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살 것

 

1983. 11. 18. 목새.

 

본문 : 요 1:1-18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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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기본구원을 언제든지 계속 우리가 묵상하고 또 명상하고 사모하고  기본구원을 자기는 입은 자인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항상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살기를 노력하고, 기본구원을 벗는 것이 곧 죄입니다. 기본구원을 벗는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은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기본구원을 입은 자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역사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본구원을 언제나 자기는 입은 자인 것을 자기가 잊지 말고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행동해야 되겠고 또 기본구원을 입음으로 인한 결과가  자기에게 나타나는 그 결과가 자기에게 있어야 합니다. 있는 이것은 다 믿음으로  됩니다.

 그러면 기본구원을 입은 것도 자기가 입으려고 해서 입는 것 아니고 이미  절대적인 능력을 가지고 기본구원을 우리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뵨구원을 내가 입으려고 해서 입는 게 아니고 입은 자인 것을 악령이 우리를  미혹시켜서 잊어버리게 합니다.

 그러면 기본구원 입은 것을 잊어버린다고 해서 기본구원이 내게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언제나 기본구원은 입고 있지마는 내가 입었느냐 벗었느냐, 내가 지금  입어야 되겠느냐 이렇게 하는 행동은 다 자기의 심신 작용의 주관적 행위입니다.

자기 심신 작용의 주관적 행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관적 행위는 그거는 절대성 있게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고  주관적 행위는 이렇게 저렇게 형편에 따라서 변해질 수 있고 요동할 수  있습니다. 요동할 수 있는 주관적 요소가 다시는 요동할 수 없는 것으로 영원  고정되는 것이 그 현실에서 이루는 기능구원입니다. 성화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악령은 쉴새 없이 우리의 심신의 주관이라는 그 주관에게 기본구원을  잊어버리도록 합니다. 또 성경과 영감은 기본구원 입은 자인 것을 계속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이래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사람에게는 성령이 중생된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합세를 해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계속 우리  주관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심신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한다 그  말씀이 어데 있지요? 로마 8장, 로마 8장 몇 절입니까? 16절.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고난을 받는 그 댓가가 영광 받는 그 댓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광 받는 그  영광을 벗지 안으면, 영광을 벗지 않으면 세상과 마찰이 되기 때문에 고난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니고 고난을 받되 영광된  예수님의 대속의 이 기본구원을 입은 그것을 벗지 안하는 것이 그것이 귀합니다.

 자기가 고난받는 그 고난이 가치 있어서 고난의 가치로 뭐이 되는 것 아닙니다.

고난을 받되 기본구원을 벗지 안하는 것이 인제 가치 있습니다. 이래서  기본구원을 벗지 안하면 벗지 안하고 현실을 통과한 그 주관 그 심신의 기능은  영생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도 우리가 착각하면 안 됩니다.

 고난을 많이 받아야 된다, 고난받아야 된다, 연단받아야 된다 하는, 연단을  받으면 금을 불로 연단하는 불로 연단하는 불에 굽히는 것이 그것이 귀중한 것이  아니라 굽혀도 타지 아니하고 남아 있는 금이 귀한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어떤 고난이 와도 요동치 않는 그 기본구원을 자기 주관으로 인식하고 그  주관이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활동하는 그것이 귀중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한복음 1장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는 이 태초는 창세  전 영원 전을 가리켜서 태초라 말합니다. 영원 전을 가리켜서 태초라고 그렇게  말했고, 창세기 1장에 태초라고 말한 그것은 창세 전을 말합니다. 창세, 모든  창조를 하시기 전에 창조가 되기 전에 그때에 창조를 하려고 하실 그때를  가리켜서 태초라고 말하고 여기에는 영원 전, 시간이 없는 그 영원 전을  가리켜서 태초라 그렇게 표시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곧 성자 예수님의 신성을 말 합니다.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말은 곧 우리  알아듣기 쉽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인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하나님은 한 분뿐이시라. 그런데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면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는데 예수님의 그 신성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곧  하나님이시라.

 그러기 때문에 또 다른 데는 말하기를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의 본체사라  그랬습니다. 본체는 또 하나이라 이랬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뿐이신데 성부로  나타낼 때 있고 성자로 나타낼 때 있고 성령으로 나타낼 때 있고 이렇게  역사하시는 그 사역의 직책을 나타내는 때를 따라서 달라졌습니다. 다르게  나타내셨습니다.

