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순덕 전도사 설교

2015.12.0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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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95년 제 3

 

* 이 설교는 백영희 목사님께서 병중에 계실 때, 추순덕 전도사님의 새벽예배 설교입니다.

 

 

본문 : 말라기 1614, 21114절 상반절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 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리라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우리가 오월집회 때에 같이 은혜 받은 말씀입니다. 이렇게 경고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셔서 잠든 우리의 신앙이 다시 깰 수 있고 묵은 둥치에서 새 움이 나지 않고 늙은 이는 꿈을 꾸는 그런 상태에서 신앙생활하는 우리들에게 오월집회에 큰 경종을 울려 주셨습니다.

분명히 제가 제 자신을 살필 때 묵은 둥치 그대로 있고 이런 새로운 진리와, 새로운 말씀을 들은 것과 비교할 때 변화가 없고 새 세계를 걸어가지 못하고 참 한 마디라도 바로 깨달으면 예수님을 위해서 미친 자와 같이 미치지 않을 수 없고 미친 자와 같이 설치지 않을 수 없는 이런 불붙는 뜨거운 말씀을 우리가 시간마다 들었고 특별히 오월집회 때, 우리는 그 13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종이 그 말씀을 증거할 때에 얼마든지 참, 그 말씀을 걸고 넘어지면, 이 정치가 바뀌어질 때 당장 사형이 될 수 있는 그런 말씀도 많이 외쳤습니다. 우리는 평안 무사할 때에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찬송을 부르고 이러니까 우리가 찬송을 불러도 예사로 부릅니다.

과거 신사참배 때, 그런 때에 한 번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려고 하면, 찬송을 한 번 부르면 찬 물을 끼어 얹고 그 추운 겨울에 찬물이 자기의 온 몸에 몇 동이를 끼어 얹어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예배시간을 안 뺏기기 위해서 찬송을 그대로 부르고 기도를 그대로 하고 성경을 그대로 본 그런 신앙의 정조를 지킨 하나님의 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찬송을 불러도 자면서 부르고 우리가 기도를 해도 자면서, 잠꼬대와 같이 하는, 그런 묵은 둥치의 신앙생활을 거듭하고 거듭하는 제 자신인 것을 제가 느끼고 말하는 것입니다.

65년도, 제가 견딜 수 없어서 부산에 올 때만 해도 6565일 주일에 시편 91편 설교를 이 건물 짓기 전에 다다미 방 2층에서 목사님께서 하실 때에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날듯이 춤을 출 듯이 기뻐하면서 이제 죽어도 한이 없구나 하는 그런 은혜와 그런 뜨거운 느낌을 받은 그것이 다 어디 갔는지 없습니다.

