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1 23:11
믿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984. 11. 11. 주일새벽
본문 : 마태복음 5장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밣힐 뿐이니라
희생은 남을 위해서 자기가 손해보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자기가 녹아지는 것이 그것이 소금입니다. 우리를 소금으로 이렇게 비유한 것은, 우리가 희생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것이 하루면 하루, 한 시간이면 한 시간 사는 것만치 자기는 없어졌습니다. 실은 그대로 있는 줄 알아도 사는 것 만치 아무리 평안하게 살아도 그만치 없어졌고 또 고생스럽게 살아도 그만치 없어졌습니다. 물론 없어지는 그 정도가 많이 없어지고 적게 없어지는 사람, 약간 차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 없어지기는 없어집니다.
아무리 사람이 귀골로 살고 아주 부모의 보호를 받아서 잘 양육받는 그런 아이도 그 나이를 모든 몸이나 또 피부나 그런 데를 봐서 다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나이가 많고 적은 것을 뭘 어데를 봐서 아느냐? 볼 줄 몰라서 모르지 볼 줄 아는 사람은 '이 아이는 몇 달 됐겠다 몇 살 먹겠다' 압니다. 또 아무리 좀 고생스럽게 살아도, 고생스럽게 살면 사람이 조금 더 소모되어서 약간 좀 차이는 있습니다. 차이는 있어도 그것은 잘 모르는 사람 보기에 차이가 있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고생스럽게 산 아이나 호화롭게 산 아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한 살 먹는 아이에 비하면 두 살 먹는 아이는 일면으로는 보면 컸다 이라지마는 또 일면으로는 생명으로 말하면 그만침 감해져서 '이 사람은 일년 생애는 소모되었다, 일년 생명이 소모되었다' 그렇게 알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모르지마는, 아주 이렇게 애를 써서 하는 사람이 덜 늙는 거 같지마는 늙는 것이 같습니다. 볼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그 사람이 몸을 치장을 해도 한 살 혹 잘못 볼 수 있지 두 살까지 잘못 보지는 안합니다.
또 그렇게 요새는 뭐 바르고 꾸미고 이라니까. 색깔을 다른 색깔을 칠하니까 여자들은 잘 모르지마는, 남자들도 또 색깔 칠하니까 잘 몰라요. 그래도 암만 색깔을 칠해도 압니다. '아, 이거는 반은 녹고 반남아 있다. 이 거는 인간 칠십이라고 말하면 아마 그저 한, 한 십 년 이쪽 저쪽 남아 있다. 이 사람은 사오 년 이쪽 저쪽 남아 있다.' 그렇게 사람들이 다 본다고요. 저도 이 년 전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주 잘 그렇게 유지하면 한 오 년 더 살 거라 하는 그런 말 하는 말을 제가 들었습니다. 다 그래 짐작을 해요. 그러니까, 사람이라는 것은 나이를 속이지 못한다 그렇게 말합니다. 또 나이 먹고는 못 산다 그렇게도 말하고.
그러니까, 사람이 누구든지 이 세상에 생겨났으면 나는 그날부터 하나님에게 타고 난 것이 있습니다. 타고 난 거. 하나님께서 주어서 받은 자본이 있다 그 말이오. 받은 자본이. 생명의 자본도 있고. 수명의 자본도 있고, 건강의 자본도 있고, 뭐 총명이나 그런 자본도 있고 또 자기가 무슨 부모에게 유업을 받았으면, 상속받았으면 경제의 자본도 있고 다 있습니다.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받은 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것이 자꾸 소모 됩니다. 소금이 녹아지는 것처럼 소모가 됩니다. 소모 안 되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혹 재물은, 사람이 생각할 때에 나이가 많아도 자기의 재벌이라 하는 것은 소모되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자기가 그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벌써 소모 될 거라. 소모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한 오십이나 되는 사람이 여남은 살 먹는 그 사람과 같이 그렇게 모든 경제 관계를 가지고 싶어도 가지지 못합니다. 돈 있어도 가지지 못 합니다. 차차 차차 돈에 대한 사용권. 또 누리는 행락권 그런 권을 차차 차차 상실하다가 마지막에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리 독한 사람이라도 그걸 다 내어 놓고 가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떠날 때에 도적맞지 않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다 도적맞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도 나중에 얼마나 도적맞았느냐 하는 그것을, 그거 비유가 아닌데,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한 방울도 자기는 소유하지 못하고 다 세상에다가 다 내어 놓고 간 그 광경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세상에서 인생이 소유하는 그 소유관에 대한 그 소유관이 아주 틀렸다는 것을 생각하고 자기 동생들에게 소유관 가르쳐 준게 잘못 가르쳐 줬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남은 형제들에게 '소유관이 이렇게 바꾸어질 줄 나는 몰랐다.' 이러니 그 소식을 전해 달라고. 그라면 그들이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안하고. 