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6 11:53
성전건축-하나님을 모셔라
1981. 9. 23. 수새
본문 : 요한계시록 3장 20절 - 21절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자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문밖에 서서 두드린다" 하는 말씀은 우리가 중생될 때에 주님과 진리가 우리 안에 와서 계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 영안에 영 성령과 진리가 우리 영안에 들어오실 때에 그때가 바로 영이 중생되는 때입니다. 성령님과 진리가 영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다시는 그에게 죽음이 없습니다. 영생입니다.
그러나 영안에만 계시지 마음 안에 계시지 않는 사람도 있고 마음 안에는 계시지마는 그 몸안에는 계실 수 없는 그런 사람도 있고 마음과 몸 안에는 계시지마는 그의 행동안에는 계시지 못할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 게 '문밖에 서서 두드린다는' 이 말씀은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들에게 대해서 한 말씀이 아니고 중생된 사람들에게 한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하나님으로 심판의 하나님으로는 그에게 관련을 가지고 있지마는 영생에 속한 이 구원의 하나님으로서는 중생되지 아니한 자에게는 관련을 가지지 않습니다. 택한자라도 중생후부터 직접 그와 관련을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문밖에서 두드리노니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그로 더불어 먹고" 요걸 여러분들이 잘 알아야 됩니다. 이미 알고 있는데 이걸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나는 그로 더불어 먹고" 그말은 다른 말로 하면 '나는 그로 더불어 조물주의 예정한 뜻을 다 이루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는 나로 인해서 하나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리라' 먹는다말은 뜻을 이룬다 말인데 먹는 것을 왜 뜻을 이루는 것을 먹는다고 그래 말했는가? 뜻을 이룬다 이러면 좋을터인데 그것은 먹는다해야 옳습니다. 모르니까 해석을 뜻을 이룬다. 이렇게 해석을 해줬지 먹는다는 말이 맞습니다.
왜 우리는 참 사람이라는 사람이 중생될 때에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갓 낳았을 때에는 그 사람은 사람이지마는 들을 줄을 압니까? 볼 줄을 압니까? 비판할 줄을 압니까? 뭐 본능으로만 짐승같이 본능으로만 움직이지 아무런 그 이성이 없다가 자라면 이 차차 볼줄도 알아서 어머니도 알고 또 소리도 알고 이렇게 하는 것처럼 우리 사람이라는 사람이 중생될 그때는 아주 갓난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이러다가 중생 하고 난 다음에 차차 자라면 그게 눈이 뜨입니다. 차차 자라면 하나님이 누구신가도 볼줄 알고, 인간이 어떤 것이라 하는 것도 볼줄 알고, 또 세상이 무엇이라 하는 것도 볼줄 알고, 천국이 있는 것도 볼줄 알고, 의인도 볼줄 알고 죄인도 볼줄 알고, 의도 볼줄 알고, 죄도 볼줄 알고 이렇게 볼줄 알도록 볼 수 있도록 자랍니다.
그러면 자라는 것은 뭘 먹어야 자라지? 뭣 먹고 자랍니까? 그 자라는 것은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하나 행하는 고만침 자라게 되고 둘 행하면 고만침 자라게 됩니다. 하나 행하면 어쩌는데 하나 행하면 자기 현실에서 하나를 행하면 무엇대로 합니까? 성신의 감동대로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지요.
고 현실에서 성신의 감화와 진리대로 행해야 될것을 행하지 아니하면 고 현실을 통해서 고현실에 대한 고 진리와 고 영감과는 자기와 이별입니까 이제 같이 있습니까? 이별되지. 이별이 되지요. 이별이 안됩니까? 이별이 되는데 옆에서 네가 그 영감대로 진리대로 고대로 행하면 낭파가 된다 하면 미혹이 온갖 미혹이 다 옵니다.
현실에서 성신의 감화대로 진리대로 행하면 네가 살림살이가 절단난다. 남편이 부부와 이혼이 된다. 그 가정이 부셔진다. 뭐 사회사업이 어찌된다. 위협을 주고 너 그러면 사자 구덩이 집어 넣는다. 이런 위협들이 많이 있다말이오.
