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7 00:14
기쁨
1981. 10. 30. 금요일 새벽
본문 : 베드로전서 1장 5절 - 6절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지난 시간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그면 믿는 사람이 주님에 기쁨, 어떤 형편과 사정과 그 처지가 빼앗을 수 없는 그 기쁨, 십자가상에서도 기뻐하신 그 기쁨 이 기쁨은, 주의 계명지키는 데에서 이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 계명을 지킴으로 모든 것에 온전하시고 영원하시고 자존하신, '자존이라' 말은 제일 능력이 크다 말인데, 자존하신 이분이 자기를 사랑하시는 것을 완전히 믿어지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는 그 지킴을 통해서 적게 지켰으면 적게 믿어지고, 많이 지켰으면 많이 믿어지고, 다 지켰으면 다 믿어지고, 계명을 지키면 주님의 사랑이 믿어지기 때문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케 된다' 그렇게 한 말씀을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 사랑이 믿어지느냐? 안 믿어지는지 그것은 그에게 기쁨이라는 그 열매를 쾌락 이는 열매를 보아서 알 수가 있다. 사랑에 본질, 본성, 사랑에 열도, 또 사랑에 강도, 사랑에 결과, 또 사랑에 변질 그것까지 어제 아침에 말씀했습니다.
성도가 주님이 모든 것을 초월한 기쁨 이 기쁨은 계명지킴으로, 주님이 자기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믿어지므로 생겨지는 기쁨이라 그랬습니다. 내가 믿을려고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믿어지는 거, 나를 사랑하는 그분이 나 위해서 희생해 주실려고, 주실 수 있는 그런 사랑을 가지셨는데 그 능력 이하에 것이라면 그자들 그자에게는 근심이 되지 않습니다. 그이상이 되면 할 수 없지마는 주님은 완전자시기 때문에 내게 아무리 어떤 문제가 있어도 그분이 해결할 수 없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백 세난 독자를 불에 태워서 번제로 드리라해도 아브라함에게는 기쁨이 충만했던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을 다 능가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재로 사람을 만들 수 있는 그 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오히려 기쁨이 됐지 그에게는 고통이 되지를 안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이 기쁨이 우리 안에 생겨지는 데에는,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소망함으로 계명을 지킬 때에 생겨진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생명을 지킬 때에 생겨진다.
또 주님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환난을 당하나 마치 임신된 그 여인이 해산계약이 닥치면 심히 고통하지마는 고통하고 난 다음에는 새사람이 하나 나왔기 때문에 그 고통은 다 잊어버려지고 기쁨이 충만해진다 이와같이 너희들이 이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당해 고통하는 그 고통을 지나고나서 얻어지는 그 기쁨이 세상이 빼앗아 가지 못할 그런 기쁨인데 이 기쁨은 세상이 빼앗지 못할 기쁨이라" 그렇게 그 밑에 또 말씀을 했습니다.
또 오늘 아침에 봉독한 말씀에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에 그 시험을 당할 때에 시험 당하지 안할 때에 시험을 당할 때에 너희들이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한다" 이 말씀이 다같은 말씀입니다.
"계명을 지킬 때에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충만케 된다. 또 너희들이 환난 당하면 마치 임신부가 해산 기간이 이르면 그때에 잠깐 동안 고통하나 해산하고 난 다음에는 새사람이 남을 인해서 기뻐하는 것처럼 너희 기쁨이 충만하고 이 기쁨을 아무도 빼앗아 갈 자가 없다" 그렇게 말씀해 놨고, 또 여기에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해서 잠깐 동안 근심하게 되지 안할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하는 이 말씀이 다같은 도리의 이치의 말씀이고 또 말씀하기를 "등불들고 신랑을 맞이하는데 밤중이 되니까 모두 등불이 꺼져서 신랑 맞이하지 못했는데 밤중될 때까지 기름있어 등불을 들고 신랑 맞이한 사람은 그는 즐거워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이나 다 꼭같은 말씀입니다.