나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안하고 이곳에 오지 안할 것이라고 말했지마는 다시 한 번 간 사람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는 못 온다 이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사로를 보내 달라 하지만 나사로가 거기에 못 간다 지금 갈 수가 없다 하는 것을 아브라함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죽으면 못 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음부에 가서 대기하고 있고 믿는 사람은 낙원에 가서 대기하고 있고, 안 믿는 사람은 음부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공심판을 받기 위해서 그때 비로소 살아납니다. 육은 살아나고 영과 마음은 영과 혼은 음부에 가서 있습니다. 또 믿는 사람은 잘 믿었든지 못 믿었든지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기 위해서 낙원에 가서 영과 혼, 영과 마음은 거기에 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라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먼저 낙인에 가 있는 사람들이 영과 혼, 영과 마음, 마음이나 혼이나 같은 말입니다. 영과 마음이 같이 와 가지고 자기가졌던 그 몸을 다시 입습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 그러면, 늙고 죽지 않는 그런 병들지 않는 몸으로 부활을, 부활을 받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부활을 시켜줍니다. 자기 몸이 불에 태워서 그 원소가 다 공중에 다 날려서 연기로 나가 가지고 원소가 됐든지, 땅속에 묻혀서 흙이 됐든지, 뭐 바다에 죽어서 모든 고기, 바다에 있는 짐승들의 다 살이 되고 그것을 또 사람이 먹어 사람 살이 되고 뭐 어떻게 됐든지 간에 자기의 몸은 다 부활 시켜서 택자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면 부활하고 나면 그 다음에, 이게 첫째 부활인데 첫째 부활 하고 나면 나머지기 사람은 다음 부활 받습니다. 다음 부활 받는데 그 부활은 무슨 부활인고,하니 사망의 부활입니다. 사망의 부활을 받게 됩니다. 심판의 부활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공심판 받기 위해서 부활하고 영원한 사망을 받기 위해서 사망할 그 부활을 받게 됩니다. 그전에는 못 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는 신불신자가 다 영만 떠나는게 아니고 마음도 떠납니다. 믿는 사람은 산 영과 산 마음이 떠나고 불신자들은 죽은 영과 죽은 마음이 떠납니다. 죽은 마음은 무슨 마음을 말하는고 하니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상관이 없는 그 마음이 죽은 마음이오. 우리 마음도, 우리 마음도 몸도 이 세 가지의 상관 없는 그 마음으로 살았으면 한 시간 살았든지 열 시간 살았든지 산 거는 다 둘째 사망으로 다 음부에 가서 있지 낙원에 가 있지를 못합니다. 죽은 영은 원죄와 본죄로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원죄와 본죄 문제가 해결되고 또 진리와 영감으로 그가 영생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춰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생하니까 죽지 안하고, 진리와 영감으로 살지 안하면 영생하지 안했기 때문에 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낙원에 자는데, 산 영, 하나님과 연결이 된,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연결된 그 산 영과 산 마음이 낙원에 가는데 마음의 기능이 아주 장성한 기능으로 가는 사람이 있고, 그저 살아나기는 살아 났지마는 자라나지는 못한 그런 아주 갓난 어린 아이의 같은 그런 기능으로, 마음의 기능이 그런 기능으로 가서 머물고 있는 사람 있습니다. 중생된 영은 꼭 같지마는 그 영이 다른 것은 어떤 사람의 영은 그 영이 자기의 마음과 몸을 아주 전적 백 프로 지배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면, 지배했기 때문에 그 산 영에게 지배 받은 그 마음과 몸은 다 영생으로 부활 할 수 있는 영생이 다 돼 버렸고, 어떤 영은 살기는 꼭 살고 하나님과 관계는 같이 맺어 가지고 있지마는 자기의 도구요 자기의 소유인 마음과 몸을 살리지 못한 그런 영이 있습니다. 살리지 못한 그런 영이 있으니까 그런 영은 아주 사람이 같은 사람이지마는 마음의 몸의 기능을 못 가진 사람과 가진 사람의 가치가 다른 것처럼 그렇게 그 가치가 다릅니다.
이래서,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한 번 죽으면 다시 오지 못한다는 것을 지금 이 기회에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 오지, 뭐 제사 지내면 온다 하는 그거는 다 마귀가 와서 그렇게 거짓말하는 것이지, 마치 사울 왕이 사무엘을 부를 때에 점쟁이가 사무엘을 불러 올리니까 사무엘이, 아주 나이가 허연 백발되는 그런 사무엘의 얼굴을 가지고서 그렇게 나타나니까 믿는 사람들도 '사무엘이 나왔는데 그 사무엘이 참 사무엘인가 뭐인가' 이래 가지고서 그런 것을 성경 난해절이라 이래 가지고, 성경 해석하기가 어려운 절수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있습니다. 그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모든 걸 봐도 얼마든지 알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이 살아서도 악령의 지배를 받지 안했고 악령에게 호출받지 안했습니다. 그런데 세상 떴다고 점쟁이가 호출한다고 나올 수 있는 그런 거 아니고, 사람은 가면 다시 못 옵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라야 오지 그 전에는 못 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택한 자나 불택자나타고 날 때에 하나님 앞에서 다 자본을 받아 가지고 나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명으로 말하면 한 달 수명 받아 가지고 나온 사람.