 그가 모든 걸 창조하셨고, 그가 없이는 창조된 것이 하나도 없었고 또 그가  세상을 지었고, 세상을 지었다 말은 역사 세계를 지었다 그 말입니다. 이 천지  만물을 지었다 말이 아니고 세상을 지었다 말은 시간 있는 그 시간이 시작된 그  이후 시간과 공간과 또 사람 만물 이 모든 것이 다 합해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한, 존재하기 시작하고 존재한 그것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든 움직임 그것을  가리켜서 세상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시간이라는 요소, 인간이라는 요소 '태초'하는 것은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없을 때, 시간은 언제부터 생겨겼는고 하니 시간은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니 첫째 날이요"  하는 그때부터 시간은 시작된 것입니다. 세상은 모든 지음받은 만물이 이렇게  저렇게 움직이는, 움직이다 보니까 첫째날 됐고, 움직이다 보니 첫째날이  지나가고 둘째날 됐고 움직이다 보니까 셋째날 됐고, 이러기에 시간이라 하는  것이 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시간 있기 시작한 그때로부터 모든 피조물들이 어떨 때는 물건하고  사람하고 일치됐다가서 또 나뉘었다가 하는 것 그래서 만물이 지음을 받았고  그때까지는 만물이 지음을 받았지마는 그게 세상은 아닙니다. 만물이 지음받아  가지고 난 다음에 마지막날 사람이 지음을 받아 가지고 사람이 이제는 만물을  통치하게 되고 정복하게 될 그때부터 세상은 시작됐습니다.

 시간은 첫째날 둘째날 그때부터 시작됐고 세상은 사람이 지음을 받아 모든 것이  다 지음받아 가지고 그것이 움직일 때에, 이렇게 저렇게 작용할 때 그때부터  세상은 시작됐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누가 지었는고 하니 말씀인 그분이 지으셨습니다. 말씀은,  14절에 보면 '말씀이 이 말씀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는 이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이 사람됐다 말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때부터 세상은 있었는데 세상을 지은 이가 누구인가? 세상을 지은 이가  예수님의 신성이십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세상을 지었습니다. 또 '말씀이 없이는  지은 것아 하나도 없다' 그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이 짓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하는 말씀입니다.

 또 '자기 땅에 오되 그말은 이제 이 모든 지음을 받은 것은 자기 것이라  그말입니다. 자기 땅에 온다 말은 이 물질계를 가리켜서, 이 세상인 그저, 우리  세상은 지구 땅덩어리라 하는 여기에서 지금 호부작 거리고 있는데 지구  땅덩어리뿐만 아니라 당신이 지으신 모든 물질계 전부를 총칭해서 여기에 자기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땅에 오되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더라 자기 백성이라 말은 인간을  내실 때도 하나님이 내셨고 인간을 통치하시기도 하나님이 통치하셔서 인간의  타락도 예수님의 신성이 모든 것을 조절하시고 예정도 그렇게 하시고 창조도  그래 하셨고 모든 창조된 것을 보존도 섭리도 관리도 다 예수님의 신성이 하신  것입니다.

 '자기 땅에 오되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안한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않는다 말은  인간을 하나님이 지으시고 먹이고 입히고 통치하고 이 러는데 사람들이 영접지  아니했다. '영접하는 자' 그분을 이렇게 영원 자존자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이  시며, 창조주시며, 주재시며, 주권자시며, 모든 것을 다 섭리하셔서 역사하시는  주재인 것을 인정하고 또 이 주재가 범죄함으로 타락했을 때에 여인의 후손으로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신 그 약속을 믿고 의지해서 예표적으로 주신 그 짐승으로  제사드리는 짐승의 대속의 제물을 앞으로 실상이 나타날 그 실상의 그럼자로 한  모형으로 예표로 주신 그 제도를 지켜 행하고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줬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줬다" 하는 이 말씀은 영원 전부터 예정된  것이, 예정되고 창조된 것이 "자녀된 권세를 줬다" 그말은 이 제는 대속을  입혀서 진리와 성령으로 죽은 가운데에서 다시 그 영을 살려내시고 살려댄 영을  통해서 심신을 이 살리는 역사를 하는데 살리는 역사를 입어서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라 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본구원을 얻고 또 기본구원의 그 실력을 차차 차차 배양을 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자녀인 것을 주관으로 인식하고 주관으로 그 자녀인 것을  자기가 깨달아서 자녀로 살게 된다 하는 그것을 먈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본구원은 우리에게서는 예택이 제일 첫째 순서 인데  예택이라 말은 하나님의 목적만 정하셨고 우리는 없었습니다. 없었는데 햐나님의  목적 안에서, 목적 안에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누구 누구는 하나님이 어떤  자를 지으실 것이라, 우리가 있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없었는데 목적 안에서  당신이 예정하신 그 예정에 우 리가 들어갔고 창조하신 그 창조에 우리가  들어가서 목적 안에의 창조로 우리가 창조돼 가지고서 출생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목적에서부터 우리는 우리와의 관계가 됐기 때문에 우리 구원의  시발을 가리켜서 목적이라고 그렇게 표현을 했지 목적에는 하나님의 목적에서  예택된 그 구원 그 목적의 근원을 우리가 알아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근원은 뭐인가? 영원 자존하신 분이 홀로 계셨는데 그는 자존하신  분이 자존하신 그 모든 속성을 가지고 자존하신 그 의사로 홀로 목적을  정하시고, 목적 정하시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예정한 그때부터 모든 피조물은 예정적으로 존재하게 됐습니다. 예정적으로  존재하게 됐고 예정하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창조하실 때에 이제는 이  실존적으로 존재하게 됐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우리가 예정에도 참가했고, 또 창조에도 참가했고, 또  예수님의 대속에도 참가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목적 안에서 예정하시고  창조하신, 목적 안에서 예정하시고 창조하셔서 그때부터 그분은 우리를, 당신과  같은 자를 창조하시기를 목적했기 때문에 그때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떤 자의 아들인가? 영원 자존자의 아들이다. 우. 리를 대한  우켜의 주가 되는 하나님은 자존하신 분이요, 사랑도 자존 사랑이요, 지혜도  자존 지혜요, 능력도 자존 능력이요 뜻도 자존 뜻이라. 모든 것을 자존했기  때문에 창조도 예정도 홀로 하신 분이라. 이래 가지고 이분이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셨는데 지금 우리가 닥치는 모든 순서 중에 어떤 순서든지  그때에 예정 안 된 순서가 하나도 없고 그때,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예정하신 그  순서가 지금 나타나기 때문에 나와 상관 없는, 기독교를 반대하고 있는 저  무신론주의 그 주의가 나타나는 그 순서도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예정한 그 순서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또 그 모든 존재들도 우리 구원을 위해서 창조된 것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순서를 우리는 대할 때에 나를 위해서 우리 아버지가  예정하신 그 순서인 것을 우리가 알고 이 순서로 알고 자기가 순서로 대해  가지고 사는 것이 그것이 자기의 기본구원을 입고 사는 것입니다.