있을 때에 그때에 자기가 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그것을 그만 너무 어려우니까 버리면 누구버리는 것입니까. 하나님 버리는 것이요. 진리 버리는 것이지요.
그럴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하니까 옆에 자기에게 있는 그 모든 세상에 있는 그것이 그걸 버리야 됩니까 안 버리야 됩니까? 예. 그 버리야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 있지요. 요걸 똑똑히 알아 들어요. 버리야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 있지.
그러니까 그때 우리는 하나님과 진리와 오른편에 섯고 악령과 세상이 왼편에 서 가지고 자꾸 오라고 이카고 있습니다. 그럴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감이 이 진리를 척 배반하면 누구하고 합작이 됩니까? 세상하고 악령하고 합작되버렸지요. 고면에 대해서 합작이 됐다 그말이요.
그럴때에 하나님과 진리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이렇게 하니까 누구를 이별해야 됩니까. 악령과 세상을 이별해야되지. 그러니까 누구하고 합작됩니까? 하나님과 진리와 행한 고 진리 고 영감과는 합작이 되지 합작이 됐으니까 고기 실락끈만한 합작이든지 그리 안하면 큰 밧줄같은 합작이든지 환란이 있어 어려우면은 그 합작이 강하게 되지.
아 보통 일에는 합작이 아주 빅약하게 됐을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과 진리와 합작이 됐다. 그러면 그것이 커진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이 강건해지고 장성해지는 것은 고기 덩어리로 장성해집니까? 돈으로 재벌로 장성해집니까? 이 세상 지식으로 장성해집니까? 영감과 진리로 장성해집니까? 네. 뭘로 장성해지지요. 영감과 진리로 장성해지지 영감과 진리로 장성해졌으니까 그게 영생하겠습니까 죽겠습니까? 죽을 수가 없습니다. 영생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그것을 가르쳐서 먹는다 그렇게 한말이 맞습니다. 이래 먹어야 자라지요. 이러니까 "문 밖에서 두드리니까 문을 열라 그러면 내가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그러면 예수님이 커진다 그 말이오. 예수님이 커진다 말은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커집니까?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아 예수님을 처음에는 예수님 당신만 알았는데 그 뒤에 차차 가니까 십이 사도가 났습니다. 칠십문도가 났습니다. 그 다음에 예루살렘에 하루 삼천명씩 알게 됐습니다. 지금은 얼마나 알았지요. 세계가 다 찼지요. 그러면 예수교라는 이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줬소 안 알려줬소? 많은 사람에게 알려줬지요. 그러니까 예수교가 커졌다 그말이요.
다시말하면 예수님이 너희에게 전파되고 많은 사람에게 인식이되고 양적으로 많이 인식되고 질적으로 더 똑똑히 바로 인식되고 이러니까 주님이 누구를 통해서 그일을 합니까? 우리를 통해서 하셨지요. 그러기 때문에 나는 더불어 먹는기라.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렇게 그 사람은 주님으로 인해서 먹으니까 힘이 세지지 성령과 진리가 결합이 되니까 결합된 것만치 힘이 셀 것 아니겠소? 결합되니까 자꾸 힘이 세지지 또 커지지 그런고로 요 문을 두드리는데 열면 내가 들어간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안에 들어오실 수 들어오시기를 원해서 지금 아주 힘을 쓰시는데 들어오실수 있도록만 하면 얼른 들어오십니다.
그런데 거기에 세 가지를 말했는데 하나는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가 그만 얼른 나가버렸습니다. 얼른 나가버립니다. 왜 나갑니까. 예. 주님에게 거리끼는 죄가 있습니까 거기에 계시면 탁 때리서 멸망을 시키야 될터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피해야 된다 그 말이오. 피해야 돼. 또 주님이 들어오실라 하니까 아무 거리낀게 없도록 거리낌이 없도록 그만 주님에게 거리낌이 하나도 없으면 당신이 자유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주님이 안 오실래야 안 오실 수 없도록 빨리 주님을 망령된 말로 말하면 호출같이 또 좀 표현되는 말로 말하면 사랑하는 자녀가 막 고함을 지르고 아우성을 치고 그 외마디 소리 하면서 아버지라고 막 급하게 부르면 아버지가 슬슬 옵니까 뛰어옵니까. 예 뛰어 오지요. 뛰어오도록 하는 그 방편은 뭐이라 했지요.
