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1986. 3. 22. 토새벽

 

본문: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담대하다는 말은 어떤 사람이 되면 담대한 사람이 되는가? 담대한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약을 믿는 사람은 자연히 담대한 사람 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계약을 믿지 않는 사람은 담대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에게 있지 피조물에게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을 두려워하느냐? 이 피조물이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는 그걸 보고서 두려워합니다. 원자탄이 떨어지는 거나 폭탄이 떨어지는 거나 그런 걸 보고도 두려워하는 것도 그게 내나 물질인데, 물질이 이런 형태로 움직이고 저런 형태로 움직일 때에 사람은 두려워하기도 하고 기절도 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피조물이 움직이는 거 보고 두려워하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약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에게 주권되어 있어서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외에는 두려워할 것이 없고 또 하나님 외에는 바라볼 것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고 구할 것도 없고 믿을 것도 없고,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또 높이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하고 그분에게 모든 걸 맡기기도 하고 또 그분의 계약이 있기 때문에 기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하다는 사람은, 사람은 다 땅 위에 이런 거 저런 거 움직임으로 인해서 두려워하지마는 그 움직임으로써 두려워하는 그 두려움도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느냐? 죽기를 다 무서워서 그래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 여게 말하기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러니까, 우리가 차차차차 믿음이 더해지면 땅에 소망이 없고 땅의 것보다 하늘이 좋고 또 모든 피조물보다 주님과 같이 있는 게 좋기 때문에 지금 주님과 영적으로 같이 있는 이것도 좋지마는 그보다도 더 좋은 것은 주님이 신인 양성 일위를 가지고서 계시는, 십자가 못 박히시기 전에 계시던 그 주님 같은 그 주님을 만나 가지고 같이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거요.

그러니까, 죽음 이편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자연히 세상에 미련과 애착을 가지고, 세상이 흔들릴 때 자기도 흔들리게 되고 죽음 너머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이 이렇게 저렇게 흔들림에는 상관이 없고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잘못될 때 자기는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9절에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그러니까 이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까 그저 내 생사 화복과 흥망 성쇠가 다 이분에게 달렸기 때문에 이분을 사귀어서 이분의 뜻을 맞춰서 이분을 기쁘게 하고 영화롭게 하고 이분 한 분 만을 잘 사귀어서 교제할라고 그렇게 한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러니까 우리는 다 주님이 심판하셔서 우리에게 보응시키는 고대로 우리는 영원을 받게 되기 때문에 그분을 우리는 기쁘시게 하고 그분만을 상대해 살게 되고 또 그분에게 모든 것이 주권되어 있기 때문에 그분만을 상대하고 또 그분에 소망을 가지기 때문에 모든 것보다도, 피조물과 같이 있는 것보다도 그분과 같이 있는 게 더 좋다 하는 그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에도 한 주일 더 또 우리가 유치반 중간반에게 이 공과를 한 번 더 가르치기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가르치는 데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거한다 말은 세상에 있는 걸 말하고 떠나는 것은 세상을 떠나는 걸 말하는데 세상에 있든지 세상을 떠나든지, 세상에서든지 천국에 가서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그것만 힘쓴다 말이오. 여게 힘쓰노라 하는 것은 뭐 첫째로 힘쓴다 둘째로 힘쓴다 하는 그런 뜻이 아니고 힘쓴다는 이것은 무슨 뜻을 말했느냐 하면은 이것만 전력한다 말이오. 힘쓴다 말은 여게도 딴데도 힘쓰지마는서도 여게도 힘쓴다 그말이 아니고 여게 힘쓴다 말은 여게만 전력한다.

이것만 전공을 한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모든 수고하고 노력하는 것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그것을, 우리가 그것만 한다 말이오. 여게는 전력한다, 전심을 기울인다 하는 그 전심이 온전할 전자 전심이 아니고 온전할 전자 그 전력이 아니고 여게는 전문 전자 입니다.