 또 모든 존재가 내 구원을 위해서 창조됐으니 우리는 어떤 존재를 대하든지 이  존재는 우리 아버지가 지었고 이 존재는 우리 구원 위해서 아버지가 지으신  아버지의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고 믿는 것이 하나님을 대 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을 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역사할 수 있고 우리가 영을 구원할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는 죽어서 완전히 기능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객관의 당신의 능력으로 우리의 영을 살렸지마는 영을 살리고 난 다음에는 우리  사람의 주체가 살아났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꾸 감동시켜서 우리가 인정할 때에  하나님은 와서 역사할 수가 있지 인정치 안하고 하는 것이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들어와 가지고 역사하지는  아니하십니다. 왜 안하는고 하니 우리를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한 자를 만드  시기를 목적했기 때문에 그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유성입니다. 자유성.

능동성, 이 능동성을 가지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제하는 것을 가리켜서 유기적  교제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순서를 볼 때에 '이 순서는 주님이 나를 당신의  목적하신 대로 만드시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예정하신 순서다.' 자기에게 어떤  일이 부딪치든지 세계에 아떤 일이 부딪치든지 아는 것 모르는 것 처음으로 들은  것 무엇을 접하든지 '이것은 다 주님이 내 구원 위해서 예정하신 순서라'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고 그대로 대해야 됩니다.

 예정한 순서기 때문에 내 구원 위해서 예정한 것인고로 이것을 대해서, 내 구원  위해서 예정했으니까 반드시 내 구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 예정이 되어 있는  그 순서요 또 어떻게 유익이 되고 내 구원이 이루어지겠느냐 하는 그것은 신앙의  자람에 따라서 잘 이해함이 차차 밝아질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래 믿으면 모순된  것이 많으나 모순된 것을 믿을 때에 그 일치되는 그것을 우리가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서 그를 생육하는 그런 아들로 하나님이 주시려고  했는데 번제를, 불에 태워서 번제로 드려, 번제는 불에 태워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이 번제인데 번제를 드리라 하니까 아브라함은 그때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아들을 주려고 했는데 번제로 태워서 제사를 드리라 하니까  '재가 사람되는, 인생에게는 하나님이 다시 부활시키는 부활이 있구나' 하는  것은 아브라함은 생전 듣지 안 했지마는 그 믿음에서 솟아나왔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부활한다는 것을 아브라함은 그 믿음에서 나왔어.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요것 믿고 이것 믿고 이 둘을 믿을 때에 이  둘로 말미암아 합치된, 그 모순 속에서 일치되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그 능력의  역사에 다시 이차 창조의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서를 당할 때에 우리는 '이 일이 어쩐 일인고?' 할 것이  아니라 몰라도 '참 이거는 이해 못 할 일이다. 그러나 내 구원을 위해서 영원 전  사랑하시는 주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시고  다시 또 피조물로 살아나기까지 하신 영원한 희생을 하시는 이 사랑의 주님이 내  구원 위해서 이것을 예정하신 이 순서라.