'기독자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가다가 어려움을 닥치는 그 어려움을 통해서 기독자의 그 쾌락을 얻게 된다' 하는 것이 꼭같은 말이오. 계명지킬 때에 하는 그 말씀이나, 또 해산 고통을 비유한 그 말씀이나, 또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해서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안할 수 없었으나' 하는 그 말씀이나, 또 '밤중에 신랑이 찾아 오는데 등불든 사람은 그 신랑 맞이해서 같이 들어가서 그 혼인 잔치에 신랑 맞이한 그 기쁨을 얻게 된다' 하는 그 말씀이 전부 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가다가 그 신앙 때문에 어려움이 온다, 신앙 때문에 어려움이 온다, 신앙 때문에 어려움이 오는 그 어려움을 통과해 가지고 기독자의 그 행복과 기쁨과 성공과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그이 머리에 쓰여지게 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절대자가, 자기를 사랑하시는 절대자가 자기를 사랑하시는 그것이 믿어짐으로서 믿어짐으로 되게 된다. 그 왕의 아내가 참 그 나라에서는 모든 게 구비한 사람이고 행복이지마는 왕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그것을 인정되지 안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가장 비천한 자가 아내, 왕 아내가 됐는데 비천한 자가 가장 행복된 자가 되어서 왕이 자기 생명도, 그 아내를 어떻게 사랑하는지 그 바치고저 하는 그런 입장에 있지마는 이 아내가 그 남편의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안 믿어서 그가 고통입니다.
그 모양으로 우리가 주님이 능력있는 사랑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의 도수가 어느정도 뜨거웠느냐? 우리 위해서 당신의 모든 소유와 모든 영광과 취미와 당신 목숨까지 날 위해서 희생한 그 최고 절정의 뜨거운 사랑, 또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당신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택해서 우리를 구원했다" 했습니다. 그 왕에 대해서 왕의 아내와 같은 그런 성질의 것인데 끝이 없는 무한하신 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믿을 때에, 그 처녀가 아주 형편없는 불쌍한 처녀인데 어떤 그 능력있는, 실력있는 그런 총각과 결혼 말이 있는데 총각 없으면, 자기는 결혼 안 되면 자기는 인간 중에 불쌍한 사람이오. 결혼만해서 그 총각이 사랑만 한다고 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그런 판에 그 총각과 결혼이 턱 됐으니까 마음에 가슴이 도근도근하게 이분이 날 이렇게 어떻게 결혼식은 했지마는 '날 사랑하나? 배척하나?' 가슴이 두근거리다가 자기를 사랑해 준다는 것이 확실히 보여지고 인정될 때에 그 여인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 기쁨, 그 기쁨과 같은 기쁨이 이 계명을 지킴으로 우리에게 생겨집니다.
계명을, 어떻게 주님이 날 사랑하는 그 사랑이 인정됨으로 그 기쁨, 그 기쁨 이것도, 계명을 평소에 누가 못 지키게 했습니까? 지키지마는 계명 지킨다는 것은 가다가 지킬 수 없을 그 어려움을 당할 때 고때 지킬 때에 이것이 성공된다 이기오. 그 말씀과, '등불들고 있지마는 밤중에 신랑이 오기 때문에 그때 등불 못 든 사람' 등불은 빛이 아닙니까? 그때에 빛을 나타내지 못한 사람, 그때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 그 환난의 절정이 올 때에 그때 계명을 지킨 그 사람이 된다 그말이오.
그것이나 아이가 없다고 남편도 걱정하고, 어른도 걱정하고, 자기도 여인으로서 결혼해 가지고 아이 못 낳는 그것이 수치겠는데 안 했으면 하지마는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가 아이가 배니까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 기쁨, 그 기쁨이 쌓이고 쌓이고 하다가 마지막에는 그 기쁨이 참 자기가 목적한 대로의 그 기쁨이요.
성공이 되는 데에는 큰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그다음에 아들을 낳든지 딸을 낳든지 하면은 그 기쁨이 충만한 것처럼 그와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으로 인해서 소망하고 기뻐하고 모든 주님으로 인한 소망으로 인해서 우리가 기쁘지요. 기쁜 것이 아, 없다가 아이를 배니까 그 자꾸 한 달, 두 달 되니 그때가 순산 날이 기다려지고 안에서 있으니까 그 기다려진다 말이오.
