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30 01:36
말씀을 증거 할때
1986. 8. 24. 주일새벽
본문:디모데후서 1장 8절∼10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기도합시다.
보이지 않는 주께서 보이는 모든 것을 만드셨고 모든 움직임과 역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주님의 목적 곧 예택 곧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역사하는 이 깊은 사실을 아무도 알 수 없는 깊은 것이며 깊은 원인이 되어 있는 이것을 주님의 피공로의 이 대속으로 인하여 주님이 계시해 주신 이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로 저들이 입게 되었고 입은 지 오래 후에 알게 되어 주를 찬양하며 은총을 감사하게 됨을 감사합니다.
저들을 은혜 위에 은혜를 주사 이렇게 생명 역사, 우주가 이것 때문에 있고 모든 전개되는 순서들이 이것 때문에 있는 지극히 큰 이 구원을 우리에게 주실 뿐만 아니라 이 은혜 위에 이 구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여 모든 택자들이 다 영생으로 살아나는 이 일을 하게 하시는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는 보이는 행동, 말로써만 아니고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무한하신 성령님의 능력의 감화로 이 구원이 이루어짐을 믿습니다.
이 역사는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안하고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안해, 인간으로서는 이 제한 때문에 가지도 보지도 들리지도 않으나 우리의 이 영감받은 마음은 우리들이 주님 앞에서 영감을 통하여 일할 때에는 여러 수억억만 리라도 공간이 상관 없고 온 세상이 방해하고 대적하는 그 원수 속에도 상관 없이 자유롭게 꿰뚫어 들어가 이 역사가 이루시는 것을 저희들이 믿습니다.
오늘도 이 어린 학생들, 아무런 그 두뇌 속에 모실 것들이 많이 존재하기 전에 과연 깨끗한 그 컴퓨터가 가득 차 있는 거기에 한 말씀 한 말씀을 저들에게 전하여 기억하게 하고 모든 상상 안에 인박혀 영원히 뽑아 버릴 수 없도록 저희 안에 기록되게 하려 하는 저희들의 오늘의 이 공과 역사에 주님이 동행해 주시옵소서.
저희 마음 깊은 양심비 안에 기록되고 영에게 기록되어 영원히 뽑아 버릴 수 없는 기록으로 기록되어 현실마다 생각나게 하셔서 이로 인하여 저들의 모든 생활이 시발되어 옳고 바르고 참되고 의롭고 영원한 능력의 이 생명 생활이 이루어지도록 주님이 역사해 주시옵소서.
오늘 주의 종들이 통반이나 분반 공부를 할 때에 믿음으로 전하게 하시고 영감으로 전하게 하사 종들에게 있는 믿음과 영감과 생명이 어린 학생들 안에 그대로 주입되고 그대로 역사하여서 미혹과 악의 세력이 많은 온 세상을 이기고,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안심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저들이 다 세상과 죄와 사망과 마귀를 완전히 이기고 승리자로 주님 앞에 설 뿐만 아니라 모든 이 우주라는 우주에 이런 것들을 다 몰아내고 영계에서도 몰아내고 그들은 다 지옥에 갇히고 이런 것들이 없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통일된 그리스도의 이 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는 이바지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총을 주시옵소서.
지금 아직도 반사 선생님들이 나오지 못한 선생님들 많이 있습니다. 종들에게 이 시간도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이 그들 속에서 역사하사 이 게을하고 나태하고 흐려 있는 그 심신을 완전히 통치하고 통솔하여 주님이 주신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는 사활로 이루어진 이 생명의 축복의 날을 저들이 온전히 감당하여 주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깬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오늘까지 공과가 끝나는데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이 공과를 전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 공과를 전해야 합니다. 지식이 지식을 전하고, 믿음이 믿음을 전하고, 소망이 소망을 전하고, 영감이 영감을 전하고, 실상이 실상을 전하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기억하고 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꼭 같은 시간에 같이 가르치는데, 꼭 같은 시간에 같이 가르치는데 한 사람은 지식도 옳게 전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확실히 알고 있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저 소리만 전하지 지식도 전하지 못하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지식만 전하고, 어떤 사람은 이 사실을 믿는 믿음까지 전하고, 그러면 믿음과 지식을 둘을 전하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거기에 소망하는 소망을 같이 겸해서 전하는 사람 있고, 또 거게는 성신의 감동까지 겸해서 전하는 사람 있고, 또 거게는 실상을 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말한 것이 몇 개 말했습니까? 다섯 가지 말했습니다. 다섯 가지 말했습니다. 그러면 다섯 가지로 전하는 사람도 있고, 한 가지 전하는 사람도 있고, 한 가지도 전하지 못하고 그저 테이프 모양으로 이렇게 소리만 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속에 뭐 내용의 뜻은 모르고 소리만 전하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전하는 것이 사람이 보고 듣기에는 같은 것 같으나 그 내용은 그렇게 다른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꼭 같은 말을 하는데 이 사람의 말은 미치는 그 영향과 결과가 아주 판이하고, 꼭 같이 음성 조절도 뭐 고저청탁도 꼭 같이 그래 하는데 전해지는 그 결과는 아주 판이합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스스로 연구해서 알아야 되고 또 다른 사람을 보아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이 무슨 공간에 제한을 안 받습니다. 시간에 제한을 안 받습니다.
