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주님을 대접하는 법

 

1984. 10. 29. 월새벽

 

본문 : 창세기 521절-24절 에녹은 육십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안하고 산 채로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것과 엘리야를 하나님께서 산 그대로 데려가신 이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성경의 난해절이 되어 있고 또 큰 유혹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에녹과 엘리야와 같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산 채로 승천할 수 있는 그런 길이 있다 이렇게들 말해 가지고 유혹 시키는 그런, 잘못된 주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어쩌든지 죽지 안하고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으로 끌려 올라간다 하는 이것을 잘못 깨닫고 이 에녹과 같이 엘리야와 같이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환난 직전에. 칠 년대환난, 마지막 환난 직전에 환난을 보지 안하고 산 채로 그대로 가는 그런 구원이 있다 말해 가지고, 사람들,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일생 동안 종 노릇 하는 그런 자들에게 이 말로 유혹을 시키니까 좋아서. 다른 성구에 대한 해석은 틀렸으나 이것이 좋다 해 가지고 끌려가는 그런 일들이 많습니다.

 

○○○파가 그래 가지고 유혹을 많이 받았고, ○○○파도 그래 가지고 유혹 받았으나 그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이라 모든 교계의 여론들과 교리들을 보고 '아무래도 이것까지 해서는 안 되겠다'해서 반포는 안 했어도 그런 것입니다.

 

○○교도 그러하고 ○○○○○이라는 것도 그러하고. 그 외에 장로교 교인들.

 

목사 중에도 이렇게 이 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심히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잘못된 삐뚤어진 교리입니다.

 

성경 다른데 보면 첫째 부활이라 생명의 부활이라 이래서, 이 부활은 예수님이 기적을 행해서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 사람들은 다시 죽었고 부활한 후에 죽지 안한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예수님만이 부활 후에 죽지 안하신 그런 영생하는 부활을 가졌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가,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할 때에 무덤이 열리고 무덤 속에 자던 성인들이 나왔으나 그 사람들은 승천하지 안하고 도로 무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기에, 영생하는 부활은 예수님이 첫째로 부활을 하셨고. 그 후에 주님이 부활에 대해서 증거하시기를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라 그렇게 구별해서 말씀하셨고. 또 첫째 부활이라, 그 다음에 둘째 부활이라는 말은 안 해도 첫째 부활이라는 그 말씀을 하시고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사람은 일단 죽음을 다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죽지 안하고는 변화를 받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 복이 있다 그 말은, 첫째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죽음을 전제로 하고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디다가 근거를 두고 사람들이 말하느나 하면은 이에 녹에다 대고서 그렇게 말하고 엘리야를 근거해 가지고 그런게 말하나 이것은 크게 오해입니다.

 

에녹이 죽지 안하고 승천한 것은 뭣을 나타낸 것이냐? '하나님과 동행 하더니 하나님이 데려가셨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동행은 동행에는 죽음이 없다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나 엘리야도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동행으로서 흠점이 없이 끝까지 실수 없이 동행했기 때문에 그는 산 채로 승천했습니다. 동행한 사람들이 아브라함도 동행했고 또 노아도 동행했다고 기록돼 있지마는 아브라함과 노아는 동행을 해도. 아브라함도 믿음의 조상이지마는 흠점이 있었고 또 노아도 또 흠점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에녹이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 동행 여기에는, 하나님과 동행 여기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동행한 그시간에 산 생활은 죽지 않습니다. 그거는 다 영생입니다. 또 하나님과 동행한모든 우리 심적 요소인 기능 또 육적 요소인 기능 그런 모든 기능들은 죽지 안하고 다 영생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준다' 그 말은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를 주겠다 하는 말씀인데. 생명이 어떤게 생명이냐? 생명은, 피조물 된 우리들이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입어서 하나님과 연결할 수 있는 그 모든 근거를 마련해 놓은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입니다. 그 근거를 힘입어서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데, 영은 순전히 객관의 은혜로, 성령과 진리와 주의 피로써 우리 영이 거듭났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심신으로 된 이 육은 이것이 법적으로는 그랬지마는 실상으로는 아직까지 거듭나지 못하고 죄 아래 있다고 이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죄 아래 있는 이 심신이 법적으로 입혀 주신 이 법적 구원을 입고 그대로 하나님의 심판에 통과하려고 하는 데에는 죽도록 충성하는 이 심신의 노력이 없으면 하나님과 연결된 연결이 승리하지 못한다.

 

생명의 면류관이라, 생명이 승리한 것인데 그 연결이 승리해야 된다. 그러면, 그 연결로 그 현실을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유혹이 있는데 그런 유혹들을 다 배격하고 승리했으면 그는 연결이, 법적 연결이 실상으로 연결이 돼서 생명이 이기기 때문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되고, 만일 그렇지 안하면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실에서, 현실에서 악령과 악성 악습. 악령은 뭣이 악령인고 하니 하나님을,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 증심으로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여,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움직여 살아야 되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속하지 안하고 제가 단독이 독립 하려는 그런 과오를 범해서 하나님에게 쫓겨난 그 천사가 사탄입니다. 그 사탄의 이름을 어떤 교파에서는 루스벨 천사라, 루스벨 천사라 이렇게 이름을 말하는 데도 있으나 그것은 성경에 나타나지 안했기 때문에 그 이름을 그저 자기가 그래 생각해도 되고 안 생각해도 되고 마음대로 하지마는 성경에 타락한 천사가 그렇게 사탄 된 것은 그것은 밝혀 증거를 해 놨습니다. 이렇게, 내가 뭘 말하다 그랬지? 어데 말하다 그랬지? 그래. 생명의 면류관을 죽도록 충성해야 줍니다. 거기에서 지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그 말은 첫째 사망의 해는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도매로 받은 그 사망이 첫째 사망이요. 둘째 사망은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시 그 생명을 법적으로 우리가 얻었는데 제가 죽도록 충성하지 아니하였으므로서 그 현실에 예수님의 대속을 벗었는고로 그것이 사망이 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예수님의 대속을 벗고 산 그 현실은 전부 사망됐습니다.

 

사망됐다 말은 고기덩어리는 남아 있지마는 마음의 기능이 사망됐고 몸의 기능이 사망됐기 때문에 이다음에 부활을 하나 기능 없는 부활을 합니다. 그러면 지금 사람들이 다 같은 이목구비 수족이 다 있지마는 그 가치는 어디 있느냐 하면 그의 기능에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면, 모두 다 세상에서 지위가 작정된 것은 그 기능 작정이요, 또 권세가 가진 그 권세의 차이도 기능 차이요. 모든 대우의 영광의 차이도 그 기능 차이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활할 때에 그 기능을 다, 예수님의 피공로로 인해서 법적으로 살아났으니까 자기는 그 피공로의 그 대속을 벗지만 안하고 현실을 그대로 통과하면 그대로 통과한 고 기능이 산 기능입니다.

 

고 기능은 세상을 이겼습니다.

 

그러면 대속을 벗지 않는다는 것은. 세가지 대속. 우리가 잘 아는데, 하나는 사죄의 대속 사죄 죄를 대형해서 죄를 없애 주셨으니까 현실을 죄 없이 죄 없이라는 말은 고것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어김없이 성경 말씀대로 통과하는 고것이 사죄를 입고 통과하는 것이고, 또 칭의를 벗지 안하고 칭의를 입고 통과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내가 피동되는 고 피동이 계속되는, 피동이 계속되는 고것이 의를 벗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는, 예수님이 대형하신 죄는 세 가지 죄를 대형했는데, 제일 처음에는 하나님 말씀을 어긴 그것이 죄요, 또 둘째 자기가 주관해 가지고서 자기대로 사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불의요. 또 셋째로는 하나님이 자기의 왕이 되지 아니하시고 자기가 자립자로 독립자로 독존자로 자존자로 이렇게 자기가 자기의 주인 되어서 하는 고것이 화친의 생명을 버린 것입니다.

 

요렇게, 세 가지 대속을 현실에서 벗지 안하려고, 물론 안 하는 게 좋은 줄 알지마는내 밖에 있는 수많은 적들이 있고 내 안에도 수많은 적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적들이 있는데 그 적들의 이름이 뭐인가? 그 적들은 그 왕이 악령입니다. 악령이라 말은. 악이라는 것을 이 모든 신학자들이 악이라는 그 정의를 삐뚤어지게 해 놨기 때문에. 이 악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마귀 사람들이 말하는 그 악을 성경이 말한 악이라고 이렇게 정의를 해 가지고서 성경 해석이 전부 삐뚤어져 있습니다. 그 악이라는 것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안하고' 하는 그 악이라는 것은 하나님 중심 위주가 아니고 자기 민족 중심이나 인류 중심이나 뭐 문화중심이나 어떤 도덕 중심이나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 외에 어떤 피조물이든지 피조물 중심이 된 그거는 전부 악입니다. 전부 악인데. 이 악령, 하나님 중심에 이탈된 그 천사 이것이 역사해 가지고, 이 악령이 역사해서 우리 밖에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군대입니다. 그의 부하입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를 대적합니다.

 

또 악령 악성 악성 이라 하는 것은 그 놈이 에덴동산에 와 가지고서 유혹을 시켜서 해와가 유혹받고 해와로 말미암아 아담이 유혹받아 가지고서사람이 벌써 자기중심의 사람이 됐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원죄가 뭐이 원죄냐? 원죄는 하나님의 중심의 것이 자기중심 된 고것이 원죄입니다. 이래서, 그 원죄를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우리가, 우리가 선악을 아는 거와 같이 저들이 선악을 알았으니 이들을 여기 동산에서 쫓아내자.

 

생명과를 먹고 그들이 영생할까 두렵다.' '우리가 선악을 아는 거와 같이' 하나님이 선악을 뭐 어찌 안다 말이오?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 중심으로 선악을 아십니다. 당신을 좋아하시면 선, 당신을 싫어하시면 악, 또 당신에게 속하면 선. 당신에게 배반이 되어지면 악, 이랬는데. 하나님은 당신이 완전자시요.

 

그분이 완전자시요. 그분이 참이시요. 그분이 자존자시요. 이러기 때문에, 그분 중심은 참을 중심하는 것이요 완전을 중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다 영생이 되지마는 인간이 들어서, 아담 해와가 타락해 가지고 제 중심입니다. 절 좋아하면, 제 중심으로 해 가지고 제게 속한 것은 다 선하게. 제게 속하지 않은 것은 악으로. 이래서, '선악을 아는 것이 우리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우리 중이라 말은 삼위일체를 말하는 것인데. 삼위일체 중 한 하나님 그 어느 한 위와 같이 인간들이 선악 정의를 저거 중심하면 다 선으로 저거를 배격하면은 다 악으로 이렇게 했기 때문에 요것이 원죄 라 이것으로써 죽었습니다.

