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28 23:03
찬송가에 대해서
1987. 12. 29. 새벽 {화}
본문:야고보서 1장 15절∼18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또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영원에 모든 것이 다 이 자존하신 하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땅위에 있는 모든 사이비한 종교들이 다 무책임한 벌소리 또 아주 거짓말 반거짓말, 이러기 때문에 온 이 세상에는 아무리 우리의 육안을 정복해서 우리 눈에 보이고, 또 우리 귀에 들리고, 우리 손에 만져지는 이런 실상을 가지고 증거하면서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무슨 주장을 하든지, 땅위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는 다 거짓말이요 다 속이는 말이요 다 무책임한 말입니다. 말한 그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 이 말들은 다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에게서 나온 하나님의 말씀 신구약 성경, 원본 성경, 원본 성경은 하나님이 기록해 주신 것인데 사람을 통해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통해 기록한 그 성경을 정확 무오하다고 구약은 예수님이, 그때는 구약은 다 돼 가지고 있는 때인데 정확 무오하다고 말씀을 하셨고, 또 신약은 사도들이 영감을 통해서 말씀을 하셨고 정확 무오한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에는 책임지고, 말한 그대로 책임지고 이행을 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뿐이요 또 획 하나도 거짓이 없는 참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그 외에 거는 다 마귀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모두 다 속이는 말이요 또 반거짓말 말입니다. 사람을 다 죽이는 말이요 살리는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말대로 하는 것은 전체가 다 죽는 행위요 죽는 일이요 또 한 사람은 죽습니다.
이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증거하는 그 증거는 그들은 보고, 듣고, 만지고, 인간의 이 체력이 제한돼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것은 그 물질로 더 그것을 도와 가지고 뭐 모든 전자라든지 이런 무슨 물질로 물질을 도와 가지고 그렇게 보여져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도 천 배를 더 키워 가지고 볼 수 있다, 요새는 얼마나 많이 키워서 보는지? 그래 가지고도 봐야 되지 보지 안하면 그 믿을 수 없다 하는 것이 과학 만능이라고 하는 이 세상에 있는 과학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보고 듣고 만진 것이라야 인정할 수 있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만지지 못한 그런 것은 인정할 수가 없다 하는 것이 과학자들입니다.
과학자들은 보는 것만 위주로 하고 있고, 또 모든 유사종교 종교들은 보지 못한 그런 것들을 바라고 믿는다 하는 것으로서 다 주장하는 것이 모든 이종교들인 것입니다.
이것은 다 마귀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멸망시키기 위해서 하는 역사이기 때문에 일면으로서는 ‘너희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접하지 못한 그런 것을 실상으로 있다고 실존이라고 너희들이 생각하느냐? 그런 것은 다 없는 것이다’ 그래 가지고서 사람들을 유혹시켜서 멸망을 시킬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과학자들이, 다는 아니지마는 과학자들이 대개는 이 신앙 세계를 보지를 못합니다. 마귀가 그들은 ‘봤느냐? 그런 건 다 너희들이, 봤느냐, 접했느냐? 보지도 못하고 접촉도 못 한 그런 것은 다 공연한 거짓말이요 다 허무한 것이다.
그런 건 다 없다고 여겨야 된다.’ 하는 것이 그것이 마귀란 놈이 사람의 육으로 접해 가지고서 접할 수 없는 이런 참된 하나님의 말씀인 도리를 부인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 방편을 쓴 것이고, 과학은 이것은 하나님이 한 그 일을 인간이 그것을 말을 하는데 악령이 왜 거기 가담돼 가지고서 그 모든 물리에 대해서 악용하느냐? 하나님이 하신 일을 언제든지 마귀는 그것을 가지고 악용하고 또 제가 주장이 된 것으로서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다 유혹시킵니다.
이래서 과학으로 사람을 유혹시켜서 멸망시키기 위해서 과학을 과학 만능이라 주장을 하고, 하나에 하나 보태서 둘이 되고 쌀하고 물하고 불하고 때면 밥이 되는 그것은 하나님이 이 모든 자연 만물을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간으로서 그것을 이용해서 살도록 그렇게 내놓은 것인데 그것을 그 이치를 간추려 가지고 사람을 유혹시켜서, 하나님이 내신 것인 과학인데 하나님이 내신 과학을 악용을 해 가지고 사람들을 신앙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가 과학을 이용한 것이오.