그 사람이 말해서 일해 놓은 것이 그 사람 죽은 지 수천 년 수백 년 후에 그 말씀이 역사합니다.
또 이 한국에서 그 사람이 저 미국에 있는 사람에게 대해서 이 복음 운동의 역사를 했는데 그 한 것을 옆에 사람도 모르고 자기 혼자 합니다. 자기 혼자 마음으로 원해서 기도하고 일하고 한 그것이 그렇게 먼 데 있는 사람에게 가 가지고 영향이 있고 결과를 맺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전하는 이 복음은 그 복음 전하는 자체가, 그 복음 자체가 아주 껍데기도 없이 거짓부리 있고, 또 껍데기만 바로 되어 있는 것 있고, 그 껍데기 속에 이런 알맹이의 요소 저런 알맹이의 요소가 구비돼 가지고 전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이래 전하는 것이 허무한 것 같으나 이다음에 보면 반사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어떤 소망을 가지고, 어떤 지식을 가지고, 어떤 영감을 가지고 전했는지, 그가 어떤 실상을 가지고 전했는지, 제가 이루어진 실상 가지고 전했는지 그것은 꼭 그대로 정확히 차이납니다.
그러기에 이 교회가 이렇게 목회되는 것은 성경에 말하기를 “일곱 별과 일곱 금촛대의 비밀을 너희들이 알기를 바란다” 이랬습니다. 비밀이라 말은 알기 어려운 걸 말합니다, 알기 어려운 것.
이랬는데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해석했고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해석했는데 교역자와 교회의 그 관계는 인간들이 알기 어려운 비밀이 있다, 아주 깊은 비밀이 있다.
무슨 비밀이 있느냐? 교역자가 그 전할 때에 뭘로 전했느냐? 자기는 이 세상 말만도 못한 그런 그저 소리만 앵무새 모양으로 전한 그렇게 전한 것도 있겠고 참 똑똑히 바로 알고 전한 것도 있는데 안 것도 안다고 해도 안 그것이 천층 만층이라, 아는 것이 어느 정도 아느냐? 앎으로 전한 것, 앎으로 전했으나 믿지 안하고 전한 것, 자기는 확실히 확신을 가진 확신도 차이 있고, 또 그것을 소망하는 소망도 차이 있고, 거게 대한 영감도 차이 있고, 또 사람이 되어져 있는 그 실상도 차이 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차이 있는 그대로 시간이야 조만간에 그대로 반응되어서 나타난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실화가 있습니다. 저 중국에 가서, 이 자유중국이 아니고 공산주의 되기 전에 저 중국에 가 가지고 선교사가 선교를 했는데 두 사람을 파송해서 선교했는데 한 사람은 가 가지고 교회를 여럿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가 가지고 교회는 하나도 세우지 못하고 불구자 두 사람만 예수 믿게 만들었어. 불구자 두 사람이 예수 믿었는데, 그러니까 한 사람은 선교에 성공했고 한 사람은 선교에 실패했는데 그 두 선교사가 다 죽었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죽었는데, 그 뒤에 이제 그 전하고 난 그 복음이 들어서 병신 둘이 전도받아 가지고 일하고 있고 여러 교회를 세운 그 교회들이 전도받아 가지고 신앙 생활하고 있는데 세월이 지나가니까 지나갈수록 차차 차차 병신 그 둘이 한 그 교회가 부흥이 되고 또 양적으로도 점점 병신 둘 전도해 놓은 그 선교가 자꾸 끝굴림을 해서 부흥이 되고, 양적보다도 병신 둘에게 전도한 그 교회는 진실되어서 세상을 이기고 참 하나님의 원하시는 기뻐하는 참된 교회가 이루어지고, 나머지기 거는 내나 세상에 하나 그뭐 기독교는 이거는 사회주의라, 사회를 개량시키는 것이라, 이거는 도덕을 깨끗게 하는 것이라, 이거는 무슨 정치하는 데에 무슨 하는 것이라, 이것은 무슨 기적이나 이적이나 그런 병치료하는 것이라, 그런 잡탱이로 다 흘러나가 버리고 요 한 교회는 바로 되어서 그것이 크게 성공을 했다는 말을 모든 사람이 하는데, 그래서 그 말이 어데까지 나와 있느냐 하면 요새는 그래도 얼마 전에는 믿는 사람들이 다 그걸, 그런 말을 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우리가 낙심하지 말고, 일을 적게 했으나 그것이 뒤에 가서 큰 결과를 맺을 수도 있다, 또 많이 했으나 껍데기 쭉덩이가 있다.’ 이렇게만 말하고 있지 그것이 그 사람이 선교하는 선교사 그 자체를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교사 자체가, 자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전하고, 거게 믿음을 전하고, 소망을 전하고, 영감을 전하고, 실상으로 이루어진 실상을 전했기 때문에 이 다섯을 전했는데 다른 선교사는 그저 말만 이렇게 전했다.