또 백 아홉살 먹는 사람이 있다든가 백 삼십 먹은 사람이 있다든가 또 그래 수명 받아 가지고 나온 사람, 옛날에는 구백여 세까지 생명을 받아 나온 사람, 오십 받은 사람, 사십 받은 사람, 그러기 때문에 어떤 환자를 위해서 기도할 때에, 요새 나는 그 환자를 위해서 늘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거 참 쓸모 있는 일군이 되자마자 그만 병들어 가지고서 이와 같이 일을 못 하게 되니까 이거 안타까우니 그 병을 낫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하면서 '만일 주님이 정한 생명이 남아 있거든 어서 강건케 해 가지고 일을 하다 가게 하시고, 만일 생명이 없거들랑 얼마 남지 안했으면 그 사람에게 고통 중에서 세상 미련을 다 끊고 고통으로 인해서 땅에 있는 미혹을 다 끊고 하늘나라만 바라보고 있다가 갈 수 있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어떤 교역자를 위해서 제가 그렇게 매일 잊지 않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 받은 자본이 있습니다. 받은 자본이, 경제도 다 딱 정해 가지고 있고, 건강도 정해 가지고 있고. 또 수명도 정해 가지고 있습니다. 정해 가지고 있는데, 정해 가지고 있는 거기에다가, 그러면, 정해 가지고 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관심을 안 가져도 될 거 아닌가? 정한 그것 정해 가지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대로 정해 가지고 있고, 또 그만한 그것도 하나님이. 너는 수명을 어떻게 어떻게 잘 관리를 해 가지고, 관리를 해 가지고 네가 기한까지 채우도록 하고 네가 관리를 잘못해 가지고 기한 전에 생명이 끊어지지 안하도록 해라. 또 네가 경제도 딱 정한 액수가 있지마는 네가 관리를 잘못해 가지고 네가 하나님의 양 이하로 떨어져 가지고 네가 곤고함을 받는 것도 있고, 또 그 양을 그대로 잘 유지하는 사람도 있고,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의 생활도 조심을 해서 위생을 해라 주의를 해라 하는 그것이 다 자연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밥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하는데. '뭐 하나님이 계시니까 밥 안 먹어도 하나님의 권능이면 되지 밥 먹을게 뭐 있나? 밥 안 먹어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능력은 생명 그걸 유지 못 하겠는가?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자연 법칙을 무시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벌써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먹으면 그 사람이 반드시 죄값으로 제가 고통을 당해서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사람이라는 것은 벌써 날 때에 타고 난 자본이 있는데 그 자본은 하나님이 정한 기간까지 그것이 정한 순서대로 다 녹아져서 마지막에는 몸과 생명은 다 죽어져서 끝을 마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 녹는 자가 없습니다. 뭐 아주 아무리 위생을 잘해도 하나님이 징한 그 양 이상을 가지 못하고, 아무리 또 알뜰하고 애를 써도 하나님이 정한 양 이상을 경제나 건강이나 모든 것을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정한 양 이상 못 가고 정한 양까지는 그 사람이 애를 쓰고 조심을 하고 하면은 그렇게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갈 수 있는데, 정한 기한 넘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정함이 되면 그 사람은 떨어지고 만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이러나 저러나 자기의 타고 난,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 나온 자기의 자본 그것은 다 마지막은 완전히 소멸되고 나서 그래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다 소멸됩니다. 안 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소멸되는데, 소멸되는데 이 소멸을 마음이나 생각이나 정신이나 욕심이나 몸뚱이나 그 전부가 다 돈으로 소멸되는 사람 있습니다. 마음에도 '돈' 이래 해 가지고 돈에 대해서 연구하고, 돈에 대해서 갈증 가지고 돈으로 소멸되는 사람.
또 권세로 소멸되는 사람. 뭐 돈이라면 기술을 배워서 내가 기술을 배워야 내가 월급을 잘 받겠고, 기술을 배워야 내가 취직을 잘 하겠고, 기술을 많이 배워야 되겠다 해서 하는 그것도, 기술 배우는 것도 뭐 학교 공부하는 것도 전부 돈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가 '큰 아들은 공부를 어데 갔느냐?' '의과를 갔습니다.' 미국에서 제일 좋은 의과를 갔기 때문에 벌써 거기에서 먹고 입고 공부하고 한달에 입학 하던 질로 윌급이 뭐 얼마라든가, '얼마 나옵니다.' '둘째 아들은 또 어데, 어데를 보낼려느냐?' '둘째 아들도 의과를 가야 될 터인데' 그래서 '네가 목사지마는 소원이 순전히 땅의 소원이고 돈에 대해서 포원이 진 사람이로구나.
너는 유물주의다. 그러니까 네가 입으로는 뭐라 하지마는 실상은 물질이 제일이라 물질이 제일이라 이래 가지고서 물질 욕망에서 너는 살고 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그거 다 돈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사람이 권세로 소멸되는 사람, 돈으로 소멸되는 사람 또 지위로 소멸되는 사람, 행락으로 소멸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 칭찬 받는 영광으로 소멸되는 사람. 노벨상 받은 그런 사람들은 다 영광으로 소멸된 사람인데, 그것을 얻기 위해서 밤낮으로 마음도, 생각도, 정신도, 총명도 육체의 힘도 전부 거기에 다 들여서 그것으로 인해서 늙어졌다 그 말이오. 소멸이 됐다 말이오.
그런 것은, 전부 그것을 가리켜서 '깨어 있지 않으면 도적맞는다' 깨어 있다는 말을 언젠가 한번 증거를 했습니다. 깨어 있으면 도적맞지 안하는데 깨어 있는 것이 뭐이냐? 내나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로 우리가 살아 났기 때문에, 이 세 가지로 살아났는고로 이 세 가지 힘으로 움직이는 것이 깬 생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깨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을 다 도적맞지 안하고 그것이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으로, 없어질 것이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것으로, 죽을 것이 영생으로 이렇게 전부 되어지지마는 그렇지 안한 것은 다 절단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사람이 다른 것으로 살면 다 그거는 도적맞는 것이 된다. 하나님 앞에 받은 그 자본이 다른 것을 위해서 소모되면 그것은 돈 위해서 소모됐으니까, 하루를 소모하고 돈을 얼마를 모으고 얼마 모으고 했으니까. 그 사람은 '돈을 모았으니까 그날 소모는 참 아주 잘 수입을 하고 그걸 잘 사용해 가지고 큰 유익을 봤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지마는 그것도 다 마귀에게 속아 하는 일이요 속는 일입니다. 아무리 그란다고 해도 하나님 이 한정해 놓은 경제의 한제를 넘어가지 못합니다. 또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리대로, 영감대로. 주의 피공로를 벗지 안하고 살아도 하나님이 한계 정해 놓은 그 한계의 재량은, 물질량은 그것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아는 사람은 염려가 없습니다. 배짱 놓고 살고 있습니다. 무식한 사람 배짱이 아니고 알므로 강하고 담대하게,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평안하게 삽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자본을 이런 거 저런거 그런 걸로 다 소멸되는 사람은 그 사람은 도적맞는 사람이요 그것은 다 죽는 생활이라. 하루 살았으면 하루 죽었고 이틀 살았으면 이틀 죽었고 사흘 살았으면 사흘 죽었고 십 년 살았으면 십 년 죽고 이렇게 죽는 생활이지마는 요 하루 생활이든지 일 년 생활이든지 사는 것이 소금으로 녹아지는 요 비유대로,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와 성신의 감화 감동과 진리로 우리가 살아난 자이기 때문에 요렇게 요 세 가지로. 세 가지로 살아서, 세 가지로 하루 살면, 요 세 가저로 하루 살면 하루 살고 하루에 해당된 자본은 없어졌습니다. 자본은 없어졌습니다. 없어지지 않습니까? 암만 주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살아도 고 자본이 하루 살았으면 하루 살은 거만침은 고것이 소모됐습니다.
