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01:20
그리스도인의 준비
본문 : 약 4:13-17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우리는 세상에 살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일도 있고 또 하늘나라를 소망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속한 일들도 있습니다. 이래서 어떤 때는 하늘나라에 속한 생활을 하고 어떨 때는 세상에 속한 생활을 하고 이렇게 이 두 가지로 갈라지는 이런 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세상 생활 하다가 하늘나라 준비 하다가 왔다 갔다가 이렇게 분주하게 날뛰면서 마음에 자책을 가지고 그렇게 사는 사람도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은 세상살이가 하늘나라 준비요 또 하늘나라 생활입니다. 또 하늘나라 생활 곧 하늘나라 준비가 그것이 세상 생활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은 세상에 속한 생활과 하늘나라에 속한 생활 둘이 있으니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 또 이것을 하다가 저것을 하고 저것을 하다가 이것을 하라 그렇게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 생활을 바로 하면 그것이 곧 하늘나라 생활이요 하늘나라 준비가 되는 것이고 또 하늘나라 준비를 바로 하면 그것이 막바로 세상일을 바로 하고 잘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과 하늘나라는 배치되는 것이 아니고 다 일치된 것들이요 또 세상과 하늘나라를 지으신 이가 한 분이십니다. 또 지으실 때의 목적이 하나입니다. 세상을 지으실 때의 그 능력이나 이치가 하늘나라를 이루는 능력이나 이치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을 버려야 하늘나라의 구원을 이룬다 하늘나라의 구원을 이루려면 세상을 버려야 된다 하는 그것은 세상을 악령이 변태시켜 놓은 그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죄악 안에 있는 세상도 있고 세상이 죄악에서 벗어난 세상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세상을 죄 아래에서 건져서 하늘나라와 일치되는 세상을 만드시고 곧 세상 생활이 하늘나라 생활 하늘나라 생활이 세상 생활, 또 세상 성공이 하늘 성공 하늘 성공이 세상 성공, 이렇게 일치되게 만드셨고 이렇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소원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 배암이 들어와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들도 변질을 시켜 버렸습니다. 사상을 변하게 시켰고, 지식을 변하게 시켰고 그 모든 인간의 속성들을 다 변질을 시켜버렸습니다. 또 이 세상도 배암이 들어서 온갖 그 배암의 법칙을 가지고 세상을 아주 꾸중크려 놨습니다. 버려 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해 놓은 것을 이것을 바로 잡아 가지고 세상을 바로 잡아 곧 하늘나라의 준비가 되고 또 하늘나라의 준비가 세상에 되어 지도록 해서 세상은 준비 기간이요, 하늘나라는 그 결과대로의 보상 주는 영원한 나라요, 지옥은 세상에서 이 조물주의 법칙에 위반된 자 들을 다 처리해서 처형하는 그 나라가 지옥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기에서 큰 번민과 복잡 고통을 믿음으로 우리가 제해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참으로 이 악령이 꾀우는 이 걸음을 걷지 아니하고 세상을 똑 바로, 세상을 지으시고 세상을 주권하시고 세상의 주인이 되어 있는 이 하나님 이분의 뜻대로, 이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이분이 교훈하신 대로 이대로 하면 이 세상도 잘 되고 또 하늘나라의 준비도 잘 되고, 이래서 세상도 평강이 되고 하늘나라도 평강이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근본 하나로 만드신 그것을 마귀가 와서 이렇게 못쓰게 꾸중크려 놓은 것을 주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이것을 바로 잡아서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오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오셨고 때가 되면 통일되고, 통일되면 주님이 재림을 하십니다.
그런데 악령이 사람이 사는 이 생명의 길은 하나뿐인데 악령이 사망의 길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많이 만들어 내 가지고 뭐 백도 천도 넘게 사망의 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래서 세상은 참 인간이 살아나가는 길이 많게 됐습니다.
세상은 너무도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 아주 많아서 복잡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이 한 길 이 길을 걷지 못하도록 벌써 이미 잘못 저질러서 정죄가 되고 또 사망 아래에 있게 된 우리들을 이것 다 주님이 대신 담당하시고 거기에서 해방을 시켜서 이제는 자유를 주어 이 생명길을 걸을 수 있도록 타락에서 근본으로 자유의 이 위치로 돌이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오신 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자유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자유를 주신다는 말은 배암이 만들어 놓은 이 모든 미혹에게 다 걸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이 길은 자유의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도 자유요, 만물 앞에도 자유요, 사망 앞에도 자유요, 영원히 자유라. 이 자유를 아무도 꺾을 수가 없고 영영히 자유인 곧 영생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는데 악령이 만들어 놓은 여러가지 사망의 갈래길이 많으니까 사람들은 거기에서 유혹을 받아 가지고 이 생명길을 걷지를 못합니다.
악령이 만들어 놓은 그 길은 성경과 대조하면 성경에 위반되는, 성경과 반대되는 그 길인데 왜 그러면 그 길을 알고 사람들이 그 길을 걷느냐? 알고 그 길을 걷는 것은 자기라는 자체가 벌써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자체가 변질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변질돼 있기 때문에 생각도 변했고, 지식도 변했고, 비판도 평가도 변했고, 인간의 속성도 변했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었던 그것이 악령의 형상대로, 또 하나님 중심인 것들이 자기 중심으로, 또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움직임으로 살 것이 자기 중심대로 움직이는 이 악습으로 살아가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도 틀렸지, 또 자체의 모든 속성들도 이 감염이 되고 동화가 돼서, 마치 베조각을 물들이는 것처럼 감염이 되고 이 속화가 되어 가지고 모두 다 변해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에게는 지식도 변했고, 비판도 변했고, 사람의 인질도 변했고, 인성도 변했고, 소원도 변했고, 욕심도 변했고, 취미도 변했고 전부가 변해졌습니다.
변해진 이것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오셔서 중생을 시키시고 또 그 지성 지공법에서 법적 해결을 지우시고 또 우리에게 중생을 주시고 생명의 교훈으로 인도하시지마는 자기에게 이미 있는 지식이 생명 지식에 정반대되어 있고 자기의 성품도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이것은 싫어하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은 좋아하고,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죄악의 취미가 있지 의의 취미가 있지를 않습니다.
