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1 17:26
회개 20가지
본문 : 누가복음 13장 1절-9절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예고하시고 또 안 들으면 경고하시고 참아 몇 번이든지 징계하면서 역사하시다가 회개치 아니하면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실로암 탑에 대해서 저는 주님이 저에게 알려 주신 일이 있어서 느끼고 있습니다.
또 여러분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귀너머 듣지 말고 조심해서 후회 없도록 하는 것이 슬기로운 일일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비유에서 주인이 '찍어버리라.' 하는 것을 과원지기가 '금년만 참아 기다려 주소서.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열면 다행이고 안 열면 찍으소서.' 하는 이 열매는 다 회개의 열매입니다.
두루 파고 거름을 주는 것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농부의 일인데 우리에게 회개할 수 있는 그런 돕는 은혜를 성령님이 진리와 함께 모든 피조물을 사용해서 역사하시는 것을 말을 하고, 이렇게 회개 역사를 할 때에 죄의 문제가 있는 것을 주님의 사죄가 담당을 하시고, 불의 문제가 있는 것을 주님의 칭의가 담당을 하시고, 하나님과 불목 문제 있는 것을 화평의 대속이 담당해서 회개 운동을 일으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한 민족이 이북과 이남이 사상이 달라 가지고 매일 서로 원수를 삼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나라는 대단히 위험에 있으니까 어떤 강대국으로 피난을 하면 든든치 않겠느냐?' 그런 생각들을 가지지마는 성경에는 보면은 주님이 임하실 때 재앙은 온 천하에 한꺼번에 이른다고 말씀했습니다.
이번에 모두 우리가 성경을 보고 두려워하면서 있는 것은 주님의 재림의 마지막 멸망의 환난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나라만 또 다른 약소 국가들만 공산주의 민주주의 서로 대립이 돼서 배후에 강대국이 배경이 되고 조정을 하니까 약소국의 형편만 어렵다고 생각을 했지마는 뜻밖에도 변해져서 지금은 강대국과 강대국이 서로 마주 대항을 하고 독을 품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이러니까 요는 우리가 그저 회개하고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 가장 슬기로운 일이지, 이 회개는 뒤로 두고 어떤 강대국으로 피신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또 하나님 앞에 노를 끼치는 완패한 일인 것입니다.
지난 주일 오전 오후에 하나님에게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사건에 대해서, 물질에 대해서 간단하게 스무 가지를 말씀하신 것은 전 성경에 있는 내용이 이 안에 다 포함됐습니다. 해석도 많고 또 범위도 넓지마는 가장 기억하기 좋고 또 회개하기에 지름길이 된다고 생각이 돼서 스무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주일 학교 반사들은 다 받아 가지게 될 것이고 또 중간반 학생들도 한장씩 줬다 말을 들었습니다. 앞으로 요(要)하면 서부 교회 온 교인들이 다 한 장씩 가지고 외우는 것이 좋을 것이고, 또 '주일 학교 학생들도 한 장씩 줘서 외우게 하자.' 하는 그런 말 했는데 거기 대해서는 좀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다 외우고 있는 줄 압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첫째,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아니한 죄' 하나님만 두려워하지 못 한 죄와 아니한 죄와, 아니라는 말과 못한다는 말이 아주 다릅니다. 아니한 죄는 고범죄를 말합니다.
못한 것은 실수를 말합니다. '아니 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 두려워할 것' 둘째, '하나님만 사랑하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 사랑할 것' 셋째, '하나님만 바라보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만 바라볼 것' 소망하라 말입니다.
넷째, '구별없이 복종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만 복종할 것' 아주 이게 많이 모순 같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만 두려워 하고 되느냐?' 어떻게 하나님만 사랑해서 되느냐? 이 문서가 딴 데 나가면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이 문서를 보고 찢을 만침 분개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되어 있습니다.
단일 두려움, 단일 사랑, 단일 소망, 단일 복종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대단히 모순돼서 이해하기 어려운 그 모순이 많기 때문에 이 모순을 그저 부인해 버리지 말고 모순에서 일치되는 것을 생각을 하면 차차 그 안에 있는 내용의 진리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 문서는 말도 같지 않는 것 같으나 차차 모순이 되기 때문에 '말도 아니다.' 하니까 거기 대해서 반발이 되든지 어쩌든지 생각하게 되고 연구하게 되고 연구하면 옳은 길을 찾아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또 성경에 대해서도 '성경을 다른 독서량만치 읽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모든 독서량보다 성경을 많이 읽을 것' 이거 아주 어렵습니다. 이것도 모순된 말 같습니다. 사람이 전공을 하면 하루 저녁에도 책을 몇백 페이지 되는 책을 한 권이고 두 권씩이고 읽어야 되는데, '그 독서량보다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된다' 이거 말도 같지 않은 소리지마는 이것을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말씀인 줄 알고 표준을 삼고 제가 그렇게 할려고 애를 써서 나가면 삽니다. 실은 모든 독서량보다 성경을 읽은 이 독서량이 많아야 그 사람이 시험에 들지 아니하고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지 안하게 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성경의 무한함을 깨닫게 됩니다. 육십 육권이나 이 안에는 무한이 들어 있습니다. 천하 인간 서적을 다 합해 봤자 그까짓 거야 지구 땅덩어리 안에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주와 영계를 만들고 거기 초월해서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요 아주 어렵지마는 '공부하는 사람들은 언제 그러하겠느냐?' 그래도 그걸 해야 됩니다. 공부 안 한 사람들이 참 이것을 지키기는 쉽지만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은 지키기가 어렵지마는 어려워도 지키지 아니하면 헛일입니다.