소모됐는데 소모된 그것이 어데로 갔느냐? 소모된 것이 다른데 배어 들어가서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하루를 살아서 하루가 소모*1으면 대속의 공로가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 속에 들어 가서 다른 사람돌 속에 대속의 공로로 그 속에 들어가 있고, 영감으로 그 속에 들어가 있고. 진리로 그 속에 들어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그렇게 소 모된 고것은 다 그것이 없어지지 아니하고 자기에게는 영생이 됐고 자기에게는 없어지지 안하고 영생이 됐고.
다른 사람에게는 뭐이 됐느냐?다른 사람에게는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다른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있다. 들어가서 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희생이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함이 됐다 그 말입니다. 처음에 공과에는 희생이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해석하기를, 희생이라고 하니까 내가 공과를 가르치는 걸 보니까 희생이라 하는 것이 무슨 남을 위하는 것으로 그렇게만 생각하고 자기 위함은 하닌 것으로 생각하는데, 첫째는 자기를 위함이요 다음에는 다른 사람도 위함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희생이라는 그런 말을 붙여서 말하는 것이지 실은 자기 생활한 것입니다. 자기 생활. 그것이 영생하는 것이오. 대속의 공로로, 영감으로, 진리로 하루의 그 받은 자본이 하루에 해당되 자본이 그것이 소멸됐으면. 소실이 됐으면, 소모가 됐으면. 소모됐다 말이오 그것이 사라져서 없어졌다 말이오. 소모가 돼서, 소모가 됐으면 이제 그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고 그 능력은, 내가 세 가지 능력으로 살아났는데 말이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능력으로 살아났고, 영감의 능력으로 살아났고, 진리의 능력으로 살아났는데 네가 살아난 그 능력은 어데 가 있느냐? 형제 속에 능력으로 들어가 있다 말이오. 형제 속에 능력으로 들어 가 있고, 그러면 내게는? 나는 그것이 이 심신이 죽지 안하고 영생하는 영생이 되어져 버렸고, 영생이 되어졌고, 이러니까, 자기에게는 영생이요 다른 사람에게는 영생을 할 수 있는 생명으로 투자하게 됐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생명으로 투자했는데 그 생명의 근원은, 공로라든지 또 영감이라든지 진리라든지 그 세 가지의 능력의 자체는 하나님의 것이오. 하나님의 것이오.
나는 거기에서 운반한 수고를 가졌으니까 운반한 수고의 상은 내 상이라, 그거요, 내 상. 그러니까, 그것이 우리는 뭐이냐? 전달한, 전달한 그라면 영감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자체야 내게 와 있던 것이 내가 그렇게 함으로 상대방에게 건너가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에게 배어 들어가서 거기 충만하게 되어졌으니까 내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내 영감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남의 속에 들어갔으니까, 남의 속에 들어갔으니 남의 속에 있는 것이 내것이 뭐 있습니까? 내 것이, 내 것이 다른 사람 속에 무엇이 내 것이 다른 사람 속에 뭐이 가 있습니까? 다른 사람 속에 내것이 뭐이 가 있지요? 자, OOO 집사님 한번 말해 봐. 그런데, 그것은 나를 살린 능력이요, 내나 신적 요소입니다. 신적 요소 인제 거기 건너갔는데, 그랬으니까 내 모가치는 뭐이 내 모가치인고 하니 그들에게 공로와 영감과 진리를 넣어 준, 운반해 준 운반의, 운반 운반 임금을 받아야 된다 말이오. 운반 임금. 내나 운반 삯을 받아야 돼요.
운반 삯을 받는데, 그것을 뭐이라라고 할까요? 삯이라고 할까요 공로라고 할까요? 뭐이라야 되겠소? 녜? 공로, 공로. 내 공로가 그 가운데 들어 가지고 있어, 내 공로가. 그 사람 살아난 데에 내 공로가 들어 가지고 있다 그 말이오.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이렇게 대속하신, 대속하신 대속은 영감과 진리로 인해서 됐는데 우리에게 공로 상입니다. 우리에게 공로를 베풀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예수님이 대형, 대행, 대화친한 그 공로로 인해서 우리가 이 세 가지 요소를 받았다 그 말이오. 세 가지 요소를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자기의 이 세 가지로 살아난 이 세 가지를 버리지 안하고 이 세 가지로 심신이 살아서 심신이 녹아졌으면, 심신이 소모 됐으면, 심신이 이것이 없어졌으면. 그러면 그것은 다 영생이오. 내게는 영생이요. 또 모든 이웃에게 대해서는 양식을 먹여 준 공로요. 내가 양식은 아니지만 양식을 먹여 줬다 말이오 운반해서, 생명, 나는 생명은 아니지만 생명을 운반해 줬다 그거요. 알겠습니까 고거 잘 구별있게 들어요. 생명 운반해 줬는데, 그러면 그 사람에게 대해서 품삯을 얼마나 주느냐? 품삯을 얼마나 주느냐? 품삯을 이제 이 사람은 참 아주 등용 가치가 있다 해 가지고서 그 삯으로 등용을 합니다. 등용해. 등용하는데 와 등용하는가? 무궁세계 가 가지고서도, 그 세 가지 해요. 무궁세계 가 가지고도 그 세 가지 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세 가지에게 숙달이 됐다 말이오. 이 세 가지를 연습해서 숙달이 됐어. 이러니까, 이 세 가지를 할라 하니까 그 사람에게 맡길 수밖에 없어. 그 사람에게 이 세 가지 일 하도록 말깁니다.
