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7 15:06
신자의 생애법칙과 결과
1984. 7. 29. 주일오전
본문 :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그리하는 가운데에 제자들은 배를 타고 벌써 육지에서 수 리를 떠났습니다. 수 리를 떠난 뒤 뜻밖에 바람이 일어나서 배가 가지를 안하고 풍랑이 심했습니다.
제자들은 배가 앞으로 가지 안하니까 배가 가도록 하려고 뭐 이 사람 저 사람 다 바꿔 가면서 힘써 노를 저었습니다. 그들은 어부의 다 자녀들로 일생을 어부에 종사한 어부들입니다. 예수님에게 부르심을 입어서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부르심을 입기 전에는 다 일등 어부들입니다.
얼마 한 수 리쯤은 배가 잘 갔지만. 그 다음에는 바람이 불어서 배가 전진하지 안하니까 앞으로 가지 안하니까 노를 뭐 힘껏 저었습니다. 또 바람은 자꾸 붑니다. 바람은 불어서 못 가게 하고 또 이 제자들은 노를 저어 가지고 배를 목적지에 가도록 하려고 애를 쓰고 아무리 해도 배는 앞으로 가지를 안하고 바람에게 밀리고 너무 물결이 심하니까 이제 제자들은 '이렇게 바람이 불면 이거 뭐 노도 소용없고 둬도 소용없고 이거 아무래도 위험하다.' 이래서 차차 차차 두려움과 또 근심 염려만 자꾸 심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서로 말하기를 '야.
이렇게 바람 불 때에는 좀 기술적으로 노를 이래 저어 봐라.' 하면서 이 사람이 또 이래 저어도 안 됩니다. 바람이 불 때에 옆으로 어째 비틀어 가지고 그래 하면 좀 효험이 있는 건데 틀어 봐도 안 되고 바로 해도 안 되고 이러니까 자기네끼리 아마, 여기 기록은 안 됐지만 '내 한번 저어 볼께.' 이 사람 저 사람 자꾸 노를 거머쥐고 바꿔 가면서 힘껏 저어 봤자 힘만 빠지고 골만 빠지고 녹았지 배는 전진하지 안합니다. 안 하니까 이제 이 제자들은 두려워서 죽을 지경입니다. 뭐 근심과 고통과 두려움 여기에 가득 쌓여 가지고 지금 배는 항진 하나도 안 하고 그대로 바람에 바로 나부껴서 이리 저리 자꾸 두렵게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산에 혼자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이 그렇게 되는 것을 보고 혹이나 회복이 돼서 항진을 할까 하고, 배가 가는가 하고 이래 보셔도 배가 안 가고 자꾸 고생만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할 수 없어서 찾아오셨습니다. 오시니까, 이 제자들이 보니 얼마나 두렵고 놀랬든지 주님이 오시는 걸 보고, 물위로 걸어오시니까 '아, 물귀신이 온다. 이제는 우리들은 다 죽었다. 물귀신이 오니 우리는 이제는 다 물에 빠져서 다 물귀신이 되고 만다.' 이런 생각 가지고 뭐 두려워서 그만 자기네들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지릅니다.
아주 모두 비명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제 죽겠다고. 정상이 아닌 그런 고함을 지르니까 주님께서 급히 소리하시기를 무서워 말아라. 무서워 말아라 이 말부터 하시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무서워하지 말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라니까 베드로가 있다가서 '주님이시거든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이라니까 주님이 '걸어오라.' 이라니까 베드로가. 그렇게 그 풍랑 속에 지금 죽겠다고 참 비명 소리를 하고 있던 그 가운데서 주님이라는 음성을 듣고 그만 베드로는 근심 걱정 염려가 다 물러가 버렸습니다. 물러가고,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니 나도 주님같이 물 위로 한번 걸어왔으면 좋겠습니다. 날 물 위로 걸어오라고 좀 한번 명령하십시오. 이라니까 '오라.' 이라니까 그만 그 배에서 척 내려서 가지고, 뭐 염려가 있으면 그렇게 내려 설 수 있겠습니까? 척 내려서 가지고, 풍랑 속에 내려서 가지고 주님을 향해 가니까, 제법 바다를 밟고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갑니다. 가다가 그 풍랑을 보고, 풍랑을 보고는 무서워하고.
무서워하니까 또 빠져 들어갑니다. 그래 빠져 들어가니까 베드로가 고함을 지르면서 '주님이여, 내가 물에 빠져 죽겠습니다. 날 구원하여 주옵소서.' 이라니까 주님이 즉시 손을 내밀어서 건졌다 이랬습니다. 건지면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이라면서 그래 손을 붙잡고 같이 인제 배 있는 데까지 물 위로 걸어 같이 갔습니다. 가서 예수님이 배 위에 턱 올라타시니까 그만 바람이 잔잔하고 배는 뭐 술렁 술렁 목적지까지 그만 도달해서 갔습니다. 이것이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런 형식. 역사적인 이런 형식을 가지고 구원의 이치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오늘 오전에는 간단하게 우리가 다 아는 말씀을 한번 새김질하면서. 작정하지 못하고, 아무리 음식이 좋은 음식이라도 먹어야 맛도 알고 또 먹어야 영양이 돼지지 안 먹어 보고야 맛을 어째 알 것이며 또 먹지 안하고야 무슨 영양이 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암만 우리가 알고 있다 할지라도 내가 그대로 순종해 봐야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참 창조주 주권자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지, 순종해 보지 안 하면 하나님도 하나님으로 알지를 못하게 되고 또 순종해 보지 않으면 그 순종한 것이 얼마나 복되다 하는 것도 모르게 됩니다.
