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8 23:05
찬송하리로다
1987. 9. 11. 새벽 <금>
본문:에베소서 1장 3절∼14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찬송하리로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그를 찬송하고 또 감사하고 또 기뻐하고 만족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감사하고 기뻐하고 만족하여 찬송을 그치지 않고 찬송을 해야 할 만하다 그말입니다. 참 계속 찬송할 만하고 계속 기뻐할 만하고 기뻐 항상 만족할 만하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고 만족해서 찬송을 계속하기에 충만하고 계속 할 만하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구원을 우리가 계속 새김질하면,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님의 이 구속의 근원과 또 구속하신 그 방편과 또 구속하신 그 결과를 생각하고 또 연구하고, 연구는 성경을 연구하는 지식의 표준을 삼아 가지고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자꾸 성경에게 배워서 연구합니다.
이렇게 연구하면 우리는 점점 하나님에게 대해서 감사치 안할 수 없어 감사함이 계속하는 사람이 되고, 감사가 계속하는 사람이 되고 또 어데서나 어떤 것이 우리의 기쁨을 조금도 해할 수 없는 이런 기쁨, 또 이 피조물의 어떤 것이 우리를 불만케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항상 만족할 수 있는, 또 우리는 쉬지 않고 기뻐 못 견뎌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이 구속의 근원을 생각지 않고 또 구속하신 그 방편을 생각지 않고 또 구속하신 그 결과를 생각지 않는 데에서 가치 없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에 갈급하고 또 소원도 되고 기뻐도 하지 이 구속을 자기가 생각하고 또 배우고 연구해서 이 구속에 대한 지식이 자라가고 이 구속에 대한 지식을 점점 자기가 믿어가고 이 구속에 대한 인도를 순종해 가면 이 외에, 구속 외에 기뻐할 것이 없고, 왜? 그것의 가치도 알고 이 구속도 가치를 알게 되기 때문에 구속 외에 어떤 것으로 기뻐할 것도 없고, 왜? 그와 이 구속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구속으로만 기뻐하는 자 되고 또 이 구속에 대한 모든 소망을 자기가 자꾸 연구해 보니까 이 외에 더 좋은 것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항상 점점 만족하게 되고 기뻐하게 되고 만족하게 되고 또 찬송하게 되고 이러니까 이 일 외에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3장에 보면은 그가 과거에는 세상에 귀중하게 여기던 것이 많았습니다. 로마에 그 시민권이라면은 어데든지 어데를 가도 통할 수 있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우대를 해서 벌로 취급을 하지를 안했습니다. 벌써 시민권이 있으면은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식민지기 때문에 떨고 이렇게 존대를 했습니다.
지금보다 몇십 년 전에 미국 시민권 가졌다면은 온 세계에서 굉장히 우대했습니다. 지금도 미국 시민권 가진 사람은 이북을 자유로 출입할 수 있습니다. 소련도 중공도 자유로 출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우가 그때와 아주 차이가 많이 있게 됐습니다.
로마의 시민권이 이렇게 존귀하기 때문에 그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질라고 애를 썼고 시민권 가진 것을 자랑을 했고 또 이 지식이라 하는 것이 귀중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세계에 제일 높은 지식 수존에 그가 도달할라고 애를 써서 지식을 통달했고 또 그분이 모든 인간의 의지가 강하고 또 자기 행함이 깨끗한 것이 가치인 줄 알았기 때문에 거게 대해서 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으로써는 흠이 없는 그런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이랬는데 그가 다메섹을 가다가 주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이제 이 구속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그런 것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배설물로 여겼다 말은 똥오줌으로 여겼다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똥오줌으로 여기고, 똥오줌은 똥오줌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그 몸에 필요한 영양이 있는 것처럼 이 눈에 보이는 이런 것들, 이런 것들은 다 배설물이요 이 배설물 속에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영광의 이 구원이 안에 있다 하는 그것을 깨닫고 “이제는 이런 것을 내가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 한다. 그리스도가 땅위에 와서 어떤 고난을 당하시고 어떻게 죽으시고 어떻게 권위 있게 살아난 이 비밀의 사실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이 외에는 딴것은 아무것도 탐하는 것이 없다.
이러기 때문에 항상 여게 대해서 나는 달음질하고 어데까지 갔든지 날마다 달음질이다. 뒤에 건 돌아보지 않는다. 이미 내가 회개된 것도 성화된 것도 돌아보지 안하고 내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서 날마다 달음질 친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들도, “찬송하리로다” 우리가 이 그리스도의 구속을 바로 알 대로 다 알 게 아니라 이 구속을 아는데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이것보다 가치가 높은 거게까지만 도달해서 알았다고 하면 땅위에 모든 것은 버려 두고서 이 구속을 향하여서 달음질 안 할 자가 없습니다.
