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6 12:07
성찬
1982. 3. 23. 화새
본문 : 고린도전서 11장 26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성찬식 하는 이 의식을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그 목적이 어디 있는고 하니 예수님이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붙여 주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에서부터 순종으로 사람되어 오셨고, 또 순종으로 사생활 하셨고 공생활 하셨고 마지막에 대속의 제물로 제사장직과 선지직과 왕의 직책을 다 감당하셨습니다.
이것을 천하게 하는 것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성찬식을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아버지를 기쁘시게 영화롭게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되 그 계명은 무엇인고 하니 아버지가 주님에게 맡겨주신 사람을 구원하시는 계명인데 그 계명은 곧 하나님으로 사람되어 오심으로 하늘에 모든 부요를 다 내어놓으시고 사람되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의 명령을 기뻐하심을 아버지가 맡겨 주신 택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으로 사생활 공생활 하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전 대속 구속 아버지의 명령을 다 이루시고 맡기심을 받은 모든 자들이 남김없이 다 구원하시는 이 일을 완성하신 이 일을 전하라고 이 성찬 먹는 것을 명령하시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수님 재림 때까지 전하다가 먼저 가는 사람은 가고 또 남은 사람이 계대해서 전하고 이러다가 예수님의 재림이 맞이되는 이 일 하라 하신 것입니다. 죽으심을 전하라는 말씀은 이 말씀입니다. 그러면 죽으심을 어떻게 전하는가, 죽으심의 이 사실을 입으로 전하고 또 자기가 친히 예수님의 그 행하심을 감당하심을 계대해서 예수님이 어떠하심 같이 그렇게 우리도 하는 행동으로 사람으로 끝나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은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것인데 이는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것인데 이는 예수님의 피에 연결되고 살에 연결되고 생명 힘에 연결되어서 이 예수님 하심같이 그렇게 행하여 자기에게 맡겨 주신 자 하나도 잃지 아니하고 다 구원할 수 있도록 해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성찬식은 주님의 그 인성에 연결된 것을 나타내는 것이요. 연결된 것이 실상은 연결되지 안 하여 있으니 실상으로 연결되게 하는 의식에서 이 실상이 이루어지도록 하게 하신 한 방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찬에 이 성찬물이 예수님의 육체가 되어졌다고 하는 그 허욕설도 이단입니다. 또 이 성찬에 참여하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고 영생하지 못한다는 그 주장도 이단입니다. 또 이 성찬식은 그러기 때문에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필요가 없다고 하면 이단입니다. 할 수 있는데는 해야 되고 꼭 할 수 없을 때에는 안 해도 영생을 얻는 데에는 이 성찬적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뿐이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은혜에 나아가는 순서는 첫째가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들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입니다. 또 예수님의 공로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받아 성령과 진리로 살아난 자들입니다.
우리는 산 자요, 죽은 자가 아닙니다. 죽었던 자인데 살아났습니다. 살아난 것은 영이요 육은 아닙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는 기억만 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그 유래를 우리가 우리 된 근원을 근원부터 알아 믿는 데에 힘이 되게 하는 것뿐인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할 일은 무슨 일을 해야 되는고 하니 첫째 하는 일이 죽이는 일입니다. 첫째 하는 일이 죽이는 일, 무엇을 죽여, 영은 중생 됐지마는 육이라고 하는 심신은 악령과 악성과 악습인 그 옛사람이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사망에 속해서 사망에게 붙들려 종이 되어 사망하는 심신의 행위를 하는 육이기 때문에 이 육을 붙들고 자유 하는 이 사망케 하는 사망자, 곧 옛사람 곧 원죄와 본죄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자기 아닌 자기, 옛사람 자기 이것을 죽이는 것이 첫째 하는 일입니다.
교역자들이 망령을 부려서 선배들의 골치를 앓게 하는 그것이다 요것을 죽이지 아니하고 죽여야 할 이 자기를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자기인줄 알고 예수 믿는 자기인줄 알고 천국 갈 자기인줄 알고 참 자기인줄 아는 이 무식에서 깨닫지 못하는 무식에서 일어나는 모든 죄악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대개 보면 여기 대해서는 무식해서 날뛰는 자들이 누구냐, 유식한 자들이 많고 명철한 자들이 많고 잘난 자들이 많습니다. 무식하고 못난 자들은 많지를 않습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담임한 교회에서 이동하라 할 때에는 인간 생각에 사람이 적고 재물이 적으면 작은 교회라 생각해서 노합니다. 섭섭해하고 반발합니다. 사람 많고 재정이 넉넉한 교회로 옮기라 하면 기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것이 막 바로 죽여야 할 걸음입니다. 기뻐하는 그것도 가증스러운 것 불만스러워하는 것도 가증스러운 것, 그놈이 일생을 망칠 자기 원수인데 그놈 따라 움직입니다. 그놈 따라 움직여 그놈이 얼마나 그 사람에게 강했든지 그 사람의 명철도 지능도 권위도 모든 것 다 그 놈 마음대로 사용해 가지고 그것 제 욕심에 맞지 안하고 비유에 틀리면 진리도 간 곳 없습니다. 당장 진리 배반합니다. 영감도 당장 배반합니다. 자기의 신앙에 지도자요 스승도 당장 배반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자는 세상 권세 주고 영광 주고 돈주고 저 높여 주면 마귀 아니라 우마귀라도 기뻐 환영하고 따라갑니다. 그자는 옛사람입니다. 그놈을 죽이기 전에는 절대 제 구원은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살아서 집사도 되고 장로도 되고 조사도 되고 목사도 되고 세상에 장관 대통령 다 이 사람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하고 있소. 다니엘이 총리 한 것은 이 사람이 한 것이 아니고 새사람이 총리 했습니다. 다 같은 총리지마는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는 것이 여기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가 죽이는 것이 우리의 일 순위입니다.
