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23:42
바른 기도하는 법
1988. 1. 11. 월새벽
본문:마태복음 6장 5절∼15절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어떤 사람은 기도할 때에 큰 길거리에 앉아서 기도하기를 좋아하고 또 회당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회당과 큰 거리, 거리라 말은 길거리라 말입니다. 큰 길가.
‘길가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이렇게 덧붙힌 것은 길거리라 말이 없으면 회당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는 것이 그거 당연한 이치인데 회당에서 기도하는 것이 뭐이 나쁘겠습니까? 이 회당과 길거리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하는 그말은 고 위에 보면은 5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같이 되지 말라」 「외식하는 자와같이 되지 말라」 외식 기도하는 자 되지 말라 이 말씀을 하고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그 회당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하면은 그거야 뭐 책잡을 수가 없고 좋은 건데 아래 위에 말하기를 ‘큰 길거리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이래 놨고 또 고 위에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이래 놨고 또 그 위에는 ‘외식한다’ 이렇게 기록을 해 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할 때는 외식을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이게 전부가 다 외식이라는 말이나 또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다는 말이나 회당과 길거리에게서 기도한다는 말이나 전부가 다 외식을 말합니다.
기도는 이렇게 외식 기도가 되기 쉽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에게 인정받을려고, 회당과 길거리에서, 남 보는 데서, 이거 전부 몇 가지만 기록해 놨지마는 통틀어 말하면 외식 기도하기 쉽다 그말입니다.
외식 기도는 뭐이 외식 기도인고 하니 고 밑에 보면 기록해 놨는데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눈에는 보이지 안하고 마음의 눈으로 볼 때에 볼 수 있고 믿음으로 볼 때에 볼 수 있는, 믿음으로 볼 때 볼 수 있다 그말은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 말씀에 말씀해 놨는데 하나님이 성경 말씀에 말씀한 고대로 우리가 아는 것이 인정하는 것이 고것이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너희와 항상 같이 계신다’ `너희 마음과 뜻과 중심을 살피신다' 이라면 지금은 나를 살피고 계신다 요렇게 아는 것이 고게 성경에 말한 대로 고대로 아는 것, 고대로 인정하는 것이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데, 사람이 잘못하면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상대해서 기도하지 안하고 공연히 이 피조물인 사람을 보고서 상대하기 쉽고 또 사람을 이것 저것 생각하기 쉽습니다. 빙 눈으로 돌아가며 이것 보고 이거 기도하고 저것 보고 저거 기도하고 자꾸 이래 기도하는 그거는 괜찮은데, 아무것이를 보면서 아무것이 기도하고 아무것이 보며 아무것이를 기도하고 이렇게 기도의 제목을 이러니까 이거는 어느 일꾼을 생각하면서 그 일꾼 위해서 기도하고 또 어느 일꾼 위해서 기도하고 그것 좋습니다. 그건 기도할 제목을 택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것도 좋은데, 이라다가 ‘누구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다’ 그것도 좋고 `무슨 사건을 위해 기도해야 되겠다’ 좋고 또 ‘지하철을 위해 기도해야 된다' 그것도 좋고 이런데 이 기도하다 보면 내 기도에 정작 대상이 되는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그런 것만 가지고서 제가 입으로 기도하고 귀로 듣고 또 제 생각에 보이는 거 이거 저거 돌아다니며 어데 실컷 돌아 그거만 돌아다니며 거석하고 상대방인 주님은 잊어버리고 하는 그런 기도가 다 외식하는 기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기도가 다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 기도도 효력은 있습니다. 어떤 효력을 가졌는가? 그 기도는 가리켜서 향이라 그렇게 말했어. 향.