그것만 한다 그말이오.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만 한다 하는 것인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것을 이 학생들에게 세 가지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약, 하나님은 주님이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 하면은, `하나님' 하면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또 ‘주님’ 하면은 어찌 되느냐? `주님' 하면은 또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일체를 부르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라면 거기는 똑똑히 성부만을 말하는데, `하나님 우리 아버지’ 그러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 할 때는 성자는 어찌 됩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라고 하면은 하나님 아버지만 이렇게 상대하니까 성자와 성령은 어찌 됩니까? 녜, ‘우리’ 할 때 벌써 그때 성자와 성령은 나와 하나가 돼 가지고 그래 우리라고 복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라는 그 복수에는 성자와 성령과 내가 진리로 하나 돼 가지고 있을 때만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지 그리 아니면 아버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여게 대한 확고한 지식을 가지지 안하면, ‘아버지’ 부르면 아들이 혹 빠져 버리면 안 되겠다. 아버지와 아들을 부르면은 또 성령님이 빠지면 안 되겠다. 이러니까, 아버지 한번 불러야 되겠고 또 주님 한번 불러야 되겠고 또 성령님 한번 불러야 되겠고 이렇게 하게 된다 말이오. 그것도 아무 생각 없는 사람 있지만 생각 있는 사람들은 또 그렇게 하는데 그것도 오히려 예수를 잘 믿을라고서 하는 사람들이 그랍니다.

그런데, 그럴 것이 없어. 이제 ‘하나님’ 하면은 삼위 일체 하나님을 다 한목 부르는 것이고 또 ‘주님’ 하면은 이제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성자만이 우리 주님이 아니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가 돼야 우리 주님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라면은 아버지를 부르니까 거게는 아들과 성령이 빠지지 않는가?’ 거게는 ‘우리 아버지' 했었는데 거게 `우리' 하는 그 복수에 벌써 성자와 성령과 나는 진리로 하나가 돼 가지고서, 진리라 말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인데, 하나님 뜻이라 말은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이라 말이오.

그러면 예수님의 대속으로 하나됐다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세 가지를 말했는데,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약을 내가 믿는 것을 제일 기뻐하십니다. 둘째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약을 믿고 보니 나 할 일은 하나님에게 기도할 것뿐입니다. 나 할 일은 하나님에게 기도 할 것, 보니까 하나님에게 받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 그 받은 데 대해서 먼저 감사를 해야 되겠고, 감사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왜 감사하는 거 기뻐하는가?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셔서 내가 받는 거 그것을 내가 업신여기고 예사로 여기고 아주 헛되이 그렇게 여기는, 등한히 여기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제일 하나님께서 노여워하십니다. 그럴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뭐 주시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거는 그거 그렇게 소중히 여기지 안하는 그게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라 말이오. 주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까지 베푸셨는데 주님이 대속해 주는 것도, 주님이 뭐 대속도 주셨고 나를 또 창조도 해 주셨고, 주신 게 많은데 주님이 내게 주신 것을 그것을 아주 등한히 여기고 ‘그거야’ 이렇게 그것을 등한히 여기고 업신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나 같은 자에게 이래 주셨다. 이거 보니까 내가 존재한 것도 오늘까지 보존되는 것도 뭣도 전부 그분 아니면 안 된다.’ 하는 이것을 소중히 여기고 중하게 여기고, 그분 없으면 내가 없어져 버려. 그분이 아니면 내가 없어.

내가 있는 이 모두가 다 그분으로 말미암았어. 또 타락한 것을 구출하셔서, 구출하신 것도 그분으로 말미암았고 우리가 그동안도 하나님을 떠나서 실수해서 죽을 일이 많지마는서도 또 새로 소생시키고 새로 살린 것도 전부 그분으로 말미암았어.