지난번 연석회의 때에 그 위해서 해 이까짓 거 모임이야 돈 일억 가지고 이리 저리 하니까 참 시시한 무기치한 모입니다.
우리는 모임은 그래도 몇 십억을 현재 실지로 여기 쓸까 저기 쓸까 이 리 지출할까 저리 지출할까 하는 이런 굵닥 굵닥한 모임인데 이는 시시하다 네 눈이 썩었기 때문에 그렇다. 네 눈이 멀었기 때문에 그렇다. 네가 옛사람 죽은 자기 때문에 그렇다. 이는 혼자 모여도 하나님 모시고 모였고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의 우주를 엿새 동안 만드신 이 분의 또 이분의 뜻, 이로 인하여 되어지는 것인데 네가 가진 자리가 얼마나 크냐, 얼마나 크냐 우주 중에 먼지 만한 지구 땅 덩어리 지구 땅 덩어리 중에 콩 쪼가리 만한 한 쪼가리 거기에 말단 말단에 서서 있는 그게 뭐이 큰 줄 아느냐, 그 날 밤 모일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너무도 참람 된 자들이 많았습니다. 저가 정말로 중생 된 자라면 돌아가서 뜨겁게 회개를 했을 것입니다. 중생 된 자의 목사 밑에 있는 자라면 반드시 목사가 가 가지고 책망을 하고 훈계를 해서 그를 회개를 시켰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 다 이런 것이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조그매 무엇이 되어서 숨을 못 쉬게 모가지를 잘라 가지고 있다가 조금 숨을 내쉬면 그만 배짱 나오고 교만 나오고 그만 나와서 가증을 행합니다. 교회에서 배척을 당하고 교회가 문제가 있어도 미련만 지기고 참고 있으면 된다 해서 이렇게 참 교역자기 때문에 그런 멸시 천대받는 이런 자리에 있어도 배짱만 내면 되는 줄로 알고 자극조차도 받지 안하고 토끼꼬리 요만해 토끼꼬리 요만해요. 노루꼬리도 요만하고 토끼꼬리 만한 그 지식 그 대학 졸업 맞고 대학원 졸업 맞고 좀 많으면 박사하고 하는 이게 있으니까 뭐 하겠다고 이는 순전히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나오는 하나님의 것만 가지고 하는 것인데 이것 가지고 그것을 대우할 줄 알고 이런 교만함에 어두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이런 모든 지식들이 다 폐하여질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어리석으면 안됩니다. 안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을 다 어리석다 말하요.
모든 것을 바로 아는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 불쌍하다고 살려 보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이종교 중에도 제일 벌 많이 받을 불교에서 믿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 어리석다 합니다. 하물며 모든 사람이 제 주관대로 판단해서 모두 저 잘난 재미로 살고 상대방을 멸시하는 이런 것으로 살지마는 마지막 조금도 피동 되지 않는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중생 된 사람이라도 무서운 정확무오의 그리스도의 지공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이 심판도 모르고 철없이 정신 없이 날뛰면서 뭐 의지해서 네가 배짱 내느냐 세상 지식 자기 인품 다 죽은 것입니다.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은혜는 뭐이 은혜냐? 은혜는 뭐이 은혜냐, 예수 믿는 이치를 배우는 것이 은혜요. 이 이치를 정확히 깨닫고 믿어지게 하는 것이 이것이 은혜요. 알고 다 버리는데 안대로 실행하는 이것이 이 능력이 은혜요.
이번에 학습 세례 문답을 해 보니까 낱낱이 구역장의 실력이 드러납니다. 늘 말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자기 맡은 식구에게 어짜든지 목사님이 설교할 때에 네가 한 마디씩이라도 깨달아라 요걸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그 모든 말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설교 말씀을 들으니 '아 요 말씀은 아무것이 한테 가서 해줘야 되겠다' '아 요 말씀은 아무것이 한테 가서 해줘야 되겠다' 이렇게 낱낱이 깨달아져 얼른 설교 예배 마치고 난 다음에 당일 가든지 그리 안 하면 심방 순서대로 이틀 후에나 사흘 후에 가 가지고 야 이래 말씀할 때에 고 문제에 대해서 물으면 반드시 모릅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모르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마귀라는 놈이 요 말만 요놈 내가 떨군다 요거 알면 요놈을 내가 떨구니까 어짜든지 그놈이 알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말씀 이 이치가 나오는데 이것만 들으면 이건 난 그만 떨궈 버린다 만나지 못한다.
