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6 14:59
인류의 가치
본문 : 고전 15:39-44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지난 주일 오후에 증거한 말씀을 다음 주일 중간반 학생들과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되기 때문에 언제나 수요일날 밤에는 공과 공부로 증거를 하기로 그렇게 하는 데까지는 해 보려고 약속을 우리가 했습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잘 기억하고 있지마는 더 오늘밤에 잘 깨닫고 자기 맡은 학생들에게 바로 가르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은 다 합니다. 택함을 받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부활은 다 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부활한 자의 영광이 이렇게 차이가 많습니다. 그 차이를 말할 때에 육체로 비유했고 또 형체로 비유했습니다.
육체도 사람의 육체도 있고, 뭐 짐승, 새, 물고기 그런 육체가 있는데 조그만한 멸치 한 마리 그것도 물고기의 육체입니다. 육체는 육체요 이름도 육체지 마는 어떤 참 위대한 그런 사람의 육체와 그와 가치 차이가 심히 큽니다.
언제 강대국의 대통령 그 사람의 육체가 올 때에는 온 나라가 떠들썩 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육체와 멸치 되는 그 고기 새끼 한 마리 육체와 그 가치와 영광이 얼마나 차이가 있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활은 하기는 하지마는 부활한 자와 부활한 자의 영광이 차이가 이렇게 많은 걸 말했고, 그보다도 형체를 말했는데 "땅에 있는 형체도 있고" 그러면 땅에 모래알도 형체요, 자갈도 형체요, 바위돌도 형체요, 이 집채도 형체요, 또 "하늘의 형체가 있다" 하늘에 해의 형체도 있고, 달의 형체도 있고, 별의 형체도 있고, 우리 지구 땅덩어리라는 이것은 해라는 항성 그 형체에 속한 것인데 이 지구 땅덩어리는 해나 그런 데다가 비하면 얼마나 작은 것입니까? 또 열도나 그런 권위가 뒤떨어지는 것입니다.
또 땅에 있는 바닷가에 가면 모래알이 참 낱을 들면 눈에 보일까 말까, 우리 나이 많은 사람의 눈에는 그 모래알 한 낱이 잘 보이지 못 할만치 그렇게 조그만한 형체지마는 그것도 형체를 가진 형체입니다. 그것도 형체를 가졌고 형체지마는 태양이라는 태양 한 개와 그 형체와 가치가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그 차이가 얼마나 많습니까? 혹 억억억만 배 됩니까? 아니 그것도, 헤아릴 수 없소, 그 차이가. 이와 마찬가지로 부활은 하기는 하지마는 부활한 자의 그 가치와 영광은 이렇게 다르다 여기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은 한 자리에서 예수님을 믿지마는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보면 그 영광이 이렇게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양, 비유컨대는 태양만한 그 영광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조그만한 모래알만한 그런 가치와 영광 그렇게 아주 지극히 미약한 그런 영광을 가지고 부활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으면 다 천국 가면 지옥보다야 좋지요. 지옥에는 영원한 사망이지마는 천국에는 사망은 없지마는 그 영광은 이렇게 차이가 있다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죽은 자의 부활의 영광이 이와 같이 차이가 있으니, 어쩌라 말입니까? "이와 같으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다음에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이 썩을 것, 썩을 것 이것을 썩지 아니할 것을 얻기 위해서 심으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심는다 말은 우리가 종자를 심으면 종자가 나 가지고 열매가 몇 배나 나오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썩을 것, 그 밑에 내려가 보면 약한 것, 욕된 것, 혈육의 것 이것을 썩지 아니할 것, 강한 것, 영광스러운 것, 신령한 것 이것으로 바꾸어 고쳐 살려 가지기 위해서 심으라 그랬습니다.
심는다 말은 내가 곡식 종자 가지고 있다가 심으면 땅 속에 던지는 것입니다.
추수하기 위해서 없앴습니다. 자기의 이 썩을 것을 썩지 아니할 것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대로 써서 없앤다는 것입니다.
썩지 아니할 것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그 법칙대로, 썩을 것을 투자해 가지고 썩지 아니할 것을 얻는 하나님이 정한 그 법칙대로 썩지 아니할 것을 얻기 위해서 투자한다 말입니다. 거기 넣는다 말이오. 그러면 살게 됩니다.
자기가 가진 곡식 종자를 하나님이 주신 법칙에 '네가 땅에다가 심어라. 그러면 움터 자라서 열매 맺는다.' 하는 그 법칙대로 심으니까 그렇지 거기다가 심지 않고 씨앗을 천장에다가 달아서 당글어 매 놓으면 싹이 나 가지고 자라겠습니까? 이것 모양으로 하나님이 주신 법칙대로 네가 이것을 사용하면 뒤에 큰 변화를 받는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지난주일 오후에 성경에 있는 것을 제가 이야기로 해서 여러분들에게 드린다 하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시 한번 되풀이를 하겠습니다. 꼭 성경에 기록한 그대로의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 역사에 없는 큰 전쟁이 두 번 있었는데 이 전쟁보다 큰 전쟁은 없습니다. 뭐 세계 1차대전 2차대전이 지나갔지마는 그런 전쟁 그런 것은 이 전쟁의 억억억억만분의 1도 안 되는 아주 조그만한 아이들 장난 같은 그런 전쟁입니다.
이 역사에 큰 전쟁이 두 번 있었으니 1차대전에서 부정 모혈로 나는 인류라 하는 것은 싹 다 죽었습니다. 1차 이 전쟁에서 완전히 다 죽었습니다. 1차 전쟁은 누구하고 한 전쟁인고 하니 1차 전쟁은 에덴동산에서 전쟁했는데 악령이 배암의 탈을 입고 들어와 가지고 인류의 대표자 아담으로 더불어 전쟁해서 아담이 그 전술에 빠져 넘어가 가지고 패전해서 전 인류는 사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역사에 난 인류는 이 전쟁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 전쟁에 죽었는데 보니까 어떤 죽음은 벌써 뼈까지 삭아서, 썩어서 뼈까지 삭아서 없어진 그런 죽음도 있고, 또 반은 썩고 반은 아직 썩지 않고 죽은 송장도 있고, 어떤 시체는 죽기는 죽었는데 인제 방금 죽어서 하나도 썩지는 않았습니다. 방금 죽어서 하나도 썩지는 않았습니다.
