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있는 믿음


선지자선교회 1985년 10월 5일 토새

 

본문 : 요한계시록 1장 1절 3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여기에 복이 있다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자기 것이 됐다 말입니다. 이  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자기 것 삼는다는 것을 가리켜서 복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자기 것을 삼는 데에는 어떻게  하면 자기 것을 삼을 수 있는가? 읽고 듣고 지키면 자기 것이 됩니다. 읽고 듣고  지키면 자기 것이 됩니다. 읽는 것을 다 믿고 듣는 것을 다 믿으면 자기는  필연적으로 행하지 아니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읽어도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들어도 믿지 안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또 믿을라고  해도 읽지도 아니했고 듣지도 안했으며 모르면 뭘 어떻게 믿을란지 모릅니다.

읽고 듣고 한 것을 믿으면 필연적으로 지켜 행하게 됩니다.

 그러면 지켜 행하는 그것은 제가 열심을 내서 지켜 행하는 그것이 아니고  종이기 때문에 지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이기 때문에 지켜 행 하게 된다  말은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자기 것 삼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대속으로 말미암은 은혜가 자기에게 와 가지고 자기를 붙들고 종 노릇을  감당하게 합니다. 종노릇을 감당한다 그말은 완전히 자기는 생명 없는 종 무슨  목수에게 생명 없는 종이라고 하면 목수가 쓰는 모든 연장이 생명 없는 종이  되겠습니다. 또 움직이는 종이라고 말하면 농부 집에 농부가 부리는 소 그런  것이 다 생명 있는 종이 되겠습니다. 또 '말하는 종이라면 그 노예 제도 같은,  사람이나 그 사람의 생사 매매 거기에 대한 그 주권을 완전히 가지고 종은  하나도 주권이 없고 주인에게 그저 복종하는 주권밖에는 없는 그런 말하는  종과같이 되든지 그런 것이 종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  대속의 공로에 팔린 자는 이 도구와 같은 종노릇도 할 수 있고 소와같은  종노릇도 할 수 있고 또 사람으로 된 종과같은 그런 종노릇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게 완전 피동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완전  순종이 될 수 있습니다.

 도성인신하신 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에게 완전 순종했습니다. 완전  순종한 이것으로써 우리의 몫을 다 대신해서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그 무한의  법칙을 다 완수한 것이 되었습니다.' 완수한 것이 됐는고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법이 그를 승리자라 인정을 해서 아버지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아버지 우편에 앉히셨다는 것은 하나님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요구에 만족을 할  수 있는 그런 승리를 이루었기 때문에 승리자로 세웠 그 또 아버지 우편에  세웠다는 그런 포현을 붙인 것은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로 인하여서 영원히  승리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종이 되지 안했으면 이 하나님의 도리를 읽고 듣 그 지킬  수 없습니다. 읽어도 인간이 읽는 것과, 인간이 읽는 것과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하여 성령이 중생한 영으로 더불어 그 읽도록 그 마음의 요소를 움직여 마음의  요소가 거기에 복종함으로 읽고 그 능력의 은혜로, 그 능력의 은혜로 읽고 듣고  또 지키어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읽고 듣고 지키는 것이  예수님의 피공로가 아니면 읽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지키기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신구약 성경을 얼마든지 다 볼 수 있는데, 봐도  그거는 인간이 보는 것이지 그 성경을 참 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암만 봐도 성경을 보지 못하고 가리워져서 못 보는 것은 성경은  다 영생인데, 이 성경을 믿고 행함으로 전부가 영생이요 하늘의 거와 땅의 것을  다 자기 것을 만들 수 있는 지극히 큰 결과가 맺어지는 것인데 암만 읽어도  믿어지지 않는 것은 그것은 제가 주의 피공로가 없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가 그를  읽도록 하지 안했고. 또 중생되지 못한 영이기 때문에 그는 읽을 자격이 없고 이  육덩이는 못 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종이 기 때문에  읽고 듣고 지킵니다.

 읽고 듣고 지키면 뭐이 되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다 차지해서 제 것을  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다 제것을 삼는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무엇을 자기 것을 삼는다는 말입니까? 한번 누가 한번 대답 해 보십시오. 양성원  학생 가운데 하나 대답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다 자기 것 삼는다.

네, 그 일부분을 말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자기 것 삼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어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찌 됩니까? 대답 해 봐요. 여기  대답해 봐. 예수 그리스도는 어찌 되지? 그 뒤에. 뭐라 하노? 그뭐 그렇게  제한하지 말고, 그걸 빼 버려야 돼. 예수 그리스도도 내것이 됩니다. 또 뭐이  내것 됩니까? 또 뭐이 됩니까? 하늘과 땅에 있는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이  내것이 됩니다. 그러면 읽고 듣고 지켜 행하면 행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다 내것이 됩니다.

 읽고 듣고 지켜 행하면 이는 종이기 때문에 읽고 듣고 지컥행합니다. 종이  아니면 이 일을 하지를 못합니다. 기본구원은 이 종이기 때문에 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다 점령하고 자기 것을 삼았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얻게  됩니다. 그러면 기본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자기 것 삼은 것이 제힘으로  삼았습니까?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는 알지도 못했는 데 하나님께서 자기  것을 삼아 줬습니까? 인간의 행위 요소는 하나도 없고 순전히 객관의 그 은혜로  자기 것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건설구원, 행위구원은 기본구원을 받은 자가  기본구원을 자기가 써먹어서 기본구원의 은혜를 힘입어 가지고, 그 능력을  힘입어 가지고 자기가 참가를 해 가지고 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자기가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그 사람은 이 지켜 행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완전히 자기  것을 삼았습니다. 그랬는데, 구속받은 자들 가운데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근본적으로는 꼭 같이 다 자기 것이 됐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 거기에  가하지 안하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택자들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택자들은  꼭 같이 받았습니다. 기본구원은 꼭 같이 받았지요, 기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자기가 받았으나 이제 자기가 가담을 해 가지고, 자기 행위를  거기다가 첨부해 가지고 행위를 통하여서, 행위를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궁로로 인한 모든 은혜와 또 영감과 진리와, 영감과 진리가 자기의 중생된 영을  통하여서,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가 그 사람의  중생된 영을 통하여, 중생된 영과 함께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함께, 그  심신에게 역사해 가지고 그 심신이 그 능력을 받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자기 것을 완전히 삼는 자 있고. 영을 통해서 자기에게 오는 것을 자기가  부정하고 반대해 가지고, 택자지만 죽는 날까지 반대를 하고 거부를 하고 성령이  영으로 더불어 자기 심신에게 증거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 있어. 거부하는 자는  하나도 자기가 자기를 통해서 이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자기 것 삼는 것은  하나도 삼지 못한 자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기본구원만 있지 건설구원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바로 연구해 나갈라고 하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라는 이거  단어라 하는 게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이거 아니고는 성경을 해석을 못  합니다. 벌써 아직까지도 뭐 기본구원이니 건설구원이니 구원을 둘로 말할 게 뭐  있나 하는 그 사람은 성경 껍데기에서 지금 앞으로 천 리나 만 리나 남아 있는데  그 중간에 거기서 이제 다 왔다 종착이라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실은  수많은 갈래 길에서. 한 열이나 스물이나 갈래 길, 되는 거기까지도 못 간  사람이오. 거기 가 가지고 우리가 실은 하나 단 일로라. 하나 딱 한 길이라 하는  그게 들어가야만 이것이 거룩이 돼 버렸고 진실이 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건설구원이라 하는 것은 층하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어떤 자가 소유할 수 있느냐? 종들 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종들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종들이라는 거는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들만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을 임은  자들로서는 다 소유할 수 있느냐?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 중에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이 소유하겠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자라할지라도,  중생된 자라 할지라도 읽지 못했고 듣지 못했고 지켜 행하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하나님은 자기에게 주는데 자기는 받지를 못했어 받은  것만치 자기의 건설구원이 되는 것이요. 받지 못한 것은 자기 건설구원이 하나도  되지 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읽은 것, 들은 것, 지키는 것을 언제 읽고 듣고 지킬수 있느냐? 그것은  다 현실에서만 읽고 듣고 지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현실에 읽고 읽기만  하고, 또 듣는 현실을 가지지 못한 사람 있고, 지키는 현실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라는 현실이라야 성경을 읽지 현실이 없으면 성경 못  읽습니다. 그 사람이 성경을 만일 몇백 독을 했다 할지라도 그 성경 읽을 때에  반드시 현실에서만 읽었지, 현실에서만 읽은 것인데 현실에서 읽은 것이 시간이  지나가니까 과거에 읽은 것이 되 그 또 미래에 읽겠다고 한 그 것이 현실이  있어야 그거 읽지 현실이 아니 면 그걸 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현실을 다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건설구원의 차이가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하는 그것을 한번 우리가 헤아려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란 말은 첫째로  무엇을 가리킵니까? 무엇을 가리킵니까? 계시의 주인을 말합니다. 이 계시는  예수의 계시요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입니다. 그거는 이해가 됩니까?  이러기 때문에. "그에게 주사"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기 때문에, 이 계시 기  때문에 이 계시를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줬습니다.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알릴라고'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종에게 보인다.

