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9 22:42
만물심판
본문 : 에스겔 35장 1절∼36장 8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네 얼굴을 세일산으로 향하고 그를 쳐서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세일산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너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할지라 내가 네 성읍들을 무너뜨리며 너로 황무케 하리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네가 옛날부터 한을 품고 이스라엘 족속의 환난 때 곧 죄악의 끝때에 칼의 권능에 그들을 붙였도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너로 피를 만나게 한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아니하였은즉 피가 너를 따르리라 내가 세일산으로 놀라움과 황무지가 되게 하여 그 위에 왕래하는자를 다 끊을지라 내가 그 살륙 당한 자로 그 여러 산에 채우되 칼에 살륙당한 자로 네 여러 멧부리에 골짜기에 모든 시내에 엎드러지게 하고 너로 영원히 황무케 하여 네 성읍들에 다시는 거하는 자가 없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네가 말하기를 이 두 민족과 이 두 땅은 다 내게로 돌아와서 내 기업이 되리라 하였도다 그러나 나 여호와가 거기 있었느니라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그들을 미워하여 노하며 질투한대로 내가 네게 행하여 너를 국문할 때에 그들로 나를 알게 하리라 네가 이스라엘 산들을 가리켜 말하기를 저 산들이 황무하였으니 우리에게 붙이워서 삼키게 되었다 하여 욕하는 모든 말을 나 여호와가 들은 줄을 네가 알리로다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입으로 자랑하며 나를 대적하여 여러가지로 말한 것을 내가 들었노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온 땅이 즐거워할 때에 내가 너를 황무케 하되 이스라엘 족속의 기업이 황무함을 인하여 네가 즐거워한 것 같이 내가 너로 황무케 하리라 세일산아 너와 에돔 온 땅이 황무하리니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산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대적이 네게 대하여 말하기를 하하 옛적 높은 곳이 우리의 기업이 되었도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들이 너희를 황무케 하고 너희 사방을 삼켜서 너희로 남은 이방인의 기업이 되게 하여 사람의 말거리와 백성의 비방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과 황무한 사막들과 사면에 남아 있는 이방인의 노략거리와 조롱거리가 된 버린 성읍들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진실로 내 맹렬한 투기로 남아 있는 이방인과 에돔 온 땅을 쳐서 말하였노니 이는 그들이 심히 즐거워하는 마음과 멸시하는 심령으로 내 땅을 빼앗아 노략하여 자기 소유를 삼았음이니라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땅을 대하여 예언하되 그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투기와 내 분노로 말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이방의 수욕을 당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맹세하였은즉 너희 사면에 있는 이방인이 자기 수욕을 정녕 당하리라 그러나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과실을 맺으리니 그들의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니라
에스겔서를 읽으면 하나님이 만물을 심판하시는 만물 심판에 대해서 우리가 그 비밀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만 상대하고 살며 또 보이는 것만 상대합니다. 귀로 들어보는 거 눈으로 보는 거 접촉해 보는 거 이런 것만 상대하지만 보이는 이면에 있는 그 무수한 모든 존재들이 있고 거기에 온갖 하나님의 법칙이 있어서 만물에 대한 심판이 있는 것을 거기에서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만이 아니고 읽어보면 산들에 대해서도 심판을 하시고 호령을 했습니다. 산 너는 이렇게 이렇게 네가 과거에 어떤 나쁜 민족에게 너는 이용을 당했고 또 네 자체가 옳은 것을 싫어했고 너는 만유의 하나님을 대적했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해서 넘어질 때에 너는 아하 소리를 치면서 기뻐했고 했다고 산들에게도 말씀을 했고, 강들에게도 말씀을 했고 멧부리들에게도 말씀을 했고, 백향목이나 이런 모든 수목들에게 대해서도 하나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그 심판의 내용을 보면 거기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사람들의 행동의 여하와 거기에 있는 모든 토지들의 그 행동이 일치된 것을 많이 말씀을 했고, 또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행동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거슬려서 했지만 그 모든 토지들과 강물들과 그런 것들은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안하고 원치 안하는 인간들이 그렇게 불의 행하는 것을 탄식한 그런 것들도 또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제일 피조물 가운데에 중심으로 하시는 것이 무엇을 중심으로 하시는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중심으로 하십니다. 이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했을 때에 다른 민족과 같지 안하고 그 범죄한 징책을 하되 세밀히 하고 심하게 하고 혹독히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이 지구상에 있는 민족 가운데에 이스라엘처럼 곤욕을 당한 민족이 없고 이스라엘처럼 그렇게 어려움을 당한 민족이 없습니다. 다른 민족 같으면 뭐 십 분의 일의 어려움만 당해도 그 민족은 벌써 땅 위에 다 종자가 없어질 것이지만 이스라엘은 그렇게 장기간 혹독한 형벌을 당해도 그 민족은 멸종되지 안하고 여전히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또 모든 명철적으로 모든 민족을 압도하고 위에 뛰어나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간섭을 세밀히 하시는 것과 또 모든 피조물을 이스라엘 백성을 중심해서 심판하시는 것을 우리가 거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에 이스라엘을 아주 엄하게 징계하십니다.