여기서 간단하게 생각하려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제자들이 처음에 수리는 참 잘 갔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수 리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뜻밖에 바람이 일어 가지고 꼼짝을 못 하고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 걱정에 담뿍 쌓이기만 싸여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뭘 가르치는가? 첫째는 가르치는 것이, 이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다 어부들입니다. 어부들이고, 또 갈릴리 바다의 바람쯤은, 그것은 다 자기네들이 경험도 있고 체험도 있기 때문에 이런 바람이 불 때에는 이런 기술을 사용하고 저런 바람이 불 때에는 저런 기술을 사용하고 이렇게 사용해 가지고 뭐 갈릴리 바다 안에 있는 바람이라 하면 자기네들이 능히 그것을 다 능가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는 자신이 있는 어부들만, 일등 어부들만 그 배 위에 탔습니다. 전부 제자들이 그때 다 거의 어부입니다.
이랬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이게 안 됩니다. 만나고 난 다음에 배를 타고 가면서 예수님이 이렇게 건너편으로 가라고 목적을 정해 주시고 가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가라고 하니까 가야 되겠다. 예수님이 가라고 하니 가야 되겠다.' 예수님 생각하고 예수님이 명령하신 명령 생각하고 이렇게 배를 타고 가니까 그 배가 그만 술술 앞으로 가서 수리나, 순식간에 수리를 갔습니다.
가는 가운데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가만히 거기에 기록은 돼 있지 않지만 제자들이 처음에 출발하기는 예수님이 건너편으로 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예수님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말씀과 두 가지를 생각하고 건너편으로 갈라고 한 것이 그 제자들에게 가득 찾습니다. 그럴 때에는 배가 슬슬 전진해서 잘 갔습니다.
그라는 가운데에 차차 차차 노를 젖다 보니까 옛날 솜씨가 나오니까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주님의 그 절대적인 능력과 또 주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주의 명령을 힘입어서 또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그 바다를 건너 목적지로 가는 그것이 이제 지금 예수 믿는 후의 생활인데, 예수 믿는 후의 생활은 큰 거나 작은 거나 다 주님을 위하는 고 중심을 가지고 또 주님이 명령하시니 고 명령대로 지키는 방법을 가지고 또 주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도와주시는 그 은혜를 힘입어서 하려고 하는 것이 기독자의 전 생활인 것입니다.
주님을 보고 주님을 위하는 중심과 주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대로의 방편과 또 주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 돕는 은혜를 바라면서 크나 작으나 모두 세상 생활하는 것인데, 그만 이 제자들이 그라는 가운데에서 주님도 잊어버리고 주님의 명령도 잊어버리고 주님의 돕는 은혜도 잊어버리고 순전히 남아 있는 것은 옛날 예수님 알기 전에 저희들이 가지고 있던 기술, 수단 방법,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 경험 체험 이런 것만 담뿍 쌓여 가지고 지금 하고 있으니까, 그것 가지고 하니 바람은 점점 더 일어서 가지 못합니다. 바람이 일어서 못 가니까 옆의 사람이 있다가 '좀 힘을 내서 좀 저어 봐라.' 이제 힘을 내어 저었는데. 그래도 그 노가 부러지지는 안했어요. 좋은 나무가 돼 놔서. 아마 뭐 그만 부러질 만치 저어 댔을 거요. 뭐 힘대로 막 이래 저었고 또 인제 이라니까 옆에서 안 되니까 '어, 내놔라. 내가 좀 저어 볼께.' 또 이라고 뭐 서로 저거끼리 이런 수단 저런 수단 저런 방법 그런 걸 다 써 가지고 항해 하려고 야단을 할수록 바람은 더 점점 더 심해집니다. 이제는 갈릴리 바다에도 자신이 없어서 심히 두려워 근심하고 떨면서 있었습니다. 배는 조금도 항진하지를 못했습니다.
요 간단하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 사람과 꼭 같은 사람입니다. 택한 사람은 택한 사람이지만 마귀는 택한 걸 모릅니다.
우리를 택했는지 안택했는지 마귀는 모릅니다. 믿기 전에는 택한 걸 모르요.
하나님만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 비밀을 하나님이 안 가르쳐 주시니까 마귀가 그걸 모릅니다. 이러니까, 아무리 택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안하면, 택한 사람이라도 교회 안 다니고 예수님을 안 믿으면 제 것인 줄 압니다.
요한복음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저희 것이 아니라고 세상에서 너희가 나왔기 때문에 세상이 저희 것이 아니라고 그래 미워한다. 만일 너희들이 세상에 속해 있으면 저희들이 저희 것이라고 사랑할 터인데 내가 너희를 불러서 예수 믿게 만들었기 때문에 제것이 안 됐으니까 이제 마귀란 놈이 이렇게 미워한다.