 

우리 적이 우리 안에 있는 적은 무엇이 우리 얀의 적인가 하면은 악성이 우리 안의 적입니다. 악성. 내가 내 주인이 되는 것이 그게 적입니다. 이것을 벗어나기 전에, 아주 이 주인을 바꾸기 전에 제가 뭐 신앙 생활 한다고 떠들어 쌓지마는 그것은 다 뭐이냐? 제가 주인이 돼 가지고서 제 장식을 꾸미는 것이요 제 화장을 하는 것이요 제 모든 기관을 마련하기 때문에 이게 악 중의 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지금으로부터 한 이십 팔 년 전에 제가 ○○교파에 있을 때에 전국 학생 신앙 운동을 하는, 언제든지 총회를 하고서 총회 할 때에는 집회를 하는데 그때 집회 할 때는 의례히 새벽기도를 언제든지 정해 놓고 제가 늘 인도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고 모두 다 학생들이 원해서 그렇게 했었는데, 그때 내가 그런 증거를 한 일이 있습니다. 천하에 있는 뭐 그때 내가 와 그 말 와 했느냐 하면은 ○○교파에 있는 그 모든 사람들이 '이제 온 세게의 죄를 위해서 울어야 되고 우리 한국 죄악을 위해서 울어야 되고' 이렇계 모두 과장하고서 있기 때문에 그것을 내가 시정해 주기 위해서 그때 그런 말 했습니다. 온 천하에 있는 그 죄 전부가 나를 해하는 그 해독보다 자타가, 자기와 다른 사람들이 아는 내 죄 하나가 내게 대한 해독이 더 크다. 또 자타가 아는 내 모든 죄보다 다른 사람이 모르고 나만 알고 있는 내 죄 하나가 해독이 더 크다. , 내가 아는 죄 전부보다 내가 모르고 있는 죄 고 하나가 내게 대해서 해독이 더 크다. 내가 모르고 있는 죄 모든 죄보다 제일 큰 죄가뭐이냐? 제가 주인 되어 있는 그 죄가 제일 해독이 크다. 그러기 때문에 주인을 바꾸지 안하면 안 된다. 이제는 주님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내 안에 주인이요 나는 그분의 성전이요 그분에게 소속한 자요 그분의 지체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를 가리켜서 성전이라 말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니까 주님은 주인이시요 나는 그분이 내 안에 와서 거처하고 계시는 성전이라 이랬는데, 그 악성 내 중심이라는 악성이 우리 안에 있어 가지고서 언제든지 이놈이 나를 괴롭힙니다. 그러기 때문에, 로마서 7장에 보면은 '이 속사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겉사람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 내가 원하는 선은 되지 안하고 원치 안하는 악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내 속에 있는 죄 이놈이, 지체 속에 있는 죄 이놈이 들어서 강하게 역사하기 때문에 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범죄하는 것은 뭐라했습니까? 내가 범죄한 것은 내가 범죄한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죄가 들어서 범죄했다. 요렇게 자기와 자기 속에 자기 아닌 자기를 똑똑히 구별해서 말했지마는, 이래서, 로마 7장 해석에 대해서 시비가 많았습니다. ○○교파에 제가 있을 때에 거기에서 제일 시비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은 ○○○목사가, 지금 목사 됐는데 그 사람이 미국 가서 뭐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이 들어서, 중생된 영은 죄를 짓지 않는다. 하는 이 교리를 제가 말했는데 그 교리가 일사천리로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인식을 할 것인데 ○○○목사가 들어서 그렇지 않다고 나를 반대해 가지고 반대의 깃발을 들었고, 그때에 간교하게 ○○○목사님에게 간교하게 하니까 ○○○목사님이 '백 조사님은 ○○○목사님에 대해서 이렇게 하고 이렇게 이렇다.' ○○○목사님이 나하고 신학을 하자고 처음에 ○○교파에서 쫓겨나와 가지고 나하고 신학 하자고 이라면서 동래에서 날 만나 가지고서 그렇게 간청을 하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내가 말하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사모 ○○○사모님하고 서이 나하고 서이 앉았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목사님하고 나는 신학을 못 합니다. 못 하는 이유는 미안하지만 ○○○목사님은 대세주의로 이래 자꾸 끌려 가지고 돌아다니기 때문에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그거 얼마나 박한 소리입니까? '지금 ○○○목사님은 ○○교파에 들어갑니다.' 깜짝 놀라며 '○○교파에서 쫓아냈는데 ○○교파에 들어가? 그 무슨 말이오?' '○○교파에 들어갑니다. ○○교파에 들어갔다가 또 쫓겨나 가지고는 ○○교파에 들어갑니다. ○○교파에 들어갔다가 쫓겨나 가지고는 다시 또 뭐할 것입니다. 이라니까. 정함이 없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내가 그랍니까?' 그러니까 옆에 ○○○사모님이 있다가서 딱 말하면서 백 조사님이 그렇게 안 할 생각을 가지고 걱정을 하기 때문에 머리가 저렇게 세었다고 그렇게 날 한 번 욕을 해 줘요. 그래 내가 웃으면서 그래 '안 할 걱정을 해서 머리가 셌다면 그거는 하나의 징계가 되겠지요. 그러나 다른 거는 몰라도 오늘 내가 이 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이십 년 안에 다 죽지는 안할터이니까, 나도 안 죽고 여러 분들도 안 죽고 있을 터이니까 이십 년 안에 이 순서를 걷는 것을 알 것입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이랬더니마는 그때 ○○교회 ○○교회 와 가지고 집회를 하시는데 그때 제가 갔습니다. 가니까 O○O목사님이 그만 그날 밤에 설교가 잘 안돼요. 그라고서 나중에 나오시면서 인사하면서, 그때 나는 장립을 받았던가, '백 목사님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때가 어느 때냐? ○○교파에 들어가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교파에 들어갔어요. ○○교파에 들어갔다가 두번째 쫓겨나 가지고는 또 ○○교파에 들어갔습니다. ○○교파에 들어갔다가 또 ○○교파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나고, 지금은 뭐 개혁 신학교를 한다던가 뭐 한다던가 이라는데, 요 악성이라는 자기중심이라는 요놈이 우리 속에 들어 가지고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못하게 합니다. 자꾸 벗도록 만듭니다. 또 내 속에 뭐이냐? 또 악습이 들어 있습니다. 이제 악습이라 말은 내 중심으로 산 그 일이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해서 그것이 벌써 연습이 되어서 벌써 습성이 되고 구습이 됐다 말이오. 구습. 구습·습관은 제이의 천성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자꾸 연습하면 그것이 그만 본성이 돼 버리고 만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대속을 벗지 안하려고 하면 대속을 벗도록 하려고, 자꾸 이렇게 하는, 내 안에 적이 있지 내 밖에 적이 있지, 내 안에 악성, 악습, 악령 이 세 가지 적이 있지마는 과거에는 우리 안에서 왕권적인 왕권적인 그런 권세를 가지고서 우리 안에서 역사했지마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베푼 후에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중생된 사람에게는 벌써 그때부터 왕권을 잃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가 우리속에 왕 노릇 못 한다, 악령이 왕 노릇 못 한다, 사망이 왕 노릇 못 한다. 왕권은 못 하지마는 침략은 합니다. 침노는 해요 이러니까, 이것을, 대속의 공로를 이 세가지 적이침노를 해도, 그로 더불어 격투하는 것인데, 투쟁하는 것인데. 그 투쟁에서 내가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안했을 때는 벌써 그는 영생할 수 있는 기능이 됐습니다. 실력이. 고 대속을 벗지 안하고 현실을 통과한 것은 세상에 있는 모든 마귀를 다 이겼고 사망을 다 이겼고 죄를 다 이긴 생명의 승리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 이랬습니다. 지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다 그거요.

 

이렇게, 오늘 우리가 이렇게 생활하는 가운데에 영은 단번에 구원함을 얻어서 영생을 가졌고, 우리의 이 마음이나 몸이나 이것은, 영은 단일체입니다. 하나로 되어 있는 단일체이지마는 우리 마음은 단일체가 아닙니다. 종합체입니다. 우리 마음은 그 요소가 백 개도 천 개도 만도 넘습니다. 또 우리 몸도 이거 하나요 한몸인 거 같지만 아니오. 여기에는 수많은 세포들이 모여 가지고서 되어 있고 지체들이 모여 가지고 되어 있습니다. 이 손이 원하는 것을 이 손이 싫어합니다.

 

또 어떤 지체가 원하는 것을 어떤 지체는 싫어합니다. 그러나 이 지체하고 지체하고 싸워도, 이 지체하고 지체하고 싸워 가지고서 이 지체가, 제일 지체 가운데에 세력 많은 그 놈이 왕이 돼 가지고서 그놈 주장대로 다른 지체들은 끌려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마음이나 몸이나 이것은 다 이거 회의해 가지고 이라는 것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돈 욕심이 제일, 그놈이 마음의 요소들 가운데 분자 가운데 제일 강해 가지고 그놈이 세력을 부려 가지고 막 강제로 온 전신을 막 끌고 이라는 것 있고. 어떤 거는 명예욕이 그렇고, 어떤 거는 감정이 그렇고, 어떤 사람은 그 마음 가운데에 혹 자기에게 감정나는 일이 있으면 '원수가 있다.

 

내가 죽어도 이 원수는 갚아야 되겠다.' 자기 몸과 생명과 가족을 다 버리고 자기 생명을 버려서 복수하는 그 복수에 다 기울인다 그말이오. 그때는 그거는 감정이라는 요소인데. 그 감정이 기회를 타 가지고서 악령이 돌어서 이 감정을 충격시키고 또 악성이 충격시키니까 이 악습이 들어서 이 감정에 충격받아 가지고 그 사람은 자살 행위도 하고 그 사람은 복수하다가 자기 생명을 끊기도 하고 이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이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것을, 영은 모르고, 안 믿는 사람들은 영은 모르고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것만 보기 때문에 철학자 가운데에 말하기를 '우리 사람은 적은 우주다. 이 우주가 복잡하고 한 것보다도 우리안에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요소는 그보다 더 복잡하다. 그 보다 종류가 더 많다' 이렇게 말했고.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아니다. 적은 우주가 아니다. 천상 천하의 유아독존이라. 천상천하에 내가 제일 큰 우주이고 내가 주인공이다' 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복잡하기가 짝이 없는데, '이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므로 죽음을 보지 안했다,' 그러면, 오늘 우리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것은 죽지 안합니다. 하나님과 동행이 뭐입니까? 하나님과 동행은 내나 화친과 칭의와 사죄를, 대속을 벗지 안하고 대속을 입고 있으면 이는 흰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입니다.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가 복이 있다' '네가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그 횐옷이 뭐입니까? 주님의 대속입니다.