세상은 이리 저리 치우치는 혼합에 취미가 있지 거룩에 취미가 있지 안하고 모든 것이 공정하고 진실한 것에 대해서는 취미를 못 가지게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들을 때에 인도하심이 우리 사람 자기의 모든 속성에도 맞지 안하고, 자기 속성에도 맞지 안하고, 자기 이제까지 경험에도 맞지 안하고, 자기의 또 이 모든 취미에도 맞지 안하고 자기의 지식에도 맞지 안하기 때문에 다 이 생명길을 걷지 못하고 사망의 길로 걸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과 진리와 우리 중생된 영을 합작해 가지고 우리에게 권고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권고를 받을 때에는 고요히 '이 진리대로 살아야 되겠다 영감대로 살아야 되겠다'는 그런 결심과 각오를 가지지마는 막상 현실을 딱 당했을 때에는 그 현실에 자기의 구습과, 자기가 이제까지 경험하고 체험한 통계와, 자기에게 있는 지식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래서는 안 된다' 하는 것으로서 이 길을 걷지 못하고 결국은 사망이 인도하는 마귀가 내놓은 그 탈선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생명길을 걷는 데에는 첫째 중요한 것이 뭣인고 하니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 옛사람은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옛사람이요 자기가 모두 변질돼 가지고 다 틀렸기 때문에 자기 지식에 맞지 않는 하나님의 지식이요, 자기 비판 견해에 맞지 않는 하나님의 비판과 견해요 평가요, 또 자기 취미에 맞지 않는 하나님의 취미이기 때문에 자기 취미에 맞지 않거든 참된 취미인 줄 알고, 자기의 비위에 맞지 않거든 참된 것인 줄 알고, 자기의 비판에 맞지 안하면 그게 옳은 비판인 줄 알고, 자기의 평가에 맞지 안하면 옳다 이렇게 여기라 성경이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지 안하면 안 된다.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서 생명길을 걸어가려고 할 때에는 여러가지 애로가 있다. 이러니까 그 애로 그것이, 애로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애로라는 것이 사망에 속한 것이 생명에 속하려고 하니까 사망에 속한 것이 애로를 받는 것이니 사망에 속한 것이 애로를 받다가 받다가 이 생명에 속하기 위해서 사망에 속한 것이 애로를 받고 생명에 속해 가지고 생명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려고 함으로써 사망에게 박해를 받아 가지고 박해를 받아서 죽든지 없어지든지 멸해져 버리면 그것이 완전히 생명으로 옮겨졌고 사망에서는 완전히 끝이 났고 거기에는 끈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죽는 것이 영원히 사는 것이요, 거기에서 떨어지는 것이 거기에서 박살되는 것이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요, 거기에서 쫓겨나는 것이 참에서 환영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으로 죽음을 이겼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겼다.
거기에 속한 것이, 거기에 속한 것이 거기에 속하지 안하고 하나님께 속하려고 하니까 이제 저거에게 속하지 안한다고 해를 하다가 하다가 마지막에 저거에게 속하지 않으니까 죽인다 해 가지고 초사를 받다가 이제 저거에게 속하지 아니하는 것으로서 더 저희들이 심문 고문할 수 없도록 그만 끝이 나 버린 그것이 이제 죽음이요 그 죽음이 다시 죽음이 침노할 수 없는 생명으로 옮겨지고 완성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세상과 하늘나라 그 사이에 살고 있는데 이 둘이 들어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이래서 이 두 사이에 끼어서 참 곤고하고 우리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내가 예수 믿는 일은 뒤로 두고 우선 이 세상 준비부터 해야 되겠다 해서 오늘이나 내일이나 아무 도시에 가 가지고 내가 이 세상 준비를 톡톡히 하겠다. 세상 준비를 톡톡히 하고 난 다음에 그 준비가 다 되고 나면 이제는 세상 준비가 다 돼서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으니까 내 영혼아 잘 먹고 마시고 이제 예수 잘 믿어 구원 준비 잘하자 이랬는데 그때가 어느 때냐 하면 그날 밤에 그 생명이 불러지는 때입니다.
그렇게 미혹을 시키는 것이 뭐냐 하면 악령이 탐심이라는 그 운동을 그 사람에게 보내 가지고 탐심이 그 사람을 사로잡아 가지고 일생 동안 그렇게 하다가 '이제는 다 됐으니까 이제는 신앙생활 잘 하자' 할때에 그 탐심이 거머쥐고 있다가 탐심이 놔주니까 제딴에는 잘 하자 했지마는 탐심이 볼 때에는 더 붙들고 있을 것 없이 볼일 다 봤고 할 일 다 했고 정력과 진액이 다 됐고 생명이 다 됐기 때문에 그날 밤에 떠날 자니까 그까짓 거야 탐심이 붙들고 있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해방된다.
