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7 15:08
신자의 생활법칙
본문 : 마태복음 14장 24절∼33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우리는 이리 저리 치우치기 쉽고 또 일방적이기 쉽습니다. 우리 서부 교회 교인들은 무엇을 물어 보면 내나 그 진리를 배우기를 요 말로 배웠으면 고 말로만 밖에 모르지 배운 진리이고 몇십 번 배웠는데 요렇게 물으면, 말이 달라지면 그만 모릅니다. 그래 가지고야. 마치 학교에서 계란을 놓고서 '계란 세 개씩 석 줄이면 몇 개고?' '그저는 아홉 개라, 삼 삼구 아홉 개라' 딱 배웠다 말이오. 배웠는데, 이래 배워서 공부해 놓고 가 가지고 '밤이 세 개씩 세 무더기 있으면 몇 개고?' 책을 뒤적입니다. 온 책을 뒤지면서 '밤 세 개씩 세 무더기는 안 배웠는데요. 계란 세 개씩 세 무더기는 배웠지마는' 그게 그래 가지고, 응용성이 없이 그래 가지고 뭐 하겠습니까, 하기를? 암만 배워 봤자 그거는 아무 생명이 없는, 작용이 없는 책보따리요. 책이라. 생명성이 없기 때문에 적용성을 모른다 그거요.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 이치를 배운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은 참된 이치요. 이치를 배우기 때문에 사람에게 대한 이치나 짐승에게 대한 이치나 만물에게 대한 이치나 조금씩 틀리지 그 이치가 같습니다. 물건에 대한 이치나. 이러니까, 그 이치가 이 시대의 이치와 저 시대의 이치가 다를 게 뭐 있습니까? 이 시대에 맞는 이치는 저 시대에도 맞고 이 사람에게 맞는 이치는 저 사람에게도 맞고, 진리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맞지요. 이러니까, 신구약 성경을 해석을 할 때에 어떤 사람은 '요거는 일천구백 몇 십 년에 해당된 일이고 요 일은 또 일천 육백년에 해당된 일이고' 요렇게 시대 시대에다가 성경 말씀을 꼭꼭 끼워 놓고서 그 외에 다른 데는 웅용하지를 못하게 이러니까, 마귀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인간을 어둡게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아는 지식을 다 묵혀 놓고 그저 게으르게 자기 생각나는 대로, 자기 지식이 백 개인데 백 개를 다 활용하지 안하고서 한 지식 그것만 가지고서 요 한 지식 요 지식을 사용하고 싶을 때는 고 지식만 사용하고 또 저 지식을 사용할 때는 사용하고 그러니까 언제든지 백 가지 지식을 배웠지마는 거기에서 이거나 저거나 한 가지만 사용하고 두 가지로 사용 안 하는 그런 사람은. 백 가지가 다 합해야 그것을 정평 정가 할 수가 있는 것인데 한 가지 지식 가지고 뭐이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자기 아는 지식을 전부 다 움직여 가지고서 전체가,-마치 말하면 우리가 하나 움직일라 하면은 손으로 하는 일도 손만 하는 줄 알아도 두뇌도 하고 눈도 하고 코도 하고 귀도 하고 입도 하고 이 모든 근육도 신경도 골수도 전부 다 세포까지 다 함께 움직여 가지고 이 손 하나 움직이는 걸 한다 그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지식도 체계적인 지식이 있어야 되고 체계적인 그런 활동성을 가져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전 인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 인류는 택자와 불택자로 나눌 수 있습니다. 택자 불택자. 그러면, 또 인제 이제는 택자만 가지고 말합시다. 또 택자로 말하면 택자는 중생된 자와 미중생된 자가 있습니다. 택자 가운데는 아직까지 창조되지 안한 사람도 있고 창조 된 사람도 있고 있는데 그것까지 다 말할라 하면 힘드니까 그거는 그만 내비두고, 택자로서 중생된 자와 미중생된 자, 중생된 자와 중생되지 안한 자 그렇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중생된 사람만 또 말합시다. 중생된 사람은 그러면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는가? 중생된 사람으로서 예수님 믿기를 시작한 사람도 있고 믿기를 시작 안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중생 됐다고 다 예수 믿는 생활 시작하는 것 아니오. 중생됐으면 중생된 이후에 오 년 만에 일 년 만에, 또 당일에. 또 십여 년 만에, 몇십 년 만에 그렇게 신앙생활을 늦게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생이라 하는 것도 세상에 나가면 온갖 미혹들이 다 있습니다.