 

대속을 네가 사서 입어서 벌거벗은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라.

 

대속을 사다니? 뭘 주고 산다 말입니까? 뭘 주고 사지요? 뭘 주고 삽니까? ? ? , 자기를 주고 삽니다. 대속을 뭘 주고 사느냐 하면은 자기를 줍니다.

 

자기를, 완전히 자기를 주님에게 바쳐서, 자기가 주장이 됐는데 자기가 주인공이 됐었는데 주권을 완전히 주님에게 이양합니다. 주님이 피로 날 값 주고 샀기 때문에 나는 지옥에 있을 자가 지금, 사망 안에 있을 자가 생명으로 옮겨 섰기 때문에, 옮긴 이거는 주님이 피로 대속 하시고 옮겼기 때문에 당신의 것이라 말이오. 내가 당신의 것인 것을 알 때에 주님의 대속은 우리에게 입혀진다 그말이오. 횐 옷을 사라 그 말은 자기를 주의 것인 줄 알고 이제 자기를 대가로 내놔라 말이오. 이래서, 주님이 또 말씀했소 '영생을 어떻게 하오리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그 나머지기, 또 다른 데는 말하기를 성품을 다하라고 했다 말이오. 그러면, 자기 전부를 다해서 주님을 위주로 주님 중심으로 이렇게 살아야 영생이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런데, 사람들이 썩어져 가지고서 어떻게 에누리를 해 놨는지 완전히 마귀놀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제일 부흥사입니다.

 

제가 언제 한 번 서울에서 엑스 포 칠십 사인가 뭐 언젠가, 그때가 팔십 사라던가 언젠가 그때 모인다해서 내가 뭐인고 싶어서, 알기는 알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운동은 아니다.' 하는 걸 알기는 알았지마는 '그래도 내가 한번 가서 봐야 되겠다.' 또 빌리그래함 목사의 운동 이것도 이거 그 사람이 옛날은 은혜를 받은 사람인데 지금은 정치적으로 날아 돌아다닙니다. 둥 떠 버렸다 말이오. '가 보자. 뭐인가가 보자' 가서 보니까 사람은 많이 모였는데, 그때, 지금은 뭐 원청 자꾸 발전이 되니까, 자꾸 세계가 좁아지니까. 그때는 오십만 명 모였다 하면 굉장했습니다. 지금 오백만 명이라도 그렇게 사람이 많은 거 아닙니다. 그때는 미국이라면 평생 못 가는 곳이지마는 지금은 뭐 불과, 얼마? 하와이까지는 한 열 시간 걸립니까? 열 시간 안 걸리제? 그만하면 갔다 왔따 한다 그말이오. 이렇게 좁아졌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사람 수 모이는 것도 좁아지니까 빨리 빨리 모인다 그말이오. 다 모여서.

 

가 보니까 모두 다 그래 가지고 뭐 떠들고 이라는게 전부 그게 정치 운동이오, 그래 가지고 대통령도 거기 나왔고. 대통령도 나왔다고 그걸 막 광고를 하고 또 뭐 어떻게 하고서 이래 가지고서. 그 빌리그래함 목사가 그때에 있는 대통령이 아마 카터인가 그럴 거야. 카터이던가 누군데 거기에서 편지를 한 장 받아 와 가지고서 이게 뭐인지 몰라도 그것도 선거 운동할 때에, 이 사람이 많은그룹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걸 거머 쥐어야만 선거 운동이 되겠다 싶어서 또 저는 또 제 욕심 찾는다 말이오. 그거 가지고서 나갈 때에 편지 한 장 요구하니까. 그거 대통령에게 가거든 잘 영접하고 잘 협조를 해 달라 하니까 안 나올 수가 있어야지? 전부 그게 마귀놀음이요 다 전부 귀신놀음이다 그말이오. 가 보니까 사람들은 많이 모았는데, 그래서 내가 그때 가서 '보자.

 

이거는 뭐이냐? 이거 모두 다 어느 교파 어느 교파 이렇게 모였느냐?' 가니까 '네 어느 교파입니까? 그러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보니까 교파 없는 교파가 없어. 다 모두 이 교파 저 교파 자기네들 장소가 있어. 또 참예해서 거기에다 큰 뭐 무슨 자리를 이래 차지하고 있는데 이거는 무슨 ○○교파 이거는 ○○교파 이거는 ○○○교파 뭐 어짜고 이래가지고 장소들이 다 있어요. 그때 보니가, 내가 있다가 ○○교파 거기에 있는 걸 내가 하나 눈 여겨 봤다 말이오. 그걸 볼라고 내가 찾아 돌아다녔다 그말이오. 보니까 거기 있어 그랬는데,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는데.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은 한 마디도 없고 저거 가정 자랑하고 또 돌아다니면서 어떻게 활동한다는 거 자랑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하나님 말씀은 뭐 없어. 우리 주일학생들 학생 쳐놓고 아마, 십분지 한 칠 팔은 그보다 설교 나은 설교 나은 설교 할 것입니다. 그만치 허무하다 그말이오.

 

사람의 힘이, 힘이 예를 들면은 한 가닥 있다 합시다. 한 가닥 가지고도 유지할 만한 그런 몸이 있고, 그러면, 또 열 가닥 가지고도 감당할 수 없는 몸이 있습니다. 그러면, 열 가닥 가지고도 감당할 수 없는 몸이 있다 말은 그 몸이 크다 말이요 작다 말이오? 우리 장로님 한번 대답 해 봐. ? 열 가닥 가지고도 자기 몸을 감당 못 하면 그 몸이 크다 말이요 작다 말이오? ? 크다 말이지 크다 말.

 

사람은 속의 실력보다, 실력보다 겉으머리 나타난 것이 크면 허약해서 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유명하면 죽고 망하는 것입니다. 유명하기를 원하는 그 사람이 아직도 어리석어서 그렇습니다. 몰라서. 유명할 때에 유명해질라 할 때에 자꾸 숨어서 기어 들어가서 파들어 가서 아무도 모르게 하려고 자꾸 유명하면 자꾸 덩치가 커지니까 덩치가 커지면 커지는 거만치 힘이 많아야 유지가 되지 힘이 적으면 허약해져 가지고 절단나기 때문에 자기의 큰 것을 숨길라고 하는 사람은 끝까지 자기의 실력을 유지하게 되고 크기를 원하는 사람은 처음에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도 마지막에는 다 죽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무슨 병으로 죽느냐? 큰 병으로 죽습니다. 큰 병, 큰 병, 크기를 원하는 큰 병으로 죽소. 큰 병으로. 내가 요새도 어떤 책을 보는데, 그 책을 볼 때마다 민망하고 미안하다 그거요. 그 책에다가, 책 옆에다가, 여기에다가 커다란 자기 사진을 이렇게 떡 박아 놨는데, 사진을 박아 놨는데 나는 오층에는 지금 모기가 많아서 지금도 모기장을 치고 자야 된다 말이오. 숲이 많아 놓으니까 모기가 많아서. 이런데, 그 모기장을 치고 난 다음에 모기장이 바람에 날아 들어올 터이니까 그 네 귀 마다 다른 거는 놓을 것 없고 책이 고거 묵직하이 돼서 고걸 놓으면 좋아. 묵직하이 놓으니까 암만 안 그랄라 해도 놓으니 발에 밟히기도 하지 이라지, 민망해서 읽을 때마다 보면 보는 사람한테는 가리고서 이래 가지고 척 나타내 가지고 있으니까 마음에 민망하다 말이오.

 

이래서 자꾸 자기를 나타내기를 원하는 사람마다 꺼풀이 크기를 원하고 알맹이 실력 준비를 안 하기 때문에 다 절단난다 그말이오. 그러면, 왜정 말년에도 일본 사람들이 신사 참배를 시킬라고 우리 조선 교회에 그렇게 역사할 때에 누구를 잡았습니까? 총회장을 붙들고, 총회장을 붙들고. 총회장 직이 총회장이라고 그때. 벌써 그때만 해도 선거 운동을 하고 요새 뭐 선거 운동 해 가지고 내가 잠깐 어떤 교파의 사람이, 내가 교파 이름은 밝히지 않습니다. 와 가지고서 잠깐 얘기하는데, 뭐 선거 운동, 찍해야 병원 병원의 이사를 선거하는데. 이사 하나 선거하는데 그 이사 하나 선거 때문에 서로 이사 될라고서 운동하는데.

 

말하기를. 이름 누구 내가 그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가 가지고 뭐 불고기를 다섯 판 냈다 하던가 열 판 냈다 하던가 이래 가지고서 다 운동을 해 가지고서 그래, 지금 그분이 당선 됐다, 이걸 부끄럽게 안 여기고 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여러분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안약은 진리와 영감이 안약입니다. 진리를 네가 보고, 성경을 보고 또 영감을 받으면 눈이 환하게 밝아진다. 그대로 모든 것을 봐라. 자꾸 커지기를 원하고 드러나기를 원하는 이 세상에서 국회의원 될라고 서로 운동하고 자꾸 막 자랑 하는 거 이것이 사실은 세상에서는, 죽은 세상에서는 그것이 힘있는 것입니다. 그게 더 많이 죽는, 죽은 힘이지마는, 생명 세계에서는 그것이, 생명 세계에 속한 사람이 한다면 그거 미친 사람이오. 정신 빠진 사람입니다. 크게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자꾸 자기가 숨는 것이 자기가 지금 죽지 안하려고 하는 그것입니다.

 

이래서, 사람도 보면은 대개 보면은 맏새끼가 작습니다. 소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제일 맏새끼가 체격이 작은데, 체격은 작아도 그게 제일 강합니다. 같은 힘이면 체격이 작으면 건강하고 유지가 잘됩니다. 같은 힘이 체격이 커지면은 유지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허약해서 절단난다 그거요

 

이렇게, 삼백 년 동안 동행함으로써 이렇게 산 채로 승천했다, 이것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동행함으로, ' 동행하더니'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셨다.' 동행, 이것이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래서, 오늘 아침에 내가 증거할라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 하나님과 동행.

