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6 01:16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연성
1980. 3. 21. 금야
본문: 빌 1 :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과 모든 역사 중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사람들과 모든 역사들은 다 악령의 것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물질계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들에게 정복의 권세와 통치의 권세를 맡겨 주신 것인데 악령의 미혹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악령에게 패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악령의 것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상관이 없다고 하신 그 세상 임금은 세상의 통치권을 가지고 있는 악령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3가지는 악령이 통치하고 있는 악령의 권세 아래에 있는 것이고 한분 하나님 만이 악령을 탁월해서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에 살 때에 사람이나 만물이나 세상에 있는 이런 저런 모든 일들에게 속한 사람은 벌써 악령의 통치를 받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물질을 사모하고, 또 사람을 주로 사모하고, 일들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잊어 버리든지 하나님을 다음으로 상대할 때 벌써 악령의 통치를 받은 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전하지 아니할 때에는 벌써 악령에게 속했고, 악령의 통치를 받고 있는 자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접하되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세상을 접할 때만 그 사람은 악령의 세력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보다 세상 무엇이든지 먼저 생각하고, 크게 여기고, 좋게 여겨 하나님보다 앞서 접할 때에는, 접선 될 때는 벌써 악령의 통치를 받고 있는 때입니다. 이 악령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에게 우리의 모든 것을 쓰도록, 투자하도록 하기 위해서 쉬지않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일생동안 돈이나 어떤 사람이나 인류나 역사의 권세들이나 무엇이라도 일생동안 여기에 기울여서 사는 것을 벌써 악령의 것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보다 강한 악령의 미혹은 우리 믿는 사람들까지도 세상을 위해서 살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기에 일생동안은 세상에 있는 것만 사모하고 이것만 위해서 살다가 가는 사람이 불신자로서는 다입니다. 마음도 성공도 뜻도, 생각도, 지혜도 힘도, 다 기울이고 남은 찌꺼기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심히 많습니다.
이것은 자기 혼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강한 악령의 미혹에 정복력에 정복을 당해서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비유컨데 하나님과 인간과 만물과 모든 운동이 4가지로 된 토지에 심기워진 식물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에게 뿌리 박으면 사람으로 성장되어 사람이라는 결과를 맺고, 일에게 뿌리 박으면 일로 성장되어 일의 결과를 맺게 되고, 물질에 뿌리 박아 살면 물질로 자라서 물질이라는 결과를 맺게 되고 하나님에게 뿌리 박아 살면 하나님으로 자라 하나님으로 결실하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일생의 건설입니다. 심는다고 비유한 것은 마음이나 생각이나 뜻이나 힘이나 기능이나 모든 것이 그것을 사모하고 생각하고 거기에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어디다가 뿌리를 박아 무엇으로 자라고 열매맺고 있는가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어디다가 뿌리를 박고 무엇으로 자라가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판단이 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님에게 속한 것을 생각하고 사모하고, 연구하고, 원하고 힘쓰면 점점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 부요해져 갑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으로 장성해 갑니다. 마치 그 사람이 일생동안 돈만을 생각하고 사모하고, 연구하고, 힘쓰고 경영하면 점점 그 사람이 돈과 인연이 깊어지고, 관계가 넓어지고, 크기조, 그 돈으로 부요해집니다. 이와 꼭같이 하나님도 사람도 그러합니다. 그 사람이 인간을 사모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기울이면 인간으로 점점 성장되고 인간으로 부요해집니다. 이제 간단하게 우리는 내가 이 시간에는 어디다가 뿌리를 박고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지금 사모하고 있느냐? 인간을 사모하고 있느냐? 물질을 사모하고 있느냐? 세상 이런 저런 움직임의 역사들을 사모하고 있느냐? 