그 탐심이라 하는 것은 어떤 것이 탐심인고 하니 성령의 욕심 외에 것이 다 탐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은 소원해라. 네가 이것을 소욕을 해라. 이것을 네가 아무래도 가지도록 탐해라.' 성령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것은 네가 소원해야 된다, 이 욕심을 가져야 된다, 이것은 네가 기어코라도 이루어야 된다.' 이렇게 성신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소원이 아닌, 소욕이 아닌 그 모든 것은 그것이 다 마귀가 주는 탐심인 것입니다. 탐심이 우리를 꾀워 가지고 그렇게 미혹을 시켜서 일생 동안을 망치도록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성신의 감동으로 하늘나라 있는 것도 알았고, 또 죽음이 있는 것도 알았고, 또 하나님의 심판을 거쳐서 영원한 보응을 받는 것도 알았고 이러니까 하늘나라에 대한 소식을 못 들은 사람은 세상뿐인 줄 알기 때문에 아무 양심 가책 없이 그것을 주저하지 안하고 그만 세상만 향하여 죽는 날까지 달리다가 유황불 구렁텅이로 가는 그 불택자들이지마는, 택한 자들은 벌써 이 세상이 있는 것과 하늘나라가 있는 것을 알아서 두 세계를 알았고, 또 두 지식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을 알았고, 두 소망 속에 자기가 끼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먼 데 있는 하늘나라의 것은 뒤로 두고 우선 자기 앞에 바로 닥친 그 세상 문제부터 먼저 해결을 해야 되겠다 해서 대개는 믿는 사람들이 다 이 방편을 씁니다. 뭐 우리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앉은 우리들도 이럴 때가 많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들도 번연히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서 '요 하나님의 뜻은 나중에 해도 될 것이고, 또 혹은 오후에 해도 될 것이고, 혹은 어떤 것은 내일 해도 될 것이고 우선 이 세상 일 이것이 다급하니까 이 일부터 해야 되겠다.' 해 가지고 세상 일을 먼저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될 그것을 뒤로 미루는 그런 일이 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의 전생활이 이 방편에서 속고 있는 것을 우리가 발견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얼마 동안 있으면서 나는 장사해서 이를 얻겠다 하는 그건 하나 말한 것이오. 장사하면 돈벌이 유익을 보겠다 하는 그것이요, 공부해 가지고서는 자기가 출세의 유익을 보겠다는 그것이요, 또 자기가 시험을 치고 지금은 아무래도 이 직장에서 신용 있게 보여야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직장에 충실하고 알뜰하게 일해 가지고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서 안정이 되면 그 다음부터 내가 신앙생활을 하겠다, 똑 같은 문제입니다.
아무 도시에나 가 가지고 장사해서 이를 얻겠다는 그말은 장사꾼에만 말한 것이 아니고 모든 이 세상 여러 종류의 준비하는 것은 요 한 마디로 이치는 꼭 같기 때문에 어데든지 요 이치대로 해석을 붙이면 됩니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이 방편을 취하는데 이 방편을 취하는 일에 있어서 이것을 미혹이니까 이 방편을 취하지 말라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이 가르쳐 놓으신 것이 있습니다. 첫째 가르쳐 놓은 것은 뭐인고 하니 네가 믿음의 일을 뒤로 두고 자기에게 닥친 이 세상 일을 아무래도 급급하니까 이것부터 해 놔야 되겠다. 세상 준비부터 해 놓고 이제 믿음의 준비를 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뭐 우리 전부라고 볼 수 있는 이런 어리석은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경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세상 준비를 먼저 하고 믿음 준비를 뒤에 하는 이 일은 잘못이니까 이렇게 하지 말아라.
하지 안하는 데에 제일 중요한 것은 왜 하지 안해야 되느냐? 왜 하지 안해야 되느냐? 하지 안하는 문제 중에 제일 중한 문제는 뭐이냐? '너희 생명을 너희는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렇게 우리의 생명에 대해서 우리는 도무지 그 종말 시간을 모릅니다. 우리의 생명의 끝이 나는 시간을 우리는 모릅니다.
사람들이 이것은 악으로 좇아난 것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뭐 나는 젊으니까 설마 그래도 내가 한 사십이니까 칠십만 살아도 삼십이니까 삼십 년 안 남았나? 내가 열 살 먹으니까 적어도 한 육십 년 남지 안했겠느냐? 나는 건강하고 모든 소화도 잘되고 모든 것이 튼튼하니까 그래도 몇십 년 남지 안했겠느냐?' 이것은 악으로 좇아난 것이다.
네 중심으로 좋아난 것이고, 네 주관으로 좇아난 것이고, 네 비판 평가로 좇아난 것인데 네가 네 생명에 대해서는 주권자가 아니다. 네 생명에 대해서 주권은 건강이 주권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네 건강이 네 생명을 주권하고 있지도 않다. 네 젊음이 네 생명을 주권하고 있지도 않다. 또 네 모든 부요가 네 생명을 주권하고 있지도 않다.
또 네딴에는 무슨 요새 이십세기의 굉장한 발달된 의학을 가지고 있으니까 의학이면, 사람들이 요 마귀가 들어 가지고 참람한 소리를 합니다. '사람의 생명의 이식을 시킨다. 사람이 사람에게 생명을 만들어 넣는다.' 그렇게 말하지만 그것은 다 헛말이오. 모조리 네가 참람된 말 하지 절대 안 된다. 하는, 그거야 사람의 생명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이 방에 있는 걸 저 방으로, 이 자리에 있는 걸 저 자리로 옮기는 그것이야 되지마는 그것 만든 게 아니오. 그것을 연장도 못 시킵니다. 연장도 못 시키요.
얼마 전에 무슨 뭐 모두 다 폐 이식에 뭐이 된다, 인간의 내장에 대해서 이식을 다 자유로 할 수 있다고 떠들어 쌓지마는 떠들어 쌓아야 그것이 수지 계산이 안 맞고, 이식을 한 데도 수지 계산이 안 맞고 이식한 그것이 뭐 '그래도 두 달 살았다, 석 달 살았다.' 그렇게 많은 비용 들여 가지고 두 달 석 달 살면 무슨 수지가 맞습니까? 또 그것도 이식해 가지고 두 달 석 달 사는 것도 하나님이 그렇게 살도록 허락하셔서 그렇지 저거 인간 주장대로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세상 준비를 먼저 하고 믿음 준비를 뒤로 돌리는 그 순서를 바꾼 그것을 네가 해서는 안 된다.
첫째로 네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은 뭐이냐? "네 생명의 종말 시간은 네가 모른다. 네 생명이 끝나는 시간은 네가 모른다. 그 끝나는 시간을 이런 조건 저런 조건 대 가지고 '이런 조건이 있기 때문에 얼마는 생명이 유지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하는 그것은 다 어리석은 아무 거기에 주권 없는 네가 네 맘대로 말한 것이고 주장한 것이기 때문에 주권을 가진 내가 네 말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 주권은 내게 있다. 보라." 사람이 미련한 사람은 그래 삽니다. 미련한 사람은 사람이, 미련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세상에서 보고 미련한 사람은 되는 걸 보고 삽니다. 미련한 사람은 세상에 되는 것 보고 살고 지혜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안 되는 것 보고 삽니다.