그러니까, 그분이 나에게 이미 베풀어 주신 이게 뭐인가? 이것을 찾아 가지고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주님은 나에게 이런 것을 나에게 주셨다.’ 그분을, 주신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또 주님이 나에게 이런 것을 주셨으니 주님이 내게 주셨으니 이것을 아주 내가 업신여겨서 안 되고 소중히 여겨야 되겠다. 또 소중히 여기고, 주님이 이거 주신 것은 이렇게 이렇게 쓰라고 이런 일을 하라고 주셨기 때문에 내가 이런 일을 부지런히 하고 이 일을 소중히 해서 충성되이 해야 되겠다.

이 전부 감사하는 것은 주님이 내게 이미 베풀어 놓으신, 베풀어 놓으신 이 은혜를 생각하고 그분에게 감사하고 또 그분에게 감사하는 걸 입으로만 감사할 게 아니라 그 주신 은혜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그것이 또 그분을 대우하는 것입니다. 또 소중히 여길 뿐 아니라 그것을 주님이 주실 때에 무엇 때문에 주셨는가 그 주신 목적을 따라서 내가 충성되게 조심 있게 그래 하는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을 교제하는 것이 기도인데 기도 중에는 감사 기도가 제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중요한 기도입니다.

감사하고, 또 그라고 나니까 자연히 필연적으로 ‘이랬는데, 이런 주님 앞에 내가 이 면을 잘못했다. 저 면을 잘못했다. 이 은혜는 받아 가지고 헛되이 저버렸다. 이 은혜는 예사로 여겼다. 이거 이것 하라고 이 은혜를 주셨는데 내가 그것을 하지 안하고 가만히 묵혀 뒀다. 이거 그만 이 은혜를 쳐박아 뒀다.’ 이런 걸 자꾸 생각하니까 자연히 자복이 나온다 말이오. 그라다가 그분에게 순종치 못한 거 순종함에 부족한 거 그분을 어긴 거 자꾸 이런 것이 내게 떠오르게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복이 나온다. 필연적으로 자복, 그러니까, 또 내게 이런 사정 저런 사정이 있으니까 내가 무엇을 모르니까 그분에게 또 의논해야 되겠다. ‘이거는 지금 내가 사정도 이렇고 이렇고 한데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또 이 복잡한 사람들이 있고 복잡한 사건들이 있고 내가 이리 저리 해 가지고 저질러 놓은 게 있는데 이 일을 어떻게 간추려야 이게 바로 되겠으며 어떻게 지금 이 사람을 교제하며 물질을 관계하며 이 사건을 처리해야 되겠습니까?’ 이거 또 그분에게 필연적으로 안 물을 수가 없다 말이오.

그분이 계시니. 필연적으로 묻게 되고, 이것이 도고의 기도입니다.

또 그라고 나니까 ‘그라고 나니 이게 문제다.’ 이거 보니까 주님에게 다 매여 있고 주님에게 원인이 있고 그분에게 주권되어 있는데 뭐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될 것을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 될 그 바로 해야 되는 그 방편을 그 길을 발견하고 보니까, 이 일은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또 당신에게 또 간구해야 되겠다 말이오.

‘이렇게 해 주십시오. 이거 좀 해 주십시오.’ 또 당신이 「구하라 주실 것이요」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이렇게 계약했기 때문에 그분이 그랬는데 자기로서 할 수 없는 모자라는 것을 그분에게 기도하지 않는 것은 그분의 계약을 안 믿는 것이요 그분을 안 믿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니까 기도하고, 당신이 해 주마고 약속하신 것을 내가 당신에게 구해서 기도했고 모르는 것을 물어 가지고서 하는 이치를 배웠고 이랬으니까 나는 필연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할 것을 당신에게 물어 가지고서 하는 바른 길을 배웠고 또 그와 같이 하는 데에 모자라는 것은 나한테 구하라 내가 도와 주마고 하셨기 때문에 내가 구했고 했으니까 그 나머지기 할 일은 뭐입니까? 그러니까 내가 해야 되겠다 그말이오. 그래 내가 해야 되겠어. 필연적으로 해야 되겠어.