정치 온갖 운동 일은 다 역사에 속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쉽게 자기는 어디다가 뿌리를 박고 있는가 하는 것을 단정해야 합니다. 사람이 식물처럼 하루 이틀 지나가면 점점 그 뿌리가 깊이 내려갑니다. 깊이 내려가고 넓게 퍼져내려 갑니다. 그러면 양분을 섭취해서 자라는 것입니다. 좀 차이는 있지만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이나 인간이나 물질이나 일들이나 그것을 점점 사모하게 되면 거기에 깊이 박히는 것입니다. 거기 대해서 유식해집니다. 거기에 대해서 실력 있어집니다. 거기에 대해서 자랍니다. 부강해집니다. 씨 뿌리는 비유도 다 그와 같은 것을 가지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일, 저런 일, 이곳, 저곳, 어디 있든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연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에게 욕망을 두고, 하나님을 인하여 움직이는 하는 사람은 점점 식물이 땅속에 뿌리 박히듯이 하나님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됩니다. 하나님과 깊은 인연을 맺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유식해지고, 담대해지고, 구비해지고, 밀접해지고, 충만해져서 하나님으로 자라가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자라 간다는 말은 하나님의 모든 하나님에게 속한 모든 것으로 자기는 부강해져가고 성장되어가고 하나님을 닮아가고 본받아 가고 배워가고, 하나님과 같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라면 뜻, 성품, 생각, 욕심, 전부가 마음속에 들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의 힘을 어디다 기울이느냐? 기울이는 대로 거기에 점점 마음은 깊이 들어가고, 자기의 몸의 힘은 깊이 들어가고, 깊이 들어갈수록 그것과 자기와 떨어지면 죽는 나뉠 수 없는 것으로 점점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목적을 어디 둔다 할지라도 마음이나 몸을 어디에다 시간적으로 많이 기울이며 어디다 양적으로 많이 기울이며, 어디다 질적으로 많이 기울이며, 공간적으로 많이 기울이는가? 공간적으로 기울인다는 말은 서울에 갔을 때도 기울이고, 부산에 갔을 때도 기울이고, 대구에 갔을 때도 기울이고, 미국에 갔을 때도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대로 자기는 되는 것입니다. 이대로의 사람이 되든지, 하나님의 사람이 되든지, 물건의 사람이 되든지, 일의 사람이 되든지, 자기는 그대로 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라 가는 것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멸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어떤 나쁜 것을 마음과 몸으로 많이 사모하면서, 생각하면서, 말을 하면서, 나는 이런 것은 되지 않겠다. 아무리해도 말 한번 했으면 한 것만큼 그 사람도 되었습니다. 생각을 한번 했으면 생각 한번 한 것만큼 그 사람이 되었습니다. 한번 움직였으면 움직인 것만큼 자기는 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러기에 나는 하나님과 사람과 물질과 일들 이 네 가지 밭과 같은 여기에 나는 심기워져 있는 식물처럼 되어있는 우리인데 어디다 뿌리를 박고 있느냐 무엇을 사모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에다 뜻을 두고, 무엇에다 소망을 두고, 욕심을 두고, 모든 움직임을 기울이고 있느냐? 하는 것으로 자기는 어떠한 자가 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자가 되어져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생동안 사람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물질의 사람이, 일들의 사람이 되어지니 일도 사람도 물질도 다 마귀의 것이요, 이것은 다 불타질 저주와 정죄 아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죽는날 까지 가졌다 할지라도 세상을 떠나는 그 시간으로서 다 멸망된 것이고, 자기와는 완전히 인연이 끊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다 사망과 저주와 정죄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저주와 정죄를 초월해서 이것들을 정복한 이것들 위에 있는 하나님으로 점점 뿌리를 박아 하나님의 이면을 사모함으로 뿌리를 박고, 저면을 사모하고 연구함으로 뿌리를 박고, 하나님으로 넓게 뿌리박고 퍼져 강하게 하나님의 요소를 섭취해서 하나님의 영양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광명을 입어,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 점점 하나님으로 부강해지는 것은 세상을 떠날 때에 혹은 세상에 있을 때라도 큰 환난이 올 때에 세가지 마귀에게 속한 것으로 무성하게 자란 것은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이 다 넘어지되 하나님으로 자란 것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넘어질 수 없는 절대자로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적든지 많든지 그것은 불변성의 것이요, 영원성의 것이요, 완전성의 것이요, 다 신령한 것이요, 생명에 속한 것들입니다. 이것이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이요, 반석 위에 지은 집입니다.