그래서 요한계시 13장에 보면은 일곱 머리 중에 하나가 상하였다가 나은 자를 보고서 그 사람들은 '이 보라, 나았다. 죽었다가 나았다. 이와 같은 자가 어데 있느냐? 이게 제일이다.' 해 가지고 세상에 더 가까이 가지마는 지혜 있는 사람들은 일곱 머리 중에 하나가 상하는 걸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가지고 하나가 상하는 것 보니까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상울라면 상울 수 있다 해 가지고 상하는 것 보고 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니 사람이 다 칠십 팔십 육십 다 사는데 그 사는 것 보고 살고 '뭐 육십 칠십 사니까 나도 육십 칠십 팔십 살 수 있다' 사는 것 보고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엊저녁에 강건한 사람이 오늘 아침에 죽었다' 그런 사람 많소. 뭐 그런 사람 수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가 여기 고려신학교 다닐 때에 아침에 일어나니까 뭐 두시두시 그래 쌓아.
'뭘 떠드노?' 이러니까 '엊저녁에 우리가 공부하고 같이 잠자리를 펴고 같이 누워 잤는데 곤해서 누워 자다가 새벽기도 가려고 일어나 보니까 빳빳하게 죽었다.' 그래 가지고 거기 신학생들이 그때 그걸 보고서 '그 참 젊은 사람도 죽는구나. 갑자기도 죽는구나.' 그런 것만 사람들이 보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그와 같이 사람이 갑자기 건강한 사람이 밤사이에 죽어 송장이 되어지니 나도 그럴 순서인지 모른다.' 죽을 그것을 보고 자기는 준비하면서 '나도 갑자기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니까 할 일을 뒤로 미뤄서는 안 되겠고, 정리할 일을 뒤로 미뤄서는 안 되겠고,' 또 자기가 언제든지 약속을 한다면 반드시 조건을 걸어야 될 것이다. '내가 내일 살면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고 끝나면 못 한다' 또 이렇게 하지마는 한 달 뒤에라도 '한 달 뒤에 내가 살아 있으면 하지마는 내가 죽는다면 못 한다.' 그런 조건부의 약속을 하지 조건 없는 그런 약속하는 것은 다 악으로 좇아난 것이며 그거는 허탄한 자랑이라, 헛된 장담이라, 헛된 주장이라 그렇게 여기 말해 놨습니다.
16절에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니라' 허탄한 자랑, 알속 없는, 아무 권위 없는, 실속 없고, 권위 없고, 진실 없는 이런 장담을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라. 왜? 생명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생명에 제가 주권이 있으면 '내가 일 년 후에 하겠다 십 년 후에 하겠다.' 하는 것, 일 년 십 년 후에 자기의 생명에 대해서 자기가 주권을 가지고 있으면 '일 년 후에 하겠다 십 년 후에 하겠다' 하지마는 오늘 생명이 끊어질지 내일 끊어질지 생명에 대한 주권은 주님이 맡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제가 생명에 대한 주권을 가진 것처럼 이렇게 제 맘대로 정해 가지고 믿음의 일은 뒤로 미루고 세상 일을 먼저 준비한다 하는 그런 어리석은 말을 하고 있으니, 세상 준비는 하다가 못 해도 세상을 떠나면 그것으로 끝나버립니다. 아무리 잘 준비해 놔도 세상을 떠나면 그것은 소용없는 게 돼 버렸고 또 세상 준비를 아무리 못했다 할지라도 떠나면 못한 그것도 소용없습니다. 못한 그것도 소용 없어. 못한 그것도 상관 없어. 아무리 세상 준비를 못했다 할지라도 떠나는 시간이면 못한 사람이나 잘한 사람이나 꼭 같습니다. 잘해 놔도 세상을 떠나면 그것 무효, 또 못해 놓은 큰 설움도 떠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
그러기에 세상 일은 준비한 것이나 안 한 것이나 세상에서 그 생명이 끝나면 끝나는 것이지마는 네가 무궁한 하늘나라의 준비는 끝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끝나면 그때부터 너는 영원을 이제 맞이해서 변치 않는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그 나라에 영원한 영원성으로 돼 있는 것이니까 준비 못 한 것도 영원하고 준비한 것도 영원하고, 또 아주 가난한 것도 영원하고 부요도 영원하고, 아주 실력 갖춘 것도 영원하고 실력 없는 것도 영원하고, 영광 있는 것도 영원하고 남에게 아주 천대 받는 것도 영원하고, 그 영원함이니까 영원함이, 이제 그것이 소용으로 봐도 이 세상 준비는 만일 하늘나라 준비하다가 세상 준비 못 했는데, 못 했는데 하나님이 생명을 불러서 간다고 하면 '하이구, 세상 준비 못 하고 이거 하나님이 불러서 가네' 해 가지고 후회될 게 없다 말이오. 못 했으면 못 한 그것으로 다 됐다 그거요.