또 사람들에게 이 신앙심을, 하나님의 도만 믿도록 하는 이 신앙심을 어지럽게 만들기 위해서 모든 사이비한 거짓 종교들을 많이 내놔 가지고 거짓 종교로 인간을 유혹시켜서 구원을 이루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 악령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로 가지고서 이렇게 하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 빠진 것은 이것도 저것도, 과학도 과학으로 사람을 신앙 생활 가지지 못하게 해서 죽이고 또 모든 사이비한 이종교로 가지고서 사람들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멸망을 시키고 난 다음에 그 사이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들을 또 멸망시키기 위해서 이거는 과학도 아니요 종교도 아니요 이거는 하나의 윤리라는, 윤리라는 도덕이라는 이것을 가지고서 사람을 죽일라고 이 세 가지 그물로 훑칠 때에 이 그물에 걸려서 훑쳐 들어가지 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택한 사람들과 하나님이 붙든 사람 그 외에는 다 여게 훑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런 이 세상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데 오늘 타락한 기독교는 어떻게 돼 가지고 있는고 하니 이 모든 과학을 기독교와 혼합시켜서 이 기독교를 과학적인 기독교라 이렇게 과학적인 기독교로 만들라고 혼합을 시키는 이 합리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와 과학을 합리시킬라고 이래 하는 것 있고 또 모든 이종교와 기독교를 또 합리시킬라고 하는 그 역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이 기독교를 도덕과 윤리, 이런 것을 가지고서 기독교와 합리시킬라고 이렇게 해서 기독교는 마구 혼탁해져 가지고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참 예수교는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택해 가지고 생명록에 기록된 사람 이들만이 믿어서 구원을 이루지 그리 안 하고는 그외에는 구원 이루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늘 말하나 그것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은 못 알아듣지마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이래 믿고 그 인정되는 그것은 다 택함을 입은 사람이라 그렇게 우리는 보아야 한다. 그거 왜 그런고 하니 예수님을 자기가 단 한번이라도 순간이라도 자기의 구주로 그 믿어지게 된 그것은 너무 믿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택함을 입고 중생되지 않은 사람은 그런 찰나도 있을 수가 없다. 택함받지 안하고 중생되지 안한 사람은 찰나도 그 믿음이라 하는 것이 생겨질 수가 없다 하는 그면에서 “성령의 감화를 받지 안하고는 아무도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라고 시인할 사람은 없다” 그렇게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러고 또 이렇게 방해물이 많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만 이래 신앙 생활 하는데, 이러기에 이 신앙 생활 하는 것을 각각 종류는 다르지마는 이런 것으로서 신앙 생활 하지 못하게 저런 것으로 하지 못하게, 예를 들면은 과학의 미혹으로, 또 이 모든 사이비한 이종교들의 미혹으로, 또 도덕이나 이런 모든 윤리의 제도의 미혹으로 해 가지고서 온갖 것으로, 뭐 이런 종류만 아니고 수많은 종류로 신앙을 가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 이것이 무엇 때문에냐? 이것이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마귀가 이 일을 했지마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난 다음에는 이 사탄도 다 예수님의 부리는 종이 됐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부리는 종이 됐다가 배신하고 하늘에서 쫓겨내려와 가지고 하늘에서는 정리돼서 쫓겨내려왔지마는 땅에 와 가지고는 인류 시조를 유혹시켜 가지고 범죄케 해서 우주는 저주 아래에 있게 한 것입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의 이 도전으로 사탄은 완전히 정복당했고 승리했기 때문에 지금은 이 세상에 수많은 사탄들이 있지마는 그것들도 다 예수님의 부리는 신이 됐습니다.
그러기에 땅위에 모든 이종교라든지, 과학 만능이라, 과학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다 부인한다. 이렇게 과학을 완전으로서 이렇게 표준을 삼고, 또 수많은 종교는 다 같다는 일치된다는 이런 것을 가지고서 또 유혹을 삼고, 모든 사람들이 다 공통으로 다 따르고 있는 도덕이나 유교나 그런 걸 가지고서 유혹을 시키는 이런 것들, 또 그 외에도 예수 믿지 못하게 하는 온갖 그 방편들이 사람이 천 명이 있으면 뭐 천 가지 있고, 만 명이 있으면 만 가지가 있고, 수없이 이렇게 믿는 일을 방해하는 일들이 많이 있게 되는 이것이 외부적으로 보면은 하나님을 대항함으로서 생겨진 것으로 이렇게 대적이 돼 가지고 생겨진 것으로 이렇게 보이지마는 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그 택한 자들을 구별해서 구원하기 위해서 그런 모든 장애물들을 다 두신 것입니다.
이래서 쉽게 말하면은 마치 타작마당에다가 알곡과 쭉정이가 있는데 거게 키를 가지고서 이렇게 까불면 알곡은 쳐지고 쭉정이는 다 날아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 온갖 방해물들을 다 하나님이 가득 차게 이렇게 시설을 해 놓은 것은 위로부터 난 자 그것은 받은 것만치 없어지지 안하고 그런 것들에게 피해를 받지 않는 이런 모든 피조물의 방해를 다 능히 이길 수 있는 능가할 수 있는 그런 실력의 그 신앙으로 기르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혹 생각할 때에 저 사람은 저런 형편을 당했으니 신앙 생활 못 하겠다, 또 저 사람은 낙심하겠다. 별별 그런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는 그런 신앙을 가지고서 안 할 염려와 그런 것을 많이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많은 천태만상의 그 모든 시험들과 방해물들이 있지마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 그 종류대로 그 양대로의 것은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로 연단하듯이 믿음을 연단한다 그말은, 불로 연단하듯이 믿음을 연단한다 그말은 아무리 연단해도 금은 금으로 남아서, 금덩이가 주먹덩이만치 있어도 그것을 불로 연단하면은 처음에는 차차 차차 금덩이에 잡철이 타고 타고 해 가지고서 마지막에는 많든지 적든지 순금만 남고 나머지기는 타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 모든 은혜는 남아 있지마는 나머지기는 다 없어지게 된다 그런 것을 가리켜서 믿음을 연단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혹 생각하기를 저 사람은 나의 어떤 노력으로서 어떻게 돼 가지고서 그 믿음의 존재가 생겨졌다 이렇게 하지마는 마지막에 우리가 가서 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모두 “면류관을 그 발 아래 던졌다” 그말은 던졌다 말은 가까이 가지 못하니까 자기 것은, 안 간 것은 모든 털끝만한 승리도 자기의 힘으로 자기 승리는 아니고 전부가 다 주님이 승리케 하셔서 승리했다는 것을 그때는 다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도 하나님의 건설면에서 하나님이 건설하실라고 지금 사람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신앙을 강령적으로 잡는 데는 땅위에는 다 신구약 성경 외에는 바른 말 참말이 없다.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는 참말이 하나도 없다.