내가 그것을 한번 생각하면 그만큼 나는 뿌리가 깊이 들어가는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그것을 한번 원했으면 그만큼 뿌리가 깊이 들어갑니다. 뿌리가 한자 자랐으면 위에 줄기가 한자 자랍니다. 내가 어떤 수목에 대해서 유명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거름을 줄 때 어떻게 주어야 됩니까? 예 뿌리의 먼 끝에 가는 뿌리 있는데 주어야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그것을 파서 보고 줘야 되겠습니다.
아니 파보지 안해도 됩니다. 나무의 가지가 어디까지 뻗어 나갔는가 위에 가지가 뻗어 나간 범위와 밑에 뿌리가 뻗어 나간 범위가 같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과수의 가지를 잘라서 자라지 못하게 하면 뿌리도 못 나갑니다. 반드시 가지 하나가 멀리 뻗었으면 뿌리 하나가 멀리 뻗은 것이 있습니다 뿌리와 가지가 모순 같지만 일치입니다. 보이는 것과 안보이는 것이지만 하나로 연결 되어 있습니다.
그와같이 자기가 무엇을 사모하든지 그대로의 것을 뿌리라고 하면 사모한 그대로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 줄기와 같은 것입니다. 변동은 못합니다. 이런 줄 알고 우리가 말도 하고 행동도 해야 합니다. 왜? 말이나 행동이나 생각이 곧 뽑을 수 없는 원인이 되는 것이오, 마음이나 행동을 했으면 나무로 말하면 뿌리와 같이 자기란 사람과 자기라는 이력의 원인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대로 자기라는 사람이 되어지고 만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말도 행동도 하고 생각도 해야 되겠습니다.
뭐 말 그것 해 봤자 내가 의례히 알고 말하니까 말했으면 버리면 되지. 어림도 없습니다.
안버려 집니다. 그것이 자꾸 뿌리박아 집니다. 거짓부리로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했으면 그대로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4가지 토지를 가진 것과 같은 이 세상살이에서 내가 어디에다 뿌리를 박고 어떤 것으로 자라서 어떤 결실을 맺을 것인가? 하는 이것은 관계가 없는 것같지만 절대 불가결의 것입니다. 끝어질 수 없는 필연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은 해도 나는 그런 사람은 안되겠다. 때를 따라서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런 사람은 안되겠다. 그런 행동은 잠간 했지만 그런 사람은 안되겠다. 그것은 아주 어리석은 소리요,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그대로의 것입니다. 이것을 단정짓고 또 하나 단정 지울 것은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잘 보호하고 지키는 보수하기 위해서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을 있게 하려는 것이 우리들인지? 작은 것을 크게 하려는 것이 우리들인지? 이것을 똑똑히 판정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이런 것을 위해서 염려하지도 말고 기도 하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단정을 지우고 살아야 됩니다. 이것은 우리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할 일은 큰 것( 세상 것이요,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을 작게, 많은 것이 적어지게, 있는 것이 없어지게, 써서 없어지든지 빼앗겨서 없어지든지, 저절로 없어지든지, 없어지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고, 없어지는 방식은 여러 가지지만 없어질 것들입니다. 우리는 없이 하는 사람들이라. 어렵지만 이 두 가지를 단정지워야 됩니다. 써서 없어지든지, 빼앗겨 없어지든지, 저절로 없어지든지, 결과는 없어질 것들인데 어떻게 해도 한번은 없어질 것들인데 우리는 없어지기 전에 써야 할 자들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있게 하려는 것이 우리 생활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고, 없어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오,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지혜를 넓혀서 이미 없어질 것인데 자연적으로 없어질 것인데 없어지기 전에 자기가 써서 없앨 수도 있고, 빼앗겨서 없어질 수도 있고, 자연 법칙에 필연적으로 결과적으로 없어지기도 합니다. 