그러나 하늘나라 준비는 안 하면 이것은 참 영원히 후회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니까 그것에 대한 생명을 봐도 네가 뒤로 미룰 수가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이 생명이 네게 주권돼 있지 않기 때문에 세상 이것 준비해 놓고 하늘나라 준비하겠다. 그렇게 순서를 바꾸지 마라. 하늘나라 준비부터 네가 해라. 생명에 자유가 없고 자기가 주권이 없기 때문에 언제가 끝나는지 모르니 하늘나라 준비부터 해라 하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회개도, 회개도 사람들은, 내나 그것도 그거요. '내가 이렇게 방종한 생활 내가 지금 이렇게 방탕한 생활도 이제 일 년만 방탕한 생활 더하고, 또 몇 달만 방탕한 생활을 더하고-회개는 제게 아주 제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인 줄 알고-그러고 난 다음에 내가 회개하겠다.' 하는 그런 것도 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람이 번연히 자기 마음에 아닌 줄 알고도 아닌 줄 아는 그 죄도 '이걸 회개는 하기는 해야 될 터인데 이번만 내가 범하고 요 다음에 회개하겠다. 이번만 범하고 내가 내일 회개하겠다. 이제 일 년 동안만 범하고 회개를 하겠다.' 이렇게 죄에 대해서 회개도 뒤로 미루는 것은 참 위험한 것입니다. 참 위험합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회개라는 것을 주실 때 회개하지 제가 언제든지 회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죽는 사람 많이 봤는데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회개를 하고 믿음 준비를 하던 사람들은 중병이 들어 가지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지니까 그 사람은 자꾸 회개합디다. '이거 내가 조그매만 더 살았으면 내가 고쳐서 한번 살아볼 터인데 내가 이런 것도 회개를 못 했는데' 자꾸 회개를 하지마는, 세상에서 회개하던 사람은 회개가 돼지는데 회개를 뒤로 미루던 그런 사람들은 보니까 회개할 여지가 없이, 세상에 과거에 살 때도 세상 일이 다급해 가지고 회개하지를 못하고 회개할 여가를 얻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죽을 때도 보니까 그렇습디다.
자기에게 뭐 급한 것, 아픈 것, 또 이 세상에 죽으면서 뭐, 죽으면서 물질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여수 거래, 돈 받을 것, 또 자식에게 뭘 못 넘겨 준 것, 또 자기가 뭐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못 견디는 것, 세상 물질을 두고 가려 하니까 원통해서 물질에 대해서 기가 막히는 것, 이러니까 어떤 사람들이 너무 재물을 쓰지도 못하고 자꾸 모으기만 하고 있다가 죽게 되니까 기가 막혀서 돈을 좀 가져오라고, 돈을 가져오니까 지화보다는 돈을 뭐 오십 원짜리라던가 뭐 십원짜리인가 그 까끌까끌한 그걸 이렇게 한 입 입에다가 먹다가 캑 거리며 죽었다고 그 어떤 내가 강사가 하는 말 들었는데.
그 사람들은 죽을 때도 보니까 이런 복잡 저런 복잡 때문에 회개라는 것 생각을 못 가집디다. 세상에 평소에 회개를 즉시 즉시 회개를 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은 그 중병이 들었어도 보니까 아픈 것이 뒤로 가고 자꾸 회개를 할 수 있습디다. 아픈 것이 뒤로 가고 그 회개를 앞세우고, 세상 모든 문제를 뒤로 두고 회개가 앞서지마는, 세상에 살 동안에 세상 것을 앞세우고 회개를 뒤로 둔 사람은 아파서 죽을 임시도 회개를 못 합디다. 회개를 못 해요.
이러니까 우리가 이 회개하는 것을 뒤로 미룬다는 것 이것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회개를 그저 우리가 말 한 마디로만 되는데 '주여, 이것 내가 잘못됐습니다. 사유해 주옵소서.' 하면 그것이 사유함을 받고 영원히 그것이 하늘나라에 가서 회개한 죄로 나타납니다. 회개한 죄로 나타납니다.
회개한 죄로 나타날 때에는 회개한 죄는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죄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죄로 나타났을 때에 아무도 그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대속을 믿음으로 그 공로로 인해서 의를 얻지 그 공로 아니면 의를 못 얻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믿은 그 죄를, 예수님의 대속을 믿은 죄인을, 예수님의 대속을 믿은 그 행사를 누가 정죄하지 못합니다.
정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거는 단번에 되어지는 일이지마는 내가 회개를 뒤로 미루고 자기가 '얼마 동안만 내가 이 죄를 짓고 하겠다.' 방탕한 생활, 노름 생활, 술 먹는 생활, 담배 피우는 생활, 또 우상 섬기는 생활, 자기가 음행하는 생활, 도적질하는 생활, 입술을 못쓰게 날뛰는 그 생활, 뭐 일계명으로 십계명까지에 모든 그 죄를 회개할 것을 즉시 안 하고 뒤로 미루지 맙시다. 왜? 그날 밤에 불러갈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이 기도하는 것은 밤에 잘 때 기도하는 것은 그걸 다 빠지지 안하고 기도하는 줄 압니다. '주여, 오늘 저녁에 주님이 부르실지라도 내가 주 앞으로 가야 되는데 오늘 저녁에 주님이 부르시면 내게 혹 회개에 미진한 것이 없습니까? 내가 주님 앞에 지금 고하면 사유함을 받을 터인데 회개에 미진한 것이 없습니까? 오늘 저녁에 주님이 부른다면 회개에 대해서 미진한 것이 없습니까? 또 다른 사람과 내가 지금 어두워 가지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과 무슨 거래에 내가 책임을 짊어지고 무책임자로 세상을 떠나버리면 그 사람에게 내가 피해를 끼치고 가해를 해를 끼친 사람이니까 무슨 사람과의 관계에 이렇게 오늘 불러도 아무 미결된 것이 없이 다 해결이 돼 있습니까? 그런 것이 있으면 나에게 알려 주옵소서.' 또 금전 거래로 다른 사람에게 혹 내가 다 갚지 못했을지라도 그 사람에게 언제 떠나도 으례히 그거는 그런 줄 알고 뭘 담보를 했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기 전에는 갚겠는데 내가 죽으면 할 수 없다' 하는 그것을 그리라도 해결을 지워 놔야 될 거라 말이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죽으면 내가 못 갚는다.
내가 살아 있으면 갚을 터이니까 내가 죽으면 못 갚으니까 내가 살아 있으면 받는 것으로 하고 내가 죽으면 그때는 원망 불평을 하지 말아라. 내가 죽으면 못 갚는다.' 돈이 없으면 그래라도 해결을 짓고, 무슨 인인 관계나, 도덕 관계나, 윤리 관계나, 또 가족들에게 대한 것이나 뭐 어떤 것이라도 우리는 회개할 것, 또 자기가 해결지워야 될 것, 그 미결을 두고, 미결을 두고 밤을 새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밤에 자다가, 제가 성 테레사라 하는 성녀의 전기를 제가 보니까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대해서 원망할 것이 생각나고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기대한 것만치 기대에 응해 주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자기로 인해서 원망하고 낙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밤에 자다가 그게 생각이 나서, 밤에 자다가 생각이 나 가지고서 자기가 아무리 자려 해도 잘 수가 없어서 자다가 생각이 나 가지고 일어나서 그 사람에 가 가지고 그것을 해결을 짓고 와서 누워잤다고.
