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8 23:07
참 기쁨 얻는 구원
본문 : 빌 4:4-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절에 있는 말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언제나 우리들은 전적 부패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구원 받게 된 자들이기 때문에 회개라는 것은 평생 죽는 그 시간까지 하여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회개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원형으로 표본으로 삼고 배우고 닮아 가고 본받아 가는 우리의 생애이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우리는 유한한 자들이기 때문에 늘 미달이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무궁세계 가 가지고도 당신에게 순종하여야 할 순종이 있고, 또 당신에게 소망해서 새로 얻을 것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고로 언제나 회개는 우리가 하는 것이지마는, 요즘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를 재촉하고 계시는 때입니다. 서부교회에서는 벌써 오랫 동안 계속해서 회개에 대한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 어느 시대나 하나님이 멸망시키기 전에 회개를 말씀하셨고 또 축복하시기 전에 회개를 말씀했습니다. 회개는 모든 사망을 벗는 유일한 방편이요, 온갖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입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회개하는 자는 회개를 기뻐하고, 회개하라는 음성을 즐거이 받지마는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는 회개하라는 말씀과 회개하라고 증거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미워서 다 죽여 버리는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지난 주일도 마태복음 23장에 선지자들의 무덤과 비석과 의인들의 무덤과 비석을 만들면서, '우리는 그 시대 있었으면 이런 악행에 참여하지 아니할 것이다.' 하면서 대선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그런 경영을 하고 있는 그것을 저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육체의 이스라엘이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 말씀을 했고, 요한계시록 11장에 증인은 선지자인데, 그 선지자를 미워서 죽이고, 죽고 나니까 좋아서 예물을 드리고 기뻐했다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로 멸망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회개라는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듣기 싫어하는 그런 사람들도 혹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재빨리 회개해야 되지 회개 안 하면, 전체에 재앙이 안 내리면 그 개체에 재앙이 내리는 것입니다.
아무 때나 따나 기독교는 회개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걸어가는, 회개로 천성을 향하여 가는 기독교이지마는 특별히 지금은 하나님께서 회개를 재촉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물주의, 무신론 세력들이 모든 기독교나 이런 것을 허락하는 그런 민주주의에 속한 이런 세력들과 싸워서 이길 만한 그 세력이 점점 강해집니다.
우리에게 대한 위협과 협박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강하니 우리가 위험하다' 하는 것 아니오. '그들이 약하니 우리는 안심된다.'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순전히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지 보이지 않는 그 이면에 계시는 하나님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평가야 세계가 다 말한다 해도 그것은 말로 들을 것도 없고 가치로 여길 것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무신론의 세력이 모든 민주주의 유물주의하에 있는, 기독교를 용납하고 있는 그런 나라들을 위협하고 능가할 만치 몇 배나 강력을 가지는 것은 미련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볼 줄 모르고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두려워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안심도 하고, 떨고 하는 자들에게 '너희 눈에 보이다시피 너희들을 멸망시킬 자가 이렇게 강하다.' 하는 것으로써 우리에게 회개를 재촉합니다.
얼마 전만 해도 강대국 일본으로 도피하겠다. 미국으로 도피하겠다. 또 이런 무슨 남북 대결 같은 이런 것이 없는, 별 긴장이 없는 완화된 그런 지역으로 도피하겠다 해 가지고 뭐 이민 가는 사람들, 가려고 애써도 못 자 그렇지 그런 사람들 많고, 또 날랜 사람들은 벌써 가 가지고 영주권, 시민권 딱 얻어놓고 날아와서 여게서 큰소리 떵떵 치면서 '그저 무슨 뭐 공산주의가 뭐 어떻게 해? 안심해라.' 위로를 주고 그저 세상 것으로 '이러면 잘산다. 저러면 잘산다.' 해서 위안제를 마시게 하는 그런 일꾼들이 우리 한국에도 많이 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지식 있지, 웅변 좋지, 간판 좋지, 또 지혜 있지 이러니까 그 활동의 세력을 당하지 못합니다.