없어질 것인데 안 없애려고 힘들여 보수하다가 내 보수를 거스려서 없어지는 것도 헛일, 써서 없어져도 결과적으로 자기에게 해가 되는 것으로 사용한다면 그것도 헛일, 이미 없어질 것이라 쓰는 것은 아깝지 않은데 잘못 사용해서 도리어 큰 화를 만드는 것으로 사용을 잘 못해도 안되겠고, 바로 사용해서 유익되게 될 수 있는 사용의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아서 사용해야 되겠는데 그러면 이미 없어질 것이니 없어지지 아니하도록 지킨다는 것도 헛일 없어질 때 쓰고가자 해서 쓴다고 할지라도 도리어 화를 마련한다고 하면 안 쓴 것만 못하니까 그것도 헛일 이것을 바로 잘 써야 되겠는데 바로 잘 쓰려면 어떻게 쓸까? 바로 잘 쓰는 사람이 제일 복 있는 사람인데 이것을 우리가 단정짓고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가진 건강이나 몸이나 생명이나, 기능이나, 지위나, 권세나, 가정이나, 물질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인데 이 자본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아무리 아껴 봤자 결국은 다빼앗겨서 없어질 터이니까 아낄 필요가 없다. 이것을 단정해야 되겠고, 없어지지 않겠다고 아끼는 것은 나중에 다 없어지니까 헛일이요, 없어질 터이니 쓰고 보자 ! 쓰면 화약을 사서 불로 들어가는 것처럼 자기를 멸망케 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차라리 사용 안하고 가만히 두었다가 나중에 없어지는 것이 나으니 그렇게 사용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믿음 없을 때 사용한 것이, 자기 있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건강을 사용해, 지능, 물질, 생명, 자기의 모든 소유를 사용해 사용해서 마련한 것이 하나님의 심판 받을 재료를 더 많게 하는 소가 아무리 살쪄봤자 도살장에 가서 저를 잡는 사람의 고기만 많도록 하는 것이지 자기에게 유익이 없다고 야고보서 5장에 도살의 날에 살찌운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유를 사용해서 하나님 앞에 벌 받을, 진노 받을, 심판 받을 멸망이 커지게 만든다고 하면 사용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자기의 가진 것을 사용하는데 사용해서 만든 것이 과연 심판을 면할 것들인지? 그것이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것들인지, 만물에게 더 배척받고 원수 될 것인지? "그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말씀하신대로 순전히 이것을 써서 만들어 놓은 것이 화 덩어리, 심판 덩어리, 저주 덩어리, 만물에게 원수되는 원수 덩어리를 만든다면 그것을 쓸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것을 써서 자기를 위한 권세 뭉텅이를 만들었다면, 향락물을 만들었다면 자기의 소원 성취의 덩어리를 만들었다면, 그 덩어리가 무슨 덩어리냐? 그것이 영원히 자기에게 필요 있는 덩어리겠는가?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가 심판 때에 매하나 맞을 것이면 두 개 맞고 벌 하나 줄 것이면 둘 주고, 조금 비참해질 것이면 더 많이 크게 비참해질 원인이 아닌가? 우리가 비판해 봐야 합니다.
고요히 생각해 보면 사람이 죽을 때에 고통이 각각 다르니 많이 마련해 놓은 사람은 고통이 더합니다. 지옥에도 층어리가 있습니다.
행한대로 갚는데 무슨 층어리 세상에서 자기의 가진 것으로 만든 그대로 어떤 사람은 있던 것을 그대로 빼앗기고, 하나도 사용 못해본 사람, 사용을 해서 욕심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 많을수록 그에게는 형이 많습니다.
그 만든 것이 자꾸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나? 하는 것을 이리 저리 비판해서 확정을 지워야 우리의 가진 것을 사용하지요. 우리는 성경이 말하기를 지키고 모으는 자가 아니라 있는 것을 쓰는 자라. 모으는 자가 누구냐? 모으는 자는 주님이 모은다 했습니다.
예를 들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아라 이모든 것을 너희 천부께서 있어야 될 줄 알고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것은 당신이 책임 맡았습니다.