그런 사람들은 보면 다 성경 말씀을 믿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언제 네 생명이 끝날 시간인지 모르기 때문에 너는 무슨 일이든지 즉시 하고 뒤로 미루지 말아라. 금전 관계도 뒤로 미루지 마라. 네가 돈이 없어서 해결을 못 지우면 돈 없는 자로 네가 오늘밤에 죽어도 그 사람에게 대해서 서로 알고 해결을 짓고 가는 자로 가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그말 할 때 '내가 살아 있으면 이것 저것을 하겠다.' 그래 대략 약속할 때에 '내가 그때 살아 있으면 내가 하겠다' 요 소리는 박해서 못 하면 혹 그래 말합니다. '내가 그때 이것을 할 수 있으면 내가 하겠는데 혹 할 수 없을지 모른다.' 혹 설교에 대해서도 '이 설교를 뒤에 계속하겠다. 그러나 계속하겠으나 하나님께서 계속하실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시고 시간을 주시면 계속하겠다' 하는 그말은 그 속에는 언제 하나님이 생명을 부를지 모르니까 약속해 놨다가 생명 부르면 헛일이니까 하나님이 살려 두시면 이것 저것을 하겠다는 그런 약속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슨 일이든지 우리는 우리 생명이 오늘이 끝인지 모른다는 것 오늘 꼭 죽는다는 건 아닙니다. 오늘이 끝인지 모릅니다. 몇 십 년까지 살런지 그것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몇십 년까지 산다고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성경에 말하기를 '이거는 다 허탄한 자랑이라. 허탄한 주장이라. 허탄한 말이라. 네가 오늘밤에 생명이 끝날지 모르는데 네가 어떻게 며칠 후, 몇 달 후, 몇 해 후라 하는 것을 네가 지금 약속을 하느냐? 이것은 다 악으로 좇아난 것이다' 네 중심에서 이래 하는 것이지 주권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데 네가 아무 주권 없는 네가 이렇게 '이렇다 저렇다. 내 생명은 이렇다 저렇다' 하는 그것이 다 공연히 실력 없는 말, 진실 없는 말, 책임 없는 말, 실상 없는 말하는 말이니까 이렇게 하지 말아라 말씀했습니다.
요것을 우리가 믿읍시다. 우리 생명은 오늘이 끝인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라는 것이 이것이 손해인 줄 알고 '사람이 얼마든지 살 줄 알고 이렇게 해야 되지 언제 죽을지 모른다면 낙망이 돼 가지고 되겠는가?' 이렇게 말하지마는 그것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은 생명에서 살면서 죽음의 미래를 보면서 살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이 시간 지금 살아 있다. 그러나 다음 시간에 죽는지도 모른다. 생명이 있어 살면 다음 시간은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다음 시간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을 믿지 마라. 다음 시간을 믿지 말고 내일을 내 날로 믿지 마라.
주님이 '오늘 일을 오늘하고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아라. 한 날의 괴로움이 그날에 족하다.' 그말은, 당일치기로 살라 그말은 내일은 네 날로 생각지를 말라는 그 말씀을 거기에다가 암표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생명에 대해서 이렇게 우리의 생사관에, 죽고 사는 생사관의 경계를 이렇게 성경이 보고 살라고 하는 요것이 바른 가르침입니다.
요렇게 살 때에 우리는 자기가 생명에 얼마 주권이 있다고 생각한 그 강퍅의 모든 죄악이 끝납니다.
죄악이 없어지고 또 자기가 생명을 자기 주권에 있다고 생각해서 부리는 강퍅도 끝나고, 모든 헛된 장담도 끝나고, 헛된 욕심도 끝나고, 우리가 필요 없는 것은 다 끝나고 '내가 내일 죽을지 모르니 내일 죽어도 내일 죽을지 모르니 오늘 이 일 해야 되겠다.' 내일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해야 될 일만 우리가 하고, 또 내일은 내일 죽어도 해야 할 일만 하고, '내일 죽을 줄 모르니 오늘 아무래도 이 일을 해야 되겠다' 하는 이 일만 하고, 또 '내일 죽는다 할지라도 이 일은 해야 되겠다' 하면 하고, 이래서 반드시 오늘 할 일은 내일 내 생명이 없어지고 내 생명이 내일 끝나도 해야 될 일만 우리가 하고 안 해야 될 일은 안 하고, 내일 죽을지 모르니 오늘 할 말은 한다 하는 것은 하고, '내일 죽어 심판 앞에 갈 것이니 내가 이러면 할 것이 뭐 있느냐?' 하는 그런 것을 하는 것은 다 지나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렇게 살 때에 우리의 할 일은 바로 됩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모릅니다.
그러기에 그 다음에 말씀하시기를 15절에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도리어 우리는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할 것이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는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이면 이것 저것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게 하시면 우리는 하루 더 살 수 있습니다. 또 십 년 살게 하시면 십 년 더 살 수 있습니다. 나는 금년에 나이가 칠십네 살인데, 칠십네 살인데 하나님이 백 년 살게 하시면 또 백 년 살 수 있습니다. 하루만 살게 하시면 또 하루밖에는 못 삽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생명에 대해서는 주님에게 주권이 되어 있는 것이니까 주님에게 주권돼 있으니 이 주님의 주권을 침해하지 말아라. 네 생명에 대해서는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는데 네 생명에 대해서는 네가 네 주장대로 이렇다 저렇다 해 가지고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을 계산하면 계산은 다 파괴되고 만다. 모든 일이 계산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네가 네 생명을 네가 주권하고 있는 양으로 계산을 하면 모든 계산이 틀린다.