이러기 때문에 이놈을 이걸 듣지 못하도록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을 해서 그때는 대개는 좁니다. 다른 때는 안 자다가 필요한 말씀 나올 때에는 좁니다. 이러니까 못 들었다 이거요. 그것을 자기가 받아 느낀 대로 시간이 걸려도 가르쳐줍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 지금은 필요가 없소. 지금 필요 없을 때에 이 이치를 가르쳐 주면 제가 받습니다. 또 가르쳐 주고 그 다음에 가서 또 묻고 하면 받습니다. 아 성경에는 이렇고 이렇고 이렇구나 했는데 그 뒤에 이 말씀이 필요가 실질적으로 있을 때에는 이 말씀대로 할라 하면 자기가 깨어지고 사업이 깨어지고 자기 명예가 깨지기 때문에 듣기 싫기가 오랑캐같이 원수같이 싫은 말씀이라 말입니다.
이러나 그런 일이 없을 때에는 말해 놓으니까 말하니까 자기에게는 상관이 없으니 성경 말씀을 성경 말씀대로 받는다 이거요. 그때 가 가지고 '네가 성경을 어떻게 배웠노' '성경에 이렇고 이렇지 않느냐' 하니까 자기에게 억설로 자기를 해치느라고 그 말한다고는 듣지를 안하고 '성경 말씀에 그렇지마는 어떻게 그래 할 수 있는가' 그렇게 안 가르친 사람은 남의 일은 공연히 쉽게 보고 어쨌든지 방해해서 내가 뭐 하는 일은 방해만 하고 안되도록 하고 정 반대로만 하다고 이렇게 원망하는 사람이 되어지고 평소에 많이 가르치고 가르쳐놓은 사람은 그럴 때에 '너 성경에 어찌 됐지' '아, 이렇고 이렇고 이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할거라' '이렇게 하기는 해야 되겠는데 이거 참 힘듭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어짜든지 나도 이렇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더 잘 가르치는 사람은 슬그머니 가서 구경합니다. 어짜는고 보자 이러니까 '녜, 권찰님 오셨습니까 목사님 오셨습니까? 제가 이번에 이런 일 이런 일이 있는데 내가 이렇게 하기로 작정을 하고 지금 이대로 하고 나가고 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허, 문제가 없어.
이것이 사람을 가꾸고 기르는 것이요 이게 지도하는 것이요.
이러니까 평소에도 말씀을 듣는 귀를 열어 주기 위해서 어제 주일날 말씀을 잘 들었나 듣는 데에 구원이 되는 것이다.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순종하는 것이 제물로 드리는 것보다 낫다. '들었는가 보자' 알 것을 가르칩니다.
자기가 대답할 것을, '이런데 뭐이지?' '이렇습니다' '또 이거는 뭐이지?' '이렇습니다' 대답을 제법 잘한다 그 말이요. 저도 또 대답을 하니까 재미가 있거든, 그것만하면 교만해져. 그 다음에는 알송달송한 것을 하나 묻습니다.
자욱거리면서 아, 그거는 대답을 못 하겠으니까 여전히 자욱거리다가 조금만 길을 열어주니까 '아이구, 이겁니다' 대답한다 그 말이요.
영이 자라 영원히 자랍니다. 또 그러고 난 다음에는 아무래도 모를 것을 말해 줍니다. 왜 높은 도를 그 날 배운 데서 말해줍니다. '이거 뭐이지?' '그거 내 모르겠는데요' '모르지 귀가 가리워져 마음이 어두워서 그래. 이렇고 이렇고 이런 것이다.' 그 날 들은 기억이 있어 없어, '아, 그리고 나서 보니 그 날 어제 주일날 들은 것 같습니다' 이래 가지고 듣는 데에 정신을 차리도록 이렇게 만들어서 서부교회 가르친 진리를 들으면 절대로 안나갑니다. 들은 자는 안나갑니다.
발길로 암만 차도 안나갑니다. 제가 잘못 들어 그렇지. 들었으면 이곳을 버리고 딴 데로 갈 곳은 없습니다. 확신합니다. 단정짓습니다. 제가 바로 들었습니다.
껍데기로 들어서 그러하지 이렇게 교인을 길러 놓은 사람은 문답을 하려고 보니까 묻기 전에 여러분들 그 빛깔이 다릅니다. 그 사람을 만날 때에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초면에 만나도 얼굴은 번들번들하게 참 미남으로 미인으로 생겼는데 속이 텅 비었습니다. 속에 아무 것도 들지 안 했소. 무식한 사람 표납니다. 무식한 사람 표나요. 글을 배우지 안 했어도 이 세상 상식으로 벌써 유식한 자를 능가할 만한 속에 지식이 들어 있으면 또 표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 지식으로서는 아주 구비하고 위대한데 그 속에 영생하는 진리는 하나 둘 들어있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는 또 깡통 같은 또 빈 것을 또 봅니다. 빈곳이 그 얼굴에 나타납니다. 이것은 세상에 있는 지식은 없고 하나님의 영생하는 지식만 속에 담겨 있는 것도 나타나고 세상 있는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 이 두 가지 지식이 그 속에 담겨 있는 것도 나타나고 나타납니다. 상을 볼 줄 몰라 그렇지 얼굴 빛깔에 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학습 세례 문답하려고 보면 됐어. 문답할 것이 없이 됐어. 보면 이거는 됐다, 이 구역장이 누구고 보면 내나 잘 기르는 그 구역장의 식구요 이는 죽자껏 애를 쓰기는 쓰지마는 아이 것은 속이 텅 비었는데 교회만 나오지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그저 눈 먼 망아지 원앙 소리 듣고 따라가듯이 따라오는 이 맹종의 사람이로구나, 속이 텅 비었구나, 찾아보면 그 구역장이 텅 빈 사람이라.