중생은 이게 중생이라 저게 중생이라 해 가지고서 성경대로의 중생을 가르치지 안하고 엉뚱한 중생을 가르쳐 가지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또 구원을 절단내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 말이오. 어떤 교파에서는 중생을 믿고 난 다음에 한번 크게 은혜를 받아 가지고서 한번 자기가 꺼꾸러지고 한번 변동이 된 그것이 중생이다.
그때 중생한다.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도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거는 성경적이 아닌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 중에도 신앙생활 시작한 사람도 있고 아직 시작하지 안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중생한 사람으로서 신앙생활 시작했는데 신앙생활을 시작한 중에도,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 가운데도 생의 법칙을 둘을 생각하겠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안 믿을 때의 생의 법칙이 있고. 또 믿은 후의 생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다 신앙생활 시작하지 안했습니까? 신앙생활 시작한 사람들에게 생의 법칙이 둘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생의 법칙이 둘이 있어요. 예수 안 믿을 때의 법칙이 있고, 예수 믿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다시 주신 법칙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안 믿을 때에 준 법칙을 가리켜서 자연 법칙이라, 일반 법칙이라, 불신자의 법칙이라 그렇게 말 할수 있습니다. 그 법칙이 있고 신자의 법칙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래 두 법칙이 있는데, 믿는 사람은 다 같이 믿는 사람이냐? 다 같이 믿는 사람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고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권찰이 되고, 부장이 되고, 반사가 되고, 보조 반사, 세례 교인 학습 교인, 인제 평신도 이렇게 됐다고 할지라도 그 믿는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법칙은 이 두 가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예수 안 믿을 때의 법칙을 사용하고, 어떤 사람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주신 그 법칙을 사용하고 그렇게, 그 법칙을 일반 법칙 사용하는 사람, 특수 법칙 사용하는 사람 신자들이 다 같은 줄 알아도 각각 다릅니다.
그러면 그것은 여기에 이 본문 어데서 그것을 보고서 말하느냐 하면은, 그들이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가라' 주님이 말씀하시니까, 갈릴리 바다를 건너갈라고 하니.-갈릴리 바다는 이 세상을 상징한 것입니다. 이 세상을, 세상은 바다로 그렇게 상징했는데, 이 세상에는, 주님이 가라고 정해 주신 그 목적지를 가다가 그만 물에 빠지면 죽어 버리고 헛일입니다. 이 세상에 빠져 버리면 헛일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빠지지 안하고 그렇게 갈라고 하면은 배를 타야 됩니다.
배를 타야 되는데, 이거는 일반적 법칙이라. 그 제자들이 일반적 법칙을 그들이 사용하는 가운데에서, 일반적인 법칙을 사용하는 가운데서 저희들에게 주신 특수 법칙을 그만 일반적 법칙으로 전부 바꿔 버렸습니다. 이 특수 법칙을 변동 안하고 이 특수 법칙을 지켜서, 일반적 법칙은 외모요. 외식이요. 일반적 법칙을 지켜서 배를 타고 노를 젓고 이렇게 가기는 가지 마는, 그 속에 성도에게 주신 특수 법칙인 주님과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과, 주님과 말씀을 인한,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인한, 주님이 말씀했으니, 또 주님이 말씀하신 말씀은 전능의 말씀의 말씀이니 주님 중심 주님의 말씀 복종 요 두 가지가 특수 법칙이니까 요 두 가지가, 보이는 일반 법칙에 여기에 있어야 되는데 그만 일반 법칙을 행하다가서 일반 법칙으로 다 쭉 딸려가 버렸고 그만 특수 법칙을 잊어 버렸다 말이오.