그러나 너거를 미워하는 것은 너거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나를 미워해서 나 때문에 너거를 미워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예수 믿기 전에는 택한 자라도 마귀가 제 것인줄 알기 때문에, 세상은 저의 것이니까, 뭐 불법이고 뭐이고 이런 거 저런 거 방편 수단을 가리지 안하고 해 가지고. 택한 자라도 자기가 이 세상에, 인간 방법대로 하면 그 방법 가지고 잘 삽니다. 그거는 왜? 안 믿는 사람들은 그 방법이 선하다 악하다 하는 것을 하나님이 상관하지 않습니다. 왜? 그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살다가 다 지옥 갈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을 분깃으로 줬으니까 세상을 이런 방편 저런 방편 무슨 방편을 해도 어쩌든지 세상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도 그만 생존 경쟁으로 서로 세상을 두고 저거끼리 힘 있는 대로 뺏들어 가며 사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거기에 뭐 공평이나 심판이나 이런 거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죄만즉 천필주지'라. 죄가 가득히 차면 하나님이 그걸 베시지만 여간 죄 지어도 하나님이 내버려두십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다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믿기로 딱 시작 하고 나면 세상 왕인 악령이 딱 대립으로 주목을 하게 됩니다. '아 저놈은 내 것이 아니로구나. 저게 예수님께로 끌려가니까 저걸' 어떻게 하든지 제게로 돌아오게 하려고 하는 일을 방해를 합니다. 하는 일을 뭐 오만 방해를 다 하고, 무력도 쓰고 수단 방법을 다해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지 못 하도록 이렇게 하고 저에게 소속하도록 하려고 이렇게 애를 씁니다. 애를 쓰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믿기로 시작하고 난 뒤에도 자기가 경제생활이든지 사업 생활이든지 또 자기의 무슨 정치 생활이든지 자기 문화 건설 생활이든지 무엇이든지, 예술 생활이든지 그 뭐 세상에 종류 있는 대로 무슨 생활 하든지 세상에 있는 것은 다 마귀가 주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임금이라 하는 것은 세상을 다 차지하고 있는 것이 마귀라 그 말입니다.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딱 믿기로 시작하고 나면 그들이 들어서 있는 힘을 다 기울여 가지고 방해를 합니다.
이 제자들이 예수님이 바다 건너로 건너가라 하신 예수님을 딱 생각하고, 구주를 생각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주님과 주님의 명령을 딱 생각하고, 주님과 주님의 명령을 딱 생각하고 주님과 주님의 명령을 의지해서 주님을 중심하고 주님의 명령 복종으로 딱 배를 타고 나섰을 때에는 마귀란 놈이 방해를 못 합니다. 풍랑이 방해 못 합니다. 방해 못 하는데, 방해 못 하니까 이 마귀는 차차 차차 방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방해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 차차 흐려지고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흐려지고 이래서 주님과 명령만 쏙 잡아 채 놓으면 그 까짓 거는 마귀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없앨라고 애를 씁니다. 어쩌든지 주님 중심 이걸 없앨라고, 또 하나님의 말씀 법칙 이것을 없앨라고 자꾸 이렇게 애를 씁니다.
애를 쓰니까, 사람들은 요 꾀를 알았으면 알았으면 '아 주님 중심을 내가 잊어버리면 마귀란 놈이 날 와 가지고 지금 제 마음대로 쥐어박고 아주 짓밟고 지금 차 넣고 날 이렇게 아주 욕을 보이고 방해를 한다. 주님의 명령을 내가 잊어 버려 놓으면 그놈이 와 가지고 이렇게 꾀고, 저렇게 꾀고 꾄다. 주님의 명령 순종이라. 명령 복종이라. 명령이라야 산다.' '명령 순종이라.' 하는 요걸 딱 거머쥐고 '명령 순종, 명령 순종.' 하면 마귀란 놈이 이런 꼬임이나 저런 꼬임이나 이런 유혹 저런 유혹을 하나도 하지 못 합니다. 이런 유혹도 저런 미혹도 하나도 못합니다. '주님의 명령대로. 명령 복종으로 산다.' 이라는 사람에게는 마귀란 놈이 미혹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또 '주님 중심이라.' 이랄 때에는 마귀가 어떤 세력을 가지고도 방해를 못 합니다. 주님 중심은 자존자 주권자 중심인데, 주님 중심이면 가장 옳고 바르게 하는 것인데 주님 중심으로 하는 것을 방해를 하고 제가 억압을 하고 박해를 했다가는 만유주를 박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견디겠습니까? 예수님이 승리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종이 됐는데, 마귀도 이제. 예수님 십자가에 박힌 후에는 마귀가 예수님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택자나 제 마음대로 하지 벌써 중생된 사람은 제 마음대로 못 하는데 중생된 자들이 마귀에게 꼬임을 받는, 꾀일 수는 있습니다. 꾀일 때 꼬임 안 받으면 그놈 꼼짝 못 합니다. 꼬임을 꾀일 때에 꼬임만 받아 놓으면 그 다음에는 제 마음대로 잡아 이용을 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이 이치를 모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믿고 난 다음부터 이제 마귀란 놈은 있는 힘을 다해서 미혹 할 수만 있으면 미혹 할리고 애를 씁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택한 자라도 미혹 할 수만 있으면 미혹하려고 달려듭니다.
미혹이라는 것은. 살살 꾀고 달게 가지고 속여서 죄짓게 만들고, 죄 만 지으면 제 마음대로 합니다. 이렇게 하려고 미혹을 시키고 야단을 지기는데, 믿는 사람이 '나는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 주씩 피에 팔린 사람이니 주님의 것이라. 주님의 종이라. 주님의 지체라. 주님의 일군이라. 나는 주의 것이라.
주님 중심으로 살아야 될 자라.' 이걸 생각하고 주님 중심 위주로, 또 주님이 가르쳐 주신 법칙대로 요 두 가지만 하면 세상에는 시온의 대로를 걸어갑니다.