그때는 잠자는 사람이 이상하고 조는 사람이 이상하다. 이렇게 이 말씀을 주시는데 어떻게 조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다른 교회에 있다가, 20년 딴 교회에 있다가 이 제단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얼마나 사모하고 하나님의 종의 그 외치는 말씀을 그리워하고 와서 들을 때에 그렇게 됐지만 자신도 모르게 오늘 이렇게 깊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정산 집회나 주암산 집회나 삼봉산 집회나 삼각산 집회 다니면서 은혜를 받고 본 교회에 돌아가려고 하면 당해 본 사람밖에는 그것을 모릅니다. 아이고 또 본 교회에 가서 어떻게 제단 생활을 하나, 설교를 들을 때도 질식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이 제단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항상 말씀을 듣게 되는 그런 자리에 있는 분들은 이것을 느끼지 못하실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그렇게 갈급하고, 그렇게 굶주린 창자가 되어서 질식해서 또 집회에서 받은 말씀을 또 가서 예배보고 가서 또 뒤집어 보고 설교 듣고 가서 또 뒤집어 보고 그 말씀 듣고 양식이 이제 좀 돼서 기근이, 내 속에 기근이 면했다. 기진해서 쓰러졌다가 질식했다가 이제 그 미음이라도 좀 먹고 나서는 다시 살아났다 하는 그런 기분이 얼마나 오래 계속됐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런 좋은 말씀을 들을 때에, 성경에 보면 모세가 40일 동안 금식하고 돌비를 받아서 그 백성에게 전달하려고 내려올 때에 그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럴 때에 그 돌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중간에서 깨뜨려졌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그렇게 하나님이 증거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그것을 찾기 위해서 찾고 찾아서 제단마다 집회마다 우리에게 증거해 주셨는데 받은 자는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우상이 있는 자는 그 말씀이 자기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중간에 돌비가 깨어지는 것처럼 깨어지고 자기와는 상관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속에 우상이 있을 때는 그 말씀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제 이 말씀 중에 많은 말씀이 있지만 잠깐 한 두 가지만 생각하겠습니다. 말라기 18절에 보면 병든 것으로 드린다고 말씀했습니다. 병든 것으로 드린다는 말씀은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표준한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이 표준한 사람의 마음은 이런 마음이다. 마음은 이래야 되고 성품은 이래야 되고 행위는 이래야 되고 그런 것을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이 되어서 이런 사람이 돼라, 이런 사람이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이렇게 성경이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아닌 성경대로 되지 못한 사람. 우리 요 사람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평생 예수님 믿어도 옛사람, 새사람 말 안 해 줍니다. 저는 해방 전까지 들은 적이 없습니다. 해방 전에 만주에 있을 때에 눈이, 이 허리같이 쌓입니다. 그래도 새벽기도 나가고 그 눈 사이를 헤치고 나가도 옛사람, 새사람, 기본구원, 건설구원, 뭐 믿음은 순종이다. 순종은 하나님께 대해서 마음의 순종, 몸의 순종,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이다. 이런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듣지 못하니까 그 믿음이 잡탱이 믿음이요, 어만 판에 기어 올라가서 해방되고 와서 하나님의 종을 만나서 말씀을 들으니까 이제 다 그 산에서 기어 내려와서 새로 믿어야 되겠더라 말입니다. 그러면 옛사람, 새사람을 모르면 우리가 이 설교를 들어도 또 모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해 주는 사람은 이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대로 되지못한 그 사람, 예수 안 믿을 때와 같은 그 사람, 예수 안 믿을 때에 주격이 되어서 살던 그 옛사람 자기, 그것을 하나님 앞에 내 놓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인데 그것을 내놓으면 하나님께 모욕을 주고 하나님께 진노케 하는 것인 것을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것인줄 알고 그것을 당장 고치지 못할지라도 내가 성경대로의 사람이 되어야 되겠구나 하나님의 원하시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구나’,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하지 않고 자기 된 대로, 저 된 대로 하나님이 표준한 하나님의 표준 그대로의 사람, 그것을, 그대로 되지 안한 그것을 말해서 여기 병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병든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병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린다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병든 것을 가지고 상대해도 된다, 하나님을 상대해도, 뭐 하나님을 교제해도 교제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것이 틀렸다는 말입니다. 뭐 무슨 상관이 있느냐? 거저 아무따나 와서 옛사람, 새사람 구별없이 주의 피에 용서를 받을 필요도 없이 그것도 생각하지 않고 거저 하나님 아버지, 거저 이렇게 부르면 되는 줄 아는, 저 된 대로 그렇게 하나님 섬기면 되는 줄 아는 그것이 틀렸다는 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 너희가 완전자가 되어야 내가 상대하겠다.” 그런 말씀 아닙니다. 그러면 이것은 자기 자신이 병든 줄 알고 틀린 줄 알고 이것을 주님께 고해서 이 병을, 나는 이렇게 병든 사람이다. 38년 된 병든 사람이다. 저는 사람이다. 눈 먼 사람이다. 이 모든 만물관이 세상 사람과 꼭 같은 것은 눈이 먼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린 것이라 했습니다. 눈 먼 것을 드리고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 드린 대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받는 그것을, 병든 것을 드리면 병든 것을 달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고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멸망을 자청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치기를 원하고 참 성경이 말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는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할 때에 벌써 그 사람은 마음으로는 고쳐진 사람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대할 때마다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말씀대로의 행위가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이 표준한 대로의 그 말씀과 같은 사람, 말씀과 같은 행위, ‘하나님이여 나는 이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말씀과 같은 사람을 요구하고 이런 행위를 요구하는데 나는 이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제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대해 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도록 우리가 힘쓰고 이런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것이 이런 사람 안되는 것이 싫고 이런 사람 되어있지 않는 것이 마음에 통분해서 원통해서 견딜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그것이 대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의 사람, 이 말씀대로의 행위가 되기를 이 말씀과 같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이것이 되지 않는 우리들에게 진노하신다고 했습니다. 미워하신다고 했습니다.