종들에게 알릴라고. 그러면 그 종들은 내나 예수님의 대속. 택함을 받고 대속을  입은 자들에게 보일라고,  이랬는데 이 계시 속에는 뭐이 내주되어 있느냐? 내주돼 있는 것은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 속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 속에 들어 있으니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은 신구약 육십육  권 도리는 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 말씀은 이 계 시 속에 다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예수의 증거, 그리스도의 증거. 예수는 이렇다  그리스도는 이렇다 하는 것이, 예수는 이렇다 그리스 도는 이렇다 하는 것이  증거입니다. 증거라는 것은 그 실상을, 실상을 다 른 이에게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 그것이 증거입니다. 예를 들어서 박 아무것이라 하면 그 사람을 증거하는  거는 박 아무것이라는 그 실상이 박 무엇이라는 그 사람을 '이 사람은 박  아무것이다' 이래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는 것을 가리켜서 그 박 아무것이라.

아무것이가 증거했다. 그 사람 박 아무것이다. 그 사람 이름이 박 아무것이요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박 아무것이라는 사람이다 하는 거와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인데 예수를 보여 나타낸 거라 그 말이오  예수를 나타낸 거 이 그리스도를 나타낸 거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면 예수를  나타낸 것이요 그리스도를 나타낸 것이라 그 말이오. '너희들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러면 알지 못하는 세상에게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 가지고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해서 자기  예수를 만들도록, 자기 그리스도를 만들도록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리라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뭐이냐? 다시 또 해석을 합니다.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자기의 본 것이라는 말은 사도 요한이가 본 것이 뭐이냐?  사도 요한이가 본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  그러면 본 것은 내나 예수 그리스도라 그 말이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그것을 자기가 본 대로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본  것이라는 것은 그러면 뭐로 봤 다는 말입니까? 뭐로 본 것을 말합니까? 뭐로 본  것을 말한 거요? 예? 뭐로 본 것을 말하지요? 여기 양성원 학생 말해 봐요 뮐로  본 걸 말해요? 뭐로 본 것을 말해요? 아 계시록 읽어 보지 안했어요? 눈으로 본  것 귀로 들어 본 것 '들으니' 이랬으니까 들어 본 것, 또 성령의 감동으로 본 것  자기가 깨달아 본 것. 이것이 내나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다시 또 중복으로 말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이 예언의 말씀이라는 말씀은 뭐입니까? 미래사를 말하는  말씀이란 말입니까? 인간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그 비밀을  인간들에게 나타내서 알리는 말씀이라는 뜻입니까 미래사를 말씀 한다는 그  뜻입니까, 뭐입니까? 예언의 말씀은. 예언의 말씀은 뭐입니까? 여기 뭐 양성원  학생들 알아 봐요. 뭐이요? 예언의 말씀이라는 거는 무슨 말씀입니까? 예?  양성원 학생들은 뭐하는 거라? 이거 안 믿으면 여러분들은 절대 승리를 못  합니다. 모르는 게 무슨 승리합니까? 이렇게 껍데기로 자꾸 이랄 게 아니고  알맹이를 파고 들어가서 알아야 됩니다. 알면 도가 통해집니다. 진리는 하나라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라는 말씀은 미리 예(豫)자,  말씀 언(言)자니까 미리 말한 말이라 하니까 미래사를 말한 것으로만 이렇게  생각하지만 이 예언의 말씀이라는 이 예언이라는 뜻은 인간이 백 번 들어도  모르는 가에게, 그 자에게 알리기 위한 말씀이라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만이  알고 인간이 모르기 때문에 인간에게 알리기 위한 말씀이라는 뜻을 가리켜서  예언의 말씀이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예언은 과거사라고 예언이 안 됩니까? 모세는 오경을 기록했는데 오경은 벌써  이천 한 오백 년 후에, 된 그 일을 모세가 기록했습니다. 모세가 오경 기록한  것을 그 주전 1500년 경이니까 벌써 창세가 4000 년 경이니까 그때 한 이천 오백  년 후에 기록했지만 그것이 다 예언이라 그 말이오. 예언이라는 거는, 인간이  알지 못하는 과거 현재 미래를 그걸 초월 해서 과거나 미래나 현재나 그걸  초월해서 사람이 모르고 하나님만 아시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말을  가리켜서 예언의 말이라 말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설교를 그 교인들에게 하는데  성경 말씀을 가르칠 때에 한 번 가르쳐도 예언 못 알아 들으니까 평생 가르쳐도  예언, 그런데 암만 가르쳐도 그 사람이 예언을 받는 것은 뭐이냐 하면 그 예언을  자기가 알고 인정하고 지켜 행할 때에 그 예언을 자기가, 자기의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켜 행하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복이 있나니" 그러면 이 복은 무슨 복입니까 아 가만  있어. 아무나 자꾸 말아요. 이 복은 무슨 복이요? 이 양성원 학생 대답해 봐.

여기 ○○○에서 온 저 학생 대답해 봐. 예? 이 복이 무슨 복이요? 예? 이 복이  무슨 복이라? 암만 배워야 헛일이라. 자기 주관을 가지고 이 조브란한 똑  꿀밤딱지같은 이 속에 들어 가지고 제 전부 주관이 십분지 일를이 아니라 백의  99나 제 주관이고 하나님의 도는 아주 딴걸로 되어 있는 이걸 가지고. 항상 주관  가지고 하나님의 도를 상대하는 사람은 모릅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알게 됩니다.