그러니까 참으로 영원히 영원히 하나님과 피조물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 됐다 그 말이오. 쓸데없어의 반대 쓸모 있는 사람 됐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그렇게 산 사람이 무슨 댓가를 받았느냐? 점점, 처음에는 부산 시장 하다가 그 다음에는 중앙청에 올라가 가지고서 장관. 외무부 장관이나 무슨 장관 하다가 그 다음에는 내무부 장관이 됩니다. 요새는 뭐 국무 총리라 합니까? 예? 그전에는 내무부 장관이라 했는데 이제는 국무총리, 자꾸 들어간다 말이오. 그속에 더 들어가면 뭐 있습니까? 예? 그 속에 더 들어가면 뭐 있소? 뭐 있어? 대통령 있지 뭐, 대통령.
그래 '쓸데없어 밖에 버리워' '밖에 버리워' 했는데 안으로 자꾸 끌어 들입니다. 점점 더 중요한 데에, 더 요긴한 데에, 더 필요한 데에 더 가치 있는 데에, 더 어려운, 하기 참 감당하기 어려운 데에, 시험치면 뚝뚝 떨어지는데 다 시험에 합격된다 말이오. 지금이 다 우리가 시험치고 있는 것이라 그거요. 이래 가지고 점점 안으로 영접함을 받지. 또 그 다음에는 댓가를 무슨 댓가를 받느냐 하면은. 사람에게 밟힐 뿐인데 사람에게 밟힐 뿐인 반대는 뭐입니까? 사람들에게 존대받을 뿐이라. 존대뿐이라. 밟히는 거 반대로 존대함을 받는 것
우리가 어짜든지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그런 것도 다 좋지마는 이 세 가지 생활로 해야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오늘 주일날 아침이니까 심방 가는 데에도 심방하기 위해서 심방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을 끌어오기 위해서 끌어 오는 사람 있고, 그 사람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대속의 공로로 살았기 때문에 대속의 공로의 생활을 하느라고. 대속의 공로 받은 그 공로 생활 한다고. 그 공로 받은 공로 생활 한다고, 죄 안 지을라고, 무죄로 살라고, 무죄로 사는 것은 내가 가면 심방하면 살 터인데 안 가면은 그 사람 내가 어겨서 죽는 것이니까 내가 죄 짓지 안하고. 하나님의 뜻에 위반되지 안할라고,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할라고, 하나님에게 피동될라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결합해서 안 떨어지고 결합할라고, 또 성신의 감화를 소멸하지 안하고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살라고, 또 진리에 위반되지 않게 살라고, 이러니까, 그 사람은 심방을 가는데, '네가, 네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아, 나 심방하고 있습니다.' 또 한 사람에게 '네가 뭘 하고 있느냐?' '나는 지금 내 생활 내가 하고 있습니다.' 또 말하기를 '너는 뭐하고 있느냐?' 나는 지금 진리로, 진리로 움직이고, 진리로 인해서 움직이고, 진리로 인해서, 진리에 피동되어서 진리로 움직인다. 진리에 피동도 됐고 진리대로 움직인다. 나는 진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진리의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영감에 피동돼 가지고 내가 영감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영감 행동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를 입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사죄 생활 하고 있습니다. 또 나는 칭의 생활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된 지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셋이 하나라 그거요. 셋이 하나라고 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이렇게 가면, 이렇게 가면 그사람이 가는데 몇 가지가 같이 갑니까? 그 사람 마음, 고기 덩어리 영 이 세 가지 합해서 사람인데 그 사람하고 사람 외에 무엇이 같이 갑니까? 자, 무엇이 같이 가지요? 예? 예? 진리가 같이 가지요. 진리가 같이 갑니다. 또 무엇이 같이 갑니까? 예? 영감이 또 같이 갑니다. 또 무엇이 같이 갑니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같이 갑니다. 이런데, 그 사람하고 이 세가지가 같이 간다 말이오. 그 사람이 가는 것이. 가는, 가는 힘이 무슨 힘이냐? 이 세 가지 힘이오. 또 그렇게 움직인 동기가 뭐이냐? 이 세가지로 인해서 움직였소. 또 그 사람의 목적이 뭐이냐 하면 이 세 가지의 목적이오. 또 그 사람이가 가지고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을 만나 가지고서 말하는데 뭘로 말합니까?이세 가 지가 말합니다. 이 세 가지가 말합니다. 이 세 가지로 말합니다. 이러니까, 이 세 가지가 이 사람으로 통해서, 이 사람이 아침에 뛰고 가 가지고 이라니까 아침에, 자, 이거 소멸 됐소 안 됐소? 이 세 가지로 소멸됐소 안 됐소? 소멸됐소 안 됐소? 이 세 가지로 소멸됐지. 이 세 가지로 벌써 한 두 서너 시간 뛰고 나니까 땀이 버쩍 나는 것이 이 세 가지로 소멸됐어. 소멸됐으면은, 소멸됐는데, 이 세 가지로 소멸됐는데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 이 세 가지로 소멸됐는데 이 세 가지는 어데 갔습니까 소멸됐으면? 이 세 가지로 소멸됐으니까 세 가지는 어데로 갔지요? 세 가지는 소금같이 배어 들어갔다 말이오. 다른 사람에게 배어 들어가 버렸어. 내가 두 시간이고 한 시간이고 이렇게, 이렇게 해서 소멸됨으로써 그것이 그 학생 속에 진리가 스며들어 버렸고 영감이 스며들어 버렸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스며들어 버렸으니까 그 사람 속에서, 그 사람이 오는데 오는데 내 말에 따라서 오는 것같이 보이지마는 그 속에 내 소멸로 말미암아 속에 들어간 이 세 가지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를 합니다. 주의 피공로가 역사하고, 영감이 역사하고, 진리가 역사하고, 아무리 처음 믿는 사람이라도 말이지요. 역사하니까 어짠지 제가 갈 마음이 생겼어. '아, 선생님 나 오늘, 오늘 가겠습니다. 오늘 내가 이거 이거 한다고 낙심하고 안 갔지마는 갈랍니다.' 그 마음이 가는데 껍데기 사람 보기에는 그 반사 선생님이 권면을 해서 가는 것 같지마는 그 반사 선생님의 말에 끌려 옵니까 반사 선생님의 그와 같이 말하는 데에 말할 때 반사 선생님이 그만침 소모가 됐으니까 소모된 그게 녹아진게 돼서 반사 선생님을 통하여서 이 세 가지가 그속에 들어가서 역사함으로 오게 됩니까? 이러니까, 겉으머리에는 그 사람의 권면으로 되는 거 같지마는 그 속에는 권면을 통하여 제가 녹아지는 것 희생하는 것만침 그 속에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의 그 능력이 그 속에 스며들어 가지고서 그러면 그 힘으로 오게 됩니다. 그 힘으로 오게 되고, 껍 데기에는, 사람 보기에는 사람의 힘으로, 오는 것같고 속에는 그 속의 그 능력으로 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심방을 갈 때에 이 세 가지는 다 빼 버려 버리고, 세 가지를 잊어 버리고, 세 가지 힘으로 능력으로 가지 안하고 '내가 반사인데 아무래도 내가 이번에, 이번에 일등을 해야 될 터인데, 이번에는 또 학생이 떨어지지 안해야 될 터인데' 그렇게 가는 그것이, 가는 그것이. 고것이 진리에 합당한 마음도 되고 영감에 합당한 마음도 되고 대속에 합당한 마음도 되기는 됩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로 인해서 피동되기는 피동된 움직임은 움직임이지마는 이 세 가지를 잊어 버렸다 그 말이오.