징계할 때에 그 징계하는 것을 보고 '아, 저렇게 우월한 민족이, 여호와의 민족이라 우월한 민족이 이제는 저렇게 패망을 당한다' 하고 조롱을 하고 멸시를 하고 패망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고 기뻐한 고것을 말 한 마디도. 한 번 생각한 것도 그대로 지나가지 안하고 반드시 이스라엘을 징계해서 벌하시고 난 다음에는 그것이 백 년이 됐든지 뭐 몇 백 년이 됐든지 꼭 고것을 다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희들보다 의로운 이스라엘을 내가 징계할 때에 너희들이 저와 같이 깨끗하게 하나님 법도를 지키는 백성들도 징계하니 우리에게는 그 징계가 얼마나 오겠느냐' 하고 두려워 떨어야 될 터인데 너희들이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의인들의 그 징계당하고 곤욕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였은즉 너희들에게 대한 그 보웅이 크다는 것을 말씀을 다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로 행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다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 앞에 긍휼을 입을 수가 있고. 또 우리가 하나 잘못 함으로써 우리가 잘못한 거 하나님이 벌하실 때에, 뭐 벌하는 걸 좋아했다고 무슨 거석이 있습니까만 우리를 벌하실 때에 우리 벌하는 것을 좋아하고 상쾌하게 여기고 또 아이들 말로 꼬시게 여긴 그런 심정마다 하나님께서 벌하실 때에는 아주 그 족속을 멸해 버렸습니다.
족속을 멸해 버리고 황무지를 만들었고 아주 강을 저주해서 강이 몇 해 동안 저주를 받아서 어려움을 당하고 이렇게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을 에스겔서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올바른 좋은 생활을 하면 모든 땅 위에 있는 민족이 다 복을 받고 또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 하는 걸 보고 기뻐하는 족속은 더 많이 복을 받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자들에게는 복을 주시지 아니했지 무슨 멸망이나 그런 걸 주시지 아니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들은 시대의 양심이라 성경에 말씀했고 또 그 시대의 복의 기관이라 말씀을 했고 또 저주의 기관이라고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자의 행동의 여하에 따라서 불신자와 모든 이 지구와 넓게 이 우주와 모든 것은 거기에 따라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성경을 연구할 때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얼마나 귀중히 취급하며 과연 하나님이 영원 전 목적을 정하시기를 이스라엘을 목적으로 정하시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고 깨끗하고 온전케 하는 이 하나님의 역사를 하실 것을 말씀한 것을 우리가 성경을 보고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은 복의 기관도 되고 저주의 기관도 되고 진노의 기관도 되고. 이스라엘이 잘못해 가지고 이방이 망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거기에는 망하는 중심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 의인들이 하나님 앞에 벌을 받아서 의인들이 불행을 당하고, 의인들이 망하고, 불행당하고 망하는 것은 그 의인들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불행을 당하고 망하는 것이 지당하지만 의인들이 망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을 마음에 통쾌해 여기는 그 사람들에 대한 보응을 하나님이 아주 단단히 복수를 하시는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의 행동 여하가 불택자, 음부의 지옥 갈 불택자들에게 대해서도 복의 기관이 됩니다. 믿는 사람이 잘함으로 불택자에게까지 다 은혜가 가고 복이 가고. 또 불택자들이 믿는 사람들을 범죄케 할라고 이렇게 애를 쓸 때에 그때에 믿는 사람들이 거기에서 범죄하지 안하고 의를 지키며, 의를 지키면 하나님께서 범죄케 하는 이방을 치지를 안 하십니다.
