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기쁘시게

 

1989. 4. 23. 주전.

 

본문: 고전 3:1-3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린도 교회가 도를 받은 지는 상당히 오래 됐지마는 자라지를 아니하고 항상  어린 아이같이 되어 있으므로 장성한 자의 교훈을 그들에게 하지 못하고  언제든지 어린 아이에게 젖먹이는 것처럼 그런 교훈으로 늘 교훈을 하신 것을  말하고 지금도 너희들이 장성한 자에게 대한 교훈을 감당치 못하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장성한 자에게 대한 교훈은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 너머 하늘나라의 생활,  육신에 살고 있으나 부활 후의 그 생활을 장성한 자에게 대한 교훈이라 밥이라  이렇게 여문 음식이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서부교회는 벌써 지식으로서는  장성한 교인들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행위는 어떻게 된건지 인간들이  외모만 보고 그 속 중심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봉독한 고린도후서 5장에 있는 말씀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이것이 장성한 자들이 받는  교훈이요 또 늘 가지고 사모하고 노력하는 지시입니다. 땅위에 사는 것과 땅위의  형편을 가치로 삼아서 그것을 상대하고 그를 위해서 노력하는 그런 생활은 다  어린 아이들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커서 떠나서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이 점점 되어져 가야 합니다.

 9절에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우리의 신앙 생활은 그 종류가 많은 범위 넓은 신앙 생활입니다. 신앙  생활에는 이런 동기와 목적과 저런 동기와 목적 그 동기 목적이 수많은 종류가  있어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의 그 동기와 목적이 일치되지를 안하고 제각각 다  가지고 그렇게 신앙 생활 합니다. 그 방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칙이 있기  때문에 그 법칙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거하든지 떠나든지' 하는 말은 세상에 살든지 또 떠난다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무궁세계에 가든지.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성령의 사람 바울은 그저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거기에만  주력을 합니다. 바울이 그 신앙 생활한 그 신앙 생활은 모든 믿는 사람늘의 참  표본이라 할 수 있고 모본이라 할 수 있고 또 신앙의 선구자라 이렇게 할 수  있는데 그 신앙 생활의 전 동기가 이것 저것을 할지라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그것이, 그것이 전 신앙 생활의 동기요 또 그가 신앙 생활 하는 모든 목적도 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그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종류의 형태의 신앙 생활을 했지마는 신앙 생활한 모든 신앙의 동기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고 또 이런 저런 모든 수고의 신앙 생활을 했으나  그 신앙 생활하는 목적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그렇게 하기를 힘쓰는 것은 무엇 때문에냐 그 목적을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다 가  서야 합니다.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각각 선이든지 악이든지 간에. 선악은  여러분들이 들어서 선악의 정의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서 받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전신앙 생활의 동기와 목적과 그 방편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동기요 목적이요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의 그 모든 신앙 생활의 동기도 뭐 수십 종류 수백 종류가 있습니다.

또 목적도 또 그렇게 수가 많습니다. 또 방편도 수가 많습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신앙 생활 할 때에 우리 신앙 생활에 관련되는 그 배경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고 하니 첫째는 자기라는 그 주관이 그 신앙 행위의 하나의 배경입니다.

자기가 들어 있기 때문에 자기가 들어서 그 신앙 생활의 이런 저런 관련과 모든  그 충격을 주는 충동 시키는 일이 많습니다. 또 자기가 신앙 생활 할 때에 모든  이웃의 다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과 관련이 돼서 그 사람들에게 충동을  받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신앙 생활할 때에는 이런 저런 우리 생활  가운데에 사건들이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사건들에 대한 충동을 받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우리가 신앙 생활 할 때에 접촉하는 모든 물질 뭐 사람 외의 것을  가리켜 다 물질이라 그렇게 말하겠습니다. 그러면 생명 없는 무생물도 있고 또  생명 있는 모든 생물들도 있고 있는데 그런 것들에 충동과 충격도 우리가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일생 동안 신앙 생활한 그 신앙 생활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는 우리의 모든 신앙 행위가 다 분석이 됩니다. 너는 신앙  생활하는 그 신앙 생활에 그 충동이 네 주관이 그 행위에 충동의 전부도 될 수가  있고 또 네 주관이 지금 몇 프로가 네 신앙 행위에 들어 있을 수도 있고 모든  이웃 사람들의 그 모든 충동과 충격이 또 들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옳은 일이라도 할 때에 그 일을 할 때에 하다가 보면은 나중에  가서 자기에게 충격받아 가지고 자기 주관으로 하는 일 되기 쉽고 사람들에게  충동받아서 사람으로 인하여서 하는 일도 많게 되고 사물로 인해서 하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난 토요일날 새벽에 OOO조사님이 말씀을 증거를 했는데  그때에 사도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과 예수님에게 순전히 충동받아 가지고서  배타고 가기를 시작했지마는 가다가 자기네들도 모르게 순전히 자기네들의 그  주관의 충동으로 기울어졌고 또 기존 지식과 경험에 다 기울어져 버렸고 또  환경의 모든 풍랑에 기울어져 가지고서 다 낭파됐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그낱  아침에 증거를 했습니다.