그러니까 필연적으로 내가 실행하는 거, 이 세 가지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이 세상 어떤 학자에게 배울라고 어떤 뭐 세상 많은 다대수가 말하고 있는 공통되어 있는 그런 세상 지식에게 배울라고, 세상에게 무슨 아버지에게 배울라고 또 무슨 선배에게 배울라고 또 박사에게 학자에게 배울라고 하는 그 모든 것을 배울라는 것을 금했습니다. 뭐라고 금했느냐? ‘너희가 땅에 있는 자를 선생님이라고 하지 말아라 너희 선생님은 한 분뿐이시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 한 분에게만 배워라 그말이오. 하나님 한 분에게서만 배울라고 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한 분에게 배울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또 「지혜는 배암같이 하라」 이랬기 때문에 배암이 무슨 작용을 하고 있는가? 이 배암 작용하는 것도 그걸 연구도 해 가지고 좀 또 알아야 그것을 방어하고, ‘요거는 배암이라는 놈이 요래 하는 것이구나. 배암은 이렇게 한다.’ 배암에게 배우는 건 배암에게 하는 것을 내가 연구하고 보고서 그걸 알아야 되겠다 그말이오.

아는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배암의 그 지혜를 배우는 것은 배암의 지혜대로 그대로 내가 따라서 할라고 하는 것입니까, 배암의 지혜를 내가 쓸까 싶어 두려워서 배암의 지혜를 안 쓸라고 하는 것입니까, 배암의 지혜를 쓸라고 하는 것입니까? 예? 지혜는 배암같이 하라 했으니까 배암이 가지고 있는 그 지혜를 내가 다 알아야 되는데 배암의 지혜를 알아야 된다, 지혜는 배암같이 해라 했으니까 배암의 지혜를 알아야 된다고 말씀하신 배암의 지혜를 알아야 된다고 하는 그 알게 되는 것은 배암의 지혜도 내가 가끔 가다가 더러 써야 되지 안 쓰면 안 된다, 배암의 지혜를 자주 써야 되고 종종 써야 되고 필요할 때는 배암의 지혜도 써야 된다고서 쓰라고 필요해서 지혜는 배암같이 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안하면, 네가 배암의 지혜는 이렇고 이런데 배암의 지혜대로 하면 되는 것 같지만 그게 다 미혹이기 때문에 그대로 하면 망한다. 그러면 배암의 지혜는 이 세상 지식인데 세상 지식을 가지는 것은 세상 지식대로 하기 위해서 가지는 것입니까 세상 지식대로 하지 않기 위해서 가지는 것입니까? 세상 지혜대로 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지혜는 온거짓말과 반거짓말과 둘인데 그것은 온거짓말 반거짓말 그거는 속이는 것이요, 그렇게 하면 실패하는 것이요 반거짓말은 더욱이 더 반은 맞고 반은 안 맞기 때문에 그 지식을 쓰게 되면은 다 속고 망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이 뭐 이거 말을 이렇게 말하든지 저렇게 말하든지 간추려서 이것을 가르치는 교훈의 목적을 삼고 공과의 목적을 삼고 가르치라 그거요. 하나님에게 배워서 아는 것, 하나님에게 배워서 아는 것, 하나님에게 배워서 아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에게만 배우는 것, 땅에 있는 자를 선생이라 하지 마라 했으니까 선생에게 배우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선생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니라 너희 아버지시니라 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배워서 아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배워서 아는 것입니까? 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에게 배워서 아는 것이지요? 녜? 하나님이 눈에 보여야지요, 성경에게서, 성경에서 배우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에게 배우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배우는 것이 하나님에게 배우는 것이오. 예수 믿는다고 열심히 믿는 자가 성경 보지 안하고, 성경을 보면 귀신이 나갈 건데 성경을 안 보기 때문에 귀신이 안 나갑니다. 찬송하면 그게 찬송하지 안하기 때문에 귀신이 안 나가. 여기 지금 아침 예배도 찬송할 때 찬송 안 하고 성경 다 봐도 성경 안 봅니다. 그런 사람은 다 귀신에게 속하기 때문에 그것을 어짜든지 벗어나야 되지 안 벗어나면 저도 망하고 가정도 망하고 다 망합니다.