향은 내음새를 그 악취를 제하는 것이 향입니다. 자꾸 그런 기도도 자꾸 하면은 자기 속에 악을 도모하는 그런 것은 조금씩 제거되지마는 실제의 효력은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라 하는 것은 대화하는 것인데, 서로 대해서 말하는 그 대화인데 기도는 뭐인고? 하나님하고 둘이 마주 앉아서 대화하는 것입니다. 서로 얘기하는 사람이 상대방은 생각지 안하고 그 사람은 척 만나고 난 다음에는 그만 상대방은 잊어버려, 상대방은 잊어버리고 자꾸 이말 저말 주대면 그 사람이 무슨 사람입니까? 상대방이 내 말을 듣나 안 듣나? 내가 말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거리끼나 안 거리끼나? 내가 말하는 걸 상대방이 인정하고 있나 안 하고 있나? 내가 이렇게 말할 때에 지금 상대방이 어떻게 하나? 내가 말하면 서로 둘이 대화할 때에는 상대방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상대방의 그 심리를 생각하면서 비위를 생각하면서, 상대방이 듣든지 말든지 지금 내가 상대방에게 대해서 공격적으로나 설득적으로나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지 상대방을 자기가 공격적으로 하든지 무슨 자기 소원을 한번, 모든 포원을 한번 설명하는 것 이런 걸로 할 수도 있겠고, 또 상대방을 내가 존중히 여기면서 그의 비위와 뜻을 따라서 이렇게 할 수 있겠고, 상대방을 대해서 말을 할 때에는 한 두가지 종류로 삼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만 못한 상대, 자기보다 낮은 상대, 모든 면으로 자기만 못한 상대 자기보다 낮은 상대를 상대해 가지고서 내가 말하는 게 있고, 그럴 때는 상대방을 무시하고 내가 얼마든지 이렇게 상대방에게, 한번 만났으니까 이제 자기를 한번 소개한다든지 또 자기 한번 보여 준다든지 상대방 한번 공격해 준다든지 설득시킨다든지 이해시킨다든지 이렇게 상대방을 자기보다 이하의 사람으로, 자기로부터 그 이하의 사람으로 이렇게 보고 말하는 사람 있고, 또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을 자기보다 이렇게 높은 사람으로 큰 사람으로 존대해서 말하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대할 때에 자기보다 높은 사람에게 대해서, 자기보다 큰 사람에게 대해서, 자기보다 권세 있는 사람에게 대해서,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에게 대해서, 옳은 사람에게 대해서 대화하는 거와 같은 이런 식으로 해야 되겠습니까 자기만 못하고 어리석고 자기에게 배워야 되고 지금 지도를 받아야 되고 설득을 당해야 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그 상대로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까? 어떻습니까? 상대방을 자기 이하의 것으로 보고 해야 되겠습니까 자기 이상의 큰 것으로 보고 해야 되겠습니까? 어째야 되겠습니까? 이하의 것으로 보고 해야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보십시오. 자기보다 큰 사람을 자기 이하의 사람으로 이렇게 마구 지껄이고 있으면은 자기보다 큰 사람이 그를 대할 때에 ‘이 사람이 좀 아마 정신이 좀 바르지 못한 사람이니까 이것을 이 병을 고쳐 줘야 된다는 그런 불쌍히 여기기는 여길까 몰라도 그 사람을 상대해서 그 말을 말이라고 듣지는 안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요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요 능치 못하심이 없고 알지 못하심이 없는 분이신 줄 알고 이분은 인간으로서는 비교할 수 없는 지극히 크고 높고 완전하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이분인 것을 알고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에게 모든 것을 다 은혜로 주시기를 원하는 이분인 줄을 알고 이분을 상대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자기가 어떤 큰 기도를 하고 의로운 기도를 하고 ‘주님이여, 우리 한국 민족의 죄를 사해 주고 한국 민족이 다 의인이 되게 해 주옵소서. ’ 그런 소리야 얼마나 큰 소리요.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가 어떠한 이렇게 점점 의로운 교회가 되고 깨끗한 교회가 되게 해 주옵소서. ’ 이 얼마나 좋은 것이겠소.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주님 잊어버리고 하면 소용 없습니다. 주님은 영이시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도할 때에 그분을 마주 상대하는 것이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을 마주 상대하고 그분이 어떤 그 크신 분이라, 알지 못하심이 없는 분이라, 완전하신 분이라, 의롭고 거룩하신 분이라 하는 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 것을 알고 그분을 상대해서 서로 마주 대해 가지고서 말하는 것이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분으로 더불어 서로 대화하는 것이, 대화라 말은 서로 대할 대자 말 화자, 대해서 말하는 말을 가리켜서 대화라 이랍니다. 대화하는 것으로서 이렇게 하는 것이 기도에 제일 중요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상대방을 마주 대해 가지고 하나님을 대해 가지고서 기도하는 게 제일 중요하고,
둘째로 중요한 것은 그 상대방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지금 나를 어찌 보느냐 하는 그것을 자기가 살피는 것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그분이 나를 볼 때에 어떻게 보고 있느냐? 그분이 내게 대해서 너는 항상 방종한 사람이라 조심하지 안하고 방종한 사람이라 이렇게 보고 있으면 내가 방종을 주님 앞에 고해야 될 것입니다.