또 세상에 인간에게 말하고 있는 지식이 많고 지혜가 많지마는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는 참된 지식도 지혜도 없다 하는 요것을 믿는 사람이 백프로 믿는 사람도 있고, 예를 들면은 뭐 팔십프로 믿는 사람도 있고, 일프로 믿는 사람도 있고, 일프로를 믿어도 믿는 그것은 위로부터 믿게 해 주셔서 믿는 것이지 자기에게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어떤 장점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서 스스로 된 것처럼 교만할 수는 없고 또 아무리 단점이 있어도 그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 제한돼서 그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지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인 줄을 알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는 신앙에 강령적으로 믿을 것은 땅위에는 하나님의 지식 외에는 참된 지식이 없다. 또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는 참말이 하나도 없다 요 두 가지를 믿어야 되고, 땅위에는 참말도 없다, 또 참된 지식도 없다.
옳은 참된 지식,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내가 거기다가 나를 맡겨 놓고 따라갈 만한 지식이 없고 지혜가 하나도 없다. 그것을 우리가 지혜는 배암같이 한다고 그것 다 배암의 지식과 지혜인데 그것을 땅위에서 이용은 하지마는 그 지식이 참되다고 그것을 장구하고 영원한 것이라고 인정해서 따라갈 지식이나 따라갈 지혜는 하나도 없다. 전부 거짓 지식 거짓말뿐이다. 신구약 성경 말씀만 참된 지식이요 참된 지혜다 요것을 믿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믿는 것만치 그에게 많든지 적든지 생명이 쌓여지지 그 외에는 그에게 생명은 없습니다.
믿는 사람이 돼야 되고 또 하나를 믿을 것은 뭘 믿느냐? 믿을 것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권의 그 섭리다, 나타나는 것은 전부 혼자 당신 한 분의 주권의 그 역사로 되어지는 것이지 당신이 주장하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주권의 이 섭리를 또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주권의 섭리를 확실히 믿어야 되고 또 하나님의 주권의 섭리를 확실히 믿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영원 전에 예정해 놓으시고 그 예정해 놓으신 그 순서대로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성취하고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예정되지 안한 일은 하나도 없다. 전부 예정된 일들이다. 아무리 놀랄 일도 예정된 일들이요, 아무리 뭐 이치에 합당치 않는 기이한 일들도 다 예정된 일들이다.
그러면 예정된 일들인데 그 예정을 하나님이 하셨고 그 예정한 대로 이루어지는 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하나님이 예정한 그것을 예정하신 하나님이 그 일을 하나 하나 성취를 시키신다.
이것을 믿어야 되고, 그러면 예정이라든지 창조로 이렇게 섭리로 성취하시는 이 일은 뭣 때문에냐? 하나님께서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을 이루기 때문에다. 목적 때문에다. 그 목적이 뭐이냐? 그 목적이 곧 피조물에게 건너온 것이 그것이 예택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당신이 우주 속에서 당신 혼자 하신 것이요 당신 그 외에 피조물과의 관계된 것은 그것은 예택이다.
예택은 그러면 있을 때에 택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이 목적을 정하시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목적으로 곧 예택을 하셨고, 예택을 성취하기 위해서 예정을 하셨고, 또 창조를 하셨고 하나님이 섭리하신다 하는 이것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어야 합니다.
이런 것은 사람들이 알라고 생각지 안하고 너무 어두워져서 그러나, 우리의 구원에 대한 지식은 첫째 완전자 자존자 한 분이 계셨다는 이 하나님의 자존하심과 또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자존 유일하신 한 분뿐이신 하나님, 모든 것의 원인이 되신 하나님 이 하나님에게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져야 되고, 그다음에는 또 예택에 대해서 확고한 신앙을 가져야 되고, 하나님의 주권적 예택이요 주권적 예정이요 주권적 창조요 주권적 섭리라, 이래서 크고 작은 것이 다 주권적 섭리라.
이런데 이 일을 연단하기 위해서 이 일을 연단해서 이것을 때묻지 안하고 이것을 깨끗하게 연단하기 위해서 그 모든 부와 같은 방해물들을 많이 냈다. 이 방해물을 많이 내 가지고서 하나님이 하신 것 외에는 다 타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은 다 타고, 하나님의 예정된 그 구원만 되지 예정 아닌 그런 것은 다 타고, 이래서 세상에는 지식도 말도 다 참 것이 없고 거짓부리다. 이래서 신구약 성경 외에는 다 거짓말이요 거짓 지식이요 죽이는 지식이요 다 그것은 멸망케 하기 위해서 배암에게서 나온 것이다.