금요일 밤에 OOO 목사님이 설교를 했는데 그 목사님이 미국 갔다가 여기 올 때에 믿음이 아주 어렸습니다. 제가 처음에 왔을 때에 자기도 고백하고 믿음이 아주 어렸습니다. 학문은 많이 배웠지마는 아주 믿음이 어렸습니다. 한번 갔다 와 또 여기 있다가, 또 두 번 갔다와 차차 믿음이 나아졌는데 제가 금요일날 밤에 설교하는 걸 보고 이제는 안심을 했습니다. 왜? 자기가 모든 지식을 초월한 하나님의 지식인 것을 깨달은 고 깨달음이 있는 것을 봤습니다.
'우리 현실 현실에서 배우는 하나님의 지식, 배우는 하나님의 지혜, 얻는 하나님의 능력 요것을 현실 현실에서 배우고 얻어가야 된다' 하는 고것을 자기가 굳게 잡고 오늘 밤에는 획기적인 은혜를 받도록 우리가 기도합시다. 자기가 깨닫고 확실히 느끼고 고 속에 지식 믿음, 소망 믿음, 실행 믿음, 인내 믿음이 그 마음 속에 있고 약간의 현실에서 시험과 시련과 연성을 조금 맛을 본 증거가 있다 그 말이오.
설교하면 제가 앵무새 모양으로 전하는 것과, 제가 실제로 행해서 하는 것과, 고 사람이 좀 돼 가지고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게 됩니다. 반드시 그 교회가 지금은 좀 내려갔지만 앞으로 부흥이 될 것입니다. 그대로 나가면 권위있는 종이 될 것입니다. 성경을 다른 독서량보다 나는 많이 읽지 못한 것을 회개를 하면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월요일날 아침에 권찰회를 마치고 올라가니까 신문을 가지고 왔는데 나는 다른 것을 그런 것을 보지 않습니다. 이 국제간이, 어찌 되느냐 하는 것을 보는데 그 신문을 보니까 처음에는 괜찮은데 조금 보니까, 조금 보니까 가슴이 절리고 터지면서 아플려고 합니다.
내가 깨달아지기를 '아, 내가 오늘 성경 읽은 양보다 벌써 이 독서량이 넘어간다' 그걸 제가 깨달았습니다. 회개를 하고 신문을 그만 두고 얼른 성경을 읽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니까 성경 읽은 양이 차차 좀 많아지는데 따라서 완전히 이게 가셔졌습니다.
지금은 내가 성경 읽은 것이 만일 한 줄이면 세상 거 읽는 것이 한 줄 미만이 되지 그 이상을 읽을려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요게 어렵지마는 고것 때문에 요렇게 요거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성경을 다른 독서량만치 읽지 아니한 죄를 회개 하여 모든 독서량보다 성경을 많이 읽을 것.' 제가 공무원 위치에 있는 사람들한테 대해서도 생각해 봤습니다. 공무원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옆에 온 서류가 가득 차여 있으면 그 서류를 한번 열람해서 규정을 지워야 무엇이 되기 때문에 그 많은 글을 읽어야 되겠습니다. 독서를 해야 되겠습니다. 그것도 독서입니다.
'그러면 나는 하루 종일 그거 읽어도 모자라는데 성경을 어찌 읽겠느냐?' 저는 그것을 읽으면 성경을 생각하고 성경을 자기가 사모 하면서, 그 읽을 때에 적절한 성경 구절을 자기가 외우면서 이 일에는 만일 판단 위치에 있으면 뇌물 받고 정평 안 하거나 빈부의 차이를 두거나 하는 그런 성구를 자꾸 자기가 속으로 외우면서 읽으면서 그 문서를 볼 것이오.
자기는 어떤 회사에 고용되어서 물질에 대한 그 모든 것을 오는 그 소식이나 통신이나 그런 걸 읽어 봐야 뭘 감당할 터이니까 그때는 성경 읽을 수도 없고 이러니 그럴 때는 성구를 '부하려 하는 자마다, 돈을 탐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이 성구를 자꾸 읽으면서 그것을 생각해서 보면 그 독서량이 성경이 많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위에 갔으면 그 사람이 그것을 봄으로 인해서 거기에서 자타의 생명이 용솟음칠 것이고 그거 없이 그것만 읽었으면 저도 죽고 다른 사람도 죽습니다.
사람이 주님하고 동행하는 것이 주님하고 동행해서 범사를 주님하고 의논해서 주님이 말하는 대로 말하지 안하면 그 말은 죽은 말이요 다 실수하기가 쉬운데 언제 주님을 잊어버리느냐? 제 경험으로서는 주님 잊어버리는 것이 현실에서 잊어버립니다.
사람이 탁 나타나면 그만 사람하고 대화할려고만 생각하고 주님 잊어버리고 사람하고만 대화해 버립니다. 그러면 그 대화는 죽은 대화라. 물건도 그렇습니다.
현실에서 주님을 잊어버리기 쉽고 또 현실에서 주님을 찾을 수도 있고 만날 수도 있고 동행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게 모순됩니다. 성경을 모든 독서량보다 많이 읽어야 된다는 것이 이것이 물에 넣어도 붓지 안할 것이고 아무 사람이라도 세상에 공부 좀 하는 사람이나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 말하면 '말도 같지 않다.' 할 것이오.