10절에 보면 헛되이 불사르지 말라그 말은 제가 하나님의 법도대로 되지 않고 더러운 떡과 눈 먼 희생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지고 네가 하나님 아무리 불러도, 하나님 앞에 목이 터지도록 부르고 금식하면서 부르고 아무리 불러도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나님이 피 대접 받겠느냐? 하나님, 피 대접받지 않는 하나님이시다. 너 혼자만 그랬지 거기 대해서는 하나님이 그 대접을 안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러니까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는 자를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너무너무 싫어서 하나님 섬기는 그 제단, “성전 문을 닫아 버리면 좋겠다. 닫는 사람이 없는가? 너희 중에서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이렇게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지 못하도록 섬기는 이 일을 없애 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는 대로 공산 치하에 있는 그런 사람들은 벌써 이렇게 성전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그러면 공산주의가 그 성전 문을 닫고 이렇게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요 말씀대로 보면 잘했다. 하나님의 소원대로 됐다. 하는 그 뜻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이남에도 언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이렇게 병든 것, 눈먼 것, 저는 것, 오만 자기대로의 하나님 법도대로가 아니고 자기대로 섬기는 것을 계속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 제단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언제 어떻게 하실지 우리는 모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대구집회에서도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경고의 말씀 같다고 몇 차례나 하나님의 종이 말씀했습니다. 110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지 않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경고의 말씀을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주실 때에 회개하지 안하고 이 말씀대로 그들은 다 남김없이 멸망 받았습니다.