또 이렇게 과학이나 지식이나 지혜 외에 있는 그런 그 중간 사이에 끼인 것들도 이것은 다 하나의 불이다. 참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온 이 구원의 요소를 이것을 태우는 것으로 왔으나 태우지 못하고 구원의 요소인데 사이비한 것들만 다 태워버리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요소만 남아 있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세상에 모든 기독교를 반대하고 있는 그런 존재들이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강령적인 신앙을 가지지 아니한 사람들은, 그것은 다 우리에게 그런 요소가 있는데 그런 요소는 다 불탈 요소들이요 다 그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안한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런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안한 것들이 많이 있는 이것을 깨닫고 저것은, 그만 크게 가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접해지는 것 있고 또 마귀로 말미암아 접해지는 것 있는데 마귀로 말미암아 접해지는 그것은 우리를 해할라고 있는 게 아니라 마귀로 말미암아 접해지는 그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을 더 성결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과 마귀로 말미암은 이것을 잘못하면 오해해 가지고 잘못 잡기 쉬울 때에 우리에게 나타내 줍니다. 잘못 잡기 쉬울 때에 아, 이것은 아니로구나 해서 그것을 버릴 것을 버리고 가질 것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을 정평하기 위해서, 행위를 정평하기 위해서, 우리의 소유를 정평하기 위해서 그런 것들이 나타나고 우리 자체를 연마하고 연단해서 잡탱이로 자기가 되어져 있는 잡탱이 자기를 태워서 순진한 자기를 만들기 위해서 환경 주위에 그런 것들이 다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여게 말씀하시기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이분은 하는 일이 있다 하다가 아니라, 옳다 하다가 거짓이라 그런 게 없습니다. 이분은 변함이 없습니다.
영원 전부터 이분은 변하지 않는데 모든 변하는 것들도 이분이 많이 만들어 가지고, 다 만들어 가지고 이 모든 것은 변하는 것들이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있는 것들은 죽지 않는 것이 있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불완전한 것들이 있는 것은 완전한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지었지마는 하나님에게 반대되는 모든 것을 지은 것은 하나님만이 참되다는 것을 당신이 택한 자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 그런 것을 실험적으로 한 것이지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이 말은 무슨 움직이는 그런 변해지는 그런 그림자도 없다. 변해지는 흔적도 없고 변해지는 것은 전혀 없고 항상 변치 않는 그분이십니다.
18절에 “그가 그 조물 중에” 그가 조물 중에라 하는 것은 영계에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있고 우주에도 지으신 것이 있는데 조물이라 하는 것은 그분 외에 것은 다 조물입니다. 자존하신 하나님 외에 것은 다 조물입니다. 자존하신 하나님 외에 거는 다 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지었다 말이오.
“그가 그 조물 중에” 조물 중에라는 영계에 조물들이 있고 이 물질계에 조물들이 있고 조물들이 있는데 영계나 물질계나 모든 조물들, 조물들이라면 하나님 외에 것은 다 조물들입니다.
“조물 중에 우리로” 우리로 하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목적이요 곧 하나님의 예택 그리스도 안에 예택이요 이러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걸 말합니다. 우리라 하는 건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 안에는 어떤 게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하나님의 예택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서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우리로 한” 우리로 한 개의 한, 우리로 한 개의 한, 이러면 한 또 둘이 있습니다. 둘이 있는데 둘 그거는 알 필요가 없는 것이고, “한 첫 열매가” 한 첫 열매, 그러면 한 첫 열매라 말은 결실이라 말인데, 열매라 말은 결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무슨, 이거는 곡식으로 비유한 것인데 그것이 움이 돋고 인제 자라 가지고서 거게서 꽃이 피고 이래 가지고 마지막에는 그것이 열매맺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해도 ‘그 결과가 어찌 됐느냐’ 하는 것은 그 일해 놓은 마지막 결과가 어찌 됐느냐, 그 결실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이 모든 역사 가운데에 “한 첫 열매로” 한 첫 열매로, 제일호의 결실로 그말입니다. 제일호 결실로.
당신이 하시는 일은 광범위하신데 당신이 하시는 첫 완성으로 그말이오. “한 첫 열매로” 한 첫 완성으로, 결실로, 완성으로 “첫 열매로”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되게 하시려고, “첫 열매” 첫 “한 첫 열매” 한 첫 열매 “한 첫” 뭐라 했습니까? 결실, 다른 말로는? 완성, 완공. 완성, 완공.
“한 첫 열매로” 열매라 말은 완공이라 말이요, 이거는 모든 것 하시는데 제일호의 완성으로 완공으로 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첫이 있고 그다음에 모든 부속들이 있습니다.
제일호의 완공이 있고 그 완공을 위해서 또 따른 완공들이 있으니 그것이 뭐이냐? 앞으로 천 년 왕국이라든지 무궁세계라든지 그런 것은 다 무궁세계나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모든 것들이 이 성경이 약간은 말해 놨지마는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이 조성할란지 그거는 모릅니다. 모르는데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목적을 정해 놓으시고 첫 완공으로 해 놓은 그 완공이 있는데 완공된 그것을 위해서 수많은 것들을 다 조성할 것이고 수많은 것들을 다 앞으로 구비할 것입니다. 이래서 여게 “한” 하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요. 뜻을 아주 알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로” 우리라는 것은 교회를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목적, 선택 그것이 교회인데 “우리로” 교회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려고” 한 첫 열매, “한 첫 열매” 결실, 결과. 완성, 완공, 준공. 완성, 완료.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그러면 이것도 또 왜 이 말 하느냐 하면 혹 하다 보면 다른 것이 부합됐을까 싶어서 우리에게 이렇게 구별해 준 것입니다 “자기의 뜻을 좇아” 그러면 무슨 다른 어떤 수많은 피조물들이 다 거게 동반하고 다 움직이고 있으니까 이것이 다른 무엇의 의사와,ㅡ사람들은 전부 합의하고 다 합의, 의논을 맞춰 합의해야 되고 또 결의해야 되고 또 협동해야 되고 이러니까 이 기독교의 구원도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거요. 그런 미혹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뜻을 좇아” “자기의 뜻을 좇아” 이러기에 항상 이것을 밝혀서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자기 뜻을 좇아” 이것이 어데 합당합니까? 예정에 일치된 말입니까, 창조에 일치된 말입니까, 주권에 일치된 말입니까, 이 말은 어데 일치가 돼 가지고 있는 말입니까? 여게 ○○씨 말해 봐. 그래. 이 좀, 이런 말은 뭐 이건 안 믿는 사람들도 알 수 있는데, 이러니까 하나님의 예정에 속한 것도 아니고 일치되는 것도 아니고 창조에 일치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성을 여기서 지금 똑똑히 여기도 나타내고 있다 말이오.