예. 이제 내가 하나님의 계약을 한대로 네가 요래 하라 하나님의 계약대로 이행하니 도와주옵소서 하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호소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내 계약대로 할때에는 하나님이 네가 말씀대로 행할 때에는 네가 함께 한다고 말씀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도 약속 아니요. "문을 열면 들어가서 내가 너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이랬으니 약속이라 계약이라 말이오.
그러면 빨리 들어오십시오.
그러기에 우리가 무슨 일을 만일 자 심방을 간다 합시다. 심방을 갑니다. 심방을 가고 전도를 합니다. 전도 가면은 심방 전도 가는 그 행위에 하나님이 계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계실 수 있지요. 또 아 오늘은 심방 전도를 가야 되겠다 하는 그 마음에 하나님 계실 수 있겠소 없겠소? 계실 수 있지.
그런데 심방을 가는데 심방가면서 어쩌든지 주님이 나위해 피흘려 구속해주신 이 영생의 도를 내가 가지고 간다. 영생의 도를 가지고서 죽은 인생들에게 구원해서 내가 가서 구원할라 하면은 주님이 오셨을 때에는 핍박도 듣고 조롱도 받고 대적도 받고 온갖 곤욕 모욕을 다 받았으니까 내가 전하면은 어떤 모욕을 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이 나 구원하기 위해서 당한 그걸 생각하면 내가 암만 당해봤자 그만침이나 당하겠나. 그러면 주님이 자기 구원하신 그것을 생각하고 또 자기도 그 사랑에 감격해서 그 형제를 구원할 그 각오를 가지고 구원할라 할때는 어떤 여러 가지 애로가 있을 것이라. 또 이것이 영생인데 인생이 이것 모르니까 다 멸망을 받고 있는데 여 가운데서 어쩌든지 영생으로 구원해아 되겠다. 자기가 가진것도 영생과 하늘나라 참된 사람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이 자기를 웅호할 수 있는 이 보배로운 것을 지금들었습니다.
이걸 가지고 줘야 될터인데 이거 갖다줘야 될라고 이렇게 가지고 가면서 주님이 나한테 어떻게 했으니까? 나도 이렇게 형제에게 해야 될터인데 주님이 나한테 희생한 것처럼 나는 형제에게 희생하지 못하니 참 죄인이다. 어쩌든지 부족하지마는 하는 데까지 내가 희생해야 되겠다. 요 마음을 가지고 가면 고 마음에 하나님이 계실 수 있소 없소. 계실 수 있지요.
이런데 그러다가 돈을 생각하고 세상 무슨 이런것 저런것 제 욕심대로 이러면서 장가갈 것도 생각하고 시집갈 것도 생각하고 또 무슨 명예도 생각하고 누구에게 감정난 것도 생각하고 이걸 생각하면 그게 그 마음에 들어왔으면 그 하나님이 그 마음 안에 계실 수 있소 없소? 그러면 어찌됩니까? 피해야 되지 얼른 나가십니다.
나가신다 그말이요.
그러니까 자기가 전할 때에 자기 혼자 전하요. 주님하고 같이 전하요. 저 혼자 전하요. 저 혼자 전하니까 마귀가 깔봅니까 두려워합니까? 마귀가 깔보지요.
이러니까 중생된 사람이 할지라도 그 영이 속에서 기뻐 환영하면서 아주 발동하는 환영하는 그 속에서 어쩐가? 속에 감동이 나오고 기쁨이 나오고 그 아이도 내가 척 가니까 그 사람을 내가 가니까 그만 기쁘고 즐겁습니다. 이래 가지고 만나니까 그만 뭐 말할 것도 없고 만나니까 모든 것 해결 다되고 기쁘고 즐겁고 그러면 아픈 것도 그만 만나니까 아픈 것도 다 낫소. 아 근심 걱겅 기쁨이 소상됩니다.