말 같지 않은 게 아니오. 말 같지 않는데 참말입니다. 요것이 실현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높은 자리에서 자기가 결재하는 그런 위치에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그것 보고 뭐라고 결재할 거만 이렇게 생각했으면 죽은 결재 했고 죽은 생활 했습니다. '아, 나는 이거는 벌써 한 페이지를 읽었는데 성경은 못 읽었는데' 가책이 되면 돌아서야 될 것입니다.
돌아서서 성구를, 자기가 고게 대한 성구를, 자꾸 속으로 그 성구를 말하는 그 힘이 그 문서를 읽는 거보다도 더 힘이 있고 양적으로 많아야 그 사람이 그 문서에 대해서 정평 정가하기를 현재만이 아니라 영원을 보고 후회없는 정평정가 할 것이오.
안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도 그 사람 안 믿지마는 거게 대한 관련을 가진 내 행위는, 내 행위는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는 그 근거있는 행위가 돼야 할 것입니다.
또 둘째로 '성경에 있는 것을 다 믿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성경에 있는 것을 다 믿을 것' 성경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모를 때니까 성경을 줄줄줄 많이 읽지마는 이제 얼마 읽고 난 다음에는 성경을 읽으면서 '요 사실을 내가 믿느냐? 주여 믿게 해 주옵소서' 또 '주여' 가만히 생각하면 아! 내가 믿어진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자꾸 이러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믿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읽으면서 믿는 것으로 결정을 지워서 이래 나갈 때에 성경은 내게 능력을 주고, 힘을 주고, 지혜를 주고,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당신이 내게 대해서는 내가 구하지 못한 것까지 다 해 주시리라.' 믿어지게 됩니다. 믿어지는 믿음도 있고 암만 믿을려 해도 믿어지지 않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거는 믿음에 대한 기초가 쌓여지지 안했기 때문에 믿음이 되는 과정을 밟지 안하고 믿음만 가질려 하기 때문에 안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경으로 살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성경으로 살 것.' 성경대로 살지 아니한 죄를 회개한다는 것과 성경으로 살지 아니 한 죄를 회개한다는 거와 아주 이거는 말이 천지의 차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으로 살지 아니한 것이 문제라. 성경으로 살지 아니한 죄입니다.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게 아니라 성경이 나를 붙들고 삽니다.
넷째로 '성경을 항상 지침하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어디서나 지참할 것.' 요것도 대단히 좀 어려운 일이오. '그게 무슨 그렇게 뭐 그리 필요할까?' 이러나 여게 기록한 것은 이 성경에 대해서 네 가지를 하면 모든 성경에 대한 모든 면이 저절로 따라오고, 저절로 연결이 되고, 저절로 되어지는 그런 고 움싹을 간주려 가지고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성경을 가지고 다닐려 하면 대단히 곤란하지마는 성경을 놓지 안 하고 언제든지 가지고 다니게 되면은 해석도 못하게 그게 들어서 나와 성경이 일치되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디든지 시간나는 대로 성경을 보고 자기 당한 현실에 성경에 뭐라 했는고 뒤지면서 '성경에 뭐라 했노? 이 성구가 어디 있노?' 이렇게 성경으로 자기가 살려고 애를 쓰는 이 생애가 시작하게 되면 그 사람은 벌써 뒤로 돌아가지를 못합니다. 후퇴를 못합니다. 왜? 이 생애가 아니고는 가치있는 생애가 없고 안심이 안돼서 못 합니다. 이 생애라야 마음에 안심하고 살 수 있지 이게 아니면 마음에 안심이 안돼. 어떤 사람이 나의 배경이 된다 해도 안심이 안 돼. 그 사람이 폭풍 앞에 촛불 같은 사람이니까 언제 어찌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분과 뭐 관계가 맺어지고 이분이 뭐 보증을 해 주고 인정을 하고 이분이 긍정을 하고 책임을 져 줘야 되지 이분이 아니고는 도무지 땅 위에 아무것도 잡을 것이 없다는 것을 차차 아는 사람이 되면 그분 외에는 다른 것은 의지하거나 바라볼 것이 없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질 것입니다.
그런고로 성경을 가지고 다닙시다. 성경을, 큰 성경이, 조그만한 성경 자기 눈으로 읽을 수 있는 그런 성경을 가지고 다니는- 6·25 때는 참 성경 가지고 다니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믿는 사람은 만나는 대로 잡아 죽일려고 하는 그때이니까 성경 가지고 다니는 것은 화약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거 한가지라. 그때 성경을 다 버리고 다녔습니다.
그래도 그때에 성경을 두고 내가 어디로 가겠느냐? 그때일수록 성경을 일보도 두지 안하고 성경을 이래 들고 다니는 그 사람들은 성경으로 다 피난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6·25 동란이 그이에게 평생에 없는 큰 선물이 돼서 큰 믿음의 힘을 얻었고 체험과 경험의 힘을 얻었지 성경 버리고 다닌 사람들이 큰 은혜와 넓은 은혜의 맛을 못 봤습니다.