 이러기 때문에 이 순서는 나를 생명까지 나 위해서 주신 이 사랑의 주님이  바정하신 순서니 이 순서는 내 구원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이 예정의  순서라.' 하는 것을 우리가 믿고 상대해야 됩니다. 믿고 그와같이 상대할 때에  우리는 거기에 대한 혜택을 인어서 변화가 되어지고, 또 어떤 것을 보든지 '이것  뭐 이런 것이 어디 있을 수가 있느냐?' 그런 것이 있을 수 있느냐 하는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것도 있구나. 이런 것도 있구나. 이것도 이해 못  하지마는 하나님의 목적인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만드신  것이다.' 이것을 내게 내 구원 위해서 만드셨는데 이것은 내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이용이 되는 것인지 어떻게 활용이 되고 어떻게 해서 결과적으로 이용이  되는 것인지 그것을 자기가 살필 때에 다소 차차 알아지게 됩니다. 믿고 자꾸  믿음으로써 자꾸 내 주관을 부인하고 따라가면서 믿으려고 인정하려고 할 때에  차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는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이기 때문에,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이기 때문에 죽은 자가 보기에는 이렇게 보인다 하는 것을 많이 말해  놨습니다. 죽은 자가 보기에는 이렇다. 또 그 죽는, 죽는 것을 사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그자에게는 하나님의 도의 말씀하는 것이 다 죽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 죽이는 잘못된 지식으로 되어 가지고 있는 그자의 잘못된 그  선입적 관념과 기존 지식으로 되어 있는 자에게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 좁은  길로 보인다. 그자가 보기에는 좁은 길로 보이기 때문에 '네가 좁은 길로 가면은  산다. 넓은 길로 가면은 사망한다. 그것이 다 우리의 지식에 따라서 우리대로의  말하면 그렇다, 우리 지식대로 말하면 그렇다, 우리 보기에는 그렇다, 우리 전적  부패한 이 죄인으로 말하면 죽는 그것이 사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정도에  맞주어서 말씀하신 일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존재를 보든지 순서를 보든지 그럴 때에 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주님이 예정하시고 창조하셨고 이분이 모든 것을 보존해 가지고 순서를 지금  당신이 운영하고 계십니다. 모든 순서를 당신이 지금 그 대로 성취하고  계십니다. 주권적 의지를 가지고 예장해 놓으신 일을 주권적 능력을 가지고 지금  성취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전부 우리 사랑하시는 주님 혼자가 우리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이 샤실을 우리가 믿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은 그와 같이 할  수 있는 그는 전지자요 전능자입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전지자입니다. 전지자라  말은 우리가 모든 걸 다 안다 말이 아니고 전지자라 말은 온전한 지혜를 가졌다  말이요, 온전한 지혜, 바로 앎을 가졌다는 말인데 전지자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요렇게 알아라 요렇게 알아라 하나님이 알려 주는 대로 그대로  아는 것은 전지의 지혜대로 아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거는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아는 것은 다 전지의 지혜라,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이렇다고 말씀하실 때에 거기에 인정함으로 거기에 순응해서 인식하는  그 지식은 그것은 다 전지의 지혜대로 된 것이라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주권자시요 전능자시요 전지자시요 또 계시지 않은 곳이  없으시고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목적을 정하셨 기  때문에 어떤 순서가 와도 '이 순서는 사랑하시는 주님이 내 구원 위해서 이 순서  주셨다. 또 이 지금 독침을 가지고 나를 찌를라고 하는 이것도 내 구원 위해서  이걸 지으셨다.' 무신론을 주장하고 유 물주의를 주장하고, 지금 한국에도 이  환난이 와야 되는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는 조건 중에 한 조건은 이와같이 평안  무사하게 되 어지니까 이 잡초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잡초들.