“자기의 뜻을 좇아” 그러면 뭐 누구의 뜻에 조금이라도 가감이나 가담이나 그런 것 하나도 없고 단독 당신의 주권으로 지금 한다 그말이오.
“자기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진리의 말씀은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보혜사는 뭐라 했습니까? 무슨 영이라 했습니까? 보혜사는 무슨 영이라 했소? 진리의 영이라 했어, 진리의 영. 이러니까 진리의 말씀이라 말은 곧 진리로 성령으로 그말이오. 진리로 성령으로, 진리로 성령으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를 해산하였느니라, 우리를 이제 생산하였느니라, 우리를, 뭐라 합니까? 뭐꼬? 산부인과 가면 뭐 분만이라 합니까? 아이 쌈가름이라 하는 그것 뭐야, 분만? 분만. 분만하였느니라 그말이오. 분만하였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느니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또 그라면은 주님은 우리의 형이 되고, 내나 신성에 가 가지고는 삼위일체의 신성이지마는 우리와 관계된 데에는 아버지라 형이라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이래서, 첫 열매라 말은 형이라 말이오.
이래서 우리를 낳기를 뭘로 낳았느냐? 우리를 낳은 것은 우리를 낳은 것은 영육이, 영육이 존재된 것은 영육이 존재된 것은 이것은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존재됐고 존재된 이것이 완전히 죽어서 멸망받은 것을, 죽어서 멸망받은 것을 멸망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가지고 영원히 죽지 않는 완전자로 만들어서 완전한 그 행복과 생명과 평강으로 이 완전자가 되도록 낳은 건 둘째 아담이 낳았읍니다. 둘째 아담이 낳았어.
첫째 아담이 낳은 것은 멸망할 존재로 낳았고, 멸망할 존재로 낳았고, 이런데 이거 멸망이 되고 말았어. 멸망이 된 것은 이거는 다시 두번째 아담이 영원히 멸망되지 아니할 존재로 우리를 낳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낳았는데 우리를 실지로 낳았다 말이오. 우리를 무슨, 하나님을 아버지로 이렇게 뭐 정했으니까, 마치 자기 의붓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러라 이래 가지고 아버지라고 부르고 또 이래 뭐 정한 그것 모양으로 그리 된 게 아니고 실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낳았다는 것을 내가 증거하기 위해서 오늘 아침에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낳았는데 변하는 나를 낳은 것은 첫째 아담에게, 우리 영이나 마음이나 고기덩어리를 이걸 누가 낳았느냐 하면은 첫째 아담에게서 나왔습니다. 첫째 아담에게 쭉쭉 내려와 가지고 다시 말하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로 말미암아 내 마음 고기덩어리 영 이것은 낳았습니다.
이것은 낳았는데 이것이, 낳았는데 존재케는 됐는데, 존재케는 됐는데 존재케 된 것이 영원한 멸망 가운데 멸망의 존재로 존재케 된 우리들입니다. 멸망케 된, 영원히 멸망하는 존재가 된 우리들을 영원히 멸망하지 안하고 완전 영생 무궁의 평강을 가질 수 있는 이자로 다시 낳은 것, 이자로 다시, 죽을 것을 죽지 아니할 것으로, 썩을 것을 썩지 아니할 것으로 완전자로 다시 낳은 것은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를 실지로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다” 이 말은, 곧 진리의 말씀은 또 뭐이 돼 있느냐?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도성인신하셔 가지고 사활하셔 가지고 모든 구속의 역사를 이룬 이것이 우리에게 나타난 진리입니다.
우리에게 나타난 신구약 성경은 진리인데 신구약 성경은 뭘 가르치고 있습니까? 신구약 성경의 알맹이가 뭐입니까? 신구약 성경의 중심이 뭐이요? 신구약 성경의 알맹이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게 다 인제 설교록에 다 나가요. 세계 학자들이 다 이거 장차 봐요. 보니까 그렇게 허탄한 소리 하면 뒤에 가서 다 정죄받아. 이러니까 다 이것 본 사람들은 설교록을 마구 사 갈라고 이렇게 모두 이래 하고 있는데 이 진영에 있는 이것들은 모르기 때문에 이 설교록을 그뭐 무시하고 지금 저거 저 켸켸묵은 것 배운 그것 가지고 자꾸 자랑하고 있어.
우리를 지금 멸망치 아니할 자로 생산한 이는 어떤 것이 생산했느냐? 이것은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낳았으면 진리의 말씀이 뭐인데? 진리 말씀 안에 뭐 들었는데? 진리 말씀이 뭐입니까? 진리의 말씀을 똘똘 뭉치면 진리의 말씀이 뭐입니까? 진리의 말씀을 똘똘 뭉치면 영감입니다.