이방을 치지 안하시고. 이방을 다시 어떠한 방편으로서라도 그들도 깨닫도록 이렇게 하시고, 만일 범죄케 할 때에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이방이 이스라엘을 범죄케 하는 그 범죄를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를 하며 이방은 범죄케 하는 일에 성공이 됩니다. 성공이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범죄했으니까 고대로 보응하지만 범죄케 한 이방에 대해서 크게 하나님이 진노해서 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가정에 믿는 식구 안 믿는 식구가 있을 때에 안 믿는 식구들이 믿는 식구의 그 신앙생활에 대해서 방해를 아무리 한다 할지라도 그 믿는 사람이 그 방해를 인해서 실족하지 아니하고 범죄하지 아니할 때에는 범죄케 한 그 안 믿는 식구에 대해서 하나님의 저주가 가지 않습니다. 저주가 가지 않고. 그렇게 범죄케 할 때에 범죄하지 안하고, 안 믿는 그 식구를 위해서 믿는 식구가 범죄하지 안하고 그럴수록 신앙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 간구했을 때에 그때에 범죄케 하는, 믿는 걸 방해하는 안 믿는 식구를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신앙으로 구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은 복의 기관이요. 저주의 기관인 것입니다.
하나 예를 든다고 하면 요나가 니느웨 성에 전도하러 가라고 하나님이 파송했는데 니느웨 성에는 가지 안하고 다시스로 배를 타고 갈 때에 요나 한 사람 때문에 바다는 움직였고 풍랑은 일어났고 그 배는 큰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때에 거기에서 '뭐인가 하나님이 노여워하는 백성이 분명하니,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는 백성이 분명히 있는 것이니 여기에서 우리가 누군지 모르니까 제비를 뽑아서 이렇게 그 사람을 선출하자' 요렇게 할 때에 요나는 그 눈치를 알고 저 배 밑창에 가서 숨어 버렸습니다. 숨었을 때에 그때에. 그래도 풍랑은 여전해서 나중에는 혹 어떤 사람이 여기에 숨어 있는 사람이 없냐고 들추어서 요나를 발견해 가지고 말할 때에 요나가 '나는 과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인데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거역해서 니느웨로 가라 하는 것을 니느웨에 가 봤자 박해만 당하지 도가 안 전해질 것이라서 나는 다시스로 지금 어디 피난을 갈라고 지금 이 배를 탔었다' 하는 그 말을 자백했습니다.
자백하면서 그래도 양심가라서 '나 때문에 모든 사람이 풍랑으로 고생하니까 나를 묶어서 바다에 던지라 바다에 던지면 이 배가 잔잔할 것이다.' 그래 바다에 던지고 나니까 풍랑이 잔잔하고 배는 조용했고 요나는 고기에게 삼켜졌습니다.