잊어 버렸으면, 마치 자동차가 지나갈 때에 지나가고 나니까 먼지가 확 일어납니다. 먼지가 확 일어나는데, 그 사람이 심방을 가면서 이 세 가지는 잊어 버리고, '나는 대속 받은 자라. 대속을 받았기에, 주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나를 이 세 가지 대속을 주셨기 때문에 나도 죽기까지 하여서 주님의 심부름을 해야 되겠고, 주님의 원하시는 일을 해야 되고, 명령을 지켜야 되겠고, 죽기까지 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해야 되겠다' 요거는 예수님의 대속의 피에 팔린 것을 인해서 그로 인해서 전한다 그 말이오. 또 성령님이 '네가 어짜든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지고 어떻게 해라' 하는 영감 받아 가지고서, 성신의 감화가 '내가 지금 게을 부리고 있는 것이 감화의 순종이가? 성신의 감화가 네게 뭐라 하노?' 가만히 생각하면 성신의 감화가 자기를 지금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 감동으로. 또 자기가 깨달은 진리로 이렇게 해 가지고서 지금 감당을 합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로 인해서, 이 세 가지의 사립이 돼 가지고, 이 세 가지 사람이 돼 가지고서 세 가지 힘으로 영감을 생각하니 안 갈 수 없고, 진리를 생각하니 안 갈 수 없고,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하니 안 갈 수 없고, 그 껍데기는 사람 같지마는 그 속에는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움직인다 말이오. 이 세 가지 능력으로, 감화의 능력으로 움직이고, 자기가 진리를 깨달은 이 깨달음의, 진리를 깨달음의 능력으로 움직이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새김질하니까 대속의 공로로 움직이고, 껍데기는 그 반사 선생님이지마는 속에는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움직여서 가서 말하는 사람이 있고, 이 세 가지의 능력을 생각해 가지고 세 가지 능력으로 출발은 하기는 했는데 나서니까 삥 돌면서 열심히 합니다. 하기는 하는데 그만 이 세 가지 대속의 사람도 아니고 자기는 대속 벗어 버렸고, 영감 벗어 버렸고, 진리 벗어 버렸고 이 세 가지 잊어 버리고 지금 일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걸로 말하면. 자, 그것이 자동차가 달리는데 달려는 자동차로 그것을 봐야 되겠소 자동차가 달리니까 그 다음에 일어나는 먼지로 봐야 되겠습니까? 뭐와 같습니까? 그 사람 뭐와 같지요? 자, 자동차 먼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먼지로 비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 분들, 그러면, 자동차로 생각할 수 있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먼지 같은 거라 먼지 같은 거. 자동차가 가니까 자동차로 인해서 먼지가 푹 일어나기는 나지만 자동차는 벌써 지나가 버렸다 그 말이오. 먼지가 무슨 일 하겠어. 일하기는? 먼지로 인해서 일어나기는 일어났지마는, 이 세 가지 대속으로 인해서 시작은 하기는 했지마는 가다 그만 잊어 버렸다 말이오. 가다 그만 잊어 버려. 자동차는 잊어 버리고 지금 그때에 처음에 나전 그것 가지고서 하기 때문에 안 된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먼지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비유컨댄 그와 같다 그거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출발할 때도 이 세 가지 힘으로 출발하고, 또 하나 하나 만날 때도 이 세 가지 힘으로 만나고, 또 돌아을 때까지 이 세 가지 힘으로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한 시간 심방했으면 한 시간 녹아진 그것은 염려할 것 없이 그 녹아짐으로 인해서 세 가지 능력은 그 학생들에게 들어갔다 말이오.