썩어서 뼈까지 없어진 것은 벌써 그 사람이 세상에 나와 가지고 죽어서 세상을 떠나 없어진 사람이고, 반쯤 썩고 반쯤은 아직까지, 죽기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 것은, 인간이 70을 산다고 하면 서른 다섯 살쯤 되는 것은 그만치, 서른 다섯 살쯤 되니까 서른 다섯 살 살 것 남아 있는 것은 안 썩은 것이고 벌써 서른 다섯 해 산 것은 다 썩어 버린 것입니다.
이제 죽기는 죽은 시체는 시체지마는 방금 죽어서 하나도 썩지는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어머니 뱃속에서 이제 해산해서 난 아이겠습니다. 난 아이나 실은 그게 다 죽었습니다. 내 말이 아니오. 에베소 2장 1절에 보면 "죄와 허물로 너희들은 죽었던 자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와 허물로 다 죽은 자라고 말했소.
실은 이 고기덩어리의 생명이 있지마는 하루 지내면 그만치 크는 것 같지마는 그 아이가 하루 지냈으면 그만치 명은 짧아졌습니다. 한 살 먹었으면 그만치 짧아졌습니다. 한 살 먹었으면, 70살 먹을 아이가 한 살 먹었으면 70분지 1은 썩었다 그 말이오. 희망이 없어. 썩었다 그 말이오. 이러니 전쟁에 보니까 많은 시체들 다 썩은 것, 조금 남은 것, 반 썩은 것, 하나도 썩지는 않고 죽은 것, 전부 송장떼만 우글우글한 그것이 이 세상이라 말입니다. 이 성경이 이렇게 말해 왔어. 그런데 그것을 어떤 힘센 대장이 하나 나와 가지고, 죽인 자를 괘씸히 여겨서 이 죽인 자로 더불어 다퉈 가지고 이 죽은 시체를 가져오려 하니까 그자가 안 주려 합니다. 이래서 이 대장이 전 인류를 죽인 그 승리한 그 대장 그놈하고 싸웠습니다. 이제 이것이 2차 우주에 대전입니다.
그 전쟁은 어디서 했는고 하니 골고다에서 했습니다. 골고다에서 이 전쟁은, 1차대전 에덴동산에서 이겨서 전 인류를 죽인 이 사탄 이 마귀로 더불어 이 대장이 골고다에서 싸워 가지고 그놈을 이겼습니다. 이 대장의 이름은 곧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렇게 이겨 가지고 이제는, 이기니까 처음에 1차에 이겼던 대장이 2차대전에 항복을 하고 정복을 해서 이제는 그 시체를 내 주고 상관하지 않겠다고 내 줬습니다.
이 대장이 시체는 찾기는 찾았지 마는 찾아 놔 봤자 서른 다섯 살 먹는 것은 70살 같으면 서른 다섯 해만 되면 완전히 썩어버릴 것이고, 50먹는 것은 20년만 있으면 다 썩어버릴 것이고, 한 살 먹는 아이라 할지라도 70년이면 다 썩어버릴 것이고, 이것이 죽지 않을 생명으로 살아나야 되기 때문에 살리기 위해서 이 살려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에게 심한 통곡과 간구로 호소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심한 통곡과 간구로 죽은 자를 살리시는 자에게 간청했다" 이랬습니다.
이래서 이 살릴 수 있는 능력 있는 분이 안 된다 하니까 간청을 하다가 생명을 다 기울여서 그만 전부를 다 기울여 죽기까지 해서 간청을 했습니다. 이래서 '그러면 내가 들어 주겠다.' 하고 그분도 살리고 살려 주기로 약속을 허락했습니다. 이 약속을 받은 이가 둘째 대장 예수님이십니다.
이래 가지고 살리려고 지금 살리는 병원으로 이송을 합니다. 큰 살리는 병원이 있는데 그 병원이 크기가 굉장히 넓고 큽니다. 그 병원의 이름은 가르치기를 교회라 그렇게 그 병원의 이름을 말합니다.
병원으로 옮기려고 이렇게 하니까 모든 시체에 관계되는 분들이 말하기를 우리 시체도 살리는 병원으로 옮겨 달라고 야단입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홍포 입은 부자인데 '나는 이렇게 다 이제 썩을 대로 다 썩어 버렸지만, 썩어서 지옥에 와 있지만 내 형제들은 썩어 지옥에 오지 않도록 어쨌든지 치료받도록 이렇게 옮겨 달라.' 하는 것을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지 않아졌습니다.
옮기는데 보니까 그 많은 시체들이 있는데 옮기려고 지금 모든 그 밑에 있는 병원에 있는 종업자들이 옮기려고 지금 하고 있는데, 보니까 옮기려고 하니까 '보자, 이것이 이 병원에 옮겨서 살리기로 또 치료하기로 등록이 돼 있는가 봐라' 그 장부를 가지고 등록을 찾는데 그 등록이 되지 않은 그 시체는 보니 '이것 등록이 안 됐다, 이건 안 됐다. 이거는 등록됐다. 옮겨라,' 이러니까 등록되지 못한 것이, 못한 시체의 주인들이 어떻게 원통하고 기가 막히는지 그만 등록 안 됐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등록된 그것이, 되고 안 된 그것이 참 가치입니다.