이러다가 그만 그 아이를 만났다 말이오. 그 아이를 만나니까 그 사람을 만났다 그 말이오. 그 친구를 만났다 이거요. 그 아내를 만났다 말이오. 그 남편을 만난다 그 말이오. 만나니까 그 사람이 무슨 그 이 세상 좋은 것을 들어서 말을 한다든지 좋은 것을 드러서 이래 말할 때에 그만 마음이 그리 가버린다.
아 그게 부럽고 그만 그것만 자꾸 보이지니까 예수 믿는 거는 조그매 보이고 조그매지고 그거는 커진다 말이오. 그래 마음에 소원이 그리 가버리고 그만 가치가 거기에 있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것 같이 이래 되버렸다 그 말이오. 그러면 주님 거기에 계실 수 있소 없소? 떠났지.
또 이렇게 주님 모시고 참 마음에 주님이 계시고 기뻐해서 가운데서 계셔서 그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이렇게 됐는데, 그 사람에게 와 가지고 누가 와 가지고 요런 말 저런 말 해서 그 감정 나는 말했습니다. 아무것이가 널 이러더라 저러더라 요 감정 나는말 했소. 이러니까 그 사람이 그만 감정나는 그 말을 듣고서 마음에 그 분개했습니다.
성경에는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 "거짓말로 핍박받기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 상급이 크다." 그 사람이 뭐라고 말했든지 자기에게 매장말 했든지 억울한 말했든지 어떤 소리 했든지 자기는 안 그러면 되는 것이고 그말을 듣고 그러면 참고를 해 가지고 깨끗하게 하고 이럴터인데 그만 그 사람의 말한 마디에 이 사람의 마음이 변해버렸어. 그러면 그 성전이 됐습니까? 성전이 이제는 그만 그 마귀가 있을 수 있는 마귀당이 됐습니까? 뭣 돼어요? 마귀당 됐지. 성령님이 하나님이 나가시니까 마귀가 즉시 들어오지 뭐 어찌할 수가 있겠소.
사업도 그러합니다. 아 이 사람이 사업을 할 때에 자 무슨 사업 못하겠느냐? 뭐 고물상 할 수가 있고 공장도 할 수가 있고 또 무슨 상점도 할 수가 있고 오만것 다 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전도 사업도 할 수 있고 연보 교육 사업도 할 수 있고 또 자선사업도 할 수가 있고 무슨 문화 사업도 다 할 수 있다 말이오. 다 할 수 있어 하는데 그 사업을 하려고 지금 욕심을 가졌어. 그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그 사업에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실 수 있소 없소? 주님이 계실 수 있습니까? 사업을 어쩌든지 내가 이 사업을 한번 해봐야 되겠다. 그러면 주님이 그 안에 계실 수가 없습니다. 제가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데 계실게 뭐 있겠소.
그 사업을 할 때에 자 이 사업을 내게는 합당하나 안 하나 주님이 이 사업을 허락하시나 안하시나 그 생각해 가지고 이리 맞춰봐도 저리 맞춰봐도 내가 이 사업하는 것은 주님이 허락 하시고 주님의 뜻으로 보여진다 해서 자기가 그 사업을 시작하면 그 사업속에 주님이 계실수 있지.
그런데 계실 사업으로서 계실 수 있는데, 그 사람이 사업의 목적이 뭐이냐 하면은 이래 가지고 내가 돈을 잘 벌어 가지고 잘 먹고 잘 입고 사람에게 한번 우쭐해서 한번 자세도 부리고 이렇게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도록 아주 부귀 영광을 내가 누리겠다. 이 목적을 가지고 지금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업 안에 주님이 계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 사업 안에는 주님의 뜻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니 그 사업 안에 계실 수 있었지.
계실 수가 있었는데 목적이 틀리니까 얼른 나가야 되겠다 말이오. 거 있으면 그 사람 면할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이 멸해버리면 못 일어섭니다. 이러니까 피할 수밖에 없지. 내가 너희들이 목이 곧은 사람이라 도중에서 너거 진멸할 것이라.
나가시지요.
이런데 그 사람이 주님이 들어오시도록 만드는 것은 뭐입니까? 아이구 내가 잘못됐다. 내가 이거 해 가지고 천하를 얻는다 할지라도 나를 구속해주신 주님에게 영광이 되지못하고 주님의 기쁨이 못되면 무슨 소용있노. 내 구원에 유익 없으면 무슨 소용 있노. 안됐다.