‘나는 방종한 사람인데 내가 이 앞으로는 내가 방종하지 않겠습니다. ’ 이것은 순 허영과 허욕쟁이라 이래 보고 있으면 ‘주님이여 내가 언제도 내가 허영과 허욕으로 실패했고 언제도 허영과 허욕으로 실패했고 언제는 방종으로 실패했습니다’ 그것을 낱낱이 말해야 주님의 노를 풀게 됩니다.
기도해야 될 제일 둘째로 중요한 것은 첫째는 주님을 상대해서 기도해야 되고 둘째로는 주님이 내게 대해서 섭섭하게 생각하는 그것을 다 해결을 짓고 기도해야 되지 그거는 해결짓지 안하고 밉상스럽게, 아주 섭섭함이 있는데 섭섭한 그것은 자기가 이걸 ‘내가 이렇게 이러니까 회개하겠습니다’ 하지 안하고 섭섭한 그거는 주 쳐박아 넣어 놓고 자꾸 뭐 달라 달라 하는 그것도 밉상이고, 그보다 더 밉상은 이런 자가 지금 다른 사람한테 뭐 선한 소리를 입술로 마구 해 재낍니다. 주님이 섭섭해 그러는 그런 일을 하는 자가 뭐 선한 소리를 ‘하나님이여 이것도 해 주십시오. 저것도 해 주십시오. 아무것이는 지금 배가 고프고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 밥을 주십시오. 아무것이는 그 사람이 나쁜 일하고 돌아다니니까 그것을 고쳐 주십시오. ’ 이렇게 선한 소리를 실컷 하고 있습니다.
그라면 그거는 더 밉상이오. ‘야 이놈아, 네나 그 행위를 고쳐라. 그 행위는 네가 남보다 더 앞서 하는 놈이 무슨 소리로써 하고 있느냐?’ 이럴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며칠 전에 나한테 로마서 2장 이걸 좀 설교를 해 주십시오 이렇게 해요. 그래서 내가 그 사람에게 대해서 바로 깨달았는지 안 깨달았는지 모르기는 내가 모르지마는서도 ‘이 말씀으로 말하면 뭐 설교할 그 맛보기니까 자기든지 내든지 다 깨달아 은혜받을 수 있는 것인데 뭐 깨닫지 못하는 게 있어요?’ 내가 그라고 말았습니다.
거게 보면 중요한 게 하나 있어. 그 말씀 로마서 2장을 잘못 알면 망치는 사람이 돼, 잘못 알면. 잘못 알면 자기는 살피지 안하고 다른 사람 하는 거 그거는 하나님이 노여워했어. 자기가 어떤 실수가 있어도 그 실수를 고친 자는 안 하면 또 하나님 앞에 죄가 돼. 그렇게 자기 범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 지금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하나님이 야무치게 더 심판받고 도로 정죄받는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거게 언제든지 현재 의사로서 네가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 그자를 미워하는 그 말씀을 하셨어.
이러니까, 자기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 사람에게 잘못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으면서 그것은 노를 푸는 그거는 생각지 안하고 자꾸 자기가 하나님에게 달라 하는 것도 그것도, 하나님이 섭섭해 하는 그걸 해결하지 안하고 달라고만 하는 그것도 밉상, 그보다도 이 악을 행하고 죄를 행하는 것이 무슨 선한 소리로 하나님에게 ‘이 선을 좀 하십시오. 저 선을 좀 하십시오. 저걸 좀 하십시오. 구제를 하십시오.
자선을 하십시오. 저 사람을 좀 옳게 지도하는 선도를 하십시오. ’ 이렇게 말하는 것은 더 가증스럽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기도할 때에 둘째로는 하나님을 내가 노엽게 하는 게 있느냐 하는 그것을 살피는 것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세째로는, 그 상대방의 그 기분을 자기가 깨달아야, 내가 이 말 하니까 상대방이 기분이 덜 좋아한다. 또 상대방이 내가 이 말 하니까 비웃는다. ‘이놈 날 등신으로 아나? 입술로 아무나따나 마구 지꺼려재끼구로, 내가 네 속을 환하게 들여다보고 있는데 네가 이렇게 무슨 말하는 것이 아무 책임성도 없고 조심성도 없고 아주 나를 천치 바보인 줄 알고 자꾸 입술로만 자꾸 주 대고 있네. ’ 그만 그라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효력이 있겠소? 없어. 헛일이라.