그 한 군데 가니까 '이거는 왕 시체다. 이 시체는 왕이다. 이 시체는 아주 대문학자다. 이 시체는 대과학자다. 이 시체는 대예술가다. 이 시체는 참 미인이다. 이 시체는 참 미남이다.' 이러면서 '이것은 참 옮겨서 살리기만 살려 왔으면 보배다.' 이랬는데 척 모든 사람이 그러고 있는데 가 보더니마는 '이것은 등록이 안 됐다 아깝게도 등록이 안 됐다.' 등록이 안 됐으니 그것은 옮기지 않습니다. 등록된 것은 옮깁니다.
보니까 한 군데 가니까 썩고 조그매, 죽은 시체가 생기가 조그매 덜 썩은 주먹덩이만한 덜 썩은 것이 있는데 그걸 보니까 '이런 건 다 썩어 가지고 이건 소용이 없다. 집어던져 버려라.' 척 장부를 보니까 '아이쿠, 등록이 됐다. 빨리 옮겨라. 빨리 옮겨라.' 이게 뭐 이냐? 이제 나이가 50살 60살 돼서 남아 있는 것 조금밖에 안 남아 있는데 이것도 하나님 택한 자이기 때문에 '어라, 교회로 옮겨서 지금 어서 구원하자,' 하는 그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옮기는데 거기에서는 그 시체가 잘난 시체, 못난 시체, 뭐 왕인 시체, 도덕가 시체 할 것 없이 거기에서는 등록이 됐느냐 안 됐느냐 하는 것이 그것이 그 곳에 가치였습니다. 등록 안 된 거는 그거는 뭐 이거나 저거나 막 썩을 것, 좀 있으면 막 썩을 것, 등록된 것은 다 썩어가도 다 옮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1차대전에서 원죄와 본죄로 죽은 인생을 2차대전인 둘째 아담의 승리로써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로 전도해서 옮기는 것이 그것이오. 이 주일학교 반사들 여러분들, 권찰님들, 중간반 반사들이 그 죄인을, 구원할 죄인을 전도할 때에 여러분도 알아야 됩니다. 죽은 시체라는 걸 알아야 돼요. '죽은 시체다.
죽은 시체다 이것을 교회로 옮겨 놓으면 살릴 수가 있다.' 말은 안 해도 속은 이걸 알고 있어야 돼. 이걸 모르는 자는 죽은 시체를 구원하러 갔다가 그 사람이 부자가 되고 좋은 옷을 입고 오니까 '아이고, 부럽다.' 그것은 시체를 보지 못하고 살아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시체를 보면 시체를 부러워할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살아난 자가 시체를 부러워할 자가 어디 있겠소? 이래 가지고 병원으로 옮깁니다. 병원으로 옮기는데 병원에 와서 떡 보니까 많은 시체들이 옮겨져 있는데 거기에는 별별 시체들이 다 옮겨져 있습니다. 있는데, 이것은 어서 지금 살려야 되겠는데, 곧 다 썩어 가는데, 조금밖에 안 남았는데, 이제 하루밖에는 살 날이 없는데, 10년밖에는 없는데, 곧 이 시간만 지나가면 못 살리는데. 이래서 급급히 하는데 보니까 어떤 것은 아직까지 하나도 썩지 않은 그것도 살려내고, 어떤 것은 다 썩어 가는데 살려내지 않다가 마지막에 조막덩이만치 조그만치 생기 남아 있는 그것을 살립니다. 이것은 70세에 전도 받아 가지고 믿는 사람, 또 60세에 전도 받아 가지고 믿는 사람, 전도 받아 가지고 하루 살고 죽는 사람, 열흘 살고 죽는 사람, 1년 믿다가 죽는 사람 다 그것이 그런 것들입니다.
이렇게 해 가지고 생기가 난 것은, 생기를 불어넣어 가지고 생기가 돌아오니까 '생기, 이것은 살았다. 살았다. 안 죽는다.' 살았지마는 몸뚱이는, 전부가 지금 병이 들어 가지고 전부 전쟁에 상해 가지고 몸뚱이는 하나도 쓰지 못합니다.
쓰지 못하고 자꾸 지금 시간을 따라서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기가 돌아온 것은, 살려놓은 것은 한쪽 병원으로 또 자꾸 옮기는데 그 병원에 가니까 전부 살기는 산송장입니다. 전부 산송장들이 가득 찼습니다.
산송장들이 가득히 차 있습니다. 그게 뭐이냐? 그것이 오늘의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거기에 보니까 생기는 돌아왔는데 하나도 썩지 않고 생생한 몸뚱이나 죽기는 죽은 몸통이지마는 썩지는 않은 생생한 몸뚱이를 가지고 생기는 붙어 있고 이러니까 이것은 치료를 하면 100프로 치료가 돼 가지고 성할 사람입니다.
이것은 벌써 다 썩어서 조금밖에, 10분지 1밖에 안 남았으니까 수술을 해도 잘 치료 받아봤자 10분지 1이나 이제 치료돼서 고쳐지지 나머지 기는 소용이 없다 말이오. 이것은 만일 인간이 70을 산다고 하면 63세, 10분지 9는 다 벌써 살아서 죽어버렸고 10분지 1만 남은 것, 한 60이나 70이나 되는 그런 사람들이겠습니다.
이런데 이것을 보니까 어떤 시체는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걸 지금 빨리 살려야 된다' 서로 빨리 살리려고 애를 쓰는데, 그 빨리 살리려고 애를 쓰는데 살리는 순서가 정해 가지고 있어서 그 순서가 돼야, 수속 절차가 돼야 이제 그 몸을 치료해 주지 그리 안 하면 수술 안 해 줘요. 수술 안 해 줘.
그러니까 서로 절차를 받으려고 막 야단입니다. '이것 빨리 살려야 되겠다.' 이것 빨리 살려야 되겠으니까 이 절차 밟으려고 막 새벽으로 뛰어가고 밤으로 뛰어가고 잠을 안 자고 뛰어 돌아다니고 야단이라 그 말이오. 그게 뭐이요? 전도자입니다.