이러니까 영감 없는 전도를 했고, 소망 없는 전도를 했고, 믿음 없는 전도를 했고, 실상 없는 전도를 했고 다만 지식 전도만 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 죽고 나니까 그 교회가 지식으로만 돼지지 그 지식은 이 세상 지식이나 다 같습니다.
별 다를 게 없습니다.
저는 어제도 산에서 하나님 앞에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이여, 인간이 아무리 말을 해도 말하는 이것 가지고는 아무런 실효가 없습니다. 주님은 말 잘했다면 주님이 제일 말 잘하셨고 제일 권위 있는 말씀을 했는데 주님이 말씀하고 난 다음에 누가 믿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안했습니다. 주님이 풍랑을 잔잔하게 했을 때에, 죽은 자를 살렸을 때에, 모든 병자가 치료되었을 때 그때 보고 “과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뭐 주님이 역사하는 표적을 그들이 보고야 했지 그 보지 안하고야 누가 믿었습니까? 모든 사도들도 그래 되지 안했습니까? 이런데 우리가 암만 말해도 주님이 그때 나타나 역사할 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그때와 다릅니다. 그때는 이 성경 말씀을 하면 사람들이 ‘그 말은 처음 듣는 말이다, 이상한 말이다.’ 이라지마는 요새는 뭐 이 성경 몇십 배 찬란한 말이 있습니다. 성경 몇십 배 찬란한 말이 있고, 아주 아름답게 교묘하게 꾸민 말이 있고 아주 매력 있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있으니까, 성경 말은 미개한 말이요 이거는 시시한 말이요 아주 외모로 본다면 아무 가치 없는 말이고 이거 몇십 배 나은 말들을 사람들이 거짓말로 막 만들어 가지고 얼마든지 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게는 실상의 능력이 와서 역사를 해야지 능력 역사가 안 되고, 능력 역사가 안 되고 말뿐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말로만 암만 전해봤자 능력은 당신이 하시니까 당신이 와 가지고 능력으로 역사해 가지고 말한 뒷받침을 해 가지고 이거 뒷처리를 해서 이 역사가 있어야 되지, 이 말뿐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보자, 찬란한 말을 하는가, 아름다운 말을 하는가, 무슨 정서적인 말을 하는가 보자.’ 하고서 와서 보면 성경 다 뚜드려 뭉쳐야 이 세상 지금 말쟁이들이 꾸며놓은 이 굉장하게 꾸미는 사특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거짓된 세상에 꾸며놓은 그런 것만치 보기에 모양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지금은 모든 사람이 여게서 설교 들어보자 저게서 설교 들어보자 설교 들어보고 다닐라 하는 사람은 가끔 있지 설교는, 좀 깨달은 사람은 ‘설교야 뭐 여게나 저게나 다 일등 설교요 다 특등 설교다. 다만 이 설교에 하나님이 같이 하나 안 하나 그게 문제다.’ 이러기 때문에 요새는 모든 사람들이 기적과 표적을 구하고 있다. 기적과 표적이 있으면 ‘그거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 역사가 그 증거하는 말에 따라붙고 같이 동행하고 있구나’ 이럴 때에 사람들이 믿지 말만 듣고는 믿는 사람 없습니다.
내가 그걸 가지고 하나님 앞에 좀 한 두 시간 시비를 했습니다.
‘이렇지 않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암만 말해 봤자 소용 없습니다. 당신이 역사하셔야 되지.’ 이러니까 당신은 나한테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말해. ‘네가 전하는데 네가 정말로 알고 전하나? 네가 아는 정도만치, 한 치를 알고 전하면 한 치가 그대로 전해진다. 네가 한 자를 알고 전하면 한 자 알고 전하는 그대로 전해진다.