하나님에게 우리가 배워야 되고, 그러면 세상에서 배우는 것은 그것은 내가 이것으로 살기 쉽다. 사람들이 모두 다 이 배암의 지식 가지고 살기 때문에 나는 배암 지식대로 배암 지식에게 순종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배암 지식이 하라 하는 대로 하는 게 아니고 나는 하나님의 지식이 하라 하는 대로 하고 배암 지식은 내가 그걸 사용을 한다, 이용을 한다, 종으로 부리고 내 도구와 같이 내 물질로 내가 그것을 사용한다, 이용한다.

배암의 지식에는 복종하지는 안하고 그것은 이용하고, 하나님의 지식은, 어짭니까? 이용합니까 복종합니까? 하나님의 지식은 복종해야 되지 하나라도 이용하면 큰일납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이용을 하면 진리기 때문에, 없는 것을 우주를 엿새 만에 지었는데, 그 능력이 있는데 그걸 내가 종으로 잡아 부려 됩니까 이용해 됩니까? 이용하면 안 돼. 거기 죽으라면 죽고 딱딱 순종해야 돼. 하나님의 지식에게는 내가 순종하고 세상 지식에게는 순종하면 안 되고 그거는 내가 다 종으로 잡아 부리고 사용을 하고, 내 물질과 내 소유물로 사용하고.

이래서, 하나님에게 배우는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에게 배우는 것은 성경에 배우는 것인데 성경에 배워서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고대로, 고대로 내가 믿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는 거, 인정하는 거. 계약을 인정하고 또 성경에 말한 대로 하나님의 전능을 인정하고 전지를 인정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걸 인정하고 완전을 인정하고 우리를 진실되게 인도하시는 걸 인정하고, 그 모든 다 성경에 말한 대로 믿는다 그말이오. 그러면 우리가 믿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현실을 당할 때에, 현실에 두려운 걸 당할 때에 하나님의 전능의 보호를 내가 믿으면 두려워하지 안할 건데, 전능자가 날 보호하니까 문제가 없는데 자꾸 두려워집니다. 두려워지는 그걸, 전능자의 보호를 내가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전능자의 보호를 믿지 안하니까 자꾸 거기서 믿는 걸 연습을 합니다.

암만 그래도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생명까지 버려 주셨는데 나를 구원하신다. 이러니까 이 세상 피조물들이 어떻게 한다고 할지라도 전능자가 나를 사랑하시고 책임지고 보호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는다고 성경에 말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호하시니 하나님만 떨어지지 안하면 문제없다. 나는 뭐 하나님을 배반하면 이놈이 나를 달라들어 해하지마는서도 하나님만 내가 모시고 있으면 나를 이런 것들이 해하지 못한다.

요걸 믿어 자꾸 연습하고, 그러니까 무슨 큰 일이 와도 두려워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떨어질까 싶어서 하나님하고 한 덩어리 돼서 하나님의 그 나래 아래에 하나님의 슬하에 하나님의 보호 안에 있을라고 자꾸 하나님 안 떠날라고만 애를 쓴다 말이오.

하나님께서 저리 가시면 내가 저리 따라가고 이리 가시면 이리 가고 하나님 자꾸 하나님에게 안 떨어질라고 애를 쓴다 말이오. 하나님 안 떨어질라고 애를 쓰는데 하나님 안 떨어질라고 애쓰는 거 하나님 따라가는 것은 그뭐 하나님이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을 어떻게 따라가겠어? 하나님 따라가는 거 어떻게 하는 게 하나님 따라가는 것이요? 한번 대답해 봐요. 우리 ○○○선생 한번 대답해 봐요. 하나님 따라가는 게 어떻게 하는 게 따라가는 것이지? 그런데는 그만 계약보다도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는 그게 따라가는 거라. 요래라면 요라고 먹으라면 먹고, 먹지 말라 하면 안 먹고 일어서라 하면 일어서고,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만 자꾸 하면은 그분이 우리를 떠나지 못해요.