일반 법칙은 생명이 없는 죽은 법칙이요, 특수 법칙은 죽은 법칙 속에 생명이 들어와서 이제 산 법칙이라 그거요.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은 다 죽은 것이요,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이 죽은 것인데 죽은 것 그것에게 둘째 아담의 산 것이 들어와 가지고서 이제 죽은 것들이 다 성화되고 변화되고 부화되고 다 이렇게 돼 가지고서 기독자의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법칙이 있어서, 믿는 사람 가운데에 자기는 아무리 배를 타고 노를 젓고 가지마는, 또 자기는 장사를 하지마는, 자기는 지금 공무원 생활 하지마는, 자기는 교편생활 하지마는, 자기는 가정부 생활 하지마는. 주부 생활 하지마는, 자기는 시집가고 장가를 갔지마는 그것은 전부 일반 법칙이요, 일반 법칙. 일반 법칙 속에 우리의 법칙은 뭐이냐? 특수 법칙은 주님으로 중심하고 주의 법칙대로 복종하는 이것이 우리의 법칙이라 말이오. 장가를 가도 주님 중심으로, '아무래도 주를 위해서 장가를 가야 되겠다. 시집을 가야 되겠다.' 또 장가를 가고 시집가되 주님의 명령 복종으로. 아무리 주님을 위한다고 위주로 중심으로 한다 할지라도 주의 명령 복종 안 하고서 다른 법칙을 지키면 안 된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그러고, 장사를 해도 그 사람이 하루 종일 장사하는데.
사람 보기에는 장사하고, 돈 받고 돈 주고 이렇게 하니까 장사가 그것이 제 생활인 줄 알아도 장사하는 가운데에서 오늘 종일 주님 중심으로서 주님이 시키는 명령대로 하려고 그것을 그 장사하는 데서합니다.
이러니까, 하루 종일 해 놓고는 저녁에 오면 계산해. '나는 오늘 죽은 일 했다.
오늘 죽은 일 했다.' 자기 시간표에다가 죽은 일 했다고 그날은 열 십 자로 막 동그라미로 이래 싹 그려 가지고 '오늘은 죽은 일 했다. 하루 종일 죽은 일만 했다.' '왜 죽은 일 했느냐?' '오늘은 대목장이라서 돈이 많이 벌리니까 돈 벌고. 물건 팔고 돈 벌고 물건 사고 하는 것 이것만 내 생활 했지 하루 종일 주님 중심으로 주의 법칙 복종으로 하는 그거는 깜깜 잊어 버렸다.' 그날 생활은 그만 막 작대기를 긋습니다. '오늘 생활은 뒈졌다. 죽었다, 죽었다, 오늘 생활은 하나도 산게 하나도 없다!' 이래 그어 버리고 자기가 생활하면서 또 '내 생활 또 잊어 버렸네. 내 법칙 또 잊어 버렸네.' 또 새로 시작해 가지고서 또 조금 있다가 '아. 또 그 법칙 잊어 버렸다. 또 잊어버릴 뻔 했다.' 이래 이래 해 가지고서 하루 거석하니까 '오늘 생활은 열 시간 활동하는데 열 시간 활동하는 가운데에서 아홉 시간은 내 법칙대로 살았고 한 시간은 내 법칙대로 살지 못했다.' 그래 가지고서 '오늘 활동 가운데 십 분지 일은 뒈졌고 십 분지 구는 살았다.' 죽은 그것이 괘씸하고 미워서, 이렇게 자꾸 계산을 대도 사람들이 그만 하다 보면 일반 법칙으로 끌려가기 쉽다 그 말이오.
그런고로, 일반 법칙 속에 특수 법칙 그것이 우리 생활이라. 일반 법칙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사람이 그 법칙 생활 하면서 둘째 아담에게 속한 다시 중생된 새사람은 새 법칙,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법칙 그것이 뭐이냐? 주님 중심으로 주의 법칙 복종하는 것이 그것이, -주님 위주 주님 중심으로 주님의 명령 복종하는 생활 그것을 다른 말로 말하면, -한 말로 말하면 뭐입니까? 아는 사람 말해 봐. 대답해 봐. 뭐입니까? 그게 뭐이요? ○선생, ○선생, 에? 또 저 ○선생, 자꾸 추려 나가도 모르겠다.
○집사님 내나 그말이 그말인데. 저 ○○○씨, 예? 모르겠어? 또 그 옆에? 자꾸 올라가면 나중에 저 목사님들에게 가 놓으면 목사님들 큰 위사 한다.