기다려지다가 마지막에 큰 고통의 때가 오면 크게 고통이 되지. 고통이 되지지마는 그 고통을 통과해서 기쁨이 그에게 충만한 것처럼, 우리가 평소에 주로 인해서 기쁘고 즐겁고 소망 중에 있었지마는 이 기쁨이 참 이제는 없어지지 아니할 완성된 기쁨이 되려고 하면 해산 수고의 그때가 있다 그말이오. 고통의 때가 있다 그말이오.
그 우리는, 그렇게 안 믿는 사람들은 다 그런 생산을 소망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없으면 대가 끊어졌다고 불쌍하다고 하지 안해요? 그러나 내 OOO목사님 전기 보니까 그분은 아들이 없었는데 그런 것을 생각지를 안했어. 그 양자도 줄라하니까 양자도 싫다 했어.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그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해산 고통을 통해서 아이가 나면은 기쁨이 충만해져. 또 밤중을, 밤중에는 '어둡다. 어둡다' 최고로 어두운 게 밤중 아닙니까? 그거는 악의 세력이, 죄악의 세력이 나를 괴롭히다가 괴롭히다가 괴롭히는 것이, 최고 절정으로 괴롭히는 그것이 밤중으로 비유했다 이기오.
또 "네가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해서 시험에 어려움이라" 시험칠 때는 어렵지 않습니까?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안할 수 없었으나 그러니까 근심 고통되는 그 시험이라. 근심 고통되는 그 시험이지마는 그 시험을 통과하고 나니까 그 너희 말할 수 없는, 큰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너희에게 임한다' 이렇게 했어.
그러므로 우리 기독자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을 뭣 때문에 믿느냐?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소망으로 인해서 믿으니까 믿을 때에 이 기쁨이 있습니다.
있지마는 이 기쁨이 마지막에 결실을 맺고, 이 기쁨이 절정을 통과해서 산만당을 넘어가는 것처럼 이 절정을 통과하는 그런 완성을 하는 그 완성, 그 기쁨, 완성, 쾌락, 다시는 캐지지 않을 수 없고 없을 수 없는 그 기쁨, 그 쾌락, 그 평안 그것을 얻으려고 하면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반드시 어려움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은, 신앙생활 하다가 신앙 때문에 어려움이 오면 어떻게 생각해야 됩니까? 응? 어려움이 오면 어떻게 생각해야 됩니까? 밤중이 오면 어떻게 생각해야 돼요? '아, 신랑 오겠구나!' 또 어려움이 오면 '아, 이거는 참 이제까지 이제까지 내가 생활한 이게 뭉쳐서 이것 때문에 어려움이 온다.
이제까지 뱃속에 배이 가지고 있는 이것 때문에 지금 해산의 어려움이 온다' 이것 모양으로 이제까지 신앙생활 하다가 신앙생활 그것 때문에 절정에 어려움이 오면 '아, 이제는 해산 때가 왔구나!' 요걸 기억해요.
'해산 때가 왔구나! 밤중이 왔구나! 이제는 계명을 지키면 주님의 사랑이 인정된다. 안 된다. 주님의 사랑이 인정되어지는, 인정되어지는 이 절정이 왔구나! 또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을 내가 얻을 수 있는 이 시험이 왔구나!' 이것을 사람들이 기억해야 됩니다.
며칠 전에도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자기 사정이 참 난처한 사정을 당했다.
어려운 사정을 만났는데 그 어려운 사정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거기에 대해서, 네가 그 어려움을 아예 피해 버리려고 하지 말아라. 그 어려움을 피하려고 네가 지금 '뭐, 안 가면 될 것 아닌가?' 어려움을 피해 보려고 하지 말아라. 하지 말고 따라가라. 가가지고 거기에서 어짜든지 어데까지 데이든지 그 네가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해라.
이러면 나중에 어려움을 당할 때에 '내가 그때 좀 그 어려움을 미리 피했으면 그 어려움을 절정까지 당했더라면 그 하나님의 뜻인데 그걸 미리 피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혹 어긴 것이 아닌가?' 할 때 나에게 힘이 없어서 꺼꾸러지게 된다. 네가 주님의 뜻에 위반되지 안한 것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고 또 어데서라도 신앙을 계속해 지키라.
