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5:08
인생계산
1982. 6. 15. 화새
본문:누가복음 16장 1절~5절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우리는 계산 없는 사람으로 살기 쉽습니다. 여기에 셈하라 말은 계산하라 하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거기에 대해서 내가 계산을 하든지 안하든지 사람의 생활이라 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빼 놓지 아니하고 다 하나님 앞에서 계산을 받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계산 없이 사는 사람은 그때 그때 되는 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되는 대로 사는 사람과 계산을 해 가지고 사는 사람과 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날 그날 그시 그시 닥치는 대로 이렇게, 그저 배 고프면 배 고픈 줄 알고 배 부르면 좋고 기쁘면 좋고 평안하면 좋고 이렇게 현실주의로 사는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보다 조금 나은 사람은 ‘내가 이렇게 살면 내일 어찌 되느냐?’ 내일까지를 계산해서, 오늘 사는 것과 내일까지를 계산해 가지고 사는 사람이 조금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내일만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생각지 않습니다.
또 그보다 나은 사람은 ‘내가 이렇게 오늘 살면 명년에 어찌 되느냐?’ 이제 범위가 넓어집니다. ‘명년에 어찌 되느냐?’ 또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살면 장년이 되어 가지고, 장년 되어서 사회인이 되어지면 그때 어찌 되느냐?’ 또 여기까지를 범위잡아서 계산합니다. 이러니까 자기 행동하는 것이 자꾸 제재를 받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이렇게 살면 늙어서 어찌 되겠느냐?’ 거기에까지를 계산을 합니다.
이러니까 이 계산 없이 사는 사람은, 아주 그날 생활을 심히 고통스럽게 살 수 있는 그 생활이 그 사람의 계산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 보면, 지금은 참 경제가 풍부합니다. 제가 일본 있을 때 그때 돈 없어서 뭐 공부한다고 날뛰면서 이럴 때 보면 아주 자기가 그래도 제대로는 계산을 대서 희망을 바라고 신문 배달을 하는데, 한 구역만 해도 한 두 시간 땀을 흘려야 됩니다. 이러면, 그래 가지고 학비가 모자라니까 두 구역을 신문 배달을 하려고 하면 약 세 시간 네 시간을 뭐 죽자 살자 날아다니다시피 뛰어 다녀야 됩니다. 그래도 기쁜 것은 ‘내가 이렇게 해 가지고 공부해서 앞으로 사회인이 됐을 때에 천한 사람이 안되겠다.’ 그 욕망에서 그 모든 것을 극복한다 그거요.
자기가 장사하는 사람이라든지, 기술 배우는 사람들도 보면 이 기름 보자기, 정비공장 같은 데 가 놓으면 뭐 기름이 다 거석해 가지고 사람도 아니지요.
사람도 아니고, 또 그러다가도 잘못하면 발길로 차고 쇠몽둥이로 두드려 댑니다.
뭐 원청 좀 성미에, 신경에 날카로운 그런 세밀한 기계를 만지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그래 합니다. 그래도 그것을 꾹 참고 견디는 것은 ‘내가 이 기술만 배워 놓으면 이제 내가 이 세상에서는 행복스럽게 살수 있다’ 하는 그런 소망에 대한 계산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극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계산하되 ‘늙어서는 행복되겠다마는 사람이 죽는 것이니 죽고 난 다음에는 어찌 되느냐?’ 죽고 난 다음 영원까지를 계산을 합니다.
이래서, 그 사람이 현재만 보고 사는 사람이 제일 가치 없고 불쌍한 사람이요, 그 사람의 계산의 범위가 넓은 데 따라서 인생의 가치와 실력과 인내와 그 모든 것은 마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과거를 현재와 계산을 대야 됩니다. 과거를 현재와 연결시켜 가지고 계산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나는 과거에는 이랬었는데 현재에는 어떠냐?’ 그 계산도 대고, ‘또 과거에 그렇게 한 그것이 현재에 손해냐 효력이 있느냐?’ 그것도 계산을 대고, 그러면 과거는 현재에 연결시켜 가지고 계산 대는 데서만 효력이 있습니다.