그런 분들이 지상 천국을, 아직도 땅 위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고 좋다는 그것만 잔뜩, 세상만 보여줘서 세상에 갈급한 사람들이 거게만 갈급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니, 하나님의 진노니, 회개니 뭐 하면 '만날 저것은 꼬집고 찍탈만 잡고 사람들에게 충격이나 자극이나 준다.' 해서, 지금은 미움을 시작하지마는 좀 있으면 다 잡아 죽일 것입니다.
이렇지마는 같이, 이 가운데에서 '회개 안 하면-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 갈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지마는 안 가고 회개를 해서 하나님의 긍휼 입어 살면 같이 살고 또 하나님의 진노를, 우리가 회개의 양을 채우지 못해서 멸망을 받으면 같이 멸망받지, 나 혼자 살겠다고 도피해 가지고 그렇게 인본적인 피난처를 마련해 놓고 여게 와 가지고 큰소리 뻥뻥 치고, 지금 적화 통일이니 무력 통일이니 하니 떤다는 그런 것, 저는 안심이 되니까, 날아가면 되니까 위안제만 마시고 이래 가지고 있는 그런 미혹을 안 받아야 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안 됐다. 이것들을 둬 가지고서는 내 백성을 회개를 못시키겠다.' 해서, 갑자기 소련이 용기를 내 가지고 뭐 중공, 일본, 미국, 한국 할 것 없이 모조리 홀트리 다 정복해서 점령 하겠다 하는 걸 선포했습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미국에서는 '미사일 그까짓 것 암만 있어봤자 광선으로서 미사일이 무용지물이 되도록 만들겠다.' 하는 소리도 뻥뻥치고 하지마는 하나님이 뭐 하려고 이렇게 하시는가 그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되지 하나님의 뜻 모르고 아합왕 모양으로 인간대로만 생각하면 다 전사해 버리고 맙니다. 미가야 선지를, 어리석다는 미가야 선지는 하나님의 회의에서, 그 회의의 모든 논의와 결의된 것을 듣고 본 이는 미가야 선지입니다.
그런고로 그렇게 그들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인본주의, 현실주의, 가견주의 되어 있는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너희 눈에 봐라. 이렇게 보는 대로 이것은 어른이라면 민주주의는 어린 아이밖에 안 되고 마니까 뭣 되겠노? 담박 절단날 것 아닌가? 이러니까 회개해라.' 하는 말이오.
하나님이 약한 자에게라도 붙이면 세계 강자가 다 가 붙어 버립니다. 아무리 강자라도 하나님이 약자에게 붙이면 강자가 절단나는 것이고, 아무리 약자고 비참하고 가련해도 강자에게 붙이면 그것도 절단나 버립니다.
이러니까, 지금 우리가 회개해야 된다는 이 말을 아주 듣기를 싫어합니다.
6·25때도 제가 위천 있을 때에 어떤 교인들은 '인민군 그걸 뭘 두려워해? 인민군 어쩔까봐? 공습이 두렵지' 하는 사람들을 뒤를 파 조사해 보니까 속으로 인민군들하고 다 연락이, 연결이 돼 가지고,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껍데기만 예수 믿는 척하고 다니니까, 거기다가 등을 대 가지고 담대하게 날뛴 자들입니다. 지금도 그렇소.
이러니까 하나님이 '안 되겠다. 강대국에 피난하려 하는, 강대국 미국에 일본에, 피난하려 하는 일본과 미국도 피난이 안 된다. 이것도 몽둥이로 때리면 다 깨진다 하는 것을 보여줘야 되겠다.' 해서, 지금 아마 미국에 가 가지고 있는 사람들온 지혜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불안할 것입니다. 제일 위급이 미국이요, 둘째 위급이 한국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아직도 미국은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강하고 튼튼한 미국이 우상이 되어있는 사람들은, '뭐 미국이야 천국이지. 날아만 가면 그만이지.' 하는 사람들은 꿈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공연히 시민권 영주권 받아 놓고 한국에 와 가지고 적화 통일이니 무력 남침이니 하는 여게 대해서 콧똥만 틔퉁 끼고 '그뭐, 뭘 그런 소리. 믿음이면 되지.' 하는 그런 소리 듣지 마십시오.