고기에게 삼켜져서 요나가 고기의 뱃속에 들어갔으나 그 뱃속에 들어간 거기에서도 요나가 거기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그 사랑을. 은혜를 다시 구하고 사함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요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바다 속에 있는 그 고기를 움직여서 그 고기가 육지 가까운데 와 가지고 토해 버려서 육지에 와서 토해졌습니다. 거기에서 일어나 가지고 회개를 하고 니느웨성에 가 가지고 복음 전한 것을 요나서에 기록 한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다 상대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수가, 하수가 범죄했을 때에 그 하수에 대해서 예언을 했습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네가 이런 이런 범죄 했기 때문에 너는 어떤 보응으로서 어떻게 멸망을 받으리라, 그 모든 산들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예언하시고 또 산들에 대해서도 위로도 하시고 또 징계도 하시고 멸망도 시키시고, 모든 바위에나 강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셨고 모든 동물들에게 대해서도 동물 너희들이 하나님 백성들과 또 이 민족들이 이렇게 범했기 때문에, 죄를 범했기 때문에 너는 이 육지에서 많이 번성했으나 이 육지는 그런 동물들이 하나도 살지 못하고 하는 사막을 만들겠다 이래서 사막을 만들기도 하고 하나님께서 만물에 대해서 심판하신 것을 살펴보면 아주 엄격하게 심판하고 세밀히 심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시고 당신이 만물을 관리하시고 다 섭리하시고 기르시기 때문에 모든 만물 어떤 존재든지 그 만물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예언하시고 또 그대로 성취시키시고 그러합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에도 말씀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오늘 성신의 감화로 기도할 때에 그 기도로써 그 지역을, 그 지방을 정죄하면. 그 지방이 정죄를 받습니다. 또 그 민족을 정죄하면 민족이 정죄를 받고 또 축복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이렇게 권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할 때에 함부로 입을 열면 안 됩니다. 조심해서 입을 열지 안하면 안 됩니다.
베드로가 그 앞에서, 분명히 하나님 앞에 범죄했기 때문에 범죄한 그 삽비라와 아나니아에게 간단하게 말했지만 즉시 그 두 사람은 벌받아서 즉사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뒤에 시몬은 그보다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지었지만 베드로가 말하기를 '네가 돈을 가지고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살라고 하니까 돈과 같이 은과 같이 네가 함께 망하리라. 네가 불의에 매인 바 되고 네 속에 악이 가득 차 있다. 네가 모두 다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네 중심으로 신앙생활 하지, 네 중심으로 너를 위해 신앙생활 하지 만유의 대주재 그의 뜻을 따라서, 그분의 법칙을 따라서 네가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네 중심으로 네 사욕과 네 위주로서 하기 때문에 너는 악이 속에 가득 찼다. 불의에 매였다.
불의에 매였다 말은 사탄에게서 매였고 사탄에게서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은과 같이 망하리라 하고 나서 고대로 있었으면 즉시 망할 터인데 그라고 나서 베드로가 아차 하고 다시 돌이켰습니다. 네가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용서해 주시리라 말할 때에 그 시몬이가 베드로를 잡고 '내가 이런 죄를 자복합니다.' 나에게 이런 재앙이 이르지 않도록 해 달라고 그렇게 구했을 때에 그는 죽음을 면하기는 면했습니다.
우리는, 이래서,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창조하신 것을 세밀히 간섭해서 심판받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만물이나 곤충이나 동물이나 식물들이나 또 무생물들이나 이 무슨 산악들이나 이런 모든 멧부리, 모든 강수 바다 이런 것이 다 심판을 받습니다. 6.25 때에는 저 낙동강이 이쪽에 남한에 대해서는 크게 도움이 됐지만 이북에 대해서는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피흘린 값을 우리가 자세히 성경적으로 살펴보면, 낙동강이 피흘린 그 값을 낙동강이 얼마 동안 받고 근신하고 그 징계 기간이 지나가야 그 낙동강에 모든 생물들이 사는 것이 활발하게 살지 그렇지 않으면 활발하게 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주권하시고 관리하시고 섭리하시니 하나님과 대립이 될 때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과 다 대립이 됩니다. 