, 이대로 회개하지 안하면 하나님께서 그 뒤에 읽어보면 이방을 이스라엘 대신 이방 민족 가운데서 순교자도 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가 나와서 회개의 은혜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시고 성화의 은혜도 그들에게 베푸시고 긍휼도 하나님께서 이방 백성에게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긍휼을 거두어서 이방 백성에게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 다시 말하면 촛대를 옮기실 것을 거기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이 우리에게 마지막 경고, 마지막 말씀인데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 당신이 어떻게 하실지 우리는 아무도 모릅니다. 해방 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실 때에 우리가 그때는 긍휼을 받았습니다. 긍휼을 받으니까 그때 그 은혜를 받고 해방 직후에는 그 은혜를 받을 때에 얼마나 은혜 생활이 뜨거웠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불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에는 이 40년 가까이 해방 후에, 지나는 동안에 긍휼히 여겨도 우리가 긍휼을 받지 안하고 다 그것이 싫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 성의 없고 아무 조심없이 하는 그런 사람이 됐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촛대를 옮길 그런 실정이 아닌가?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교회 적으로든지 가정으로든지 개인 적으로든지 자기에게 회개가 되어지면 그 사람은 복이 되어질 것이고 어쩐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과거에 아무리 회개하려고 해도 회개가 되지 않고 과거에 아무리 요것을 끊으려고 해도 내가 요 죄는 끊어야 되겠다. 내가 요 새벽기도는 계속해야 되겠다. 내가 요 예배시간은 지각하지 않아야 되겠다. 요 예배시간에는 잠을 자지 않아야 되겠다. 내가 요 행동은 안해야 되겠다. 끊어 보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던 것이 하나님 말씀 듣고 나니까 어쨌든지 고쳐지고 끊어지고 하면, 이렇게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회개케 하는 역사가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벌써 그 사람은 버림을 당한 사람인 것을 인정하고 자기를 단속해야 될 것을 우리가 또 5월 집회에서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듣고 어떤 분은 제가 잘못 생각하는지 몰라도 이 말씀을 쓰지는 안하고 창고에 재어 놓는 사람, 이 말씀을 듣고 길가 밭이 되어서 새가 와서 주워 먹어 버리는, 즉시 다 날아가 버리고 없는, 이 말씀을 듣고 돌짝밭이 되어서 자기에게 손해가 올 때에 또 버리는 사람, 또 가시밭에 떨어져서 이 세상 재리 염려 때문에 말씀 다 버리는 사람, 그러니까 그것 때문에 회개하지 못하고 옥토에 떨어진 씨가 되어서 회개해서 열매를 맺어야 될 것인데 우리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신을 우리는 단속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사람은 다음에 내려다보면 하나님께서 불로 연단한다 그랬습니다. 고문과 고형 가운데 끌어넣어서 하나님께서 회개를 시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에누리가 없습니다. 과연 오늘도 이 말씀 이대로 당하는 사람은 당하고 있습니다. 고문과 고형을 당하는 것도 두 가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지키기 위해서, 지키는 것을 양보하지 않기 위해서 고문과 고형과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것은 영광이요 그것은 자기의 실력을 시험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 시험을 이기면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오만 죄를 다 지었는데 고문과 고형이 자기에게 오는 것은 저주입니다. 우리는 그것도 자기가 자기를 살피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자다.’ 자기가 자기를 아는데 하나님이 자기를 모르시겠습니까?

1장 마지막에 보면 사기해서 드린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는다. 하나님 바라본다. 하나님 의지한다.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면서 참 바라보지 않고 참 기도하지 않고 자기가 자기를 살펴보면 알아요. 하나님을 참 의지하는가? 참으로 바라보는가? 돈을 의지하는가? 세상을 의지하는가? 피조물을 바라보는가 그것을 너무도 잘 안다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참 의지 안하면서 하나님을 참 의지하는 것같이 속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화로 우리가 건강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말씀을 받을 때 감화로 우리를 회개시키려 하는 기회인줄 압니다. 그러면 감화로 할 때 안 들으면 그 다음에는 소유를 친다고 했습니다. 소유를 쳐도 회개하지 안할 때는 고문과 고형가운데 던진다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회개하는 이것이 자기에게 있어야 되고 회개하는 것이 없으면 얼마나 자기를 단속하고 회개해야 되는 것을 여기 말씀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보면 12절에 사기하여 드린다그런 말씀이 있고 또 1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우리가 이 말씀도 잘 들어야 됩니다.

하나님 법대로 하나님을 섬기라 하니까 까닭 없다. 뭐 그래 믿을 것 뭐있노?’ 하나님을 바로 알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다는 것을 바로 알면 우리가 아무리 조심하고 아무리 우리에게 있는 전부를 다 기울여서 구별하고 사람과 사람을 구별하고 지식과 지식을 구별하고 옛사람과 새사람을 구별하고 이렇게 구별하고 구별해서 드려도 비단인데... ‘그렇게 귀찮게 번폐스럽게 그렇게 섬길 것이 뭐있나’, 귀찮게 여깁니다. 쉽게 믿지 그렇게 할 것이 무엇 있는가?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도 그랬습니다. 3일 동안 길을 걸어 갈 때에 아브라함은 힘들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쉽게 섬기는 것을 좋아 안했습니다. , 하나님이 모리아 산에 가서 드리라 하시니까 그 산에 나무가 없겠습니까? 집에서 나무를 장만해 갔습니다. 그것 하나만 보더라도 산 꼭대기에 올라갈 때도 나귀와 종들은 두고 올라갔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섬길 때 어떻게 하면 좀더 하나님을 힘들여 섬길까, 정성을 더 드릴까?