과거에 베드로 같은 사람은 세 번이나 저주하고 주를 모른다고 부인한 일이지만 그 일을 현재와 연결시켜 가지고 계산을 철저하게 대었기 때문에 세 번 주님을 부인한 것이 불행이 아니라 베드로에게는 일생동안 큰 경성을 주는 아주 보배로운 행동이 됐던 것입니다.
아무리 불행스러운 과거라도 그것을 현재에다가 연결시켜 가지고 계산만 대면 그것이 행복화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에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현재와 연결시켜 가지고 계산을 대어 가지고 그 계산 토대 위에서 움직여지는 일이 없으면 과거 생애가 어떻게 좋다 했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 현재라는 것을 미래에 연결시켜서 계산대야 됩니다. ‘너희들이, 주의 날이 임할 터이니 너희들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되겠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하는 이것도 계산을, 네가 살아 있는 데만 계산을 댈 것이 아니라 죽는 것도 계산대고, 네가 또 지금 아무 변동없는 이 세대에서만 살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재림하시면 모든 것이 다 불타고 크게 큰 변동이 일어난다는 이것까지를 연결시켜서 계산대라 하는 말입니다.
‘보던 일을 셈하라’ 그러기에 이 계산 없이 사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모든 것을 계산을 대 가지고 살아야 되지 그렇지 아니하면 다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 됩니다.
그런고로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기의 어떠한 생애든지, 말에나 행실에나 또 마음에나 뜻이나 그 모든 것 하나도 빠짐 없이 하나님 앞에 다 계산이 대어지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사람의 행위를 거기에는 ‘사람의 마음과 그 뜻을 보시는 하나님이라’ 행위대로 갚아 주신다 하고 그 행위를 표시할 때에 그 행위를 무엇을 그 행위로 표시했는가? 그 행위를 표시한 것은 사람의 마음과 뜻 그것을 행위라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 행동만 행동으로 생각하고, 또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말만 행동으로 생각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자기 마음 속에 가진 그것을 행동이라고 말씀했고, 또 자기가 마음에 가졌다가 그만 한 시간만 지나가도 다 잊어버렸지만 그런 것을 행동으로 삼아 가지고 하나님은 다 갚으시고 계산을 해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계산에 무슨 계산을 말했는고 하니 ‘네가 내 소유를 왜 네 마음대로 자유했느냐? 내 소유를 왜 네 마음대로 썼느냐? 왜 내것을 네가 네 마음대로 해서 허비하고 낭비했느냐? 이것 계산해라.’ 이 계산이라 그말이오.
이것이 인생에 대해서 대는 계산입니다. 이 계산 외에는 계산이 없습니다. 실은 이 계산이 전부요.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이 계산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지옥 가는 것도 이 계산에서 지금 빚진 것을 영원히 보응 받는 것이요, 또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입었지만 왜 하늘나라에 가기는 갔는데 하늘나라의 그 영광의 차이가 그렇게 많은가? ‘하늘나라의 영광의 차이는 형체와 같다. 땅위에 있는 모래알 하나도 형체다. 모래알 하나도 형체인데 모래알 한 개의 그 형체의 모래알 한 개의 영광과’ 하늘에 있는 해도 이것도 한 형체라고 했습니다. ‘해의 형체 해의 영광이 다르다’ 했습니다.
그러면 해 한 개의 그 가치와 모래알 한 개의 가치가 차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인생과 인생의 차이가 많다고 해도 세상에서는 그렇츰 차이가 많지 않습니다.