6·25를 여게서는 참가한 사람들이 별로 없어. 비참한 위급한 꼴을 당하면 그때에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고 얼마나 급했기에, 제가 보는 대로도 자식이 부모 잡아 줘서 죽이도록 하고 부모가 자식 잡아 줘서 죽이도록 하고, 그뿐 아니라 부모가 들어서 안 죽이면 너 죽인다 하니까 자식 저거 손으로 죽여 버렸어. 자식이 저. 부모 안 죽이면 '너는 죽으니까, 너는, 이미 너희 부모는 죽을 터인데 너희 부모 죽이고 너 사는 게 낫지 않느냐?' 죽였습니다. 뮐 못 범할 것입니까? 이러니까 오늘에 회개해야 되지 강퍅함을 가지지 맙시다. 너무 강퍅함을 가지고 너무 낙관시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습니다. 너무 낙관시하고 있습니다.
돈 벌면, 그것만 하면 될 줄 아요?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놓고, 하나님과 해결을 지워 놓고 그 다음에 이것 저것이 있지. 절대자이신, 주권자이신 그분이 지금 몽둥이 들고 깨트리려 하는데 무엇이 그 앞에 견딜 것입니까? 어리석지 맙시다. 강퍅하지 말아요. 지금은 돈벌이 위주, 사업 위주, 명예 위주, 공로 위주 그럴 때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라도 제가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의 노를 풀어서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노가 좀 적어지고, 한 사람에게라도 전해서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노가 풀어지는 이것을 해서 하나님이 노여워하심을 다 풀고,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하신다면 당장에 세계에 일대 강국도 될 수 있습니다. 부국도 될 수 있습니다. 엿새 동안에 모든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 우리가 믿는 우리 하나님 아닙니까? 그저 철이 없어서 과학의 힘, 물질의 힘, 인간들의 힘, 젊음의 힘 -요새는 교역자들도 젊고 주먹만 세면 그것 가지고 일하려 합니다. 하나님이 분노해서 바싹 깨트릴 것이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않습니다. '스스로 속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사람이 심은 것은 그대로 거두리라' 호리나 변동 있습니까? 콩을 심을 데 팥이 나는 일이 역사에 있었습니까? 제가 한 행동을 하나님이 안 갚는 일이 있습니까? 인간들이 행동해 놓고 제가 죽어 버렸기 때문에 그대로 갚지마는 제가 못 받지. 하나님의 심판과 보응은 변하지 않습니다.
지금 다른 나라 다 놔두고 우리 한국에서 회개를 흐리게 만들고, 회개 운동을 재촉하지 아니하고 헛되이 위안과 안심을 주는 자들은 하나님이 진노해서 멸망시킬 종들입니다. 단언합니다.
미가서에 보면 '선지자들은 돈을 위하여 점을 치고'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지혜 총명 주니까 그 지혜 총명 가지고 돈벌이 하는데, 사업 하는데 기울이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따라올 수가 있습니까? 그거 하라고 지혜 총명 줬습니까? '선지자들은 돈을 위해서 점치고 제사장들은 뇌물을 위하여 공의와 정의를 버리고 교훈하고 뇌물에 따라서 교훈하고' 이러면서도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시지 않느냐? 우리가 멸망하지 않는다 함으로 예루살렘은 숲이 되고 성전은 수풀 언덕이 된다' 고 말했습니다. 참혹하게 멸망합니다.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라. 결단코 애통에 이르지 않는다.' 하기 때문에 하루 동안에 멸망이 너희들에게 이른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장담을 합니까? 젊음을 장담하요? 어리석소. 세상 정권의 배경을 가지고 장답합니까? 어리석소. 이십 세기 과학에 '우리는 이런 과학이 있다. 세계에 제일 신발명의 과학이 있다.' 어리석소. 그것 다 엿새 동안에 주님께서 만드신 것 가운데 있던 것을 인간이 지금 발견해 가지고 날뛰는 것이오. 그걸 만드신 그분이 진노하시는데 뭘로 거기서 방어할 것이오? 그런고로 우리 한국 교회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개교회나 교파나 지금 급선무가 회개입니다. 회개 외에 뭐 위안해서 '어쩌면 돈 잘 벌꼬? 어쩌면 잘산다. 어떻게 한다.' 그것은 또 할 때가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축복을 받아서 이래 된다, 저래 된다. 하나님부터 우리가 영접해 놓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난 다음에 이리 하면 저리 하면 된다고 해야 되지 하나님 배척해 놓고 난 다음에 가서 무엇 가지고 대용이 될 것이오?