대립이 됩니다. 전체 분위기가 다 그를 집중 사격을 하니까 그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대립된 자는 망하는 줄 모르고 어디서 뭐이 망했는지도 모르게 슬슬 그래 가지고 절단 나 버리고 마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축복할 때는 어디서 뭐 축복 오는 것이 뚜렷이 보이지도 아니하는데 자꾸 이렇게 축복으로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심판의 중심을 보면 다른 것의 불행을 기뻐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주 많이 노여워하십니다. 다른 것이 불행을 당했을 때에 뭐 토지라든지 무슨 참 무슨 강물이 흘러 내려와 가지고 어떤 좋은 옥토를 이렇게 떠내려 보내고 이라는 것도 그거 다 원인이 있고 심판으로 그라는데, 떠내려 가는 것이라도 제 논이 아니고 다른 토지가 떠내려 가도 그것을 보고 마음에 자비성을 가지고 '아, 저렇게 백성들에게 필요한 좋은 옥토가 저렇게 상해 나가니 참 마음에 안 됐다.' 안 된, 안 됐는 슬픈 마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께서 참 그로써 위로를 받으시고 기뻐하시고 그때에 자기 토지 아니고 어떤 교만한 부자의 토지라고 그것이 떨어져 나가는 걸 통쾌히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기뻐하시지 않고 보응주시는 것을 성경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이 천산에 있는 온갖 수목들을 우리가 다 베어다가 다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을 뭐 다 베어다가 쓸 수 있습니다. 쓸 수 있지만 한 나무 조그만한 묘목 한 개라도 우리는 잔인성을 베풀 수가 없습니다. 그걸 멸시성을 베풀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어서 우리에게 주신 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까 우리는 이렇게 사용한다. 이렇게 사용하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용되라고 하신 이 식물을 우리가 자유롭게 사용하는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에게 사용을 당해야 될 자이니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내가 복종을 해야 되겠느냐' 하는 그런 맘 가지고, 하나님이 지으신 어떤 크고 작은 물건에 대해서 항상 그 물건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오 관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오 그것을 계속 기르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언제든지 조심있는 마음 그걸 내가 사용할 때에 무례하게 사용하면 조물주가 노여워하시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양유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고 또 양을 얼마든지 잡아서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네가 어미의 젖에다가 새끼를 삶지 말아라. 어미의 젖에다가 그 새끼를 삶아서 먹지 말아라.' 고것은 고 잔인성이라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잔인성 악독성 이것을 아주 노여워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이거 뭐 화초를 좋으면 꺾을 수 있습니다. 꺾으나 그거 꺾으면서도 조물주를 생각하고 이 화초를 꺾으면서도 '네가 여기 있으면 볼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꺾어 가지고 보나 네가 자연스럽게 피어 있는 이 화초를 꺾을 때에 마음이 좀 미안하다' 하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그것을 꺾고 또 내 필요에 따라서 꺾고, 거기에서 조물주에 대해서도 상당히 자기는 조물주를 상대해서 대우하는 마음과 모든 그 초목 하나에 대해서도 대우하는 마음과 또 거기에서도 자기의 하나님의 허락받은 축복성을 가지고, 은혜성을 가지고 하는 것이지 잔인성이나 멸시성이나 그것은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를 들면 변소에 구더기가 그렇게 많이 차여 있는데 구더기가 많이 있는 걸 보고 달리는 안 되고 그게 자꾸 이와 같이 지금 사람들에게 많이 전염병을 주고 하니까 이것을 없애기는 없애야 되는데 없애면서, 없애면서도 '이게 여기에 산란하지 못하도록 방비를 하는 것이 좋았는데 산란까지 돼 가지고 한 이것을 없애는 것이 안 됐다. 그러나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기 때문에 이거는 없앤다.' 