 

그러면, 사람들이 사모 가운데에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 사모하고 어떤 사람은 권세 사모하고. 어떤 사람은 가족 사모하고, 어떤 사람들은 애인 사모하고. 어떤 사람들운 명예 사모하고 뭐 그 사모하는, 사람들이 천태 만상으로 사모하는 종류, 그 사모하는 것마다 그게 제일이라 생각해 가지고서 그걸 사모하고 거기에 전심 전력을 다 기울이고 이래, 사모하는그 종류를 헤아릴라 하면 뭐 헤아리지 못합니다. 지금 뭐 얼마? 사십억이라 했나? 전 인류가 얼마? 인구가 얼마? ? 사십 오억? 아따 수 많다. 사십 오억만치 사모하는 것이 사십 오 억 개나 될 겁니다. 이래도 모조리 도매금으로 다 소용없습니다. 다 소용없소. 네가 돈 사모하는 자는 돈 사모. 그놈 때문에 네가 죽었고. 네가 명예 사모하는 거는 멍예 때문에 죽었고, 그저 밤이나 낮이나 주님 외에 사모할 거 없습니다. 그분은 사모해 가지고서 손해갈 것이 없어 그분은 사모 하면은 모든게 좋아집니다. ? 그분이 생명이기 때문에, 몸에 생명이 돌아오면,죽은 시체가 생명이 돌아오면, 기절했다가 생명이 돌아오면 고만 전부 다 손가락도 살고 머리털도 살고 다 눈동자도 살고 피부도 살고 세포도 살고 다 살아나. 그러나 생명이 떡 떠나 버리면 그때부터 죽어 썩어 송장 돼요.

 

이런 것이니까, 이제 주님 외에 사모할 것이 없습니다. 주님 사모하다가 망한 사람 있습니까? 밤낮으로 주님 사모하고. 주님과 동행, 주님과 동행하는 것은 전부 사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시편 73편에 말하기를 주 외에는 사모한 이가 없다.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주 외에 사모할 것이 없다. 내가 이해 못해서 원망하고 낙망하고 '어짠 일인고' 이랬으나 나중에 성소에 들어갈 때 내 눈이 열리고 보니까 그렇게 범죄해도 형통한 그 사람은 졸지에 멸망하도룩, 일생을 미끄러져서, 한 번 밟을틈도 없이 중단할 틈도. 없이 쭉 미끄러져 가지고 지옥까지 떨어지게 하는 것이고, 아침마다 회개하고 모든 생활을 깨끗하게 해도 또 하나님께서 여기에 틀렸다 여기에 틀렸다 자꾸 틀린 것만 말을 하니 죽을 지경이고, 왜 이렇게 의롭게 사는 사람 복 받는다고 했는테 자꾸 징책 많고 이러냐 이랬는데 내가 깨고 나서 보니까 하나님께서 영원 무궁한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의 흠없는 나를 만드시기 위해서 내게 흠점 하나도 남김없이 이와 같이 간섭해 가지고서 깨끗게 하신 것을 내가 알았다. 이러기 때문에 '나는 주님 앞에 우매 무지한 짐승이로소이다. 나는 짐승과 같은 자입니다. 이런 자입니다. 이제 주께서 그런 망령을 부려도 나를 놓지 안하고 주님의 오른손으로 붙드셨기 때문에 내가 꼼짝 못하고 주님에게 붙들려서 이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도달했습니다.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주님 외에 사모할 것이 없다' 그렇게 결론을 지웠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모할라면 아떨게 사모합니까? , 어떻게 사모해도 좋습니다.

 

어떻게 사모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도 그렇소. 사람도 여기에 결혼할 때는 보면 결혼을 처음에 할 때는 뭣 보고 결혼 하느냐? 낯짝 보고 결혼을 해요. 낯짝을 보고서 결혼을 이래 하지마는 나중에 낯짝 그거는 잠깐이고 낯짝 다음에 그 다음에 사람이 뭣 보고 결혼 하느냐? 낯짝 보고 결혼하는 것은 그것은 아마 뭐 신혼여행 갔다 오고 이래 가지고서, 낯짝 보고 결혼 하는 그 결혼은 일주일 결혼이라 합니다. 일주일 결혼. 일주일 결혼하고 또 이혼하는 사람 일 주일 결혼하고 또 새로 결혼하는 사람 있어요. 낯짝 본 결혼은 모든 통계가 일주일이라. 일주일 동안이면 다 봤다 그거요. 다 보고 다 거석하고 뭐, 그것뿐이라면 일주일 지나면 권태나요. 일주일 지나고 난 다음에는 뭐이냐? 그 사람이 서로 언어의 결혼이 돼. 말을 해 보니까, 말을 하니까 말의 교제가 된다 말이오. 말의 교제가 돼. 말의 교제가 되고 또 그 다음에는 마음의 결혼이라. 그 다음에는 성질 결혼이라. 이리 이리 해 가지고서 그 다음에는 생활 박력 결혼이라. 그 다음 에는 지능 결혼이라. 그래 가지고 어떤 자는 그것밖에는 모르니까, 돈만 많이 벌면 좋다 이래 가지고, 교수니까 월급 받아 가지고 온다 이래도 동상 이몽이라는 것은 한 침대에 둘이 누웠지마는, 거머안고 누웠지마는 이몽이라 꿈은 딴 꿈 꾼다 말이오.

 

이것이 이러나, 나중에 결혼을 자꾸하는 사람은 그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인격 결혼이라. 그 인격이 자기와 통하지 안하면은 돈을 벌어도 지식이 많아도 도무지 권태나 재미가 없다 말이오. 그러나 자꾸 그래서 인격 결혼 그 다음에는 신앙 결혼이라. 신앙이 맞지 안하면 돼. 신앙으로 결혼돼서 신앙은 끝이 없는 거라.

 

신앙은 끝이 없기 때문에 신앙으로 맞으니까 오늘도 새 날이요 내일도 새 날이요 모레도 새 날이요 자꾸 새 날이라 그말이오. 신앙이 결합이 되지 안하니까. 부부 동침 결합은 됐지마는 다른 결합은 안 되니까 아무 재미가 없어서, 그저 살기는 살지 이러니까 두 가지 결혼 가지고서 평생사는 사람. 한 가지 결혼 가지고서 그저 그래 사는 사람 아무 재미없어. 어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자꾸 새로 결합 돼. 자꾸 결합 결합 결합. 되는데.

 

이제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도, 주님 사모, 주님 사모 그저 ', 주님.' 그래 가지고서 그것도 좋아요. 어떤 사람 보니까 '저 사람이 아무 능력 없는 사람인데 그래도 권찰일 어북 한다. 저게 어디 있는고?' 보니까 이래 떡 이래 앉았다가도 또 있는데 ', 주여' 또 이래 거석하면 또 '주여' '주여' 어쩌든지 '주여' 이래요. '주여' 이래 그러니까 주님을 사모하고 그저 입에만, 입에 발려서 주여 하는지 그 속으로 참 주님을 생각하고 주여 하는지 주여하는 데도 천층 만층입니다. 천층 만층인데, 어제는 잠깐 오전 오후에 설교한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 듣기가 좀 어려울 것인데, 그것을 이해를 했는지, 주님이 찾아오시는데, 찾아오시는 주님을 대접을 하는데 대접하는 접대할 수 있는 식물을, 대접할 수 있는 좋은 대접할 수 있는 좋은 식물을. 음식을 그렇게 마련하는 것을 몇가지를 말을 했습니다. 말했는데, 그걸 대접을 하니까 좋아하신다 그말이오. 주님을 대접하는 것. 주님은 떡을 자시지 않습니다. 밥을 자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서 무엇을 자십니까? 무엇을 자십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다시 말하면 우리의 인격을 다하는 인격 그것을 당신이 원하십니다. 모든 것 창조했는데. 모두 창조해 놨는데 창조 해 놓은 가운데에 하나님을 제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모형으로 되어 있는 인간인데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는 뭐이냐 하면은 당신이 만들어놓은 이것이 하나님 한 분으로 전부를 삼고 하나님의 요 모를 보고 좋아하고 조 모를 보고 좋아하고 그 모를 보고 좋아하고 저 깊이를 보고 좋아하고 저 높이를 보고 좋아하고 그 넓이를 보고 좋아하고 그 권능을 보고 좋아하고 그 지혜를 보고 좋아하고 그 사랑을 보고 좋아하고 그 인내를 보고 좋아하고 요 모 보고 조 모를 보고서 하나님에게, 반하는 것, 알겠습니까? 하나님에게 반해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걸 오만 걸 다 별별 아름다운 걸 다 줘도 다 마다 하고 하나님 당신 한분의 매력에게 다 반해 가지고 그분만을 사모하는 요것을 원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것으로써 부활이 되기 때문에 '부활한 자의 영광이 이와 같다' . ?'이와 같다.' 고린도전서 15장에 '부활한 자의 영광도 이와 같다' 뭐와 같다고 했습니까? 거기에 여러가지 말했는데 하나 말하면 형체와 같다. '형체는 형체는 땅에 속한 형체도 있고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해의 형체도 있고 별의 형체도 있고 다 있는데 그 형체마다 영광이 다르다. 영광이 다르다 말은 가치가 다르다, 그 형체마다, 영광이라 말하는 건 자체의, 자체 영광이라 말이 아니고, 그 자체로 말미암아 그 혜택을 은택을 입는 그 은택을 입는 것들이 다르다. 영광이라 말은 영광은 자기 잘난 거 가지고 영광 아니오. 자기 잘나고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안 입렸으면 다 욕거리가 됩니다. 욕거리가 돼. 그러나 영광이라 하는 것은 그 자체 혜택을 입은 것들이 많으면 그것들이 '감사 하다. 참 고맙다. 아 이렇다' 이 영광이라는건 남에게서 오는 것이지 제게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말이오. 제가 남을 위해서 이와 같이 할 때에 영광이 생겨지는 것이라 그말이오.