셋째로 사람에게 대해서 '하나님은 안 보고 사람만 대한 죄를 회개하여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대할 것' 우리가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다가도 그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말했는데 그 사람이, 이야기하다가 보니까 그 사람이 옆에 있으면 이야기가 멈춤 들어가 버립니다. 멈춤 합니다. 그 사람 없는 줄 알고 이야기를 하다가 아, 그 사람이 갑자기 보니 거게 앉아 있으면 깜짝 놀래서 말이 멈추어지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주님을 우리가 안 보고 사람을 대하면 마음대로 제 주관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의 원형이요 사람은 주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또 사람의 주인이 주님이요, 언제든지 사람과 주님과는 함께 계십니다. 주님이 그 사람에게 대해서 따라 같이 계시고, 또 개인 개인에게 그 사람에게 대한 것을 책임맡은 천사가 하나씩 수위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천사가 하나 따라 붙어있고 하나님이 같이 계십니다. 그 사람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심부름할 거 있으면 천사를 시킬려고. 이러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의 간섭없이 용납 못하는 것입니다. 한 천사가 세계를 일시에 망칠려면 망칠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 있는 천사가 사람에게마다 따라 붙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네가 벌로 하지 말아라. 그 사람의 천사가, 그 사람에게 대한 천사가 하나님에게 고발한다 성경에 그렇게 말해 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사람을 대할 때에 하나님 안면을 보면서 '내가 이러면 하나님에게 모욕을 주는 일이 되지 않느냐? 하나님이 섭섭 하지 않겠느냐? 하나님이 노여워하지 않겠느냐?' 이 예배당에 예배 보는데 아이가 운다고 아이를 뚜드리며 나가면 예배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안면에게 모욕을 주는 사람입니다. 멸시를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마음이 섭섭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면을 그 사람과 함께 보면서, 하나님 안면 보면서 '이러니까 하나님의 안면이 웃음이 나오나? 이러니까 하나님 안면이 찡그러지나? 이러니차 하나님 안면이 부끄럽고 분해서 모욕당했나 싶어서 하나님의 얼굴이 벌게지느냐?' 이렇게 우리는 사람 대할 때에 하나님없이 대하던 이것을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 안면 앞에서 사람을 대하는 이 일을 차차차차 힘을 써서, 손양원 목사님이 말하기를 '하나님의 따님에 대해서, 아! 하나님의 따님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섭섭했겠다. 하나님의 아드님에 대해서' 그분은 사람을 대할 때에 하나님의 아들 딸에 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섭섭하며 기쁨이 된다는 그을 제가 그 애양원 교회에 가 가지고 한 마디 들었습니다.
들을 때 해석은 했지마는 별로 느끼지를 못했습니다. '그분이 참 하나님의 자녀인 줄 알고 무신론자라도 하나님의 자녀인 줄 알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에게 하나님의 비위를 거슬리지 안하고 인인 관계를 가졌구나.' 하는 것을 제가 느낄 때에 '그분은 참 일쩍 깨달은 분이다. 참 깨달음에 독특한 그 신앙을 가진 분이다' 하는 것을 살아갈수록 존경이 됩니다.
둘째로는 '형제를 사랑치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형제를 내 몸같이 사랑할 것.' 이거 우리가 안 되지만 이게 표준이니까 이 표준을 두고 자꾸 사랑하고도 그만큼 해도 '또 모자란다. 또 모자란다. 또 모자란다.' 아, 소야도풍이가 글씨 배우다가 개구리가 버드나무 가지에 뛰어 오를려고 하다가 못 뛰어 오르니까 또 뛰오르고 또 뛰오르고 얼마든지 뛰오르다가 마지막에는 뛰 올라가는 걸 보고 했다는 것처럼, 성공했다는 것처럼 우리들도 대번에는 안 되지마는 형제를 내 몸 같이 사랑해야 된다는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니까 이걸 표준을 삼아 가지고 안 되면 또 고치고, 또 고치고, 또 기르고 기르고 길러서 참 한 사람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또 두 사람을 차차 이래서 사랑의 표준으로 두고 우리가 자라가야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교만했던 죄를 회개하여 사람에게 겸손할 것.'
나는 이번 병이 참 좋은 병입니다. 이번 병을 내가 앓기 전에는, 앓는 중에서도 예사 사람에게 대해서 좀 나를 때는 '제까짓 게 뭐이라고. 제따위가' '그까짓 저' '그놈이' '그 자식이' 되게 안 됐는 경우에는 혹 '그 새끼' 하는 말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사람에게 대해서 무시하는 이런 교만한 죄를 많이 지었는 데 이번에 누워서 생각하니까 그 죄가 어떻게 후회가 되는지! 지금 부터는 내가 그렇게 안 할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조심해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를 삼키는 율이 않습니다. 마귀가 그 사람을 이용해 가지고 나를 삼키는 율이 많습니다. 사람을 통해 가지고 나를 삼키는 것은, 물질을 통해 나를 삼키는 것은 배암, 배암의 이는 옥니입니다. 옥니이기 때문에 한 번 물려 놓으면 모가지가 째지고 배가 터져도 안으로만 기 들어가지, 옥니이기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마귀, 배암 이놈에게 물려 놓으면 자꾸 끌려 들어가지 해방은 못 받습니다. 참 하나님이 건져 주셔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해방을 못 받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에게 대해서 교만했던 죄를 회개하고 겸손히 할 것. 사람을 조심없이 대한 죄를 회개하여 사람을 삼가할 것.' 친할수록 삼가해야 됩니다. 내가 삼가하면 그 사람이 내 은인도 될 수 있고 나도 그 사람의 은인도 될 수 있고, 그 사람이 내 보배도 될 수 있고 내가 그 사람에게 보배도 될 수 있고, 내가 조심 안 하면 그 사람은 내 원수 중에 원수로서 나를 망치는 해독 중에 가장 많이 망치는 해독을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을 삼가할 것.