예배 볼 때에는 눈감고 졸고 사람 구원하기만 힘을 쓰지마는 그것이 진리를 받을 때 진리를 받지 안 했는데 까다로운 여기에 붙어 있을 이치가 있습니까? 붙어 있지 안 해. 다른 데는 저를 치켜올려 주는데 그것 없지 다른 데는 육적으로 돕는 일이 많은데 여기는 육적으로 돕는 일이 있으면 다른데 전도하고 심방해야 되지 그래 할 여가가 없다 그 말이요. 그래 할 여가가 없어. 이런 거 없지 육적 취미가 없지. 옛사람 높여지지 안 하지 가끔 가다 가면 옛사람 죽이는 일만 하니까 자기 죽이는 일, 자기에게 섭섭한 소리만 하고 있지 이러니까 여기 붙어 있습니까? 이러니까 여기 있어도 취미 없고 다른 사람 예수 믿는 것 보니까 재미있다가 아 어짜면 떠나 버릴 수 있느냐, 여기서 이사를 갑니다. 저 먼 데로 이사를 가 가지고 그만 가까운 교회 가 보니까 재미가 아주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 아무리 전도해도 수입 고출이라 새것은 들어오고 묵은 교인은 나가고 새 교인은 들어오고 묵은 교인은 나가고 자꾸 이러니까 그까짓 거 암만 해야 소용 있소.
그런 반사들 그런 구역장들 그런 권찰들 그런 목사들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뭐 자기 기분이 시원하게 하는 것 아니요. 어떻게 하면 예수를 바로 믿나 예수 믿는 이치를 영생하는 이치를 구원을 이루는 이치를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이치를 배우는 것입니다. 이치.
천인 만인이 말한 여러 사람이 말한 그 여러 사람의 말을 배우는 것 아니요. 여러 사람 말 하나도 안 배워도 예수 믿는 바른 이치만 배우면 됩니다. 바른 이치만 배우면 되지 여러 이치를 배운다고 소용 있는 게 아니라.
제가 어떤 초대해 갔는데 그때에 어떤 신학교 신학생이 왔소. 지금 유명하게 된 사람이요. 그래 저하고 둘을 초대를 했어. 그 사람이 나는 원어 모르는 줄 알고 원어로 가지고 나를 눌러 대려고 턱 뭐라고 말한 게 아니라 '이번에 히브리어 박사가 와서 가르치는데 구약은 히브리어로 기록한 것이 원본인데 구약은 히브리어 박사들이 안 믿는 히브리어 박사들이 예수를 잘 믿는 히브리어 모르는 목사들보다 훨씬 성경 진리를 잘 깨닫고 있다'고 그렇게 말합디다. 내가 옆에 듣고 '그러면 한글로 이 번역된 이 한글 성경은 한글 학자가 안 믿는 무신론 한글 학자가 예수 믿는 목사보다 훨씬 나을쌔' 이러니까 멈춤하면서 또 뭐 주데.
어떻게 화가 나는지 고함을 질러 버렸소. '그게 교수냐 뭣 배워 가지고 그따위 소리하고 있노 있기를, 성경에 성신의 감화가 없으면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고 하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고 하는데 성경 없는 마귀가 주장하는 자가 성경을 성령으로 중생 되고 성령의 일꾼 된 목사보다 히브리어 잘한다고 더 낫아? 어디 그따위 교수가 어디 있으며 그따위 신학교 어디 있느냐'고 야단을 내가 쳐버렸지. 처음에 머뭇머뭇하다가 원층 내가 호통을 쳤지 '가서 말해. 어디 그따위로 가르치고 이따위 있느냐'고 이랬더니마는 그래 거기 있다가 그만 멈춤 해서 너무 심하게 하면 의절될 것이고 그래서 저녁만 먹고 마지막에는 웃으면서 토끼꼬리 만한 그 지식을 자랑할라 하기 때문에 제가 망할 일 했다.
그 교수가 이런 말을 해놨으니 그것을 그 사람들 뇌 속에서 그 지식주의 지식의 욕심으로 하나님을 욕심내는 것보다 지식을 욕심내는 걸 더 많이 내서 이게 우상 돼 가지고 다 죽이는 이 세상인데, 그 사람들 속에 이것이 박혀 놨으니 그놈 뽑자면 일생동안 저는 교수 노릇해도 그거 변상하고 나면 돌아갈 것 하나도 없다.
상 하나도 없다. 그것 변상하자면 그게 막 바로 주를 자랑하고 높일라 하는 게 아니라 히브리어 박사 제 자랑하고 제 높이려고 하는 내나 자기가 우상 됐기 때문에 그것은 옛사람이요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요. 예수 믿는 사람의 정 반대인 그놈이 교수 노릇하기 때문에 그까짓 거한테 배운다 말인가, 야단을 쳤지 왜 내가 그렇게 해 붙일 라고 하는 게 아니라 너무도 그게 내나 우리 신학교요 내나 그 신학생들이 내나 우리 신학생이요, 우리 지체요, 우리 구원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걸 고치지 안 하면 안 된다 말이요. 무서운 죄라 말이요. 큰 무서운 죄라 말이요. 그게 박사 돼봤자 히브리어 이 단어는 이 단어는 이런 뜻이 있고 저런 뜻이 있고 저런 뜻이 있고 그렇게 그거 많이 말하나 그 외에 딴 거는 없다.