‘네가 이 말을 전할 때에 네게 믿음이 하나도 없었으면 없는 말 그대로만 전한다. 네가 믿음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믿음이 네가 한 개 있으면 한 개, 두 개 있으면 두 개, 한 자 있으면 한 자, 열 자 있으면 열 자, 내게 있는 믿음 있는 그대로 전해진다. 또 네가 소망하면 소망한 그대로 전해진다. 네가 이 말씀에 대한 영감을 가진 그대로 전해진다. 네가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실상이 얼마나 이루어졌던지 실상 이루어진 그대로 전해진다. 네가 전하는 데 네게 없는 거 전하니까 없는 거 전하는 것을 그러면 내가 만들어 역사할진대야 내가 하지 너한테 할 게 뭐 있느냐?’ ‘이러니까 네가 어떻게 믿느냐, 어떻게 바라보느냐, 어떻게 네가 알고 있느냐, 여게 대해서 영감을 어느 정도 네가 받아 가지고 있느냐, 네가 어느 정도 실상을 만들었느냐? 그대로 전해지는 거 아니냐? 이러니까 그보다 더 큰 역사가 어데 있느냐? 나는 네게 있는 그대로 네가 전할 때에 그 상대방에게 그대로 솔직하게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하는 이것이 내가 할 일이다. 이게 나 할 일이다.
이러니까 이만하면 되지 않느냐?’ 그만 내가 동곳을 뺏습니다. 동곳을 빼고 ‘예 그렇겠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이래 전해도 그들에게 주님이 이 전하는 거 외에 당신이 기적과 축복의 역사를 해 주셔야 되지 내게 있는 거 전하는 것만 이것만 한다고 해도 그 외에 당신이 내가 하지 않는 않는 당신이 직접 역사하시는 그 역사를 좀 해 주시면 어떻습니까?’ 이라니까, 또 주님이 말씀하셔. ‘그것도 네게 있는 그대로 내가 통해서 역사하지 너를 통하지 않고 나는 할 수가 없다. 왜? 네가 벌써 살아났고 너는 자유성을 가지고 있고 주권성을 가지고 네가 있는데 내가 너를 통하지 안하고 한다면 내가 월권자 아니냐? 내가 어떻게 월권자가 될 수가 있느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한다 말씀을 네가 읽지 못했느냐?’ 이래서 두 시간 신강하다가 그만 하나님 앞에 자복을 하고 ‘예, 그러면 내가 전할 때에는 참 알고 전해야 되겠고, 알되 어떻게 알고? 내가 행하지 안하고는 견딜 수 없을 만치 참 알고 전해야 되겠고, 참 믿고 전해야 되고, 참 소망하고 전해야 되고, 참 여게 해당된 영감을 내가 충만히 받아 가지고 전해야 되고, 내가 실상을 이룬 거 가지고 전해야 되겠다. 그러면 나는 실상이 전해져야 되겠고, 영감이 전해져야 되겠고, 소망이 전해져야 되겠고, 믿음이 전해져야 되겠고, 지식이 전해져야 되겠다.’ ‘이러니까 너를 통해서 내가 전하지 너를 통하지 안하고 가릇 그렇게 전해지는 이런 일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이 너와 나와 계약한 약속이 아니냐? 계약이 아니냐?’ 이렇게 말씀했어요.
○선생? 이 떠들고 말이지 고함만 지르는 것 가지고 안 돼. 내가 전하는 걸 이거 오층에서 들어. 들으면 모르는 것 전해. 고함만 치는 것 있고, 고함 지르는 것 있고, 고함 지르는 거와 또 달라. 고함 지르는 것 있고, 참 알고 전하는 것 있고, 알고 전하는 데 참 믿으면서 참말로 믿으면서 전하는 것 있고, 참 거게 대한 소망을 가지고 전하는 것 있고, 거게 대해서 영감을 자기가 받아 가지고 영감으로 전하는 것 있고, 자기가 실상이 이루어진 것 가지고 전하는 것이 있다 말이오.
그래 내가 보니까 삼층에서 전하던가? ○집사가 전해. ○집사 어데 왔어, 왔어요? 예, 저 있는데 ○집사가 전해요. ○집사가 전하는데 그 전하는 것이 좀 고 실상이 좀 되어 있고, 소망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전하는 것이 좀 낫다 말이오. 또 저 지하 여반인가? 지하 여반에 부장이 소망을 가지고 고 실상을 가지고 전하는 것이 좀 낫다 그말이오.
이런데 저 우리 이층 부장 ○○○부장은 뭐라고 별명을 할꼬? 절름발이 부장입니다, 절름발이 부장. 어떨 때는 알고 믿고 소망하고, 그 실상이 이루어진 그거는 잘 보이지 안해. 거게까지는 이루어졌는지 어떨 때는 알고 믿고 소망하고 이래 영감까지는 약간씩 이래 전하는데 어떨 때는 제법 한 팔십점 될 때 있고 가끔 가다 한번씩은 구십점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십점 됐다가 한 삼십점 됐다가 이십점 됐다가 팔십점 됐다가 이 굴곡이 너무 많애. 절름발이라.