없애면서도 부득이, 거기서 무슨 독약을 치면서 없애도 없애면서, 독약을 쳐서 없애면서 이게 부득이 해서 하는 것이지 없애면서 개운하다 고시다 하는 고런 고 잔인성을 가지고 쾌감을 가지는 그런 것은 우리에게 위험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만물에서 악독성 잔인성 냉정성 또 자기의 자기만이 아는 자기 중심성 자기 위주성 이런 것을 우리가 거기에서 자꾸 제하고 거기에서 그것을 기르지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무슨 우리가 고기도 얼마든지 잡아 먹을 수 있습니다. 고기를 잡아 먹으면서 '아 이거는 나에게 주신 것이니까 잡아서 식물로 주셨기 때문에 잡아 먹는다.' 잡아 먹으면서 주님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고, 또 그 다음에 더 할라면 '너는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에 나를 위해서 지었고 나는 하나님이 지었기 때문에 내가 너를 부득이 사용하는 것이고 또 사용하도록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안하면 내가 살 수 없기 때문에 사용한다. 그러니까 너는 나에게 사용되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는 이런 말 해석 안 할지라도 그런 사람의 정신을 가지고 이래야 되지, 고기를 낚든지 잡을 때에 생명이 죽는 고것을 쾌감을 가지면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거 다 먹을 수 있지만 네가 고기를 그래 할 때에 피는 그 생명이기 때문에 먹지 마라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걸 얼마든지 먹을 수 있지만 거기에 대해서 생명을 죽이는 생명을 죽이는 잔인성을 가지지 말라는 그 말입니다. 이래서,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네가 그 피를 먹으면 내가 그 피의 값을 반드시 너에게 도치겠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암만 그걸 먹지만 고 생명을 죽이니 개운하다 하는 이런 통쾌성을 가져서는 안 되고, 부득이 해서, 그러나 고 생명을 아끼는, 생명을 아끼는 마음이나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고것을 자기로서 해서 거기에서 조물주에게 섭섭하지 안하고 조물주를 멸시 안 하고 조물주가 지어 놓은 그 어떤 생물에 대해서 그것을 멸시하면 그 멸시가 조물주에게 멸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 분은 얼마나 예민한 분이신지 한 사람 머리에 컴퓨터를 천억을 만들어 넣으신 그분이시니까 그분이 얼마나 예민한지, 사람도 자꾸 사람이 돼 갈수록 예민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둔한 사람이 모르는 것을 예민한 사람은 그 몇 십 배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떤 분이, 제가 그분을 참, 지금도 살아 있는데 성녀라고 그분의 전기를 기록하면 누구보다도 참 찬란한 전기를 기록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하고 나하고 하룻밤에 개바위라 하는 개암이라 하는 동네에 저녁 예배를 보러 가는데. 그때 여러 사람이 샀는데 마침 내 앞에 그 사람이 섰었습니다. 섰었는데, 가면서 뭘, 보니까 가다가 뭐 요리 틀어 가면 그 풀을 밟지 안하고 갈 수 있었는데 자기가 이래 가다가 그만 풀을 질끈 밟았다 말이오.
밟았으니까 뭘 속으로 구둥구둥 하는데, 안다 그거요. 구둥거리는 것을, '아이구, 이 풀 내가 널 밟아서, 널 안 밟아도 되는 건데 공연히 내가 부주의해 가지고 널 밟아서 꺾어서 죽이게 했다' 하는 좀 마음에 미안스런 죄송스런 그런 말하는 것 같애. 그래 내가 물었소. '너 이런 말 했지?' 이라니까 '예, 그랬습니다.' 그래 나무랬습니다. 너 그런데, 밟을 수 있고, 이렇게 길을 거석하는데 네가 말을 할라면 길에다 길에 났으니까 네가 밟혔는데 밟혀도 네가 당연한 줄 알아라 이렇게 하고 자꾸 지위. 지위성을 보존해야 되지 너무 그렇게 감정을 속으로 그라는 거 틀렸다고 그래 나무래기는 나무랬으나 그 사람의 그 자비성이라 하는 것은 참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 아들이, 아주 거지였습니다. 아주 거지로서, 그때는 장을 평생 담아 보지 못했고, 솥은 남 내버린 거, 밥, 밥 할 것도 없지만 혹 한 번 하면 주먹덩이 같은 이런 걸레를 이래 한 서너 개 뭉쳐 넣어 가지고 끊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서, 요새와 같은 경제가 아니오. 그때 경제를 말하면 거짓말 같습니다.
그렇던 사람인데 그 아들 하나는 장로고 아들 하나는 집사, 그런데, 지금까지도.
아들네들이 잘 사니까 그리 오라고 이래 해도 하나님이 은혜 주신 곳이니까 그 교회서 지키라 한다고 거기서 꼭 지키면서, 지금도 늙어서 그렇지만 아이들, 처음 나온 사람의 아이가 예배당에 똥을 누었다 말이오. 똥을 누면 똥 눴다고 그만 짜증을 지깁니다. 똥 눴다고 짜증지기기 전에 얼른 나가 가지고 그때 무슨 그거 있습니까? 있다 해야 찍해야 보리대밖에 없습니다. 보리대 가지고 얼른 싸서 이래 가지고 손으로 딱 움켜 가지고 다 거석하고 쏵 거석하고 괜찮다고 이래 가지고, 그러니까 의례히 그이 오면 무슨 나쁜 것은 그이가 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자비성 그런 봉사성 그런 것으로 자기를 길러서 참 한 토막으로 도 다 감동을 받을 만치. 여기 ○○○씨인지 ○○○씨인지 그런 분들은 다 아는 분입니다. 그이라고 하면, 그분은 다 자비성.