 

해의 영광도 달의 영광도 다 다르다. 형체가. 땅에 있는 형체 중에 제일 작은 형체 하나 말해 보십시오. 어떤 형체가 제일 작습니까? ? ? 모래, 이걸 예사로 듣는다 말이오. 모래, 바다의 모래 그걸 형체 그것도 한 개의 형체입니다. 한 개의 형체요. 또 하늘에 있는 태양도 한 개의 형체입니다. 별도 형체입니다. 그 형체나 땅에 있는 모래의 영광 그 모래로 말미암아 혜택을 입었다고 모래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까짓 거 있거나 말거나 지근지근 밟고 돌아다니지 그 영광이 뭐 있겠습니까? 하늘에 있는 한 개의 해지마는 한 개의 해에 대한 그 영광은, 해로 말미암아 헤택을 입은 그 혜택은 땅에 있는 모든 것보다 크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부한한 자의 영광이 차이 있다 말했습니다. 땅 위에 사람이 천층 만층 구만층이라고 이렇게 발표를 하지마는 부활한 자의 하늘의 영광은 이와 같이 형제마다 영광이 각각 다르다. 다른 거와 같이 이렇게 하늘에 있는 부활한 자들의 영광이 이렇게 차이 있다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그 차이가 뭐이냐? 그 차이가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한 그것이,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이 되고 피조물에게 지능이 되고 피조물에게 부강이 되고, 피조물의 평강과 행복이 되고 쾌락이 되고 했기 때문에. 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한 번 순종했는데. 우리는 순종했으니까 요것만 간단하게 순종했다 싶으지요? 현실에서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대속을 벗지 안하고 한 현실을 다 통과했을 때에, 그 현실에는 수많은 것이 집결돼 있습니다. 그 현실에는 사람도 거기에 집결돼 있고 짐승도 집결되어 있고 물질도 집결되어 있고 공기도 집결되어 있고 이 만물이 거기 집결된 것이 원 숫자가 같은 것은 아니고 많은 것이 집결돼 가지고 내 현실이 될 때도 있고, 또 몇 가지가 집결돼 가지고 현실이 될 때도 있고, 내 현실에는, 그때에 내 현실에는 이 세상 정치, 나라, 이 세상 사상, 모든 세계 전체가 다 접질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 그 현실인데, 그 현실을 대속을 벗지 안하고 진리와 영감에 피동돼서 한 그것은, 고것은 생명으로 승리했기 때문에 고때에 집결된 모든 만물은 내가 승리하였으므로서 그 모든 것이 다 살아났습니다. 살아났어. 이러기 때문에, 로마인서 8장에 만물이 탄식하면서 고대하는 것은 뭣을 고대한다 했습니까? 뭐 고대한다 했소? ? ?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 하나님의 자녀의 자유, 우리가 자유하는 것은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것이 우리 자유인데, 하나님과 영감과 진리대로 살지 못하고 원치 안하는 어만데로 사는 것.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됐으니까 진리와 성령으로 사는 것이 그것이 자유 아닙니까? 진리와 성령대로 살기를 원한다 말입니다. 뭐 하려고? 진리와 성령대로 살면은 그 모든 것이 다 살아나고 이라기 때문에 만물 가운데에 충만케 하는 하나님의 충만이라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이 모든 만물이, 내 현실에서 모든 만물이 다 혜택을 입고 구원 얻었으니까 그들이 다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수많은 현실로써 수많은 영광파 수많은 원망과 수많은 수치와 수많은 불만과 불틥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대속을 벗지 안하고. 우리는 몇가지로 중생됐습니까? 몇 가지로? 몇 가지로? ? ? 예 세 가지세 가지로, 주님의 피공로, 피공로 없으면 안 돼. 피공로와 성령파 진리로 중생했어.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은 하나인데 너희들에게 증거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피는 주님의 공로요, 또 성령은 내나 하나님이시요 진리는 우리에게 나타난 진리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오.

 

이런데, 이렇게 이 영광의 차이 있는 이 구원을 우리가 마련하고 있는데, 마련하는 데는 제일 방법이 뭐이냐 하면은 주님하고 동행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제일 소득이 많아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돈 동행해 봤자 소용없어. 애인 동행 해 봤자 소용 없어 미남 동행해 봤자 소용없어. 미인 동행해 봤자 소용이 없어. 권세 동행해 봤자 소용이 없어.

 

지위 동행해 봤자 소용이 없어. 가족하고 동행해 봤자 소용 없어. 가족 죽여.

 

하나님과 동행하면 가족도 삽니다. 다 살아.

 

그런고로, 주님 외에 사모할 것이 없어. 요것을 깨달아서 주님만 사모하면.

 

주님만 사모하면 거기에서 좋은게 다 나오거든

 

그런데, 주님을 사모하는 데도, 이제 결혼에 대해서 참 일차 결혼 이차 결혼 삼차 결혼 이래 가지고서 벌써 결혼이 나중에 가서 자녀 낳은 자녀의, 자녀 낳은 생산 결혼, 뭐 이 결혼이 많아질수록이 나중에 가서는 이혼이 안 돼요. 못 해요.

 

이런데, 주님으로 더불어 우리가 동행하는데 목석처럼 그저 항상. 오늘도 만나야, 오늘도 만나도 '주님' 내일도 만나도 '주님' 모레도 만나도 '주님' 하도 답답해서 '주님이라니? 어떤 주님이라 말이냐?' '그저 주님 아닙니까?' 기가 찬다 그말이오. 이거 나무 토막이를 하나 데려다 놓고 마누라로 만들어 놨으니 이거 기가 찬다 그말이오. 오늘도 만나면 '주님' 내일도 만나면 '주님' 오늘 만나 '주님' 하니까 '무슨 주님이라 그래?' '나를 십자가에서 대형 대행 대화친하신 대속하신 주님' 또 그 뒤에 만나니까 '주님', '날 무슨 주님이라고 불러?' '영원 자존하신 내 주님' 만족하다 말이오. 또 새 결혼이 됐어. 또 그 다음날, 그 다음날 가니까 '전지하신 내 주님' '전능하신 내 주님' 또 이라니까 '날 무슨 주님으로 봐?' '주님이 주님과 꼭 같은 자를 만들어가지고서 영원히 모든 것을 다 상속시킬라고 목적을 정하신 주님' 이라니까 제법 부부가 될 만하다 그말이오. 또 그 이튿날 ', 이제는 와 가지고서' 또 그전에 아는 거는 거석하니까 또 새 결혼을 해야 되겠다 말이오. 또 이라니까 '모든것을 이 목적을 위해서 예정하신 주님, 모든 이렇게 크고 작은 모든 것이 자꾸 역사에 새로 전개 전개되는데 이 전개되는 이 전부가 다 우리 주님이 영원 전 정하신 고 순서대로 모든 것이 전개된 것이다' 요렇게 아는 고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라 말이오. 예정하신 주님. 모든 것을 볼 때에 '이거는?' '이것도 우리 주님이 만드셨다. 이것을 만드신 우리 주님 창조의 주님. 보존의 주님, 모든 것을 개별 주권을 가지고서 지극히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개미 한 마리 나고 죽는 것도 다 당신이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는 모든 주권 개별 섭리의 주님' 이렇게 자꾸 알아 나가니까, '아는 가운데서 자라가라' '주를 아는 가운데서 자라가라' 이렇게 하니까 주님과 이제 동행할 수가 있다 말이오.

 

이래서, 이제 주님을 대접하는 데에, 대충 몇 가지만 하면은 성경이 말한대로 주님을 대접할 수 있고 주님파 동행할 수 있고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거 이렇게 대접할 수 있다 그거요.

 

올 때마다 대접이 있어야 가고 싶은 마음이 있지 대접 없으면 가고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그래요. 대접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음식 대접을 바라고, 어떤 사람은. 그 다음에는 무슨 얘기 대접을 하고 어떤사람 만나면 얘기 대접, 만나면 말이오, 그 사람 만나면 만나야 돈도 유익될 것도 하나도 없고 권세도 유익될 것도 하나도 아무것도 없지마는 만나면 '기쁜 소식을 하나 전해 드릴까요?' 기쁜 소식은 뭐이냐 하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신앙 생활 해 가지고 이렇게 됐다' 그 소리 들으면 깜짝 놀라 감탄이 된다 말이오. 그 소리를 들으니까 뭐이 됩니까? 양식이 돼. 양식이 돼. 우리의 심령이라는 것은 떡 고기 이걸 먹고 살지 못합니다. 우리 심령이라 하는 것은 그것을 먹고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양식은 모든 성도들의 전기를 읽어 볼 때에 전기를 죽죽 읽다가서 그 참 토막이 있어 가지고서 그럴 때에는, '' 우리가 양식이 돼 가지고서 어떻게 흐뭇한지 눈물 흘리면서 그 전기를 봐 '주여, 나는 죄송합니다.

 

주님의 다 같은 구속을 받았는데 이 사람은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는데 나는 주님에게 대해서 너무 참 목석 같은 자입니다. 나도 이와 같이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자로 나를 만들어 주시옵소서 당신이 만들면 나도 이런 미가 있어서 당신을 잘 영접하고 대접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전기를 읽어 보고, 또 어떤 사람의 모든 행동된 그 소식을, 그 소식을 들어 볼 때에. 그 사람됨을 들어 볼 때에 양식이 된다 그말이오 하나 예를 들면은. 우리 반사인데. 지금 아직 멀었습니다. 겨울이 깊은 겨울이 돼 가지고서 막 그때 추워서, 되게 추워서 그때, 강추위인데 그때부터 네시에 나가요. 네시에. 반사가 주일 아침이면 네시에 나가요. 나가 가지고서 어두우니까 가 가지고 그 집에 갔다가, 가서 문을 두드릴라 하다가 또 실례될까 싶어서 또 나와서 또 이래, 또 죽발쓰고 앉았다가 또 이래 가지고 또 이라다가 이랬는데, 저거 형제 둘이 요래 딱 요래 옆에 붙어 가지고 요래 가지고 앉았으니까. 새벽에 모두 개를 내 놓습니다. 내놓는데, 커다란 이거 모두 뭐 도사인가 뭐인가 큰 개들이 아주 뭐 뭐 그 아이들 한 두 몫이나 되는 개가 이래 가지고 있는데 우 쫓아오더래요. 얼마나 겁이 났던지. 그래 가지고 이래 가지고 막 오그라져 가지고 이라면서 둘이 거석하면서 '주여'하면서 뭘 생각한게 아니라 '다니엘은 사자가 왔는데 뭐 사자가 와도 그랬는데 이거 뭐이라?' 사자를 생각하고 다니엘을 생각하고 힘을 얻어 '주님이 나를 지키시는데 이것이 뭐 어짤 거냐' 이라니까 두려움이 하나도 없더래요. 두려움이 하나도 없어 그저 '주님이, 주님이여 날 지켜 주시옵소서. 주님이지 키시는데 내가 두려워하는 이 죄를 회개합니다. 주님이 날 지키시는데 전능하신 그 보호를. 그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다고 만날 입으로는 말 하지마는 주님의 전능의 능력을 내가 의심했습니다.' 이 죄를 회개하고 하니까 두려움이 하나도 없는데, 회개하다가 보니까 그 개가 옆에 와 가지고 떡 기대 앉았더래요. 춥다고. 개란 놈이 떡 와 가지고, 옆에 와서 뭐 앉았으니까 그 도사가 와서 이래 보듬고 앉았으니까 얼마나 뜨시겠소? 그래 감사를 하고 떡 눈을 뜨니까 그 개가 그만 달아나 버리더래요. 그래 가지고 했다는 고 말을 들었어.