 이래서, 이 수많은 종류들이 얽혀 있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 신앙 생활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것을 접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접하지 안할 수 없고 또 물질을 접하지 안할 수 없고 사건들을  접하지 안할 수 없고 모든 물질들을 접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또 모든  물리의 그 과학들도 접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한 그것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 가지고서 심판받을 때 그 분석한다고  하면은 처음에는 주님으로 인하여 시발됐지마는 그것이 가다가는 이리 탈선되고  저리 탈선돼서 마지막에는 순전히 백팔십도 전환으로 딴것이 돼 가지고서 있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깨달은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면 우리의 행한 대로 다 보응을,  심판해 가지고서 영원한 보응을 받을 터인데 그때 심판 받을 때에 우리의 신앙  행위를 다 분석을 해서 이 분류를 할 터이니까 분류할 때는 이것을 위해서 그  목적과 동기와 그 방편들이 시작은 성령으로 시작했지마는 나중에 가다가는 주위  환경을 따라서 변화돼 버리고 순전히 딴것이 되어 가지고서 신앙 생활 하는 그런  일이 되기가 쉽기 때문에 바울은 그 방편에 대해서 정하기를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쓴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을 그가 신앙 행위의 유일한 잣대로  삼았던 것입니다. 유일한 잣대로 삼았습니다. 그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을 자기  신앙의 잣대를 삼았고 저울을 삼았고 다림줄을 삼았던 것입니다.

 이래서 범사에 '이 일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나 나 기쁘게 하는 일이  되나? 이것은 혹은 내 기분으로 하는 일이 되나? 내 주관으로 하는 일이 되나?  내 오기로 하는 일이 되나? 내 주변에 모두 다 보고 듣고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모든 환경의 이목 수족에 피동되어서 하는 것이 되나? 이거는  명예심을 위해서 하는 것이 되나? 욕심으로 인하여 하는 것이 되나? 어떤  사람으로 인해서 하는 것이 되나? 세상에 무슨 이런 영광 저런 지위 그런 무슨  욕망에서 하는 것이 되나?' 이래서 자기가 모든 신앙 생활을 그리스도 앞에 가  가지고서 낱낱이 다 분석되어 심판받을 이 사실을 깨닫고 난 다음에 그는 신앙의  척도로 삼기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척도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탈선되지 안하고 위험성이 적고 실패성이 적기 때문에 그것을 택한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믿음이라 하면은 믿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계약과 모든 것을  바로 알고 인정하고 순종하는 생활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인생 동안을  살았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다시 더 갚아 줄 것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일생 동안 생활 했으면은 그리스도의 심판에서는 갚아 줄  것이 없습니다. 왜 갚아 줄 것이 없습니까? 믿음으로 했으면 믿음으로 한 그 일은  범사가 다 성공이 됐을 것이기 때문에 행함에 대한 추수인 그 댓가를 다  정당하게 받고 있습니나. 우리가 믿음을 지키는 그 믿음 생활에 있어서는 정당한  그 보응인 성과를 자기가 벌써 받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그에게 뭐 다시 다른 것 줄 것이 없습니다.

 일한 자에게 한 시간 일한 자에게 한 시간 일한 품삯을 줬는데 또 뒤에 뭐 줄  게 뭐 있겠습니까? 우리 믿음 생활은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받는 유일한  방편인데 굴음 생활 했으면 한 것만치 정확한 보응으로 자기에게는 성공과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믿음 생활에는 생명과 평강을 정당한 보수로  다 얻어 가지게 됐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아무런 뭐 그에게  새로운 보상이나 그런 것이 있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인간 구원에 일생을 바쳐서 살았습니다. 인간 구원에 일생을  바쳐서 살았습니다. 일생을 바쳐 살았으면 그 산 데 대해서 인류라는 인류에게  대환영을 벌써 받고 있고 무궁토록 인류에게 대환영을 받습니다. 또 인류에게  대환영을 받을 뿐 아니라 인류가 구원 받으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자유 생활  신앙 생활 하기 때문에 만물들이 그 인류 구원을 인해서 저들이 구원이 됐기  때문에 만물들에게 환영과 존귀를 받게 됩니다. 이래서, 일생 동안 인간 구원을  위해서 자기를 바쳐서 산 사람에게는 인류에게 환영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환영  받는 상당한 댓가를 정당한 댓가를 다 받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뭐  딴것 받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다 댓가를 받았다 그 말이오.