절름발이는 성한 발로 디딜 때는 쑥 올라가고 낮은 그 병신발로 디딜 때는 푹 내려오고 이게 그겁니다. 이래서 저거 암만해도 자기 업이 분주한 것만치 저렇게 기울였다가 안 기울였다가 저렇게 된다.
또 저 일층에 ○○○장로님은 전할 때에 지식으로 전하고 믿음으로 전하고 그다음에 소망으로 전하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있거나 없거나 몇 달 만에 한번 있거나 없거나, 소망으로 전하는 건 소망은 희귀입니다. 또 영감은 더욱 더 희귀하요. 들으면 다 압니다.
일층에 있는 부장이 지금 갈려 가지고 전하는 데 보면 지식으로 전하고, 또 믿는 믿음으로 전하는데 믿음이 그렇게 많지는 못하고 믿음이 좀 가입돼 가지고 있고, 또 소망이 그보다 더 빈약하고, 또 그 영감이, 영감도 약간 또 역사하고, 또 실상이 이루어진 그것도 역사해서 그 다섯 가지가 다 모두 끼어 있기는 다 있어요. 겸해서 끼어 있기는 끼어 있는데 아주, 아주 빈약해요. 말은 똑똑히 하고 야물게 합니다. 지식은 강하고 야물게 해요.
들으면 다 압니다. 나만 아는 게 아니라 여러분들도 들어 보면 다 알아요.
이러니까 이제 오늘 공과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뜻을 가르칠라고 하지 마십시오.
요 믿음을 가지고 그저 또박또박 읽을 때에 따라 읽으라 하고서 두 번 하지 말고 한 번씩 해요. 한 번씩 이렇게 알아듣기 쉽도록, 너무 짤막짤막히 해도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한 단어면 한 단어가 끝나도록까지 읽어 가지고 그렇게 읽어주고 따라하고, 다른 아이들 장난하든지 말든지, 하고서 그대로 또박또박 해서 한번 쪽 읽어주고 또 시간 있으면 두 번 읽어 주고 딱 시계 보고서, 반츰 읽으다가 시간 되거들랑 중단해 버리고 요렇게 또박또박 읽어주는 요 일을 여러분들이 하되, 하면서, 내가 지식한 요 지식을 요 아이들이 다 지식하도록, 내가 믿는 요 믿음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이 되도록, 내가 소망하는 소망이 그대로 전달하도록, 내가 소망하며 전하면은 그 소망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내가 믿으며 전하면 믿음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내가 영감받아 전하면 영감이 전달됩니다.
영감에는 천리 만리 거리 멀고 허수아비 모양으로 생명 없는 것이 고함만 떠들어 지르는, 고함만 떠들어 지르는 것도 환하게 다 압니다. 영감도 알고.
내가 실상이 이루어졌으면 그것이 실상이 이루어지지 내가 실상이 이루어지지 안했는데 학생들에게 실상이 이루어집니까? 전해집니까? 내게 실상이 없는데 뭐 전해집니까? 내게 있는 것 전해진다 말이오. 내게 있는 게 전해져요. 내게 이 다섯 가지가 하나도 없으면 소리만 전해져요.
다섯 가지 중에 네 가지가 있으면 네 가지 전해지고, 세 가지 있으면 세 가지 전해지고, 하나 있으면 하나 전해지고, 내게 있는 것이 전해지지 있지 안한 건 전해지지 안하는 것입니다. 전해지지 못해요. 여게서 목회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여게서 구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구역 부흥도 이것을 생각하고, 자, 그러니까 목회라든지, 구역을 하든지, 반사를 하든지 제일 힘쓸 것이 무엇입니까? 힘쓸 게 뭐입니까? 내가 전할 것을 가지는 것이 문제요. 알겠습니까? 전하는 것을 가지는, 너는 한 가지 가지고 전하면 한 가지만 전해지고, 두 가지 가지고 전하면 두 가지만 전해지고, 다섯 가지 가지고 전하면 다섯 가지 전해지고, 거게 여섯 가지 일곱 가지 더 많으니까 가진 대로 전해진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자, 우리 은사 교권, 은사 교권이라면은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것을 공짜배기로 전해 줄 수 있는 그 사람을 가리켜서 은사 교권이라 하고 기본교권이라 말한 것은 그 은혜 받을 사람들을 가리켜서 기본 교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자,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될 그 전달하는 그 은사 위치에 있는 사람은 제일 준비하는 것이 어데다가 제일 준비해야 됩니까? 뭘 제일 먼저 준비해야 됩니까? 무엇을 제일 먼저 준비해야 됩니까? 저 여반에도 한번 좀 말해 봐. 저 ○○○사모님? 뭐 준비해? ○○○사모님? 뭐 준비해야 돼요? 알아듣기가 어려워? 알아듣기가 어렵습니까? 또 저 한번 말해 봐요. 말해 봐요. 뭐? 뭐라 하노? 예? 지식? 일호라고? 또 여게? ○○○부장? 알아야 된다. ○○○목사님? 어? 자기를 가르쳐야 돼? 그 백점이야. 자기를 갖추어야 돼.