 

고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은 거창 집회가 가지고서. 심장 판막증에 걸렸는데 크거는 우리 한국 나라에서는 치료하는 길이 없어요. 아직까지 의술이 미달돼서. 지금은 있는지 모르겠어 그랬는데, 그때 학교에서 원첨 모범 학생이고 하니까 하교에서 광고를 해 가지고서 '이 학생이 이런데 아까운 학생이니까 우리 학교에서 모금을 해 가지고 미국에 보내서 수술을 하도록 하자' 방송국 신문 기자 전부 다 동원해 가지고서 이제 그날 월요일날. 월요일날 그날 주 모아 가지고 회의를 해 가지고 방송하고 신문에 내고 이래 가지고 모금 운동 하려고 하는 월요일 그 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그날이 거창 집회 시작 하는 날이라 그말이오. 시작하는 날이라. 이러니까 그 아이가 있다 가서 '뭐 나아서 유익할 거는 하나님이 낫아 주시지 남한테 구걸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보금해 가지고. 나는 그런 거는 싫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만 못해요?' 이라면서 인제 철통같이 학교 선생들은 그런 줄 알고 기다리고 지금 그 시간 돼서 이제 오라 하고 오라 하면 좋아서 기뻐 뛰어올 줄 알았는데 오라 하니까 집회 가고 없어. 이러니까 그 선생들이 있다 가서 원망을 많이 했지요. '종교는 아편이라. 종교는 아편이라. 이 어린 아이들을 얼마나 꼬아 놨든지 이렇게 지금 힘을 써 가지고서, 우리 한국에서 치료 못 할 난치병을모금해 가지고 미국에서 치료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꼬아 가지고 가 놨으니' 온 학교 교장과 전부 학생들이 다 분발했다 말이오. 분발했는데. 그때 갔다 와 가지고서 그만 그 집회때 심장 판막증이 완전히 나아 버렸다 말이오. 완전히 나았어. 와 가지고 보니까 평안하거든. 평안한데. 그래 '이놈 너 와 그랬노?' 이래 야단을 치니까 '요번에 집회 가서 하나님이 낫아 주셔서 다 나은 거 같애요' '낫기는 뭐 나아?' '뭐 아무 숨도 가쁘지 안하고 평안하고 밥맛도 있고 괜찮아요.' '가 보자.' 그러고 병원에 갔다 말이오. 진찰해 보니까 쏵 다 나아 버렸어.

 

주님은 당신을 어떠한 주님으로 믿는 대로, 제 조작배기로 제 마음대로 믿는게 아니라 나는 이런 하나님이라, 신구약 성경에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하지 않는 이 권위있는 진실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선포해 놨기 때문에 이 주님으로 믿는 대로 그 사람의 하나님이 되어 주십니다. 안 믿는 자에게는 의심하는 자에게는 그대로의 하나님이 됩니다.

 

그런고로, 이 주님은 얼마든지 연구해도. 사람이 모두 요새 다 관광 간다고 야단이고 단풍 구경한다고 야단인데, 구경좋은 구경 있소. 좋은 구경 있어. 참 좋은 구경 무슨 구경? 인간. 인간 구경이 제일 좋소 인간 구경이 좋은 것은 인간의 그 인격 그 인품, 모든 사람들의 신 불신자의 그 모든 마음의 구조 행위의 구조 그것은 참 그까짓 거 그걸 인간을 구경하다 보면은 무슨 금강산을 간다 해도, 나는 금강산에도 안 가 봤고. 거창 있지마는 해인사도 나는 구경 안 했고 부산서 삼십 삼 년째 나지마는 이제, 뭐꼬? 경주도 안 가 봤고 좋은 데 안 가 봤소. 가 보나 안 가 보나 그까짓 거야 환하이 성근 것 볼게 뭐 있어야지? 인간 구경하면 인간 마음의 구조가. 인간도 그 사람 구경하면은 그만 시간 가는 줄 몰라. 그 사람의 이력이나 행위나 그 인간 구경이 뭐이냐 하면 사람의 성자들의 성녀들의 전기입니다. 그 전기를 읽는 것은 그사람 인간을 구경하는 거라. 그 구경 하면 얼마나 구경이 좋소. 쾌하고 기쁘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보다도 제일 좋은 구경이 있습니다. 제일 좋은 구경이 뭐이지요? 제일 좋은 구경이 무슨 구경이라요? ? , 하나님 구경. 하나님 구경이 좋습니다. 하나님은찾아 보니까 또 새 하나님이 되고 또 새 하나님 되시고 또 알고도 또 깊이 보니까 또 새 하나님 또 하나님, , 더 믿어야 되겠고 믿어야 되겠고 의지해야 되겠고 더 바라봐야 되겠고 더 섬겨야 되겠고 더 바쳐야 되겠고. '주님, 아무래도 생명을 나는 주님에게 바치기를 평생 원합니다. 주님이 날 이와 같이 사랑하셨으니 나는 평생 주님에게 노엽게 한 거밖에 없으니까 이 마지막 폐물 생명이나마 주를 위해서 바칠 수 있는 이 은혜를 주시옵소서' 하는 것이 성도들의 최종적인 소원이라 그말이오.

 

이런데, 이 주님으로 더불어 동행하는 거, 주님보다 더 사모해서 좋을 게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디서든지 주님을 사모하면 거기에서 뭐이 나오나? 주님을 사모하면은 첫째 회개가 나옵니다. 주님을 사모하면 ', 이게 틀렸다 이게 틀렸다.' 더 어려운 거는, 내게 암병 같은 것이 당장 수술 돼 버려. 수리가 돼 버려. 또 주님을 사모하니까 든든함과 평안함이 옵니다. 주님을 사모하니까 겸손이 옵니다. 주님을 사모하니까 어떤 절망에서도 소망이 옵니다. 주님을 사모하니까 강하고 담대함이 옵니다. 주님을 사모하니까 욕심이 생겨집니다.

 

이러면? 자꾸 이래 가지고 이래 되는데, 어제 주님을 대접하는 거 간추려서 몇 가지 말했지요? 다섯 가지 대접하는 걸 말했습니다.

 

내가 어제 어떤 반사에게 물었어, '하나님 대접하는 데 첫째 대접이 뭐이지?' 깜깜해. 깜깜해.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 너 깜깜하다.' 재미가 없다 말이오.

 

교제를 해도 재미가 없어. 재미가 없어서 '너 깜깜 하다. 너 먹통, 먹통이로구나. 너거 구역장한테 가서, 가서 물어 봐라' 내 이랬다 맡이오.

 

이라니까 나중에 와 가지고서 얼마 있다가 언제 물어 봤는지 물어 가지고 뭘 이렇게 말을 주 대는데 맞았어. '이제 예쁘다.' 내가 그랬어. 전화하다가 뭐 아는가 싶어 물어봤어.

 

다섯 가지 인데, 첫째 주님을 대접, 제일, 주님이 제일 고급 요리로 여기시는 것이 뭐입니까? 뭐이요? 첫째가 뭐이요? 가지수만 알고 모르며 되는가? 첫째가 뭐이요? ? . 모든 존재가, 영계나 물질계의 모든 존재는 우리 주님의 것이다. 우리 주님의 것이다. 모든 존재는 우리 주님의 것이다. 요것을 아는 것 같으나 고거 믿는 사간이 심히 귀합니다. 천에 하나 있거나 말거나 그렇습니다.

 

요거는 다 주님의 것인, 주님의 것임을 안다고 하지마는 안다는 것이 어데까지 아는지? 알면은 그 마음의, 마음이 아는 자가 돼야 되겠고, 지식으로 아는 그까짓 거 거짓 부리로 하는 거 아니고 미음이 아는 자가 돼야 되겠고, 마음이 아는 자가 되면, 벌써 모든 존재가 나의 사랑하시는 주님의 것이다 하는 요걸 알 때에 그 사람의 평강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고 그 사람은 아무도 자유할 수 없는 이런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거짓부리가 아니고 참되게 알 때에 또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인 것을 알 때에 피부가 느껴져 피부에 느껴져. 또 행동에 나타나.

 

이러니까, 안다고 하지마는 나는 참 내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인 것을 안다고 할 때는 내가 몰랐어. 안다고 할 때는 모르는 거라. '내가 안다고 했는데 요 면을 보니까 내가 몰랐다. 나는 요거 참말 거짓부리 외식이지 나는 참 모르고 있구나.' 모르고 있는 줄 알 그때가 오히려 아는 부분이 많은 때라 그말이오.

 

알아 듣겠습니까? 이러니까, 이제, '이제 다 알았다.' 저는 몰랐어. '요 면을 보니까 나는 몰랐네. 요면을 보니까 그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부인하고' 있었소. 내가 멀리는 거 보니까 그러면 내가 무슨 염려하는 거 보니까 그라네. 사람을 접촉할 때 보니까 그러데' 이래서, 아닌 것을 발전할 그때가 그래도 제법 되어져 가는 때입니다.

 

그러면, 이게, 여러분들이 가서, 이거는 여러분들의 양식이요 주님의 양식입니다. 가 가지고서 뭐 하룻밤 밤새도록 이 하나만 해도 먹으면은 배가 부르고 우물 우물 하면은 얼마든지 거기에서 나옵니다. 영양이 얼마든지 나와요.

 

천상 천하의 모든 것은 나를 대속하신 주님의 것이다. 주님의 것이다. '사랑하는 독생자도 주었거든 모든 것을 은사로 너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그 성구는 벌써 지나가 버렸어. 모든 것이 주의 것이라고서 인정하는 사람은, 인정하는 사람은 그런 성구가 상관이 없어. 그 성구를 벌써 초월했다 그말이오.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것이라.

 

, 주님의 것이라면, , 아무리 아이가 쇠근이 없어도 말이지요, 떡 거석할 때에 아주 좋은 차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차 그거 좋다 좋다' 이라니까 떡 아이가 있다가서 공연히 자부심이 나옵니다. '아 이거 참 좋다. 이거. 뉘 차고? 뉘 차고?' 하니까 그 아이가 얼른 있다 가서 '우리 차라. 우리 차라' 아주 자랑스럽게 우리 차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지 안해요? 어린 아이들도 그걸 안다 그거요. '. 이거 참 이 집은 참 좋다.' 모두 좋아서 '어디 이런 집이 있노? 참 좋다' 이라니까 조그마한 게 있다가서. '참 좋다' 이라니까. '이게 뉘 집일꼬?' '우리집이라, 우리 집이라. 우리 집이라' 하며 이럴 겁니다. '우리 집이라' 이럴 거라 말이오.