알겠습니까? 진리의 말씀을 똘똘 뭉치면 영감이라. 이 영감을 똘똘 뭉치면 뭐라? 예수님의 구속이라. 이러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다말은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를 낳았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호칭적으로 이름으로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고 주님이 우리의 구주의 형으로도 표현한 형으로, 형으로 하는 것은 주님의 신성은 아버지 편에 속했지마는 주님의 인성은 우리의 형님 편에 속했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형님 편에 속한 건 우리와 동질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피공로로 생산된 것이고, 영감으로 생산된 것이고, 진리로 생산된 것이 마치 아이는 부모의, 아버지의 그 종자와 어머니의 피 살 그 모든 요소들을 다 뽑아 가지고서, 처음에는 아버지의 눈 코 뭐 입 요소가 가장 작은, 작은 존재 종자로 그런 모든 구비한 종자로 나온 그 종자가 또 어머니의 구비한 요소로 가지고서 거게다가 그것을 양육시키고 자꾸 배양을 시켜 가지고서 이와 같이 돼 나온 것처럼, 그러면 사람을 어찌 낳았느냐? 부정모혈로 이제 이 아이가 만들어져 나왔다. 이 아이가 만들어져 나왔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라 어머니라 이와같이 말한 것처럼 우리들은 부정모혈로 낳은 게 아니라 피와 성령과 진리로 만들어져 나왔다 하는 것을 여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말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된 것이 말로써 아버지라 이렇게 불러서 그리 된 것이 아니고 이래 또 예수님을 우리의 형이라고 부른 것, 예수님이 우리의 형입니다. 형인데, 예수님이 우리 형이라 말은, 형이요 예수님이 우리 하나님 아니오. 알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 하나님이신 우리 형입니다. 우리 하나님이라 말은 예수님의 신성이 우리 하나님이요, 그는 피조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성은 우리의 형이요 피조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내 주여 쉬떠나지 마시고’ 뭐라 했노? 그 위에 뭐라 했어? 그 위에 뭐 찬송에 뭐라 했지? 뭘 우리의 주님 말한 것 있지 않아? 그 찬송이 몇 장이라? ‘예수 예수 내 주여’ 그러나? 뭘 누구를 가까이 오라 했어? 그위에 그래 놨어? ‘예수 예수 내 주여 그랬어? 한번 찾아 봐. 몇 장이고? 98? 어데고? 후렴에. ‘예수 예수 내 주여 곧 가까이 오셔서 쉬떠나지 맙시고 부형같이 됩소서’ 이래 놨네. 예수님이 부형같이 돼 달라 그말이지? 그러니까 ‘부형같이 됩소서’ 이말은 이 말이 잘못하면 부형같이 돼 달라 하니까 부형이 아니라 말이요 부형이라 말이요? 부형 아니라 말이지. 요걸 바로 고칠라면 말이지요, ‘부형같이 됩소서’ 부형같이 하면 부형 아니라 말인데 또 이거 ‘부형되어 줍소서’ 이라면 또 아직까지 부형이 지금 될 것 같으니까, 부형이 이미 돼 가지고 있어. 부형이 돼 가지고 있다 말이오. 부형이 돼 가지고 있는데 이거는 부득이 ‘부형같이 됩소서’ 요거 아주 잘됐어요. 돼 가지고 있는데 부형같이 됩소서는 거는 부형인데 이 부형을 부형인 것을 인정하지 안하기 때문에 부형으로 인정하게 해 주옵소서 이런 것이니까 ‘부형같이 됩소서’ 인제 좀 궁색하지마는 할라면은 ‘부형임을 믿게 하옵소서’ 이라면 좋기는 좋을 거라.
‘예수 예수 내 주여 곧 가까이 오셔서 쉬떠나지 마시고’ 이건 참 어렵네.
‘부형임을 믿게 합소서’ 이라면 또 안 믿으니까 또 믿으라 하는 게 돼 버리니까 그렇지 우리가 고거 믿기는 믿어야 되는데, 이러니까 ‘부형같이 됩소서’ 이게 잘 됐어, 부형같이.
이런데 잘못하면 부형이 아닌데 이름으로 호칭적으로 그저 부형이라 한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말이오. 그런 게 아니라. 실지로 부형이 돼 가지고 있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어. 영감으로 우리를 낳았어. 부정모혈로 우리를 낳은 그것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를 낳은 이것은 영생해.