달음질하고 또 연구하니까 더 좋고 더 좋고, 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자기가 다 깨달아서 가르치는 대로 알고 보니까 좋고 또 보니까 또 가르치는 대로 알고 보니까 좋고 나중에 그라니까 성령이 와서 가르치시니까 말씀도 또 보니까 깨달음이 달라지고 또 보니까 깨달음이 달라지고 자꾸 깨달음이 달라지니 주님의 주시는 이 말씀도 비로소 ‘하나님의 지식은 과연 무한한 지식이다.’ 우리에게 삼켜질, 이 세상 지식은 자기가 다 통달하면 자기가 삼켜버리고 자기 안에 있는 지식이지마는 이 지식은 무한히 배워야 할 지식이요, 무한히 알아 나가야 할 지식이요, 무한히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는 지식이요, 한없는 감사와 기쁨과 찬송을 해도 해도 모자라는 이 영원히 가도 가도 모자라는 이런 구속이라는 것을 깨닫고 “찬송하리로다” 하리로다 하는 것은 이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망라한 단어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찬송하리로다” 이래서 우리는 이렇게 큰 구속을 받았지마는 우리들이 이 구속을 어떤 것인가 연구하지 안하고, 연구하는 것은 생각하고, 또 읽고, 깨닫고, 또 그대로 실행에 보고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말에 거하면” 내가 전해 준 이 복음대로 살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네가 성화가 되고, 땅위에 있는 지식은 알면 알수록이 그 사람이 점점 교만해지지 그 사람이 죄를 이기거나 성화되어서, 아는 것도 넓어지지를 못하고 암만 알아봤자, 제가 불교에 참선하는 한국에 제일 크다고 하는 중하고 제가 한번 얘기해 봤는데 그들은 말하는 게 함정 속에 든 사람들입니다. 바깥 세계를 보지를 못해요.
그러나 우리가 신구약 성경으로 연구하고, 신구약 성경 안에 내재한 그 영감의 은혜를 받아서 연구하고, 또 우리가 이렇게 실행함으로 경험하고 체험해서 연구하고 이래 나가면 무한이라. 가면 갈수록이 참 감사하고, 한없이 기쁘고, 한없이 만족하고, 찬송하고, 왜? 참을 보지 못할 때에는 거짓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참을 보면은 거짓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저 끝 없는, 끝 없는 이 소망, 끝 없는 만족, 끝 없는 기쁨, 끝 없는 감사, 끝 없는 찬송, 끝도 없고 끊쳐지지도 변하지도 않는 이런 무한한 이 생명과 평강과 행복 속에서 우리를 살게 하셨지마는 우리가 그 길을 벗어나 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복음을 듣고 이 세상 악령의 유혹에 빠져서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왜? 세상은 전부가 사망으로 내려가는 것이고 복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생명으로 영생으로 나아가는 것이니까 정반대인데 돌아서지 안했기 때문에, 이 회개하지 안했기 때문에, 회개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소망하고 애착으로 향하던 자가 거게서 돌아서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사랑하고 소망하고 달리는 것이 그것이 기본 회개입니다. 이거 안 되면 안 됩니다.
이제는 세상을 향하던 자가 하나님을 향하고 자기로 살던 자가 주로 사는 이 근본 회개가 돼야 되지 이 회개가 되지 안하면 항상 그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마는 외식자요 또 도를 전한다고 하지마는 실은 자기 전하고 세상 것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안하면 우리에게는 어떤 하나님이 되느냐? 창조의 하나님 되고,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 되고, 심판의 하나님 됩니다. 하나님이 공의 가지고 우리 대하면 우리는 정죄받을 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면 자꾸 심판 받을 것밖에 없습니다. 그저 그에게 일차적으로 부패해지고 변동될 것으로 지음받은 것뿐이지요.