그것의 억만분의 일도 차이가 안 됩니다. 하늘나라는, 이 세상에서 다 같은 사람으로서 천한 사람 귀한 사람의 차이 있는 것의 억억만 배도 더 되는 이런 차이를 가진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면 그 차이가 어디에서 되어지는가? ‘셈하라. 계산대라.’ 이 계산대는 데에서 계산에 빚진 대로 이제 많이 진 자는 많이 물고 적게 진 자는 적게 물고, 또 많이 잘한 자는 많은 상급을 받고 적게 잘한 자는 적은 상급을 받는 것. 이 계산, 계산은 무슨 계산이냐? 하나님의 것을 제 마음대로 한 그 계산입니다.
‘왜 네가 내것을 네 마음대로 했느냐? 허비했느냐?’ 안 믿는 사람들은 제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기 때문에 저도 하나님의 것이요, 제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을 전부 제것이라고 일생동안 살아 나왔으니까 이제 하나님의 것을 도적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왜 내것을 낭비했느냐? 낭비한 것 계산대라.’ 계산대는 것이 하나님의 공심판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이 계산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원 멸망받을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계산했습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대신 계산해서 그 빚진 빚을 다 대신 갚으신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네가 나에게 많은 빚이 진 것을 내가 탕감해 줬는데 너는 네게 조그매 빚진 것을 가지고 그 사람에게 이제 괴롭히고 그 빚에 대한 상당한 행위를 했으니까 나도 네게 많은 빚을 받겠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비참하게 멸망받는 것을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우리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하나님의 것을 도적해서 제것으로 살았고 하나님을 거역해서 살았기 때문에 이것으로써 공심판에서 영원한 지옥과 멸망을 받는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이 계산을 해 가지고 다 지불을 하시느라고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하나님이 사람 되기까지 낮아졌다 말이오.
이랬는데 이것이 전인류에게 일반적 계산입니다. 일반적 계산으로 하나님의 공심판에 예수님이 대신 계산하시고,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서 계산하는 그 계산이 이제 하나 남아 있는데 이 계산은 기독자들만 이제 계산대는 계산입니다.
이 계산이 무슨 계산이오?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나도 주의 것이요, 내 모든 전체가 주의 것입니다. 주의 것이니까, 주님의 것이니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뿐이지, 당신이 보관하고 있으라면 보관하고 있어야 되고 내 마음대로 주고 싶다고 주지 못합니다. 왜? ‘내 돈이니까 이제 뭐 주고 싶다고 준다.’ 아닙니다.
시편 17편에 보면 ‘하나님의 것 가지고 제 마음대로 먹고 쓰고 남은 것 있으면 내 자녀이니까 자기 자녀에게 유산한다 하면서 상속시키는 이것으로서 멸망을 받는다’ 했습니다.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나도 내 마음대로 못 쓰고, 내 자체도 내 마음대로 못 쓰고,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못 쓰고, 내 뜻도 내 뜻대로 못 쓰고, 내 욕심도 내 욕심대로 못 쓰고, 내 몸둥이도 내 몸둥이대로 못 쓰고, 내 지혜 총명도 내 마음대로 못 쓰고, 내 소유도 내 마음대로 못 쓰고, 이것은 주인의 것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보관해라’ 하면 가만히 보관해 가지고 있어야 되고, 또 ‘지불해라’ 하면 지불해야 됩니다. 또 ‘이렇게 써라’하면 이렇게 써야 됩니다.
이렇게 해야 참 신실하고 진실한 청지기인데, 이것을 하나라도 주님의 뜻대로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이 보관물에 대해서 하지 않은 것은 전부 죄가 되고 하나님 앞에서 벌받을 일들인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쫓겨납니다. 이것 때문에 세상에서 죽음으로 쫓겨나는 것도 있고 영원한 무궁세계로 쫓겨나는 것도 있습니다. 둘째 사망이라 하는 것은, 둘째 사망이라 하는 것은 금생과 내세의 하나님의 집에서 쫓겨나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는 것이 이것이 쫓겨나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현재에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그것이 영생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제 욕심대로 살면 그것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느니라 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쫓겨나 가지고 영원히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멸망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자기 심신의 기능은 전부 유황불 구렁텅이로 다 쫓겨나 버리고, 이제 저는 기본구원만 얻어 가지고 하늘나라 가 있지만 부끄러운 구원으로,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은 그런 부끄러운 구원으로서 있을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자체나 자기의 심신이나 자기의 소유나 모든 것이 주님이 대속하신 값을 내고 사신 주의 것이라는 것, 이것이 주의 것이 되어야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내것 됩니다.