 잡초들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성령과 진리와 십 자가의 사랑의  이 능력을 힘인지 아니한 것들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힘입지 안한 것들이  일어나 가지고,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가 뭐 이렇게 이게 기독교다 저것이  기독교다 해 가지고 이 잡종교, 기독교 중에 잡종교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교라 하면 다 하나다 하지마는 예수교 중에 적그리스도라고  성경에 말한 적그리스도라 말은 예수교가 아닌데 예수교를 대적하는 참,  예수교에 붙어 가지고-암병이라 하는 것은 자기 몸 안에 딱 붙어 가지고  떨어지지 안하고 있기 때문에 이거 암병이요 이게 문제입니다. 겉에 붙으면 싹  끊어 내버리면, 손가락에 뭐이 들면 딱 끊어버리면 되지만 안에 들어 가지고  이게 암병이라 말이오. 지금은 능해서 그것까지 다 수술해 내려고 하고 있지마는  자기 안에 들어 가지고 있는 이 적기독 거짓 그리스도 이것이 나타나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왜 이것을 내셨나? 이것 낸 것은 기본구원을 참으로  믿는 자에게는 이런 것이 문제 없어. 기본 구원을 믿는 자에게논 그런 것들어  와서 붙지를 못합니다. 그 암만 붙으려고 암만 거머쥐고, 기본구원을 얻은 자는  그 사람을 사귀려고 거머쥐고 하루 종일 봉사도 하고 한 달 내 봉사도 하고  희생도 하고 암만 해야 속에 근본 알맹이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는 빛이요 하나는  어두움이기 때문에 자꾸 그 사람과 말하는 것이 대립이 되고, 사상이 대립이  되고, 욕망이 대립되고, 믿는 게 대립되고, 의지하는 게 대립되고, 구하는 것이  대립되고, 그 사람의 가진 것이 대립되고,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기독자가 무신론자하고 암만 사귀려고 해도 기독자가 똑똑한 기독자라면 그  사람은 사귀어 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기독교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라 하는 것은 기독교 다 진수는 다  버려버리고 이 기독교에 있는 사회성만 들고 나서는 그게 기독교  사회주의입니다. 기독교 정치주의라 하는 것은 기독교의 다른 요소는 다 버  려버리고 기독교 가운데에 정치면 그 정치면만 들고 나서는 것이 기독교  정치주의입니다. 안식교라 하는 것은 성경에 다른 면은 다 내 비두고  안식일이라는 그것만 들고 나서는 것이 그것이 이제 안식교입니다. 그것 다  이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내게 알려 주시는 것, 얼마 전에 제가 '부산에 지금  무교회주의가 들어와 가지고 지금 일을 하고 있구나' 무교회주의, 무교회주의는  '교회가 뭐 이 교회라고 따로 있을 게 뭐 있는가? 모두 다 천하 있는 사람들이  다 자기 집에서 예수 믿으면 되는 것, 성경 보고 믿으면 딕는 것이지.' 그게  무교회주의입니다.

 무교회주의는 일본에서 내촌감산이라는 사람이 대학자인데 그 사람이 만들어 낸  이단입니다. 무교회주의는 이단입니다. 무교회주의는 이단인데 그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별로이 없습니다. 무교회주의, 내촌감산씨의 달콤한 그 말을  보고 그 말을 의례히 그거는 진리라 이래 생각하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톨스토이의 모든 저서에 아주 아름다운 미점, 톨스토이의 아름다운 그 저서의  미점을 보고 또 그 사람 미는 전부 도적주의기 때문에 그는 참 성자라 이래  말하는데 안에 파고 들어가면 톨스토이는 동정녀 마리아 탄생을 부인합니다.

그것 하나가 탁 틀려버리고 다른 것은 맞도록 해 가지고 사랗을 미혹시킵니다.

 무교회주의는 무교파주의가 됩니다. 무교파주의가 되고 무교파주의  무교회주의는 무교인주의가 됩니다. 무개인주의가 됩니다. 개인이 없다 이래  가지고 그거는 헤겔의 전체주의라 하는 그 철학이 들어와 가지고 미혹을 시켜  가지고 그와 같이 된 것입니다.

 이래서 함석헌씨는 무교회주의자인데 무교회주의자가 어데 와서 어떤 교회 와  가지고 강연한다 해서 어떤 학생이 나한테 와서 물어요. 꽃마을에 갔더니 와서  묻기 때문에 내가 나도 모르게,-나는 뒤에 후회가 됐어.-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말할 때에 내게 아주 그만 참 총 쏘듯이 콱 쏴는 그 사람에게 그만 아주  냉정하게 그 사람에게 공박하는 그런 말이 내게 나왔어. 내가 그 뒤에 또 회개를  많이 했어. '나는 덕이 없는 사람이다. 왜 그렇게 좀 순하게 하면 될 터인데 왜  그랬나?' 나도 모르게 그리 됐다 그말이오. 그래서 '나는 이거 화목성이 없어  이래 놓으니까 이것 뭐 가정도 이리 되고 이런 게 아닌가?' 이래서 내가 꼭 하루  반을 내가 암흑 가운데 있었어, 그렇게 말한 거기에 대해서 후회가 돼서. 암흑  가운데서 다른 사람이 보면 '저 사람 무슨 수심이 있다' 그랬를 거라. 내 마음에  내 얼굴이 빛이 없어. 근심이 가득 수심이 찼었는데 비로소 어제 오후 늦게사  이제 거기에서 호걸 반대적으로 생각할 때에 '이것을 하는 것이 내게 대해서  하나님의 사명이요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이요 진리를 증거하라 하는 것으로 큰  힘을 얻었습니다.

