뭐 했지요? 내가 여기, 이사야 53장 끝절에 보면은,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강한 자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한다, 그러면 예수님은 사망의 원인이 되는 죄가 없는데 왜 사망에 이르게 됩니까? 거게 '영혼을 버려' 영혼을 사망하도록 그렇게 버렸다 하는 것은 당신은 사망할 만한 아무 그 이유가 없고 당신을 죽일 권세가 아무도 없습니다. 왜? 죄가 없기 때문에 못 죽입니다. 이랬는데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죄 있는 그 심신으로, 죄 있는 심신으로 그렇게 대정죄, 대신 정죄를 받았기 때문에 사형을 받습니다.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자기 영혼을 버렸다 말은 이 영혼은 뭐입니까? 53장 l2절입니다. 이사야 53장 l2절인데 영혼을 버렸다는 이 영혼은 뭘 가리키지요? 영혼은 영을, 영과 혼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이 심신을 가리킨 것입니까? 심신을 가리킨 것이라.
여게 영혼이라 하는 것은 영물입니까 물질입니까? 물질입니다. 영물이 아니고 물질입니다. 그런데 일반 신학자들이 어떻게 아는가? 이 영혼을 영으로 봅니다.
영혼을 영으로 보고 또 영혼을 마음으로 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음과 영은 하나로 이렇게 보고 있는 것이 그것이 오늘까지에 나온 모든 신학자들의 신학 해석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성경 다른 데는 영과 혼과 몸이라고 이거 삼분설을 말해서 나타냈습니다. 영과 혼과 몸 이 세 가지로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성경이지마는 해석할라고도 생각지 안하고 혼은 뭘로 아는가? '혼은 그것은 그래 말은 했으나 시적으로 그래 말한 것이지 그거는 실상 실존의 것은 아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자꾸 변호를 하고 있습니다.
짐승도 혼과 몸은 있다고 말했습니다. 짐승도 혼과 몸은 있다. 그러면 짐승의 혼은 죽을 때에 그만 다 즉시 없어져 버리고 말고 사람의 혼은 없어지지 않는다.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간다. 이랬어, 아래로 내려간다 말은 짐승의 혼은 그러면 고기덩어리가 죽어 없어지는 동시에 그 혼도 없어집니다.
그러면 사람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 말은 사람의 혼은 믿는 사람의 혼이나 안 믿는 사람의 혼이나 그것은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안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자야 됩니다. 심판 앞에 가야 되는데 대속을 받은 자는 심판 앞에 간 것이 없고 심판을 면제했기 때문에 낙원에 가서 있게 됩니다. 불택자들의 그 혼은 죽었을 때에 그것은 음부에 가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면 범죄자 중 하나로, 죄지은 사람과 꼭 같은 그런 입장을 입었고 그런 법을 입었고 그런 자체가 되었다 말입니다. 죄가 없는데 정죄받고 죄 있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에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러면 껍데기는 죽고, 예수님의 그 영혼, 영혼이라면 영이 아닙니다. 영혼이라 말은 육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흘 동안 사망 아래에 있었는데 무덤 속에 들어 있었는데, 그러면 그때에 예수님의 그 육의 형체는 형벌받아 죽었고 그 정기는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까? 예수님의 그라면 그 심신이 사흘 동안 죽음 권세 아래에. 죽음 속에, 무덤 속에 들어서 죽어 있었는데 죽어 있을 때에 그때에 예수님의 그 심신은 다 죽어 있습니까 겉은 죽고 속은 안 죽어 있습니까? 겉은 죽고 속은 죽어 있지 안했다고 여기 말하지 안했소, 성경에? 안 죽었습니다 그 정기는 안 죽고 어데 있습니까? 정기는 내나 그 몸뚱이 무덤 속에 들어 있는 그 속에 정기는 죽지 안하고 있습니다. 정기는 죽지 안하고 있는데 그는 우리의 형벌만 대신했지, 우리가 범죄한 죄를 대신 짊어져서 죄인이 돼 버렸고 그라니까 우리가 범죄한 그 죄의 값대로 형벌만 받았지 자체는 범죄하지 안했습니다. 요걸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 그러면 예수님의 심신은 죄인이 됐습니다. 죄인된 것은 자체가 죄를 지어 죄지어 죄인인가? 자체는 죄를 짓지 안하고 우리 죄를 대신 담당했기 때문에 죄인이 됐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형을 받는데에 형을 받을 이유가 있는가? 우리 대신 형을 받았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죄인 되었고 우리 형을 대신해서 죄인이 받는 그 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는 죄를 범하지 안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이렇게 죄를 대신 짊어졌다고 해서 자체가 털끝만한 죄라도 범했다고 하면은 예수님은 우리의 대속주가 안 됩니다. 예수님의 그 인성은 영원한 사망을 받아야 됩니다. 우리 대속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범죄하지 안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대속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했으나, 대신 짊어져서 죄인 되었으나 자체의 죄는 하나도 없습니다. 자체의 죄는 하나도 범하지 안 했기 때문에 죄가 하나도 없습니다.