마귀란 놈은 꼼짝도 못 합니다. 마귀가 와 가지고, 가까이 와 가지고 집적집적 하기는 합니다.
마귀가 와가지고 집적집적 하기는 하는데 주먹을 내밉니까? 칼을 내밉니까? 뭐 합니까? 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뭘 합니까? 마귀가 와서, 옆에 와서 집적거리기는 집적거리는데 뭘 합니까? ○○○씨, 주먹을 냅니까? 칼을 냅니까? 뭐 하요? 무슨 방해? 방해 못 해요. 못 가게도 못 해요. 뭐 합니까? 방해도 못 하고 못 가게도 못 해요. 주님 중심, 주님, 명령 복종 이래. 나아가는 사람에게 마귀는 방해도 못 하고 못 가게도 못 하고 그렇게 못 합니다. 할 수 있는 거 하나 있는데 뭐 합니까? 네, 유혹. 꾀는 거. 살살 꾀어. 옆에서 '아. 이것 좀, 좀 해 보십시오. 이래 보십시오. 이게 좋지 않습니까?' 자꾸 알롱 달롱 좋은 것도 보이고 이래 가지고 꾀인다 그 말이오. 꾀기나 하고. 살살 달래서 꾀기나 하지 방해는 어림도 없습니다. 어디 방해를 합니까? 방해 못 합니다.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하고 이 제자들이 그만 차차 차차 가다가서 주님을 믿는 그 믿음을 버리고 자기 주관대로 또 자기 기존 지식대로 선입적 관념대로 자기 경험대로 체험대로 이걸 내부려 가지고 그 일 가지고 뭐 되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예수 믿는 제자들이 믿기 전 방편입니까 믿고 난 다음에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 방편입니까? 믿기 전 방편입니다. 믿기 전 방편인데, 믿기 전 방편을 암만 써 봐야 안 됩니다. 그 방편을 쓸수록 풍랑은 심히 일어납니다. 왜? 믿기 전 방편을 쓰니까 벌써 그거는, 주님과 주님의 명령을 둘을 다 버렸으니까.
믿기 전 방편 쓰니 마귀의 방편 쓰는 것이라 그 말이오. 마귀의 방편 쓰니까 마귀가 이제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성공을 하게 합니까 못 하게 합니까? 못 하게 합니다. 뭐이든지 방해를 해 가지고 제 마음대로 이제 그냥 눌리고 꺾고 발길로 차고 발로 진흙 밭에 처넣고 뭐 제 마음대로 합니다. 이제 갈 때에는 주님 위주와 중심을 버리고 주님의 명령 복종하는 이 두 가지를 버렸으니까, 버리고, 제 방편, 제 방편은 마귀 방편 아닙니까? 옛날 안 믿을 때의 방편은 마귀 방편이라 말이오. 마귀 방편을 쓰니까 마귀의 것이 됐어. 마귀의 것이 됐으니까 이제 주님은 떠났지, 진리의 능력은 멀쭘하이 섰지 이라니까 이제는 마귀가 거머쥐고 마구 발로 발길로 차서 진흙 구덩이에다가 마구 처넣습니다.
그때에 풍랑이 일어서 꼼짝 못 하는 그것이 누가 그렇게 했는줄 압니까? 마귀가 그 바람을 일으켜 가지고 그렇게 마구 처넣습니다. 그라니까 제자들은 어찌 됐습니까? 이제는 마귀란 놈이 있다가 '너 생각해 봐. 바람이 이렇게 불고 너거들이 암만 노를 저어도 소용없고 너거는 오늘밤에 여기에 이 풍랑 속에서 빠져서 물귀신이 되고 말아. 죽고 말아. 여기 물이 몇 길인 줄 아나?' 인제 옛날 지식을 가지고 있다 말이오. '아! 이만치 들었으면 여기서 벌써 물이 여러 수십 길이 된다. 여기서는 아무 때 물귀신으로 인해서 사람이 몇 명이 죽었다. 여기에 그 사람들 죽은 사람 귀신도 물귀신이 돼 가지고 여기에 있다.' 옛날 들은 소리. 생각하는 소리, 아는 소리, 자기네들 경험 체험 이 모든 것이 똘똘 뭉쳐 가지고 제자들에게 뭐 했나 하면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 또 하나 뭐 했습니까? 이제 제자들에게 있는 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경험 체험, 모든 자기의 주관 그것이 들어서, 그것이 들어서, 물 깊이도 알지 그러니까. 물 깊이도 알고, 물에서 빠져 죽은 사람들도 알 고, 또 그 풍랑에 벌써 노를 저어도 소용없으면 위험하다 하는 그런 것도 알고 하는 저희들의 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경험 체험, 자기의 주관, 자기네들의 모든 생각. 오만 지혜 그 전부는 그 제자들에게 뭘 주고 말았습니까? 그 제자들에게 뭣을 주고 말았느냐 하면 첫째로 풍랑을 줬습니다. 풍랑을, 풍랑을 끌어오게 됐습니다. 그것이 풍랑을 끌어오게 됐다 그 말이오.