 이랬는데 지게 있는 그 사람에 대해서, 거기에 있는 그 교회의 장로님에 게  대해서 나는 말합니다. 그 장로님을 어떻게 봅니까?' '그 장로님은 그저  예수님을 잘 맏는 사람이요 그분은 도덕심과 사회심이 있는 사람이지.', 내가  아는 대로 그렇게 말했는데 엊저녁에 어떤 분이 와 가지고 '그 사람이  무교회주의라' 하는 것을, 누가 그러나 그 사람 생전, 그 사람은 나를 봤다  하는데 나는 '처음 봤습니다. 처음 봤는데 오증에 있는 나를 끌어 내려와 가지고  그 사람을 만나게 해 가지고 이야기하는 가운데에 '그 사람이 무교회주의입니다.

무교회주의라서 복음병원에서 나가게 됐습니다.' 나는 그 이야기도 안 하는데 그  사람하고 이야기하는 가운데에 그 사람이 나에게 또 증거를 해 준다 말이요.

'무교회주의라.' '내 말이 내가 안 게 아니라 내 속에 주님이 알게 하셔 가지고  내가 미워하는 저 아니라 고 행위 그 사상을 내가 미워하는 거 아니라 주님이  미워하셔서 나로 하여금 미움을 발표했구나 또 나는 모르고 있으니까 주님께서  이 사람을 뜻밖에 나에게 보내 가지고 그분이 그 장로가 무교회주의라 하는 것을  나에게 알려 줬구나. 그분이 무교회주의라서 복음병원에서 나온 걸 이제까지  몰랐는데 다르게 생각했는데 그분이 무교회주의라서 거기에서 나왔다.' 하는  그것을 알았고,  나는 의례히 짐작은 했어. '청십자 운동을, 칭십자 의료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상하다 이상하다' 해 가지고 그랬는데 그것이 무교 회주의에서  근거되어 가지고 나왔다 하는 것을 비로소 엊저녁에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꾸  모르는 것 알려 주셔 그래서 알지 그리 안 하면 모른다 말이요.

 이 부산에 무교회주의가 지금 일이 없고 평안 무사하니까 이런 잡 탱이들이  자꾸 옵니다. 그러나 환난이 들어닥치면 다 싹 쓸어서 없어져 버 립니다.

무교회주의는 성경대로 그래 믿는게 우리 예수 믿는 것인데 성경에는 혼자  있으면 그것이 교회됐고, 또 둘이 있으면 둘이 모이고 주일날 모이고, 서이  있으면 서이 주일 모이고, 너이 있으면 너이 주일 모이고, 백 명이면 백 명이  주일 모이고 이렇게 주일을 모여 가지고 주일 모여서 교회가 있어야 교회가  세상을 더불어 대항해 싸우고 핍박이 있지 교회 없이 다 돌아다니며 제 자유대로  하면서'나는 뭐 교회 안 나오고 나는 교회는 나는 반대다. 교회 나는 상관 없고  예수 믿는 사람이라. 나는 이런 사상과 이런 지식을 가졌다.' 하는 것이야  세상에 무신론자에게인돌 무슨 핍박이 있겠습니까? 교회를 핍박하지 다른 것은  핍박하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무교파주의 무교회주의 무개인주의 그 사람은 내가, '그 강연을 뭐라고  하더나?' 하니까 '역사 구원이 없으면 공간 구원도 없고 사회 구원도 없고 사회  구원 역사 구원이 없으면 개인 구원이 없는 것이다' 하는 그것을 가지고 말을  해서 이러기 때문에 이 전체 우주와 세계 전체를 이래 하지 교회라 하는 것은  뚜렷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전부가 다 돼야 된다.'  그 망령된 소리 아닙니까? 노아 때는 다 멸망받아도 여덟 사람만이 구원 얻지  안했습니까? 전체가 다 안 된다고 개인 구원이 없습니까? 그게 뭐이냐?  무교회주의가 나오는 것이고 또 이것 의료보험이 그런 역사라 하는 것을  엊저녁에 똑똑히 말해. 그날도 내가 말했어. 그분이 지금 그 의료보험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보기에 '다 하는 것' 이렇지마는 교인들을 설설 끌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거기 지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사탄이 하고 있는 것이고,  또 거기에서 대교회주의라고 이름을 붙여 가지고 그 교회는 언제든지 다른 데  소속도 하지 안하고 크지도 안합니다. 다른 데 소속도 되지 안하고 크지도  안하고 또 소속하려 해야 아는 사람들은 붙여주지도 안하고 이런데 거기에서  차차 그래 가지고 '이거 교회가 뭐 이렇게 뭐 크게 모일 게 뭐냐?' 대교회주의라  하면서 반대를 합니다. '교회가 몇명 삼백 명 이상 가면은 성경적이 아니다.'  이래 가지고서 하고 있는 그거나 사촌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지금 잡된 것이 어떤 것은 이리 치우쳤고 어떤 것은  저리 치우쳤고 '너희들이 이리저리 치우쳐서 하나도 쓸 것이 없다 로마서 2장에  말씀했지요. 2장입니까? 몇 장이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느니라" 3장,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 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 중심의 자는 하나도 없다, 다 이리저리 치우쳤다 하는 이것이  세상에 대해서 말한 것이요, 교회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대해서,  세상이 다 이래 가지고 뭐 이리저리 말하고 있지마는 다 하나로 바로 된 것은  없고 산 것은 하나도 없다 하는 그걸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이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말한 것입니다. 기독자 교회 가운데 하나도 없다 말 아닙니다.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이 '이제 달려갈 길 다 달려갔으니 내 앞에는 의, 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 그말은 의의 면류관이라 말은 하나님의 뜻대로 명중한 그자에게  주는 면류관이 내게 예비되어 있다 말했는데 그분이 말했는데 어떻게 이거  하나도 의인은 하나도 없다 하는 그 말하는 것은 불신자를 두고서 지금 정죄하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라 하는 것이 이렇게 지금 어지러워져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런 걸 본다면 아무래도 한번 숙청이 와서 한번 교회를 한번 깨끗하게  하나님이 한번 씻어야 되지 않느냐 하는 그것이 하나 보여지는 것 중에 이런  문제도 하나인 것입니다. 이것 보면은 과거 왜정 말년에도 이런 사람들은  신사참배에 대해서 이긴 사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신사참배에 대해서 뭐 한  사람도 이긴 사람 없어. 대항하지도 안하고. 그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이지.