자기 부인이 언제 부인되는가? 자기가 실행을 하면 자기 부인이 돼집니다.

실행에서 자기 부인이 되지 실행하지 안하는 사람은 자기 부인이 되지를  않습니다. 자기 부인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참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 되는 것이 자기를 누가 버릴 사람이 누가 있소? 자기보다 예수님이 좋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으로 자기의 전부를 삼는 것입니다. 실행해 보면  자기 부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복은, 암만 말해도 이걸 모르는 거라. 여기에 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했는데 보이신다는 말은 종들이 보면 그대로  필연적으로 행하게 되니까 이 보인다는 말은 종들이 소유하도록 종들에게 준다  그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자기가 받아서 자기 것 삼았다 그말입니다. 이 복은 그복이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가지고 자기 것 삼았다. 자기 것 삼았는데, 자기 것  삼았다니까, 그러면 자기 것 삼았다는. 자기 것이 되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다 자기 것 됐으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안에 있는 거는 전부 자기 것 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 계시는 크게 굵닥굵닥 말하면 거기 뭐이  었습니까? 자, 크게 한번 말해 보이소. 그 안에 뭐이 들었는고. 네 예수님의  은혜, 그리스도의 은혜인데. 그것은 부분적입니다. 부분적이고 그보다 더 큰 거  있습니다. 뭐이 들었니까? 창조주가 이 안에 다 들었습니다. 창조주가 다 들어  있습니다. 또 피조물 이 다 들어 있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이 다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 있으니까 안에 있는게,  안에 있는 게 작습니까 밖에 있는 게 작습니까? 예? 안에 있는 게 작소 밖에  있는 게 작소? 밖에 있는 게 작다? 그릇은 안에 있는 게 작소 밖에 있는 게  작습니까? 예 그릇은 그러면 안에 있는 게 작고 밖에 있는 게 크다 크다란 그릇  속에 작은 그릇이 들어가지 작은 그릇 속에 큰 그릇이 어찌 들어 갑니까? 그런데  여러분들이 대답하기를, 안에 있는 게 작습니까 밖에 있는 게 작습니까,  이러니까 밖에 있는 게 작고 안에 있는 게 크다 했는데 이것은 그릇과 같지  많습니까? 그릇과 같지 많습니까? 예, 대답을 바로 했습니다. 그릇과 같지  않습니다. 이거는 그 지위적으로 지위적으로 가치적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제. 껍데기는 보자기가 싸여 있고 보자기 속에는 그 케이스가 들어 있고.

케이스 속에는. 속에 알맹이가 들어 있고, 알맹이 속에는 제일 그 보석 반지라면  보석 그게 제일 가치가 있어서 보석 그게 제일 가운데 들어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그 다음에 영감, 그 다음에 또  뭐입니까? 진리. 또 그 다음에 뭐입니까? 모든 이 지능, 진리의 지능, 진리 의  지능 밖에 뭐 있습니까? 진리의 지능 밖에 뭐 있소? 이 알아 도를 틔어야 이  도를 틔어야 될 건데, 이 도를 틔워서 이거, 도를 틔여져야 될 건데 이 게  도무지 안 트이기 때문에 답답하다 그 말이오. 그러면 진리는 전지전능입니다.

그 진리 밖에 전지전능이 있습니다. 그 전지전능 밖에 뭐 있습니까? 뭐 있소?  모든 피조물, 왜 이걸 모르느냐 그 말이오. 모든 피조물. 이거 모르니까 자꾸  마귀 그놈에게 자꾸 홀키고 있지 이거 아니까 마귀 그놈이 어떻게 가둘 수가  있소? 벌써 그저. 초월해 버렸는데. 마귀 그놈이 항상 가져 와 마귀 그놈이  요만한 걸 말하면 이거 가지고 싹 둘러싸 버리고, 마귀가 또 이만한 거 말하면  또 이거 가지고 싹 둘러싸 버리고, 이러니까 항상 마귀가 종되고 말지 마귀에게  종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게 이제, 안에 있는 게 크다. 밖에 있는 게 작다. 그것은 이 물질로  말한 것이 아니고 벌써, 권위면을 가지고 말하고 가치면을 가지고 말하고  지위면을 가지고 말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면을 좀 배워서  알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 만일 천 명 군대라  하면, 천 명 군대라 하면 제일 밖에 있는 자가 큰 자입니까 작은 자입니까? 제일  밖에 있는 자가 제일 작은 자입니다. 제일 큰 자는 어디 있습니까? 제일 속에  들어 앉았습니다. 그러면 그릇으로 말하면 제일 밖에 있는 것이 큰 겁니까 작은  겁니까? 제일 큰 거라 말이오. 그렇지 안해요? 또 제일 안에 들어 있는 것은  그릇은 뭐 큰 겁니까 작은 겁니까? 제일 작은 것이라 그 말이오. 찬합을 보면  제일 작은 게 속에 안에 들어 가 있지 않소? 그러기에 이렇게 이 모든 표현하는  방편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거요.

 그런데 그러면 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뭐 들었느냐? 여기에 보면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요한계시록을 말하는 것인데 요한계시록  속에 뭐이 들었다 했지요? 육십오 권이 다 들어 있습니다. 육십오 권이 들어  있는데 육십오 권. 가운데에는 거기에 하나님은 빠졌습니까 들어 있습니까? 예,  들어 있습니다. 영원 자존자는 거기에 들어 있소 안 들어 있소? 들어 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 계시에 나타났는데, 그러면 자기가 듬은 것을 믿고  읽은 것을 믿고 지켜 행하면 복이 있다. 듣고 읽고 그러면 듣고 하는 거는 아는  건데 알고, 아는 것을 아는 대로 믿고 그대로 지켜 행하면 복이 있다 복이 있다.

이 속히 될 일을 그 여러 종들에게 보일라고 지금 예수님에게 주고 예수님은  천사에게 주고, 천사는 그 사도 요한에게 주고, 사도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줘서  읽고 듣고 지키도록 이렇게 했는데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러면, 이 복은  무슨 복을 가리켜 말합니까? 무슨 복을 가리켜 말하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자기 계시를 삼은 복이라 말이오.

 그 이해가 됩니까? 안 믿습니까? 안 믿어집니까? 안 믿어지면 이거는 소용이  없습니다. 자기가 '아, 이는 확실하다. 내가 생명을 뺏겨도 이거는 요동이  없다.' 이렇게 생명적으로 알아야 되는 것이지, 모르니까.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잡교가 많습니다. 기독교는 갈래길이 많소. 사이비한 기독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기독교 종류가 제일 많소. 또 틀리는 것이, 잘못 아는 것이  제일 많애. 왜 그러냐? 이거는 간단하지 안하고 심히 그 내부가 복잡하고  세밀하고 하기 때문에 이거는. 이제 다 왔다 싶으면 그 앞에 또 갈래길이 있어.