자기에게 한 가지 있으면 한 가지 전달되고, 두 가지 있으면 두 가지 전달되고, 세 가지 있으면 세 가지 전달되고, 다섯 가지 있으면 다섯 가지가 전달돼요. 이러니까 자기가 먼저 가지는 것이 문제라. 가져야 전해지지 없는데 뭘 줘? 없는 데 ‘아나 받아라’ 받을라고 떡 대니까, 손 내미는데 가 보니까 빈손이오.
아무것도 받을 것 없어. 그 뭐요? 거짓부리요. 외식이오. 자, 모든 사람에게 ‘받아라’ 하니까 모두 받을라고 손을 내미는데 이 빈손만 줍니다. 아무것도 안 들었어. 그러면 그 빈손을 주는데 그 속에 뭐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전해져요 안 전해져요? 안 전해져.
‘네가 전할 수 있는 것이 네게 있어야 된다. 전할 수 있는 것이 네게 있어야 되지 없는 걸 어떻게 전할라고 하고 있느냐? 네게 있어야 된다. 네가 먼저 가지기를 힘써라. 네가 먼저 가지고 가진 것을 전해 줘라.’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요것을 또박또박 읽어서 지난번에도 불끄지 안하고 이걸 좀 읽었는데 오늘 아침에도 불을 끄지 안하고, 지금 다섯시 십팔분인데 이십오분까지 불을 안 끌 터이니까, 공과 가지고 온 사람 손 들어 봐요. 공과 다 가져왔지요. 이 공과가 보통이 아닙니다. 이 공과가, 이 공과가 굉장히 값이 크고 보배로운 공과입니다.
이 공과 하나면, 이거 뭐 나가는데 이 공과 하나면 그만 자기가 기독교는 어떤 기독교라 하는 걸 올바로 깨달아서 모든 잘못된 모든 탈선을 다 바로 잡아 가지고 바로 할 수 있는 공과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예사로 이래 보지마는 이 공과에 기독교가 다 들어 있습니다. 다 들어 있어.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요 다섯 가지가 어느 정도 요래 가지고 있는지? 믿은 것만치 전해집니다.
요새 내가 보니까 구역 식구들도 전하면 여러 수십명이 가도 소용 없어. 수십 명이 가도 가면은 이거는 전도하러 가 가지고, 심방하러 가 가지고 죽이기만 합니다. 한 번 가면 한 번 죽이고 두 번 가면 두 번 죽이요. 이래 놓으니까 자꾸 도를 가로막고 있는 일꾼들이 많다 말이요.
반사들 중에 그런 이 많아. 중간반 반사 중에 그런 반사들도 많이 있어요. 가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낙심하게 만들고 그만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마귀의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그만 아주 믿음을 떨어뜨리는 그런 인간이 있고, 그러면 그것을 또 가지고서 수습하는 날이면은 이제, 그러니까 일꾼들은 항상 죄인밖에 안 돼. ‘아이구 잘못됐습니다.’ 이게 실컷 제 오기대로, 제 기분대로, 제 식대로 해 놨으니까 마귀란 놈이 충동을 해 사람은 오해를 곡해를 딱 하고 있으니까 이걸 모두 치료를 할라 하면 가 가지고 죽자껏 무릎 꿇고 빌어야 돼요. 실컷 빌면 그것이 겨우 돼져. 알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이 복음은 감화로만 전해지는 것이지 그렇게 세력으로 전해지는 게 아니라 그말이오.
내가 언제 하나를 말하기를 ○○○선생이, 벌써 와 가지고 여기 있답니다. 여기 부산 와 있는데 나한테 콧대기도 안 보이고 자꾸만 또 숨어 돌아다닌다 해, 숨어서 돌아다녀. 숨어 다니는 거는 그거 뭐 그만치 숨어 돌아다니는 거는 속으로 그래 가지고 준비는 하기는 하겠지마는 뭐인가 지금 마음에 시원치 안한 가책이, 양심에 가책이 있어, 자책이 있어 그런 거라.
그런데 그때 대구에, 열 번 보고 나오라 하니까 다섯 번만 보고 나와 가지고, 그 병을 고치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때는 다섯 번만 더 보고 나오면 되는데 지금은 새로 들어가면 새로 한 열 번이나 더 봐야 그게 회복되지 그래 안 하면 안 돼.
이랬는데 반사노릇 하면서, 가 가지고 아이들이 왔는데 자기 아이들 있거든. 자기 학생들이 있거든. 그 학생이 이래 그만 말을 하고 이래 하다 보니까 그 학생들은 좋아하고 이래 참 마음에 사랑을 가지고 전해졌는데 학생 하나가 그만 있다 보니까 삐꿔 가는 것같이 가더래요.