이런고로, 세째로는 주님의 비위를 맞춰서 주님을 기쁘시게, 왜? 그분은 완전자이기 때문에 그분 비위 맞추면 다 완전한 일이 돼. 그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면 다 완전한 일이 돼. 세번째는 그분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그분이 소원하시는 것, 그분이 인정하시는 것, 그분이 좋아하시는 것, 그분이 찬성하시는 것 이런 것을 자기가 기도하지 안하면 헛일이라 그거요.
이런데, 그렇게 기도하지 안하고 외식으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이렇게 회당이나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보게 남에게 들으라 봐라 남에게 봐라 하고서, 여게서 기도하는 사람 새벽으로 기도하는 거 보면은 자기는 기도하면서 그 기도되기가 쉽다 그말이오.
이 기도하면은 처음에는 이 말을 하다 보면은 자꾸 자기가 이미 익혀 가지고 있는 그거 자꾸 이렇게 재독하고 무슨 경 읽듯이 자꾸 이래 하다가 그렇게 하다 보면 자기 소리 입으로 나오고 자기 귀로 듣고 자기가 자기 들어. 자기하는 소리를 자기가 들으니까 재미나.
자기가 듣다가 나중에는 ‘내가 제법 옳은 소리 좋은 소리를 하고 있는데다른 사람이 듣도록내 기도 좀 들으십시오’ 이라면 지금 마구 기도하며 선한 소리를 막 피워댑니다. 선한 소리를 마구 피워대요. 이런 선한 말 저런 선한 말, 이런 좋은 말 막 고만 청산 유수로 그만 성자의 기도를 합니다.
성자의 기도를 하는데 그거는 성자가 성자 기도하면 좋은데 성자의 기도를 하는데 자기는 새카맣게 돼 가지고 있으면서 자꾸 성자의 기도를 자꾸 하는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은 다 무시하고 하나님은 없어져 버리고 지금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앉았어, 지금. 들으라 봐라 하고서 우리가 그런 기도를 하지 안해야 됩니다.
여기 새벽으로도 보면 참 진심으로 하나님을 상대해서 하나님을 마주 대해 가지고서 ‘내가 하나님을 뭣을 하나님을 노엽게 했느냐?’ 그것을 첫째로 자기가 깨달아서 정리하고 두번째는 ‘내가 어떻게 하면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나님의 비위에 맞게 하나님 좋게 하는 이 대화를 할까?’ 이것까지는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기도를 하다가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기도를 하다가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사람에 대해서 기도하면사람 이거 보다 보니까 주님 잊어버리게 돼. 그라면 또 외식 기도 돼.
외식 기도를 항상 삼가해야 됩니다.
마땅히 기도할 좋은 기도를 이와같이 한다 해도 좋은 기도를 하면서도 주님을 언제든지 잊어 버리지 말고 주님을 상대해. 기도라 하는 건 주님하고 대화하는 것이오. 주님하고 둘이 마주 얘기해. 마주 얘기하고 의논하는 것이라.
주님을 대우하는 것인데 주님 잊어버리고 잘못하면 저는 저 혼자 무슨 사건만 주 엮어대는 사람 있고 또 사람들 봐라 이렇게 들으라 봐라 이래 한 이런 기도 있고, ‘하,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이런 신앙 사상을 가졌고 이런 진리를 가졌습니다. 이런 포부를 가졌습니다. 이런 것을 주장하고 위하고 소원하고 가지고 있습니다. ’ 실컷 제 자랑하는 이따위짓만 하고 있으면은 주님이, 가증스럽다 말이오. 주님을 멸시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기도에는 외식 기도를 이걸 주의해야 됩니다. 외식 기도는 주님 상대하지 안하고 다른 피조물을 상대하든지 사건만 상대하든지 그런 것이, 물건만 상대하든지 그런 것이 다 외식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도할 때는 첫째는 주님을 상대하는, 상대하고 난 다음에는 둘째는 그분이 지금 성을 내 가지고 있는지 그분이 반가와하고 있는지 밉상으로 보고 있는지 그것도 생각하지 안하고 사람만 대해서 마구 대해서, 그 상대방이 내게 대해서 심히 섭섭하고 분해 가지고 있는 그 자리에다 그걸 모르고 말하면 말한 게 전부 천치 말이요 바보 말이요 다 어리석은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첫째는 주님을 내가 노엽게 하고 있느냐? 주님을 노엽게 하는 그런 것부터 말해야 돼. 말하면 섭섭해서 지금, 오니까 ‘왔나’ 이래, `왔나' 하고 고만 이래, 이래 가지고 섭섭하게 대합니다. 대하는데 오더니마는 보니까 첫째 말하기를 ‘내가 아무 요전번에 내가 어떤 일을 누구에게 무슨 일을 했는데 그것을 아마 당신이 봤는데 보고 섭섭했을 것입니다. 내가 참 잘못했습니다. ’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 또 하나님께 잘못한 거, 제가 저 혼자 못된 나쁜 행실을 이와같이 한 것 이런 걸 주욱 털어 내놓습니다. 털어 내놓으면 뭐이 돼요. 그 털어 내놓으면 주님의 노를 푸는 일이 됩니다. 주님을 노엽게 한 노를 푸는 일이 돼.