여러분들,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못하구로 볼끈 붙드는 방편이 있었는데 그 방편이 몇 가지라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 저 가리켜 봐요.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고 있지 말고. 한번 가리켜 봐요. 네 가지? 넷? 하나님을, 날 못 떠나구로 붙드는 거? 셋? 이제 서이 들 때도 있고 너이 들 때 있으니까 말귀는 못 알아 들어. 말귀는 못 알아 듣고, 서이를들 때는 서이가 맞는가 너이가 맞는가? 서이, 또 이래 너이, 또 이래 다섯, 또 이래 뭐 일곱, 이렇게 말하는데 여러분들이 참 불쌍합니다. 녜, 불쌍하요.

왜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기억도 안 되고 그게 안 됩니까? 돌짝밭에 뿌린 씨가 되어 있고 또 덤불밭에 뿌린 씨가 되어 있고 또 길바닥에 뿌린 씨가 됐기 때문에 다 잊어 버린다 말이오. 하나님 말씀 듣고는 그 말씀 이거야 다 집어 던져 버리고 엉뚱한 것만 하루 종일 생각하니까 기억이 남아 있을 게 있습니까? 이 속에는 지금 마귀가 꽉 들어 가지고 마귀가 전부 주관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못 떠나게 붙드는 그 방편을 몇 가지로 말했습니까? 여기 남반에는? ○○○ 조사님이지? 일곱 가지? 또 ○ 또? 그러면 다 일곱 가지네. 여기 ○ 목사, 안 배웠어? 안 배웠지, 그래 안 배웠어, 그래 놓으니까.

일곱 가지. 일곱 가지를 하면은 하나님이 못 떠나요. 일곱 가지만 내가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딴데로 가시지를 못해요. 고 일곱 가지 누가 한번 외워 봐.

주님만 사모하고, 또? 주님만 믿고, 또? 바라보고, 의지하고, 의지하고 그 위에 또 있어. 맡기고, 또? 순종하고 또? 계속하고, 그라면 하나님이 꼼짝 못 해요. 내가 고렇게 고걸 계속 그라고 있는 데는 하나님이 날 떠나지 못합니다.

이라니까, 그저 어떤 두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날 보호 하시면 문제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안 떠날라고, 보니까 하나님이 고만 이리 갑니다. 하나님이 이리 가요. 하나님이 이리 가면은 내가 그리 얼른 따라가야 되는데 하나님이 이리 가면 하나님이 그리 가는 걸 뭣 보고 압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럴 때에는 하나님그리 가신 거라 말이오. 하나님의 뜻을 얼른 따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만 따르면 자꾸 하나님을 졸졸졸졸 따라다니는 거라. 그것도 조그만한 쪼가리로 해서 그랬으니까 자꾸 외어야 될 터인데 그만 들어 버리니까 구원이 안 돼.

하나님을 믿는 공부를 자꾸 합니다, 믿는 공부를. 하나님이 네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 주신다 했으니까 이 일을, 이 일을 복 준다 했으니까 ‘이 일을 과학적으로 해야 될 터인데, 뭘로 해야 될 터인데.’ 그것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복 주실 수 있도록 내가 해야 되겠다.’ 그러니까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해야 되겠고 하나님 잊어 버리지 말고 해야 되겠고 하나님 모시고해야 되겠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그 일을 해야 되겠고 이러면서 하나님이 ‘그래 잘한다. 그런데 네가 물리에 맞도록 해라. 그러면, 우리가 물리에 맞도록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면 물리에 맞추는 것도 당신이 말해 주시고 또 물리만 맞출 게 아니라 인인 관계에도 또 맞아야 된다고 이 사회성에도 맞도록 또 가르쳐 주시고, 뭐 사회성에도 맞고 도덕성에도 맞고 윤리성에도 맞고 과학에도 맞고 자꾸 이렇게 온전한 지도를 해 주시기 때문에 그분의 지도는 전부 바르기 때문에 하면 다 된다 그말이오.