들어갔으면, 그 능력이 역사하니까 절대로 그 능력은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그게 암만 무신론자라도 반드시 내가, 무신론자라도 이 세 가지 능력으로 내가 전도하고 그에게. 또 그에게, 무신론자에게 두드려 맞았습니다. 날 두드려서 맞았으니까 두드려 맞아서 그만 죽었다 그 말이오. 죽었으면 내게 있는 자본 이 전부 이 세 가지 능력으로 다 없어져 버리고. 없어지면 그게 어디 갔습니까? 날 죽인 무신론자 속에 들어갔기 때문에 무신론 세계는 절단이 나고 만다 말이오. 무신론 세계는 완전히 이 세 가지로 변화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방법이 이 결과를 보이기도 하고. 인생 살이가 이렇게 세 가지로 천해진다, 인생 살이가 이렇게 세 가지로 천해진다. 그런데 이 세 가지로 존귀해진다. 그러면, 사람은 이러나 저러나 받은 자본에서 다 소멸이 되고 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어떻든지 다 소멸된다, 다 소실되게 된다. 없어지게 된다. 소멀된다. 소멸 되는데, 세 가지로 소멸되면은, 이 세 가지 세 가지 소금의 맛, 맛으로 비유한 것, 이거 다른 것에는 맛 짜운 것이 없습니다. 여기 특수한 그런 요소 아닙니까? 그러면, 이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소모 되면 세 가지 존영한 성공을 하게 되고. 결과를 맺게 되고, 이 세 가지 없이 소멸되면, 기독자가 소멸되면 쓸모 없는 자 되고 밖에 버림 되어지고 밟힐 뿐이니라.
이러니까, 인생은 이라든지 저라든지 다 소모된다. 안 될 수가 없다. 늙어진다.
그만침 소모된다. 되는데. 이 세 가지로 소멸이 되면 그 결과가 좋은 세 가지 결과가 맺고, 이 세 가지로 소멸되지 안하고 그저 병 들어서 그어서. 또 돈 때문에, 지위 때문에. 권세 때문에, 의식주 때문에 그 사람이 녹아진 것은 그 결과가 다 이 세 가지 결과밖에 못 맺는다. 세상에서는 쓸모 있는 거 같지마는, 홍포 입은 부자가 얼마나 쓸모 있었겠소? 그 사람은 딱 떠나고 나니까 영원한 세계에 가서는 하나도 쓸모 없는 사람이라. 아무 쓸모가 없어. 아무 데도 쓸모 없어. 다 밖에 버리워서 다 천대를 하고 버려 가지고 밟힌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인생은 소모한다는 소멸된다는 거. 소멸되는데 이렇게 소멸 되나 저렇게 소멸되나? 어쨌든지 소멸되기는 되는 것인데 잘 소멸되면 그게 이 세 가지 대 성공을 하고 잘못 소멸되면 이 세 가지로서 대 실패해서 망하게 된다.
그러면, 소멸되면 무엇으로 소멸돼야 가치가 있느냐? 이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로 소멸되면 이렇게 가치가 있다. 그 세 가지 외에 세 가지 외에 돈으로 소멸됐든지, 노벨상을 받아서 소멸됐든지 박사 될라고 소멸됐든지, 대통령 될라고 소멸됐든지, 부자 될라고 소멸됐든저 사업자 될라고 소멸됐든지 뭐 어떻게 소멸됐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 그 결과의 대우는 쓸모 없는 자로서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게 된다 그런데, 왜 그것을 희생이라고 말했느냐? 다른 것은 그렇게 하면은 전부 그것이 절 위해서, 세상 사람들은 전부 절 위해 사는게 되어지지마는 이것은 이 세 가지로만 살면 절 위해서 산 것이 아니고 전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산 생활도 됐고 또 저도 위한 생활도 됐고, 이러니까, 다른 사람을 위한 생활이 됐기 때문에 희생이라. 안 믿는 사람은 뭐 노벨상 받은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줬다 하지마는 그것도 실은 '나는 노벨상을 받은 내라' 하고서 자기 위해서, 자기 위하는 방편이 틀렸지 결국은 따져 들어가서 분석하면 전부 자기 위하는 고거뿐이라 그 말이오.
그러나, 이것은 이래 하면은 남을 위함이 됐고 자기 위함이 됐고 다 위함이 됐다. 자기 위함이 됐다는 그 면으로 생각하면 자기 생활 자기 한 것이고 자기 일 자기가 한 것이고, 남을 위한 결과를 맺은 걸 생각하면 남을 위해서 희생이 되어진 것이고.
이러니까, 요것을, 소금으로 비유한 간은 뭐이냐? 세 가지 이 능력이다. 우리가 세 가지 능력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렇지 안해요? 고거 잘 이해 안 되는데.
이 사람이 그날 다른 데에 직장 생활에서 그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고 있으면 '너 뭐 하고 있노?' '아, 여기 지금 물건 만들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너 뭐 하고 있노?' '네, 여기에서 지금 진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진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 손으로 지금 뭐 물건을 만들며 진리 지켜? 물건을 만드는 여기, 만드는 여기에서 진리를 지키는, 이 물건 만드는 여기에서 진리를 지킵니다.
물건 만드는 이것이, 내가 딱 이래 가지고 았으면 진리를 못 시킬 건데 물건 만드는 이 일을 하는 여기에서 진리를 지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거기에서 진리 지켜. 자, 진리 지키는 것이 자기가 진리라는 것은 '정직해라, 진실해라, 충성해라, 외식하지 말아라, 남을 속이지 말아라, 남을 해하지 말아라' 이거 다 진리 아닙니까? 진리니까 여기 일하면서 '아, 내가 일하면서 주인이 보든지 안 보든지 눈가림만 해서는 안 되지, 눈가림만해서는 안 되지 진실되이 해야지.
진실, 내가 여기서 진실히 하겠다. 내가 주인에게도 감화 감동을 줄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 하나님 보실 때에 "너 잘한다. 네가 잘함으로써 그 주인이 보고 '저게 예수 믿는 사람이지?' 하고서 나에게 영광을 돌리겠다" 주님이 그라면 '잘한다.' 이래 진리 지킨다.