우리가 회개를 할 때에 첫째는 도덕의 종류의 회개, 껍데기 회개를 해야 됩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탐내지 마라. 도적질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사람으로 더불어 불목하지 마라. 불효하지 마라. 하나님의 섭리를 언제나 감사하고 거기 따라서 살아라.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우상을 만들자 말고 섬기지 말아라. 하나님으로 네 근본을 삼아라. 하는 이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회개는 순서가 있는데 제일 껍데기 도덕에 속한 회개를 우리가 해야 됩니다.
도덕에 속한 회개는 어떤 회개인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 중에도 인간 대 인간, 인간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라 하는 그 교훈을 어긴 것이 도덕 종류의 범죄입니다. 도덕 종류의 범죄.
그것을 회개하고 난 다음에는 종교 종류의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종교 종류의 회개가 뭐인고? 지금은 유사 종교가 한없이 퍼졌습니다. 사이비 종교를 말을 많이하고 있지마는 기독교 외의 것은 다 그것은 참된 종교가 아닙니다.
이런데 기독교와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이거 유사 종교와 혼합 혼돈을 시켜서 비빔밥을 만들어 놓습니다. 이제는 종교 통일이오. 이 죄를 회개를 해야 됩니다. 요 종교 통일을 시키는 강한 힘은 사랑이라, 화평이라. 겸손이나 사랑의 사도처럼 제가 사랑을 주장해 가지고 요런 것을 구별하면 안 되니까 그저 둥글둥글하게 넓게 포용해 가지고 이렇게 하자 하는 아주 간교한 이기주의자입니다. 종교에 속한 죄를 회개를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원죄에 속한 죄를 회개 해야 됩니다. 원죄에 속한 죄는 자기 중심이나 자기 가정 중심이나 자기 민족 중심이나 국가 중심이나 인류 중심이나 창조주 주재자 빼놓고 그 외에 피조물 어떤 것을 중심으로 위주로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원죄입니다. 원죄의 종류를 회개를 해야 됩니다.
이 세 가지 종류의 죄를 회개를 하면 그 다음에 남은 것은 무엇이냐? 신앙이 됩니다. 이 세 가지 종류의 죄를 회개하면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되고. 주를 바라볼 때에 그것이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늘 네 가지를 섞바꿔서 많이 말씀을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기쁨에 대한 회개를 해야 되겠습니다. 성경에는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기쁨은 항상 기쁨이기 때문에 끝이 없는 기쁨이요 변해지지 않는 기쁨인데 이 기쁨을 우리가 가지지 못하는 죄를 회개를 하고 이 기쁨을 가지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쁨에 대해서 먼저 그 종류를 구별해야 합니다. 변하는 기쁨, 끝이 있는 기쁨 이것과 언제나 변하지 않는 기쁨, 영원히 끝이 없는 기쁨, 불변의 기쁨.
변하는 기쁨, 영원한 기쁨 일시의 기쁨 요것으로 요 기쁨을 구별하면 구별됩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기쁨을 주노니 세상이 너희 기쁨을 빼앗지 못하리라.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리라' 이 기쁨은 항상 기뻐하라는 이 기쁨과 동일한 기쁨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쁨과 기쁨을 구별해서 기쁨의 종류를 바로 지식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하니까 자기는 기뻐한다 하면서 이것은 순전히 마귀가 주는 기쁨을 가지고 기뻐하고, 사망에 속한 기쁨을 가지고 기뻐하고, 변하고 일시적인 그런 기쁨을 가지고 기뻐하는, 이 기쁨의 구별을 하지 아니하고 기쁨을 혼잡시키고 혼돈시킨 이 죄를 회개해서 성경이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는 이 기쁨을 우리가 바로 찾는 이것을 첫째 해야 되겠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쁨. 예수님이 말씀하신 기쁨 이 기쁨은 변하지 않는 기쁨이요 끝이 없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저도 가졌다가 놓았다가, 가졌다가 놓았다가 이 죄를 지금 완전히 회개를 못 하고 힘 쓰고 있는 증에 있습니다, 가다 보면 기쁨에 혼잡되어서 기쁨의 음행죄를 짓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쁨을 가졌다가 그 기쁨 치워 버리고 마귀가 주는 기쁨으로써 바꾸어 가집니다.