그때 안 믿는 사람으로 쏙 들어가 버리면 그만이라. 안 믿는 사람으로 들 어가면  뭐 표가 있습니까? 교회 와서 딱 재적 보고 '너 예수 믿는 사람 누고?' 이럴  때에 되 어지는 것이지 그거 없는 사람은 다 아무리 해도 아무 표가 없었다  말이오. 교회에 다 교적이 다 있고 교회가 있어서 매 일 주일마다 모여서  예배보는 거기에서 핍박이 있었지 그것 없는 사람은 핍박이 없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표가 없는데 '교회 다닙니까?' '나는 교회 안 다닙니다.' '예수  믿습니까?' '예수 믿는 것 성경은 나는 보기는 보지마는 성경 안 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 아무 마찰이 없어. 교회에 핍박이 옵니다. 교회를 핍박했지  교회에 들지 안한 가입하지 안한 사람은 핍박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이 모든 잡탱이를 이것을 다 청소하는 데는 신앙이 하나도  없는 것이 마귀 일꾼이 제가 왕인 줄 알고 제가 정통이라, 제가 진리라, 제가  무엇이라 하면서 이래 떠드는 이런 모든 잡탱이를 다 깨뜨려서 멸하는 데에는  하나님께서 한번 이것 불로 가지고 한번 싹 씻어버궈면 그런 것은 싹 다 타  버립니다. 다 타 버리고 나면은 그때는 다, 너무 탔으니까 모든 사람이 다  보니까. 탔으니 제가 떠들 수가 없고 이제 그때는 신앙 있는 사람을 들어서  '이분이라야 우리의 신앙의 지도자다 뭐이다' 이렇게 말하지마는 말하고 난 지  그것 며칠 안 가서 그만 슬슬슬 차차 차차 속화돼 버리면 그런 사람은 부끄러운  그런 수치스러운 자기 자랑하고 이래 세우는 그런 것 안하기 때문에 슬슬  파묻어져 버리고 돈을 들여 가지고 세상 선 거하는 거와 같이 교회 안에서도  무슨 대가리 노릇하는 것은 자꾸 돈을 들여 가지고 운동을 해 가지고 머리가  되려고 하는 이것이 나타나 가지고 역사하기 때문에 잠깐 또 속화됩니다.

속화되면 하나님이 또 불로 연단해서 싹 씻어서 한번 깨끗하게 하시고, 또  속화되면 또 깨 끗하게 하시고.

 그러므로 더러워지면 환난이 와서 깨끗이 씻고, 깨끗이 씻고 나면은 개혁이  나오고, 개혁이 나온다 말은 옳게 믿는 사람 그 사람들을 따라서 믿는 일이  시작된다 말이요, 새로 되는 게 아니고. 개혁이 나오고, 개혁이 나온 지 좀  있으면 또 속화되고, 속화 나오면은 하나님이 불로 연단하시고, 불로 연단하고  난 다음에는 개혁 나오고, 개혁 나오면 또 그다음에 속화되고, 자꾸 이렇게  나오는 것이 교회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기도회를 시작하는 이것을 예사롭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실 것이오. 나는  요번에 거기 대해서 하나님 앞에 아직까지 진정한 그련 감사를 톡톡히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와같이 이 사람이 말하는가?' 거기에 대해 궁금하기는  궁금하고 그때 생각하기를 '이거 무교회주의가 지금 부산 지방을 삼키려고 쓸고  있구나.' 거튼거튼 윤곽은 보여졌습니다. 윤곽은 보여져. 이거 무교회주의라.