또, 하나는 말하기를 '너는 지금 뭐 하고 있느냐?' '나는 여기에서 지금 영감 복종을 하고 있습니다. 영감 복종하고 있습니다.' '네가 뭐 물건 만들면서 목수 일 하면서 영감 복종한다 하느냐?' '아니오. 영감이 나에게 이라는 이 목수하는 이 일을 내가 영감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감으로. 성신의 감화대로. 그러니까 성신의 감화대로. 내가 돈벌이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일에서 영감을, 영감대로 이 일 하는, 일을, 영감은 내 생활이고 이 일은 영감 생활 어데 하든지 영감 생활 하는 장소요, 영감 생활하는 장소. 영감 생활을 나타내는 모든 물질들이지 나는 지금 영감 생활하고 있습니다. 영감 생활, 진리 생활 하고 있습니다.' '너는 뭐 하고 있느냐?' '아, 나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죄 안 짓는 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네가 무슨 다른 일하면서 뭐 죄 안 짓는 일 해?' '아내가 가만히 있으면서가 아니고 이 일 하면서 여기에서 죄 안 짓고, 여기에서 의롭게 살고, 여기에서 주님에게 피동으로.
주님의 피동으로 살고, 여기에서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 내가 이 일이 암만 분주하다 하지마는 이 일 함으로 하나님과 떨어지지 안하고 하나님과 이 일 하는 여기에서 동행합니다.' 그러니까, 일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동행하는 사람이 있고. 일하는데 영감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고, 일하는데 진리로 일하는 사람 있고 그것이 뭐이냐? 녹아지는 맛있는 소금이라 그 말이오. 그러면, 그렇게 했을 때에 네게는 네 생활 됐으니까 본인에게는 유익이 뭐입니까? 무슨 유익 됐소? 영생. 본인에게는 영생이 됐고, 또 그 공로는 어데로 갔지?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갔고, 영감으로 갔고, 진리로 갔고 뭐 다른 데 갈 데가 없어. 그러다 가 버렸다 말이오. 소금이 녹으면은, 녹으면은 물로 갔든지 녹으면 김치로 갔든지 어데가지 않습니까? 그거 모양으로 네가 요 세 가지로만 살기만 살면 고 세 가지가 다른 사람에게 가서 벌써 그화시켰다 말이오. 다른 사람에게 가 가지고서, 대속의 공로로 들어갔고, 영감으로 진리로 들어갔기 때문에 그 사람이 휘떡 뒤비진다 그거요.
그런고로, 요것을 여러분들이 오늘 기억하고 어짜든지 요걸 가르쳐서, 이제 오늘로서 이게 끝날 건데. 요 공과를 가르쳐 가지고서, 제가 자꾸 거듭 거듭 할 때도 교인들에게 가르치지마는 딴 데도 가르쳐야 되니 아무래도 이거 뒤에 또 돌아가게 되면 언제 나올란지 모르니까 이걸 똑똑히 알려야 되겠다 자꾸 이러는데. 어리석은 자들은 그거 한 번 듣고는 다 아는 것이라 이렇게 생각을 한다 그 말이오.
그러면, 자, 지식으로 받고. 또 뭘로 받아야 됩니까? 지식으로 받고, 그 다음에는 확실히 믿는 믿음으로 받고, 또 그 다음에는 이제 욕망을 품는 욕망으로 받고. 그 다음에는 능력으로 받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는 열매로 받습니다. 결과로 받아.
이러니까, 근방에 가지도 안하고 외식자는, 외식자 아닌 사람은 자꾸 들을수록이, 그러니까 성경볼수록이 자꾸 더 보고싶고 자꾸 더 알아야 되겠고 새김질하고, 그러니까, 하나 새김질하다 보면 뭐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하루도 가고 이틀도 가고 열흘도 간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뭐 어데 가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장 그 말씀이 속에 들어가 가지고 새김질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여러분들이 갈 때에 고기 덩어리만 가지 말고, 옛 사람으로만 가지 말고. 새사람으로 가십시오. 새사람으로 가는데, 새사람으로 가는데 새사람은 뭘로 살아났느냐? 새사람은 무슨 힘으로 가는게 새 사람으로 가는 것이오? 몇 가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새사람으로 가는 것은 몇 가지로 가는 거? 이 세 가지로 가는 거. 이 세 가지로 가는 것이 새사람으로 가는 것.
그러면, 그 사람이 가서 심방 전도하는데 자기 구변으로 하는 사람 있고, '내가 말을 잘하니까, 내가 또 수단이 있으니까 방법이 있으니 요 사람을 살살 꼬와서 달게서 어째' 그걸로 하는 사람과 이 세 가지로 하는 사람. 이 세 가지 힘으로 해야 열매를 맺지 이 세 가지 힘으로 안 한 거는 다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교역자회 때도 '요새 우리 교역자 중에 복술자가 많다.' 그래 내가 어떤 본인을 보고서 ''너 목회를 할라면 그거 회개를 해. 네가 배짱 내고 부랑지기고 뭐 그라니까 다른 사람이 그만 감아서 '아 저거는 사람 아니다.
저거는 완전히 정신이 지금 이상이 됐기 때문에, 정신이 이상 됐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말하면 자꾸 미친 것만 나오니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 내가 말하니까 네가 이겼다 싶으나? 네가 혈기 가지고 무슨 일 하나? 배짱 가지고 무슨 일 하며 부랑 가지고 무슨 일 하느냐?" 그래 내가 그 사람에게 말하니까 씨익 웃으면서 '예, 제가 깨닫고 인제 다시 안 그랄 겁니다.' OOO 목사님 보고 내가 그랬다 그 말이오. 그라니까 '예, 다시는 안 그랄랍니다.' '그거 다 회개해.' '회개합니다.' 아무리 목사든지 권찰이든지 장로든지 집사든지 이 세 가지 힘으로 하지 안하는 것은 이 세 가지 힘 외에는 무슨 힘 있소? 또 세 가지 힘 있소. 배암의 지식 배암의 지식, 불법 있어. 배암의 지식. 또 영감 반대 악령의 감화 악령의 감화 있소. 불법과 악령의 감화.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반대의 뭐입니까? 아담 해와로 말미암은 원죄 본죄 그거 가지고 하고 있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자꾸 이 세 가지로 살기를 힘을 써야 됩니다. 우리는 이 세 가지로 살면 새사람으로 살고 이 세 가지 떠나면 옛날 사람으로 마귀의 사람으로 삽니다.
옛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