이래 가지고 멋도 모르고 반날이고 몇 시간이고 지내다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일 때에야 비로소 '아, 내가 이 기쁨의, 이 기쁨으로 음행했구나. 기쁨의 음행,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로 더불어 짝했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데, 우리가 성경이 말하는 기쁨을 가질 기쁨은 그 기쁨은 열매인데, 기쁨이 맺은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알아야 됩니다. 말을 알아 들어야 되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면 이 시간이 괴로울 것이오.
말을 못 알아 들으면 제가 무슨 신앙 행위를 하겠소, 하기를? 저 지난번에 어떤 데서 온 사람들 보니까, 설교 하며 보니까 한 마디도 못 알아 들어, 무슨 말 하는지, 알아 들으면 통해지는데 못 알아 듣는다 말이오. 기쁨의 원인이 있어 가지고 결과적으로 맺어지는 것이 기쁨인데 기쁨의 종류를 구별할 때에는 그 기쁨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규명해야 됩니다. 그 기쁨의 원인이 변하지 아니할 원인이나 영원한 원인이라면, 그 기쁨의 원인이 영원하 고 불변할 것이라면 그 기쁨은 변하지 않는데, 제가 그 기쁨을 내 놨으면 내 놨지 변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찾으면 됩니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기쁨 그 기쁨의 원인을 들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기뻐 즐거워서 어깨가 우쭐거리면서 아주 그만 얼굴에 서기와 화색이 납니다. '야, 저 사람 저렇게 분명히 기쁘기는 기쁜데 저 기쁨이 어떤 기쁨인가?' 보면 기껏 돈 얼마 수입되니까, 참 그까짓 거는 바람 앞에 등불이요 정함이 없는 물질인데 언제든지입니까? 또 어떤 자는 자타를 망칠 수 있는 자기의 쓰지 못할 육체의 욕심, 그 욕심대로 무엇이 일이 성사가 하나 됐다, 뭐이 됐다 해 가지고 기뻐하는 것. 아, 어떤 든든한 배경의 사람을 하나 가지게 됐다, 어디 뭐 취직이 됐다는 것, 무슨 난제가 해결이 됐다는 것. 해결돼 봤자 마지막에는 죽는 것인데 그 무슨 기쁨이겠소? 이러니까 우리는 기쁨의 종류를 두 가지로 구별하는데 그 기쁨이라는 것은 기쁨이 열리는 나무가 있으니까, 나무는 그 기쁨의 원인 인데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찾아서 그 원인을 살펴 원인의 가치가 영원성인지 불변하는 것인지 그것을 좀 살펴 가지고 기쁨을 취해야 되겠소.
막바로 우리 속에는 악습이 있고 악성이 있는데, 악성에 맞은 것은 악성이 좋아합니다. 악습에 맞은 것은 악습이 좋아합니다. 악령에 맞은 것은 악령이 좋아합니다. 그것이 우리 구원이 됩니까? 우리가 너무 어리석소. 우리는 성도라 하는 것은 구별하는 무리라 하는 말입니다. 옳고 그르고 참된 것을 구별해야 됩니다.
구별할 때에 제 지식 가지고 구별할 것이오? 학교에서 배운 그 지식 가지고 구별할 것이오? 학박사된 그거 그 지식 가지고 구별할 것이오? 아니오. 그거는 죽은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요 가치 없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산 지식이요 살리는 지식입니다.