 

? 모든 존재를 다 주님의 것인 것을 안다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이렇게 피부에 나타나지 않느냐! 왜 이 심령에 나타나지 않느냐! 왜 이렇게 자기의 부요의 그 마음에 나타나지 않느냐! 이것이 다 외식이고 거짓부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기 때문에 어떤 성자가 하는 말이 '우리는, 우리가 서서 있을 자리는 죄인 자리에 서서 있다.' 그 사람이 남한테 말을 듣고 하는 사람이지 제가 하는 사람은 아니라. 죄인 자리에, '우리가 서서 있을 든든한 자리는 죄 있는 죄인의 자리가 우리의 설 든든한 자리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이 시간에도 ', 내가 요 죄가 있다.' 요 죄를 주님 앞에 발견해 가지고 자복하고 죄를 발견해 가지고 자복하고 죄를 발견해 가지고 자복하고, 죄를 발견해 가지고 자복하고. 죄를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죄를 발견해서 자복하고 죄 속에 있는 고때가 피난처요 고때가 안정처입니다. 고것이 행복된 곳이오.

 

죄가 없는 사람, 죄가 없는 사람, 죄 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죽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산 사람이라면 자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자는 사람이오. 그 사람이 깨어 있지 않는 사람, 깨어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자기를 죽이는 원인이 되는 그것을 볼 수 있지. 보니까 ', 이놈이 나 죽일 원인이로구나. 이게 나 죽일라 하는구나' 내 영을 못 죽여도 내 기능은 죽이지 않습니까? 이것을 발견해서, 자기 죽이는 것을 발견해서 죄인 중에 있는 것이, 죄인 자리에 있는 그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이요, 무능한 자리에 있는 그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거역한 자리에 있는 그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의심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깨어 있는 사람이요, ', 요 면을 보니 나는 하나님을 의심하는 자다. 요 면을 보니 내가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첫째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 것을 내가 아는 거 내가 인식하고 있는 거, 하나님의 것인 것을 내가 확신하고 있는 거 고것을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십니다.

 

? 인간들이 왜 저주 받아 가지고 이와같이 땅 위에서 고생을 당하고 있느냐? 모든 피조물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여기에서 저주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공로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이렇게 아주 무쇠덩어리로 가지고서 딱 눌러 놨기때문에, 무쇠 소두망으로 눌러 놨기 때문에 뚫고 올라오지를 못하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뚫고 올라오게 됐소. 우리는 이 모든, 모든 세계가 이것은 다 각각 다 누구의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뚫고 을라와서 '하나님, 우리 주님의 대속하신 우리 주님의 것이라. 그분이 지었고 그분이 지금까지 보존하고 계시고, 지금도 관리하고 계시고 그분이 지금도 주권적으로 모든 걸 운영하고 계신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됐다 그말이오. 이것을 알고, 이런. 이런 것을 알고 이런 것을 앎으로 말미암아, 아는 마음으로 살고, 아는 정신으로 살고, 아는 지식으로 살고, 아는 피부로 살고, 아는 몸뚱이로 살고. 아는 행동으로 사는 이것이 주님을 첫째 대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뭐입니까? 이것은 달리는 잊어버려져요. 십일조를 생각하면 쉬익요.

 

십일조.

 

둘째는 뭐이요? 내게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이 내게 주신 주님의 것이 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내것이 아니라 주님이 당신의 것을 내게 주신 내가 가지고 있는 주님의 것이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을 내게 주신 것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당신의 것이다 요렇게 아는 거 요걸 알면 사망이 못 들어와요. 요거 알면 죄가 못 들어와. 그 요거 알면 마귀가 들어오지 못해. 침노는 못 해요. 주님의 것이다.

 

그러면, 이것은 주님이 나에게 주실 때에 규범이 있었다. 그 범위를 넘어가지 못한다. 선악과가 그거라. 선악과 모든 거 다 먹을 때. 모든 거 다 먹구로 다 내뒀으면은 몰라요. 에덴동산의 과실 먹다가 떡 하나 닿으니카 '이거는 못 먹는다.' '? 못 먹어? 못 먹어? 이게 뭐인데?' '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인데 네가, 이거는 못 먹구로 하셨다. 이걸 먹게 하셨다.' 거기에서, 선악과에서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것을 거기에서. 고게 탁 스톱이 됐다 말이오. 거기에 탁 스톱이 돼 가지고서 거기에서 ',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다. 이런데 고 다음에 따른 조건이 뭐이냐? 하나님이 먹으라는 것은 먹고 먹지 말라는 것은 안먹어야 된다.

 

고다음에 조건이 뭐이냐? 먹지 말라는 거 먹으면 죽는다.' 바로 그것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의 근거입니다.

 

그래서 둘째는 당신의 모든 것을 다,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인데 당신의 것을 내게 주셨으니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당신이 내게 주신 선물이 요 내가 가지고 있는 당신의것이다. 이런 데에는 내가 얼마든지 내 자 유 있는게 아니라 그 수 권 범위가 있다. 당신이 주실 때에 규범이 있으니까 그 범위 안에서 해야 되지 그 범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

 

이래서, 이것을 이래 써라 저래 써라 하는 그 규칙이 있기 때문에 규칙대로 써야 되고 또 한계가 있으니 그 한계 안에서 해야 되지 그 한계를 넘으면 안 된다 하는 그 조건을 주신, 그 조건을 주신 것인 것을 자기가 깨닫고, 하나도 여기에 대해서는 나는 자유가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이 내게 주신 다 내것인데, 주님이 나에게 주신 보관 시킨 것인데 받을 때에 조건이 있다. 하나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가지고 있지마는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눈도 내 마음대로 못 하고, 귀도 내 마음대로 못 하고 입도 내 마음대로 못 하고, 몸도 내 마음대로 못 하고 돈도 내 마음대로 못 하고, 크고 작은 모든 거 내 마음대로는 못 한다. 그분이 나에게 규정을 주는 그분이 쓰라면 쓰고 먹으라면 먹고 먹지 말라면 안 먹고, 주님이 하라는 대로 그분의 규칙과 그분의 그 범위 내에서 하지 그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하는 요것을. 자기가 인식하고 있는 것이 요것이 셋째로 주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대접하는 거.

 

그러면 일호 대접 이호 대접 삼호 대접, 그 다음에 사호 대접은 뭐이라고 했어요? ? ? ? ? , 고다음에 두 가지 있는데, 사은의 대접 고거 헌물이라 말이오. 사은의 대접. 이제 모든 것을, 모든 데에서 내게 주신 몸뚱이도, 총명도. 지혜도. 재물도, 권세도, 지위도, 가족도 내게 주신 모든 것은 당신의 것인데, 이 모든 것은 뭐하라고? 이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 감사하라고. 감사하라고. 뭐 있어야 감사하지? 이 모든 것은 감사에 쓰고, 이 모든 것으로 감사를 건설하고, 감사를 성장시키고, 감사를 양육시키고, 감사를 숙달시키고 이 모든 것을 감사에 쓰도록 감사를 성장케 하기 위해서 하신 것이니 요것을 자기가 갖추어 가지고 있는 것이 네째 대접입니다.

 

고다음에 다섯째 대접은 뭐입니까? 머리 떼서, 머리 떼서 드리는 거, 머리 떼서 모든 데에서 연습하는 '아 여기에서 뭐 이런 거 저런 거 많은 것 있으니까 요것보다 요것보다 요것을 앞세워야 되지. 요것보다 요것을 앞세워야 되지.

 

요것보다 요걸 앞세워야 되지.' 보다 보다 보다 보다, 나중에 보다 보다 모든 것보다 주님을 앞세워야지. 주님을 먼저 생각해야 되지. 주님을 제일 높여야 되지. 주님을 위해야 되지. 머리 떼서, 머리 떼서, 고것은 모든 존재 가운데에 머리, 또 모든 성취되는 떼에 제일 처음 되는 거. 제일 처음 되는 거, 또 모든 가치 중에 제일 높은 가치.

 

요렇게, 하나님을 제일 높으심을 높으심을 깨달아서 하나님을 제일 높여서 이렇게 섬기는 고 일을 아무것도 없으면 못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제일 높으신 분이신 것을 내가 차차 섬겨 가면서 알고 또 대접해 가고 요걸 숙달해 가고 이래서 하나님을 높여 봐야 알지? 높여 봐야 아는데 뭐 있어야 높이지? 내게 줬기 때문에 높여. 눈이 있기 때문에 눈으로 높일 수 있다 말이오. 눈으로 높일 수 있어. '내가 보는 거 많은데 내가 이것을 바라보는 것보다 주님 바라 보는 것이 더 앞서야 되지' 이래서 요번에 전도지에 믿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은. '밤낮으로' 뭐라 했습니까? '회개의 눈물을 강 같이 흘릴지어다.' 또 하나는 '주님의 진노와 주님의 징계를 보는 눈동자를 쉬지 말지어다.' 요것을 우리가 전도지를 박아 가지고 믿는 사람에게 인사를 요거 주면서 인사하자 하는 것으로써 우리가 작정을 하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주 위급한 때입니다. 공산주의 저것이 위급이 아니오. 공산주의 저거는 위급이 아니리라 생각이 됩니다. ? 생각이 되는 것은 너무 우리 이 남한에는 어린 학생들이 많은데 이게 겨우 지금 인제 움트는데. 움이 트는데 공산주의가 와 버리면, 무신론주의가 탁 덮어 버리는 날이면 이게 다 다 몰사해 버리기 때문에, 몰사하기 때문에, 마치 은상에 움이 새움이 터서 움이 이게 올라오는데 뜨거운 물 찌트리는 거같이. 뜨거운 물 찌트리면 그게 다 싹 삶겨 죽을 터인데, '주여, 이 남한에 움싹이, 온상에 움싹이 나는 거와 같이 새움이 색쪽색쪽 터 오르는 데 어떻게 공산주의라는 이 뜨거운 팔팔 끓는 물을 찌트릴랍니까? 이거 너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너무 하지 않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런 것으로 당신의 보배를 선출하지마시고, 당신의 뜻이라면 무슨 국내에서 무슨 이런, 마구 도매로 죽이는 이런거 하지 말고 무슨 그런 것을 해 가지고서 시험하시면, 왜정 말년에는 그런 일이 없어도 신사 참배 가지고 얼마든지 그래 하지를 안했습니까? 6.25때도 그때에 그래 가지고서 다 또 하지를 안 했습니까? 이런 것으로써 연단하시고, 공산주의로 연단하시면 아주 움싹에 팔팔 꿇는 물을 찌트리는 거와 나는 같다고 봅니다. 그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자비에 합당합니까? 우리 무지한 생각으로는 너무 잔인한 거 같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에게 대화하면서 의논하는 기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것은 지나갈 것 같아요. 지나 갔고 그래서, 얼마 전에 제가 말하기를 '아무래도 국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그런 것은 지나 가는 것 같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라고 난 다음에 얼마 지나고 나서 개천절이 시작했습니다. 개천절 시작했는데, 그날 방송 보니까 개천절에 방송이 나는데 모두 말하기를 '이 단군 신사는 뭐' 누가 말하기를 '이렇고 이렇고'다 말해서, 이거는 곰하고, 곰하고 천사하고 그렇게 둘이 동침해 가지고 생겨난 것이 단군이라 이래 가지고서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근본은 그런 신화의 실제를 말을 합니다. 말을 하지마는 고거는 잠깐이고 나중에 없어질 거라 말이오.