주여 내가 이제 이 사업을 해 가지고 어쩌든지 주님에게 영광이 되도록 다른 사람에게 주의 사랑을 증거하겠고 주의 구원을 증거하겠고 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고 감화를 받도록 하고 이래서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 구원에 내가 받히고 또 나도 잘 살아야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이 가리워지지 안하겠고 그러면 그 목적을 바로 가졌습니까 안 가졌습니까? 바로 가졌지. 바로 가졌으니까 주님이 그 사업속에 계실수가 있지. 동기가 그러면 잘됐어. 바로 됐어.
목적이 바로됐어.
이랬는데 가다가 꼭 요 진지에 고게는 거짓말을 하지 안하면 안될 고 일이 딱 매였다 말이오. 거짓말 한마디 하면 그만 그때에 그 어려움이 면해지고 사업이 잘되겠고, 아 거짓말 한마디 그걸 안하는 날이면 그만 해 놓은 일이 전부 낭파가 되도록 인인 교제가 다 틀려버렸지. 그 사람이 나하고 감정을 품을 것이지, 그 사람이 나하고 사이가 멀어질 것이지, 이러니까 헛일이라. 모두 헛일이라.
(알아듣는 그까짓거도 안돼. 속에 영감이 가야되지.) 이래 거짓말 한마디 할 수 있는데 이거는 참 이때는 거짓말 안할 수가 없는데 딱 그래야 되겠는데 고때에 거짓말을 하면 어찌 됩니까 예. 주님 얼른 나가시지.
고럴때에 주님이 안나가고 계시도록 할라 하면은 아이구 사업이 절단나도 내가 주님의 그 모시는 일을 버릴 수는 없다. 주님을 내가 배척할 수는 없다. 이래 가지고 그러면 사업이 절단나. 뭐이 낭파가 나는데 고 거짓말 한마디 하는데 낭파가 되는데 고게 거짓말 딱 안합니다.
안하면 그때에 주님이 자기 안에 계셔서 그 일을 책임집니까 안 집니까? 아 당신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당신이 책임지지. 우리도 말이요 우리가 사람이 악하고 참 진실치 못할지라도 그 자기 때문에 뭐 누가 손해 봤다면 그 손해를 꼭 물어 물어 가지고 회복이 되야 되지. 회복되기 전에는 항상 빛이 진것 이로써 아 내가 들어서 저랬는데 이걸 회복해주지 못했다. 그 책임을 지는 것이 인생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오히려 책임을 집니다. 자기가 그러면 사업을 하는데 사업마다 사업 종류 그걸 하나님이 허락한 사업이 있고 허락지 않는 사업이 있다 말이오.
지금 아이들을 데리고 쓰리꾼을 이걸 연습을 시키 가지고 쓰리 사업을 해서 막 돈을 버는 그 사업을 자, 그 사업 종류가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종류요 계실 수 없는 종류요 계실 수 없는 종류지요? 그게 아니라면 다른 거는 다 할 수 있다 그 말이오? 그 사업에 종류를 바로 택할 때에 그 종류속에 하나님이 내가 택한 종류속에 하나님이 함께 할 수 있고, 그러고 난 다음에 그 동기가 바를 때에 할 수 있고 이 사업은 괜찮은데 내가 나도 해도 되나 나도 해도 되나 안되나 동기라 말이오. 고 시발이라 말이오.
그러고 난 다음에 이 목적이 뭐이냐? 또 목적이 바로 됐어. 방편이 바로됐어. 자 그러면 그 사업 안에 주님이 계시니까 주님이 계시니 그 사업안에 무엇이 계실 것이지요. (백명희) 선생님 그 사업안에 뭐이 계시는 것이지요. 주님이 계십니까? 그 사업안에 무엇이 계시지요. 또 대답해봐. 전능.