또 우리의 형을 대신해서 받았으나, 대신해서 형을 받아서 죽었으나 그 자체는 형을 받지 않습니다. 왜? 형을 받을 그 원인인 죄가 없기 때문에 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형을 안 받으면 살아 있는 예수님의 자체에 정죄를 받았지만 속 자체는 죄가 없다, 또 형을 받았으나 자체는 형을 받지 안하고 우리 대신 형만 받는다.
그러면 죽지 안했습니다. 죽지 안했으면 심신의 그걸 말을 정기라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그 심신의 정기는 그라면 예수님의 심신의 정기는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겉은 죽는 데 형만 받지 그 자체는 죽지 안했습니다. 우리 대신 형만 받았지 자체는 죽지 안했습니다.
자체는 죽지 안한 그 이유가 뭐입니까? 어떻게 죽었는데, 죽어서 지금 장사해서 땅속에 묻혀 가지고 있는데 예수님의 그 심신은 어찌 죽지 안했습니까? 우리를 대신해서 형만 받았지 죽지 안한 것은 죽일 권세가 없습니다. 왜? 자체는 범죄하지 안했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도 우리 대신 죄만 짊어졌지 당신 자체에 죄는 없습니다. 또 우리 대신 형벌만 받았지 자체는 형을 줄 자가 없습니다. 근게 완전이요 그는 범죄하지 안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때 죽어서 무덤 속에 사흘 동안 있었는데 사흘 동안 심신이 지금 정죄받아 가지고 죽은 것은 껍데기고 속에 알맹이는 정죄도 안 받고 또 죽음의 형도 받지 안했으니 그때 예수님 자체의 심신은, 자체의 심신은 그때 죄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자체는 형을, 무덤 속에 장례 지냈는바 자체는 형을 받고 있습니까, 자체는 형을 받았습니까 안 받았습니까? 안 받았습니다. 요걸 똑똑히 요 구별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와 같이 지금 우리 대신 정죄를 받고 형을 받았을 때에 털끝만한 죄라도 지었으면 그 죄는 예수님 자체가 범한 죄가 됩니까 우리가 범한 죄가 됩니까? 어떤 죄가 돼요? 어? 예수님이 그때 범죄했으면, 털끝만한 죄라도 범했으면 그 범죄는 예수님 자체 범죄가 됩니까 우리 범죄가 됩니까? 자체 범죄가 됐다고 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대속할 그 자격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는 죽음뿐입니까 자체의 죽음도 죽음이 됩니까? 자체의 죽음도 죽음이 됩니다. 자체의 죽음이 되면은 우리 대신 죽음을 하고 자체 죽음도 하고 둘을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둘을 못 합니다. 자체의 죄값으로 죽었기 때문에 그것만 하면 전체가 다 죽는데 우리 죄를 털끝만치라도 대신 담당할 그런 아무 권리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요걸 똑똑히 알아야 돼.
이것을 이런 논리를 해 나가게 되면은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 '중생된 영이 범죄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이런 논리에 들어가면 혼돈돼 가지고 이거는 아주 부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말해 놨어.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하나로 헤아림이라 말은 하나로 간주하는, 하나로 계산한다 말입니다.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대속이라 말이오. 우리 형을 대신해서 대속함이라.
'그러나' '그러나, 실상은 그가' '실상은' 하는 것은 뭘 말합니까? 실상은 자체를 말합니까 우리를 대속하는 것을 말합니까? 자체를 말합니다. 대속은 해서 형은 받고, 정죄받고 형벌받고 둘만 대속을 했지마는 실상은 죽지 안해. 실상은 뭐 했느냐?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많은 사람의 죄를 져.