 또 범사에 자기가 깨끗이 회개해서 참 성결한 사람이 됐습니다. 범사에 깨끗이  회개를 해서 성결한 사람으로 일생 동안 살았습니다. 성결한 사람으로 일생 동안  살았기 때문에 성결에는 정당한 평안과 정당한 담대가 댓가로 그에게 와  있습니다. 성결한 자체가 되고 성결한 생애를 하니까 어데서든기 담대하고  평안해서 누가 정죄할 자가 없고 훼방할 자가 없고. 고소하고 고발하고 송사할  자가 없기 때문에 그는 성결을 가진 것만치 자기는 정당한 그 댓가인 평강을  받았고 또 담대를 받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존대를 받게 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다시 새로운 뭣을 받을 것이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주의 일에 일생 동안 충성했습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서 일생  동안 충성을 했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주의 일에 자기의 전부를 다 기울여서  충성되게 섬겼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충성되게 섬겼기 때문에 주님께서  충성되게 섬긴 거게 대한 댓가를 주님이 주시면 됩니다. 그 사람이 일을 다른  사람보다도 잘했으면 월급을 많이 줍니나. 또 일을 게을리 했으면 월급이  적습니다. 그러면 충성되게 한 데에는 보수를 많이 주면 되고 보수를 많이 주면  그 댓가가 됩니다. 또 보수를 많이 주고 그 사람에게 신의를 주어서 좀 점점 높은  직책을 가져서 영전이 된다면 그만하면 대접이 다 됐습니다. 충성에 대해서는  월급 많이 주고 영전되면 그 댓가가 다 됐습니다.

 또 다섯째로,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주님에게 바쳐서 일생 동안을  살았습니다. 복음 위해서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살았습니다. 그 산  자에게는 없어질 소유 바친 자에게 영원한 소유로 갚아 주고 또 자기의 그  썩어지고 낡아지고 폐해질 몸을 바친 그자에게 신령한 몸으로서 이제 부활시켜  주고 자기의 생명을 바쳤을 때에 생명의 댓가로서 영원한 생명으로 튼튼케 해  줬으면 그도 댓가를 다 치렀습니다.

 또 여섯째로 어떤 사람은 죄와 사망과 마귀와 세상으로 더불어 일생 동안을  싸워서 승리를 했습니다. 잘했습니다. 그 사람은 승리했기 때문에 승리했기  때문에 높은 지위 왕위를 주시고, 그에게는 왕위를 주시고 제가 전투해서 이긴  모든 것들은 영원히 저의 종으로 부리도록 해 줬으면 됐습니다. 이만하면 다  됐어.

 그런데 일곱째로 이 사람은 모든 동기나 목적이나 방편이 딴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딴거는 하나도 없고 어짜든지 일편단심 주님을 기쁘시는 그것뿐입니다.

모든 크고 작은 힘을 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뿐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거는 가치가 적은 일이다, 이거는 뭐 몇닢푼치 안 되는 일이다 해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면 그것을 했습니나. 그러면 그 사람의 모든 신앙 행위에  동기와 목적과 방편이 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그것뿐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이것을 뭘로 갚아 줘야 되겠습니까? 뭘로 갚아 줘야 되겠습니까? 이  사람에게는 영원한 세상에서 아무런 그에게 이미 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는 영원히 주님은 그를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으로서 그에게 갚아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기 말씀하시기를 '그런즉 우리가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그러면  믿음으로 행한 사람도 있겠고, 인간 구원으로 일생을 바친 사람도 있겠고, 주님의  일에 충성한 사람도 있겠고, 자기 소유나 몸이나 생명을 주님에게 바쳐서 일생 산  사람도 있겠고, 죄와 사망과 마귀로 더불어 싸워서 일생 동안 싸워 승리한 그  사람도 있겠고, 또 주님을 기쁘시게 거하든지 떠나든지 밤낮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주님이 근심된 일이라면 그거는 볼 수가 없고 주님이 걱정하는  일을 근심하는 일은 볼 수가 없고 어짜든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일만 할라고,  주님이 이라면 기뻐하실까 저라면 기뻐하실까, 이라면 주님이 걱정하실까 저라면  걱정하실까 해서 밤낮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만 힘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서 그대로 갚을 것이다.