왜 풍랑을 끌어? 이제는 주님 중심과 주님 위주, 주의 명령, 두 가지 버리고 나니까. 두 가지 버리고 옛날 마귀에게 속했을 때의 마귀의 방편을 사용하고 마귀의 지혜 지식에 따라서 움직이니까 마귀의 것이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자 마귀의 것이 됐소 안 됐소? 마귀의 것이 됐다 말이오. 마귀의 것이 됐으니까 이제는 이놈을 발로 차야 되고. 발길로 차야 되고 마구 두드립니다. 마구 패 댑니다. 그러니까 지금 죽겠다고 근심 걱정 고통 번민 두려움 뭐 가득 찼습니다.
그게 뭐이냐? 마귀가 발길로 차는 것이고 몽둥이로 두드리는 것입니다. 요걸 알아야 됩니다. 요걸 알아야.
좀 애매한 말 같지만 제가 거창 있을 때에 참 아주 어떤 집사라고 일등 유력한 집사가 있었는데, 그 집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축복을 줬든지, 축복을 줘서 거창읍에 장 자는 거의 다 차지했습니다. 장 자는 거의 다 차지하게 됐는데 이래 차지하니까 그만 우쭐해져 가지고, 그럴수록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갔으면 될 터인데, 그라니까 그저 주일날은 여기서 초청 저게도 초청 이라니까 그만 자꾸 둥 떠 가지고 초청하는 데 가 가지고 주일도 범하지, 술도 먹지는 안하지만 입에 하도 안대면 안 되니까, 그 사람들 다 거석하니까 입에도 대지, 또 인제 담배도 피우지는 안하는데 조그매 입에도 대지, 그거 좋게 하려고, 사람 좋게 하려고. 이래 가지고 거창 권세를 똘똘 다 짊어졌습니다. 다 짊어졌는데, 그라니까, 주일 범하지, 계명 어기지, 가서 권면하면 '예,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속으로 '내 입장과 처지가 이렇츰 어려운 줄 모르고 지금, 여기서 안 그럴 수 있는가? 내가 뭐 주일은 지키기 싫어서 안 지키나?' 이래 가지고 자꾸 주일 지킬 자가 그만 그 사람들하고 반대가 돼지고 자꾸 이제 원망하고 점점 마귀에게로 끌려간다 그거요.
이러다가 마지막에는 소문을 들으니까 '아, 그 사람이 주일 하루 뺏다, 술을 먹었다. 어디 갔다.' 뭐 이런 말 저런 말 들리더니만 내가 거창읍에 갔다가 올라오니까, 그때 인제 자동차를, 지금으로 말하면 버스 택인데 갔는데 앞에 내가 타며 뒤로 이래 탔는데 보니까 어떤 사람이 뚱뚱하이 좋은 옷을, 요새 같으면 뭐 쌨지만 그때 참 드문 좋은 옷을 아주 양복을 척 입고 이래 있는데, 그 사람이 어쩐지 보니까 딱 자유가 없이요 래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요래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래 그 사람 이상 하다. 어째 사람이 저래 가지고 있으면 좀 불편할 터인데 저래 가지고 있는이?' 보니까 가만히 보니까 속에 보이지 않도록 포승줄로 가지고 딱 포승을 질러 가지고 딱 요래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거 이상하다. 아주 사람이 훌륭하고 인물도 잘나고 그런데 꼭 뒷모습이 똑 보던 사람 같다.' 이래서 내 속에 '보자, 우리 그 아무 집사가 그 마귀란 놈이 살살 꼬아 가지고 달게 가지고 세상 것 다 준다 하니까 좋아서 우쭐해 가지고 나서 가지고 믿음을 팔고 자꾸 그란다 말 들었는데 행여나 그 사람 아니가?' 하고 차마 밑으로 내려 볼 수는 없고 그래 될 수 있는 대로 보려고 뒤에서 요리 조리 해 보니까 내나 그 집사라. 허 이제는 딱 묶여 가지고 가 버렸다 말이오.
마귀 고놈이 이제 주님 딱 배반하고, 지금 살살살 꼬우는데, 주님하고 마 주 보일 때는 그리 마음대로 못 합니다. 마주 보이는 데는. 자꾸 좋게만 자꾸 이래 꼬우다가 요 모퉁이 살짝 돌아와서 주님 안 보이도록만 요리 딱 돌아오고 난 다음에는 마구잽이 '요놈의 새끼' 그만 발길로 차고 막 꽝꽝 조기댄다 말이오.
조기대서 그만 요래 딱 홀껴 버렸어.