그러면 세상 지식은 무엇 때문에 가지는가? 그것은 요리해 먹으려고 가지지. 세상 지식은 내가 사용하려고 가지지. 이용해 먹으려고 가지지. 그 지식은 나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 지식에 지배받으면 죽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이 기쁨을 비판하고 평가해서 보면 자기가 기뻐 즐거웠다가 하나님의 지식 가지고 그 기쁨의 원인을 평가 할 때에 고만 제가 탄식이 되면 '주여 내가 이렇게 어리석습니다. 기쁨이 즉시 슬픔으로 바꾸어지고 비참으로 바꾸어질 것을 모르고 이렇게 기뻐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우매무지한 짐승같은 자입니다.' 하는 그것이 그 생활 속에서 나와야 됩니다. 한 생활 한 생활 속에 자기의 기쁨을 비판하고 평가해서 그 원인이 어떠한가를 생각해서, '야, 무엇이 있으니까 해결이 됐다.' 네가 해결이 되면 그 해결이 그것이 몇 해를 해결해 주겠으며 몇 백년을 해결해 주겠다고 네가, 영원을 상대하는 네가 그것 가지고 해결됐다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정신없이 날뛰고 있느냐? 그런고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 하나님이 지으신 어떤 것이라도 그것이 내 기쁨의 원인이 되면 그것은 생명이 없는 것이요 뿌리가 없는 것입니다. 뭐 좋으면 얼마나 좋을 것이며 기쁘면 얼마나 기를 것이오? 어리석소. 다 제 낯은 못 보기 때문에, 나는 늙어서 허여이 머리가 파뿌리 같이 이래 돼도 저 늙은 줄 모르고 아 다른 사람 보니까, 모두 젊었을 때만 내가 만났는데 젊을 때 그때는 마구 뭐 호랑이도 무섭지 못할 그렇게 젊음의 피를 견디지 못해서 청청하던 것이 벌써 시들어서 송장됐습니다. 거의 송장 됐습니다. 죽은 사람 많고 산 송장 같이 돼 가지고 있는 사람 많아. 잠깐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지식인 성경 말씀을 가지고 우리의 기쁨의 원인을 조사를 해서 '아, 이것은, 내가 이 기쁨을 죄악시할 거는 아니지마는 이 기쁨이 오든지 가든지 내가 여게 피동돼서는 안 되겠다. 내가 이것으로 즐거워해서는 안 되겠다. 이것을 내 기쁨으로 삼아서는 안 되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비판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과 그분이 약속하신 선포의 약속 교훈 이것이 근거가 돼 가지고 기뻐지는 기쁨이면 그는 영영합니다. 그는 변하지 않습니다. 영원합니다.
이러니까 '너희들은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말씀은, 우리를 구원하신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 이분으로 인하여 얼마든지 사지에서도 기뻐할 수 있고 어디서든지 기뻐할 수 있기 때문에 말한 것이오. 이분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이분이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서 성경 말씀으로 계약을 선포해 놓고 교훈하고 이렇게 우리에게 주셨으니, 당신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은 당신의 뜻 당신의 뜻 당신의 진리 이것은 지극히 크신 이분과 만물보다 거짓된 죄 투성이 된 나와의 그 관계가 어떻다는 것과 어떻게 될 수 있다는 것과 이미 관계되어 있는 것을 우리에게 신실히 증거해 주는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오, 또 앞으로 어떤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요, 어떤 지극히 큰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그 방편과 능력을 소개해 주는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니 이 말씀으로 인하여 항상 기뻐하라 하는 말씀입니다.
모든 것의 원인이 되시는 영원 자존하신, 제일 크신 분 이분이 나와 관계를 가지고 있으니까, 세상에서 내가 피조물과의 관계가 어떻게 성글고 좋은 관계를 못 가졌다 할지라도 모든 것보다 뛰어나신 분 이분과 관계를 가졌으니까, 아 밑에 지저분한 그 백성들과 관계 가진 그 관계를 좀 못 가졌다 할지라도 제일 대가리 되는 왕으로 더불어 관계가 잘 가져졌으면 그만하면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분은 이분과의 관계를 잘 가지면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가 다 잘되도록 하고 있어.