그러나 이제 “우리 주” “우리 주” “우리 주” ‘우리 주’가 뭐이 `우리 주'지요? ‘우리’를 뭐라고 배웠지요? ‘우리’가 뭐지요? `우리'가 몇 가지가 합한 `우리'입니까, 손가락으로? 녜, 세 가지 합한 것이 ‘우리’입니다. 우리의 대속의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성도들과 나와 하나된 이것이 ‘우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개체로 나 나 내것이 돼야 좋은 줄 알지마는 내가 되면 사망입니다. ‘우리’가 되기 전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우리'가 되기 전에는 하나님도 우리 아버지는 안 됩니다. ‘우리’가 돼야 아버지가 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또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시험에” 항상 ‘우리’로 이와같이 말한 것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중생된 성도들과 나와의 합한 것이 이것이 이 셋으로 복수 된 것이 ‘우리’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주' 예수님의 이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안이라 말은 우리에 대속하기 전에는 예수라는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그건 신인양성일위를 말합니다. 대속하신 후에 대속받은 자에게 지금 은혜의 역사를 하고 있는 것은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말합니다. 내나 그리스도가 예수님이요 예수님이 그리스도십니다.
그리스도는 신인양성일위의 도성인신하기 전 신성의 제이위를 가리켜서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은 대속을 받은 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중생된 자가 이제는 제사장 선지직 왕직, 하나님의 이거 기업인데. 이 기업을 얻게 하는 그 책임을 진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또 우리의 구원을 완성시킬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시되” 하늘에 속했다 그말은 공간적으로 이 말하는 공간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이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거게 표현이 바로 돼 가지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이라 말은 공간적으로 장소가 그렇다 말이 아니고 가치적으로 지극히 높은 곳이오. 평가적으로 제일 높은 곳이오. 권위적으로 제일 높은 곳이오.
영광적으로 제일 높은 곳이라. 제일 높은 곳.
“하늘에 속한” 그 이상이 없는 그 완전이라는 말이요 영원이라는 말이요 불변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의 본성에 관련된 그 위치를 가리켜 말합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신령한 복이라 말은 무엇을 신령한 복이라고 말하는가? 신령이라는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라” 또 “우리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리라” 신령이라 말은 이 모든 제한, 공간적 제한, 시간적 제한, 종류의 제한, 이 모든 제한의 그 평선을 초월한, 제한을 초월한 무한 영원 완전 그 위치에 있는 것들을 가리켜서 신령한 것이라 말합니다.
우리의 육체의 이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다는 것은 이것이 썩을 것이 썩지 안할 것으로, 죽을 것이 죽지 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더러운 것이 거룩한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이런 것을 이래 초월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을 인해서 성화시켜 주실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 신령한 복, 무한한 복, 무한에 속하고, 영원에 속하고, 완전에 속하고, 불변에 속하고, 영생에 속한 이런 것을 우리에게 복 주시되 하고서 그 밑에 쭉 내리 말씀을 해 놨습니다.
벌써 시간이 삼 분 넘었습니다. 삼십삼분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는 여러분들이 생각합시다. “찬송하리로다” “찬송하리로다” 왜 찬송해? “찬송하리로다” 이는 참으로 깨닫고 깨달으면 감사하고 감사하고 끝 없는 감사, 끝 없는 기쁨, 끝 없는 찬송, 이것이 우리 구원인데 이 썩을 것을 이것을 보고서 그건 연구하지 안하고 안하고 자꾸 생각지 안하기 때문에 마음이 항상 썩은 데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땅위에 이런 것은 다 배설물과 같은 것인데 이 배설물과 같다 그말은 땅위에 이런 것은 내가 이 구원을 이루는 찌끼라. 내 현실 속에는, 현실 속에는 영영한 구원이 들어 있고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 이용되는 이 모든 가견적인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데, 항상 예수 믿는 사람이 똥오줌만 취합니다, 배설물. 똥오줌 이것만 알지, 현실에서 똥오줌과 같은 거 이런 것만 알지 이 현실 속에 똥오줌과 같은 거, 이제 지나가는 거, 없어지는 거, 이 속에 없어지지 안할 거 죽지 안할 거 완전한 거 영원한 거 이것을 현실에서 우리가 받는데, 하나님께서 현실에 줍니다.
내가 현실에 진리와 영감을 배척하지 안하고 진리와 영감대로 내가 행해서 진리와 영감과 하나되면 그 진리가 내게 주고 그 영감이 내게 주는 것은 완전한 참된 것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소욕하지 안하고서 현실 지내가면 배설물 썩어 없어지는 거 그것만 장 취하고 거게만 욕심을 품고 있습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요거 잊어버리면 앞으로 환난 못 면합니다. 지금은 환난의 때입니다. 지금 뭐이 될란지 대단히 위급한 때입니다. 그저 사람들은 몰라서 어서 잘 먹고 살아야 되겠다고서 데모에만 힘쓰는데 그들은 데모에 힘쓰는데 우리는 지금 이 모든 징조를 보고서 앞으로 우리 생명을 바치지 안하면은 신앙 유지하지 못할 이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미리 기도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