이제는 풍랑으로 풍랑으로 제자들을 조기댑니다. 그 다음에는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고 겁이 나서 죽을 지경이고, 이제 배는 가지 못하고 그렇게 죽을 지경인 그 모든 두려움 그것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어디서 나왔냐 하면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하나님의 지식을 가진 그 지식이 아니고 옛날에 있던 마귀 지식에게서 나왔어, 마귀 지식. 사람의 지식.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도적이요 절도요 강도라." 이랬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식 이것은 우리에게 복음이요, 생명이 되고 영생이 되지만 인간 지식은 그것은. 먼저 우리가 그거 받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멀리 하게 하는 것, 하나님 모르게 하는 것. 하나님 부인하게 하는 것,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는 전부 의심하게 하는 것. 또 마귀란 놈이 하는 그 일을 두려워서 자꾸 복종하게 하는 것 그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제자들의 선입적 관념이 들어서 그렇게 공포에 비겁에 싸이게 했고 그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이 그래 했고, 경험과 체험이 들어서 그렇게 했고 그 경험이나 체험이나 선입적 관념이나 기존 지식이 제자들에게 두렵고 떨리는 염려 근심만 줬지 좋은 거는 한 내끼도 못 줬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좋은 거 준 거 있습니까? 여러분들, 좋은 거 준 거 있습니까? 또 저들이 옛날 배운 수단 방법 가지고 배를 놀렸는데 그 수단 방법이 저희에게 유익을 조금이라도 줬습니까? 하나도 못 줬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주님의 보배피공로를 힘입고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돼 가지고 부름을 받아서 예수 믿기로 시작한 사람. 예수 믿기로 시작한 사람들은 성경 지식과, 하나님의 명령이 성경 지식인데 하나님의 명령과 주님과 그 둘 외에는 우리에게 털끝만치도 유익 주는 것이 없는 줄 알아야 됩니다. 털끝만치도 유익 주는 게 없어 주님과 주님의 말씀 외에는 우리에게 유익 주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수 리 간 것은 주님이 수 리를 가게 했고 그 말씀 하신 그 명령이 수리를 가게 했지 그 둘 빼 놔 버리고 나니까 풍랑이 일었고 그들에게는 공포와 비겁과 두려움과 염려와 고통 그것만 있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기 전과 믿은 후가 다르다 그 말이오.
제자들이 믿기 전에는 그 수단 방법 가지고 항해를 잘했지만 믿고 난 다음에 마귀의 방해가 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을 때의 그런 수단 방법 가지고 장사를 하고 그런 법칙 가지고. 그런 사교술을 가지고.
그런 모든 활동을 가지고 성공하려 하면 판판이 저만 죽고 망하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님을 중심으로 위주로 하는 거, 미련한 거 같지만 고거 하나 주님의 명령 복종 그거 하나, 요 둘이면 됩니다. 요 둘이면 되지 요 둘 외에 천인 만인에게 대대손손이 물려받은 것이라도 인간에게 오는 이것은 백해 무익이지, 해만 많지, 유익은 한 내끼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준 것 보십시오. 그것이 들어서 뭐했습니까? 제일 처음에 주님 잊어버리게 만들었지. 저자들의 경험 체험 수단 방법 그것이 들어서 주님 잊어버리게 만들었지. 자꾸 저으니까, 우리가 저으니까 배는 가거든. 이것은 그 바람에 주님 잊어버리고 것은 데 그만 거기에만 정신을 다 들이다 보니까 주님 잊어버렸지, 말씀 잊어 버렸지, 그라니까 차차 풍랑이 이니까 더 힘써 젓고 자꾸 애를 쓰고 이라니까 주님 더 잊어버리고 말씀 더 잊어버리니까 풍랑은 자꾸 심해져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주님과 주님의 명령. 이 두 가지를 잊어버리고 난 다음에 저희들에게는 첫째 골빠지는 거, 골 빠지는 거. 안 되니까 죽자 살자하고.
여기에 보니까 언제 며칠 전에 요 이웃 바로 여기서 다노모시하다가 자살 했다 말 들었는데, 자살하기까지는 잘 살라고 돈벌이 하려고 죄도 짓고 주일날 오만 일 다하고 사업하면서 거짓말도 수단도 방법도 다 가리지 안하고 친구도 안면도 다 버리고 요렇게 해야 저만 녹기만 녹았지 아무 소용없습니다. 저만 소금처럼 바짝 녹아 버려요! 저만 녹지 소용없습니다.
요 둘을 버리고, 요 둘을 버리면 그저 노 젓느니라고 참 녹아 났소. 있는 진액 다 뺐습니다. 진액만 허비하지 소용없고 요 두 가지 버리고 나면 첫째 진액만 허비하지 소용없고, 또 하나는 그 모든 지식 과거 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경험 체험 이놈이 뚤뚤 뭉쳐 가지고 '야, 여기 두렵다. 이 풍랑 무슨, 여기 죽는다.
안된다.' 이래 가지고 거기서 그들에게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과 걱정만 줬지 딴거 준 거 없습니다. 요 두 가지 줬고. 또 하나는 뭐이냐? 배는 주님이 가라고 명령하신 저의 목적지는 일보도 전진 못 했습니다. 일보도 전진 못 했어. 또 하나는 뭐 했어? 일보도 전진 못했고, 아 자기를 그 환난에서 구원하려고 오는 구주가 오니까 구주가 물귀신으로 보였다 말이오. 저희에게 유익된 말은 전부 귀신말로 들리고 저희에게 돕는 것은 전부 자기 원수로 들리고 이래 놓으니까 그게 또 더 망할 것 아닙니까? 자.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나니까 첫째는, 골이 빠졌고, 여기 우리 교회도 주님과 주님의 말씀 어겨 가지고 골 빠진 사람 쌨어. 뭐 골이 빠져서 죽을 지경이라! 골이 빠져 골케 골케! 주일날 오면 그만 잠만 자 고 도무지 말씀 못 듣는, 골이 빠져서. 왜? 주님과 주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명령 복종! 주님 위주! 요 둘만 가지면 되는데 이것 둘을 버렸기 때문에 골이 빠진다 그 말이오.
골 빠지고, 또 그 다음에 둘째로는 뭐 나왔습니까? 근심, 걱정, 고통, 염려, 두려움. 죽을 지경이라. 모두 그것만 가득 차지 안했습니까? 어리석지 말아요.
우선, 지중해 가는 그 배가 바울하고 갈 때에 바울이 하는 말 무시하고 순풍을 얻어서 잘 간다 했지만 나중에 가 가지고 고 물건 전부 바다에 다 내버렸소.