가는데, ‘이 학생이’ 그 가거나 말거나 듣다가 듣기 싫으니까 갔는갑다 이렇지마는 그때는 좀 영감 생활 했어. 영감 생활 하니까 ‘이 갔으니까 안 됐다.’ 이거 그 아이의 집을 찾아갔다 말이오. 가 가지고 밖에서 이름을 인제 아이들에게 물어 가지고 부르니까 대답을 안 하더래요. 자꾸 부르니까 나중에 나오더니만, 나와서 말하기를 ‘나는 안 가요!’ 그만 이래 버리고 그만 쏙 들어가 버리더래요.
이래 가지고 거기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자복을 하고 빌기를 ‘아무것아 아무것아 내가 잘못했다’ 이웃 사람 들으면 ‘저 크단한 남자가 저거 와 가지고 뭐 아이한테 무슨 죄를 지어 잘못했다 하는가?’ ‘아무것아 아무것아 내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잘못했다 용서해라’ 자꾸 그라니까 한참 그라니까 그게 나오더니마는 떡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나는 안 가요.’ `안 가나따나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그라니 오더래요. 오니까 그래 좀 쓰다듬어 주고 좀 이렇게 한참, 그놈 속에 맺혀 있는 거 그걸 풀라고 하니까 다 그래 거석하니까 그때 마지막에 제가 삐쭉하게 웃으면서 ‘예’ `오늘 나오너라' `예' 이라더래요. 그 속에 맺힌 그놈을 풀라 하니까 얼마나 해? 그걸 그 소문을 듣고 내가 ○집사를 ‘이거 참 네가 그렇게 되면 돼진다’ 이랬는데 일꾼이라 하는 것들이 가 가지고 속에 자꾸 속에 마귀 뭉텅이만 자꾸 만들어 넣어 놓으니까 한번 심방 가면 마귀 뭉텅이 만들어 넣어 놓으니까 그놈 뽑아 버릴라 하면 골탕을 쥐먹고 일꾼이 아니라. 무슨 일꾼인 줄 알아, 그게 일꾼? 그게 일꾼인 줄 알아. 뭐 얼마 사례 주고 하니까 일하는 줄 알아? 일하는 게 아니야.
또 그렇지 안하면, 그렇지 안하면 가 가지고 그 사람하고 실컷 한번 농담이나 한번 하고 우스개 소리 한번 하고 그러니까 재미 있다 그말이오. ‘그 사람 아무것이 반사 왔으면 좋겠다. 권찰 왔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것은 제 속에 그 옛사람 있으니까 옛사람하고 옛사람 만나 가지고 서로 재미 있는 그 놀음 한번 할라고.
춤추는 자들이 춤추는 친구 만나면 좋고, 술먹는 자들이 술먹는 친구 만나 놓으면 좋으니까 그 지금 재미 있는 꼴 할라고, 속에 옛사람 그놈만 길러서 잔뜩 북돋아 놓고 오기 쉽다 말이오.
이러니까 꼭 요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고 믿고 정말 바라보고 영감받아 가지고 자기가 실상으로 이루어 가면서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니까 가서 오기대로 하지 말아요. 여러분들이 그뭐, 저사람이 상대방이 나한테 어떻게 했다 할지라도 내 오기대로 해 놓으면 뒤에 가서 전도 못 합니다. 한번 그래 놨으면 그 뒤에 그만 전도 끊어졌소.
가서 말하면, ‘왜 뭣 때문에 남에게 대해서 간섭하고 있어? 너무 월권 아니요? 그 실례 아니요?’ 냉정스럽게 쏴 댑니다. 실컷 욕을 얻어먹었다 말이오. 나는 욕 얻어먹고 저는 그랬으면 뒤에 만나면 그 사람이 나한테 미안이라 말하지, 해 붙일 만치 다 해 붙이고 나면 한번 듣고 두 번 듣고 어떤 거는 일 년도 들어요. 어떤 거는 십 년도 들어요. 오래 듣습니다. 그래 들어도 이제 그 듣고 참고 있으면 나중에 그게 돼져.
여기 ○○○집사님 저기 와 있는데 얼마나 들은 줄 압니까? 얼마나 멸시를 받은 줄 압니까? 내 자주는 가지 안했지만 갈 때마다 멸시 많이 받았습니다. 저 ○집사님이 뒤에 눈물 좀 더러 흘려야 될 거라. 가면 ‘으음’ 이래 가지고 무슨 뭐 구걸이나 하러간 것처럼 이렇게 높아 가지고 이래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도 생전 자기는 배짱대로 했지만 이쪽에는 배짱대로 안 하니까 그게 걸리지 안하지, 걸리지 안하지 인제 나중에 장성이 떡 되고 나면 내가 그때 복수해.