나는 히브리어 몰라도 내가 박사 만치 할 터이니까 한 번 들어봐라, 동정녀 아마 동정녀는 좀 넓어서 박사는, 동정녀는 남편 없이 여자가 처녀가 동정녀다 나이 어린 처녀를 동정녀라 한다, 어떤 데에서는 남자 모르는 처녀를 동정녀라 한다, 어떤 곳에서는 처녀막이 뚫히지 안한 것을 동정녀라 한다, 어떤 곳에서는 남자와 동침하지 안한 것을 동정녀라 한다, 백 가지도 만들어 내겠다. 그까짓 거 필요 없다. 동정녀는 남편 없이 남자와 동침하지 안하고 아이 낳은 것이 곧 동정녀 탄생이다. 딴 거 아무 것도 없다. 이것만하면 족하다. 뭐 하나님도 모르고 구원의 법칙도 모르는 그런 사람을 교수라 앉혀 놓고 야단이요, 무엇을 지금 잘해서 자랑하고 있노, 이랬는데 그래도 그분이 달게 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그 말을 평생 쓰지 안 할 것이고 아, 이는 참 인간 지식이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구원을 이루는 것은 아니고 이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에게 종이 되고 하나님의 지식에 뒷바라지를 하는 이용이 되는 것이 되어져야 되고 그렇지 안 하면 이것이 우상 되어서 구원에 폐단을 주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그분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달마다 나에게 주관마다 나에게 매 주간 나에게 편지 옵니다. 통지 와요. 그런데 그분에게 내가 꼭 한 마디 지금 해 줄 말이 있는데 그러면 안 해주면 안 해주지마는 이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아는 대로는 그분에게 유익 될 것은 말해 줄라고 합니다. 그 뭐이냐? 거기서 달력을 만들었는데 달력 그 달력이라 합니까 월력이라 합니까 뭐입니까? 카렌다라던가 뭐 만들어 냈는데, 예수님의 생애라 이러고 그 전부 가서 그림을 전부 성화라 하는 걸 요새 말로 성화라 하는데 성화 그리는 그걸 위에다가 그림을 그려 가지고 이거는 참 아주 성화기 때문에 좋겠다 했는데 그것도 전부 우상이요. 실지로 그 사람들의 사진도 아닙니다. 사진도 아니라 예수님이 당신이 글씨 썼던 것도 싹 뭉갰는데 어디 예수님의 사진이 있습니까. 이거는 가짜 배기로 그려 논 것인데 이러니까 예수님은 왜 글씨 하나 남기지 안 했느냐? 신구약 성경 말씀이 소개하는 예수님 성경 말씀에 이 성문 계시 속에 영감이 가르쳐 주는 그분의 턱이 삐뚤어져도 좋고 턱이 길어도 좋고 낮이 동그래도 좋고 수염이 나도 좋고 안 나도 좋고 수염이 났거나 그런 게 아니고 그분의 신성과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그분의 형상, 그분의 신성과 그분의 인격성 가르치는 그 인격성 그 사상 그 주의 그 지식 그대로 되어 있는 그분을 성경보고 껍데기로 대충 알고 영감 받아서 '아 주님은 이런 분이 시로구나' 거기 대해서 그분은 수염도 없어, 그분의 거기 대해서는 수염도 상관없고 코도 상관없고 귀도 상관없고 길고 짧은 것 상관없어.
그것이 아닌 그의 신성, 그분이 입고 계시는 하나님의 형상 이것을 사모하고 찾아서 그분의 형상을 우리가 입으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인데 수염이 쭉 나오고 수염이 축출하게 나오고 낮이 기다란 하고 그 모두 털을 좋아하니까 털이 많이 나고 눈은 또 쌍꺼풀을 좋아하니까 눈은 또 쌍꺼풀로 만들고 이래 만들어 가지고 이게 예수다 이런 한달 내 그거 보라고 한달 내 그거 보라고 카렌다를 이래 만드는 그것이 참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카렌다에도 예수님과 모든 사도들 성자들 선지자들 이렇게 그림 그려놨으니 이렇게 주님과 선지자들을 선지 사도들을 사모하는 정통 중에 정통이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고 아는 사람은 아 이것을 이래 놓은 것 보니까 그 심령이 얼마나 어두운가 할 것이고 이런데 참 아 이거 보니까 정통이다 이거 보니까 너무 유치하다 어둡다 이 보는 사람이 각각 다르겠지요.
제가 바로 해방 이듬해에 집회하는데 따라다니는 집사 한 분 있었는데 그분이 부산 와 장로 돼 가지고 죽었소. 열심히 따라 다니는데 한번은 묻기를 기도를 하는 건 어찌 됩니까? 자기 딴에는 참 칭찬 받기 위해서 기도를 하면 뭐 어찌 합니까? 기도를 이래 열심히 열심쟁이입니다. 열심히 이 기도를 하면 아마 여기 아마 ○ 집사도 알 것이요. 열심히 기도하면은 자꾸 주님을 사모하고 사모하니까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을 박혔는데 높이 그래 척 달려 있는데 보니까 핏방울이 뚝뚝뚝뚝 떨어져서 그 핏방울을 내가 받아먹으면서 그래 보고 그래 이래 주님 부르면서 내가 기도를 합니다. '이러면 됐습니까? 묻습디다'. 그래서 그게 아니다.