지극히 크신 분 이분과 나와 관계가 어찌 됐나? 이분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이분의 그 본체와 자체와 그분의 그 속성이나 지능을 내가 연구해서, 성경 말씀을 가지고 연구해서 지극히 크신 분, 지극히 크신 것을 내가 깨닫고, 그분이 모든 걸 창조하시고 나를 사랑하심으로 당신의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 속에서 나를 나게 하시고 나를 당신 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 만드시기 위해서, 모든 피조물의 으뜸이 되어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에 중보의 위치인 교회를 일으키기 위해서 당신이 모든 걸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주님이 십자가의 대속을 베푸셔서 사랑으로 영원한 화친 영원한 사죄 칭의를 일으켜 주시고, 지금도 모든 피조물 아는 것 모르는 것 전체를 보존 시키는 것이, 움직이는 것이 주님과 나와의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성령이 사용하시고, 진리가 사용하시고, 주님의 피공로가 사용해 가지고 이 모든 것을 활용해 가지고 당신과 나와 하나가 되는 이런 구원을 이루는 이 사실을 생각할 매에 무슨 피조물에게 대해서 미련이 있을 것입니까? 무슨 피조물에게 해서 욕망이 있으며, 무슨 피조물에게 대해서 불만이 있고, 무엇이 부러워서 우리가 불만 불평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이뿐만 아니라 이분은 창조자시요, 완전자시요, 자존자시요, 주권자시요, 주재시요, 전지 전능자시요, 사랑의 주신 주이신데 이분으로 우리가 살아나지 아니했소? 이분이 우리 안에 계시지 않습니까? 이분이 우리 안에 계시면, 무슨 배 안에 뭉텅이 모양으로 돌아다니면서 계십니까? 우리 배안에 자래병 모양으로 돌아다니며 계십니까? 우리 속에 무슨 내장암처럼 속에 뭉텅이가 되어 가지고 아프고 거칠게 계십니까? 아니오. 우리 속에 지극히 작은 형체도 가지지 아니하고 거리끼지 않게 계시면서 그분이 나에게 전지의 지혜가 됩니다.
그분이 내 안에서 가르친대로 하면 나는 전지자니 지혜를 내가 행할 수 있고, 그분이 움직일 때에 내가 같이 움직일 때에는 사람 보기에는 사람이 움직이지마는 이것은 전능의 움직임이라. 이렇게 완전자가 내 안에 계셔서 내 중에 내가 돼 가지고 내 안에 거치지 아니하면서 역사하여, 내 중에 내로 역사하여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이 영과 육에 모든 것의 좋은 것이고 완전한 것으로 충만하게 되는 이분이 우리 안에 계시는데, 이분 내 놓고 뭐 찾을 것이오, 찾기를? 이럴 때에 자기는 기쁘고 즐겁고 만족하고 마음에 뛰어나설 만하고 좋은 것을 자랑을 하고, 큰소리를 하면 해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말 하면 저거 예수 믿다가 미쳤다 할 터이니 절제해서 두지마는 그 속에 기쁨이나 담력이나 평강이나 욕망이나 그 세력이나 무엇을 두려워 하겠소? 그분과 하나되어 갈 때에 소련이, 어떤 뭐 무엇이 와 가지고 할 때에 두렵겠소? 비웃습니다. 비웃어. 너를 하루 동안에 만들고 한 손가락으로 만들고 네 생명을 주권해서 지금도 숨을 끊어지게 하면, 악어가 그놈이 독하게 그렇게 힘 세지마는 생명을 거두면 즉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네 생명을 주권하고 계시는 분이 내 안에 있어. 네가 어떻게 할 것이야? 이렇게 '너희는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기쁨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인데, 돈으로 기뻐하는 그 기쁨이 항상 있을 수 있습니까? 돈은 변해집니다. 사랑하는 꽃같은 부부끼리 기뻐하면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늙어서 쭈굴쭈굴해 송장됩니다. 좀 있으면 죽어서 시체로 갖다 버려야 됩니다. 그런 것들 아닙니다. 만유의 대주재 되신, 자존자 되신, 주권자이신, 우리를 십자가에 대속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분으로 인한 기쁨으로 살아라 그말이오.