그때는 막 매를 때려 댈 거라. ‘이거 왜 이리 하느냐? 이거 잘못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러니까 사람을 구원하는 데에는 우리가 이 영감 아니면 구원 못 합니다. 영감이 없으면은 그 마음을 감화시키지 안하면 안 돼요.
이러니까 어짜든지 여러분들이 요 오늘 아침에 말한 거 요 다섯 가지를 가지고 여러분들이 갖춰 가지고 요, 이 얼마나 귀한지? 이것을 학생들에게 한번 읽어서 따라, 한 번 따라 읽고 두 번 따라 읽고, 이 따라 읽는 이것이 평생 다시 한번 따라 읽을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압니까? 이 보배로운 걸 따라 읽으면 그 속에 기록이 된다 말이오. 그 속에다, 이거 저 컴퓨터에 꼭 눌러 놓으면 그대로 있지 안해요? 컴퓨터에 눌러 놓으면 몇 해나 견딥니까? 며칠이나 견딥니까? 컴퓨터에 숫자 예를 들면 2면 2자를 한번 눌러 놓으면 그 2자가 언제까지 있지요? 언제까지 있지요? 뒤에 고치기 전까지는 있습니다. 그게 깨지든지 고치든지 해야 변해지지 그대로 한번 박혀 놓으면 그대로 있는 것이오.
우리 속에 컴퓨터를 천억을 만들어 넣었다 하는데 그거 딱 찍혀 놓으면 그만 그대로 있어. 그래 안 되면 나중에 꿈에 꾸여도 꾸이지 없어지지 안해요.
이러니까 거기다 집어 넣으라 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은 요것을 또박또박 꼭 다 읽어 주십시오. 여러분들이 알고 읽으면 아는 대로 전해지고 모르고 읽으면 모르는 대로 소리만 전해질 것이고 하니까 요거 애터지게 읽지 말고 재독하지 말고, 한번 말하고 그다음에 또 따라 읽도록, 동가리를 끊기를 너무 길어도 못 따라 읽고 너무 짤막짤막해도 안 돼요. 알아듣기 좋을 만치 그렇게 해 가지고 그래 읽고 따라 읽으라 하고 읽고 따라 읽고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이런 보배를, 이런 지식을, 이런 소망을, 여러분들이 보배인 줄을 알고 ‘이런 보배를!’ 할 때에 거게 그런 보배가 전해지지 아무 가치성을 느끼지도 안하고, 소망도 하지도 안하고, 믿지도 안하고, 거게 대해서 실상도 이루지 안하고, 실상 이루지 안했는데 뭐 소용이 있습니까? 불을 조금 안 끌 겁니다. 오늘 아침에는 여섯시까지 불을 끄지 안할 터이니까 공과를 읽고 또 읽고 자기가 거기서 깨닫고 믿고 그대로 살기로 작정하고, 작정하고 전하면 작정이 전해집니다. 소망하면 소망이 전해집니다. 그저 지식으로만 아무 생각 없이, 믿지도 안하고 소망도 하지 안하고 실상을 만들지도 안하고 영감도 없으면 그대로만 껍데기만 전해지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여섯시까지 불 안 끌 터이니까 그동안까지 읽고 또 기도하고 요걸 오늘만 전해지지 평생 그 아이들이 못 들을지 모릅니다. 알겠습니까? 요것을, 그뭐 여러분들이 해석하는 것보다도 읽어 줘요. 읽어 줘 그들이 한번 입으로 따라 읽으면, 한번 입으로 따라 읽었으면 컴퓨터에 딱 기록이 돼 버려, 박혀 버려요.
이러니까 따라서 읽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평생 저희들이 죽을 때까지 다시 듣지 못할란지 몰라. 이렇게 귀중한 보배야.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그것을 그 가치성을 깨닫고 여기서 여섯시까지 읽고, 또 자기가 못 믿은 건 믿고, 각오할 것은 각오하고, 그대로 실상을 이 시간부터 이루어가면서 그것을 ‘요 학생들에게 꼭 전해야 되겠다. 오늘 기회 놓치면 안 되겠다.’ 이러면 요게 속에 여러분들 속에 있으면 달라요.
같이 이 사람과 저 사람이 가는데 요게 있는 사람은 가 가지고 그 아이가 테레비 볼 때에 ‘너 지금 이 보배가 여기 있는데 이걸 받지도 못하고 너 테레비 그것만 보면 사느냐?’ 사느냐 하는데 그것이 말하는 것이 그 아이에게 툭 튀어나오는 거 있고 하나는 그 속에 심령을 찔러서 해부하는 게 있어요. 우리는 약하니 그래요. 성령의 충만한 사람은 그럴 때 그 아이가 통회하면서 애통하며 회개할 수도 있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 준비가 중대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