또 갈래길 가고 나면 또 있고. 이래서 문들을 열고 들어간다 갈래길을 또 헤치고  들어가고 헤치고 들어가고 헤치고 들어가서 마지막에는 영원 자존 하신  하나님에게까시 가는 것이 우리의 걸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땅 위에서 모든 일 하시고 이제는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가지  못했다' 마지막에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갔다 오고 난 다음에 '만지라'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모든 것을 다 승리해서 아버지 우편을 점령했고 그 모든 율법을 다  초월해서, 모든 그룹은 천사들을 말한 것인데 모든 천사들이 영원히 옹호하고,  하나님과 완전히, 속죄소에서 완전히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제 아무것도 없이  완전히 결함되는 완전 결합을 이룬 그것이 완전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복은 읽고 듣고 지키는 데서 복이 된 것이다.

 그러면 이게 계시를 자기 계시 만든 것이다. 자기 계시 만든 것이면 자기  계시를 만들었다 말은 무슨 말인가? 이 계시를 통해서 나타나신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 만들었다 말이요. 영감을 자기 영감 만들었다 말이요, 진리를 자기 진리  만들었다 말이요, 예수님의 삼대 대속의 공로를 자기 공로 만들었다 말이요, 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을 자기 것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자기 것  만들었는데. 만들었는데 이제 만드는 방편이 다른 것이 하나님은 자기의  하나님으로 모셔 만들었습니다. 모셔서 만들었습니다. 이 하나님은 자기  하나님으로 모셔서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되고 나는 하나님의 것이 됐고,  하나님을 자기 것 만들었다 그말은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모셔서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됐습니다.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됐고, 모셔서 만드는 것, 또 자기가 정복해서 점령해서 만드는 것, 자기가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 또 자기가 얼마든지 그것을 관리할 수  있도록 만든 것, 관리적으로 만든 것 이용적으로 만든 것, 책임적으로 만든 것,  정복적으로 만든 것 자 내가 그것을 영원히 이용할 수 있는 걸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그것을 완전히 정복해서 내것을 만들었습니다. 또 내가 그것을 영원히  책임지는 책임적으로 내가 내것을 만들었어. 내가 책임질 걸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관리할 걸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영원히 살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살릴 것으로 내가 만들었습니다. 영원히 그걸 은혜로 충만케, 내가 내 은혜로  영원히 충만케 해 가지고 내 은혜로 영원히 살도록 살 수 있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만든 것은 이것은 어떤 것입니까? 이 계시 안에 있는 것은 이  법칙으로 만드는 것 있습니다. 이 법칙으로 만드는 것. 그러면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어떤 법칙으로 만들었습니까? 이거 알아야 되겠는데. 어떤  법칙으로 만들었습니까? ○○○목사님 말해 보소. ○○○목사님. 아, 예 종으로  만드는 방편을 말한 게 아니고, 그거 좀 잘, 아마 그리 됐으니 그 종으로  만든다는 게 맞은데, 이제 방편을 많이 말했지요. 방편을 많이 말했는데 그  방편이 이런 방편으로 자기 걸 만들었다, 저런 방편으로 자기 걸 만들었다. 이제  종으로 만들기는 만들었는데, 종으로 만들었는데 그러면, 돈은 자기 것을  만들었을 때에. 만들었을 때에 그거는 어떤 걸로 자기 것을 어떤 방편으로 만든  것입니까? 어떻게 할 것으로서 자기 것 만들었습니까? 돈을 만든 것은? 돈에게  순종하려고 돈을 자기 상전으로 만들었습니까, 자기의 이용물로 만들었습니까?  또 자기 관리는? 자기가 관리할 수 있는 걸로 만들었습니다. 또 자기가  정복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자기가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자기의  종으로 만들었습니다. 자기 이용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들었는데 그러면 지금 우리가 자기 예수님을 만든는 것은 종으로  만들었습니까 이용물로 만들었습니까, 관리물로 만들었습니까, 내가 다스릴  치리할 물로 만들었습니까 내가 섬길 것으로 만들었습니까? 내가 그의 혜택을  입을, 내게 혜택을 입힐, 내가 그에게 혜택을 입을 그 혜택 입힐 것으로  만들었습니까, 나를 관리자로 만들었습니까, 나를 지배자로 만들었습니까? 나를  책임자로 만들었습니까, 내가 그를 책임자로 내가 하나님을 내 하나님  만들었습니까, 뭐로 만들었습니까? 이리 말하면 좀 다른 것이 들려집니까? 뭐로  만들었는가 알아집니까?  그러기에 모든 피조물은 모든 피조물은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천군 천사나  모든 피조물은 내가 아니면 살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아니면 살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아니면 그들은 죽고 망해 버립니다. 그런 걸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관리할 거로 만들었습니다. 영원히 내가 그들을 책임지고  죽이고 살리는 것을 내가 책임지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영원히 은혜로 충만케  하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영원히 다스릴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영원히 그들을  행복되게 할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내가 뭐이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에게  충만케 할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종된 이 행동 하나 가지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종된 행동 이거 하나 가지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 이제 모든 피조물은 이렇게 정복으로 내것 된 것입니다. 피조물을  내가 정복한 것입니다. 마귀란 놈이 정복하고 있는 것을 예수님이 도전해 가지고  마귀로 싸워 이겨서 이제 마귀에게서 뺏들어서 예수님이 정복했습니다. 예수님이  정복해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것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주시면서 우리에게 '네가  이것을 가질 수 있는가 보자' 가질 실력이 있나 없나 시험을 해 가지고, 가질  실력이 있나 없나 가질 실력이 있나 없나 하는 것을 주님이 시험해 보기 위해서  현실이라는 것을 줘 가지고 법적으로 우리 것이 됐고 계약적으로 우리 것이  됐고, 공심판적으로 우리 것이 돼 있지만 실상은 영만 자기 것을 삼았지  심신이라 하는 것은 자기 것을 심신은 이 모든 것을 자기 것을 삼지 못했는데  심심이 모든 세상과 영원 무궁의 모든 피조물을 자기 것을 삼아야 될 터인데  자기 것을 삼나 안 삼나 실상으로 삼는 것을 하기 위해서 현실을 주셔 가지고  현실에서 이 마귀란 놈은 못 살도록 뺏들라 하고, 그러기 때문에 이 현실은  우리가 마귀로 더불어 지금 싸우는 것입니다. 마귀는 왕노릇은 못 합니다. 주님  이 다 승리했기 때문에, 승리 했지만 마귀를 이용해 가지고 마귀를 우리에게  주되 우리가 마귀로 더불어 싸울 것, 너는 요만침만 힘을 들여서 싸워 싸우면  요거는 점령한다. 그 점령하는, 그렇기 때문에 마귀가 우리를 유혹시키고  대적하되 그것은 다 제한적 대적이요, 유한적 대적이요. 주님이 다 한정해  가지고 지배적인 대적입니다. 주님이 지배해서 대적하는 그 대적이라 그 말이오.