사건에 대해서 첫째는 '사건을 모든 사람으로만 의논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만 문의할 것' 그 말은 무슨 사건이든지 성경이 여게 뭐라고 판단하느냐? 양심 속에 성신의 감화가 뭐라고 판단하느냐? 성경의 판단과 성경 안의 영감 판단을 들을려고 성경에 문의하고 성령의 감화에 문의를 하는 요것이 우리 성도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그만 성경도 주님도 잊어버리고 사건에 대하면 어떤 사람에게 붙들려 가지고 사람이 말하는 그 의논하다 보면 그 사람하고 의논하고 의논이 의논으로, 의논이 의논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전달해 가지고 그리 나가 가지고는, 처음에는 그래 나가지마는 마지막 끝에는 어디까지 갈지 모릅니다. 일생을 그 한 사건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만 세상에 붙들려서 일생을 망쳐도 망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건에 대해서는 하나님에게만 문의할 것.
둘째로는 '인간 판단을 상대하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판단만 위주할 것.' 하나님의 판단만 위주하면은 인간 판단은 거의가 없어지고, 하나님의 판단에 나쁜 것은 회개하고 옳은 것은 그대로 해 나가고 이러면 인간 판단은 저절로 해결 되고 안 되는 것은 뒤에 가서 큰 성과를 이루는 것입니다. 담대히 우리들은 회개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사람의 지도를 받은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의 지도만 받을 것.' 사람의 지도 안 받을 수가 있습니까? 이 말은 하나님의 지도에 위반되는 사람의 지도받는 그거는 사람에게만 지도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법에 위반되지 아니한 지도를 사람을 통해서 받는 것은 겉은 사람을 통해서 받으나 하나님께 받는 것이요,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지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지도 받는 것이요,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자로 나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하나님처럼은 대접을 안 해도 하나님의 사자로는 대우를 해야 될 것입니다.
또 '도움을 가리지 아니한 죄를 회개해' 도움을 가리지 아니한 죄. 뭐이든지 그만 도와 주면 좋다. 물질을 도와 준다, 또 말을 도와 준다, 일을 도와 준다, 운동을 도와 준다. 자기 편이 돼 가지고 도와만 주면 그러면 우리는 좋다고 하기 쉽습니다.
여기에 간교한 마귀가 들어오고 이간 붙이는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 고 이간 붙이는 마귀들은 보면 꼭 우리를 돕는 듯이 좋게 하는 듯이 이렇게 해 가지고 내 마음이 그걸 긍정하고, 마시면 그 속에 낚시가 들었습니다. 낚시가 들어가 가지고 반드시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도움을 가리지 아니한 죄를-선별하지 안한, '좋으냐 옳으냐?' 가리지 안하고 구별하지 아니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만 도움 받을 것.' 하나님에게만 도움 받는다 그 말은 사람이든지 무엇이 도와도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되지 아니하게 도와주는 것이면 하나님이 돕는 것인 줄 알고, 돕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자인 줄 알고-하나님이 나를 만들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만들 때에 부모를 사용해 가지고 나를 만들었습니다. 이러니까 거게 대해서, 내게 대해서는 첫째는 하나님, 사람에게 대해서는 부모를 첫째 안 삼았습니까? 이러니까 '하나님에게만 도움 받아라.' 하니까 뭐 자기가 뭐 받고 난 다음에도 '하나님이 주셨지 인간이 주셨나?'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날 낳았지 뭐 부모가 날 낳았나?' 성경에는 하나님 첫째, 그 다음에는 인간 중에는 '너를 낳은 그 사람을 네가 공경해라. 그러면 오래 살리라.' 그러기에 무엇을 통해서 나에게 주든지 그것은 나에게 은혜의 기관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기고 귀중히 여겨야 됩니다. 그것이 인간에게 대해서는 첫째요, 사물에 대해서는 첫째입니다.
또 물질에 대해서 첫째, '물질을 피조물에게서만 받은 인식의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에게만 받을 것,' 우리는 물질이 올 때에 사람을 통해 오면 사람에게만 받은 인식을 가지고, 자기가 사업해서 사업에서 오면 사업에게서 받은 것만 인정을 하고, 자기 실력으로 얻었으면 자기 실력에서 받은 것으로만 인정하는 이 죄를 다 우리가 다 회개를 하고 하나님에게만 받을 것.
내가 실력이 있어서 물질을 모은 것도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셨고, 지혜와 총명을 주셨고, 암만 건강 지혜 총명을 줘도 꼭 같은 지혜 총명을 가지고 꼭 같이 일해도 실패한 사람 있는데 또 거기다가 하나님이 덧붙여서 이것을 주셨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실 때는 내 기술을 통해서 건강을 통해서 무엇을 통해 주셨지마는 근본은 하나님이 주셨다' 그 주심의 근원이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첫째 우리가 감사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기관으로 쓴 그 기술을 소중이 여기고, 건강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업체면 업체를 소중히 여기고 요런 순서로 나가는 것이 그것이 옳은 것입니다.