따라합시다. 경건! 경건! 경건! 경건을 복잡하게 말해 놓으면 안 된다 그 말이오. 그 말을 못 해 그런게 아니라 복잡하게 말해서 하나님 말씀을 어지럽게 해 놓으면 나중에 경건이 뭐인지 경건 정의를 몰라. 경건은 주님 중심, 주님 위주로 주의 말씀대로 사는 그게 경건입니다. 이랬는데, 경건을 막 여러 가지 흐트려서 이런 거 저런 거 이 모든 도덕을 다 주 붙여 놓으니까 이건지 저건지 사람들이 몰라 가지고 혼돈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참을 가르쳐도 참을 알지를 못해. 뭐 경건을 얼마나 배웠어요? 예? 경건을 얼마나 말을 들었습니까? 경건은 주님을 위하여 주의 뜻대로 사는 것이 경건입니다. 그 외에 딴 걸 붙이지 말아요 악은 자기중심 피조물 중심이 악이라. 요거 외에 딴 걸 붙이지 말아요. 고것만 붙여 놓으면 그 다음에는 모든 게 다 맞아 들어가요.
이러니까, 우리 법칙은 뭐이냐? 주님 중심과 주의 명령 복종 그것뿐이라.
제자들이 며칠동안 주님 따라다니니까 이제 은혜를 받고 이러니까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주님, 주님의 말씀이면 뭐 아무거라도 할 수 있고 그저 주님 밖에는 좋은 게 없고, 소망이 없고, 주님 외에는 기쁨이 없고 그 마음 속에는 주님만 가득 찼고, 주님의 명령이 바다 건너로 건너가라 이러니까 그 명령하신 말씀만 속에 가득찼다 말이오. 주님과 명령만 그 속에 가득 찼어. 이것이 특수 법칙이라 그 말이오. 우리는 우리 안에 주님과 주님 말씀이 차서 주님 위주로 주님 말씀대로 움직이는 그것이 우리의 생의 법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법칙을 어디서 지킬 수 있습니까? 죽고 난 다음에 무덤 속에서 지킬 수 있습니까 살아서 있을 때에 지킵니까? 저 ○○○목사님, 애? 살아 있을 때 지킨다? 살아 있을 때 지키지요. 맞습니다. 살아 있을 때 지키는데, 살아 있으면 살아 있을 때 어데서 지킵니까? 살아 있을 때 어디서 지킵니까? 또 가만, 딴데 물어보자. 저게 ○○교회 조사님, 살아 있을 때 어데서 지킵니까? 현실에서? 현실에서 지킨다? 현실, 그러면, 현실에 지키면, 또 저 어데 갔노, 인자.
○○○집사님. 그러면, 현실에서 지키는데 현실 무엇에서? 뭐라 하노? 현실 뭐에서? 일이나 사건에서? 또 저 ○○목사님 어디 있어? 손들어 봐요.
○○목사님, 왜 손 안 들어? 이제 위사 당할 상바르니까 손 안 들지? 살아서라야지. 죽고 난 다음에 무덤 속에서도 안 되고 살아 있을 때 해야 되고.
살아 있을 때 언제? 현실에서 해야 되고, 그거는 시간을 말했어. 장소를 말했고.
또 이제 그런데 내가 묻는 거는 달라.
그러면 그 특수 법칙을 어데서 지켜야 됩니까? 어데서 지킬 수 있습니까? 주 중심 주님의 말씀 복종 그걸 어데서 해야 좋습니까? ○○○집사님 어데 있어? 뒤에 멀찌막이 앉아 가지고서. 허. 참. 자, 여기에는? ○○○집사님, 예? 예? 잘 안 들어서 몰라? 장소와 물건이라? 사물이라 말이지? 또, 이 반사들 가운데서.
너 한번 말해 봐. 또 한번 말해 봐. 저기 저 ○○○조사님 따님 똑똑한가 보자.
예? 뭐라 하노? 노젖는 건 데. 뭐인데 그게? 노 젖는 노 젖는 데서 그라면, 노 젖는 그게 뭐인데, 그라면? 노 젖는 그게 뭐인데? 그래. 고래 말해야 백점이 되지. 백점 했다.
노 젖는 것, 일반 법칙 속에서 특수 법칙을 지킵니다. 일반 법칙 속에서 특수 법칙을 지켜요, 일반 법칙 속에서. 껍데기는 일반 법칙을 지키는데. 그러니까, 껍데기 일반 법칙은 다 일반 법칙 지키요. 일반 법칙으로 살아. 사나, 참 기독자는 일반 법칙 그거는 껍데기요 속에 알맹이는 저거 법칙이 있기 때문에 특수 법칙을 지켜요. 그러기 때문에, 껍데기는 보니까 일반 법칙은 다 같이 일반 법칙으로 살고 있거든. 살았는데, 하나는 데려 가고 하나는 버려 두요. 그거는 뭐이냐? 속에 제 법칙을 지키기 때문에 그렇고 하나는 일반 법칙을 따라가 가지고 일반 법칙뿐이지 속에 특수 법칙은 잊어 버렸다 그거요.