이 일을 다 풀고 나면은, 풀고 나면 가만히 있어도, 사람도 안 그렇소? 다 그라면 ‘이게 정신을 좀 차렸고 사람 소리를 하고 있고 사람 정신을 가졌구나’ 그래 놓고서는 가만히 있으면서 눈물만 툭툭 흘리고 있어 보십시오. ‘뭐하러 왔는데? 뭣이 무슨 의논을 할라고 왔어?’ 다 알거든, 저보다 위에 높은 사람들은 알거든.
사람도 아는데 주님은 다 알아요. ‘뭐 별거 뭐 없습니다. 제가 뭐 구할 게 뭐 있겠습니까? 너무 노엽게 해서 마음을 상하게 해서 그래 왔습니다. ’ 이래도 안다 말이오.
아니까, ‘그래 그만 됐어. 뭘 하러 말하러 왔어? 뭐이지?’ 이제 자꾸 오히려 줄 이가 지금 간구한다 말이요, 줄 이가 간구해.
이라면 말 안 하고도, 또 고만 쉽게 말하는 이 있고 쉽게 말 안 하고 그저 상대방의 비위를 생각하고 또 기뻐하도록 이렇게 하고 구하기를 안 하는 사람은 이쪽에서 줄 분이 말을 해 가지고서 돈을 주고 뭐이든지 줍니다. 그라고 상관도 없는데 와서 ‘뭐 주십시요 뭐 주십시오’ 상대방의 비위는 생각지 안하고 달라 하는 사람은 그거는 뒤에 싸움이 일어나든지 그리 아니면 안 줍니다. 안 줘.
이러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을 보고 상대하고 주님을 상대해 가지고서 기도해야지 주님은 상대하지도 안하고 이렇게 기도하는 것은 그거 다 외식이오. 주님 상대하지 안하고 피조물 어떤 걸 상대하고 어떤 걸 생각한다 할지라도, 만일 제일 중요한 일을 그 중요한 사건만 생각하고 주님 생각지 안하고 기도하는 건 다 외식이요, 주님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다. 주님을 상대하면서 기도하고 거게서 첫째는 주님에 노엽게 한 것을 뭐인지 그걸 노를 풀고, 둘째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세째로는 여게 말했어.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이랬어. 그러면 ‘골방에 들어가라’ 골방에 들어가면 뭐 보입니까? 골방에 들어가면 뭐이 보이요 안 보이요? 백화점이 보여? 이 학생, 안 보여? 그라면 미인 보여? 그라면 공부 잘하고 영광스러운 사람 보이요? 안 보여.
골방에 들어가라 말은 이 피조물 아무것도 보지 말라 그말이오, 피조물. 피조물 아무것도 보지 말아요.
보지 말고 이제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만나 가지고서 만나니까 그분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온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들어가 가지고서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너의 아버지께 기도하라 말은 아버지고 자기는 아들이고 부자간이기 때문에 그분의 뜻이 무엇인가 찾아서 그분의 뜻을 따라서, 대해 보니까 ‘아이구, 아버지는 나 지금 공부하지 안하고 자꾸 전자 오락에 간다고서 노여워하고 있구나’ 그러면 아버지 만나서 ‘내가 전자 오락에 가서 아버지를 노엽게 했습니다. 섭섭하게 했습니다. 내가 이제 안 가겠습니다. ’ 그게 대화라. 노를 푸는 거.