그러기 때문에 첫째 아담으로 낳은 이것이 둘째 아담으로 이래 다시 낳았음으로 영생해. 영생하는 것은 둘째 아담으로 낳은 거라. 첫째 아담으로 낳은 이것은 멸망 가운데 있는 이것을 둘째 아담이 다시 우리를 재제조했어. 새로 다시 재생시켰어. 이것을, 그래서 재생했다, 중생했다 하는 건 새로 났다 그말이오. 중생이라 말은 거듭 났다 말이오. 거듭 난, 무거울 중자는 거듭 중자라 합니다, 거듭 중자. 중생했다 말은 처음에는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부정모혈로 우리를 낳았고 이제 두번째, 두번째 우리를 낳은 것은 곧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를 두번째 낳았다. 실지로 낳아서 우리가 실지의 하나님의 자녀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의심할 것 우리가 의심하지 안하고 실지로, 자기 아버지 어머니 이래 낳은 것도 뭐 의심하지 어짤 것이요? 옆에 사람이 있다가, 제가 낳은 걸 봤습니까 어떻습니까? 누가 자기 아버지 어머니를 옆에 사람이 너거 아버지 어머니 아니다 이래 하면 누가 뭘 증명될 거요, 증명되기를? 증거되는 것은 ‘나를 길렀고, 나를 젖을 먹였고, 나를 내나 이래 했기 때문에 내가 그리 아버지 어머니인 줄 안다.’ 제가 아는 인식된 그것밖에 모르는 거라.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에 아버지가 된 이것은 그분이 나에게 섭리하는 것, 내가 밤중에도 기도하면 들으시지 아무것도 무의무탁되는 아무것도 없는 데도 기도하면 그분이 와 가지고 나를 도와 줬지, 순전히 당신이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도우시고 함께 하시고 한 것을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하니까 이분이 분명히 내게 아버지라 그말이오. 내가 자꾸 영감과 진리와 예수님의 피공로로 사니까 자꾸 자라가고 이걸 떠나니까 나는 그만 죽는다 말이오. 그러면 이 세상에는 나를 죽이는 역사가 있고 나를 살려 구원하는 역사가 있다, 둘이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고 체험해서 안다 말이오. 그러기에 예수 믿는 거는 경험과 체험이 없으면 예수 바로 믿는 것 아니오. 체험과 경험이 없으면 안 돼요.
이래서 여기 ‘부형같이 됩소서’ 이걸 떡 통일찬송에는 해 놓기를 뭐라고 해 놨는가 하면은 ‘길이 함께 하옵소서’ 이래 놨어, 길이 함께 합소서. 길이 함께 하자 말과 이거 부형같이 된다는 말이 이거 하나는 살았고, 부형같이 된다는 건 살았고 길이 함께 한다는 이거는 죽었는데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이것 때문에 지금 뭐 시비가 나서 ‘이 찬송 잘못했다, 통일 찬송이 좋은데 공연히 이 찬송을 고쳤다.’ 이래 가지고 시비가 났다 하기 때문에 내가 그래서 어제 아침에 내가 말했는가? 아, 권찰회서 말했어. 새로 우리가 만든 찬송이 이백일 곡인데 여게서 일곡으로부터 오십곡까지는 ○○○선생, 또 오십일곡으로부터 백곡까지는 ○○○선생, 그렇지? ○○○선생. 또 백일곡으로 백오십곡까지는 또 ○○○, ○○○ 왔어, 손 들어 봐. 또 ○○○선생, 또 이제 백오십일곡부터 이백일까지는 ○○○선생, ○○○선생 손 들어 봐. 손 들어 봐.
요새 또 귀신에게 붙들렸네. 귀신 노릇 잘 하는 거는 잘해. 금방 성령 됐다가 금방 귀신 됐다가, 귀신 그놈에게 안 붙들려야 됩니다. 그래야 능력이 올라가고 성공이 되지 안 돼. 오늘 아침에 뭐 돌아다니다가 지금 새벽에 나오지도 안했네.
이래서 그분들은 통일 찬송가와 또 우리가 만든 이 지금 편집한 것, 우리가 만든 거는 아닌데 묶어 놨지요. 우리가 묶어 놓은 이 찬송가와 가사가 다른 것을 요것을 빼요. 거게는 통일에는 가사를 어떻게 해 놨고 우리는 어떻게 해 놨다 하는 그것을 하나씩 낱낱이 그것 대조를 해 가지고서 요번에 교역자회에 오면은 그것을 대조해서 그 사람들에 알려 줘야 돼.
이 사실을 지금 저희들이 알면 이 참 놀랄 만치 이 가치 있고 참 옳은 건데 이 순 마귀들이 인본주의로 자꾸 이래 가지고 찬송가를 들이 고쳐서 이래 사람을 죽일라고 하기 때문에 그래 우리가 이 찬송가를 이래 만든 거야.
이래 만들기를 이와 같이 힘이 들었지 우리가 뭐 여게 만들어서 품을 많이 들여 가지고 돈벌이 하면 하지마는 이거 지금 얼마입니까? 오백 원? 오백 원이지? 오백 원인데 우리가 이거 사백오십 원인데 오백 원 이거는 다른 게 아니고 이거 사람들이 무곡 찬송은 몇이 안 하는데 그거는 하니까 그거 이천원 치여. 한 권에 무곡찬송은 이천 원 치여. 이천 원 치이는데 그것도 그것 더 많이 만들면 안 될 것이고 이러니까 그걸 오백 원으로 할라 하니까 여게서 사백오십 원인데 오십 원을 보태 가지고서 그걸 끌어내려 가지고서 오백 원으로 그래 한 거라. 이러니까 그 수고한 사람들은 돈 일전 한 푼도 못 줬어요. 그렇게 얼마 동안이나 밤잠 못 자고 이런데, 그것 뭐 그때 배는 더러 사다 줬고 또 빵은 더러 사다 줬지마는 돈 이라고는 품삯은 일전 한 푼도 준 게 없어.
이래 가지고 다 이거 하나님의 이 진리가 다 뭉캐져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래 놨는데 다른 교역자는 잘 수락하는데 서울에 있는 모든 박사 교역자들은 다 이것 다 부인하는 거라. 다 이것 전부 서울에 있는 거기는 다 전부 박사가 아니라도 학사는 다 돼 가지고 있어. 다 대학 졸업자들이라. 대학 졸업한 사람들은 다 이것 다 부인해요.