그러면 네가 그 어려움을 당할 때에 비판해보고 평가해보면 '이 어려움은 내 주관으로 당한 것이냐? 내가 무슨 실수해 당한 것이냐? 전적 주님 때문에 당한 것이냐?' 요렇게 판단이 될 때에 '이거는 섞인 것이 없는 전적 주님 때문에만 당한 것이라' 요게 판정될 때에 너에게는 강한 능력이 온다, 이길 수 있다.
그랬는데, 그분은 그런 어려움을 과거에도 겪어서 그 기쁨의 맛을 봤는데 이번에 또 좀 얼떨떨한 것 같은데 보니까 속에 얼떨떨하지는 안해. 그 어떻게 하는가? 그 방편을 물으러 왔지 뭐 요동을 하거나 그렇들 안해. 믿는 사람은 예수 믿는 것으로 말미암아 기뻐진다. 이 기쁨이 완전히 결실을 맺고 이 기쁨이 완성이 되려고 하면 완성 전에는 무엇이 옵니까? 예? 완성전에 뭐이 오지? 이 학생? 응? 완성 전에 반드시 어려움이 옵니다.
어려움이 온 다음에 완성 전에 반드시 어려움이 와요. 어려움이 와도 이제 차차 차차 그 어려움이 도수가 높아집니다. 뭐 좀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은 이거 뭐 가정에 무엇이 있다. 또 그 사회적으로 뭐 있다. 이거보다도 마지막에 생명을 빼앗는 이 어려움이 오는 그 어려움이 오면 이 어려움에는 이제 내가 사랑하는 자가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을 내가 발견함으로 인정됨으로 기쁨 이 기쁨, 아이가 새사람이 나므로 기뻐하는 그 기쁨, 또 신랑을 맞이함으로서 기뻐하는 그 기쁨,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 크게 기뻐하는 큰 기쁨 이것이 지금 나에게 오는 것이라 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알고 요것만 등불 들고 요것만 빛을 가지고 통과하면 된다. 요기에서 내가 계명을 지키면 된다. 요기에서 내가 낙태되지 아니하고 해산되도록 요기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바라보면 된다. 엘리사가 엘리야가 승천할 때에 바라봐야 되지, 그 회호리바람으로 승천할 때에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것 같은 요것이 절정이 왔으니까 이제는 나에게 큰 쾌락과 큰 행복이 완성이 오는데,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는다.
뭐이든지 하나 가지고 이 행복을 받으려고 이 영광을 받으려고 이 성공하려고 하면 안 된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힌다. 네가 목숨 하나라고 가지고 이걸 얻으려고 하면 안된다. 이제 모든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자유나 뭐 어떤 것이 박살나도 내가 주님은 놓지 않습니다 하는 여기서 성공이 되지는 것입니다.
왜 되는가? 왜 되는가? 그것은 내가 상대하는 그분이 지극히 큰 능력을 가졌고, 모든걸 지었고,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의 주권자시고, 이분이 모든 것보다 크기 때문에, 그분과 나와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으로 인해서 그분의 능력으로 인해서 우리가 해결이 되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평소에 자꾸 말해둬야 됩니다. 평소에 자꾸 말을 해둬야 돼. 평소에 이것도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야 돼요. 그 잘못하면 환난을 닥칠 때에 이런 깨달음이 자기에게 그만 가리어지기 쉬워 가리어지면 그때 절망이요 죽습니다.
그래서 장기간의 고문과 고행을 당할때 어찌되느냐? 미리 당해본다 말이오. 불로 가지고 찌질때 어찌되느냐? 가죽을 뺏길때 어찌되느냐? 눈을 뺄때에 어찌 되느냐? 이제 꺼꾸로 팔 이래 가지고 당글아 맬때에 어찌되느냐? 그게 제일 어려울 것 같아요. 이건 지금 놓으면 안 아프니까 이 놓으면 안 아프니까 그 안 아플 길이 열려 가지고 있으니까 안 아플 길을 택하기가 쉽다.