그것은 네가 어디 그림을 봤든지 봐서 그렇지 그것은 우상이다 그게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형체를 가지고 나타나시는 그 형체 그분을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니고 그 형체는 예수님이 나를 대속하실 때 이렇게 대속 하셨다 하는 그것을 알면 되고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의 형상을 덧입기 위해서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신데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경 가운데 있는 이 성경 서적 중에 있는 이 계시 중에 있는 계시가 가르치는 이 성경 말씀이 이런 예수님이라 그분에게 성질에 대해서도 가르쳤고 주장에 대해서도 가르쳤고 소원에 대해서도 가르쳤고 사상에 대해서도 가르쳤고 그분의 모든 속성에 대해서 가르친 그분의 자기가 사모하면서 기도해야 되지 막 바로 껍데기는 사람이나 속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속은 하나님이시라 이렇게 해야 되지 그런 형상을 하면 형상은 그것이 자기의 기도를 들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고 신인양성일위의 그 인격성 그분이 기도를 듣는 것인데 그러면 기도하다가 중간에 막혀 버리고 안 된다.
내 성화 얘기를 그때 말해줬습니다. 그러니까 질끈 죽자껏 힘써 가지고 나아가면 그 성화 그림 그거보고 거기 막혀 가지고 그거 상대하고 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구원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거는 우상이요 가짜요. 어짜든지 있으면 있는 거만치 자랑할라 해보면 그때 고신에 다닐 때에는 별과 본과가 있는데 별과는 원어를 공부할 수 없는 그런 무식한 사람들이요. 그 별과 본과는 원어를 공부할 수 있는 그런 젊은 사람들 유식한 사람들입니다. 이래 가지고 어디 가면 나는 본과에 공부했습니다. 본과 자랑을 해요. 본과 자랑하는데 목회 나가 가지고 지금까지 내가 우리 동창생 지금 가 듣는데 모두가 다 그만 미국을 져버리고 또 목회를 해도 항상 교회에서 쫓겨나고 교회에서 두통거리로 배짱 내고 이래 가지고 이러면 너희가 무식해 그렇다. 원어 읽으면서 뭘 외서에 쓴 것을 이래 읽으면서 저는 그 외서를 읽으니까 참 떠듬떠듬 읽으니까 귀한 것 같지마는 그 듣는 사람들을 그 말을 들을 때에 도무지 주일학교 학생 설교만도 못하기 때문에 양식이 안 된다 그거요.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어렵다" 그 말은 있는 그거 가지고 그것 가지고 할라 하기 때문에 천국 못 들어가. 부자가 아무리 부자라도 하나도 없는 가난한 사람 있소. 이 사람은 제일 좋은 천국 차지합니다. 세상에 있는 지식을 많이 가지고 지식 그까짓 거 하나도 나타내지 안하고 지식 그거 하나님의 지식에게 복종해야 될 줄 알고 지식 그것 가지고 있다고 하나도 교만 아니고 지식 그것이 하나님의 지식에 종이 되면 필요 있다고 요 위치를 바로 가지는 사람은 제일 좋은 구원을 이루지 제일 좋은 구원 이루어.
바로 알아야 됩니다. 모르는 사람이 무슨 구원을 이루겠소. 이러니까 교인들이 뭐 이 교회나 저 교회나 다 같은데 어디 뭐 갈 게 뭐 있는가? 여기는 오면 박사를 박살내는 교회입니다. 우리 진영은 박사를 박살을 내어 가지고 완전히 박사는 주어야 되고 죽은 박사 완전히 박사가 죽어 가지고 죽은 박사가 이제는 하나님의 박사가 됩니다. 죽은 박사가 하나님의 박사가 돼요 이래야 살리고 삽니다. 박사가 되고 싶어서 돈을 내 가지고 사 가지고 이것이 탄로가 나서 신문에게까지 잘못됐다고 자복을 하고 사과를 하고 이렇게 박사가 좋기 때문에 박사 받으면 뻘건 테두리 떡 두르고 이렇게 좋기 때문에 모두 다 이것을 참 세상이 좋아하는 대로 좋아하는 그 뜻에서 그 인연에서 그 사상에서 가지는 사람은 그것 뽑아 버리기가 정말 박사 학위 받는 것보다 더 힘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식에게 종이 되면 필요 있고 안되면 화가 있고 이것이 우상이 되어서 이것 가지고 일하려고 이것 나타내려고 기도 그거 없으면 기도 두 번해야 될 터인데 이거 있으니까 기도 한 번만 해도 이거 없는 사람 두 번한 것 만치 안 되겠느냐? 절대로 그거 가지고 기도 대신은 못합니다. 안 된다 말이요. 이것을 깨닫고 하면 보배지마는 이걸 깨닫지 못하고 하면 가르치는 자도 죽는 것 가르침 받는 것도 죽는 것 다 죽는 것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 앞에 옳은 말이요 옳은 말 천하가 반대해도 옳은 말 이 말이 옳은 말이요, 생명의 말씀이요.
그런고로 예수 믿는 이치를 듣도록 길을 열어주고 하나씩 둘씩 배워서 되어지도록 이렇게 사람을 기르지 안하고 권찰 노릇을 하고 가면 나오너라 나오면 다 됐다 이런 사람들은 보니까 문답해 보니까 아주 그 교인들이 속이 텅 비어서 참 바보라 이 면에 눈을 뜨고 가르치는 교인은 구역식구는 뭐 문답할 거 없어 그저 하나 물어야 되기 때문에 뭐 하나 묻고 어떨 때는 답하는 재미가 있어서 좀 더 묻고 이렇지 그 보면 그만하면 됐지 뭐 문답 딴 게 뭐 할 거 있습니까.