이것은 지금 썩지 않았으니까, 썩지 않았으니까 이걸 살려 놓으면 이런 것은 참 보배가 되겠다. 새 솥이 되겠다. 이 주일학교 학생들을 이것을 썩기 전에 자꾸 전도해 가지고 이렇게 해서 이것을 치료를 해 가지고 온전한 그 육체의 기능을 만들려고 하는 것, 주일학교는 제일 덜 썩은 것, 주일학교보다 이제 낳아 가지고 어머니 품안에 놓고 '예수 믿어라 예수 믿어라' 하면서 전도하는 그것은 제일 안 썩은 것, 중학생들은 그보다 좀 더 썩은 것, 장년반은 더 많이 썩은 것, 이제 나 같은 사람은 안 썩고 지금 안 썩고 남아 있는 게 조금밖에 안 남아 있은 사람, 이랬는데 모두 서로 치료를 빨리 받으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뭐이냐? 오늘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랬는데 거기에서 턱 어떤 사람이 나오더니마는 '자, 여기에서는 가치가 어느 것이 제일 가치가 있느냐?' 이러니까 떡 나오더니만 말하기를 '이것은 이 시체는 하나도 썩지도 않고 생생한데 이것은 왕의 시체라, 왕의 시체라. 이건 대 도덕가의 시체라. 대학자의 시체라. 이 시체가 학자라. 이게 가치 있다. 이건 왕이기 때문에 가치 있다. 무엇이기 때문에 가치 있다.' 이러니까 말하기를 '아니다. 네가 무식하다 아무리 그게 무엇이라 할지라도 죽은 시체니까 있으면 차차 차차 썩을 것 아니가? 그러니까 그게 가치가 없다.' '그러면 어떤 것이 가치가 있습니까?' '그것보다는 살려낼 희망 있는, 살려내려고 옮겨간, 저 병원에 옮겨간, 아직까지 살아나지 못 해도 병원으로 옮겨간 그것이 가치가 있다.' '그러면 이렇게 훌륭한 이 시체보다 병원으로 옮겨간 다 썩고 조그매 남은 그것이 가치가 있습니까?' '그것은 살아날 희망이 있기 때문에 이보다 가치가 있다.' '그렇습니까?' 가치관을 인제 배웠습니다.
또 그 병원에 가서 보니까 아주 병원에 옮기기는 옮겨놨는데 아주 훌륭한 그런 시체들도 많고 안 썩은 시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는데 이쪽에는 보니까 시체가 있는데 성한 시체도 있지만 어떤 시체는 다 썩어 가는데 생명은 있어서 꼬물꼬물 그렇습니다.
'네가 어느 것이 가치 있느냐?' '여기에 있는 이 생기는 없어도 아주 이런 것은 훌륭한 시체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하니까 '이거는 아직까지 생명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보다는 지금 다 썩어가지마는 저게 생기를 받은 저 시체가 가치가 있다. 저거는 생명을 받지 않았느냐?' 이제 또 이쪽에 병원에 떡 와 가지고 '네가 여기에 대한 것을 네가 평가해 봐라.' '이것은 보니까 아주 반쯤은 썩기는 썩었지마는 썩지 않고 남아 있는 그것은, 이 썩지 않고 남은 이 시체는, 이 시체는 학자입니다. 이 시체는 왕입니다. 이 시체는 대통령입니다. 이 시체는 부자입니다. 이 시체는 예술가입니다. 이 시체는 아주 미남입니다. 미인입니다. 이러니까 이게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이게 가치가 있습니다.' '얘, 그것은, 무엇이 되어 있든지, 무엇이 되어 있든지 그것은 다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살아났느냐 안 살아 났느냐 거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지 그것은 다 없어질 것들이라. 그것은 가치로 치지 말아라.' '그러면 여기에서 그 다음에 그러면 어떤 것이 네가 가치가 있느냐?' '여기서 가치가 그렇다면 제일 안 썩은 게 이게 가치가 있습니다.' 보니까 하나도 안 썩었습니다. 하나도 안 썩고 있는데 이것은 참 죽은 시체지만 하나도 썩지 않았으니 이거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말하기를 '보라, 이거는 가치가 어떠냐?' '그거는 다 썩고, 다 썩고 치료받은 것이 조막덩이만하고 이것은 치료는 받지 않았지마는 이것은 생생하게 하나도 썩지 않은 시체이기 때문에 이게 가치 있지 않습니까?' '봐라, 생생하게 되어 있는 시체지마는 이것이 다행히 치료를, 잘 수술을 받아 가지고 치료를 잘 받을는지 치료를 하나도 못 받고, 생기는 받았지마는 치료는 하나도 못 받고 그 몸뚱이는 완전히 썩어 버릴는지 누가 아느냐? 그건 아직까지 미결에 있기 때문에 다 썩을는지 치료를 받기를 100분지 1을 받을는지 하나도 못 받을는지 그것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 치료를 100분지 1쯤은 지금 받아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 이러니까 받아 가지고 있는 이것은 조그만치 치료를 받았지마는 이것은, 치료받은 이것은 이 우주에 1초 동안에 천 바퀴라도 돌 수 있다. 1초 동안에 천 바퀴라도 돌 수 있고
영계에 갔다가 물질계에 갔다가, 안 먹고도 억억억억만 년도 활동 할 수 있고 또 먹을 수도 있고, 시간과 공간에, 공간을 다 초월해서 산 것이요 신령한 것이요 그것은 전지전능과 연결돼서 전지전능의 것이기 때문에 양이 적어도 그것의 가치와 그 사람의 시체의 100분지 1이 치료받아 가지고 치료된, 100분지 1이 치료된 그것과 치료받지 못한 것, 생생하게 하나도 상하지 않은 그것과 이 중량을 비교할 수가 없다. 너 평가관을 바꿔라' 그렇게 했습니다.