그 자체가 죄로 죽었으면 우리 죄를 질 수가 없어. 자체가 죄가 없기 때문에 우리 죄를 질 수가 있지 죄가 있으면 제 죄만 해도 한짐이고 뭐 다 죽는데 우리 죄를 질 그런 자격이 없다 말이오. 자체에 그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지금 속은 살아 가지고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 대속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대속했는데 신성이 우리를 대속해서 대형했습니까 신성이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그라면 그 인성의 인성 자체는, 인성 자체는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까? 안 죽었습니다. 인성 자체는 그라면 그 형은 무슨 이유로? 우리의 형을 대신 받아 대신 형을 받았고 대신 정죄를 받았지 예수님 자체가 죄가 없기 때문에. 죽이지를 못합니다. 죽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가 없으면 죽이지 않습니다. 죽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을 때에는 죄가 없는고로 겉어머리가 죽는 것 같지마는 죽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완전한 것으로 성화되기 때문에 썩을 것이 식지 안할 것을 입겠고 혈육이 신령한 것을 입겠고 이래서 다시는 사망의 해를 보지 않는 그런 자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죽는 것은, 믿는 사람이 죽는 것은 지금 살아 있는 것만 못하게 됩니까. 지금 살아 있는 것만 못하게 됩니까 지금 살아 있는 것보다 귀하게 됩니까? 살아 있는 것보다 귀하게 됩니다.
살아 있는 것보다 귀하게 되면은 그것이 얼마나 귀하게 됩니까?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이 됐습니다.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할 것이 됐습니다. 제한의 것이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 됐습니다.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이 됐고. 또 죽은 것이 죽지 않고 산 것이 됐고.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이 됐고. 불완전한 것이 완전이 됐고, 이러기 때문에 뭐는 사람이 죽는 것은 그것은 헌옷을 벗고 새옷 입는 것 헌옷을 벗고 새옷을 입는 것이요 헌옷은 또 어짭니까? 헌옷은 다시 그것을 빨아서 신령한 몸으로 새옷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가 입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이 제일 구원을 속도로 이루는. '구원의 속도가 제일 빠를 때가 언제가 제일 빠를 때입니까? 믿는 사람의 이 구원의 속도가 제일 빠를 때가 언제가 제일 빠를 때입니까? 그 빠른 시기가 언제입니까? 곧 죽는 때입니다. 죽는 때가 제일 빠르게 됩니다. 그것이 완전히 다시는 이제 사망의 침노를 받지 안할 것으로 완전히 성화돼 버립니다. 완전히 그런 걸 초월해 돼 버립니다.
그래서 요걸 여러분들이, 예수님은 우리를 대정죄 대형 이렇게 하시고 대행하실 때에는, 형은 죽었지마는 대행하신 것은 살았어도 대행하시고 예수님이 지금 무덤 속에 있을 때에는 그때는 우리 대행을 합니까 안 합니까? 대행을 하고 계십니나.
조금 어려운 말이지마는 그런 것만 알면 나중에 기도하는 가운데 알려질 겁니다.
이래서 이번에는 지난 공과를 다시 계속한 것인데 이번에는 외우는 일을 하지 말고 반사가 읽어 주고 학생들에게 따라 읽도록 그렇게 빨리 빨리 따라 읽도록 그렇게 이 공과를 하십시오.
하는데 그 본문은 이사야 1장 18절로 20절. 요거 요절입니까, 요거? 누가복음 13장 1절로 9절? 요거 뭐이야? 본문이 이사야 1장 18절로 20절 있고 본문이 두 군데입니까? 그래요? 요절은 1장 18절이고. 요것을 읽어 주고 또 그래 가지고 회개 스무 가지를 지금 말했는데 그것을 이거 보고 읽어 주십시오. 그동안 자꾸 외우고 이라니까 정확성을 잊어버려서 흐리게 돼 버렸기 때문에 요거 공과에 있는 대로 또박또박 읽고 따라 읽도록 그렇게 해 주십시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 두려워할 것'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이런 것을 이제 이해를 해야 돼.
이해가 돼서 자기가 깨달아져야 되지, '하나님만 사랑하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 사랑할 것' 이것이 일반 교회는 통하지를 안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사람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람을 그 다음으로 사랑하고, 이래서 하나님과 사람을 같이 사랑해야 되지 하나님만 사랑하면 안 된다.' 하는 것이 일반 교리들이고, 우리는 그게 아니고 '하나님만 사랑' 사람은 어짜고 그라면? 하나님만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 때문에 사람 사랑하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사람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람 사랑하고,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사람 사랑하지 않으면 정죄해서 죽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 순종으로 사람 사랑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라, 하나님만 바라보라, 하나님만 의지하라, 하나님 한 분에서 국한시키는 요 도리를 깨달아지는 요것이 있어야 됩니다. 요 일반 그 신학교에 교리와 신조가 우리가 다릅니다. 거게서도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지마는 그런 사람들은 거게서 힘을 쓰지 못 합니다. 그 세력들이 강해서, 그러면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에게만 복종하고, 이것이, 이것은 뜻을 깨달아서 알면 그만치 많이 성장한 것이오. 이것이 이해가 됩니까? 이 법을 공부한 사람들 어때? OOO집사 어때? 이해가 돼요? 어? 뭐라 하노? 들리지를 안해. 이해가 돼? 요게 이해가 돼야 돼.