그의 봉사성, 그의 인내성 어떤 굴욕을 당해도 그저 감사하고 넉넉히 이해하고 지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무슨 고기를 마냥 낚아도 고기 낚는 그것이 먹을라고 낚는 거는 좋습니다. 먹을라고 낚는 거는 좋지만 그 생명이 그것이 잡혀서 파닥 파닥거리면서 그 생명이 죽을라고 지금 안 죽을라고 퍼득거리는 고 생명이 퍼득거리는 생명을 빼앗는, 고 생명을 낚는 생명을 앗는 고 취미에서 하는 어부 낚시질은 반드시 그에게 보응이 갑니다. 그래서, 포수들의, 포수들의 자손이 지금은 뭐 그게 통계 없지만 옛날은 포수의 자손이. 시골서는 장 삼대고 사대고 고대로 오몰하게 사니까 그걸 그 보응을 잘 본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포수의 자손이 되는 법이 없습니다. 포수의 자손이 잘 되는 법이 별로 없습니다 그거 뭐이냐? 자꾸 피를 흘리고 고 생명이 막 죽는, 죽고 구불덩이 치면 마음에 안 됐는 그 마음을 가지고, 그러나 안 됐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니까 너는 내 식물로 줬기 때문에 너거는 당연한 줄 알고 그러라고 그렇지. 고 생명 죽는 걸 좀 마음에 안타깝게 여겨서. 안타깝게 여기라 하는 것으로서 '피는 먹지 말고 피는 버리고 네가 피는 먹지 마라 그 생명이기 때문에 먹지 마라' 이랬는데. 고 생명이 죽는 것을 기뻐하는 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고 자손에게 보응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만물 심판을 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지만 우리는 조물주 그분에게 대해서 그분을 멸시하고 그분이 섭섭해 그럴 수 있는 그런 것을 우리가 하지 안해야 될 거고. 아무리 천한 만물이라도 멸시할 수 없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니까 그들 일 대 일로 하나님께서 내게 붙여 줬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내가 먹는 것이지 붙이지 안했으면 그는 날 삼킬 수 있습니다. 식물들도 사람을 삼키는 식물들도 있습니다. 열대지방에 가면 짐승이 옆에 가면 쭉 빨려 들어가 가지고 그만 들어가면 쏵 녹아 버립니다. 사람도 가면 그만 즉시 녹아 버리고, 삼킬 수 있지만, 그런 식물들을 만일 여기에다 많이 번식해 놓으면 인간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인간이 약한 것입니다. 인간이 약한 것이나 하나님께서 만물을 인간에게, 복종케 하는 자를 인해서 원치 안하는 타락한 인간들에게 복종한다 하는 것을 로마인서 8장에 기록했습니다. 만물들이 원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 성도들에게 복종되는 것을 원한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물에게 대해서나 사람의. 만물도 그러한데 사람에게 대해서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우리는 잔인성이나 악독성이나 그런 모든 월권성이나 그렇게 남을 가해성 그런 것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에 사랑하는 개를 길러뒀다가도 잡아 먹을 수 있고 또 도야지를 길렀다가 잡아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법칙에서 식료품으로 줬기 때문에 먹고 '너는 나에게 먹혀지는 것이 너희는 영광이라' 먹히는 것이 영광이지 그거 만일 병들어 썪어 버렸으면 저의 존재 목적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너의 존재 목적은 사람에게 먹혀지는 것이 너의 존재 목적에 성공인 것이니까, 네가 만일 병들어 죽어서 존재 목적에 달성하지 못하고 너는 그냥 묻어 버리고 썩어서 먹지 못한다면 너는 실패가 아니냐? 그런 중에도 의인들에게 먹히는 것은 더 행복스러우니까, 내가 이 모든 만물을 사용할 때에 내가 의인이 돼서 나에게 사용된 것은 의인에게 사용됐기 때문에 그것이 다 만물을 새롭게 할 때에 새로워져야 될 터인데 내가 의인되지 못하고 이거 먹는 것이 거석하다' 하는 그것을 우리는 좀 생각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후란시스라 하는 사람은, 그는 봉사하느라고 한 번도 자기 위해 살지를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밥은 걸인으로서 얻어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밥을 얻어다 놓고 기도하기를, 식물아, 너는 내가 먹으면 먹히고 씹으면 씹히고 내 자유 자재대로, 하나님이 내게 붙여 주신대로 그대로 본분을 행하고 있는데 나는 하나님께 본분을 행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밥을 놓고 운 그런, 다른 사람이 보고 그 사람의 실상을 전기를 써서 기록한 것을 제가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이 이러하거든 하물며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을 네가. 한 샘물 구멍에 단물과 쓴 물이 나올 수가 없지 않느냐? 