또 네가 요것을 해 보겠다 조것을 해 보겠다 이렇게 말하지마는 경영은 경영은 사람에게 있지마는, 경영은 사람이 하지마는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인간이 아무리 하려고 그래 날뛰어도 하나님이 되게 하셔야 된다. 이러기 때문에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의 이루시는 하나님의 주권도 네가 침범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이 생명의 주권도 침범하지 말고 모든 매사에 이루는 모든 매사에 주권도 주님이 주권하고 계시는 것인데 주권의 주권을 네가 침해하지 마라.
침해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이 네 현실에서 하나님이 이것 하라 하면 이것 하고, 저것 하라 하면 저것 하고, 하나님이 지금은 살려 두시니까 산 자로서 해야 될 일을 하고, 또 하나님이 언제 부를지 모르니까 부르시면 가고, 이렇게 모든 생사와 모든 일에 이루는 그것을 주님에게 주권을 맡겨 놓고 살아라. 그래야 네가 헛된 장담으로 참람되지 안하고 하나님 앞에 망령되지 안하지 그렇지 안하면 헛일이다,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것을 압시다. 우리가 모든 일을 하는데, 모든 일을 하는데 하나님이 그 일에 대해서 혼자 이루십니다. 안 믿는 사람이나 믿는 사람이나 우리 앞길에 일을 그분이 이루십니다.
그분이 이 일을 이루어서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성공이나 실패나 당신이 주권적으로 이루는 일인데 인간이 거기에서 아무리 제가 이것을 세우고 싶다고 해 가지고 서지는 것도 아니고 깨뜨리고 싶다고 깨뜨려지는 것도 아니고 그분의 주권대로 이루어집니다.
이런데 사람이 세우니까 서졌다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들로 세우게 하셔서 서진 것이지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그 일이 이루어진 것이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이 만 가지에 좋고 나쁘고 신불신자에 모든 일이 주님이 거기에 대해서 예정한 주의 뜻대로 그대로 착착 이루어 가는데, 이루어 가는데 사람은 공연히 덤빕니다. 공연히 덤벼 가지고 하나님께서 제게 제가 좋아하는 일을 이루어 놨는데 제가 좋아하는 일을 이루어 놨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제가 했다, 누가 했다, 뭣 때문에 했다, 영광은 하나님에게 돌리지 딴고 딴것에 돌리니까 좋은 것이 이루어져도 죄짓고, 좋은 게 이루어져도 죄짓고. 또 나쁜 것이 이루어집니다. 나쁜 것이 이루어지면 또 '이것 누구 때문에 그렇다' 원망 불평 낙망으로 또 죄짓고.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쭉 이렇게 당신이 해 나가는 그 일에 준해서 사람이 믿음 없는 사람은 좋아도 죄짓고 나빠도 죄짓고 이래도 죄짓고 저래도 죄짓고 자꾸 망하는 일, 그 현실을 통해서 망하는 일만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이에게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해 주시는 줄 알기 때문에 좋은 일이 닥치면 하나님께 감사해서 또 그에게 의가 이루어지고 또 아주 불행스러운 일이 있으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이런 일 해 주시는 것 보니까 내가 무슨 회개할 것이 있는가? 또 이것 무슨 잘못이 있는가?' 이렇게 또 생각해서 회개해서 그 사람이 그로 인해서 또 유익을 도모되는 그런 사람도 있고, 아주 정말 믿음이 장성한 사람들은 거기에 있지도 않습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이 와도 '이 좋은 것을 뭣 때문에 주셨느냐? 이 좋은 것이 이것이 좋은 것이 좀 있으면 과거가 되어지고, 좀 있으면 이것은 미래의 무한한 미래의 원인이 되어지는데 이 현재의 좋은 것 이것이 미래의 어떤 원인이 되어지겠느냐?' 벌써 현재로서 미래의 원인에 어떤 원인이 되어지겠느냐 그것을 보고 하나님에게 간구하고 노력을 해서, 그러기 때문에 이 현재라는 이것이 지나가는 것인데 지나간 과거가 되면 그 모든 것이 저 미래 영원 미래의 원인이 되어지도록 이것을 개조를 합니다.
그것이 뭘로 개조가 돼지느냐? 개조가 되는 것은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라' 다 주께 맡겨버리라 하는, 주님에게 맡겨버리는 이것을 가지고 자기가 현재 닥치는 일은 다 하나님의 인도대로 이와 같이 하는 것이 현실을 맡기는 것이요, 또 그게 그럴 때 맡길 때 인간이 볼 때는 아주 불행 중의 불행으로 온 그것도 주님의 뜻대로 해서 불행으로 왔으면 그것을 주님에게 맡겼기 때문에 그것이 영원 무궁에 어떤 그 재료로 어떤 원인으로 사용할런지 모릅니다. 어떤 원인으로 사용하련지 모릅니다.
사람이 비상은 먹으면 죽는다 하지마는, 비상은 먹으면 죽는 독약이라고 하지마는 그 비상이 요긴한 데에는 또 요긴합니다. 그 비상이 아니면 치료가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 요리하시고, 가공하시고, 모든 것을 조화하시고, 오든 것을 화합시키고 이렇게 당신이 전지 전능으로 하시기 때문에 이제 어떤 불행이 어떤 행복이 될런지 그것 모릅니다.
우리가 볼 때에 참 베드로 같은 그런 사람도 세 번 부인한 그것이 그에게 큰 행복이 되어졌습니다. 또 다니엘이 그때 사자구덩이 들어갈 때는 천하 인간이 하나님 믿어야 소용없다고 했지마는 그것이 얼마 후에는 좋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맡겨 놓고, 조부라운 생각을 가지지 말고 자기 주관대로 모든 것을 해석하고 계획하고 비판하고 평가하지 말고 그분을 든든히 믿어야 됩니다. 그분의 사랑과, 그분의 진실과, 그분의 절대적인 능력을 든든히 믿고, 약속을 든든히 믿고, 그분을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그분에게 순종으로 뿍뿍 걸어갈 것입니다.