이걸 부인해 가지고, 시비가 나서 저먼저 말하기를 ‘부형같이 되면 그게 뭐이 좋으냐? 길이 함께 합소서 그게 좋지. 부형 그까짓 것 오늘 죽을지 내일죽을지 아는가?’ 이래 말해. 여게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 부형입니까 영생하는 부형입니까? 영생하는 부형이라. 우리를 영원히 낳은 영생하도록 낳은 아버지라.
그런데 이 부형이라 하는 것 믿지 못하기 때문에 부형을 자꾸 인정해서 부형같이 됩소서 자꾸 부형이라 자꾸 말하는 것은 더 인정하고 믿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이 깊은 뜻을 저거들이 알 턱이 없는 거라. 몰라.
그래 가지고 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이러니까 그래 그렇다. 그러니까 부형이 더 좋다.’ 이렇게 말했더니마는 그래 그 목사님이 이제 알았다고. 이제 알았으니까 이제는 가 가지고 교회 가 가지고 큰소리 하겠다고 이랬는데 또 큰소리 하다가 또 아마 또 족쳐진 모양이라. 이랬는데 또 서울에 가서 또 말하더래요. 가 가지고서 이거 누구한테 ‘이 부형같이 됐다 하는데 이거 이게 옳은가 저게 옳은가?’ 또 옆에 사람한테 한번 묻더래요. 묻는 거는 아직까지 확신이 없어서 그런 거라, 확신이 없어서.
이번에는 왜 하느냐? 그걸 인제 그래 놓으면은 이번에 교역자들 오면 하나 하나 그걸 분류해서 다 이걸 해석을 해서 이거 자꾸 우리 해 놓은 이게 옳고, 이것이 과거에 찬송입니다. 찬송가 지은 사람들이 이래 지었어. 이래 지었는데 자꾸 이 마귀들이 유행을 시켜 가지고 자꾸 유행시켜서 자, 신편 찬송이 새찬송 됐나? 합동됐나? 합동됐지 또 합동찬송이 새찬송됐지 새찬송이 또 이렇게 또 통일찬송 됐지, 그런데 그중에 보니까 신편 찬송이 제일 정확하고 그다음에는 새찬송이 조금 낫고, 통일찬송은 이거 엉망이고. 이 통일이 내나, 이 통일 좋다고 남북 통일 통일 하지만 이거 우리 백성들이 다 짠대기도 모르고 지금 공연히 남 들으라고 하는 것이지 남북 통일 통일 이래 쌓고 있지마는 통일되면 그것은 나중에 공산주의와 이거 뭐 화합해 가지고 이거 야단나는 것입니다.
이래 놓으니까 뭐이든지 통일이라, 뭐. 이러기에 전부 통일이라. 종교 통일이라, 뭐. 기독교 그거 종교는 모두 통일하자, 종교 통일. 종교 통일. 그리 되면 다 죽어요. 그거 주님의, 통일 다 되면 주님 재림하십니다. 그게 성경 어데 있어요? 통일 다 되면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것이 성경 어데 있어? 이래 놓으니까 다 탈이라. 어데 있어? 그래, 일곱 머리 열 뿔이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우게 되면은 그때가 마지막이라. 열 뿔을 뭐라고 말했어? 뭐라고 해석 잡고 있어? 뭐라고 해석했지? 모든 존재들의 힘이 전부 똘똘 뭉쳐 단합 단일화된다 말이오. 통일된다 말이오. 그걸 말해요.
이러니까 이래서 얼마나 지금 이 찬송가 가지고서, 찬송가가 이 성경이 아닌데도 제이 성경으로 사람들에게 효력을 주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찬송가가 자꾸 이거 그래 놓으니까 찬송가면 교리로 알고 진리로 알기 때문에 이 찬송가를 자꾸, ‘찬송가는 뭐 성경이 아니기 때문에 변해 나가도 되지 않는가? 이러니까 얼마든지 변해 나갈 수 있지 않는가?’ 이라는데 이 찬송가를 사람들은 보기를 성경 다음으로는 인정을 하고 있거든. 이러니까 이 찬송가 자꾸 변해지는 것은 이 교리가 변해져 신조가 변해져 교회가 변해져 나가는 것이요 성경에 변해져 나가는 건데 이것을 학박사들이 전부 요새 전부 해 놓은 거라 말이오. 저주 많이 받고 인제 심판 많이 받습니다. 이 찬송가 이거 통일찬송 이것도 다 좋다 해.
그거는 왜? 인본은 다 좋지. 저거에 맞거든.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여게서 배운 것 가면 헛일이오. 왜? 가 보면 딴거니까 나중에 그만 물들면 그만, 벌써 이 진리가 흐미해지고, 암만 총공회 와도 총공회 깨달은 복음과 이제까지 종전에 깨달은 복음이 이것이 거게 없던 것이 새로 깨달아졌다 하는 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그 사람은 암만 이 진영에 다녀봤자 그거는 다 쭉덩이입니다. 언제 날아갈란지 몰라요.
이번에 인제 공부하러 가면 자꾸 자주 와. 봐, 그 부근에 이쪽 진영 교회 가든지 그래도 그래 가. 가 가지고 나가면 자꾸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갈 나무 없다고서 자꾸 인본주의로 자꾸 말하면 그만 거게 물들어 가지고 그만 그리 가버려.
그래 이 찬송가 이거 한 것이 하나님이 영감으로 했어. 얼마나 하나님이 원하시고 이래서 오랫 동안 이걸 참 자꾸 이 속화시켜 나가는 것을 이와 같이 미워서 애를 쓰다가 이 찬송이 된 거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