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11 14:50
현실에 치료할 것과 마련할 것
본문 : 고전 13:10-13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지금은 우리에게 있는 온갖 죄악을 인해서 심령이 가리워 어두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다음에 하늘나라 갔을 때는 그 사람이 장성해서 자란 것은 자란 그것만 가지고 가지마는 가리워져 있는 죄악은 다 벗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악은 벗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가리워져 있는 것은 하나도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아이와 장성한 사람의 그 모든 지능이 다르나 눈으로 보는 것은 다른 점도 많지마는 거의가 다 같은 것과 같이 가리워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피차에 얼굴과 얼굴을 환하게 대하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것을 피차에 다 알게 됩니다. 비밀도 알게 되고 모든 과거의 생활을 다 알게 되고 또 앞으로 미래의 생활도 다 알게 됩니다.
그것의 종자가 이 세상 한토막 생활입니다. 이 세상에 한토막 생활하는 이 생활은 무궁세계에 가서 살 모든 생애의 종자, 영광의 종자, 모든 것의 종자와 같은 것을 마련하는 기회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마련된 것은 그 나라에 가서 영원히 자랄 수 있지마는 이 세상에서 마련치 못한 것은 그 나라에서는 다시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 종류의 기회를 주시면서 이 기회에 이런 종자, 이런 의의 종자, 믿음의 종사, 무슨 사랑의 종자, 거룩의 종자를 가지도록 기회 기회를 줘서 점점 바꾸어져 가는 그런 기회를 주시는 것은 각종 각양의 그 종자를 갖추어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또 각양의 그 현실을 주시는 것은 자기의 모든 잘못된 것을 치료할 수 있는 기회인데 치료한 것은 그것이 치료가 돼 가지고 흉은 있지마는 나은 것으로 건강함으로 무궁세계에 가서 있게되고 치료하지 아니한 것은 그것은 병으로 제거돼 버리고 맙니다.
마치 말하자면 그 사람이 눈이 하나 나빴으면 그 눈을 수술하고 치료해 가지고 안 아팠던 눈만은 못하다 할지라도 그 눈을 건강한 눈을 만들어 가지고 살 수 있는데, 치료하고 수술하고 이렇게 공을 들이면 할 수 있는데 그만 그 기회를 놓쳐 버리면 그 눈은 완전히 못쓰게 되는 그와 마찬가지로, 아픈 눈을 언제든지 그래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좀 있으면 그 눈을 못쓰게 돼 버려서 아픈 것은 없어지지만 다시는 소용없는 눈이 되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고치지 못한 것은 무궁세계에서는 다 제거돼 버립니다.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비유컨대 손 없는 사람, 발 없는 사람, 눈 없는 사람, 귀 없는 사람, 뭐 콧구멍이 하나인 사람, 예를 들면 입이 봉해져 있는 사람, 비유컨대 그와 같은 것으로, 병신은 병신으로 치료돼 가지고 가 있고 성한 사람은 성한 사람으로 있는 것처럼 그렇게 되어지는 준비가 오늘 나라입니다.
오늘이라는 이 세월에 그런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에 치료받은 것은 받은 그대로 무궁세계에 부활해 가지고 살게 되고 치료받을 시기에 치료받지 못하면 치료받지 못한 그대로 하늘나라 가는 건 아닙니다. 치료받지 못한 것은 전부 제거돼 버립니다.
이 손을 치료하려고 애를 쓰지마는 손이 치료가 안 될 때에는 그만 이 손을 잘라 버리면 다시는 그 손을 쓰지 못하는 것처럼 이제 이 손을 자르느냐 끊느냐 이 손을 치료하느냐? 하나님께서 치료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자꾸 주실 때에 치료하면 이 손이 성한 손으로 무궁세계에 부활해 가지고 살지마는 이 손을 치료할 수 있는 그런 기회에 치료를 못하고 병이 들어 있으면 세상을 떠날 때 그게 잘라져 버립니다. 잘라져 버리니까 다시는 그 손을 치료하거나 고칠 그런 기회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때에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지금은 거울 속으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지마는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 같다. 모두 피차에 과거를 환하게 다 보게 됩니다. 과거를 다 보게 되고 또 미래도 보게 됩니다. 현재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에 과거를 다 보지마는 멸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 복수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왜 복수를 하지 못하느냐? 그는 모든 온전한 은혜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고 저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고, 또 마치 음행한 여인을 바리새교인들이 잡아 가지고 와서 '이를 돌로 치리이까?' 그말은 예수님이 사랑을 늘 말씀하는데 돌로 치면 사랑 없는 선생님이라 이것을 책을 잡으려고 하고 있고 또 그 여인을 놓아 두어라 하면 죄인을 용납한다 하는 이런 책을 잡아 가지고 예수님을 정죄하려고 그런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이 여인이 음행하다가 당장에서 현장에서 붙들려 왔습니다. 이 여인에게 대해서 어떻게 처벌하오리이까?' 그러니까 주님이 있다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처벌해라.' 그말은 돌로 쳐 죽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시고 난 다음에 손가락으로 글을 땅에다 쓰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손가락으로 글을 쓰니 본인은 안다 말이오.