'산개가 죽은 사자보다 더 낫은기라 그 암만 명철하지 졸면 소용있는가?' 전능이 그 안에 계시지 주님이 계시니까 전능이 자기 안에 있지 또 뭐 있소? 전지가 자기 안에 있지. 또 뭐이 있소?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 안에 있지. 그 광채가 나지 있는데 이 전지 전능이 있는데 그 뭉텅이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뭉텅이가 알밤만합니까? 자기안에 이 주먹덩이 만합니까? 밭내끼만 합니까? 아무 형체는 하나도 없이 전지 전능 하나님 모든 속성적인 그것만 안에 있습니까 뭐 콩알만침이라도 뭐 덩어리가 뭐있습니까. 아니 자 전지 전능이 있는데 와서 계시는데 그러면 그것이 우리 속에 콩알만침이나 주먹덩이 만침이나 참 쌀내끼 만침이나 그 속에 형체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무 그런 것 하나 없이 있습니까? 예 아무것도 없이 있지. 아무것도 없이 전지가 자기 속에 있으니까 전지가 자기것이 되고 자기 것과 같이 그 말이오.
예. 주먹덩이 만침 암만 전지가 있지만 주먹덩이만한 것이 자기 배속에 있으면 그만침 거리낄긴데 털끝만치 거릴낄것이 없이 전지 전능이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 사업에 대해서 무지한 일이 생길까 안 생길까요? 무지한 일이 생기겠소 안 생기겠소? 안 생기지. 또 하기로 작정했으면 그 일을 어떤 것이 방해할 수 있소 없소? 방해 못하지 모든 피조물은 협조 하겠소 안하겠소? 하지.
이깁니다.
이런데 인간이 주님을 배척하고 그거 얻겠다고 이러니까 우리가 현실에서 주님을 배척하는 것은 주님과 그거와 바꾸는 것이요. 전능자가 바꾸니까 그거 뭐 전능자가 됩니까. 어떤자는 돈 한푼하고 바꾸고 어떤자는 인간 하나하고 바꿉니다.
내가 이 사람하고 떨어지면 안될터인데 내가 그 주님을 버리고 주님 버리는 게 뭐입니까.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바른 뜻을 버리는 것이 주님과 진리 버리는 것이지 버려도 이 사람은 내가 손을 잡아야 되겠다. 이러니까 고때 얄미워서, 손을 잡아. 천리 만리 내하고 멀어진다. 보자 딱 해버리니까 그 좋던 부부가 막 갈라져 가지고 서로 뒤에 거석이 되버리고 또 그렇게 친하던 친구가 탁 배신해 가지고 이리되져 버립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요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이래서 아가서에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는 뭣과 같다했습니까? 노루와 또 사슴 노루 사슴은 어떤 특성이 있습니까? 예 네. 놀래는 것 달아나는 것 노루 있습니다.
노루 저 밭에 먹을 때에 먼데서 뭐 가들 못하니까 조그만한 돌을 던지든지 그리 안하면 저게서 고함을 쪽 지릅니다. 꼭 지르면 다른 짐승은 지르거나 말거나 상관도 없소. 뒤에 쫒아와도 상관없소. 노루 이거는 고함 소리만 뒤에 들리면 그만 훅 뛰어 가지고 당장 어데까지 뭐 올라갑니까? 언제든지 그거는 성질에 산만당가 제일 절정되는 만당까지 단번에 뛰올라 가야 말지. 그 중간에 가다 말지 않습니다.
당장에 뛰기 시작하면 저 만당까지 그만 뒤올라가 버리요.
예 그것은 나의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는 주님은 노루와 사슴과도 같다. 당신에게 거리끼는 것 무슨 소리 하나 들어도 당신에게 당신이 생각지 못한 것 이외 것 노루는 이외에 무슨 소리 들리면 깜짝 노래 껑충 뛰는 것 모양으로 당신에게 맞지 않는 것, 당신이 생각지 않는 것, 당신의 뜻에 거리끼는 것, 당신의 비위에 거리끼는 것, 당신의 속성에 거리끼는 것, 그런 것이 하나만 딱 닥쳐버리면 그만 주님은 천리 만리 달아납니다. 어디로 가신지 몰라. 그걸 표현해서 나의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 사슴과 같다 그렇게 말을 하는 것.