이분이 우리에게 선포해 놓은 계약 있으니까 이 계약과 이분으로 인해서 소망하는 이 소망의 기쁨으로 살아라. 이것이 우리에게 말씀 하신 것인데 우리가 너무 껍데기 생활 합니다. 우리 기쁨은 껍데기 발린 것 아니오. 저절로 오는 것 아닙니다. 성경을 보고 성경 대로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생각하고, 또 비판하고 평가하고 하는데서 나오는 기쁨입니다. 나오는 평강이요, 나오는 담력이요, 나오는 소망입니다. 인간에게 받는 것 아니오.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보증하신 이 말씀을 근거해 가지고 비판해서 얻는 이 기쁨인데 이 기쁨을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 내가 들으니까 여섯 시 주일학교 반사들 출발 예배를 보는데 서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정금 설교요, 정금 설교라 어데든지 나가 듣는 설교 아니라 정금 설교입니다. 여러분들이 귀가 어두워서 못듣지 정금 설교요, 정금 설교. 정말 그게 기독교입니다. 별별 잡탱이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 신앙 아닌 신앙,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 성경이 있지마는 다 성경을 봐도 아무나따나 깨닫는 줄 압니까? 바쳐야 압니다.
저 지난 토요일 아침인가? 제가 성전 휘장 설교했는데 깨달은 자는 깨달을 것이오.
성소에 비치된 것이 있고, 지성소에 비치된 것이 있는데 휘장을 열고 들어가지 아니하면 지성소 안에 있는 거는 못 만납니다. 떡상의 헌신도 할 수 있고, 금등대의 세상 빛노릇도 할 수가 있고, 세수통의 성결도 할 수가 있고, 제단의 속죄도 할 수가 있고 향로의 기도도 할 수 있지마는 법궤는 못 만납니다. 그룹도 못 만나요. 정말 속죄소도 못 만나요. 하나님도 못 만납니다. 외식하지 맙시다. 성전 밖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이방인에게 다 내줘라. 신약시대에 이방인에게 내어준 이 겉마당이 많다. 성전과 제단과 그 가운데에 경배하는 자들만 취급하고 나머지기는 버리라.
외식하지 맙시다. 우리가 이 기쁨을 가지지 못하는 거. 우리가 왜 이 기쁨을 빼앗기느냐? 그러면 이 기쁨 가지면 이거는 술 취한 사람의 기쁨인가, 정신병자의 기쁨인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약으로 인해서 충만하여 기쁘고 당신만을 바라보는 그것이 어리석은 기쁨인가? 아니오. 그럴 때 그분이 없는 가운데 있게도 하고 그럴 때에 천하 만민 가운데 으뜸이 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도 내가 들으니까 갈릴리 바다에서 배 타고 가는데 그 제자 들이 인간 지식과 인간들만 상대해. 인간만 상대하고 인간 지식만 상대한 그것이 그들에게 준 게 뭐입니까? 주님과 주의 말씀만 상대하고 다른 것 다 잊어버렸을 때 그들에게 온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위안제로 자꾸 기뻐나 하고 교회 가면 속이 시원하다는 것. 시원한 그것이 병입니다. 오늘에 회개해야 될 터인데 뭐이 시원해요?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것을 생각해서 기쁘고 즐거웠던 것이 그놈이 변해지니까 또 죽겠다고 야단이지. 아예 주님이 주시는 이 기쁨으로 바꿉시다. 우리가 이제 기쁨을 바꾸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이 기쁨을 바꾸어 가진 자는 세상이 해하지 못합니다.
(기도)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저희들이오니 주님의 피공로를 인하여 저희들을 이미 긍휼히 여겨 주셨사오니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님을 아는 것과 믿고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함이 너무도 부족한 저희들입니다. 너무도 외식 형식 불신에 머물러 주님의 노를 심히 격발하고 있음을 압니다. 사유해 주시고 주님 계시는 곳에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을 깨달아 피조물의 어떤 인간적 생각에 조건이 구비치 안하고 주님과 주의 법도만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요 무신론의 행위 유물주의의 행위를 완전히 회개함으로 무신론 세력과 유물주의의 세력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이 모든 몽둥이가 다 깨트려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이 항상 저희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