아무리 똑똑해도 이 면을 힘을 쓰지 않는 사람 있다 말이요. 구역장으로 설교 말씀을 듣도록 하는 그걸 힘을 쓰지 안 하는 사람 있어. 어떤 사람은 또 제가 가르치기는 가르치지마는 제가 가르치는데 이거 교회 가 가지고 목사 가르치는데 거기서 가르침을 받아서 가르침을 받으면 거기서 목사한테 가르침 받으면 그 목사한테 은혜를 받으면 목사를 사모할 것이 그 목사에게 가까워질 것이고 그러면 나는 중간에 빠진다 이러니까 거기서 듣는 것은 가만히 둬두고 속으로 이거 이제 말은 안 하지요 여기서, 저 말씀을 못 듣고 있으면 내가 가 가지고 뒤에 가서 이렇게 딱 말해서 '아이구, 목사님한테 배우는 것보다 권찰님이 가르치는 것이 더 똑똑하고 잘 배워지고 좋습니다.' 여기서 이 인기를 내게로 끌어 붙여 가지고 이르도록 하고 이러니까 이제 그러니까 예배볼 때에 강단에 목사 설교할 때에 슬그머니 보니까 꼬박 꼬박 좁니다. 조니까 이제 속으로 '됐다 됐다 조니까 됐다 이거 알아들으면 내가 가르칠 것이 없을 것인데 이거 알아들으면 그만 목사 설교로 만족하고 그 목사님에게 가면 기울이고 들어붙고 이럴 건데 이거 졸았으니까 내가 가자' 해 가지고 그 다음에 가서 이거 졸졸졸졸 말하니까 '아, 어제 그런 설교가 있었습니까, 나는 몰랐는데요. 어제 이런 설교를 했는데 나는 권찰님이 와서 가르치면 귀에 쏙쏙 들어오는데 목사님 설교는 귀에 들어오지 안 해.' 이러면 그래도 목사님 설교가 더 낫지. 뭐 말로는 이래도 통쾌하다 그 말이요. 통쾌해.
이러니까 하나님 첫째는 하나님, 하나님 다음에는 그 구역장 집사님 아닙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을 가슴이 콱 찔러 죽을지 '아이구, 내가 이 일 쳤으니까 사람을 멸망시키는구나' 이것이 느껴지지 안 하니 심령이 어두운 심령이요.
알겠소? 내가 말한 이거는 극단으로 말하기 때문에 그렇게 나가면 그거 된다는 말이지 그런 생각으로 그런 마음으로 하지는 안 하지마는 그래 나가면 그것 됩니다.
그것도 죽은 것 그것도 자기의 우상이라 그게 옛사람이라.
지권찰은 원권찰에게 소개 중매쟁이라. '우리 원권찰 구역장이 이렇다 저렇다' 왜 거기서 교훈이 흘러 내려오기 때문에 '우리 구역장님이 이리 하라 하더라 내가 그거 배웠다.' 이러니까 '우리 지권찰보다는 구역장이 크구나' 이제 구역장이 큰 줄 알고 구역장에게 딱 들어붙는다 말이요. 들어붙으니까 구역장이 있다가 말하기를 '내가 목사님한테 이래 배웠다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해. 목사님이 이거 하지 말라 하더라' '아 구역장보다 목사가 높구나' 목사에게 들어붙는다 그 말이요. 목사에게 들어붙으니까 목사는 있다가 '아, 내게 들어붙었으니까 이제는 내 사람이니까 내가 동으로 가도 서로 가도 따라오겠다 이거는 내 사람이다 저거는 아직 내 사람 안됐다' 이래 가지고 제 사람 만들면 그게 양 도적이요 이리요 절도요 강도입니다.
목사의 사람되면 목사는 있다가 '아, 나는 소용없고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시요 중보자이신데 예수님에게 붙어야 된다 나한테 암만 붙어봤자 소용없다' '아, 갔더니마는 목사보다 예수님이 높구나, 하나님이 높구나 하나님한테 붙어야지.
목사에게 암만 들어붙어야 소용없구나 하나님께 붙어야 되는구나' 목사 내놓고 거기 딱 들어붙게 하고 난 다음에 저는 살며시 빠져 버립니다. 안보입니다.
하나님하고 둘이 들어붙도록 이러는 것이 중매쟁이요.
중매쟁이가 처음에 중매하기 전에는 처녀도 중매쟁이가 총각하고 가까운 것보다 중매쟁이하고 가깝다. 총각도 처녀하고 가까운 것보다 중매쟁이하고 가깝고 둘이 다 가깝지마는 이걸 끌어다 붙여서 맞추고 난 다음에는 저거 둘이 가깝도록 하고 살며시 중매쟁이는 빠져서 이제는 중매쟁이보다 처녀 총각이 가깝습니다. 이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중매쟁이의 정상이요. 이거 중매시켜놨더니마는 이 처녀 빼앗겼다 이 총각 빼앗겼다 저거 둘이 좋아하고 나한테는 나는 이제 버림당했다. 그자는 중매자가 아니요. 그자는 절도요 강도입니다. 몹쓸 인간입니다. 이것이라 그거요.