알아야 돼. 하나님만이라는 것을.
그러면 그거 그러면 사람들이 시기하겠습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사람 사랑하는 그것은 사람 그 자체가 나쁠때 변할 수 있소 없소? 그 사람이 아주 인간지 제일 나쁜 사람으로 행동합니다. 행동하면 그 사람 행동이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을 미워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미워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 사람의 행동 자체를 인해서 미워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그거는 미워할 수가 없어.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모든 걸 다 그래 해야 됩니다. 정직을 지키는 것도 그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정직을 지키고, 정직한 분위기이기 때문에 정직을 지키고, 정직한 그런 모든 사회이기 때문에 지키고, 그게 원인이 아니고 하나님 때문에 정직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정직한 것은 그거 환경이야 어떻게 되든지 하나님이 변하기 전에는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의 원인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러기에 입으로는 뭐 일원론을 말합니다. 일원론을 말해 '원인은 하나뿐이다' 일원론을 말하고 이원론을 부인하지마는 실은 행동에 있어서는 전부가 일원론을 부인하고 이원론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행동으로서는 원인이 뭐, 원인이 둘도 셋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열심히 하는 것이, 조심하는 것이 돈 때문에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의 인격 때문에 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 명예 때문에 하는 사람도 있고, 이 모든 사회 때문에 인류 때문에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거 다 사망이요 다 멸망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자기가 깨끗해지는 그것만이,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인해 한 그것만 이제 심판해 가지고 무궁세계에 가지고 그 나머지기는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다 가게 됩니다.
그라면 '하나님만' 하는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이 모든 원인이 되어지면 그 생활이, 그 생활이 튼튼해요 그 생활이 약해요? 그 생활이 든든합니까 약합니까? 그 생활이 든든해요. 얼마나 든든합니까? 그 생활이 얼마나 든든합니까? 얼마나 든든하지요, 그 생활이? OOO장로님? 말은 맞기는 맞는데 그 핀트가 안 맞아. OOO조사님? 요게 백점이거든. 아들만 못해. 장로님이 조사님만 못하다 그말이오.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이건 하는 것은 하나님만치 강합니다.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이 원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죽기 전에는 죽지 안하고 하나님이 변하기 전에는 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때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걸 또, 사람 주관으로도 자기가 무엇 때문에 그 버릴 만한 변해질 만한 원인이 없고 또 그거는 하나님 때문에 움직여 하나님에게 속했고 하나님에게 피동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전지자가 책임을 지고 하기 때문에 변동을 못 시킵니다.
이러니까, 남편을 사랑하는데 내가 남편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좋아서 뭐 좋기야 좋지만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잘나서, 당신이 미남이라서, 당신이 내게 잘해 줘서 뭐 이렇게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게 좋소 하나님 때문에 사랑하는 게 좋소? 그런데 내가 이렇게 이렇게 잘하니까 그렇게 사랑하는 그게 좋지. 그러면 그거는 유한하라 말입니까 무한하라 말입니까? 어? 유한하라 말이요 무한하라 말이요? 완전하라 말이요 불완전하라 말이요? 불완전하라는 거라.
배암이 어둡게 만들어 그라는 거라. 왜? 사람이 자기 때문에 사랑하면 자기가 유한한 것이요 완전치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때문에 사랑하라는 것은 완전한 사랑을 가지지 말고 완전치 못한 사랑 가지고 대해 달라 그말이오. 하나님 때문에면 하나님은 완전자이기 때문에 완전자 때문에 완전자로 인하여서 사랑하는 그 사랑을 바라는 것은 완전한 사랑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이래서 이 공과를 읽으면서 그렇게 따라 읽도록 그렇게 합시다. 미국에 가 가지고 주일학교 한 백여 명 돼요. 이런데 가르치는 거 말 들어 보니까 공과 이걸 영어로 번역해 가지고 자꾸 뭐 딴거 가르치지 않고 이것만 가르친대요. 이것만 자꾸 읽고 외우고 하니까 그 학생들이 읽고 외웁니다. 그라면 이 말씀이 속에 역사해.