우리에게 대한 일은 '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버리라' 말은 내게 대한 일도 주께 맡기라 그말이오. 내게 대한 일도 주께 맡기고 또 내가 할 일도 주께 맡기라 그말이오. 또 내게 당할 뭐 좋은 일 나쁜 일 무엇이든지 내가 생각할 일도 내가 생각하지 말고 주께 맡기라. 내가 머리 쓸 일도 머리 쓰지 말고 주님에게 맡기라. 내가 근심할 일도 근심하지 말고 주께 맡기라. 내가 지금 책임져야 될 그 일도 책임지지 말고 주께 맡기라.
내게 대한 것, 내가 행동해야 될 내 행동 모든 것, 내 의무 책임 내 모든, 모든 것, 내게 관련된 모든 것 모조리 그런 것을 다 말해서 '너희에게' 염려라 말은 네가 생각하고 네가 해야 될 모든 일을 다 주께 맡겨버리라.
맡겨버리고 '너는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절대자인 그분이요 변치 않는 그분이시니까 그분에게 다 맡겨 놓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만 너는 하라. 사는 것이나 죽는 것이나,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그분에게 맡겨 놓고 그분이 잘하기 때문에 '사는 것은 좋지만 죽는 것 이것만큼은 조금 변동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 말아라. 그분에게 다 맡겨 놔라.
그분이 전지 전능 영원을 가지고 아시는 분이 네게 가장 좋게 이래 하는 것이니까 그분에 맡겨 놓고 그분이 시키는 대로만 그저 뿍뿍 순종해라.
순종하면 '때가 되면 너를 높이시리라' 이제 너를 만들 때에 네게 필요한 것을 선후를 알아서, 고칠 것이 먼저면 고칠 것 먼저, 치료할 것이 먼저면 치료할 것 먼저, 또 갖출 것이 먼저면 갖출 것, 이와 같이 순서도 틀리지 안하고, 구비성도 틀리지 안하고, 모든 조립성도 틀리지 안하고 전체를 그 전지 전능의 사랑의 주님이 네게 대해서 모든 것을 아셔 가지고 잘 해서, '때가 되면 높이시리라' 차차 차차 그리 해서 네가 조금씩 나아지는 길로, 높아지는 길로, 온전해지는 길로, 네 전부는 모든 면으로 향상되고, 전진되고, 승격되고, 점점 온전해지고, 점점 온전해서 네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어깨에까지, 예수님과 이 어깨겨룸을 할 수 있는 데까지 자라가라. 자라가라 그말은 하나님이 주시는 이 은혜를 맡기고 순종만 하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 뭐 해 놓고 하겠다는 그런 망령된 생각 아주 회개합시다. 또 우리 생명이 얼마나 살아 있을 것이라 하는 그것도 회개합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기독자는 삶에서 '나는 살았다' 거기에서 살면 안 됩니다.
'나는 죽는다' 거기에서 살면 안 됩니다. '나는 살았다' 산 것과 죽는 그 경계속에서 살아야 됩니다. 살았다는 이 삶에서 살아 있는 산 것과 앞으로 죽는, 산 것과 죽는 경계에서 삽니다. 여기에가 우리가 살 장소입니다. 우리가 설 자리입니다.
또 우리는 죄인의 자리에 섭니다. 우리가 설 자리는 죄인의 자리입니다. 항상 우리는 죄를 깨달아서 회개하고도 또 죄, 자꾸 죄를 찾아서 죄에만 서십시오.
죄라는 죄에만 서 가지고서 옮기지 말고 죄에 서 가지고서 해결하고, 또 죄가 없으면 어서 죄를 찾으십시오.
이래 가지고 우리는 죄의 자리에, 죄라는 그 자리에만 서서 있을 자리가 우리 자리요, 산 것과 죽은 것의 경계속에 있는 것이 우리의 설 자리요, 우리는 항상 '부족한 자다, 나는 만삭되지 못해 낳은 아이와 같다 나는 모든 게 부족하다.' 제가 부족한 것을 알아서, 나는 정말 부족한 것을 알아서 부족한 자로 살 때가 살았지 제가 부족하지 안하고 뭣이든지 '나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은 며칠 안 가서 반드시 넘어집니다. 넘어지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우리는 부족한 자를 발견해 가지고 부족한 자로 섰는 것이 내가 섰을 자리요, 죄인으로 섰는 자리가 내가 섰을 자리요, 당신에게 지금도 얻지 안하면 안 될 그 간구의 자리에 섰는 것이 우리의 설 자리라.
우리가 서서 있을 자리요, 죽음과 이 삶의 그 경계선에서 있을 자리가 우리의 설 자리요, 지금도 그분의 명령을 기다리면서 그분이 시키시는 대로 해야 이 죄가 치료가 되어지겠고, 이 연약이 치료가 되겠고, 이 부족이 치료가 되겠고, 이 모든 잘못 저질러 놓은 것이 치료가 되어 지겠고 그분의 인도대로 해야 내 소원하고 소망하는 것이 다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신에게 항상 소망하는 그 소망에 서서 살아야 되겠고, 또 간구하는 간구에 서서 자라야 되겠고, 죄의 자리에서, 무익한 부족한 자리에서 무능한 자리에서, 생명과 사망의 경계속에서 요게 우리가 설 자리입니다.
이 자리를 떠날 때에는 우리는 망령입니다. 그 자리를 떠나면 반드시 그뒤에는 불쾌가 올 것이요 그뒤에는 불안이 옵니다. 이 자리에 섰을 때에는 반드시 위로가 오고 평강이 옵니다.
이 자리를 떠나서 있을 때에는 아무리 좋아도 반드시 그 뒤에는 허젓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공허의 감이 올 것이요,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무엇인가 그 영혼이, 영이 울고 있는, 영이 울고 있고 혼이 울고 있는, 영과 혼이 울고 있는 그것을 자기의 심신이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다 믿읍시다. 말씀하신 대로 다 믿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그 말씀대로 가고 말씀이 서라면 서로 꼭 말씀대로 우리는 한번 살아봅시다. 말씀대로. 거기에가 우리의 영생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