그래도 이 진영에서는 구원이 아직까지는 백목사의 교훈으로서 이 구원 얻는 교훈이 되어지기 때문에 '아, 백목사에게로 자꾸 이렇게 끌어 붙이자' '아, 목사님 설교가 이렇다 교훈이 이렇다 우리가 이렇게 배웠다' 자꾸 이 교훈을 자꾸 주장하니까 '이 천하에 있는 지식을 다 배워 가지고 와 가지고 우리 백목사 지식을 자꾸 소개하고 있구나. 백목사 진리 이 가르치는 것이 이러니까 우리는 이리 배웠는데 이렇다 이게 좀 낫다 그 어떻게 내나 또 이걸 말한 것이다' 이렇게 자꾸 이러니까 '아, 이제 백목사 설교를 이걸 참 단단히 들어야 되겠고 천하 제일이 아니라도 단단히 들어야 되겠고 이 말씀대로 하면 살겠구나' 집중을 해서 이 교훈에 집중을 해 가지고 이러니까 또 백목사한테 오면 백목사는 항상 말하는 것이 예수님에게 소개하는 것 뿐이라 말이요. 이거는 나한테 소개를 하는 것 이걸 내가 할 말 아닌데 여러분들을 위해서 내가 하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돼서 한 시간 가르치고 보니까 한 시간 가르치고 보니까 '아, 내나 백목사 설교 잘 듣고 그 가르침을 잘 받고 기억하고 단단히 해라' 내나 그거 만들어. 또 그거만 만들고 맙니까? 또 이게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이렇고 이렇고 이렇기 때문에 이것을 해야 된다' 이러니까 내나 한 시간 배우고 나니까 가까운 백목사와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더 가까워지고 배우고 보니까 자꾸 배우고 보니까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백목사와 가까워지고 이 진영과 가까워지고 이 진영은 백목사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니까 진영과 가까워지고 이랍니다.
이러니까 잘 가르친 것은 가르친 교수 자기는 어디로 달아났는지 빠져서 기억도 흔적도 없고 그 모든 가르친 말씀이 이 진리의 말씀이 진영 이로선 하나님 이것만되어져서 강해지면 성공이요 내 이거 어려워 이게 성공이요 사는 것이라.
백목사 자기 높이려고 하고 있네. 내가 높임을 받기 위해서 하는 것이 거기 섞여 있으면 그것은 죽은 것이요 그것은 죽은 것이요. 내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그런 것은 신물납니다. 진리만 증거하고 나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 됐으면 좋겠소.
아는 사람 됐기 때문에 고통이요. 잠 못 자고 밥 못 먹고 고생입니다. 좋은 것 한 내끼도 없어. 명예나 지위나 권세에 아주 권태 나고 엉거시 먹은 사람이요 녜, 그런 것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배워서 알도록 하는 이것을 중심을 삼아서 가치성을 알아야 될 건데 구역장들이 여기 대해서 생각이 없어 암만 백목사 목회를 잘해도 백목사가 접촉한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백목사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서 버리고 하나님만으로 가까워지는 그 결과를 맺지 못했으면 그 접촉은 다 죽은 접촉입니다.
그 사람 접촉하고 보니까 그 백목사 저 사람 보니까 존경은 하지마는 백목사는 사람이고 백목사가 섬기는 하나님만 하나님 만으로만 가까워지는 이 사람 됐는가 안됐는가. 그것 봐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열매를 보아서 알 수가 있는 것이요.
그런고로 우리가 지금 할 일은 뭐 할 일이냐? 죽이는 일 할 일이라. 그 다음에는 살리는 일이라. 이 심신을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 된 새사람 참사람이 이 심신을 주관하도록 이 사람으로 살아나는 이거 지금 하는 일 합니다. 이 사람으로 살아난 다음에는 이제는 주님의 명령인 새사람의 심신이 된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 순종으로 이것이 다 이용되어지고 소모되어지고 마지막에는 죽어지고 없어지는 이것이 최종성이라. 이것이 썩어질 것을 썩지 아니할 것으로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이것이 십자가의 재물이라. 제사장 선지자 왕 노릇 하는 것이 이것이 산 재물이라.
이것이 예수님의 피와 살 나 위해서 대속하는 피와 살을 연구함에서 신이 났어.
오히려 주님과 형제 구원을 위해서 자기 목숨이 끊어지는 순교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으니까 하나님이 나 위해서 이렇게 했는데 나 주 위해서 못할 게 뭐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 위해서 이랬는데 내가 형제 위해서 해봤자 피조물 된 인간 내가 피조물 된 인간 동등을 위해서 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이 피조물 된 나 위해서 했는데.
이러니까 순교하면서 이만하면 됐다 하는 교만이 나오지 안하고 베드로는 거꾸로 못 박힐 수 있는 그 강한 힘이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는 데서 나왔다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다섯 가지인데 우리는 죽이는 일 살리는 일 그 다음에는 죽는 일, 이것으로서 우리의 결론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념하라 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 장로님 왔습니까? 손들어 보십시오 안나왔지. 녜 됐습니다. 죽이는 일 안 하면 제 구원 없습니다. 죽이는 그것이 제 구원이요. 살리는 그것이 제 구원이요.
죽이고 살리고 난 다음에는 죽는 것이 자기 구원입니다. 마지막에 자기 죽는 것이 자기 구원이요. 그게 자기 십자가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