믿는 연습을 하고, 자꾸 믿는 연습 하고 보니까 필연적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1장 6절 이하에 보면은 ‘너희들이 나라가 임하는 것은 아버지에게 작정됐기 때문에 그런 거는 너희들이 생각하지 말고’ ‘이스라엘 나라의 임하심이 이때니이까?’ ‘그건 너거 알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거니까 냅두고 너거 할 일 따로 있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심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서 내 증인이 될수 있다.’ 이랬다 말이오.

이러니까, 기도해야 될 것 아닙니까? 또 누가복음 11장 11절 이하에 보면은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배암을 줄 자가 누가 있겠느냐?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뭐 줄라 했습니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 오면 권능 얻고 다 되는데.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러니까 기도 안 할 수 있겠소? 기도를 안 할 수 없다 그말이요, 필연적으로.

그러니까, 성경에 하나님에게서 배우고 보니까 하나님 알고 하나님의 계약을 알고 보니까 안 믿을 수 없고 필연적으로 믿고, 필연적으로 믿고 보니 또필연적으로 기도 안 할 수 없고 필연적으로 기도하게 되고 또 믿고 기도했으니 필연적으로 행하지 안할 수가 없다 그말이오. 그러면 필연적으로 믿는 거, 필연적으로 기도하는 거, 필연적으로 행하는 거, 요것 필연적이라 말은 자기가 역부러 할라 하는 게 아니라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도록 돼 가지고 하는 것을 가리켜서 필연성이라 필연적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배운 말씀을 잊어 버리면 아무 소용없어. 사데 교회가 살았다는 이름만 있었지 실상 죽은 것은 받은 거 다 잊어 버렸고 들은 거 다 고만 실행 안 하고, 그러니까 살아나는 법이 뭐이냐 하면은 받은 것은 생각하고 ‘내가 이런 은혜를 받았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기도 응답하시는 걸 내가 받았다.’ 받은 것은 생각하면 돼, 안 잊어 버리면 된다 말이오. 받은 것은 안 잊어 버리면 되고 또 들은 것은 지켜 행하면 돼. 「들은 것은 지켜 회개하라」 그말은 지키고 잘못된 것은 회개하고 그라면 돼요.

매일 삼십 분 기도, 이 삼십 분 기도는 다른 기도가 아니고 자기와 자기 교회와 또 우리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와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다 회개하고 이 환난의 재앙에서 피하도록, 이라니까 이북에서 그렇츰 노리고 있는데, 월남 같은 나라는 뭐 잠깐 조그매 노리니까 돼 버렸는데 이렇츰, 지금 김 일성이가 그 준비해 놓은 전투력이 세계에서 얼마 몇째나 가느냐? 세계에서 지금 한 셋째쯤 가요. 또 어떤 면은 미국보다 더 많고 소련 보다 더 커요. 사람들 독하게 악하게 만들어 놓은 훈련해 놓은 것은 세계가 따라가지를 못해요. 이래도 지금, 배고픈 사람이 뭐 모래도 집어 먹는데 얼마나 할까 이래도 지금 뭐 하고 싶어서 못 견디고 지금 남침하고 싶어 못 견디는데 하나님이 못 하게 하니까 못 하는 것이지 그뭐, 미군 아니야. 미군 가 버리면 좋겠어. 미군이 가고 미국 떨어져도 좋아. 한국에 교회 때문에 되는 것이지 그거 때문에 되는 거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또, 안 믿는 사람들은 또 그게 기대야. 그래야 또 안심을 하고 또 이래 하고 있으니까 그래 그 사람들 그대로 하고 우리는 진짜 아는 우리들은 우리가 기도함으로 되어지는 것이지 딴걸로 되는 거 아니라 그말이오.