또 묻기를 '야, 봐라. 여기에 있는 이 시체는 생기는 살아나기는 살아났는데 몸뚱이는 이것은 지금 남아 있는, 성한 것 남아 있는 것이 100분지 1밖에는 성한 것이 남아 있지 않다. 100분지 1밖에는 성한 것이 남아 있지 않다. 이 시체는 하나도 썩지 않고 생생하게 지금 아주 참 꽃같이 아름다운 생생한 시체로서 하나도 썩지 않은 아주 생생한 시체다. 이 둘의 가치는 어찌 되느냐?' '아, 이거는 지금 안 썩은 것이 조막덩이만치 남아 있고 이거는 생생한 이것 시체이기 때문에 이것이 가치가 크지 않습니까?' 조막덩이만치 성한 것이 남아 있는 그 시체는 누구 시체인고 하니 작대기를 거머쥐고 우둘우둘우둘우둘 떨면서, 요셉이 두 아들을 앞에 두고 기도한다 하면서 옳게 못 해서 작대기를 짚고 의지하고서 가지고 지금 기도하는, 성한 것이 조그매 남은, 조금밖에 안 남은 그 시체로 있는 그 야곱입니다. 야곱. 늙은 야곱 야곱이고 여기에 지금 생생한 하나도 썩지 않은 죽은 시체로 생기는 돌아와서 남아 있는 것 그것은 중생 돼서, 어린아이들도 중생 합니다. 중생 돼서 예수님의 그 생기가 속에 들어가서 성령의 역사가 내주 하는 것이 보여지는데 그것은 지금 두 살 세 살 먹는 것, 두 살 세 살 먹는 어린아이입니다.
이러니까 이 이 아이와 작대기 짚고 뻘뻘뻘 떠는 야곱과 가치를 비할 때에, 비할 때 '이거는 생생한 지금 아주 어린아이니까 희망이 많으니 이것이 가치 있지 않습니까? 그거는 찍해야 인제 남은 것 며칠 살다 죽을는지 생생한 성한 시체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거는 가치가 없고 이건 가치 있습니다.'
이러니까 '얘, 네가 그 작대기 짚고 선 야곱의 썩지 아니한 그 시체 그 부분만 보고 이 아이의 썩지 않은 시체 그것만 보고, 네가 눈을 닦고 자세히 봐라.
야곱에게 썩지 않은 그 시체 외에 것은 뭐이 됐는고 봐라.' '아이쿠, 이것은 완전한 것으로 전부 성화가 됐습니다. 이것은 참 이 한 사람은 우주보다 가치가 있는 이 신령한 것으로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래, 그것이 가치다.' 해서 가치관을 다시 배웠습니다.
이래서, 인생의 가치를 어디다가 두느냐? 인생의 가치는 근원이 하나님과 진리와 연결되는 거기서만 가치가 생겨지는 건데 이 모두 다 1차대전에서 다 죽었소. 원죄와 본죄로 죽은 것은 1차대전에서 다 죽은 것이오. 우리가 다 죽었습니다. 하나도 남김 없이 다 죽었소.
이랬는데 죽은 자들 가운데에 가치는 어떤 것으로 구별해야 되느냐?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인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선택을 입었느냐 못 입었느냐 하는 여기에서 인생의 가치를 삼아야 됩니다. 선택 입은, 선택 입은 한 사람은 선택 입지 못한 전 인류보다도 가치가 큽니다. 이 선택의 가치를 이와 같이 선택의 가치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 그러면 선택받은 자로서의 가치는 뭘로 구별하느냐? 선택받은 자로서 중생을 일찍 했나 늦게 했나? 중생을 일찍 했나 늦게 했나 이것으로써 이제 가치를 정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또 중생한 사람으로서는 가치를 어떻게 정해야 되느냐? 중생한 사람으로서는 아직까지 살날이 많이 남았느냐 살날이 적게 남았느냐 이것으로 가치를 정하겠습니다. 살날이 많이 남은 것은 썩지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이고 살날이 적게 남은 것은 썩지 않은 부분이, 재생할 부분이 조그매 남은 것이고 이제 이것이 가치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또, 많이 지금 썩은 것 적게 썩은 것 이것으로 가치를 삼고 그 다음에는 최종의 가치는 뭐이냐? 최종의 가치는, 최종의 가치는 앞으로 수술을 받을 것, 수술은 성화인데 수술은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사는데, 죽을 것이 죽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사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요것이 성화입니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현실을 닥치면, 현실을 닥치면 그 있는 것이 한목 썩는 게 아니고 차차차 썩어지는데 썩어지는 그 단계가 인간의 현실입니다. 썩어지는 그 단계에 수술을 받으면 썩어질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완전한 것으로 이것이 치료돼 버리고 썩을 것이 치료를 못 받으면 그것 썩어버립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는 썩든지 치료를 받든지 이것이 이제 판결되는 것입니다.