 대적인데 이걸 이 현실에서 마귀와 더불어 내가 서로 투쟁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마귀에게 투쟁해 가지고 내가 져 버리면 그것은 마귀 것이 돼 버렸고 나는  뺏겼습니다. 그러면 만물은 탄식하면서 그는 영원한 멸망을 받았습니다. 내가  거기서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 내가 성령으로 자유하고 진리로 자유하고  그것들에게. 중생된 사람은 성령과 진리와 주의 피로써 중생됐는데 중생된 제가  자유를 꺾여지지 안하고 진리로 살고 피로 살고 영감으로 살면 이게 자유 생활  하는 거라. 자유 생활 하면 내가 그 현실에 마귀로 더불어 투쟁해 가지고 마귀를  이기고 이것을 내가 정복한 것이라, 그러면 모든 피조물은 우리가 예수님이 일차  정복해 놓은 것을 우리에게 배당해 주시기 위해서 사사로운 이 전투를 시켜  가지고 사사로운 전투에서 내가 승리하면, 됐다. 요만큼은 너한테 맡길 수 있다.

요만큼은 맡길 수 있다. 당신의 인정받는 전투 그것이 이 지금 사사의 전투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심판은 하나님의 공심판에 가지 안하고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간다 이랬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가는 것은 뭐이냐 하면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말은 제사장 심판 선지자 왕의 심판이기 때문에 제사장 실력이 네게  얼마 있느냐 선지자 실력이 얼마 있느냐 그 왕의 실력이 얼마 있느냐? 그러면  모든 피조물을 우리가 정복하되 어떤 방편으로 정복하느냐? 내가 그것을  정복하되 제사장 실력으로 정복합니다. 내가 이 피조물을 내가 제사장, 제사장  실력을 거기다가 감행할 수 있고 제사장 실력의 책임을 완수 할 수 있는 그  정도만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일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 됐다 하면, 너희 것이 됐으면 그 사람은 뭐로 됐느냐? 자기는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제사장노릇을 충족히 할 주 있고, 선지자노릇을  중족히 할 수 있고 왕의 직책을 충족히 할 수 있어서 그는 모든 피조물에게  제사장이 됐고 선지자가 됐고 왕이 됐다는 말입니다. 이래 정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 정복을 해서 모든 피조물은 정복적으로 우리 것을 삼는 것이요,  그것을 내가 관리할 내것으로. 내가 관리할 내것으로 삼는 것이요 내가 그거  통치할 내것으로 삼는 것이요, 그러면 내가 통치하는데 내가 통치 하는 게 뭐냐?  하나님의 통치를 내가 받아서 그 통치를 가지고 그 통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왕의 직책인 것입니다. 또 그것은 내가 들어서 은혜 베풀어 가지고 살릴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니라' 곧 교회는 만물 안에  있어서 만물 안에 있으면서 만물 안에 있으면서, 만물 안에 있으니까 교회가  만물 속에 들었으니까 만물 보다 교회가 작습니까 큽니까?  저 ○선생. 손가락으로 쑥 빼내면 암이 쑥 빠져 나온다 하는 그런 거는 잘  들리지 그게 죽은 거라. 다 소용이 없는 거야, 다. 그런 걸 들으니까 이런게 안  들린다 그 말이오. 이 진리가 안 들려. 눈이 멀고 귀가 멀었는데 뭐 듣지도  못하는데. 보지도 못하는데 무슨 실행이 있어? 무슨 실상이 이루어져? 어림도  없어. 천리 만리 거리가 멉니다. 이렇게 우리가 모든 것을 정복하되 피조물  정복은 다르다 말이오. 이렇게 가르쳐도 모르면 제가 어떻게 그걸 뚫고  들어가겠습니까. 뚫고 들어가기를?  그러면. 피조물을 우리가 어떻게 정복하요? 어떻게 우리 것을 만드요?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것이 다 너희 것이니라 했는데. 너희 것을 우리 걸로 만드는데  어떻게 만드느냐 그 말이오.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사망과 생명이 다 너희  것이 됐다고 했는데. 우리 것이 된다 했는데 그걸 어떻 게 만듭니까? 그러기에  정복해 싸워서. 격투해 가지고, 싸워 가지고, 투쟁을 해 가지고 싸워 가지고  이제 승리로 정복해서 만드는 것, 정복해서 만드는 것, 또 모든 피조물이 투표해  가지고 만드는 것, 그리면 ○대통령이 지금 우리 한국의 대통령인데 한국  대통령은 이 한국을 맡았습니다. 한국의 정권을 맡았고 한국의 모든, 칠 년인가  팔 년인가 그 동안은 모든 것을, 자기 것을 가지고 관리도 하고 자기가  주권적으로 이리저리 합니다. 그러면 그거 자기 걸 만든 것은 뭐로  만들었습니까? 뭐로 만들었어? 정복으로 만들었소, 모든 백성들이 인정하는  찬성으로 만들었소? 뭐로 만들었습니까? 그거는 정복 아니고, 주먹으로 다투는  게 아니고 찬성으로 다 투표해 가지고 다 투표로 찬성해 만든 거 아니오? 그러기  때문에 이 하늘과 땅의 것을 자기가 정복하는 데는 찬성으로 만들어서, 찬성으로  만드는 것 이거 모두 다 시인해 주는 거, '아, 우리에게 은혜 베풀 거는 저이  밖에 없습니다. 우리 제사장은 저이를 만들겠습니다. 우리 선지자는 저이를  만들겠습니다.' 모든 것들이, 그 피조물들이 찬성으로 만든 것. 예수님을 모든  피조물들이 주라 시인하고 아버지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렸다 하지 안했습니까?  성경을 껍데기로 보지 말고 좀 이 도를 가르치면 전연히 모르니까 이 도 하나  가르칠라고 하는 날이면 얼마나 들어가야 되지, 또 가르쳐 놓으면 다 잊어버려  버리니까 또 헛일이지, 이러니까 뭐 주일날만 와 가지고 실 가는 그거는 예수  구경이나 하는 것이고 그저 이렇다 하는 천리 만리 밖에 있는 그것을 하나의  소식이나 듣는 정도지 무슨 실상을 이루겠습니까? 실상 못 이룹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구원만 이루지  그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아이구 기본구원이나 받지 뭐 건설구원은 이루지  못한다' 그 사람은 '왜 건설구원을 이루지 못하느냐?' 뭐 살펴 봐야 또 안 됐고  안 됐고 이렇다 그거요. 그 사람은 요번에 이거 여기 사경회하고 난 다음에  '줄이 끊어졌다. 뭐인가 모르겠다. 얼떨떨떨떨하다' 하는 그런 사람 내가 몇  사람 봤는데 그것은. 또 이 길을 알고 그대로 꼬박 꼬박 걸어가던 사람은 이  길이 혼돈되면 못 간다 말이오. 자기 길이 있어 가지고 이 길을 그 어떤  풍조에도 '교훈의 풍조에 요동치 않는 자라야 된다' 교훈의 풍조라 말은 이 세상  모든 지식에게 요동치 않는 자라야, 철학을 만나니까 그만 얼떨떨떨해져 버리고.