그러면, 우리 기독자들에게는 특수 법칙을 준 거니까 그 법칙이 뭐이냐? 한 말로 말하면 경건 생활이라 그거요. 경건 연습이라. 경건 생활이라. 경건 생활인데, 경건 생활이 뭐인데? 주님 중심 주님 위주로 주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 그것이 경건이라. 그러면, 우리 생의 법칙은 경건입니다.
이러니까, 일반 법칙 속에서 특수 법칙으로 우리가 살아야 되는데, 일반 법칙 그거는 우리 생활이 아니라. 일반 법칙 하는 그거는 하는 그 가운데서 특수 법칙 그것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성공이냐 실패냐, 그것이 하나님의 권능이 와 가지고 나와 함께 하느냐 안 하느냐 거기에서 이제 죽고 살고 승리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일반 법칙 그거는 일반 생활 죽는 생활 밖에는 못 해.
이런데, 여기에서 뭘 가르쳤느냐 하면은. 일반 법칙을, 특수 법칙을 받아 가지고 이래 오다가서 일반 법칙 사용하는 가운데서 그만 자기네들이 특수 법칙을 잊어버리고 일반 법칙이 점점 자기들에게 더 중량이 높아졌고 그리 자꾸 기울여져서 나중에 일반 법칙화돼 버렸고 특수 법칙은 하나도 없어졌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특수 법칙이 없어지는 것만치 자꾸 풍랑이 일어나고 자꾸 거슬리고 안 가거들랑 얼른 특수 법칙으로 바꿀라고는 안하고 아 가니까 자꾸 일반 법칙만 더 힘을 쓰지, 예수 믿는 사람이 생활에 곤란하면은 이 특수 법칙을 버려서 그런 줄은 알지 못하고 일반 법칙, 장사를 아침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워자고 좀 열심히 해야 되겠다. 깍쟁이 같이 속여야 되겠다. 거짓말해야 되겠다. 자꾸 이렇게 일반 법칙으로만 자꾸 나가고 있지 특수 법칙을 잊었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거요. 그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여섯 가지. 이랬는데, 이 마지막에 특수 법칙을 사용한 사람들은 금생과 내세, 영과 육 모든 것이 성공이요 승리요 평강이요 영광이요 존귀입니다.
이러니까 첫째, 한번 말해 봐. 첫째, 첫째 뭐이요? 선택. 택자. 또 둘째? 중생.
또 셋째? 신자. 또 넷째? 두 가지 법칙, 두 가지 법칙. 또 다섯째? 다섯째 뭐이요? 새 법칙대로 사는 자도 있고 일반 법칙대로 사는 자도 있고 하는 그게 다섯째라. 그러면, 일반 법칙대로 사는 사람은 그 결과가 뭐입니까? 썩은 것을 거두고, 썩은 것, '육체를 따라 사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따라 사는 자는 영생을 거두느니라.' 이러니까 모든게 성공돼.
이러니까 믿는 사람들이 전부 지금 결과는 다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 두 가지 결과를 맺고 있어 왜? 두 가지 결과를 왜 맺느냐? 그것은 법칙을 법칙을 두 가지 법칙을 옛날 법칙을, 일반 법칙 옛날 불신자 법칙을 썼기 때문에 그 사람은 불신자와 같은 그런 거 이루었고, 불신자 법칙 써 가지고서 지위도 올라가고 부자도 돼지고 모든 것의 형통도 돼지고, 일반 법칙을 쓰니까 가정도 아기자기 재미도 있고 뭐 아무리 있지마는 다 소용이 없어. 소용이 없어. 일반 법칙 속에 기독자에게 주는 특수 법칙 그것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있는 고것이 기독자의 생활입니다.
'이 사람 오늘 종일 사탕 장사하네.' '그 사람 사탕 장사 안 한다. 물어 봐라.