 믿음의 사람은 그대로 갚아 주겠고 또 인간 구원의 사람은 그대로 갚아  주시겠고, 충성의 사람은 그대로 갚아 주시겠고 또 성결의 사람은 그대로 갚아  주시겠고, 자기의 전부를 다 바친 사람은 그대로 갚아 주시겠고 또 죄와 사망과  마귀와 세상으로 더불어 싸워서 일생을 전투에 이긴 사람은 그대로 갚아  주시겠고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뭘로 갚아 줘야  되겠는가 말이요?  뭘로 갚아 줘야 되겠습니까? 돈으로 갚아 줘야 되겠소, 상급으로 갚아 줘야  되겠소, 부자로 갚아 줘야 되겠소 영광으로 존귀로 갚아 줘야 되겠습니까 뭘로  갚아 줘야 되겠습니까? 이 사람은 뭘로 갚아 줘야 하나님의 이 공평된 심판에  공평이 되겠습니까? 뭘로 갚아 줘야 되겠습니까? 우리, 장로님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저 기쁨? 녜 주님이 영원히 그를 기쁘게 할 것밖에 없지. 다른  것으로는 갚아 줄 수가 없어. 아예 이 사람은 다른 것은 가치로 삼지 안했기  때문에.

 사람, 인간 구원을 해서 수많은 사람이 구원돼도 구원 얻은 기게다 가치도 두지  안했고 자기 성결에도 가치 두지 안했고 자기 영광에도 가치를 두지 안했고  권위에도 가치를 두지 안했고 믿음에도 가치를 두지 안했고 전투의 승리에도  가치를 두지 안했고 밤낮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거게만 가치 뒀습니다. 거게만  가치를 뒀어. '선악간에 각각 행한 대로 갚음을 받기 위함이라' 하는 것이 이것을  가리켜서 말씀 합니다.

 그러기 때문비 사도 바울이 선택한 것은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사나 죽으나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기를 원하노라  일편단심 그는 딴거는 없고 그거뿐입니다. 이러니까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주님이 그에게 갚아 줄 것은 뭐 영원토록 주님은 그 사람을 기쁘시게 하는 큰  빚을 졌습니다. 기쁘시게 하는 거게 큰 품앗이를 했기 때문에 주님은 영원히 그를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이 되십니다. 아브라함도 그는 어떻게 하든지 주님만 존귀히  되고 주님 기쁘시게 하려는 그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었습니다. 소돔 고모라로  더불어 할 때도 주님의 영광을 떨어뜨릴까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  아브라함의 그 일생이기 때문에 아브라함도 그를 기쁘게 할 수밖에 없어. 다른 게  없어.

 그래서 이것은 장성한 신앙들이 먹을 수 있는 여문 음식이요 영양이 많은  음식입니다. 이래서 고린도전서 3장 1절 이하에 있는 밥으로 먹이지 안하고  젖으로 너희들을 먹인 거와 같이 그렇게 한 것은 너희들이 감당치 못하기 때문에  그랬는데 지금도 너희들이 감당치 못하기 때문에 내나 젖으로 먹이고 있다  하면서 고린도전서를 기록해 보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은 젖이 아니고  밥입니다.

 이러다가 여러분들이 이제 주를 위해서 이런 충성 저런 충성 다 좋습니다. 거기  대해서 하나도 댓가가 없이 그렇게 하나님이 무심한 일 하나도 안 합니다. 그저  행한 대로 낱낱이 댓가를 받습니다. 행한 대로 낱낱이 댓가를 다 치러 주시지마는  그 중에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것이 제일 귀중하기 때문에 바울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밤낮으로 힘을 썼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잘못하면 우리 신앙 생활 하는 생활이 시작은 주로 인해서  시작했다가 마지막에 마칠 때는 다른 힘으로 하기 쉽습니다. 다른 힘으로. 돈  힘으로 하기 쉽고, 옆에서 이목구비 수족의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까 방청 때문에  하기 쉽고, 자기 기분으로 하기 쉽고, 자기 취미로 하기 쉽고, 이런 거 저런 것을  노려서 하기 쉽고, 이런 힘으로 저런 힘으로 이런 기분으로 저런 기분으로  이것에게 충격받고 저것에게 충격되고 이래 가지고서 하기 쉽습니다.