아무것이 이름은 안 써도 '무슨 죄' 하니까 그 본인이 자기가 비로소 깨달아서 '나는 그런 죄를 범했다' 이러니까 한 사람 두 사람 다 물러가 버리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니까 다 물러갔는데, 주님이 '너를 정죄하는 자가 어데 았느냐?' '다 가고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네가 회개하면 된다.' 하는 회개를 다시 그에게 회개의 권세를 줬습니다. 그거는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에 치료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됐지마는 우리가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에 치료를 받지 못하면 무궁세계에서는 그것은 제거가 돼 버립니다.
그러기에 부활할 때에는 죄를 가져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범죄하는 그 기능을 가져가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다 그것은 제거돼 버립니다. 그러나 범죄하는 기능이 의를 행할 수 있는 기능으로 치료받아야 될 터인데 치료받을 기회를 놓치면 치료를 다시 받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요 준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자기에게 예를 들면 백 가지 천국에 필요한 기능의 종자가 있다고 하면 그 백 가지 종자를 이 세상에서 마련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요런 기능을 마련하기 위해서 그 기능을 쓸 수 있는 그 현실을 만들어 줄 때에 그때에 주님이 주시는 기능을 쓰느냐 자기의 사욕대로 이 세상 인본의 기능을 쓰느냐 그것으로써 인간의 것을 취하는 것과 하나님을 취하는 것으로 판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은 죽은 것, 썩은 것, 상한 것, 약한 것 그것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가지느냐 그것을 산 것으로 바꾸느냐 하는 그것이 우리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은 치료하는 기회요, 바꾸는 기회요, 또 없는 것을 마련하는 그런 기회인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인간의 과거를 피차가 다 알지마는 거기에는 교만할 수가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남의 것만 보지 아니하고 자기 것을 볼 수 있는 그런 심령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멸시하거나 정죄하거나 그런 일은 없지마는 자기가 세상에 마련한 대로 영광과 존귀와 권위와 지위가 마련된 그대로 보응을 받아 가지고 영원 무궁토록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여기에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그때에 병신으로 나타날 것을 치료해 가지고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기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이 현실보다 귀중한 시기가 없습니다. 현실은 얼마나 귀중한 시기인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때는 모든 비밀이 다 나타나지마는 각각 다 주님의 구속으로 된 것이요 또 자기도 그와 같기 때문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서 먼저 치라' 이러니까 양심 있는 사람들이 다 도망가 버리고 없던 것과 마찬가지로 각각 자기의 과거가 있기 때문에 누구를 공격하고 멸시하지는 아니하지마는 그런 일에 대해서 칭찬이나 또 존경이나 그런 거는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광은 차이가 있고, 영광은 차이가 있고, 또 대우는 차이가 있고,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면서, 투표할 때 투표해 주는 것처럼 이렇게 천거하고 추천하고 찬성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고로 지금은 영광의 차이를 마련하는 것이 지금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을 아주 소중히 해서, 한 현실은 참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천하보다 가치가 낫다 이랬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이렇게 영원을 지금 치료하고 영원을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현실은 자기의 가지고 있는 세상 것을 다 주어도 이 현실에 내가 얻을 그 치료와 또 얻을 내 수입, 얻을 내 마련할 것 그것을 마련하는 것만 못하다. 온 천하를 주고도 이 현실을 바꿀 수는 없는 현실들이다. 그런데 이 현실을 사람들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인해서 팔아 버린다.
온 천하보다 네 현실은 가치가 크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그러면 현실은 자기를 빼앗기지 않는 영원히 가질 수 있는 현실이요, 영원히 가지느냐 빼앗기느냐 하는 것이 현실에 결정되는 것이요 또 자기와 자기 것이 될 터인데 그걸 그만 잃어버린다 말이오. 그걸 그만 도난당했다 그말이오. 뭣 때문에 도난당했느냐? 세상에 있는 것을 그것 탐해 가지고 그것 손해 안 보려 하다가 도난당했다 그말이오.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너 현실에서 손해보는 그것이 더 크다' 현실에 무궁세계의 것을 얻을 수 있는 이 현실인데 이 현실에서 무궁세계의 것을 얻는 그것은 온 천하보다 네게는 가치가 더 크다 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