하나님 중심과 명령 복종 버리고 우선 돈푼이나 벌고 우선 뭐이 좀 잘된다고 해서 그게 될 줄 아요! 꼼짝 못 할 수 있는 그런 한 가운데에 가 가지고 딱 풍랑이 일어서 낭패가 돼 가지고 모두 다 절단나도록 그렇게 만드시는 주님이라 말이오! 주님이 당신이 생명까지 버려서 피 흘려 구속한 자를 아무나따나 세상 멸망 가운데에 내던져 둘상 바릅니까? 안 둡니다. 놓지 않습니다. 피로 값 주고 샀기 때문에 놓지 않습니다! 당신의 귀한, 제일 사랑하기 때문에 놓지를 많습니다. 고통만 됐지. 셋째는 뭐 됐습니까? 셋째는 자기를 사랑하는 구주가 오니까 물귀신으로 보였어. 옳은 것은 틀리게 보였고 틀린 거는 옳게 보이고.
좋은 것은 나쁘게 보이고 나쁜 거는 좋게 보이고. 사는 것은 죽는 걸로 보이고 죽는 거는 사는 것으로 보이고 이라면 그 사람 절단 아닙니까? 모두가 다 꺼꾸로 되고 말았다 말이요, 꺼꾸로. 넷째는 뭐입니까? 주님이 가라고 명령하신 목적지는 조그매도 못갔어.
여러분들, 오늘 회개합시다. 주님 위주로. 주님 중심으로, 우리는 주님의 피의 값에 팔렸기 때문에 주님 중심으로 주님 위주로만 살 자들이요 방법은 주님의 명령 복종만 방법으로 삼아야 돼. 요 둘만 가지면 돼. 요 둘만 가지면 바람도 없고 술렁술렁 가는데, 요 가다가서 가다 보니까 배타 야 되고 노 젓고, 노를 저어도 두 가지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노 젓은 것은 노를 젓은 것이니까 슬렁슬렁 저으면서 그저 '주님이 가라 했으니 간다. 주님이 가라 했기 때문에 간다.
주님의 은혜로 간다. 주님의 능력으로 간다.' 요걸 안 잊어버리고. 백지 노는 저으며 말이요.
어떤 사람이 편지로 그래 놨어요. '노 젓는 것은 노를 안 저어도 갈 거라 그렇게 했는데 어째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그 편지 답을 못 했어, 노를 저으면서, 이라며 말이오. 이 사람이 막 이래 젓는데 하나는 있다가서 그래 안 하고 '얘. 치워 버려라. 너 노 그래 저으면 안 된다. 노가 지고 가는 줄 아나? 내가 노 저을께.' 이래 술렁술렁 '주님이 가라 하셨으니 갑니다. 주님이 목적지를 정해 주셨으니 갑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갑니다.' 이라면서 노는 내두고 이거 거머쥐고 춤만 출거라 말이오. '갑니다. 갑니다.' 이라면 술렁술렁 추며 좋다고 술렁술렁 가 버렸을 거라 말이오. 이거 옛날 방법 가지고 안 됩니다.
이러니까. 어쨌든지 우리는 주님, 이 주님이 주권자시요. 창조주시요 주재자시요, 주권 섭리자시요,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인데, 그분 위하게 하려고, 그분 명령 복종 진리의 사람 만들라고 하는 것인데, 그대로 하면 당신이 있는 것 다 전부 다 주는데. 너희들이 나만 바라봐야,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모든 군왕들은 양부가 되고 왕비들은 다 유모가 되고 이래 가지고 모두가 다 너거를, 너거 자녀를 어깨에 메고 올 것이고 네 발의 티끌을 할을 것이다. 네가 주님과 주님의 명령 복종 요 두 가지만 가지면 모든 사람이 막 이래 올리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다. 네 발바닥을 핥을 것이다. 네 종의 종이 될 것이다, 왕들이 이래. 될 것이다. 그렇게 되고 난 다음에야 '야,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 중심으로 그 위주로 그 명령 복종 하는 것만 하면 된다 하던데 나는 그렇츰 될까? 했더니만 참 과연 해 보니까 됐구나.' 이래서, 모든 것이 네 발의 티끌을 할은 그 지경까지 가면 그제야 '야, 참 주님의 말씀대로 하니까 참 털끝만치도 없이 이렇게 되는구나. 아이구, 이렇게까지 되는구나. 이렇게까지 되는 구나.' 그때사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계약하시고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인 줄 네가 그때야 날 알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여기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제 새로 지음을 받은 새 피조물들입니다. 새로 지음을 받은 새 피조물이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다 살아나신 것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 다음 뭐라 했습니까? 예? 예? 그 다음에 바로. 그 다음에 바로 단어가 뭐이야? '다시는' 따라 합시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고 '다시는' 말했습니다.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게 하려 함이라.' 자신을 위함으로 죽었기 때문에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아따, 대속해 놓고 당신만 위하라 하니까' 당신 좋게 하라는 그게 아니고, 자신 위하다가 죽었기 때문에 다시는 자신을 위하지 말라 말은 다시는 죽는 길을 가지 말아라 하는 말이오. 하나님이. 자존자가 창조할 때에 피조물은 당신만 위주로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만 의지하고 당신에게만 복종하는 것으로 살도록, 그러면 잘 살고 존영해지고, 고게 삐끄러지면 멸망하도록 하나님이 딱 그래 만들어 놨는데 어쩝니까? 그분이 창조주이신데.