또 네모박에 각목을 딱 모배기로 데고 그 위에다 딱 모배기 다 장갱이를 꿇어 앉혀 놓으면 이거 차차차차 뼈 가지가 자꾸 산 뼈 가지기 때문에 들어 가지고 뼈 가지가 잘라질 만침 될 때에 그런 것 또 데게 추운 것, 뜨거운 것, 목마른 것, 이 공산주의자들이 보면은 외정 일제 때 시험 그거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 그 고통 주는 데에는 아직까지 입학도 못한 사람이라. 외정 일정 때, 그러나 이 공산주의자들 이것 참 아주 성공했다 말이요. 그럴 때에 이것이 큰 기쁨, 큰 쾌락, 큰 행복, 큰 성공이 절대자와 자기와 결합되는 이 소망의 기쁨이 그때 자기에게 충만해 가지고 넘쳐야 그것이 기쁘고 즐거워 질 터인데 잘못하면은 그때에 그만 그것은 어두워지고 가리어지고서 이 환난을 이것을 벗어나야 되겠다. 어떻게 벗어나느냐? 벗어날 것만 생각하기 쉽다 그말이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자리 내두고 걸어가면 뒤에 그 자리 생각이 또 나기 때문에 자리들고 걸어가라 하는 것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자꾸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갈 것만 생각해야 되지 어쩌든지 뒤로 물러갈 것 주를 위해서 고난의 주님을 내가 영접하니까 주님을 위해서 내가 작은 고난에서 큰 고난으로, 짧은 고난에서 긴 고난으로, 자꾸 이렇게 앞으로 가야되지 뒤로 가면 실패됩니다.
아 자기가 고난을 당하면서 주님이 나 위해 당했으니 주님을 위해 당하는 것 주님으로 인해서 어두워지니까 신랑 만나겠다 그말이오. 주님으로 인해서 어두워지니까 새사람 나오겠다 그말이오. 주님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니까 어려워지니까 주님의 사랑이 믿어지는 인정되는 인정이 생겨지겠다 이거요.
칭찬과 영광과 존귀와 간이 내게 쓰여지겠다 그말이오. 이 소망을 인해서 좀 더 어려움도 좀 더 좀 더 어려움을 찾아라. 어려움을 찾으면 그 어려움이 자기에게는 기쁨과 평강이 되는 것입니다. 이 평소에 그것을 연습을 해요.
그러기에 뒤로 물러가서 어려움을 피해서 십자가의 원수로 안일을 향하면 그만 그 사람은 절단이 납니다. 이러니까 요 어려움을 당하는 요것이 우리에게는 큰 기쁨과 영광과 성공을 갖다 주기 위해서 반드시 고것이 고 어려움의 고 절정이 오는 것이니까 절정에서 이제까지 내가 소망하던 것이 성공된다 그말이오. 그 오는 것이니까 우리가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자기가 바라는 그 기쁨 그거와 그걸 전제로 하고서 그 다음에 그거 먼저오고 그 다음에 그게 오기 때문에 그 오기는 어려우니까 어려움이 한없는 기쁨과, 평강과, 쾌락 영광과, 존귀 거기에 연결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껍데기는 어려운데 나중에 알맹이 보고 보니까 한없는 쾌락이라. 이것을 우리가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왜 그래 되는가? 우리에게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나만 그렇게 생각하면 이 능력이 그까짓거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 그말이오. 또 그뿐 아니라 내가 바라보고 상대하는 그거 그분이 내게 있는 능력의 원 근본이요 원 본체라 그말이오.
그러므로 우리가 이 깨달음을 가지고 언제든지 이 지식을 가지고 자기에게 오는 어려움을 당해야 하고 자기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 하면 앞으로 어려움이 온다. 어려움이 오면 그 어려움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어떤게 이루어진다.
또 그러면 어려움이 이루지 좋은 게 이루어지지만 내게 능력 있느냐? 내속에 지극히 큰 능력이 벌써 날 중생시키고 있다. 중생시킨 능력은 성령의 능력이고 진리의 능력이고 지극히 큰 능력이 내 안에 있다. 있으니까 내가 이기려면 이길 수가 있다. 그런데 이기려고 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능력에 본체를 찾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언제든지 생각해서 그때에 이 양식을 먹어야 피곤치 안하고 이기게 됩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새벽기도를 안 나오면 시험을 못 이깁니다. 새벽기도 안하는 사람으로서는 시험을 절대 못 이깁니다. 네 과거에도 그랬고 기도하지 안하는 사람은 시험을 못 이기는 것과 새벽기도를 하지 안하면 시험을 못 이기는 것 이것이 더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