그렇기 때문에 예배당 가까운데 있는 것보다 새벽 제단에 나오는 것도 먼 것이 더 좋더라고 그러면 새벽 제단에 나오는 그 시간이라도 발 걸음을 한 걸음 더 걸을 수 있다 그 말입니다. 비 안 오는 날보다 비오는 날 주일 지키는 것이 더 좋더라고 다른 때는 자기가 돈벌이하기 위해서 옷을 버리지만 주일날은 예배당에 오기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옷을 한 번 버려본다 말이요, 힘들여 하나님 섬기는 이것이 자기에게 좋고 좋아서 할 때는 피곤치 않습니다. ‘왜 오늘도 주일이 되었나, 오늘도 새벽기도 가야되나? 가기 싫다.’ 이렇게 하면 피곤해서 낙심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으면 22절에 보면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셨지만 복 대신 이제는 저주를 주겠다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그대로 변동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3절에 보면 하나님을 더럽게 섬기는 것같이 너희도 제해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더럽게 섬긴 것을 제할 때에 너희 자체도 같이 제하여 버린다 하셨습니다.

211절로 13절에 유다나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가증스런 죄를 범했는데 거기에 속해서 열심 내고 충성하고 자기를 깨끗이 하고 응답하고 순종생활을 거기에 속해서 한다 그 말입니다. 그래도 주께서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발람이 삐뚤어진 길로 가서 죽자고 충성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아무리 잘못된 데 속해서 충성하고, 그런 사람 오늘 얼마나 많습니까? 형편없는 교회에서도 열심히 하고 자기를 깨끗케 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소용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노선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공회”, 바로 된 공회에 속해야 될 것을 말씀합니다. 그 공회가 사욕을, 자기 주장을 하나님의 법도를 떠난 공회에 속해 있으면 아무리 자기의 전부를 기울여도 안되고 그것은 헛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펴보면 너무나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공회를 바로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교회의 교역자, 목사님이 바로 될 때에 그 교회에 속한 모든 양떼는 바로 됩니다. 하나님 다음에는 자기가 땅 위에서 교역자 바로 만나는 것이 최대의 복입니다. 이 복을 받았으면 다른 복은 좀 못 받아도 이 복이 최대의 복인 줄 알고 우리가 제단 생활, 회개 생활 열심히 해야 되겠습니다. 노선이 잘못되면 비참합니다.