나는 또 그때 그걸 말할 때에 그것도, 그것이 청십자 의료보헙이라는 처음에  복음병원 그 안에서 시작을 했었습니다. 시작을 해서 거기에서 이제 이색이 되  어지니까 나와 가지고 따로 했는데 그때 그것을 말할 때에 나도 모르게 또 내가  실수를 했어.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실수하게 했어. 그 실수가 아니야. 그걸  할 때에 그걸 말할 때에 왜 그것 내가 그렇게 반대가 되든지? 그만 그것을  반대해서 나한테 통지가 온 것을, 통지를 전화가 오고 전화가 몇 번 온 걸  전화를 내가 받을 때에 '우리 교인들은 거기 가입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아직까지 저는 거기에 대해 이해가 안 됩니다. 안 합니다.' 딱 그래 잘랐다  말이오. 그러니까 참 못나기도 했고 도무지 융통성 없고 화목성 없는 아주 못난  사람 같이 이래 이래 되어서 그것도 마음에 고통을 느꼈어.

 그러나 이제 차차차 보니까 내가 한 게 아니라 주님이 하셨어. 무교회주의라는  이 위험한 미혹이 이 부산에 들어오고 지금 아무 환난이 없으니까 이것이  슬그머니 일어나 가지고 이제 한국 교회를 또 삼키려고, 이 모로 삼키고 저 모로  다, 이리 뜯어먹고 저리 다 뜯어먹고 나면은 알맹이 남은 게 없어. 남은 게  없어.

우리가 그러기 때문에 성경대로 믿어야 되지 성경 외에 어떤 사람을 따라서 믿는  그것 안 됩니다. 성경대로 믿어야 됩니다. 지금 여기에서는 기본구원 뭐 열  가지를 말해 가지고 이것을 믿으라는 그것이 그렇게 쉬운 줄 압니까? 가 물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가서 목사님들에게 가서 물어 보십시오. 그와같이 아는  분이 몇 분이나 있는고? 교인들 에게 가서 물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배워서 성경대로 간추려 진리를 이렇게 알려줘도 보배로 모르면  여러분들이 뺏깁니다. 보배를 보배성 그 가치성을 모르는 사람은 가치성 아는  자에게 뺏기기 마련인 것입니다. 마귀는 알고 이것을 삼 키려고 도적하려고 애를  쓰는데 우리는 그걸 예사로 여기기 때문에 뻬앗겨진다 그말이오. 기도 제목 일곱  가지라는 그 일곱 가지도 그 일곱 가지 속에는 신앙' 생활 전체가 다  들었습니다. 안 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일곱 가지만 그래 해 가지고 하면, 그 일곱 가지 그걸 하나  말이지요, '전도의 능을 주옵소서'하는 그거는 전도의 능력을 달라 말은 증인의  능을 달라 그말은 나를 볼 때에 예수님과 같이 되어서 예수님을 보지 못한 자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봤다"고 주님이 말한 것같이 나를 본 자는'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내 성화를 달라는 그말입니다. 전도의 능을 달라는 그말은. 회개의  능을 달라 말은 내가 완전히 진리와 영감으로 변화되어서 진리의 사람 영감의  사람 되기롤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 제목 일곱 가지를 그것을 그저 기억하고 하나씩 이렇게  명상하면서 그 일곱 가지를 자기가 명상하려 하면은 뭐 몇 시간도 걸릴 것이고,  며칠도 걸릴 것이고, 몇 달도 걸릴 것이고 얼마든지 걸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회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어짜든지 여기에 참석을 해 가지고  같이 여기에 동참해서 이 구원에 동참하고 하나님의 이 은혜에 동참하고 이래  가지고 우리가 앞으로 환난당할 때도 하나님 앞에 기도한 모든 사람 다 믿음의  사람들은 환난을 당하되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하지 안했고 환난당하나 기쁨으로  즐거움으로 원하는 환난을 당했지 원치 안하는 환난을 당하지를 안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금은 기도회에 참석하는 사람 삼천칠백일곱 명입니다. 어제 기도 하러 온  사람은 육백삼십오 명이고 장로님들은 여섯 분이고 권사님은 네 분이고.

어쩌든지 지금은, 언제든지 그렇지마는 돈 보고 살 때가 아닙니다. 돈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 돈이 오는 그 돈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지위와 권세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 지위 권세가 빼앗겨지면 하나님이 주신  것 아닌 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에 우연히 자꾸 지위와 권세를 줄 때는  그게 자기 지위 권세인 줄 알고 살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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