그래 최종은 이제 그 사람에게 치료를 받아서 그 죽은 시체가 치료받은 양이 얼마나 되나? 치료받은 양이 많은지 적은지 이것이 인생의 가치의 최종 결정입니다. 인생의 가치의 최종 결정이오. 생기를 얻은 것은 꼭 같습니다. 영이 중생 된 것은 믿는 사람이면 꼭 같습니다. 꼭 같은데 다만 그 영광과 영광의 차이가 땅의 모래알과 하늘의 태양과 그 차이 있는 것 마찬가지로 중생 된 자와 중생 된 자, 부활한 자와 부활한 자 영광의 차이는 무엇으로 되느냐? 그것이 몸과 마음의 기능이라는 것이 현실을 통해서 죄를 지어 영원히 죽느냐 이것이 예수님의 사죄 칭의 새생명을 받아 이것을 벗지 않고 사죄 칭의 새생명을 받은 마음과 몸의 기능으로 현실을 통과 하느냐? 여기에서 치료받는 것이고, 예수님의 피공로로 치료받아서 영생되고 예수님의 피공로 집어던져 버리고 이 세상 제 생각대로 마귀 생각대로 하면 영원히 죽는 것이고 여기에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최종 가치는 그 사람이, 안 믿는 사람 믿는 사람의 가치는, 인류 가치는 이제 영생하는 생명을 얻었느냐, 살아났느냐 못 살아났느냐 그것이 인제 첫 가치 평가로 갈라지는 것이고, 이거는 구원 얻은 자 못 얻은 자 이것으로 갈라지는 것이고, 구원 얻은 자로서는 가치가 어떠하냐? 구원 얻은 자로서는 가치가 중간 가치는 앞으로 수술을 받아 치료받을 수 있는 가능성 부분이 많은 사람, 치료받아서 가능성 부분이 적은 사람, 적은 사람보다 많은 사람이 가치 있고, 이거는 중간이고. 최종 가치는 치료를 받은 부분이 많으냐 치료받은 부분이 적으냐 이것은 인생의 영원한 가치입니다. 영원한 가치요 영원한 능력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기에서 인생은 다, 중생되지 못한 것은 다 죽은 시체라. 이 큰 전쟁으로 죽은 시체라. 여기에서 시체 중에서 제일 복된 자가 누구냐? 살려내기로, 치료하기로 등록된 자라. 이 대장이 자기 것만 살려냅니다. 남의 것은 살리지 않아요. 된 자라. 그러면 다 중생 돼서 살아난 자의 가치는 어디다가 두느냐? 살아난 자 중에 가치는 그것은 1차적으로 임시적으로는 살려낼 것이 많으냐 살려낼 것이 적으냐 이것으로써 가치를 정할 것, 그러나 살려 낼 것이 많다 해도 그게 살릴는지 막상 하나도 못 살릴는지 모릅니다. 모태로부터 예수 믿는 사람도 그게 성화는 하나도 안 되고 기본구원만 얻고 건설구원은 하나도 못 얻고 가는 그런 인간도 있습니다. 또 늦게 예수 믿은 사람은 그 사람이, 나는 스물 다섯 살 먹어서 예수 믿었는데, 열세 살 먹어서 중생은 해 가지고 믿는 표시는 스물 다섯 살 먹어서부터 표했습니다. 이러니까 일흔 다섯 살을 산다고 하면 5분지 1은 썩은 것 아닙니까? 5분지 1은 썩은 택이지요? 그렇습니까? 몇입니까? 일흔 다섯 살 살면 스물 다섯 살이면 그것은 5분 지 1입니까? 3분의 1이가? 3분지 1 썩었다 말이오. 3분의 1 썩었을 때 예수 믿었어 그러나 3분의 1 썩어도 3분지 2 이것이라도 이걸 치료를 참 그때그때 잘 받아 가지고 이것이라도 완전히 치료가 됐으면 그래도 무궁세계가 가지고 3분지 1은, 3분지 1은 병신이라도 3분지 2 이것 가지고 날아다니며 뭣 좀 할 것인데 이것 잘 못 받으면 큰일이라 그거요.
이렇게 해서 우리가 모든 사람을 볼 때에 평가가 '다 1차대전에 다 죽은 시체다.' 이것, '전 인류는 죽었다 죄와 허물로 죽었다.' 이것 봐야 됩니다.
'죽었다. 이 죽음에서 중생으로 생기를 얻었나 못 얻었나? 살아났나 못 살아났나?' 살아난 그 하나는 살아나지 못할 것 억억만배보다도 가치가 큰 걸 알아야 됩니다.
'이건 살아났다 그러면 살아났으면 보자, 치료받을 희망성 있는 것이 많으냐 적으냐? 이거는 많다 이거는 적다.' 그것으로 평가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러면 치료받을 희망성이 많지마는 그것 치료 받을는지 못 받을는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최종으로는 어디다가 가치를 정해야 되겠느냐? 치료받은 것과 치료 못 받은 그것으로 평가해서 치료 못 받은 것은 다 헛일이니까 치료받은 것을 가치로 둬 가지고 어쩌든지 치료받을 수 있는 희망 있는 그것은 기간이 지나기 전에 치료를 받아야 된다.' 이래서 우리가 인생의 가치를 1차적으로는 중생에 가치를 둬야 되고, 중생에 가치를 둬야 되고 2차적으로는 성화 된 그 성화에 가치를 둬야 됩니다. 성화에 가치를 둬야 됩니다.
성화에 가치를 두고 그 중간 가치로서 두는 것은 희망성이 있다 없다 하는 그것으로 둬서, 젊으냐 늙으냐, 젊었느냐 늙었느냐 하는 그것은 이것이 치료를 받을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 하기 때문에, 젊고 늙음의 가치는 이것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희망성이 있느냐 없느냐, 다 죽기는 죽은 것인데 있느냐 없느냐? 이러니 그것은 희망성이 있느냐 없느냐 그 정도의 가치가 되고, 희망성이 있다 해도 하나도 못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우리가 2차적으로 가치로 평가할 것은 어쨌든지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하도록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는, 이 죽을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이것을 지나가기 전에 수술을 받아서 치료를 받아서 이것을 만들어야 되지 이것 만들지 않은 것은 있어봤자 소용없다. 희망이 있다 해도 그것 헛일일지 모른다.