또 둘째로 '보관 저축주의로 살던 죄를 회개하여' 무엇이든지 물질이 내게 닥치면 그만 어짜든지 많기만 해서 곡간 헐고 더 짓는 부자 모양으로 자꾸 넓힙니다.
의례히 자기가 이것은 내 놔야 될 그 것도 그저 들어가면 배암 옥니요 배암 옥니.
배암 옥니 모양으로 들 어가면 안 나와.
보관 저축주의로 살던 이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이 보관하라는 것 만 보관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내게 있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보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죄를 지어서 보관하는 것은 그것은 제가 단독 강제 보관이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또 '물질 주고 받는 것을 자유로 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이 주라는 것만 줄 것.' 물질을 그저 구제하는 것이나 협조하는 것이나 선물이나 모든 것을 제 욕심대로, 제 주관대로, 제 야심대로, 제 지혜대로 잉어에게 밥띠끼 줘 가지고 잉어 낚을려 하는 것처럼 이렇게 별별 일들이 있으니 인간이 주는 방편은 다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회개를 하고 하나님이 주라는 것만 줄 것.
그러면 자기가 '아, 이것은, 이 구제는 해야 되겠다. 이 봉사는 해야 되겠다. 이 선물은 해야 되겠다. 이 연보는 해야 되겠다 이 전도비는 내야 되겠다. 이 대접은 해야 되겠다. 이 여비는 줘야 되겠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이것은 줘라 하는 고것만 주고, 넷째로는 '사욕대로 월권 남용한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이 사용하라는 것만 사용할 것' 하라는 것만 사용할 것.
요렇게 물질에 대해서, 사건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요 스무 가지를 외워 가지고, 가장 쉽게 자기 생활에 나타나기 쉬운 것이니까 이래 가지고 맞춰 들어가면 저 깊은 속까지 맞추어 들어가서 우리가 화를 면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아마 미국도 우리나라만치 위험을 느끼고 있습니다. 실은 좀 슬기로운 사람들은 더 느끼고 있습니다. 일본도 이제 위험을 요 번에 나까소네 수상이 되고 난 다음에 위험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분은 깬 사람입니다. 이제까지의 수상들보다 나까소네 이 사람이 잘난 사람이오. 세계의 현재관을 바로 파악한 사람입니다. 벌써 일본서 그 일을 지금 시작할 게 아니라 늦었습니다. 진작 시작해야 될 일인데, 이러니까, 소련은 무신론 국가입니다. 저 강한 세력은 그들은 한국을 삼킬려 하는 그건 거는 생각도 안 합니다. 미국을 삼킬려고, 강대국은 강대국을 삼킬려 하고 있습니다. 이게 다 땅을 깊이 두루 파고 거름을 줘서 열매 맺게 하는 그 운동입니다.
이것이 우리들로 하여금 회개케 하는 운동이오.
언제 내가 신문에 보니까 이번에 이것 떨어진 이것만이 아니고 지금 공중에 발사해 가지고 어디 돌아다니는지 돌아다니는 것이 일 만 오천 개가 넘는다고 그렇게 신문에 한번 났습니다. 이 한 개 가지고 뭐 야단을 지기지마는 '지금 우주 가운데는 남발해 올린 것이, 남발해 올려가지고 거기서 뭐 파산돼 가지고 있는 것이 일만 오천 개도 더 된다' 그렇게 과학자가 말을 한다고. 그러면 그게 쫙 떨어 지면 고만 그게 유황불비 아닙니까? 아, 그게 떨어지면, 뭐이 그게 떨어지면 한반도 두 배인가 삼 배 인가 소멸된다고 이랬는데 중간에 이래 뭐 소각되니 이래 하지마는 일만 오천 개나 되니까 이런 것이 많이 쌓이고 쌓이고 자꾸 하니까 자꾸 올라 가가지고 공중에 돌아디니다. 쏵 떨어지면 그게 유황불비라. 그게 유황불 비 아닙니까? 이가 다 회개하기를 우리에게 재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 회개할 것을 간단하게, 내나 여기 다 포함된 건데 포함된 그것을 또 좀더 알도록 할까 해서 다른 각도로 좀 간단하게 말해 놨습니다.
신령한 젖에 그 다섯 가지가 일계명입니다. 일계명 속에 그게 다 포함됐고, 그 다섯 가지는 일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계명은, 섬길 것과 복받는 것은 하나님이 정한 것 외에 인간이 만든 것을 복받는 것으로 섬길 것으로 삼는 것은 다 이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미신 곧 우상 숭배를 버려야 뒵니다. 선조를 섬기는 것이 우상 숭배가 아닙니다. 제사를 우상 숭배라 하는 것은 제사 그거는 실은 몰라 그렇지 선조를 섬기는 일이 되지 아니하고 고려장을 없애기 위해서 안희헌 선생이 중국 주공이 내놓은 그 제도를 끌어온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위선(僞先)을 해야 됩니다. 위선. 선조를 위하는 것이 위선입니다. 위선을 하되 성경이 가르친 대로 참되게 해야 됩니다. 어쩌든지 산 부모를 잘 섬겨야 되고, 또 죽은 부모에게 묘를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기 위해서 잘 사묘(査墓)해야 되고, 묘를 살펴봐야 돼요. 성묘하러도 가고, 벌초도 잘하고, 또 힘 있으면 표석도 해 세우고, 살았을 때 우리는 부모에게 아주 효성을 해야 됩니다.