기본적으로는 대속의 공로가 우리가 중생도 되기 전에 알기도 전에 당신이 대속의 공로를 내 영에게 입혔기 때문에 내 영이 사죄받고 칭의받고 그 다음에 중생해서 영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영생을 받아 가지고 구원을 얻은, 기본구원을 얻은 자가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실지로 현실을 살 때에 사죄받은 자로 살고 칭의받은 자로 살고 또 화친의 영생의 생명을 가진 자로 이렇게 살아야 되는데, 이 사는 것은, 사는 것은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우리 생활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것은 뭐 살고 있느냐? 이 세 가지 살이 하고 있습니다.
세가지 살이. 한 가지는 무슨 살이냐? 한 가지는 죄에 대해서. 죄 이놈이 내 앞에 와서 오고 죄 뒤에는 사망이 따라옵니다. 따라올 때에 죄가, 죄를 앞장 세우고 사망이 따라올 때에 죄와 사망을 바로 아주 박살을 내는 것입니다.
박살을 인간 힘으로서는 지극히 작은 것도 못 냅니다. 예수님의 사죄의 능력이 와 가지고 이 박살을 냅니다. 이것이 우리 생활이요, 하나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있는데, 그 모든 축복은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이 법을 이행하는 그 법 이행을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우리가 받게 되는데 하나님의 법을 이행할 자가 누가 있는가? 여기에도 예수님의 대행의 칭의의 지극히 큰 능력이 왔을 때에 우리는 그 능력을 힘입어서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을 우리는 이행할 수가 있다 말이오.
나는 이행 못하는데 예수님이 이행하신 이 지극히 큰 능력이, 지극히 큰 능력, 예수님 속에 역사하던 그 능력이 내가 예수님의 그 칭의를 확신해서 칭의면에서 내가 주의 것 됐으면 그 칭의는 내것 되어 가지고 이 칭의로 인해서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역사해 가지고 현실에서 지성 지공법을 인간으로서 이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힘으로도 능으로도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을 아버지의 성령으로 할 수 있다 하는 그것이 그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본체의 능력, 하나님의 지혜의 능력, 지식의 능력, 선의 능력, 사랑의 능력, 진실의 능력, 거룩의 능력, 의의 능력, 주권의 능력 이 능력이 하나님의 본체 능력인데 이 능력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내 능력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이 하나님과 화친된 그 결과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가 하나님의 것을 뺏들어서 올 수 있소? 누가 가져올 수 있소? 그 무한하신 능력을 누가 자기 것 삼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친으로 하나님의 지체가 된, 하나님의 몸이 됐을 때에 하나님의 것이 이 몸을 통해서 나타난 것과 같이, 이렇게 이것은 하나님의 화친의 새생명 얻는 이것이 되는데 이것이 되는 데는 내가 당신의 것이 되어야 된다 말이오. 당신의 대속을 내것 삼으려면 내가 당신의 것이 되어야 되지, 나는 내것대로 있고 당신의 것만 내것 삼으려 하면 이것은 도적이요 강도라. 안돼. 그게 됩니까? 이것이 다 도적이요 강도입니다.
‘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고 담으로 넘어오는 자는 도적이요 강도라’ 문은 누구인데? 예수님이지. 그러면 예수님이 대속했기 때문에 자기는 주의 것 되는 요 순서를 통해 가지고 되어야 되는데, 이것도 통하지 아니하고 예수 믿는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건설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자 이것은 다 절도요 강도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것 되고 주님의 대속은 내것 되는 요것으로 사는 것이 지혜있는 청지기로 사는 것입니다. 지혜있는 청지기.