이런 것은 구하지 말아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너희 아버지가 아시느니라. 책임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쓰기는 다 써야 되겠는데 어떻게 쓰야 되겠는냐? 명예를 위해서 쓸까? 인류를 위해서 쓸까? 내 온갖 욕심을 위해서 쓸까? 문화를 위해서 쓸까? 물질을 위해서 쓸까? 이것을 평가해서 어디다가 쓰는 것이 제일 요긴하고 중요하고, 값있게 쓰고 그 쓴 것이 하나도 손해가지 안하고 적은 것을 써서 큰 수입을 얻는 잘 쓰는 길이 무엇이냐? 이것을 찾아야 됩니다 잘 쓰는 길은 간단하게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한 조물주 시오, 만 왕의 왕이시오, 모든 것의 주인 되는 만 주의 주시오, 홀로 주권 하시는 분이시오, 모든 것을 당신이 모두 가지신 분이오, 영원히 이분으로 말미암아 영광스럽고, 살고, 이분으로 벌받고 이분으로 말미암아 망하고, 이분으로 인해서 흥하는 주권자 신데 이분에게 도움을 입을 수 있는, 이분에게 조정을 잘해서 이분과 친교를 맺을 수 있는. 이 분의 무진장의 것을 내가 살 수 있는 이런 길이 있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이미 없어질 것을 가지고 이분을 사귀어서 이분을 사귀는 교제비로 쓴다면 이분의 모든 것을 내가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보다 더 요긴한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장사될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분과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는 길이 있다면, 참 이렇게 쓸 수만 있다면 아주 잘 쓰는 길을 마련한 것인데 되느냐? 안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될 수만 있다면 이것을 가지고 이분을 나와 친밀해 가지고 내 사람을 만들어, 내편을 만들어, 내 하나님을 만들어, 나와 한 덩어리를 만들어, 이것 가지고 이분과 나와 한덩어리의 친밀성을 만들고 이것 가지고 이분을 살살 달래서 이분의 비위를 맞추어 조그만 것으로 이분의 전부를 내것으로 삼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이 길보다 더 좋은 길이 있겠습니까? 자 있다고 생각해 본 사람 손 들어 봅시다. 만일 이 길이 된다고 하면 이 길보다 더 좋은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봅시다. 이 길보다 더 좋은 길이 없습니다.
있다면 이 분이 말하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요, 소자에게 행치 안한 것이 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다.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한 것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는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주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이것이 계약 아니고 무슨 계약입니까?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약을 선포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신을 얼마든지 사귈 수 있고, 당신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삼을 수 있고 당신과 나와 한 덩어리와 같은 부부와 같은 머리와 몸과 같은, 밀접하게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가진 비용으로 족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디다 쓰야 된다는 것을 단정지워야 되겠습니다.
있는 것을 쓰면 쓸 것을 마련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다고 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고 쓰는데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써서 도리어 화를 면할 수도 있고 제일 요긴하게 중요하게 참 장사 잘되게, 아주 수입이 크게, 유익이 크게 쓸 수 있는 길이 하나 있으니 그 길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것으로 만드는 이 길이 제일 요긴하고 중요한 길이니 이길로 있는 모든 것을 쓰기로 판정하고 단정지웠습니다.
이 길로 쓰는 것은 어떻게 쓰는 것이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형제를 구원하는 이 길, 다시 말하면 형제를 사랑하는 이 사랑을 네가 해라 내가 이제까지 명령도 말했고, 요구도 말했지만 한 말로 말하면 하나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형제를 죄에서 해방 시키는 것, 의를 그에게 입혀 주는 것, 하나님과 결합을 시켜 주는 것,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구속을 형제들에게 입혀주는 것이 하나님이 제일 원하셔서 이 일을 하는 데는, 형제에게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히기 위해서는 냉수 한 그릇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겠다. 그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최고의 명령 지키는 것이니 그 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해한 것이 지극히 큰 자에게 해한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내게 대해서 하지 않은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친밀하게 하는데는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방편이 양식을 나눠줘라. 