그래 가지고 뭐 열심히 하고 좋아하고, 그 사람들은 회개가 또 우리 여기 사람들보다 회개를 잘 안 해요. 회개하기 어려워요. 우리 여기 사람들은 금방 회개했다가 또 이랬다가 자꾸 이래 하지만.
그러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습을 받은지 육 개월 후라야 세례를 줍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믿기로 작정하면 즉시 세례를 줘 버려요. 그만치 견고와 변동성에 차이가 있어.
어짜든지 이걸 그래 가지고 오늘도 심방을 갈 터인데, 심방 갈 터인데. 이번에 거창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 하나님께서 왜 책망을 했습니까? 왜 책망했어? 그 처음 사랑 버리면 뭐 어떤데? 처음 사랑 버렸다고 뭐 그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처음 사랑 버리고, 어찌 되는데? OOO 집사님? 끊어져 버렸어 어데서 떨어진 것 있어 주님과 떨어졌는데. 주님만이 살았는데 주님과 떨어 졌으니까 거게 생기가 있어요 없어요? 생기 없어요. 다 죽었어, 그러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러니까 심방을 가도 주님의 사활의 대속을 생각하면서 '나는 이러기 때문에 나는 산 자라. 이러니까 나는 대속으로 살았으니까 나도 다른 사람을 살려야 되겠다.' 하는. 사활의 대속이 우리의 생명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걸 잊어 버리먼 생명이 끊어져 버려.
이러니까 가면서도 '내가 사는 거 명예 위해 가나, 그 아이 위해 가나? 주님의 사활의 대속을 인해서 가지. '대속 인해 가면 주님의 사활의 대속을 인한다고 왜 가느냐? 주님의, 사활의 대속하신 주님께서 이 사람을 구원하라 하기 때문에 이거 구원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되기 때문에 이제 주님 때문에 이 사람을 사랑함으로서 내가 구원하기 위해서 간다는 요것을 자꾸 새기면 어리석은 것 같지마는 요럴 때에 속에서 제 주관에 힘도 나고 힘이 날 뿐만 아니라 객관의 능력이 와 가지고 자기 속에서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 다 말씀을 증거할 때나 전도할 때나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고 강하고 굳센 그런 능력이 어데서 나옵니까? 어떤 배경입니까? 능력이 이 환경 주위의 배경입니까 자기 속에서 나옵니까? 자기 속에서 나옵니다. 밖에서 들어오지 안해.
밖에 들어오는 그거는 다 죽은 것이라 자기 속에서 나와.
자기 속에서 나오는데 어데서 나옵니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생각하는 그 속에서 나옵니다. 생각하고 믿으면 그만 능력이 나옵니다. 믿으면 당장 능력이 됩니다. 사활의 대속을 믿으면 능력이 돼요. 죄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대속했기 때문에 그런 염려가 없어.
또 살아서 영생하는 거 전능의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러면 그 사람이 그라다가 만일 불에 태워 죽이든지 이제 칼로 쳐서 죽이든지 죽입니다. 죽이면 죽일 때에 그 사람 속이 죽습니까 안 죽습니까? 안 죽어. 안 죽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그러고 자기 기르는 믿음의 자녀는 마음 속에 넣어 놓고 길러야 되지 마음 속에 넣어 놓고 기르지 안하면은 안 됩니다.
뭘 생각하면 힘이 나와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꾸 생각하면 힘이 나오고 능력이 나와요. 주관뿐이요? 그래 주관으로 그랄 때에 객관의 능력이 와 가지고 힘있게 합니다.
그 힘이 생각 속에서 나왔는데 생각 속에 나오는 힘이 무슨 힘이 돼요? 베드로가 이제 주님이 오라 하니까 물 위로 터뻑 뛰어내린 것이 어데서 나왔어요? 자기 생각 속에서 나왔어. 생각 속에서 나왔는데 그 뛰어내리니까 물에 빠졌어요? 안 빠졌어? 그런 거를 보이는 것은 이제 전지 전능의 능력이 자기 생각 속에서 나와서 자기 전지 전능의 능력이 되는 것이라. 이 능력이 와 가지고 모든 것 다 해요.
이 능력이 와 가지고 병도 고치고 암병도 고치고, 암병 있는 사람 이 능력이 오면 다 돼요. 앉은뱅이도 이 능력이 오면 다 돼요. 왜? 성경에 우리에게는 죄값은 하나도, 죄값으로 병 오는 건 하나도 없어. 예수님을 잘 믿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병도 주고 고생도 주고 오만 것 다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