또 이런 신학 저런 신학을 만나니까 얼떨떨해 버리고 그게 아니고 '어떤 교훈'  세상 마귀의 지식 온갖 지식에도 요동치 안하고. 교훈과 '모든 풍조라' 그말은  이 시대가 자꾸 이런 시대가 돼지고, 이 세상은 이런 시대가 됐다가 이런 시대가  됐다가 자꾸 이래 변해진다 말이오. 이런 시대가 돼도 변하지 안하고 저런  시대가 돼도 변하지 안하고,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교리라고 하는 것은 이런  시대 저런 시대에 변하지 안하는 그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야 비로소  교리라고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점령하는 것도 있고, 그러면 이렇게 정복으로 점령하는 것  있고 내가 그에게 정복을 당함으로 점령하는 것 있고, 내가 그것을 내것을  삼음으로 점령하는 내것 삼은 것 있고. 내가 그의 것이 됨으로써 내것 삼는 것이  있고. 이제 내가 있는. 내가 있는데 나로부터 내 이하의 것과 내 이하의 것과  나로부터 내 이상의 것이 다르다 그 말이오. 다른데 하나님도 바것 삼았어.

하나님 내것 삼은 것은 내가 모심으로 내것 삼았소. 그가 나를 모심으로 내것  삼았소? 땅에 있는 것은 그들이 나를 모심으로 내것 삼았습니다. 내가 모심으로.

내가 그를 모심으로 내것 삼고. 땅에 있는 것은 이들이 나를 섬김으로 내것  삼았고, 나는 위에 있는 것은 내가 섬김으로 내것 삼았고, 땅에 있는 것은  나에게 복종시킴으로써 내것 삼았고. 나는 위의 것은 내가 그에게 복종함으로  내것 삼았고, 땅의 것은 그것을 내것 삼음으로 내것 삼았고. 위의 것은 내가  그의 것이 됨으로 내것 삼았고. 이제 좀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시라. 신구약 육십육 권이 다 이 계시인데, 이  계시를 지켜서 행하게 되면 알고 듣고, 지켜서 행하게 되면 행하는 요거 가지고  계시를 다 자기 것 삼는다. 그말은 신구약 성경 말씀에 나타난 이 계시를 자기  것 삼는다. 또 계시가 나타낸. 계시가 말한 이 모든 피조물을 자기 것 삼는다.

또 창조주를 자존자를 다 자기 것 삼는다. 자기 것 삼는다. 그러면 삼으면,  삼으면 언제 삼느냐? 여러분둘. 자. 그라면 이 진리 한 진리 말이요. 한 진리,  이 진리를 자기 것 삼을라면, 진리를 자기 것 삼았다. 진리를 자기 것 삼았다.

진리는 자기 것 삼았으나 그 진리에 해당된 세상은 자기 것을 삼지 못했다. 그  진리는 자기 것 삼았으나 그게 관계되는 이 창조주 위로부터 창조주로,  조물주로부터 있는 이 것은 자기 것 삼지 못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진리 자기  것 삼은 것입니까 삼은 것 아닌 것입니까? 예? 진리를 자기 것 삼았소 못  삼았소? 못 삼았다 말이오. 그러면 이제 한 진리를, 한 진리를 자기 것을  삼았으면, 이 진리를 자기 것 삼았으면 양면을 자기 것을 삼아야 합니다. 양면.

그러면 모든 피조물을 자기 것 삼은 것이고, 또 자존자 창조주를 자기 것삼은  것이고 그러면 창조주, 조물주, 자존자, 내 위에 있는 모든 것도 내가 내것을  삼는 데에는 이 계시를 지행하는데, 알고 행하는 데에서 내것 삼지 달리는 삼는  길이 없고, 모든 내 이하에 있는 모든 피조물도 내것 삼는 것은 이 지행으로만  내것 삼지 다른 것으로는 내것 삼을 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현실은, 우리 현실은 내가 그 현실을 통해서 진리도 내 진리  삼을 수 있습니다. 내 진리 삼을 수 있다 말은 나에게 계시의 도를 내 것 삼을  수 있지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하나님이 공짜배기로 입혀 준  거는 우리가 공짜배기로 입었지만 그 공로를 우리의 힘을 가해 가지고 우리 그  행위적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는 것은 언제 입습니까? 언제 입습니까?  대속의 공로를 언제 입을 수 있소? 예? 대답을 해야 시원하지, 좀 뭐 모르면  모른다 하든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기본적으로는 나는 상관없이 다  입혀 가지고 있고, 나중에 보니까 일어나 보니까 입고 있습니다. 깨어나고  보니까 다 입고 있습니다. 그거 예수님의 기본적으로 그걸 대속을 입은 것이오.

내가 그 대속을 내가 입는 것은 언제 입습니까? 현실에서만 입지 딴 데서는 입지  못합니다.

 입고 입고, 또 입고. 또 입고, 또 입고 얼마든지 여러 천 번이고 만 번 이고  입어서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실상으로 입은 것은 천층 만층  구만 층인데 그것이 뭐이냐? 부활한 자의 영광은 이렇게, 모든 형체가 땅에 있는  모래 알도 형체요. 하늘에 있는 태양도 하나 형체 이 이런데, 그 형체, 하늘에  있는 태양의 형체와 별의 형체와 그 형체의. 그 형체의 대소도 다르고, 형체의  그 권위도 다르고. 영광도 다르고, 가치도 다르고, 그 형체로 말미암아 그  형체의 혜택을 입는 모든 혜택도 다르다. 그러기 때문에 영광이 다르다. 혜택이  많으면 영광이 작아져요 커져요? 혜택 보는 자가 많으면 영광이 커져요  작아져요? 예? 커져요. 혜택이 하나도 없으면, 크기는 큰데, 그게 실력 있고  크기는 큰데 혜택 입은 자가 하나도 없으면 그것은 영광이 있어요 뭐이 있어요?  뭐이 있어요? 예? 예? 참 어두워서. 영광 반대가 뭐이요? 욕 있지, 욕. 권세는  있고 그 권세 가지고 그 권세의 혜택 입은 자가 없으니까 그 권세를 가진 것은  모든 사람이 혜택 안 입고 권세가지고 있으니까 전부 욕하지 저 죽 여야 되겠고  없애야 되겠다. 다 하지 않소? 이거 다 사람들이 자꾸 어두워 놓으니까 도무지  영 깜깜해 놓으니까 모른다 그거야  이러니까, 여러분들 이걸 자꾸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하는 것이  요게만 있습니다.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란 이 성구가  요게만 있소. 그러기 때문에 요게다가서 다 집중시켜 가지고 자꾸 이것을  가르칠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안에는 천상 천하의 모든  게 다 뜰어 있다. 조물주도 창조주도 다 들어 있다. 우리의 구속도 다 들어 있다  다 들어 있는데 이 다 들어 있는 이 모든 것을 자기 것 삼는 것이 이게 복 있는  자다. 자기 것을 어떻게 삼을 수 있느냐? 읽고 듣고 지키면 자기 것 된다. 아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면 언제 읽고 듣고 지킬 수 있느냐? 읽을 수 있는  것도 현실에서만 읽을 수 있다. 현실. 이 시간 내가 성경 읽었으면 성경 읽은  거는 이 시간 현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읽지 현실이 아니면 못 읽습니다. 읽은  것도 현실에서만 읽었고, 듣는 것도 현실에서만 듣고, 지키는 것도 현실에서만  지킵니다. 그런데, 읽는 현실이 따로 있고, 듣는 현실이 따로 있고 지키는  현실이 따로 있으니까 그 현실에 읽고 듣고 한 것을 자기가 지키는 것. 읽은  것을 믿고, 들은 것을 믿고. 그대로 지켜 행하는 것인데, 그러면 읽는 것, 듣는  것, 지켜 행하는 것이것은 현실에서만 되어지지 다른 데서는 하지를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에서만 읽을 수 있고, 현실에서만 들을 수 있고,  현실에서만 자기가 행할 수 있습니다. 현실 외에서 하는 것은 다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은 또 언제 있어야 됩니까? 우리 믿음은 언제 믿음 이라야  됩니까? 우리 믿음은 언제 믿음이라야 됩니까? 현실 믿음이라야. 현실 믿음 아닌  것 미래적으로 나는 앞으로 이리이리 하겠다. 다 소용 없어. '내가 과거에  이렇게 이리저리 하지 못해서 후회가 된다. 그렇게 했을 걸.' 아무 소용 없어.