사탕 장사하는가?' '사탕 장사하던데?' '아니야 사탕 장사하는 것은 사람 보기의 껍데기지 속에 그 사람은 딴거 장사하고 있어. 뭐 장사하는고 물어 봐라' '뭐 합니까?' '아. 나 오늘 경건 장사합니다.' 경건 장사 해. 경건, 지금 경건을 벌고 있다 말이오. 경건을 벌어. 경건 부자 되려고. 팔면서도, 물건을 이래 팔았다가, 이래 팔았다가, 돈을 받았다가, 돈을 받았다가 '여보 여보 여보 여보 여보' 하면서 '아이구, 이거 내가 잘못 됐습니다. 요거 돈을 요거 내가 얼마 받는 건데 요 돈을 좀 더 받았습니다.' '여보 여보, 돈을 주는데, 거스름을 받아 가지고 갔는데 거스름이 잘못됐습니다.' 그거 뭐이냐? 주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라 하다 보니까 거짓말을 했거든. 속였거든. 또 자기가 이래 줬다가. 공연히 주다가서, 물건을 줬다가서 도로 '여보시오 여보시오, 봅시다.' 그래 가지고 뭐 '그라면 물건이 뭐 잘못됐습니까?' '아니오.' 이래 받아 가지고서 새로 고무줄이라도 하나 더 걸고, 고무줄이라도 하나 더, 고무줄 하나 당겨 주고 또 무엇을 또 이제 잘못 싼 걸 이라며 한번 이래 다듬으면서 이러니까 '아이고, 그만 괜찮습니다. 뭐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지마는 제 속에는 요 물건 팔 때에 주님 잊어버리고 팔았고 주의 명령도 잊어버리고 팔았고 팔았기 때문에 다시 그래 받아 가지고 주님 명령 생각하면서 복종으로서 이제 이 물건을 팔라고서 백지 그 사람은 모르지마는 물건 도로 가져다가 자꾸 이래 새로 손질해 가지고 주니까 '그만 괜찮습니다. 뭐 그렇게 그럴게 뭐 있습니까?' 이라지마는 실상 제 속에는 딴게 있었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데리고 갑니다.
그렇게 하는 데서 기독자의 영육과 금생과 내세가 성공하는 것인데, 이 기독자들이 뮈이 안 되면 일반 법칙을 힘을 안 써서 그런 줄 알고 힘을 더 씁니다. 자기 직장에서 직장에서 멸시를 하고 쫓아낼라 하니까, 쫓아낼라고 하니까 '아이구 내가 일반 법칙을 잘못해서 그런가보다. 주일도 범하고 더 충성해야 되겠다.'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되고, 아는 사람은 '오, 내가 특수 법칙을 사용하지 안했기 때문에 주님과 진리가 떠나 놓으니까 나만 있으니까 마귀 그놈이 와 가지고서 이렇게 괴롭히지. 주여. 이제 회개합니다.' 주님 중심 위주를 더합니다. 더 주일 더 지키고, 더 지키고 이래 더합니다. 그라면 당장 모가지 달아나겠지마는 주일 지키고 더 하니까 하나님이 퍼득 들어서 높이 들어올린다 말이오. 그런 거 얼마나 봅니까? 그런 거 여러분들 눈에 보입니까? 구역장 쳐 놓고 그걸 보는 눈이 없으면 헛일이오. 자기 식구들 다 보고서 '봐라. 네가 이렇고 이러니까 이거 안 된다.' 미리 말했는데 자꾸 애쓸수록이 푹 내려갑니다. 떨어져 내려갑니다. 자기 법칙을 지킬 때에 가만히 보고 있다가 '저게 인제 하나님이 들어 올리신다.' 들어 올릴 때 '너 어째 올라갔는지 알지? 어떻게 돈벌이했는지 알지?' 웃으면서 '예, 압니다.' '뭐꼬,?' '내 법칙을, 주님이 나한테 준 내 법칙을 내가 잊어버리지 안하고 내 법칙을 사용했었습니다.' '그래. 네 법칙 사용한 걸 내가, 구역장으로서 내가 봤어. 네 생활하는 걸 볼 때 네 법칙 생활하고 있는 걸 내가 봤어. 그래서 저거 좀 있으면 올라갈 거다, 돈이 올라가든지 뭐이 올라가든지 올라가기는 올라 갈 거다 이랬는데 과연 올라갔다.' 또 이래 떡 거석하고 난 다음에 이래 봅니다. 푹 내려갑니다. '너 와 내려갔지? 몰라? 와 내려갔는지 몰라? 너희 법칙이 뭐이지? 네가 얼마 동안 생활하면서 어떻게 했지? 네가 주님도 잊어버리고 주의 명령 잊어버리고 다 잊어버리고 어쩌든지 세상법대로 그것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고 네가 했으니까 하다가 이렇게 풍랑 만나 가지고 절단난 것 아니가? 그것 모르겠나? 네가 반성해 봐라. 안 그렇나 그렇나?' 가만히 생각해 보고 '과연 참 그렇습니다.' 요래 가지고 사람들을 점점 중생돼서 믿는 사람이라면 믿는 사람에게 특수 법칙이 몇 가지입니까? 특수 법칙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특수 법칙 몇 가지요? 두 가지, 두 가지. 이 두 가지만 지키면 된다 말이오. 두 가지. 두 가지를 합해서 한 말로 말하면 뭐입니까? 경건 경건.