제가 여전도회 때도 말했지만 어떤 교회는 6.25가 나니까 , 우리가 경주로 피난 가자.’ 그래서 다 끌고 경주로 갔습니다. 대구에 있는 교회인데, 성결교 제단인데, 아주 유력한 목사님이고 부흥사고 고신 이런데 와서도 부흥예배 인도 많이 했습니다. 그 양떼들을 다 끌고 경주에 갔는데 대구는 낙동강을 중심을 해서 빨갱이가 못 들어왔습니다. 경주는 불바다가 됐습니다. 그러면 경주에 다 이끌고 간 양떼와 그 목사님은 어떻게 됐느냐? 빈 손을 들고 본교회로 6.25가 지난 다음에 돌아 왔습니다. 제가 전에 있던 교회 옆에 있던 교회입니다. 그랬는데 그 교회에 사변이 지나고 보니까 젊은 아이들만 있고 아무도 없어요, 학생들만 몇이 와서 있고, 얼마 지나니 그 교회를 팔아서, 어느 학교 선생님이 사서 사택을 합디다. 또 예배당은 무슨 학원이 됐고 그 목사님은 전라도로 갔다하고 그 교인들은 다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교인들이 그런 교역자를 안 만났으면 그렇게 안 되었을 것 아닙니까? 우리가 많이 들었습니다. 왜정 때도 개명교회에 목사님 밑에 속해 있던 교인들은 신사참배 한 사람도 안했다 했습니다. 제가 교회 다닐 때 왜정때, 그때는 어려서 무엇을 압니까? 애국자 목사님이었는데 그분 밑에서 신앙생활했는데 거기서 동방요배 다하고, 신사참배를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게 죄인 줄 뭐 압니까? 그것이 죄다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삐뚤어졌다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소속이 틀렸기 때문에 무더기로 도매금으로 다 같이 무더기 죽음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노선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 노선에 대해서도 우리는 희미합니다. 머리가 잘못되면 그 밑에 있는 교인들이 아무리 날뛰어도 아무리 깨끗이 해도 아무리 부르짖어도 죽어도 아무리 해도 소용없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뭐 슬퍼해도 눈물 흘리면 다른 사람이 볼 때 뭐 되는 것같아도 금식해도 하나님의 법칙과 진리대로 안된 것은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교인 여러분과 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니까 하나님의 종 목사님을 진정, 얼마나 기도하는지, 하루 몇 번 기도하는지, 얼마나 정성 드려 기도하는지 진심으로 기도하는지 하나님의 종이 약해지면 우리가 약해지고 하나님의 종이 삐뚤어지면 우리도 삐뚤어집니다. 하나님의 종이 동으로 가면 우리도 동으로 가게 되고 우리는 꼬리이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종의 건강과 남은 때에 하나님 앞에서 피곤없이 과거와 같이 일할 수 있도록 전보다 더 기도해야 될 것을 이번에 우리에게 경종으로 종을 잠시 눕게 한 것으로 압니다. 오전 오후 설교를 하고 우리 주일학교 반사들을 위해서 여기서 성적 발표를 하고 여러 반사 선생님들을 격려하실 때는 어떤 때는 몸이 흔들거린답니다. 얼마나 피곤하시겠습니까? 30대 청년이 아닙니다. 하루는 여기서 반사 인도하면서 자꾸 뭣을 잡지 않습디까? 눈이 그때 가버렸습니다. 우리는 피곤하다고 해도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고단하다고 해도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측량할 수 없도록 깨달음의 거리도 충성의 거리도 기도의 거리도 피곤의 거리도 셀 수 없도록 무한이라 할 만치 멀리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하는 그 일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모르기 때문에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네가 하나님의 종을 위해서 기도를 해도 그만치 기도하면 됐다 그 수준에 못 올라갑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표준의 그 사람에게 도달하는 거기에 우리는 도달을 못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몰라서 못 믿는 것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도 네가 왜 이 진리를 안 행했나?” ‘하나님, 저는 몰랐습니다.’ 누가 그런 말할 자 있겠습니까? 우리는 배우고 또 배우고 졸 때는 깨워 가면서 머리를 들어라! 눈을 떠라, 아무것이!” 이렇게 양떼 하나하나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좌우로 치우칠까봐 좌로 치우칠까, 우로 치우칠까 바로 다니도록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진리를 되씹고 되씹었습니까? 또 못 들었는가? 또 가르쳐줘야지,

오전 오후 수요일 금요일 새벽 어떤 말씀은 열 시간도 좋고 얼마나 진리를 많이 들었습니까? 무한히 들었다 해도 끝이 없고 그 들은 말씀대로 실행하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씀을 창고에 재어 놓고 그 말씀을 듣고 떠내려 보내고 아무 잡은 것이 없이 이 성전 문을 나가면 불신자와 똑같은 인생관, 세상관 병든 것, 눈먼 것, 저는 것 그대로 드리는 이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경종으로 들려주는 말씀이 아닙니까?

이 말씀은 제가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 있을 때는 같이 회개하기를 불이 붙어서 소원해서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고요히 눈을 감고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 시간부터라도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종을 위해서 기도하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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