이러니까, 오늘 여기서, 사람이 예수님 믿기 전에는 마귀 방법으로 살고, 예수님 믿기 전에 마귀 방법 아니고 하나님 방법으로 살면 망합니다. 헌 부대는 헌 술을 넣어야 되지 헌 부대에 새 술 넣으면 안돼. 안 믿는 사람들은 마귀의 방법으로 살아야 성공하지 하나님 방법으로 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머뭇거려 가지고 헛일하고 맙니다. 카터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 세상 나라는 그거는 헌 부대인데 헌 부대를 새 술을 가지고 하려 하니까 그분 정치가 아무런 유익 없고 모두 다 삐쭉거리는 그런 정치를 하고 말았다 그거요.
그러나 예수님을 딱 믿기로 작정하고 난 다음에, 택한 자가 예수 믿기를 시작하고 난 다음에는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 것입니다. 마귀 방법대로 하면 망합니다. 이제는 마귀 방법대로 하면 이것 모양으로 풍랑만 일어나고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 고통만 오고 성공은 한 내끼도 보지 못하고 자기에게 유익될 것은. 망할 것으로 보고 망할 것은 유익될 것으로 보고 자꾸 꺼꾸로 보니까 자꾸 망하고 처박히기만 한다 그 말이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사람들이 중생된 이후에서 세상살이를 사는 방법은 간단해. 두 가지. 하나는 뭐입니까? 하나님 중심 위주, 자. 하나님 중심 위주! 하나님 중심 위주! 또 하나는 명령 복종! 명령 복종! 이것만 하면 다 돼.
모든 거는 다 주께 맡겨 놓고 우리 할 일은 이 두 가지만 하면 돼. 두 가지만 하면 목적하는 그 구원 성공이 완성 되지. 또 세상에서 당신이 주는 것 다 받아 가지고 세상에서도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일게 하지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면 예수 믿는데 백 가지 가운데에 구십 가지는 어기고 백 가지 가운데 열 가지 십 분지 일 그것만 순종해도 고거 순종했다고 주님이 고 상급을 주셔서 고거 가지고 영광스럽게 되고, 어떤 사람은 백분지 일 순종 해도 순종한 고거 값으로, 여러분들. 순종 하는 값이 굉장히 큽니다.
이 두 가지만 가지고 사는 것인데 이 두 가지를 버리고 나서, 이두 가지를 버리고 나니까 저거에게 오는 게 뭐이라? 버리고 나서 사용 뭐 합니까? 저거 수단 방법,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 과거의 경험 체험 이것 가지고 지금 삽니다. 그것 가지고 살아 보니까 배는 항진 안 하지, 골만 빠지지 그 모든 기존 지식 가진 그것이 두려움. 염려, 근심, 걱정, 고통만 주지 구주는 물귀신으로 보이게, 꺼꾸로 보이게 하지. 좋은 게 뭐있습니까? 기독자들이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안 믿는 사람들의 방편대로 하면 요 네 가지 손해를 봅니다. 요 네 가지 손해. 네 가지로 망합니다. 요 네 가지로 망해. 왜 믿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 했는데 왜 근심 걱정 고통에 이해 가지고 있겠습니까? 이거는 다 두 가지 믿는 사람의 방편을 잊어 버려서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택하고 중생 입은 사람은, 믿는 사람이 세상에 할 일 몇 가지입니까? 두 가지. 이 두 가지 버리면 세상에서 몇 가지 만납니까? 몇 가지? 예. 네 가지 만나. 네 가지.
하나는 골이 빠지고. 하나는 근심 걱정 고통 염려 두려움 당하고. 또 하나는 자기에게 구주는 물귀신으로, 정 꺼꾸로 봐. 모든 견해가 꺼꾸로 돼 버리고, 그 다음에 자기 목적은 일보도 전진하지 못합니다. 이 네 가지 돼.
그 뒤에 이제 저들이 물 가운데에 빠져 죽을 지경인데 주님이 배 위에 턱 오르니까. 주님 척 배 위에 올라 가지고 배 위에 턱 타니까 뭐이 없어졌습니까? 주님이 배 위에 오르시니까 뭐이 없어졌소? 풍랑이 잔잔했어. 그 때는 뭐 노를 젓고 어쩌고, 젓기는 젓지만 아예 노 저어 간다 하면 또 헛일이라. 주님 모시고 가니까 그저 노를 거머쥐고 슬렁슬렁 노를 거머쥐고. 주님 모시고 가는 데는 노를 젓는데 내가 힘으로 것은 게 아니라 노 움직이는 데 제가 춤이나 추고, 달려 가지고, '내 멍에는 쉽고 가볍다. 내 짐은 가볍고 내 멍에는 쉽다.' 주님의 계명은, 주님의 명령은 나를 들고 돌아다닙니다. 내가 주님의 명령을 지키는 게 아니라 주님의 명령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주님의 명령에 들리어 돌아다니기만 돌아다녀.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지.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완전히 깨서 돌아섭시다. 방편을 바꿉시다. 뭐 세상 그거 해 봤자 결과 적으로는 근심. 걱정, 고통, 번민, 두려움, 골 빠지는 거, 또 모든 것이 꺼꾸로 되는 것. 자기 구원 목적은 털끝만치도 이루지 못하는 것 그것 외에. 네 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오는 것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