또 다른 말로 말하면 그게 믿음 지키는 거라. 믿음 지키는 것.
이래서, 우리가, 주님이 우리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셔서. 또 영원히 피조물 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우리를 놓습니까? 안 놓습니다. 놓지 않소. 어기면 우리만 골병 들고 하지 안 놓습니다. 하나님이 놓습니까? 안 놓소.
바로가 이스라엘을 붙들고도 안 놓고 이런데 하나님이 놓습니까? 안 놓습니다.
나중에 가서는 제가 자꾸 마귀에게로 이래 끌려 가고 이라고 하나님은 당기고 이라면 나중에 그 창수가 터져 버립니다. 잔등이가, 이 잔등이가 쪼개져 가지고 두 동가리 날거요, 두 동가리. 두 동가리로 끊어질 거라. 하나님이 안 놔요. 안 놓는데 저는 자꾸 마귀를 거머쥐고 이래 쌓아니까 그만 두 동아리 될 수밖에는.
이럴 때, 하나님이 안 놓으니까 아예 '하나님의 손은 빠져 들어가기 어렵다.
하나 그의 손은 터칠 수가 없다. 이러니까 아예 이놈을 버려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죽을 지경이면 '사탄아 물러가라' 하면 그놈은 그만 보따리 싸 가지고 가 버린다 그거요. 하나님은 물러가라 해도 안 물러가요. 간접적으로 그 영 속에서, 안 되면 주위 환경을 전부 운동 해 가지고서 들이 몰아 댑니다. 그래 가지고.
그걸 가리켜 말하기를 가시로 막고 담으로 막는다 이랬어. 주위 환경을 그래 가지고 제가 꼼짝 못 하게 그래 안 할래야 안할 수 없도록 그렇게 만드는게 우리 하나님이라. 뭐 어데 주님의 법칙 어겨서 제 마음대로 살아 가지고 되리라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우리는 택자로서 어데까지 왔습니까? 중생해 가지고 예수 믿기 시작한 데까지 왔어. 왔으니까 지금 우리의 법칙은 몇 가지입니까? 가리켜 봐요 손가락으로. 어떤 사람은 와 안 가리켜? 가리켜 봐요, 이래. 어려워하지 말고 이래 가리켜 보라 말이오, 이래 가리켜요. 네, 두 가지. 요 두 가지 법칙을 그라면 무덤에서 합니까, 살아서 합니까? 살아서 합니다. 살아서 하면서 어데서 합니까? 현실에서 합니다. 현실에서 하면은 뭐 속에서 합니까? 일반 법칙 속에서 한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일반 법칙은 자연히 안 할 수 없으니 일반 법칙이 돼지는데. 사람 보기에는 일반 법칙을 하는 것 같지마는 우리 속에 중심은 지금 우리 법칙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우리 기독자들이라 그거요. 거기에 뭐이 있느냐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진리의 능력이, 그 두 능력이 우리를 붙들고 역사 하니까 피조물 그까짓 거야 뭐 자유자제로 이렇게 할 수가 있지 우리 법칙을 떠나면 누가 떠납니까? 하나님이 떠나. 우리 법칙을 떠나면 진리가 떠나. 하나님과 진리가 떠나면 우리가 무슨 힘이 있소? 아무 힘없어.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