 이러기에, 순전히 일하는 것이 주님으로 인한 동기에서 할 뿐 아니라 주님으로  힘입어서 주님의 힘으로 한 뿐만 아니라 최고의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그것으로만 동하고 정합니다. 뭐 일이야 가치가 있든지 남이야 알아 주든지 못  알든지 그런 데 두지 안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그것이 자기의 신앙에  목표로 두고 했으니 이것이 우리가 최종의 장성한 자들의 목표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믿음도 지켜야 되겠고, 또 인간 구원도 해야 되겠고, 성결도 해야  되겠고, 충성도 해야 되겠고, 소유도 바쳐야 되겠고, 죄와 사망과 마귀와 세상으로  더불어 전투도 해야 되겠고, 이런 거 저런 것 하지마는 그런 데에서 주를  기쁘시게 하려는 동기와 목적과 그 방편에서 어짜든지, 아무리 인간 구원이 크게  돼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아니고 주님 근심되는 것이면 딱 치워 버립니다.

크고 작은 급하고 명예스럽고 영광스럽고 존귀한 어떠한 일이라도 주님이  기뻐하지 안하면 딱 중단해 버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온 세상이  모르고 어떻게 돼도 그거는 자기 소유와 몸과 생명을 바치기를 주저하지 안하고  지체하지 안하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요것만을 우리가 목적을 삼아서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이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느냐, 주님이  기뻐하시겠느냐 주님이 근심하시겠느냐? 주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요 일만  선택해서 이게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이 사람으로 이제는 장성한 걸음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아무래도 인간은 구원해야 되겠고. 이 식구는 내 식구를 만들어야 되겠고,  아무래도 내 오기는 풀어야 되겠고, 이 감정을 풀어야 되겠고, 기분은 풀어야  되겠고, 내 자존심은 있어야 되겠고, 명예심은 있어야 되겠고 뭐 그런 거 조건이  한정 없는데, 그저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요 한 마음 하나만 가지고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아니면 모든 건 포기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면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고 하는 이 장성한 신앙에서 이제는 우리가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이 시간을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과거에는 저희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소원에서 이런 거 저런 것을 하다가 그만 그 사건과 종류에 치우쳐서  주님을 잊어버리고 우리 혼자 행동하여 마귀 틈탈 기회를 얼마든지 주고  이용당한 일이 얼마나 많은 저희들이었습니다. 신앙 생활에 어떤 것을 할지라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이 동기와 목적과 그 방편이 아니면 다 헛된 것인 것을  깨닫고 이제는 어데서든지 크나 작으나 사건을 보지 말고 피조물들을 보지 말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면 어떤 것이라도 저희들이 달게 감당하고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라면 아무리 큰 경영과 큰 작업을 했을지라도 다 중단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이것이 전부의 우리의 동기와 목적과 방편이 되어지도록  우리들로 하여금 장성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구원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갈지라도 주님의 능력의 보호가 함께 하사 범사에 의논해  주시고 범사를 들어서 도와 주시고 보호하시고 은혜 베풀어 주셔서 아무 염려  없이 평강 가운데서 구원을 잘 이루어 가도록 지켜 보호해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밤낮 심히 힘쓰고 애쓰는 종들에게 그 속에 주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뜨겁고 주로 말미암아 인간을 사랑하여 구원하는 그 사랑이  뜨거워지도록 주님이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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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을 기쁘시게/ 고린도전서 3장 1절-3절/ 890423주전 선지자 2015.12.19
1208 주님을 기쁘시게/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890424월새 선지자 2015.12.19
1207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860322토새 선지자 2015.12.19
1206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860323주새 선지자 2015.12.19
1205 주님을 기쁘시게 하자/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 890512금야 선지자 2015.12.19
1204 주님을 대접하는 법/ 창세기 5장 21절-24절/ 841029월새 김반석 2015.12.22
1203 주님을 사랑하는 것과 아는 것/ 시편 91장 14절/ 841003수야 김반석 2015.12.22
1202 주님을 사랑하는 자/ 요한복음 14장 18절-19절/ 871220주새 김반석 2015.12.22
1201 주님을 사랑하는 자/ 요한복음 14장 15절-24절/ 871216수야 김반석 2015.12.22
1200 주님을 사랑하는 자/ 야고보서 1장 12절/ 860907주전 김반석 2015.12.22
1199 주님을 사랑하는 자/ 요한복음 14장 15절-24절/ 1987년 15 공과 김반석 2015.12.22
1198 주님을 사랑하는 자-공과 새김질/ 요한복음 14장 18절/ 871227주새 김반석 2015.12.22
1197 주님을 영접하는 실력/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1980년 34 공과 선지자 2015.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