현실에 있는 믿음이라야 됩니다. 그러면 믿음이, 믿음이 있다는 것이 이것이  현실이 되면 바싹바싹 깨지기 때문에 깨졌으니까 냅둬 버리면 그것은 영원히  멸망받지 않습니까? 깨졌기 때문에 다시 현실을 또 줍니다. 또 주요. 또 주니까  이제 자꾸 닥치는 일이 있으니까 그것은, 깨진 것을 새로 이제는 깨지지 말고  새로 살려서 바로 이루라고 해서 이걸 재시, 재시, 시험을 다시 치는 거와같이  재시, 재시, 재 연습 재 연습으로 자꾸 이와같이 주는 것인데 이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자꾸 오니까 뭐 같은 세월이라' 같은 세월. 항상  그것인데.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항상 그것인데. 이러니까 하나님이 천 년이  하루 같 그 하루가 천 년 같다는 하나님의 이 심정을 모른다 그 말이오.

 보면 우리에게 현실이 날마다 현실 닥쳐 오면 그것이 같은 현실이 두 번 거듭  닥쳐오는 일은 없습니다. 자, 현실이 우리에게 이렇게 많이 닥쳐 왔는데 두 번  닥쳐 오는 현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분 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 예. 현실은, 현실은 두 번이 없어.

현실은 한 번으로 영원히 지나가 버려. 다시는 영원히 못 봅니다. 왔으면 새로운  현실이오. 새 현실 그 새 현실인데 사건적으로서는 그 두 번 세 번 이래 가지고  중복해 주지만 그 현실은 단 번뿐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속히 될 일이라  말은 단번 구원이라 그 말이오. 단번. 유다서에 단번에 이룬다는 그 단번 구원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자. 계시를, 이 신구약 육십육 권에 나타난 계시, 그  계시 속에는 영감 계시. 이 안에 들어 있는데, 그러면. 문서 계시, 영감 계시.

이 계시를 자기가 자기 것 삼았으면 뭘 자기 것 삼았습니까? 영감 계시 이  계시를 자기 것을 삼았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이 계시를 자기  것을 삼았으면 뭣을, 계시 자기 것 삼은 사람은 뭣을 자기 것 삼은 사람입니까?  예? 뭣을 자기 것 삼은 사람이오? ○○○조사님, 예? 영계와 우주? 크게 말해.

하나도 빠지지 말고 말해. 하나도 빠지지 말고 다 말해 봐, 창조주와 피조물.

그라면 다 들어가지 안했소? 이 계시를, 이 계시를 내 계시를 삼는 이것으로서만  창조주와 피조물은 내것 삼을 수가 있다 그 말이오. 내것 삼는 데는 정복적으로  삼는 것도 있고 종으로 삼는 것도 있고, 내 상전으로 삼는 것도 있고, 내 왕으로  삼는 것 도 있고, 내 생명으로 삼는 것도 있고 어쨌든지 그 자체에 따라서  나와의 지위 관계로서 관계를 바로 맺어 가지고 삼는 것인데, 이것은 이 계시를  내것 삼는 것으로써만 삼지 그외에는 삼지를 못한다 그 말이오.

 그러면. 이 계시를 내것 삼는 데는 신구약 성경을 얼마든지 읽었습니다. 읽는  것도 현실이 아니면 못 읽습니다. 또 듣는 것도 현실이 아니면 듣지 못합니다.

이랬는데, 이제 읽는 것 듣는 것은 무슨 효력입니까? 읽은 것 듣는 것. 읽은 것  듣는 것이 복이라 이랬는데 읽은 것 들은 것이 지켜 행하지 못했으면 읽은 것  들은 것이 복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됩니다. 그거는 정죄가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읽은 것 듣는 것은 지키는 것 때문에 복이 있습니다.

 지키는 거는 뭐로 지키는 거냐? 지키는 것은 내가 순종하는 것이라. 순종하는  것은 뭐이 순종하는 것이냐? 순종이 몇 가지로 순종 하는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소. 두 가지. 마음으로 순종. 하나님이 '나는 영원 자존자다' 할 때 '예,  자존자입니다.' 이렇게 내가 인정할 때 내가 마음이 순종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또 내가 그대로 현재 '하나님은 자존자라. 하나님은 전능자라.' 전능자라 했는데  내가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어떻게 해도 '전능자가 날 보호하고 날 지키고  있다.' 너는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 내가 너를 지키고 있다. 이랬는데,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 죽인다고 할 때에 그때 웃고 있습니다. 웃고 있는 사람  있고 뻘뻘 떠는 사람 있어. 뻘뻘 떠는 사람 있고 웃고 있는 사람 있는데 '웃는  사람 네가 미쳤나 왜 웃느냐?' '아, 전능자가 나를 지금 보듬고 아듬고 전능자의  품안에 내가 있는데 저 피조물 제가 날 죽인다 하니까 우습지 않소?' 이러니까  웃고 있고, 하나는 '아이구 전능자' 전능자가 나를 아듬고 있다 말했지만 그  공산주의가 와 죽일라 하니까, 그 세력이 더 크니까 '이제 나는 죽는다'  이러니까, 두 사람 다 믿는 사람이요 안 믿는 사람이요? 하나는 믿고 하나는 안  믿는데, 그러면 둘 다 안 믿었느냐? 둘 다 믿었소. 둘 다 미래적으로는 믿었소,  과거적으로는 믿었소, 그 사람이 논리적으로는 믿었소 이제 현재적으로는 믿지  못했습니다. 전능의 하나님이 거기 보호하는 것도. '하나님의 보호를 입고  있다.' 입으로는 많이 말했기 때문에 과거 미래적으로 논리적으로는 입었지만  현실을 딱 닥치니까 그때는 그만 믿음이 달아나 버린다 말이오. 하나님이 날  보호하친 있다는 것이 인정이 안 된다 그 말이오. 현실 적인 믿음을 가져야  되지. 현실적인 믿음이 산 믿음이지 그까짓 논리적이니 하는 것은 다 껍데기  믿을이기 때문에 이거는 알맹이 믿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그거 가지고 우리  구원되는 것은 아니라 그 말이오.

 이해가 됩니까? 이해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정말로. 네. 오늘 아침에  설교한 거 이해되면, 자꾸 이와 같이 늘여트려서 갈라트리는데, 이럴 때 좀 이래  가지고 늘여트리고 갈라트리면 알아들어야 될 터인데 고래 놓고 나면 또 딱  들어붙어 버리고. 딱 들어붙어 버리고 이놈의 도무지 속이 바디 속 같아 가지고  뭣을. 속이 이루어지지를 못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이 피조물 모든 것 다 해도  그 마음에 차지 안하고. 차지 안하고, 이제 피조물은 아무 걸로도 차지 안하고.