이것이 우리에게는 제일 큰 계산입니다. 이 계산 외에 없어. 1차 계산은 불신자들이 계산할 계산이요, 1차 계산은 주님이 대신 계산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계산을 하지 아니하지만 2차 계산,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계산할 이 계산이 우리의 계산인데 이 계산대로 영원히 보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주님의 대속을 받았으니 나와 내 모든 소유는 주의 것이니 주의 것으로 주의 뜻대로 산 그것은 다 영생이요, ‘잘했다’칭찬을 받고 다 영생입니다. 이것을 제 마음대로 허비 낭비한 것은 다 이것은 벌을 받는 것이니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타는 것이 우리 요소입니다.
이러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 요소를 현실에서 유황불 구렁텅이로 던지고, 어떤 사람은 자기 요소를 하늘나라로 옮기고, 하늘나라로 옮기는 자도 있고 지옥으로 옮기는 자도 있고, 이래 가지고 어떤 자는 자기가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자기가 자기를 지옥에다 다 불태워서 던져 버렸으니까, 그것은 던져 버렸고 다만 기본구원을 얻어 가지고 자기와 자기의 심신의 형체만 신령한 몸으로 부활해 가지고 갔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기능없는 자라.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서 천합니까? 암만 사람이 못나도 그래도 개보다는 말을 잘할 것이오. 새보다는 말을 잘할 것이오.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츰 말을 새보다 잘하지만 가치가 없어. 그것은 뭐 아주 천물 중에 짐승 같은 천물입니다.
내가 새 집에 가 보니까, 들어가니까 떡 있다가 ‘어서 오십시오.’ 새가 그래.
그거는 그거 한 마디 가지고, 또 가니까 ‘안녕히 가십시오’이래. 고것 두 마디 고것 하는 것 가지고 가만히 놀고, 뭐 먹이는데 사료를 보니까 ‘이거 무슨 사료를 먹입니까?’ 아주 새 중에는 고급 사료를 가만히 앉아 놀고 먹습디다, 말 두 마디 하는데. 사람은 그보다는 말을 잘하지만 인생이기 때문에, 암만 말을 그보다 잘하지만 인생이기 때문에 인생에게 천대를 받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도 그렇습니다. 하늘나라는 다 동등인 줄 알아도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다.’ 불 가운데 구원 얻었으면 얼마나 기막히겠소? 그러기에 ‘하늘나라는 동등의 영광을 가졌다. 평강을 가졌다.’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그래 가지고 지금 한 25년 전에 여기 서부교회서 그런 설교 했더니만 어떤 요 옆에 바로 교회에서, 그 교회 이름 또 말하면 또 무슨 말해. 그 교회서 장로 장립할 때 유력한 목사님이 ‘여기 옆에 있는 조사는 하늘나라의 구원에도 차별이 있다 한다.’ 등급이 있다 한다고 그런 소리를, 엉터리 소리를 한다고 그래 가지고 그때 또 이단으로 내가 한번 몰렸습니다. 왜 등급이 없어? 지금은 그런 소리를 안 합니다. 하늘나라의 등급이 크게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계산대지 못하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계산의 범위가 하루 이틀 범위를 잡은 계산, 한 달 범위를 잡은 계산, 1년 범위를 잡은 계산, 2년 범위를 잡은 계산, 농부가 적어도 2년 계산을 잡아야 그 농부가 농사를 바로 합니다. 명년 농사 준비는 금년에 있지 금년에 하지 아니한 준비를 명년에 하면 됩니까? 