(이용도) 목사를 마귀라고서 이렇게 그때 교회들이 매장을 시켰습니다. 매장을 시켰는데 내가 (이용도) 목사 서적을 내가 그래서 봤습니다. 보니까 그때에 산 사람이요. 그분이 말해 놓기를 '사랑하는 주님은 나를 버리고 떠나신줄 알고 부르짖고 보니까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 곁에 계시더라.' '내 곁에 계신다고 안심했더니 보면 어데로 가셨는지 없더라.' 그분이 그것을 써놨는데 그때 그 우리 나라에 사람으로서는 그런 걸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져 보지를 못했다 그 말이오.
그분의 또 말한마디 두마디 내 기억하는데 고거 기억하고 한마디는 땅에 속한 사람은 땅의 권세나 지위나 물질이나 이런 그런 걸 하나 얻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영에 속한 사람은 깨닫지 못했던 한 진리를 깨닫을 때에 천천금을 얻은 것보다 기쁘고 즐겁다. 즐거워한다.
영의 사람들은 한 진리를 깨달은 거기에서 감격의 눈물이 나오고 자기가 그 하나를 행하고 나서 감격의 눈물이 나오고 그 외에는 두려운 것도 슬픈것도 무서운 것도 아무것도 눈물 나올 일이 없어. 이렇게 자기 안에 주님을 모셔서 이랬다가 그분에게 조그만이라도 거리낌이 있으면은 그분은 벌써 달아나셨다.
왜 달아났지요? 왜 달아났지? (훈일)씨 또 조네. (훈일)씨 왜 달아났지? 허허 그래 함께 하면 진멸 받을 것이기 때문에 달아나요. 자 우리가 요것을 알고 살아야 됩니다.
성전 성전은 주님이 와서 계실 수 있도록 내가 만드는 것이 그것이 성전을 짓는 거라. 내 마음 안에 계실 수 있도록, 내 몸 안에 계실 수 있도록, 내 행동 안에 계실수 있도록, 내가 경영하는 경영 안에 계실 수 있도록, 내 욕심 안에 계실 수 있도록 계시면 모든 걸 할 수가 있다. 당신이 주장해 가지고 모든 것 하시요.
요런 말씀이 있습니다. 학개서 2장 9절에 보면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하는 이곳이 어데입니까? 이곳이 어데요. 성전 된 고것입니다.
예.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계실수 있는 자기 마음이든지, 자기 몸에 기능에든지, 자기 소원에든지, 자기 행동에든지, 사업에든지 주님이 계셔서 주님이 도와 은헤를 입어 할 수 있는 고 자리에 평강이 있다. 고게 평강이 있다. 거기에는 피조물이 아무도 해할자가 아무도 없소. 어데 평강있느냐? 하나님의 성전된 고자리에 평강있어.
지존자로 거처를 삼은 사람은 그게 내나 뭐이냐? 자기 안에 하나님이 와서 성전되어 계시면 자기는 주안에 있는거라. 주님의 보호 안에 있는거라. 자기 집에 자기가 보호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의 집을 다른 사람이 해하면은 어쩌겠습니까? 그걸 배상도 물리고 야단치고 시비하지 않습니까. 이것 모양으로 하나님의 전만되면 하나님이 우리르 보호해 우리를 지켜 우리에게 뭐이 거리끼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축복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준다 어찌 됩니까? 그런고로 하나님의 계약입니다. 이 계약을 가지고 우리가 살아야 되지 하나님의 계약이야 어찌됐든지 그저 저만 위해서 "제 집에만 빨랐도다." "판벽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그러므로 네가 하는 모든 일 많이 심어도 추수가 없고 많이 먹어도 입어도 마셔도 효력이 없고" 또 "아무리 해봤자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는 거와 같이" 그게 뭐 쌓아져야지. 마구 온갖 재앙을 내리 가지고 전부 환대하겠다.
곰팡이가 피도록했다. 썩도록 하겠다. 하나님이 대적하면 아무도 감당못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 전지 전능자가 나와 함께 하도록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시기를 원하니가? 그분에게 거리낄것만 나에게 없고 그분이 기뻐할 수 있는 일만 경영하고 하면 되는거라.
광고합니다. 오늘 장래식이 있습니다. 아홉 시까지 영구차가 이 교회로 오니까 아홉 시까지 여기에 도착한 사람은 장래식에 가서 참석할 수 있습니다. (나인숙) 권찰님 구역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