우상이라는 것은 어떤 게 우상인고 하니 미신, 미신이 우상이요 우상이 미신입니다.
사주본다는 거 그거 다 미신법이요, 또 그게 우상법입니다. 또 점치는 거. 점치는 거 그거 믿는 사람은 하면 안 됩니다. 귀신이 그렇게 인간을 놀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토정비결이라 하는 거 그것도 보면 안 됩니다. 또 갑을병정 그것도 마귀의 법입니다.
가 가지고 뭐 사람의 난 띠가 뭐 무슨 띠 무슨 띠 하는 것 순전히 마귀의 방편입니다.
또 주토(朱土) 로 가지고 부(符) 써 붙이는 것 그것도 마귀 법입니다. 풍수 가지고 산지 본다 하는 그것도 마귀 법입니다. 사는 사람에게 대해서 집터가 좋다 나쁘다 그거는 여러 면으로 봐서 할 수 있습니다. 죽은 송장을 좋은 산에 갖다 쓰면 그 자손이 잘 된다 그런 것은 다 그거는 우상 숭배요 미신이요 마귀의 법입니다. 손 비비는 것도 미신이요 우상 숭배입니다. 또 어떤 피조물이든지 그것이 나를 복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 그것도 다 미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계명에는 이런 것을 피하고 그저 하나님의 계명 지키고 하나님 사랑하면, 하나님 계명 지키는 것이 하나님 사랑하는 거라. '하나님 사랑하고 계명 지키면 대대로 복 받는다.' 요것만이 하나님이 법칙입니다.
또 셋째 계명은 어떠한 현실에서라도 낙망과 의심을 버리고 깨달아 회개하고 소망과 믿음으로 달려가는 것이 그것이 삼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폭풍이 와도, 자기에게 어떤 망할 일이 와도, 자기가 어떤 죄 가운데 깊이 빠졌어도 낙망하면 안 됩니다. 거게서 깨달을 점이 있습니다. 의심하면 안 됩니다. 낙망 말고 의심 말고 회개하여 깨닫고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달려야 되는 것입니다. 삼계명은 이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풍년 들었다, 흉년 들었다, 장사 다 실패가 됐다, 병이 들었다, 뭐 어떻게 됐다.
어쨌건 그 현실은 하나님이 했습니다. 현실을 원망하는 건 하나님 원망이오. 현실을 낙망하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내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낙망하는 것입니다. 불만 불평 품는 것은 하나님에게 불만 불평 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현실이라도 낙망을 버려야 됩니다. '아 하나님이 날 버렸는가?' 의심을 버려. 낙망과 의심을 요 둘만 버리면 됩니다. 그 속에 많이 있지마는 다 말할 필요 없고 낙망과 의심만 버리면 됩니다. 낙망만, 의심만 버리고 '이것을 나에게 뭐할려고 닥치게 했느냐?'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연구를 하면 깨달음이 나옵니다.
그래 가지고 믿음으로 달려가면 그것이 마지막에 하나님의 구원을 이룹니다.
사계명에 대해서, 이것도 우리가, 주일에 대해서, 주일날 일하지 말 것, 아주 쉬운 걸로 말해 놨습니다. 주일날은 일하지 말 것.
둘째로는 매매를 하지 말 것.
셋째로는 의복과 몸을 깨끗이 할 것. 다른 데는 나가면 옷도 갈아 입고 낮도 씻고 하지마는 '뭐 예배당에 가는 거야 아무나따나' 그 게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예배당에 올 때에는 자기의 분수대로는 몸도 씻고 의복도 제대로 차려 입고, 제일 큰 어른 앞에 나가는 것이니까. 물론 내 안에 내 마음 안에 모시고 계시지마는 하나님이 베풀어 놓은 그 회석 속에, 좌석 속에, 잔치 속에 가는 것이니까 몸도 의복도 깨끗이 해야 됩니다.
넷째로는 정한 장소 정한 시간에 모여서 정성껏 하나님에게 예배를 드려서 참으로 이 예배 드리는 이 시간에 변화를 받고 또 능력을 얻어야 됩니다.
다섯째로는 이러면 오전 오후에 예배보고 나면 그만 풀어지기 쉽습니다. 세상 재미있는 일을 금할 것. 오전 오후에 예배 보고 나면 그만 테레비나 뭐이나, 이제 세상 일에서 돌아다니다가 오전 오후 예배 보고 나니까 '아따, 이만하면 됐다' 하고 그만 예배 끝나고 난 다음에는 이 세상 무슨 오락이나 이 세상 재미 그런 거 하는 것을 성경에 금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오락을 금하라.' 이랬습니다. 그런 것을 하지 말고, 여섯째로 성경 양식을 먹을 것. 다시 말하면 그날 주일 배운 말씀을 가서 새김질합니다. 또 새김질하며 기도하고 새김질하며 기도하고, 자기가 호주라면 가족들에게 문답을 하면서 가르치고 또 외우게 하고, 자꾸 이래서 그날 참 주일날로 말미암아 자기나 자기에게 속한 사람이 변화를 받도록 이렇게 해서 넘기는 게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날 설교한 것을 가서 혼자 새김질을 하다가 모르니까 그것을 뭐인고 물을려고 이웃에 찾아가서, 이웃에 가 가지고 또 모르니까 다음 이웃에 가고 몇 집을 돌아다녀서라도 기어코 그걸 찾아가서 들어 가지고 그걸 깨닫고 잡고 그날 넘기도록 요렇게 하는 사람은 얼마 안 가서 굉장히 자랍니다.