그래 기도해야 돼요. 삼십 분 기도 안 한 사람 앞으로 환난당하면 절단나요.

왜정 말년 때도 기도 한 사람들은 참 콧노래 불렀습니다. 기도한 사람, 그 사람들 와야 뭐 두려움이 있어야지. 막 신사 참배 하라고 자꾸 이래 강요해도 ‘그거 못 합니다.’ 떡 방 안에 떡 앉아 가지고 와 가지고 문 옆에 와서, 일본 부장이라면 그때는 막 이 대가리입니다. 와 가지고서, ‘곤니찌와’ 하면 ‘곤니찌와’ 이라고 난 다음에는 그래 또 `어찌 됐습니까?'ㅡ들어오라 소리도 안 하고ㅡ‘어찌 됐습니까?’ `아직까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 많이 싸웠기 때문에. ‘이 성경에 우상 숭배하지 말라 했는데 할 수가 있느냐? 왜 너거들이 조선 나라하고 합병할 때에 이 유엔에서 조건부로서 이 신앙 자유를 말했고 때문에 성경대로 믿도록 해 놓고 계약을 위반하느냐 이랬기 때문에 이거는 할 수는 없다. 계약이 이랬으니 나는 인식이 안 된다.’ 인식이 안 된다 하니까 이래 놓으니까 말을 못한다 말이오.

그때 하나님이 주신 지혜라. 일본하고 우리나라하고 합병할 때 세계 유엔에서, 합병 못 한다. 합병 할라 하면은 이런 조건 해라, 그 조건 중에 큰 조건이 뭐이냐 하면은 신구약 성경을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믿는데 신앙 자유를 주고 성경대로 믿는 그것은 자유를 허락해야 된다. 이게 조건이 됐기 때문에 그거 안 된다 이걸 말하니 ‘하시네’ 참 우습다고 ‘그거 어째 그렇게 그런 조건을 했을까?' 이라고, 뭐 하거나 말거나 그라고 난 다음에는 뭐 또 성경 봅니다. 성경 보니까, 되게 추웠소, 그때. 겨울에 되게 추울 때는 들어오라 소리도 안 하고 성경 보니까 할 수 없어 되게 추워 놓으니 어짭니까, 저 우리 부엌에 밥 하는 데 가 가지고서 불을 쬐어 가지고서 이래 갑니다. 불을 쬐어 이래 가는데도 여러 번 왔다 말이오.

되게 추워 놓으니까. 추워 놓으니까 어짤 수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재판관이, 원수가 형제간에 원수인데 되게 추운 날 한 감방에 넣어 놓고서 한 가운데 화롯불 조그만한 거 갖다 넣어 놓으니까 이 추워 놓으니까 제까짓 놈이 어짭니까? 원수지마는 불을 쬐어야지, 이래 가지고 쬐우니까, 그래 가지고 화합을 시켰다고서 하는 말 있는데, 와서 불을 쬐우고 그래 가고 이래도 뭐 하거나 말거나, 하나님이 미리 기도한 그거 때문에 은혜를 주시니 그래요. 그때 내가 제법 기도한 것 같애. 내가 그랬는데, 나도 기도 많이 한 것 같애. 왜? 8.15를, 내가 덕유산 상봉에서 거게서 8.15해방을 금식 중에 내가 그때 맞이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 그래도 늘 기도하고 있었던 모양이라. 기도하고 있었던 모양이라.

삼십 분 기도 이걸 그냥 아니고 앞으로 미래의 그 모든 환난을 위해서 나와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이 환난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라. 이래 기도하니까 저 공산주의가 못 온다 말이오. 지금 실은 공산주의가 뭐 미군을 지금, 몰라서 미국 있다고 이렇게 하지마는서도 실은 한국의 믿음의 사람들 기도의 사람들이 없으면 절단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기도를 이걸 게을하지 말라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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