또, 내가 지금 이제부터는 저녁으로 일찍 자고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내가 동무들 따라서 놀러 돌아다니는 그런 짓 내가 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아버지하고 대화라. 인제 그렇게 차차차차 이래 대화해 나가면은 아버지의 성미와 뜻이, 아버지가 소원하는 그 소원을 내가 자꾸 찾는다 그말이오. 아버지의 소원을 찾으면서 ‘아버지 내가 이래 하겠습니다’ 이라니까 아버지의 마음이 좋겠소 안 좋겠소? 그러니까, 아버지하고 만나 가지고는 실컷 아버지 섭섭한 걸 그거 다 고쳐 버렸고 아버지 소원하시는 것 그것만 이렇게 이야기 했어. 그것만 이야기 해. 그것만 이야기 하다 보니까 아버지가 내게 줄 것은 내가 구하기 전에 ‘야, 너 지금 등록 때가 안 됐나?’ `너 지금 겨울이 오는데 겨울 오니까 추운 것을 방어하는그 뭐 뭐라 하노? 추운데 안 춥구로 하는 그런 신은 뭐라 하노? 난방화? 방한화?방한화가 사야 될 건데?’ ‘너 뭐 도빠인가 뭐인가 잠바인가 그거 없어?' 자꾸 필요한 대로 자꾸 말해 줍니다. 이래야 교제가 바로 된다 그거요.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좋게만 하면 부모가 저보다도 더 똑똑히 알고 있기 때문에 제게 필요한 걸 다 말해. ‘아, 그거 아직 괜찮습니다. ’ `야, 그거 지금 사야 되지 안 된다. 뭐이 있어야 되지. ’ 이래 가지고서 아버지의 지혜의 전부를 기울이고 능력 전부를 기울여서 제게 좋은 것 다 해 줄 거라 말이오. 고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바로 교제하는 것입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자꾸 저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아느니라’ 자꾸 와서 씨부려 대는 것, 말을 자꾸 무슨 말만 자꾸 이래 하는 것, 사람들이 서로 대화할 때에 상대방의 말은 들을 줄은 모르고 제 말만 자꾸 피워내는 그거 못쓸 사람이오. 그 사람은 남에게 있는 그 수많은 잠언은 하나도 듣지 못합니다. 뭐 들어 봤자 나만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한다는 그것이지, 그거는 아주 자기와 차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럴 수가 있지요.
‘말을 많이 하여야’ 자꾸 `주님이여 요거 줘야 됩니다' 한번 기도하고 또 두번하고 자꾸 열번 백번 천번 구하면 될 줄 알아도 그게 필요가 없어. 한번이라도 주님의 그 심리를 생각하면서 당신이 듣겠나 안 듣겠나 이것을 생각해 가지고서 당신이 원하시는 그런 것은 내가 그것은 체면 차리고 기도하지 안해도 다 들어 주시요.
「그러므로 저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이랬어.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노를 풀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만 내가 할라고 애를 쓰면 내게 필요한 그런 것은 당신이 아시고 지체하지 안하고 구하기 전에 차각차각 다 주는 이런 하나님이라. 그분이 또 부자라.
우리가 이 기도할 때에 요 방식을 깨닫고 옳은 기도를 할 때에 그 기도를 다 하나님이 다 들으십니다.
이러기에, 기도는 어떤 기도가 권위 있는 기도냐? 기도는 자기가 이래 떡 하나님만 상대해서 이렇게 늘 교제하고 이래 살 때에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해라’ 그 기도를 해라 하는 감동이 옵니다. `그 기도해야 되겠다’ 그럴 때에 그 기도하면 즉시즉시 이루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도는 하나님의 노를 먼저 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만 하는 사람이 되고, 골방에 가서 모든 이 피조물 하나도, 사건 복잡하든지 뭐이든지 ‘내게 복잡한 사건이 있으니까 이 복잡한 사건 이걸 해결해 주옵소서’ 그러면 문 닫아 버렸으면 복잡한 사건은 보이요 안 보이요? 이는 사건이야 보이지만 여기 문 닫는 거 이거는 비유로 말했기 때문에 이 문을 닫아 버리면 문 밖에 뭐 급한 일이 있는 뭐이 있는지 안 보이는 것처럼 모든 것 다 포기하라 그말이오.
모든 것 다 포기하고, 은밀한 가운에 계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내가 해.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아버지 소원이 뭐인가? 아버지 소원만 내가, 가만히 보니까 아버지가 이거 소원 ‘내가 이거 하겠습니다’ 또 `저거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소원하시는 그것만 내가 자꾸 찾아 가지고서 이와같이 하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야, 이거 위해서 기도해라. ’ 기도하라는 것 가르쳐 주시요. 고것만 기도하면은 즉시 다 들어 주시요. ‘구하기 전에 너희들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하는 이분을 믿고 기도해야 됩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