 

고렇게, 요번에는 그래 방송을 했어요. 나는 못 들었는데 뉘가 듣고 그래 말해요. 그라고 그 다음에 '이 단군 신을 우리가 어쩌든지 국민의 정신 통일을 위해서 단군 신에 신사 참배를 해야 됩니다.' 이렇게 말하더마는 또 나중에는 나오기를 '우리가 남북 통일도 우리가 이 단군 신에게 빌어서 남북 통일을 해 달라고 우리가 정성껏 빌어야 되겠습니다.' 요 말이 나왔다 그말이오. 요 말까지 나왔어요, 요번에 개천절에. 개천절이 내나 뭐 시월 언제가? 그게 나왔어요.

 

이러니까, 그래 내 마음에 '' 그전에는 그런 말이 없었어요. 없었는데, ', 이것이 벌써 전국적으로 방송이 되니까 이거 하나님이 코스를 돌린 것 같다.

 

방향을 돌리신 것 같다' 그라면서 그날 밤에 보니까 저 충혼탑이라고 저 탑을 하나 해 놨는데 '부산 모든 사람들이 저기 가서 죽을 것이다. 저게서 저래 가지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서 죽을 것이다' 이래서 내가 그때 아프고 난 다음에 내가 그게 생각이 나 가지고서, 걸음도 잘못 걸으면서 차를 타고 올라가 가지고 기어서 내가 거기 을라가 봤습니다. 올라가 본 것은. '앞으로 이것이 시작해 가지고 여기에서, 여개서 이거 자유로 절 안하고 이래 쑥 지나갈라고 하면은 생명을 내놓지 안하면 지나갈 수가 없을 터인데 오늘에는 얼마나 어려운고 보자.' 가서 가서 이래 쭉 한번 돌고 왔습니다. 돌고 오면서, '오늘에는 여기에 자유가 있는데 이 자유가 언제 막혀서 여기에 절하지 안하면은 용납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언제 올란지. 쉬 다가올란지도 모른다' 이라고 왔는데, 요번에 개천절 때에는 보니까, 그전에는 평생, 이제까지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뭐 그날은 뭐 그거 뭐라 했노? 꽃탕이라 했나? ? ? 불꽃놀음이라 했는가? 나는 그거, 불꽃, 인제 알았어. 뭐이 꽝꽝 하는데 '저게 어디서 하노?' 보니까 꽝꽝 하는데 내 생각에 '아마 저게 뭐 충혼탑이니 뭐이니 단군탑이니 그런 데서 하는 거, 단군신이니 그런 데서 하는 거 아니가' 이랬는데, 여기 가까이서 그래. 보니까. 저 위에 공중에 보니 거기 있어요. 보니 산복도로에서 하는 것 같은데, 모두 '산복 도로에서 튀웁니다.' '야 산복도로에서 튀우는게 아니라 충혼탑에서 튀울 거다.' 나중에 보니까 충혼탑에서 자세히 보니까 튀워. 그게 벌써 그거 지금 자꾸 운동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라 그말이오.

 

어쨌든지 하나님께서 마음과 목숨과 힘과, 힘은 활동을 말해. 힘과 뜻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나 안 사랑하나. 가짜이가 진짜이가 하는 것을 시험하는 때가 온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지금부터 당신을 친히 교제하고, 당신을 사모하고, 당신을 놓지 말고, 어떤 데에서? 그래 어떤 성도는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주님이여, 장기간의 고문고행 가운데서도. 주사를 놓고, 독약을 먹이고, 독침 주사를 놓고 어떻게 한다고 해도, 주님이 약속하시기를 독한 것을 먹으나 상하지 않겠다고 하시지 안했습니까? 고문과 고형에도 거기에서 참고 견디고 이겨, 이기되 기쁨이 충만하고 모든 피부에까지 희락이 충만해서. 그 기쁨을 장기간의 고문과 고형 어떤 것이라도 해하지 못하고 다만 주님으로 인해서 주님을 사모함으로 만족하고 주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생각하고 주님의 약속하신 약속을 바라봄으로 든든해서 기쁨과 즐거움과 평강이 넘쳐 그것을 아무리 없애 볼라고 해도 없애는 없는 자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주께 있사오니 이것을 만들어 주시옵소서,' 불란서 콜에서 컨토사라 하는 그 성자는 살을 찢어도 그 기쁨의 안면이 요동치 안하고 불로 지져도 안 되고 어떻게 피부를 뜨도 안 되고 아무래도 그 얼굴에 기쁨이, 충만한 기쁨이 없어지지 안해서 나중에는 '이놈, 네가 아무리 네가 기뻐해도' 이 기쁨 없애 볼라고서, 그 사람의 그 기쁜 안면을 없앨 수가 없으니까 마지막에는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이놈 네가, 안 됐다. 할 수 없다' 모가지를 끊어서 죽여서 기쁨의 안면이 끝이 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돌조산 속에서도 기쁨과 광채가 충만한 스데반의, 스데반에게 주님이 그 안에서 역사하니까 될 수 있었는데, 주님이, '온 피조물이 다 들어서 고문과 고형하고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당신을 그런 걸 지으신 분이기 때문에 당신이 내 안에 계셔서 역사하시면 그런 걸 능가하고 남음이 있는 그런 능력을 당신이 가지고 있사오니 해 주시옵소서.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해 주마고 하지 안했습니까? 이걸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당신이 해 줘야 됩니다. 하는 계약으로 결정을 짓는 이런 것을 날마다 기도하는 것이 성도들의 기도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이제 하나님 대접하는 거 다섯 요것을 새기면 모든 생활이 거기에서 살아날 것입니다. 광범하게 이 전체를 알면 쉽지마는 한 지엽적으로 편벽되게 일방적인 지식 가지고는 이기지 못합니다. 전체를 다 총괄한 지식이라야 이기는 것이니 요 다섯 가지를 생각하고, 인간의 대우에 대해서는 몇 가지라고 말했습니까? 인간의 대우 몇 가지? 두 가지 인간의 대우 두 가지. 두 가지. 씨와 양식을 구별해서 씨는 심고 양식은 먹는 거 그것이 인간 대우, 하나님 대우 아니오. 인간 대우요 또 하나는 그 일을 거듭하고 거듭하고 거듭하고 자꾸 거듭하면 자꾸 확대해져. 자꾸 커져. 그러면, 새로 주시는 것온 배나 더 많이 주고 삼 배 십 배도 자꾸 이래 주시는데 그 주시는 것은. 네가,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버린 자는 여러 배 백 배 준다. 백 배 주는 것은. 백 배 주는 거는 저 먹고 살라 했소? 백 배 가운데는 씨와 양식이 있소 없소? 백 배에 씨와 양식이 있어, 백 배 주시는 거 씨와 양식을 구별해 가지고서 그렇게 하면은 나중에는 삼백 배 사백 배 천 배도 줄 수가 있다 그거요, 이걸 자꾸 자주 하는 것이 자주 하는 것이 인간 대접이요 피조물 대접이라. 주님이 인간을 대접하려고 오셨습니다.

 

이렇게 하면 주님의 제자가 되기 때문에 위로 하나님 섬기는 거, 하나님 섬기는 것을 이렇게 다섯 가지로 하고, 그 다음에는 인간에게 대해서 두 가지 이와 같이 하면은 주님이 기뻐하셔서 그 자본을 얼마든지 주십니다. 새 자본으로 주신다는 것.

 

이거 있을 때에 이거 주님의 뜻대로 씨는 심고 양식은 먹으면 하나님이 새 자본으로 주시는 이걸 믿지 못하는 자는 씨를 심으지 안하고, 제가 먹을라고 작정할것이고 또 양식 준 거 이거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거기에서 인색해 가지고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마는 하나님의 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얼마든지 뜻대로 다 내놓으라 하면 다 내놓고 다 심으라면 다 심고 양식을 이라고 고것을 구별해 가지고 이와 같이 하는 자는 당신이 새 자본 주신다는 것을 믿는 요 믿음에서 고게 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이라.

 

요 믿음이 귀해. 하나님께서, 여기에 귀합니다. 요걸 보십시오. 제가 뭐 믿는다고 입술로 암만 그래 쌓아도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하도 그래 쌓으니까 '네가 믿는가 안 믿는가 한번 불 시험을 해 보자.' 시험해 보니까 전부 불타 버리고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시험은 인간이 모르기 때문에 인간에게 모르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허약을 알리기 위해서, 진 줄을 알리기 위해서 하는 것이오.

 

왜정 말년에,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로 말미암아 진짜 가짜가 나타나지 안했습니까? 그러면. 그런 시험에 안 졌다고 해서, 그 시험을 받지 안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모릅니까? 안 받으면 그 사람은 된 줄 알고 갔는데 가보니까 헛일이야. 그런 시험에 진 사람은 ', 나는 졌기 때문에' 이런 자인 줄 아니까 새로 준비할 때가 있지요.

 

그러니까, 실패할 수 있는 실력을. 세상에서 실패를 보는 것이 복입니까, 실패할 그런 자가 실패하는 것을 모르고, 실패의 자체라는 것을 모르고 가는 것이 복입니까? 그러면, 시험을 당하는 것이 복이요. 시험을 당하지 않는 것이 복이요? 뭐이 복이요? 시험을 당하지 않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그러면. 시험은 자타가 자기를 알게 하는 시험이요 또 하나님을 알게 하는 시험이오. 이러니까 시험을 당하되 자주 당하고 많이 당하고 여러 차례 당하고 점점 높은 시험 최고의 시험을 당하기를, 당하는 것이 복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원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봐. , 이렇게 손은 들어 놨는데, 참 이래 되면 참 복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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