이제 아이 때에, 학생 때에 성년된 때까지의 범위의 계산, 젊을 때에 늙었을 때의 범위의 계산, 살았을 때에 죽을 때까지의 범위의 계산, 살았을 때에 죽고 영원 무궁 심판, 무궁 세계 부활해 가지고 살 때 그때까지의 그 범위 있는 대로의 그 전부를 범위를 잡아 가지고 이 범위에 딱 맞도록 사는 사람이 영원히 후회가 없을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계산 없이 사는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학생도 계산 없이 사는 사람, 내 조그만한 학생 하나 피아노를 타는데 그것이 피아노 타는 것 보면, 뭐 보면 그만 권태가 나 가지고 석달을 계속 못한다 합디다. 하다가는 꼭 한번 낙심해 가지고 뺑소니를 치고 치고 한다는데, 조그만한 것이 하루도 안 빠지고 계속해. 그래 내 그것 참 기특해서 ‘얘, 네가 어떻게,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하느냐? 지루하지 않느냐?’ 하루도 안 빼고, 노는 날도 안 빼고, 그 선생이 감탄해. ‘왜 이렇게 하느냐?’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경제에 어렵게 살아. ‘내가 이래 가지고 돈 벌어서 아버지, 엄마, 또 목사님 그렇게 잘 받들어 대접하려고’ 그래 그런다고. 그 말이 뭐이냐 하면, 제가 그래 가지고 뒤에 가서 경제에 어려움 없이 살겠다 하는, 그 어린 것이 거기까지 계산을 대니까 고 계산대는 그 욕심이 힘을 얻어서 피곤해도 한다 그거요.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계산대는 데에서 반성이 생기고, 계산대는 데에서 후회가 생기고, 계산대는 데에서 욕망이 생기고, 계산대는 데에서 회개가 생겨지는 것입니다. 계산없이 사는 사람은 다 불쌍한 사람이라 말이오. ‘너 보던 일을 셈해라, 네 보던 일을 셈해라’ 계산대라 그말이오.
내 어떤 청년보고 말했어. 이 자리에 있습니다. ‘네가 야, 네가 계산대 가지고 알아라. 네가 지금 3, 4년이다. 3, 4년이라는 세월을 네가 잘못 보내면 네 평생은 그만 고칠래야 고칠 수 없는 불쌍한 사람 된다. 이제까지는 네가 참 불쌍하고 가련한 길을 걸었는데, 3, 4년 동안 바짝 네가 힘을 써 가지고 이제 계산해서, 장래 계산을 해 가지고 네가 일어서면 지금이라도 어데까지라도 위인의 걸음을 걸을 수가 있다.’ 그 말을 내가 여기 바로 요 자리 앉은 사람에게 내가 지금 말을 얼마 전에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 접촉을 할 때에 계산대지 아니하고 막잡이로 사는 그 사람하고는 접촉을 안 해야 됩니다. ‘사람을 삼가라.’ 계산대지 아니하고 막살이 사는 그런 사람하고 접촉하면 저도 멸망받고 맙니다.
내가, 여기 있어. 내가 6년 전에 내가 만나 가지고 ‘얘, 너 내가 보니까 이상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네가 좀 생각해라. 계산을 대 봐라. 그리 되면 어찌 되느냐? 그것 좀 네가’ 뭐 낙관시 하고 예사롭게 생각했는데 지금에야 아이들 말로 빵구가 나 버렸다 말이오. 지금에야 떡 탄로가 떡 나 버리고 나니까 지금 죽느니 사느니 뭐 어쩌니 하기 때문에 내가 ‘그것 또 계산대 봐라. 그게 계산을 널리 대 보면 그것도 합력해서 유익이 되어진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유익이 되어진다. 좀 계산을 넓게 대 봐라.’ 어떤 사람은 요렇게 조브라운 데서 계산대서 살고 요래 살고 조래 살고, 여러분들! 우리는 영원 무궁의 전체를 계산대야 됩니다. 하늘과 땅의 것이 통일되는 이 무궁의, 무궁 이 전 존재의 전부를 다 망라해 가지고 계산을, 딱 수지 계산을 대 가지고 거기에서 수지 계산을 해서 계획을 세워 가지고 또박 또박 걸어가는 이것이 기독자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