이와 마찬가지로 네가 한 입으로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사람을 저주하고 또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것은 불가하다. 저주면 저주고 찬송이면 찬송이지'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을 누구든지 그에게 대해서 하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대한 하나님의 형상을 욕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독 주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만물도 이래 하거든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해를 얼마든지 받을지라도 해를 받아도 그에게 해를 주는 것은 손해입니다. 해를 받을 때에 해를 대립적으로 전투적으로 투쟁적으로 복수적으로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생존 경쟁에서 하는 것은 괜찮지만 복수성 그런 것은 안 기르는 게 좋습니다. 또, 자기가 어떻게 해도 생존 경쟁으로 하나님의 법을 붙여 가지고 이래 할 일이지, 사람들이 원수라도 죽는 것을 기뻐하는 것은 그것은 아주 자기에게 불리한 것입니다.
자기와 자기 후배에게 그게 영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물에서 하나님을 대우하고 만물에서 하나님을 멸시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대우하고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멸시하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속성대로의 그 인간성, 그 인자성. 그 화목성, 봉사성, 다른 것을 모두 다 복되게 하려는 그것을 기르는 우리들이 돼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전부 성경에 복 받는 것은 다른 사람을 복받게 하려는 그 복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이 성경이지 자기가 자기 복을 받기 위해서 하는 거기에 대해서는 합리 같은데 모순이 돼 가지고 그것이 되지를 않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라고, 여러분들이 이번에 대구 집회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 준 거, 그 은혜 준 거는 병 나은 거보다도 만유주 하나님이 '아, 너거가 지금 이렇게 가고 있는 길이 내가 인정하는 길이다' 하나님이 진노하는 길이 아니라는 거 그거 얼마나. 하나님이 우리를 진노하지 안하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너희들이 됐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신다는 그 증표이니까 얼마나 그거 기쁩니까? 저는 요번에 어느 때보다도 참 심한 기쁨도 가지고 또 심한 하나님 앞에 참 죄송스러움도 가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다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안다 하시는, 인정하신다는 이것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이것이 뭐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 큽니다. 그분이 우리를 옳다 인정하시면 그것으로 다지, 그분이 마다 하면 온 천하를 얻으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분이 우리를 아신다, 인정한다는 그 증표입니다 며칠 동안 집회하는 가운데에서 거기에서, 앞으로도 또 인제 그걸 조사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릴려고 합니다 사백여 명이 그와 같이 됐다는 그것이 도무지 그전에도 듣지 못하는 일이고 이와 같이 하나님이 큰 역사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 하나님의 말씀만 자꾸 전했는데 그 증거한 말씀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씀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또 고날 영 마음 몸의 사람의 병을 고친다는 거 그거 하나님이 아주 중요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 말씀 하나님이 기뻐 하신다는 그 증표로 그렇게 하나님이 표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번 받은 그 은혜를 쏟지 말고 조심해서 강직하고 그분은 나와 친근하고 나를 사랑하시니까 안심하고 그분을 믿고 바라보고 어짜든지 다시는 네가 죄를 범하지 마라 하는 그 말씀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어제 아침에 말한 대로 감사 생활과 성전 생활과 다시는 죄를 범치 안하는 고 생활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