어쨌든지 그러니까 1차 가치는 중생이 됐느냐 안 됐느냐 여기에서 인생의 1차 가치를 정하고, 2차 가치는 희망성이 있든지 없어 썩었든지, 썩은 것보다는 안 썩은 게 낫지마는, 썩은 것보다는 안 썩은 게 낫지마는 안 썩은 그것도 가치로 칠게 없다. 썩은 것보다는 안 썩은 게 낫지마는 안 썩은 것 그것도 가치로 칠 것이 없다 치료를 못 받을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안 썩은 거기에도 가치를 두지 말고, 이것이 치료받은 후라야, 치료를 받은 것이라야 이게 참 가치 있는 것이고 영원한 것이지 치료받지 못한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1차 가치인 중생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변동할 수 없는 것인데 우리가 1차 가치에는 참여를 해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가 인생의 가치를 어디다가 둘 것이냐? 이 치료받아 가지고 살아난 치료받은 이 양에만 가치를 둬서 여기에다 전심을 기울여 집중해서, 우리는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썩지 않고, 죽지 않고, 쇠하지 않고, 낡아지지 않고, 늙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전지전능에 연결된 이 전지전능의 하나님의 지체인 이런 능력 있는 것으로 수술 치료받은 여기에만 가치를 두고,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여기에만 기울여 가지고 이것만 우리 소망을 가지고, 이것만 귀중하게, 이것만 가치로 두고 여기에 막 기울어져도 잘못하면 치료받는 여기에, 이 가치에만 치중하지를 못하고 자꾸 옆에서 미혹이 많기 때문에, 이게 좋다 저게 좋다 하기 때문에 거기에 기울어져 가지고 빠지기 쉬운데, 우리가 이것을 가치로 두지를 못하고 이 썩지 않은 시체 이것에 두고, 이것을 두고, 젊음에다가 인생의 가치를 두고, 건강에다 가치를 두고, 이 세상 모든 이런 벼슬줄 저런 벼슬줄 이런 데다 가치를 두고 여기에다 가치를 둔 자는, 자기가 뭐라고 쌓아도 제일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데 거기에 투자합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을 가치로 여기는 자는 자기는 거기에다가 투자하기 때문에 거기에 투자하는 것은 말하기를 뭐라고 했느냐? "썩어진 것을 거두고" 갈라디아서 6장 8절에 보면 "썩어진 것을 거두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인생의 가치를 이렇게 두는 것이 이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왜? 왜 내가 이 설교를 하느냐? 어쨌든지 20세기가 되어져 가니까, 20세기가 되어져 가니까 사람이 인생의 가치를 어디다가 두느냐? 중생했느냐 못 했느냐 여기에 가치를 다, 이것을 업신여깁니다.
중생 됐다는 이걸 아주 무가치하게 여깁니다. 중생 되고 안 되는 그건 가치로 삼지 않고 '그 사람이 세상에서 무엇을 가졌느냐? 어떤 지위를 가져 높으냐? 무슨 실력을 가졌느냐?' 이것 다 썩음의 송장 실력인데 이것으로만 실력을 알고 가치로 알고, 중생이냐 말한 이걸, '모든 것보다도 중생 이게 제일 가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알아야 될 터인데, 중생하지 못한 자들은 못 하지 마는 중생 된 자들까지도 이것을 가치로 크게 여기지 않으니까 저는 죽은 시체가 살아났는데 이 생명을 가진 자가 시체를 부러워합니다. 시체를 부러워해. 시체를 부러워하니까 제가 생명 가진 게 죽지는 않지만 산 자로서 살지를 못한다 그 말이오 또 그러고 이걸 지금 온 세계가 중생이냐 하는, 이 전부 기독교 도덕이나 사회나 이런 것 껍데기 문채 이런 것만 하고 있지 이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했다. 네가 썩지 않을 씨로 살아났다.' 중생이라는 이 가치를 도무지 가치로 여기는 이것이 너무 희박해 가고 있고, 그 다음으로는 믿는 사람들이 가치를 평가하기를 '야, 저기 썩지 않은 미인이 있다.' '야, 그래도 송장이다.' '야, 썩지 아니한 지금 큰 천재 재동이 있다.' '야, 그것 시체다.' '야, 저기는 반 썩은 대 학자가 있다.' '야, 그게 송장이다' '저기는 지금 썩지 않은 정치가의 시체가 있다. 정치가가 있다.' '그것도 시체다. 모조리 죽었다. 시체다 시체다.' 이것을 말을 안 해도 자기로서는 지식하고 있어야 됩니다. 지식하고 있고, 있으면서, 그러면 '봐라 그건 어찌 됐느냐?' '야, 그것은 머리가 허얘서 머리가 허연 파뿌리가 됐다. 파뿌리가 됐다.' '아이구, 파뿌리 돼서 가치 없다' '얘, 아니다. 그것 지금 치료를 얼마나 받았는가 봐라. 야곱이 지팡이 짚고 뻘뻘뻘뻘 떨고 서지 못하지만 야, 그것 치료 얼마 받았는가 봐라. 치료를 야곱이 80프로나 치료를 받았다. 80프로나 치료받았다. 80프로는 전지전능의 하나님의 지체가 됐다.' '그것 가치 있다.' 이렇게 인간을 평가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저 사람은 얼마나 성화 받았느냐?' 그러면 중생 가치 다음으로서는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성화를 받았느냐 성화 그것을 인생의 가치로 삶아야 저도 그 생애가 그리 이루어지지 인생의 가치를 성화 그걸로 삼지를 아니하고 젊은 것, 나이 많은 것, 돈 많은 것, 얼굴 잘나고 권세 있는 것 이걸 가치로 삼으니까 너는 그것을 가치로 삼으니 그 가치를 치중하니까, 그 가치에 너는 집중하고 욕망이 붙을 터이니까 너는 다 죽고 망하고 마느니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오늘 저녁에 이것을 우리가 회개를 해야 됩니다. 자기는 지금 젊음의 건강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강 가지고 있어도 '이것은 송장이다 지와 허물로 죽은 것이다. 생기만 얻은 이건 송장이다. 이것이 송장인데 죽기 전에 이것을 치료를 받아야 될 터인데 치료를 언제 받노? 치료받는 것은 현실이라는 그 현실에서, 그 현실에서 받을 치료는 그 현실에 받아야지 그것 지나가면 달리 받지 못한다. 썩어버리고 만다. 이러기 때문에 치료받을 현실이 이렇게 귀중하구나. 현실에서 죽든지 살든지 어쨌든지 치료받아야 되겠다.