네 모든 소유를 다 줘야 된다. 너는 내 나라에 와서 같이 먹고 마시고 같이 살자. 자본도 같은 자본, 같은 희로애락, 같은 거처, 오른 편에 있는 너희는 들어 와서 나와 같이 살자. 언제 주님이 ................ 너희들이 내가 배 곺을 때 먹여 주었고, 벗었을 때 입혀 주었고, 갇혔을 때 찾아 봤고, 나그네 되었을 때 대접하였느니라.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지극히 작은 소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소유를 주님 위해서 쓰는,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만드는 비용으로, 경비로 쓰면 제일 잘 쓰는 것인데 이렇게 쓰는 것은 네가 그리스도의 사죄를 받았는데, 칭의를 받았는데, 생명을 받았는데 예수님의 사죄, 칭의 새생명을 형제들에게 주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형제들에게 전해주는데, 그의 소유가 되게 하는데 쓰는 이것이 주님이 제일 워하시는데 쓰는 것이요, 주님의 소유를 다 자기 것 만드는 이 방편으로 쓰는 것이요, 이것이 주님과 자기와 하나 되게 하는 것이라.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 이제 후로는 다시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친구라 하리니 친구라는 말은 번역은 친구라 되었지만 한 소망, 한 정신, 한 소욕, 한 덩어리다. 인격과 신격 교제, 신인결합에 흠이 없는 결합이 되었고 둘이 합해서 친근해진 것을 표시해서 친구라고 한 것입니다. . 예수님은 양성일위이지만 양성일행, 두 인격의 결합을 가르쳐서 친구라. 그러면 하나님은 내 하나님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는 것, 이 복음을 형제에게 주기 위하여 목숨까지 버린 사람은 주님과 친구가 되어 결합해서 하나 된 것, 이것을 형제들에게 줘서 사죄의 양식을 주고, 칭의의 양식을 주고, 새 생명의 양식을 주어서 죄 없이 사는 그 힘을 북 돋우어 주고, 의롭게 사는 그 힘을 북돋우어 주고, 칭의를 보수하는, 하나님과 결합으로 사는 이것에 힘을 주는 것을 가르쳐서 양식을 준다 했습니다.
이것을 주는 자는 내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겠다. 간단합니다. 이 계약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 것 만드는 길은 형제에게 사죄와 칭의와 새 명명으로 힘있게 만드는 것이 양식 준다는 말입니다 힘있게 만드는 것, 말로, 감화로, 여러 방편으로 힘있게 만드는 것, 생명까지 버린 자는 친구라. 다시는 종이라 하지 않겠다. 종은 주인의 하는 일을 다 모르지만 친구는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는 것이 없이 다 안다. 이것은 내가 주님에게 입은 사죄, 칭의, 새 생명을, 주님에게 입은 구속을 형제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내가 받은 구속을 그에게 보여서 탐내게 하고, 욕심 내게 하고, 다음에는 내가 받은 구속을 그에게 줘서 그로 구속을 가지게 하는 여기에 쓰는 것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자기 것 만드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이 외는 길이 없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쓰는 것보다 더 가치 있게 올바르게 쓰는 길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쓰지 않으려고, 아끼고 모으려고 하는 자도 정신없는 자 아무렇게나 쓰면 자기 것인 줄 알고 이것을 써서 화를 마련하는 어리석은 자.
이분을 나와 친밀해져서 나와 한 덩어리 만드는 교제비로, 이분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이 대가로 쓰는 것이 제일 요긴하게 쓰는 것인데 이것은 주께 받은 세 가지 구속을 내게 있는 것으로 비용을 들여 이 구속을 높이 들어 광고를 해서 이 구속을 모든 사람들이 보고 아이구 좋다. 나도 믿었으면 좋겠다 해서 욕심을 내게 하고, 이 구속을 그들에게 넘겨주는데 쓰고, 이 구속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데 쓰이는 비용으로 쓰고, 이 구속을 그들에게 넘겨주는 비용으로 쓰는 이것 외에는 요긴한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확실히 깨닫고 확정을 짓고, 안 쓰려고 하는 어리석은 자도 되지 말 것, 벌로 쓰서 화를 만드는 어리석은 자도 되지 말 것, 요긴하게 쓰는 한 길이 있는데, 이 방편은 이리 저리 생각하지 말 것, 복음을 위해서, 복음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 구속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이 구속을 모든 인간들에게 환하게 광고하기 위해서 광고비용으로 쓰고, 모든 사람에게 구속을 전해주기 위해서, 그들의 소유를 만들기 위해서 그들에게 전해주는 비용으로 이 외는 자기 소유를 바로 쓰고 가는 길이 없습니다.
어리석지 말고 지혜롭게 하고 갑시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것을 깨달아 확정지운 사람이라면 그는 사랑의 온전함을 이루어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는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참 하나님의 귀한 선물로 쓸 수 있습니다.