이제 라나님을 내가 모셔서 그분을 내가 채워야 채워지지 그런 거 아니면  채워지지 안해. 이 뭐뭐 세계가 크다 미국이 크다, 그까짓 것 와 봐야 미국이  크다 해 봤자 내 욕심 구덩이에 억마분의 일도 채우지 못합니다. 억만분의 일도  채우지 못해 세상 권세를 다 가졌다. 그것도 내 권세 욕심의 억만분지 일도  채우지 못해. 그 하나님의 하나님의 이 능력.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된 그 권세를  채워야 만족이 돼. 더 이상 그라면 더 부족이 있느냐? 더 부족이 없어. 원할 게  없어. 만족해. 그만 하면 족해.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한 분으로서만 자기의 그  소망이 되어지기 때문에 딴것은 그까짓 것 안전에 두지를 안해. 채워지지 안해.

이것이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이 저희 것이 된  사람은 심령이 가난해질수밖에 없는 것은 필연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을 공부할라 했는데 그 공부하려고 시작해 보니까 너무 깜깜해서 어림도  없어. 이런 것은 쉬워. 이런 것은 쉬운 것인데 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공부를  하려고 하면 산상보훈이 좋은 줄은 아는데 공부 할라 하면 너무 어려워서 가르쳐  봐야 안 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산상보훈에 대한 주석이 바른 주석이  별로이 없습니다. 나는 지금 보지를 못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자꾸 여러분들이 이제 배웠으면 이 배운 데서 후퇴하지 말고 이 배운 것을  강직하고, 그러면 녹음해서, 이걸 강직해 가지고, 내가 그 내 심령이 그게까지  따라 들어가 가지고 그것을 이해를 시키고 이해를 시키고 그게 머물러요, 자꾸  내가 새김질하면서 그게 머물고 그게서 떠나지 말고 그 세계에서 잡고 있으면 그  세계가 저거 집이 되고 세계가 저거 세계가 되고 그것이 자기가 되고, 이렇게  되지고 한참 이라고 나면 좀 안 잊어 버 지고 그라고 나서 이제 보면 그라면서  성경을 보면 성경이 확 열릴 거라 말이오. 확 열려서 성경에 진리가 깨닫게  되지만 전부이 자기 욕심 속에, 자기 욕심 속에, 악령 악성 악습 속에 여러 수십  첩첩이 갇척 가지고 들어 앉았는데 거기서 무슨 하나님의 계시를 볼 것이며 빛을  볼 것이며 하나님을 볼 것입니까? 자기를 부인해야 보지 부인하기 전에는 못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를 지금 해도 자꾸 뭐 밝아지는데 기도를 어찌 합니까?  기도하는 것은 '가서 무슨 기도할꼬?' 이렇게 하면 기도 못 합니다. 기도 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말고 성경 말씀을 한 말씀이라도 가지고 그 말씀을 파고 들어  가십시오. 그 말씀을 파고 들어가서 '요 말씀은 요랬는데 나는 이대로 안 됐다'  말씀하고 자기하고 일치를 시켜서 말씀을 자기가 점령을 하려고 할 때에 말씀  점령하고 보면 현실을 점령하게 되고, 현실을 점령하면 하늘과 땅의 것을 모든  것을 다, 밑의 것, 위의 것 다 점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야 되지지 그냥 가서 기도하려고 '뭘 기도할까?' 또 자기의 소용대로 뭘  목적을 두고 기도하는 그런 것도 실은 위험합니다. 그저 기도하려고 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거머쥐고 새김질하면서 말씀과 나와 대조해서 '그러면 내  목적은 어짜고?' 목적 다 치워 버리고 말씀과 나와 대조해 가지고 말씀하고  나하고 하나 될라고 자꾸 이라면 내 심령 밝아지고 내 심령 밝아지고 나면  당신이 공짜배기로, 우리가 구한다고 주십니까? 구한다고 주시는 그 말은 무슨  말이냐? 껍데기 말이오. 구한다 그 주신다 그말은 내가 거기에 대해서 이제 그  필요성을 알고, 그거 가질만한 자격이 되고 그 주시는 분을 알고, 주시는 목적이  뭐이고 다 알고 그 사람으로 변화되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것을 다 그의  것인데. 변화 되지 안하고 암만 달라고 죽도록 구해 보십시오. 아, 그 사람에게.

자녀가, 사랑하는 자녀가 칼을 달라 하는데 비수 같은 칼을 갖다 주면 다 자살해  죽어 버릴 것인데 줍니까? 죽도록 구해 보십시오. 안 줍니다. 이러니까 주님에게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면 자꾸, 주님이 그것을 주실 수 있고 그것을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꾸 변화하는 역사를 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은 변화  역사를 하는데, 하나님은 신화 역사를 하는데 저는 변화 역사는 받지 안하고  욕심만 가지고 자꾸 고해서 '이거 주십시요. 이거 주십시요.' 한다 말이오.

 그게 뭐이냐? 얍복 강에서 야곱이 씨름한 것이라 그 말이오. 야곱이 씨름한 것.

야곱이 씨름한 것이 좋은 게 아니요. 야곱이 씨름한 게 좋은 게 아니고 그걸  죽여야 됩니다. 죽여 버려야 되는데 죽이지 안했기 때문에 환도뼈를 치니까 제가  회개를 해 버렸습니다. 회개하고 나니까 이제 한 대 맞고 난 다음에, 회개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는 야곱이 아니고 야곱이. 제가 뭣을 정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내가 뭘 하려고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한테 징계받았다, 내가  뭣을 하려고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 징계받았다. 하나님이 가볍게 징계를  줘 그렇지 그리 안 하면 내가 죽었다. 내가 그렇게 세워댔는데 하나님은 된다  나는 안 된다 이래 세울 때에 탁 죽여 버릴 건데 나를 안 죽이고 살려 두시니  감사 합니다.' 그렇게 자기가 하나님과 대항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죽을 죄라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대항하지 안하고 다시는, '예, 예로만 순종하기 위해서 첫  '예'로 순종이 뭐이냐? 에서가 죽인다 하니까 그렇츰 겁이 났지만 이제는  얍복강을 척 건너가면서 에서에게 건너갑니다. 에서에게 건너가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전적 다 믿지 못하고 그 믿는 믿음이 빈약하기 때문에 가면서 뻘뻘뻘  떨면서지만 에서를 만나 가지고 목을 어긋 맞기고 울고 이렇게 축복하고  이러니까 그때사 '아. 하나님이 과연 이렇구나. 그래 가지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대항해 싸우다가 징계받고. 하나님과 대항하는 것은 멸망이다. 하나님과  대항하는 것은 멸망이다. 하나님과 세우는 것은 멸망이다. 하나님께 복종이 이제  생명과 평강이요 구원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이란 이름이오.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바로 발표해 놓은 주석이 없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바로 알아야 되지.

아무나따나 지금 자꾸 이렇게 뭐 가르쳐도 '무식한 백 목사가 가르치니까'  이렇게 하는 자는 참 불쌍한 자입니다. 들어서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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