돈도 필요 없고 권세도 필요 없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 죽은 시체가 영원한 것으로 치료받는 이것이 제일 가치 있고 귀중한 것이로구나.' 여기에 가치로 알아서 여기에 전부 집중해 가지고 이 평가해서 거기에 욕망만 가져도 이 일이 어려운데 오늘 믿는 사람들도 전부 가치를 썩어질, 앞으로 썩어질 그것에게 가치를 두고 썩지 않도록, 썩지 않도록, 썩는 그것에게 종이 돼 가지고 안 썩으려고 애를 쓰고, 썩습니다. 그거는 아무래도 썩습니다.
제가 어떤 데 가니까, 한번 어째 모처럼 뭐 불고기 집에인가 냉면 집에인가 가니까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인사를 하는데 '이 고등학생이 와서 인사를 한다.' 내 눈에 이래 봤다 말이오. 또 그 뒤에 또 어떤 학생이 와 또 인사를 하는데 보니까 '이 학생은 먼저 온 학생보다 상급 학생인갑다.' 이랬는데 먼저 온 것은 어머니고 뒤에 온 건 딸이라. 그렇게 젊었어. 이렇지 마는 내 눈이 어두워 그렇지 절대로 늙지 않는 수가 없고 죽음을 당겨오는 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암만 그것 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안 늙으려고 해 봤자 소용없고 안 죽으려 해야 소용없고 그거는 다 죽은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가면 썩기 마련인 것입니다. 한 시간 지나면 그만치 썩고 두 시간 지나가면 그만치 썩기 마련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이 가치를 젊은 것은 안 썩은 송장, 늙은 것이 많이 썩고 남은 것이 조그매 밖에 안 남아 있는 송장, 송장.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죽은 것이 썩어버리면 그것도 헛일이라 못 살리는 것이라, 그만 그러면 제가 살았든지 이 세상에서 그 시간이 지나가 시기가 지나가 버린 것은 다 썩은 것이라.
그러니까 50살 먹었으면 50년은 벌써 썩었든지 재생을 시켰든지 둘 중에 하나라.
이것을 우리 눈으로 말은 안 해도, 이 세상에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막 욕을 하고 달려들 것 아니오? 말은 안 해도 알아야 됩니다. 인생의 가치가 어디 있느냐? 인생은 다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진리로 살아난 여기에 가치가 있다.
안 살아난 전부보다도 살아난 그 문둥이 살아난 그게 낫다. 가치가 있다.
또 인생의 가치가 어디 있느냐? 젊음에 있느냐, 건강에 있느냐, 미에 있느냐, 벼슬에 있느냐, 돈에 있느냐, 그 학에 있느냐? 아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이것이 치료받아 가지고 썩지 않을 그 기능으로, 썩지 않을 몸으로 이렇게 성화를 받았느냐? 거기에다가 가치를 두고 그것만이 가치지 그 외에 가치가 하나도 아니다.
이렇게 이것만이 우리가 가치로 삼아서 이 가치에만 집중을 해도 이 일이 어려울 젓인데 이것은, 이 성화가 되나 안 되나 이것은 생각도 없고 몸뚱이만 어떻게 하면 좀 건강하게 살고 어떻게 하면 오래 살고 좀 어떻게 할까? 또 부러워서 서른 살 먹는 것은 스물 아홉 살 먹는 게 부럽고, 스물 아홉 살 먹는 건 스물 다섯 살 먹는 게 부럽고 어쨌든지 그게 부러워서 자꾸 꾸며봤자 안 늙지 않습니다. 꾸며봤자 안 늙지 않소. 암만 안 죽으려 해 봤자 안 죽지 않소. 그런 것은 가치 없는 것입니다.
가치가 어디 가치냐? 그것이 재생한 수 있는 희망성이 있고 없는 것, 죽은 것보다는 그게 낫지요. 이러나 그것이 잘 수술 받아서 성화의 치료를 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첫째는 중생, 2차적으로 우리가 지금 노기는 가치는 이것 저것 가치를 다 내비둬 버리고 뭐 가치가 뭐이냐? 그것 볼 것도 없고 우리가 평가하고 우리가 가치로 알아서 그 취하려 하는 우리가 아는 가치, 우리가 취하려고 하는 가치, 우리가 만들려는 그 가치는 무엇이냐? 성화입니다. 성화. 치료, 수술돼서 치료받아서 성화 되는 것. 잘못하면 이것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소망은 인 죽은 시체인 인간의 건강, 젊음, 이 세상 어떤 부귀 영화 벼슬 거기에 둡니다. 그것은 다 헛되고 헛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젊은 사람도 '이거는 시체다. 이것이 성화 안 되면 소용없다. 치료받지 않으면 안 된다. 치료 안 받으면 썩어버린다. 썩기 전에 이것 치료받아야 된다.' 치료받은 이 가치만 내가 만들려고, 이 가치만, 이 가치만 가치로 알고 이 가치만 만들려고 자기가 전심 전력을 기울이는, 가치관이 이리 되고 욕망관이 이리 되어져도 하기가 힘드는데 이것은 등한시하고 마귀란 놈이 그저 젊음, 아름다움, 세상 모든 것 여기에 이게 좋다 하니까 그리 미혹해 가지고 거기에 집중하고 성화는 집중하지 않는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다음 주일에 주일학교도 단단히 가르치고, 중간반에도 가르치고, 우리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이걸 전해야 됩니다.
이 자리에서 가만히 생각해, 이게 성경에 있는가 틀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