일곱째는 그거 안 할려면 형제의 심방하는 것이나 그런 것을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이제 일계명은 신령한 젖-하나님의 크심,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대속, 셋 보증 이것이 일계명이 다 그 안에 들었습니다. 이리 하면 일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 계명은 우상이나 미신이나 그런 거 하지 말 것 우상 미신을 한 말로 말하면 복 주고 잘 되게 할 이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 둘 뿐인데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으로 복 받을려고 하지 안하고 다른 무엇 가지고 할려 하면 전부 다 미신이요, 우상 숭배입니다. 반드시 그것으로서 자기는 종이 되고 해만 보지 유익은 못 봅니다.
또 셋째 계명은 우리 현실은 참 울퉁 불퉁합니다. 굴곡이 많습니다. 별별 일이 많습니다. 낙심할 만한 일도 있고 어떨 때에는 '아이구, 내가 자살해 버려야 되겠다, 암만 해도.' 기가 찰 일이 많이 있습니다. 있지마는 두 가지금해야 됩니다. 낙망과 의심을 마귀라는 놈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낙망과 의심을 물리쳐야 됩니다. 어떤 데에서도 낙망과 의심을 물리치고, 하나님이 변하지 아니하고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나 위해 피 흘려 주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소망하고 이랬습니다. 그 것이나 전도하는 것이 그분을 믿으면서 달려야 됩니다. 그러면 얼마 안 가서 샛별이 떠 오릅니다.
넷째 계명에 일하지 말 것. 매바하지 말 것. 의복과 몸을 깨끗이 할 것. 정한 시간 정한 장소에 모여서 정성껏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 변화를 받을 것. 그리고 난 다음에 세상 재미있는 것에 끌리지 말 것. 그 다음에는 들은 말씀을 새김질하고 외우고 새김질하고 외워서 그날에 완전히 제 것을 만들 것. 또 새김질하고 또 외워보고 설교를 내가 또 해보고 또 새김질하고 또 외워보고 또 고렇게 할라고 또 기도하고 이래서 그날에 참 자기의 양식이 되고 자기 피와 살이 되도록 요렇게 할 것. 그리고 난 다음에 여유 시간 있으면 심방이나 전도할 것.
이래서 우리가 어쩌든지 이번 하나님이 경계해 주는 말씀에서 깨끗하게 회개합시다. 회개하는데 거게 혹 참고 될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회개를 우리가 할려고 하면 마귀라는 놈이 와 가지고 회개를 못 하게 위협을 줍니다. '네가 회개만 해 봐라, 네가 이렇게 해 봐라' 마귀라는 놈이 위협을 줍니다. 가족을 통해서 위협을 줍니다. 친구를 통해서 위협을 줍니다. 수상 수하를 통해서 위협을 줍니다. 의식주를 가지고 위협을 줍니다. 별 위협을 줍니다. 담대히 회개하십시오.
회개하는 것은, 누가복음 l5장 3절로 7절에 보면 '양을 찾으면 어깨에 메고 간다' 했습니다. 회개하는 걸음은 만유주 주권자 하나님의 어깨 품 안에 안겨 가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걸음은 안겨 갑니다.
이러니까 이 양이 저 혼자 목자를 도망쳐 갈 때에는 이리를 닥치니까 이리 그놈이 저를 막 삼킬려고 달려드니까 욕을 봤고, 목자 없이 가니까 덤불이 닥치니 덤불이 온 몸을 찢었고, 목자 없이 달아나니까 구렁텅이에 빠져서 욕을 봤고, 이랬지마는 회개하고 그 길로 도로 들어오니까, 안긴 양이 이리를 보고 과거에 경험 있으니까 놀래서 뻐득 거립니다. 저 혼자 갈 때 이리가 겁났지 목자가 아듬고 가는데 이리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 덤불을 보고 '아, 저 덤불에 내가 찢긴 경험이 있는데, 찢긴 경험이 있는데' 놀래지마는 놀랄 필요 없습니다. 목자가 아듬고 가기 때문에 덤불이 상관 없습니다. 덤불 이거 다 쳐 버려요. 둘러 가요. 구렁텅이는 아듬고 건너갑니다.
이러기 때문에 회개하는 걸음에는 인간이나 어떤 것의 협박도 조금도 놀라지 말고 만유주 하나님이 책임지기 때문에 담대히 회개하시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이래 가지고 무슨 또 회개하겠는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회개하거든 용서해 주라는 그것이 주님의 주장입니다. 주님의 주장이오.
회개하고 맡긴 것은 뒤에 생각지 마십시오. 주님이 담당하십니다. 그 일을 일깨면 하나님이 그걸 책임지고 다 담당하시기 때문에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또 '주홍같이 진홍같이 붉은 죄라도 회개만 했으면 아름다운 열매를 먹는다' 했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은 모든 것보다 크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정코 회개하는 자에게 회개한 것에 대해서는 당신이 책임지십니다. 그런고로 담대히 회개합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외웁시다. 속으로 외워 봐요. 일계명도 외워 보고 이계명에 대한 것도, 삼계명에 대한 것도, 사계명에 대한 것도 속으로 외워 가면서 단정을 지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